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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베르그송, 기억의 본질과 자아(의식)의 형성 과정에 관한 논고-물질과 기억을 중심으로/이명곤.제주大

1. 서론 : 자아란 무엇인가?

2. 두 가지 양태의 기억과 기억의 지속

3. 기억의 총체성과 비-분할성

4. 배경-기억으로서의 추억과 순수 기억

   1) ‘내적이고 주관적인 비전(vision)’으로서의 개별적인 기억

    2) 기억과 지각 사이의 본성적인 차이

5. 자율적인 기억의 선택과 자아의 창조

6. 결론

 

 

1. 서론 : 자아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에 대한 물음은 철학사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하나의 질문을 형성하고 있다.

불어에서 자아란 ‘la conscience de soi’로서 ‘자 기(soi)’에 대한 의식(conscience)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의식’을 소유한 생명 체에게 있어서 의식이란 외부대상에 대한 의식을 지칭한다.

하지만 정신을 가진 인간은 반성의 능력을 통해 자기 자신에 대해 의식할 수 있는 특수한 존재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자기에 대해 의식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기억에 대해 의식한다 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과 구분되는 ‘자기’라는 존재는 곧 자신이 정신 속에 지니고 있는 자신의 삶에 대한 기억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 문이다. 베르그송은 이를 인격(personne)1)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육체나 오감 의 능력 등은 비록 질적으로 차이가 난다고 해도 다른 모든 인간과 구분되는 특 별한 나의 것이랄 수 있는 것이 없다.

반면 나의 정신 혹은 의식 속에 있는 나의 삶의 기억은 결코 동일한 것을 발견할 수 없는 유일한 것이다.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Matière et Mémoire)에서 인간의 기억에 대해 논 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기억이 인간의 대뇌의 표피에 마치 데이터처럼 저장 된다는 과학자들의 사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다양한 임상 실험의 결과들을 검토한다.

그리고 기억이란 대뇌의 어느 곳에 저장되는 것이 아니며, 대뇌는 다 만 기억을 신경으로 전달하는 중개자로만 고려하였다.

이러한 그의 사유는 현대 과학철학에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 인간의 의식이나 자아 등에 관해 유물론적인 관점에서 고려하는 방식, 정확히는 뇌과학의 방식에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꽁트 가 인간의 영혼을 ‘뇌 기능의 체계적인 도식’으로 고려한 이후,2) 과학에서는 인간의 정신작용이나 활동을 뇌의 작용과 기능으로 환원하고 있다.

 

     1)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나’ 혹은 ‘나의 인격(개성)’이란 기억이라는 전체 이미지에서 인식과 행동의 중심을 이루는 것처럼 고려된다. “먼저 이미지의 전체가 있다. 이 전체 이미지 안에 “행동의 중심” 이 있으며, 이 중심에서 관심이 있는 이미지들이 반사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지각들이 탄생하고 행동이 준비되는 것이다. 나의 육체는 이러한 지각들의 중심으로 그려지고, ‘나의 인격(ma personne)’은 이러한 행동이 관련되어야 하는 존재이다.” Bergson, Matière et Mémoire, Paris, PUF, 1965, p.40. 이하 MM의 축약형으로 표기함.

    2) “이리하여 꽁트는 영혼에 관한 새로운 이론을 설립하고자 하는데, 그 대상은 엄밀히 말해서 두뇌의 체계적인 도표, 하나의 정신 심리학적인 분석(analyse psycho-physiologique)인 것이다. 그는 인 간의 정신심리학을 열 개의 정감적인 동인들(moteurs affectifs), 다섯 개의 지성적인 기능들 (fonctions intellectuelles) 그리고 세 가지의 실천적인 특성들(qualités pratiques)로 마치 인간의 본성에 관한 실증주의적인 이론처럼 분석하고 있다.” 이명곤, 「생명과 영혼에 관한 실증주의의 유 물론적 사유와 베르그송을 통한 비판」, 동서철학연구, 제 36 호, 2005, 54쪽.

 

예컨대 어떤 사 람이 기억 상실증에 걸리면 이는 곧 뇌세포의 손상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뇌 과 학에서는 일반적으로 두뇌 표피를 ‘국지화’하여 인간의 모든 기능들을 뇌의 특정 한 장소에 할당하고, 심지어 인간의 기억마저도 마치 컴퓨터 메모리에 저당된 데 이터처럼 뇌의 특정한 장소에 저장된 것처럼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사유는 인간 의 모든 정신활동과 그 결과를 오직 두뇌의 작용과 기능으로 환원하는 것으로 인 간을 물질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인간존재의 물질화가 가지는 결과는 상당히 심각하다. 이렇게 인간을 물질화하게 되면 인간의 행위에 대해 특히 미래 의 가능한 선택에 있어서 자유가 상실되고 오직 결정론적으로 규정하게 되기 때 문이다.

즉 모든 행위들은 뇌 속의 기억들의 생물화학적인 작용에 의해 필연적으 로 결정되기 때문에 사실상 ‘자유의지’란 엄밀히 말해 존재하지 않게 된다.3)

 

     3) 결정론에는 ‘보편적 결정론’과 ‘기계론적 결정론이 있다. 일반적으로 보편적 결정론(detérmisme universel)이라고 부르는 것은 세계의 모든 운동을 물리적인 작용과 반작용으로 고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달랑베르와 디드로가 쓴 백과사전에 등장하고 있다. “세상에서 한 가지 더 많거나 적은 사건이 발생하거나 어떤 사건의 상황이 단 한 번만 변한다고 가정하면, 시계 전체가 바퀴 중 하나가 입은 아주 작은 변화에도 영향을 받는 것처럼 다른 모든 것이 이 작은 변화에 영향을 받게 된다. […] 천 개의 세계가 동시에 존재하고, 모두 이 세계와 유사하며, 결과적으로 동일한 법칙에 의해 지배된다고 가정해 보자. 모든 것이 완전히 동일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 법칙들 덕분에, 사람 들은 이 세계들 각각에서 같은 순간에 같은 행동을 할 것이다.” D'Alembert article “Fortuit” in D'Alembert and Diderot (eds.), Encyclopédie ou Dictionnaire raisonné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 tome 7, 1757. 철학에서는 ‘기계론적 결정론’이란 이름으로 홉스나 베이컨과 같 은 경험론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데 이들에 의하면 모든 인간의 행위는 신경과 근육 그리고 생물학적 반응에 의한 일종의 ‘기계적인 움직임’에 의해 필연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산출되는 모든 것은 필연적으로 산출된다는 것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산출되는 모든 것은 그것을 산출할 충분한 원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자발적인 행동이란 필연에 의해 행해진다.” Hobbes, De la liberté et de la necessity, trans. F. Lessay, Vrin, Paris, 1993, p.110.

