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 차 >
1. 서론
2. 본문
1) 경건주의와 데미안의 성장 탐험
2) 정신분석학에 의지와 무의식의 해방
3. 결론
1. 서론
헤르만 헤세(Herman Hesse)의 삶에서 1차 대전을 전후한 시기는 전쟁이라는 정치적 사건 외에도 아버지의 사망과 아내의 정신 불안 증세 등 개인적인 차원에 서도 그에게 많은 변화가 생겨난 시기라 할 수 있다.
실제 그는 1961년부터 약 1년 6개월의 기간 동안 랑(Lang) 박사를 만나 정신분석 치료를 받기도 하였으며 이 시기에 치료 방법의 하나로 그림을 시작하였다.
공적인 세계대전과 사적인 가 정사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그의 글쓰기는 이전의 아름다운 문체의 추구를 벗어나 게 되었고 모든 문제의 근원을 내면으로 접근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게 된다.
그는 내면이 곧 외면이라는 생각으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최상의 목표가 자 기 내면의 길을 추구하는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은 시간과 공간은 다를지라도 한결같이 자기 구현의 길 을 가는 인물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가 묘사하는 인물들의 자기 구현의 과정 에는 내면세계의 변화를 드러내기 위한 꿈이나 변신 모티프의 사용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들의 자기 구현의 여정은 초기 양극성의 세계에 빠져 있는 모습에서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의 문제를 인식하고 대립된 두 세계가 결국에는 하나로 존 재함을 인식하는 과정으로 변모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세계의 단일성을 인 식하고 단일성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수용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양 극성 극복과 단일성 인식의 배경에는 서구의 이원론 사상 혹은 기독교와 근대사 회가 만들어 놓은 도덕성에서 벗어나려는 목적이 깔려있다.
이점에서 헤세가 그 리는 자기 구현은 신앙 문제와 종교적인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헤세에게 자기 구현은 신성성에 대한 종교적 체험이 개인에게 가져다주는 환희만큼 세상을 살아가고 인식하는데 있어 필요한 과정으로 인식되 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헤세가 이렇게 내면의 길을 탐색하는 작가로 변하게 된 계기에는 무엇보다 그 가 경험하였던 심리분석의 영향과 심리학이 큰 힘을 발휘하였던 20세기 초 유럽 의 사회적 환경, 그리고 동양 사상에 대한 접촉이라는 요인이 작용하였다.
헤세 는 자기 내면에 대한 탐색이 개인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 문제 해결에서도 의미 있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다.
이처럼 그는 인간이 자기 삶에 대해 지녀야 할 첫 번째 태도가 바로 참다운 자기를 발견하는 일이며, 이를 1차 세계 대전이라는 외부적 환경과 연결하여 성찰하는 자세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헤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데미안(Demian)은 이러한 그의 인식 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평가된다.
데미안은 싱클레어라는 한 인물이 청년기의 수많은 방황이나 좌절을 통해 “정서적 충동과 정신적 편력을 경험하며 그 속에서 아직 미성숙한 스스로에게 지 속적으로 성찰의 질문을 던지는 자아인식의 과정”(전영애 211)을 담고 있는 자 기 내면에 대한 성찰기록으로서 독일을 대표하는 성장소설(Buldungsroman)이 다.
이야기는 주인공 싱클레어의 자전적 회고 형식을 띠고 있으며 어둠에서 밝 음, 그리고 대극적 전일사상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싱클레어의 여정을 그 리고 있다.
싱클레어의 변화는 “1차 세계대전과 유럽정신의 몰락이라는 시대적 배경”(박광자 18)과 맞물려 개인의 자아 탐색과 자기 구현의 완성과 그것이 지니 는 사회적 의미까지 확장되고 있다.
이 소설에 대한 연구들은 중년에 접어든 헤 세가 초기의 서정적 세계로부터 인간 내면에 관한 관심으로 변화하였음을 극명하 게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공통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에서 헤세의 변화의 밑바탕에 개인적 차 원에서 그가 느끼는 ‘죄의식’이 자리하고 있었으며,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 으로 당시의 주도적 이념이었던 경건주의에 기반한 기독교 정신의 교리만큼이나 정신분석학과 같은 과학적이고 인간적인 사유 방식, 그리고 경건주의나 영성적 사유를 택한 것으로 볼 수 있음을 데미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논의는 정신분석에 대한 그의 관심이 무의식에 대해 지적인 호기심과 더불 어 자신의 정신 병력, 그리고 아내가 점점 정신적으로 이상해져가는 모습을 곁에 서 지켜보면서 걱정과 함께 자신에게 어느 정도 원인이 있지 않을까 하는 죄책감 이 이유가 되었음을 전제로 한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작가로서 내면으로의 길에 대한 헤세의 선택은 자신의 죄 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절대적 기준 이전에 스스로 자기를 객관화하고 깊 이 있게 이해하려는 목적이 있으며 이러한 목적 실현에 정신분석 이론이나 동양 적 사유가 적절한 수단으로 선택되고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헤세의 태도 변화의 원인에 죄의식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선행연구와 차별성을 지니며, 작품에 담겨있는 작가의 의도를 해석하는데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의의를 지닌다.
2. 본문
1) 경건주의와 데미안의 성장 탐험
데미안은 자아 발견, 영성, 급변하는 세상에서 의미 찾기의 복잡성을 탐구 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경건주의의 영향에 특히 중점을 둔 종교적, 철학적 주제의 탐구라 할 수 있다.
