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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메타버스와 재즈의 모순 연습/최원재.경희대

I. 서론

요즘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회자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 사회는 이미 메타버스 사회였다. 수많은 익명 게시판 글에서, 원래 글 작성자가 댓글 창에서는 마치 다른 사람인 양 전혀 다른 자아를 연기한다. 인터넷 카페의 이런 소위 ‘자아분열’ 글이 메타버스를 속성을 잘 보여준다(조선일보). 인터넷에 리플을 달고 있는 사람들의 심리는 이미 메타버스 속에 있다. 이러한 현상은 가상과 현실 사이에서 이쪽과 저 쪽이 다르다고 생각해서 저지르는 행위다. ‘이쪽과 저쪽 중에서 어떤 쪽이 현실이 고 어느 것이 가상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메타버스에서 아무런 준비도 없이 상당수의 자아가 피폐해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사실 지금도 이러한 한계에서 벗 어나고 있지는 못하다. 메타버스 상품들(플랫폼 등)은 많이 나오고 있으나 메타버 스의 성질이나 메타버스의 철학, 메타버스의 윤리학을 배울 수 있는 곳이 전혀 없 어 메타버스를 도외시하는 경향까지 나타나고 있다. 대중에게 메타버스는 메타버 스 플랫폼으로 불쑥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메타버스는 단순한 기기가 아니므 로 도구적 관점에서 접근해서는 안 된다. 메타버스는 지금의 내 삶이 고스란히 영 위되는 곳이므로 개념적 관점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재즈가 이러한 개념적 관점의 메타버스를 조금 손쉽게 이해시켜주는 방법이다. 곧, 이것이 메타버스를 재즈가 실천하는 접근이다. 테오도르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가 재즈의 사회적 담론에 주목하였다면 본 연구자는 재즈가 갖는 모순성에서 메타버스의 차원 전환성을 추론했다. 다시 말해 재즈는 현실적 악보로 전달되는 음률과 악보 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직관적 즉흥연주로  만들어지는데, 여기서 직관은 곧 가상이므로 재즈는 가상과 현실이 생명성을 담보 하는 모순의 영역이다. 모순이 없다면 재즈는 생겨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모순이 다. 메타버스 시대에 재즈를 소환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메타버스는 ‘가 상’+‘현실’이고 이 접합점 역시 모순이기 때문이다. 재즈와 메타버스는 모두 모순 되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개념이자 공간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본 연구자가 문학 연구에 재즈를 소환한 이유는 문학에서 파생된 청각성을 통 해 메타버스의 개념에 접근하려는 실천적 시도다. 문학은 삶의 가치 있는 경험을 상상력을 토대로 하여 언어로 짜임새 있게 표현한 예술로 정의된다. 그렇다면 음 악은 문학인가? 지금 분명 음악이라는 장르와 문학은 구분되어 여겨진다. 그러나 이는 단지 둘의 표현 형식의 차이를 놓고 예술이라는 큰 개념의 다른 칸에 편의상 물리적으로 분리해둔 것에 불과하다. 마르셀 푸르스트(Marcel Proust)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문학성을 투여받은 후각이 기호로 이입된 문학이다. 이 작품에 서 마들렌은 단순히 메타포가 아닌 후각적 기호로 언어의 기능을 한다. 이러한 현 상은 의식의 흐름, 자동기술법으로 드러나는 문학의 다층성이다. 