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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키에르케고어의 기독교 비판, 그 현재적 의의 및 적용/ 장호광.안양大

 

I. 서론

 

오늘의 국내 교회 상황을 냉철한 시각으로 분석해보면 세상 사람들로 부터 지탄과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했음을 목도하게 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교회를 중심으로 관리, 감독이 부실한 곳에서 집단감염이 연이어 발 생하고 방역수칙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이 같은 ‘교회 혐 오’는 이른바 ‘교회 포비아’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심각하다.

이런 현 실 속에서 최근 국민일보 기사에 따르면, 국내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호 감도가 불교나 가톨릭에 비해 3배 가까이 낮은 경향을 보이고 있다.

종교 적 호감도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 중 25.3%만 개신교에 호감이 있다고 답한 반면, 가톨릭과 불교에 대해서는 각각 65.4%와 66.3%의 응답자가 호 감이 있다고 답했다.

개신교에 대한 낮은 호감도의 이유로 ‘배타적’, ‘위선 적’, ‘이기적’, ‘세속적’ 등 종교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단어가 주로 분포 했다.1)

 

     1) 장창일 외 1인, “기독교 배타적... 호감도 25% 그쳐,” 「국민일보」, 2022년 4월 28일 접속, https:// news.kmib.co.kr/article/view.0924242493.

 

심각한 현실이다.

그런데 문제는 치고 올라갈 ‘바닥’이 아직도 보 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다.

오래 전부터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지적하고 해결할 대안제시를 했음에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기 는커녕 오히려 조롱거리가 되어 날개 없는 추락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 런 상황에서 자신의 조국 덴마크의 국가 교회를 향한 키에르케고어의 신 랄한 비판을 오늘의 한국 교회에도 그대로 투영시켜 타산지석(他山之石) 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키에르케고어 당시의 교회 상황과 오늘의 한 국 교회 상황이 다양한 측면에서 흡사한 점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쇠얀 키에르케고어(Søren Kierkegaard, 1813~1855)는 자신의 영적 무 기로 사용한 ‘신약 성서’를 들고 당대 교회를 향해 신랄한 공격을 가했기 때문에 외부에서 가해진 어떤 공격보다 훨씬 더 깊이 교회를 강타했다.

그 의 비판의 주된 요점은 교회가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 함으로 인해 세상 사람들로부터 웃음거리로 전락했고, 특히 권위적이고 형식에 매어 있고 타성에 젖어 있으며 돈에만 관심을 가진 목회자들과 온 갖 비 진리를 담지 하는 곳으로서 자정 능력을 상실한 점에 맞추어져 있 다.

당시 그의 그런 공격은 덴마크의 국가교회(루터교단)뿐만 아니라 개 신교 전반에 걸쳐 있었다.

그러나 키에르케고어의 교회를 향한 비판에 담겨 있는 본래 의도는 교 회의 타락만을 제시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변혁과 갱신에 있 었다.

그는 신약 성서에 등장하는 초대 교회를 거울삼아 변질되고 타락한 자신의 조국 교회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를 포 함한 기독교 전반의 갱신을 위한 추동력이 어떤 방향에서 이루어지느냐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자신이 살던 당대의 사유전제와 이해에 기반 한 신학적 근거를 어떻게 제시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동시대인들과 대화를 추구했던 작가의 경우, 자신의 시대에 통용되던 전문용어와 사유 전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이 분명하다. 따라서 키에 르케고어의 기독교 비판에 주로 사용된 ‘역설’(paradox), ‘단독자’, ‘순간’, ‘선택’, ‘동시성’ 및 ‘반복’ 등과 같은 그의 주요 개념을 오늘의 상황에 비추 어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런 피상적 이해를 피해 가기 위해서는 신학적 탐색 작업이 우선적이어야 한다.

즉 키에르케고어 의 작품에서 역사적으로 조건 지어진 것이 무엇인지, 실제적으로 부각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가 당대의 시대정신에 뿌리를 두는 것에 있어 어 떤 근거를 갖는지에 관한 것이다.

무엇보다 그가 객관적이고 사변적인 관 념론에 반대하여 자신의 개념을 형성했다는 사실에서 인식할 수 있다.2)

또한 형이상학적 사유에 대립각을 세운 것에 있어서도 오늘날 우리에게 나타나는 역사적인 조건과 비교하면서 살펴봐야 한다.

키에르케고어 당시의 세속화된 기독교에 대한 공격의 타당성은 오늘 날에도 의심의 여지가 없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질문이 중요할 것이 다.

키에르케고어의 신학적 사상에서 오늘날에도 여전히 기독교의 미래 의 방향을 가늠하고 결정지을 수 있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는가?

이런 질 문에 답을 찾기 위해 오늘날 여러 면에서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과 차 이가 있다할지라도 우리가 키에르케고어의 작품을 연구하는 것은 유의미 할 것이다.

따라서 본고에서 키에르케고어가 살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교회적 상황을 고려하여 그러한 질문을 추적해 갈 것이며, 결국 이런 경로 탐색은 그의 신학적 통찰력을 엿볼 수 있게 한다.3)

키에르케고어는 자신 의 시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과의 논쟁에서도 밀리지 않고 자신의 비판적 논점을 명료하게 제시함으로써 적극적으로 신학적 변증을 펼쳐갔다.4)

 

     2) cf. Wilhelm Anz, Kierkegaard und der deutsche Idealismus (Tübingen: Mohr Siebeck, 1956), 27.

     3) cf. Sören Kierkegaard, Gesammelte Werke, Abteilung 12: Der Augenblick, übersetzt von Hayo Gerdes (Düsseldorf/Köln: Eugen Diederichs Verlag, 1966), 283. 

    4) cf. Hermann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Zollikon-Zürich: Evangelischer Verlag, 1950), 171. 

 

II. 교회에 대한 공격의 토대로서 ‘실존적 진리’

 

키에르케고어의 교회를 향한 공격에 담겨 있는 본질적 내용은 참된 교 회의 토대가 되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 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느니라.”(마 16:18)는 말씀의 약속이 현재의 경험적 교회의 유효성에 관한 질문에서 형성된다.

키에르케고어에게 “실존적”이며 “주관적인 진리”가 전체 교회를 결정짓 는 주된 특징이다.5)

하지만 키에르케고어 당시 민스터(Bishop Mynster, 1775-1854) 주교에 의해 더욱 노골화된 교회의 추락하는 상황을 주시하면 서 그는 다음의 자조 섞인 말을 던진다.

 

“우리를 함께 묶는 작은 공동체에 있게 해 달라. 나는 더 이상 함께 묶고 있는 단체가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집합체가 아니라 세상의 귀족이라는 사실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아니 그 단체가 최고의 그리스도인이라 할지라도, 얼마나 비진리 적인가.” 6)

 

    5) 여기서 “실존은 단순히 현존하거나 존재하는 무엇으로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여기 서’의 상황에서 진리와 대면하여 취하는 인간의 태도, 즉 선택의 결단을 뜻한다. 이에 따라 주관성은 양자택일적이며 목표 지향적으로 나타난다. 이런 목표 지향성을 지닌 주관성은 개별적으로 끝없는 관심을 유발하는 진리의 획득을 의미한다.”(장호광, “한국 교회 변혁을 위한 그리스도인의 신앙적 주체성확립의 의의와 그 적용성,” 「신학사상」 190[2020]: 136).

     6)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125에서 재인용. 

 

 

키에르케고어는 하나님 앞에 선 ‘단독자’가 아니라 기독교 국가라는 집단에 속해 세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 그리스도인이라는 망상에 젖어 있는 사람들을 무늬만 그리스도인이지 조잡하고 무지한 자들이라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그는 현존하는 기독교를 향해 참된 교회에 대한 정의와 충돌하는 실존적 관점에서 교회에 대한 약속의 유효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 하기까지 한다.7)

교회를 향한 그의 공격은 자신의 저작에서 지배적인 주 제였다.