 

일반적으로 전통적인 사유에 의하면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의지란 도덕적인 인 간이 될 수 있는 조건으로 인간이 다른 생명체와 구분되고 인간답게 될 수 있는 핵심적인 원동력이다. 중세철학자는 인간은 자유의지를 통해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에 모든 도덕적 행위에 있어서 자기 행위의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칸트는 인간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선택하는 것을 ‘자율적인 행동’으로 간주하였고, 인간은 오직 자율적인 행위를 통해서 도 덕적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사실상 인간이 보다 가치 있는 행동과 삶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은 자유의지를 통해서라는 것을 부정하는 철학자는 —최소한윤리, 도덕적 삶을 긍정하는 철학자라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러한 자유의지의 능력이 사실은 정교한 두뇌적 시스템에 의하여 필연적으로 결정된다 고 가정하게 되면, 인간에게 있는 자유의지의 능력이란 사실 환상에 불과하고, 인간 역시도 다른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모든 것이 생물화학적인 작용의 결과에 따라 필연적으로 규정되고 선택하게 되는 고등동물 이상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 다. 나아가 자유의지를 부정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해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타아’에 대립하는 ‘자아’란 곧 나만의 기질이나 성격, 나 만의 가치나 이념을 통해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살아온 나의 과거의 삶의 기억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만의 가치나 선택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외부의 환경이나 사회적 구조에 의해서 ‘선택 되어진’ 것이라면, 너와 구분되는 ‘나의 자아’라는 말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삶의 기억들을 선별하고 질서 지우면서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자기의식’의 내 용 즉 ‘자아’를 형성해가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이러한 사유는 인간 이란 자아의 형성을 통해 스스로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고, 자신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세상에서 하나 뿐인 유일한 자아를 형성해 가는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과학 기술 문명 속에 점점 더 존재감을 상실하고 마치 사회 속의 한 부속품처럼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현대의 분위기에 ‘삶에 대한 소중함’ ‘자기 존재에 대한 자존감’ 등을 회복하는데 매우 중요한 사유이다. 우 리는 본 논문에서 이러한 자아의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기억의 본질에 대해서 과 학적 사유를 거부하는 베르그송의 관점을 통해 조명하고, ‘자아’가 형성되는 그 과정에 대해 모색하면서 왜 ‘자아의 형성’이 뇌의 기능이나 작용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정신적인 것’인지에 대해 해명할 것이다.

 

2. 두 가지 양태의 기억과 기억의 지속

 

인간은 두 가지 대립하는 기억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기계적으로 암기된 기억 으로 ‘영어 단어’ ‘세계 도시의 이름’ ‘조선시대 왕들의 이름’ 등이며, 다른 하 나는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서 체험하는 사건과 같은 과거 사실들에 대한 기억이 다.

그리고 이러한 기억들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의식을 구성하는 요소들로서 ‘나 는 누구인가?’에 답할 수 있는 근거들이다.

베르그송은 이 두 가지 구분되는 기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암기를 통해 습득한 과목에 대한 기억은 습관의 모든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습 관과 마찬가지로 과목에 대한 기억은 동일한 노력의 반복을 통해 획득된다. (...) 그것은 초기 자극에 의해 완전히 흔들리는 하나의 메커니즘 안에, 동일한 질서와 동일한 시간 안에 뒤따르는 자동적인 운동들의 닫힌 시스템 안에 저장된 다. 이와 반대로, 특정한 독서에 대해서 두 번 혹은 세 번 읽은 기억은 습관적인 특징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여기서 이미지는 필연적으로 단김에 기억 안에 각인된다. 왜냐하면 다른 독서들은 정의상 다른 기억들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이 것은 내 인생의 사건과 같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날짜가 정해져 있으며, 따라서 반복될 수가 없다. 이후에 다시 읽은 내용이 추가되면 이는 원래의 성격만 바뀔 뿐이다.4)

 

위 설명에서 베르그송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억에는 암기와 같은 반복학습 을 통해 기억되는 ‘기계적인 기억’과 삶의 사건과 같이 ‘일회적인 기억’으로 반 복될 수 없는 기억이 있다는 것이다.

영어 단어의 경우 열 번을 반복하여 경험하 더라도 사실상 하나의 기억에 불과하다. 동일한 한 가지 기억이 반복하여 중첩되 면서 마치 덧칠을 하듯 보다 뚜렷한 동일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에 불과하다.

반면 독서의 경우 일단 독서를 마치고 나면 독서에 대한 기억은 전체적인 스토리 나 이미지로서 기억되며, 나중에 다시 두 번째 독서를 한다고 해도, 첫 번째의 독서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새로운 기억이 된다.

즉 매번의 독서는 항상 새로운 독서를 형성하며, 환원 불가능한 한순간을 구성하는 것이다.

사실상 우리가 삶의 체험이라고 부르는 ‘인생의 모든 사건들’이 이와 마찬가지다. 동일한 장소, 동일 한 사람, 동일한 주제로 담론을 한다고 해도, 결국 매번의 순간은 서로 다른 기 억을 형성하고 유일한 기억이 된다.

베르그송은 이 후자의 기억을 자주 ‘수브니르(souvenir)’로 표기하기도 하는 데, 이는 일반적인 기억이 아닌 특정한 과거의 체험과 관련된 ‘추억’에 해당하는 용어이다.

즉 기억에는 크게 ‘반복 학습’에 의한 기억과 삶의 체험으로서의 ‘추 억’이 있을 수 있다.

베르그송은 이 후자의 기억을 “자발적인 기억(souvenir spontané)”5)이라고 부르고 있다.

따라서 전자는 ‘인위적인 혹은 의지적인 기억(mémoire volontaire)’이 될 것이다.6)

 

     4) MM, pp.69-70.

     5) Ibid., p.72. 

     6) 베르그송은 비록 드물기는 하지만 ‘자발적인 기억’도 ‘인위적으로’ 이루어질 때가 있다고 하는데, 예를 들면 전쟁 중에 잃어버린 동생의 얼굴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의지적으로 자주 떠올릴 경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자발적인 기억 중) 반복을 통해 우리가 의지적으로(volontairement) 획득하 는 기억들은 매우 드물고 예외적인 것이며...” Ibid. 

 

베르그송이 특히 주목하고 있는 것은 추 억으로서의 ‘자발적인 기억’이다. 왜냐하면 ‘나’라는 주체의 정체성이나 동일성 이 문제가 될 때 중요한 것은 바로 개인적인 삶의 체험에 관련된 기억이기 때문 이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인위적인 기억이 유용성이나 실천적인 적용과 관련된 것이라면, 자발적인 기억은 유용성이나 실천적인 적용과는 무관하게 ‘자연적인 필연성(nécessité naturelle)’이라는 하나의 유일한 이유로 과거가 저장된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자연적인 필연성이란 ‘미래의 새로운 행동으로 확장하기 위한 필연성’이다. 다시 말해서 기억 속에 있는 다양한 상들을 정렬하고 교정하면서 “하나의 유기체로 변형시키는 것을 지속하는 운동들이, 육체 안에서 행동을 위한 새로운 성향을 만들어내는”7) 필연성이다.