경건주의는 헤세의 가족관계와 성 장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한 축이었다.
목사였던 외할아버지 그리고 러시아 태생의 선교사로서 젊었을 때 인도에서 선교활동에 종사한 적이 있는 금 욕적인 구도자였던 아버지의 존재는 헤세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박광자 24).
헤 세 연구자의 일부는 그가 어릴 때부터 부모와 그들의 경건주의적 태도로 인해 트 라우마를 경험하였으며 그것이 이후 그의 우울증과 관련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한 다.
본 논문은 경건주의가 헤세의 삶에 있어 억압적 요소이자 동시에 삶을 지탱 하는 버팀목이었음에 주목하고자 한다.
한마디로 헤세는 경건주의에 대해 양가 적 입장을 견지하였으며 데미안에서도 이러한 그의 태도가 잘 드러나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이러한 문제 제기에는 젊은 시절 헤세가 저항하고 비판하였던 것 이 경건주의 사상인지 아니면 그것을 주장하던 기성세대들의 모습인지에 대한 구 분이 필요하다는 의문이 자리하고 있다.
경건주의는 17세기에 형성된 유럽 개신교회의 종교운동으로 중세의 신비주의 적 종교관을 계승하면서 한편으로 당시 계몽주의와 첨예한 대립을 하였다.
일반 적으로 16∼17세기 영국에서 국교회에 반대되는 것으로 등장한 청교도 운동과 유사한 것으로 평가되며 “이념적으로 청교도 운동의 영향을 받은 새로운 종교운 동”(민성길 73)으로 볼 수 있다.
경건주의는 개인 내면에서 이루어지는 종교적 체험과 자연 체험, 그리고 신에 대한 내면적 체험을 위해 환상을 추구하는 특징 을 지닌다.
이들은 신앙을 교리문답에 기초한 신앙생활이 아닌 하느님과의 개인 적 관계 맺기와 그 속에 느끼는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경험을 중요시한다.
이들에 게 믿음은 지적인 문제가 아닌 신앙의 경험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헤세 가 경건주의와 이 소설의 서사를 엮는 주요 방법 가운데 하나는 싱클레어를 통해 이루어진다.
싱클레어의 자아 발견 여정은 그의 영적 각성과 깊이 얽혀 있으며, 개인적 경험에 대한 경건주의적 강조를 반영하고 있다. 싱클레어가 사춘기의 어 려움과 내면의 복잡성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경건주의의 영향은 신과 더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지적이며 정밀한 교리적 해석이나 이성과 형식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경건주의 적 신앙 추구의 모습은 작품 속 피스토리우스 신부와 싱클레어의 만남에서 잘 드 러난다.
그는 성냥을 켜서 그의 앞에 있던 벽난로 속의 종이와 장작에 불을 붙였다. 불꽃이 높이 솟았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불을 쑤석였다. 나는 그 곁, 낡아 올 이 풀린 양탄자 위에 드러누웠다. 그는 불을 응시했다. 불은 내 마음도 끌어당겼 다. 우리들은 말없이 아마 한 시간은 배를 깔고 타닥거리는 장작불 앞에 엎드려,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싯싯거리고 가라앉아 휘어지고 가물거리고 움칫거리다 마 침내는 사그라진 조용한 화염 속에서 잦아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데미안 138)1)
1) 논문에서 쓰인 작품 본문 인용의 우리말 번역은 헤르만 헤세, 데미안, 전영애 옮김, 민음사, 2009의 번역을 따르고 있음
두 사람은 일종의 배화(拜火) 의식을 수행하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의 전통적 인 신앙 활동과는 거리가 있다.
신학도인 피스토리우스는 성경책에 기반한 교리 문답의 방식이 아닌 “아가리 닥치고 배 깔고 엎드려 생각하기”(138)와 같은 철 학의 길을 싱클레어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러한 묵상(默想)과 나누기는 경건주 의가 중시하는 주관적 성령 체험에 대한 주요한 실천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실천은 주변 세계에 대한 관찰과 몰두가 갖는 힘과 연결된다.
타오르는 불길을 가만히 바라보는 행위, 즉 비이성적이고 자유로운 형상을 취하며 서로 얽히고 설 킨 기이한 불길의 형태에 몰두하고 그 경험을 함께 나누는 것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는 것을 보고, 그 분위기를 알게 되는 과정”(Borbely 17) 으로 설명된다.
이것은 싱클레어로 하여금 이러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만든 자기 내면의 의지에 대해 인식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가 날 수 있는 꿈을 꾸었음을 이야기하자 그 꿈이 갖 는 의미에 대해 길게 설명한다.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가 삶에 더해지는 방향 키와 같은 조절기를 스스로에게 고안해 낸 것이라 칭찬한다.
그는 그것이 싱클레 에게 일종의 구원의 발견 같은 의미가 있음을 강조한다.
구원에 대한 이러한 연 결 짓기 역시 경건주의적인 시각으로 해석될 수 있다.
경건주의자들에게 구원이 란 그 자체에 대한 확신의 문제라기보다
“구원받은 개인이 도덕적이고 거룩함을 지닌 채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진화”(마르틴 부버 78)
하는 삶을 사는 것으로 이해 된다.
