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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의 종교적 경험의 성격 연구― 마르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에 나타난 종교 경험과의 비교/임형권 .서울大인문학연구원

 

Ⅰ. 들어가며

 

서구 문화가 탈기독교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으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신들의 전통적 기독교 유산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늘 날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의 『천로역정(天路歷程)』 (The Pilgrim’s Progress, 1678)을 읽고 감동받을 서구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종교 저자에 대한 연구는 신학을 넘어 다양한 각도에서 이루어지고 있 다.

문학 이론가 스탠리 피시(Stanley Fish)는 저자보다는 독자의 텍스트 해석에 중심을 두는 독자 반응 비평(reader-response theory)을 통해 『천 로역정』에 접근한다.1)

역사가 크리스토퍼 힐(Christopher Hill)은 설교자 로서 기성 종교 권력과의 투쟁의 관점에서 작품을 해석한다.2)

 

     1)  Stanley Euguene Fish, Self-Consuming Artifacts: The Experience of Seventeenth-Century Litera ture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2), 224-264.

      2)  Christopher Hill, A Turbulent, Seditious and Factious People: John Bunyan and His Church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6[1988]). 청교도주의에 대한 사회사적 접근으로 다음 글을 보라.  마이클 왈쩌/김용복 옮김, “혁명이데올로기로서의 청교도 정신,” 「신학사상」 29 (1980/여름), 370 412. Michael Walzer, “Puritanism as a Revolutionary Ideology,” History and Theory 3(1) (1963),  59-90. 

 

또한 포스트 식민주의(postcolonial)의 관점에서도 번연의 작품이 연구되는데, 『천 로역정』이 서구 식민지에서 선교사들에 의해 번역되어 서구의 가치가 유 입되고 그곳의 맥락에서 해석되는 방식이 연구된다.3)

이 글은 이러한 최 근 연구에 더하여 번연에게 미친 종교 개혁 신학의 영향, 특히 마르틴 루 터(Martin Luther, 1483-1546)의 『갈라디아서 강의』에 초점을 맞추어 비교 연구를 함으로써 영향사적 연구를 시도한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는 인간 성품을 ‘건강한 정신’(healthy mind)과 병든 영혼(sick soul)으로 구분하면 서 그 차이를 설명한다.

두 유형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악의 실재성 에 대한 태도이다.

건강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세계를 아름답게 바라보 고, 세상이 악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제임스에 따 르면, “[건강한 정신]은 선을 존재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측면으로 생각 하여 그 시야에서 악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4)

이런 성격 유형에 속하 는 사람은 랠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조지 휘트먼(Walter Whitman) 등이다.

악을 극소화하는 성격 유형과 달리 병든 영혼은 악을 극대화한다.

“악의 양상들은 우리 삶의 본질이며, 세상의 의미는 우리가 진심으로 그 양상들을 받아들일 때 분명히 드러난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5)

 

    3)  Isabel Hofmeyr, “Bunyan in Africa Text and Transi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Postcolonial Studies 3 (2001), 322-355; Isabel Hofmeyr, “Bunyan: Colonial, Postcolonial” in Anne Dunan Pag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John Bunya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162-76 참조.

    4)  윌리엄 제임스/김재영 옮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파주: 한길사, 2019), 152.

    5)  Ibid., 197. 

 

병든 영혼의 특징은 인간의 삶에서 악의 실재성을 인식하고 초 자연적인 도움을 통해서 구원을 추구한다.

제임스는 병든 영혼의 대표자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레오 톨스토이(Leo Tolstoy)와 더불어 존번연(John Bunyan)을 꼽고 있다.

이 저자들에게 회개, 고백과 같은 표현 들이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런데 제임스에게 건전한 정신과 병든 영혼의 유형 구분은 고정된, 절대적 구분이 아니다.

그가 원죄론의 기원이 된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 서 말하면서 그의 “사랑하고 그리고 원하는 것을 행하라”(Dilige et quod vis fac)라는 표현을 인용한다거나6), 인간 본성의 철저한 타락성을 주장 한 루터가 건강한 정신에 속하지는 않지만, 회개의 문제에 있어서는 건강성을 보여준다고 언급한다.7)

데이비드 리어리(David. E. Leary)는 제임스의 개인적 위기를 극복하는 데 번연의 『천로역정』의 모델에 도움을 받 았음을 보여준다.8)

제임스에 따르면, 버니언이나 톨스토이는 둘 다 우리가 말하는 낙관주의적 성품은 될 수 없었다.

그들은 삶의 쓴맛을 너무나 달게 마셨기 때문에 그 맛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들의 구원은 우주 속에 있는 두 가지 깊은 이 야기이다. 그들 각각은 슬픔의 강렬한 위기를 부서뜨렸던 선을 깨달 았다.

그러나 슬픔은 믿음의 마음속에서는 극복될 수 있는 상태이므 로 최소한의 구성 요소로만 유지되었다.

그들은 그것을 통해 극도의 슬픔을 극복할 수 있었다.9)

 

     6)  Ibid., 143.

     7)  Ibid., 195.

     8)  David E. Leary, “New Insights into William James’s Personal Crisis in the Early 1870s: Part II.  John Bunyan and the Resolution & Consequences of the Crises,” William James Studies 11 (2015),  35.

     9)  윌리엄 제임스/김재영 옮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259. 

 

그렇다면 번연의 『천로역정』은 제임스의 용어로 표현한다면, 병든 영 혼이 그리스도교적 종교 체험을 통해서 건강한 정신으로 거듭나는 과정 을 묘사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번연의 크리스천은 신과 불화한 상태 에 있는 불행한 의식에서 머물지 않았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신과 화해한 평화로운 의식에 도달한다.

제임스의 관점에서 루터나 번연은 병든 영혼으로 분류되지만, 어두운 영혼에서 신앙을 통해 구원을 달성하여 건 강한 자아를 회복한 인물들이다.

크리스터 스텐달(Krister Stendahl)은 루터의 사도 바울에 대한 해석이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시작한 서구의 자기 성찰적 양심(introspective conscience)의 전통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스텐달에 따르면, 루터 에게 바울은 율법의 죄책에서 시달리다가, 은총을 통해 양심의 평안을 얻은 인물이다.

그에게 바울의 믿음을 통한 칭의는 “어떻게 은혜로운 하 나님을 발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10)

번연에 대한 루터 의 영향을 인정한다면, 번연도 서구의 자기 성찰적 양심의 전통 속에서 한 자리를 차지한다고 말할 수 있다.

번연의 『천로역정의 칼빈주의적 성격을 주장하는 입장들이 있다.

