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서론
313년 밀라노칙령으로 기독교 박해를 종식시킨 콘스탄틴황제 (Constantine the Great)에 대한 당대 교회의 평가는 칭찬 일색이었다.
특히 역사가이자 황제의 측근이었던 유세비우스(Eusebius of Caesarea) 는 황제를 ‘하나님의 친구’이자 ‘열세 번째 사도’라고 칭송하며 신학적 권위를 부여했다.1) ‘
1) Eusebius of Caesarea, Life of Constantine, trans. Averil Cameron and Stuart G. Hall (Oxford: Clarendon Press, 1999), IV.71.
하나님의 친구’라는 칭호는 콘스탄틴을 아브라함과 같은 신적 선택의 반열에 올려놓았으며, ‘열세 번째 사도’라는 파격적인 호칭은 그가 교회의 수호자이자 복음 전파의 새로운 주역임을 선언한 것이었다.
이러한 찬사는 콘스탄틴의 통치를 하나님의 섭리가 이끄는 구원 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제국 신학의 시작을 알렸다.
그러나 20세기 신학자 존 하워드 요더(John H. Yoder)는 이 전환을 교회 타락의 기점으로 보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심지어 ‘이단’(heresy)이 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2)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황제의 주권 아래 종속하였다는 점에서 기독론적 이단이고,
둘째, 교회의 본질을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에서 세상을 관리하는 기관으 로 왜곡하였다는 점에서 교회론적 이단이고,
셋째, 십자가의 윤리를 검 (sword)의 윤리로 대체하였다는 점에서 윤리적 이단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거친 비판에 대해 피터 라잇하르트(Peter J. Leithart)는 그의 저서 Defending Constantine에서 정면으로 반박한다.3)
그는 콘스탄틴 을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자 ‘섭리적 통치자’로 옹호하며, ‘콘스탄틴주의’ 라는 개념 자체가 하나의 ‘논쟁적 신화’(a polemical myth)에 불과하고, 교회와 제국의 협력은 오히려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징표’라고 주장한다.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기독교회는 콘스탄틴에 의해서 사회 참여의 시공간을 확보하였고, 이를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콘스탄틴을 둘러싼 해석은 단순한 역사 평가를 넘어선다. 라잇하르트도 그의 저술 의도가 콘스탄틴 개인에 대한 변호가 아니라 요더와 아나뱁티스트 정치신학에 대한 비판이었음을 분명히 했다.4)
2) John H. Yoder, The Royal Priesthood: Essays Ecclesiological and Ecumenical, ed. Michael G. Cartwrigh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4), 152-157.
3) Peter J.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The Twilight of an Empire and the Dawn of Christendom (Downers Grove, IL: IVP Academic, 2010), 10, 42, 276.
4) Ibid., 10-11.
즉, 이 논쟁의 핵심은 4세기에 대한 사실 논쟁 이전에, 오늘날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정치적 소명을 감당해야 하는가에 대한 두 신학적 비전의 근본적인 충돌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이러한 신학적 대립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다음 질문을 제기한다
: “콘스탄틴 이후 교회가 선택한 정치적 권력 수용은 복음의 충실한 형식인가, 아니면 복음이 전도된 형식인가?”
이 물음은 단지 4세기의 역사에 머무르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교회 가 매년 대통령과 권력자들을 축복하며 정권과의 유착을 과시하는 ‘국가 조찬기도회’는, 콘스탄틴주의라는 오래된 유령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가장 선명한 시험 사례(test case)다.
따라서 본 연구는 단순한 역사 비평을 넘어, 이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현재 한국교 회의 공공성과 윤리적 정체성을 되묻는 신학적 성찰을 감행한다.
한국교회가 정치 사회적으로 한국 사회에 포섭되었다는 것을 설명 하는 일반적인 언어는 ‘근본주의’일 것이다.
한국 개신교의 배타성과 극 우성은 근본주의에서 발원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5)
5) 정용택, “한국 극우 개신교의 절멸주의적 혐오 정치에 대한 기독교사회윤리적 비판,” 「신학과 사회」 39, no. 2 (2025): 275-320; 배덕만, 전광훈 현상의 기원: 한국 개신교 극우주의에 관하여 (서울: 뜰힘, 2025).
성서에 대한 문자적 해석, 세상을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으로 간단명료하게 해석하는 세계관 등이 원인이 되어 타자와 약자에 대한 배타적이고 배제적 행위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정용택은 신학적 이념에서, 배덕만은 한국 근현대사 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그러나 ‘근본주의’를 문제의 원인으로 지목하려면, 모든 근본주의 가 폭력적이어야 한다는 점을 납득시켜야 하고 또한 그것이 보수 개신교회에만 해당한다는 약점이 있다.
진보적 개신교회는 보수에 비해 극단성 이나 폭력성이 상당히 약하고 온건한 편이지만, 진보적 정권과 동일시하 고 최후에 있어서 정당한 전쟁론과 같이 폭력을 정당화할 소지가 다분하 다.
그러므로 두 가지 점에서 근본주의보다는 콘스탄틴주의가 더 유용하 다고 본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한국 개신교회 전체를 읽어낼 수 있다는 점, 그것이 폭력으로 발현되는 원인을 신학과 역사 모두에서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6)
콘스탄틴주의가 설명 능력이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선행하는 연구 는 드문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정원범과 장동민은 존 요더의 신학적 관점에서 한국교회가 직면한 신뢰도 위기의 뿌리를 콘스탄틴주 의로 진단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공헌을 하였다.7)
정원범은 교회가 콘스 탄틴 이후 국가 권력과 결탁하며 예수의 제자도가 아닌 세상의 가치를 옹호하는 ‘현상 유지적 종교’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그가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제자도이다.
교회가 개인 구원 중심의 신앙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복음과 예수를 따르는 제자도의 급진성을 회복해야만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적 신뢰를 되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콘스탄틴주 의로부터의 탈피를 핵심 대안으로 제시한다.
장동민은 현대 한국교회가 직면한 위기의 본질을 분석한다.8)
6) 한국교회는 과연 콘스탄틴적 교회 혹은 기독교 국가(Christendom)적 교회인가에 대해서는 김기현, “누가 종말을 실현하는가, 콘스탄틴인가 그리스도인가: 존 요더의 탈콘스탄틴주의적 종말론,” 「한국조직신학논총」 59 (2020): 7‑34; 김기현 ․ 장동민,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9).
7) 정원범, “존 하워드 요더의 관점에서 본 한국교회의 신뢰도 위기와 그 대안,” 「한국기 독교신학논총」 100 (2016): 195-226. 김기현 | 복음은 콘스탄틴을 필요로 하는가? 11
8) 장동민, 포스트크리스텐덤 시대의 한국 기독교.
그는 한국교회가 과거 사회의 주류로서 누렸던 ‘유사 크리스텐덤’ 시대의 영광 이 이제는 붕괴했음을 지적한다.
교회가 주변부로 밀려난 ‘포스트크리스 텐덤’이라는 새로운 현실에 직면했음에도 여전히 과거의 권력 지향적 사고방식에 갇혀 있다고 비판한다.
