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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정신분석학의 알레고리적 서사,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인성, 1995) 연구/이인표.연세大

 Ⅰ. 들어가며

 Ⅱ. 자아 이상인 ‘성한 여자’와 상상계적 관계를 맺는 ‘나’

 Ⅲ. 대타자인 ‘미친 여자’와 상징계적관계를 맺는 ‘너’

 Ⅳ. 소타자적인 환상을 통해 실재계를 향하는 ‘그’

 Ⅴ. 나가며

 

 

Ⅰ. 들어가며

 

이 논문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론이다.

이 소설을 정신 분석학적 알레고리로 통찰한다는 점에서 정신분석학적 비평론이기도 하다.

이 소설은 전작들에서 이어지는 작가의 서사 언어 해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논문은 이 해체의 과정과 목표가 소위 심층심리 학인 프로이트 계열 정신분석학의 과정과 목표를 한층 심층적으로 구현 하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각종 포스트 담론을 앞질러 이를 서사적으로 구현한 작가로서 이인성 외에 다른 작가를 꼽기 어렵고, 그 영향은 다양한 세부 쟁점 속에서 다 루어졌다.1)

2000년대 이전에는 작가가 포스트 담론으로 해석되기보다 리얼리즘의 강세에 대항하는 모더니즘의 기수로 대두됐으나2) 점차 이 러한 이원적 구조의 파격을 개시한 포스트모던의 기수로 해석되었다.

작가가 전통 서사의 “파격을 구사한 서술형식의 특이성”을 보였다거 나,3) “자의식을 집요하게 추적함으로 문학 언어의 한계”를 탐색했다거 나,4) 서사 언어의 “조건이나 한계를 무의식적으로 폭로하는” 소설을 만 들었다는5) 등의 통찰이 이를 대변한다. 

낯선 시간 속으로(1983), 한없이 낮은 숨결(1989)에서 이어지는 이 서사 언어의 파격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1995)에 이 르러 한층 고조된다.

이 소설이 근대인의 “자아 분열에 대한 불안”을 본 원적으로 탐색한다거나,6) 이 자기 분열 속에서 “자유로운 넘나듦을 펼 쳐보이며 타자들의 귀환을 통해 억압을 넘어선 새로운 상상적 실존의 지평”을 제시한다거나,7) “환상의 토대 위에 구조화된 현실을 내파하는 또 다른 환상”을 구현해 삶 자체를 내파하고자 한다는8) 통찰들은 소설 이 도달한 파격과 해체의 심층을 다양하게 조명했다.

 

     1) 김상태, 「포스트모더니즘과 한국의 문학」, 구보학보 제1권, 구보학회, 2006, 18쪽.

     2) 유현성, 「이인성 소설의 해체주의 연구: 1980년대 문학 담론과 관련하여」, 건국대학 교 석사논문, 2018, 132-133쪽.         3) 정연희, 「존재의 동요로서의 글쓰기: 이인성의 「길, 한 이십 년」을 중심으로」, 어문 논집 제55호, 민족어문학회, 2007, 333-334쪽.

      4) 정경운, 「성장소설의 세 가지 선(線)에 대한 고찰: 이인성의 <낯선 시간 속으로>」, 한국문학이론과 비평 제22권, 한국문학이론과비평학회, 2004, 215쪽.

      5) 노대원, 「이인성 소설 한없이 낮은 숨결의 수사학적 연구: 「당신에 대해서」의 대화 적 담화를 중심으로」, 비교한국학 제21권 제3호, 국제비교한국학회, 2013, 226-227쪽.

      6) 노대원, 「이인성 소설에 나타난 소통의 불안: 한없이 낮은 숨결과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을 중심으로」, 문학치료연구 제45권, 한국문학치료학회, 2017, 192-193쪽.

     7) 안상혁, 「타자 지향적 소설의 시각화 연구: 이인성 소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의 단편영상 제작을 중심으로」, 기초조형학연구 제9권 제5호, 한국기초조형 학회, 2008, 291쪽. 

     8) 홍정희, 「이인성 소설에 나타난 환상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논문, 2007, 143-144쪽.   

 

단순히 해체의 유희에 머무르지 않고 이를 통해 자기의 심층에 도달 하는 이 소설의 성과를 통찰하는 선행연구들을 이어서, 이 논문은 이 심 층이 정신분석학이 구하는 심층을 구현한다는 점을 통찰하고자 한다.

프로이트 계열의 정신분석학은 의식의 심층인 무의식을 탐색한다는 점 에서 이른바 심층심리학이라고 회자된다.

의식에 관한 탐색을 이어가는 자아 심리학 계열보다, 무의식을 파고든 자크 라캉, 멜라니 클라인 계열 이 심층심리학의 명분을 이어갔다고 볼 수 있다.

이 논문이 원용하는 이론적 전거는 이 계열의 논의들이다.

이 중에서 라캉이 주로 원용될 것이다.

라캉이 언어 기표의 구조로 무의식이 현상되는 바를 정심하게 사유했기 때문이다.

고도로 추상된 관념의 은유로 가득 찬 라캉 텍스트의 난해함은 정평이 나 있다.

그러므 로 텍스트 스타일이라는 물적 근거로써 추상성을 완화해 문학이 심층심 리학 이론의 개념을 구체화할 수 있다.

이 논문이 미쳐버리고 싶은, 미 쳐지지 않는론이자 이를 통한 정신분석학적 비평론을 추구하는 이유 는 여기에 있다.

라캉이 자기 심층심리학이 “문학적 자질들”과 조우하기 를 바랐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9)

 

    9) 자크 라캉, 「무의식에 있어 문자가 갖는 권위(주장) 또는 프로이트 이후의 이성」, 욕망이론, 민승기 외 옮김, 문예출판사, 2004, 97-99쪽. 

 

무의식의 심층에 관한 논의로 먼저 프로이트가 만년에 펼친 인격 이 론을 들 수 있다.

의식적 자아의 심층에 있는 이드, 이드가 새긴 전 생애 적인 표상 중에서도 가장 심층에 있는 초자아 표상에 관한 논의이다. 라캉은 이 표상적 심층의 양태를 기표 구조로 전유했고, 이로 향하는 과 정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구체화했다.

가장 심층인 실재계로 가는 길목에서 대타자, 소타자적 환상을 내면화하는 것이 관건이다.10)

이 논 문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 실재계를 향한 무의식의 심 층을 ‘문학적 자질들’로 한층 완미하게 구현하는 알레고리임을 밝힐 것 이다.11)

 

     10) 라캉의 소타자 개념은 상상계의 자아 이상에서, 상징계에 현시되는 남근을 거쳐, 실재계의 상상계적 편린으로 진화한다. 이 논문에서 쓰는 소타자적 환상이라는 개 념은 실재계를 감각하게 하는 상상계적 편린으로서, 라캉이 후기에 쓰는 개념이다.

     11) 낯선 시간 속으로가 상징계로 향하는 최초의 도정을, 한없이 낮은 숨결이 이 상징계의 기표 구조를 구현했다면,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은 이러한 기 표 구조에서 실재계를 배태하는 감각을 구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작이 구현한 정신분석학적인 심층에 관해 다음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이인표, 「한없이 낮은 숨결(이인성, 1989)의 정신분석학적 탐색 과정 고찰」,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5권 제1권, 한국근대문학회, 2024, 191-226쪽. 

 

이렇게,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과 정신분석학을 상호 고 양하기 위해 본론에서는 이 소설에서 ‘나’, ‘너’, ‘그’로서 해체되는 서술자 정체성에 먼저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각각 상상계적 주체, 상징 계적 주체, 실제계적인 주체임을 밝힐 것이다.

Ⅱ장에서는 자아 이상인 ‘성한 여자’와 상상계적 관계를 맺는 ‘나’를 고찰할 것이다.

Ⅲ장에서는 대타자인 ‘미친 여자’와 상징계적 관계를 맺는 ‘너’를 고찰할 것이다.

Ⅳ 장에서 소타자적 환상을 향유함으로써 실재계를 지향하는 ‘그’를 고찰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 정 신분석학이 추구하는 무의식의 심층을 구현한 완미한 알레고리로 재조 명될 것이다.

 

Ⅱ. 자아 이상인 ‘성한 여자’와 상상계적 관계를 맺는 ‘나’

 

이 장에서는 먼저 서술자 중 ‘나’의 상상계적 주체성이 소설에서 구현 되는 양상을, 그리고 이것이 ‘너’라는 서술자의 상징계적 주체성으로 해 체될 수밖에 없는 근거를 탐색할 것이다.

