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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기원후 9세기 이슬람 신학에 나타난 인과율 부정으로서 관습이론의 비판에 관한 연구 -아베로에스의 비판을 중심으로/김요한.전북대

한글 요약

다마스코스의 요한에 따르면 기독교 신학자들과 이슬람 신학자들은 신의 창조 이후 물리적 사건들의 원인과 관련해서 서로 다른 창조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기독교 신학 자들은 6일간의 신의 창조 이후에 발생하는 모든 세계 사건들은 매개물을 통한 신의 행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슬람 신학자들은 세계 사건 모두가 매개 없이 신의 직접 적인 창조 결과라고 생각했다.

신의 창조는 처음 6일에 완결된 것이 아니고 현재도 계 속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그들은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인과율의 부정과 세계내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을 신의 직접적인 창조로 환원하는 것은 세계내 발생하 는 사건들의 질서나 규칙성을 발견하는 인간의 지적 능력을 부정하게 된다.

모든 사건 이 신의 직접적인 창조의 결과물이라면, 세계내 발생하는 사건들이 갖는 명백한 질서 와 연속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에피쿠로스 학파도 이슬람 신학과 마찬가지로 “사물들의 규칙적인 운동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동일한 물음에 답해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사건들 이 우연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물음을 해결하기 위해서 이슬람 신학자들은 “신의 관습”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냈다.

이 개념은 신의 여러번 계 속되는 반복적인 행위가 사물의 질서처럼 인간에게 보여진다는 점을 함의한다.

이슬 람 신학의 “관습 이론”에 대한 수니파 신학자와 시아파 신학자가 많은 비판을 제시했 다.

특별히 이븐 하즘과 아부 라쉬드가 그 대표적인 비판가들로 꼽힌다.

그들은 관습이라는 것은 종종 일어나는 것에 적용되는 개념이기 때문에 신의 창조를 관습으로 설 명하는 것은 신의 필연성 개념을 약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이 논문에서 연구자는 특별 히 12세기 스페인 출신의 전문 철학자이자 아베로에스를 중심으로 관습이론을 비판을 살펴보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해박한 아베로에스가 그리스 철학을 통해서 어떻게 세밀한 논박을 제시하는지 검토하는 일은 이슬람 철학과 그리스 철학의 영향 사를 공부하는데 있어 유익한 연구가 될 것이다.

연구자는 아베로스의 핵심적인 작품 들을 살펴보면서 어떤 부분에서 관습이론이 철학적 논변으로서 부적절한지를 검토하 게 될 것이다.

주제어: 아베로에스, 관습이론, 인과율, 본질, 지성.

Ⅰ. 들어가면서

다마스코스의 요한에 따르면 기독교인과 무슬림들은 창조에 대한 가상 논쟁 중에서 성경에 나오는 신의 창조이후 물리적 사건들의 원인에 대해서 서로 다른 해석을 가지며 또한 두 종교간에 창조 개념이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1)

기독교인들은 6일간 지속된 신의 창조활동 이후 발생하는 모든 자연 현 상들은 매개적 원인을 통해서 활동하는 신의 행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무슬림 들은 세계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 변화들은 신의 직접 창조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8세기 초 무슬림들은 이미 신이 매개 원인을 통해 세계를 운행한다는 사실을 부정했음을 알 수 있다.

신은 세계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진 유일한 존재이고 세계내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의 직접 원인이다.2)

1) John of Damascus, Disputation Christiani et Saraceni, PG 94, 1592B-1593B. 전 광식, "Philosophia Arabica : 초기 아랍철학의 발전과 철학의 정의 ― 신플라톤주의 의 영향을 중심으로." 대동철학, 45, 2008, pp.317-340.

2) “우리는 풍부하게 물을 쏟아서, 대지에 갈라진 틈을 만들고, 거기서 자라나게 하는 것 중에는 곡식이 있고, 포도가 있고, 야채가 있고, 올리브가 있고, 대추야자가 있으 며, 울창하게 우거진 정원이 있고, 과실이 있고, 목초가 있다. 이 모든 것은 다 너희 들과 그 가축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있는 것이다.”(80:25-32) “알라께서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하늘에서 비를 뿌려 그것으로 여러 가지의 과실을 여물게 하여 너희들의 식량으로 하게 하신 분이시다. 또 알라께서는 너희들을 위해 배를 만들고 명령을 받 들어 바다를 가게하고 또 너희들을 위해 냇물을 소용 있게 하신다.”(14:32) “알라께 서 무엇이 필요하실 때에는 다만 저것하고 명령하시는 것으로 그것은 이루어진 다.”(36:82).

꾸란에 따르면 오직 신만이 말씀을 통해서 세계내 모든 사건들의 직접 원인이 된다.

신은 직접 하늘로부터 비를 뿌려서 여러 과일 들을 성장하게 만든다.

또한 꾸란은 천사의 역할이란 단순히 어떤 행위가 이 루어지기 위해서 신의 도구로 사용되는 부수적 존재로 그려진다.

천사는 매개적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다. 천사는 신의 사자로 어떤 사태가 일어났을 때3) 신의 뜻을 이루어지도록 신의 명령을 날라다 주는 존재에 불과하다.4)

이런 신 의 직접적인 창조 이론이 이슬람 신학에서 8세기 초까지 유지되었다.

이론적으로 인과성의 부정과 세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들을 신의 의지에 의해서 직접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환원하는 작업은 세계 내에서 발생하는 사 건들의 어떤 질서나 연속성을 예측할 수 있는 인간 능력을 부정하게 된다.

만일 세계 내 모든 사건이 신의 직접적인 창조 결과라면, 세계 내에서 발견되는 이런 명백한 질서와 연속성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슬람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실체와 우유성의 지식과 소멸을 설명하기 위해서 신의 창조 행위가 여러번 반복 됨으로서 사물에 관습이 생겨나게 되며, 그것은 마치 우리에게는 사물의 규칙적 인 운동 법칙처럼 이해된다고 주장한다.5)

이런 신의 지속적인 창조 행위에 대 한 이슬람 철학내의 반론들이 존재한다.

이 논문은 특히 아베로에스를 중심으로 신의 연속적 창조와 인과율의 부정을 제시하는 관습이론에 대한 그의 논박을 제 시하고자 한다.

전반부에 잠깐 소개될 이븐 하즘과 아부 라쉬드 같은 다른 반박 논증들은 매우 단편적이거나 철학적으로 정교한 논증으로 간주하기 어려우나, 아베로에스는 12세기 스페인 출신의 전문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해 박하고 이를 바탕으로 매우 세밀한 논박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6)

3) Ghazali, Tahafut al-Falasifa, XVII, 4-5, p.279.

