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언
유동식(1922~2022)은60년대초반부터한국적신학의가능성을모색한 대표적인토착화신학자이다.
유동식은서구기독교의사상과신앙이서양인 의사유틀속에서형성되었듯, 한국의기독교는풍류도(風流道)라는고유한 사상에기반하여재해석될수있다고주장하였다.
풍류도란통일신라의학 자최치원(857~?)의「난랑비서문」에등장하는단어로, 시대와계급을초월 한한국인의고유한영성으로유불선(儒佛仙)을모두포괄하는개념이다.1
1 유동식은풍류도의기본구조를다음과같이설명한다: “풍류도의기본구조는초월적인‘한’과 현실적인‘삶’이태극과같은창조적긴장관계를이루는속에서‘멋’을형성하는데있다. 풍류도의 본체는‘멋’이다. 그러나멋은영성의본체인동시에‘한’과‘삶’과함께풍류도의구성요소의하나 를 이룬다. 풍류도의형상은 ‘한’이요, 그 작용이‘삶’이라고이해되기 때문이다. 이 세요소는 체․ 상․ 용(體相用)의관계를이루고있는것이다. 그것은마치기독교의삼위일체신관과도흡사하 다. 아버지하느님은그의아들과성령의본체인동시에삼위(三位)의한분으로존재한다.” 유동 식, 소금 유동식 전집, 제7권(서울: 한들출판사, 2009), 316.
유동식은 이것을 한국인의 원형적 종교심성으로 이해했다.2
2 「난랑비서」는난랑이라는신라의화랑에관한비문으로, 이비(碑)에는다음과같은내용이적혀 있다: “우리나라에는현묘한도(道)가있으니이를풍류(風流)라고하는데이교를실천한근원은 선사(仙史)에상세히실려있거니와실로3교(敎)를포함한것으로모든민중과접촉하여이를 교화하였다.” 여기서삼교라함은수천년간한국인의세계관과가치관에심대한영향을미친 불교와유교그리고도교를말한다. 이들종교는무교와습합되면서한국인의독특한종교적 심성을 형성하는데, 최치원은 이를 풍류도라고 명명한 것이다.
복음서의 케리그마는 유대교와 헬레니즘의사상적배경속에서형성되 었다.
가령 바울과 요한은 스토아 철학과 로고스(logos)라는 헬라 사상을 접목하여그리스도사건의의미를규명하고자하였다.
다시말해유대교의 메시아사상과묵시사상그리고그리스-로마의로고스사상이원시기독교 케리그마의 후경(後景)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사실에기반하여 유동식은 케리그마의진경(眞景)을풍류도라는관점에서재해석하여한국적복음의 의미를추구하였다.
유동식의문제의식이면에는제2차세계대전이후WCC 에서새롭게제기한하나님의선교(Missio Dei)라는시대적과제상황이있었 고, 1960년대이후과거식민지국가들에서 토착화신학이 본격적으로 논의 되었다.
유동식은 미국유학을 마친 1950년대후반부터 한국의 고유한 종교 문화적맥락에서 복음의 의미를 새롭게규명해야한다고생각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유동식이 경험한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배태되었다.
유동식은일본제국주의의정치적폭압과민족문화압살정책에시달리 며유년기와청년기를보냈고, 학도병으로태평양전쟁한복판에서죽음의 실체를경험했다.
군국주의의폭력속에서부조리한삶의현실을극복하게 한것은어린시절부터그의내면을지배한기독교신앙이었다.
그는죽음의 목전에서동생에게보낸편지에서다음과같이고백했다:
“그래도나자신의 존재를확인하게하는것은하나님께대한신앙뿐이다.
노예의몸이면서도 자기를발견하고정신적으로자유를누리던에픽데투스가생각난다.”3
3 유동식, 종교와 예술의 뒤안 길에서(서울: 한들출판사, 2002), 25-26.
이는 독일의신학자몰트만(1926~2024)이연합군의포로수용소에서경험한실존적체험과유사한것이었다.
식민지경험과전쟁의참상은유동식의신학적 사유에깊은잔영을남겼다.
그가평생에걸쳐한국적신학을모색한이유는 일제가심어준민족적열패감과서구의오리엔탈리즘때문이었다.
이때문 에그는젊은시절부터노장사상과한국의선불교에심취하면서미국선교사 들이 심어 준 교파주의와 근본주의 신학을 극복하고자 하였다.
1945년일본제국주의로부터해방된한국은좌우의극심한대립과미소 냉전체제로인해남과북이내전상황으로돌입하게된다.
1950년에벌어진 한국전쟁은 유동식에게 또 다른 상흔을 남기게 된다.
이데올로기 때문에 부모형제와이웃이서로총부리를겨누게하는비극적현실을목도한것이 다.
유동식이평생에걸쳐복음의핵심을그리스도의자기부정(십자가)과 자기초월(부활)로나타난하느님의궁극적사랑이라고파악한이유가여기 에있다.
전쟁을 피해 전주로 피난을 간 유동식은 그곳에서 한학자출신 고득순을 만나게 된다.
그는 저명한 성리학자였고 유교적 전망에서 기독교의 복음을 이해하고자 했던 독특한 인물이었다.
이 시절 유동식은 조선왕조 600년동안한국인의도덕적규범으로작동했던유교에관한새로운전망을 얻게 되고, 이에 기반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게 된다.4
4 고득순목사의 영향을 확인할 수있는 책으로는 그가 목회하던 전주남문밖교회에서 출판된 유동식, 택함받은나그네들에게(전주: 남문외교회청년회, 1952); 유동식, 예수의근본문제 (서 울: 심우원, 1954) 등이 있다.
한편일본에서연구활동을하던1970년대에유동식은 엘리아데(1907~ 1986)의 종교학을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무교가 한국인들의
근원적 종교심 성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연구를통해유동식은무교를기반으 로유불선의회통(會通)이시대를초월한한국인심성적특질이라는것을 밝혀내었다.
그는이를풍류라는개념으로정리하여기독교의복음을새롭 게 조명하였고, 이를 1980년대초반 풍류신학(風流神學)이라는 이름으로 종합하였다.
이글은유동식이유불선으로대표되는한국의풍류사상과기독교사상 을접목시키는과정에서보여준성서이해를살펴보는데있다.
유동식은 자신이구축한풍류신학을위한성서적전거로요한복음에주목하였다.
그 는미국유학시절에 습득한 불트만의 비신화화와 다드의 실현된 종말론의 전망에서 요한복음과 요한서신들에 관한주석들을남겨놓았다.5
5 유동식은1950년대중반보스턴대학에서공부하던시절, 불트만과 다드와 같은 서구신약성서학 자들의연구를 수용하였기때문에역사비평과 실존주의적 성서해석이 지니는장단점을잘알고 있었다. 이글은유동식의성서이해에영향을미친 현대성서학과 해석학은
다루지않는다. 단지 토착화신학자로서유동식의성서이해에 미친 전통사상(유불선)의 경전이해를 배경사로살펴 볼 것이다.
유동식의 신학은하루아침에형성된독창적사유의결과물이아니라, 오랜시간다양 한사상가들과의교류와한국인들의종교심성의기층을담당한무교와유불 선에관한깊은연구끝에탄생하였다.
이때문에유동식의풍류신학적인 성서이해를살피기위해서는그에게영향을준사건과인물들을통시적으로 살펴보는것이필요하다.
이를위해II장에서는한글성서가유동식에게미친 영향을 알아보고, 한글로 한국적 신학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한 유영모와 함석헌이유동식에게미친영향들을고찰할것이다.
III장에서는유동식에게 선불교와노장사상을소개해준 탄허의 사교회통사상(四敎會通思想)을 소개하고, 선불교의 경전이해를 간략하게다룰것이다.
또한유동식에게 성리학의세계를소개해준 고득순의 성리학적 복음이해를 알아볼것이다.
IV장에서는풍류도의전망속에서유동식이어떻게요한복음을이해하고 있는지를살펴볼것이다.
결론에서는 종교다원주의와 탈식민지시대에 유동식의 성서이해가 지니는 의미를 생각할 것이다.
특별히 신중심주의모델을 넘어 요한복음의 선재기독론을 풍류도의 빛에서 창조적으로 이해한 유동식 의 해석학적 작업의 의의와 한계를 밝힐 것이다.
II. 한글 성서와 유동식의 한글 신학
유동식이태어나고자란황해도는19세기말개신교가가장먼저전래된 지역이었다.
1883년서상륜과그의동생서경조에의해황해도 솔내에 한국 최초의 개신교 교회가 세워진다.
이 교회의 설립자였던 서상륜은 1882년 만주에서스코틀랜드선교사들과최초로한글로성서를번역한인물이었다.
이후소래교회는신임서양선교사의한국어교육장소로, 동학농민혁명 기간에는동학군의피신처로사용되었다.
유동식의조부는이러한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에 입교하게 된다.
최초의한글성서뺷누가복음뺸은1882년에등장하였지만, 신구약성서 가 모두 한글로 번역된 것은 1910년 이후였다.
언더우드(Horace Grant Underwood, 1859~1916)를중심으로구성된한글성서번역위원회는1910년 에 신구약성서전부를한글로번역출판한다.
언더우드가설립한 연희전문은 일제의한글사용금지령에도불구하고학생들에게몰래한글을가르쳤 다.
일제강점기에고등교육기관에서한글을사용한다는것은항일정신의 함양을의미했다
유동식은이러한전통을지닌연희전문 수물과에서 2년간 공부한다.
이 시기에 유동식은 훗날 한국의 대표적인 저항 시인 윤동주 (1917~1945)와같은기숙사에서조우한다.
이후윤동주의기독교민족주의 와 한글로 쓰인 그의 시는 유동식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게 된다.
유동식의성서가한글성서였다는사실은그의신학작업에서매우중요 한의미를지닌다.
중세신학이 라틴어라는 기호체계를통하지않으면이해 될수없듯이, 유동식의풍류신학은한글이라는의미체계와깊은연관이 있다.
언어와사상은민족의집단적경험을반영한다.
유동식은한글과풍류 도모두에는한국인의집단적경험과원형적무의식이내재되어있다고생각 했다.
가령풍류도와한글모두에는음양오행과하늘과땅그리고인간의 원융관계를보여주는삼재사상이내포되어있다.
이때문에유동식은한국 인들의보편적이고일상적인언어인한글속에풍류도를담아낼수있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풍류도와 한글은 민족적 공동 체험 속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말”이란 이념의 상징적인 표현이며, 우리에게 고유한 삶의 경험을 통해 형성된 이념을 나타내는 적절한 말은 곧 우리말이어야 한다. 외국어인 한문에 의한 표현 은 우리의 이념과 그 의미 내용에 대한 근사성(근사성)을 나타내는 데 불과하다.