이러한 진단 위에서 그는 단순히 과거 로 회귀하려는 퇴행적 시도를 넘어서 미래를 향한 대안을 제시한다. 그것 은 바로 권력의 중심이 아닌 세상 속으로 보냄 받은 공동체로서 자신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선교적 교회’라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처방이다.
이 글과 정원범과 장동민의 것은 콘스탄틴 전환을 교회가 권력 논리 에 포섭되어 본질을 상실한 부정적 사건으로 규정한다는 점에서 근본적 인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그러나 논의의 초점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본 논문은 콘스탄틴 시대 자체에 집중하여 해당 사건이 제국의 ‘회심’이 아닌 교회의 ‘흡수’였음을 역사적, 신학적으로 재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 춘다.
비록 국가조찬기도회라는 시험 사례를 통해 한국교회의 현상을 독해하는 유용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논문의 전체적인 무게중심은 4세기 사건의 본질을 규명하는 데 있다.
반면 장동민과 정원범의 연구는 콘스탄틴주의를 오늘날 한국교회 의 위기를 진단하는 분석 도구로 적극 활용한다.
그의 논의는 역사 분석에 머무르지 않고 위기 극복을 위한 구체적인 현대적 대안을 제시하는 데까 지 나아간다는 점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요컨대 본 논문이 ‘원인’을 심층 분석한다면, 선행 연구는 그 ‘결과’와 ‘처방’을 다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라잇하르트의 역사적, 신학적 주장에 대해 요더의 급진적 제자도 신학을 해석학적 틀로 삼아 비판적으로 응답한다.
이를 위해 다음 다섯 가지 논점을 중심으로 라잇하르트의 입장을 분석한다:
(1) 콘스탄틴 회심의 진실성,
(2) 콘스탄 틴주의 개념의 실재,
(3) 교회의 해방과 정치 협력,
(4) 기독교 제국의 가능성,
(5) 교회의 정치 참여.
각 주제는 4세기 사료―유세비우스의 기록, 황제 칙령, 공의회 문서 등―에 대한 역사비평과 정치신학을 종합적으로 참조하여 분석한다.
아울러 본 논문은 단순히 요더의 입장을 반복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요더의 콘스탄틴주의 비판이 지닌 신학적 통찰을 수용하면서도, 그의 제자도 윤리가 현실 정치 앞에서 소극적 저항이나 분리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한계를 함께 성찰한다.
그럼에도 세속화된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 는 대조 사회가 되는 것은 공적 영역에서 참여의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다.
그렇기에 분리주의적 경향을 소거하고, 요더의 교회론을 구별하되, 참여하는 보다 적극적인 교회로 변모하는 작업이 요청된다.9)
9) James Davidson Hunter/배덕만 옮김,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정치신학의 한계와 가능성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4).
사회 참 여에 소극적인 요더의 교회론에 비해, 세상 한 가운데서 신실한 현존으 로 남아 있으면서도 참여하기를 제안한 제임스 데이비슨 헌터(James Davidson Hunger)의 ‘신실한 현존’은 요더의 교회론을 보다 긍정적이면 서도 현실적 처방으로 볼 수 있겠다.
그래서 요더의 교회론의 다음 이름으 로 ‘신실한 현존’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이를 위해 콘스탄틴 시대 의 역사적 자료를 비판적으로 독해하고, 최종적으로는 ‘국가조찬기도 회’ 사례 분석에 이 모든 논의를 적용하여 새로운 모델의 실효성을 검증할 것이다.
본 논문의 목적은 라잇하르트의 콘스탄틴주의에 대한 두 가지 시선, 곧 라잇하르트의 긍정론과 요더의 부정론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신학적 으로 대조하고 대결한다.
이로써 콘스탄틴주의의 양면성을 인지하면서 도 교회의 해방이 아니라 교회의 타락으로 이어졌음을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적 분석을 바탕으로, 교회가 세상의 권력 논리에 잠식되지 않으면서 도 고유한 정치 공동체로서 자신의 공적 책임을 감당하기 위한 전제 조건 으로서의 ‘신실한 현존’을 강조한다. II. 콘스탄틴은 진정으로 회심했는가?
이 장의 목표는 콘스탄틴 회심의 ‘진정성’(sincerity)을 둘러싼 신학 적 논쟁을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라잇하르트는 콘스탄틴을 십자가의 능력에 사로잡힌 인물로 묘사하며, 그의 회심을 정치적 계산으 로 보는 요더의 시각을 ‘신학적 선입견에 기반한 역사 왜곡’이라 일축한 다.10)
10)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3.
그러나 이 장은 그의 ‘진정성’ 프레임 자체가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다고 주장한다.
콘스탄틴 논쟁의 핵심은 그의 개인적 신앙심을 심리적 으로 추측하는 데 있지 않고, 그의 회심이라는 공적 사건이 교회의 윤리 적, 정치적 형식을 어떻게 근본적으로 재편했는지 분석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 장은 라잇하르트가 회심의 증거로 제시하는 사건들을 재검토하고, 특히 ‘세례 지연’, ‘종교적 혼합주의’, ‘국가 권력의 사용’이라 는 세 쟁점을 중심으로, 그의 회심이 순수하게 종교적인 것만은 아니며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개입된 것임을 논증할 것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라잇하르트의 주장이 가진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짚어야 한다.
첫째는 논쟁의 초점에 관한 것이다.
요더는 콘스탄 틴 개인의 회심 자체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11)
그에게 중요한 것은 콘스탄틴 이후 기독교가 어떻게 변했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가 콘스탄틴의 회심이 진실했다는 점을 지렛대 삼아 콘스탄틴주의 전체를 옹호하려는 것은 논점의 핵심을 비껴간 것이다. 둘째는 그의 역사 해석 방법론이 가진 문제다.
그의 ‘진실한 그리스도 인 콘스탄틴’ 서사는 당대 역사가인 유세비우스의 콘스탄틴의 생애 (Life of Constantine)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유세비우스는 객 관적인 역사가라기보다 자신의 후원자인 황제를 신학적으로 미화하고 정당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궁정 신학자에 가까웠다.
그의 저술은 객관적 역사 기록이라기보다는 황제를 이상화하려는 찬사(panegyric)의 성격 이 강하다.12)
11) John H. Yoder, The Priestly Kingdom: Social Ethics as Gospel (Notre Dame, IN: University of Notre Dame Press, 1985), 135.
12) A. D. Lee, “Traditional Religions,”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Age of Constantine, ed. Noel Lenski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176.
이러한 편향된 사료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라잇하르트 의 방법론은 콘스탄틴의 복합적인 모습을 신앙의 영웅으로 단순화하는 왜곡을 낳을 위험이 있다.
라잇하르트의 ‘진정한 회심’ 주장이 마주하는 첫 번째 난관은 25년간 의 ‘세례 지연’ 문제다.
그는 이를 ‘4세기에 널리 퍼져 있던 신학적 오류’의 결과로 해석하며 문제의 중요성을 축소한다.13)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콘스탄틴이 여전히 로마의 최고 제사장(Pontifex Maximus)으로서 제국 의 다신교적 의례를 주관해야 했던 정치적 역할을 의도적으로 외면한다.