이는 경험적으로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과거의 어떤 부당한 대우를 받았던 기억, ‘부당한 청구서—이의제기—고 소—소송—억울한 피해’ 등의 경험을 하였다면,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기억으로 저장하는 것은 미래에 유사한 일이 반복하였을 때, 기억을 되살려 잘 대처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삶의 시기적인 구분에서도 마찬가지다.

우연의 반복과 같은 인생에서 어떤 인과의 법칙 등을 활용하여 하나의 ‘스토리’를 가진 유기적인 과 거로 기억한다는 것은 그것이 미래의 삶에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르그 송은 과거의 기억이란 “‘회상되는 기억의 상들(images-souvenirs qui les rappellent)’로서가 아니라 ‘성취되고 있는 현재의 운동들(mouvements actuels s’accomplissent)’을 위한 엄격한 순서와 체계적인 성격으로서 발견된다”8)라고 말하고 있다.

 

       7) Ibid., p.71. 베르그송은 기억이 유기체적으로 변화는 과정을 마치 작은 눈덩이가 언덕 아래로 굴러 가면서 다양한 것들을 모두 눈덩이 속에 포함하고 있는 것처럼 비유하고 있다.

       8) Ibid.

 

따라서 유기적으로 변모된 과거의 기억이란 더 이상 우리에게 과거 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과거를 현재를 위해 활용하고 있는 기억이다.

 

3. 기억의 총체성과 비-분할성

 

베르그송의 ‘실재’에 대한 관점은 ‘지속’이다.

그는

 

“실재는 전체적이어서 불가분적인 성장이며, 점진적인 발명, 요컨대 지속이다. (...) 우리가 직접 지각하 는 것의 실재란 끊임없이 팽창하는 충만적인 것으로서 진공을 모르는 것이다”9)

라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의식도 하나의 실재(정신적 실재)라고 한다면 이 역시 지속으로 나타난다. 하나의 유기체적인 전체처럼 변모한 나의 삶에 대한 기억은 엄밀히 말해 나의 의식 속에 존재하는 나의 (내적인) 모습이다.

우리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것을 ‘나의 자아’ 혹은 ‘자기에 대한 의식’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 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의 의식에 존재하는 기억이란 시간 순으로 나열될 수 있 는 병렬적인 기억이 아니라, 전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나에 대한 기억’이라는 총체로서 존재하면서 불가분한 것이다.

마치 눈덩이가 굴러가듯이 시간의 흐름 과 함께 다양한 새로운 기억들이 기존의 기억들에 합쳐지고 하나의 실체나 유기 체처럼 불가분한 전체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베르그송은 이렇게 유기체 처럼 하나가 된 과거의 기억을 다시 불러내는 과정에 대해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이미지(상)의 형태로 과거를 불러일으키려면 현재의 행동에서 자신을 추상화 (s’abstraire)할 수 있어야 하고, ‘무용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attacher du prix à l’inutile)’ 방법을 알아야 하며, ‘꿈을 꾸고자 원하여야(vouloir rêver)’ 한다. 아마도 인간만이 이런 종류의 노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10)

과거의 기억을 ‘상(이미지)’의 형태로 불러내는데 자신을 ‘추상화’할 수 있어 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며, 왜 그런 것일까? 그 이유는 이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기억에 스며들어 전체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과거 의 기억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나의 유일한 하나의 ‘의식’ 안에 수렴되어 ‘나 의 삶의 역사의 한 일부로’ 환원되어 있기 때문이다.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물 질’도 ‘정신’도 ‘운동’도 그 본질은 ‘지속(durée)’이다.11)

 

     9) 앙리 베르그송, 사유와 운동, 이광래 옮김, 문예출판사, 2004, pp.123-124.

    10) MM, p.72.

    11)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실재의 본질적인 국면은 ‘지속’이다. 물질은 분할 할 수 없다는 것에서 지속 이며, 운동 역시 정지 상태라는 것이 없기에 지속이다. “세 번째는 정지로부터 운동을 설명하고 해명하려는 착각이다. 이에 대해 정지는 없다. 모든 것은 움직인다. 언어가 주사, 동사, 속사로 각 움직임을 일반적 개념으로 형성하면서, 이에 습관적으로 익숙해진 상식이 과학의 힘을 빌어서 세 가지 방식의 개념들이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류종렬, 「베르그송의 자유, 그리고 들뢰 즈의 반복」, 새한철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2002, 11, p.271. 의식 역시 소년시절과 청년시절  등으로 구분할 수가 없기에 지속이다. “순수한 지속이란 우리가 현재의 상태와 이전의 상태를 분리 하고자 시도할 때, 우리들의 의식의 상태가 연속된 형식을 취하는 것을 말한다.” Bergson, Essai sur les do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Paris, PUF, 1889, p.74. 특히 이러한 지속이 우 리의 의식 속의 기억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 베르그송의 ‘실재의 양태’에 대한 관점이다. 

 

다시 말해 디지털로서 구분될 수 없는 아날로그적 연속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억도 본질적으로 과거 전체가 경계선이 없는 하나의 총체처럼 주어져 있다. 따라서 먼 과거의 어떤 기 억을 ‘표상’으로 불러내려면 하나의 전체적인 기억에 녹아 있는 것을 다시 분리 시켜야 하는 것이다. 전체에서 부분을 분리해 내는 것, 이를 우리는 ‘추상’이라 고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무용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이란 또 무엇인가? 그리고 왜 과거 의 기억을 추상을 통해 불러내는 것이 ‘무용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법’과 연 관되는가? 이는 어느 정도 문학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린 시 절 씨를 뿌리고 추수를 하던 기억을 가진 한 과학자에게 이러한 농사의 기억이 현재로서는 전혀 무용한 것이겠지만, 그럼에도 진정한 결과를 얻으려면 길고 지 루한 과정을 인내하여야 한다는 ‘삶의 지혜’라는 가치를 여기서 획득할 수 있을 때 이를 유용한 것으로 다시 불러낼 수가 있는 것이다. ‘꿈을 꾸고자 원하여야 한다’는 것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과거의 기억 을 떠올리는 이유는 현재의 삶에 무엇인가 유용하고 가치가 있는 것이기에 떠 올 린다는 것이다. 만일 전혀 꿈을 꾸지 않는다면, 즉 더 이상 더 나은 미래를 추구 하지 않는다면 과거를 다시 불러낼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베르그 송이 인간 행동에 대해 ‘미래지향적인 존재’로서 고려하기 때문일 것이다.12)

 

      12) 창조적 진화론에서 베르그송은 생명의 본질 그 자체가 일종의 ‘약동’ 혹은 ‘도약’으로 보기 있기에 삶이란 끊임없이 현재의 상황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창조적 진보’로서 고려하고 있다. 

 

4. 배경-기억으로서의 추억과 순수 기억

 

1) ‘내적이고 주관적인 비전(vision)’으로서의 개별적인 기억

 

인간의 의식이 과거의 기억들의 전체라고 한다면 의식은 그 자체로는 수만 가 지의 다양한 기억들이 뒤 엉켜 있는 혼란한 덩어리와 같다.

