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들어가는 말
창조론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학자로서 평생 천착한 중심 주제 중 하 나다.1)
1) 특별히 세상의 창조 시작 부분에 대한 창세기 첫 몇 장에 대한 해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인생 전체 에서 최고 관심사 중 하나였다. W. A. Christian, “The Creation of the World,” in A Companion to the Study of St. Augustine, ed. Roy W. Battenhouse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55), 315. 거의 30년에 걸쳐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에 대한 다섯 개의 주 석과 그 외에도 관련된 많은 논의를 집필하였다: On Genesis: A Refutation of the Manichees; Unfinished Literal Commentary on Genesis; Confessions 13권;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The City of God. Edmund Hill, Introduction of On Genesis: A Refutation of the Manichees and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in The Works of Saint Augustine, vol. I/13, ed. John E. Rotelle, O.S.A. (Hyde Park, NY: New City Press, 2002), 13-14 참조. 이 논문 에서 사용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라틴어 일차자료는 Patrologia Latina(PL) 시리즈로서 다음의 웹 싸이트를 사용하였다. https://www.augustinus.it/latino/index. htm 참조. 아우구스티누스의 영 어 일차자료는 The Works of Saint Augustine: A Translation for the 21st Century(이후부터 WSA) 시리즈를 사용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창세기 주석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은 서방 기독교에서는 중세와 종교 개혁기까지 창세 기 주석의 “정점”(the apex)으로 평가된다.2)
그가 추구했던 문자적 해석 이란, 세상의 창조 이야기를 비유적 해석보다는 일차적으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실제로 발생한 것에 대한 적절한 의미에 따라”(according to their proper meaning of what actually happened) 저자의 의도를 이해하는 것 이다.3)
2) Andrew Brown, “Augustine’s View of Creation and Its Modern Reception,” in Augustine and Science, eds. J. Doody, A. Goldstein, K. Paffenroth (Lanham, MD: Lexington Books, 2013), 36; Bradford L. McCall, “Augustine’s Theolog(ies) of Creation: Simultaneous Creation, ‘Seminal Seeds’, and Genesis 1-3,” Studia Ełckie 25/2 (2023): 137.
3)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1.17.34[WSA I/13:183]; 1.19.38-1.21.41. 창세기 는 아가서에 있는 “우의적” 표현이 아니라 사무엘서나 열왕기의 책들처럼 역사적 사건으로 발생한 것에 대해 “매우 단순하게 말한다.” 8.1.2[WSA I/13:346]; Revisions 2.24[WSA I/2:131] 참조. 물 론 아우구스티누스가 창세기나 구약의 역사서에 대한 그 어떤 비문자적 해석도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창조 기사에 대한 기독론적이며 교회론적 해석도 추구하였다. K. E. Greene-McCreight, Ad Litteram: How Augustine, Calvin, and Barth Read the “Plain Sense” of Genesis 1-3 (New York: Peter Lang, 1999), 106. 그러나 아우구스티누는 창세기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예표적 해 석이 그 인물이나 사건의 역사적 실제성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가령 아담과 에덴동산 은 예언적 비유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아담은 흙에서 만들어진 첫 인간이며 에덴은 지구상의 특 정한 장소에 실제로 존재했다.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8.1.1[WSA I/13:346]. 아우구스 티누스가 창세기 주석에서 제시한 그의 전반적인 성경 해석학의 원리에 대한 자세한 분석에 대해선 다음의 선행 연구들을 참고하기 바란다. 우병훈,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세기 해석의 유연성: ‘참된 의미는 생육하고 번성한다,’” 「개혁논총」 66 (2023): 45-85; 서원모,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세기 문 자적 해설』 (De Genesi ad litteram)에 나타난 성경 해석 원리,” 「장신논단」 47/4 (2015): 69-96; Greene-McCreight, Ad Litteram, 32-94.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에서 핵심적 개념 중 하나가 ‘종자적 이성’ (rationes seminales, seminal reasons)이다.4)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을 “동 시에”(simul, 집회서 18:1) 그리고 “한순간”(ictus)에 창조하셨다.5)
창조의 바로 그 순간적 행위를 통해 하나님은 장차 형체를 갖추게 될 피조물의 종 자적 이성을, 즉 존재의 씨앗을 땅에 심으셨다.6)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 가 말한 ‘동시적이며 즉각적인 창조’는 모든 피조물이 완전한 형태로 창조 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천사와 인간 영혼 등 일부 예외적인 피조물을 제 외하면, 대부분의 생명체는 창조 당시 “보이지 않게, 잠재적으로, 그리고 인과적으로”(invisibiliter, potentialiter, causaliter) ‘종자적 이성’ 안에 내 재된 형태로 창조되었다.7)
4)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종자적 이성’을 다양하게 표현한다: “원인적 이성들”[causales rationes] (6.14.25), “근원적 이성들”[rationes primordiales](6.11.19), “원인의 시작”[primordia causarum](6.10.17), “종자적 이성들”[rationes seminales](10.20.35), “이성들”[rationes] (4.33.51). 본 논문은 질송(Étienne Gilson, 1884–1978)의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를 번역한 김태규의 종자적 이성이라는 번역을 이 개념에 대한 대표 용어로 사용한다. Étienne Gilson, The Christian Philosophy of Saint Augustine, 에티엔느 질송,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 김태 규 역(서울: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2010), 399-406.
5)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용하던 옛 라틴 번역(the Vetus Latina)에는 집회서 18:1이 다음과 같이 진술 되어 있다. Ecclesiasticus(Sirach) 18:1: “Qui vivit in aeternum creavit omnia simul”(He who lives forever created all things at once). 옛 라틴 번역은 70인역에 있는 ‘모든’이라는 헬라어 ‘π άντα’를 ‘동시적으로’라는 라틴어 ‘simul’로 오역한 것이다. 또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창조는 시간 의 거리를 두고 차례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눈 깜박할 만큼의 순간에 이루어진 것이다.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34.55[WSA I/13:275]; Confessions 7.1.1; 7.12.23; 9.8.18. Gerald P. Boersma, “The Rationes Seminales in Augustine’s Theology of Creation,” Nova et Vetera 18/2 (2020): 427.n.42. 아우구스티누스의 동시적이며 즉각적인 창조론은 집회서 18:1 이외에도 창세기 2:4b에도 근거하고 있다. 창세기 2:4b에 대한 해석은 아래에서 논의하기로 한다.
6)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33.51[WSA I/13:272].
7) Augustine, Gen. litt 6.6.10[WSA I/13:306]. 그 외 종자적 이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은 다음을 참조하라.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3.9.16; 5.4.11; 5.5.14; 5.7.23; 5.23.45; 6.6.11; 6.14.25; 6.15.26; 6.16.27.
종자적 이성은 생명체의 씨앗과 같은 역할을 하는 비물질적이며 이성 적인 잠재력이다.
나무가 씨앗 속에 잠재되어 있듯이, 각 피조물의 완전체 역시 종자적 이성 안에 내재되어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종자적 이성은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하나님이 그 생명체를 위해 정하신 최종 형태를 갖게 한다. 이러한 개념은 다윈(Charles R. Darwin, 1809-1882)의 종의 기원 발 표 이후 유신진화론(Theistic Evolution) 진영에서 진화론적 창조론의 신 학적 근거로 자주 인용 되어왔다.8)
이들은 종자적 이성 안에 있는 잠재성 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발현한다는 점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이 진 화론적 창조 개념과 조화될 수 있다고 본다.9)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의 배후에 있 는 형이상학적, 신학적 전제들을 간과한 채, 그의 용어와 표현에 현대 과 학적 이론을 투영한 결과일 수 있다.