따라서 풍류도로 표현된 우리의 영성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마땅히 우리의 일상용어로써 다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6
유동식은평생한글성서를읽고한글로자신의신학적사유를전개했다.
그가전개한풍류신학은한글이지니고있는삼일구조와깊은연관이있다.
삼일구조란우주의구성이천(天), 지(地), 인(人)이라는세가지요소로형성 되어있다는한국적사상이다.
유동식이창안한풍류신학은유불선삼교의 회통을통한한, 멋, 삶을구현한다는점에서삼일구조와유사성을지닌다.
이러한 이유로 유동식의풍류신학을이해하기위해서는한글의특징과사상 적배경을살펴볼필요가있다.7
6 유동식, 뺷소금 유동식 전집, 제7권뺸, 29-30.
7 세종대왕은자신이만든문자를훈민정음(訓民正音), 즉백성을가르치는바른말이라고하였다. 현재널리사용되고있는‘한글’이라는명칭은근대의선구적인한국어학자주시경(1876~1914)에 의해서 쓰이기 시작했다.
한글은1443년세종대왕과그의신하들에 의해만들어진언어체계다.
세종이한글을만든이유를뺷훈민정음뺸은다음 과 같이 이야기한다:
우리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아니한다. 이런 까닭으로 글을 모르는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것을 가엾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쉬이 익혀서 날마다 쓰는 데 편하게 하고자 할 따름이니라.8
세종이한글을창제한목적은일반백성들이쉽게자신들의입말을글말 로표현할수있게하기위한것이었다.
마치독일어성서번역을통해 독일 민중들이쉽게성서에다가설수있게한루터의목적과흡사하다.
한편유동 식은한글의창제원리가단군신화에등장하는삼재사상과밀접한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훈민정음의 창조 원리는 형이상학적인 음양오행론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니 다. 거기에는 한국 문화의 원리인 천, 지, 인 삼재론이 개입되어 있는 것이다. 곧 풍류도의 상징인 삼태극적 구조가 작용하고 있다. 자음 표기의 기초는 발음기관 의 오행적 구조를 따라 목구멍(ㅇ, 水), 어금니(ㄱ, 木), 혀(ㄴ, 火), 이(ㅅ, 金), 입술(ㅁ, 土) 등으로 했다. 그러나 글자의 기초가 되는 모음은 우주를 형성하고 있는 천(ㆍ, 양), 지(ㅡ, 음), 인(ㅣ, 중) 삼재로 표기를 했다. 그뿐 아니라 낱글자의 구성원리인 초성(천), 중성(인), 종성(지)의 결합이라는 것 역시 삼재론에 입각한 것이다. … 한글은 실로 삼태극의 원리와 음양오행의 우주 원리를 형상화한 하나 의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9
8 김슬옹,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훈민정음 (서울: 아이세움, 2013), 26.
9 유동식, 소금 유동식 전집, 제8권 (서울: 한들출판사, 2009), 133.
이러한 유동식의 주장은 뺷훈민정음 해례본뺸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한글은음양과오행이라는자연의이치를사람의말소리에담아내었다는 것이다.
음양(陰陽)이란우주에존재하는것들이모두상보적관계를나타내는상징이다.
오행(五行)이란인간의삶에필요한다섯가지요소, 즉목, 화, 토, 금, 수(木火土金水)를의미하며, 이다섯가지요소가서로상생과상극을 통해우주의현상을드러낸다고본다.
이러한우주자연의이치를따라한글 은자음(양)과모음(음)의조화로소리글자를형성한다.
즉, 어미소리(모음) ‘ㅡ’는땅을상징하는지평선의모습을나타내고, 위로올라가는‘ㅣ’는인간을 상징하며, ‘ㆍ’(아래아)는 둥근 모양의 하늘을 나타낸다.10
10 노마 히데키, 한글의 탄생, 박수진 외 옮김 (서울: 돌베게, 2022), 174-175.
한편자음을대표하는ㄱ, ㄴ, ㅁ, ㅅ, ㅇ은음양오행을따르는것으로각기 아, 설, 순, 치, 후를 나타내는데, 이를 땅의 소리로서 위를 향하도록 하는 어미를부른다하여 아들소리(자음)라고부른다.
이처럼한글에는깊은사상 적의미가내재되어있다.
그런데이러한한글의철학적의미를신학적으로 성찰한 사람이 있는데, 바로 유동식이 젊은 시절 YMCA 연경반에서 만난 유영모(1890~1981)라는인물이다.
그는한글에대해깊은철학적, 신학적 의미를부여했는데, 한글이단순한표기수단을넘어인간존재와사유를 반영하는언어철학적구조를지닌다고생각했다.
가령그는한글의 음소적 특성과 조합원리를 통해 한국어가 우주와세계를인식하고표현하는독특한 방식을 담고 있다고 해석했다.
더욱이 유영모는 한글이 기독교 신앙과도 연결될수있다고보았다.
가령그는“말씀이육신이되었다”라는요한복음의 선포를한글의구조를통해설명하려했다.
예를들어‘하느님’이라는단어가 ‘하늘’(하)과‘님’(남)의결합으로이루어졌다는점에서, 인간과신의관계가 언어적으로도드러난다고보았다.
유영모는이러한관계를‘긋’이라는한글 을 통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참(하느님)을 찾으려면 내 속에 있는 긋(얼나)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예수가 이르기를 “하느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 17:21)고 했 다. 참(하느님)과 긋(點)은 그 크기가 다르다. 참(하느님)은 가장자리 없는 무한 대이고 긋은 자리만 있고 없는 점과 같다. 그래서 긋(點)이라 한다. ‘긋’의 ‘ㄱ’은 하늘이고 ‘ㅡ’는 땅이고 ‘ㅅ’은 사람이 합쳐진 것이다.11
이처럼유영모는한글이단순한문자체계가아니라, 한국인의사유방식 을담고있는그릇이라고보았다.
또한한글이자연주의적, 유기적세계관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가령 한글의 자음과 모음의 배치는 자연의 원리(하늘, 땅, 인간)와조화를상징한다. 유영모는한글이한자를기반으로 한기존문자체계보다더직관적이고자연스러운언어체계라고생각했다.
유영모의한글이해는단순한문자해석을넘어언어를존재론적, 신학적, 철학적차원에서탐구하는깊은사유를보여주고있다.
그는한글이단순한 문자를넘어인간존재와세계이해의핵심도구라고보았으며, 이를통해 기독교적세계관과한국적사유를조화롭게융합하려했다.
이처럼 유영모는 한글을 단순히 소리글자의 차원을 넘어 한문처럼 뜻을 담은 글자라고 생각했다.
유영모의한글에관한철학적, 신학적해석은그의제자함석헌으 로 계승되었다.
함석헌(1901~1989)은 유영모와 함께 유동식의 젊은시절에 커다란영향 을준한국의사상가이자종교인이었다. 12
11 박영호, 뺷다석 유영모 어록뺸 (서울: 두레, 2002), 343.
12 함석헌에대한유동식의평가에대해서는소금유동식전집, 제8권(서울: 한들출판사, 2009), 332-360.
그는평양의오산학교시절에스승 유영모로부터깊은영향을받았으며, 독창적인기독교철학에입각하여민 족주의적사상을전개한인물이다.
그는일제강점기시절부터한글을민족 정신의핵심으로간주했으며, 1932년부터김교신이발행한「성서조선」에 “성서적입장에서본한국역사”를한글로연재하기도하였다. 함석헌에게있어한글은단순한글자가아니라, 한국인의사상과정신이깃든언어였다.
그는한글이우리민족의정체성을형성하는중요한요소이며 한국인의 독창적인 철학을 담고있다고주장했다.
더 나아가 함석헌은 한글은 단순한문자 가아니라, 하느님의섭리가담긴신비로운언어라고주장했다.
그는유영모 와마찬가지로한글의자음과모음이우주의조화와질서를반영한다고해석 하였다.
가령함석헌은한국역사의주체를순수한한글‘씨’로생각했는데, 씨는생명을내포하는씨앗을의미한다.
‘씨’는한알의밀알처럼죽지않고 무수한생명을잉태하며키워내는존재다.
함석헌에따르면‘알’에서‘ㅇ’은 초월적하늘을상징하고, 아래아(ㆍ)는극소혹은내재적자아를나타내는 것이며, ‘ㄹ’은생명의활동을의미한다.
함석헌은성서와한국이처한고난의 역사를병치시키며, 씨이역사를짊어지는주체라고말한다.
김형근은씨 이라는 단어가 함축하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씨’이란 ‘씨’와 ‘’이 합쳐진 말이다. 여기서 ‘’은 ‘ㅇ’과 ‘ㆍ’와 ‘ㄹ’이 결합된 문자다. 함석헌은 각각의 의미에 대해 “<ㅇ>은 극대(極大) 혹은 초월적인 하늘 표시하는 것이며, <ㆍ>는 극소 혹은 내재적인 하늘 곧 자아를 표시하는 것이며, <ㄹ>은 활동하는 생명을 표시하는 것”이라 말한다. <ㅇ>이란 동그라미, 하늘을 상징하고, <ㆍ>는 자아 그리고 ‘나’를, <ㄹ>은 생명의 활동, 꿈틀거림을 상징한다. 이를 종합해 함석헌은 ‘’을 지닌 삶이란 하늘로의 올라감이자 꿈틀거림, 즉 영원 한 하늘을 향해 자라는 운동이라 말한다. 즉, ‘씨’이란 영원을 향한 운동의 가능 성을 품은 존재, 그 종자를 지닌 존재인 것이다. 이러한 그의 언급에 따라 우리는 여기서 ‘꿈틀거리는 생명(ㄹ)’에서 시작하여 이러한 활동을 자각한 ‘나(ㆍ)’의 뜻 을 탐구하고, 이후 생명의 꿈틀거림과 그에 대한 자각이 어떠한 점에서 ‘하늘(ㅇ)’ 로의 올라감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풀어보고자 한다.13
13 김형근, “함석헌의 씨개념,” 「인문학연구」 63 (2022), 519-520.
이처럼씨이라는단어에는역사적주체로서의민중을강조하는동시 에하늘을지향하는민중들의초월성이담겨있다.