이 해체는 ‘나’의 타자인 ‘성한 여자’에 관한 은유가 ‘너’의 (대)타자인 ‘미친 여자’에 관한 은유로 확장되 는 것으로 구현된다.

 

내 시를 쓰지 못하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누군가의 어떤완벽한 허위 혹 은 완전 범죄가 나도 모르게 나를 옥죄어 오고 있는데. 아니라면, 나도 모르 게 내가 그런 짓을 저지르고 있는데, 나 자신을 단지 남의 시의 시적 정보나 정서로만 알아보는, 나. 나, 그의 시가 판 고랑인 축축한 공포에 퍼질러 드러 누워. 뒤척일 때마다 점점 옆으로 퍼져나는, 퍼져나며 점점 깊어지는, 그 고 랑 속으로 밑으로 자꾸만 더 낮게 빠져버리고. 그렇게 어느새, 그의 시만이 온통 나이며 나의 늪이다. 빌어먹을, 절망이다. 저 시인에게와는 다른 양태로, 내겐, 어째서 이런 일 이 벌어졌을까? 덧없이 되풀이된다, 뇌 신경의 가는 선들을 마구 헝클어 얽 는 그 막다른 물음이.12)

 

    12)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7-8쪽. 

 

위에 인용한 소설의 서두는 이 소설이 어떻게 창작될지를 밝히고 있 다.

‘나’라는 서술자는 “누군가의 어떤 완벽한 허위 혹은 완전 범죄가 나 도 모르게 나를 옥죄어” 자기의 시를 쓰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을 단지 남의 시의 시적 정보나 정서로만 알아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남의 시 읽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나’가 “그의 시가 판 고랑인 축 축한 공포에 퍼질러 드러누워”만 있지는 않다.

즉 ‘나’는 “뒤척일 때마다 점점 옆으로 퍼져나는, 퍼져나며 점점 깊어지는, 그 고랑 속으로 밑으로 자꾸만 더 낮게 빠져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어느새, 그의 시만이 온통 나이며 나의 늪이” 된다.

이는 이 소설이 남의 시어들을 확장하는 서사로 창작될 것임을 예고 한다.

시는 기본적으로 은유의 언어다. 은유는 서술자의 주관이 사물의 유사성을 의제하여 사물을 연접하는, 묘사적인 언어이기 때문이다.

하 지만 소설 언어는 은유보다 환유가 대세적인 언어다.

환유는 서술자가 사물의 인접을 시간 속에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서사적 언어이기 때문 이다.13)

따라서 ‘나’라는 서술자는 인용문에서 시적 은유의 “고랑”을 넓 히고 이를 서사적 환유로 한층 확장해 소설을 창작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는 소설의 독특한 구조를 낳는데, 총 52개의 시의 언어를 필두 로 이를 서사로 전유하는 같은 수의 장을 가지는 구조다. 은유와 환유의 교차구조는 구조주의 언어학이 말하는 언어의 근본 구 조이다.

이를 통해 세계를 향한 서술자의 주관과 객관을 혼융하는 다양 한 스타일을 만들 수 있다.

두루 알다시피 시의 언어가 묘사적 은유의 언어라면, 소설의 언어는 대개 서사적인 환유의 언어다.

그리고 소설에 서 주관적 은유가 대세가 되면 낭만주의 계열이 되기 쉽고, 객관적 환유 가 그렇게 되면 사실주의 계열이 되기 쉬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14)

 

     13) 페르디낭 드 소쉬르, 일반언어학 강의, 최승언 옮김, 민음사, 2006, 181-184쪽.

     14) 로만 야콥슨·모리스 할레, 언어의 토대: 구조기능주의 입문, 박여성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9, 106-113쪽. 

 

따 라서 인용문에서 ‘나’는 이 소설이 시적 은유에서 서사적인 환유로 번지 는 언어를 통해 창작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이 은유와 환유의 교차구조는 언어 기표로 현상되는 무의식의 구조이 기도 하다.

프로이트가 처음으로 은유적 응축과 환유적 전치를 통해 꿈 이 무의식적 욕망을 상징화하는 기제를 설명했다면, 구조주의 언어학의 혜택을 힘입은 라캉이 이 기제를 한층 구체적으로 사유했다고 볼 수 있다.15)

 

    15) 자크 라캉, 「정신분석에서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 결, 2019, 313쪽.

 

이 논문이 소설을 정신분석학을 알레고리화 하는 서사로 통찰하 려는 이유는 여기 있다.

이 소설의 서술자는 자기의 무의식을 심층적으 로 탐색하려는 목표를 프로이트 계열의 정신분석학과 공유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소설이 서술자의 무의식적 욕망의 기제를 정심하게 현상함으로 정신분석학을 감각적으로 완미하게 알레고리화 하는 서사 임을 석명하게 보일 수 있다.

특히, 소설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로 대별되는 무의식의 광범한 스 펙트럼을 감각화하고 있다.

이를 위해 소설은 서술자를 ‘나’, ‘너’, ‘그’로 삼분하고 있다.

‘나’는 ‘성한 여자’를 통해 상상계를, ‘너’는 ‘미친 여자’를 통해 상징계를 감각한다.

그리고 ‘그’는 이들을 벗어남으로써 실재계까 지 감각한다.

이 소설,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은 상상계의 ‘나’가 ‘너’의 상징계에 매몰되어 미쳐버리고 싶으나 ‘그’를 배태해 실재 계를 감각함으로써 미쳐지지 않는, 무의식의 광범한 스펙트럼을 알레고 리화 하는 서사이다.

 

 

아마도, 혼돈과 신비는 계속살아지지 않는 것.

아마도, 결국은 다시금 자 기와 마주서는 법. 아마도, 그때 이전엔 자기가 아니었더라도 자기 속에 맺 혀버린 그 누군가가 있다면, 그는 이미 자기의 일부가 된 자기 속의 다름 자 기. 아마도 이전의 자기만이고자 하는 자기가 그 다른 자기를 밀어내려는 것은 헛된 짓. 아마도, 자기 속에 다른 자기가 있다는 것은 자기 또한 자기보 다 더 큰 또 다른 자기 속에 있을 수 있다는 뜻. 아마도, 그때의 그 커다란또 다른 자기는 자기와 자기 속의 다른 자기와 자기가 아직 모르는 다른 자기 들까지 둥그렇게 품고 있을 자기. 아마도, 기어이 자기 속의 다른 자기를 밀 어내려 한다면, 다른 자기를 자기의 일부로 끌어안고 놓지 않는 그 또 다른 자기의 더 큰 힘에 오히려 자기가 튕겨져나갈 일.  그러나, 끝내 그러고자 하는 어떤 자기가 있음. 제 속에 맺혀진 광기를 못 견뎌 제가 먼저 미친 듯이 저를 떠나고 싶어하는 어떤 자기가 있음. 자기 밖 으로 소외되어 갈라진 자기를 바라볼, 이제는 자기가 자기 아니게 된 그 자 기는, 그리하여… ……그리하여 홀연히, 그가 먼 길을 떠날 것이다.16)

 

서술자의 주체성이 번진 ‘나’, ‘너’, ‘그’ 들은 소설에서 무수한 은유로 대별된다.

인용문은 이런 은유 중 하나이다.

인용문에는 본연의 자기가 있고, 무수히 해체되는 자기가 있고, 이 해체를 벗어나려는 자기가 있 다.

이는 각각 ‘나’, ‘너’, ‘그’로 은유된다.

‘나’는 본연의 자기다.

하지만 이 자기를 해체하는 자기인 ‘너’를 배태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해 체의 ‘광기’를 벗어나는, “제 속에 맺혀진 광기를 못 견뎌 제가 먼저 미친 듯이 저를 떠나고 싶어하는 어떤 자기”인 ‘그’도 있다.

본연의 주체인 ‘나’는 한 여관방에서 계속 “남의 시”의 은유를 확장해 자기 시를 써보고자 하는 서술자이다.

‘나’는 이곳에서 ‘성한 여자’와 전 화하고 그녀를 회상하는 주체다.

‘너’는 독신자 아파트에서 ‘미친 여자’ 와 전화하고 그녀에 관한 환상을 펼치는 주체이다.

그리고 자기의 혼돈 적 환상을 떠나는 ‘그’의 여정에서 ‘눈보라’의 혼돈으로 계속 현상되는 주체다.

‘그’는 ‘너’의 혼돈적 환상을 완전히 벗어나고자 “눈보라치는 너 를 가로질러, 눈발로 온 세상에 흩어질 너를 끌어모을 네 중심의 너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는 주체이다.