영 국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 1772-1834)는 다 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이 책을 신학자로서 읽는다. ― 그리고 당신 께 확언컨대, 이 작품에는 위대한 신학적인 절정이 담겨 있다. 경건한 감 정을 가지고 그리고 시인으로서 나는 칼빈주의가 이토록 아름답게 유쾌 한 색조로 그려질 수 있다고 믿을 수 없었다.”11)

 

번연에 대한 칼빈의 영 향력에 대한 주장의 근거는 번연의 아내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아 가지고 있었던 아서 덴트(Arthur Dent)의 『평범한 사람이 천국에 이르는 길』 (The Plain Man’s Pathway to Heaven)과 같은 칼빈주의 신학을 담고 있는 책의 영향을 근거로 제시한다.12)

 

    10)  Krister Stendahl, “The Apostle Paul and the Introspective Conscience of the West,” Havard T heological Review, 202-203.

   11)  Samuel Talyor Coleridge, Table Talk in The Complete Works of Samuel Taylor Coleridge, Shedd  (ed.), vol VI.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ers, 1871), 326. 

   12)  17세기 초에는 대중의 요구에 부응하여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에 대한 안내서들이 유행 했고, 그 중에 가장 인기 있는 책이 바로 덴트의 책이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이런 안내서들의 신 학적 틀은 칼비니즘이었다. The Encyclopedia of Protestantism, Hans J. Hillerbrand (ed.), vol  1-4 (London/New York: Routledge, 2004), 1918. 번연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영향에 대한 연구로 는 다음 논문이 있다. K. W. Wooman, The Influence of Luther and Calvin on John Bunyan’s Grace Abounding and the Pilgrim’s Progress (Master’s Thesis, The University of Alberta, 1983). 

 

제임스 포레스트는, 『천로역정』이 성화(sanctification) 교리를 회화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성화에 대한 번 연의 알레고리적 관심은 칼빈주의 성화 교리의 예술적 표현에 불과하다 고 평가한다.13)

본 연구는 『천로역정』에 대한 칼빈의 영향 연구가 주목적은 아니기 때문에, 이 작품에 대한 루터와 칼빈의 영향력에 대한 논쟁에 대해 최종 적 판단을 유보한다.

다만, 이 작품이 루터적인 기초에 본질적으로 칼빈 주의적인 상부 구조가 세워져 있다14)는 리처드 그리브스(Richard L. Greaves)의 입장을 가장 종합적인 입장이라고 판단한다.

본 논문은 그리 브스의 견해를 따른다는 전제하에, 그가 말한 토대에 관심을 갖는다.

그 리고 이 토대를 저자는 루터적인 종교 경험이다라고 생각한다.

구체적으로 이 논문을 통해서 저자는 『천로역정』의 토대가 되는 번연 의 종교적 체험과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에 나타난 종교적 체험이 매 우 유사함을 밝히고자 한다.

번연 자신도 영적 자서전인 『죄인의 괴수에 게 넘치는 은혜』에서 루터의 책이 자신의 종교적 실존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성경을 제외하고, 제가 읽어본 모든 책들 가운데 상처받은 양심을 위한 가장 적합한 책은 바로 마르틴 루터 가 쓴 『갈라디아서 주석』이라는 제 생각을 모든 사람들 앞에 말하고 싶을 따름입니다.”15)

 

베라 케드먼(Vera J. Camden)이 잘 지적하고 있듯이, 번 연에게 루터는 자신의 영적 자서전과 삶을 위한 원(原) 텍스트(ur-text)이 다.16)

덧붙여서 번연이 『천로역정』에서 알레고리를 그리스도교의 구원관을 표현하기 위해서 사용한 것은 루터의 『갈라디아 강의』의 영향이라는 주 장도 고려할 수 있다.17)

 

    13)  제임스 포레스트, “천로역정 해설,” 존 번연/유성덕 옮김, 『천로역정』 (서울: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1), 23.           14)  Richard L. Greaves, John Bunyan (Grand Rapids, Mich.: Eerdmans, 1969), 156. 

    15)  존 번연/고성대 옮김,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파주: CH북스, 2018), 84.

    16)  Vera J. Camden, “‘Most Fit for a Wounded Conscience’ The Place of Luther’s Commentary on  Galatians’ in Grace Abounding,” Renaissance Quarterly 50 (1997), 821: 819-49.

 

루터는 강의에서 바울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하갈을 옛 언약과 새 언약에 비유한 것(갈 4:24)을 놓고 비유의 유용성을 말한다.

 

“비유는 신학에서 그리 설득력을 갖고 있는 기법이 아니다. 하지 만 교리를 그림과 같이 아름답게 제시하는 데 유용하다.”18)

 

비텐베르크 에서 루터의 동료 칼슈타트(Karlstadt)가 우상 파괴를 했을 때, 루터가 그 것에 반대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19)

번연은 자신의 알레고리를 비판하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서 『천로역 정』의 「저자의 변명」에서 알레고리적 기법을 성경에 근거해 옹호한다.

 

“성실하고 사려 깊은 사도 바울은 비유나 우화의 사용을 금하지 않았는 데 이는 금이나 진주, 혹은 그 밖의 값진 보물들이 비유 속에 감추어져 있으며 조심스럽게 캐낼 가치가 충분히 있기 때문이었습니다.”20)

 

    17)  Daniel V Runyon, “Luther’s influence on Bunyan’s use of allegory, ” Bunyan Studies 14 (2010),  76-84 참조. Nancy Rosenfeld, John Bunyan’s Imaginary Writings in Context (Oxford: Routledge,  2017), 262. 번연의 알레고리 사용에 대해 칼빈적 입장에서 접근한 다음 논문도 보라. Thomas H.  Luxon, “Calvin and Bunyan on Word and Image: Is There a Text in Interpreter’s House?,” En glish Literary Renaissance 18 (1988), 438-459.

  18)  마르틴 루터/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서울: 복있는사람, 2019), 394.

  19)  루터의 복음 사역에서 이미지의 활용에 대해 연구한 다음 흥미 있는 글을 보라. 박종석, “종교개 혁과 시각예술,” 「신학사상」 178 (2017/가을), 245-278.

   20)  존 번연/유성덕 옮김, 『천로역정』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1), 36. 

 

그리스 도교의 구원관을 표현하기 위해서 알레고리에 의존하는 것이 오직 루터 의 영향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정당하지 못한다 해도, 번연의 종교 세계에서 루터의 영향력은 상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부당하지 않다.

본 논문은 『천로역정』의 기층에 있는 경험의 구조가 루터의 『갈라디 아서 강의』에 나타난 종교적 경험의 구조와 일치함을 밝히는 것을 목적 으로 한다.

이 목적을 위해 구체적으로 상한 양심에서 해방된 양심으로 의 이행의 주제, 하나님의 말씀의 두 경험적 측면인 복음과 율법의 경험 그리고 영적 시련의 주제로 나누어 고찰할 것이다. 

 

Ⅱ. 상한 양심과 해방된 양심

 

231 『천로역정』의 첫 장면은 저자가 세상이라는 황폐한 광야를 다니다가 굴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본 한 남자에 대 한 묘사로 시작한다.