초현실주의를 매 개하는 이러한 문학의 특징은 결국 메타버스라는 개념과 현상에 맥을 함께 한다. 울리포(OuLiPo)라는 것이 있다. 이는 수학에 문학성을 부여한 파생물이다. 그렇게 문학의 테크닉은 수학의 규율에도 문학의 감정을 이입한다. 노래 가사도 그렇다. 음률을 배제한 가사는 소멸한다. 그러므로 언어기호로 짜임새 있게 표현한 음률의 종적은 문학성을 내포한다. 이로써 음악 또한 문학의 성격을 획득하게 된다. 게다 가 음악의 시각화는 언어기호를 통해서 일어난다. 밥 딜런(Bob Dylan)의 노벨 문 학상 수상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인류가 시에 음률을 덧붙여 온 세월 을 보면 음악과 문학은 함께 진보한 인류의 흔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음악 을 한다는 말과 문학을 한다는 말이 다르지 않다. 재즈는 특히 문학성(혹은 문학의 철학)이 짙게 돋보인다. 19세기 미국의 낭만 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에드거 앨런 포우(Edgar Allan Poe)의 작품과 마일스 데이 비스(Miles Davis)의 20세기 중반 모달 재즈(Modal jazz)의 태동에서 나타난 표현 양식의 변화에서 그 유사점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사회적 이슈를 문학적으로 승 344 최 원 재 화시키는 데에 재즈만 한 것이 없다. 재즈(Jazz)라는 제목의 토니 모리슨(Toni Morrison)의 문학작품이 나온 이유도 이런 데서 기원한다. 아도르노가 재즈라는 새로운 음악에 주목한 것은 무엇보다 재즈가 예상외로 빨리 대중을 압도하는 주요 한 음악 현상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재즈를 빠르고 집중적으로 미 국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재료로 생각했다. 그의 재즈 에세이(Jazz essays)의 실질적 주제는 재즈와 관련된 담론 및 대중적 가상이며, 거기에 숨겨진 사회였다 (이수완: 278). 가상현실이 실제가 되어가는 현실을 대처하는 실천적 방법으로 재즈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의 연구를 살펴보면 메타버스와 관련해서 문학은 콘 텐츠로서 갖는 기능에 주로 집중되었다. 문학이 갖는 인문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 서는 문학성이 철학으로까지 담론화되어야 하며 실제로 구현되는(feasible) 과정에 까지 도달해야 한다. 예를 들어 철학적으로 재즈와 메타버스는 모두 0(zero)으로 환류되는 성격을 갖는데, 다 비워진 공(空)간이기도 하며 꽉 채워진 만(萬)간이기 때문이다. 재즈와 더불어 서예 역시 그 좋은 예이다. 서예는 문학성을 투여받은 시 각 기호(그림)라는 파생물이면서 인성까지 도야할 수 있는 문학의 전위체로 실천 성을 확보한다. 본 논문에서 재즈란 서예와 같이 문학성의 전위인자(transposable element)로서 현실에서 메타버스라는 가상으로 들어가는 차원 전환을 가능케 하는 전위 역량의 위상을 갖게 된다. 이러한 역량은 가상현실이라는 모순이 모태가 되 는 메타버스가 이미 인류의 삶이 되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점을 준비할 수 있도록 문학이 던져주는 철학 연습에서부터 계발된다. 본 논문에서는 문학을 흡수한 재즈가 보여주는 모순의 성격을 살피고 여기서 착안한 바를 빌려 메타버스와 함께 살아갈 때 필요한 역량은 무엇인지, 어떻게 기 를 수 있는지 도출해보기로 한다. 전염병이 돌고 불어닥친 메타버스 광풍을 진정 시키고 사용자의 관점에서 생각할 틈을 가져봄으로써 가상과 현실의 넘나듦이 자 유로워지는 메타버스를 내러티브하는 데에 본 논문의 의의가 있을 것이다(최원재: 256/김성규: 51). 