특히 그의 작품 “후기”에서 그는 역설적인 표현 방식으로 자신의 비판적 질문을 다음과 같이 공식화한다.

기독교 가운데에 사는 사람이 하나님의 참된 표상을 알고 하나님의 집에 들 어가 기도하되 거짓된 것으로 기도하며, 우상숭배의 땅에 살면서 한심한 마 음으로 기도하며, 우상의 형상에 눈을 가리 운다면 어디에 진리가 있겠는가?

한편으로, 사람은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진실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다른 한 편, 진실하지 않게 하나님께 기도하므로 진실로 우상을 숭배한다.8)

 

    7) 마르텐젠은 자신의 대표적 작품인 “기독교 윤리학”에서 그런 키에르케고어의 비판적 지적에 어느 정도 동의하는 발언을 한다. ”현재 사회는 오로지 해체의 관점에서만 봐야 하고 더 나은 변화를 바 라는 것이 더 이상 기대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어쨌든, 이러한 해체의 와중에도 어떤 그 리스도인도 절망할 수 없고 절망해서도 안 되는 공동체가 있다. 즉, 죽음의 권세가 교회를 압도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갖고 있는 거룩한 보편 교회, 또한 국가 교회의 존재에 의존하지 않지만, 또한 민족 과 국가에 의존하지 않은 채 날마다 그 존재를 계속 이어가게 할 수 있을 것이다.“ H.L. Martensen, Die Christliche Ethik (Gotha: R. Besser, 1871), 328-29.

    8) S. Kierkegaard, Abschliessende unwissenschaftliche Nachschrift zu den philosophischen Brocken, Erster Teil, hrsg. von Emmanuel Hiersch (Düsseldorf/Köln: Eugen Diederichs Verlag, 1957), 192. 

 

이렇듯 키에르케고어에게 기독교를 믿는다는 사람들의 문제는 실상 우상을 숭배하면서도 그것을 진리로 믿거나 기도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 는 무엇보다 대중 내지 군중 속에 파묻혀 자신의 신앙적 정체성을 정립하 려거나 정규적으로 예배와 교회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위 외적 형식을 갖춘 의례나 행사에서 의의를 찾는 신도들에게 맞추어져 있다.

때 문에 키에르케고어는 이런 외형적 형식을 갖춘 의례나 행사에 신앙의 의 미를 부여하는 행태를 비판하면서 제시한 공식적인 문장은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키에르케고어가 당시 교회를 강하게 비판한 주된 이유 중 하나는

 

“이 교회가 국가와 결탁했을 뿐만 아니라, 신도들이 물질적 이익증진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관료 체계에 지배당함으로써 철저하게 세속적인 제도로 타락해 버렸기 때문이다.”(오신택, “키에르케고어를 읽 는 한 방법,” 「현대유럽철학연구」 40[2016]: 91). 146 조직신학연구 제41권 (2022년)

 

“주체성 또는 내면성이 진리이다.” 9)

 

미학적 내면성과 엄밀한 차이를 보이 는 “내면성”은 “실존에서 생각하는 투명함이 바로 내면성이다” 10)라는 가 르침을 단순히 외적으로 수용하고 소유하는 것과는 정반대이다.

이 투명 성은 키에르케고어가 후에 “반복”이라고 칭하는 것과 형식적으로 동일하 다.

또한 실존적 진리는 그의 작품 “훈련”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

 

“그 러므로 그리스도가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유일하며 참된 답이라는 의 미에서 진리이다 … 진리의 존재는 당신 안에, 내 안에, 그 안에, 당신의 것이 나의 것이고, 죽음 속에 있는 그분의 삶이 추구하는 진리에 가까우 며, 의도하는 당신의 삶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진리의 존재에 가깝다.” 11)

 

실존적 진리에 관한 이런 명제는 개별자의 존재와 관련하여 정의되며, 동시에 교회의 존재에 대한 패러다임이다.

개별자는 교회의 “소우주”에서 반영되기 때문이다.12)

키에르케고어에게 개인화(Individualisierung)는 그 의 모든 저작에서 “개인을 찾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이 먼저 구해져야 한다는 전제에 근거한 “교회의 미래” 13)를 위한 선교 전 술이었다.

하지만 교회의 실존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이해에 있어 “사랑 의 역사”에서 알 수 있듯, “서로 간의 공동체”가 대체로 배경으로 등장한 다.14)

 

    9) Kierkegaard, Abschliessende unwissenschaftliche Nachschrift zu den philosophischen Brocken, Erster Teil. 198.

   10) Kierkegaard, Abschliessende unwissenschaftliche Nachschrift zu den philosophischen Brocken, 249.

   11) S. Kierkegaard, Einübung im Christentum (Jena: Diederichs Verlag, 1933), 195.

   12) “(공동체에 있어)각 개인은 공동체를 보증한다. 청중은 키메라이다. 공동체에서 개인은 거시세 계를 질적으로 반복하는 소우주이다. 좋은 뜻에서 여기서 하나를 알면 전부를 안다(unum noris omnes)는 말이 적용된다.”(Kierkegaard, Einübung im Christentum, 390).

    13) S. Kierkegaard, Die Schriften über sich selbst (Düsseldorf/Köln: Eugen Diederichs Verlag, 1951), 115.

    14) 이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다음을 참조하라. 장호광, 『상호주체성과 기독교윤리학』 (파주: 한국학술 정보, 2021), 324-53. 

 

III. 실존적 진리에 있어 ‘정직성’과 ‘교정’의 중요성

 

키에르케고어는 교회를 향한 공개적인 공격에서 자신의 본래적 주제 인 ‘실존적 진리’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가 기독교에 대한 비판에서 얻고 자 한 것은 무엇인가?

그의 교회에 대한 비판은 사실 교회 자체를 부정해 서 나락으로 떨어뜨리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보면 단순하며 소박 한 소망인 ‘정직’과 ‘진실’이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 간단히 말해서 나는 정직을 원한다. 사실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런 좋은 자가 아니며, 주어진 기독교적 관용과 마주하여 기독교적 엄격함이 묻어나 있 지도 않다. 어떤 식으로든 나는 온화하지도 않고 엄격하지도 않다. 나는 인간의 정직을 원할 뿐이다.” 15)

 

따라서 키에르케고어는 실존적 진리에 대한 자신의 질문을 거대 담론 의 형식을 취해 제기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의 정직성에 초점을 맞 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진리의 증인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자신의 작품 “순간”에 있어서도 공개적으로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르 기를 꺼려한다.16)

이렇게 그는 기독교와의 공적인 투쟁 동안 자신의 그리 스도인 됨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기존 기독교와의 연대를 표 명했으며 본래의 기독교적인 것에 주의를 환기시키기를 원한다.

이런 간 접화법을 동원한 키에르케고어의 전략은 실존의 진리와 관련하여 오직 정직을 드러내는 데 있다.17)

 

   15) Kierkegaard, Der Augenblick, 48. 또 다른 곳에서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나 는 정직함을 원한다. 이런 정직을 위해 나는 모험을 감행할 것이다 … 왜냐하면 나의 이 도전이 하 나님을 기쁘시게 하리라는 사실을 완전하고 행복하게 확신하기 때문이다.”(Kierkegaard, Der Augenblick, 51).

   16) “나는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지 않으며,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말하지도 않는다.” (Kierkegaard, Der Augenblick, 328).

    17) 키에르케고어의 간접화법은 “결국 당시의 기독교계가 단순히 역사적인 객관적 지식으로만 예수 에 관한 신앙을 추상화한데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반박이다 … 따라서 키에르케고어가 간접전달이 라는 방도를 사용할 때 그것은 지식을 전달받은 자의 내면에서 진리가 주체적으로 자각되도록 하 기 위한 수단이었다.”(심민수, “키에르케고어의 실존적 주체성의 교육적 함의,” 「교육문제연구」 21[2004]: 61). 

 

기독교의 갱신을 위해 키에르케고어는 구체적인 실존 속에 있는 믿음 외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것이 “Entweder-Oder”(이것이냐 저것 이냐)에서 “순간”까지 이르는 그의 전체 작품에서의 일관된 논점이다.

