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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한중일 신관 비교를 통해 본 환인 하느님 신관과 한국기독교/허호익.대전신大

 

목 차

1. 문제 제기

2. 환인(桓因)의 옛 뜻과 한국의 하느님 신앙

   1) 환인 하느님설

   2) 환인 천부설(天父說)

   3) 환인 제석 천신설(帝釋 天神說)

   4) 환인 여신설

   5) 환인 신 천신설(天神說)

   6) 환인 천손족(天孫族)설

3. 중국의 천 사상과 천자

   1) 주재적 종교적 천관

   2) 통치자로서의 천자의 등장

   3) 태황최귀사상과 통치 이념으로서 황제

4. 일본의 천 개념과 천황제도

   1) 고대 일본의 천 개념

   2) 신도와 천황제도

   3) 일본의 천 개념의 정치화

5. 결론 : 한국의 하느님 신관과 한국기독교

 

 

1. 문제 제기

 

한의 단군상 건립(1999년)과 북한 단군릉 건립(1994년)으로 인하여 한국기독교가 단 군신화를 바라보는 눈이 비판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성명서 (1999.10.15)를 통해

“오늘날 한국교회가 상고사에 대한 학문적 검토 없이 단군 존재를 부 정하려는 것은 자칫 반민족적인 행위로 비칠 수 있음을 우려”하였다.

그리고 “단군신화를 단 순히 하나의 신화나 특정 종교의 교리와 관련된 문헌으로서가 아니라 민족의 중요한 자산으 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고 제안하였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군신화와 기독교가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 지 모른다. 가장 결정적인 관련성은 기독교(개신교)가 한국에 전래되는 과정에서 성서가 번 역되면서 구약성서의 여호와 ‘엘로힘’(Elohim)을 단군신화를 통해 전승된 여호와 ‘하느님 또 는 하나님’으로 번역한 일이다. 3)

 

1) 이 논문은 제34차 단군학회(2005.6.25)에서 발표한 것을 보완 정리한 것이다.

2) 허호익, 단군신화와 기독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pp. 342-345.

 

기독교보다 100년 정도 먼저 전래된 천주교가 중국식으로 천주로 번역하였고 200년 정도가 지난 1971년에 신구교 「공동번역 성서」에서 비로소 하느님으로 번역한 것과는 큰 대조를 이룬다.

1894년 기독교(개신교) 선교사들로 구성된 성경번역자회는 논란이 되어온 신명 번역에 대한 표결에 부쳤고 투표결과 텬주:하나님=4:1 로 나타났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선교사들은 선교활동에 다른 용어와 비교할 수 없이 효과적인 하나님 명칭을 사용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 하게 된다.

표결결과는 유명무실해지고 한동안 텬주와 하나님의 명칭은 한동안 공존하게 된 다.

결국 1906년부터 더 이상 텬주는 사용되지 않고 하나님이 채택됨으로서 신명 번역의 복 잡하고 치열한 논쟁이 일단락되었다.

최동환은

“당시 선교사들의 절대다수가 다른 여러 명칭 대신 하나님을 사용하기를 갈망했던 바로 그 이유에서 하나님 명칭이 얼마나 우리민족에게 중요하고 소중한가를 알기에 부족함이 없었기” 4) 때문이라고 한다.

하나님이냐 하느님이냐는 성서번역상의 논쟁이 있어 왔지만5) , 하나님이든 하느님이든 기 본 의미는 한국 고유의 신명으로서 단군신화에 나오는 환인(桓因)을 지칭한다.

장병일은 이 점을 분명히 하였다.

 

“창조주인 히브리명인 엘로힘(P 문서)은 한국의 신명인 하나님으로 개명한지 오래 되었 다. 그리고 하나님 어원이 바로 단군신화의 환인의 고유한, 하나님 혹은 하느님에서 유래했 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6)

 

    3) 이 글에서 편의상 하나님으로 표기하고 양자를 구분할 필요가 있을 경우만 하느님으로 표기한다.

    4) 최동환. “한계레와 하나님”, http://www.hananim.com/bbs/view.php?id=total&page= 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 (2005.6.20)

    5) 옥성득, “개신교 전래기의 ‘신’ 명칭 용어 논쟁-구역성경(1893-1911)을 중심으로”, 기독교사상 1993년 10월 호, pp. 200-222.; 곽노순, “한국교회의 하나님 칭호 I-II”, 기독교사상 1971년, 2-3월호.; 임승필, “하느님 의 이름 어떻게 옮길 것인가”, 사목 1996년 1월호, p. 204.; 허호익, “야훼신명의 신론적 이해”, 현대조직신 학의 이해(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pp. 15-41. 한글성서 번역사에서 처음으로 논쟁이 된 것은 엘로힘 신명의 번역이다. 정하상의 上帝上書 번역서(1839) 에는 하님으로, 존 로스는 예수셩교문답(1881)에서는 하느님으로, 예수셩교셩서 누가복음 뎨자힝젹 (1883)에서는 하나님으로 표기하였다. 1894년 상임성서실행위원회에서 사복음서와 사도행전을 번역하던 중 신명이 쟁점이 되어 텬쥬판 500부와 하님판 100부를 간행하였다. 1910년 선교사번역 위원회의 신약젼서는 ‘유일하고 큰 분이란 뜻’으로 하님이라 번역하였다. 1933년 이후 한글맞춤법 통일안이 제정으로 아래아 표기가 폐지되자 1937년에 나온 개역 성경전서에서는 유일신 인격신 사상을 잘 표상하는 하나님(하나+님)을 사용하였는데, 당시의 민중 기독교의 무속적 종교 혼합 을 막고 일제의 신사참배를 반대하기 위한 의도로서 하나님과 하느님의 차별화를 시도하였다. 77년 신구교 공동번역 성서에서는 한글의 보통명사로서의 신명은 문법상 정확하게 표기하면 하느님이 되 어야 한다는 이유로 성서의 엘로힘을 하느님으로 번역하였다. 하나님이라는 신명은 신의 유일성과 엄격성만을 강조한 신조어라고 비판하였다. 그러나 재래종교의 하느님과 성서의 하나님을 구별하려는 여론에 밀리어 1993 년 표준새번역 성경전서과 1998년 개역개정판 성경전서에서도 하나님으로 번역하였다.

      6) 장병일, “단군신화에 대한 신학적 이해”, 「기독교사상」 1961년 12월호, p. 75

 

우리 조상대대로 전승되어온 끈질기고 풍성한 하나님 신앙 때문에 기독교가 전래되었을 때 기독교의 ‘여호와 엘로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번역함으로 단군신화의 환인 하나님이 바로 기독교의 여호와 하나님 신앙으로 토착화된 것이다.

서양 기독교가 한국에서 유래 없이 크게 성장한 많은 요인 중에 재래의 하나님 신앙의 영향을 과소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일본의 경우 주재자(主宰者)나 인격신으로서의 천(天) 개념이 종교적으로 약화되고 정치적으로 왜곡되어 왔기 때문에 일본에서의 기독교의 전개가 미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일본학자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는 이 점을 명확히 하였다.

 

“‘하느님’이란 고유한 개념을 가진 한국과 달리 [일본이] 기독교 신자가 매우 적은 것도 (인구의 1%정도) 그러한 것에 관련되어 있는 것 같다.” 7)

 

일본은 한국보다 기독교가 25년 먼저 전파되었고, 중국 역시 한국보다 75년 먼저 기독 교가 전래되었다. 8)

 

   7)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 “日本 民間信仰에서 본 天槪念”, 「인문연구논집」(동의대) 제3집(1998), p. 31.

   8) 백낙준, 백낙준접집 4(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95), p. 395.

 

천주교의 경우는 이 보다 훨씬 앞선다.

이 동양삼국 중 기독교전래가 가 장 늦은 한국이 이처럼 단 시간 내에 기독교가 확산되고 뿌리를 내리게 된 역사적 배경에는 네비우스 원칙과 같은 효과적인 선교 방법 등 여러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 는 중국에서는 황제를 천자(天子)라 하고 일본에서는 왕을 천황(天皇)이라 하여 천신 하나님 을 정치 이념화하였고, 문화적으로도 중국에서는 성리학을 통해 주제자로서의 천이 우주적 이법으로서 천리(天理)가 되고 일본에서 가신 중심의 통과의례로서의 신도(神道)가 되어 민중 들 사이에서 자연히 하나님 신앙이 취약하였으나, 한국인들의 경우는 단군신화에 내재된 하 나님 신앙이 표층 및 기층문화를 통해 끈질기게 계승하여 왔고 이를 정치 이념화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의 전래와 함께 여호와 하나님 신앙이 쉽게 전파되고 널리 그리고 깊이 뿌리내 리는 아주 중요한 통로가 되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한국, 중국, 일본에서의 천 개념 또는 하나님 신앙의 특성을 비교 분석함으로서 동양 삼국 중 유독 한국인들의 하나님 신앙이 중국인이나 일본인들의 하나님 신앙 보다는 훨씬 강하다는 사실을 밝혀 보려고 한다.

그리고 천신 하느님 신앙을 지켜온 한 국과 달리 중국과 일본은 종교적으로 민간신앙에서 천신 하나님 신앙 자체가 취약하고 정치 적으로도 천자나 천황의 통치이데올로기로 변형시켜온 근거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2. 환인(桓因)의 옛 뜻과 한국의 하느님 신앙9)

 

한국의 경우에도 청동기문화 단계의 암각화 등에 이미 천으로서 태양 숭배의 흔적이 보 인다.

삼국지(三國志) 위지동이전(東夷傳)에 천신을 제사하는 천군(天君)의 존재와 부여·고 구려·동예의 제천의례에 대한 언급이 있으며, 북부여기에는 해모수를 천제(天帝)라 하였고, ‘광개토왕릉비’에서는 그의 아들 주몽을 ‘천제지자’(天帝之子), ‘황천지자’(皇天之子)로 표기했 으며, ‘모두루묘지’에서는 ‘일월지자’(日月之者), 「북위서」에서는 ‘일자’(日子)라고 한 바 있 다. 10)

 

    9) 허호익, 단군신화와 기독교, pp. 73-80 참조할 것.

   10) 최근영, “韓國先史·古代人의 太陽崇拜 思想의 一 側面”, 千寬宇還曆紀念 韓國史學論叢(서울: 정음사, 1985), pp. 24-34

 

이런 증거로 보아 한국 고대 문화권에서는 하늘 또는 해를 숭배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를 신적 존재로 믿는 하나님 신앙이 전래되어 온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 신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전승은 삼국사기 고조선의 환인 하나님 개념이다.

 

“고기(古記)에 이르되 옛날에 환인(桓因, 帝釋을 이름)의 서자(庶子) 환웅(桓雄)이 있 어, 항상 천하에 뜻을 두고 인세(人世)를 탐하거늘,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태백(三 危太白)을 내려보매 인간(人間)을 널리 이(利)롭게 할 만 한지라 이에 천부인(天符印) 삼개(三個)를 주어, 가서(세상 사람을) 다스리게 하였다.”