이러한 혼란스러운 기억의 덩어리를 정리하고 질서지우지 않는다면 우리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정체성’이란 그것을 통해 내가 나의 성향을 가지게 되고, 그것을 통해 행동을 결정하며, 그것을 통해 외부 행위 들에 대한 반-작용을 하게 되는 나의 정신적인 원리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의식 속의 기억의 다발들이 전혀 정리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은 거의 본능에 의해 그때그때 충동적으로 행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 경우 나의 ‘정체성’은 거의 무의미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정체성이나 동일성 을 의미하는 ‘자아’를 형성한다는 것은 모호하고 혼란한 다양한 기억들을 정리한 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기억이 마치 의식의 내용처럼 형성되어 가면서 기억들은 하나의 보다 주도적인 기억 즉, 보다 큰 의미를 가진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보다 중요한 기억을 중심으로 다른 다양한 기억들이 질서 지워지고 전체적으로 ‘나의 자아’라는 것을 형성해 가는 것이다.13)

이 과 정에서 중요한 것은 이 의식의 형성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은 전혀 없으며, 오 직 이 자아를 형성하는 주체만이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질서 지우고 끊임없이 새 로운 자아를 창조해 가는 것이다.

이제 그 과정에 대해 알아보자.

기억이 저장되기 위해서는 먼저 어떤 것 혹은 어떤 사건이 지각되거나 인식되 어야 한다.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지각 혹은 인식은 완전히 주관적인 것도 완전히 객관적인 것도 아니다.

그 이유는 현재의 지각에 있어서 지각을 구성하는 조건은 외부 대상(객관적 요소)과 내적인 기억(주관적 요소)이 동시에 작용하기 때문이 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우리가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개별적인 우연들이 이 비-개별적인 지각 (perception)에 접목되어 있으며, 이러한 지각이 사물들에 대한 우리들의 앎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체 지각으로부터 ‘내적이고 주관적인 비 전(vision intérieure et subjective)’을 가진다는 것은 기억(mémoire)이 여기에 더하거나 잘라낸 것을 구분하지 못한 때문이며, 이들이 다만 기억(souvenir, 추 억)과 강도의 차이에서만 다르다고 생각한 때문이다.14)

 

   13) “이러한 시스템이 그렇게 많은 원자들처럼 병렬된 기억들로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여기에는 항상 몇 가지 지배적인 기억, 즉 이를 중심으로 다른 기억들이 모호한 성운을 형성하게 되는 빛나는 실제적인 지점이 있다.” Bergson, Matière et Mémoire, Édition électronique, Québec, à Chicoutimi, 2003, p.101. 이하 MM, digital로 축약 표기함.         14) MM, op. cit., p.29. 148 철학·사상·문화 제47호

 

위 진술에는 많은 내용이 내포되어 있다.

우선 감각 지각의 특성에 관한 것이 다. 지각이란 일반적으로 감각 지각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비-개별적 인 것’이다. 붉은 것은 붉은 것으로, 날카로운 것은 날카로운 것으로 인지하는 객관적인 인식15)이 감각 인식의 특성이며, 따라서 비-개별적인 것이다. 반면 감 각 대상을 지각하는 주체는 항상 주관적인 성향이나 특성을 가지고 지각 할 수밖 에 없다. 예를 들어 동일한 붉은 사과를 보면서 진한 예쁜 색의 사과로 인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아직 설익은 연한 붉은 사과로 인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맛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동일한 짠맛을 ‘짜다’고 인지하는 사람도 있 고, ‘좀 싱겁다’고 인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비-개별적인’ 지각에 주관적인 지각이 개입하는 것은 지각의 주체가 습관적으로 갖추어진 ‘개별적인 기억’을 가지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동일한 지각 행위로부터 사람 들은 타인과는 다른 ‘내적이고 주관적인 비전’을 가지게 된다. 그 이유를 베르그 송은 ‘기억이 이 지각에서 더하거나 잘라낸 것’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는 어느 정도 문학적인 표현이지만 적절한 표현이다. 사람들은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지각할 때, 결코 ‘있는 그대로의 것’을 지각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 주 관적인 것을 덧붙이거나 혹은 어떤 비본질적인 내용을 삭제하면서 인지한다.16)

이렇게 인지된 것이 ‘내적이고 주관적인 비전’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만일 자신이 형성한 ‘내적이고 주관적인 비전’17)을 외부의 인식 대상과 동일한 것이라고 믿게 되면, 이는 ‘더하거나 잘라낸 것’을 잊어버리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15) 베르그송은 감각 지각을 ‘객관적인 것’으로 표현하지 않고, ‘비-개별적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은 감각 지각 그 자체가 항상 어느 정도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내포하고 있기에 ‘객관적’이란 표현을 쓰는 것이 정확하지 않다고 본 때문이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것’으로 표현하기도 적절하지 않다. 본 논문에서는 문맥에 따라 ‘비-개별적인 것’ 혹은 ‘객관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16) 이런 의미에서 베르그송의 인식론의 위치는 칸트의 “물자체는 알 수 없다”는 관점과 맥락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뿐이다(메를로-퐁티, 눈과 마음, 김정아 옮김, 마음산책, 2008, p.32.)”라고 말한 모리스 메를로-퐁티의 관점과도 일맥상 통하는 점이 있다. 하지만 이들의 관점과 달라지는 지점은 감각운동과 정신의 역할 즉, 기억의 특성 과 할당에 있다. 일반적으로 연구자들은 이러한 지평에서 베르그송은 콩디야크에 기원을 두고 있는 프랑스 유심론(spiritualisme)의 전통을 이어받고 있다고 평하고 있다. “베르그송에 따르면, 영국의 관념론, 칸트 철학, 심리물리적 평행론의 오류는 신체와 정신의 진정한 역할을 오해한 데서 기인한 다.” 앙리 베르그송 저, 박종원 옮김, 물질과 기억, 아카넷, 2022, p.416.

     17) 불어에서 ‘vision’은 ‘관(觀)’ ‘시각’ 혹은 ‘전체적 이미지’로 이해된다. 따라서 내적이고 주관적 인 비전’이란 예를 들면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주관적인 관점’ 혹은 ‘세계관’ ‘인생관’을 말한다 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일체의 ‘관점’ ‘세계관’ ‘인생관’ 등은 외부 대상이나 인생의 어떤 본질적인 국면을 반영 해주는 주관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말브랑슈는 진리에 대한 탐구에서 창조된 모든 존재들에 대한 인식을 포함하는 하나의 완벽한 존재와 영혼의 내밀한 일치를 ‘비전(vision)’이 라 보았고, 이것이 (진리에 대한) 앎의 가능한 유일한 설명이라고 생각하였다.” Sylvain Auroux, Les notions philosophiques II, “Vison”, PUF, 1990, p.2751. 

