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머리말
II.중국인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III. 맺음말
I.머리말
2020년 항미원조 참전 70주년을 기점으로 중국의 한국전쟁, 즉 항미원조전쟁 기억이 화려하게 귀환했다.
최근 격화된 중미 패권갈등 속에 ‘대미항전(對美抗 戰)’이 강조되면서 그간 공공연한 금기처럼 여겨졌던 항미원조 기억이 해금되고 대대적인 문화 콘텐츠 제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 전쟁의 주적이었던 ‘미군’을 전면에 등장시킨 항미원조 영화와 드라마는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바야흐로 항 미원조전쟁 기억은 중국 대중을 ‘저항적 내셔널리즘’으로 단합시키는 문화정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한편, 냉전 시기와 다름없는 중국의 전쟁관과 이에 입각하여 제작된 영상물 은 한국의 언론 매체를 통해 속속 보도되면서, 최근 악화된 한국사회의 반중 정 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의 한국전쟁 기억에서 전 쟁 시기 총을 겨누고 싸운 중국의 존재는 기이할 정도로 지워져 있다.
중미 갈등 의 기류를 타고, 70여 년이 흐른 지금에서야 가까스로 마주하게 된 한국전쟁의 또 다른 타자, 중국의 존재를 우리는 맞이할 준비가 됐나?
중공군 하면 떠오르 는 ‘인해전술’의 단어처럼 거대한 규모의 덩어리로 상상되는 단편적이고 추상적 인 이미지를 넘어, 이제는 한국전쟁의 또 다른 당사자로 중국을 마주해야 할 때다.
‘중국에 한국전쟁, 즉 항미원조전쟁이 무엇이었나’라는 물음에 답을 찾아 가는 백지운의 『항미원조: 중국인들의 한국전쟁』(이하 『항미원조』)은 우리 앞에 놓인 과제를 풀어가는 좋은 길잡이가 된다.
개혁개방 이후 오랜 시간 잊혀진 중국의 항미원조 기억은 2010년대부터 TV 다큐멘터리 제작이 활성화되며 대중문화 속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그리 고 시진핑 집권기 1기인 2016년에는 항미원조 역사를 원톱으로 다룬 드라마 <38선>과 영화 <나의 전쟁>이 공개되면서, 대중문화 속 항미원조 서사에 획기 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군사, 역사 분과에 집중된 한국의 항미원조전쟁 연구도 아시아 냉전 연구 차원의 사회, 문화연구 분야로 확장되어 왔다.1
특히 중국인의 집단적 사유체계와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군사, 정 치적 영역의 전쟁 자체보다 문화적 차원에서 항미원조 서사가 대중들에게 어떻 게 수용되고 또 시대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를 추적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문화 텍스트를 활용한 기존 연구는 대부분 일부 시기나 특정 텍스트를 대상으로 행해졌다는 한계가 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마오쩌둥 시기, 그리고 개혁개방 이후부터 2020년까지, 특정 시기의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이러한 연구는 해당 시기의 문화징후를 포착해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했으 나, 전체적이고 지속적인 흐름을 한눈에 파악하기 어렵다.
최근의 변화와 지속 을 이해할 수 있는 항미원조 기억의 재현과 변화에 주목한 연구는 문학 텍스트 와 항미원조전쟁 기억의 재부흥기라 할 수 있는 2020년 이후가 빠져 있어 이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2
1 대표적인 연구성과로는 『抗美援朝文學에 나타난 중국의 한반도 인식: 1950년대 를 중심으로』(손해룡, 2012, 성균관대학교 박사학위논문), 『냉전 아시아의 탄생: 신중국과 한국전쟁』(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기획, 백원담·임우경 엮음, 2013, 문화과학사), 「전쟁의 정치적 변용: 50~60년대 ‘항미원조’ 전쟁영화를 중심으로」 (이승희, 2014, 『사이間SAI』), 「중국 영화와 드라마의 ‘항미원조’ 기억과 재현」(김 란, 2017, 『역사비평』), 『新中國的自我認知與世界想象-以1950-1970年代抗 美援朝文藝爲中心』(韓潭, 2018, 北京大學博士學位論文), 「탈혁명시대 중국 항 미원조 기억 서사의 난처함」(한담, 2018, 『중국현대문학』), 「1958년 중국 ‘항미원 조’ 전쟁 기억의 정치성과 문화적 재현의 다층성」(한담, 2019, 『중국문화연구』), 「중국 신시기 항미원조 영화를 통해 본 포스트 사회주의 문화재구성 고찰」(한담, 2020, 『중국학』), 「시진핑 시대, ‘항미원조’ 전쟁의 귀환과 문화 내셔널리즘」(한담, 2021, 『중국인문과학』) 등이 있다.