 

남루한 옷을 입고 있는 이 남자는 크리스천이었고 성경을 읽고 심각한 영적인 고뇌에 빠져 있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있던 그는 이윽고 책을 펴 서 읽기 시작했는데, 읽어 내려가면서 그는 몸을 떨며 울고 있었다. 그러더니 마침내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슬픈 목소리로 ‘어찌 할꼬?’라고 부르짖었다(행 2:37).21)

 

    21)  Ibid., 39.

 

무거운 짐은 죄의 짐이고, 책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의 탄식은 말씀 을 통해 율법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선 인간의 실존적 상황 을 의미한다.

심판 앞에서 두려움에 떠는 인간의 실존적 상황에서 작품 을 시작하는 것은 전형적인 루터적인 종교적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루 터는 그리스도에 의해 전가(轉嫁; imputation)되는 수동적 의(passive righteousness)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는 양심의 고통을 겪는다고 생각한 다.

 

인간의 연약함과 비참함이 너무 크기 때문에 양심이 두려움 속에 있 고 죽음의 위험 속에 있을 때 우리는 우리의 행위, 우리의 무가치함 그리고 율법 외에 다른 것은 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죄가 드러나면 금방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죄악을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가련한 죄인은 심각한 영적 고뇌에 빠져 신음한다. ‘아아,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얼마나 끔찍한가! 이런 식으로 하나님 앞에서 더 살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어서 삶을 바꿔야 되겠다’라고 생각한다.22)

 

루터 신학의 특징 중 하나는 신의 구속 경륜(經綸; oikonomia)보다는 신 앞에서 인간의 체험에 강조점을 둔다는 점에 있다.

이는 간단히 루터 에게 강하게 영향을 미친 아우구스티누스와의 비교를 통해서도 드러난 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론』 (神國論; De Civitate Dei)은 창조에서 시작 하여 종말의 심판에 이르는 거대한 그리스도교적 메타 서사(metanarra tive)를 신학적, 문학적으로 표현한다.

이 저술은 그리스도인의 개인적 종 교적 체험보다는 역사 속의 신의 세계 구원의 경영에 초점을 맞추고 있 다.

『신국론』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인적 종교 체험에 시선을 집중하 는 『고백록』도 개인적인 서사를 담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창조에 서 종말에 이르는 거대한 서사 안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위치시키고 있 다.23)

 

    22)  마르틴 루터/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18.

    23)  이렇게 진술할 수 있는 근거는 『고백록』에는 창조와 시간에 대한 신학적, 철학적 논의, 악의 문제 에 대한 고찰 등이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개인적 종교적 고백 서사는 신을 향한 영혼의 갈망에서 회개에 이르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 반면, 『갈라디아서 강의』에 나타난 루터의 종교적 서사는 의로운 신 앞에서 상한 마음으로 괴로워하 는 인간에서 그리스도의 은총과 믿음을 통해 자유를 쟁취하는 개인에 초 점이 맞추어져 있다.

루터의 종교적 서사를 이어받은 번연의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 혜』는 그 분위기에서 죄에 대한 고백을 담고 있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 백록』과 사뭇 다르다.

사랑, 상승, 영원과 같은 플라톤적 언어가 사용되 는 『고백록』과 달리 번연의 글은 영국의 대중적 언어와 일반인의 종교적 정서에 가깝기 때문이다. 또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아 신을 향한 갈망과 연합을 추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지향과는 달리, 번연의 신학은 인간의 전적인 타락과 신의 절대적 은총을 강조한 종교개혁 신학 의 영향을 반영한다.

 

저의 원초적인 내면의 타락, 그것이 바로 나의 재앙이자 나의 고통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무서운 기세로 제 속으로 항상 치밀고 들어왔습 니다. 이 원초적 내면의 타락에 대해서 저는 놀랄 정도의 죄책감을 느꼈습니다. 이런 이유로 저 자신은 제가 보기에도 두꺼비보다 더 역 겨웠으며,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보기에도 역겨우실 것이라고 생각했 습니다.24)

 

 신의 심판 앞에서 겪는 양심의 고통은 아우구스티누스적 경험이라기 보다는 루터적 경험에 가깝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내면의 악의 문제에 대 해서 깊은 성찰을 했으나, 그의 하나님 상은 인간에게 분노하시는 하나 님이 아니라 인간의 갈망의 대상이었다.

죄는 루터에게서처럼 재판장 앞 에서 인간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대한 사랑의 결여로 이해 된다.

 

나는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나를 명하여 당신을 사랑하지 않으 면 진노하셔셔 비참함을 느끼도록 위협하십니까? 당신을 사랑하지 않음이 사소한 비참함밖에 안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내 주 하나 님이여, 당신은 나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자비로써 말씀하여 주 소서. 내 영혼에게 “나는 네 구원이라 이르소서”(시 35:3)25)

 

    24)  존 번연/고성대 옮김, 『죄인 중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60.

    25)  어거스틴/선한용 옮김, 『고백록』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16), 49 [1.5.5]. 

 

아우구스티누스적인 사랑의 질서(ordo amoris)는 루터에게서 무너진 것을 볼 수 있다.

사랑의 질서는 우주 전체는 사랑의 위계 속에 있다는 말인데, 위로 인간은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그 사랑이 허용하는 한에서 인간은 피조물을 향유(享有)할 수 있다.

한편, 신의 의지를 강조하는 루터에게 하나님이 자신의 사랑을 나타내실 때에만 인간은 하나님을 사 랑할 수 있다.

따라서 죄 때문에 상처받은 양심은 오직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을 통해서만 치유 가능하다.

 

주님께서는 아주 충분한 은혜를 베푸시어, 그 자신을 제게 드러내 보 여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진정으로 이러한 일들을 통해서 제 양심 을 짓누르고 있던 죄책감에서 저를 건져주셨으며, 그 죄책감에서 기 인한 아주 더러운 것들로부터 저를 건져주셨습니다.26)

 

상한 양심의 치유는 곧 해방된 양심, 즉 자유의 체험으로 나아간다.

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인간의 이성, 법, 의식이 줄 수 없고, 오직 그리 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 자유는 내적인, 영적인 자유 로서 외적 종교적 형식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우리의 자유는 양심 속에 있고, 거기서 더 나아가지 않는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시민적 으로나 물리적으로 해방시키신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해방시키셨기 때문 이다.”27)

 

상한 양심과 그로부터의 자유라는 구원에 대한 이해는 루터의 구원 의 순서(順序)에 대한 이해에서 나타난다.

루터는 구원의 순서(ordo salu tis)를 체계적, 도식적으로 제시하지 않았다.

이 개념은 신자의 구원의 단 계를 순차적으로 단계화시켜 정리한 도식으로 루터파 진영에서 최초로 사용되었고 체계화되었다.

하지만 루터의 구원 순서는 단순히 회개, 믿 음, 선행이다.28)

 

    26)  존 번연/고성대 옮김, 『죄인 중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75.