 

단군신화에 대한 여러 해석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화소(話素) 중에 인물화소를 중심으로 ‘환인’, ‘환웅’, ‘웅녀’, 그리고 ‘단군’과 ‘왕검’의 옛 뜻을 밝혀내 는 것이다.

이 중에서 환인과 환웅은 하느님 신앙의 배경에서 다양하게 해석된다. 이글에서 는 환인에 대한 여러 학설을 소개한다.

 

1) 환인 하느님설

 

삼국유사의 ‘환인제석’(桓因帝釋)을 제왕운기(1287)와 응제시주(1462),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상제환인’(上帝桓因)으로 동국여지승람(1540)과 해동이적(海東異蹟)(1666) 에는 ‘천신환인’(天神桓因)으로 표기하였다.

환인은 하느님을 뜻하는 상제요 천신이라고 한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우리말을 한자로 빌려 썼다.

뜻을 빌려오는 차훈법(借訓法), 음을 빌리는 차음법(借音法), 그리고 반씩 빌려오는 반차훈(半借訓)·반차음법(半借音法)이 있었다.

규원사화(1675)를 쓴 북애자(北崖子)는 환인을 음을 빌린 ‘환’과 훈을 빌린 ‘인’의 결 합으로 보고 “환(桓)이란 광명, 곧 환하게 빛나는 것으로 그 형체를 말함이요, 인(因)은 본원 곧 근본으로 만물이 이로 말미암아 나는 것을 뜻함이라.” 11)고 풀이하였다.

‘桓’은 환 또는 한으로도 읽히기 때문에, 환인(桓因)은 ‘한+인’이며, 이는 ‘하늘+님’이라 는 우리말을 한자로 빌어 표기한 것이라는 견해는 최남선이 1918년 「계고답존」(稽告剳存)에 서 최초로 주장하였다.

이어서 1928년 「단군신전의 고의」(壇君神典의 古意)에서 환과 한이 모두 한울을 뜻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1) “신시(神市) 이전(以前)의 원거(元居)를 고전(古傳)에 환(桓)이라 서(書)하니 환(桓)은 곧 하늘의 합역(合譯)이라.… 후에 해(解)로 전(轉)하니라.” 12)

(2) “환(桓)은 하늘(天)을 한역한 것으로 대세계(大世界) 혹 우주의 뜻이다. 삼한(三韓)의 ‘한’은 맥인(貊人)이 남하(南下)하여 반도로 입(入)한 후에 칭(稱)한 것으로 환(桓)의 이 칭(異稱), 곧, 천강(天降)을 표시하는 어(語)다.” 13)

(3) “한(桓)은 필시 조선(朝鮮) 고어(古語)의 무엇에 역대(譯對)한 자(字)일 것이요, 시방 국 어(國語)에 천(天)을 ‘한울’이라고 함으로써 그 고형(古形) 혹은 변형(變形) 혹 유어(類 語)인 줄 살피기 어렵지 아니한 것이다.” 14) (4) “상계(上界)는 ‘환’ 혹은 ‘한’이라 하여 곧 천국(天國)이며 환국(桓國)이란 것은 곧 천상 (天上)의 ‘환’의 대자(對字)이니, 시방 말의 ‘한울’은 이 ‘환’의 유어(類語) 혹은 전어(傳 語)입니다.” 15)

 

  11) 북애자, 신학균 역(1973), 규원사화(서울: 명지대 출판사, 1973), p.18.

  12) 최남선, “稽告剳存”, 「靑春」 14호(1918. 6) : 육당최남선전집 2집(서울: 현암사, 1973), p. 16.

  13) Ibid., p. 19.

  14) 최남선, “壇君論”, 「동아일보」, 1926년 3월 3일-7월 25일자.: 육당최남선전집 2(서울: 현암사, 1973), p. 97.

  15) 최남선, “壇君神典의 古意”, 「동아일보」, 1928년1월 12일자. : 육당최남선전집 2(서울: 현암사, 1973), p. 191.

 

최남선의 뒤를 이어 이병도, 이기백, 천관우도 환인은 오늘날 우리가 흔히 쓰는 ‘하느님’ 과 같은 단어라는 데에 입장을 같이한다.

(1) “환웅(桓雄)의 부(父)라 하는 天帝(천제) 桓因(환인)의 명자(名字)는 불전(佛典)에서 차 래(借來)한 제석신명(帝釋神名)이나, 이는 후대(後代) 불교도(佛敎徒)의 윤색한 바일 것 이므로, 환인의 원명(原名)은 ‘하느님’ 혹은 ‘수릿님’(高等神)이었을 것이다.” 16)

(2) “환인(桓因)이라는 한문 용어는 불교의 동방수호신(東方守護神)으로 되어 있어나, 이것 은 오늘날 흔히 쓰이는 ‘하느님’과 같은 단어일 것으로 생각된다.” 17)

(3) “환인은 원주(原註)에 제석(帝釋)이라 하였다. 범어의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詫羅), 그 한역(漢譯)이 제석천(帝釋天)이라고 하는 것이나 본래는 ‘하느님’이나 ‘환’과 같은 말 의한자 표기이었으리라고 하며, 환인은 흔히 태양신(太陽神)이라고 풀이되고 있다.” 18)

이종익은 ‘환’과 ‘한’은 둘 다 ‘환하다’의 뜻이라고 한다. “‘환’은 카한(加汗)과 함께 ‘한’의 전음(轉音)으로서 ‘환하다’와 같은 ‘밝음’을 나타내며, 인(因)은 ‘임’(님)으로서 구원의 존재, 지고의 존재, 숭배의 대상을 나타낸다.” 19)

박시인은 환인을 ‘하늘나라 임금’ 또는 ‘햇님’ 등으 로 해석하였다. 20)

안재홍은 한은 성대(盛大), 홍대(洪大) 또는 광대(廣大)의 뜻이 있다고 하였으며, 21) 이병 도도 한은 대(大)의 뜻으로, 만주어 몽고어에서는 군장(君長), 대인(大人), 또는 대군(大君)을 ‘한’(汗, han) 또한 ‘가한’(可汗, khahan)이라고 한 것과 상응한다고 하였다. 22)

우리말에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이 우랄 알타이 언어에서는 ‘큰 하늘, 전체, 넓 은’을 뜻하는 ‘간, 칸, 찬’(Gan, Kan, Chan)으로 표현되었으며, 수메르어로는 ‘높음, 하늘, 꼭 대기’ 등을 뜻하는 ‘간, 안, 안나, 아나’(Gan, An, Anna, Ana) 등으로 표현되었다는 것이 김 상일의 견해이다.

이 단어들은 몽고의 통치자 ‘징기스칸’이나 수메르의 최고신 ‘안’(An)처럼 최고 통치자나 나라 또는 신의 이름 등에 붙여 사용되었다고 한다. 23)

그리고 ‘인’(因)에 관해서는 수메르 문법에 의하면 ‘인’(En) 역시 ‘높다, 하늘’의 뜻이며, 바빌론에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붙여졌다. “특히 제사장에게 붙이는 호칭인데 나중에 왕 혹은 성전의 최고 책임자에게 붙여졌다.

뒤에 ‘인’은 통속화되어 존경을 표시하는 모든 대상에게 붙여져 ‘임, 님’으로 변음되기도 하였다.”는 주장이다. 24)

 

16) 이병도, “단군신화의 해석”, 조선사대관(서울: 동지사, 1948): 이기벽 편, 檀君神話論集(서울: 새문사, 1988), p. 58.

17) 이기백 편, “檀君神話의 問題點”, 檀君神話論集(서울: 새문사, 1988), p. 67.

18) 천관우, “檀君”, 人物로 본 韓國古代史 (서울: 정음문화사, 1982): 이기백 편, 檀君神話論集(서울: 새문사, 1988), pp. 159.

19) 이종익, “한밝사상고”, 東方思想論叢(서울: 건국대학교 출판부, 1975), pp. 424-425.

20) 박시인, 알타이신화(서울: 삼중당, 1980), p. 102.

21) 안재홍, “箕子朝鮮考”, 朝鮮上古史鑑(서울: 민우사, 1947), p. 7-59.

22) 이병도, “三韓問題의 新考察”, 「震壇學報」 제3권(1935), pp. 98-99.

23) 김상일, 한밝문명론(서울: 지식산업사, 1988), pp. 313-314.

24) Ibid., p. 314.

 

안호상은 한은 15가지의 뜻이 있으며 천(天)을 지칭하는 한은 네 가지 개념이 있다고 하 였다. 25)

하날 : 해(日) / 하늘 : 허공(虛空) 한울 : 한 누리(大世界) / 한얼 : 하나의 얼(神) 따라서 이들은 모두 환인이 하나님 또는 하느님이라고 주장한다.

 

2) 환인 천부설(天父說)

 

이은봉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환인(桓因)의 신적 성격을 분석하였다.

환인은 성격상 천부신(天父神)이며 동시에 격절신(隔絶神, deus otiosus)이라고 한다.

단군기 본문의 “아버 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父知子意)라는 데서 살펴볼 수 있듯이 환인이 분명히 자신을 아버지 임을 밝히고, 아들(桓雄)에게 독자적인 자유를 주어 인간의 360사를 주재할 정도로 최고의 권위를 지닌 지상신(至上神)이 되게 하였다.

따라서 “환인은 창조자이고 아버지이고 수장(首長)이며, 이러한 성격을 가진 신이 바로 천부신(天父神)이다.” 26) 천부인 환인은 천자인 환웅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배후에 숨어버린다.

이와 같이 배후에 후퇴하여 있는 신을 격절신(隔絶神, deus otiosus)이라 하는데 환인이 그 러하다고 하였다. 27)

따라서 천부인 환인은 ‘하느님 아버지’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천부신 하느님의 성격을 사랑과 정의로 설명하였다.

 

“따라서 한국인들은 이 하느님을 표상하기 위하여 결코 우상(偶像)을 만들지 않았다. 우 리의 하느님은 부성애(父性愛)와 갈은 사랑을 통하여 인간을 감싸주었으며 착하고 악한 사람 을 정의(正義)에 의해 다스린다는 관념을 가졌다.” 28)

 

25) 안호상, 환웅, 단군, 화랑(서울: 사림원, 1985), pp. 210-217 ; 최재충, 천부경-민족의 뿌리(서울: 한민 족, 1985), p. 109. 최재충은 한은 하늘에서 유래한 말이지만 우리말의 하늘은 세 가지 하늘의 뜻을 함축한다 고 하였다. 한늘(Sky): 늘 있는 빈 하늘(시간적 하늘의 영원성) 한울(Space): 넓이를 가진 공간(공간적 하늘의 무한성) 한얼(Heaven) : 하늘나라, 천국(형이상의 불가시적 세계)

26) 이은봉, “檀君神話를 通해 본 天神의 構造”, 단군신화연구(서울: 온누리, 1985), pp. 174.