 

불어에서 ‘메므와르(mémoire)’는 뇌나 영혼에 저장되어 있는 개별적인 데이 터를 의미하는 ‘기억’이라고 한다면, 추억에 해당하는 ‘수브니르(souvenir)’는 이러한 개별적인 데이터들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의 사건’ ‘전체적인 이미지’ 등 으로 형성하여 ‘개별적인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당 연히 잘라낸 것이나 첨가한 것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것이 ‘내적이고 주관적인 비전’을 형상하는 것이다.

베르그송의 경우 이 ‘수브니르’는 마치 현재 나의 기 억에 지반(배경)을 이루고 있는 ‘배경-기억’처럼 고려되고 있다.

주관적 관념론 자18)는 외부 대상의 실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실체 자체와 직접 소통할 수는 없기에 모든 인식이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 하는데, 베르그송은 이러한 생각은 ‘지반(배경)’이 되는 기억, 즉 추억으로 인해 현재의 기억이 덧붙이거나 잘라낸 것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그 리고 그 이유는 덧붙이거나 잘라낸 것이 지반이 되고 있는 기억(즉, 추억)과 다 만 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동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것이 다.

지각의 주관적인 특성에 대한 베르그송의 견해를 보자.

 

간단히 말해, 이 두 가지 형태의 기억, 즉 즉각적인 지각의 지반(fond)을 기억 (souvenir)의 한 층으로 덮고 있는 하나의 형태와 다양한 순간을 압축시키는 다 른 하나의 형태가 지각에 있어서 개별적인 의식의 주요한 측면을 형성하는 것이 다. 다시 말해 사물들에 대한 우리들의 앎의 주관적인 측면을 형성하는 것이다.19)

 

     18) 예를 들면 버클리나 불교의 유심론을 들 수 있다. 버클리는 모든 인식이란 곧 외부 대상을 매개로 한 한 개별자의 마음의 조화라고 보고 있으며, 불교의 유심론에서도 일체가 마음이 형성한 것(일체 유심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9) MM, p.29. 

 

위 진술에서 지각의 주관적인 측면을 이루는 두 요인을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첫째, 동일한 사건에 관련된 배경이 되고 있는 기억(추억)이 사람 마다 다르다.

  둘째, 각자가 가진 다른 ‘배경-기억(추억)’으로 인해 다양한 순간 을 압축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기억이 지각의 대상에 덧붙이거나 잘라낸 것이 서 로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각의 객관적인 특성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 저 이러한 주관적 특성을 제거해 보아야 한다. 물론 이러한 작업에서 너무 멀리 나아가게 되면 다시 주관적 특성으로 되돌아와서 주관적 특성과 객관적인 특성을 통합하여야 한다는 것이 베르그송의 생각이다. 한 마디로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지각이란 그 자체 주관적인 특성과 객관적인 특성을 모두 가진 것이다.

 

2) 기억과 지각 사이의 본성적인 차이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내용은 항상 지각과 기억의 공동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 다고 할 수 있다.20)

그런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만일 기억이 전혀 개입 되지 않는 ‘지각’ 혹은 ‘지각’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기억’이 가능하다고 한다 면, 이를 우리는 ‘순수 지각’ 혹은 ‘순수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 런데 베르그송은 이 둘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서 오류가 발생한다고 보고 있다.

심리학에서 형이상학으로 거슬러 올라가 정신에 대한 앎뿐만 아니라 육체에 대한 앎까지도 숨기게 되는 오류는 ‘순수한 지각(perception pure)과 기억(추억, souvenir) 사이에서’본성의 차이(différence de nature)’ 대신에 오직 ‘강도의 차이(différence d’intensité)’만 보는 것으로 구성되는 오류이다.21)

 

      20)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지각한다는 것은 지각이 이루어지고 지각된 내용을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적 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각되는 순간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그것을 원형 모델처럼 활용하여 지각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지각에서 감각기능과 기억(배경-기억) 사이에서 우선적인 중요성이 부여되는 것은 ‘기억(배경-기억)’이다. 그럼에도 베르그송은 이 둘을 거의 동일한 중요 성으로 간주하고 있다. “지각과 기억이라는 두 가지 행위는 항상 서로 침투하며, 삼투 현상 (phénomène d’endosmose)을 통해 항상 ‘자신들의 실체의 어떤 것(quelque chose de leurs substances)’을 교환한다.” MM, p.57.

      21) Ibid. 

 

순수 지각과 순수 기억 사이에 본성의 차이가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인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현재 내가 ‘자유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런데 이 자유로움을 이해하는 것은 ‘현재 자유를 지각하고 있는 행위’와 ‘과거에 체험하였던 다른 자유에 대한 기억’을 통해서 ‘자유’이라 는 것을 이해한다.

그런데 만일 여기서 순수 지각과 순수 기억을 분리해 낸다고 한다면, 순수 기억은 과거 자유에 대한 ‘추억’이 될 것이며, 순수 지각은 ‘현재 체험하고 있는 자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순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자유의 의미 와 현재 체험되고 있는 자유의 의미는 무엇이 다를까? 동일한 자유에 대한 이해 이니까, 단지 정도 혹은 강도의 차이, 즉 희미함과 분명함의 차이일까? 아닐 것 이다.

여기서 차이는 그 성격이나 속성 혹은 본질적인 면에서 다름을 내포하고 있을 것이다.

순수 기억은 지극히 주관적인 것, 즉 나의 내적인 비전이 된 자유 이다.

기억 그 자체가 지속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이 순수기억은 구체적인 시 간이나 대상으로 특정될 수 없기에 언표 될 수가 없는 일종의 ‘내적인 분위기’ ‘자아의 총체적인 성격’ 등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22)

반면 현재 지각되 고 있는 자유는 다분히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성격이 크다. 구체적인 대상을 지칭 할 수 있고, 분명히 언어로 표상할 수도 있다. 단순히 강도나 정도의 차이로 이 둘을 구분하게 된다면, 이는 내적이고 주관적인 것을 객관화하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오류가 발생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순수한 기억뿐만 아니라 순수한 지각까지도 모두 무시하고, 한 종류의 현상만을 알고자 하는 오류를 범하며, 이 두 가지 측면 중 어느 것이 우세한가에 따라 때때로 기억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때로는 지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23)

 

    22) 순수기억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순수지속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국내의 한 논문에서는 베르그송의 순수지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전체의 이질적 지속은 어떤 등가 적인 계기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은 무정형의 생성 새로움의 끊임없는 분출 요컨대 순수지속이다.” 문창옥, 「존재와 시간: 베르그송 하이데거 화이트헤드」, 화이트헤드 연구, 한국화이트헤드학회, 제10집, 2005, p.91. 이처럼 순수지속이 끊임없이 생동하는 무정형 의 것이라고 한다면, 순수기억은 한 개인의 내면에서 끊임없이 생동하고 새롭게 갱신될 수 있는 무정형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순수지속의 개념보다 순수기억의 개념은 기억이 구체 적인 체험의 결과라는 점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보다 언표가 가능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3) MM, p.57. 