“그곳에 네 넋을 훔쳐갔는지도 모를 미친 여자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17)

 

     16)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23-25쪽.

     17)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28쪽. 

 

본연의 주체인 ‘나’가 끊임없이 해 체되는 ‘너’의 “혼돈과 신비는 계속 살아지지 않는 것”이기에 “홀연히, 그 가 먼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본연의 주체인 ‘나’는 상상계적 주체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자기가 좋아했던 어떤 ‘성한 여자’에게 상처받은 후 여관방으로 잠적해 자기를 실 재와 차단하고 상상 속에서만 그녀와 도착적 동일시를 추구하기 때문이 다.

그러므로 가끔 그녀에게 전화해 매달리기도 하지만, 냉혹한 그녀에 게 또다시 상처받기도 한다.

이는 ‘나’가 상상계에 속하지만, 동시에 이 를 벗어나고자 하는 주체임을 뜻할 수 있다.

다음의 인용문이 ‘나’의 이 런 주체성을 드러낸다.

 

그러고 보니, 또, 전화기 뒤의 거울을 마주보고 있다.

(중략)

머리라도 들이밀려는 듯, 거울을 얼굴 가득 비벼대고, 단절을 녹이려는 듯, 한껏 입김을 불고, 혓바닥을 길게 내밀어.

거울 면을 뜨겁게 핥는다. 그 러다 말고 진저리를 치며 얼굴을 뗀 것은, 내가 핥은 면은 유리지만 거울속 에서 나를 재현하는 존재가 핥은 것은 유리 뒷면에 칠해진 수은이라는, 독 이라는, 번개 치는 직감 때문. 직감이 생각을 흩트린다. 나는 저곳을 충족의 세계로 가정했었다.

그렇 다면 저곳에는 독을 핥는 것처럼 충족을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따로 있는 것인가, 흩트러진 생각이 안개가 된다. 거울속의 저 존재가, 적어도 내 시선 이 그 안을 향하는 동안은, 나를 고스란히 흉내내야만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일지 모른다. 조금 전에 나는 저 존재의 충족 상태가 내가 못 이룬 통화를 자 기는 이룬 데서 오는 것이라고 짐작했었는데, 지금은 안개의 생각이 반문 으로 짙어진다.

그렇더라고 그건 내 결핍의 대리 충족에 아닌가? 요컨대, 저 존재에겐, 저 자신의 결핍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것, 고로 그걸충족시키려 는 저 자신의 욕망이란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욕망마저도 모방일 뿐인 저 존재는, 그런 의미에서 완벽한 허상? 그러니까, 충족의 대가 란 자기를 버리고 허상이 되는 것?

(중략)

비시적인, 반시적인, 빌어 배라먹을 거울.18)

 

     18)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106-111쪽. 

 

인용한 부분은 이른바 ‘거울 단계’인 ‘나’의 상상계적 주체성을 잘 드러낸다.

‘나’가 사랑하는 ‘성한 여자’와 통화하는 전화기 옆 거울이 ‘나’를 비춘다.

꽤 오랫동안 “나는 저곳을 충족의 세계로 가정했었다.”

왜냐하 면 “저 존재의 충족 상태가 내가 못 이룬 통화를 자기는 이룬 데서 오는 것”이라고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나’와 ‘성한 여자’가 거울상에 불과하며, ‘성한 여자’의 사랑으로 ‘나’가 충족되는 것도 마찬가지임을 의 미한다.

따라서 이 거울상의, 허상의 충족은 “내 결핍의 (중독된) 대리 충족”, 즉 실상의 결핍을 뜻할 뿐이다.

이는 ‘나’가 단지 ‘성한 여자’라는 타자의 온전한 사랑을 상상할 때만 존 재하는, 사랑받는 주체에 관한 상상이라는 뜻이다.19)

‘나’가 오랫동안 자 기의 시를 쓰지 못하고 남의 시에 의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시적 언 어는 사물의 유사성을 주관적으로 의제하는 주체만이 구현할 수가 있는 것이므로, ‘나’를 온전히 사랑하는 타자인 ‘성한 여자’를 가공함으로만 사 랑받는 주체인 ‘나’는 스스로 주관을 가지지 못하는 주체이기 때문이다.

이를 자각한 ‘나’는 결국 “비시적인, 반시적인, 빌어 배라먹을 거울”을 깨버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나’는 ‘성한 그녀’와 살이 맞닿는 성적 결합 을 향한 맹목적 집착과 질투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이 살의 질투 속에 갇혀서는, 이 살의 감각으로 상상할 수밖에 없는 질투 밖의 모든 것이 불투명하게” 되는 것을, 이런 “질투는 그 혼탁한 상상의 오물들을 질투 밖으로 쏟아내고 싶어한다”는 것까지 자각하게 된다.

즉 ‘나’는 결국 허 상에 불과한 ‘성한 그녀’와의 애착을 여관방에서 “와르르 똥으로 쏟아내 게” 된다.20)

이를 통해, ‘나’는 깨진 거울 조각들, 쏟아진 똥 덩어리들 등의 파편적 인 기표들로 해체된다.21)

 

    19) 자크 라캉, 「정신분석 경험에서 드러난 ‘나’ 기능 형성자로서의 거울 단계」, 욕망이 론, 민승기 외 옮김, 문예출판사, 2004, 48-49쪽.

    20)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74-75쪽. 

    21) 자크 라캉, 「정신분석 경험에서 드러난 ‘나’ 기능 형성자로서의 거울 단계」, 욕망이 론, 민승기 외 옮김, 문예출판사, 2004, 46-47쪽. 

    

이렇게 ‘나’가 파편으로 해체된 주체가 곧 ‘너’ 다.

‘나’가 자기를 해체하고 ‘너’를 배태하게 되는 것은 상상계의 범박한 주체를 해체함으로써다.

이상적 자아인 ‘나’의 상상계적 주체성이 해체 된다는 것은 이것을 상상적으로 지탱하는 온전한 사랑의 화신인 ‘성한 여자’라는 자아 이상의 기표도 해체된다는 것을 뜻한다.

이 ‘성한 여자’ 가 해체된, 파편적 기표의 총체가 ‘미친 여자’로 은유된다.

이로써 ‘나’와 ‘성한 여자’에 관한 상상계적 은유는 ‘너’와 ‘미친 여자’에 관한 상징계적 은유로 확장된다.

이런 은유의 확장을 다음 장에서 구체적으로 탐색할 것이다.

 

Ⅲ. 대타자인 ‘미친 여자’와 상징계적 관계를 맺는 ‘너’

 

이 장에서는 ‘성한 여자’가 ‘미친 여자’로 변모하며 전자를 욕망하던 ‘나’가 후자를 욕망하는 ‘너’로 변모하는 양상을 탐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성한 여자’에 관한 은유가 ‘미친 여자’에 관한 은유로 확장됨으로 써이다. 그리고 이 ‘미친 여자’에 관한 은유를 벗어나는 국면에서 또 하 나의, 마지막 서술자인 ‘그’에 관한 환유가 시작되는 실마리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흔적. 지운 흔적. 지운 흔적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워진 흔적. 기억의 풍경 화 속에 그려지다 지워진 흔적. 아무리 지웠어도 지웠음을 느끼게 하는 흔 적. 태풍을 겪어 만신창이가 된 뒤에도, 그것만은 지우고 싶었던 무엇인가 의 흔적. 너무 사무쳐서 숨김이 뒤늦을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의 흔적. 풍경 화 전체에 사무침을 번지게 하는, 사무침의 샘인 상처의 흔적. 풍경화 뒤에 겹쳐진, 더 먼 시간의 풍경화로 하는 문을 여는 흔적…22) 

 

인용문은 ‘너’가 어떤 풍경화 속에서 “풍경화 전체에 사무침을 번지게 하는, 사무침의 샘인 상처의 흔적”을 발견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 흔 적을 발견하는 과정의 서사라기보다 무수히 지워진 흔적, 그 흔적의 풍 경화, 이중 가장 사무치는 하나의 흔적이라는 관념들의 유추적 연쇄인 묘사, 즉 은유의 언어이다.

무수히 지워진 흔적, 그 흔적의 풍경화에 관한 은유는 프로이트의 ‘신 비스러운 글쓰기 판’을 연상케 한다.

이는 무의식 조직 이드가 존재하는 양태에 관한 중요한 은유다.

이드는 전 생애적 지각과 기억을 망라하고 있는 민감한 ‘몸의 기억’을 뜻한다.23)

현행적인 지각과 전의식 수준의 기억을 합리적으로 운용하는 ‘머리의 기억’인 의식적 자아가 억압하고 있어, 이드의 무의식이 잘 의식화되지 않을 뿐이다.24)

 

      22)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38쪽.