 

II. 재즈의 모순

재즈의 기원은 문학의 기원과 같다. 둘 다 표면과 이면의 불일치에서 시작했 다. 그것은 세계의 양면을 모두 파악하면서 파편화된 세계를 총체적으로 종합하려 는 인식의 발로이기도 했다. 뉴올리언스(New Orleans)에서 시작한 재즈는 자유에 대한 열망이 점철된 현실 탈피의 상상이다. 혹은 다름에 대한 욕망이 만들어낸 결 과다. 현실을 가상화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재즈는 연주자의 ‘지금’, ‘여기’ 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탄생했다. 이는 그 자체로 유희를 일으킬 수도 있고, 또 다 른 세계에 대한 발상의 원천지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재즈의 행태는 음악을 통 한 인류 진화의 단계를 보여준다. 또한 재즈를 통해 음악의 문학성이 어떻게 인류 진화의 한 양상을 이루었으며 또 추진체가 되었는지 읽을 수 있다. 재즈의 문학성 은 기호성과 텍스트성에 있다. 그리고 이는 즉흥연주로 나타난다. 재즈에는 즉흥연 주가 당연히 있기 마련이고 즉흥연주는 재즈를 규정하는 공리가 된 것이다. 즉흥 연주는 재즈의 문학성이며 생명이다. 자동기술법이 만들어내는 초현실주의 문학 시인들이 음악을 한다면 재즈를 했을 것이다. 이들은 자유연상이라는 인지적 메커 니즘에서 합일성을 보인다. 재즈 연주자들의 즉흥연주는 서로의 기억 속에 저장되 었다가 은연중 나타난다. 이러한 즉흥연주의 특성은 필연적으로 즉흥연주 텍스트 간의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을 만들어낸다(남예지: 158). 상호텍스트에서 벗어나지 않되 악보에 적혀있지 않은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재즈의 공간은 음률이 만들어내는 가상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재즈의 즉 흥연주를 들으면 아슬아슬하게 공기 중에 떠돌다가 자기장에 끌리듯이 연주자의 몸으로 들어오는 가상 연주와 현실 연주의 경계를 느낄 수 있다. 즉흥성은 일상성 에서 벗어나 가상세계에서 연주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는 단순히 연주자의 상상에 의존하는 연주로 끝나지 않고 청자를 가상세계로 이끈다. 다시 말해, 정해 진 대로 움직이는 현실에서 보이지 않던 것을 들리게끔 이끄는 촉매제가 재즈의 즉흥연주다. 작곡과 연주는 시간적으로나 인과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이 둘 간의 인과적 관계는 무한 소급으로 빠질 가능성이 있는데(최순옥: 252), 상식적 차원의 연주와 작곡의 경계가 무너질 때 즉, 인과관계가 역전될 때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맛보게 된다. 내면적 소리 이미지가 실현되는 차원이 재즈를 통해서 전위와 전환 현상이 발생하는 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재즈는 우리 속에 갇혀 있으나, 그곳을 빠져나가려고 애쓰는 자유로운 영혼의 날갯짓 소리’라고 재단했다. 이는 본 연구자 가 가상성을 경험하는 방법으로 차용한 재즈의 특성을 문학적으로 해석한 바다. 이처럼 재즈의 존재부터가 모순이다. 모순이 없는 재즈는 없다. 재즈는 생태적 으로 체계적 폐기(systematic abandonment)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재즈는 악보라는 형식에 구속되지 않고 즉흥연주라는 직관에 의존해서 연주한다. 이는 탈(脫) 형식 이다. 재즈에서는 모두가 리더이며 모두 팔로워다. 자유의 미학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의 정점에서 탄생한 프리재즈(free jazz) 스타일은 하나의 장애로 여겨졌던 기 존의 음악적 형식성으로부터 탈피하여 자유의 이념을 극대화하는 데에 초점을 맞 추고 있다. 하지만 재즈 역시 음악이며, 따라서 음악 고유의 형식성에서 탈피하려 는 시도는 실현되기 쉬운 것이 아니다(남형우: 12). 역설적으로 형식성이 없으면 재즈가 되지 않고, 형식성이 있으면 재즈가 되지 않는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존재 를 할 수 없게 하는 요소가 있어 어느 한 명제가 다른 명제를 모순적으로 보조해 야 하기 때문이다. ‘죽어야만 산다’라는 종교적 맥심(maxim)과도 흡사하다. 즉흥연 주 또한 말이 도출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의도적인 부분도 있으나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부분도 있을 수 있다. 즉, 의식적으로 음악 언어를 구성하는 것과는 별개로 전혀 다른 심급에서 오는 음악 언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속한 언 어의 세계 안에서 무의식이 만들어지듯, 음악적 언어 또한 수 세기의 전통과 관습 을 통해 형성되어왔으며, 이 세계 안에서 연주자 각자의 무의식이 형성되는 것이 다. 연주자의 무의식 속에 침잠되어 있는 음악 언어들은 연주가 이루어지는 동안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를 넘나들며 연주에 영향을 미친다(남예지: 30). 여기서 의식 과 무의식을 현실과 가상으로 치환해보면 재즈의 모순이 확연히 느껴진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연주하는 것에 즉흥성이 발휘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재 즈 연주자의 기억과 계획 속에 즉흥성이 있다. 재즈 연주자는 실시간 계획을 통해 다음 연주의 운지점부터 예상한다. 이것이 클래식 음악 연주자와의 다른 점이고 재즈만이 갖는 메타버스의 성격, 즉 예측적 가상이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투나 언어 습관이 다 다르듯 재즈 뮤지션들에게도 분별 가능한 고유의 뉘앙스가 존재한 다. 이것이 재즈의 카오스적 질서라고 하는 것이다. 재즈의 카오스적인 질서와 디 자인 세계의 접목은 도전하는 태도와 규칙 안에서 정돈하는 태도가 공존해야 한다 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김민주: 71). 카오스가 질서가 되는 현상 역시 재즈의 모순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므로 재즈를 연주하다가 갑자기 캐논을 연 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연구에서 피아니스트 30명을 대상으로 뇌파 실험을 했 더니, 재즈 피아니스트와 클래식 피아니스트가 두뇌를 사용하는 회로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림 1> 재즈 피아니스트와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뇌파 기록:생략(별첨 논문파일참조)