    27)  마르틴 루터/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418.

    28)  G. N. M. Collins, “Order of Salvation,” in Walter A. Elwell, ed.,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 ology (Grand Rapids: Baker Academic, 0984), 802. 

 

『천로역정』의 서사 구조는 칼빈보다는 바로 루터의 구원 의 순서에 더욱 부합한다.

루터의 구원 순서에서는 우선적으로 신자 개 인의 정죄의 경험이 우선시되기 때문에, 작품의 시작이 바로 크리스천의 양심의 갈등의 묘사로 시작하는 것은 루터의 영향이 두드러지는 대목이 다.

이 점에서는 루터와 칼빈과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칼빈의 구원의 순 서는 믿음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회개는 믿음의 산물이다.29)

크리스천이 십자가에서 짐을 내려놓는 장면을 보자.

 

그는 쉬지 않고 계속 뛰어가서 마침내 한 언덕받이에 이르게 되었는 데 그곳에는 십자가가 서 있었고 조금 떨어진 아랫부분에는 무덤이 입을 딱 벌린 채 놓여 있었다. 크리스천이 십자가 위로 막 올라가려 는 순간 그의 어깨로부터 짐이 풀어져 등에서 벗겨지더니 계속 미끄 러져 내려와 마침내 무덤의 입구에서 그 속으로 굴러떨어져 다시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30)

 

       29)  Johnson, Alan F · Robert E. Weber, What Christians believe: A Biblical and Historical Summary  (Grand Rapids Mich : Zondervan, 1993), 312. 저자들이 인용한 『기독교 강요』는 다음 본문이다.  “회개와 죄사함은-즉 새로운 삶과 값없는 화목은-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베풀어지는 것 이요, 둘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것이다.” 존 칼빈/원광연 옮김, 『기독교 강요 (중)』 (고 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4), 82(3.3.1).

    30)  존 번연/유성덕 옮김, 『천로역정』, 75.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 볼 점은, 믿음이라는 여정의 동반자가 아직 등 장하지 않은 점이다.

물론 십자가에서 죄 용서를 받은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을 갖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하지만 루터처럼 번연이 믿음을 십자가 경험 이후에 등장시킨 이유는 믿음도 하나의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경계했다고 설명할 수 있다.

크리스천이 믿음을 만나게 되는 시점은 아볼루온과의 전투 그리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 후였다.

믿음이라는 동료를 만나서 그가 순례 가운데 겪은 이야기를 듣게 된 다.

그 중 하나가 수다쟁이(Talkative)와의 대화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통해서 번연의 루터적 의미에서 믿음에 대한 이해를 엿볼 수 있다.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가장 가치 있다고 말하 자 수다쟁이도 흔쾌히 동의한다.

수다쟁이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관련해 서 많은 지식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믿음은 그를 훌륭한 사람으로 여긴 다.

하지만 크리스천은 그 사람은 달변(Saywell)의 아들로 말과 행동이 다 른 인물임을 알려준다.

이에 믿음은 수다쟁이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실 안다는 것은 말하기 좋아하고 허풍떨기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 족시킬 뿐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은 아는 대로 행함에 있는 것 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참된 지식이 없는 마음은 공허하기 때문에 지 식은 물론 필요한 것이지요. 그런데 지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단순히 사색만으로 만족하는 지식도 있고 신앙 및 사랑의 은총과 함 께 동반하는 지식도 있지요. 전자는 말만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 히 과시하는 지식이고, 후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진실로 하나님 의 뜻에 맞는 행동을 하도록 이끌어 주는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진정 한 크리스천이라면 후자의 지식을 소유하지 못하고는 참 만족을 얻 을 수 없을 것입니다.31)

 

     31)  존 번연/유성덕 옮김, 『천로역정』, 131. 

 

번연이 수다쟁이를 어떤 사람들에 대한 알레고리로 사용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당대의 합리주의적 철학자나 신학자를 염두에 둘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루터의 경우에는 그 대상이 분명하다.

루터에 게 영향을 미친 그리스도교 인문주의자 데시데리우스 에라스무스(De siderius Erasmus)도 『야만에 반대하다』 (Antibarbari)라는 책을 통해서 스 콜라주의의 언어의 사변성과 무미건조함을 비판한 바 있다.

에라스무스 처럼 루터에게도 주요한 적은 바로 스콜라주의였다.

스콜라주의의 기본 적인 동기는 그리스도교 신앙을 세속 철학, 정확히 말해 아리스토텔레스 의 철학을 빌려서 합리화하여 표현하려는 시도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과 세속 철학의 조화를 꾀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에라스무스와 루터 당대의 스콜라주의는 공허한 사변적인 논변에만 치중하여 종교의 생동력을 상실한 상태였다.

루터에게 스콜라주의자들은 번연의 수다쟁이처럼 정교한 논리 속에 갇혀 신앙적 실천이 결여된 상태에 있었 다.

『로마서 주석』에서 루터는 믿음은 신앙적 행위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신앙적 행위의 전제 조건임을 명시하고 있다.

 

믿음은 옛 아담을 죽이고 우리를 마음과 생각과 우리의 모든 힘에 있 어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믿음은 성령이 동반 된다. 오, 믿음에 이르게 되면 그것은 얼마나 생생하고 창조적이고 적극적이고 강력한 것인지, 믿음은 내내 좋은 것 외에 다른 것을 행 할 수가 없다. 믿음은 결코 행해야 할 선행이 어디 있느냐고 묻지 않 고, 오히려 그러한 질문이 던져지기 전에 선행을 이미 행하고 계속해 서 선행을 하고 있다.32)

 

    32)  마르틴 루터/박문재 옮김, 『로마서 주석』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1), 21.

 

정리하면 번연의 구원 경험의 구조는 상한 양심에서 출발하여 믿음 을 통해서 영적 자유를 얻게 되고, 이 영적 자유는 구원의 수단으로서의 선행이 아니라 믿음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결과로서 선행을 낳는 다.

이어 우리는 번연에게서 복음과 율법의 경험이 매우 유사하게 표현 되고 있음을 다음 절에서 살펴본다. 

 

Ⅲ.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험의 두 양상으로서 복음과 율법

 

논리적 순서상 크리스천의 말씀에 대한 경험은 율법에 대한 경험이 었다.

위에서도 언급한 대로 작품 첫 장면에서 크리스천은 성경 말씀을 읽고 두려워 떨며 구원을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을 얻을 방법을 찾아서 나선 후 처음으로 방법을 제시해 준 사람은 세속 현자(Mr. Worldly Wiseman)였다.

그는 성경을 읽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크리스천을 정 신 착란에 걸린 것으로 여긴다.

자신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내릴 방법 을 묻자, 세속 현자는 ‘도덕’(Morality)과 ‘합법’(Legality) 그리고 예의(Ci vility)라는 인물들을 추천해 준다.