즉 거룩한 삶을 살아가며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삶 그 자체로서 구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지금까지 삶의 보편적인 힘으로 살아가고 있던 싱클 레어가 배화 의식을 거친 후 날 수 있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 것은 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상승과 하강을 조절하는 새로운 힘을 자기 삶에 더한 것 이라는 점에서 구원 같은 발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헤세는 작품 속에서 경건주의가 갖는 실천적 삶의 방식을 활용하여 싱 클레어가 자기 내면에 이르는 길을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경건 주의는 싱클레어를 구속하는 환경적 억압의 배경으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
싱 클레어는 영적인 덕목만을 중요시하는 경건주의 가정에서 성장한 것으로 그려진 다.
마치 에덴동산 같은 분위기의 집에서는 모든 것이 명료하게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주어진 밝음의 세계나 그 외부 세계에 대한 의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부모님이 계신 집은 사랑, 올바른 행동, 도덕적 명확성, 깨끗함 등 선과 관련된 모두를 상징하는 세계인 것이다.
자연스럽게 싱클레어에게 그 밖의 공간은 이미 오염되고 타락된 세계로 인식된다.
싱클레어는 자신이 빛과 정의의 영역에 속해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속에서 안정감을 느낀다.
그는 크로머와의 사건을 통해 어둠의 세계로 끌려가기 전까지 이러한 평온함과 질서가 주는 세계 에 자기의 정신을 지배당하고 있다.
이러한 싱클레어의 가족 환경적 설정은 작가 헤세 자신의 유년 시절의 그것과 상응한다.
실제 많은 연구자들은 헤세 가족의 경건주의적 편협성과 청소년 시기 신학교의 경험 등이 그를 기독교, 특히 경건주의적 기독교 세계에 반발하고 충돌 하게 만들었음을 지적한다(Knapp 31).
이것은 가정과 학교에서의 교육이 헤세 의 지적 호기심이나 유희적 충동을 잘못된 것으로 간주하며 억압하고 그의 마음 에서 어둠이 자라나지 않게 하는 것만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외부적 억 압과 싱클레어의 내면적 충동 사이의 갈등은 소설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그의 꿈 에서 극명하게 묘사된다.
이 꿈들 중 가장 무서운 꿈, 내가 반은 미쳐서 깨어나는 꿈은 아버지를 습격하 여 살해하는 꿈이었다. 크로머가 칼을 갈아 내 손에 쥐여주고, 우리는 어느 가로 수 길의 나무들 뒤에 서서 누군가를 노리고 있었다.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나는 몰랐다. 그러나 누군가가 오고 크로머가 내 팔을 누르면서 내가 찔러 죽여야 하 는 것이 저 자라고 말했는데 그건 바로 우리 아버지였다. 그러다 잠이 깨었다. (데미안46)
인용문은 싱클레어의 내면에 이미 어둠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으며 그 힘이 강 해져 있음을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이 꿈에 대한 해석은 크로머로 대변되는 어둠 의 세계를 경험하고 그 세계가 주는 삶의 쾌락에 싱클레어가 눈을 뜨기 시작하면 서 아버지로 대변되는 밝음의 세계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이 꿈이라는 무의식적 기 제를 통해 표출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는 싱클레어에게 꿈 속 아 버지의 상징이 그가 강조하는 종교적 정신 자체인지 아니면 그것을 주입하는 그 의 태도인지의 문제가 중요할 수 있다.
만약 전자의 입장이라면 이 부분은 경건 주의적 기독교 사상에 대한 반감과 거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후자 의 경우라면 그러한 가르침을 실천하고 경험하는 방법론에 대한 저항과 거부라 할 수 있다.
논문은 후자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왜냐하면 꿈속에서 아버지를 살해하도록 강요하는 인물인 크로머의 등장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만약 싱클레어가 진정 아버지로 대변되는 세계 자체에 대한 거부와 욕망이 있었다고 한다면 아버 지를 살해하는 행위 역시 자기 스스로의 의지와 결단에 의해 이루어짐이 마땅하 다.
그래야만 외부적 억압에 대한 자기 주체적 저항이 성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에서 싱클레어는 전혀 자기 주도적으로 이 일을 진행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 장면에서 크로머는 싱클레어에게 또 다른 아버지와 같은 억압 기제로 작용하고 있다.
즉, 이 꿈은 어떤 특정 세계에 대한 거부나 탈주에 대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크로머와 같이 자기에게 부단히 강요되는 외부적 억압에 대한 싱클레어의 인식의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직 내면으로의 길 을 경험하지 못한 싱클레어이기에 이러한 외부 억압에 자기 중심을 내어줄 수밖 에 없는 불안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이 밝음의 세계인 아버지이건, 아니면 어둠의 세계인 크로머이건 싱클레어에게는 그들이 갖는 내용 자체보다는 그것이 자기에게 미치는 억압적 힘과 그것에 흔들리는 “자신의 불안정한 내면”(Roney 28)에 대해 싱클레어는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꿈은 아버지를 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두 억압 기제에 대한 발견의 순간에 깨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아버지 살해의 꿈은 경건주의적 기독교 세계에 대한 저항이 아 니라 경건주의가 강조하는 신앙의 개인화와 내면화에 대한 역설적인 강조로 해석 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 경건주의는 종교적 신앙을 신과 개인적 관계 로 볼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에서 “내면화와 개인화 그리 고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사이의 동료애’(Knapp 34)를 중요시하는 특징이 있다.
이들은 성경 말씀을 성직자가 일방적으로 해석하고 신자들이 그것을 그대 로 수용하는 방식으로 믿음을 경험하는 것을 거부한다.
자기 스스로 다양한 방식 으로 능동적 참여를 통해 신을 경험하고 체험하는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종교적 삶을 이상적인 신앙 활동으로 간주한다.