 

클래식 피아니스트는 ‘무엇을’에 더 집중하는 반면 재즈 피아니스트는 즉흥성 이 중요하므로 예상하지 못한 화음을 창조하려고 연주한다. 재즈 피아니스트의 두 뇌는 클래식 피아니스트의 두뇌보다 더 빨리 행동을 짜기 시작했다. 재즈 피아니 스트에게 예상하지 못한 코드를 화음 있게 연주하라고 요구할 때, 재즈 피아니스 트의 두뇌는 클래식 피아니스트보다 더욱 활발하게 움직였다. 운지법을 어떻게 할 지 빠르게 계획해야 하기 때문이다(The Science Times). 이러한 전환의 힘은 공감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는 다른 연주자와의 공감(즉, 상호텍스트성)에서 나타나기도 하나 자아와의 공감에서도 나타나고 그래야 한다. 연주자 각자의 리듬이 공존해서 만들어지는 복층적 리듬에서 발생하는 긴장과 이완에서 촉발하는 자아 내의 리듬적 관계와 비트(beat) 간의 공감이 필요하다. 재즈 의 철학이 바로 여기에 있다. 재즈를 빌려 표현하자면 악보의 음률을 따르는 자아 와 즉흥의 힘을 미는 자아 간에 공감이 형성되어야 한다. 악보 안과 밖을 넘나들 며 겪는 모순이지만 태생적으로 모순이 아니어야 하는 모순 연습(이는 본 연구자 가 명명한 것으로 모순 실험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을 통해 이러한 공감 형성이 발생해야 한다. 이는 재즈의 자발성, 불완전성, 제한된 자율성이 있어 가능한 일이 다(최순옥: 251).

본 논문에서 재즈를 통해 의도하는 바도 재즈의 정체성을 단지 음악 내적으로만 사유할 것이 아니라, 음악 외적으로 그 사고의 지평을 넓혀보는 것이다. 재즈의 모순 연습 방법인 안팎으로 ‘넘나듦’은 메타버스에서 요구하는 차원 전 환 역량과 맥을 같이 한다. 기술적 관점에서 메타버스는 ‘가짜를 진짜처럼’ 느껴지 게 만드는 것이고 인문학이 보는 메타버스는 ‘가짜도 진짜처럼’ 접하는 것이다. 재 즈의 즉흥연주라는 직관적 경계 넘나듦은 모순 연습이라는 차원 전환 역량이 되어 메타버스를 마주하는 힘을 길러준다.

 

<그림 2> Rene Magritte, Le Plagiat:생략(별첨 논문파일참조)

 

위의 <그림 2>는 모순 연습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가장 ‘재즈 같은’ 작품이 다. 그림의 이쪽과 저쪽이 모두 하나의 그림을 완성해내고 있다. 