 

아마도 오늘날 과학자들이 범하는 오류는 기억의 이러한 ‘내적이고 주관적인 비전’을 무시하고 모든 것을 수치화하고 수량화하고자 하는 데서 발생하는 것일 것이다.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병리학적 현상에 있어서 이러한 순수 기억의 차원 을 무시하게 되면, 개별적인 실존의 차이를 무시하고 모든 것을 하나의 구조나 틀 속에 넣어서 —예컨대,∼증후군 등의 체계 속에 넣어서— 일반화시키고자 하 는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순수 기억에 대한 이해는 다른 하나의 차원에서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생물화학적인 물리적 현상으로 환원시키는 유물론에 대립할 수 있는 ‘정신주의(영성주의)’에 대한 비 전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순수한 지각이 우리에게 물질의 본질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면서 우리들의 위 치를 실재론과 관념론 사이의 입장을 취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면, 순수한 기 억은 우리가 정신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지평을 열어줌으로써 물질주의 (matérialisme, 유물론)와 정신주의(spiritualisme, 영성주의)라는 두 가지 학설 을 다시 나눌 수 있게 해준다.24)

순수 지각이 ‘물질’과 ‘정신’의 종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면, 순수 기억은 현 재의 지각과 완전히 분리된 것으로서 오직 나의 정신(영혼)의 사건으로 이해할 수 있다.

기억이란 비록 현재의 지각과 행위를 미래를 위해 보다 잘 적용하기 위해 ‘이미지’ 혹은 ‘표상’으로 현실화되겠지만, 그럼에도 인간의 특징은 ‘정신 세계’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최소한 이론적으로는 현실의 구체적인 삶과 무관 하게 순수하게 정신적인 삶이란 것을 영위할 수가 있다.

이를 중세 이후 ‘영성주 의(spiritualisme)’라고 불렀다.

그래서 베르그송은

 

“원칙적으로 기억은 물질에 대해 ‘절대적으로 독립적인(absolument indépendante)’ 힘이어야 한다. (...) 이때부터 뇌의 작용으로부터 순수한 기억(추억)을 추출하려고 시도하는 유혹은 근본적으로 환상임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25)

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말하자면 대뇌 물질에 표상들(이미지들)을 생성하는 속성을 부여하는 것은 헛된 것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의 기억에서 물질적 속성이 완전히 제거된 순수한 ‘정신적인 이미 지’처럼 고려한 것은 중세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그는 우리의 영혼에 저장되는 기억 중에서 ‘감각적인 이미지’ 형태로 저장되는 것과 ‘정신적인 이미지’ 형태로 저장되는 것이 있다고 보았다.26)

 

     24) MM, p.60.

     25) MM, p.62.

     26) “우선 오감에 의해서 지각된 외적대상은 영혼 안에 ‘감각이미지(visiones)’를 산출하고 이를 영혼 이 산출한 ‘감각적인 빛(lux sensibili)’에 의해서 지성이 다시 인식하여 지성적인 이미지(imago)를 산출한다.” 이명곤,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있어서 인간지성의 구조와 진리의 인식」, 동서철학연구, 제51호, 한국동서철학회, 2009, p.164. 

 

만일 인간의 기억이 마치 컴퓨터 메모리 속의 데이터처럼 물리적인 속성을 가진 데이터라고 한다면, 최소한 이론적으로 나의 기억을 타인의 뇌 속으로 이동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만일 이것이 순수하게 정신적인 것이라면, 이는 물리적으로 다루 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인간의 지각 혹은 인식이란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지각의 종합적인 활동 결과이다. 그리고 과거의 기억은 무수한 기억들이 병렬로 나열된 것이 아니라, 내적이고 주관적인 하나의 중심 기억(지반-기억 혹은 배경-기억)을 지주로 하여 유기적이고 체계적인 전체를 형성하고 있다.

이 유기적인 전체로서의 기억은 나의 ‘내적이고도 주관적인 기억’을 말하며, 이것이 곧 나의 자아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추억’이라고 할 수 있는 이 배경-기억은 현재의 지각과 연관되지 않는 한, 순수하게 정신적인(영성적인) 것으로서 비-물 질적인 것이며, 따라서 두뇌의 물질적인 속성처럼 다룰 수가 없는 것이다.

여기 서 ‘자아’의 정신적 속성과 절대적인 특징이 있다. 자아란 물질이 아니므로 결코 인위적으로 조작할 수도, 타아에게 양도하거나 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다. 우 리가 먼 과거의 기억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는 것도 자아가 지닌 기억의 비-질료 성 때문이다.

베르그송은 이를 “물질성은 우리 안에 망각을 가져온다”27)라는 라 베송의 말을 인용하여 역설적으로 주장하고 있다.

 

5. 자율적인 기억의 선택과 자아의 창조

 

이제 자아의 형성 과정에 대해 좀 더 세밀하게 관찰 해 보자. 우선 우리가 자 신의 과거의 삶을 떠올릴 때, 순수-기억의 형태로 저장되어 있는 것을 ‘이미지’ 혹은 ‘표상’의 형식으로 떠올려야 한다.

베르그송은 이를 ‘종합의 노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수용한 이미지를 (현재의) 지각에 반영하려면 그것을 재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종합의 노력을 통해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28)

 

여기서 종합이란 두 가지의 다른 의미가 있다.

  첫째는 과거의 사실들을 압축하여 하나의 관념이나 개념을 중심으로 비전(vision)으로 형성해 내는 일이다. 베르그 송은 이를 “모든 과거 상태에 대한 현실적인 종합(synthèse actuelle)”29)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 종합의 과정에서 중요한 사실은 단순히 객관적인 과거의 사실들 을 나열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결정의 과정에서 항상 존재하는 “우 리의 성격(caractère)”30)이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27) “la matérialité mette en nous l’oubli.” Ravaison, La philosophie en France au XIXe siècle, Paris, Hachette, 1895, p.176.

    28) MM, digital, p.90.

    29) Ibid., p.87.

    30) Ibid. 

 

다시 말해 각 사건들에 대해 인과의 관계를 파악하고 기억들 사이의 사슬을 만들며, 여기에 의미를 부여하 는 것이다.

이는 산발적이고 병렬적인 다양한 사건들에 조직을 구성하고 체계를 형성하면서 일종의 전체적인 이미지를 창조해 내는 작업이다. 그래서 어떤 의미 에서는 우리의 기억 속에 존재하는 과거는 우리의 외부에서 실제로 존재하였던 과거의 사실보다 더욱 풍요롭고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베르그송은 “이 압축된 형태 아래서 우리의 이전 심리적 삶은 외부 세계보다는 우리 자신을 위해 서 더 많이 존재한다”31)라고 말하며, 또한 “우리는 외부 세계의 아주 작은 부분 만을 인식할 뿐이지만, 반면 우리는 우리들의 체험된 경험 전체를 활용한다”32) 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객관적인 외부 세계의 사건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마치 우리 자신을 창조하도록 요청하는 매개체나 재료에 불과하며, 우리 는 이들을 활용하여 스스로 자신의 자아를 창조해 간다고 말할 수 있다.