함석헌은한글이신학적 사유를 전개하기 위한 유용한 내용과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유영모와함석헌의한글신학은유동식에게영향을미치는데, 가령 그는 한글의 ‘아름다움’이라는 단어를 요한복음의 로고스와 연관시킨다:
아름다움이 영원한 진실로서의 ‘알’과 그 여실한 형상으로서의 ‘다움’의 복합 개념 이라면, 예술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가 알이요, 그 로고스가 시공 범주 안에 있는 인간이 되어 오신 이가 예수요 그리스도라고 한다 면, 그리스도는 ‘아름다움’인 동시에 예술 자체이다.14
이와같은유동식의신학적상상력은한글로만가능한것이었다.
유동식 은 말년에 이르러 예술 신학을 전개했는데, 이는 풍류신학이 필연적으로 크고(한) 진실한삶(참)의지향과더불어‘멋’이라는미학적요소를보유하고 있기때문이다.
한국의문화속에서풍류(風流)라는말은음악과미술과같은 예술을즐기는멋과여유를의미한다.
따라서풍류라는말자체가예술적 영성을뜻하며, ‘멋’이란미의식을동반한다.
유동식은창세기에등장하는 구절들(창1:28; 2:7, 31)과복음서가전하는예수의탄생과십자가그리고 부활에서예술신학의전거들을발견한다.
유동식에따르면예술신학이란
“예술에대한복음적해석인동시에복음에대한예술론적해석이다.”15
14 유동식, 소금 유동식 전집, 제9권 (서울: 한들출판사, 2009), 497.
15 앞의 책, 237.
가령 유동식은한국의예술을대표하는석굴암본존불의모습에서복음의그림자 를 발견한다:
불상이란 진리를 깨달은 이의 형상이다.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말씀은 하나 님의 계시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계시요, 부처님은 진리의 빛을 반사하는 거울이다. 동해를 통해 정좌한 부처님은 떠오르는 하나님의 햇빛을 온몸으로 받 아 이것을 온 누리에 비추고 있는 법신불이요, 비로자나불이다.16
유동식은창세기가증언하는하느님을이세상을아름답게구현한예술 가라고간주하며, 그리스도의부활과로고스는인간존재의재창조를위한 하느님의예술작업이라고이해한다.
에베소서2:8-10에서바울은에베소 교인들을“그리스도예수를통해서창조하신작품”이라고말한다.
이와관련 하여유동식은예술에관한복음적해석을다음과같이이야기하는데, 흥미 로운지점은‘예수’라는말을한글뜻풀이를통해예술과연관시키고있다는 것이다:
예술은 ‘아름다움’, 곧 하나님의 미적 이념의 인간적인 형상화 작업을 뜻한다. 아름다움은 진여(眞如)이며, 하나님의 뜻의 표출이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로고스는 예술의 후경이며, 예수는 그 전경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술은 로고스-예수의 형상화 작업이라 하겠다. … 예술이란 예수에 ㄹ을 받침한 글이다. ㄹ은 한자의 몸기(己)이다. 곧 예술이란 우리의 몸으로써 예수를 떠받치는 것이 며, 예수(진여)를 내 몸에 지니는 것이다. 그것은 곧 예수의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 는 신앙 행위이다. 구체적으로는 그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새 로운 존재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또한 예술이 갖는 창조적 승화의 원리가 있다.17
16 앞의 책, 221.
17 앞의 책, 575.
이처럼유동식은예수라는단어가지닌의미를한글의뜻풀이를통해 미학적차원으로까지확대해석한다.
이를가능케한것은한글이지닌철학 적, 신학적구조때문이었다.
이처럼한글은유동식의신학적사유를서구적 세계에머물지않고주체적사유의지평으로까지확대하는데중요한매개가 되었다.
III. 선불교와 유동식의 성서 이해
한국은특별히통일신라시대부터선불교가크게중흥하였다.
다양한 선불교사원들이설립되었고, 고승들은경전들을해석하고자신의깨달음을 다양한문헌들에남겼다.
통일신라시대의원효와의상, 고려시대의지눌과 보우그리고조선시대의서산대사와경허같은이들이대표적이다.
유동식 에게커다란영향을주었던 탄허(呑虛, 1913~1983)는이러한조선의선불교 법맥을계승한인물이었다.
그는평생에 걸쳐 방대한 화엄경전을 모두한글로번역한인물이었다.
특히그는불교뿐만아니라, 노장사상의대가이기도 하였다.
유동식은 탄허와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해방 후 감리교신학교 기숙사에 있을 때 이재각이란 룸메이트와 함께 이름있는 외래 강사들을 쫓아다녔다. 그때는 교수들이 시원치 않으니, 이름있는 강사들을 서울 시내 전역으로 쫓아다녀 듣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었다. 그때 기독교의 함석 헌처럼 뛰어난 이가 불교에서 탄허 스님이었다. 탄허 스님이 젊었을 때였는데 장자 강의를 했다. 남산 아래 사립대학에서 겨울방학에 하루에 두 시간씩 했다. 추운 겨울에 강의하는 사람도 용코, 듣는 사람들도 용했다. 학생들이 교파를 막론 하고 지식에 굶주려 있을 때라서 낮에 와이엠시에이의 함석헌 강의에 우르르 몰려 가고, 밤엔 탄허의 장자강의에 우르르 몰려갔다. 함 선생도 기독교지만 동양 고전 통한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탄허도 성경을 다 알고 있었다. 그걸 들으면서 ‘아 서양 기독교만 있는게 아니구나’라는 걸 알았다. 그때부터 점점 뿌리를 캐다가 한국 종교사를 안 것이다. 탄허 스님이 장자를 강의하면서 화엄학을 자주 이야기 했다. 우린 불행한 세대임에도 그렇게 다른 종교와 사상도 더불어 배워 회통할 수 있는 세대였다. 그게 큰 특징이다. 동양학 강의를 듣는 게 성서를 보는 눈에 트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영원한 하나님이 진리인 이(理)법계라면, 생활은 사(事) 법계다. 영원한 하나님 말씀이 역사 안에 들어오신 것이다. 화엄경의 이사무애법계를 모르면 성육신과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이해 못 한다.18
탄허는선승인동시에방대한화엄경전을모두한글로번역한희대의 학승으로, 유불선과기독교를회통시킨인물로도유명했다.19
18 조현, “100살신학자유동식, 우리의혼풍류도를발현해세계인을열광케하라,” 「한겨레신문」 2021. 1. 20.
19 탄허의 사교회통에 대해서는 문광, 탄허선사의 사교회통 사상뺸(서울: 민족사, 2020).
탄허는유교, 불교, 도교그리고기독교가동일한진리를가리킨다고보았던풍류정신의 소유자였다.
그는20대까지유학을공부하던선비였는데, 노장사상을공부 하는도중큰의문이생겼다고한다.
이에당시오대산상원사에서주석하던 방한암선사와편지로교류하던중큰깨달음을얻어불교에귀의하였다.
특히그는노장의사상과그리고불교의주장이다르지않음을늘강조했다:
성(性)의 자리에서 쓰는 사람에 따라 성 자리를 이름하여 ‘중(中)’이니 ‘도(道)’라 한다. 도는 ‘사람이 당연히 가는 길’을 의미하고 다른 말로는 ‘德(덕)’이라고 한다. 덕이란 “마음을 닦아 얻은 진리(得於心之謂德)”를 말한다. 또 진리란 모양이 끊어졌다는 뜻인데 온갖 다른 이름의 대명사로 불린다. 대명사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 어리석은 사람은 달을 가리키면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본다. 여기에서 대명사는 마음자리를 표현하기 위한 다양한 방편들이다.
이를테면 그 대명사에는 하나님, 도, 진리 등이 있다.20
그는예수가말한하느님의나라를진리의대명사로간주하며, 천국과 지옥은분별이끊어진대해탈의세계로이해한다.
예수가말한하느님이란 “우주가생기기전진면목을깨달아타파한것”이라고말한다.
가령탄허는 산상수훈에등장하는“마음이가난한자는복이있다”라는예수의말씀을 허심자수복(虛心者受福)으로해석한다.21
마태가말한“마음이가난한자” 는선불교에서말하는무아(無我)의경지를깨달은자로볼수있다는것이다.
일체의집착에서깨어자신의실체가공(空)이라는사실을체득한자만이 진정한행복을얻게된다는것이다.
또한탄허는마태복음18장에등장하는 “어린아이와같지않은자는천국에들어갈수없다”는예수의말씀을다음과 같이 이해한다:
동자란 천진난만한 어린애를 말하는데, 어린애의 마음은 바로 성인의 마음과 같 기 때문이다. 성인의 마음은 곧 그 순간의 마음, 즉 앞뒤가 다 끊어진 마음을 갖고 사는 사람이다. 도를 통한 사람도 그와 같다.22
20 탄허, 탄허록(서울: 휴, 2012), 115.
21 앞의 책, 200.
22 앞의 책, 200.
문광은이러한해석이면에자리한탄허의종교회통사상을다음과같이 파악한다:
탄허는 이 구절을 주목하여 맹자가 말한 적자지심(赤子之心)이 바로 기독교에 서 말한 동자와 같은 의미라고 하며 유교와 기독교를 회통시켰다.
불교에서는 선지식 81행(行) 가운데 영아행(嬰兒行)이 제일(第一)이라 하여 천진불(天眞佛) 사상을 강조한다.
<화엄경>, <입법계품> 전체가 주인공으로 한생에 묘각(妙 覺)의 구경각을 성취한 인물 역시 선제동자로 천진면목을 그대로 발현한 동자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 도교의 <도덕경>에 나오는 적자(赤子)의 무심(無心) 에 대해서도 탄허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도덕이 높은 이는 마치 어린아이와 같다.23
이처럼탄허는맹자와불교의가르침을복음서의말씀과기탄없이상응 시킨다.
각개종교의교리와교의의장벽을넘어진리파지(眞理把持)라는 관점에서유불선과기독교의종지는같다는것이다.
탄허는예수를부처처 럼 생사가일여(一如)하다는사실을깊이깨달은분이라고생각한다.
그리고 예수의 근본 가르침이 자성을 자각하고 모든 탐욕을 비우는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
탄허에따르면탐욕을비우기위해서는수양이중요한데, 예수가 말한“좁은문으로들어가”라는것은자성을자득하기위한수행의중요성을 강조한말이라는것이다.
이와같은탄허의복음이해에는문자에사로잡히 지 않는 선불교의 독특한 경전 이해가 자리하고 있다.