      23) 지그문트 프로이트, 「<신비스러운 글쓰기 판>에 대한 소고」,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윤희기·박찬부 옮김, 열린책들, 2020, 448쪽.

      24) 지그문트 프로이트, 「억압에 관하여」,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윤희기·박찬부 옮김, 열린책들, 2020, 139-141쪽. 

 

프로이트의 비유 인 ‘신비스러운 글쓰기 판’과 같은 무의식 조직인 이드는 의식에서 지워 진 모든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있는 민감한 몸을 뜻한다.

그러므로, 전 생애의 쾌와 불쾌의 모든 흔적이 새겨진 이드는 혼돈적 욕망의 저장소다.

이 흔적 중 이드의 최고 심층에 있는 표상은 초자아 표상이다.

초자아는 부모와 같이 주체가 절대적으로 의존한 대상 표상 이다.

이는 인용문에서 “풍경화 전체에 사무침을 번지게 하는, 사무침의 샘인 상처의 흔적”으로 은유된다.

초자아는 부모처럼 주체를 발현하는 모든 자원을 주체에게 쏟아붓는 존재기에 역설적으로 가장 부담스러운 존재다.

프로이트가 죽음충동을 일으키는 우울증의 원인을 과도해진 초 자아 표상에서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용문에서, 지워지지 않은 전 생애의 표상 중에서 이것이 “사무침의 샘인 상처의 흔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25)

라캉은 이런 초자아 개념을 대타자 개념으로 전유했다.

이는 라캉이 프로이트의 무의식론을 계승하되 무의식이 언어 기표의 구조로 현상될 수 있다고, 이를 전유한 탓이다.

따라서 라캉에게 주체를 발현하는 모든 자원은 다 기표로 현상되며, 이에 따른 증상도 마찬가지이다.26)

대타자 란 주체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표를 담지하는 절대적인 타자이다.

주체의 기표화된 욕망은 늘 대타자의 욕망에 속해 있는 것이다.

이를테 면 모태에 있는 아이의 욕망을 어머니는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대타자가 정확하게는 아버지 기표로보다, ‘죽은 아버지’인 어머니 기표로 설명되어야 하는 이유다.27)

그러므로, 대타자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기표들의 혼돈적인 총체이 며, 욕망의 총체다.

이 대타자의 기표 구조를, 즉 혼돈적 상징구조를 감 각하는 주체가 곧 상징계적 주체이다.

물론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기표 를 온전하게 향유할 수는 없으므로 대타자 기표는 인간에게 이른바 ‘결 여의 기표’다.28)

 

    25) 지그문트 프로이트, 「심리적 인격의 해부」, 새로운 정신분석 강의, 임홍빈·홍혜 경 옮김, 열린책들, 2020, 88-91쪽.      26) 자크 라캉,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결, 2019, 314-315쪽.

    27) 자크 라캉, 「프로이트적 무의식에서의 주체의 전복과 욕망의 변증법」,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결, 2019, 957-958쪽;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템과 터부」, 종교 의 기원, 이윤기 옮김, 열린책들, 2020, 223-224쪽.; 멜라니 클라인, 클라인의 정신 분석 테크닉 강의, 홍준기 옮김, 눈출판그룹, 2019, 35-37쪽.

    28) 자크 라캉, 「프로이트적 무의식에서의 주체의 전복과 욕망의 변증법」,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결, 2019, 964-967쪽. 

 

인간의 욕망은 다 대타자의 욕망이지만 그 반대는 아니 다.

따라서 인간은 대타자를 욕망하지만, 그 반대는 아니다.

다음 인용 문에서는 ‘너’가 욕망하는 ‘미친 여자’가 이 대타자의 은유로 읽힌다.

 

누군지 알고도 남는, 벌써 골수에 박힌, 그 오래된 상대의 침묵앞에서,, 그 상대가 한없이 말을 쏟아내던 이전과 완전히 달라진 너의 태도는, 이제 네가 오히려, 그 침묵의 숨소리라도 듣고야 말겠다는 듯이, 그 숨소리의 결 이라도 읽어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청각을 곤두세우곤했다는 것인데,, 그 러면 정말, 불규칙한 결결의 숨소리들이 구더기떼처럼 작고 흰몸들로 곰 실거렸고,, 그 다음엔 기어이, 숨소리의 벌레들이 수화기 구멍을 느물느물 기어나와 네 귀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귀 안에 담긴 이전의 수많은 말들이 달콤한 똥인 양 거기에 달라붙어, 네 귀를 미치게 할 태세로, 그것들 을 헤집어놓는 것이었다. 아무리 후벼파도 빠져나오지 않는 그 말들을 네 귀에 부어넣었던 존재, 상대는,, 그즈음에 이르러, 침묵으로 광기의 전략을 바꾼,, 그리고 투시안적인 광기의 영감을 가지고, 네가 다른 곳으로 전화하 려는 낌새를 어김없이 알아채 그 송화 기능을 가로막는,, 낯푸르뎅뎅한, 미 친 여자였다.

(중략)

어떤 때는,, 너의 불안한 예감이 혹시 너의 불안한 욕망일 수도 있지 않을 까, 도대체 너의 무엇이 그녀의 광기의 눈에 제 짝의 자질을 가진 것으로 포 착되었던 것일까, 밀폐된 자의식이 몰아가는 혼잣물음에,, 그녀의 허구의 열기로 버적버적 실핏줄을 태우다가, 술병을 머리 위에서부터 부어 온몸을 취기로 적시고는, 그녀뿐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파묻혀 있을 광기의 씨앗들 중의 네 것을 다스리지 않고 그대로 방기함으로써,, 네 안에서, 그녀의 허구 가 허구는 허구이더라도 완전한 허위나 완전 범죄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이 싹 키워지고,,29)

 

    29)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12-14쪽. 

 

인용한 부분은 ‘너’가 ‘미친 여자’와 처음 통화하는 장면 속에서 자기 와 ‘미친 여자’의 관계를 유추하는 심리묘사의 은유다. 이전에 ‘나’가 통 화했던 ‘성한 여자’가 “한없이 말을 쏟아내던” 바와 달리, ‘너’와 통화하는 이 ‘미친 여자’는 침묵으로 일관한다.

하지만 이의 “결결의 숨소리들이 구더기떼처럼 작고 흰 몸들로 곰실거렸다.”

또한 “숨소리의 벌레들이 수 화기 구멍을 느물느물 기어나와 네 귀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는 귀 안에 담긴 이전의 수많은 말들이 달콤한 똥인 양 거기에 달라붙어, 네 귀를 미치게 할 태세로, 그것들을 헤집어놓는 것이었다.”

이는 ‘미친 여 자’의 침묵이 오히려 ‘성한 여자’의 도착적인 전언들을 한층 헤집어놓는 혼돈의 기표 구조로 ‘너’에게 다가옴을 의미한다.

“낯 푸르뎅뎅한 미친 여자”의 기표들이 ‘성한 여자’의 기왕의 전언을 “헤집어” 해체함으로 ‘너’를 배태하고, 결국 ‘너’의 “송화 기능”인 기표들 을 섭렵해버리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즉 ‘너’의 기표들이 구현하는 욕망 은 송두리째 ‘미친 여자’의 욕망에 섭렵되고 만다.

즉 인간의 욕망을 애 초에 선취하는 대타자를 ‘미친 여자’라는 환상의 기표가 상징하고 있다 고 볼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욕망이 대타자의 욕망에 섭렵되는 ‘사건’ 의 환유가 ‘미친 여자’의 환상적 은유에 기입된다고 볼 수 있다.30) 그러므로, ‘너’는 ‘미친 여자’를 보며 “너의 불안한 예감이 혹시 너의 불안한 욕망일 수”도 있음을 느낀다.

“너의 무엇이 그녀의 광기의 눈에 제 짝의 자질을 가진 것으로 포착되었던 것”일지 자문도 한다.

이것은 ‘너’의 불안한 욕망이 대타자를 상징하는 ‘미친 여자’의 욕망에 “포착되 는”, 애초에 섭렵되는 것임을 점차 자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용문에서 결국 ‘너’는 ‘너’의 욕망을 “다스리지 않고 그대로 방기함으로써”, “그녀의 허구가 허구는 허구이더라도 완전한 허위나 완전한 범죄라고 표현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모른다는 막연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는 대타자인 ‘미친 여자’가 체현하는 총체적 혼돈의 욕망이 기표의 총체적 편재 (omnipresence)로서 존재한다고 느끼는 순간이다.31)

 

     30) 자크 라캉, 「무의식의 위치」,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결, 2019, 983-985쪽.