4) 어떤 경우에 천사들은 신의 명령에 불순종한 것으로 묘사된다(2:28-32; 38:71-74).

5) 김요한, AD 9세기 무슬림 철학에 나타난 인과율 부정에 관한 연구 -사물의 지속과 소멸을 중심으로-, 동서철학연구, 한국동서철학회, 102권, 2021, pp.217-222.

6) KOCA, ÖZGÜR, Islam, Causality, and Freedom, Cambridge, 2020, pp.47-73.

연구자는 아베로스의 핵심적인 작품들을 살펴보면서 어떤 부분에서 관습이론이 철학적 논변으로서 부적절한지를 검토하게 될 것이다.

특히 아베로에스가 아리스토텔 레스의 다양한 작품들을 섭렵하면서 어떤 방식으로 이슬람 신학의 비합리성을 비판하고 있는지도 살펴보게 될 것이다.

II. 가잘리의 관습이론 해석

모든 사건을 신의 연속적인 창조 행위로 간주했던 이슬람 신학과 마찬가지로, 모든 사건들을 우연적으로 발생한 사건으로 이해했던 에피쿠로스 학파도 “사물 의 규칙적인 운동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동일한 물음에 대처해야 했다.

왜 해가 일정하게 뜨고 지며, 계절의 변화가 일정한 질서에 따라서 발생하는가?

루크레티우스에 따르면 그것은 “자연의 확실한 언약”(foedus naturae certum)에 기인한다.7)

여기서 “자연의 확실한 언약”은 “고정된 자연 법칙”을 의미한다. 다 시 말하면 그것은 어떤 우연한 자연의 언약(covenant) 또는 협정(agreement)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세계가 발생되는 영원한 등속 직선운동을 하고 있는 원자들 이 우연한 빈공간에서 마치 언약이나 협정을 맺은 것처럼 평형상태(equilibrium) 를 이루고 있음을 나타낸다.

키케로와 에피쿠로스 학파는 이런 평형상태를 “균 형”(ἰσονομία)라고 불렀다.8) 이 평형상태에 따라, 그것이 지속되는 한, 사건들 은 연속 동일성이라는 질서에 따라 동일하게 반복적으로 발생한다. 물론 그 질서 는 우연적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라도 다시 우연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

이처럼 에피쿠로스 학파는 균형(ἰσονομία)라는 그리스 개념을 통해서 사 건들의 연속적 발생에서 관찰되는 규칙성을 설명하고 있다.9)

깔람, 즉 이슬람 조직 신학(‘Ilm al-kalām, لامَالك مْلِع(은 그런 규칙성을 “아 다”(‘ādah)라는 아랍어 개념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10)

“아다”라는 용어는 원 래 그리스어로 “관습”을 의미하는 ‘ἔθος’의 아랍어 번역어였다.

따라서 이 말은 “관습” 또는 “습관”으로 해석되었다. 이 글에서 연구자는 “아다” 개념을 “관습”의 의미로 계속 사용할 것이다.

그리스어 “습관”(ἕξις)이라는 용어는 아랍어로 “말 라카”(malakah)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 자연 철학에서 “관습”(ἔθος) 개념은 ‘자연’(φύσις) 개념과 반대된다.

왜냐하면 자연은 ‘항상’(ἀ εί)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되지만 관습은 ‘종종(πολλάκις)11)

7) Lucretius, De Rerum Natura, V, 924. Lucretius, De Rerum Natura (The Nature of Things): A Poetic Translation, Translated by David R. Slavitt. Oakland, C A: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2008. 8) Lucretius, De Rerum Natura, I. 19, 50. I, 39, 109.

9) Bailey, C., The Greek Atomists and Epicurus, Clarendon Press, 1928, p.34.

10) Dhanani, A., The physical theory of Kalām: Atoms, space, and void in Basrian Mu˓tazilī cosmology, Leiden, Netherlands: Brill, 1994, p.261.

11)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 11, 1137a8-9.

일어나는 사건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필연성(ἀνάγκη)를 갖지 못한다. 필연적인 것만이 동시에 항상 존재하기 때문이다.12)

깔람 신학자들은 세계 내 연속적인 사건들의 규칙성은 신의 기적 활동에 의해서만 파괴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런 규칙성은 ‘관습’이라는 전문용어로 정착되었고, 항상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자주 일어나는 사건들을 언급한다.

그것은 오직 신의 기적에 의해서만 파 괴될 수 있는 연속적 사건들의 규칙성을 기술하는 개념이다.

수니파 이븐 하즘(ibn Ḥazm, 994-1064)은 이 관습 개념이 수니파 아쉬아리 학파(al-ʾAshʿarīyah)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13)

그는 그들이 기적을 통해서만 사라지는 세계 사건들의 규칙성을 지시하기 위해서 “자연”이라는 개념 대신에 “관습”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고 주장한다.14)

따라서 아쉬아리 학파의 이런 관 습 개념에 기초해서 아부 라쉬드(Abū Rashīd)는 불이 항상 돌과 부딪침으로 서15) 발생하는 현상과 공기가 어떤 조건들에서는 항상 물로 변하는 현상16)에 대한 설명할 때 그것들은 “관습을 통한 신의 활동”17)이라고 주장한다.

그 후대 학자인 시아파 알 투시(al-Ṭūsī, 1201–1274)도 관습 개념을 아쉬아리(Abū al-Ḥasan al-Ashʿarī, 874–936)가 제시한 이론이라고 주장한다.

알 투시에 따 르면 아쉬아리는 “신의 반복적인 행동들은 관습의 연속(bi-ijrā’ al-‘ādah)을 불러일으킴으로서 실행된다”라고 주장했다고 전해진다.18)

12)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 11, 1370a8-9.

13) Frank, R. “Bodies and atoms: The Ash˓arite analysis”, In M. E. Marmura (Ed.), Islamic theology and philosophy: Studies in honor of George F. Hourani, Albany, NY: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1984, pp.17-22.

14) Ibn Ḥazm, Kitāb al-Fiṣal fī al-Milal wa’l-Aḥwā wa’l-Niḥal, V, p.15, ll.21-23; cf. p.14, l.23.

15) Ibn Ḥazm, Kitāb al-Fiṣal fī al-Milal wa’l-Aḥwā wa’l-Niḥal, I.7

16) Ibn Ḥazm, Kitāb al-Fiṣal fī al-Milal wa’l-Aḥwā wa’l-Niḥal, I.7, p.37, l.17. p.38, l.4.