그런데 합법의 집으로 향하는 길은 가 파르고, 많은 바위들과 골짜기 때문에 두려움을 주었다.

이때 크리스천 에게

 

“원래 가던 길을 바꾸어 새 길로 접어들었을 때부터 등에 짊어진 짐 은 훨씬 더 무거운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더구나 갑자기 언덕 위에 서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본 크리스천은 그곳으로 올라가다가는 불 길에 휩싸여 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다.”33) (cf. 출 19:16 18).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간 시내산과 유사한 이미지를 갖고 있 어서 바위가 깔려 있고 타오르는 불길이 있는 언덕은 모세의 율법을 상 징한다. 크리스천의 순례 과정에서 율법은 결코 죄의 짐을 내려놓게 할 수 없고, 오히려 짐을 더 무겁게 만든다.

루터가 말한 대로,

“율법은 죄인 들을 의롭게 하지 않는다. 죄인들의 눈앞에 죄를 두고 그들을 낙심시키 며 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한 지식을 갖도록 한다. 율법은 죄인들에게 지 옥을 비롯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보여준다. 이것이 율법의 참된 기 능이다.”34)

 

   33)  존 번연/유성덕 옮김, 『천로역정』, 54.

   34)  마르틴 루터/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320. 

 

절망하고 있던 크리스천에게 전도자가 다가와 구원의 길을 말씀을 읽어주며 알려준다.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10:38)

 

히브리서뿐 아 니라 그리고 로마서(1:7)와 갈라디아서(3:11) 인용된 하박국 2:4,

“오직 의 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루터 신학에 근본적인 통찰을 제공한 구절이다.

루터는 이 인용문을 포함한 로마서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 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를 다음과 같이 주석한다.

 

하나님의 의는 우리의 구원의 근거이다. 하지만 이 의는 하나님 자신이 하나님으로서 의롭다는 의미에서의 의가 아니라 복음을 믿는 믿 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하신다는 의미에서 의이다. 이것은 행위들로부터 오는 사람의 의와 구별하여 하나님의 의라 불 린다.35)

 

전도자의 평가에 따르면 세속 현자는 이성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도 덕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세속 현자가 숭상하는 이성과 도덕은 루 터에게 혐오의 대상이다.

루터는 이성을 ‘악마의 매춘부’에 비유하면서 이성에 노골적 반감을 드러낸다.

루터는 율법을 이성의 산물로 본다. 율 법이 선한 것인 것처럼 루터에게도 이성은 인간에게 있어서 최상의 것이 다.

하지만 이성은 신의 은총을 수용할 능력이 없다.

“인간의 이성은 치 욕적이고 경멸적인 십자가 고난에 금방 불쾌감을 느낀다.”36)

“인간의 이 성과 본성은 그리스도를 굳게 붙들지 못하고, 종종 율법과 죄에 관한 생 각에 휩쓸린다.”37)

 

      35)  마르틴 루터/박문재 옮김, 『로마서 주석』, 52.

      36)  마르틴 루터/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381.

      37)  마르틴 루터/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138.

 

루터는 인간의 이성 일반을 비판하고 있지만,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그 중에서도 윤리학을 가리킨다.

루터는 믿음의 의와 행위의 의를 구분하면서, 여기서 행위의 의의 사례로 아리스토텔레 스의 윤리학을 예시로 든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에 따르면, 의는 사랑의 행위들에 수반되는 것으로서 그 행위들에 의해 생겨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판 단은 이와 달라서, 그 판단에 의하면, 의는 행위에 선행하고, 선행들 은 그 의로부터 점차 생겨난다.38)

 

     38)  마르틴 루터/박문재 옮김, 『로마서 주석』, 53. 루터와 아리스토텔레스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저술을 보라. Theodor Dieter, Der junge Luther und Aristoteles: Eine historisch-systemtische Un tersuchung zum Verhältnis von Theologie und Philosophie (Berlin: de Gruyter, 2001).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신뢰이다.

따라서 인간은 율법의 행위 로 스스로 의로워질 수 없다.

그래서 인간에게는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희생이 될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이성에 의존하고 있는 행위의 의 또는 율법의 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반감을 갖게 한다.

여기서 우리 는 루터와 번연에게서 신앙과 이성의 분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이 둘에게 ‘은총은 자연을 폐기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아퀴나스의 명제는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은총의 산물인 신앙은 이성과 율법과 대립하기 때문이다.

이어 크리스천은 해석자의 집에 도착하고, 해석자는 복음과 율법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설명해 준다.

 

이 객실은 복음의 달콤한 은혜로 성화된 일이 한 번도 없는 인간의 마음입니다. 먼지는 인간의 죄를 의미하며 또 모든 인간을 이렇게 만 드는 내면의 부패를 의미합니다. 처음 이 방을 쓸기 시작한 사람은 율법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물을 뿌려준 아가씨는 복음입니다. 당신 도 잘 보셨다시피 처음에 율법이 방을 쓸기 시작하자 먼지가 일어나 온 방을 채웠기 때문에 방이 깨끗해지기는커녕 더 더러워지고 당신은 거의 질식해 버릴 지경이었지요. 이는 율법이라는 것이 죄를 발견 하고 금지시키기는 하지만 아예 죄를 뿌리뽑지는 못하기 때문에 인 간의 마음을 청소하려 들다가는 오히려 영혼의 죄를 소생시키고 힘 을 돋우어 더 증가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을 당신에게 보여드리기 위 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한 소녀가 방에 물을 뿌리고 난 뒤에 청소를 하니까 아주 기분 좋게 깨끗해졌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복음이 인간 의 마음에 들어와 영향을 주게 되었을 때 마치 소녀가 마루에 물을 뿌려 모든 먼지를 가라앉힌 것처럼 죄를 물리치고 근절시킴으로써 영혼이 깨끗해지고 그러한 믿음을 통하여 마침내 영광의 주님과 함 께 기거할 수 있는 자격을 얻을 수 있음을 당신께 보여드리기 위한 것입니다.39)

 

 번연의 크리스천이 읽은 책은 성경이다.

루터에게 성경은 율법과 복 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율법과 복음이란 모세의 율법과 4복음서 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담고 있으면 구약이든 신약 이든 율법이 될 수 있고, 반대로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을 담고 있으면 구 약이든 신약이든 복음이 될 수 있다.

루터의 신학에서 이 구분은 매우 중 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복음과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의 양면적 성 격을 대표한다.

첫 장면에서 크리스천이 읽은 성경은 율법이었다면, 십 자가 경험 이후에 크리스천에게 성경이 복음으로 다가올 때는 그것이 다 음과 같이 묘사된다.

 

“이 두루마리야말로 그의 영생을 보장해주는 증서 인 동시에 그가 소망하는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는 통행증이었다.”40)

 

     39)  존 번연/유성덕 옮김, 『천로역정』, 66.