우즈(Henry Woods, 1868-1952)가 지적하였듯, 유신진화론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에 대한 신학적 진술을 자신들의 진화적 관점에 맞추어 재해석하고 있는 것으로 보 인다.10)
8) 본 논문에서는 ‘유신진화론’과 BioLogos 계열에서 주장하는 ‘진화적 창조론’(Evolutionary Creation)라는 용어를 동의적 표현으로 이해한다. BioLogos 재단의 홈피에는 유신진화론과 자신들 의 진화적 창조론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하고 있다. “What is Evolutionary Creation?,” BioLogos, https://biologos.org/common–questions/what-is–evolutionary-creation/ (2025.2.1. 접 속). 데보라 하스마(Deborah Haarsma)는 BioLogos의 학자들이 ‘진화적 창조론’이라는 용어를 만 든 것은 진화라는 하나님의 창조 방식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정통적인 삼위일체론과 성육신을 부정 하거나 이신론을 주장하는 어떤 유신진화론자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있다. 따 라서 신론과 기독론의 문제만 아니라면 진화론적 창조론자도 넓게는 유신진화론자라 불릴 수 있다.
9) St. George Jackson Mivart, On the Genesis of Species (London: Macmillan and Co, 1874), 187; Henry de Dorlodot, Darwinism and Catholic Thought (Cincinnati, OH: Denziger Brothers, 1925), 81; Paul M. Blowers, Drama of the Divine Economy: Creator and Creation in Early Christian Theology and Piety, Oxford Early Christian Studies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12), 157; Howard J. Van Till, “Special Creationism in Designer Clothing: A Response to The Creation Hypothesis,” American Scientific Affiliation, https://www.asa3.org/ASA/PSCF/1995/PSCF6-95/VanTill.html/(2025.3.3. 접속); Olivier Perru, “Augustinian Theological Thought and Biological Evolution,” Philosophy Study 8/3 (2018): 97-107; Alister E. McGrath, A Fine-Tuned Universe: The Quest for God in Science and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2009), 101-106. 임영동, “창조론에 서 본 기독교 자연신학의 문제와 비전-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삼위일체 자연 신학을 중심으로,” 「조 직신학연구」 49 (2025): 100;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삼위일체 자연신학-계시 인식론 중심으로 -,” 「조직신학연구」 27 (2017): 295;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314-16. 흥미로운 점은, 다윈(Charles Darwin, 1809-82)의 진화론을 창조에 대한 과학적 설명으로 수용한 유신진화론자들과 달리, 정작 다윈 본인은 그의 저술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 론이나 종자적 이성론을 일절 언급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일 전대경의 주장처럼 다윈이 무신론자 가 아니라 유신진화론적 자연신학자였고, 그의 진화론에 호의적인 동시대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이 아우구스티누스의의 종자적 이성론을 유신진화론의 신학적 근거로 삼았다는 점을 고려 한다면, 다 윈의 침묵은 의미심장하다. 다윈은 아우구스티누스의의 종자적 이성론이 자신의 진화론과 조화될 수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다윈을 자연신학자로서 해석한 자료는 다음과 같다. 전대경, “다윈의 창조론,” 「조직신학연구」 34 (2020): 20-43.
10) Henry Woods, Augustine and Evolution: A Study in the Saint’s De Genesi ad litteram and De Trinitate (New York: The Universal Knowledge Foundation, 1924), 3-4. 아우구 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과 진화론 사이에 제한적인 신학적 유사성을 주장하는 아르틀룬드 (Gavin Ortlund, 1984-) 조차도 유신진화론자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오해에 대해 경고한다. Gavin Ortlund, Retrieving Augustine’s Doctrine of Creation: Ancient Wisdom for Current Controversy (Downers Grove, IL: IVP Academy, 2020), 187.
아우구스티누스의의 종자적 이성론은 그의 창조론에서 독립된 하 나의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동시적이며 즉각적인 창조,’ ‘그리스 도 안에 있는 영원한 이성,’ ‘이차적 원인자 위에 계신 하나님의 주권적 통 치,’ ‘종의 고정성,’ 그리고 ‘창조의 종결성’이라는 사상들과 본질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에서 이런 개념들은 유 신진화론을 수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본 논문은 유신진화론자들이 제시하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 적 이성론에 대한 이해가 실제로 그의 창조론과 일치하는지를 비판적으 로 검토하고자 한다.
기존 연구들에서도 이 양립 불가능성이 부분적으로 지적된 바 있으나, 보다 체계적이고 포괄적인 분석은 여전히 부족한 실정 이다.11)
11)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을 유신진화론의 논거로 사용하는 해석의 오류를 단편적으로나 마 지적한 유익한 자료들이 있다. Mariusz Tabaczek, O.P., “The Metaphysics of Evolution: From Aquinas’s Interpretation of Augustine’s Concept of Rationes Seminales to the Contemporary Thomistic Account of Species Transformism,” Nova et Vetera 18/3 (2020): 946-50; 우병훈, “개혁신학의 관점으로 평가한 진화 창조론: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 의 응답』을 중심으로,” 「한국개혁신학」 60 (2018): 145-208; 김장생, “아우구스티누스의 생명의 씨앗 이론을 통한 생명의 변화 이해,” 「신학사상」 145 (2009): 161-89; Gilson,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 382-402.
본 연구는 이러한 연구 공백을 보완하고자 하며, 다음 세 가지 질 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종자적 이성: 설계된 잠재성의 발 현인가, 종의 변이를 위한 동력인가?
둘째, 종의 고정성: 시대의 산물인 가, 신학적 결론인가?
셋째, 창조: 종결된 것인가, 계속적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이 유신진화론의 핵심 주장들과 양립할 수 없음을 논증할 것이다.
본 논문의 범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 개념이 현대 유신진화론의 신학적 정당화에 사용되는 방식에 대한 비평적 평가로 한정되 며, 유신진화론 전체에 대한 종합적인 신학적 판단을 시도하지 않는다.
또 한 고대 아우구스티누스의의 사상을 현대 과학 및 신학적 맥락에 적용할 때 필연적으로 따르는 해석학적 한계를 인식한다.
이러한 점에서 이 논문 은 유신진화론이 제기하는 신학적 질문들의 정당성이나 유익성을 부정하 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 신학을 그의 고유한 신학 적·형이상학적 전제 내에서 이해함으로써, 그의 종자적 이성 개념이 현 대 유신진화론과 신학적으로 양립 가능한지를 평가하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이러한 목적 아래, 본 연구는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이 현대 신학 논 의에 인용될 때 요구되는 해석상의 신중함을 촉구하고자 한다.
II. 종자적 이성: 설계된 잠재성의 발현인가, 종의 변이를 위한 동력인가?
1. 설계된 잠재성의 발현으로서의 종자적 이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 11.5.7에서 반복적으로 “하나님 당신은 어떻게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까?”라고 질문한다.12)
12) 맥콜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에서 가장 큰 문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과학이 아닌 성경으 로부터 세상이 ‘어떻게’ 창조된 것인가에 대한 지식을 얻으려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McCall, “Augustine’s Theolog(ies) of Creation,” 137. 맥콜에 따르면, 성경은 창조의 방식이 아니라 내용과 의미를 말하며 창조의 방식은 성경이 아니라 과학에서 찾아야 한다. 이런 입장은 다음의 자료에서도 발견된다.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268; Alister E.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How the Great Theologian Might Weigh in on the Darwin Debate,” Christianity Today (May 2009). 39.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께서 성경의 저자 에게 영감을 주어 실제로 “발생했던 것들에 대한 지식”을 필요한 만큼은 제공하셨다고 믿는다.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8.23[WSA I/13: 287].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 1-3장을 통해 하나님 이 세상을 ‘어떻게’ 창조하셨는가에 대한 유익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창세기가 하나 님이 ‘무엇’을 창조했는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창조하셨는지도 말한다고 보았다.
아우구스티누스의의 ‘어떻게’라는 질문은 현대의 물리학적, 생물 학적 관심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겠지만, 여전히 생명이 ‘어떻게’ 창조되었 느가라는 질문에 대한 방대한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는지”(how God creates)를 이해하지 못하는 독자를 돕고자 하였다.13)
창세기 독자의 어려움 중 하나는 창조 방식에 관하여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성경 기사에 대한 해석이다.