17) Abū Rashīd, Kitāb al-Masa'il fī al-Ḫilaf bain al-Baṣriyyīn wa'l Baghdādiyyīn, p.36, l.8.

18) Ibn Khaldūn, Lubābu l-Muhassal fi Usul al-Din, p.29, n.1, l.3.

따라서 11세기 가잘리 시대 이전에도 아쉬아리 학파에서 관습 이론이 논의되 고 있었다는 생각해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이븐 하즘(1064 출생)과 아부 라쉬드 (1068 출생)는 가잘리(1058 출생)가 소년이었을 때 사망했기 때문이다.

이것 은 왜 관습이라는 용어가 가잘리에 의해서 일상적 방식으로 논의되고 또한 왜 이미 잘 알려진 것으로 다뤄지고 있는지를 설명해준다.

수니파인 가잘리는 선배 수니파 아쉬아리 학파의 인과성의 부정 이론에 반대하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 만, 그는 또한 이 개념을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선 그는 일차 적으로 인과율의 부정은 모든 세계 사건들을 신의 임의적인 의지로 귀속시킴으 로써 인간들의 감각 지각들의 실재성을 부정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생각 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집에 한권의 책을 두고 나왔다.

그 책은 그가 다시 집에 돌아왔을때도 한권의 책으로 자신에게 보 여질 것이다.

그러나 이 대상이 자신이 집을 비워두는 순간 신에 의해서 소년으 로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여전히 자신에게 한 권의 책으로 보이는 이유 는 신은 한때 책이었던 것을 지금 그것이 실재로 존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능 력을 그에게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19)

가잘리는 이 사례를 제시하면서 명 백하게 아쉬아리 학파의 관습 이론을 사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수니파인 아쉬아리 학파의 공식적인 관습 이론은 같은 수니파이자 비 아쉬아리파인 이븐 하즘과 무타질라 학파인 아부 라쉬드에 의해서 강한 비판을 받고 있다.

그들은 관습이론이 신의 기적에 의해서만 중단되는 어떤 사건들의 연속적인 규칙성에서 관찰되는 항상성을 완벽하게 설명하지 못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관습이론은 “종종” 일어나는 일들만을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븐 하즘에 따르면 “아랍어 관습(‘ādah)”은 피할 수 있거나 피할 수 없는 것을 언급하는데 사용되며, “자연”이라는 용어와 반대 개념이다.

자연 개념은 회피가 원래 불가능한 것을 언급하는데 사용된다고 주장하고 있다.20) 아부 라쉬드는 “자연은 ‘항상’과 연관되고, 관습은 ‘종종’ 연관된다”21)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진 술을 기초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관습 이론은 “돌과 돌이 부딪치는 행위 를 통해서 불이 발생할 때, 왜 그 결과가 “항상 동일한 방식으로 발생하는가”22) 를 설명하지 못한다.

19) Ghazālī, Tahāfut al-Falāsifah, XVII, 11, p.283, ll.9. ff.

20) Ibn Ḥazm, Kitāb al-Fiṣal fī al-Milal wa’l-Aḥwā wa’l-Niḥal, V, p.115, l.24-p.116, l.3. Perler D. and Rudolph, U., Occasionalismus: Theorien der Kausalität im arabisch - islamischen und im europäischen Denken, Vandenhoeck & Ruprecht, 2000.

21)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 ll, 1370a7-8. “[7] 이제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인간의 노력의 결과이거나 그렇지 않다. 후자 중 일부는 우연에 의한 것이고 다른 일부는 필연에 의한 것이다. 필연으로 인한 것 중 일부는 강제로, 일부는 자연으로 귀속되 므로 인간이 스스로 하지 않는 일은 모두 우연, 자연 또는 강박의 결과이다.

그들이 스스로 행하는 일과 그 원인이 되는 일에 관해서는, 일부는 습관의 결과이고, 일부 는 갈망의 결과이며, 후자 중 일부는 이성적인 갈망으로 인한 것이고, 일부는 비합 리적인 갈망으로 인한 것이다.”

“만일 그것이 관습에 기인한다면, 돌과 돌이 부딪칠 때에 어떠한 불도 전혀 일어나지 않는 돌이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러한 돌은 존 재하지 않는다.”23)

이븐 하즘과 아부 라쉬드의 진술의 숨은 가정은 다음과 같다.

만일 우리가 신 의 창조 행위에 의해서 행해지는 연속 사건들에서 드러나는 어떤 규칙성을 설명 하려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행동들에 나타나는 어떤 형태의 규칙성이라 는 유비에 따라 “관습”이라고 부른다면, 신의 행동들은, 인간의 행동들과 마찬가 지로, “이탈할 수 있음”을 가정해야만 한다. 또한 그것은 기적에 의한 이탈이 아 니라, 전혀 기적적이지 않은 이탈이어야만 한다.

가잘리는 아쉬하리 학파의 관습이론에 대한 이러한 비판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관습이론을 도입하고 있는 구절은 다음과 같은 두 진술 들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진술들은 어떻게 관습 이론이 연속 사건들의 순서에서 발견되는 실재 관찰 가능한 규칙성의 항상성을 설명할 수 있는지를 보 여주려고 시도하기 때문이다.

이 두 진술들은 다음과 같다.

(1) “신은 이러한 일들[즉, 책을 소년으로 바꾸는 것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지만, 그가 그런 이들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지식을 우리 안에 창조하셨다.”24)

(2) “그런 일들 안에 존재하는 관습(al-‘ādah)의 연속적인 반복은 우리 마음 속에 그런일들이 과거 관습에 따라 일련의 행동을 계속 동일하게 따를 것 이라는 제거할 수 없는 인상을 고정시킨다.”25)

이 두 진술들이 실재와 연속적인 사건들에서 관찰된 “질서의 항상성”을 설명 하려는 시도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 안에 “창조된 지식”이란 무엇을 의 미하고 우리 마음에 고정된 “인상”이란 무엇을 의미할까?

첫 번째 진술은 확실 히 신이 과거에 우리가 관찰한 사건의 순서가 미래에도 변하지 않을것임을 항상 알 수 있는 어떤 능력을 우리 안에 창조하셨다는 것을 의미할 수 없다.

또한 두 번째 진술이 바로 과거에 우리가 관찰한 사건의 순서가 미래에도 그 순서가 계속될 것이라는 인상을 우리 마음속에 만들어 낸다는 점도 의미할 수도 없다.

