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4일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은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 와의 정상회담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이 가자지구(Gaza Strip)를 ‘맡아(take over)’ 재건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그리고 가자지구 주민의 대부분을 외부로 이주시키겠다는 계획을 담았다.
일시적 이주가 아니라 영구적 이주를 의미했다.
2023년 10월 하마스(Hamas)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가자 전쟁이 휴전 1단계에 들어간 상황에서 나온 의외의 발표였다.
취임 2주후 이루어진 첫 정상회담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트럼프의 가자 구상이 나오자 미국 내 여론은 물론 국제사회에 미치는 충격파도 작 지 않다.
그 내용과 배경, 그리고 함의를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까?
구체적인 계획이라기보다는 선언에 가깝다.
2019년 1기 임기 때 발표했던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평 화계획인 트럼프 평화계획(Trump Peace Plan, 일명 Deal of the Century)과 사뭇 다르다. 당시에 는 지도에 상세 분할 계획 및 추진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혔던 반면, 이번에는 가자지구를 미국이 직접 맡겠다는 것 외에는 구체적인 계획을 알리지 않았다.
다만 왜 미국이 직접 나서는지에 관한 배경 설명이 골간이었다.
핵심은 가자지구의 주택, 인프라, 사회시설의 80%이상이 파괴되었기에 230만 주민 대다수가 거주할 수 없음을 설명했다.
따라서 최소 180만~200만 명의 가자 주민은 주변 아랍국이 수용하고, 그 공간에 미국이 직접 들어가 관할하며 상 전벽해(桑田碧海)를 만들겠노라는 의미다.
전쟁의 폐허를 누구나 살고 싶어 하는 낙원으로 만든다는 소 위 ‘중동 리비에라(Riviera)’ 개발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나 논조를 최대한 배제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3만 발의 불발탄이 가자지구 전역에 흩어져 있기에 사람이 살 수 없다며 다소 인도주의적인 뉘앙스도 의도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위트코프(Steve Witkoff) 중동특사도 거들었다.
근 10여 년 만에 가자지구를 처음 으로 직접 방문한 미국의 고위관료다.
가자 현장 상황을 점검한 그는 최소 10년, 길게 15년까지 가자 지구 재건이 소요될 것이라 전망했다.
현실적으로 200만 가까운 주민이 이 지역에 거주하는 것은 불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오히려 트럼프의 가자 개발 계획과 주민 이전 제안이 가자 주민에게 희망을 주 는 것이라는 메시지도 발신했다.
그러나 가자지구 주민의 이주 계획, 구체적인 재원 조달 방안, 미군의 주둔 여부는 물론 재건 이후 가자지구에 누가 거주하며, 이 땅을 누가 통치할 것인지 전혀 밝히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가자지구 재 건 후 미래 계획도 알 수 없다.
이스라엘에 병합시킬 것인지, 팔레스타인 가자주민의 귀환을 허락할 것인지, 향후 미국이 가자지구를 어떤 지위로 유지할 것인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다.
그렇기에 위 트코프 특사의 가자 주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라는 메시지는 현지에서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2. 현실성이 있을까?
구체적인 계획이 제시되지 않았기에 현재로서는 평가가 어렵다.
그러나 특단의 실행 계획이 따르지 않는 한,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먼저 200만에 달하는 가자 주민들을 이집트, 요 르단을 비롯한 주변 국가들이 ‘영구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물론 미국의 원조 및 안보의존 도가 높은 이집트와 요르단의 내적 부담은 작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수십만의 팔레스타인 이주 민들, 그것도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인한 분노가 가득한 이들을 자국 영토 내로 수용할 경우 감당하기 어렵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계획을 환영하는 우방국가가 있다고 밝혔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일 이다.
자칫 중동 외 지역의 난민 수용 분담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재건 비용도 만만치 않다.
투자를 유치한다고 해도 단기간 수익 창출이 거의 불가능한 형편이기에 용이하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평화계획 ‘세기의 협상(Deal of the Century)’에서처럼 아랍 산유 부국들이 각출하여 부담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사우디아라비아 (이하 ‘사우디’)나 아랍에미리트(UAE: United Arab Emirates), 카타르 등이 나서야 하는데 만만치 않 다. 자국 개발 프로젝트 부담도 큰 상황인데다, 팔레스타인의 축출을 도왔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반감 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가자 재건 국제 공동 펀드 등이 대안이라면 역시 동맹과 우방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미국 내 여론도 관건이다.
공화당을 중심으로 환영 논평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을 비롯, 제이스트리트(J Street) 등 미(美) 유대인 연합단체들은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이 사안이 공론 화되면서 향후 미국의 중동 재개입, 특히 가자 재건에 직접 나서는 데 대한 미국 내 여론이 어떻게 움 직일 것인지 주목된다. 파나마, 멕시코, 그린란드와는 성격이 다른 맥락의 관여와 개입이기 때문이다.