     31) 자크 라캉, 「정신분석에서의 말과 언어의 기능과 장」,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결, 2019, 309-310쪽. 

 

말하자면, ‘성한 여자’가 기표로 구현되지 못한 ‘나’의 욕망을 담보하는 사랑의 화신이라면, ‘미친 여자’는 기표로 구현되는 ‘너’의 욕망을 담보하는 사랑의 화신이다.

전자가 구현될 수 없는 허상이라면, 후자는 기표 구조로 구현될 수 있는 바, 어쩌면 실상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성한 여자’의 사랑이 ‘나’의 나르시시즘적인 상상의 산물일 따름이라면, ‘미친 여자’의 사랑은 이러한 단순한 상상계를 해체한 총체적 혼돈의 기표 구 조, 즉 상징계 전체를 체현하는 대타자 기표이기 때문이다.32)

‘성한 여자’와 ‘미친 여자’의 대비는 소설에서 무수한 은유로 표현된다.

우선 ‘성한 여자’는 ‘미친 여자’와 같이 순전한 환상적 은유가 아니다.

이 ‘성한 여자’는 ‘미친 여자’처럼 환상 속에서 숨결로 말하지 않고 ‘나’에게 육성으로 말하며, ‘나’의 서사에서 그 뚜렷한 모델도 있다.

이 ‘성한 여자’ 는 ‘나’가 속했던 운동권 수장이었고, ‘나’를 배신하고 ‘나’의 친구와 사귀 는 일에도, ‘혁명적 죽음’을 독려해 동료를 분신자살케 하는 일에도 거침 이 없는 ‘나’의 냉혹한 여자친구였다.

이렇게 수많은 사람의 인생을 망치 고서도 ‘나’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화해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과거는 잊고 바르게 살아나가야 한다는 게 우리 생각이야.”라고 허울뿐인 말까 지도 건넬 수 있는, 실상 반은 ‘미친 여자’였다.

이는 “푸르뎅뎅한 그녀의 낯빛을 뚫고 나와 이글대던 미친 그녀의 눈빛이 때로는 성한 그녀의 눈 빛이기도 했었다.”는 ‘너’의 씁쓸한 회상에서도 드러난다.33)

 

     32) 자크 라캉, 「프로이트적 무의식에서의 주체의 전복과 욕망의 변증법」,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결, 2019, 958쪽.

     33)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95-98쪽. 

 

이는 이 ‘성한 여자’가 ‘나’를 완전히 사랑하는 타자로, 나르시시즘적으 로 상상된 허울의 존재라는 점을 드러낸다.

따라서 이 존재를 해체하는 상징계의 총체적 기표 구조인 총체적 욕망을 체현함으로써 이에 속한 ‘너’의 욕망의 기표를 긍정할 수 있는 ‘미친 여자’라는 대타자는 일견 ‘성 한 여자’보다 실상인 것으로도 생각된다.

하지만 이 대타자를 기왕에 ‘미 친 여자’로 은유하는 점이 노정하듯, ‘너’는 이 대타자가 쏟아내는 기표들에서 점차 거짓됨을 느끼게 된다.

가늠할 수 없는 무한한 기표를 ‘너’ 에게 쏟아냄으로써 이를 벗어날 수 없는 ‘너’의 욕망의 기표를 무조건 긍정하지만, ‘너’의 욕망은 왠지 그녀의 거짓됨을 감당할 수가 없다.

따 라서 ‘너’는 ‘미친 여자’를 경찰서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가 여관방과 독신자 아파트에서 ‘성한 여자’와 ‘미친 여자’에 관한 은유를 읊던 ‘나’와 ‘너’를 떠나게 됨으로써, ‘그’의 서사적 환유가 이 은유들에 병진되기 시 작한다.

그의 몸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자문이 떠오르기 전에, 이미 어디로 가 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조차 할 것이다.

그는 감각의 방향을 따라 남원을 향 하고 있을 것이다.

 

눈보라치는 너를 가로질러, 눈발로 온 세상에 흩어질 너 를 끌어모을 네 중심의 넋을 찾아서. 그곳에 네 넋을 훔쳐갔는지도 모를 그 미친 여자가 살고 있으니까. 그 여자는 벌써 네 넋을 데리고 다른 어딘가로 달아났을지 불확실하지만, 그녀를 추적하려면 거기서 시작해야만 할 것이 다.34)

 

    34)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28쪽.

 

인용한 부분은 ‘그’의 서사가 시작됨을 알리는 ‘그’의 묘사, 즉 은유다.

이후에 ‘그’는 ‘미친 여자’를 실재 속에서 규명하기 위한 여행길에 오르 고, 이때부터 ‘그’의 서사가 본격적으로 개시된다. ‘그’는 ‘너’에게는 큰 영 향을 끼치는 실상인 ‘미친 여자’의 환상이 허구적인 것임을 점차 깨닫게 된다.

남원에서 춘향의 기념물을 답사하며 “춘향의 집은 허구를 사실로 실증해 구축해놓은 기막힌 암호 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는 등, ‘그’는 ‘미친 여자’가 뜻하는 상징계의 대타자 기표와, 이것을 감각하는 ‘너’라는 상징계적 주체도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이 를 벗어나고자 한다. 

 

Ⅳ. 소타자적인 환상을 통해 실재계를 향하는 ‘그’

 

이 장에서는 ‘미친 여자’의 환상적인 은유에 표현된 대타자의 상징계 를 넘어 서술자의 마지막 분신인 ‘그’가 실재계를 감각해나가는 서사를 탐색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는 ‘너’로서 ‘미친 여자’의 환상에 젖었던 독신자 아파트의 공간을 떠나기 전, 미친 여자와 마지막으로 통화하며 “이제 서로가 다 망가졌으니 이쯤에서 끝내자고, 각자의 길을 가지고, 그러면서 각자 노력해 다음 생애선 만나지조차 말도록 하자고” 하며 ‘미 친 여자’에게 단호한 결별을 고한다.

하지만, 떠나면서 “정말 그녀가 그가 아닌 너만의 몫으로 돌려질 수 있을까, 확신할 수 없다.” “더 이상 그가 너는 아니더라도, 너는 이처럼 사방천지에 흰 눈으로 가득한데, 네 시간의 풍경을 그토록 선명하게 그 의 눈앞에 들이대고 있는데, 어떻게 그가 너를 텅 빈 없음으로 떨쳐내 고, 전혀 새로운 그 무언가를 가지고, 자기 자신만을 꾸릴 수 있을 것인 가.” 우려하는 것이다.35)

하지만, ‘그’는 여행하면서 ‘너’의 넋의 중심인 ‘미친 여자’를 ‘너’처럼 환상으로 감각하지 않고 다양한 실재의 사물로 느끼기 시작한다.

예를 들자면 그는 오동도에서 한겨울에도 “끝이 빨고 윤나는 잎새를 뽐내는 동백” 한 송이를 보며, ‘미친 것’은 다양한 실재의 사물로 존재할 수 있음 을 느낀다.

그리고 아침에 들른 한 다방에서는 ‘그’에게 “입산수도”를 독 려하는 노인과 “심판에 날에 선택받는 자가 되라고” 전도하는 청년을 만 나면서 이 역시 같은 ‘미친 짓’이라는 느낌을 받는다.36)

 

   35)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59-60쪽.

   36)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134-137쪽. 

 

삶이 어둠의 구멍이라고 해서, 그걸빠져나가면 망망천공의 빛으로 충만 하리라 믿는 것도 팔자를 믿는 거나 비슷하게 미친짓이 아닐까? 어둠이 없 이 빛만 가득한 곳에 무슨빛의 의미가 있을 것인가? 이거, 아침부터 웬 난리냐, 무슨 특별한 암시냐, 그는 또누가 다가올까 지 레 질려 서둘러 그 자리를 버릴 것이다, 암시? 암시는 무슨암시. 특별하기 는커녕, 지천에 널린평범함의 징후들에 불과한데. 평범한 광증들, 이미 어 둠이고 구멍인 존재의 의미를 찾는. 찾는 그 과정 자체가 잠깐이나마 한 송 이 꽃으로라도 피었다 지면 다행이련만, 위안이 되련만. 그러면서도, 그는, 그런 징후들이 하필 이런 아침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연거푸밀려들었 다는 사실이 암시라면 암시일 수 있지 않겠나, 찜찜해할 것이다.37)

 

     37)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137-138쪽.