앞서 언급한 집회서 18:1 이외에도 창 세기 2:4b 역시 동시적, 즉각적인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지지하는 것으로 보였다.14)
옛 라틴어 창세기 2:4b는 모든 것의 창조가 6일이 아닌 ‘하루’ 라는 단일한 순간, 즉 한 순간에 창조된 것으로 진술되어있기 때문이다.15)
시간을 초월한 영원하신 하나님은 시간이라는 피조물의 한 부분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는 시간의 순차적 흐름을 통해서가 아닌 순간적으로 완성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그는 창세기의 1장의 ‘하루’를 연속된 24시간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6일’은 모든 피조물이 동시에 창조되는 단일한 창조 사건 안에서 발생하는 여러 원인 관계를, 독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배열한 비유적 서술로 이해되어야 한다.16)
13) Augustine, The Confessions 12.26.36[WSA I/1:433].
14) Augustin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3.5-6[WSA I/13:279 and n.4]; The City of God 11.8[WSA I/7:33]; Boersma, “The Rationes Seminales in Augustine’s Theology of Creation,” 426-27. 튜레틴(Francis Turretin, 1623-1687)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순간적 창조론 에 동의하지만 6일 또한 문자적으로 해석한다. 튜레틴의 창조론에 대한 자료는 다음을 참조하라. 이신열, “프란시스 튜레틴(Francis Turretin, 1623-1687)의 창조론,” 「조직신학연구」 38 (2021): 152.
15)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3.5[WSA I/13:279].
16)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5.12-13[WSA I/13:282]; The Trinity 11.7.9.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루를 24시간으로 이루어진 하루로 보지 않고 비유적으로 보았다는 것이 그 가 곧 하루를 수 천, 수 백만, 혹은 수 십억년으로 보았다는 것은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동시 적 창조론은 순간적으로 창조된 지구를 의미하기 때문에 ‘오래된 지구론’과 배치된다. Tabaczek, “The Metaphysics of Evolution,” Nova et Vetera 18/3 (2020): 949. 특별히 각주 7번 참조. 아 우구스티누스는 교회 역사에서 창세기 1장의 하루를 문자적으로 보는 전통이 있음을 알고 있었고 자신의 견해와 다른 해석자들이 하루의 의미를 더 잘 이해할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열려 있었다. Tabaczek, “The Metaphysics of Evolution,” 950. n. 8.
예를 들어, 소리(sound)와 노래(song)는 동시에 존재하지만, 인과 관계상 논리적으로 소리가 노래보다 선행한 다. 왜냐하면, 노래는 소리를 재료로 하여 구성되기 때문이다.17)
이처럼 창조 세계의 모든 구성 요소들도 인과 관계상 논리적 순서는 있지만, 시간 상으로는 동시적으로 만들어졌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순차적 창조 기사와 동시적, 순간적 창조 기사 사 이에 있는 신학적 긴장을 해결하기 위해 ‘종자적 이성’이라는 개념을 도 입했다.18)
그는 하나님의 창조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속적 행위가 아니 며, 거의 모든 피조물이 종자적 이성이라는 잠재적 형태로 만들어진 사건 이라고 보았다.19)
시간의 흐름 속에서 점차 실현될 잠재성이 “이미 시간의 뿌리 안에(iam tamquam in radicibus) 놓여 있었다.”20)
그러므로 종자적 이성은 무수한 “‘종(species)’이 한 번에 창조되었으 나, 그 섭리적 ‘전개’(unfolding)는 시간 속에서 확장”되고 있다는 창조 세 계의 이중적 구조를 설명하는 신학적 원리이다.21)
종자적 이성 개념은 인 간의 육체가 흙이 창조된 후에야 가시적으로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육체 역시 만물과 함께 동시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지적한다.
창조 시점에 인간은 성인도, 아기도, 심지어 태아로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초의 창조 물질이 만들어질 때, 유아기, 소년기, 청소년기, 노년기의 인간 특징 이 인간의 종자적 이성 안에 “비가시적으로, 잠재적으로, 그것들의 원인들 [종자적 이성들] 안에” 이미 창조되어 있을 뿐이다.22)
17) Augustine, The Confessions 12.29.40[WSA I/1:437].
18) “영원히 살아 계시는 분께서 만물을 함께[동시에, simul] 창조하셨다”(집회서 18:1). 아우구스티누 스의 라틴어 성경은 창 2:4에서 하늘과 땅이 창조된 그 날에 하나님이 창조 사역을 마쳤다고 되어 있다. 이것은 히브리어 성경의 바른 번역이 아니라 오역이었다. 히브리어에 익숙하지 않던 아우구 스티누스는 라틴 교회가 전통적으로 사용해 오던 70 인역을 토대로 번역된 라틴어 성경을 사용했다.
19) Boersma, “The Rationes Seminales in Augustine’s Theology of Creation,” 415.
20)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4.11[WSA I/13:281].
21) Tabaczek, “The Metaphysics of Evolution,” 951.
22)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6.6.10[WSA I/13:306]: “Invisibly, potentially, in their causes, in the way things to come are made when they have not yet been made in actual fact.” 6.16.27[WSA I/13:316] 참조.
종자적 이성이 생명체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잠재력은 불특정 한 종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아니라 “특정한 그리고 고정된” 종의 성숙을 위한 것이다.23)
이 특정한 그리고 고정된 종의 성숙함을 위해 종자적 이성 에게는 잠재성을 발휘할 “적절한 때”(the right occasion)가 필요하다.24) 이 는 마치 임신한 산모에게서 잉태된 태아가 온전한 아기의 모습으로 이 세 상으로 나오려면 시간이 필요한 것과 같다.25)
종자적 이성이 자신의 잠재 성을 현실화할 때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다양한 “이차적 원인”(secondary causes)의 영향으로 그 안에 숨겨져 있던 것이 공개화되고 펼쳐지게 된 다.26)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적은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종자적 이성 안에 주어진 하나님의 의도가 드러나는 것이다.27)
23) Tabaczek, “The Metaphysics of Evolution,” 952.
24) Augustine, The Trinity 3.9.16[WSA I/5:137].
25) Augustine, The Trinity 3.9.16[WSA I/5:137].
26) Augustine, The Trinity 3.9.16[WSA I/5:137].
27)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9.17.32; The Trinity 3.8.13.
2. 종의 변이를 위한 원동력으로서의 종자적 이성에 대한 유신진화론자들의 이해
종자적 이성이 가지는 잠재성은 유신진화론자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해석되어왔다.
페루(Olivier Perru)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이 ‘자연주의적’ 혹은 ‘무목적적 유신진화론’(naturalistic or non-teleological theistic evolution)과 조화될 수 있다고 이해한다. 자연주의적 유신진화론 은 최초 물질만 하나님이 만들고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은 진화를 통해 생 성되었다는 입장이다.28)
28) 쿠퍼(John W. Cooper, 1947-)는 유신진화론을 두 그룹으로 나눈다: “자연주의적 유신진화론” (Naturalistic Theistic Evolution); “초자연적 유신진화론”(Supernatural Theistic Evolution). 초자연적 유신진화론은 하나님이 창조에서 진화와 초자연적인 개입 모두를 사용하셨고 특별히 인 간 영혼은 하나님의 직접 개입이 필요했다고 본다. John, W. Cooper, “Created for Everlasting Life: Can Theistic Evolution Provide an Adequate Christian Account of Human Nature?,” Zygon: Journal of Religion and Science 48 (2013): 479.
페루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땅과 바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산출할 능력을 받았다고 지적한 것을 주목한다.
페루가 이해한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더 이상 자신의 창 조 과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으며, 그 이후의 일은 “언제나 이차적 원인들 의 자율성의 문제”(always matter of autonomy of the secondary causes) 였다.29)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 안에는 원시 창조 이후부터는 하나님의 개입 없이 자연 안에서 자율적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체의 “점진 적 발달”(progressive development)-창조론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30)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 세계가 나아가 야 할 과정과 목적지를 제시하는 “지적 설계자가 아니다.”31)
하나님은 창 조의 진행에 비개입적이며 관망자이다.