2 김란, 2017, 「중국 영화와 드라마의 ‘항미원조’ 기억과 재현」, 『역사비평』. 556 | 동북아역사논총 81호(2023년 9월) 중국인들의 한국전쟁, 『항미원조』 서평-『항미원조』(백지운, 창비, 2023)
따라서 마오쩌둥 시기와 포스트 마오쩌둥 시기를 관통 하는 본 저서는 중국의 항미원조전쟁과 집단기억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저작이라 할 수 있다.
본서는 총 4개의 장, 다음과 같은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의도된 망각
01. 백악관에 울려퍼진 항미원조의 선율
02. 냉전이 억누른 기억
03. 기억의 관리와 기념의 굴곡
제2장. 기억의 해빙
01. 두 편의 금지작과 한 편의 상영작: <항미원조> <북위38도선> 그리고 <38선 의 여병>
02. 펑더화이의 문제적 복권: <펑대장군>, <삼선의 펑더화이>, <펑더화이 원수>
03. 포스트혁명 전쟁서사와 원작의 귀환: <단원>, <영웅아녀>, <나의 전쟁>
제3장. ‘승리한 전쟁’의 안과 밖
01. 귀환한 항미원조 서사의 이념적 빈곤
02. 결사항전의 기억과 부유하는 사연들: <압록강을 건너>
03. 스포트라이트가 밝힌 것과 덮은 것: <장진호> <장진호 수문교>
제4장. 소인물의 역사: <금강천>
이 책은 항미원조 기억이 20세기 대부분의 시간 동안 중국에서 억눌려온 상 황과 그 원인을 탐구한 제1장을 제외하고, 제2장은 2000년대부터 2010년대, 제3장과 제4장은 2020년대의 문화적 재현을 중심으로 항미원조가 어떻게 기 억되어왔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목차상으로는 2000년대부터 최근까지 시간순 으로 배열되어 있으나, 해당 시기의 영화, 드라마를 중심으로 전쟁 시기부터 최 근까지의 방대한 사료를 함께 검토하고 있어 주제별로 마오쩌둥 시기와 포스트 마오쩌둥 시기를 관통하는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한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또 한 저자는 중국 대중에게 전쟁 기억이 귀환하는 과정이 단순한 국가 이데올로기 의 주입이 아니며, 비록 제한적이나, 그 여정 곳곳에는 기층의 목소리와 시선이 숨겨져 있다고 전제한다.
이러한 숨은 그림을 찾아내기 위해, 본서는 영화, 드라 마뿐만 아니라, 전쟁 시기부터 최근까지의 국가지도자 담화와 『인민일보』 사설 등의 공식서사 및 다큐멘터리, 지원군 사령부와 참전용사의 실록이나 회고록 같 은 반(半)공식 서사를 교차적으로 읽어나가는 독법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마오 쩌둥 시기와 포스트 마오쩌둥 시기를 넘나드는 방대한 사료 검토와 더불어, 주 제별 입체적인 읽기가 가능한 저자의 공력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라 할 수 있다.
본 서평에서는 목차의 순서대로 핵심적 내용을 최대한 압축적으로 살펴봄 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II.중국인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
1. 항미원조 기억의 이중성
2020년 항미원조전쟁 참전 70주년을 기점으로, 잊혀진 중국의 항미원조전쟁 기억이 회귀한 가장 큰 배경에는 최근 격해진 중미 패권 다툼이 있다.
그러나 저 자는 지난 70여 년 내내, 항미원조전쟁의 기억과 서사가 국제정치, 특히 미중 관계의 변화에 따라 엄격하게 관리되어 왔다고 강조한다.
제1장에서는 이러한 ‘의도된 망각’이 일어나게 된 이유를 서술하고, 1960년 이래 10년 단위로 열린 항미원조 기념식의 규모와 방식, 『인민일보』 기사 등의 공적 서사 자료를 통해, 항미원조 기억과 서사가 미중 관계와 얼마나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는지 확인 한다.
그렇다면 항미원조 기억이 미중 관계에 따라 관리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은 무엇인가?