27) Ibid., pp. 171.

28) 이은봉, 한국고대종교사상(서울: 집문당, 1984), pp. 253-267.

 

한인 하나님은 자신이 직접 지상신으로서 이 땅에 내려오지 않았다.

단지 그의 아들 환 웅이 이 땅에 내려와 신시를 세우고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은 것이다.

따라서 이 삼자는 천부, 천왕, 천군의 위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는 주장이다.

 

3) 환인 제석 천신설(帝釋 天神說)

 

일연의 삼국유사의 원주(原註)에서는 환인을 제석(帝釋)이라 하였는데 제석은 법화경에 나오는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詫羅)를 지칭하며 이에 해당하는 산스크리트어가 ‘사크라 데바남 인드라’(Sakra Devanam Indra)라고 한다. 29)

이를 풀이하면 제환(Devanam)은 하늘을 뜻하고, 인드라(Indra)는 신을 지칭하므로 그 뜻은 ‘석가가 천신’이라는 의미가 된다 고 하였다. 안계현은 라마교에서도 인드라의 아들인 쿤 보램(Khun Borem)이 세상에 내려왔다는 기 록이 있는데 이는 환인과 환웅의 관계와 같다고 하였다. 30)

이기영은 환인, 환웅, 환검의 ‘인 (因)·웅(雄)·검(儉)’을 일연이 불교 경전 기신론(起信論)에 나오는 ‘체(體)·상(相)·용(用)’에 일 치시켰으리라고 추측하였다. 31)

남한 학자들은 대부분 환인을 하느님의 한역(漢譯)이라고 설명하는 데에 반해, 북한학자 들은 원주 풀이를 통해 ‘제환’은 하늘이라는 뜻이며, ‘인다라’는 임금이라는 뜻이므로 제석이 라 풀이한 “환인은 하늘의 주제신인 ‘하느님’에 대한 불교식 이름”이라고 한다. 32)

반면에 환 인이 아니라 환웅이 ‘하누임’의 음사(音寫)이고 그 의역은 천왕으로서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주장한다. 33) 그러므로 환인 또는 한인(桓因)은 현대어 ‘하느님’에 해당하는 고어(古語)를 한자로 빌어 표기한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특별한 이견이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34)

문제는 이 하느님 이 한 분이 아니라, 여러 명이라는 기록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원동중(元董中)이 편찬한 삼성기 하편(三聖記 下篇)에는 하느님이라 할 수 있는 한인이 여러 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하느님이 통치한 한국(桓國)은 일곱 분의 한인이 3301년 동안 천해(天海)와 천산(天山)을 중 심으로 하는 남북 5만 리, 동서 2만 리의 땅을 12연방으로 나누어 다스렸다 한다. 35)

 

29) 최남선, “壇君論”, p. 97.

30) 안계현, 한국불교사(서울: 동화출판사, 1982), p. 55.

31) 이기영, 한국철학의 전통적 기조와 한국사상의 역사성과 방향(서울: 정신문화연구원, 1980), p. 70.

32) 조선인민출판사, 조선전사 2(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79), p. 21.

33) 김정숙, “북한에서의 단군연구”, 윤이흠 외, 단군-그 이해와 자료(서울: 서울대학교출판사, 1997), p. 255. 34) 桓因은 환인 또는 한인으로도 불리운다.

35) 임승국 역주, 한단고기(서울: 정신세계사, 1987), pp. 26-27. 제1세 한인 안파견, 제2세 한인 혁서, 제3세 한인 고시리, 제4세 한인 주우양, 제5세 한인 석제임, 제6세 한인 구을리, 제7세 한인 지위리.

 

이는 기독교의 유일신관과는 비교가 되는 점이라 할 수 있다.

 

 

4) 환인 여신설

 

일찍이 최남선은 특이하게도 한국인의 신관념은 사상에서 비롯한 태양신이라 못 박고 따라서 태양신은 여신이라고 밝혀 놓았다. 36)

 

36) 윤성범, “한국의 신관념 생성”, 「기독교사상」 1969년 6월호, p. 107에서 재인용.

 

김정학은 단군을 서자(庶子)로 표현한 것에 착 안하여 환인을 모계시대를 반영하는 여신이라고 주장하였다.

적서(嫡庶)의 차등은 조선시대 이후의 사상이고 그 이전 고대인에 있어서 서계(庶系)에 관한 천시(賤視)의 관념은 없었으며, 따라서 고대의 모계적 계승을 후대 부계 사회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서자(庶子)로 간과한 것이라고 한다. 고려시대에 있어서 서자는 어머니의 신분에 소속되고 어머니의 성을 따른 까 닭이다.

 

“서자제도는 고대의 모계적 계승과 같은 것이다. 이것을 미루어보면 천제인 환인은 여 신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세계의 신화에 있어서 천신 또는 태양신은 여신과 동궤(同軌)이 다.” 37)

 

그리고 일본의 천조대신도 여신이라고 하였다. 38)

따라서 환인은 여신으로서 천제-태양 신이며, 그의 아들이 신웅이고, 손(孫)이 인신으로 세상을 다스렸다는 천손사상이며 삼신사상 이라고 하였다.

환인 여신설에 대해 김택규는 환인의 남녀성은 확실치 않다는 주장을 편다. 39)

그러나 윤 성범은 여신설을 강력하게 반대한다.

최남선이 「불함문화론」에서 사상과 몽고어 ‘tengri’ (푸른 하늘)의 관련성을 강조했는 데, ‘텡그리’가 여신인지를 논증하지 않은 채 하느님이 태 양신이므로 여신이라는 주장을 한 것으로 지적한다.

그리고 한국문화는 북방계와 남방계를 나누는데 북방계는 유목부계사회이고 남방계는 농경모계사회이다.

단군신화는 계보상 북방수렵부계 사회에 속하는 것이므로 하느님을 여신으로 볼 수 없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김태곤이 조사한 한국의 무신(巫神) 273종 중에 “30종만이 여신이요 나머지는 거의 다 남신”이라는 점도 반론으로 제시한다. 40)

황패강 역시 반대입장이다.

여대(麗代)의 서자가 성과 신분상 모계를 따랐다고 하지만, 본문에서의 서자(庶子)는 반역아적 성질을 표현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래서 “환인을 여신 시하는 것도 본문 중 뚜렷이 부지자의(父知子意)라고 해서 부성을 나타내고 있는 이상 받아 들이기 어려운 이론이다.” 41)고 하였다.

 

37) 김정학, “단군신화와 토오테미즘”, 「역사학보」 7집(1954), pp. 286-287.

38) 김정학, “우리의 조상 단군은 신화적 인물이 아니다”, 「월간조선」 1981년 1월호, p 80.

39) 김택규, “단골조직의 소원적(遡源적) 고찰”, 「어문학」 5집(1959), p 79.

40) 윤성범, op.cit., 110.

41) 황패강, “단군신화의 한 연구”, 「백산학보」 3집(1967). 115쪽의 주 11 참조.

 

5) 환인 신 천신설(天神說)

 

특이하게도 김경탁은 환인을 족의 천신으로서 부신(父神)을 지칭한다고 하였다.

환인 은 구석기시대의 신이요, 환웅은 신석기시대의 신이요, 단군은 청동기시대의 신이며, 각각 굴살이(穴居), 들살이(平原), 벌살이(平野)를 하던 시대의 족, 족, 족의 신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 , 은 동체이명이요 삼위일체로서 하느님을 지칭하는 천신으로서 아버지 신, 아들신, 손자신이라고 하였다. 42)

 

42) 김경탁, “하느님 관념발달사”, 한국문화사대계 6(서울: 고려대민족문화연구소, 1970), p. 119.

 

환인 환웅 단군 신 신 신 굴살이 들살이 벌살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족 족 족 父神 子神 孫神 더 나아가서 제주도 삼성혈의 부(夫)씨의 조상신 신, 양(梁)씨의 조상신 신, 고(高)씨 조상신 신이라고도 하였다. 43)

이러한 견해는 자의적이고 일방적이고 예외적인 주장으로서 취급되어야 할 것이다.

김경탁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웅녀를 신으로 보아 지신 (地神) 곡신(穀神) 모신(母神) 이라고 주장한다. 44)

환웅은 천신이요 부신(父神)인 환인의 아들 로서 천신(天神) 또는 자신(子神)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천신인 환인을 지신인 신으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리고 , , 을 부자손 삼위일체로 보는 것은 안호상의 경우 처럼 가부장적 유교적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

 

6) 환인 천손족(天孫族)설

 

신용하는 초기 고대국가로서의 고조선은 기원전 30-24세기경에

(1) 한(桓, 韓) 부족(태 양 숭배 부족)

(2) 맥(貊) 부족(곰 토템 부족)

(3) 예(滅)부족(범 토템 부족)의 ‘3 부족의 결 합’에 의해 한반도에서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건국되었다고 하였다. 45)

고조선은 매우 일찍 국가를 세운 당시 선진한 정치체제였기 때문에 발전 과정에서 한반 도뿐만 아니라 북방과 서방으로는 요하(滾河), 대능하(大凌河), 난하(灤河) 지역의 옛 부족과 원민족에게 거대한 정치적 문명적 영향을 끼쳐 그들로 하여금 ‘고조선문명권’을 형성하게 하 였다.

신용하는 고조선족과 고조선문명권에 포함된 부족 및 원민족(原民族)들은 ‘태양 숭배’, ‘하느님 숭배’, ‘천제(天帝) 숭배’ 사상을 가지고 있었음이 여러 유적들에서 증명된다고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태양신의 자손’, ‘하느님의 자손’, ‘천손(天孫)’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었으며, ‘태양’ ‘하늘’ ‘하느님’과 자기들을 연결시켜 주는 동물 매체를 ‘새’(烏)라고 생각하여 ‘솟대문 화’ ‘소도문화’를 공통으로 형성하여 갖고 있다고 하였다. 46)

그래서 ‘태양(太陽)’과 ‘새’를 결 합하여 태양신을 상징적으로 형상화할 때는 ‘삼족오(三足烏)’, ‘세발 까마귀’로 상징화하여 그 리고 표현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군신화에서는 ‘한인, 한웅, 단군’이 천신의 직계로 인지 되어 왔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단군신화의 환인에 관해서 하느님설, 천부설, 천신설, 여신설,  신설 그리고 천손족설이 주장되었지만, 그 기본 내용은 동일하다.

환인은 하느님으로서 천부 요 천신이라는 것이다.

이형래는 한국인의 하나님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하느님이나 하나님이나 한얼님이나 하늘님이나 다 같은 뜻이다. 하늘님은 ‘하는님’이 다. 역사(役事)하는 하늘의 님이라는 의미다. 역사의 밖에서 방관하는 절대자가 아니다. 천 지인의 어우러짐 속에 만들고 일하는 분이 하느님이다. 이것이 우리의 옛 조상의 하늘생각 이다.” 47)

 

43) Ibid., p. 120.