자연주의적 유신진화론과 달리, 목적적성과 하나님의 개입을 인정 하는 ‘초자연주의적 유신진화론’(Supernatural Theistic Evolution)이 있 다.
이 그룹은 하나님의 개입의 방식에 따라 ‘계획된 진화론’(Planned Evolution)과 ‘인도된 진화론’(Directed Evolution)으로 구분될 수 있다.32)
29) Perru, “Augustinian Theological Thought and Biological Evolution,” 100, 102.
30) Perru, “Augustinian Theological Thought and Biological Evolution,” 100-101. 페루는 아우 구스티누스가 말한 시간의 흐름을 통한 점진적 발달이 현대 진화론에서 말하는 상당히 긴 시간을 통해 서서히 발전하는 과정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관찰하듯 식물의 씨앗이 땅에 심겨져 자라는 그런 시간의 길이를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31) Perru, “Augustinian Theological Thought and Biological Evolution,” 102.
32) 우병훈은 유신진화론을 세 그룹으로 분류하였다. 첫째는 “무목적적 진화”(Nonteleological Evolution)이며 쿠퍼가 분류한 자연주의적 유신진화론에 해당할 수 있다. 둘째는 “계획된 진화” (Planned Evolution)이며 진화의 목적성을 강조하지만, 하나님이 진화에 개입하지 않고 진화의 과정을 이끌어 가신다고 본다. 대표자는 하워드 밴틸(Howard Van Till)과 케네스 밀러(Kenneth Miller), BioLogos 재단의 설립자인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등이다, 셋째는 “인도된 진 화”(Directed Evolution)이며 특별한 경우 진화 과정에 하나님의 개입할 수 있다는 입장이나 근본 적인 창조 방식은 여전히 진화를 통해서이다. 대표자는 헨리 쉐퍼(Henry Schaefer), 데보라 하스 마(Deborah Haarsma), 로렌 하스마(Loren Haarsma) 등이다. 우병훈, “유신진화론자 데니스 알 렉산더의 아담론 비판,” 제109회 기독교학술원 월례학술 포럼 (2025년 3월 21일). 50-51 참조.
계획된 진화론을 주장하는 밴 틸(Van Till)은 자신의 ‘진화적 창조론’이 자연주의가 아니라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세기 해석에 근거한다고 주장한다.
밴 틸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어떤 특별한 창조 행위를 통 해 개별적으로 피조물을 만들었다는 사상을 배척하였고 그대신 “처음부 터 완벽한 기능적, 발달적 체계를 선물로 받은 창조 개념”을 주장했다.33)
자연은 자체적으로 내장된 설계에 따라 자율적으로 전개된다. 여기서 설 계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진화 과정 중간마다 직접 개입하여 새로운 무언 가를 만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는 그런 개입이 자연의 자율성을 해치며, 창조를 자유로운 행위가 아닌 외부 강요로 보이게 만든다고 본다.
한국의 대표적 유신진화론자 우종학도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씨앗 창조론이 “창조주의 의도대로 진화가 일어나도록 미리 설계되었다”는 점 에서 서로 유사하다고 말한다.34)
우종학에게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 성론은 “마치 씨앗에서 나무가 자라듯, 창조물이 자연적 인과관계를 따라 하나씩 구현되는 관점”을 제시한다.35)
이런 관점이 계획된 진화론이 수용 할 수 있는 세계관과 잘 어울린다는 것이다.36)
맥그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에 몇 가지 비과학적 요소가 있 음을 인정하면서도, 그의 종자적 이성론은 ‘인도된 진화론’과 유사성을 지 닌다고 주장한다.37)
33) Van Till, “Special Creationism in Designer Clothing.” Augustine “promoted instead the concept of a creation gifted with complete functional and developmental economies from the very beginning.” 밴 틸은 아우구스티누스뿐만 아니라 케사리아의 바실리오스(Basil of Caesarea)도 자신의 유신진화론을 지지하는 창조론을 가졌다고 본다.
34)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314.
35)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315.
36) 우병훈은 우종학의 유신진화론이 계획된 진화론에 가까운 면이 있으나 실상은 열린 진화론(open evolution)과 더 가까운 면이 있다고 판단한다. 우병훈, “개혁신학의 관점으로 평가한 진화 창조 론: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을 중심으로, 「한국개혁신학」 60 (2018): 168.
37) Logan Paul Gage, “Alister McGrath on Augustine and Darwinism,“ Evolution News, https: //evolutionnews.org/2009/05/alister_mcgrath_looks_at_augus/ (2025.4.5.접속). McGrath, A Fine-Tuned Universe, 200. 그리고 각주 74번 참조.
맥그래스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창 조 사역을 두 단계로 구분한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 만물을 존재하게 만 든 최초 창조이며, 두 번째는 그 창조물 안에 내재된 잠재성이 시간 안 에서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이 후반부는 “섭리적 인도의 계속적 과정(a continuing process of providential guidance)”으로 설명된다.38)
38)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40.
맥그래스 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두 번째 섭리의 과정을 계속적 창조 행위로 이해 했다고 본다.
3. 유신진화론과 양립 불가능한 종자적 이성의 신학적 전제
1) 영원한 이성의 원리를 반영하는 종자적 이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 개념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선, 종자 적 이성이 그 원형인 영원한 이성과 어떤 관계 속에 위치하는지를 살펴야 한다.
종자적 이성은 하나님의 말씀(logos) 안에 있는 영원한 이성을 피조 세계 안에서 구현하도록 창조되었다.
따라서 종자적 이성은 하나님의 섭 리적 의도에 철저히 종속되는 목적론적 움직임을 가지고 있다.39)
이 영원 한 이성은 하나님의 로고스이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불변의 이성으로, 모 든 피조물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형상들(ideae)에 따라 창조되었 다.40)
영원한 이성은 각 피조물의 고유한 속성과 질서 있는 발전 과정을 포 함하는, 일종의 “객관적 청사진”이다.41)
이러한 영원한 이성에 따라 심 겨진 종자적 이성은 불변하시면서도 가변적 피조물의 움직임을 이끄시 는 “하나님의 섭리적 지혜의 지속적 운동이 없다면 스스로 움직일 수 없 다.”42)
39) Simon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Providence and Motion,” International Journal of Systematic Theology 18/4 (2016): 392.
40) Augustine, Miscellany of Eighty-Three Questions [De diversis quaestionibus octoginta tribus] 46.2[WSA I/12:59]. 41) Boersma, “The Rationes Seminales in Augustine’s Theology of Creation,” 419.
42)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Providence and Motion,” 392.
그러므로 피조물은 자신의 잠재력을 실현하는데 절대적 자율성을 지니지 않는다.43)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고유한 본성을 갖고 있으며, 이 본성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질서와 보편적 선함 안에서만 변화를 경험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만물에 대한 완전한 통치력은 한 생명체가 자신의 존재성을 유지하며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이끄실 뿐만 아니라 각각 이 부여받은 고유한 본성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제한한다.44)
따라서 그 생 명체가 자의적으로 종의 본성적 변화를 산출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 이 만드신 종자적 이성은 창조주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불변하는 형상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45)
신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았던 초기와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점차 성숙한 성경 해석자로 발전함에 따라 영원한 이성과 가변적인 피조물 사 이의 관계를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재정립하였다.46)
그는 시편 104:24, 골 로새서 1:16, 요한복음 1:3-4 등을 통해, 피조물의 원형을 완전한 인격자 이자 성부와 동등하신 그리스도 안에 존재하는 신적 이데아임을 인식했 다.47)
그 영원한 원형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더 나은(meliora)” 그리고 “더 참된(veriora)” 방식으로 존재한다.48)
43)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Providence and Motion,” 392.
44) Augustin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12.23[WSA I/13:254]: “by which[God’s work of controlling the things he created] they are kept alive and active and so remain what they are, each in its own proper nature.”
45) Augustine, Miscellany of Eighty-Three Questions 46[WSA I/12:60].