첫째, 항일전쟁과 해방전쟁(국공내전)과 달리, 항미원조전쟁은 정전 후에도 미중 간의 적대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졌고 미국의 핵 위협에 경계를 늦 출 수 없었다.
둘째, 1950년대 말부터는 중소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하면서, 중 국은 냉전시대 양대 강대국 사이에서 사면초가에 놓이게 된다.
이처럼 미중 대결과 중소 갈등이 중첩되는 상황에서 중국은 미중 데탕트 국면이 시작된 1970년대 이후, 미국과 손을 잡고 소련에 공동대응하는 ‘연미항소(聯美抗蘇)’의 길을 택해 안전보장과 경제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항미원조전쟁 기억은 겉으로는 미 제국주의에 승리한 영광의 역사로 구가되면서도 안으로는 교묘하게 억눌려온 이중성을 갖게 된 것이다.
이를 ‘미중 적대적 공조체제’가 유 지되던 지난 반세기 동아시아 냉전의 역설적 부산물이라고 정의한 저자는 미 중 관계 악화 속에 맞이한 2020년 시진핑 주석의 참전 70주년 기념 담화가 “1970년대 이후 미중 데탕트를 계기로 형성된 미중 공조체제의 역사적 시한이 다했음”을 보여준다고 역설한다.
2. 기억의 해빙: 2000년대~2010년대까지의 항미원조 전쟁기억
제2장에서는 오랜 시간 금기와 망각 상태에 방치된 항미원조전쟁 기억이 2000년대부터 대중매체로 진입하는 과정을 2016년까지의 대표적인 작품을 통 해 살펴보고 있다.
2000년에는 참전 50주년을 기념하여 영화 <북위 38도선>, 30부작 드라마 <항미원조>가 제작됐으나 끝내 공개되지 못했다.
저자는 이 시 기 한국전쟁을 조명한 대작들이 제작될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으로, 1980년대 이후 대거 출간된 항미원조전쟁에 참전했던 중요 인물들의 회고록과 실록에 주 목한다.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인 펑더화이의 생전 일기를 모아 편집한 <펑 더화이 자술>(1981), 지원군 부사령관이자 병참부 사령관이었던 홍쉐즈의 <항 미원조전쟁의 기억>(1991), 펑더화의 보좌관 양펑안과 왕텐청의 논픽션 <조선 전쟁의 운전자>(1992) 등이 그것이다.
1부에서는 반공식적 자료들, 특히 영화 <북위 38도선>의 시나리오 원재료 가 된 <조선전쟁의 운전자>의 내용을 토대로, 미공개된 두 작품에 담긴 전쟁의 내밀한 사건과 일화들을 소개함으로써, 2020년 최근과는 사뭇 달랐던 2000년 전후 항미원조전쟁에 대한 중국사회의 감각과 시선을 가늠한다.
또한 여병을 주 인공으로 내세워 낭만적 기법으로 전쟁의 한 단면만 그려냄으로써 유일하게 공개된 영화 <38선의 여병>을 통해서는, 항미원조전쟁을 기념하면서도 이 전쟁 기억이 불러올 수 있는 대중의 ‘반미’ 민족주의는 조절해야 했던 2000년의 중국 사회 분위기를 포착해낸다.
2부에서는 항미원조전쟁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펑더화이 장군과 그를 소 재로 한 드라마에 대해 논하고 있다. 2000년대 첫 10년간, 대중매체에서 항미 원조 역사는 혁명 위인의 생애 일부 혹은 항일·해방전쟁 등 중국 공산당의 혁명 사 과정 중 하나의 에피소드로만 다뤄져왔다.
그런데 2016년 항미원조 역사를 원톱으로 다룬 드라마 <38선>과 영화 <나의 전쟁>이 공개되면서 대중문화 속 항미원조 서사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다.
같은 해에 공개된 드라마 <펑더 화이 원수>(이하 <원수>)는 항미원조전쟁을 본격적으로 다뤘을 뿐 아니라(총 36부 중 25~33부), 1978년 복권된 이후에도 국가의 공적 기억으로 진입하지 못 한 펑더화이 장군의 혁명 과업 전모를 다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앞서 드라마 <펑대장군>(1988), <삼선의 펑더화이>(1995)가 펑 장군의 실각 이후 문화대혁 명 직전까지를 다루었다면, <원수>는 그가 혁명에 뛰어들기 시작한 청년기부터 실각 이후 만년까지를 모두 담아내어 대중의 큰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본래 46부작으로 시작한 <원수>는 돌연 36부작을 끝으로 종영하며 루산회의, 삼선건설, 문혁으로 이어지는 실각 이후 펑의 만년의 생애가 공개되지 못했다.