왜 냐하면 만약 이 진술들이 그런 의미들을 갖는다면, 우리에게 다양한 종류의 지 식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 영혼의 다양한 능력들의 실행은 “신이 관습의 지속성 (ajrā al-‘ādah)을 불러일으키는 관찰 가능한 사실들”26)이라는 가잘리 자신의 견해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영혼의 능력들은 각각 신께서 그것들 을 그 순서대로 직접 창조하시는 “관습”에 따라 특정한 순서대로 발생한다.

따라 서 이 진술들은, 세계 창조후, 신께서 이전 사건들에 연속적인 어떤 사건들을 창 조하실 때마다, 신께서는 인간들안에 기적이 발생하지 않는한 미래에도 동일한 계승 순서로 동일한 사건이 계속해서 그분에 의해 창조될 것이라는 “지식” 또는 “인상”을 창조하신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한다.

따라서 가잘리에 따르면, 자연과 인과성이 아니라 (심지어 자연이나 신에 의해 서 사물들속에 심겨진 인과성도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습과 그 관습이 계속 진행될 것이라는 “반복되어 창조된 지식”이 어떤 현상의 규칙성과 예측가능 성을 설명해준다.

이에 가잘리가 철학자들의 불일치(Tahāfut al-Falāsifa)의 서문에서 월식이 달과 태양 사이에 있는 지구의 삽입에 의해서 생겨났다는 철학 자들의 설명과 일식은 관찰자와 태양 사이에 존재하는 달의 삽입에 의해서 생겨 났다는 철학자들의 설명을 찬성할 때나, 또한 그가 일/월식의 예측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할 때나,27) 그가 월식 또는 일식과 지구 또는 달의 특정한 위 치 사이에 각각 인과적 관계가 존재한다는 철학자들의 신념에 동의하지 않고 있 다.

가잘리가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은 바로 신의 관습이 지구나 달의 특정한 위치 를 창조하면서, 동시에 월식과 일식을 창조하신다는 점이다.

또한 이 두 가지 동 시 창조와 동시에, 신의 관습이 월식이나 일식이 같은 상황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지식이나 인상을 우리 마음 속에 창조하신다는 점이 다. 만일 그가 자신의 관습을 바꾸지 않는다면 말이다.28)

26) Ghazālī, Tahāfut al-Falāsifah, XVII, 10, p.303, l.12.

27) Ghazālī, Tahāfut al-Falāsifah, XVII, 13-16, p.10, l.14-p.13, l.3.

28) 그러나 종교학의 부흥 (Iḥyāʾ ʿulūm al-dīn)에서 가잘리는 관습이론을 언급하면 서 ‘ādah의 동의어로서 순나(sunnah)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또한 그는 원인 (sabab, ‘illah)이라는 용어 대신에 조건(sharṭ)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가잘리는 창조물들이 “창조물과 관련된 신의 관습적 절차(sunnah)에 따라” 일정한 순서로 연속적으로 서로를 따른다고 진술한 후(Iḥyāʾ, Kitāb al-Taubah, section: Bayān Wujūb al-Taubah, IV,p.6, ll.9-10.), 그는 신의 관습적 절차에 따라 “한 피 조물이 다른 피조물의 조건(sharṭ)”이 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삶의 창조는 지식 기원후 의 창조를 위한 조건(sharṭ)이지 지식이 삶에 의해 생산되는(yatawallad)것은 아니 다.”

즉 삶이 지식의 인과적 원인이 아님을 가잘리는 주장하고 있다(Iḥyāʾ, Kitāb al-Taubah, section: Bayān Wujūb al-Taubah, ll.15-18).바로 가잘리의 이 종 교학의 부흥 구절이 아베로에스가 인과성의 부정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무타칼리 문은 삶이 지식의 조건(sharṭ)이라고 말할 때와 같이 조건지워지는 것에 필수적인 조건들(shurūṭ)이 존재함을 인정한다"고 주장할 때 분명히 언급하는 부분이다. 그 러나 종교학의 부흥에서 가잘리는 “조건(sharṭ)” 개념의 의미로 “원인”(sabāb)이 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음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그는 "사건의 차이가 무엇이 든 원인(al-asbāb)의 차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후에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는 원인(al-asbāb)의 귀결을 결과로 만드는 관습적 절차(sunnah)를 통해 알 수 있다(Iḥyāʾ, Kitāb Sharh Aja’ib al-Kalb, Section: Bayan Tasallut al-Shaytan, III,p.25, ll.32-33.). 또한 그가 천사와 사탄을 각각 ”원인“으로 묘사할 때, 그 용어 는 느슨하게 사용된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로는 둘 다 원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것들은 각각 명령을 수행하는 신의 사자일 뿐이다.따라서 에피쿠로스 학파와 흄도 인과 관계를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주저하지 않고 원인이라는 용어를 느슨한 의미 로 사용한다. 가잘리는 종교학의 부흥에서 한 남자가 물에 빠졌을 때 물이 갈라지 는 것을 “자연적인 행위”로 묘사할 때 “자연적인”이라는 용어를 “관습적인’ 의미로 사용한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Iḥyāʾ, Kitāb al-Tauhid wa’l-Tawakkul, Section: Bayan Hakikah al-Tauhid, IV, p.248, l.18.).

III. 인과성 부정과 관습이론에 관한 아베로에스의 비판

아베로에스(1126-1198)는 깔람 신학자들(Mutakallimūn)과 가잘리의 인과 관계 부정으로서 관습이론에 관해서 자신의 여러 작품에서 비판을 시도하고 있 다.

인과성 부정과 관습이론에 대한 그의 비판은 다섯 가지 논증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다.

다섯 가지 논증들은 모두 아리스토텔레스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과 율, 자연/관습 개념들에 기초하고 있다.

그는 일차적으로 지속 개념에 대한 무타 칼리문의 견해들을 언급하면서 비판을 시작하고 있다.

왜냐하면 지속이론은 인 과율 부정에 대한 무타칼리문의 학술적 이론들을 간접적으로 함의하고 있기 때 문이다.

다른 한편 아베로에스는 인과율 부정에 대한 무타칼리문의 주장들을 직 접 진술하면서 비판하고 있다.

인과율 부정과 관련된 대부분의 논증들은 그가 작성한 아리스토텔레스 작품 주석들에서 발견된다.