46) 아우구스티누스와 플라톤의 영원한 형상에 대한 이해에는 차이가 있다. 플라톤에 따르면, 피조 세 계의 움직임은 일자(the One)보다는 열등하지만 신성한 능력을 지닌 물질의 창조자 데미우르고 스(demiurge)와 세계 영혼(the world Soul)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 면, 피조물은 하나님과 동등한 신성을 지니신 하나님의 말씀이자 영원한 지혜이신 그리스도의 역 사에 의해 움직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변함없는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에 대한 확신을 플라톤 이 아니라 성경에서 발견하였다(사도행전 17:28; 요한복음 5:26 지혜서 8:1; 7:24 출애굽기 20:8). Augustin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12.23[WSA I/13:254].
47)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3.14.31[WSA I/13:291].
48)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3.15.33[WSA I/13:292].
아우구스티누스는 영원한 이성에 대 한 기독론적인 이해를 분명히 하였다.
모든 피조물의 본질과 형상은 하나님의 영원한 이성의 패턴에 따라 부 여되었다.
하나님은 각 종이 자신의 고유한 본성과 형상을 갖도록, 서로 구별된 영원한 형상에 따라 그들을 각기 종류대로 창조하였다.
하와가 흙 이나 인간 부모가 아닌 아담의 갈비뼈에서 창조된 것은, 하나님이 자신의 지성 안에 가지고 계신 하와에 대한 영원한 이성을 시간 속에서 구현해 낸 것이다.49)
이러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 질서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에 의한 창 조 설계와 목적성을 인정하지 않는 자연주의적 유신진화론뿐 아니라, 하 나님의 간헐적 개입을 인정하면서도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변이’ 또는 ‘공통 조상으로부터의 종 분화’를 주장하는 초자연주의적 유신진화론과도 신학적으로 양립하기 어렵다.50)
49)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9.18.34[WSA I/13:396].
50)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41. 맥그래스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자연주의적 진 화론을 수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 맥그래스는 만물이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발전하고 진 화되도록 신중하게 설계되었으며,” 진화의 청사진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창조의 기본구조 안에 프로그램화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의 영원한 이성에 근거한 종자적 이성론 은 맥그래스의 인도된 진화론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2) 하나님의 주권 아래의 종자적 이성의 제한된 자율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이 유신진화론과 양립할 수 없는 두 번째 신학적 전제는, 종자적 이성을 구성하신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이다.
하나님은 종자적 이성이 지닌 잠재태가 현실화되는 과정을 영원 전부터 “미리 결정해 놓으신 원인”(praeconditis causis)에 따라 이루어지도록 설 계하셨다.51)
종자적 이성론에 “예정된 필연성”(foreordained necessity) 개 념을 연결시킴으로써,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론과 예정론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했다.52)
51)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7.28.42[WSA I/13:344].
52) Rowan Williams, “Creation,” in Augustine Through the Ages, ed. Allan D. Fitzgerald (Grand Rapids, MI: Eerdmans, 1999), 252.
하나님은 종자적 이성 안에서 아담이 흙에서 창조되어야 한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 창조의 구체적 양상까지도 예정하셨다.
아담이 그 존 재를 유아로 시작할지, 혹은 성숙한 성인으로 시작할지는 하나님에 의 해 창조 이전에 미리 정해졌으며(praefixerat), 그 결정은 하나님의 계획 (dispositionem)에 따라 실행되었다.53)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신이 미리 결 정하신 것과 다른 방식으로는 아담을 창조하실 수 없는 분이다.54)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은 종자적 이성의 잠 재성이 현실화되기 위해 작용하는 여러 원인 중 하나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예정은 종자적 이성 안에 내재된 “일련의 특정한 원인을” “적절 한 때에” “활성화시키는 바로 그 능력이다.”55)
즉 피조물이 각기 자기에게 정해진 방식대로 발전하게 되는 궁극적 원인은, 종자적 이성이 스스로 지 닌 내재적 역량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종자적 이성에 부여하신 “필연성” (necessitas) 때문이다.56)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자적 이성을 단순히 수동적인 개념으로만 인식하지 않았다.
그는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 5.4.11에서 창세기 1:11 에 대한 주석을 통해, 종자적 이성이 생명체의 성장을 가능케 하는 어떤 힘을 지닌 것으로 언급한다: “땅이 풀과 나무를 그것들의 원인들(causes) 안에서 낸 것이라고 말하는 것 은, 땅이 그것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힘(power)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실현될 것들이 이미 땅 안에, 이를테면 시간 의 뿌리(the roots of time) 속에 만들어져 있었다고 할 수 있다.57)
53)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6.15.26[WSA I/13:315]. Jonathan Stewart McIntosh, “Speaking of Possibilities: The Theistic Actualism of Anselm’s Divine Locutio,” Modern Theology 33:2 (2017): 231.n.67.
54)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6.15.26[WSA I/13: 315].
55) Williams,“Creation,” 252: “God’s will is not a cause among others, but the power that activates a particular set of causes at the appropriate time.”
56)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6.15.26[WSA I/13: 316]; Williams, “Creation,” 252.
57)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4.11[WSA I/13:281]; 5.23.44[WSA I/13:299].
이처럼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 아래에서도, 종자적 이성은 “이차적인 효율적 원인(secondary efficient cause)”이자 “[이차적인] 형상적 원인” (formal cause)으로 기능할 수 있다.58)
즉 종자적 이성은 자신의 잠재성을 발현하는 과정에 의미 있는 참여자이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예 정된 질서 안에서 제한된 범위로 작용한다.
유신진화론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이차적 원인자인 종자적 이성에 게 허용한 자율적 발전 가능성의 개념을 유신진화론에 대한 신학적 정당 성의 근거로 삼는다.59)
그러나 이런 시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 성론에 있는 형이상학적, 신학적 전제를 충분히 고려한 것이 아니다.
그가 제시한 종자적 이성의 상대적 자율성이 하나님이 각 생명체를 위해 예정 하신 고유한 발전 과정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인지 아니면 종간 진화를 가 능케 하는 원동력인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관련 주제를 언급한 그의 다 른 본문들에 비추어 확인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 6.4.5에서 창세기 2:9에 나오는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신 하나님의 행위 를 설명하면서, 채소와 나무를 생산한 주체가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심 을 강조한다.
하나님이 6일의 창조 때와 마찬가지로 에덴동산에서도 “여 전히 땅에서 열매 나무를 이끌어 내셨다.”60)
58) J. M. Brady, “St. Augustine’s Theory of Seminal Reasons,” The New Scholasticism 38 (1964): 156.
59) McGrath, A Fine-Tuned Universe, 100, 102; Blowers, Drama of the Divine Economy, 155. n.75; Perru, “Augustinian Theological Thought and Biological Evolution,” 100.
60)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6.4.5[WSA I/13:304]: “[H]e still cast up from the earth every three that had a beautiful look about it. . . he was now casting up trees from the earth quite differently from the way the earth then on the third day produced grass fro fodder.”
아우구스티누스는 “여전히” (adhuc)라는 표현에 주목하였다. 이 “여전히”는 하나님이 동시적 창조 행 위를 통해 “잠재적으로,” “인과적으로” 종자적 이성 안에 만들어 놓으셨던 채소와 열매 나무의 비가시적 요소들을 이제 창세기 2:9에서 가시적으로 드러내셨다는 것을 의미한다.61)
이처럼 하나님은 자신이 주권적으로 예정하신 불변의 생명 본질을 종 자적 이성에 부여하셨다.62)
종자적 이성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한 지성에 의해 생명체가 “특정한 목표나 목적을 향해 나아가는 전반적인 방향이 설 정되어 있다.”63)
그 결과 “도토리는 참나무를 향해 나아가고, 병아리는 비 상을 향해, 어린아이는 학습과 지식을 향해” 점진적으로 발전하게 된다.64)
따라서 종자적 이성이 지닌 자율성이란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종류를 따 라 정해진 본성을 실현하는 능력일 뿐이다.