저자는 펑 장군을 둘러싼 문화적 이슈와 사료를 바탕으로, 중국에서 항미원 조전쟁의 위상이 격하된 또 하나의 중요한 원인으로 펑 장군의 실각을 꼽는다.
중국인민지원군 총사령관이었던 펑 장군과 항미원조전쟁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고, 그의 실각의 근본적인 원인이 중소관계 악화에 있을 뿐만 아니라, 문혁 보다 더 금기시되는 대약진운동 전후 중국의 정치적 상황이 그의 만년 생애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저자는 <원수>와 2020년 대하드라마 <압 록강을 건너>의 비교를 통해, 승리의 전사(戰史)와 전장의 참혹한 실상의 간극, ‘38선 이남으로 진격할 것인가’의 여부를 두고 지원군 사령부와 당 중앙 결정 사 이의 갈등 등이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를 분석함으로써, 불과 4년 만에 항미원 조전쟁 해석에 대한 중국사회의 달라진 기후를 보여준다.3
3부에서는 2016년 영화 <나의 전쟁>을 중심으로, 이 영화의 소재가 된 1964년 홍색경전영화 <영웅아녀>와 1962년 바진의 소설 <단원>을 분석하여, 포스트 혁명시대 전쟁서사인 <나의 전쟁>에 대한 논의를 풍성하게 만든다.
먼 저, 저자는 2016년이라는 시점을 혁명 역사의 격류에 휩쓸려간 개인의 삶을 찾 아 위로하는 방식으로, 역사와 개인의 화해를 이뤘던 펑샤오강 류(영화 <집결 호>, <대지진>, <방화>)의 포스트혁명 서사가 점차 역사와의 불화를 깨끗이 극복 한 <전랑>적 서사로 대체되던 때라고 감각한다.
그런 점에서, 항미원조라는 거 대역사가 익명화된 <나의 전쟁>은 애초부터 역사와 개인의 화해가 불가능한, <전랑>적 서사로 대체되는 과정의 산물이다.
영화 속 역사의 부재는 곧 적아의 대립이 필수적인 전쟁 서사에서 타자의 부재를 가져왔으며, 타자의 부재는 결국 자아 ‘나’는 누구인지를 답할 수 없게 되는 포스트 혁명시대 항미원조 서사가 마 주한 곤경이었다.4
3 저자는 2016년 드라마 <원수>에는 그간 꾸준히 쌓여온 복수의 텍스트가 켜켜이 깔 려 있기 때문에, 이것을 단순히 4년이라는 시간 차로 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국가의 통제 안에 있는 중국 대중매체의 특성상, 복수의 텍스트 중에 무엇을 선택하고 어떤 기조로 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국가이기 때문에, 서평자는 ‘불과 4년 만에 항미원조전쟁 해석에 관한 중국사회의 달라진 기후’라고 서술했다.
4 한담, 2018, 「탈혁명시대 중국 항미원조 기억 서사의 난처함」, 『중국현대문학』.
저자는 이 문제를 영화의 토대가 된 <영웅아녀>, <단원>을 함께 놓고, 주인공 인물 형상을 중심으로 무엇이 재해석되었는지를 분석하며 <나의 전쟁>은 <영웅아녀>의 혁명적 낙관주의에 가려진 원작 <단원>의 귀환이 었다고 서술한다.
3. 기억의 귀환과 이념적 빈곤: 2020년대 항미원조 전쟁기억
긴 내전 끝에 막 성립된 불완전한 신생 국가, 그것도 제공권도 갖추지 못한 전근 대적인 군대가 세계 최강의 미군과 맞서 싸운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한 반도의 전장을 전방으로, 중국의 전 국민을 광대한 후방으로 싸운 항미원조전쟁 이 당시 중국에서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러한 전 인민적인 동원을 모두 공산당 의 세뇌나 국가 이데올로기로 인한 강압에 의한 수동적인 결과로만 판단하기에 는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항미원조전쟁을 가능하게 한 정신적 에너지와 중국의 당시 시대정신이 무엇이었나를 살피는 것은 중국인의 한국전쟁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다.