아랍, 무슬림 유권자단체들의 불만이 결집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추진 스타일이 반영된 사안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전격성, 파격성, 불가측성이라는 트럼프식 협상 성격이 드러났기에, 어떤 형태로든 과실을 추구하는 결과를 만들어낸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어떻게 이 사안이 전개될 것인지 섣부르게 예단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3. 미국의 기존 입장과 많이 다른가?
파격적이다.
미국이 지지해 온 전통적 이·팔 정책은 ‘두 국가 해법(two state solution)’이다.
1993년 미국 등 국제사회가 주도해서 도출한 오슬로 평화안(Oslo Accords)을 근간으로 한다. 현재 이스라엘이 점령하고 있는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와 가자지구를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로 분리 하는 정책이다.
민주, 공화당을 막론하고 동일하게 지지해 온 이·팔 평화 계획의 토대이기도 하다. 트 럼프 1기 때 제시했던 이팔 평화구상도 두 국가 해법에 근거했다.
그러나 이 날 발표대로, 가자지구 밖으로 팔레스타인인을 이주시키게 되면 현실적으로 두 국가 해법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서안지 구의 이스라엘 영토 편입 가능성이 운위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사회가 지지하는 이·팔 평화계획을 미 국이 나서서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가자지구 직접 관여는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정책 기조 및 기존 입장과도 배치된다.
2016년 대통 령선거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중동 직접 개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의 중동민주화구상인 확대중동구상(Greater Middle East Initiative)나 오바마(Barack Obama)의 역외 균형자론(offshore balancer) 모두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이후 줄 곧 중동에 개입하지 않고, ‘그들의 운명은 그들이 결정하게 해야 한다’는 거리두기 입장을 명확히 해왔 다.
개입주의 특히 이라크 전쟁에 피로감을 느끼던 미국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낸 배경이었다.
그러나 이번 발표는 중동에 미국이 다시 관여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군사 불개입을 상징하 는 ‘no boots on the ground’의 군화나 무기가 아닌 장화와 건설장비로 갈음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공동 기자 회견에서 밝혔듯 미군의 가자 주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군의 가자 개입은 지역 내 후폭풍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이라크 국가 재건과는 차원이 다른 상징성을 갖기 때문이다.
미국이 개입하여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막고, 주민들을 직접 축출했다는 구도가 만들어지면 격렬한 혼란이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하마스는 이번 발표에 대해 중동의 혼란과 분쟁을 초래하는 레시피(recipe)라 논평했다.
무엇보다 미국이 주도하는 사우디-이스라엘 수교도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이번 발표 직후 사우디 측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거주지 이탈과 관련 어떠한 시도도 반대하며, 이는 협상 대상이 될 수 없을 밝혔다. 앞서 사우디는 팔레스타인 국가건설 외에는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는 불가능함을 재확인하 기도 했다.
이는 무함마드 빈살만(Mohammed bin Salman) 왕세자의 작년 10월 슈라 카운슬(Shura Council, 국회) 연설에서 확언한 내용이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가자 관여 및 주민 이주 계획은 자신의 핵심 중동정책과 상충될 가능성이 높다.
이처럼 금번 발표는 미국 외교에 논란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살펴본 것대로 미국의 중동 재관여 및 군사개입으로 이어진다면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의 근본적 변화를 의미한다.
그동안 이·팔 문제에 군사개입을 극도로 자제하며 평화협상의 중재자 역할을 자임하던 미국의 정체성이 바뀌게 된 다.
역내 다른 지역으로의 개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국제법 및 인권논란도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일부 국제인권단체들은 이 계획을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로 비난하기 시작했다.
미국이 가자 주민들을 타지역으로 이주시키는 것은 제네바협약 (Geneva Convention) 중 제4차 협약(민간인보호에 관한 협약, 1949년) 위배 가능성이 있다.
비군사 적 목적의 대규모 강제이주(forcible transfer)는 자칫 중대범죄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4.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왜 이 계획을 밝혔을까?
이처럼 실현하기 쉽지 않은 프로젝트를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에 관한 평가 가 갈린다.
아직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가자지구 재건에 대한 확고한 계획이 있다는 분석이 있다.
반면 가자지구에 대한 관여 의지는 밝히되, 최대한 모호함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자신의 중동 정 책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공존한다.
현재로서는 상대적으로 후자에 가까운 분석이 더 많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고 상황을 제어하면서 이익을 추수하겠다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크게 던지고 추스르면서 일을 만들어가는 형태다.
일단 후자를 전제로, 트럼프 대통령의 의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에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친(親)이스라엘 기조가 자신의 정치적 토대이기에 임기 초(初) 이를 단단히 다지고 시작한다는 의미다. 2017년 12월 주(駐)이스라엘 미국대사관을 예루살렘에 설치하겠다는 선언 이후 큰 논란이 있었다.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미국 예루살렘 대사관법상 이미 대사관을 예루살렘에 두게 되어 있었지만 역대 어느 대통령도 시도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논란에도 불구하 고 이를 선언, 이듬해 이스라엘 건국 70주년 기념일을 맞아 실행에 옮겼다.