 

III. 모순의 메타버스

메타버스 이전에 모순은 해결의 대상이었다. 갈릴레오의 생각 실험(독일어로 ‘gedanken Experiment’, 영어로는 ‘thought experiment’라고 한다. 사물이나 개념 을 이해하기 위해 가상의 시나리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이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모순에서 이성적으로 모순을 제거하는 것이었다면 지금 디지털 메타버스 시대 의 모순 연습은 모순을 안고 살기 위해 하는 행위다. 메타버스에서 모순은 존재의 원인이다. 메타버스는 양자역학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양자역학에서 하나의 객체는 두 가지 양자적 특성을 갖는다. 입자성과 파동성이다. 이들을 동시에 관측하는 것 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처음에는 이중성(duality), 상보성 (complementarity)이라는 용어로 의미화했다. 상보성의 중요한 예로는 베르너 하이 젠베르크(Werner Karl Heisenberg)가 찾아낸 불확정성의 원리가 있다. 이 원리로 인해 물리학자는 주관적, 확률적, 불확실한 세상에서 살게 된다. 양자역학으로 인 해서 과학자는 모순된 현상까지도 과학으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과학은 철학과 떨 어질 수 없는 관계를 맺게 되었다. 과학에서 모순은 점점 더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The Science Times).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개념이 혼재하는 모순이야말로 자연의 본질이다. 메타 버스도 마찬가지다. 가상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지만 둘 사이의 상보성은 서로 간 의 다름을 하나로 만든다. 메타버스는 현실 공간과 상호작용하며 가상과 현실의 융·복합이 이뤄지는 공간이므로 메타버스 역시 재즈의 성격인 체계적 폐기와 물리 학의 성격인 상보성을 갖게 된다. 메타버스는 가상의 나와 현실의 내가 사는 함께 사는 공간이므로 일인칭 시점의 나와 삼인칭의 나를 상호 경험할 수 있는 곳이다. 현실 속의 가짜 나, 가상 속의 진짜 나, 가상 속의 가짜 나, 현실 속의 진짜 나, 이 중에서 어느 자아가 진정한 자아인지 혼란스럽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선순위는 두 개의 자아 간 공감이다. 재즈 연주자가 즉흥연주를 하고 다시 비트를 맞출 때 의 공감 형성과 같은 맥락이다. 메타버스와 공감이라고 하면 메타버스 플랫폼을 이용해서 타자와 공감을 하는 식의 분위기를 떠올리기 쉽다. 예를 들면 행동 장애 350 최 원 재 가 있는 공격자 또는 피해자의 입장이 되어볼 수 있는 가상현실 시스템 같은 것이 다(AI 타임즈). 그러나 자아 간 공감이란 이러한 플랫폼에서의 도구적 공감이 아니라 메타버 스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자아내 공감이다. 개념적 범위에서 일어나는 자아와 육 체성을 갖는 자아 간의 공감이다. 메타버스에서의 자아정체성이 현실 공간보다 진 실한 자아라고 느낀다거나, 신체와 사회적 지위를 벗어나 인상관리와 자기표현이 더욱 편리하다고 느낀다는 사람들도 있다(이지혜, 주정민: 115). 그러므로 메타버 스는 자아를 찾는 방법론이 구현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는 문학과 철학의 역할 과 같다. 본 연구자가 문학에서부터 재즈까지 소환해가며 모순 연습이라고 명명한 차원 전환 역량에 주목한 것도 메타버스에서 이러한 자아를 찾아 맞춰가는 과정이 필요해서다. 메타버스를 접함에 있어서 누구든 자아가 펼쳐지는 세계관을 스스로 찾아갈 수 있어야 함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문학으로 자타 간 그리고 자아 간 공 감 능력을 연습하지 않는 이상, 문학에서 철학을 꺼내놓는 연습이 되지 않는 이상 새로 도래하는 세상이 꼭 가상세계가 아니어도 문제(주로 창의력과 관련된)가 되 기 마련일 것인데 하물며 가상세계가 곧 들이닥친다니 이에 맞는 실천적 대비책이 필요함을 교육자로서 직감했던 바다. 