    40)  Ibid., 83. 

 

루터에게 가장 중요한 점은 율법과 복음을 신학적으로 날카롭게 구 분하는 것이다.

루터는

 

“율법과 복음 사이의 관계를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자는 누구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자신이 참된 신학자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41)

 

     41)  마르틴 루터/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134. 루터 신학에서 칭의와 성화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을 보라. 정병식, “칭의와 성화를 통해서 본 루터 신학의 현대적 의의,” 「신학사상」 135 (2006/ 겨울), 73-98. 

 

율법은 본질적으로 선하지만, 인간의 부패한 본성 은 율법을 통해서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내세운다.

루터는 이를 율법의 의라고 하고 믿음의 의와 대립시킨다. 율법은 죄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성을 깨닫게 하여 구원자를 갈망하게 한다.

복음은 이 절망한 죄인에 게 나타나 위로와 구원을 준다.

율법과 복음의 대립과 구분은 『천로역정』을 읽을 수 있는 기본 신학 적 틀로 작동하고 있다.

영적 순례를 시작하면서 신의 예정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시작하지 않고, 개인의 실존적 상황에서 시작하는 것은 바로 루터의 주된 관심사를 반영한다.

다시 말해, 의로운 신 앞에서 선 개인이 어떻게 의로워질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수사로서 신에 게 의롭다고 인정을 받고 싶어 종교적 수행에 매진했던 루터와 달리 번 연은 루터처럼 고등 교육을 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품행도 매우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내적인 양심에서 매우 민감성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Ⅳ. 영적 투쟁의 경험

 

십자가에서 죄의 용서의 경험을 하고 천박, 나태, 거만, 허례와 위선 을 만나고 이어 크리스천은 곤고산이라는 곳을 오르게 된다.

이는 크리 스천에게 십자가에서의 칭의의 경험만으로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음을 말 해준다.

번연이 시작부의 정죄의 경험에서 십자가에 이르는 과정보다 십 자가 장면에서 천국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에 상당히 많은 분량을 할애한 것은 번연이 신자의 성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화의 과정은 칭의의 은혜를 받은 신자가 하나님과 사탄, 영과 육, 복음 과 율법,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내적인 분투의 과정이다.

루터 도 정확하게 번연의 크리스천의 종교적 실존과 일치하는 언급을 하고 있 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고, 이로 말미암아 성령의 첫 열매를 받았 다. 이때 육체의 죄를 죽이는 일도 우리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완전히 의로운 자가 된 것이 아니다. 완전히 의롭게 될 때가 온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이다. 따라서 우리는 의를 아직 실제로 소유하고 있지 않고, 소유하기를 바라고 있다.42)

 

성화의 단계에 접어든 신자는 자신의 남아 있는 육적인 본성과 그리 스도와 믿음으로 연합되어 있는 영적 본성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는 것 을 루터는 영적 시련(Anfechtung)이라고 부른다.

롤란드 베이턴(Roland Bainton)의 정의에 따르면 영적 시련이란,

 

“인간의 영혼을 침범하는 온갖 의심, 혼란, 고통, 떨림, 아픔, 절망, 적막함 그리고 자포자기”이다.43)

 

    42)  마르틴 루터/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432.

    43)  Roland Bainton, Here I Stand (New York: Abingdon, 1950), 42. 루터의 영적 시련 개념에 대한  치밀한 분석을 시도한 다음 글을 보라. David P. Scaer, “The Concept of Anfechtung in Luther’s  T hought,” Concordia Theological Quarterly 47/1, 1983, 15-30. 

 

근 본적으로 루터에게 영적 시련은 이 세계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통치 를 받고 있지만, 하나님이 사탄의 통치를 허용한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사탄의 통치도 결국 하나님의 통치에 예속되지만, 신자는 두 통치 아래 에서 영적으로 갈등하게 된다.

루터는 『노예의지론』에서 에라스무스 (Erasmus)가 자유의지라는 하나님과 사탄 사이의 중립지대를 인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논변을 펼친다.

인간에게는 하나님의 의지의 포로가 되든 지 아니면 사탄의 포로가 되든지 두 가지 선택밖에 없다.

 

인간의 의지란 멍에를 맨 짐승처럼 둘 사이에 위치해 있다. 만약 하 나님께서 그 위에 올라타신다면, 시편에서“내가 이같이 우매 무지함 으로 주 앞에 짐승이오나 내가 항상 주와 함께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 을 붙드셨나이다”(시 73:22-23)라고 노래하는 것처럼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께서 뜻하신 바를 좇아 행할 것이다. 만일 사탄이 그 위에 올 라탄다면 인간의 의지는 사탄이 원하는 바를 좇아 행할 것이다. 인간 의 의지는 그 위에 올라탈 두 존재자를 선택하거나 찾아 나설 수 없 고 오히려 그 위에 올라탈 두 존재가 인간의 의지를 소유하고 지배하 기 위해 서로 싸운다.44)

 

그리스도인을 군인에 빗댄 오래된 그리스도교 전통의 이미지를 번연 도 『천로역정』의 중요한 이미지로 사용하는 것은 바로 루터가 묘사한 사 탄과 하나님 사이의 인간이라는 구도를 배경으로 한다.

크리스천은 아름 다움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병기고에서 칼, 방패, 투구, 갑옷, 기도(엡 6:18)라는 병기고를 구경한다.

떠나기 전 아름다움에 집에서는 그를 병기 고의 무기들로 무장해 준다.

겸손의 골짜기에서 그는 아볼루온(Apollyon) 과 마주한다.

이때 “두려움에 사로잡힌 크리스천은 돌아서서 도망쳐버릴 까, 아니면 맞서볼까 망설이면서 마음이 몹시 산란해졌다.”45)

 

    44)  마르틴 루터/김주한 옮김, “노예 의지에 관하여,”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무스 · 마르틴 루터/이성덕  · 김주한 옮김, 『루터와 에라스무스: 자유의지와 구원』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1), 198.

   45)  존 번연/유성덕 옮김, 『천로역정』, 98. 

 

크리스천 의 이러한 심리적 상태는 위에서 묘사한 루터의 영적 시련의 상태이다.

아볼루온은 자신을 섬기라고 회유와 협박을 하지만 크리스천은 다음과 같이 응수한다.

 

“너 멸망의 왕 아볼루온아! 잘 듣거라, 사실 나는 그분을 섬기는 일과 그분이 주시는 삯, 그분의 종들, 그의 통치, 그의 나라를 너 보다 훨씬 좋아하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나를 설득하려는 헛수고를 하 지 말고 돌아가는 게 좋을 거야. 나는 하나님의 신하이므로 앞으로도 그 를 따르고 섬길 것이니까.”46)

 

이어 아볼루온은 크리스천에게 의심을 불 러일으키는 전략을 취한다.