 종합의 두 번째 의미는 이렇게 표상된 과거 기억의 이미지를 현재의 지각과 행동에 적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우리는 우리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이유가 현재의 지각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미래를 위한 행동에 적용하기 위한 것임을 논한 바 있다.

이러한 적용의 과정에서 우리의 의식은 현재 지각되 고 있는 수천의 내용들 중에서 “매 순간 유용한 것은 받아들이고 불필요한 것은 일시적으로 거부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으며, 또한 항상 미래를 예상하면서 현재의 행동을 고려하는 의식은 옛 기억 중에서 현재의 지각에 적용될 수 있는 기억만을 선별하여 “물질화(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이는 한마디로 미래 행위를 위한 ‘과거 기억’과 ‘현재 지각’의 종합이라고 할 수 있다.33)

 

     31) Ibid.

     32) Ibid.

     33) Ibid., 이를 보다 쉽게 이해하기 위해 구체적인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강한 종교적 체험을 하고, 이를 마치 신이 자신에게 보여준 일종의 섭리 혹은 업보라고 생각을 하고 가난한 이를 위해 헌신하는 복지사가 되기로 결심하였다고 하자. 그러면 이후의 자신의 삶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이나 체험들이 모두 신의 섭리(업보)라는 차원에서 바라보게 될 것이며, 이와 관계가 깊은 기 억들은 자신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이러한 섭리(업보)의 개념과 무관한 우연적인 일들은 자신 의 삶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이는 말하자면 현재의 다양한 사실이나 사건 들 중에서 의미를 가지고 나의 자아의 일부로 환원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과거의 주도적인 기억(배경 기억)이 그 기준이 되며, 또한 타인에게는 무의미한 하나의 우연적인 사건에 불과한 것 도 이를 자신의 삶의 의미로 수용하는 이에게는 과거에 체험된 ‘신의 섭리(업보)’라는 의미가 개입 하여 무언가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또한 그의 섭리(업보)의 개념이 더 깊어지거나 공고히 될 수 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나의 미래가 이에 따라 서 규정되고 방향이 잡혀질 것이다. 한 마디로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는 것은 이렇게 자아의 형성에 있어서 서로 긴밀히 영향을 미치는 종합의 노력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지금의 나의 자아에 대해 생각할 때, 이는 분명 과거와 현재의 종합의 결과이 며 종합인 한 여기엔 종합하는 주체의 지향이나 의지가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나아가 베르그송은 정신이 과거나 현재의 경험을 수집하고 조직하며, 행동으 로 수렴하는 과정에서 항상 “우리가 성격(caractère)이라고 부르는 것 안에 서”34)이루어진다고 주장하며, 과거의 내용 안에서도 “그의 인격(개성, personnalité)이 흔적을 남기는 예상치 못한 형식을 발견하게 될 것”35)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자유롭다고 말하는 것에는 몇 가지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자유롭다’는 것은 무엇보다 먼저 나의 행위나 행 동이 나의 ‘인격(개성)’에서 발생할 때 즉 내가 내 행위의 주인이 될 때 자유롭 다고 하는 것이다.

 

“자유로운 결정이 산출되는 것은 플라톤의 표현을 빌리면 영 혼의 전체로부터이다.”36)

 

따라서 우리의 과거 기억이라는 것은 결국 수동적으로 단순히 외부 사건들을 수용한 것이라 아니라, 비록 그 요소들은 외적인 사실들이 겠지만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결정하고 선택하며 구성하고 형성한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즉 자아는 어떤 의미에서 절대적으로 형성하는 주체의 자유 로운 의지의 결과라고 해야 하는 것이다.

이를 문학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나를 둘러싼 외적인 환경의 객관적인 사실들을 하나도 바꿀 수 없다고 해도, 나의 내 면의 자아를 형성하는데 있어서는 완전히 자유롭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 다”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의지 에 따라 전혀 예상치 못한 ‘나의 자아’를 형성하는 일, 즉 ‘창조적인 작업’인 것이다.37)

 

   34) Ibid., p.102.

   35) Ibid.

   36) Bergson, Les donnés immédiates ..., op. cit., p.153. 베르그송은 ≪영적 에너지(L’Énergie spirituelle)≫에서 ‘생명의 약동(l’élan vital)’은 자유를 획득하는데서 그 최종 목적을 가지고 있으 며, 이를 획득하였을 때 그 결과는 ‘기쁨(joie)’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Cf. Bergson, L’Énergie spirituelle, Paris, PUF, 1967, pp.23-24.

    37) 자아 형성에서의 ‘자유와 창조’ 개념은 베르그송의 초기 사상에서부터 두드러지는 개념이다. ‘창조 적 진화’에서 진화란 곧 진화하는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창조’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 명진화의 방향이 미리 정해지면, 그 종착점(fin)도 생성의 과정도 자동적으로 정해지고, 그 도상에 서 행해지는 창조도 예견 가능한 것이 되어버린다. 생성진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결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그 도상에서 예상도 할 수 없는 창조가 행해지는 것이다.” 민주식, 「베르그송 의 창조성 이론에서 본 예술적 창조의 의미」, 한국과학예술포럼, Vol. 14, 2013, 12, p.172.

 

물론 이러한 자아의 창조는 모든 이에게 동일한 정도나 강도 혹은 동 일한 분명함으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유롭지 못한’ 사람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며, 다만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형성해 가 는 사람에게 있어서만 이러한 자유로운 자아의 형성이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뿐 이기 때문이다.

 

6. 결론

 

이상 우리는 인간의 기억에 관한 베르그송의 사유와 기억을 근거로 한 ‘자아의 형성’에 대해 고찰하였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가장 본질적인 요소는 자아를 구성하고 있는 과거의 기억들이 비-물질적인 것이라는 것과 주도적인 기억을 중 심으로 다른 기억들이 선택되고 정리되며 하나의 총체적인 ‘자아-의식’으로 형 성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한 개인의 자아 형성의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자유’라는 점을 이해하였다.

따라서 베르그송에게 있어서 자 유로운 행위란 외적인 환경 요인을 넘어 한 개인의 ‘인격의 총체성’을 통해 실행 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자아의 형성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한 개인의 행동은 또한 그 최종적인 원인이 그의 자아에 있을 때 그의 행동이 자유롭다고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의 개념은 따라서 인간적인 행위에 있어서 본질적인 측면을 형성하고 있다.

즉 누군가 ‘가장 인간적인 행위란 무엇인가?’라 고 물었을 때 우리는 주저함 없이 ‘그의 인격(자아)으로부터 실행되는 행동’ 혹 은 단순히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자아가 비-질료적이며 순수하게 정신적인 것이라는 이러한 베르그송의 관점 은 오늘날 모든 것이 ‘기계론적 결정론’으로 규정하고자 하는 사유에 대해 가장 강력한 해독제처럼 작용하고 있다. 특히 기계론적 결정론이 인간 행위의 도덕적 인 측면을 무화시키는 것에 대한 강한 비판의 기조를 견지해 주고 있다.