선불교에서는“문자에얽매이지않는다”는원칙이있는데, 이는경전해 석에서도중요한특징으로나타난다.24
23 문광, 탄허 선사의 사교회통 사상(서울: 민족사, 2020), 335-336.
24 선불교에대해서는오경웅, 선학의황금시대, 서돈각, 이남영옮김(서울: 도서출판천지, 1997).
선사들은깨달음이언어와문자로 설명될수없다고보기때문에, 경전해석역시문자적의미에얽매이기보다 는그이면의깨달음과실천이필요하다고강조한다.
선종에서는교외별전 (敎外別傳)이라하여경전의문자적해석을넘어직관적깨달음에주목한다.
사람들은달을가리키는손가락(문자)에집착하여정작달(진리)을보지못 한다고선승들을말한다.
이때문에선불교는불립문자(不立文子)와 교외별전(敎外別傳), 이심전심(以心傳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을강조한다.
이 말들은 문자로서 진리를 온전히 파악할 수없고, 궁극적 자아(性)를 깨달아야 부처(진리)가될수있다는뜻이다.
이처럼 선불교는 경전에 대한 문자주의적 해석을극도로 경계한다.
바울 역시 로마서에서 문자는 죽은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토로한다.
선승들은활구(活句), 즉살아있는문자를이야기한다.
이러한활구들을 담고있는것이 전등록과 벽암록 그리고 무문관이다.
이책들은활구 혹은공안(公案)이라불리는중국선승들의깨달음을비유적이고시적인 언어로 기록한문헌들이다.
가령뺷무문관뺸(無門關)에는수수께끼와 같은 역설과모순으로가득찬48개의화두(話頭)가등장한다.
화두란깨우침을 얻기위한고승들의이야기속에등장하는수수께끼와같은질문들을말한 다.
다시말해화두는“깨달은선사들이쓰는말길(언로)과생각의길(사로)이 끊어진말, 언어와사유로는알수없는말이다.”25
25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포교연구실, 뺷간화선 입문뺸 (서울: 조계종출판사, 2006), 114.
대표적인것으로조주(趙 州)의무자(無字) 화두를들수있다:
“어느날제자가조주화상에게묻기를, ‘개에게도불성이있습니까?’ 하니, 조주스님이대답하기를‘없다’고대답하 였다.”
이에피소드는만물에불성이있다는대승불교의가르침에역행하는 이야기처럼들린다.
그러나무(無)란단어에집착하여지적사변으로만이 이야기를이해해서는안된다.
무(無)라는상(相)에집착하지않고 무와하나 되는자기무화의경지에서모든구별과분별적견해에서자유로울때, 깨달 음을얻을수있다. 이는빌립보서2장에등장하는바울의 케노시스사상과 유사하며, 중세의신비주의자, 에크하르트의‘영적무지’와상통한다.
가와도끼 가끼찌(門脇佳吉)는 공안과 성서의 유사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스승이 제자에게 주는 과제라는 점에서 유사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말씀 은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으니 회개하라”(누가 1:15)는 실존전환의 촉구입니 다. 이것은 공안이 화두환면을 다그치는 물음이라는 점과 상응합니다.
셋째, 공안 이 비사량(비사량)의 사랑이라는 경지를 나타내는 것과 비슷하게 하나님에 관해 말하는 성서의 메시지는 다름 아니라 언제나 저 “이해할 수 없는 신비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다.
넷째, 불트만이 말하고 있듯이 성서 메시지가 인간을 자기이해로 인도하는 것과 비슷하게 공안은 자기구명(자기구명), 곧 본연의 자기를 깨닫도록 하는 것입니다.26
26 가도와끼 가끼찌(門脇佳吉), 禪과 聖書 (왜관: 분도출판사, 1985), 148.
요한복음3장에등장하는니고데모와의대화는선불교의공안과유사한 특징을보여준다.
예수는거듭남(영생)에관해니고데모와수수께끼와같은 문답을진행한다.
예수는영적인거듭남에관해서이야기하지만, 니고데모 는육적인탄생으로오해한다.
니고데모와예수의대화는일종의선문답으 로볼수있다.
예수는니고데모에게영의존재로거듭날것을촉구하는데, 이는불트만이말한실존적결단의요청이라고할수있다.
바울은로마서 7:6에서
“우리는문자에얽매인낡은정신으로하나님을섬기지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긴다”
라고 말한다.
선불교에서는 경전의 문자에만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활짝 열어 놓은 저 문은 마다하고(空門不肯出) 굳게 닫힌 창문만을 두드리는구나(投窓也大痴) 백 년 동안 경전만을 들여다본들(百年鑽古紙) 어느 때에 깨치기를 기다릴 건가(何日出頭期)
이시는경전에관한문자주의적해석을, 열린문을마다하고닫힌창문을 두드리는어리석은행위에비유하고있다.
요한복음은니고데모를활짝열린대문을마다하고닫힌창문을두드리는어리석은인물로묘사한다.
선불 교는깨달음의경지를직설적으로표현하기보다는비유와상징을통해간접 적으로묘사한다.
예를들어연화(蓮華, 연꽃)는불성의깨달음을비유하며, 뗏목은수행방법을설명하는상징으로자주언급된다.
불교의경전해석학 에서는 이러한 비유와 역설적 이야기들을 단순히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깨달음으로인도하는상징적의미로받아들인다.
가령 화엄경에등장하는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과같은 상징적 표현 역시 각 존재의 상호연기 와연결성을나타내는심오한철학적해석표현이다.
유동식은 화엄경이 한국불교에서차지하는특별한의미를강조하였다.27
법화경을중심으로 하는일본불교와는달리, 화엄경에는우주적법신인비로자나불이등장하 고, 일체중생제도를의미하는범구제론(凡救齊論)을강조한다.
유동식은 이러한 화엄경의성속일여(聖俗一如)의 범불론적 구원관이 복음서가 증 언하는 그리스도의 보편적 사건과 상통한다고 보았다:
성육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진리이다. 그러므로 그리 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곧” 인간이라고 믿는다. 여기에 성즉속(聖卽俗)이라 는 성속일여(聖俗一如)의 진리가 있다.28
27 유동식, 뺷소금 유동식 전집, 제2권뺸 (서울: 한들출판사, 2009), 487-489.
28 앞의 책, 160.
유동식의성서이해에는선불교의이러한입장이깊이반영되어있다.
특별히요한복음에등장하는 로고스기독론을 성속일여라는 화엄경의관점 에서 해석한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유동식은복음서가증언하는그리스 도사건을 대승불교의 전망에서 이해될수있다고생각한다.
즉, 자기희생과 자기 초월을 구현한 그리스도의 삶의 형태는 불교의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으로 자기를 버리고 타인을 제도(濟度)함으로써 일체 중생(一切衆生)을 개공성불(皆共成佛)과 상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IV. 유교의 경전 이해와 유동식의 성서 이해
한국의선불교와더불어유동식에게영향을끼친것은 한국인의 모랄리티를 지배해온 성리학(性理學)의 경전 이해라 할 수있다.
성리학은공자와 맹자가구축한원시유교에송나라때학자인주자(1130~1200)가형이상학 적해석을가미한것이다.
성리학이란 중용에등장하는천명지위성(天命 之謂性)에서유래한말로, 하늘이명령한인간의도덕적본성(性)을추구하 는학문이다.
성리학은일종의 유교적우주론과 심리학을 결부한 천인합덕의 윤리학으로 볼 수있다. 29
29 앞의 책, 78.
성리학은유교경전의문자적해석과의리적(義 理的) 해석을조화시키려노력한다.
문자적해석은경전의언어와문법에 주목하여원문에충실하게해석하려는방식이며, 의리적해석은경전이담 고있는도덕적원칙과철학적의미를탐구하려는방법이다.
가령주자는 문자적해석을중시하면서 의리적해석을 통해 경전이국가와사회그리고 인간의 도덕적 수양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 분석했다.
유교의대표적경전으로는사서오경을들수있다.
그중에서 중용(中 庸)과 대학은공자와 맹자의 어록집인 논어, 맹자의소박한 도덕적 가르침에 우주론적 의미를 부여하는책들이다. 그런데 중용의첫구절은 기독교의사상과여러모로상응하는요소들이내포되어있다.
뺷중용뺸은다 음과같은문장으로시작한다: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하늘 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 하며, 도를 닦는 것을교[敎]라한다).
이문장에서천명(天命), ‘하늘이명한것’이라는표현에 서‘하늘’(天)은기독교적맥락에서는하느님(God)으로이해될수있다.
즉, 하느님이인간에게본성과인생의목적을가리킨다고볼수있다.
창세기 1:27은“하느님의형상대로사람을창조하셨다”고하는데, 이것이“천명이 곧 인간의 성(性)”이라는 뺷중용뺸의 개념과 상통할 수 있다.
또한 성(性)을 따른다는것은 하느님이 정한 길(道)을따르는것으로, 기독교에서는이것을 하느님의뜻과 섭리를 따르는삶으로 해석할수있다.
그리고도(道)를닦는 것을교(敎)라고하였는데, 이는예수가요청한제자도(弟子道, discipleship) 와유사한개념이다.
요한복음에서예수는“내가곧길이요진리요생명이 라”(요14:6)라고말한다.
예수는하느님의도(道, the Way)를실현한분이요, 제자들도이길을따를것을가르친다.
이와관련하여윤성범(1927~2006)은 중용에등장하는 誠(성)이란단어를 사용하여, 하느님의말씀(言)을 이룬 (成) 이가예수라고해석하기도했다. 30
윤성범은유교적가치와기독교신앙 을조화롭게연결하려고시도했다.
유동식또한조선의성리학자, 김시습과 이율곡의사상에서풍류도와의연결점을발견하고, 이를기독교의가르침으 로전유한다.
비록어린시절기독교가정에서성장한유동식이었지만, 그의 도덕과윤리적세계를구성한것은삼강오륜(三綱五倫)으로대표되는유교 적덕목들이었다.31
30 윤성범에 대한 유동식의 평가는 유동식, 소금 유동식 전집, 제4권, 391-393, 449-457.
31 삼강오륜(三綱五倫)이란유교의핵심윤리개념으로, 인간사회에서지켜야할기본적인도덕과 질서를의미한다. 먼저삼강(三綱)은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 婦綱)으로, 군주와신하, 아버지와아들, 남편과아내가지켜야할덕목을말한다. 그리고오륜(五 倫)은다섯가지인간관계에서의도리를말하는데,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 등이다. 부자유친은부모와자 식사이에는친함이있어야한다는뜻이고, 군신유의는임금과신하사이의의리가있어야한다 는것이며, 부부유별은부부사이에는역할의구분이있어야한다는뜻이다. 그리고장유유서는 어른과아이사이에는차례가있어야한다는것이며, 붕우유신은친구사이에는믿음이필요하 다는 뜻이다. 삼강오륜은 과거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수적인도덕적규범으로 작동해왔다.