따라서 싱클레어의 꿈에서 아버지와 크 로머는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주입하는 그릇된 종교적 실천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된다.
이들에게 삶을 산다는 것과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주어지는 것에 대한 일 방적인 순종과 따름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을 수용한다는 것은 두려움과 공 포감에 굴복하여 자기를 내어주는 것에 불과한 것이며, 결과적으로 매번 또 다른 두려움의 대상이 등장할 때마다 피해 다녀야 하는 도망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헤세는 이러한 태도를 지양해야 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싱클 레어가 또 다른 억압 기제인 크로머에게 떠밀려 이전의 억압 기제였던 아버지를 살해하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고 꿈에서 깨어나듯 우리도 이러한 힘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자기 내면으로 향하는 여정의 첫 출발점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방법으로 싱클레어가 스스로 “타락, 고해, 구원, 거듭남 의 과정”(Malthaner 105)을 통해 자기 내면을 향해 걸어가는 개인적이고 주관적 인 내면 체험의 과정이 필요함을 헤세가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강조는 경건주 의가 이전의 개신교의 행태를 비판하며 주장하였던 신앙의 경험 중시와 같은 문 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건주의와의 연결성은 작품 속 데미안의 캐릭터가 갖는 의미에서도 쉽게 엿 볼 수 있다.
데미안의 캐릭터는 싱클레어의 영적 탐구의 촉매제 역할을 하며, 경 건한 멘토나 스승의 개념과 유사한 영적 안내자처럼 그려진다.
데미안은 싱클레 어가 기존의 종교적 규범을 넘어 신앙의 내적 차원을 탐구하도록 독려하는 인물 이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교리 준수를 넘어 하나님과의 인격적이고 변화적인 관 계에 참여하라는 경건주의의 요청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꼬마 싱클레어, 잘 들어! 나는 떠나게 될 거야. 너는 나를 어쩌면 다시 한번 필요로 할 거야. 크로머에 맞서든 혹은 그 밖의 다른 일이든 뭐든. 그럴 때 네가 나를 부르면 이제 나는 그렇게 거칠게 말을 타고, 혹은 기차를 타고 달려오지 못 해. 그럴 때 넌 네 자신 안으로 귀 기울여야 해. 그러면 알아차릴 거야. 내가 네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듣겠니? (데미안221)
소설에서 데미안의 역할은 싱클레어가 자신의 세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돕 는 안내자이자 싱클레어 인생의 길잡이다.
크로머에게 협박을 당할 때 그를 지켜 주고 지적 자극을 주는 존재다.
데미안은 싱클레어에게 다르게 생각하고 자신과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도록 지속적으로 자극을 주고 가르침을 전한다.
특히 견진 성사 장면에서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살아왔고 지금 무슨 생각 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다른 세계에 대해 느꼈던 감정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직시하도록 강요한다.
데미안은 싱클 레어의 가장 깊은 욕망을 뿌리 뽑고, 싱클레어가 어떻게 그 욕망을 억압해 왔는 지 여러 방식으로 보여준다. 견진성사 장면은 굉장히 심리학적인 순간인데, 데미 안은 사실상 싱클레어의 정신분석가 역할을 하며 싱클레어의 내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것을 밝혀내는 모습을 보인다.
이것은 또한 싱클레어의 미래 발전을 예고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인용문에서 볼 수 있듯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독립을 향해 나아가는 마지막 시기에도 곁을 지켜준다.
마침내 싱클레어가 독립적인 존 재가 되어 자유로워질 때 데미안은 그를 떠난다. 이처럼 데미안의 목적은 싱클레어가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싱클레어가 스 스로 세상을 판단하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면 데미안의 목적은 달성된 것이고, 그의 임무는 완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데미안 은 내면의 길을 찾아간 싱클레어의 삶에 더 이상 관여할 필요가 없으므로 그의 곁을 떠나는 것이다.
경건주의 측면에서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자신과 하느님 혹 은 성경의 가르침 사이의 “인격적 관계”(Breugelmans 31)를 인식하도록 하는 매개자의 역할을 한다.
경건주의는 기독교의 본질이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인격 적 관계에 있음을 강조하는 사상이다.
이러한 점에서 단순히 밝음의 세계가 제공 하는 편안함에 안주하며 세상에 대한 인식과 종교적 신앙을 키워가는 것이 아니 라 체험적이고 내면적 혹은 인격적 차원을 강조하며 이를 통해 세상을 수용하고 신앙을 바라볼 것을 강조하는 데미안의 모습은 경건주의가 갖는 중심 사상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카인과 아벨 이야기나 여러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을 언급하는 데미안의 태 도 역시 이러한 연장선에서 해석될 수 있다. 경건주의는 철저히 신학중심의 태도 를 견지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약 성경에 언급되는 교회의 역할과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말씀에 충실한 신앙생활의 근본이 된다.
여기에서 그들은 지나친 교리 논쟁에 몰두하거나 제도의 엄격성에 집착하는 태도 를 경계한다.
이들은 신앙 활동 전면에 있어 평신도들의 적극적이고 능동적 참여 를 강조하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실천 신학적 요소들을 내세운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카인과 아벨 이야기에 대해 자기 주석을 덧붙이며 그 의 미가 견진성사에서 다루어지는 것과 완전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는 경건주의에서 말하는 실천 신학적 태도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모 습들을 종합해볼 때 데미안은 그 당시 경건주의가 지닌 기독교와 실천 그리고 세 계 인식에 대한 입장을 지닌 이자 헤세가 경건주의에 대해 갖는 양가적인 태도를 반영하는 인물로서 해석될 수 있다.