임종 직전까지 세례를 미룬 것은 단순한 신학적 무지가 아니라 복음의 배타적 요구와 제국의 종교적 다원성 사이에서 의도적으로 선택을 유보 한 정치적 행위였다.
즉, 그의 몸은 한편으로는 기독교 공동체를 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 로는 제국의 비기독교인 신민들을 안심시켜야 하는 정치적 분열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세례 지연은 개인의 신앙적 결함 차원을 넘어 교회가 제국의 통치 논리 안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발생한 첫 번째 신학적 타협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두 번째 쟁점은 콘스탄틴의 종교적 혼합주의(religious syncretism) 문제에서 드러난다.
라잇하르트는 밀비우스 다리 전투의 환상과 군기에 사용된 ‘카이-로’(Chi-Rho) 상징을 콘스탄틴의 기독교 신앙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로 제시한다.14)
13)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31.
14) Ibid., 14-18.
그러나 그는 콘스탄틴이 회심 이후에도 오랫 동안 정복 불가능한 태양신(Sol Invictus) 숭배를 공적으로 병행했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다.
콘스탄틴이 주조한 동전에는 그리스도의 상징과 태양신의 형상이 나란히 등장했으며, 기독교인을 배려한 일요일 휴업령 에서조차 그날을 존엄한 태양의 날(dies Solis)이라는 이교적 명칭으로 선포했다.
이는 그의 종교 정책이 배타적인 복음 신앙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제국의 다양한 종교 상징을 하나의 통치 이데올로기 안으로 융합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결국 ‘카이-로’ 상징은 제국을 위한 또 하나의 강력한 상징으로 ‘활용’되었을 뿐이며, 이 과정에서 복음 은 유일한 진리가 아닌 제국의 안정을 위한 여러 종교 자원 중 하나로 격하되었다.
세 번째 쟁점은 라잇하르트가 ‘신실한 황제의 통치 행위’라고 긍정한 국가 권력의 강제적 사용 문제에서 발생한다.15)
15) Ibid., 31.
라잇하르트는 콘스탄틴 의 이단 대응을 교회를 보호하기 위한 경건한 행위로 묘사한다.
하지만 도나투스파(Donatists) 논쟁에서 드러나듯, 콘스탄틴은 신학적 설득이 실패하자 즉시 추방, 재산 몰수, 교회 폐쇄와 같은 제국의 강제력을 동원 했다
. 이는 예수의 가르침과 초대 교회의 윤리와 근본적으로 단절되는 지점이다.
요더는 누차 효율성을 추구하는 것은 기독교에 치명적인 독소 임을 강조한다.
그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을 통해 설명한다.
왕관을 거부하고 십자가를 받아들임으로써 그가 내린 결정은, 기꺼 이 ‘효율성’을 포기하게 만들 정도의 신실함으로 하나님의 신적 사랑 에 자신을 헌신하는 것이었다. … 따라서 예수가 포기하신 것은 단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형이상학적 지위뿐 아니라 오히려 그가 오셔서 거하게 된 인간 사회의 일들에 대해 아무런 제약 없이 행사할 수 있는 주권적 권력이었다.16)
요더가 보기에 효율성의 추구는 사회와 역사를 통제하려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성급하게 만들며, 점차 강제력을 사용하게 되고, 급기야 폭력에 이르고 만다.
십자가의 길이 아니라 국가의 권력을 이용해서 효율 성을 높이려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되었다.
결론적으로 라잇하르트가 집착하는 콘스탄틴의 개인적 진정성 여 부는 이 논쟁의 핵심을 결정적으로 비껴간다.
진짜 질문은 “교회가 정치 적이 되었는가”가 아니라 “교회가 십자가의 정치를 선택했는가, 아니면 칼의 정치를 선택했는가”이다.17)
16) John H. Yoder/신원하 ․ 권연경 옮김, 예수의 정치학 (서울:IVP, 2007), 402, 404.
17) 김기현, “존 요더의 평화주의는 사회 변혁의 한 모델인가?,” 「신앙과 학문」 25.3 (2020): 154-157.
앞서 살핀 ‘정치적 이유의 세례 지연’, ‘제국 통합을 위한 종교적 혼합주의’, ‘교회 문제 해결을 위한 국가 강제력 의 도입’은 콘스탄틴의 선택이 명백히 후자였음을 증명한다.
위에서 설명한바, 그의 통치 아래 일어난 변화는 제국이 복음의 논리 로 ‘회심’(conversion)한 사건이 아니라, 교회가 제국의 통치 논리 안으로 ‘흡수’(absorption)된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
이러한 흡수가 구체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는 다음 장에서 ‘콘스탄틴주의’의 실체를 통해 더욱 자세히 살펴볼 것이다.
III. 콘스탄틴주의는 허구인가?
라잇하르트는 콘스탄틴주의(Constantinianism)라는 개념 자체를 ‘논쟁을 위한 허구’이자 급진적 교회론자들이 만들어 낸 신학적 허수아비 라고 일축한다.18)
그러나 라잇하르트의 이러한 비판은 콘스탄틴주의를 단순한 정교 유착의 문제로 축소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이 개념은 훨씬 더 깊은 신학적 의미를 지닌다.
이는 ‘교회와 국가의 융합 속에서 발생하는 우상 숭배와 복음적 비전의 상실’에 관한 문제이며, 교회의 궁극적인 충성이 그리스도가 아닌 국가를 향하게 되는 신학적 변질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장은 콘스탄틴주의가 수사적 장치가 아니라 교회 의 사회적 위치와 윤리적 형식이 근본적으로 전환된 구조적 실재 (structural reality)임을 논증하고자 한다.
콘스탄틴주의가 허구가 아님을 보여주는 첫 번째 증거는 교회의 법적-제도적 통합이다.
라잇하르트의 책임 수행이라는 긍정적 평가와는 달리, 4세기의 역사적 자료들은 교회가 제국의 공식 구조 안으로 깊숙이 편입되었음을 보여준다.19)
18)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8.
19) H. A. Drake, “The Impact of Constantine on Christianity,” in The Cambridge Companion to the Age of Constantine, ed. Noel Lenski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6), 111-136.
313년 밀라노칙령 이후 성직자에게 부여된 세금 면제와 사법적 특권 그리고 황제가 직접 주재하며 신학 논쟁을 해결 하고 이단자를 국가의 이름으로 처벌했던 니케아 공의회(325)는 교회가 더 이상 세상과 구별된 대안 공동체가 아니라 제국의 통치 질서를 유지하는 하나의 기관으로 재편되었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라잇하르트는 양자의 통합을 가시화하는 풍성한 증거를 제시한다. 먼저 기독교의 법적 지위 확립 및 특권 부여다.20)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합법적인 종교로 확립하고, 이전에 이교도 사제단과 종교 단체들이 누리 던 면세 혜택과 같은 특권을 교회에 부여하였다.
그리고 재정적 지원 및 자선 사업 장려하였다.21)
그는 교회에 막대한 재정을 지원하여 건물 건축뿐만 아니라 빈곤층, 병자, 과부를 위한 자선 사역을 활성화하도록 명시적으로 지원하였다.