전선에서 병사들과 수 개월간 생활하며 항미원조 문예를 창작한 작가 바진 이 본 지원군의 응집된 힘은 봉건사회의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어 땅을 분배받은 ‘농민’ 병사, 그들이 집과 조국을 하나의 존재로 느끼는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제2장 3부).
사회주의 문예인 항미원조 문예는 정치적 선전 및 교육 기능이 강 하며, 궁극적으로 인민 대중에게 사회주의 세계관을 내면화시키고 이에 대한 확 신을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의 방향으로 구축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 주인공인 지원군의 자아 형상은 사회주의 신인(新人)의 모범으로서 달라진 중국과 그에 걸맞은 새로운 임무를 수행하는 ‘주체’로 기능했다.
이러한 문예 작품을 통해 대 중들은 지원군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미 제국주의에 고통받는 조선과 조선 인민 을 지켜냄으로써, 과거와는 달라진 자신을 인지하고 새로운 세계 질서 속에서 신중국의 위상과 신 주체로서의 자신을 인지하는 과정을 추체험했다.5
5 韓潭, 2018, 위의 글, 2쪽.
이것이 문예를 통한 정체성 형성의 메커니즘이라면, 제3장 1부에서는 ‘인민전쟁’과 ‘사 회주의 국제주의’의 이념적 범주를 통해, 마오쩌둥 시기 항미원조전쟁이 항일전 쟁과 해방전쟁으로 대표되는 중국혁명의 일환이었고, 사상적 차원에서 인민전 쟁의 연장이자 확장이었으며, 대외적으로는 사회주의 국제주의 대의에 의해 뒷 받침되었음을 증명한다.
1953년의 담화 <항미원조의 승리와 의미>에서, 마오쩌둥은 전쟁 승리의 요 인을 (지원군 전사들의 방공초와 갱도전 창안을 예로 들며) 인민의 자발성과 창조성 이 발휘되는 ‘인민전쟁’, 전 인민의 지원, 중조 양국 인민의 협력 전투로 꼽는다.
저자는 허자오톈의 논의를 빌려, 여기서 ‘인민’의 개념이 마르크스 이론에서의 계급적 주체가 아닌, 자기 안에 잠재된 혁명성과 자발성을 끌어내는 자기 개조 를 통해 누구나 계급적 주체로 재탄생할 수 있는 역동적 주체론에 따른 것이라 말한다.
따라서 ‘인민’은 계급이라는 물질적 조건을 초월하는 일종의 정서적·심 리적 공동체였고, 당시 중국인에게 항미원조, 동방, 항미원월, 반둥과 같은 기 호들을 통해 타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국제주의적 감각을 향유하고 있었다.
저자 는 세계를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가 대부분이었던 중국 대중에게 ‘국제주 의’라는 낯선 구호가 순식간에 마음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인 민’ 개념에 내포된 타자와의 연대라는 감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서술한다.
그 러나 2000년대 이후 국가주석의 담화에서 인민전쟁은 자취를 감췄을 뿐만 아 니라, 인민의 자발성과 당의 영도 관계가 전복되었으며, 『인민일보』의 사설에 서도 아시아 인민의 우의와 연대에 관한 언급이 사라졌다.
그리고 시진핑 시대, 미중대결 기류를 타고 귀환한 항미원조전쟁은 그것이 애초에 지니고 있던 정치 성과 이념성의 요체를 상실한 채 애국주의와 중화주의라는 협소한 내셔널리즘 의 구호들로 채워졌고, 공적서사에서 과잉 사용되는 ‘정의’라는 단어가 그 이념 적 빈곤을 포장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2부와 3부에서는 2020년 참전 70주년을 맞아 제작된 블록버스터급 주선율 드라마 <압록강을 건너>(이하 <압록강>)와 영화 <장진호>, <수문교>를 각각 분 석하고 있다.
저자는 항미원조전쟁이 대대적으로 소환되는 최근 상황을 부정적 으로만 보지 않는다.
서사의 제방이 터지기 시작하면 모종의 사유 공간이 형성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본서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뤄 지는 전투와 이와 관련된 공식, 반공식적 서사의 비교분석을 통해, 겉으로 드러 나는 주선율뿐만 아니라 주선율을 지탱하는 서사의 행간까지 살피는 독법을 취 한다.