그의 기독교를 향한 비판의 요점은 한편으로 객관적인 기독교에 맞선 논쟁 이고, 다른 한편 실존 속에 있는 믿음의 현실화에 대한 촉구이다.

사실 정 직에 대한 요구 자체는 부정적이자 긍정적이며, 파괴적이자 새롭게 하는 역설을 내포한다.

“여기서 변증법적으로 방어와 공격은 동일하다는 사실 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18)

비록 키에르케고어가 당시 활동했던 자유사상가들보다 더 급진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일관된 관심은 정직과 더불어 그리스도인 으로서 ‘됨’(becoming)과 ‘함’(doing)의 조화와 균형에 맞추어져 있다.

이런 관심은 결국 칼 야스퍼스(Karl Jaspers)에 의해 논쟁거리가 되었다.19)

즉, 그는 키에르케고어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오로지 정 직에만 관심을 둔 것으로 기독교의 본질에서 비켜서있음을 지적한다.

 

“키 에르케고어는 기독교를 위해 기독교인으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 인간으로서 싸우고 있다 (중략) 따라서 키에르케고어는 철저하게 기 독교의 순교자로 드러나지 않는다.” 20)

 

하지만 그렇다고 키에르케고어가 기독교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은 무엇보다 그의 작 품, “순간”을 포함해 다수의 작품에서 확인된다.

정직은 키에르케고어의 다양한 작품에서 ‘간접전달’ 방식의 지배적인 관점이다.

“클리마쿠스”(Climacus)는 다음의 질문을 제기하는 비그리스도인으로서21) 정직하게 자신을 설명한다.

 

    18) Kierkegaard, Der Augenblick, 105.

    19) Karl Jaspers, Der philosophische Glaube angesichts der Offenbarung, (München: R. Pipper & Co. Verlag, 1962), 513.

     20) Jaspers, Der philosophische Glaube angesichts der Offenbarung, 513-14.

     21) S. Kierkegaard, Abschliessende unwissenschaftliche Nachschrift zu den philosophischen Brocken, Zweiter Teil, hrsg. von Emmanuel Hiersch (Düsseldorf/Köln: Eugen Diederichs Verlag, 1957), 331. 

 

“나는 어떻게 기독교인이 되는가?”

 

이 질문에 당시 기독교에 대한 공격이 담겨 있는데, 이는 기독교 지 역에서 태어난 사람은 자기 의사에 관계없이 기독교인이 될 확률이 더 높 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군중 내지 대중 속에 속해 있다 는 소속감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착각하는 소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 하다.

때문에 키에르케고어는 이 작품에서 비기독교인을 문학적 형식으 로 표현함으로써 독자 자신이 참된 기독교인인지 스스로에게 묻기를 바 란다.

이것은 클리마쿠스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대한 질문을 제기하 는 형식에서 더욱 심화된다.

키에르케고어는 기독교적인 것을 발전시키 는데 있어 일관되게 그리스도라는 이름과 일상적으로 통용되는 기독교 적 전문용어를 피한다.

이에 따라 믿음의 대상을 “스승”으로, 그리스도인 을 “제자”로 표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키에르케고어는 기독교에서 가장 일상적인 것, 즉 그리스도의 형상을 절대적인 역설로 비켜서있게 하여 환 상적인 것을 파괴하고, 정직한 결정을 내리게 하기 위해 자신을 먼 곳으로 이동시키거나 소외시키면서 신앙의 대상을 스승과 제자 관계로 설정하여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한다.22)

 

     22) “나는 정직을 원한다. 이것이 동시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인가? 그들이 기독교에 대해 정직하고, 경 의를 표하고, 거침없이, 공개적으로, 노골적으로 분개하고 싶다면 신에게 말하시오. 우리는 이런 권력에 고개를 숙이기를 원치 않으며 숙일 수도 없다 … 나는 정직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 직함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함께 갈 수 있다. 기독교에 대한 정직한 반항은 기독교가 무엇이며 기독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정직하게 고백할 때만 가능하다.”(Kierkegaard, Der Augenblick, 50-51). 

 

결과적으로 이런 소외 전술은 저자가 독자들에게 기독교의 반대자인 지, 변호자인지 공개하게 하며, 기독교를 공개적으로 포기하려는 사람들 에게 인간적 동정을 불러일으켜 다시 돌아오게 하려는 의도이다.

키에르 케고어는 또한 “훈련”에서도 소외의 전술을 사용하는데, 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 리라.”

 

에 대한 첫 번째 묵상에서다.

여기에서 그는 무엇보다 통찰력이 뛰 어난 자, 지성인, 목사, 철학자 등과 같이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의 거울에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비춰지는지를 보여주려 한다.23)

 

    23) 키에르케고어에게 당시 자신의 조국 교회 목회자들조차 비그리스도인의 한 형태로서 비춰진다. “키에르케고어의 눈에 비친 덴마크 국교회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왕의 관리인, 공무원 같은 존재들 이었다. 그는 당시의 목사들이 신을 섬기는 자들이 아니라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 ‘직업’을 가진 자들 이라 평가했다.”(김웅래, “키에르케고어의 그리스도인 되기,” 「누리와 말씀」 42[2018]: 265-66). 

 

키에르케고어 자신 은 또한 편집자로서 기독교적 정체성에 대한 묘사를 입에 달고 있는 작가 안티 클리마쿠스(Anti Climacus)와 즉시 거리를 둔다는 점에서 “훈련”에 서 간접적으로만 말한다.

간접 전달, 탁월한 키에르케고어의 전술, 소외, 비그리스도인들과의 담론 등에 함의된 의미는 다음과 같다.

신약의 의미에서 비그리스도인, 현 존하는 기독교의 의미에서 비그리스도인, 이들은 단지 믿는 척하는 자들 로서 기독교의 본래적 가치와 의미를 알지 못하지만 추후 지상의 구체적 인 실존적 삶속에서 기독교에 대한 정직한 인정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정 직은 실존적 삶 속에서의 반복되는 가르침에서 으뜸가는 위치를 점하며, 간접전달은 환상의 파괴라는 부정적 측면과 반복을 통한 정직의 재획득 이라는 긍정적 측면 모두에 기여한다.

또한

 

“간접전달은 구원의 진리가 주체의 내면을 형성하는 주체적인 지식으로 수용되도록 하려는 의도 속 에서 사용된 방도이다.”24)

 

    24) 심민수, “키에르케고어의 실존적 단독자 사상의 교육적 함의,” 「한국교육학연구」 10(2004):19. 

 

키에르케고어는 정직에 대한 자신의 요구를 두 가지 측면에서 외적인 개혁과는 구별했다.

그는 자신의 시대에 진행 중인 개혁 시도에 연루되는 것을 거부했는데,

   첫째는 그의 접근 방식의 특수성을 위태롭게 하지 않기 위해서였고,

  둘째로 그는 외부 변화로부터 어떤 것도 기대하지 않았기 때 문이었다.

예를 들어 국가 교회가 폐지되면 모든 것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당시에는 거부했고, 심지어 위험한 것으로 간주했다.

실존적 삶에서 믿음의 반복이 인식되지 않는 한, 교회와 국가를 단순히 피상적으로 분리하는 것만으로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 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자신의 기독교를 향한 공격이 갱신을 위한  신호이자 시작일 수 있다는 환상적 견해는 없었으며, 그의 후손이 그의 동 시대 사람들보다 훨씬 더 잘 대처할 것이라는 사실 역시 고려하지도 않았 다25).

무엇보다 그에게 갱신이 일어나야 하는 범주를 찾는 것이 중요했다.

키에르케고어는 정직성과 더불어 교회의 새로운 역사를 펼치려는 뜻을 품고서 계몽주의에서 당대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정신사적 흐 름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준다.

키에르케고어가 포이에르바흐(Ludwig Feuerbach)와 인연을 맺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그 관계는 매우 분명 하다.