2) 정신분석학에 의지와 무의식의 해방
데미안에서 경건주의적 기독교 사상만큼이나 싱클레어의 자기 구현의 길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정신분석학에 대한 작가의 의존을 들 수 있다.
선과 악의 문제는 헤세의 주요 관심사이다. 데미안에는 양극성의 통합 에 관련된 많은 사건과 상징들이 등장한다.
헤세는 만약 신의 모든 것이 빛을 가리킨다면 세상의 악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만약 신격 안에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악은 하느님을 모방하려는 노력, 즉 완전해지려는 시도 를 통해 자아를 소멸되어야 한다.
선과 악의 문제에 대해 너무 의존한 나머지 그는 칼 구스타브 융(C. G. Jung)의 제자인 랭 박사를 찾아가 72시간 동안 정신 분석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상담의 결과로 헤세는 데미안에서 어둠과 빛 사이의 투쟁을 철학적, 심리적, 미학적으로 그려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싱클레어 는 이야기가 전개됨에 따라 자신의 의식을 확장하고 어둠과 악의 세계를 이해하 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은 이전까지 부정적으로 간주하였던 것을 긍정적인 것 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된다.
헤세를 이토록 힘들게 하고 몰두하게 만들었 던 빛과 어둠, 선과 악의 양극성은 당시 유럽 사회의 주요한 축이었으며, 특히 1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강렬해지는 분위기였다.
형이상학적 실체로서 악을 인정 하지 않고 거부하는 이러한 흐름은 자신의 정신 속에 있는 부정적 요소와 특징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진다.
하지만 신격에서 부정적인 기질을 제거한다는 것은 융이 신격의 인간적 투영 물인 자아에서 ‘그림자’라고 칭하였던 것을 삭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융의 정신 분석 이론의 바탕에는 자아실현 혹은 개성화 개념이 핵심으로 있다(Neuer 9).
이것은 집단 무의식으로 상징되는 원형이나 자가(the Self)를 체험하는 것으로 이 과정에는 의식과 무의식, 빛과 어둠, 선과 악으로 대변되는 양극성이 하나로 통합되는 것이 수반되는 것이다(손창선 65).
융은 무의식에 억압된 성격의 부정 적 측면으로 자아(ego)에 의해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을 그림자로 규정한 다.
그것은 햇살이 비춰야지만 그 모양을 드러내지만 “그 자체로 이미 그늘이며 어둠의 실체”(융 2021; 74)다. 융은 그림자를 감춰지고 숨겨진 것처럼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에너지이자 추진력으로 설명한다.
그림자에 대한 그의 시각에서 알 수 있듯 빛과 어둠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관계에 대해 융의 입장은 20세기 삼위일 체론에 입각해 형이상학적 선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차이를 보인다.
그는 의식이 선과 악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면 무의식은 이에 대해 ‘자 세히 보라’는 답을 줄 것이라 말하였다(Kirkland 589).
그에 따르면 이 둘은 서 로를 필요로 하며, 최고는 최고이기 때문에 그 안에 이미 악의 씨앗을 품고 있는 것이다.
융에게 신은 의식적 영역과 무의식적 영역 모두를 포함하는 프시케의 총체로 서 자아에 상응하는 종교적 존재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종교적 신이라고 부르거 나 심리적으로 자아라고 부르는 이러한 초인격적 존재는 빛과 어둠 혹은 선과 악 의 세계 너머, 즉 완전무결한 절대적인 것으로 존재한다(Knapp 30).
하지만 빛 과 어둠,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도덕적 개념인 선과 악은 분화된 세계인 현세나 지상의 영역에서만 알 수 있다. 이러한 양극성은 판단, 가치관, 감정의 결과이자 지적 구성물이며, 신과 자아처럼 잠재적 내용을 외부의 힘에 투영한 것이다.
예 를 들어, 사람들이 신에게 기도하거나 자아에 몰입하려고 할 때, 그들의 전체 존 재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힘, 그들을 전인적인 완전한 하나로서 받아들이는 총체 성을 향해 외부나 내부로 흐르게 된다.
정신을 약하게 하는 긴장이 존재할 때, 구도자들은 고통이나 잘못이 무엇이든, 모든 것이 신 또는 자아에 존재하기 때문 에 그것들이 돌이킬 수 있고 수용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이 우주적 혹은 심리적 실체(entity)에 그들의 불안을 쏟아붓게 된다. 신성성을 경험하는 순간 구도자는 따뜻함과 광채를 만끽하게 된다.
성격적 요소가 자신의 전체 정신에 통합됨을 발 견하는 개인 역시 이와 비슷한 쾌감을 느낀다.
개인과 집단, 전체로서의 정신과 개별 부분 사이의 유동성은 연결을 만들어내고, 이것은 빛의 근원인 신 혹은 자 아와 단절되었다고 느끼는 순간 찾아오는 고립과 고독감을 대체한다.
융은 자신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려는 시도는 “심리적 불구 상태”(융 2023; 116)를 초래하게 된다고 본다.
만약 어떤 개인이나 집단이 악을 자신들의 것으로 인정하지 않게 된다면 그것은 곧 그들에게 치명적 위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는 데미안에서 싱클레어가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자신이 사과를 훔쳤다고 거짓말을 한 연유로 크로머의 협박을 받게 되고 결국에는 저금통에서 돈을 훔치게 되는 과정에서 잘 나타난다.