가령인(仁)과효(孝)는한국인의도덕적무의식을규정 하는보편적가치들이다.
한국인들의생활윤리는유교적으로작동한다고 해도과언이아니다.
불교가한국인들에게종교적형이상학을주었다면, 유 교는 현실적인 윤리적 규범을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유교의경전해석학의목표는단순히경전을이해하는것에그치지않고, 그가르침을통해자기수양과도덕적실천을중요하게생각한다.
즉, 유교에 서는경전을통해배우는도덕적원칙을실제삶에서실천하는것을중요하게 여긴다.
따라서해석은단순한지식습득이아니라, 자기성찰과수양을촉진 하기위한과정으로간주된다.
유교경전해석은이론적지식과실천적도덕 성을연결하려는특징이있으며, 이는성리학의중요한목표라고할수있다.
유동식의풍류신학은 한, 멋, 참이라는 세가지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한은 종교적포월성을상징한다면, 멋은미학적인삶의태도를의미하고, 참은 진실한윤리적삶의실천을나타낸다.
이런점에서풍류도와유교의접점은 바로 ‘참’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유교의본질은극기복례(克己復禮)에있다.
극(克)이란이긴다는 것이고, 기(己)란몸에있는사욕을말하며, 복(復)이란돌이킨다는것이고, 예(禮)란천리(天理)의도덕적법칙이다. 다시말해자신의충동과욕망을 예와의로극복하여진정한사람됨의길(仁)로나아가이를사회적으로확충 시키면곧도덕사회가된다는것이공자의가르침이다.
유동식은산상수훈 에나타난예수의가르침이공자의 극기복례와상응한다고생각한다.
즉, 한국인에게 예수는 극기복례의 실천자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동식이성리학의가치를재발견한계기는1950년에발발한한국전쟁 이었다.
전주로피난을떠난유동식은그곳에서고득순을만나게된다.
당시 전주남문밖교회에서목회하고있던그는유명한성리학자이기도했다.
그 는성서와유교의사서오경의가르침을모두존중하였고, 특히예수의산상 설교를기독교의핵심으로간주했다.
고득순은유동식에게 소석(素石)이라 는호를지어주었는데, 이는‘흰돌’이라는의미로묵시록에등장하는그리스도를 뜻한다.
훗날 유동식은 전주에서 고득순과의 만남에 대하여 “6.25가 내게준하나의큰혜택”이라고회상했다.
그의영향속에유동식은예수의 근본문제를 심허속천(心虛屬天)이라는유교적전망에서이해할수있었다.
마태복음5장3절의“마음이가난한자는복이있나니천국이저의것이다”라 는말씀을고득순은다음과같이한문으로번역한다:
“심허자가득천국야” (心虛者可得天國也).
유동식은고득순의생각을그대로계승하여예수의 근본문제를전인적인심령의결단에의한‘심허속천’에있다고주장한다:
심허속천(心虛屬天), 마음을 비우고 하늘에 속하는 절대 신앙을 의미한다. 육에 죽는 십자가와 영에 사는 부활이며 신생이다. … 예수의 근본 문제는 여기 전인적 인 심령의 결단에 의한 “심허속천”에 있다. … 심허는 하늘나라의 제일 근본 원칙 이다. … 인간은 아무것에도 매임 없이 하느님에게만 소속된 자로서 봉사하고 생활할 수 있으며, 이때에 비로소 하늘나라에 합당한 자가 된다. 이것이 ‘심허’의 양상이며 하느님 앞에서의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 형태이다. 또한 하느님의 뜻으 로서의 예수의 요청이다. 하느님의 뜻으로서의 계명은 여기 그 성취가 있다. ‘심허 속천.’32
32 유동식, 소금 유동식 전집, 제1권 (서울: 한들출판사, 2009), 78-79.
선승이었던탄허가마음이가난한자를무아를깨달은이로보았다면, 고득순은심허를얻은이로해석한다.
유동식은이를종합하여예수의생애 를심허속천의삶을구현한것으로이해한다.
이는바울의 케노시스사상을 연상케한다.
빌립보서2:6-7에서바울은예수를
“근본하나님의본체시나 하느님과동등됨을취할것으로여기지아니하시고오히려자기를비워 종의 형체를가지사”
라고말한다.
여기서‘자신을비운다’는말을 그리스어로 케노 시스(kenosis)라고하는데, 이말은불교의공(空)과 상응하는단어로서자기무화(自己無化)를뜻한다고볼수있다.
바울에게있어예수의십자가는철저 한‘자기무화’를보여준사건이다.
하느님의뜻을위해자신의의지와육체를 철저히무화시킨것이다.
이때문에유동식은복음의핵심을자기부정을 통한자기초월로생각한다.
이러한유동식의복음이해에는탄허의선불교 와 고득순의 성리학적 전망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유동식은한국의전통종교들이지닌경전해석법으로부터직간 접적으로영향을받았다.
가령선불교로부터는문자주의에사로잡히지않고 언어이면에자리한종교적인깨달음의맥락에서복음의의미를성찰하게 된다.
그리고유교로부터는인(仁)과효(孝)라는실천적이고윤리적인관점 에서복음을이해하는방법을배우게된다.
이런점에서유동식의성서이해 는종교적다원주의해석학(religious pluralistic hermeneutics)으로간주할 수있다.
그러나유동식은복음을상대화하지않았다.
그는복음의케리그마 가지니는진리의보편성과문화적특수성을동시에인정한다.
유동식에게 있어복음의중심은그리스도의성육신사건, 십자가와부활이다.
이런점에서 존힉(John Hick, 1922~2012) 등이주장하는신중심주의적종교다원주의 (theocentristic religious pluralism)와는달리그리스도중심주의(Christ centrism)를취하고있다.
가령유동식은한국적인종교문화와복음의나무(십자 가)가 접목될 경우 새로운 꽃과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유동식의주장을 김경재는선교학적으로평가하며, 이를접목모델의긍정적 실례라고 평가한다:
접목모델은 식물체의 일부분을 모체로부터 잘라 내어 다른 식물체 위에 접착시 켜 새로운 개체로 만들어 내는 접목(접목/grafting)을 아날로지로 한다. 사도 바울의 서신에서 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의 접목 비유가 성서적 전거가 된다 (롬 11:16-18). 접목모델을 제창하고 아시아 신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정립한 한국 의 선교신학자는 유동식이다.33
김경재가유동식의접근법을접목모델로간주한이유는한국의전통문 화와종교를폐기되어야할이방적미신이거나구습이아니라, 적극적으로 복음을수용하고받아들이는대목(stock)으로서주체적역할을감당할수 있다고보기때문이다.
김경재는접목모델의장점을다음과같이피력한다:
이러한 한국의 종교 문화적 상황에서 접목모델은 복음과 한국 전통문화의 동시적 주체성을 가능케 하고, 해석학적 순환논리에 따른 동시적 상호조명과 상호성장을 가능케 하는 선교신학의 모델로서 뛰어난 장점을 지니고 있는 모델이다. 무릇 생명의 엄숙한 현실이 만남을 통한 창조적 과정이기에, 한국의 유교, 불교 등의 종교와 그리스도교 복음과의 심층적 만남이 저급한 종교혼합주의나 또는 종교상 대주의에로 전락하지 아니하고, 창조적 복음의 성육화로 꽃피울 것인가의 과제는 오늘 한국 그리스도교의 핵심적 과제가 되어 있다.34
33 김경재, 뺷해석학과 종교신학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4), 209.
34 앞의 책, 215-216.
김경재는유동식의해석방법을 가다머의 해석학이 말하는지평융합 (fusion of horizons)과유사하다고평가한다.
즉, 풍류신학은한국의다층적 종교 문화의 지평이 히브리와 헬라 문화의 영향사 속에서 형성된 성서의 지평과상호관계성속에서융합될수있음을보여준다.
가령유동식은무교 와유불선에나타난공통점을풍류도라는개념으로포섭한다.
즉, 단군신화 에 나타나는 접화군생, 한국불교에 나타나는 화엄 사상과 통불교 그리고 성리학의 윤리가 한, 멋, 삶이라는 세가지요소를지닌 풍류도로 포섭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이러한요소들이 기독교의복음속에서도 내재되어 있음을 유동식은 입증하려고시도한다.
이러한과정을통해한국인의영성 으로간주되는풍류도와기독교가접목됨으로써새로운꽃과열매로피어날수있다는것이다.
가령기독교의보편적상징인십자가는그리스도를매개 로한 인간과하느님의일치를의미한다는점에서천지인의조화를상징하는 삼태극과상통한다.
이런점에서유동식은한국인의십자가는삼태극이될 수있다고생각한다. 35
그렇다면유동식의풍류적케리그마이해의가장중요 한 성서적 근거는 무엇일까?
V. 요한복음과 유동식의 풍류신학
유동식이전개한풍류신학의가장중요한성서적전거는요한복음이다.
기독교가한국에수용된이후요한복음은한국인들이가장사랑하는책이 되었다.
이를 유동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오늘날 한국인들이 기독교에 몰려드는 것은 그 안에서 우리의 삶의 얼인 풍류도를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중에도 요한복음서 안에 구현되어 있는 풍류 도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들은 유별나게 요한복음을 편애하고 즐겨 읽는 것이다. 실로 요한복음서는 풍류도의 경전이요 본문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풍류도의 눈에서 요한복음서 안에 구현되 어 있는 풍류도의 본질을 찾아보려고 한다.36
35 유동식, 뺷풍류도와 요한복음뺸 (서울: 한들출판사, 2007), 154.
36 유동식, 뺷소금 유동식 전집, 제7권뺸, 284.
유동식에 따르면 요한복음과 풍류도는 많은 점에서 친연성을 갖는다.
가령요한복음1장은예수가태초에로고스로존재했다고선포한다.
사실 로고스(logos)라는단어는당시1세기그레코-로만사회에서우주의운행과 질서를상징하는개념으로사용되었다.
마치조선시대성리학자들이우주 의본질을리(理)와기(氣)로설명했던것처럼, 당시그리스철학자들은로고 스로우주의운행과질서를설명했다.
가령요한복음이쓰인곳으로추정되 는 에베소에서는 기원전 6세기경에 헤라클레이토스(Heraclitus, 535~475 B.C.)가활동했는데, 그는로고스(logos)를우주의보편적질서라고주장했 다.