 

인용한 부분은 ‘그’가 오동도에서 한겨울에 피어 있는 ‘미친 꽃’, 광증 에 사로잡힌 사이비 종교인들을 맞닥뜨리게 되면서 느끼는 바를 말하는 심리묘사이다.

“삶이 어둠의 구멍이라고 해서, 그걸 빠져나가면 망망천 공의 빛으로 충만하리라 믿는 것도 팔자를 믿는 거나 비슷하게 미친 짓 이 아닐까?”라는 ‘그’의 의문은 기표들이 모두 ‘미친’ 허상일진대 ‘미친 여 자’가 뜻하는 기표의 총체인 상징계도 허상일 수 있다는 ‘그’의 직감을 반영한다.

특히, “입산수도”와 “휴거”에 동참하라는 사이비 종교인들을 만나며 ‘미친 여자’도 그들 같은 “지천에 널린 평범함의 징후들, 평범한 광증들” 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물을 상징하는 기표들의 어둠 속에서 이것들의 총체인 상징계를 빛으로 믿는 것도 “이미 어둠이고 구멍인 존 재의 의미를 (그 어둠 속에서) 찾는” 허망한 일임을 ‘그’는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는 상징적 기표의 총체로 욕망의 총체를 체현하는 대타자의 욕망도 실재에 미치지 못한다는 깨달음에 해당한다.

즉 기표로 전유되는 사물의 총체인 상징계의 대타자도 본질적으로 사물의 기표에 불과하다는 깨 달음이다.

사물을 기표로 전유하는 욕망을 가지는 상징계적 주체가 모 든 사물을 기표로 전유하는 상징계의 대타자를 허상으로 정립하는 것이 다.38)

즉 상징계적인 주체의 욕망을 섭렵하는 욕망의 총체라는 것(대타 자)도 자기의 욕망을 긍정하기 위해서 주체가 정립하는 나르시시즘적 허상에 불과한 것이다.39)

‘너’가 사물의 기표적 총체를 ‘미친 여자’의 은유에 가둠으로써 상징계 적인 대타자의 허상을 정립했다면, ‘그’는 사물의 기표적 현전을 뜻할 뿐 인 환유, 이른바 “환유적 잔여물”을 끌어안음으로 주관의 기표로 총체화 되지 않는 실재계를 감각하는 것이다.40)

이는 바로 라캉이 후기에 정립 하는 실재계다.

주관적 은유로써 세계를 확집하는 상징계의 대타자 기 표를, 결국 확집할 수 없는 실재계적인 환유의 차원에서 사이비 소타자 로 환언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41)

 

    38) 이는 초자아를 대체하는 대타자의 표상이 강박 신경증이나 불안 히스테리를 낳는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억압에 관하여」, 정신분석학의 근본 개념, 윤희기· 박찬부 옮김, 열린책들, 2020, 146-152쪽.

   39) 자크 라캉, 「해석에서 전이로」,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389-390쪽; 자크 라캉, 「분석가의 현존」,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201-202쪽.

   40) 자크 라캉, 「시니피앙들의 행렬 속에서의 성욕」,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232-233쪽.

  41) 자크 라캉, 「네 안의, 너 이상의 것을」,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 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413-414쪽. 

 

요컨대, 기표로 사물을 전유하지 못하는 상상계적인 주체인 ‘나’가 자 기를 사랑하는 타자의 허상으로 정립하는 것이 ‘성한 여자’이다.

그리고 기표로 사물을 전유하는 상징계적인 주체인 ‘너’가 자기 기표를 무조건 긍정할 수 있는 기표의 총체인 타자의 허상으로 정립하는 것이 ‘미친 여 자’인 대타자이다.

사물을 향한 욕망을 기표로 전유함으로써, ‘나’의 단 순한 욕망을 ‘너’는 기표들로 해체했을 뿐이다.

즉 ‘나’의 자아 이상인 ‘성 한 여자’나 ‘너’의 대타자인 ‘미친 여자’는 주체가 동일시하는 나르시시즘 적 타자의 허상(소타자적 환상)일 따름이다.42)

 

    42) 자크 라캉, 「네 안의, 너 이상의 것을」,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 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402-405쪽; 자크 라캉, 「분석과 진리 혹은 무의식의 닫힘」,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215쪽. 

 

‘그’가 사물의 실상인 실재계를 느끼고자 ‘성한 여자’뿐 아니라 미친 여자’까지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그’는 후기의 라캉처럼 대타자 기표를 소타자적 환상으로 환언함으로 이를 모두 ‘비껴가’겠노라고 선언한다.

‘그’는 ‘미친 여자’를 방불하게 하는 소타자적 환상들을 ‘비껴 가’는 여정을 감행한다.

이를 통해 혹 사물의 실재를 느낄 수 있기를 바 라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미친 여자’를 방불하게 하는 아우라를 가진 허구의 여인인 춘향 묘역, 시민운동의 성지인 광주 등을 다 비껴간다. 이 때 ‘미친 여자’의 환상이 아닌, 실재하며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그녀’와 동행한다.

 

당신을 버린 첫사랑이라는 그 여자, 전화번호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 그 지? 그거 좀줘봐. 너무 뜻밖이라 어안이 벙벙해져, 엉겁결에 그녀의 말을 따를 그. 그의 수첩에서 펼쳐진 한 페이지를 북찢어내 그 번호로 시외 전화 를 신청할 그녀. 잠시 후송화기 구멍을 가리고 수화기 구멍을 그의 귀에 가 져다 대고, 그녀는, 맞어?, 하고 낮게 속삭일 것이다. 전화기 안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송화기에 입을 대고 돌발적으로, 뭔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기하고 있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 럼, 표정까지 써가며, 정사의 절정에 오른 여자의 신음 혹은 교성을 흘려넣 을 것이다. 생각보다는 약간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전화가 끊어졌는지, 그 녀는 소리를 뚝멈추고 약간은 씁쓸한 웃음으로 그를 내려다볼 것이다. 뭐 하는 거야?, 무슨짓이야?, 하는 그의 물음에, 그녀는, 장난이고 야유야, 대 답한 뒤, 이젠 이것도 버려, 하며 뜯겨진 수첩쪼가리를 갈기갈기 찢을 것이 다.43)

 

인용한 부분은 ‘그’와 뜻을 같이하며 동행하는 ‘그녀’가 ‘미친 여자’에 게 전화하는 장면이다.

‘그녀’는 “뭔가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기하고 있는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표정까지 써가며, 정사의 절정에 오른 여자의 신음 혹은 교성을 흘려넣는다.”

그리고 자기 행동이 ‘미친 여자’를 향한 “장난이고 야유”임을 밝힌다.

이는 하나의 사물 기표에 불과한 ‘그녀’가 상징계 기표들의 총체인 ‘미 친 여자’를 조롱하는 장면이다.

기표로는 도달할 수가 없는 욕망의 실재 에 비한다면 기표의 총체인 대타자나 하나의 기표나 마찬가지라는, 실재계에 관한 정신분석학을 알레고리화 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는 사실상 자기를 향한 조롱과 마찬가지라, “그녀는 소리를 뚝 멈추고 약간은 씁쓸한 웃음으로 그를 내려다볼 것이다.” 결국, ‘그녀’는 “이젠 이것도 버려, 하며 뜯겨진 수첩 쪼가리를 갈기갈 기 찢는다.”

이는 더 이상 이들이 ‘미친 여자’의 소타자적 환상에 매몰될 필요가 없음을 알린다.

지금까지 이 ‘미친 여자’를 방불하게 하는 많은 것을 비껴왔는데, 결국 그들은 ‘미친 여자’까지 버림으로써 기표로 구현 되는 상징계적 주체의 욕망을 완전히 버리고 비껴감으로 무의미적 실재 계를 감각하고자 하는 궁극의 목표를 맞닥뜨리게 된다.44)

 

     43)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203-204쪽.

     44) 자크 라캉, 「주체와 타자: 소외」,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옮김, 새물결, 2008, 320-321쪽.