그는 자연학자에 따르면 “사 물은 항상 유동적이고 쇠퇴한다고 말한다”29)(ῥεῖν γάρ φασιν ἀεὶ καὶ φθίνειν) 즉 사물은 끊임없이 소멸되고 있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술을 인용하면서 다 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29)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VIII, 8, 265a6. 160 김 요 한

“우리 종교의 무타칼리문은 고대인들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우연자들(συβεβηκότα)은 두 순간에 지속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30)

계속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고대인의 진술은 자연의 과정에 따른 것이지만 우리 종교의 무타칼리문의 진술은 근거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근거 없는 원칙을 옹호하려는 열망 외에는 다른 이유 없이 이런 말을 하 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시된 율법이 이 원칙들에 의해서가 아니면 방어 될 수 없다고 믿는다.”31)

또 다른 구절에서 그는 “우리 종교를 믿는 사람들중 무 타칼리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그들은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을 움 직이는 한명의 행위자가 있으며, 그것은 어떤 매개도 없이 오직 개인적으로 만 물을 돌보는 자라고 말한다.32)

... 따라서 그들은 타오르는 것은 불이고, 습하게 하는 것은 물이며, 굶주림을 만족시키는 것은 빵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이 모 든 것들은 창조주와 창시자를 요구한다33)고 주장한다.”

다른 구절에서 그는 다 음을 사실을 추가하고 있다.

“중재 없이 행위하는 하나의 행위자는 바로 신”이며 또한 무타칼리문의 관점에서 볼 때, “존재하는 그 어떤 것도 본성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행위를 갖지 않는다.”34)

이제 무타칼리문의 자연적 본성과 인과성을 부정에 반대하는 아베로에스의 5 가지 논증을 살펴보자.

첫째,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인-지식이론에 근거한 아베 로에스의 반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사실이 의존하는 원인(αἰτίαν) 을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 그 사물에 대한 무조건적인 학문적 지식(ἐπίστασθα ι)을 소유하고 있다고 가정한다”35)그리고 “지혜(σοφία)는 가시적 사물의 원인 (περὶ τῶν φανερῶν τὸ αἴτιον)을 탐구한다”36)고 진술한다.

30) Averroes, On the Physics Commentary, Aristotelis omonia quae extant opera, Venetiis, apud luntas, 1562-1574, Vol. IV, 74, p.418 I K.

31) Averroes, On the Physics Commentary, Vol. IV, 74, p.418 I K.

32) Averroes, On Metaphysics Commentary, Aristotelis omonia quae extant opera, Venetiis, apud luntas, 1562-1574, Vol.XII, p.1503, l.16-p.1504, l.1; Latin: VII, p.305F.

33) Averroes, On Metaphysics Commentary, p.1504, ll.2-4; 같은 책, p.305 G.

34) Averroes, On Metaphysics Commentary, vol. IX 7, Arabic: p.1133, l.15-p.1136,l.i; Latin:VIII, p.231 H.

35) 아리스토텔레스, 분석론 후서, I 2, 71b9-11. “ἐπίστασθαι δὲ οἰόμεθ ᾽ἕκαστον ἁ πλῶς, ὅταν τήν τ᾽ αἰτίαν οἰώμεθα γιγνώσκειν δι᾽ ἥν τὸ πρᾶγμά ἐστιν, ὅτι ἐκείνο υ αἰτία ἐστί.” 자연학 I 1, 184a10-14.

아베로에스는 원인설에 근거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지식이론은 근거로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신 의 명령에 따라 원인이 자신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 실을 부정하는 자들은 지혜(al-Ḥikmah)와 과학적 지식(al-’ilm)을 부정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학문적 지식은 원인을 통해 사물들을 아는 지식 이고 지혜는 볼 수 없는 원인들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이다.”37)

둘째 반박 논증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인-지식이론에 근거하고 있다.

아 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인간은 본성적으로 지식(τοῦ εἰδέναι)을 원하고38) 지식 (τὸ εἰδέναι), 즉 과학적 지식(τὸ ἐπίστασθαι)은 원인(αἰτία)과 관련이 있 다”39)고 주장한다.

따라서 “원인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은 인간 본성에 합당하게 속하는 것을 인간 본성에서 소외시키는 것이다.”40)

셋째 반박논증은 자체모순 논증이다.

아베로에스는 가잘리의 주장을 제시하 면서, 만일 가잘리가 인과성을 부정한다면, 그 자신의 주장과 모순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가잘리에 따르면, “인류는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진리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존재하는 것은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가 필요하다는 점을 논리적 필연성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41)

37) Averroes, Kitāb al-Kashf ‘an Manābij al-Adillah, ed. M.J. Müller, Philosophie und Theologie von Averroes, Munich, 1859, p.112, ll.6-9; Kitāb Fasl al-Maḳāl, ed. M.J. Müller, p.38, l.17-p.39, l.7; Tahāfut al-Tahāfut, ed. M. Bouyges, Beirut, 1930, XVII, 6, p.522, ll.9-11.

38)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I 1, 980a21. πάντες ἄνθρωποι τοῦ εἰδέναι ὀρέγοντ αι φύσει.

39) 아리스토텔레스, 자연학 I, 1, 184a10-11.ἐπειδὴ τὸ εἰδέναι καὶ τὸ ἐπίστασθαι συμβαίνει, περὶ πάσας τὰς μεθόδους ὧν εἰσιν ἀρχαὶ ἤ αἴτια ἤ στοιχεῖα, ἐκ τοῦ ταῦτα γνωρίζειν. \

40) Averroes, Kitāb al-Kashf ‘an Manābij al-Adillah, ed. M.J. Müller, p.112, ll.9-10.

41) Ghazālī, Tahāfut al-Falāsifah, ed.M. Boyges, Beirut, 1927, IV, 1, p.133, ll.4-5.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IV, 1, p.263, ll.4-5.

여기에서 언급되는 “진리의 사람들”은 무타칼리문으로 신 존재에 대한 그들의 주요 논증은 세계 창조에 대한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다.

아베로에스는 이 논증 36)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I 9, 992a24-25. ὅλως δὲ ζητούσης τῆς σοφίας πε ρὶ τῶν φανερῶν τὸ αἴτιον, 자연학,I 1, 981b28. 을 재구성하고 있다.42)

그는 무타칼리문의 신존재증명은 아쉬하리 학파가 사용 한 신존재증명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신존재증명인 우 주론적 증명은 정확히 플라톤이 사용한 논증 패턴을 변주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 적한다.

플라톤도 역시 인과성의 관점에서 신의 존재 증명을 시도하고 있다.