44) 허호익, 단군신화와 기독교, pp. 89-98. “웅녀의 옛 뜻: 지모신, 신”에 관한 제학설 참고.

45) 신용하, “한國民族의 起原과 形成”, 「한국학보」 제10집(2001), ; 한국민족의 형성과 민족사회학( 서울: 지 식산업사, 2001)

46) Ibid., p. 5.

47) 이형래, “한 민족 사유의 틀 ‘한’”, 「뉴스메이크」 2004년 10월 29일자.

 

이러한 하나님 신관과 천신 사상은 북방유목민문화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공시적으로는 한국문화의 시원적인 원리인 동시에, 통시적으로는 시대마다 다양하게 전승되어 온 내재적 구성원리이며, 표층문화와 기층문화에 동시적으로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통전적인 원리이 다. 48)

문헌학적인 증거로는 한글 창제후에 기록된 최초의 한글문서 중에 하나인 용비어처천 가의 천복(天福)과 천명(天命)을 내리며 천택(天擇)과 천기(天棄)를 하시며, 천심(天心)과 천 의(天意)를 나타내시는 하느님 신관에도 잘 드러나 있다.

훈민정음 이후에 사용된 순수한 우 리말 ‘하나님’은 조선의 선조때 시인 박인로(1561-1642년)의 시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때때로 머리를 들어 북쪽 임금이 계신 곳을 바라보고 남모르는 눈물을 하늘 한쪽에 떨어 뜨리는 도다. 일생에 품은 뜻을 비옵니다 하나님이시어 !

 

그리고 구한말의 애국가에도 ‘하나님’이라는 용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49)

한국인의 종 교심성의 기층을 이루는 샤마니즘은 범신론적 특징을 지니지만, ‘전체의 영계를 지배하는 최 고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며 ‘하느님’이 바로 최고신이라는 것이 장병일의 주장이다.

 

“이 하느님은 하늘의 靈으로서 天主를 의미한다고 보기도 하며, 하나의 님 곧 唯一至大 神을 뜻한다고 보기도 한다.” 50)

 

이 천지신명 하느님 신앙이 신화적 형태로 표현된 것이 단군신화의 환인 하나님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에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이 천지신명 하느님을 여호와 하나님으로 수용한 것이다. 중

국과 일본과 달리 왜 한국에서는 왕을 천자나 천황으로 부르지 않았는가하는 질문이 제기된다. 51)

상고사를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도 임금들의 칭호가 황제였으며 심지어 고구려나 부여에서는 천제(天帝)라는 칭호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북부여기」 에는 ‘졸본성에는 자칭 천제의 아들이라는 해모수가 나라를 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북부여 는 고조선의 뒤를 잇는 여러 열강 중에서 북방을 장악한 나라다.

해모수의 혈통은 천제를 배 출한 여러 귀족혈통 중의 하나였고 따라서 고조선의 임금들은 천제로 불리웠음을 알 수 있다 는 주장이다.

그러나 단군신화를 통해 전승된 것은 환인은 하나님으로 천신이고, 환웅은 하나님의 아 들로서 천자(天子)이고, 웅녀는 신으로서 지모신이라는 사실이다.

환웅과 웅녀 사이에 태어 난 단군은 왕 또는 임금으로서 주제지장(主祭之長)을 겸한 무군(巫君)을 의미하였다.

단군을 신인(神人)으로서 대종(大倧), 신으로서 천군(天君), 한배검으로서 대조상신으로 여겨왔을 뿐이다. 52)

 

48) 허호익, 단군신화와 기독교, pp. 29-31. 한국 문화고유성 모색을 위한 세 가지 방법론을 참고 할 것.

49) 이에 관한 구체적인 연구는 다음 과제로 남긴다.

50) 장병일, “‘하늘’님 考”, 「기독교사상」 1972년 2월호, p. 123.

51) dws009, “천자와 황제의 칭호”, http://kin.naver.com/open100/entry.php?docid=107626(2005.6.20) 52) 허호익, 단군신화와 기독교, pp. 98-109.

 

따라서 단군신화의 신격(神格)의 계보상으로 보아 단군은 결코 천자로서 천황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천손(天孫)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환인 하나님과 환웅 하나님의 아들 의 신관이 명확하기 때문에 고구려나 부여의 천제(天帝)니 천제의 아들이라는 표현도 예외적 인 것으로서 하늘이 내린 임금(天君)의 다른 표현이라고 여겨진다.

하늘이 내린 임금(天君)과 하늘의 아들로서 임금(천자 또는 천황)은 그 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점이 중국과 일본의 천자 및 천황사상과 한국의 천군(天君)사상의 차이라고 여겨진다.

 

3. 중국의 천 사상과 천자53)

 

1) 주재적 종교적 천관

 

중국 역사 4천년 동안에 다양하고 복잡한 천(天) 사상이 전개되어 왔다. 역사 초기에는 자연현상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는 원시자연종교적인 다신론적 신관의 경향이 있었으나, 그 많은 신 가운데 가장 으뜸 되는 신을 천(天) 또는 황천상제(皇天上帝) 등 여러 명칭으로 사용 하였다고 한다. 54)

중국 고대의 천관에 대해 김능근(金能根)은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한다. 55)

(1) 주재적 종교심리적 천사상(主宰的 宗敎心理的 天 思想):

당우(唐虞)시대의 성군(聖君)이 나 현상(賢相), 하은(夏殷)과 은주(殷周)시대의 왕들, 공자나 맹자, 묵자 등의 경천사상 (敬天思想)에서 보이는 천(天)이며, 천(天)을 절대적 권위의 존재로서, 경앙(敬仰)과 숭 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56)

(2) 자연적 기계론적 천 사상(自然的 機械論的 天 思想):

노자(老子), 장자(莊子), 순자(荀子) 에 이어지는 사상에서 보이는 천(天)이며, 천(天)을 순수하게 자연 아니면 기계적인 것 으로 생각하는 시각이다. 후세에 주재적(主宰的) 천(天) 관념을 반박하여 유물론적인 방 향으로 갔다. 57) (3) 이법적 철학적 천 사상(理法的 哲學的 天 思想):

유가의 형이상학적인 천리를 말한 역 (易)이나 공자, 맹자, 송(宋)대의 도학자, 주자로 이어지는 흐름에서 보이는 천(天)이며, 천(天)을 형이상학적인 이법(理法)으로 생각하는 사상이다. 58)

 

53) 김능근, 儒敎의 天思想(서울: 숭실대학교출판부, 1988); 김득만, “天觀念의 來源과 그 展開”, 철학연구 제 19집(1978); 김충렬, “論‘天’”, 인문논집(고려대) 제19집(1974); 배옥영, 주대의 상제의식과 유학사상(서울: 다른생각, 2003); 송인창, “先奏需學에 있어서의 天命思想에 관한 연구”, 충남대 박사학위 논문(1987); 유명종, “古代中國의 上帝와 天”, 「철학연구」 제25집(1978); 유승준, “중국고대의 천관 연구”, 「공자학」 3집(1998); 이 문주, “中國 古代의 天觀에 대한 연구”, 「東洋哲學硏究」 10집(1989).

54) 김능근, ibid., p. 3.

55) 세키네 히데유키, “日本 民間信仰에서 본 天槪念關根英行”, p. 5. 재인용.

56) Op.cit., pp. 113-114.

57) Ibid., pp. 114-115.

58) Ibid., pp. 115-116.

 

그러나 김능권의 분류에는 진시황의 등장으로 제기된 정치적 절대 군주로서 인황이 천신 이나 인신 보다 존귀하다는 천자로서의 ‘정치 이데올로기적 천 사상’에 빠져 있다.

요순시대 에는 주재적 종교적 천 개념으로서 천신(天神)사상이 강하였으나, 절대군주제의 등장으로 천 자(天子)로서의 천 개념이 등장하여 황제가 천신이나 인신보다 존귀하다는 인황최귀(人皇最 貴) 사상인 정치 이데올로기로 발전하게 된다.

그리고 후대의 성리학에서는 ‘정치 이데올로기 적 천 사상’의 새로운 대안으로 ‘이법적 천 개념인 천리(天理)’의 논쟁이 전개된 것이라고 보 아야 할 것이다.

중국사상에서 상제에 대한 존재는 요·순 시대에서부터 발견된다. 공자는 “오직 요(堯)만 이 하늘을 본받았다" 59)고 하였는데 여기에서 요는 천도(天道)를 실현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의 명에 의하여 제위에 오른 순(舜)은 ‘상제에게 유제를 지냈다(類于上帝)’ 60)고 한다. 서경의 이 기록은 유학시상에서 처음으로 ‘상제’의 존재를 문자로 기록한 근거가 된다.

순 은 요가 물려준 일월성신의 역상(曆象)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고 한다. 순은 상제의 명을 받 아서 인간의 질서를 세우고자하여 상제를 받들고 제사를 지낸 것이다. 61)

하(夏: B.C. 2070-B.C. 1600)의 조상인 우(禹)의 시대에도 홍수로 물이 넘쳐 제사를 폐 한 적이 있다는 기록으로 보아 상제에 대한 제사가 계승된 것으로 보인다. 62)

이어 등장한 은 의 건국은 서경에 의하면 ‘하(夏)가 죄가 많아 하늘이 명하여 정벌(征罰)하게 한 것’ 63)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같이 천(天)은 인간의 모든 행위를 감시하고 또한 벌을 줄 수 있는 절대 적인 존재였다. 은대에도 상제의 권위는 매우 큰 힘을 가진 존재로서, 상제는 마음대로 풍(風),우(雨),뢰 (雷) 등의 자연신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인간의 길흉화복을 주재하는 것으로 여겼 다. 64)

주(周: B.C. 1046-B.C. 771)에 와서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주의 시조 후직(后稷)은 시 경에 의하면 그의 모친 강원(姜嫄)이 하늘에 빌어 얻은 자식이라고 한다. 65)

후에 후직은 사 당을 세우고 제주가 되어 상제에게 제사를 지내어 상제의 신임을 얻게 되었고, 상제인 하늘 을 계승하여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설명되었다. 또한 후직은 강원에게도 제사를 드린 것 으로 기록되어 있어, 상제와 조선(祖先)에 대한 제례가 정착되고 이를 통해 신인일체 사상과 조선숭배 사상이 확고하여졌다고 볼 수 있다. 66)

그래서 시경에는 하늘이 백성을 낳았고(天 生烝民), 하늘이 주나라를 굽어보신다(天監有周)고 하였다. 후직의 13대손인 고공단보(古公亶父)는 기산으로 국읍(國邑)을 옮겨 온 후 거북이 등을 지져 점을 치고, 하늘의 뜻을 물어 터를 잡고 “궁실을 경영할 때 종묘를 우선하고 마굿간, 창고, 거실은 나중에 이루었다”고 한다. 이 때 종묘에는 총토(冢土)도 세웠는데 사직(社稷)의 시원이다. 사(社)는 하늘의 뜻을 묻고 이를 집행하는 곳이었다. 67)

이를 태사(太社)라 불렀다.