무엇보다도 라잇하르트는 교회 문제에 대한 황제의 개입 및 결정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한다.22)
콘스탄틴 대제는 교회 내 분쟁이 발생했을 때 로마 황제로서 분쟁을 해결하고 화합을 이루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권리이자 의무라고 믿었다.
그는 주교 회의를 소집하고, 장소, 재정, 교통 편을 제공했으며, 회의에 참석하여 논의에 기여했다.
주교들이 결정에 도달하면, 그는 이를 ‘신성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이단으로 판명된 자 들을 추방하는 등 법적 제재를 통해 교회의 결정을 뒷받침하였다.
위의 증거는 필시 신학적인 영향을 미친다. 콘스탄틴주의는 이러 한 구조적 통합이 낳은 신학적 결과다.
즉, 윌리엄 캐버너(William T. Cavanaugh)가 ‘신성성의 이전’(the migration of the holy)이라 명명한 현상이다.23)
20)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201.
21) Ibid., 302-303.
22) Ibid.
23) William T. Cavanaugh, Migrations of the Holy: God, State, and the Political Meaning of the Church (Grand Rapids, MI: Eerdmans Pub Co, 2011), 15.
교회가 제국의 제도적 일부가 되면서, 과거 교회 공동체의 구체적 실천 속에서 구현되던 거룩함이 점차 국가와 황제 개인에게로 옮겨갔다.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틴을 ‘교회 밖의 감독’이라 칭송한 것은 황제가 교회의 외적 질서를 넘어 신앙의 수호자라는 신성한 지위를 획득 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라잇하르트는 하나님의 섭리가 권력 구조를 포함한 역사의 모든 질서에 개입하여 그것을 변혁한다고 주장하며, 이러한 변화를 긍정 적으로 평가한다.24)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권력이 복음의 윤리 형식을 어떻게 왜곡하는지를 간과한다.
논점은 교회가 타락 이전에 순수했는지 의 여부가 아니다.
핵심은 교회가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고유의 정치적 형식(political form), 즉 십자가의 정치를 버리고 제국의 정치 형식을 채택했다는 데 있다.
요더는 “복음의 정치적 의미는 권력을 차지하는 데 있지 않고, 권력을 거절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25)
라잇하르트는 이후의 글에서 자신의 입장을 약간 수정한다.26)
24)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278.
25) Yoder, 예수의 정치학, 239.
26) Peter J. Leithart, “Afterword,” in John D. Roth, ed., Constantine Revisited: Leithart, Yoder, and the Constantinian Debate (Eugene, OR: Pickwick Publications, 2013), 176.
그는 콘스탄틴주의라는 용어가 단순히 경멸적인 단어가 아니라 “실제 역사적 현상을 묘사한다”는 점을 일부 수용한다. 다만 그가 끝까지 거부하는 것은 그 현상에 대한 요더주의자들의 전적인 부정적 신학 평가와 이를 근거로 교회의 공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정치신학이다. 즉, 그는 역사적 ‘변화’ 자체를 부인하기보다는 그 변화를 교회의 ‘타락’으로 규정하는 신학적 해석에 맞선다. 따라서 논쟁의 핵심은 변화의 유무가 아니라 그 변화의 신학적 의미와 윤리적 결과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에 있다.
결론적으로 콘스탄틴주의는 라잇하르트의 주장처럼 단순한 허구 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다.
그것은 요더의 표현처럼, 교회가 국가 권력과 결합하면서 스스로를 세상의 역사 관리자로 상상하게 된 하나의 습속 (habitus)이자 지금도 반복 재현되는 신학적 구조다.
복음의 진리가 강제 력을 통해 집행될 수 있다고 믿게 된 이 구조적 전환이야말로 우리가 직면해야 할 콘스탄틴주의의 진정한 실체다.
IV. 콘스탄틴은 교회를 해방했는가?
‘해방’(liberatio)이란 단지 박해로부터의 벗어남을 의미하는가, 아 니면 권력으로부터의 자율성과 복음적 윤리 형식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 하는가?
피터 라잇하르트는 콘스탄틴을 ‘교회의 박해를 끝낸 해방자’로 제시하며, 밀라노칙령과 이후의 조치들을 ‘정의를 위한 담대하고 의도적 인 행위’이자 ‘교회가 번성하게 된 계기’라고 평가한다.27)
27)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19, 53.
그러나 이 해방 이 실제로는 교회의 자율성을 제국의 질서와 맞바꾼 ‘비용 높은 거래’였 으며, 진정한 의미의 해방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포획(capture)이었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첫 번째 쟁점은 콘스탄틴이 부여한 것이 진정한 자유였는가, 아니면 선별적인 특혜였는가이다. 라잇하르트는 박해의 종식이 교회에 공적증언의 기회를 열어주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313년 밀라노칙령이 종 교의 자유(religionis libertas)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정책들 은 성직자 면세, 일요일 공휴일 지정, 국고 지원 등 기독교에만 집중된 특혜의 형태를 띠었다.
이는 모든 종교에 동등한 자유를 부여한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기독교)를 제국의 새로운 파트너로 선택하고 국가 제 도 안으로 편입시키는 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두 번째 쟁점은 그의 개입이 교회를 위한 ‘보호’였는가, 아니면 교회 를 향한 ‘통제’였는가이다.
라잇하르트는 콘스탄틴의 공의회 소집과 이 단 논쟁 개입을 교회를 위한 ‘보호’ 조치로 본다.
그러나 도나투스파와 아리우스파에 대한 국가의 강제적 처벌은 교회가 스스로의 문제를 신앙 공동체 안에서 해결하는 대신 제국의 강제력에 의존하게 만든 통제의 시작이었다.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틴을 ‘하나님이 선택한 통치자’로 묘사했듯이, 황제는 더 이상 외적 보호자가 아니라 교회의 내적 질서까지 규율하는 존재가 되었다.28)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교회가 칼의 보호를 받아 들이는 순간, 십자가의 형식을 상실”한 것이다.29)
세 번째 쟁점은 교회의 신실함과 정치성에 대한 근본적인 오해에서 비롯된다.
라잇하르트는 박해받는 교회가 반드시 신실한 교회는 아니라 며, 요더주의자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비정치적인 순교자 교회를 이상화 한다고 비판한다.30)
28) Eusebius, Life of Constantine, IV.24.
29) Yoder, 예수의 정치학, 142.
30)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80.
그러나 콘스탄틴 이전 교회는 결코 ‘비정치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는 로마 제국과는 다른 종류의 사회적 실천과 윤리를 가진, 그 자체로 매우 급진적인 정치 공동체(polis)였다.31)
그들의 정치 는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가 아니라 권력의 논리를 거부하는 ‘십자가의 정치’였다.
따라서 콘스탄틴의 해방이 가져온 진짜 전환은 교회가 비로소 정치적이 된 것이 아니라 교회의 정치의 종류가 대안적 정치(alternative politics)에서 제국적 정치(imperial politics)로 바뀐 것이다.
라잇하르트는 콘스탄틴의 통치를 통해 교회가 국가 권력을 활용하 여 서구를 복음화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는 국가가 스스 로를 구원자로 포장하기 위해 만들어 낸 신화를 교회가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에 불과하다.