지금이야 메타버스를 기술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개발자가 한정되어 있으나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코딩 역시 머지않아 메타버스화 될 것이 분명하다. 지 금 가장 대중적으로 주목받는 이미지 생성 AI 모델 ‘달리’, ‘이마젠’, ‘미드저니’, ‘스테이블 디퓨전’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LG AI연구원의 초거대 AI인 엑사원은 반대로 이미지를 글로 바꿔주기도 한다. 메타(Meta)는 글을 영상으로 만들어 주는 비디오 생성 AI 모델을 발표했다. 시나리오 같은 긴 글을 입력하면 AI가 텍스트에 일일이 대응되는 영상을 생성하고 이를 이어 붙여 한 편의 영화처럼 만들어낸다. 구글은 또 사진 한 장만으로 동영상을 무한히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도 내놨다 (AI 타임즈). 음악으로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기업도 있다. 어비스는 헤드셋, 이어 폰, AI 스피커, 사운드바 등과 연동해 AI 기술로 특화된 음향 경험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앱이다. 특히 바이노럴(binaural) 오디오라는 기술을 이용, 음원이 도달하는 위치와 상태에 따른 차이를 느끼게 함으로써 청취자가 마치 실제 소리를 듣고 있 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효과를 준다(AI 타임즈). 이러한 시장의 동향을 보면 실 물 크기로 실제적인 시각화를 가능하게 하는 메타버스가 곧 아바타가 등장하는 지 금의 메타버스 플랫폼을 대체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렇게 쉽게 영상과 이미지로 메타버스를 구현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가상세 계 구현 기술이 절대적 우위를 차지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만들어 놓은 메타버스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에 관한 준비와 실행이다. 재즈 연주자가 즉흥 연주를 하기 직전 하는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 비대면 시기에 갑자기 찾 아온 메타버스는 지금이야 무소불위의 절대적 존재로 여겨지나 메타버스가 지금의 현실 속 삶을 송두리째 바꿔버리는 곳(것)도 아니며 우리 삶의 종착지도 아니다. 아바타가 아닌 사용자가 실제로 살게 될 메타버스는 호모사피엔스의 진화에서 일 부를 차지할 뿐이다. 메타버스가 없어도 문학을 하고 삶을 반추하듯이 메타버스가 도래한다고 해도 같은 일을 반복하며 살고 있을 것이다. 삶의 공간이 하나 더 늘 어날 뿐이다. 그러므로 메타버스를 맞이할 연습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 도 이런 연습을 할 수 있는 곳이 지금 어디에도 없다. 일부 학교가 찾은 방법이라 고 해봐야 고작 VR, AR 구현 기술을 가르치거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보는 것에 불과하다. 기술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현실과 가상 사이에서 감 정의 전위가 일어날 수 있는 덜 추상적인 매개물로 메타버스의 작동 기제를 보여 줄 수 있는 실재적 방법이 필요하다. 가상의 나와 현실의 나 사이를 잇는 공감이 절실히 필요하고, 가상이며 현실이고 현실이며 가상인 모순을 안고 살아나가는 힘 이 필요하다. 본 연구자는 재즈를 연주할 때 이러한 힘을 느낀 바가 있어 지금의 논문으로 공유하는 것이다. 메타버스에서는 이쪽과 저쪽을 구분하는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메타버스 바깥에 수학이 세워 놓은 절대적 아성에 대한 세기적 도전이기도 하다. 