이로서 상제와 조상에게 제사지내는 공식적인 장소가 처음으로 마련된 것으로 1976년 이 유 적지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68)

 

59) 論語, 「泰伯」, “惟天爲大惟堯則之”.

60) 배옥영, 주대의 상제의식과 유학사상, p. 28.

61) 순은 요가 물려준 일월성신의 역상(曆象)의 질서를 바로 잡았다고 한다.

62) 배옥영, 주대의 상제의식과 유학사상, p. 31,

63) 書經, 「商書」, “有夏多罪 天命極之.”

64) 배옥영, 주대의 상제의식과 유학사상, p. 33. 은대의 갑골문자들의 내용이 이를 드러내 보여 준다.

65) Ibid., p. 40. 사기, 좌전, 국어에도 이 사실이 인용되어 있다고 한다.

66) Ibid., pp. 45-46.

67) Ibid., pp. 78-79.

68) Ibid., p. 106. 사진 참조.

 

종묘와 사직을 세우기 위한 관리를 임명하였는 데 사공(使工)과 사도(使徒)이었다. 주례에는 “하늘은 만물을 통어(通御)하나, 천자는 총재(摠裁)를 세워 나라를 다스리도 록 하였다”고 한다. 69)

총재는 하늘을 대신하여 모든 직무를 관리하였던 벼슬아치로서 상제 (上帝)의 명을 봉행하는 자라고 하였다.

중묘와 사직이 건립되었다는 것은 천신(天神)·지기(地 祇)·인귀(人鬼)에 대한 삼례(三禮)가 인간의 보편적인 예로 수용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70)

그리고 서주의 주공(周公)이 편집한 주례 「태종백」(太宗伯)에는 “天神 地祗 人鬼之 禮” 71)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주재자로서의 천신에 대한 종교적 신앙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 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 나라의 제례 대상을 두 가지로 나누는 이원화 정책을 펼쳤다.

즉 왕 실 내부적으로는 주나라의 왕통 족보를 다시 다듬었고, 외부적으로는 타부족과 공통으로 숭 배할 수 있는 존재인 하늘 즉 天(천)’을 절대신(High God)으로 제시했다.

그 고고학적 증거 로 주나라 때의 청동기인 ‘대우정(大盂鼎)’에 주나라의 첫 번째 왕인 “문왕이 하늘의 커다란 천명을 받았다.” 72)고 기록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시경 「대아」(大雅)에는 “문왕이 오르내리 며, 제(帝)의 좌우에 있다”는 말이 있다.

문왕(文王)은 이상 국가를 건설하여 살아서는 백성 을 위하고 죽어서는 신이 되었다는 것이다.

사후(死後)에는 인간 세계로부터 초월하여 우주 의 숭고한 경지에 올라가 상제(上帝)의 좌우에 있다는 것이다. 73)

 

2) 통치자로서의 천자의 등장

 

천자의 첫 등장은 주나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주나라를 포함한 당시의 200여 부족을 포함한 모든 종족들의 토템이나 조상신을 초월하는 존재자가 ‘하늘’ 인데, 유일하게 주나라의 왕만이 ‘하늘’의 아들인 천자(天子)라 하였다.

천자는 많은 신들 가운데 최고의 신인 하늘의 아들이라는 자격으로 천하를 지배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인이 생각하는 하늘[天]은 원래 푸른 하늘을 말하는데 형체는 없으나 만물의 창조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아들 인 천자는 천하만민의 통치자여야 했다.

그 때문에 천자는 세계에 오직 한 사람뿐이며 천으 로부터 위탁받은 숭고한 임무인 천명(天命)을 수행하기 위하여 현인(賢人)의 도움을 빌려 민 중에게 질서와 평화를 누리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춘추(春秋) 이전의 시대에서부터 天은 도덕의 근원이고, 74) 권력의 원천이었다.

천자는 성 상(聖上), 성주(聖主), 성제(聖帝)로서 天의 대리자이고 백성을 도덕으로 통치, 교화할 책임을 가지고 있었다.

천명(天命), 천의(天意)는 민심의 향배로써 알 수 있었다. 75)

 

69) 周禮正義』권1(臺北: 中華書局, 1968), p. 1, “天官冢宰 象天所立之官 家大也 天子統理萬物 天子立冢宰 使掌 邦治"

70) 김경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서울: 바다, 1999), p. 78-79.

71) 조자용, 삼신민고(서울: 가나아트, 1995), p. 192-193.

72) 方東美, 남상호 역, 원시 유가 도가 철학(서울: 서광사, 1999), p. 111. “不顯 文王受天有大命” 73) Ibid., p. 125.

74) 詩經, 「大雅」, “天生烝民 有物有則 民之秉彛 好是懿德”,

75) 書經, 「虞書 皐陶謨」, “天聰明自我民聰明 天明畏自我民明威”; 「周書 秦誓」,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 周書 秦誓」, “惟天惠民 惟璧奉天”.

 

만일 이 같은 의무수행이 벽에 부닥친다면 천은 다른 사람을 선택하고 그에게 천명을 부 여하여 천자로 삼는다.

이와 같은 혁명사상은 전국시대(戰國時代: BC 5∼BC 3세기)의 맹자 (孟子)가 확립하였다.

초월자의 아들인 천자는 자신들의 아들을 각 지역의 정치 책임자로 보냈는데, 이것이 바 로 지역의 제후들이다.

즉 천자와 제후의 통치 체제는 근본적으로 혈친 관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주나라 때의 종법(宗法) 정치로 후일 동양사회의 뿌리 깊은 혈연주의의 시발이 된다.

 

3) 태황최귀사상과 통치 이념으로서 황제

 

진(秦)나라 통일(BC 221) 이후 천자라는 칭호 대신 황제(皇帝)를 정식 칭호로 삼았으니 시황제(始皇帝)이다.

진시황이 천하통일을 완수한 후(BC. 221), 승상(丞相)인 왕관 등에게 명 하여 새 제국 통치에 어울리는 자신의 존호를 짓도록 하였다.

신하들이 진왕에게 다음과 같 이 말하였다고 한다.

 

“옛날에 천황이 있었고, 지황이 있었고, 태황이 있었는데, 태황을 가장 고귀하게 여겼습 니다.” 76)

 

그는 고대에 천황(天皇)·지황(地皇)·태황(泰皇)의 3황(皇)이 있어 그 중에서 태황이 가장 귀하므로 그것을 존호로 해야 한다는 왕관의 주청을 물리치고 황제를 존호로 쓰기로 하였다.

이 존호에는 그 공(功)과 덕(德)이 고대의 3황 5제(三皇五帝)보다도 더 크다는 의미가 포함되 었다고 한다.

어쨌든 삼황 중에 태황이 가장 고귀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삼황의 위계질서가 인황 즉 태황 중심으로 재편되어 천황과 지황은 인황에 부속되는 존재로 이해되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77)

태황최귀사상은 태일만물근원사상으로 발전한다.

진의 장양왕 원년에 여불위가 쓴 여씨 춘추 중하기(仲夏記)에도

“태일에서 양의가 나오고 양의에서 음양이 나왔다.”(太一出兩儀 兩 儀出陰陽)고 하였다.

그리고 같은 의미에서

“만물이 나온 연유는 태일에서 만들어졌기 때문 이며 이로써 음양이 생겼다.”(萬物所出 造於太一, 化於陰陽)고 하였다. 78)

이러한 태일 최귀 (最貴)사상은 스스로 황제라 지칭한 진시황제의 권위를 격상시키기 위한 정치적 이데올로기 라고 할 수 있다.

태일최귀사상에 근거하여 기원전 124년 한무제 때에 요기(謬忌)라는 자가 “천신 중 태 일이 존귀한 자”(天神貴子太一)라고 하여 태일사(太一祀)를 세우고 태일신에게 제사 드리도록 상소하였고, 이를 받아들여 태일전(太一殿)이 세워졌다. 79)

진시황 때의 삼황 즉 천황·지황·인 황이 한무제 때에는 천일·지일·태일로 추상화된 것이다. 80)

그래서 양관은 “한무제 때에는 태 일이 동방을 지배했다.”고 설명한 것이다. 81)

 

76) “古有天皇 有地皇 有泰皇 泰皇最賣.”

77) 장자 천하편에 “상무상유(常無常有)의 이치를 건립하고, 태일(太一)을 중심으로 삼았다.”는 표현이 나온다. 설문(說文)에는 大와 太는 사람을 형상한 상인형(象人形)이라 하여 두 팔을 펴고 두 다리를 펼치면 ‘大’가 되 고, 사람의 생식기까지 표시하면 ‘太’가 되는 것이다.

78) 조자용, 삼신민고, p. 203

79) Ibid., p. 208.

80) Ibid., p. 209-211.

81) Ibid., p. 219. “漢武帝時之泰一亦從東方”

 

태일 최귀로 천신(천황)과 지신(지황)의 지위가 격하되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한나라의 무제는 진시왕의 중앙집권적 천자사상을 더욱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기원전 134년 쯤 중앙집권의 강화와 사상논쟁의 금지를 위한 ‘大一統’ 전략을 수립한다. 동중서가 중심이 된 이 대일통의 주안점은 황제의 정치적 권한 강화와 중앙집권 강화를 목적으로 나름 의 종교사상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 논리는 사실 간략했다.

 

“천자는 하늘로부터 명을 받았다. 때문에 제후는 천자로부터 명을 받아야 한다. 또 신하 는 통치자로부터 명을 받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들은 아버지로부터 명을 받아야 하고, 아 내는 남편으로부터 명을 받아야 한다. 따라서 명을 받고 위를 섬기는 자들이 실제적으로 섬 기는 것은 하늘이다.” 82)

 

이와 같이 형성된 고대 제왕의 제도는 본래 신권정치(Theocracy)이었다.

소위 천자(天 子)가 상제(上帝)의 뜻을 대표하고 상제를 대신하여 백성을 보살피는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이런 신권 정치가 아무런 제한이나 지침이 없다면 폭력 통치로 변하여 백성을 억압하게 되는 것이다.

신권 시대의 통치자는 신권을 가지고 백성을 속이며 여러 가지 죄악을 저지르게 되 는 것이다.

천자는 신권을 가지고 백성들을 속이고 모욕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신권의 근본 인 천(天. Image of God)의 뜻을 거역하기도 하였다.

이 때문에 신권정치의 붕괴가 뒤따랐 다.