캐버너에 따르면, 근대 국가는 종교 전쟁의 혼돈 으로부터 평화를 가져온 구원자라는 신화를 만들어 냈고, 이 과정에서 교회로부터 공적 권위를 빼앗아 스스로 새로운 예배의 대상이 되었다.32)
31) John D. Roth, “Introduction,” in Constantine Revisited, xvi.
32) William T. Cavanaugh/손민석 옮김,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근대의 신학-정치적 상상과 성찬의 정치학 (서울: 비아, 2019), 13-15.
따라서 라잇하르트가 말하는 복음화는 실제로는 복음이 국가를 변화시 킨 것이 아니라 교회가 국가의 구원 신화에 종속된 사건이다. 결국 라잇하르트가 ‘세례 받은 로마’라고 부르는 현상은, 캐버너의 용어를 빌리자면, ‘신성성의 이전’이 완료된 상태를 의미한다.
즉, 교회의 고유한 정치적 상상력과 충성의 대상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부터 세속 국가로 옮겨간 것이다.
교회가 국가의 도덕 관리인 역할을 수용하고 국가 권력을 통해 선을 실현하려 할 때, 교회는 더 이상 대안적 공동체로서 존재하지 못하고 국가라는 구원자의 전례(liturgy)에 참여하는 보조적 기관으로 전락하고 만다.33)
결론적으로 라잇하르트가 말하는 ‘해방’은 제국의 언어로 번역된 복음의 모습일 뿐이다.
캐버너가 지적하듯, 라잇하르트의 공공 교회 옹 호는 역설적으로 ‘제국적 상상력에 교회가 연루되는 것’을 재생산하는 결과를 낳는다.34)
즉, 그가 묘사하는 ‘자유’는 권력의 논리를 거부할 수 있는 복음의 자율성이 아니라 제국의 질서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유다. 그러므로 교회는 콘스탄틴에 의해 해방된 것이 아니라 포획 된 것이다. 결국 교회는 박해로부터의 자유를 얻는 대가로 제국의 상상력 에 종속됨으로써 권력에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더 근본적인 윤리적 자유를 상실했다.35)
33) 앞의 책, 22-24.
34) William T. Cavanaugh, “The Liturgies of Church and State,” in Constantine Revisited, 58.
35) Yoder, The Priestly Kingdom, 146.
V. 콘스탄틴은 교회를 제국화했는가?
라잇하르트는 콘스탄틴 이후의 변화를 ‘제국의 회심’이자 ‘복음 의 승리에 대한 징표’로 규정하며, 기독교 제국의 형성을 신학적 성취 로 해석한다.36)
36)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279.
그러나 본 장은 라잇하르트가 말하는 ‘승리’가 실제로 는 교회의 고유한 정치적 형식이 제국의 논리에 잠식당한 ‘신학적 포섭’(theological co-optation)이었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제국화의 첫 번째 증거는 신학의 제국화다.
라잇하르트는 니케아 공의회를 그리스도를 존중하는 통치 모델로 이상화한다.37)
하지만 이는 신학적 분별의 장이 어떻게 제국 통치의 도구로 변질되었는지를 간과한 다. 황제가 직접 공의회를 소집하고, 그 결정을 국가법으로 공포하며, 이단자를 국가의 적으로 처벌한 것은 ‘정통 신학이 정치적으로 무기화된 시작’이었다.38)
진리가 더 이상 공동체의 신실한 증언을 통해서가 아니 라 국가의 강제력을 통해 확보될 수 있다는 믿음이 바로 교회가 제국화되 었다는 핵심 증거다. 두 번째 증거는 교회의 자기 이해, 즉 상상력의 제국화다.
라잇하르 트는 ‘교회는 언제나 정치적’이라고 주장하며 제국과의 협력을 정당화한 다.39)
하지만 이는 교회가 선택한 ‘정치의 종류’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묻지 않는다. 교회의 시간, 공간, 권위 개념이 제국의 언어로 재구성되었 다.40)
37) Ibid., 221.
38) Yoder, The Priestly Kingdom, 155.
39)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270.
40) 캐버너, 신학, 정치를 다시 묻다, 136
교회의 공공성은 더 이상 세상과 다른 제자도 공동체의 윤리를 통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제국의 가치인 정통, 일치, 질서를 수호하는 것을 통해 실현되게 되었다. 라잇하르트는 이러한 제국과의 협력을 기독교의 종말론을 성취한 성과라고 평가한다. 교회는 4세기에 ‘타락하지’ 않았다.
교회는 그보다 더 강인하다.
오히려 교회는 바로 참된 도시로서 인정받고 존중받았다.
로마를 세운 시 민적 희생 제의를 없애고 성찬의 공동체를 보호하고 증진함으로써, 콘스탄틴이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사실상 정의와 평화의 공동체 로서 교회의 우월성을 인정했던 것이다.
그가 그것을 완전히 인식했 든 못했든 간에, 그는 교회야말로 자신과 다른 모든 황제가 모방하기 위해 힘써야 할 모델이었음을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콘스탄티누스가 이룩한 ‘기독교화’, 즉 세례 받은 로마이다. 이것은 세속 문명이 아닌, 비희생적 문명의 종말론적 확립이었다.41)
지나치게 낙관적인 이 평가는 복음의 급진성을 세속 권력의 논리에 순응시키는 위험을 간단히 간과한다.
‘교회의 사회적 존재의 형태가 바 로 그 선포의 내용’이며, 복음은 권력을 거부하는 십자가의 형식을 통해 그 내용을 드러낸다.42)
교회가 제국의 칼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 했을 때, 그 선포의 내용은 이미 복음이 아니게 된 것이다. 라잇하르트의 기독교 제국 비전이 가진 더 근본적인 문제는, 그가 정치 권력을 문화 변혁의 핵심 동력으로 상정한다는 점에 있다.
사회학자 제임스 헌터는 정치를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기독교의 하향식(top-down) 모델이 문화 변동의 실제 방식과는 무관한 ‘정치적 환상’이라고 비판한 다.43)
41)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33.
42) Yoder, 예수의 정치학, 140.
43) 헌터,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7-14.
그에 따르면, 이러한 접근은 의도와 달리 사회적 반감만 키우고 기독교의 증언을 훼손하는 ‘아이러니’와 ‘비극’으로 귀결되기 쉽다.
문화는 정치 권력으로 정복되는 것이 아니라 신실한 참여를 통해 점진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라잇하르트는 ‘로마의 세례’가 구체적인 역사적 증거들을 통해 입증 된다고 주장한다.44)
그는 콘스탄틴이 십자가형과 검투사 경기를 폐지하 고, 유아 살해를 금지하며, 노예와 여성을 보호하는 법령들을 제정한 것을 정치의 기독교화 증거로 제시한다.
또한 제국 전역에 걸친 웅장한 교회 건축에 대한 황제의 재정 지원과 주일을 공적 휴일로 지정한 것은 로마의 공적 시간과 공간이 기독교적으로 재편되었음을 보여준다.
콘스 탄틴의 공적인 기도와 설교 그리고 기독교 상징의 사용 역시 중요한 증거 로 본다.