비록 키에르케고어가 그를 적으로 여겼지만 실존적 진리를 주장하 는 데 있어 그와 일맥상통하는 측면도 있었다.

 

“포이에르바흐가 기독교를 공격한다는 기존 기독교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그리스도인의 삶이 기 독교의 가르침과 일치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인을 공격한다 는 것 또한 사실이 아니다.” 26)

 

그 역시 정직에 바탕을 둔 믿음과 관련하여 기독교를 비판할 뿐이다.27)

하지만 정직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주장은 반복을 거듭하는 규범화 가 아니라 실존적 상황과 여건에 따라 변화를 거듭할 수 있는 유연한 “교 정”(Korrektiv)에 맞춰져 있다.

교정적인 것은 규제나 규범을 정하는 권위 와는 거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계피 가루!

즉, 여기서 인간은 희생되어야 하는데, 나머지 사람들에 게 특정한 맛을 주기 위해 그것을 따라야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교정적인 것 이다.

불행한 오류는 교정적인 것을 적용하는 데 사용되는 사람이 참을성이 없어 교정적인 것을 다른 사람의 표준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모든 것을 혼동에 빠트리는 시도이다.28)

 

   25) cf.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202.

  26) Kierkegaard, Der Augenblick, 102

   27) cf. Wolfgang Struve, Die neuzeitliche Philosophie als Metaphysik der Subjektivität. Interpretationen zu Kierkegaard und Nietzsche (Freiburg: Diss., 1948), 238.

   28)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154에서 재인용. 152 조직신학연구 제41권 (2022년)

 

이렇게 교정적인 것은 권위를 가지고 규범화를 통해 일반화나 보편화 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화와 특수성을 고려한 유연한 변화를 추구 한다. 키에르케고어는 신약의 기독교를 참된 기독교의 표준으로 삼으며 기 독교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나는 기독교가 무엇인지 안 다.” 29)

 

이와 더불어 그는 하나님 자신이 당대 현존하는 기독교의 잘못된 행태를 교정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확신했다.

이것이 자신의 작 품과 자신에게 부여하는 정직한 한계 설정이며, 자신에게는 아무 권위가 없다고 말하는 이유이다.

이런 확신이 그에게 끊임없이 가해진 공격에도 물러서지 않고 굳건히 버티게 한 근간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진리의 증인으로, 예언자적 사명자로 언급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상황과 사태를 정직을 기반으로 있는 사실을 사실대로 증언하며, 나아가 기존 기독교는 참된 기독교가 아니며, 기독교가 가야할 길은 실존적 진리에 있으며, 그런 점에서 교회가 잘못된 길을 교정하는 이정표가 되기를 원할 뿐이다.30)

 

     29) Kierkegaard, Die Schriften über sich selbst, 11.

     30)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77 

 

그 러나 그가 이런 식으로 지적한 것은 교회의 전복이 아니라 단지 변혁을 위 한 ‘자극’과 다른 무엇이 아니다.

이제 실존적 진리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이 제기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실존과 관련한 반복된 “가르침”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하는가?

그리고 실제로 키에르케고어에게 “가르침”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가?

이는 시대 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분석의 배경과 관련하여 적절하게 제기될 수 있 는 질문이다.

사실 실존적 진리에 대한 질문은 신앙의 대상에 근거해 있 으며, 그 진리는 기독교의 미래를 결정하는 관점을 이루고 있다.

키에르케 고어에게 진리의 기준은 단순히 계시가 아니라 그 계시의 실존적 적용, 즉 그리스도인의 실존 속에 존재하는 이상과 실재, 사유와 존재의 일치에 있 다.

이것은 실존 속에서 계시의 획득이 우선이고 진리로서 계시 그 자체는 이차적인 “역사적 모습”을 뜻한다.31)

빌헬름 안쯔(Wilhelm Anz)는 이러한 반전에서 키에르케고어의 본질을 본다.

이것은 키에르케고어의 “예수 그 리스도와의 동시성” 32)과 실존적 진리에 관한 질문에서 이해된다.

 

      31) cf. Hermann Diem, „Dogmatik und Existenzdialektik,“ in: Symposion Kierkegaardianum, Copenhague, 1955.

      32) 키에르케고어에게 ‘동시성’은 다음의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하나는 ‘1800년 전 그리스도’는 ‘오 늘의 그리스도’와 동일하기 때문에 계시로부터의 역사적 간격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을 뜻하 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가 그때그때의 구체적인 상황 속에 있는 인간들과 동시대의 사람을 뜻한 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역시 그리스도와 동시대적 그리스도임을 뜻한다.”(장호광, “키에르케고어 의 철학사상에 있어 ‘동시성’의 신학적 의의와 그 적용성,” 「신학과 사회」 34[2020]: 4). 

 

IV. 성찰과 평준화의 시대

 

합리적인 세계 경험과 세계에 대한 학문적이며 기술적인 이해 과정에서 지성은 그 대상, 즉 “신 자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지식의 우주” 33)와 “우 리가 학문 및 특별한 기술적 지식이라 부르는 것” 34)의 영역을 경험한다.

여기서 지성은 자신이 인식하고 적용하는 법칙의 세계에서, 자신이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생산한 자신의 소유에 있음을 경험한 다.

따라서 이러한 생산품은 지성의 명예와 자부심을 형성한다.

그 지성은 있는 것, 그가 찾은 것에서 시작하지만 인식과 의지로 그것을 만드는 것이 그의 일이며, 그의 작품이다.

지성은 이것이 자신의 작품이라는 의식을 갖고 있으며, 이런 지성의 생산품들은 거대하고 무한한 것을 구성한다는 것을 인 식한다. 자신의 통찰력, 자신의 지식, 자신의 외적 소유, 자신의 권리 및 자신 의 행위의 세계.35)

 

    33)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21.

    34)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21.

    35)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14. 

 

헤겔이 계몽 자체와 동일시하는 이런 지적 성찰에 대한 각성은 종교와 일상적인 삶 사이의 소외로 이어지며 균열에 이르게 한다.

그에게 표상의 영역에서 믿고 사는 전통적 기독교의 시대는 사실상 성찰의 도래와 함께 끝났다.

헤겔은 한편으로 경건주의적 감정의 종교로 후퇴하고, 다른 한편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 의해 결정된 이해의 신학으로 변질되는 동시대 신학에서 이러한 쇠퇴를 확인한다.

이제 헤겔은 성찰의 도래의 결과로 생겨난 균열을 딛고 모순을 조화시 키는 것은 철학의 손에 달려 있다고 말하며 역사적인 성찰의 과정을 끝내기를 원한다.

일단 성찰이 지배하게 되면 전통적인 종교적 표상을 고수하 는 신앙은 즉시 힘을 잃기 때문이다.

 

“성찰이 종교에 파고들면 사유와 성 찰은 종교에 있어서의 표상과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적대적인 태도를 취 한다. 그러나 사유가 이렇게 시작되면 더 이상 멈추지 않는다. 그것이 관 철되어 성향과 하늘을 텅 비게 하고, 인식하는 정신과 종교적 내용은 개념으로 탈주한다.” 36)

 

이러한 개념으로의 탈주는 정신의 철학으로의 “기독교적 종교의 헤겔 의 고양” 37)이다.

그 정신의 철학은 개념적이고 사변적 사고를 이해하는 더 높은 수준의 성찰에서 기독교 교리는 합리적 사고의 언어로 번역되고, 그 과정에서 ‘표상’은 파괴되지만 내용과 이념은 보존되므로 성찰의 과정이 종료된다.

이 교리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중심에는 신의 무한한 정신이 인 간의 유한한 정신 안에 임하는 세계사의 원리로 정신의 철학에 의해 이해 되는 신의 성육신이 있다.

헤겔은 종교 철학에 대한 강의 말미에서 이에 대해 성찰의 관점에서 “종교는 철학으로 피난처를 찾아야 한다.” 38)고 역설 한다.

 

    36) G.W.F.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hrsg. von Lasson (Leipzig: Meiner Verlag, 1925), 224.