일종의 대외정책 정체성이 자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전통적 공화당 지지층의 결집도 확보할 수 있다.
1기의 경험 연장선상에서 해석되는 부분이다.
둘째, 이스라엘과의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취임 후 첫 정상회담을 네타냐후와 가진 것은 상징성이 크다.
그만큼 두 정상은 긴밀한 관계다.
하지만 동시에 각자 정치적 이익을 위한 셈법을 갖고 게임을 한다.
금번 정상회담에서 네타냐후의 핵심 의제는 가자 개발 문제가 아니었다.
이란 핵시설에 대한 공 동 군사 협력과 가자 전쟁 휴전 조건의 문제가 핵심이었다.
네타냐후 총리에게 가자 전쟁 종전은 곧 정치적 책임 규명 국면의 시작을 의미한다.
적의 기습을 허용, 막대한 피해를 입은 지도자가 마주해야 할 책임이고 자유롭지 않다.
자칫 연립 정부 붕괴 위기를 맞게 된다.
따라서 네타냐후 총리 입장에서는 이란이라는 숙적과 갈등 국면이 유지되어야 하고, 적어도 준(準)전시 분위기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문제에 있어 군사개입은 회피한다.
최대한의 외교적 압박을 통해 협상 국면을 만들고 싶어 한다.
가자 휴전 역시 자신의 당선 및 취임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다는 해결의 주 체로서의 성과를 원하고 있다.
그렇기에 이번 정상회담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한껏 치켜세우며 미국의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대내외에 천명해주었다.
대신 가자 재건 직접 관여라는 큰 메시지를 던지면서 이 란 문제나 휴전 2단계 협상에서는 자신의 통제를 따르라는 일종의 압박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상 회담장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표정이 그다지 밝지 않았다는 점에 전문가들이 굳이 주목하는 이유다.
이 스라엘 강경파 각료들이 금번 선언에 환영하면서도 내심 긴장하는 부분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스라엘 영토화 즉 병합’ 계획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함구했기 때문이다.
셋째, 임기 내 가시적 업적에 대한 의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개발 분야 전문가의 본성이 반영된 측면이다. 폭격의 잔해만 남아 사람이 살기 어려운 지옥 같은 환경의 가자지구는 오랜 중동 분쟁의 상 흔(傷痕)이기도 하다.
2006년부터 20년 가까이 하마스 통치를 받으며 지상 최대의 수용소라는 오명을 안고 있기도 했다.
그 가자지구를 지중해변의 리조트 단지로 탈바꿈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작동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그 앞바다는 동지중해 가스전 메가 프로젝트가 시행되는 공간이기도 하 다.
단순히 폐허를 리조트로 만들었다는 상징성 외에도, 분쟁의 현장을 평화의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업적에 대한 관심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5. 종합적으로 평가하면?
아직 구체화된 것이 없기에 평가하기 이르다.
여러 면에서 쉽지 않다.
다만 200만 넘는 가자 주민 들을 외국으로 이주시킨다는 것은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의도나 계획과 별개로 논란은 필연적이다.
국제인도법은 물론, 만일 미군 투입되어 군사활동이 수반될 경우 관계자들의 행동이 자칫 전쟁범죄로 간 주될 수 있는 위험도 있다. 법적, 정치적 책임의 우려와 함께 실현 가능성에 있어서도 매우 이행이 어 려운 프로젝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란이야말로 이익 확보의 핵심 조건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추진 스타일 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판을 거세게 흔들어 혼조 속에서 이익을 포착한다는 트럼프의 협상 행태를 감 안하면. 금번 발표는 구체화된 목표가 설정되고 이행계획이 있다고 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단순 히 과시용으로 던져본 방안은 결코 아니다.
조건과 환경을 맞추어가며 실현시키려는 의지가 반영된, 상대적으로 열려있는 정책 선언이라 볼 수 있다.
따라서 네타냐후 총리를 비롯,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와 역내 아랍 주요국 리더들의 반응에 따라 트럼프 정부는 가자 관여와 재건 문제를 설계해 나갈 가 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높다.
전반적인 미국의 대외정책과 맞물려, 가자사태는 물론 최근의 관세 논쟁, 그린란드 점유 문제, 파 나마 운하 논란 등 트럼프 정부 2기가 보여주는 일련의 행보가 주목된다.
통념상 상상하기 어려웠던 파격적 선택지를 제시함으로써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수준의 협상안을 확보 하는 게임의 양상이 예상된다.
가자 휴전 과정에서 위트코프 특사가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해서 휴전안 을 수용하게 했다는 후문처럼, 동맹과 우방에 대한 배려나 혜택을 크게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
IF 2025-02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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