아볼루온는 크리스천의 결심이 견고하지 않 았으며, 유혹에 빠지고, 어리석었고, 용기가 없었으며, 자만과 허영에 빠 졌었다고 말하며 그의 약점을 지적한다.

이런 상태에 대해서 루터는 다 음과 같이 적고 있다.

 

우리가 고통 속에 있고 양심이 갈등 속에 있을 때, 마귀는 율법을 통 해 우리를 두렵게 하고, 죄책이나 과거의 악한 삶이나 하나님의 진노 와 심판이나 지옥이나 영원한 사망으로 우리를 고소한다. 그리하여 마귀는 우리를 절망으로 이끌고, 우리를 자신의 종으로 만들며, 우리 를 그리스도에게서 끌어내린다.47)

 

     46)  Ibid., 100. 

     47)  마르틴 루터/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24

 

크리스천은 사탄이 주는 자기 비하를 극복하고 그리스도의 용서의 은총을 붙잡고 담대한 태도를 취하여 적극적으로 사탄을 공격한다.

이런 상황을 루터도 유사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귀가 우리에게 우리는 죄인이고, 그러므로 파멸할 것이라고 말할 때에 이렇게 답변해야 한다. “마귀야, 네가 나를 죄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이렇게 답변해야 한다. 마귀야, 네가 나를 죄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나는 의롭다 함을 얻고 구원을 받아야겠다.” 그러면 마귀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니다, 너는 반드시 파멸할거야.” 이에 나는 다음과 같이 답할 것이다. “천만의 말씀! 나는 내 죄를 대속하기 위 해 자기 몸을 주신 그리스도께 날아갈 테다. 그러므로 사탄아, 네가 내게 내 죄가 아무리 크다고 말하고, 낙심과 불신, 절망, 미움, 멸시, 모독으로 끌고 가서 나를 아무리 두렵게 한다고 할지라도, 너는 절대 나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반대로 네가 나를 죄인이라고 말할 때 너는 네 자신과 맞설 갑옷과 무기를 내게 주는 것이다.”48)

 

    48)  Ibid., 58. 

 

루터와 번연의 신학을 특징 짓는 중요한 요소는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내적 투쟁으로 본다는 점에 있다. 이는 이 두 사람의 신학이 단번에 얻는 의로움을 강조할 뿐만 아니라, 사탄과 하나님, 영과 육 사이에서 지 속적으로 투쟁해 가면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 음을 알 수 있다.

 

Ⅴ. 나가는 말

 

본 논문에서 저자는 『천로역정』이 탄생하게 된 신학적, 영적 맥락에 대한 연구 영역에서, 루터의 종교적 경험이 이 작품의 크리스천의 종교 경험에 대한 모델이 되었음을 밝히려고 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두 사 람 모두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영적인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스콜라신학과 같은 합리화된 신학이 인간 개인의 정서적 경험을 약 화시킨 것과 대조적이다.

구원 서정이라는 말이 종교 개혁기에 생겨난 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원대한 경륜보다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내 밀한 체험을 강조하는 흐름이 형성되었음을 반증한다.

그리고 이런 흐름 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루터이고 그의 영향을 받은 번연이다.

본 논문을 통해서 저자는 번연에게 미친 루터의 영향을 세 가지 측면 에서 고찰했다.

  첫째, 인간의 상한 양심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서 해방된 양심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루터와 번연 모두 상한 양심에 주목했으며, 루터는 주석의 과정에서 번연은 문학적 형상화의 과정에서 이 주제를 부각한다.

상한 양심을 가진 절망적인 인간이 그리스도의 은 총을 통해 치유를 받고, 죄와 절망의 상태에서 그리스도와 연합 속에서 믿음에서 나오는 선행으로 이행한다는 것이 두 사람의 종교적 실존의 드 라마이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의 두 측면으로서 율법과 복음의 경험이다.

‘하 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라는 루터의 말처럼, 루터는 하나님께 속한 것 과 인간적인 것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루터는 이성을 귀하게 여겼으나, 그것은 하나님과 관련한 것들에 대해서는 무능하다고 생각한다.

이성에 대한 반감은 갈라디아서를 주석하면서 빈번히 나타난다.

루터는 율법과 이성 모두를 육적인 것이라고 여긴다.

루터가 율법의 시민적 기능을 인 정했지만, 율법의 용적 용도는 구원의 방도가 아니라 죄를 깨닫게 하는 용도를 갖고 있다.

크리스천이 첫 장면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말씀은 율 법으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하지만 정죄의 경험과 십자가에서 죄 용서를 경험한 후 크리스천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으로 다가온다.

번 연의 작품의 신학적 틀을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율법과 복음의 변증법 인데, 이는 율법과 복음은 엄밀하게 구분되지만, 율법은 복음에서 그 완 성을 획득하고, 복음은 율법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셋째, 영적 시련은 번연과 루터의 저술들에서 중요한 의미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두 저술이 칭의에 강조를 둔 것으로 보이지만 그러한 강 조의 목표는 오히려 성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번연의 신학은 다양한 배경을 통해서 형성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본 연구는 그 복잡다단한 내용을 해부하기보다는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 에 초점을 맞추어 비교 분석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루터의 성서에 대 한 해석은 번연의 자기 이해와 문학적 형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짓는다.

덧붙여서 본 연구의 논의가 한국 교회의 맥락에서 가지는 의의를 언 급함으로써 논문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국 교회의 구원론은 종교 개혁 신학의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

특히 칭의로서의 구원과 성화로서의 구원 을 구분하는 것은 루터나 칼빈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특히, 『천로역정』과 같은 대중적 신앙 고전은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에 의해서 중국어 번역본과 영어 원문을 기초로 개화기 초기(1895)에 번역되어 국내 에서 읽혀졌다.49)

 

    49)  김성은, “선교사 게일의 번역 문체에 관하여 - 천로역정 번역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  31 (2009/9), 199-227 참조. 

 