그것은 결코 새로운 종을 만들 어 내는 진화적 원동력은 아니다. 김장생 또한 아우구스티누스가 종자적 이성에 종의 변화를 위한 내재 적 자율성을 부여한 것으로 보았으며, 이것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384-322 BC)의 ‘내재적 개체 역동주의’와 유사하다고 평가한다.65)
61)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6.4.5[WSA I/13:304]: “This surely is the force of he still cast up: over and above, that is to say, what he had already cast up. Then, of course, it was done potentially, causally, . . . simultaneously. . . .”
62) Mariusz Tabaczek, “A Contemporary Aristotelian-Thomistic Perspective on the Evolutionary View of Reality and Theistic Evolution,” Religions 15/5 (2024): 1-2; 13-14.
63)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Providence and Motion,” 387.
64)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Providence and Motion,” 387.
65) 김장생, “아우구스티누스의 생명의 씨앗 이론을 통한 생명의 변화 이해,” 「신학사상」 145 (2009): 161-89. 김장생은 서양 철학사에 나타난 네 가지 생명 변화 이론을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1) 플라 톤의 외재적 안정론 2) 아리스토텔레스의 내재적 개체 역동주의 3) 라마르크의 내재적 자연 역동주 의 4) 다윈의 외재적 자연 역동주의. 이 가운데 1번과 2번은 종의 고유한 속성 안에서의 변화만 인 정하고, 3번과 4번은 종 자체의 변이를 전제한다. 다윈의 외래적 자연 역동주의는 라마르크가 주장 한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변이될 수 있는 자연적 역동주의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한 존재가 다른 존재로 바뀌는 본질적 “변이는 라마르크와 달리 생명 개체가 가지고 있는 내적 힘에 의한 것이 아 닌 개체 외부의 자연 선택이라는 필터를 통해 존재의 지속성 여부가 검증된다”는 점을 주장한다.
‘내재적 역동주의’는 생명체의 변화가 외부가 아닌 종자적 이성 자체에 의해 이루 어지나 종의 변이는 유발하지 않는다는 견해이다. 아쉽게도 김장생은 아 우구스티누스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와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자적 이성에게 하나님의 주 권적 설계 안에서만 발휘될 수 있는 제한적 자율성만을 부여하였고 하나님이 종자적 이성의 잠재성을 최종적으로 현실화하는 궁극적 원인자임을 강조하였다.
질송(Étienne Gilson, 1884-1978)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 에 제한적 자율성의 개념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이를 유신진화론 과 연결하려는 시도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형이상학, 특히 질료와 형상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평가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의 종자적 이성 론은 “토마스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처럼 이차적 원인자가 질료로부터 형상을 산출하는 주체가 된다는 견해를 허용하지 않는다.66)
왜냐하면 질 료에게 형상을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원인자는 종자적 이성이 아니라 그 형상의 잠재태를 종자적 이성 안에 부여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생명체의 점진적 발전을 위한 종자적 이성의 “이차 적 인과성”(secondary causality)을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종의 잠재력 발 산에서 하나님이 언제나 “최고의 주권(supreme dominion)”을 행사한다 고 주장한다.67)
바울이 심고 아볼로가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뿐이시다(고전 3:6-7).
의사가 약을 몸에 바르지만, 몸에 생 명력을 공급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일이다.68)
하나님은 선한 천사, 악한 천사, 사람, 동물과 같은 이차적 원인자의 “외부적 활동”(external activities)을 자신의 뜻에 따라 주권적으로 사용하신다.
그러나 어떤 이차적 원인을, 어떤 방식으로, 어떤 시점에 사용하실지 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 결정에 속한 것이다.69)
66) Gilson,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 403.
67) Brady, “St. Augustine’s Theory of Seminal Reasons,” 141.
68)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9.15.27[WSA I/13:391-92].
69) Augustine, The Tirnity 3.8.14[WSA I/5:136].
피조물은 물질 에서 형상을 이끌어내는 궁극적 원인이 아니며, 하나님만이 자신의 “영원 한 이성을 통해 종자적 이성을 창조하신 효율적, 전형적, 목적적 원인(the efficient, exemplary, and final cause of the creation of the seminal)이시다.”70)
70) Brady, “St. Augustine’s Theory of Seminal Reasons,” 156.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하나님께서 진화의 전반적 틀만 설정하시고, 그 이후의 과정을 자연 법칙에 맡긴다고 이해하는 ‘계획된 유신진화론’은 아 우구스티누스의 창조 신학과 충돌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어 창조란 단지 원리의 설정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 대한 질서 정연하고 주권적인 형상 부여 행위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의 첫 순간이나 인간의 영혼 창조,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부활 등에만 간헐적으로 개입하며, 일반적으로는 자연의 진화가 스스로 진행되도록 유도하신다는 ‘인도된 유 신진화론’ 역시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III. 종의 고정성: 시대의 산물인가, 신학적 결론인가?
1. 아우구스티누스와 종의 고정성
하나님은 창조 시에 종자적 이성과 자연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일어 날 모든 인과관계를 이미 “고정하셨고” “이후에” 이 고정된 인과관계 속에 서 종자적 이성이 잠재성을 발휘하도록 “효력을 부여”하시는 분도 하나님 이시다.71)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재고, 헤아리고, 달아 처리하셨다”[창조하셨다]는 지혜서 11:20(*
이것들이 아니더라도 저들은 정의에 쫓기고 당신 권능의 입김에 흩어져한 번의 입김만으로도 고꾸라질 수가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재고 헤 아리고 달아서 처리하셨습니다.)
과 “각기 종류대로”라는 창 세기 1장의 표현에 주목하였다.72)
71)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6.11.19[WSA I/13:312].
72) 지혜서 11:20절과 창세기 1장의 표현 “각기 종류대로”의 논의에 대한 일차자료의 출처와 신학적 의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아래에 제시된 ‘3. 종의 고정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근거’ 를 참고하라.
창조주께서 모든 피조물에게 각 존재에 알맞은, 변하지 않는 종의 속성과 형태를 부여하셨고 종의 고정성을 종자 적 이성 안에 미리 담아두셨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이해한다.
그러므로“콩에서 밀이 나오지 않고, 밀에서 콩이 나오지 않으며, 인간이 짐승에게 서 나오지 않고 짐승도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는다.”73)
이러한 종의 고정성 은 하나님의 능력 아래서 유지된다.
맥그래스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한 이런 종의 고정성을 당시 비과학 적 시대의 산물이라고 평가한다.74)
이 영국 신학자에게 따르면, 아우구스 티누스가 보여준 종의 고정성에 대한 확신은 그의 신학적 선언이라기보 다 개인적인 체험에서 비롯된 잠정적인 판단이며, 이는 현대 신학자들이 바로잡아야 할 오류이다.75)
따라서 맥그래스는 만일 아우구스티누스가 현 대 과학의 증거를 접했다면, 종의 고정성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수정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76)
더 나아가 이 성공회 신학자는 아우구스티누스의가 주장한 종의 고정성이라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교부의 종자적 이성 개 념은 유신 진화의 개념과 조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77)
73)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9.17.32[WSA I/13:394].
74)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9.17.32[WSA I/13:394].
75) Alister E. McGrath, A Fine-Tuned Universe: The Quest for God in Science and Theology, 박규태 역,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서울: IVP, 2014), 232. 맥그래스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당시의 고정불변한 종 개념에 갇혀 있었다고 본다. 이 개념은 결국 19세기 다윈에 의해 극복되었다고 평가 한다. McGrath, A Fine-Tuned Universe, 200.
76)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41.
77) 맥그래스, 『정교하게 조율된 우주』, 237.
그러나 맥그래스의 주장처럼 과연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이 단순히 그 시대의 산물이었는지는 더 세심한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 래에서 살펴보겠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의 고정성에 대한 신념은 종자 적 이성에 관한 헬라 철학적 요소를 기독교 신학의 창조론에 맞게 비판적 으로 재구성한 신학적 확신이었다.