즉, 모든사물과사건은겉으로는무질서하고혼란스럽지만, 실제로는 로고스에의해질서가유지된다는것이다.
한편헤라클레이토스와비슷한 시기에활동했던노자(老子)는만물은도(道)의작용으로운행된다고주장 했다.
이후노장의도는중국과한국인들에게기독교의가르침을이해하는 주요한전망이되었다.
가령7세기경교(景敎)라는이름으로중국에전파된 네스토리안(Nestorian)들이남긴「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遊行中 國碑)에는 예수의 가르침과 노자의 ‘도’를 상응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眞常之道 妙而難名, 功用昭彰 强稱景敎. 惟道非聖不弘 聖非道不大, 道聖符契 天下文明.
(불변의 도는 이름을 짓기 어려우나, 그 가르침의 공이 빛났으니 경교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가르침이 거룩하지 않으면 널리 퍼지기 어려울 것이요, 그 성인의 도가 참도가 아니면 크지 못할 것이니, 도와 성인이 하나 되어 천하를 밝힐 것이다.)37
37 「대진경교유행중국비」에 대해서는 김호동, 동방 기독교와동서문명뺸(서울: 까치, 2002), 118-136; 황정욱, 예루살렘에서 장안까지뺸(오산: 한신대학교 출판부, 2005), 159-230.
이비문의첫구절, ‘진상지도’(眞常之道)라는말은 도교적색채가짙은 문장으로노자의뺷도덕경뺸 1장에나오는‘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와 유사한뜻이다.
또한‘성비도불대’(聖非道不大), 즉“성인의도가아니면위대 하지지않는다”라는문장에서성인은노자를의미한다.
그리고‘도성부계 천하문명’(道聖符契天下文明)이란구절에서‘도’는네스토리안의가르침, 즉기독교의복음으로이해할수있다.
이처럼경교는노자의‘도’라는개념에서복음을이해하려는격의(格義) 기독교(Accommodationist Christianity)의 한모습을보여준다.38
당시경교를수용한당나라는도교를중요시하였기 때문에아라본(阿羅本)과같은초기네스토리안선교사들은도교의용어와 개념으로 기독교를 소개하였던 것이다.
유동식은이러한격의전통을수용하면서, 요한의로고스(logos)와노자 의도(道)를상응하는개념으로이해한다.
그러나유동식은더나아가풍류도 라는한국적영성에서로고스를이해하고자한다.
이런점에서그의해석은 한국적격의기독교의한실례를보여준다고할수있다.
유동식은로고스와 도가모두길(the way)을상징한다고보았다.
이러한유동식의생각은나름 성서적근거를지니고있다.
요한복음14:6에서예수는자신을길이라고언명 한다.
또한사도행전19:9는바울의가르침을‘도’(the way)라고말한다.
이 때문에 유동식은 로고스와 도를 모두 길이라는 은유로 전유한다:
곧 ‘도’는 길이다. 그러나 길이라는 말과 달리 도라고 하는 데에는 거기에 색다른 개념이 들어 있다. 즉, 참된 길, 인생의 참된 생명의 길을 의미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도라든가 도를 닦는다든가 하는 말에는 철학적 또는 종교적 의미가 들어 있다.‘로고스’인 예수께서 자기를 가리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그곳으로 직접적인 통로를 열어 주고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상식적인 ‘도’ 에 대한 개념이다.39
38 격의기독교란기독교의사상을이미존재하고있던선교지의토착종교(유불선)의관점에서 조화롭게해석하는것을말한다. 가령불교의無 사상이중국에서는노장의空 사상으로전유된 다. 마테오리치는기독교의하느님을유교의상제로번역하기도했다. 이처럼기독교가새로운 문화권으로전파될때, 그지역의종교나철학과융합되어이해되고받아들여지는과정을보여 준다.
39 유동식, 뺷소금 유동식 전집, 제2권뺸, 266.
그러나요한의로고스와노자의도사이에는차이점도존재한다.
요한이 말한로고스는인격적관계를전제하고있는데비해, 노자의‘도’는대상화할 수없는비인격적인초월적존재다.40
예를들면요한복음1장은말씀(로고 스)의긍정에서출발하는데, 이에반해서노자의뺷도덕경뺸 1장은언어의한계 성을지적하면서출발한다.
성서에기초한서구사상이 이성, 합리성, 빛을 중히여기는데반해서, 노장사상은 직관, 무위, 어둠을보다근원적인것으로 사유한다.
그러나로고스는하느님과의계시로드러나며, 로고스의화신인 예수가하느님과의관계회복과구원을매개한다.
이에비해도는자연스러 움(自然)과무위(無爲)를강조하며, 인간은도에순응하여살것을강조한다.
노자는뺷도덕경뺸 서두에서도의본질을다음과같이지적한다:
“道可道非常 道, 名可名非常名”(도를도라고말하면영원한도가아니고, 이름지어부르 는이름은영원한이름이아니다).
즉, 진정한‘도’는인간의언어로규명될 수없다는뜻이다.41
40 김승혜는노자의‘도’가지닌비인격성때문에요한의로고스보다는예수의하느님나라와비교 한다. 김승혜, 이강수, 김낙필, 뺷도교와 그리스도교뺸 (서울: 바오로딸, 2002), 68-85.
41 1993년에발견된노자의죽간본에는우리가알고있는1장의내용이없다. 대중적으로유통되는 노자의뺷도덕경뺸은기원후3세기왕필의주석이첨가된책이다. 가장오래된노자의판본인 죽간본은2,046자로, 5,000자에이르는왕필본의절반이다. 따라서왕필본은오리지널한노자 의판본이기보다는다양한편집단계를거친개정증보판으로보아야한다. 이논문에서는대중 적인 노자판인 왕필본을 따랐음을 참고하기 바란다.
마치선불교에서진정한깨달음은불립문자, 즉문자로 서표현될수없다고한것과상응한다.
히브리성서는하느님의이름을부를 수도없으며, 그의형상도묘사할수없다고이야기한다.
이는궁극적이고 초월적 존재는 가시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없다는 생각을 반영한다.
한편노자는도(道)의자연스러운실현을덕(德)이라하였다.
즉, 덕은 도의 내면화와 실천을 의미한다.
노자의 뺷도덕경뺸 38장에서 덕에 관해서 다음과같이말한다:
“上德不德是以有德下德不失德是以無德”(최상의덕은 덕이라고 드러내지 않으니 덕이있고, 낮은덕은 덕을잃으려하지않으니 덕이없다).
이말은마태복음에등장하는예수의말을상기시킨다.
마태복음 6:3에서예수는자선을베풀때, 오른손이하는일을왼손이모르게하라고 가르친다.
즉, 자신의덕을감추라는것이다.
기도또한은밀한곳에서행하라 고충고한다.
예수의이러한가르침은노자가말한‘상덕’(上德)과상응한다 고볼수있다.
노자는덕은무위(無爲)로서드러나야한다고가르쳤다.
다시 말해어떤작위적인행동이나자신을드러내려는의도를지닌도덕적행위는 가치가없다는뜻이다.
예수또한자비와기도로자신을드러내는행위는 하느님의 상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친다.
유동식은이러한가르침들이요한복음서에함축적으로표현된다고보 았다.
가령요한복음1:14는로고스가인간의육신이되어우리가운데사셨다 고선포한다.
이러한선포는하느님의자기비하를의미한다.
거룩한하느님 이한낱인간의몸으로오셔서인간을섬겼다는것이성육신사상의핵심이 다.
성육신은어찌보면하느님의자기부정이다.
초월적존재가소멸할수밖 에없는인간의육체로강림하여뭇생명들의구원을위해자신을무화시켰다 는것이다.
뺷노자뺸 7장에는천지가장구한것은자기를드러내지않음에있다 고말한다: “天長地久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故能長生”(하늘은 넓고땅은오래간다. 하늘과땅이넓고오래갈수있는까닭은자기만살려고 하지않기때문이다.
그러므로오래살수있다).
이구절에서‘부자생’(不自生, 자기만살려고하지않는다)은기독교의자기부정과같은말이다.42
42 이명권, 뺷노자왈 예수가라사대뺸 (서울: 열린서원, 2017), 58.
예수는 자신을높이는사람은낮아지고자기를낮추는사람은높아질것이라고가르 치고, 한알의밀알이썩어져야만많은열매를얻을수있다고가르친다.
이처 럼예수는십자가에못박혀죽기까지자기부정을가르치고실천한인물이었 다.
그의부활은자기부정을통한자기초월을실현한극적인사건이었다.
이런점에서요한복음의성육신사상은하느님의자기부정을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학자들은요한이성육신사상을표방한것은당시부상하고있던영지주 의와의갈등때문이었다고추정한다.
원시기독교에침투한영지주의자들은 예수의육체적부활을거부하는가현설(docetism)을주장하였다.
이때문에 요한은 예수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주장하며, 한편으로는 몸의 부활을 강조한다.
이러한 요한의 예수 이해는 불교의 삼신설의 관점에서 이해될 여지가있다.
불교에서는붓다의세가지존재방식을이야기한다.
첫째는 진리의신체를의미하는법신(法身)이다.
법신은영원한불변한진리를상징 하는실체다.
둘째는중생들의부름에답하여나타나는부처를응신(應身)이 라 한다.
셋째는 색신(色身)으로, 육체를 지닌 역사적 인물로서의 부처를 의미한다.43
43 부처의 삼신설(三身設)에 대해서는 김용옥, 뺷금강경 강해뺸 (서울: 통나무, 1999), 194-200.
즉, 역사적예수는불교에서말한색신으로간주될수있으며. 부활한 그리스도는 응신으로 그리고 로고스는 법신으로 이해될 수 있다.
요한은로고스(우주의진리)가예수라는인물속에현신했다고주장한 다.
불교식으로말하자면법신이색신으로역사적속에임재했다는말이다.
한편유동식은성육신사건에서풍류도에나타나는접화군생(接化群生)의 도리를발견한다.
접화군생은중생을감화하여바른길로인도한다는뜻이 다.
성육신의목적이모든생명을구원하기위한것이었다는점에서풍류도 의접화군생(接化群生)의사상과상통한다.
또한요한복음의성육신사상은 인간의 구원을 위해 하느님이 자기를 낮추고 비하한 사건이다.
유동식은 성육신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은 자신을 “없애 가지고” 사람의 몸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시었다(요한 1,14; 빌립 2,7).
도성인신(道成人身) 하신 분이 그리스도시다.