이러한 법적, 사회적, 상징적 변화들이 이교 로마가 죽고 기독 교적 질서로 다시 태어나는 세례의 과정을 실제로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이다.
라잇하르트는 교회가 국가의 ‘칼’을 선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보지 만, 헌터는 이러한 시각이 권력의 본질을 오해한 결과라고 비판한다.45)
44)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275-290.
45) 헌터,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115-125.
그에게 권력은 중립적 도구가 아니라 타자에게 자신의 의지를 강요하고 관철하는 능력 그 자체다.
따라서 교회가 국가의 강제력을 수용하는 순 간, 필연적으로 복음의 고유한 방식인 섬김과 자기희생을 버리고 권력의 방식인 지배와 강제를 내면화하게 된다.
결국 기독교적 통치라는 이상은 교회가 권력의 타락시키는 속성에 굴복하는 비극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라잇하르트의 주장은 바로 이 교회의 근본적인 형식을 간과함으로써 교회가 제국적 권력 구조를 신성화하는 위험한 길을 열어준다. 결국 제국화는 교회가 권력과 협력한 상태가 아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의 통치 를 국가 권력의 형식으로 오인한 근본적인 신학적 착종(entangling)이 었다.
VI. 콘스탄틴은 교회를 폭력화했는가?
라잇하르트는 교회의 비폭력주의를 ‘교회의 사명에 대한 분파주의 적 왜곡’으로 비판하며, 교회의 역할은 ‘칼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칼이 사용되는 방식을 형성하는 것’에 있다고 주장한다.46)
그러나 본 장은 교회가 ‘정의로운 폭력’을 다스리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십자가의 비폭력 윤리를 포기한 것이며, 이는 교회의 ‘신학적 규율’이 아닌 ‘신학적 타 락’(theological corruption)의 시작이었음을 밝히고자 한다.
라잇하르트는 로마서 13장에 근거하여 콘스탄틴의 군사력을 ‘기독 교적 정의’를 위한 도구로 해석한다.47)
46)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244.
47) Ibid., 249.
하지만 역사적 현실은 그 정의가 어떻게 교회의 신학적 반대파를 제거하는 국가 폭력으로 나타났는지를 보여준다.
니케아 공의회 이후 아리우스파에 대한 추방과 재산 몰수는 신학적 차이가 국가에 의해 처벌받는 ‘종교적 폭력의 제도화’를 의미했 다.
이를 유세비우스는 ‘일치와 평화를 위한 황제의 거룩한 열정’으로 묘사했다.48)
하지만 이는 복음이 아니라 제국의 질서를 기준으로 ‘정의’ 가 재편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다. 라잇하르트는 교회의 전쟁과 폭력에 대한 입장이 콘스탄틴 황제 이후 ‘근본적인 신학적 변화의 결과라기보다는 교회의 정치적 지위 변화 의 결과’로 더 타당하게 설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49)
그러나 전환의 기점 임은 분명하다. 즉, “이 징표 안에서 승리하라”(in hoc signo vinces)는 표어와 함께 군기에 새겨진 크리스토그램은 십자가가 더 이상 제국에 저항하는 고난의 상징이 아니라 제국의 승리를 보장하는 군사적 상징으 로 전락했음을 보여준다.
이는 폭력에 대한 ‘신학적 규율’이 아니라 오히 려 폭력에 대한 ‘신학적 세례’였다.
라잇하르트는 비폭력주의를 ‘악인에게 칼을 넘겨주는 것’이자 ‘기독 교의 정치적 소명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50)
그러나 이러한 현 실 정치 수용론은 복음의 급진성을 세속 권력의 논리에 순응시키는 위험 을 내포한다.
크레이그 카터(Craig Carter)는 라잇하르트의 입장을 탈 자유주의적 순응주의(postliberal accommodationism)라고 날카롭게 비 판한다.51)
48) Eusebius, Life of Constantine, III.64.
49) Leithart, Defending Constantine, 278.
50) Ibid., 251.
51) Craig A. Carter, “Theses on Constantinianism,” in Constantine Revisited, 3, 6-7. 카터의 이 말은 라잇하르트의 주장이 지닌 내적 모순을 잘 드러낸다. 즉, 그가 사용한 탈자유주의적(postliberal)은 교회가 세상과 구별되는 독특하고도 고유한 정체성을 지녔음을 강조하는 말이고, 순응주의적이라는 말은 자유주의가 기독교 복음을 세상이 이해할 수 있도록 번역하고 변증한 것이 결국 세속의 논리에 순치 되고 말았다는 뜻이다. 세상과 구별되는 교회와 세상과 분리되지 않는 교회라는 이중적 과제를 동시에 거머쥐려다 둘 다 놓쳤다는 비판이다.
즉, 교회의 독특성을 강조하면서도 결국 제국의 구조 안에서 복음 윤리를 실현할 수 있다는 그의 입장이, 역설적으로 ‘복음의 강제화’ 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십자가는 세상을 통제하기 위한 ‘전략’이 아니라 기독교 정치의 내용 그 자체이며,52) ‘국가에게 정의롭게 죽이는 법을 가르치는 교회는 이미 복음을 배신한 것’이다.
교회의 진정한 정치적 소명은 칼의 성화(sanctify) 가 아니라 칼 없이 살아가는 공동체의 존재를 통해 세상에 대안을 제시하 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라잇하르트 자신도 이 책 이후의 글에서 기독교 제국이 초래한 폭력의 문제에 대해 훨씬 더 솔직한 입장을 보인다.53)
그는 자신 의 초기 주장이 기독교 왕국이 동반한 ‘수많은 유혹과 위험 그리고 모호 함’을 충분히 다루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특히 그는 ‘강제와 폭력에 교회 가 자주 연루’되었던 어두운 역사를 시인한다.
이는 라잇하르트의 논리 안에서도 교회가 국가의 칼을 긍정하는 순간 폭력에 연루될 위험을 피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자기 고백적 진술이 다.
그가 말하는 규율된 폭력이라는 이상과 연루된 폭력이라는 현실 사이 의 간극이야말로 요더가 제기한 비판의 핵심이 타당함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므로 콘스탄틴 이후 교회가 폭력을 수용한 것은 단순한 윤리적 타협이 아니었다. 그것은 ‘교회적 상상력의 콘스탄틴적 포로 상태’이 며,54) ‘교회가 폭력을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예배 자체가 시민 종교의 실천이 되는’ 구조적 전환이었다.55)
52) Yoder, 예수의 정치학, 239.
53) Leithart, “Afterword,” in Constantine Revisited, 176.
54) Yoder, The Priestly Kingdom, 149.
55) Cavanaugh, Migrations of the Holy, 33.
칼을 든 교회는 더 이상 복음을 증언할 수 없다. 십자가는 비폭력의 형식 안에서만 진실하기 때문 이다.
하지만 요더의 주장은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콘스탄틴의 기독교 공인과 국교화 이후의 역사 전개 과정을 전면 부정하고 교회 안에만 머무 르려 할 가능성이 있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선거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민주당과 공화당이라는 양대 정 당 사이에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고, 최선이나 차선이 아니라 최악을 피하기 위한 투표인 경우도 많다.