메타버스 기술은 수학에 근간하나 가상을 현실로 소환한 메타버스에서는 이 근간인 수학이 오히려 부정되는 모순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메타버스는 일부 언론과 기업에서 떠들썩하게 부르짖는 황금알을 낳는 최종 결과물이 아니라 사고의 전환을 길러줄 수 있는 역량 연습의 장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오감을 접목하 여 한층 진화된 상호작용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가상의 경험들이 현실과 긴밀히 연결되고 사용자 또한 두 세계의 공존을 익숙해하는 이른바 혼합세계가 펼쳐지고 있다. 더 나아가 가상의 공간이 실제 현실로 착각할 만큼 정교해지고, 일상의 활동 대부분이 구현됨으로써 굳이 두 세계의 영역을 구분할 필요가 없게 되는 대체 세 계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양자가 융합되고 현실과 가상의 경계를 허물어지 는 이 같은 진화는 확장 가상세계로서 메타버스의 시대가 본격화되고 있음을 의미 한다(퓨처 호라이즌). 메타버스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말은 모순의 힘이 모순을 모순이 아닌 것으로 바꿔놓는 시대가 온다는 말과 같다. 메타버스가 보여주는 모순의 힘 은 이쪽과 저쪽이 다르지 않다고 말해준다. 이는 모호함과는 다르다. ‘모순을 관찰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내기 위해서는 모호함이라는 개념이 들어설 수도 있 으나 모순으로 시발하는 세계는 모호함을 포섭할 뿐 모호함과 길항 구조를 구성하 지 않는다(송하석: 388). 메타버스 사회에서는 그동안 일반적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모두 달리 보이게 되고, 달리 보였던 것들이 모두 일반적으로 여겨지게 된다. EPR 실험, 슈테른(Stern)-게를라흐(Gerlach)의 실험 결과들이 모순에 해당한다. 중립 K 메존(neutral K mesons)은 상호 양립 불가능한 입자와 반입자의 겹침 상태로 표현 되므로 이 역시 모순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이 세계가 모순의 원리로 짜 여 있으며 바로 그 원리에 의해 작동함을 함축한다. 이 원리가 가상을 현실로 불 러들인다. 이는 사변 형이상학의 귀결이 아니라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이 역설 한 모순의 현상학으로 해석한 양자역학의 귀결이다. 정합성을 이념으로 한 수학을 언어로 그것도 현대 물리학의 총아인 양자역학이라는 검증된 매뉴얼에 의해 번역 한 자연 현상이 바로 그 이념을 해체하는 모순의 원리를 구현하고 있음은 그 자체 일종의 거대한 귀류법적 과정으로 여겨진다. 모순은 하나의 놀이 내부에서 어떤 수순을 위한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오히려 놀이 전체의 규칙들과 관계하는 어떤 역 할을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우리는 “어떤 하나의 놀이를 위한 규칙들을 확 립”하며, 그 다음에 규칙들에 모순이 포함되어있는 경우 “그 규칙들을 따를 때 사태가 우리가 가정했던 것처럼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규칙들에 자승자박 당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규칙들을 점검하고 어떤 규칙들을 고침으로써 놀이를 계속하거나 새로운 놀이를 하게 된다. 비트겐슈타인 은 이러한 자승자박을 에포케할 수 있는 새로운 열린 자세를 요구하는 것이다(박 정일: 48). 가상이 현실이고 현실이 가상이라는 모순은 메타버스 안에서 구현되는 콘텐츠 를 경험함으로써, 메타버스라는 공간이 만들어지는 개념을 이해함으로써 정립할 수 있다. 메타버스가 일상이 되면 정반합은 사라지고 ‘정-정-합’이 된다. 이쪽이 곧 저쪽이 되므로 둘 중 한쪽의 삶이 곧 다른 쪽의 삶이다. 그리고 메타버스는 이러 한 기술적 구조를 자연적, 사회적 환경으로 인식하고 활성화될 인간 뇌의 관계 형 성 능력에서 시작한다. ‘실제-시뮬레이션’, ‘이쪽-저쪽’, ‘안-밖’을 구분하지 않고 전 위시키는 뇌의 인지력이 메타버스를 세우는 근간이 되므로 지금까지 인류를 지배 해온 이분법적 세계관은 메타버스 세계에서 무력화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메타버 스는 세상을 바꿔놓을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길러내는 장치이며 공간이다.