2. 헬라 철학의 종 고정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변형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용한 종자적 이성이라는 개념은 스토아 철학에 서 시작되어 신플라톤주의자들이 수정한 것을 그가 기독교적으로 변형한 것으로 보인다.78) 타바첵(Mariusz Tabaczek)에 의하면, 아우구스티누스 의 종자적 이성론이 현대 진화론에서 주장하는 생물체 간 점진적 존재 변 형을 상정할 수 없는 이유는 피조물이 “하나님의 지성 안에 있는 고정된 이데아인 형상(forms)에 참여한다고 주장한 신플라톤주의의 영향 때문이 다.79) 확실히 아우구스티누스와 신플라톤주의 사이에는 영원한 하나님의 지 성 안에 있는 각 피조물을 향한 그분의 불변하는 설계에 대한 동의점이 있 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세상에 어떤 것이 새롭게 나타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은 창조 시 하나님이 종자적 이성 안에 미리 담아두신 것 이 정해진 때에 드러나는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자 적 이성 개념을 종의 변이 가능성이 아니라, 오히려 종의 불변성을 설명하 기 위한 개념으로 사용하였다.80)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방 철학자들의 종자적 이성 개념을 무비 판적으로 수용한 것은 아니다. 스토아 철학이나 플로티누스(Plotinus, 270 d.)가 대변한 신플라톤주의는 피조된 세계가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 움 직이는 자율성을 인정했고 이성의 씨앗이 신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적 으로 생명의 성장을 이끈다고 보았다.81) 반면,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자적 78)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Providence and Motion,” 387. 79) Marius Tabaczek, “The Metaphysics of Evolution: From Aquinas’s Interpretation of Augustine’s Concept of Rationes Seminales to the Contemporary Thomistic Account of Species Transformism,” Nova et Vetera, 18/3 (2020): 946. 타바첵은 아퀴나스가 아리스토텔 레스의 형이상학론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론에 변형을 가해 현대 진화 론적인 종의 변이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주장한다. 80) Gilson,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 401-402. 81)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Providence and Motion,” 383. 스토아 학파는 물질적인 이성 의 씨앗들이 동물적인 정자처럼 만물에 퍼져서 만물의 자연적 성장을 촉진시킨다고 보았다. 반면 플로티누스는 이성의 씨앗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으로 세상의 영혼이나 다른 살아있는 생명체의 영혼 안에 있다고 보았다. Hiro Hirai, “Logoi Spermatikoi and the Concept of Seeds in the Mineralogy and Cosmogony of Paracelsus,” Revue d’histoire des sciences (2008): 247. https://shs.cairn.info/article/E_RHS_612_0245?lang=en/ (2025.3.5.접속); Ortlund, Retrieving Augustine’s Doctrine of Creation, 190. 152 조직신학연구 제50권 (2025년) 이성에 의한 생명의 제한된 자율적 변화를 허용하지만 이 변화는 하나님 의 섭리 아래 놓인 통제된 구조 안에서 발생한다.82)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 가 시작된 후에는 자신의 개입이 없어도 스스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이신 론적 구조를 지닌 세계를 만들지 않으셨다.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은 자신 의 지성으로 설계하고 창조한 세계를 매 순간 주관하신다. 그러므로 질송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로티노스의 자연주의적 형이상 학을 제거하고, 종자적 이성론을 기독교 창조론에 맞게 재해석했다고 본 다.83) 따라서 그의 종자적 이성론은 무신론적 진화론뿐 아니라, 목적 없는 유신진화론, 심지어 하나님의 개입이 없는 ‘계획된 유신진화론’과도 충돌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생명체가 발전하려면 자연환경이라는 외적 조건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없이, 자연 자체의 힘만 으로 생명체가 발전할 수 있다는 견해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생명체가 변 화하는 것은 성장이지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종으로의 변이가 아니다. 종 의 고정성은 종 자체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설계와 능력 때문이 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종의 고정성은 단순 히 자기 시대의 철학적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성경의 창조론과 삼위일체 신론에 뿌리내린 신학적 확신이다.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지혜서 11:20과 창세기 1장의 “각기 종류대로”라는 표현은 아우구스티누스로 하여금 종 의 고정성에 대한 성경적 확신을 더욱 강화시켰다. 82) Williams, “Creation,” 252. 83) Gilson,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 400. 각주 678 참조. 질송(Gilson)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사 용한 종자적 이성이라는 사상이 원래 스토아 학파에서 시작되었고 플로티노스에 의해 변형된 것이 라 본다. 플로티노스는 스토아 학파의 숙명론적 종자적 이성론에서 숙명 개념을 제거하고, 이를 영 원한 지성의 질서와 조화로운 우주론으로 대체하였다. 플로티노스에 의하면, 신성한 지성에서 유 출된 우주는 영원하며 신적 이성과의 조화 안에서 자발적으로 질서정연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신 적 지성이 우주 안에서 변화를 주기 위한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다. 어떤 변화를 주기 위한 활동 은 신적 지성의 활동이 완전함을 산출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Plotinus, Enneads. 3.2.1. https://classics. mit.edu/Plotinus/enneads.3.third.html/ (2025.2.5. 접속). 유신진화론의 아우구스티누스 종자적 이성론 해석에 대한 비평적 평가 ┃ 조동선 153 3. 종의 고정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적 근거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의 고정성에 대한 논의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한 것이 그의 ‘척도, 수, 무게’에 대한 개념이다.
그의 라틴어 성경은 이렇게 증언한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척도 와 수와 무게로 배열하셨습니다[창조 하셨습니다]”(지혜서 11:20[21, The Vulgate]). ‘척도’(mensura, measure), ‘수’(numerus, number), ‘무게’(pondus, weight)는 종자적 이성 안에서 하나님이 계획하신 특정 종에 대한 잠재성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존재론 적 경계선, 즉 “한계”(limit)를 제공한다.84)
척도, 수, 무게가 종자적 이성이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하도록 하는 것 은 이 세 가지가 창조 질서의 근본 원리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때문이다.85)
성부는 피조물의 한계를 정하는 ‘척도’의, 성자는 각 존재의 형태를 부여하는 ‘수’의, 성령은 모든 피조물을 제자리에 인도 하고, 그 존재에 안정과 질서를 부여하는 ‘무게’의 원형이시다.86)
따라서 모든 피조물은 이 세 가지 원리에 따라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한 다.87)
구체적으로 ‘척도’는 특정한 종이 성장하거나 변화하더라도 그 본질이 바뀌지 않도록 해서 그것이 “저것보다는 이것으로서”(as a this rather than a that) 존재하도록 한다.88)
84)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394-95.
85) Augustine, The Trinity 3.9.18 [I/5:138]; On Genesis: A Refutation of the Manichees 1.16.26[WSA I/13:55]. 삼위일체의 각 위격은 절대적 의미의 참된 척도, 수, 무게로 인식된다.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395; Scott A. Dunham, The Trinity and Creation in Augustine: An Ecological Analysis (New York: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Press, 2009), 95-99.
86)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3.7. Dunham, The Trinity and Creation in Augustine, 93.
87) Dunham, The Trinity and Creation in Augustine, 95–99; cf.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395.
88) Oliver, “Augustine on Creation,” 395;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4.8 [WSA I/13:246].
다시 말하면, 척도는 같은 종류 안에 있는 존재들의 ‘공유된 DNA’와 유사한 기능을 하며, 각 피조물의 본질적 경계를 보 존한다.89)
따라서 하나님의 척도는 시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젖소는 젖 소를 낳고 개는 개를 낳으며 오랑우탄은 오랑우탄을 낳는” 종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장한다.90)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코끼리가 새의 알을 품 었더니 결국 코끼리-새라는 새로운 종의 생명이 부화하게 되었다거나 인 간과 침팬지가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다는 진화 이론을 수용할 수 없을 것 이다.91)
‘수’는 종자적 이성이 주변 환경과 상호작용할 때, 자기 종의 본질을 잃 지 않고 안정성을 유지하는 형태(form)을 제공한다. 여러 식물이 땅에서 자라나기 이전에, 이미 땅은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 각 식물의 본성에 적합 한 시기에 따라 배출될 각 식물의 “수”(형태)를 종자적 이성을 통해 받아 놓았다.92)
‘무게’는 피조물이 하나님에 의해 각 생명체에게 정해진 최종 목 적을 향해 나아가도록 이끄는 창조적 의지의 에너지다.93)
89)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3.7[WSA I/13: 246]; Boersma, “The Rationes Seminales in Augustine’s Theology of Creation,” 435.