    37) cf. Karl Löwith, Hegels Aufhebung der christlichen Religion, in: Einsichten. Gerhard Krüger zum 60. Geburtstag (Frankfurt am Main: Klosterman, 1962), 156-203.

   38) Hegel, Vorlesungen über die Philosophie der Religion, 231. 

 

이러한 헤겔의 사상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격렬한 항의는 기독교의 철학으로의 도피 또는 지양에 의해 촉발되었다.

실제로 헤겔에게 성찰은 계몽과 합리주의의 시대, 믿음에 측을 지는 자율적이고 회의적인 사고라 는 시대의 술어이다.

그리고 역사적 필연성과 함께 믿음과 의식 사이의 간 격을 넓히며, 키에르케고어의 언어로 번역하면 ‘가르침’과 세속적인 ‘실 존’ 사이의 단절을 의미한다.

확실히 키에르케고어는 믿음과 실존 사이의 균열을 헤겔과 다르게 보 며, 그는 결코 헤겔처럼 신에 대한 주관적인 책임으로부터 추론하지 않지 만 믿음과 실존 사이의 실제적 균열이 자신의 교회 비판의 출발점임을 보 여준다.39)

반복에 관한 질문제기는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관념주의 철학에서 자율적이며 회의적인 ‘시대’로 가는 도상에 놓여 있다.

그러나 헤겔에서 키에르케고르어로 가는 도상에서 믿음과 ‘의식’ 사이의 성찰로 인한 균열에 관한 질문은 이제 본질적인 변화를 겪는다.

이것이 바로 키에르케고어의 시대에 통용되는 이해이다.

키에르케고어에게 성찰은 학문적인 계몽, 합리적 회의주의, 이해의 성 찰 및 형성의 시대를 뜻한다.40)

그리고 그에게 성찰의 진보는 자연과학의 진보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는다.41)

 

     39) “키에르케고어가 살던 시대의 유럽, 그 중에서도 덴마크는 기독교 교파로 말하면 루터교의 영향권 아래 있던 사회였고 당대의 사회를 이끌고 가던 지성 사회의 주류는 헤겔의 사변적 철학과 합리주 의에 깊이 빠져있었다. 키에르케고어가 보기에 사변(speculation)과 합리주의(rationalism)는 개 인이 진정한 단독자로 실존하는 것을 저해하는 독소적인 사상들이었다. 가장 심한 경우가 헤겔에 게서 나타난다고 보았다.”(심민수, “키에르케고어의 실존적 단독자 사상의 교육적 함의,” 7).

    40) Kierkegaard, Abschliessende unwissenschaftliche Nachschrift zu den philosophischen Brocken, Zweiter Teil, 320        41) 자연 과학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전반적인 부정적인 태도는 그가 믿음을 자연 과학의 결과와 관 련짓는 것에서 오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는 객관화하는 학문적 태도를 신과의 관계로 전이시 키는 것에 저항하여 신을 현미경으로 찾으려는 학문적 대상화에 강한 이의를 제기한다. cf. S. Kierkegaard, Eine literarische Anzeige, hrsg. von Emanuel Hiersch (Düsseldorf: Eugen Diederichs Verlag, 1953), 135. 

 

실제로 성찰은 자연과학적 범주를 인 간의 일반적인 자기 이해로 옮겨 놓는다.

키에르케고어에 따르면, 성찰의 시대에 우리는 학문적, 객관적, 산술적 및 계산적으로 태도를 취한다.

이것은 인간의 지성적 성찰의 진보와 함께 “윤리적인 것의 원초성” 42)이 상실 되었다는 사실에 의해 입증된다.

키에르케고어는 이러한 윤리적인 것의 원초성을 일반적인 의미와는 다르게 “신 앞에서” 인간의 무조건적인 개인적 책임에 대한 의식으로 이해한다.

이런 신 앞에서 실존적인 존재는 키에르케고어가 인간을 “정신” 43)으로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성찰의 시대에 이성적이고 학문적인 세계 해석의 우위에서 이것이 위협 받고 있다고 본다.44)

그러므로 문제는 우리가 자신을 인식의 닫힌 세계에 서 학문적이며 자연주의적으로 이해하는 성찰 속에서의 자기 이해이다.

여기에 키에르케고어와 헤겔의 차이점이 있다.

성찰로 인한 신앙과 실존 의 단절은 헤겔의 종교적 표상과 이성적 사유에 위기를 가져온다.

이 문제 는 키에르케고어에게도 공명하지만, 성찰의 시대에 실제로 비판적인 것은 “하나님 앞에서” 주관적 및 윤리적 책임의 해체이다.

이어서 키에르케고어는 이 시대의 두 번째 특성인 “평준화”에 도달한 다.

키에르케고어는 평준화를 넓은 의미에서 신 앞에서의 개별적 실존에 관한 추상으로 이해한다.

성찰의 시대에 인간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실존적인 관계에 대해 무관심하다.

인간은 시간적인 것, 다만 시간적인 것 으로서 세속적인 것과 마주한다.

 

“우리 시대의 불행은 바로 그것이 시간 으로 된 것, 시간성일 뿐이다.” 45)

 

인간간의 대면은 순전히 세속적인 방식 으로 이루어진다.46)

 

    42) Kierkegaard, Eine literarische Anzeige, 68.

    43) cf. S. Kierkegaard, Krankheit zum Tode (Hamburg: Reinbek, 1964), 43.

    44) Kierkegaard, Eine Lieterarische Anzeige, 103. “그러나 성찰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님을 끊임 없이 상기해야 한다.”(Kierkegaard, Eine Lieterarische Anzeige, 118).

    45) Kierkegaard, Die Schriften über sich selbst, 97.

    46) Kierkegaard, Eine Lieterarische Anzeige, 83. 

 

성찰의 시대가 평준화의 시대가 되는 것은 세상 질서 의 종교적 정당성이 해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평준화의 과정은 단 순히 하나님과의 실존적 관계의 해체가 아니라 “신 앞에서”(coram deo) 를 “대중 앞에서”(coram publico)로 대체하는 것이다.

키에르케고어에 따르면 신 앞에서 개인의 존재를 잃어가는 것은 삶의 일반적인 사회화를 향 한 충동으로 나타난다.

평준화로 인한 인간의 “사회적 결합”은 이 시대의 기본적 특징이자 동시에 인간이 점점 더 “신에게 버림받은” 47) 존재로 자신 의 실존을 체험한다는 사실의 표현이자 결과이다.

키에르케고어에게 헤겔의 철학은 이제 성찰과 평준화 시대의 표징이 자 표현이다.

헤겔의 철학은 그 자체가 “회의주의” 48)인데, 헤겔의 “중재” 의 방법이 책임 있는 존재를 신 앞에 평준화시키는 데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헤겔에 대한 키에르케고르의 비판은 두 가지 점에 맞춰 져있다.

한편으로 그는 기독교의 계시 개념의 철학적 해석으로 계시의 유 일성을 상실하기 때문에 계시 자체를 평준화하는 것에 비판을 가한다.

세 계사 자체가 계시가 되고, 역사 속에서 계속되는 신의 ‘성육신’이 나타난 다.

그러나 세계사 전체가 신의 진리와 현실성을 드러내는 과정이라면 더 이상 초월적 출발점은 없으며, 좌파 헤겔주의자들이 내린 결론에서처럼 계시가 인간의 산물이자 인간적 사고의 논리적 결과일 뿐이다.49)

키에르케고어 비판의 또 다른 요점은 헤겔이 그의 “체계”(System)를 통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윤리적 책임을 해소시켜버린다는 것이다.50)

 

     47) “강도와 사나운 짐승들을 두려워하여 사막에서 큰 카라반을 타고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처럼, 이제 개인은 신을 떠났기 때문에 실존 앞에서 두려움에 떤다. 그들은 큰 무리 안에서만 살아가려 한다.” (Kierkegaard, Abschliessende unwissenschaftliche Nachschrift zu den philosophischen Brocken, Zweiter Teil, 60).