 

IV. 결론

메타버스로 인해 가상과 현실이 하나가 되는 말 그대로 모순이 더는 모순이 아닌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의 세상을 이분했던 호모사피엔스 의 사고를 대체할 힘이 필요하다. 재즈는 이런 힘을 길러준다. 재즈를 연주할 때 즉흥연주 부분과 즉흥연주 아닌 부분을 넘나든다. 즉흥연주는 가상이다. 그리고 즉 흥연주를 하다가도 다시 자연스럽게 악보(현실)로 돌아와야 재즈는 마무리된다. 본 논문에서 이러한 재즈의 특징을 살펴봄으로써 메타버스에서의(혹은 메타버스와의) 삶을 준비하게 할 수 있는 한 양상을 엿볼 수 있게 되었고, 동시에 메타버스를 결 과로만이 아닌 과정으로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가상세계의 터전은 육체가 영 위하는 (즉, 몸에 목숨이 붙어있는) 현실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재즈를 통해서 차 354 최 원 재 원 전환 역량, 즉 넘나듦(coming and going)의 감(feeling)을 감(senses)을 통해 손 에 잡히게(feasible) 익힐 수 있듯이 메타버스 역시 이러한 재즈의 넘나듦에서 착 안한 방법으로 접근하면 호모사피엔스의 정신을 가두기보다는 폭발적으로 발산시 키는 진화의 도구로 볼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서 문학과 철학이 재즈의 음률로 나타나고 재즈 연주를 통해서 철학과 문학을 청각적으로 전환할 수 있듯이 메타버 스에서는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그 어떤 생각이 감각적으로 다양하게 전환되어 구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가상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따라 메타버스가 재즈가 될 수 있는지 아닌지가 결정된다. 악보와 비(非)악보가 재즈를 이룬다. 이 둘은 엄연히 다르나 하나라고 하는 것 이 재즈의 모순이나 이것이 재즈가 존립하는 근간이다. 재즈 연주라는 모순 연습 을 통해서 새로움에 대한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 재즈 연주 속 상호텍스트를 지 키지만 틈 속으로 새어 나오는 음률을 자기와 공감해서 뉘앙스로 승화시킬 수 있 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문학의 전위체인 재즈를 학교에서 가르친다면 학습자 들은 재즈의 모순이 무엇인지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이를 메타버스에 접목 하면 재즈가 일으키는 새로움처럼 창의력을 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즉, 메타버스 는 자아내 공감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장치이자, 상상력을 감각적으로 발산하는 창의력의 화수분 공간이 된다. 연구의 끝에서 아쉬운 점은 재즈가 실제 연주되는 질료이고 메타버스는 웹 기 반의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연구는 지면에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의 입체성이 무시된 채 연구 결과를 글로만 전달하려니 메시지의 오해 소지가 생 길 수도 있다는 염려가 크다. 메타버스 시대에 논문 게재 방법도 다양해야 한다. 학계는 4차 산업 혁명을 부르짖고 있으나 논문 게재 방법은 여전히 1차 산업기에 안주하고 있어 메타버스 연구에 커다란 한계점으로 다가온다. 후속 연구는 메타버 스에 구현되는 논문 게재(혹은 공유)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주제어: 모순, 재즈, 메타버스, 즉흥연주, 차원 전환 역량

 

 Works C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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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Metaverse and Contradiction Practice of Jazz Wonjae Choi (Kyunghee U): A world where the contradiction of the metaverse becomes non-contradiction has arrived. However, there is a tendency to ignore the metaverse because there is no place to learn the nature of the metaverse, the philosophy of the metaverse, or the ethics of the metaverse. Since the metaverse is not a simple device, it should not be approached from an instrumental point of view, but rather it should be understood from a conceptual point of view. Therefore, the role of literature is greater than ever. However, it would be more effective to go through other media with literary quality rather than simply the form of literature. It is Jazz. Because jazz, like the metaverse, is a contradiction in itself. Jazz improvisation makes us experience the virtuality, and jazz's impromptu performance becomes a level-shifting ability called contradiction practice, where one can understand ‘This side soon becomes the other, so the life of one of them is the life of the other’. The metaverse has its potential in the human brain's ability to form relationships that will be activated by recognizing these technological structures as natural and social environments. Since the brain's cognitive ability to displace real-simulation, this side-that side, and inside-outside is the key, the dichotomous worldview that has dominated mankind so far will be neutralized in the world of metaverse. In this paper, I suggest we need the power of the human brain to replace it. Consequently, I assert Jazz fosters this power.

 

Key Words: Metaverse, Jazz, Contradiction, improvisation, level-shifting ability 

 

 

The Journal of East-West Comparative Literature Vol. 62 December 2022

Received: Nov 20, 2022 / Reviewed: Dec 08, 2022 / Accepted: Dec 09,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