그의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로 통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의안에 있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능을 얻게 된다(요한 1,12).44
한편노자의뺷도덕경뺸 4장은‘도’의성격을예리한것을둔하게만들고(挫其銳), 얽힌것을풀어주며(解其紛), 번쩍이는빛을누그러뜨리고(和光), 티 끌과하나된다(同塵)고이야기한다.
다시말해도는난마와같이얽힌관계를 풀어주고, 잘난체하는것들을티끌과같이겸손하게이끈다는것이다.45
고 린도전서1:27에서바울은‘화광동진’하신하느님의섭리를같이다음과같이 이야기한다:
“하나님께서는… 강한것들을부끄럽게하시려고세상의약한 것들을택하셨습니다.”
또한빌립보서2:6에서바울은그리스도의마음을
“자기를낮추고죽기까지순종하셨다”
고말한다.
노자의관점에서보자면 요한의성육신과바울의케노시스사상은하느님의화광동진의섭리를보여 준다.
유동식의관점에서보면요한의예수는모든중생을차별없이구원하 기위해화광동진의모습으로접화군생을실천한인물이라할수있다.
또한 성육신사건은풍류도의세요소(한, 참, 멋) 중에서‘멋’으로이해될수있다.
유동식은 성육신 사상이 지닌 미적 측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아름다움이 영원한 진실로서의 ‘알’과 그 여실한 형상으로서의 ‘다움’의 복합 개념 이라면, 예술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로고스’가 알이요, 그 로고스가 시공 범주 안에 있는 인간이 되어 오신 이가 예수요 그리스도라고 한다 면, 그리스도는 ‘아름다움’인 동시에 예술 자체이다.46
44 유동식, “하늘나그네의사랑과평화― 풍류신학풀이,” 소석유동식박사고희기념논문집, 뺷한국종교와 한국신학뺸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3), 27.
45 이명권, 뺷노자왈 예수 가라사대뺸 (서울: 열린서원, 2017), 41-42.
46 유동식, 뺷소금 유동식 전집, 제9권뺸, 497. 정승우 | 풍류신학자, 유동식의 성서 이해 355
유동식은요한복음이‘멋’의차원뿐만아니라, 종교통합적인‘한’의차원을보여준다고주장한다.
예를들어요한복음14장에등장하는서로사랑과 상호 내주는 풍류도의 포함삼교(包含三敎)하는 연합의 정신과 상통한다.
포함삼교란 유교와 불교 그리고 도교의 세 가지 가르침을 모두 포용하고 받아들인다는뜻이다.
통일신라시대최치원은난랑비서에서풍류도의특징 을유불선, 포함삼교라고이야기하였다.
유동식도풍류도의가장큰특징으 로모든것을포괄하는포용성과초월성을들고있다.
신라시대의원효는 부파불교의다양한이론들을하나로통합하는 통불교의사상을 전개한바 있으며, 유동식에게영향을준탄허는유불선과기독교를통합하는사교회 통(四敎會通)을말한바있다.
이처럼한국사상은종합지향적성격을보인 다.
요한복음은포함삼교하는믿음을보여준다.
요한복음의 고별설교에 등장하는그리스도와 제자들의연합 그리고그리스도와하느님의연합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 준다.
풍류도가지닌‘참’의차원은윤리적, 도덕적함의를지니는데, 요한복음 이묘사하는가장중요한예수의소명은아버지의뜻을실현하는것이다.
이는유교의 효사상(孝思想)으로재해석될여지가있다.
요한복음에서예수 는
“아버지께서나를보내셨다”(요5:30),
“나는아버지안에있고, 아버지는 내안에계신다”(요14:10)
등의표현을사용한다.
유동식은이를한국의유교 적전통에서강조하는효(孝)와연결하여해석하였다.
요한복음에서예수와 하나님의 관계는 일방적 복종이 아니라, 사랑과 연합 속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다.
이는한국전통에서강조하는부모와자식간의관계속“효와사랑의 조화”와도 맞닿아 있다고 보았다. 유동식은요한복음을노장사상뿐만아니라, 한국의고유사상을내포하 고있는것으로간주되는뺷천부경뺸(天符經)과비교하기도한다.
뺷천부경뺸은 고대한국의철학적, 종교적사상을담고있는신비로운경전이다.47
47 천부경에 대해서는 김석진, 뺷대산의 천부경뺸 (서울: 동방의 빛, 2009).
주로 우주의 근원, 조화, 인간 존재의 의미를 설명하며, 특히 숫자(1, 3, 9 등)를 통해우주의원리를표현한다.
핵심개념으로는
첫째, 일시무시일(一始無始 一)이라는개념인데, 하나에서시작하여무한한변화속에서도다시하나로 귀결된다는 사상이다.
둘째, 삼극(三極)이라는 개념으로, 즉 하늘(天), 땅 (地), 인간(人), 삼재가서로조화한다는것이다.
이처럼뺷천부경뺸은우주를 구성하는천지인, 삼재가대립이아닌통합과조화를이룬다는사상을표현 한다.
유동식은 이러한 천부경의 사상과 요한복음의 사상이 깊이 연결될 수 있다고 보았다:
풍류도의 경전이라 할 수 있는 천부경의 첫 단원과 요한복음의 서설인 첫 단원과의 만남에서 그 가능성과 타당성을 볼 수 있다.
천부경과 요한복음은 각기 그 첫 단원 에서 경전의 총 주제가 되는 하나님과 그의 창조 그리고 인간화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것을 순서대로 나열해 본다면,
첫째, 하나로부터 비롯되되 그는 비롯됨이 없는 영원한 하나님이다(一始無始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말씀은 하나 님과 함께 계셨고, 말씀은 하나님이었다”(요한 1:1).
둘째, 하나는 천 ․ 지 ․ 인 ․ 삼극으로 나뉘되, 그 근본은 다함이 없다 (析三極無盡本).
“말씀은 말씀을 통해 생겨났고, 그가 없이 생겨난 것은 하나도 없다”(요한 1:3).
셋째, 하늘은 하나를 얻어 하늘이 되고, 땅은 하나를 얻어 땅이 되고, 사람은 이 하나를 얻을 때 참사람이 된다(天一一, 地一二, 人一三).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이 사람들 의 빛이었다”(요한 1:4).48
48 유동식, 뺷소금 유동식 전집, 제9권뺸, 276.
유동식은다음과같은세가지사상이뺷천부경뺸과요한복음에나타난다 고주장한다.
첫째, 우주의근본원리에서서로상응한다.
천부경의 일(一) 과 요한의로고스(Logos) 사이에는사상적친근성이있다는것이다.
즉, ‘일시 무시일’(一始無始一)은“태초에말씀이계시니라”(요1:1)와유사한개념이 다.
뺷천부경뺸에서일(一)은우주의근원적인존재이며, 만물이이하나에서 나왔다가다시돌아간다고본다.
한편요한복음에서는로고스(Logos)가창 조의근원이며, 세상의모든것이로고스를통해창조되었다고주장한다.
즉, 일(一)과로고스는모두우주의근본원리로작용하며, 만물을존재하게 하는 궁극적 실재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둘째, 뺷천부경뺸의삼극(三極)과기독교의삼위일체(Trinity)가서로상응 한다.
유동식에따르면뺷천부경뺸은“삼극”(三極: 하늘, 땅, 인간)의조화를 강조한다.
요한복음에서등장하는삼위일체(성부, 성자, 성령) 개념도우주 적조화속에서작용한다.
유동식은뺷천부경뺸의삼극과기독교의삼위일체 가 모두 우주적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원리로 작용한다고 해석했다.
셋째, 두책에나타난빛과생명의개념이유사하다.
요한복음에서예수는 ‘세상의빛’이며, 인간에게‘영원한생명’을주는존재로등장한다(요8:12).
뺷천부경뺸도우주를빛과생명의근원으로설명하며, 인간이깨달음을얻어 신성과조화를이루어야한다고가르친다.
따라서유동식은뺷천부경뺸과요 한복음이모두‘신성과인간의관계’를빛과생명의개념으로설명한다고 보았다.
이처럼유동식은뺷천부경뺸과요한복음이서로유사한구조와사상을가 지고있으며, 이를통해한국적신학을새롭게정립할수있다고보았다.
그는 기독교 신학이 한국의 전통 사상과 대화하며 발전해야 한다고 보았으며, 서구신학을무비판적으로수용할것이아니라, 한국적인사상적토양에서 기독교를새롭게해석하는과정이필요하다고강조했다.
즉, 뺷천부경뺸에나 타난한국의전통사상속에서기독교의진리를발견할수있으며, 이를통해 한국적기독교신학을정립할수있다고보았다.
또한유동식은요한복음에 등장하는하나됨과상호내주와일치의주제가예수와하나님, 예수와제자 들의관계를강조하는점에주목하였다.
이는한국적신앙이강조하는관계 성(인간과 신,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과도 연결된다.
이처럼유동식은역사비평적방법을넘어풍류도라는한국인의토착 적 심성에서 요한복음을 이해하고자 했다.
그는 한국인의 종교적 실존, 풍류도라는영성을지닌주체적독자로서요한복음을독자반응비평적입장 (reader-response criticism)에서해석한다.
즉, 저자로서의요한의신학적의 도보다는독자로서의한국인의풍류신학적독해에초점을맞춘다는것이다.
현대성서해석학은객관적해석이란존재할수없다고이야기한다.
해석이 란 이미 독자의 주관이 관여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앞에서살펴본것처럼유동식은다양한동양경전들의전망에서요한복 음을이해한다.
이런점에서유동식은종교다원주의의관점에서성서이해 를도모한다고볼수있다.
그러나그는종교다원주의가지향하는신중심주 의적모델과는입장을달리한다.
가령유동식은요한복음에나타나는선재 기독론을우주적기독론으로독해하며그리스도중심적인대화를모색한 다.49
49 이정배는유동식과종교다원주의가차이를보이는지점으로우주적기독론을지적한다. 이정 배, 뺷한국 개신교 전위 토착신학 연구뺸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3), 214. 정승우 | 풍류신학자, 유동식의 성서 이해 359
이런점에서유동식의요한복음해석은단순한교리적접근이아니라, 한국적신앙과실존적신학을접목하여요한복음을새롭게해석하려는시도 였다. 그는요한복음의주요개념(로고스, 성육신, 영생, 하나됨등)을한국인 의심원적영성인풍류도의관점에서재해석하였다. 이러한시도는한국의 종교 문화에도 로고스와 선재와 같은 우주적 그리스도 사건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VI. 결론
지난세기서구의성서학은역사비평을중심으로전개되어왔다.