    48) Kierkegaard, Abschliessende unwissenschaftliche Nachschrift zu den philosophischen Brocken, Zweiter Teil, 11.        49) S. Kierkegaard, Das Buch Adler, hrsg. von Walter Rest (Köln/Olten: Verlag Hegner, 1951), 627.

     50) Kierkegaard, Abschliessende unwissenschaftliche Nachschrift zu den philosophischen Brocken, Erster Teil, 130. 

 

인간은 시간의 장난감이 되고, 시간적 “순간”, 즉 세계사적 과정의 한 순 간이 된다.

키에르케고어는 헤겔이 신을 세계사의 ‘주인’이나 ‘주체’로 이 해하고자 하는 것을 비판한 것이 아니라, 그가 역사 속에서의 신적 정신의 영향과 현존을 “체계”의 형태로 묶어두었다는 것에 향해있다.

키에르케고어에게 바로 이것이 헤겔을 실제로는 무신론자로 만드는 이유이다.

폐쇄 된 인과관계인 체계 자체는 신 앞에서 개별적 실존과 인간의 행위를 위한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사실 성찰과 평준화는 기존 사회 구조와 기독교 내에 스며들어 내면에 서 존재하는 것을 부식시켜 기독교 세계를 죽은 유충으로 만드는 침묵의 힘으로 작용한다. 종교적 개념은 여전히 사용되지만 신 앞에서의 실존적 인 것은 죽어간다.

그러나 이것은 기독교 일반과 종교적 정당화에 대한 성 찰과 평준화에 반발해 다가오는 ‘세계 변혁’의 발판이 마련된다.

성찰과 평준화는 공적으로 신에 맞서 인간이 모든 가치의 척도가 되는 새로운 시 대로 안내하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이 세계 변혁이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것이라고 예상했고,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을 구세계의 반전으로 이해했다.

키에르케고어는 프랑스를 시작으로 유럽 전역에 영향을 끼친 자유주의 운동으로서 ‘1848년’의 혁명운동을 이 변혁의 시작으로 보았다.

이로 부터 그는 1846년에 쓰여 진 “Literarische Anzeige”에 대한 자신의 모든 전제가 확인되었음을 보았고, 1848년을 자신의 일생에서 유일한 “승리” 51) 로서,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의 전체 작품에 있어 엄청난 정당성을 이룬 것 으로 느꼈다.

헤겔의 정신 철학에서 기독교의 객관적 진리의 보존으로 이 어지는 동일한 역사적 현상인 성찰은 평준화와 더불어 키에르케고어에 의해 세계 변혁을 향한 역사적 운동으로 이해된다.52)

 

     51) Kierkegaard, Die Schriften über sich selbst, 64.

    52) Kierkegaard, Die Schriften über sich selbst, 65.

 

또한 성찰은 교회의 선포와 가르침을 평준화한다.

키에르케고어의 견 해에 따르면, 이러한 평준화는 교회의 가르침과 선포가 성찰에 갇힌 사람 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 ‘객관적인’ 가르침을 찬양하는 ‘이성적인’ 인간들 에게 발생한다.

무엇보다 그는 기독교를 최소한 ‘그럴듯한’ 것으로 보이게하려는 시도와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 53)인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정통주 의를 비판한다.

선포는 성찰의 의식으로부터 더 이상 하나님의 약속과 주 장으로 이해되지 않고 합리성을 모색하는 인간의 말과 견해로만 이해된 다.

이렇게 성찰하는 인간은 모든 현상에 대해 세속적이고 객관적인 태도 로 행동하며, 기존 기독교에서 기독교적인 것을 말하고 듣지만 “아무 것 도 생각되지 않는” 54) 일반적이고 침묵의 동의만이 지배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적 삶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의 실존적 존재의 쇠락이며, 여기에 주어진 ‘객관화’는 오랜 역사적 과정으로 지속되어왔다. 키에르케 고어 당시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이 ‘가르침’을 객관적으로 유지하지만 그 러나 실존에서 벗어나는 방식으로 기독교 교리의 동일성에 머물며 안주 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그 결과 기독교는 ‘삶의 자리’(Sitz im Leben) 없 이 그저 이념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 진리가 된다.

객관적으로 기독교를 옹호하고 지지하는 것은 적절하지만, 이성적인 이유로 실존론적 결정을 피하게 해서는 안 된다.

키에르케고어는 자신의 시대 기독교에서 큰 기대를 접고서 암울한 현 실을 본다.

그는 교회의 구원을 향한 거대담론적 전개가 아니라 미시담론, 즉 성찰과 평준화의 은폐에서 벗어나 구원의 기쁜 소식을 일상의 실존 속 에서 찾으려 한다.

헤겔에서처럼 신과 역사의 객관화된 조화가 아니라 세 상을 변혁시키는 역할을 기대한다.

그런 세상의 변혁이 키에르케고어가 끝까지 고민해 온 성찰이 있는 평준화이며, 이것이 “영구적으로 지속되어 야 한다.” 55)는 것이다.

 

     53) Kierkegaard, Das Buch Adler, 490.

     54) “불행은 기독교적인 것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것이 아니라 … 대다수의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그것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는 방식으로 말해진다.”(Kierkegaard, Krankheit zum Tode, 103).

     55) Kierkegaard, Eine Lieterarische Anzeige, 94. 

 

객관적인 기독교에 대한 망상에서 벗어나고 세속적 으로 성찰하는 자기이해의 토대에서 세상과 타협하는 인상을 지울 때 비 로소 교회의 본질을 획득할 수 있다.

 

“구속받은 모든 개인은 신에게서 직접적으로 본질적인 것을 얻고 종교성의 완전한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이 다.” 56)

 

성찰의 시대가 지나가면 더 이상 이성이 아니라 믿음에 기초한 그 리스도인으로 남게 된다.

인간적 권위에 기초하여 기독교를 객관적으로 지지하는 계층의 사람들이 사라지면, 모두가 공동의 신앙적 뿌리를 두고 서 각자 개별적 믿음의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기독교는 더 이상 교리로서, 관찰의 대상으로,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로 존재할 수 없 으며, 반복이 역사적 필연이 된다. 기독교에 대한 논쟁은 더 이상 교리로서의 논쟁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 그리스도의 삶에 주의를 집중할 것이며, 기독교 가 자신의 삶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강조될 것이다.

세상은 자신을 굳건히 지 켜온 이 망상과 분열의 덩어리를 차츰 집어삼키고, 교리로서의 기독교에 대 한 의문만 남게 된다. 세계의 소요를 요청하며, 우리는 행동을 보고 싶어 한 다.57)

 

    56) Kierkegaard, Eine Lieterarische Anzeige, 98.

    57) Kierkegaard, Eine Lieterarische Anzeige, 74-75. 

 

키에르케고어는 ‘시대’를 진지하게 받아들인다.

그가 기독교적인 것의 본질을 나타내는 “역설”을 포함해 그의 주요 기본 개념은 그가 현대인의 성찰, 의식, 자기이해 및 평준화와 관련시켜 인간을 이해하고 사유한다는 점에서 도출된다.

교회에 대한 그의 비판은 교회가 기독교와 성찰 사이를 거짓된 방식으로 중재하고 화해시키며, 성찰을 성찰로 극복하려하며, 결 국 이러한 방식은 성찰도 기독교적인 것과도 멀어진다는 사실로 귀결되 며, 실제로는 정직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에 비켜서 있다.

키에르케고어는 시대와 기독교를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를 원한다.

그 래서 반복 또는 실존적 진리가 그의 신앙적 관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다.

교리로서 기독교는 죽은 이데올로기로서의 성찰의 부활로 이해된다.

따라서 실존적 진리는 시간이 영원에 상응하는 “순간” 58)으로서 신 앞에 진 지하게 대면하는 시대적 요청이다.

