향수
―정지용 시 (박인수와 이동원 듀엣)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단상]
5월이면 옥천에 정지용 문학상을 발표하면서 축제를 연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못 열린 것으로 아는데, 필자도 거기 몇 번 갔다왔다. 옥천 마을을 둘러보면 이 시의 그림과 마을의 정경과 흡사하다. 정지용 시인이 고향을 노래한 시 ‘향수’ 는 참 아름다우며 고향이 생각나게 한다. 고향, 그리운 것. 그리우면 눈물 나는 어머니 생각. 나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가는가 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어찌 잊힐 리야. 살아온 것은 자랑할 것 없는데 세월만 갔구나. 흰 머리카락 한둘씩 늘어가는데, 실개천 휘돌아 나가고, 흙에서 자란 내 마음 그립다. - 이기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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