국내의 한 논문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인간행위의 자유를 주장하는 베르그송의 이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유로운 행위’의 개념이 불가능하다면 어떤 의미에 있어서 ‘도덕적 삶’의 개념도 불가능 하게 될 것이다.왜냐하면 ‘자유’를 가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모든 특정한 인간의 행위란 그 행위가 발생하게 된 구체적인 조건하에 필연적으로 야기된 것을 의미 하며, 따라서 이는 개인의 내적인 의도와는 무관한 것이며, 행위에 대한 가치판 단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38)

 

    38) 이명곤, 「자유에 관한 ‘심리적 결정론’의 관점에 대한 베르그송의 비판」, 철학연구, 제152집, 대한철학회, 2019, p.153.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이 하루가 멀다 하고 가속화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이미 수많은 영역에서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하고 있 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이나, 가족사의 애증, 삶에 대한 고뇌,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염려 등 다양한 과거의 개별적인 삶을 가지지 않는 인공 지능이란 자아라고 할 만한 것을 지니고 있지 않으며, 또한 그의 판단은 오직 알고리즘에 의한 최선의 결과만을 생각하는 기계적인 것일 뿐이다.

여기에는 ‘인 격’으로부터 이루어지는 자유로운 행위를 기대하기 어렵고, 따라서 도덕적인 행 위를 기대할 수가 없다.

우리는 베르그송의 자아 형성에 대한 이론과 자유로운 행위에 대한 이해가 날로 비-인간화되어 가는 현대인의 사회적 분위기에 신선하 고도 심오한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인간 행동 의 내밀한 본성은 무엇인가?” 혹은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참고문헌

메를로-퐁티 저, 김정아 옮김, 눈과 마음, 마음산책, 2008. 앙리 베르그송 저, 이광래 옮김, 사유와 운동, 문예출판사, 2004. , 박종원 옮김, 물질과 기억, 아카넷, 2022. Bergson, Matière et Mémoire, Paris, PUF, 1965. Bergson, Matière et Mémoire, Édition électronique, Québec, à Chicoutimi, 2003. Bergson, Essai sur les do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Paris, PUF, 1889. Bergson, L’Énergie spirituelle, Paris, PUF, 1967. D’Alembert, article “Fortuit” in D'Alembert and Diderot, Dictionnaire raisonné des sciences, des arts et des métiers, tome 7, 1757. Hobbes, De la liberté et de la necessity, trans. F. Lessay, Vrin, Paris, 1993. Ravaison, La philosophie en France au XIXe siècle, Paris, Hachette, 1895. Sylvain Auroux, Les notions philosophiques II, “Vison”, PUF, 1990. 류종렬, 「베르그송의 자유, 그리고 들뢰즈의 반복」, 새한철학회 학술발표회 논문집, 2002. 문창옥, 「존재와 시간: 베르그송 하이데거 화이트헤드」, 화이트헤드 연구제10집, 한국화이트헤드학회, 2005. 민주식, 「베르그송의 창조성 이론에서 본 예술적 창조의 의미」, 한국과학예술포럼 제14집, 한국과학예술융합학회, 2013. 이명곤, 「생명과 영혼에 관한 실증주의의 유물론적 사유와 베르그송을 통한 비판」, 동서철학연구제36호, 한국동서철학회, 2005. , 「아우구스티누스와 토마스 아퀴나스에 있어서 인간지성의 구조와 진리의 인식」, 동서철학연구제51호, 한국동서철학회, 2009. , 「자유에 관한 ‘심리적 결정론’의 관점에 대한 베르그송의 비판」, 철학연구제152집, 대한철학회, 2019. 

 

 

【요약문】

베르그송은 물질과 기억에서 기억의 본질과 자아 형성에 관하여 논하고 있다. 이 책에서 그가 논하는 핵심은 인간에게는 원자나 분자와 같은 물질로는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의식(자아)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논하기 위해 그는 자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인 기억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그는 자발적인 기억과 의지적인 기억에 대한 분석을 통해 ‘유기적으로 변모된 과거의 기억’이란 고안되고 창조된 것이라 규정한다. 실재를 비-분할적이고 고정화 할 수 없는 ‘지속’으로 고려하는 그의 관점은 기억이나 의식(자아)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하고 있다. 즉 인간의 의식 역시 ‘지속’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 의식 속 과거의 다양한 기억들은 연대기적으로 병렬할 수 없는 총체화된 것이며, 항상 현재적인 것으로 고려된다. 기억들이 하나의 중심과 질서를 가진 자아로 형성되는 과정은 하나의 주도적인 기억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억들이 정리되며, 과거의 기억들은 현재의 새로운 기억들과 끊임없이 합쳐지고, 재구성되며, 새롭게 갱신되면서 미래의 활동을 위한 준비처럼 ‘현재의 나의 의식’ 즉 ‘자아’를 형성하게 된다. 그는 이를 “모든 과거 상태에 대한 현실적인 종합(synthèse actuelle)”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것이 고유하게 말해 ‘인격(personne)’이라고 부르는 것이며, 나의 행동이 오롯이 나의 인격에서 발생할 때, 자유로운 행동이라고 말해질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자아’를 형성하는 일은 곧 ‘창조적인 작업’이며, 자아의 형성이 전제될 때 인간은 자유로운 행동을 보장할 수 있다.

【주제어】 베르그송, 기억, 자아, 지속, 인격, 자유 

 

 

 

Abstract

Bergson, A Treatise on the Nature of Memory and the Formation Process of the Self (Consciousness)-Focusing on Matter and Memory

LEE Myung-Gon( Jeju National University)

Bergson discusses the nature of memory and the formation of the self in Matter and Memory. The core argument he makes in this book is that humans have a consciousness (self) that can never be reduced to matter such as atoms or molecules. To discuss this, he analyzes memory, which is a key element that constitutes the self. Through his analysis of voluntary and volitional memories, he defines ‘memories of the past that are organically transformed’ as something that is designed and created. His perspective, which considers reality as a non-dividable and unfixable ‘continuity(durée)’, applies equally to memory and consciousness(self). In other words, human consciousness also has the character of ‘continuity’, and the various memories of the past in consciousness are totalized and cannot be chronologically paralleled, and are always considered to be present. The process in which memories are formed into a self with a single center and order is that various memories are organized around one leading memory. And past memories are constantly combined with new memories of the present, reconstructed, and renewed, forming ‘my present consciousness’ or ‘self’ as if preparing for future activities. He calls it “a real synthesis (synthèse actuelle) of all past states.” This is what is properly called “personality (personne),” and when my actions arise solely from my personality, they can be said to be free actions. Therefore, the formation of “my self” is a “creative work,” and when the formation of the self is presupposed, humans can guarantee free actions.

【Key words】 Bergson, memory, self, persistence, personality, freedom 

 

 

논문접수일: 2025.01.07. 논문심사기간: 2025.01.14.~01.21. 게재확정일: 2025.01.21.

철학·사상·문화 제4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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