 

    58) 여기서 “순간이란 곧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도식대로 양화되어진 물리적 자연의 시간 속에 들어온 이질적인 시간 그래서 시간이랄 수도 없는 영원의 시간이다. 여기서도 순간은 시간과 영원이 서로 접촉하는 양의성이며 이런 양의성과 더불어 비로소 시간성(Zeitlichkeit)이 정립된다고 그는 말한 다.”(홍경실, “키에르케고어와 레비나스의 주체성 비교,” 「철학연구」 27[2004]: 150). 162 

 

키에르케고어에게 성찰의 시대의 객 관적 진리는 교리를 결국 이데올로기로 만든다.

하지만 성찰을 진지하게 받아들인다면 시대의 기본적 특징으로서 주관적 진리와 실존에서의 진리 를 요구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비판과 사상은 시대적 이해에 결부되어 있고, 인간의 자기이해에 의해 결 정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키에르케고어에 의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본질이 무엇인지, 진리에 대한 증거가 어디서 명확하게 드러나는지, 진리를 증거 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등의 질문에 답하는 문제는 그리스도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의 믿음의 결정에 달려있다.

키에르케고어에게 성찰과 평준화의 시대 속에서 기독교가 진리 안에 존재하는지에 대해 묻 는 것보다 개개 그리스도인의 실존적 삶의 정황에서 맞닥뜨리는 실존적 진리에 대해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더 정당성을 갖는다.

 

V. 참된 교회의 원형으로서 신약 교회

 

키에르케고어가 자신의 작품 “순간”에서 주로 의도하는 바는 역사적 이며 철학적인 해석이 아니라 보잘 것 없고 미천한 한 인간으로서 예수가 “당신 옆에 서”있는 동시성의 상황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는 굴욕을 당하고 급기야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그 당시 사람들에게 “스캔들”을 일 으키고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런 동시성의 상 황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산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제자 됨을 지향한다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된다.

하지만 교회의 역사를 객관적 인 눈으로 분석해보면, 비천의 존재 방식과 상태에 있어야 할 그리스도와 의 동시성의 존재 방식에서 점점 “멀어져”가며,59) 이 배도의 역사는 기존 기독교에서 그 절정을 발견한다.

키에르케고어에 따르면, 그리스도와의 동시성이 아니라 세상과의 동 시성에 빠진 현존하는 기독교는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 결과 교회뿐 아니라 세상도 상실하게 된다.

그리스도와의 동시성은 교회의 영 적 영역을 넘어 세속영역인 세상과의 동시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현 존하는 기독교에는 특별히 실존에 대한 요구가 없지만 개개 그리스도인 을 향한 실존의 요구는 시민적 의를 실현하는 영역에서 찾을 수 있으며60), 게다가 시민 정의의 실현 자체가 그리스도인의 존재의 표현으로서 이해 되는 방식에 의해 나타난다.

여기서 키에르케고어의 실존 사상은 우선 영 적 영역으로서 교회를 향해 있지만 세상 혹은 사회와의 밀접한 관련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저 하늘의 것과 이 땅의 것, 영원과 시간, 영적인 것 과 세상적인 것의 조화와 균형 잡힌 키에르케고어의 시각을 보여준다.

하지만 기독교적인 것과 세상적인 것과의 조화와 균형이지 동일성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61)

 

     59) cf.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173.

    60) Kierkegaard, Einübung im Christentum, 107.

    61) Kierkegaard, Einübung im Christentum, 207.

 

세상과의 동일성의 결과는 더 이상 기독교 적인 것의 현실적 선포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세상과의 동일성 은 믿음의 결단, 곧 실존 속에서 계시 획득을 저지한다.

따라서 말씀 선포 는 선포를 듣고 행하려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실존적 상황과 분리될 수 없 다.

세상과의 동일성은 계시에 대한 실존적 이해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따라서 키에르케고어는 고난 속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의 실 존 형태로서 신약의 교회를 표준으로 삼는다.

그러나 키에르케고어가 단 순히 고난의 연속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그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도 “표준”이 인정되기를 바라며, 동시에 실존 속에서 진리의 반복과 고 난 속에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를 원할 뿐이다.

실존 속에서 진 리의 반복은 교회와 그리스도인을 향한 시대적 요구이며, 역사적 간극과 객관적 확실성을 멀어지게 하는 새로운 시대를 암시한다.

신약의 교회에 있어 자기 십자가로서 제자도는 동시성의 상황에서 피할 수 없는 실존의 형태이다.

이런 신약 교회의 지평과 함께 키에르케고어는 다가오는 세대를 위해 교회의 자기 성찰의 행위를 유발하고자 한다.

교회의 본질과 제자도의 참 모습을 보여주려는 그의 작품 “훈련”에서 단순히 신약 교회의 모습만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해 교회가 지녀야 할 참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교회 변혁”을 의도한다.

비천한 상태에서도 그리스도를 따르려 는 신약의 교회는 세상의 삶속에서 ‘자기주장’을 의식적으로 포기하여 타 자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희생적 삶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키에 르케고어에게 ‘자기주장’의 포기는 교회의 역사를 계시의 연속으로 단순 히 이해하려는 경향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단순히 교 리적 진리로 해석하려는 모든 형태의 사변을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

키에르케고어가 교회에 미친 영향을 개혁을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 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가 추구했던 것은 ‘내부’로부터의 개혁이다.

이 를 위한 구체적인 목표는 하나님 앞에서의 투명성이며, 이는 자기주장을 버리는 모험을 통해 달성된다.

키에르케고어는 당대의 개혁 노력을 의심 했는데, 이는 분명히 자기주장의 정신에서 영감을 얻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실제적인 개혁은 미래의 일이지만 그가 교회에 미친 영향력은 그 의 시대적 관점과 분리될 수 없음이 분명해진다.

키에르케고어는 “훈련” 을 통해 이기심에서 벗어나 양보할 것을 요청하는데, 이것은 기존의 자기 주장에서 “죽는” 길을 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VI. 결론: 키에르케고어의 기독교 비판은 오늘날 무슨 의미를 갖는가?

 

지금까지 살펴본 교회의 쇄신을 지향하는 키에르케고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오늘날의 신학적·교회적 상황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

키에 르케고어의 교회를 향한 비판에 담겨 있는 긍정적인 의미에 대한 질문은 그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제기될 수 있다.

그가 당대의 교회에 대해 단호 한 방식으로 비판한 당시의 상황은 더 이상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키에르케고어가 국가 교회의 공적 붕괴를 예견하고 지지할 수 없다고 선 언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런 상황이 오늘의 상황과 균등하게 비교할 수 없 는 시대적 간격을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키에르케고어 당시뿐만 아니라 특히 오늘의 한국 교회 상황에서 시대를 초월해 타산지적으로 삼아야 할 점은 세상의 풍조에 떠밀려 분별없이 세속적인 것을 수용하는 교회의 “세 속화”이며, 목회자의 권위와 주체성에 포섭되거나 경도되어 하나님 앞에 서 단독자로서의 주체적 신앙의 약화 내지 상실이며, 복음의 본질인 하나 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실천적 믿음을 통해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의 외면 과 오로지 이 땅에서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웰빙적 신앙을 지향하는 왜곡된 이해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오늘의 신학적·교회적 상황에서 키에르케고어의 의미를 묻 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교정”의 개념에서 찾을 수 있다.

이런 교정은 그의 작품 “순간”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여기서 참된 기독교는 세상과의 급진 적인 단절을 특징으로 한다.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세상에서 기독교를 위 해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일상적 삶속에 서 늘 마주하는 “순간”에서 그리스도인의 실존은 세속에 저항하는 자들이 겪는 고난에 의해 결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키에르케고어는 시대와 상 황에 따라 다양하게 변하는 교정의 표징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역사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영향을 파악하려는 노력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적 지식의 대상 영역에 신을 세우는 지적인 성찰을 시대의 특징으로 삼는 것은 믿음과 지식 사이의 중재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사상에 반영 되어 있다. 지적 정직을 무시하는 중재 뒤에는 객관적으로 확보된 “인간 적” 신에 대한 욕구가 숨어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주장의 한 형 태이다.