전쟁 7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40부작의 대하드라마 <압록강>은 시진핑 주석의 기념 담화 안에 서사 지침이 응축될 만큼, 국가의 의지를 충분히 담아낸 귀환한 항미원조 서사의 모범(模範)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 드라마가 한국전 쟁의 당사국 어디에도 시도하지 못했던, 한국전쟁 전 기간의 국면별 정세변화, 양 지휘부의 지략대결, 전장과 전투의 구체적 장면들을 거대한 파노라마 안에 그려냈다고 평가한다.
드라마는 중미 수뇌부와 양측 군 사령부를 주축으로 하는 상층서사, 허구지만 실제 전거를 갖는 개인서사, 그리고 둘 사이에 있는 지원군 의 기층서사라는 세 층위의 서사구조로 되어 있다.
저자가 특히 주목한 것은 상층부의 서사를 떠받치는 기층서사로, 여기에는 2010년대 제작된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참전용사들의 구술이 대거 활용되었다고 판단한다.
이를 토대로, 저자는 기층 병사들이 겪는 혹독한 전투 현장과 중공 수뇌부가 있는 중난하이에서 전투를 바라보는 시선의 온도 차를 짚어낸다.
이 책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 드라 마에서 기존의 항미원조전쟁 서사에서 주변화됐던 4~5차 전역(1951.1.25~6. 10)이 비중 있게 다뤄진 것에 주목하여, 그 전투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길어 올렸다는 점이다.
저자는 공적, 반공적 사료를 토대로, 국민당 기의부대의 한강 방어전, 화천저수지 전투의 180사단, 철원전투의 63군 등 정치 군사적으로 민 감하거나 지원군이 수세였던 전투인 탓에 잊혀진 역사를 밝혀냄으로써, 비록 제 한적이지만 공적서사에서 기록되지 못했던 본 드라마의 숨은 그림을 찾아낸다.
이를 통해, <압록강>이 시진핑 시대에 귀환하는 항미원조 서사가 전체적으로는 공적서사에 견인되지만, 제한적으로나마 항미원조 서사 공간이 넓어지는 순기 능이 따라오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3부에서 다루는 장진호 전투는 2차 전역 동부전선에서 벌어진 싸움 (1950.11.25.~12.24.)을 말한다.
‘장진호의 악전’과 ‘상감령의 혈전’의 강조는 시 진핑 시대 항미원조 서사의 주요 특징 중 하나다.
그러나 상감령이 마오쩌둥 시 기 항미원조의 상징으로 각인됐다가 개혁개방 이후 잊혀진 이름이었다면, 장진 호는 종래 항미원조전쟁 서사에서 크게 강조되지 않았던 전투라는 차이가 있다.
그 이유는 지원군의 엄청난 고난과 희생을 빚은 2차 전역 동부전선이 승리보다는 고난의 상징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장진호 전투가 최근 10여 년 전 부터 다큐멘터리를 통해 조명되기 시작하더니, 참전 70주년을 맞아 역대급 블 록버스터 영화가 잇달아 제작되며 시진핑 시대에 화려하게 귀환한 항미원조 서 사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
저자는 애플맨의 <장진호 동쪽>, 군사(軍史)인 <20군 사화>, 다큐와 참전용 사의 구술 등을 바탕으로, 영화 <장진호>와 <수문교>에서 다룬 신흥리 전투와 수문교 폭파 작전이 지원군 스스로도 대승리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혹한, 보급 부 족, 지도부 실책 등으로 엄청난 희생을 치렀음을 밝혀낸다.
그렇다면 문제는, 항 미원조 집단기억에서 가장 어둡고 아팠던, 그래서 드러내고 싶지 않았던 이 전 투가 영화 <장진호>를 통해 ‘승리’의 서사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 일어난 역사 의 크고 작은 왜곡과 기존의 장진호 기억에 붙어 있던 공적인 언어로 구조화되 지 않고 부유하던 정서와 감응의 사라짐이다.
저자는 <장진호>의 스포트라이트 가 항미원조전쟁을 선택적으로 소환함으로써, 불과 10년 전만 해도 동부전선에 관한 중국의 공적, 반공적 서술의 행간에 숨겨진 감정과 정서가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라는 단순 명쾌한 감정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짚어내며, 항미원 조 기억의 가장 어두운 역사마저 ‘승리’의 ‘긍정적 에너지’로 재조직하는 시진핑 시대의 일면을 우려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4. 대안 서사의 가능성: 소인물의 역사 <금강천>
제4장에서는 항일, 해방전쟁과 더불어 항미원조전쟁이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사로 귀환하고 있는 최근, 거대역사의 항미원조전쟁을 미시사로 보여준 영화 <금강천>을 분석한다.