신권정치에 대한 백성의 원성이 높아진 것이다. 83)

그래서 시경의 내용 중 대부분이 경 천(敬天)의 정서보다 원천(怨天)이나 한천(恨天)의 정서가 더 많은 것은 이런 사정을 반영한 다. 84)

공자가 편집한 시경에는 고대의 민간인들의 종교 제사의 사례가 자주 나타난다.

천신, 지신, 인신에 대한 제사 중 천신보다는 주로 지신인 후토(后土)와 방신(方神)에 대한 민중들 의 제사 기록과, 잉태하고 낳으시고 기르시는 후직(后稷)에 대한 민중들의 제사 시편이 등장 한다. 85)

주역에서도 주재자나 인격자로서 종교적 신앙이 함축된 주례의 ‘天神 地祗 人鬼之 禮’가 ‘천지인 삼재의 도’로 묘사된다.

주역 계사전 상편에서 “육효에 삼극의 도가 다 들어 있다.” 86)고 하였다.

하편에는 삼극의 도를 천도, 지도, 인도의 “삼재지도”(三才之道)라고 하 였다.

겸단(兼彖)에는 이를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천도(天道 : 하늘의 법칙)는 양기를 하강시켜 널리 빛을 비추고, 지도(地道 : 땅의 법칙) 는 낮은 데서 상승한다. 천도는 충만한 것을 덜어 겸허한(부족한) 것에 보태주고, 지도는 충 만한 것을 깎아 겸허한(부족한) 것에 유입시켜준다. 귀신은 교만한 사람에게 손해를 입혀 겸 허한 사람에게 복을 준다. 인도(人道 : 인간의 법도)는 교만을 증오하고 겸허를 좋아한다. 사 람이 겸허하면, 존귀한 자리에서 영광을 얻고 비천한 자리에서 멸시되지 않는다. 이것이 즉 군자의 유종의 미이다.” 87)

 

82) 김경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p. 119.

83) 方東美, 남상호 역, 원시 유가 도가 철학, p. 127.

84) Ibid., p. 130.

85) 조자용, 삼신민고, p. 195-197.

86) 주역 繫辭傳 上. “六爻之動 三極之道也.”

87) 주역 兼彖.

 

이러한 삼재론은 설괘전88)과 공자가 해설한 십익(十翼)에도 나타난다. 天神 地祗 人鬼의 종교적 개념이 천황, 지황, 인황의 정치적 개념을 거처 천도, 지도, 인도로 성리학적 철학 개 념으로 전개된 것이다.

따라서 초월적 주재자요 인격자에 대한 ‘천신신앙’이 절대 유일의 신 적 통치의 대리자인 ‘천자(天子) 또는 황제의 정치 이데올로기’로 대체되고 이에 대한 반발로 천명(天命)과 천리(天理)에 순응하자는 ‘천도(天道)의 철학’이 제시된 것으로 요약할 수 있 다. 89)

결론적으로 중국사에서 천자 또는 황제는 정치적 존재인 동시에 종교적 존재였다. 90)

중 국에서 초월적 존재자로 자리 잡은 “‘하늘’은 이처럼 출발부터 대단히 정치적이었고 낭만적 이었다.”고 분석된다. 91)

천신을 표상하는 천이나 황제의 대리자로서 정치적 종교적 존재인 천자와 황제가 전면에 등장하여 천신의 자리를 차지한 전통이 2000년 이상을 내려 오면서 중국문화의 내재적 구성원리에는 천신으로서의 하나님 신앙이 약화될 수 밖에 없었으며 그 자리를 성리학의 등장으로 우주의 보편적인 이법으로서 천도(天道) 또는 천리(天理)가 대체한 문명사적 과정을 거쳐 온 것으로 분석된다.

 

4. 일본의 천 개념과 천황 제도

 

1) 고대 일본의 신 개념

 

고대의 일본의 신화는 담고 있는「古事記」와 「日本書紀」는 천지(天地)가 시작했을 때 하늘(高天原)에 일곱의 신(神)이 생겼다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처음에 천지가 어떻게 생 기는지, 그리고 일곱의 신들이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단

 

“천지가 처음 에 나타났을 때 마카아마노하라(高天原)에 생긴 신의 이름은 아메노미나카누시신(天之御中主 神). 다음은 타카미무수히신(高御産巢日神). 다음은…” 92)라는 식으로 나열해서 쓰여져 있을 뿐이다.

 

88) 주역 說卦傳, “昔者聖人之作易也 將以順性命之聖. 是以立天之道曰陰與陽. 立地之道 曰柔與剛. 立人之道曰仁 與義. 兼三才而兩之. 故易六 而成卦.”

89) 鄭然植 金明河, “先秦儒家 天觀念의 政治思想的 性格”,「論文集」(경북대) 52집(1992), pp. 103-115. 90) 김경일,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p. 112.

91) Ibid., p. 111.

92) 山口佳紀·神野志隆光(校,注, 譯), 新編日本古典文學수集 1 古事記(小學館, 1997), p. 29.

 

그 다음 ‘일곱번째에 생긴 이자나기, 니자나미라는 남녀신은 앞의 신들에게

“이 떠돌 고 있는 나라(國)를 수리하여 다지고 완성해라”라는 명과 함께 검을 받았다.

그래서 이 남녀 신은 하늘에서 검을 내리고 이를 돌리고 끌어 올렸다.

그러더니 그 검 끝에서 방울져 떨어지 는 소금이 쌓이고 섬이 되었다.

이를 오노고로도(島)라고 한다.

남녀 신은 여기에 내려와 결 혼하여 살면서 아이를 낳았는데, 이 아이들이란 다 섬(島)이다.

처음에 모두 여덟 섬을 낳았 기 때문에 여덟 섬나라(八島國)라고 한다.

이 남녀 신은 그 후도 계속 섬을 낳았고 그 후에 는 신(神)을 낳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남녀 신이 낳은 것은 14섬과 35신이 라고 한다.

이러한 신화에 근거하여 일본인들은 일본의 섬들은 신이 가장 먼저 만든 것이라고 믿는 다.

그들의 땅이 이와 같은 신적 기원을 가졌다는 생각은 아주 오래 된 것으로 신도와 천황 신앙과 결합되어 전래되면서 일본인들이 정치적 국가 이상주의(national idealism)가 형성된 것으로 분석된다. 93)

그래서 존 노스는

 

“일본 사람은 일찍부터 그들의 땅은 신성한(divine)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그들의 사고가 후에 어느 다른 땅도 성스럽지 못하다는 국가주의의 도그마가 되었다.” 94)하였다.

 

이러한 신화는 불교의 도래 이후 불교신앙과의 차별을 표시하기 위해 ‘신도(神道) 신앙’ 규정되어 전승되기 시작하였다.

신도에서 말하는 신(神)은 일본어로 ‘가미’(Kami)로 표현되는 데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렵지만, 그것은 생물과 무생물에 있는 신성한 힘(sacred power)을 간주하는 것이다.

원래 고대 신도 전통에서는 인간을 신으로 모시는 관습은 없었다.

신도가 불교, 유교, 음양도와 습합하면서 신관념이 분화되고 그에 따라 특정 사자의 영혼을 신으로 모시는 관습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95)

그리하여 에도 시대 국학(복고신도)의 대성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1730-1801)에 이르면

 

“가미란 고전(古事記』등을 가리킴―글쓴이)에 나오는 천지의 제신들을 비롯하여, 신사에 모셔진 제신들 및 인간은 말할 것도 없고, 조류, 짐승, 나무와 풀, 바다, 산 등 무엇이든간에 범상치 않으며 덕있고 두려운 존재를 일컫는 말 이다”. 96)라는 관념이 등장한다.

 

이처럼 ‘가미’는 다신론적인 표상이며 일본에는 약 8백만의 ‘가미’ 즉 신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는 인간의 성기(性器) 가 그 중에 하나라고 하며 「가 미」에는 성기(性器) 숭배의 사상도 있다.

 

2) 신도와 천황제도

 

‘신도’라는 명칭은 일본서기 제31대 요메이(用明) 천황의 즉위전기에 처음 등장한다고 한다.

즉 거기에는 “천황이 불교를 믿고 신도를 숭배했다.”(天皇信佛法尊神道)고 나오는데, 이 때 나오는 ‘신도’라는 말은 ‘불법’의 대비어로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다시 말해 이는 일본 인들이 외래의 종교문화(불교)와 만남으로써 비로소 자기 자신(신도)을 의식하기 시작했음을 시사한다고 볼 수 있다.

신도의 형태는 역사적으로

① 신사신도(종교시설로서의 신사를 중심으로 한 신도로서 가 장 기본적인 형태),

② 황실신도(천황가의 궁중제사를 중심으로 한 신도),

③ 이론신도(학파 로서의 신도사상),

④ 국가신도(천황제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했던 국교로서의 신도),

⑤ 교파 신도(국가신도 체제에 편입되었던 신도적 신종교들),

⑥ 민간신도(민간신앙적인 신도 습속) 등이 있다.

일본에는 현재 약 10여만 개소의 신사가 있지만,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신도는 두 말 할 것 없이 황실신도와 국가신도이고 그 중심은 천황사상이다.

황실신도와 국사신도를 통 해 천황사상을 정치적 이데올로기화 굳어지게 되었다. 97)

 

93) 김영한, “기독교와 일본 신도교의 비교”, 「광신논단」 8집(1997), p. 156.

94) John B. Noss, Man's Religions,(New York, NY: MacMillan Co, 1969), p. 316.

95) 박규태, “야스쿠니(靖國)신사와 일본의 종교문화”, 「종교문화연구」 2집(2000).

96) 『本居宣長全集』9, 筑摩書房, p.125. 97) 이상봉, “일본 '상징천황제'의 정치적 역할과 의미”, 「21세기 정치학회보」 19집(1999); 백운용, “天皇 象徵性의 政 治的 利用可能性에 관한 硏究”, 「日本學誌」 13집(1993) ; 성황용, “日本天皇制의 政治的 機能”, 「日本硏究」 17집 (2001).

 

신도(神道) 사상으로서 처음으로 형성된 중세의 이세신도(伊勢神道)에서는 아마테라스 오 오미카미(天照大神)에게 태양신(太陽神), 천하통치신(天下統治神), 황조신(皇祖神), 천양무궁 (天壤無窮)의 신칙(神勅)을 수여하는 신, 그리고 천신지신(天神地神)의 대조(大祖)인 지귀신 (至貴神)으로서의 성격이 부여되었다.

요시다 신도(吉田神道)에서도 태양신(太陽神), 황조신 (皇祖神)으로 보는 시각을 이어 받았으나 최고지귀신(最高至貴神)으로서의 성격이 약해졌다.

그 대신 천인유일사상(天人唯一思想)이 첨부되어 천(天)과 인간 영혼(魂)의 근원으로 삼게 되 었다.