유치한 자랑으로 시작된 일이 거짓말과 도둑질로 이어진 것이다.
한순간 나는 더 이상 내일의 공포를 느낀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나의 길이 이제 점점 더 비탈로, 암흑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는 무서운 확신을 느꼈다. 나는 똑똑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나의 잘못에 이제 새로운 잘못들이 뒤이어질 게 틀림없다는 것, 누이들 곁에 내가 나타나고, 부모님께 인사하고 키스하는 것이 거짓이라는 것, 나만이 아는 운명과 비밀 하나를 지니게 되리라는 것을. (데미 안24)
이 사건의 중요성은 어둠, 즉 안이 더 이상 지적인 개념이나 단순한 도덕적 판단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싱클레어에게 그것은 “뒤이어질 것이 틀림 없는” 명백한 현실이 된 것이다.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협박이 가져온 공포와 불 안에 대처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부모님의 밝음의 세상, 빛 속에서만 살 수 없 는 것이다.
인용문에서 그는 이를 서서히 인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점에 서 크로머로 인해 발생한 외부적 사건은 싱클레어의 내적인 자아 변화를 촉진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일로 싱클레어는 악의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는데 그것은 그의 자아 밖에서 주어진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그에게 존재하고 있 었지만, 지금까지 느끼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었던 자아의 내면에 존재하 는 것이었다.
그의 내면의 악의 세계가 가족으로 대변되는 빛의 세계에 억눌려 표면화되지 못한 것일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을 통해 싱클레어는 악의 세계 를 자기 내면에서 부정하지 않고 밝음과 함께 받아들이고 긍정함으로써 두 상반 된 세계를 동시에 긍정하고 받아들이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융의 시각에서 볼 때 크로머는 싱클레어가 파괴적이고 부정적이라고 여기는 자신의 정신적 특징이 투영된 존재로서 그가 양극성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 을 하는 인물로 볼 수 있다(김선형 23).
에덴 동산에 유혹자가 도착하기 전, 아 담과 이브는 자신 안에 있는 극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무의식적으로 살아가고 있 었으며 유혹자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에게 선택권을 준 후에야 타락이 일 어날 수 있고 그것과 함께 잠재된 이분법이 현실화 되었다는 것을 상기해 보면 극단을 통한 성장은 필수적인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싱클레어는 크로머를 만나기 전부터 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 힘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도덕적, 정신적 극성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감, 즉 이분법이나 양자택일의 강요가 초래하는 불안과 긴장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한 것이다 (Spivey 49).
사건이 있은 후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싱클레 어가 크로머에 지배당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도움을 준다.
그러나 데미안의 도 움에 의해 해방된 후에도 싱클레어는 영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자신의 성장에 도움 이 될 수 있었던 자기에게 큰 고통을 가져다 주었던 일의 의미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고 어머니의 안락한 품으로 돌아가 이 모든 것들을 잊으려 는 선택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싱클레어가 “극성이 가져오는 불안감의 본 질”(Breugelmans 29)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제 싱클레어에게 남은 과제는 헤세와 융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양극성을 인정하고 빛과 어둠의 합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 신부의 도움을 받는다.
앞장에서 경건주의적 실천이라는 측면에서 그의 역할을 살펴보았는데, 그는 한편으로 싱클레어의 심리치료사 같은 모습을 보이 기도 한다.
실제 연구들은 피스토리우스를 헤세가 정신과 진료를 받았던 랑 박사 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따라서 피스토리우스와 싱클레어의 만남 장 면에서 우리는 융의 생각들을 쉽게 포착할 수 있다.
피스토리우스는 싱클레어에 게 열등하고 어둡거나 악한 것은 개인에게 잠재된 가능성, 즉 “의식으로 끌어내 야하는 무의식적 내용”(이은정 76)으로 볼 수 있음을 알려준다.
융에 따르면 정신은 의식이 없기 때문에 영지주의자들의 신 아브락사스처럼 무한한 존재라 할 수 있다.
개인이 지닌 이 커다란 힘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의식의 성 장이 필요하다.
영지주의자들은 “계시나 직관적 사고”(Knapp 34)를 통해 이를 경험할 수 있다고 보는데, 피스토리우는 음악과 같은 창조적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그는 우리 안에 말씀이 있는 것과 그것을 의식하는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으며 희망과 열망을 넘어 저항하 는 행동이 필요하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다.
아브락사스가 자신의 영혼을 따를 때, 우주 안에서 자아도 그렇게 되며, 이것 은 개인이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어 집단 무의식속에 가려져 있던 한 부분을 객관 화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계기가 된다.
융은 아브락사스에 대해 모든 대립 적인 요소들이 하나의 존재 속으로 통합된 형태의 신으로, 기독교에서 이야기하 는 하느님과 사탄의 의미보다 훨씬 더 고차원적인 신이라고 하였다(융 2023; 96).
모든 개인은 자신의 발전에 도움이 되고 이해와 변화를 촉진하는 창의적 요소를 찾아내어야 한다.
그것을 위한 첫 시작이 바로 도덕적 규범과 종교적 계 율에서 비롯된 제한적 관념에서 탈피하는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개인은 자신 과 우주 안에서 더 크고 영원한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다.
이러한 설명과정에서 피스토리우스는 기독교, 회교, 배화교, 그노시스파, 불교, 힌두교 등 세계의 모든 종교가 결국은 같은 것이며 이들은 모두 자기 구현 의 가능성으로 이끄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소설에서 그가 당시의 기독교 윤리를 비판하는 것은 헤세의 개인적 입장이 투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싱클레어는 피스토리우스라는 정신과 의사의 도움으로 자신의 ‘그림자’ 와 대면하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공격적이고 성적인 충동은 더 이상 거부하거나 다른 어둠의 세계에 투사해야 할 힘이 아니게 된다.