 

때로, 비껴-가기의 그 예정 없음이 그들을 미칠 것 같게 만들지는 않을 것 인가? 왜 아니겠는가? 하지만, 아직은 그것이 그들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오 리라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들의 잠적이 예정 없는 실존에 내기를 거는 것과 같으리라는 것. 먼 미래의 어느 날, 지나온 다른 모든 것과 함께 그 끝없는 비껴-가기조차 이미 너절한 운명으로 정해져 있 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순간에 또한 그 순간을 뒤집어 히 죽이 웃으며 비껴갈 수 있다면, 그들이 겪을 실존의 고통은 동시에 새로운 실존의 희열이 될 수도 있으리라는 독약 같은 희망 때문이리라. ……그리하여 언젠가, 망연히가 아니고 오히려 도발적으로, 그와 그녀, 그들은 잠적으로부터 돌아오게 되기를 꿈꿀지 모른다. 그 돌아옴조차 비껴 -가기라는 듯 가면을 쓰고, 삶이 연극인 것처럼 연기하는 연극이 삶인 것처 럼 삶으로써, 그들이 스쳐가는 것들을 뒤흔들 수 있기를 바라며. 어느 날, 그 는 그녀에게 그의 가면인 시를 주고, 그녀는 그에게 그녀의 가면인 연기를 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잠적을 위해 놓았던욕망의 다리가 사라진 자리 에, 그 가면의 다리를 걸치리라. 그림자의 다리. 그 다리 건너, 가지를 뿌리 처럼 하늘에 박고 검게 빛나는 상상의 나무를 보면서. 그 나뭇가지에 두 팔 을 걸고 매어달린, 낯익은 듯 낯선 누군가의 얼굴을 보면서. 기필코 그들의 다리가 되어주리라고, 그들이 꿈꾸는 가면! 더 이상 단순 한 위장의 도구가 아닐, 존재의 변신을 위한 가면. 한번 쓰면 다시는 벗길 수 없는 가면. 얼굴로 녹아들어 얼굴과 하나가 되는 가면. 가면이 스며든 얼굴 은 동시에 얼굴이 배어나온 가면이리라.45)

 

    45)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222-223쪽. 

 

인용한 부분은 그들이 ‘미친 여자’까지 비껴가는, 그 비껴감의 궁극에 이르는 사유를 담화하는 심리묘사다.

“먼 미래의 어느 날, 지나온 다른 모든 것과 함께 그 끝없는 비껴-가기조차 이미 너절한 운명으로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오더라도, 그 순간에 또한 그 순간을 뒤집어 히죽이 웃으며 비껴 갈 수 있다면” 그들은 이 비껴감의 실존의 고통이 실존의 희열로 전화될 수도 있다고 기대한다.

끝없이 기표로 전유된 사물을 비껴가는 실존의 고통이 실존의 희열로 전화되는 지점은 이 끝없는 과정의 결말에 있지 않고, 이 과정을 향유하 는 사유에 있다.

즉 기표로 전유된 사물과 그 총체인 대타자까지도 소타자적 환상에 불과한 것임을, 사물을 기표로 전유하는 삶은 이러한 무상 한 “가면”일 뿐임을 자각하는 사유에 있는 것이다.

사물의 기표를 주관적 은유(시)로 전유할 수밖에 없는 ‘그’의 삶이, 또 이런 연극의 은유로 전유할 수밖에 없는 ‘그녀’의 삶이 무상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이를 서로 나누며 향유하는 순간, 이 “가면” 바깥의 실재계를 감각할 수가 있 게 된 것이다.46)

무상한 가면의 삶을 향유하며 그들은 ‘미친 여자’를 상징했던 ‘검은 나무’가 거꾸로 서 있는 “낯익은 듯 낯선 누군가의 얼굴”을 본다.

이는 ‘나’ 를 매몰시켰던 ‘미친 여자’라는 대타자도 결국 소타자적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서, 향유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하나의 기표로 전유되는 사물이든, 이것들의 총체인 대타자든 이로써 구현되는 그들의 삶 자체가 무상한 가면으로서 향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47)

그러므로, ‘그’는 결국 말없음표로 점철된, 기표가 아예 텅 빈 텍스트 를 구현한다.48)

이는 ‘그’가 기표로 전유될 도리가 없는 실재계를 온전 히 느끼게 되었음을 의미한다.49)

 

    46) 자크 라캉, 「프로이트적 무의식에서의 주체의 전복과 욕망의 변증법」, 에크리, 홍준기 외 옮김, 새물결, 2019, 961-963쪽.

    47)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하나의 논박서, 홍성광 옮김, 연암서가, 2011, 228-230쪽.

    48) 한없이 낮은 숨결(1989)이 연사(copula)로만 점철된 순수한 통사구조로 ‘말없음표 텍스트’를 만든 것은 상징계적 대타자를 향한 팔루스적 욕구를 표현하지만, 미쳐버 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 아예 텅 빈 ‘말없음표 텍스트’를 만든 것은 욕구를 소거 한 실재계적 욕망을 표현한다고 볼 수가 있다. 전자의 표현에 관해 다음의 논의를 참고할 수 있다. 이인표, 「한없이 낮은 숨결(이인성, 1989)의 정신분석학적 탐색 과정 고찰」, 한국근대문학연구 제25권 제1권, 한국근대문학회, 2024, 214-216쪽.

     49) 이는 은유에 기입할 수 없는 “환유적 잔여물”을 감각하는 것이다. 자크 라캉, 「시니피 앙들의 행렬 속에서의 성욕」, 정신분석학의 네 가지 근본 개념, 맹정현·이수련 ,  옮김, 새물결, 2008, 232쪽.

 

그리고 마지막 ‘나’의 서사에서 ‘나’는 거꾸로 선 대타자인 ‘검은 나무’처럼 물구나무서기를 하면서, 대타자를 뒤집은 소타자적 환상을, 무상한 삶을 향유하는 실재계적 주체로 거듭 난다.

물론 실재계 자체를 향유할 수는 없는 “근원적인 결핍” 때문에, 거꾸로 서도 “하늘의 어둠에 뿌리내리지를 못하는 발끝은, 아무튼 여전히 슬프다.”50)

 

    50)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225-228쪽.

 

이러한 ‘나’의 슬픈 말과 행동은 무상한 삶을 향유할 수 있는 실재계 적 주체의 구체적인 감각이다.

요컨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 는은 우선 ‘나’, ‘너’, ‘그’로 나뉜 서술자 정체성이 각각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를 느끼는 정신 현상을 서사화했다.

그리고 ‘그’가 상징계를 소타 자적 환상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됐을 때, 이 소설은 상상계, 상징계를 지 난하게 거쳐 결국 실재계를 느낄 수 있게 되는 서술자의 정신 현상을 알레고리로 구현하는 서사로 드러났다.

이 알레고리는 심층심리학 이론의 관념성을 지양해 실재계의 개념을 실재계의 감각으로 고양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이론의 실재계’는 소타자적 환상을 향한 부분 충동으로 가늠할 수 없는 욕망 개념으로 제안될 따름이나,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 형상화하는 ‘감각의 실재계’는 소타자를 향한 구체적 부분 충동들 속에서 무상감으로 핍진하 게 배태될 수밖에 없는 욕망을 독자가 바로 공감케 하기 때문이다.

 

Ⅴ. 나가며

 

  미쳐버리고 싶다는 말이 곧 미쳐지지 않는다는 말일 텐데, 그걸밑받치고 있는 것은, 뭐랄까, 아슬아슬한 자의식, 혹은 자존심? 그렇다면, 그렇게 견뎌서 어떻게 되는 거지? 그저 견딤의 어떤 결정체가 되는 거겠지. 소금같이 짜디짠 결정체. 울음 으로 온몸의 수분을 다 말리고, 침묵으로 살마저 가루가루 바스러트리고 나면, 염전의 개펄이 검듯 몸껍질은 검게 타도, 그 안엔허연 소금 가루들이 담길 걸세, 아마. 그리고 그건 아픔 자체의 순수한 밀도로 남은 것일 거네. 비록 그것이 그 아픔을 야기한 어떤 구체적 체험에서 비롯되었다 할지라 도.51)

 

     51)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 지성사, 1995, 146쪽. 

 

인용한 것은 ‘그’가 ‘너’의 ‘미친 여자’라는 상징계의 대타자를 벗어나 서 실재계를 향하는 지난한 여정에서 느끼는 바를 서술한 심리묘사이 며, 이 소설의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설명할 수 있는 대목이다.

본론에 서 보았듯 ‘너’는 ‘성한 여자’라는 상상계적 타자에 집착하는 ‘나’를 벗어 나 ‘미친 여자’라는 상징계적 타자에 매몰되어 미쳐버리고 싶다.

이 상징계적 대타자인 ‘미친 여자’가 기표로 세계를 전유하는 ‘너’를 애초에 섭 렵하는, 모든 기표의 혼돈적 총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가 미쳐버릴 수 없는 이유는 상징계적 타자에게도 집착하 지 않으려는 ‘그’를 배태하기 때문이다.