근세의 스이카 신도(垂下神道)에서는 유교의 영향을 받아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 神)의 자손인 천황(天皇)이 일본을 통치해야만 한다는 왕도(王道) 개념이 강조되었고, 고학 신도(古學神道)에서는 그러한 견해를 이어받으면서 최고지귀신(最高至貴神)인 아마테라스 오 오미카미(天照大神)를 중심으로 하는 신도 사상이 완성되었다.98) 일본의 옛 역사를 담은 고사기(古事記, 712년 편찬)와 일본서기(日本書紀, 720년 편 찬)는 기원전 660년 초대천황인 진무(神武)가 즉위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99)

천무천황(天 武天皇)이 강력한 천황중심의 천황제 중앙집권국가(天皇制中央集權國家)를 만들기 위해 그 개혁의 일환으로서 천황의 명을 받아 편집된 것이 고사기와 일본서기이다.

그러므로 이 들 신화는 비록 여러 전승을 계승하여 만들어졌다고는 하되 천황가의 일본 지배를 정당화하 기 위해 의도적(意圖的)으로 체계화한 것임은 분명하다.

‘전승의 원래 모습은 천황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변형, 변질되어 고사기와 일본서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초기 천황은 원시적인 형태였고 일본에 고대국가의 모습이 정착되는 4~5세기경 부터 고대 천황제의 모습이 갖추어진다.

천황은 이때부터 비로소 야마토(大和) 지방의 부족 연맹의 장으로서 정치적 권력 과 종교적 권위를 갖고 일본 주요부를 지배하게 됐다. 100)

 

98) 安蘇谷正彦, “天照大神の沿革”, 神道思想の形成(東京, ぺりかん社, 1985), p. 244-268.

99) 矢野尊義, "日神神話와 創世神話",[인문과학논집](강남대) 11집(2002) .

100) 박정의, “「천황」을 보장한 고사기” 「日本學報」 46집 (2001) ; 최재석, “日本 天皇의 실상을 전하는 日本書紀의 기사에 대하여”, 「大東文化硏究」 35집(1999) ; 김광림, “일본의 역사가와 천황가 기원문제”, 「일본사상」 3집(2001) ; 최재석, “日本古代天皇原籍考”, 「韓國學報」 14권 2집(1988).

 

이어 6세기말 아스카(飛鳥)시대의 쇼오토쿠(聖德)태자에 이르러서 천황의 권력이 확립됐 다.

이때 쇼오토쿠 태자가 중국 수나라에 보낸 국서에 ‘동천황(東天皇)이 서천제(西天帝)에게’ 라는 표현을 쓰면서 천황이라는 용어가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7세기중엽 다이카(大化)개신 이후 천황은 「고사기」와 「일본서기」의 신화를 바탕으로 현 인신(現人神, 아라히토카미)으로서 유일 최고의 지위를 갖게 됐다.

그러나 중세에 들어서서 천황의 지위는 급락하게 된다.

9~12세기에 걸친 헤이안(平安)시대의 귀족정치와 13~14세기 중엽까지의 가마쿠라(鎌倉)막부시대의 무인정치에 의해 천황의 권력은 무력화됐다.

이 같은 상황은 19세기 중엽까지 계속됐다.

일본의 근대 이후의 천황제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대일본제국헌법(1889 ∼1947)의 신권천황제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국헌법(1947∼현재)의 상징천황제이다.

근대 천 황제의 탄생은 메이지 유신 때로 볼 수 있다.

메이지 천황이 어린 나이에 즉위한 뒤 권력을 장악한 메이지의 원훈(元勳)들은 메이지 정부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천황의 권위를 세울 필 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메이지 정부는 천황을 신격화하는 정책을 시행하게 되고 천황을 다 시금 현인신(現人神)으로 추앙하였다. 제국 헌법아래의 일본에서는 일본은 신국(神國), 천황 은 신국 일본을 통치하는 현인신(現人神)으로 받들었으며 일본인은 천황의 적자로 천황을 위 해서는 기꺼이 죽을 수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 국민에게 주입시켰다.

1868년 메이지(明治)유신에 의해 일본의 정치체제는 천황중심의 중앙집권체제를 확립하고 그리고 1889년에 제정된 대일본제국헌법 제1조와 3조는 천황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였 다.

제1조 일본제국은 萬世一孫의 天皇이 통치한다.

제3조 天皇은 神聖하므로 침범할 수 없다. 101)

1000여년만에 천황의 지위가 비로소 제자리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천황의 ‘천하(天下)’ 는 100년을 가지 못했다.

2차세계대전 이후 1947년 5월 시행된 현행헌법상 천황은 “국가와 국민통합의 상징이며 헌법에 정한 일정한 국사행위 이외에는 국정에 관한 어떠한 권리의 주 장과 행사도 불가”하도록 되어 있다.

이는 대일본제국의 구헌법과 비교하면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황은 일본과 일본인들에게는 ‘범상치 않은’ 존재이다.

실질적인 힘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국가와 국민 통합의 상징으로서 국민들에게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 다.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는 이처럼 역사적으로 천황이 근대 일본국민에게 강요될 수 있었던 것도 일본국민의 종교적 에토스 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인의 신관에 맞지 않는 주재자적인 천황(天皇)이 근대에 국민들에게 강요되었는데 그나마 패전까지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인간과 신 사이의 경계에 관한 불분명 한 신관에 있다고 할 수 있겠다.” 102)

 

주목을 끄는 것은 일본이 주재자나 인격신으로서의 천 개념이 약할 뿐 아니라, 이법적 철학적 천 사상(理法的 哲學的 天 思想)의 ‘추상적 보편에 관한 사유능력(思惟能力)도 충분히 발달되지 않았다.

그리고 근세 이후에도 천황제도 자체로 인해 헌법상의 종교의 자유가 형식 적으로는 보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의 자유를 저해 하는 요 인으로 작용하였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일본 기독교는 천황제 국가체제와 대결하는 것을 회 피하기 위해 노력” 103)할 수 밖에 없었다.

 

101) J. B Noss, 윤이흠 역, 세계종교사 하(서울: 현음사, 1986), pㅔ. 1012-1058.

102) 세키네 히데유키, “日本 民間信仰에서 본 天槪念關根英行”, 31.

103) 양현혜, “근대 일본의천황제 국가 체제와 기독교”, 「한국기독교와 역사」, 19집(1998). p. 328.

 

때문에 앞에서 인용한 것(주3)처럼 천황체제로 인 해 일본은 ‘하느님’이란 고유한 개념을 가진 한국과 달리 기독교 신자가 인구의 1%정도로 미약할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된 것이다.

 

3) 일본의 천 개념의 정치화

 

이러한 신화를 배경으로 볼 때 세키네 중국에서 만들어진 천(天)의 개념은 일본인에게 낯선 개념이라는 일본학계의 저명한 연구자들의 일본의 천(天)개념에 관한 견해를 히데유키 (關根英行)는 다음과 같이 소개한 바 있다. 104)

 

104) 세키네 히데유키, “日本 民間信仰에서 본 天槪念關根英行”, p. 23.

 

나카무라 하지메(中村元)에 의하면, 일본인에게는 보편적인 법이나 보편자(普遍者)를 무 시하기 쉬운 사유경향(思惟傾向), 105) 천황(天皇) 위에 천제(天帝)와 같은 다른 원리를 설정하 기 어려운 사유경향, 106) 형이상학적인 사색을 잘못하는 비합리주의적 사유방법107) 등이 있 다고 한다.

따라서 일본인들은 주재자(主宰者)이면서 자연 이법(理法)으로서의 속성을 가진 천(天) 개념을 인식하는 것이 어렵다고 보았다.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는 천(天) 개념이 민간신앙에 연원(淵源)을 가지고 있다 하더 라도 그것을 사상으로서 발전시킨 부류인 지식층은 민중과 다른 합리주의적인 사유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입각하여 결국은 천황 개념을 확립함으로서 천의 개념이 결국 황제의 권위를 세우는 역할로 귀착되었다고 주장했다. 108)

이러한 논지를 계승한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는 주재자로서 인격적인 천의 개념이 일본에서 정착하기 어려운 두 원인을 분석 첨가하였다.

하나는 일본 민족 전체가 가지고 있 는 토착적인 에토스(ethos)에서 기인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천도신앙이 천황숭배로 발전하 게 된 지배층의 정치 이데올로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나카무라(中村)나 유아사(湯淺)는 전자 의 입장을 대변하고, 쓰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와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 자신은 후자의 입장이라고 한다.

첫째로 일본 민간신앙 자체가 주재자로서의 천 중심의 사고가 아니기 때문에 천 개념의 약화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의 분석이다.

일본의 신(神) 개념이 다 중적(多重的)인 만큼 민간에서 모시고 있는 신의 수도 많다.

그러한 신을 분류하는 기준은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연중행사로 조상제사(祖上祭祀)와 농경의례(農耕儀禮)가 중심이 되어있 는 것에 비추어 보면 천신 보다 인간신(人間神)에 더 많은 비중을 둔 것이 분명하다. 109)

신 관의 성격에 대해서도

“일본의 신들에게는 주재자(主宰者)적인 성격이 보이지 않고, 인간과 비슷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110)고 한다.

그리고 신들은 사람들의 모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인간과 신은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존재이다.

조신은 자신의 의지로 자 유롭게 자손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정월이나 백중맞이 등 정해진 시기가 되어야만 가능 하게 된다.

그리고 일본인의 우주관의 구조가 천(天) 개념의 공간적인 구조와 맞지 않는다고 한다.

일본의 경우 수직적(垂直的)인 타계관이 약하기 때문에

“주재자(主宰者)를 천상(天上)으로 인 식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 111)으로 지적한다.

근대 이후의 고고학, 역사학, 민속학, 고전연 구는 고대의 주재자로서의 천신신앙이 반드시 민간의 신앙심(信仰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간신앙의 신들은 인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신과 인 간의 경계선이 분명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일본인들이 “주재적 종교심리적 천 사상(主宰的 宗敎心理的 天 思想)의 천(天) 개념을 수용하기가 어려운 것은, 신을 우주나 인 간에 앞세우는 세계관을 일본의 민간신앙에서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 112)이라는 것이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의 주장이다.

유아사(湯淺)가 지적한 모성적(母性的)인 문화를 가진 일본에서는 천공(天空)에서 성스러운 존 재를 찾기 힘든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105) 中村元, 日本人の思惟方法(東京, 春秋社, 1989), pp. 91-107.

106) Ibid., p. 257.

107) Ibid., p. 369-453.

108) 津田左右吉, 支那思想と日本(東京, 岩波書店, 1938), p. 5-53.

109) 세키네 히데유키, “日本 民間信仰에서 본 天槪念關根英行”, p. 23-24.

110) Ibid., p. 26.

111) Ibid., p. 30.