그것들은 싱클레어 내면의 영역, 즉 그의 존재 안에 살아있는 부분의 일부로서 체험된다.
데미안의 어머니 인 에바 부인은 이러한 심리적 여정의 끝을 보여주는 인물로서 등장한다.
데미안 과 더불어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의 영혼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이 다.
에바 부인은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이 될 수 없는 존재다.
데미안이 싱클레어 의 친구이자 멘토라면, 에바는 싱클레어의 어머니이자 낭만적인 사랑의 대상으 로 기능한다.
데미안과 마찬가지로 에바의 주요 역할은 싱클레어가 올바르게 성 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두 사람이 만나기 전부터 에바는 싱클레어의 목표 가 되고, 싱클레어는 에바를 통해 베아트리체를 대리 추구하는 모습으로 그려진 다(김륜옥 221).
두 사람의 만남 과정에서 베아트리체는 지극히 자상하면서도 강인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인다.
그녀는 싱클레어를 사랑하고 보듬어주며 그가 사춘기 시절에 겪었던 힘든 시간을 함께 위로해주는 정동적 후원자가 된다. 그러 나 동시에 그녀는 강인하고 당당한 모습으로 싱클레어가 자신의 욕망과 더 많이 접촉하고 자신감을 갖도록 계속적으로 권유하기도 한다.
그녀와의 만남은 피스 트로이우스와의 만남이 그랬던 것처럼 싱클레어에게 하나의 성장 과정이 된다.
싱클레어는 친구의 어머니인 그녀를 보고 강한 연정을 느끼게 된다.
이전의 싱클 레어였다면 이러한 격정을 어두운 것으로 여기고 떨쳐내려 노력하였겠지만 싱클 레어는 달라져 있다.
에바 부인은 이러한 싱클레어에게 진정으로 자신을 원한다 면 그녀가 싱클레어에게 자연스럽게 이끌려 갈 것이라 말한다.
사랑은 간청해서는 안 돼요. 그녀가 말했다. 강요해서도 안 됩니다. 사랑은, 그 자체 안에서 확신에 이르는 힘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사랑은 더 이상 끌림 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끕니다. 싱클레어, 당신의 사랑은 나에게 끌리고 있어요. 언젠가 내가 아니라 당신의 사랑이 나를 끌면, 그러면 내가 갈 겁니다. 나는 선물을 주지는 않겠어요. 쟁취되겠습니다. (데미안200)
에바는 완벽과 완성의 상징으로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이고, 어머니의 모습이 지만 “강렬한 낭만적 사랑의 대상인 등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인물 ‘(이창남 33)이 다.
싱클레어가 그린 그림에서 묘사되듯이 에바 부인이 남자이면서 여자라는 점 은 융의 심리학에서 이야기되는 아니마(Anima)와 아니무스(Animus)가 결합된 남녀 양성 소유자, 즉 양성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인류 역사의 측면에서 태고의 신화나 신성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성체는 그 자체로 성이 양성으로 분열되기 이전의 상태 혹은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선 신적 단계의 존재 라 할 수 있다(Tusken 630).
이러한 점에서 작품 속 에바 부인은 남자이자 여자 이고, 천사이며 악마이고, 밝음이자 어둠이며, 그 무엇으로도 규정할 수 없는 존 재가 된다.
이러한 에바 부인에 대한 묘사를 작가 개인의 사적 측면과 연결시켜 해석해보면 헤세가 어린 시절 경험한 모성 결핍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이 경험한 결핍을 작품 속 에바 부인에 대한 싱클레어의 사랑 묘사를 통해 정신적, 육체적으로 보상받고 있는 것이다.
이 소설 이후 헤세 작품 속 여 성들이 대부분 어머니와 같은 존재로 남자 주인공의 구원이나 완성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는 점 역시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할 수 있다.
3. 결론
선과 악의 양극의 대립과 결합은 데미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싱클레어 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둠의 영역, 즉 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며 새로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작품 속에서 싱클레어가 겪은 여정은 내면의 자기를 찾고, 이를 통해 정신의 양극성을 결합할 수 있는 힘을 익히는 여행으로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그는 선과 악을 결합하는 신 아브락사스를 연 구하면서 그러한 악한 것들을 숭배하는 개념에 매료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 다.
결국 싱클레어는 행동 방식을 결정할 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고민 해야 한다는 관념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헤세의 이러한 의도는 작품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논문은 그 중에서 경건주의에 대해 헤세가 갖는 양가적인 태도와 정신분석학에 대한 의 존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해 보았다.
언급하였듯 경건주의는 작가의 초기 삶에 는 분명 억압적인 것으로 작용하였지만 작품 속에서는 이러한 요소와 함께 경건 주의적 실천의 태도를 활용하여 싱클레어의 자기 구현의 과정을 채워가는 흥미로 운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유럽 사회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비전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마디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을 만들기 위해 종교적 영 성의 회복을 강조함으로써 당시 유럽 사회에서 무너진 도덕의 균형을 추구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헤세는 특히 인간 정신의 작용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 은 작가였다.