‘그’의 영향으로 ‘너’는 개별 기표 뿐 아니라 이 기표의 총체인 상징계도, 기표로 세계를 전유하는 주체의 나르시시즘적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서술자는 ‘나’의 상상계와 ‘너’의 상징계를 경유함으로써 ‘그’의 실재계까지도 알레 고리화 하는 데 이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정신분석학적 알레고리는 주체가 상상과 상징의 나르시시즘에 ‘미쳐지지’ 않고, 이를 소타자적 환상으로 향유할 수 있게 되는, 즉 실재계적인 주체로 거듭나는 지난한 여정의 감각을 완미하게 표현한 것이다.

물론,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도정이 단선적이지만은 않다.

실재계적 욕망은 정신 현상의 확실성을 보증하는 충분조건인 ‘프로이트의 코 기토’일 뿐이다.

즉 이 무상한 욕망을 전제할 때, 필연적으로 정신분석 은 우울, 불안, 강박, 도착 등 정신 현상을 석명하게 드러낼 수 있게 됐 다.

주체는 실재계를 감각하더라도 상징계적 강박이나 불안, 상상계적 도착을 느낄 때도 있다.

즉 ‘나’, ‘너’, ‘그’는 하나이다.

하지만 실재계를 향한 도정은 ‘나’의 정신 현상의 확실성을 보증해주는 ‘그’라는 심층을 향한 지적인 탐색일 따름이다.

심층심리학의 이론이 개념을 통해 탐색 했다면,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의 완미한 알레고리는 이 탐색을 핍진한 감각으로 구현한 데 그 특별한 의미가 있다

. 이 논문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의 작품론을 표방했다.

하지만 소설을 정신분석학적 알레고리로 통찰한다는 점에서 이 논문은 정신분석학적 비평론의 성격도 강하다.

물론 이 소설은 전작들에서 이어 지는 작가의 서사 언어 해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논문은 특별 히 이 해체의 과정과 목표가 심층심리학을 추구하는 프로이트 계열의 정 신분석학의 과정과 목표를 한층 심층적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밝혔다.

지난한 서사 언어의 해체로써 자기의 심층에 도달하는 소설의 성과를 통찰한 선행연구들을 이어서, 이 논문은 소설의 심층이 정신분석학이 추구하는 심층 중 실재계를 구현한다는 점을 통찰했다.

프로이트 계열 의 정신분석학은 의식의 심층인 무의식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심층심리 학이라 회자된다.

특히 라캉은 언어 기표 구조로 무의식의 심층이 현상 되는 바를 상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실재계를 비롯해 고도로 추상된 관 념의 은유로 가득 찬 라캉 등 이론의 난해함은 정평이 나 있다.

그러므로 텍스트의 스타일이라는 물적 근거로써 추상성을 완화하여 문학이 심 층심리학의 주요 개념들을 완미하게 고양할 수 있다.

이 논문이 미쳐 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론이자 이로써 정신분석학 비평론을 추구 한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이렇게,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과 정신분석학을 상호 고양하고자 이 논문은 소설에서 ‘나’, ‘너’, ‘그’로 해체되는 서술자 정체성에 주목했다.

이를 통해 이 논문이 특별히 통찰한 바는 다음의 세 가지이 다.

  첫째는 이들이 각각 상상계적 주체, 상징계적 주체, 실제계적 주체 임을 통찰한 것이다.

  둘째는 자아 이상인 ‘성한 여자’의 상상계 속에 갇힌 ‘나’를, 그리고 대타자인 ‘미친 여자’의 상징계 속에 갇힌 ‘너’를 고찰한 것이다.

이로써 나르시시즘적으로 세계를 동일시하는 서술자 정체성을 광범하게 통찰했다.

   셋째는 대타자를 소타자적인 환상으로 갱신함으로써 실재계까지 감각하는 ‘그’를 통찰할 수가 있었다.

이를 통해 미쳐버 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 무의식의 최고 심층에 육박하는 정신분석 학적 탐색을 완미한 서사적 감각으로 구현한 알레고리로 드러났다.

 

❚참고문헌

1. 기본 자료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문학과지성사, 1995.

2. 논문 및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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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이 논문은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론이다.

이 소설을 정신 분석학적 알레고리로 통찰한다는 점에서 정신분석학적 비평론이기도 하다.

소설은 전작들에서 이어지는 작가의 서사 언어 해체를 가장 극명 하게 보여준다.

논문은 이 해체의 과정과 목표가 심층심리학을 추구하 는 프로이트 계열의 정신분석학의 과정과 목표를 구현하고 있음을 밝힐 것이다.

프로이트 계열의 정신분석학은 의식의 심층인 무의식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심층심리학이라 회자된다.

특히 라캉은 언어 기표의 구조로 심 층의 무의식이 현상되는 바를 상세히 통찰했다.

고도로 추상된 관념의 은유로 가득 찬 라캉 텍스트의 난해함은 정평이 나 있다.

그러므로 텍스 트의 스타일이라는 물적 근거로 그 추상성을 완화해 문학 비평이 심층 심리학의 개념을 구체화할 수 있다. 이 논문이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 지지 않는론이자 이를 통한 정신분석학 비평론을 표방하는 이유는 여 기에 있다.

라캉이 자기의 심층심리학이 문학적 자질들과 조우하기 바 랐던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이렇게,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과 정신분석학을 상호 고 양하고자 본론에서는 이 소설에서 ‘나’, ‘너’, ‘그’로 해체되는 서술자 정체 성에 먼저 주목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각각 상상계적 주체, 상징계적 주체, 실제계적 주체임을 밝힐 것이다.

Ⅱ장에서는 자아 이상인 ‘성한 여자’와 상상계적인 관계를 맺는 ‘나’를 고찰한다.

Ⅲ장에서는 대타자인 ‘미친 여자’와 상징계적 관계를 맺는 ‘너’를 고찰할 것이다.

Ⅳ장에서는 소타자적 환상을 향유함으로써 실재계를 향하는 ‘그’를 고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이 정신분석학이 추구하는 무의식의 심층을 무척 완미하게 구현해낸 알레고리로 재조명 될 것이다.

핵심어 : 이인성,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정신분석학적 알레고리, 상상계, 상 징계, 실재계, 대타자, 소타자적 환상

 

 

❚Abstract

A Study on the Allegorical Narrative of Psychoanalysis, Wanting to Go Crazy, but Not Going Crazy (Lee, In-seong, 1995) Lee, In-pyo

his study is a theory on Wanting to Go Crazy, but Not Going Crazy. It is also a psychoanalytical criticism in that it examines this novel as a psychoanalytical allegor y. This novel most clear ly shows the author ’s deconstruction of narrative language, which continues from his previous works. This study will reveal that the process and goal of this deconstruction embody those of Freudian psychoanalysis, which pursues depth-psychology. Freudian psychoanalysis is called depth-psychology in that it explores the unconscious, which is the depth of consciousness. In particular, Lacan had a detailed insight into the phenomenon of deep unconsciousness through the str uctur e of linguistic signifier s. The difficulty of Lacan’s text, full of metaphors of highly abstract ideas, is well-known. Therefore, literary criticism can embody the concepts of depth-psychology by alleviating its abstractness through the material basis of the styles of literary text. This is the reason why this paper advocates the theory of Wanting to Go Crazy, but Not Going Crazy and the psychoanalycal criticism through it. This may also be the reason why Lacan hoped that his depth-psychology would encounter literary qualities. In this way, in order to mutually promote Wanting to Go Crazy, but Not Going Crazy and psychoanalysis, this paper will first focus on the narrator’s identity, which is broken down into “I”, “you”, and “he”. And it will be revealed that these are imaginary subject, symbolic subject, and real subject, respectively. Chapter Ⅱ examines the “I” who for ms an imaginar y relationship with the a “sane woman” who is the ego-ideal. Chapter Ⅲ will examine “you”, who forms a symbolic relationship with an “insane woman”, Autre. In Chapter Ⅳ, we will be able to consider “him” heading towards the real by enjoying the fantasy of autre. Through this, Wanting to Go Crazy, but Not Going Crazy will be revealed as a perfect allegory that embodies the depth of unconsciousness pursued by depth-psychoanalysis. Key Words : Lee In-seong, Wanting to Go Crazy, but Not Going Crazy, Psychoanalytical Allegory, Imaginary, Symbolic, Real, Autre, Fantasy of Autre

 

 2024년 5월 6일에 접수   2024년 5월 10일 심사   2024년 5월 30일 게재 확정.

현대문학의 연구 83권

 

KCI_FI003097265.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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