그러나 한 국가의 지도자가 누가 선출되느냐에 따라서 국가 공동체의 시민의 안녕과 평화는 크게 달라지며, 교회 역시 그 영향에서 비켜날 수 없다.
교회는 현실 정치 구조 안에서 어떻게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임무를 수행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 적인 답변을 제공하는 데 소극적이다.
바로 이것이 라잇하르트가 요더를 비판하는 지점이다.
또한 요더의 공동체인 아나뱁티스트 진영 내에서도 적극적인 참여를 개진하는 목소 리도 있다.56)
56) 존 레데콥/배덕만 옮김, 기독교 정치학: 교회와 국가의 관계에 답하다 (대전: 대장간, 2011).
콘스탄틴주의가 해체되거나 무력한 상황, 곧 기독교 국가 이후(Post Christendom)의 기독교가 너른 광장 자체를 포기하거나 관망 만 하는 것은 적절한 태도라고 보기 어렵다.
요더의 신학이 세상과의 단절을 초래하는 분리주의적 위험이 있다는 것은 과장된 비판이지만, 현실적이고 능동적인 전략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건설적인 참여의 필수불가결한 전제는 제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후에 살필 국가조찬기도회를 비롯 한 우리 기독교의 사회 참여 양태는 순응주의적이었다.
그렇기에 제임스 헌터가 지적하듯, 교회의 공적 역할은 정치 권력을 장악하려는 직접적인 시도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신실한 현존’이 전제되지 않은 섣부 른 사회 참여는 교회가 국가 권력의 논리에 쉽게 동화되거나 그 도구로 이용당하는 비극을 낳을 뿐이다.
즉, 세상 속에서 섬김과 증언이라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먼저 회복하지 않는다면, 어떠한 적극적 참여라도 결국 또 다른 형태의 콘스탄틴주의로 변질될 공산이 크다.57)
57) 헌터,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240-252.
VII. 한국의 콘스탄틴주의 : 시험 사례로서의 국가조찬기도회
라잇하르트의 시각을 따르면, 한국의 국가조찬기도회는 교회가 더 이상 사회의 주변부에 머무르지 않고 새롭게 부여된 책임을 신실하게 감당하려는 노력으로 해석될 수 있다.58)
58) 한국 국가조찬기도회는 미국의 모델을 직접적으로 원용한 것이다. 윤경로의 연구 에 따르면, 이 기도회를 처음 제안하고 추진한 핵심 인물은 한국대학생선교회 (CCC)의 김준곤 목사였다. 그는 당시 공화당 실세였던 김종필 의장 등과 논의하여 1965년 국회조찬기도회를 시작했고, 이후 김종필의 후원을 통해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하는 제1회 대통령조찬기도회를 성사시켰다. 윤경로, “분단 70년, 한국 기독교의 권력유착 사례와 그 성격,” 「한국기독교와 역사」 44 (2016): 51-52.
목회자들이 대통령과 지도자들 을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것은 라잇하르트가 말하는 ‘그리스도를 존중 하는 통치 모델’을 구현하려는 시도이자 ‘정치를 기독교화’하려는 신학 적 기획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국가조찬기도회는 라잇하르트의 긍정적 해석과는 정반대 로 교회가 복음의 고유한 형식을 상실하고 제국의 논리에 포섭되는 콘스 탄틴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여러 연구자가 지적하듯, 국가조 찬기도회는 박정희 군사 정권 시절부터 시작되어 온 정교 유착(政敎癒 着)의 대표적인 사례로 비판받아 왔다.
그 실체는 설교자들이 강단에서 선포한 언어를 통해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다.
첫째, 대통령을 신성한 통치자로 신격화하는 ‘제국 신학’이 반복되었다.
유세비우스가 콘스탄틴을 ‘하나님의 친구’이자 ‘열세 번째 사도’로 칭송했듯이, 국가조찬기도회의 설교자들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성서 속 위대한 지도자와 동일시했다.
2014년 김삼환 목사는 박근혜 대통 령을 향해 “하나님의 일꾼, 고레스와 같은 지도자가 될 줄 믿습니다”라고 설교했다.59)
59) 장형철, “한국 개신교 보수 진영의 정치 담론 분석: 2000년 이후 국가조찬기도회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중심으로,” 「사회이론」 53 (2018): 108. 그러나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당할 상황에 처하자 조변석개한다. 이는 교회의 윤리적 판단 기준 이 복음의 진리가 아니라 세속 권력의 흥망성쇠에 완전히 종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콘스탄틴주의의 가장 명백한 증상이자, ‘섭리적 통치자’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신학적 신념이 아니라 권력의 유무에 따라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음을 폭로한다.
앞의 논문, 109.
이방의 왕 고레스를 하나님의 도구로 묘사한 이사야서를 인용하여 대통령의 통치에 신적인 정당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는 라잇하 르트가 말하는 기독교적 통치가 아니라 유세비우스적 궁정 신학의 현대 적 재현에 가깝다.
둘째, 교회의 고유한 윤리적 정체성과 국가 통치자의 직분이 위험하 게 혼합되었다.
2009년 이용규 목사는 이명박 대통령을 향해 “임기 5년의 대통령이란 자리보다 장로라는 거룩한 직분을 더 소중하게 여기면서 국정을 운영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설교했다.60)
표면적으로는 신앙 적 권면처럼 보이지만, 이는 ‘장로 대통령’이라는 상징을 통해 정권의 도덕성에 기독교적 보증을 서 주는 결과를 낳는다.
교회의 직분이 국가 통치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순간, 교회는 비판적 거리 를 상실하고 권력 일부가 된다.
셋째, 예언자적 ‘쓴소리’가 사라지고 아첨에 가까운 ‘단소리’만 남았 다.
한규무가 지적하듯, 국가조찬기도회는 권력의 불의를 지적하는 대신 칭송하고 축복하는 자리로 전락했다.61)
국가조찬기도회가 군사정권에 대한 노골적인 찬양의 장이 되었던 대표적인 사례는 1980년 8월 6일 열린 ‘나라를 위한 조찬기도회’다.
장규식의 연구에 따르면, 이 기도회는 5.17 쿠데타와 광주 학살을 통해 집권한 전두환 당시 국보위 상임위원장을 위해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경직, 조향록, 김준곤 등 23명의 교계 지도자가 참석하여 전두환의 집권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했으며, 이 광경은 KBS와 MBC를 통해 전국에 생중계되며 신군부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62)
60) 앞의 논문, 108-109.
61) 한규무, “‘국가조찬기도회,’ 무엇을 남겼는가,” 「기독교사상」 541 (2004): 29-31.
62) 강규식, “군사정권기 한국교회와 국가권력: 정교유착과 과거사 청산 의제를 중심 으로,” 「한국기독교와 역사」 24 (2006): 117.
그러나 때에 따라 처신을 달리한다.
예를 들어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는 찬양을 마다하지 않지만, 그가 권력을 잃거나 잃을 조짐을 보이면 조변석개한다.
대표적으로 현직에 있을 때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극찬 했던 국가조찬기도회의 설교는 돌아선다.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는 대통 령을 향해 찬사와 지지를 아끼지 않다가, 탄핵 국면에 접어들자 입장을 유보로 돌린다.