“발 생하는 모든 것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ὑπ᾽ αἰτίου τινὸς) 필연적으로 발생해야 만 한다.”43)

플라톤의 우주론적 신존재 증명을 기점으로 삼고서, 아베로에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보이는 세계의 원인을 부정하게 된다면,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작용인의 존재를 확립할 방법이 없다. 왜냐하면 이 문제에서 보이지 않 는 것에 대한 판단은 오직 보이는 것에 대한 판단과 일치해야만 하기 때 문이다. 그 결과 인과성을 부정하는 자들은 신 존재에 관한 지식에 도달 할 방법을 갖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유지하려면, 모든 행동에는 행위자가 있다는 명제를 인정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 다.”44)

42) Averroes, Kitāb al-Kashf ‘an Manābij al-Adillah, p.29, l.14-p.30, l.2.

43) 플라톤, 티마이오스 28a. “πᾶν δὲ αὖ τὸ γιγνόμενον ὑπ᾽ αἰτίου τινὸς ἐξ ἀνάγκης γίγνεσθαι.”

44) Averroes, Kitāb al-Kashf ‘an Manābij al-Adillah, p.112, ll.10-13. Tahāfut al-Tahāfut, XVII, 3, p.519, ll.12-15. Baghdādī, Kitāb Uṣūl al-Dīn, Istanbul, 1928, p.138, l.17-p.139, l.1.

네 번째 반대논증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에 기초하고 있으며 3부분으 로 구성되어 있다.

논증의 첫 번째 부분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의 원인 개념에 기초한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사람은 이런저런 동물인가?”를 탐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이 사람인지를 탐구하는 일이 없음은 분명하며, 따라서 무엇 때문에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에 속하는 지가 탐구의 대상이다. (어떤 것이 어떤 것에 속한다는 사실은 분명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탐구의 대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무엇 때문에 천둥이 치는가?”는 “무엇 때문에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는 가?”와 같다.

이렇듯 무엇 때문에 어떤 것이 다른 어떤 것에 속하는지가 탐구의 대상이다.

또한 무엇 때문에 이것들, 예컨대 벽돌들과 돌들은 집인가?

분명 이 물음은 원인을 찾고 있으니 [이것은 정식의 관점에서 보 면 본질지만], 어떤 때는 지향대상이 그것에 해당하는데, 예컨대 집이나 침대의 경우에 그렇고, 어떤 때는 운동을 낳은 첫째 원인이 그런데, 이것 또한 원인이기 때문이다.45)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한 사물의 본질(τὸ τί ἦν εἶναι)은 왜 특정한 사물 x 가 특정한 다른 사물 y가 되는지 또는 왜 어떤 p가 어떤 행동 q에 종속되는지에 관한 원인(αἴτιον)이 된다.

예를 들어, “무엇 때문에 사람은 이런 저런 동물인 가?” 물음 또는 “무엇 때문에 천둥이 치는가?”물음 또는 “무엇 때문에 구름 속에 서 소리가 나는가?”물음은 원인을 탐구하는 것이다.46)

아리스토텔레스의 본질 개념을 기초로 아베로에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사물들은 각각 자신의 고 유한 작용을 결정하는 본질들과 속성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들을 통해서 사물 의 본질과 이름 및 정의가 구별된다는 점은 자명하다. 결과적으로 (반대로) 만 일 어떤 사물이 그것의 고유한 작용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에 고유한 본성을 갖 지 못할 것이고, 또한 만일 그 사물이 그것의 고유한 본성을 갖지 못한다면, 그 것에 고유한 이름과 정의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것들은 하나가 될 것이다.”47)

논증의 두 번째 부분은 “단순체의 운동은 단순하고 단순한 운동은 단순체에 속한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천체론 주장에 기초하고 있다.48)

이 주장에 기초해서 아베로에스는 “동일한 [하나의] 본성이 한 운동의 원리가 되기 때문 에, 하나의 본성 이상을 갖는 사물들은 하나 이상의 운동을 가져야만 한다”49)고 주장한다.

45)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VII, 17, 1041a20-30.

46)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VII 17, 1041a20-30.

47)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XVII, 5, p.520, ll.10-15. Averroes, On Metaphysics Commentary,Aristotelis omnia quae extant opera vol. VIII, p.231.

48) 아리스토텔레스, 천체론, I ,2, 269a3-4.

49) Averroes, De Caelo Commentary, Aristotelis omnia quae extant opera, Vol. V, p.6 L.

그는 이 원리에 따라서 역으로 만일 사물들이 어떤 운동을 갖지 않으 면, 그것들은 본성을 갖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하나로 기술된] 어떤 사물이 어 떤 운동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본성을 갖지 않는 것이고, 어떤 본성도 갖지 않는다는 것은,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을 함의한다고 주장한다.

논증의 세 번째 부분도 역시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에 제시된 하나의 본성에 기초를 두고 있다.

“있는 것과 하나(τὸ ὂν καὶ τὸ ἓν)는, 하나의 정식에 의해 그 뜻이 밝혀진다는 뜻에서 그렇지는 않지만, ‘원리’와 ‘원인’이 그렇듯이 서로 따른다는 뜻에서는 동일한 것이요 본성적으로 하나이다. 왜냐하면 ‘한 사람’과 ‘사람’은 동일하고 ‘있는 사람’과 ‘사람’도 그와 마찬가지이며, ‘한 사람이고 있는 한 사람’이라고 표현을 중첩시켜도 그것이 드러내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50)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진술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도 출하고 있다.

“만일 하나의 본성이 부정된다면 있음의 본성이 부정될 것이고, 있 음의 부정의 결과는 무가 될 것이다.”51)

다섯째 반박 논증은 직접적으로 관습 이론을 겨냥하고 있다.

아베로에스는 관습 이론의 세 가지 가능한 의미를 살펴보고 이를 각각 논박하는 형식을 취한 다.

1) 같은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행하시는 것이 신의 관습이다.

2) 같은 방식 으로 반복적으로 생겨나는 것이 사물의 관습이다.

3) 사물이 생겨나는 것과 같 은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난다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관습이다.

세 가지 관습의 의미에 대해서 그는 다음과 같이 논박하고 있다.

(1) 같은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행하는 것은 신의 관습이다.

아베로에스는 신 의 관습을 반박하기 위해서 일차적으로 “관습의 결과로서 사건은 자주(πολλάκι ς) 행해졌기 때문에 행해진 사건들이다”52)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진술을 제시 한다.