이 책의 번역과 유포는 우리나라의 구원에 대한 이해 는 구원서정의 관점에서 이해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하나 님의 은총과 개인의 경건을 강조하는 경향은 교회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 있지만, 동시에 루터-번연적인 개인 체험 위주의 신앙에 대한 이해는 기독교 신앙이 가진 우주적 회복으로서의 구원관이 상대적 으로 덜 강조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한국 교회는 루 터-번연적 정서 위에 더 포괄적인 신앙에 대한 이해를 세운다면, 보다 균형 잡힌 교회로 성장할 것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김성은. “선교사 게일의 번역 문체에 관하여 - 천로역정 번역을 중심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 31  (2009/0), 199-227. 루터, 마르틴/김귀탁 옮김. 『갈라디아서』. 서울: 복있는사람, 2019. _______/박문재 옮김. 『로마서 주석』.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1.  _______/김주한 옮김. “노예 의지에 관하여.” 데시데리위스 에라스무스 · 마르틴 루터/이성덕 · 김 주한 옮김. 『루터와 에라스무스: 자유의지와 구원』.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11. 박종석. “종교개혁과 시각예술.” 「신학사상」 178 (2017/가을), 245-278. 번연, 존/고성대 옮김.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파주: CH북스, 2018. _______/유성덕 옮김. 『천로역정』.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1. 어거스틴/선한용 옮김. 『고백록』. 서울 : 대한기독교서회, 2016. 왈쩌 마이클/김용복 옮김. “혁명이데올로기로서의 청교도 정신.” 「신학사상」 29 (1980/여름), 370 412. 정병식. “칭의와 성화를 통해서 본 루터 신학의 현대적 의의.” 「신학사상」 135 (2006/겨울), 73-98. 제임스, 윌리엄/김재영 옮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파주: 한길사, 2019. 칼빈, 존/원광연 옮김. 『기독교 강요 (중)』. 고양: 크리스천다이제스트, 2004. Bainton, Roland. Here I Stand. New York: Abingdon, 1950. Camden, Vera J. “‘Most Fit for a Wounded Conscience’ The Place of Luther’s Commentary on Ga latians’ in Grace Abounding.” Renaissance Quarterly 50 (1997), 819-49. Coleridge, Samuel Talyor. Table Talk. In The Complete Works of Samuel Taylor Coleridge. Ed.  Shedd vol VI. New York, Harper & Brothers, Publishers, 1871. Dieter, Theodor. Der junge Luther und Aristoteles: Eine historisch-systemtische Untersuchung zum Verhältnis von Theologie und Philosophie. Berlin: de Gruyter, 2001. Collins, G. N. M. “Order of Salvation.” In Daniel J. Treier, Walter A. Elwell. (eds.).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7. Greaves, Richard L. John Bunyan. Grand Rapids, Mich.: Eerdmans, 1969. Euguene Fish, Stanley Self-Consuming Artifacts: The Experience of Seventeenth-Century Litera ture. Los Angel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72. Hill, Christopher. A Turbulent, Seditious and Factious People: John Bunyan and His Church. Ox 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6(1988). Hillerbrand, Hans J. The Encyclopedia of Protestantism, vol 1-4. London/New York: Routledge,  2004.  Hofmeyr, Isabel. “Bunyan in Africa Text and Transi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Postcolonial Studies 3 (2001), 322-355. _______. “Bunyan: Colonial, Postcolonial.” in Anne Dunan-Page (ed.). The Cambridge Companion to John Bunyan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0), 162-176. Johnson, Alan F · Robert E. Weber, What Christians believe: A Biblical and Historical Summary.  Grand Rapids Mich : Zondervan, 1993. Leary, David E. “New Insights into William James’s Personal Crisis in the Early 1870s: Part II.  John Bunyan and the Resolution & Consequences of the Crises.” William James Studies  11 (2015), 28-45. Luxon, Thomas H. “Calvin and Bunyan on Word and Image: Is There a Text in Interpreter’s  House?” English Literary Renaissance 18 (1988), 438-459. Rosenfeld, Nancy. John Bunyans Imaginary Writings in Context. Oxford: Routledge, 2017. Runyon, Daniel V. “Luther’s influence on Bunyan’s use of allegory.” Bunyan Studies 14 (2010),  76-84 Stendahl, Krister. “The Apostle Paul and the Introspective Conscience of the West.” Havard Tho logical Review, 199-215. Scaer, David P. “The Concept of Anfechtung in Luther’s Thought.” Concordia Theological Quar terly 47/1 (1983), 15-30. Wooman, K. W. The Influence of Luther and Calvin on John Bunyan’s Grace Abounding and the Pilgrim’s Progress. Master’s Thesis, The University of Alberta, 1983. 임

 

한글초록

 존 번연의 『천로역정』의 기원에 대해서 다양한 논의가 있다. 본 논문 은 특정 주장을 반박하기보다는 그 논의를 더 풍성하게 할 목적을 갖고 있다. 번연이 자신의 영적 자서전인 『죄인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에서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듯이 마르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는 저자의 자기 이해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본 논문은 바로 이 사실에서 출발한 다. 번연이 루터의 사상에서 받은 영향력이 다른 청교도 저자들이나 종 교 개혁자들보다 얼마나 큰지를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천로역 정』과 『갈라디아서 강의』를 철저하게 비교 분석해 본다면, 루터의 신학 사상이 번연에게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 좀 더 설득력 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세 가지 측면에서 루터와 번연의 두 작품을 비교 분석한 다. 첫째, 상한 양심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치료되어 고통에 서 해방된다는 주제다. 둘째, 두 사람의 신학적 사고의 중요한 틀인 바로 복음과 율법의 대립이다. 루터에게 율법의 영적 용도는 죄인을 정죄하는 역할이고, 번연의 크리스천도 정죄의 경험을 통해서 복음에 도달한다. 셋째, 믿음을 통해서 구원을 얻은 신자의 삶은 영적 투쟁의 삶이라는 것 이다. 번연과 루터 모두 믿음을 가진 사람이 사탄과 하나님 사이에서 내 면적으로 갈등하는 상태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사람 모두 이 영적 투쟁 에서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 승리하게 되는 구원 서사를 제시한다. 

 

주제어 구원 서정, 믿음, 성화, 영적 시련(Anfechtung), 율법, 칭의 

 

Abstract

A Study on the Character of Christian’s Religious Experience in John Bunyan’s Pilgrim’s Progress — A Comparison with the Religious Experience in Martin Luther’s Lectures on Galatians Hyeong-Kwon Lim Senior Research Fellow, Religious Studies T he Institute of Humanities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T he theological backgrounds of John Bunyan’s Pilgrim’s Progress have been discussed among students of Bunyan. This paper does not aim to dispute a certain argument concerning the origin of Pilgrim’s Progress. Rather, this paper aims at enriching the understanding of Bunyan’s work. It is well known that Bunyan appreciated Martin Luther’s lectures on Galatians, which he regarded as reflecting his own spiritual experience. This study tries to make clear the influence of Luther’s lectures on Bunyan’s work. This task is performed by making a comparison between the two works focusing on three main themes. First, for both, the wounded heart is healed by the faith in Christ. Second, the opposition between law and the Gospel is, for them, fundamental to their theological thought. Third, spiritual temptation (Anfechtung) characterizes the life of a Christian who is already recognized as righteous by the imputation of Christ’s righteousness. This temptation is a means for salvation as sanctification.

 

Key Word  Law, Justification, Order of Salvation,Faith, Sanctification, Spiritual Temptation(Anfechtung)

 

 

논문접수일: 2025년 5월 31일 논문수정일: 2025년 6월 15일 논문게재확정일: 2025년 9월 20일

神學思想 210집 · 2025 가을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크리스천의 종교적 경험의 성격 연구 - 마르틴 루터의 『갈라디아서 강의』에 나타난 종교 경험과의 비교 (1).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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