그러나 텍스트해석에관한객관적이고중립적인입장을표방했던역사비평또한 해석자의주관성을피할수없다는사실이드러났다.
이러한약점을지적하 며 포스트모던비평이란 이름아래 다양한 성서비평방법론들이등장했다.
가령 복음서의 문학적 장르와 기법그 리고수사학등을 묻는 신문학비평이나 저자가 아닌 독자의 관점에 주목하는 독자반응비평 그리고 데리다와 푸코의 전망을 성서학에 도입한 해체주의비평등이주목을받았다.
이러한해석들은전통적인역사비평과신학적해석을상대화하고, 성서해석에관한 다원 적 입장과 전망을강조한다.
즉, 포스트모던비평은성서를절대적진리의 원천이아니라, 다양한목소리가담긴하나의텍스트로간주한다.
이로인해 성서학은보편적진리를추구하는것이아니라, 해석자의관점에따라무한한가능성을지닌 상대적인 작업으로 처리된다.
그러나포스트모던비평은 성서해석의가능성을넓히는장점이있지만, 동시에 절대적 진리에 대한 거부, 공동체적 신앙의 약화그리고
역사성과 윤리적실천과의 단절이라는 문제점을 지닌다.
이를극복하기위한대안적접근으로 신학적 해석학, 공동체적해석, 역사연구와 신앙적해석의 균형, 윤리적 실천강조등이 제시되고 있다.
유동식의 성서이해는 서구의 성서비평학이 지닌 문제들에 대한 대안으 로평가될수있다.
가령유동식의 풍류신학적 성서이해는 서구의 성서비평학이지니는 오리엔탈리즘적 혐의를 약화시킨다. 1
9세기 서구의 제국주의는 세계와인간에관한자신들의이해가우월하다는생각속에서식민지종교와 문화를 폄하해 왔다.
한국에 전래된 기독교도 이러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없다.
미국선교사들이심어놓은 근본주의는 한국의 전통문화와 종교를 폐기되어야할 전근대적인 유산으로 치부해버렸다.
특히성서에 관한 문자주의와 교리적이해는지금도 한국교회가 극복해야할 문제로 평가받는다.
유동식은 한국의 풍부한 종교적 문화유산을 폐기되어야할 과거의 잔재 들이아니라, 오히려 기독교의 복음을 선취한 소중한자산으로평가한다.
그리고풍류도라는한국인고유의영성에 터하여 기독교의 복음을 재해석한 다.
그러나 유동식은 성서를 과격하게 해체시키지않는다.
그는 케리그마가 지닌보편성을인정하지만, 이것을 한국의 종교문화와 창조적으로 접목하려고시도한다.
그래서 그는 풍류도의 관점에서 성서와 생산적으로 대화하고자했던것이다.
이것은 단지복음과 한국의종교문화유산을 혼합시키는 차원에서 끝나는것이 아니다.
히브리와 헬라적토양속에서 성장한 성서라 는 오래된나무에 풍류도라 는한국인의 고유한 영성을 접목하여 새로운꽃과 열매를 얻고자 하는 창의적인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유동식은 요한복음의 로고스와 성육신사상 그리고 영생의 개념을 풍류도와 회통시킨다.
그에게 한국인의 정신적 유산들은 복음을 보다 잘 이해하 기위한 아프리오리(a priori)다.
이러한 생각이 유동식으로 하여금 서구신학과 비판적으로 대화하며 한국적시각에서 성서를 읽는방법을 모색하게했 다.
이런점에서 유동식의성서이해는 최근 등장한 탈식민주의성서비평 (Postcolonial Biblical Criticism)과 동일한 문제의식을 지니고있다.
이때문에 유동식은 노자의 전망에서 요한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고, 삼위일체를 보다 한국적맥락으로 이해하기위해 뺷천부경뺸을레퍼런스로 삼을 수 있었던 것이다.
유동식이 전개한 풍류신학의 주된 성서적전거는 요한복음이었다.
그 이유는 요한복음이 풍부한 신학적전망을 지니고있기때문이었다.
로고스, 영생에관한담화, 영광, 하느님과의 일치와같은 독특한 신학적주제들은 유불선의 사상인, 인(仁)과무아(無我) 그리고 도(道)와접점을지닌다.
또한 요한복음이 묘사하는예수는 색신으로서의 역사적인물이 아니라, 응신과 법신으로서의 우주적 그리스도에 가깝다.
이러한 요한복음을 유동식은 풍류 도라는관점에서독해했다.
이를위해 유동식은 요한복음서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보다는풍류도라는 선이해를 지닌(한국의) 독자로서 요한복음을 읽고자 시도한다.
이런 점에서 유동식의 요한복음 이해는 독자반응비평 (Reader-Response Criticism)이 제시한 입장과 유사하다.
전통적인 성서해석은 저자의 의도(authorial Intent)나 텍스트 자체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하지만 독자반응비평은 독자의 해석에 방점을둔다.
즉, 저자의 의도와는무관하게 독자가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본다.
같은 성서본문도 독자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있으며, 독자가 처한 시대, 문화, 배경, 신앙전통에따라 의미가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다.
유동식은 요한 복음을 풍류도라는 한국인의 선험적이해를 지니고 읽는다.
이러한과정에서요한복음은 새로운 의미를창출하게된다.
이처럼서구신학을극복하고 자했던그의시도는한국신학의풍부한유산으로평가된다.
그의 풍류신학 적 성서읽기는지난시기 서구의성서학이지닌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고 탈식민주의 성서 해석의 소중한 사례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풍류신학적성서이해는성서본문자체의 문학적맥락이나 사회/ 역사적의미를 희석시킬 위험성이 상존한다.
예컨대 요한복음의 로고스를 ‘도’와‘풍류’의차원으로해석될경우, (유대교의 지혜문학전통과헬라철학 의) 원래적 의미가 퇴색될수있다.
다시말해 요한의 로고스기독론이 원래 지닌역사적이고구원론적 급진성을 소거시킬수있다.
또한 유동식의성서 해석은신학적투사의 문제가 제기될수 있다.
즉, 특정 성서텍스트가 풍류신 학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강제될 우려가있는것이다.
가령 유동식은 풍류신 학의 성서적전거로 지나치게 요한복음서에 의존하고있다.
그러나복음서 저자들은 다채로운 방식으로 예수의 신성을 선포하고 있다.
따라서 성서 텍스트를 풍류신학적으로 전유할수있는 다양한 해석학적토대들을 마련해 야한다.
그리고 풍류가 자칫 개인적인 심미적종교 심성으로축소되는것을 막기위해서는 성서본문이지닌 역사적콘텍스트와 해석공동체들의 사회, 정치적 상황들을 보다 면밀히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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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이논문은한국의대표적인토착화신학자유동식(1922~2022)의성서이해 를다루고있다. 그가제창한풍류신학은안병무의민중신학과더불어서구에 서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으로 간주된다. 유동식은 한국인의 종교 문화사를 관통하는풍류도라는관점에서성서를이해하고자했다. 그는1950년대미국 유학을통해불트만, 다드, 본회퍼의신학을주체적으로수용하며토착화논쟁 을이끌었고, 1970년대에는엘리아데의관점에서한국무교의역사와구조를 분석했다. 이를기반으로유동식은1980년대초반에자신의생각을풍류신학 이라는이름으로정리하였다. 이글은유동식의성서이해에영향을준사건과 인물들을통시적으로살펴보고자하였다. 이를위해II장에서는한글성서가 유동식에게미친영향을알아보고, 한글로한국적신학을구축하기위해노력 한유영모와함석헌이유동식에게미친영향들을고찰하였다. III장에서는유 동식에게선불교와노장사상을소개해준탄허의사교회통사상(四敎會通思 想)을소개하고, 선불교의경전이해를간략하게다루었으며또한유동식에게 성리학의세계를소개해준고득순의성리학적복음이해를알아보았다. IV장 에서는풍류신학의전망속에서유동식이어떻게요한복음을이해하고있는지 를살펴보았다. 결론에서는종교다원주의와탈식민지시대에유동식의성서 이해가지니는의미를생각하였다. 특별히신중심주의모델을넘어요한복음 의로고스기독론을풍류도의빛에서창조적으로이해한유동식의해석학적 작업의 의의와 한계를 밝히고자 하였다.
주제어 유동식의 풍류신학, 한글 신학, 선불교와 성리학의 경전 이해, 요한의 로고스 기독론
Abstract
The Biblical Interpretation of Ryu Tongshik, a Theologian of Pungnyu
Sung-Woo Chung, Ph.D. Associate Professor, College of RC Convergence Yonsei University
This study offers a diachronic exploration of Ryu Tongshik’s biblical hermeneutics by tracing the events, figures, and intellectual traditions that informed his theological vision. Moving beyond narrowly critical or technical approaches, it foregrounds the religious, cultural, and philosophical currents that shaped Ryu’s development of Pungnyu Theology ― a distinctively Korean integration of indigenous spirituality and Christian thought. The analysis begins with the formative role of the Korean-language Bible, alongside the vernacular theological contributions of Ryu Young-mo and Ham Seok-heon, who emphasized a theology grounded in Korean cultural identity. It then examines the influence of Venerable Tanheo’s concept of the “Harmonization of the Four Teachings,” as well as interpretive strands drawn from Zen Buddhism and Daoism. The Confucian worldview, introduced to Ryu Tongshik by Ko Deok-soon, is also explored, particularly in terms of its scriptural logic and hermeneutical implications. In addition, the paper investigates Ryu’s dialogical engagement with prominent Western thinkers―including Bultmann, Dodd, Tillich, Bonhoeffer, and Eliade― highlighting his efforts to situate Korean theological reflection within a global framework. Finally, the study analyzes Rye’s creative interpretation of the Gospel of John through the lens of Pungnyu-do (風流道), shedding light on his reconfiguration of Johannine Logos Christology in resonance with Korean aesthetic and spiritual traditions. The paper concludes by reflecting on the significance of Ryu’s hermeneutical approach in relation to religious pluralism and postcolonial theology, arguing for its relevance within contemporary global theological discourse.
Keywords Tongshik Ryu, Pungnyu-Theology (風流神學), Hangul Theology, Hermeneutics of Scriotures in Zen Buddhism & Neo-Confucianism, Johannine Logos Christology
접수일: 2025년 8월 7일, 심사완료일: 2025년 8월 26일, 게재확정일: 2025년 8월 30일
한국기독교신학논총 138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