그런 다음 기술적으로 “대부분에 있어서”를 의미하는 아랍어 개념 ‘alā al-akthar을 분석한다.53)

50)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IV 2, 1003b22-29. εἰ δὴ τὸ ὂν καὶ τὸ ἓν ταὐτ ὸν καὶ μία φύσις τῷ ἀκολουθεῖν ἀλλήλοις ὥσπερ ἀρχὴ καὶ αἴτιον, ἀλλ᾽ οὐχ ὡς ἑνὶ λόγῳ δηλούμενα [25] (διαφέρει δὲ οὐθὲν οὐδ᾽ ἂν ὁμοίως ὑπολάβω μεν, ἀλλὰ καὶ πρὸ ἔργου μᾶλλον): ταὐτὸ γὰρ εἷς ἄνθρωπος καὶ ἄνθρωπος, [27] καὶ ὢν ἄνθρωπος καὶ ἄνθρωπος, καὶ οὐχ ἕτερόν τι δηλοῖ κατὰ τὴν λέ ξιν ἐπαναδιπλούμενον τὸ εἷς ἄνθρωπος καὶ εἷς ὢν ἄνθρωπος. 51)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XVII, 5, p.521, ll.2-3.

52)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 10, 1369b6-7.

53) 이는 “자주”의 느슨한 표현으로 아랍어로는 kathīran이다. “자주”는 그리스어로 ἐπὶ τὸ πολύ이다. 분석론 전서 II 27, 70a 2. 이 용어는 주로 개연성(probability을 기 술하는데 사용되었다. 자연학 II 5, 196b 11. ἐπειδὴ ὁρῶμεν τὰ μὲν ἀεὶ ὡσαύτως

그 결과 아베로에스는 만약 관습이 신의 관습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면, 그것은 “신이 자주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셨기 때문에 같은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행동하는 관습을 획득하게 됐다”는 결론이 도출될 것이라 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관습(al-’ādah =ἔθος)은 행위자가 획득하고 그것 때문 에 행위자의 행위가 자주 반복되게(‘alā al-akthar)54) 하는 습관(malakah = ἑξ ις)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논리적으로 신의 속성 변화를 유발하기 때문에 신의 항상성을 주장하는 쿠란의 가르침에 위배된다.

“너희는 신의 길에서 어 떤 변화도 찾지 못할 것이다. 참으로, 너희는 신의 길에서 어떤 변이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35:40, 41)55)

54)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XVII, 10, p.523, ll.5-6.

55)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XVII, 10, p.523 II.6-7.

(2) 같은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생겨나는 것은 사물의 관습이다.

이 명제와 관 련해서 아베로에스는 다음과 같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들을 검토하고 있다.

“생명이 없는 것들은 어떤 본성(φύσει)에 의해서 하나하나 기능을 수행하지만, 일꾼들은 관습(ἔθος)에 의해서 일을 한다.”56)

아리스토텔레스가 가끔씩 생명 이 없는 것들의 행동을 설명할 때, 예를 들어, “물 입자와 결합하는 것은 수분의 관습(ἔθος)이다”57)라는 진술에서 “관습” 개념을 “본성”의 의미로 느슨하게 사 용하고 있다.

또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φύσις)의 결과는 항상 또는 대부분 (ὥς ἐπὶ τὸ πολύ) 같은 방식으로 일어난다”58)고 주장할 때도 있다.

아베로에스 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주장들을 기초해서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만 일 그들이 그것은 존재하는 것의 관습이라는 점을 의미했다면, [그들은 틀렸다. 왜냐하면] 관습은 오직 살아 있는 존재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또한 관습이 무생물과 관련하여 사용된다면, 그것은 본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철학자들은 존 재하는 것들이 각 사물들의 활동을 필연적으로(즉 항상) 또는 대부분의 경우에 (aktharityyan)59) 결정하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부정하지 않는다.60)

56)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 I 1, 981b3-5. τὰ μὲν οὖν ἄψυχα φύσει τινὶ ποιεῖ ν τούτων ἕκαστον τοὺς δὲ χειροτέχνας δι᾽ ἔθος

57) 아리스토텔레스, 식물론 II 2, 823a33.

58)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I 10, 1369a35-1369b2.

59)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XVII, 10, p.523, ll.-10. 60)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XVII, 10, p.523, ll.-10.

(3) 사물이 생겨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반복적으로 일어난다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의 관습이다.

관습 이론의 세 번째 의미에 대한 아베로에스의 논박은 γινόμενα τὰ δὲν ὡς ἐπὶ πολὺ. 아랍어 kathīran은 영혼론 III 9, 417b 30에 나오 는 πολλάκις의 아랍어 번역어이다.

아베로에스 주석 영혼론 p,81, l.11.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a)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관습(al-’ādah=ἔθος)을 행위자가 습득 하는 습관(malakah=ἑξις)으로 간주한다는 사실과 영혼이 사물을 판단하는 능 력을 “지성”61)으로 간주한다는 사실을 논박의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그는 아리 스토텔레스의 주석가들이 “습관적 지성”(al-‘aḳlbi’l- makakah = ὁ καθ᾽ ἕξιν νοῦς)이라고 부르는 것은 “물리적 지성의 완전성”62) 또는 “지성적인 대상들이 현실태로 존재하는 것”63)으로 정의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아리스 토텔레스의 주장들을 바탕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고 있다.

“존재 하는 사물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는 의미를 갖는 관습에 대해서 논의하자면, 이 러한 의미로 사용되는 관습은 그 자체의 본성에 의해 결정되고 그것을 통해 지 성이 되는 지성의 행위일 뿐이지만, 철학자들은 그런 관습을 부정하지 않는다. 즉, 오늘날 철학자들은 인간의 판단을 관습이라는 용어로 묘사하는 데 아무런 반대도 제기하지 않는다.” 64)

(b) 그러나 관습은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필연성과 반대이며, 또한 가설 (ὑπόθεσις)도 마찬가지로 필연성과 반대된다.65)

따라서 아베로에스는 관습의 결과로 생긴 행위는 가설적인 것으로 간주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피조물들 의 필연성을 아쉬하리학파가 부정하는 것은 피조물과 창조주 모두로부터 “지혜” 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66)고 생각했다.

61) 아리스토텔레스, 영혼론 III 3, 428a3-5; 12, 434b3. “μία τις ἐστι τούτων δύνα μις ἣ ἕξις, καθ ᾽ἥν κρίνομεν καὶ ἀληθεύομεν ἢ ψευδόμεθα. τοιαῦτα δ᾽εἰσὶν αἴσθ ησις, δόξα, ἐπιστήμη, νοῦς.”