이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데미안의 여러 측면에서 고스란 히 드러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소설의 이야기는 모두 싱클레어의 정신적 성 장을 다루고 있다
헤세는 특히 싱클레어가 매우 강한 힘에 의해 반대 방향으로 끌려가면서 느끼는 고통을 잘 포착해내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가 는 한편으로 자기실현과 내면으로의 가는 길의 중요성만큼이나 타인의 내면에 대 한 이해의 필요성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함께 견진성사 수 업을 들을 때 대화의 중심 주제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종종 자신보다 타인을 더 잘 알고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 는 데미안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 난다.
3. 결론
선과 악의 양극의 대립과 결합은 데미안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싱클레어 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어둠의 영역, 즉 악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기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니며 새로울 것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작품 속에서 싱클레어가 겪은 여정은 내면의 자기를 찾고, 이를 통해 정신의 양극성을 결합할 수 있는 힘을 익히는 여행으로 볼 수 있다.
궁극적으로 그는 선과 악을 결합하는 신 아브락사스를 연 구하면서 그러한 악한 것들을 숭배하는 개념에 매료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 다.
결국 싱클레어는 행동 방식을 결정할 때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고민 해야 한다는 관념을 거부하게 되는 것이다.
헤세의 이러한 의도는 작품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나고 있다.
논문은 그 중에서 경건주의에 대해 헤세가 갖는 양가적인 태도와 정신분석학에 대한 의 존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해 보았다.
언급하였듯 경건주의는 작가의 초기 삶에 는 분명 억압적인 것으로 작용하였지만 작품 속에서는 이러한 요소와 함께 경건 주의적 실천의 태도를 활용하여 싱클레어의 자기 구현의 과정을 채워가는 흥미로 운 모습을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1차 세계대전 이후 황폐해진 유럽 사회에 대해 작가 나름대로 비전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선택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한마디로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비전을 만들기 위해 종교적 영 성의 회복을 강조함으로써 당시 유럽 사회에서 무너진 도덕의 균형을 추구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신분석학을 공부한 헤세는 특히 인간 정신의 작용을 탐구하는 데 관심이 많은 작가였다.
이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데미안의 여러 측면에서 고스란 히 드러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소설의 이야기는 모두 싱클레어의 정신적 성 장을 다루고 있다.
헤세는 특히 싱클레어가 매우 강한 힘에 의해 반대 방향으로 끌려가면서 느끼는 고통을 잘 포착해내어 독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작가 는 한편으로 자기실현과 내면으로의 가는 길의 중요성만큼이나 타인의 내면에 대 한 이해의 필요성도 함께 보여주고 있다.
싱클레어와 데미안이 함께 견진성사 수 업을 들을 때 대화의 중심 주제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내면을 이해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종종 자신보다 타인을 더 잘 알고 타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 는 데미안의 능력에 초점을 맞 추고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작가의 의도가 잘 드러 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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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문】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그의 철학적인 사유와 예술적인 감수성이 만나 탄생한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본 논문은 작품 전반에 걸친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경건주의와 무의식이 어떻게 서로 교감하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고자 한다.
데미안은 우리를 자아의 심연으로 인도하며, 거기서 찾아낸 지혜와 깨달음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성장 여정에서 싱클레어가 경건주의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며, 종교와 예술,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게 됨을 그려낸다.
이것은 우리에게 경건주의가 단순히 종교적인 경험뿐만 아니라 인간의 본질에 대한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한편으로 무의식의 힘 역시 데미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무의식의 심연에 빠져 깨닫게 되는 것들은 때로는 어둡고 모호할지라도, 그것들은 인물의 성장과 자아의 발견에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헤세는 무의식의 해방을 통해 우리가 예상치 못한 창조성과 깨어있는 상태를 얻을 수 있다는 주제를 풀어낸다.
이는 작품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에 대한 여정을 떠날 때 무의식이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고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깊은 고찰을 제공한다.
결론적으로 논문은 데미안이 헤르만 헤세의 예술적인 감수성과 철학적인 사유가 고루 섞인 작품으로, 독자는 데미안의 눈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고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주제어】 경건주의, 무의식, 심연, 정체성, 헤르만 헤세
Abstract
Hermann Hesse’s Damien as a Journey of the Heart and Liberation into the Unconscious
Jeong, Youn-Gil(Professor, Dongguk University)
Hermann Hesse’s Damien is one of the works in which his philosophical ideas and artistic sensibilities meet. This paper will explore how piety and the unconscious interact with each other through the protagonist’s journey throughout the work. "Damien takes us into the abyss of the self, and the wisdom and realizations we find there make us rethink our inner selves. The author depicts Sinclair’s journey of growth as he realizes the importance of piety and finds new inspiration through his encounters with religion, art, and nature. This conveys the message that piety is not just a religious experience, but a deeper understanding of human nature. On the other hand, the power of the unconscious also plays an important role in Damien. The things that one realizes by plunging into the abyss of the unconscious are sometimes dark and ambiguous, but they play a key role in the character’s growth and discovery of self. Hesse’s theme is that through the liberation of the unconscious, we can achieve unexpected states of creativity and wakefulness. This provides a deep examination of how the unconscious guides and transforms us as we embark on our own inner journey through the work. In conclusion, the paper argues that Damien is a work that blends Hermann Hesse’s artistic sensibility with his philosophical ideas, giving readers the opportunity to explore our own inner lives and gain new perspectives through Damien’s eyes.
【Key words】 Pietism, Unconscious, Abyss, Identity, Herman Hesse
논문접수일: 2023.12.30. 논문심사기간: 2024.01.03.~01.08. 게재확정일: 2024.01.10.
철학·사상·문화 제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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