대통령이 파면되고 구속되자 과거의 아부성 발언은 자취 를 감추고 잘못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논조로 급선회한다.63)
이는 교회의 윤리적 판단 기준이 복음의 진리가 아니라 세속 권력의 흥망성쇠에 완전히 종속되었음을 보여주는 콘스탄틴주의의 가장 명백 한 증상이자, ‘섭리적 통치자’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신학적 신념이 아니 라 권력의 유무에 따라 언제든 폐기될 수 있는 정치적 수사에 불과했음을 폭로한다.
그러므로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드러난 교회의 이러한 권력 지향성은 기독교와 권력의 밀착의 씁쓸함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라잇하르트의 이론적 옹호와는 달리, 그의 현실적 우려가 한국의 역사 속에서 그대로 실현된 것이다. 결국 국가조찬기도회 사례는 라잇하 르트의 기독교 제국 긍정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독재를 옹호하고 교회의 자기 정체성을 잃게 만드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동시에 이러한 현실 앞에서 단순히 분리와 소극적 참여를 주장하는 요더의 전략만으로는 복잡한 현대 사회 속에서 교회가 어떻게 공적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답을 주지 못한다는 점 또한 드러난다.
따라서 한국교회에 필요한 것은 세상을 지배하려는 시도도, 세상으 63) 앞의 논문, 109. 36 한국조직신학논총 제80집 (2025년 9월) 로부터 도피하려는 시도도 아닌, 제임스 헌터가 말하는 ‘신실한 현존’의 회복이다.
‘신실한 현존’은 국가 권력의 정점에서 하향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사회의 모든 영역과 각자의 삶의 자리 속으 로 깊이 들어가 섬김과 증언을 통해 공동선(common good)에 기여하는 상향식 모델이다.64)
64) 헌터, 기독교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240-252. 김기현 | 복음은 콘스탄틴을 필요로 하는가? 37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국가조찬기도회는 권력자와 의 근접성을 추구하는 ‘신실하지 못한’ 현존의 전형이며, 그 실패는 교회 가 있어야 할 자리가 권력자의 조찬 테이블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구체적 인 삶의 현장, 특히 소외된 이들의 눈물 곁임을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VIII. 결론
본 논문은 “복음은 콘스탄틴을 필요로 하는가?”라는 질문을 중심으 로, 그의 통치를 ‘복음의 공적 성취’로 보는 라잇하르트의 주장과 이를 교회의 윤리적 형식이 제국 질서에 포섭된 콘스탄틴주의로 비판하는 요더의 시각을 비판적으로 검토했다.
본고의 분석 결과 콘스탄틴의 회심 은 교회의 ‘해방’이 아니라 제국의 논리 안으로 ‘흡수’된 사건이었으며, 이로 인해 교회는 십자가의 비폭력 윤리를 상실하고 제국의 강제력을 내면화하는 제국화와 폭력화의 길을 걷게 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콘스탄틴주의의 그림자는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본 고가 시험 사례(test case)로 분석한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생생하게 재현되고 있다.
이 사례는 교회가 어떻게 정치 권력과 의 유착을 복음의 영향력으로 착각하고 불의한 권력을 축복하며 예언자 적 목소리를 상실하는지를 명백히 보여주었다.
이는 콘스탄틴 이후 교회 가 겪은 정치신학적 전환이 여전히 우리의 현실임을 시사하며, “복음은 칼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부정적인 답변 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결국 라잇하르트가 콘스탄틴 논쟁의 핵심은 과거 황제의 공과를 따지는 것을 넘어, 오늘날 교회가 세상 속에서 어떤 정치적 형식을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신학적 질문이다.
신실한 현존, 즉 교회가 교회되는 것이 바로 이 질문에 대한 신학적 응답이다.
그것은 라잇하르트가 옹호하는 기독교 왕국 모델과 그의 비판처럼 분리주의적 경향은 제거하고 교회가 신실한 현존으로 존재하는 것이 주요한 과제다.
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말처럼, “교회는 세상을 작동하게 하라는 부 름을 받은 것이 아니라 교회가 되라는 부름을 받았다.”
교회는 이제 콘스 탄틴을 옹호하거나 반복할 것이 아니라 복음을 따라 고난을 감내하고, 사랑을 선택하며, 십자가의 윤리를 실천하는 평화의 공동체로 자신을 다시 형성해야 한다.
그것이 콘스탄틴 이후의 교회가 마침내 선택해야 할 참된 해방이며, 오늘날 한국교회가 회복해야 할 윤리적 정체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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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초록
복음은 콘스탄틴을 필요로 하는가?― 피터 라잇하르트와 존 요더의 정치신학 대화와 그 한국적 적용 본 연구는 피터 라잇하르트의 콘스탄틴 옹호론을 존 하워드 요더의 정 치신학을 통해 비판적으로 재검토하고, 한국교회를 위한 대안적 정치신 학 모델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본고는 라잇하르트 의 핵심 주장들을 비판하며, ‘콘스탄틴주의’가 신학적 허구가 아닌 교회 의 윤리적 형식이 제국 질서에 포섭된 구조적 실재임을 논증한다. 또한 요더의 제자도 윤리가 지닌 ‘소극적 저항’의 한계를 지적하고, 제임스 헌 터의 ‘신실한 현존’ 개념을 통해 그 대안을 모색한다. 나아가 이 모든 신 학적 논의를 현대 한국교회의 정교 유착을 상징하는 ‘국가조찬기도회’ 사례에 적용하여, 콘스탄틴주의가 오늘날에도 반복되고 있음을 분석하 고, 복음의 본질에 근거한 교회의 올바른 정치 참여 방식이 무엇인지를 제안한다.
주제어 ‖ 콘스탄틴주의, 존 요더, 정치신학, 신실한 현존, 국가조찬기도회
Abstract
Does the Gospel Need Constantine?: The Political Theology Dialogue between Peter Leithart and John Howard Yoder and Its Korean Application
Kim, Kihyun, (Ph.D. Professor, Department of Theology Korea Baptist Theological University/Seminary Daejeon, Korea) This study aims to critically re-examine Peter Leithart’s defense of Constantine through the political theology of John Howard Yoder and to propose an alternative model of political theology for the con temporary Korean church. This paper critiques Leithart’s core claims, arguing that “Constantinianism” is not a polemical fiction but a struc tural reality wherein the church’s ethical form was co-opted by the imperial order. It also addresses the limitations of Yoder’s own strat egy of passive resistance, seeking an alternative in James Davison Hunter’s concept of “faithful presence.” Furthermore, this entire theo logical discussion is applied to the case of the Korean National Prayer Breakfast, a symbol of church-state collusion, to analyze how Constantinianism is replicated today and to propose a faithful mode of political participation for the Korean church, one that is grounded in the cruciform nature of the gospel.
Keywords ‖ Constantinianism, John Howard Yoder, Political Theology, Faithful Presence, National Prayer Breakfast ∙
투고접수일: 2025년 08월 12일 ∙ 심사(수정)일: 2025년 08월 27일 ∙ 게재확정일: 2025년 08월 31일
한국조직신학논총 제80집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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