62) Averroes, Epitome of De Anima, Rasā’il Ibn Rushd, Hyderabad, 1947. p.83, ll.6-7.

63) Averroes, Epitome of De Anima, p.84, ll.6-7. p.87, l.2.

64)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XVII 10, p.523, ll.10-13.

65) 아리스토텔레스, 분석론 후서 I 10, 76b23-24. “οὐκ ἔστι δ᾽ ὑπόθεσις οὐδ᾽ αἴτη μα ὃ ἀνάγκη εἶναι δι᾽ αὑτὸ καὶ δοκεῖν ἀνάγκη.” 66)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I, 169, p.92, ll.9-13.

따라서 아베로에스는 관습 이론의 세 번째 의미를 반박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관습이라는 용어 는 말하자면 이상한 용어이다. 그 아래에 자세히 살펴보면 가설적인 행위를 언 급하는 것 외에 다른 의미는 식별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리가 이런 저런 방식 으로 행동하는 그러 저러한 사람의 관습이라고 말할 때, 그는 대부분의 경우(fī al-akthar) 그런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만일 그렇다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가설적인 것이 될 것이며 창조주에 관해 그가 지혜롭다고 추론할 수 있는 어떤 지혜 형태도 그것들 안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67)

67) Averroes, Tahāfut al-Tahāfut, XVII, 10, p.523, l.13-p.524, l.1.

IV. 나가면서

지금까지 우리는 기원후 9세기 수니파 아쉬아리 학파와 무타칼리문에 의해서 전개된 관습이론에 대한 아베로에스의 비판을 살펴보았다.

수니파 아쉬아리 신 학자들과 그리스 철학을 수용한 이슬람 조직 신학자들은 신의 전능성을 강조하 기 위해서 세계내 존재하는 모든 사건들이 신의 끊임없는 창조에 의해서 발생한 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런 세계 사건의 규칙성을 관습(‘ādah)라고 명명했다.

10세기 신학자들중에서도 이와 노선을 달리하는 학자들이 관습이론에 대한 비 판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특히 이븐 하즘과 아부 라쉬드는 “만일 우리가 신의 창 조 행위에 의해서 행해지는 연속 사건들에서 드러나는 어떤 규칙성을 설명하려 한다면, 그리고 그것을 인간의 행동들에 나타나는 어떤 형태의 규칙성이라는 유 비에 따라 “관습”이라고 부른다면, 신의 행동들은, 인간의 행동들과 마찬가지로, “이탈할 수 있음”을 가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하면서, 관습이론이 오히려 신의 창 조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반론에 대해서 11세기 수니파 학 자인 가잘리 신의 관습 활동이 지구나 달의 특정한 위치를 배치하면서, 동시에 월식과 일식이 일어나도록 창조하시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월식인아 일식 이 같은 상황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규칙적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지식이나 인상 을 우리 마음에 창조하신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아베로에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초해서 관습 이론에 대해서 5가지 논증을 통해서 관습이론을 논박하고 있다.

첫째 반대논증 과 두 번째 반대논증은 원인-지식이론이었다.

학문적 지식과 지혜는 모두 가시 적 사물의 원인을 탐구하는 것이다.

만약 사건들이 아무런 원인 없이 발생한다 면, 우리는 학문적 지식이나 지혜를 전혀 가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신의 연속 적인 창조 활동없이 사물들은 스스로 규칙적으로 어떤 사건들을 불러일으킨다 고 간주하는 것이 합당하다.

셋째 반대 논증은 보이지 않는 세계는 보이는 세계 와 연관되어 있는데, 보이는 세계의 인과성을 부정하게 되면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인식이 미궁에 빠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물리적 세계의 인과 성을 부정하면 신 존재에 대한 지식에 도달할 수 없게 된다.

네 번째 반대 논증 은 만일 어떤 사물이 그것의 고유한 작용을 갖지 못하면, 그것에 고유한 본성을 갖지 못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것에 고유한 이름과 정의를 갖지 못할 것이라 는 점이다.

따라서 사물이 어떤 이름과 정의 속성을 갖는다는 것은 신의 창조와 무관한게 고유한 본성과 속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함의한다.

다섯 번째 반대 논증은 신의 속성 변화 논증이다.

아베로에스는 관습 개념을 신에게 적용하면 신의 항상성 원리에 위배되기 때문에 모순이라고 주장한다.

관습은 행위자가 자 주 반복하면서 획득하게 되는 속성인데 이는 신의 속성이 없다가 생겼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에 부당한 가정이 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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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A study on criticism of convention theory as a denial of causality in Islamic theology in the 9th century AD, -Focused on Averroes’ criticismKim, Jo-Han (Jeonbuk Natl. Univ.)

According to John of Damascus, Christian and Islamic theologians had different conceptions of creation regarding the causes of physical events following God's creation. Christian theologians believed that all world events that occurred after God's six days of creation were God's actions through a medium. However, Islamic theologians believed that all world events were the direct result of God's creation without any medium. They emphasize that God's creation was not completed in the first six days and is still ongoing. However, theoretically, the denial of causality and the reduction of all events that occur in the world to God's direct creation denies the human intellectual ability to discover the order or regularity of events that occur in the world. If all events are the result of God's direct creation, how can the apparent order and continuity of events occurring in the world be explained? Like Islamic theology, Epicureanism had to answer the same question: “How can we explain the regular movement of things?” This is because it considers all events to be accidental. To resolve this question, Islamic theologians created the concept of “God's custom.” This concept implies that God's repeated actions are seen by humans as the order of things. Many criticisms have been presented by Sunni and Shia theologians against the “conventional theory” of Islamic theology. In particular, Ibn Hazm and Abu Rashid are considered to be representative critics. They thought that explaining God's creation as a custom undermines the concept of God's necessity because custom is a concept applied to things that often occur. In this article, I would like to examine the criticism of customary theory, especially focusing on Averroes, a professional philosopher from Spain in the 12th century. Examining how Averroes, who was well versed in Aristotle's philosophy, presents a detailed refutation through Greek philosophy will be a useful study in studying the history of influence of Islamic and Greek philosophy. By examining Averroes's key works, I will examine in what areas custom theory is inappropriate as a philosophical argument.

Keywords: Averroes, custom theory, causality, essence, intelligence.

2023년 11월 29일 접수 2023년 12월 07일 심사완료 2023년 12월 20일 게재확정

동서철학연구 제110호, 2023.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