112) 세키네 히데유키, op.cit., p. 30. “민간신앙의 종교적 세계관에서 본 천(天) 개념을 살펴보았는데 나카무라 (中村)나 유아사(湯淺)가 말한 것처럼 일본인 전체가 가진 에토스가 중국의 천(天) 개념을 받아들이기 힘든 부 분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초기의 주재자로서의 천 개념이 정치적 지배자인 천황숭배 사상으로 전개되면서 신도신앙이 생겨난 것이 일본의 천 개념의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한다.

초기의 신도(神道) 신 앙에 의하면 최고지귀신(最高至貴神)인 아마테라스 오오미카미(天照大神)는 주재자(主宰者)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점차 그 성격이 약화되었다고 통치의 절대성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정치 이데올로기로 전락하였다는 견해는 일반화되어있다.

그러나 세키네 히데유키(關根英行) 는 천황제도가 도입되어서 종교적 천관이 약화된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전통적인 민간신앙 이나 우주관이 주재자로서의 천신이 들어설 여지가 적었기 때문에 정치 이데올로기로서 천황 제도가 일본 국민들에게 쉽게 수용된 것이라고 역설한다.

 

5. 한국의 하느님 신관과 한국기독교

 

중국과 일본과는 다르게 한국인에게는 주재자 하나님 신앙이 강력한 뿌리를 내리고 있 으며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 보다 먼저 발견한 이들은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이었 다.

게일과 클락은 “한국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한·큰·분’(The One Great God)” 113)이라고 하였다.

헐버트는 한국인의 순수한 종교 관념은 외국에서 수입한 종교적 숭배와는 전혀 관계 없으며, 이들이 믿는 하나님은 우주의 최고 지배자이며 잡다한 귀신을 초월한 신으로서 유대 교의 ‘에호바’와 일치한다고 보아 한국인은 엄밀한 일신교도(Monotheist)라고 하였다. 114)

이러한 맥락에서 윤성범은

“이 세상에서 한국의 신관, 곧 ‘하나님’보다 더 명백하게 그리 스도교 신을 부를 수 있는 명칭이 또 어디 있겠는가?” 115)고 반문하였다.

 

“한국의 신 개념인 ‘하나님’은 그 자체로서 ‘유일하신 인격적 신을 의미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굉장한 그리고 자랑할 만한 사실인가?... 이것은 다신론적인 개념을 그리스도교의 유 일신 명칭으로 빌려 쓰는 다른 나라의 하나님 명칭 보다 얼마나 좋은 말인가? 뿐만 아니라 이 신 개념은 유일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으로 밝히어 지는 굉장한 사실과 함께 그를 ‘당신’이 라고 부르며, 만날 수 있는 개인의 가치도 여기서 뚜렷이 나타나게 되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116)

 

113) 윤성범, 한국문화와 기독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62), p. 57-58; James S, Gail, Korea in Transiton, p. 115.; C. A. Clark, Religions of Old Korea(Seoul, Christian Literature Society of Korea, 1961), p. 115

114) 조지훈, 현대인 사상 강좌 4, p. 298 참조

115) 윤성범, op.cit., p. 58

116) Ibid., p. 59.

 

신라 때 최치원 선생이 삼국사기 진흥왕전 난랑비서에서 현묘지도인 풍류라는 교의 근 원이 신사(神史)에 실려 있는데 그 핵심은 “삼교(유불선)를 포함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 라고 하였다.

신채호는 풍류(風流)는 부루의 이두식 표현으로 부루교 즉 신 하나님을 섬기 는 신교(神敎)라고 하였다.

이를 근거로 최동환은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한겨레의 집합적 무의식 세계에서 가장 중심이 되어 온 존재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한겨레의 하 나님 사상은 단절 없이 전해졌고 그 형태로는, 더 엄밀한 학문적 검증이 필요하지만, 다음과 같다고 하였다. 117)

 

“부여에서는 대천교代天敎, 삼한에서는 천신교天神敎, 고구려에서는 경천교敬天敎, 신라에서는 숭천교崇天敎, 발해에서는 진종교眞宗敎, 만주에서는 주신교主神敎, 요와 금에서는 배천교拜天敎, 고려에서는 왕검교王儉敎.”

 

김경탁 교수는 하느님의 관념으로 유교의 天을 흡수하였고, 불교의 제석(帝釋)천을 흡수 하였고, 도교의 옥황상제(玉皇上帝)를 흡수하였고, 천주교의 천주(天主)를 흡수하였고, 일본인 의 ‘가미’를 극복하여 왔다고 한다.

 

“우리 민족에게 만일 이 하느님의 관념이 없었던들 우리 문화는 벌써 외래문화에 흡수 되어 사라졌을 것이다. 생각컨대 이 하느님의 관념은 한민족의 생명과 함께 영구히 지속해 갈 것이다.” 118)

 

이처럼 한겨레가 전승해온 전통적인 ‘하님’ 신앙과 성서의 신 이해 사이에 서로 통하 는 점이 많은 이유에 대해 곽노순 교수는 두 신관 사이의 기능적 유사성 11가지로, 이 중 몇 가지는 더 엄밀하게 규명되어야 하지만, 자세히 분석한다. 119)

 

1) 하님 칭호냐 God(神)이냐 복수화하지 않는 점.

2) 민족신으로 국한하지 않는 점.

3) 신적 탄생 신화나 족보가 없는 점.

4) 왕의 天子사상(시편 2:4-7)의 유사성.

5) 신의 모 습을 상화하지 않는 점(출 20:4).

6) 의인론적인 묘사(anthropomorphism).

7) 하늘을 윤리 적 요청의 근거와 외경의 대상으로 삼는 점.

8) 기우제와 엘리야의 기사.

9) ‘하늘’이라는 장 소에 계신 분으로 묘사되는 점.

10) 많은 신들 중 최고신 관념과 야훼가 ‘신들 중의 신’이라 는 고백의 유사성(시편 136:2).

11) ‘하늘’이라는 말로서 신을 대신할 수 있는 점. 120)

 

117) 최동환(2005). “한계레와 하나님”, http://www.hananim.com/bbs/view.php?id=total&page= 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 (2005.6.20).

118) 김경탁, “하느님 관념 발달사”, pp. 115-176.

119) 곽노순, “한국교회와 ‘하나님’ 칭호”, 「기독교사상」 1972년 2월호, p.112.

120) 김경재, 한국문화신학(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83), p. 115.

 

한국의 우상타파에 앞장 선 한국 그리스도교가 단군신화에 기원하여 무속을 통해 전승된 하님을 기독교의 신의 칭호로 수용했을 때, 이 하님 관념은 이미 다신론적 무교적인 신 관념을 초탈하여 세계에서 그 유를 찾기 힘든 최고신 관념으로 승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래서 팔머(S. J. Palmer)는 한국에서의 그리스도교의 급격한 성장은 무속 혹은 무교적인 한국인들의 하님 관념이 성서에서 더 분명한 참 신의 모습을 발견한 데에 기인한다고 보았 다. 121)

따라서 한국기독교인들은 ‘한국인이며 동시에 기독교인’이라는 자신의 존재론적 역설 에 근거하여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하느님 신앙과 성서의 여호와 하나님 신앙의 역동적인 만 남에 대한 전향적인 신학적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끝으로 단군신화로 전승된 하나님 신앙과 천지인의 조화라는 삼태극적 원리를 김지하는 종교적으로 완벽한 조화로서 율려, 정치제도로서 민주적 화백(和白)제도, 경제제도로서는 평 등한 신시(神市)의 이상으로 계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민족의 전통과 성서의 가르침을 비교해 볼 때, 성서가 하나님 신앙에 근거한 구체적인 신관·인간관·자연관 등을 제 시하고 있으며 구약의 십계명과 신약의 주기도문처럼 천지인 삼재에 대한 가르침이 훨씬 구 체적이고 역사적인 특이성과 궁극성을 지닌다. 122)

성서는 다신론적이고 주술적 제의 종교에 대한 대안으로 유일신과 인간의 상무적 계약에 근거한 말씀 중심의 계약종교를 제시하였다.

갓월드(N. K. Gottwald)가 잘 분석한 것처럼 이집트와 바벨론의 중앙집권적 절대군주제에 대한 대안으로 초기 이스라엘 12지파의 느슨한 부족동맹을 통해, 지방자치적 분권과 통치자는 백성을 종으로 삼는 자가 아니라 ‘백성의 종’ 이 되어야 한다는 정치적 이상을 제시한 것이다.

그리고 왕과 소수의 지배자들이 모든 땅을 차지하는 공납제 생산양식에 대한 대안으로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만나의 경제신학’과 토 지분배를 통한 자유농민농업제를 제시한 것이다. 123)

 

122) 허호익, 단군신화와 기독교, pp. 255-312. “제5장 천지인신학의 가능성 모색” 참고 할 것.

123) 허호익, 성서의 앞선 생각 1」(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1988). 이 책은 삼재론에 입각하여 성서의 신관, 인 간관, 자연관을 분석하고 신을 인격적 유일신으로 보느냐 다신론적 자연신으로 보느냐에 따라 종교제도 달라지 고, 인간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느냐 섬김에 대상으로 정치제도가 달라지고, 자연 또는 물질을 독점의 대상으 로 보느냐 공유의 대상으로 보느냐에 따라 경제제도가 달라진다는 점을 분석한 것이다.

 

이러한 계약공동체의 종교적, 정치적, 경 제적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없지 않았지만 세계사의 이정표가 되어 큰 영향 력을 행사한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단군신화에는 천지인조화의 원리만 제시되어 있지만 성서에는 신관에 따른 종교제도, 인 간관에 따른 정치제도, 자연관 또는 물질관에 따른 경제제도의 이상과 목표가 분명하고 그 역사적 전개 역시 많은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평균적인 의식에 비해 전향적인 앞선 생각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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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Hanin(桓因) in the Legend of Tangun and heavenly God of Korea Christianity

Hur, Ho-Ik

The study start these questions. Is there any relation between Korea christianity and the legend of Tangun? Did have believed Chinese people and Japan people also this heavenly God as deeply as Korean? In Chinese, from Qin Shi Huang old belief of heavenly God(天) transformed as a Son of Heaven (天子) of political ideology. Likewise Shintoism in Japan have mixed belief of Tenno(天皇) as Kami(神) and Nationalism. Hanin(桓因) of Tan-Gun(檀君) legend is heavenly God(하느님). Korean peoples have traditionally believed this heavenly God. Because of deep believing in heavenly God (하느님), any Korean kings insisted themselves as Son of Heaven(天子) or Tenno(天 皇). Specially, when western christianity were introduced in Korea, because of this deep believe in heavenly God, Korean Christian translated the Yahweh Elohim of the Bible into heavenly God(하느님) of Hanin(桓因) in the Legend of Tangun. This belief of heavenly God have played very important role in the reception of Christianity and growth of church in Korea.

 

Key Words : Hanin(桓因), Tan-Gun(檀君), heavenly God(하느님), Son of Heaven(天 子) or Tenno(天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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