2020년 항미원조전쟁 70주년을 기념하며 출시된 <금강 천>은 7·13 금성전투를 배경으로 금강천의 교량이 미군 폭격으로 네 차례 파괴 되고 그때마다 지원군에 의해 보수되는, 7월 12일 단 하루의 이야기를 다룬다.
제공권을 갖추지 못했던 중국군이 미군의 무차별한 폭격에 맞서 무너진 다리를 수리하고 약속된 시간에 전투에 투입되어 끝내 승리한다는 식의 이야기는 마오 쩌둥 시기부터 자주 활용된 항미원조 서사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하늘의 전투기 와 땅의 고사포 간 대결이라는 이 영화의 메인 플롯도 전형적인 주선율 영화의 패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덩케르크> 영향을 받은 이 영화는 비록 작품의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하나의 사건을 지원군 사병 류하오 미군 전투기 조종사 스미스, 고사포 부대의 다른 시선으로 세 차례에 걸쳐 보여주는 기법을 통해 ‘항미’라는 거대역사 이면에 숨겨진 미시적 세계를 드러 내고 있다.
저자가 주목한 것은 바로 감독의 시선에 담긴 미시적 세계에서 발견되는 수많은 이름 없는 소인물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의 위대한 순간이다.
즉, 감독 관후에게 역사서에 기록된 영웅들의 행적은 모두 원경에서 바라본 기록일 뿐이다.
카메라 렌즈를 바짝 당겨 근거리에서 그 ‘희생’의 순간을 들여다보면, ‘희생’이라는 공 적 서사로 설명되지 않은 온갖 소쇄한 요소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이 영화에서 는 특히 고사포 반장 장레이를 통해 감독이 의도한 바를 이해할 수 있는데, 저자 의 분석을 따라가보자.
영화 속 교량을 파괴하는 미군과 지키려는 중국군의 대결구조는 점차 미군 조종사 앤드루 힐과 고사포반 반장 장페이의 대결로 좁혀진다.
그런데 원래 고사포반 반장은 담이 크고 제멋대로인 관레이였다.
하지만 그는 금연 규정을 어 겨 반장의 지위와 1호 고사포 지휘권을 장페이에게 빼앗긴다.
관레이에 반해 장 페이는 소심하고 겁이 많다.
장페이는 포탄을 아끼느라 교량을 폭파한 미군 전 투기에 제때 대응하지 못하고 관레이에 비웃음을 당한다.
그러나 장페이는 전투 기를 격추하는 과정에서 위치가 노출되어 관레이를 비롯한 1호 고사포 대원 전 원을 잃자, 완전 다른 사람으로 돌변한다.
그는 포대 주위에 불을 붙여 위치를 일부러 노출시키고 미군 힐을 자극하며 미친 듯이 포를 쏘기 시작한다.
지상과 공중의 광기에 가까운 이 대결은 결국 힐과 장페이 모두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 으로 끝난다.
멀리서 이 대결을 바라보는 사병 류하오의 눈에는 도강하는 주력 부대를 위한 고사포대의 희생으로만 보이지만, 이러한 장페이의 결단에는 동료 대원을 잃은 쇼크, 복수심, 오기, 증오 등 ‘희생’이라는 공적 서사로 설명되지 않 는 수많은 감정이 섞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삶과 죽음이 난무하는 전장에서 충동적인 감정과 희생정신을 구별하 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감독이 그 희생의 순간을 파고들어 펼쳐 보인 것은 바로 거대역사와 미시세계 사이의 광활한 간극이었다.
즉, 역사의 위대한 순간은 종종 이렇게 소인물의, 때로는 대의보다는 사사로운 이기심과 소소 한 공명심, 충돌적인 감정과 우발적 계기가 한데 엉겨 만들어진 것임을 보여주 려고 했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나오는 인간으로 만든 교량은 그러한 감독 의 메시지를 시각화한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금강천>은 관후가 오마주한 <덩케르크>나 그의 항일전쟁 영화 <팔 백>처럼 반전 메시지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다만, 저자는 “주선율 사이로 숨겨 둔 하위선율로부터 전쟁을 바라보는 ‘다른’ 시선과 목소리를 비집고 나온” 대안 서사로 이 영화를 주목하며, 향후 ‘영웅적 희생’보다 ‘살아남는 것’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반전 메시지가 담긴 항미원조 서사를 기대하는 것으로 글을 마친다.