반면에 키에르케고어에게 진지하게 성찰한다는 것은 믿음이 절 대적인 모험이라는 생각, 즉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앞에서 존재하기 위 해 이기적인 것과 단절하는 모험인 것을 의미한다.

키에르케고어에게 실 존적 진리, 반복, 믿음 속에서의 실존은 시대를 반영하면서 동시에 초월하 는 계시 자체에 의해 요구되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계시는 인간이 진 리 안에서 존재할 가능성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키에르케고어의 중재에 대한 항의는 기독교와 세계의 중재, 또 는 세계의 객관적 기독교를 이용하려는 시도와 평준화를 반영하려는 기 존 기독교의 기만에 대한 반대이기도 하다. 그에게 긍정적인 의미는 평준 화 시대에 기독교적인 것이 비기독교적인 세계로 확장되는 형태로서 제 자도가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제자도는 실존적 진리의 한 형태이며, 평 준화 시대에 선포의 한 형태로서 실존 속에서의 믿음의 반복과 마찬가지 로 필수 과제이자 요구이다. 교정의 관점에서 요약된 키에르케고어의 획기적인 사상은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초기 칼 바르트(Karl Barth)에 대한 키에르 케고어의 영향은 잘 알려져 있으며,62) 그 영향력은 오늘날까지도 계속되 고 있다.

 

     62) cf. Diem, Die Existenzdialektik von Sören Kierkegaard, 2.

 

여기서 추구하는 실존신학의 특징은 하나님의 면전에 마주 서있 게 하는 것과 신약성서의 실존적 해석이다.

키에르케고어는 인간 예수 안 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라는 교리 앞에 멈추어 서서 “내 앞에(pro me) 계시”라는 사실로부터 기인하는 실존적 지평이나 해석을 지향한다.

실존적 해석은 인간의 실존 방식이나 자기 이해를 토대로 해서 신과 계시 에 대해서 말할 수 있다는 원칙에 근거한다. 형이상학적 가르침의 객관적 신앙에 대한 키에르케고어의 항의가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

그리고 키에 르케고어가 미천한 자로서 이 땅의 예수를 바라보는 방향은 기존 기독교에 내재해 있는 비진리와 하나님에 맞선 자기주장에 대한 투쟁을 향해있다.

키에르케고어의 교회에 대한 비판은 계시(예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인과 교회 자체의 실존 형태로 반복되지 않는다는 목소리에서 절정을 이 룬다.

그러나 그의 교회에 대한 비판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니라 긍정적 ‘쇄신’을 위한 역설적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그는 자신 의 시대에서 기독교의 위기를 드러냄으로써 기독교의 실존을 명료히 하 며, 이를 ‘역설’과 ‘반복’, ‘동시성’ 등의 개념으로 다양하게 지적했다.

모 든 시대,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와 동시대적인 본래적 관계를 갖고 있으며, 실존 속에서 진리의 반복은 각 시대에 맞는 새롭게 설정되는 획득의 결과 이다.

이에 따라 키에르케고어는 기독교에 대한 자신의 비판에 대한 실제 적인 기준과 근거를 얻는데, 그것은 “1800년은 계속해서 이어져가야 한 다”는 사실이다.

키에르케고어의 사상에 흐르는 기본 논지는 ‘동시성’과 ‘시대’가 불가 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성찰과 평준화의 시대에서 교 회와 개개 그리스도인이 실존적으로 존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키에르케고어의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지향하는 바이며, 성찰과 평준화의 시대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실존하는 모험을 감행하는 목표가 어디인지에 답을 제공한다.

결국 키에르케고르의 작품은 개인에 대한 실존적 호소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교회사적 의의와 중요성을 일으키려는 의도로 쓰여 졌다고 평가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더구나 키에르케고어에게 “순간”은 그리스도인 의 개별적 “신앙의 결단” 63)의 범주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 시간을 의미한 다.

 

     63) 키에르케고어는 ‘신앙의 결단’을 “기독교의 ‘객관적’ 진리가 주관적 진리로 되어가는 과정으로 표 현 한다 … 진리는 오직 주관적 실존의 행위에서 해명될 뿐이라고 말한다.”(장호광, “키에르케고어 의 철학사상에 있어 ‘동시성’의 신학적 의의 및 그 적용성,” 21).  

 

이것이 키에르케고어가 교회에 대한 공개적인 공격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제목을 “순간”으로 정하는 이유이기도 하며, 이를 통해 기존 기독교 에 “진리”를 되찾으려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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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Kierkegaard’s Criticism of Christianity, Its Present Significance and Application

Ho Koang Jang (Anyang University, Assistant Professor)

In the past, the Korean church was recognized as a major force in social change by non-believers by playing the role of light and salt in the world. However, after Corona 19, when it is revealed that the church has not properly followed the quarantine rules, the Korean church faces the sad reality of being condemned by non-believers. In this situation, it is necessary to reflect Kierkegaard’s stinging criticism of the national church in his homeland, Denmark, as it is in today’s Korean church and use it as a mirror. This is because the situation of the church at Kierkegaard’s time and the situation of the church in Korea today are similar in many ways. Among them, the “secularization” of the church, the weakening or loss of the subjective faith of ordinary believers as a single person before God by being subsumed by the authority and subjectivity of the pastor, and the practical faith of God’s love and neighborly love, the essence of the gospel The commonality can be found in the loss and the distorted understanding that is directed towards the well-being of living well and eating well on this earth. Accordingly, this thesis seeks to find the justification and validity of a new application to today’s Korean church by recalling the theological  ideas contained in Kierkegaard’s criticism of Christianity for the purpose of restoring the status and honor of the recently fallen Korean church. To this end, this paper, including “Introduction,” “Existential truth as a basis for attack on the church,” “The importance of honesty and correction in existential truth,” “The age of reflection and equalization,” “As the prototype of the true church, The New Testament Church,” “Conclusion: What does Kierkegaard’s critique of Christianity mean today?”

 

[Key words: Kierkegaard, Criticism of Christianity, Existential Truth, Honesty, Correction, Reflection and Equalization, New Testament Church]

 

 

[한글초록]

과거 한국 교회는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써 세상 사람들로부터 사회 변혁의 주체 세력으로 인정받았지만, 코로나19 이후 교회를 중심으로 관리, 감독이 부실한 곳에서 집단감염이 연이어 발생하 고 방역수칙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자 한국 교회는 세상 사 람들로부터 지탄과 혐오의 대상으로 추락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보게 된 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조국 덴마크의 국가 교회를 향한 키에르케고어 의 신랄한 비판을 오늘의 한국 교회에도 그대로 투영시켜 거울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키에르케고어 당시의 교회 상황과 오늘의 한국 교회 상 황이 다양한 측면에서 흡사한 점들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 히 세상의 풍조에 떠밀려 분별없이 세속적인 것을 수용하는 교회의 “세속 화”, 목회자의 권위와 주체성에 포섭되거나 경도되어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로서의 주체적 신앙의 약화 내지 상실,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 사랑과 이 웃 사랑의 실천적 믿음을 통해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의 외면과 오로지 이 땅에서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사는 웰빙적 신앙을 지향하는 왜곡된 이해에 서 그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에 따라 본 논문은 최근 추락한 한국 교회의 위상과 명예를 회복할 목적으로 키에르케고어의 기독교 비판에 담겨 있는 신학적 사상을 소환 하여 오늘의 한국 교회에 새롭게 적용할 당위성 및 타당성을 찾으려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서론”을 포함해 “교회에 대한 공격의 토대로서 실존적 진리,” “실존적 진리에 있어 정직과 교정의 중요성,” “성찰과 평준화의 시 대,” “참된 교회의 원형으로서 신약 교회,” “결론: 키에르케고어의 기독교 비판은 오늘날 무슨 의미를 갖는가?”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제시해 보았다.

 

[주제어: 키에르케고어, 기독교 비판, 실존적 진리, 정직, 교정, 성찰과 평준화, 신약 교회]

 

 

 

 

조직신학연구 제41권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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