III.맺음말
『항미원조』가 다루는 시기와 내용의 폭이 넓어, 필자가 저자의 문제의식과 핵심 내용을 얼마나 잘 소화했는지 확신하기 어렵다.
다만, 필자가 이해한 내용을 바 탕으로 본 저서의 연구사적 의의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상술한 바와 같이 마오쩌둥 시기와 포스트 마오쩌둥 시기를 관통하는 본서는 일부 시기나 특정 텍스트를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의 한계를 보완하여, 중국의 항미원조전쟁과 집단기억을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종합적인 저작 이라 할 수 있다.
둘째, 1980년대 이래 나온 다큐멘터리, 지원군 사령부와 참전용사의 실록 이나 회고록 같은 방대한 반(半)공식적 텍스트의 활용은 공백 상태에 있는 2000년대 항미원조 서사 연구를 보완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항미원조 문화 연구 영역을 대거 확장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6
6 이러한 반공식적 텍스트에 주목하여 중국군 포로의 송환 이후의 삶을 고찰한 기존 연구로는 임우경,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 한국전쟁 귀환 포로와 신중국 영웅 서사의 그늘」(『중국학보』, 2015), 이사사·손준식, 「헌신의 대가: 한국전쟁 중국군 포로의 귀국 이후 삶」(『역사학연구』, 2018) 참고.
또한 2020년대 이래 영화, 드라마 분석에서는 반공식적 텍스트와 더불어 군사 사료를 활용함으로써, 문화 내셔 널리즘 특징에 집중된 기존 논의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7
7 「시진핑 시대, ‘항미원조’ 전쟁의 귀환과 문화 내셔널리즘」(한담, 2021, 『중국인문 과학』), 「중국 항미원조 영화에 나타난 내셔널리즘의 재현 양상과 한계」(한담, 2022, 『강원사학』) 등이 있다.
이처럼 중국의 한국전쟁을 이해하는데 본서의 출간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향 후 관련 연구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다만 2000년대부터 현재까지와는 대조적 으로, 마오쩌둥 시기의 논의에서는 영화와 드라마, 문학과 같은 대중 서사가 많 이 다뤄지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본서에서 마오쩌둥 시기는 항미원조 기념식의 규모와 방식, 국가지도자의 담화, 『인민일보』 기사 등의 공적 서사 자 료를 토대로 항미원조 기억의 이중성과 기존에 이 전쟁에 내재된 ‘인민전쟁’, ‘사회주의 국제주의’ 이념에 대한 논의에서 특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런데 당 시 국민 대다수가 문화 수준이 낮은 농민이었다는 점에서, 공적 서사 차원의 국 가의 추상적이고 난해한 정치 서술이 대중에게 곧바로 수용되고 내재화될 수 있 었을까?
대다수의 평범한 중국인에게 이 전쟁이 갖는 의미는 무엇이었고 어떤 방식을 통해 심적으로 동원될 수 있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공적 서사와 대 중 사이의 간극을 메워준 대중 서사에 대한 주목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더불어, 본서에 포함되지 않은 1980년대 초에 나온 영화를 연구대상으로 포함한다 면, 2000년에 나온 대중서사, 특히 유일하게 공개된 영화 <38선의 여병>에 대 한 논의를 전 시기와 연장선상에서 고찰함으로써 보다 많은 논의가 가능할 것으 로 보인다.
그러나 전쟁 시기부터 최근까지의 방대한 사료를 세심하게 검토하고 마오쩌둥 시기와 포스트 마오쩌둥 시기를 관통하며 ‘중국의 항미원조’를 하나의 저작 으로 엮어낸 본서는 필자를 비롯한 항미원조전쟁을 주목해 온 연구자에게 매우 고무적이고 지적 자극을 주는 소중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제 한국 대중에게도 항미원조는 낯설지 않은 용어가 되었다.
저자가 언급한 바와 같이, 수많은 사 상자와 이산가족을 만든 비극적인 국제전이었던 한국전쟁이 각자의 독백을 넘 어 불편한 타자들과 대화의 물꼬를 틀 때, 진정한 의미에서 종전과 평화를 논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더 늦지 않게 한국전쟁의 또 다른 당사자로 중국을 바 로 마주해야 할 때, 이 책은 좋은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기쁜 마음으로 독자 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동북아역사논총 81호(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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