90) Boersma, “The Rationes Seminales in Augustine’s Theology of Creation,” 435.
91) 닥터 수스(Dr. Seuss, 본명 Theodor Seuss Geisel)의 『호튼이 알을 품다』(Horton Hatches the Egg)는 코끼리 호튼이 버려진 새의 알을 품어 새이자 코끼리인 새로운 생명이 출현했다고 말한다.
92)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5.14[WSA I/13: 283].
93)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4.8.
94) Patrick J. Aspell, Medieval Western Philosophy: The European Emergence (Washington, D.C.: The Council for Research in Values and Philosophy, 1999), 31.
따라서 이렇게 척도, 수, 무게에 의해 구성된 창조 질서 안에서는 종의 변이가 허용되지 않는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신적 인과율(divine causality)은 종자적 이성이 가 지고 있는 피조된 인과율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하므로, “어떤 피조물도 하나님이 실제적이며 종자적인 모든 형태로 창조해 놓으신 자연 안으로 새로운 형태의 피조물을 소개할 수 없다.”94)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종 자적 이성론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형태[종]를 연속적으로 생산한다는 창조적 진화론(creative evolutionism)과는 동일시될 수 없다.”95)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생명체의 발전과 변화는 이미 종자적 이성 안 에 척도, 수, 무게에 따라 주어진 특질의 드러남을 의미하기 때문에 종의 진화, 즉 “종의 [새로운] 유입”(the flux of species)이 아니라 종의 고정성 (fixity)을 더 잘 설명하며, 생명체의 “안정성”(stability)을 설명하는 “원칙” 으로 보인다.”96)
창세기 1장의 “각기 종류대로”라는 표현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종의 고 정성을 확신하게 된 또 다른 성경적 근거였다.
‘각기 종류대로’라는 표현 은 비슷하지만 하나의 종자적 기원을 가지는 것들을 다른 것들과 구별하 기 위한 것이다.97)
그렇다면 왜 인간의 창조에는 “각기 종류대로”라는 표 현이 등장하지 않는가?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하나님이 다양한 종류 의 인간을 창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종 자체가 다른 말(a horse)과 인간이 동일한 종자적 이성에 따라 창조 되었다는 생각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 터무니없는 주장이다.98)
마치 목수 가 장기판을 만들기 전에 그 형태를 먼저 마음에 품는 것처럼, 하나님도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신성한 이성 안에 각 피조물의 모습을 이미 가지 고 계셨다.99)
95) Aspell, Medieval Western Philosophy, 31.
96) Aspell, Medieval Western Philosophy, 31.
97)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3.12.20[WSA I/13: 228]. 아우구스티누스가 사용 한 “종”(genus)이라는 용어를 WSA는 species로 번역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현대의 생물학적 종 개념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겠지만, 그 해석이 심각한 오역은 아니다.
98) Augustine, Div. qu. 46.2[WSA I/12:60]. 99) Augustine, Homilies on the Gospel of John 1–40, 52–53.
하나님은 말과 인간에 대해 각각 다른 영원한 이성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말과 인간에 대한 종자적 이성은 각각의 영원한 이성에 따 라 서로 다르게 형성되었다. ‘각기 종류대로’라는 표현은 각 종에 대하여 하나님이 세우신 불변하 는 뜻이 각 피조물의 고정성에 반영됨을 보여준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 스의 종자적 이성론이 생명체의 점진적 발전을 지지하지만, 자연 선택에 의해 종에서 다른 종으로 변형을 제시하는 자연적 진화론이나 하나님이 그런 자연 선택에 의한 종의 변형을 설계하시고 이끌어 가신다는 유신진 화론과 조화될 수 없다.100)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런 종의 고정성과 진화적 창조론의 불협화음에 대해 질송은 이렇게 진술한다:
종자적 이성론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에서 “창조적 진화의 경우처럼 새 로운 무언가의 출현을 설명하기 위하여 원용되기는커녕 . . . 새로운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실제로 새롭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소용되고, . . . 종자 적 이성이 생물변이설의 가정에로 인도되는 대신 종들의 불변성을 설명하기 위해서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원용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종자적 이성들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들 자신들의 본성과 고유한 효력을 가진다. . . 종자적 이성은 변화 보다는 오히려 불변성의 원리를 가진다.101)
100) Mariusz Tabaczek, “The Metaphysics of Evolution,” 956: “확실히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종 이 다른 종에서 생겨날 수 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지성 안에 존재하는 영원하며 불 변하는 이데아로서의 형상에 대한 그의 신플라톤주의적 관점의 문맥에서 볼 떄, 그러한 가설(한 종이 다른 종에서 비롯된다는 가설)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연에 대 한 이해에서는, 종(種)은 우주가 처음 존재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 안에 있던 자신의 종자적 원리 (seed-principles)로부터 적절한 시기에 펼쳐진다. 따라서 그는 점진주의(gradualism)를 받아들 였으나(이는 하나님이 rationes seminales의 현실화 과정에서 직접 개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과 모순되지 않는다), 그를 현대 [유신]진화론의 선구자로 볼 수는 없다.”
101) Gilson, 『아우구스티누스 사상의 이해』, 401-402.
III. 창조: 종결된 것인가, 계속적인 것인가?
1. 유신진화론의 계속적 창조 과정
일부 유신진화론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창조를 과거 사건이 아닌, 지금도 진행 중인 과정으로 보았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아우구스티누스 가 섭리를 창조의 두 번째 단계, 즉 계속되는 창조로 제시했다고 본다.
창세기 1장의 원시 물질 창조는 하나님의 직접 개입이며, 이후의 창조는 자연적 인과작용에 따른 간접적인 진화과정의 감독으로 이루어진다.
결과 적으로 이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이 유신진화론의 점진적 창조 개 념과 조화된다고 본다.
맥그래스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창조를 “창조물이 존재하도록 하신 최 초의 활동”(the primordial act of origination)으로 제한하지 않았다고 이 해한다.102)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창조 활동이 ‘시작’과 ‘전개’라는 창조의 “두 순간”(two moments)으로 이루어진다고 이해했다.103)
아우구 스티누스의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 5.4.11이 바로 이 두 순간에 대한 신 학적 근거라고 제시되었다:
결국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것들을 창조하시는(creat, creates) 분이 누구 이시겠습니까?바로 지금까지도 일하고 계시는 분(요한복음 5장 17절) 아니 시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로부터 이러한 것들을 창조 하시는(creat, creates) 반면, 그때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상태에서 그분에 의해 창조된(creata sunt, were created) 것입니다.104)
102)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40.
103)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40; A Fine-Tuned Universe, 100. 폴킹혼(John Polkinghorne, 1930-2021)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현대 과학의 지질학의 화석이나 지구의 연대가 45억년이나 되는 ‘심층 시간“(Deep Time)을 가졌다는 현대 진화론의 ‘급진적 시간성’에 대해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종자적 이성론이 현대적 의미의 진화론에 대한 “예견”이었다라고 할 수 없음을 인정한다. 또한 이 영국 성공회 신학자이자 과학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현대적 의미의 유 신진화론자도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맥그래스와 마찬가지로 폴킹혼 역시 아우구스 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이 역사 안에서의 “창조의 전개 과정”(unfolding creative process)”을 말하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선 유신진화론의 계속적 창조개념과 상응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John Polkinghorne, “Scripture and an Evolving Creation,” Science & Christian Belief 21/2 (2009): 165. 폴킹혼의 창조론에 대한 비평적 평가를 위해선 다음의 자료를 참조하라. 박찬호, “존 폴킹혼의 케노시스 창조론에 대한 비판적 평가,” 「조직신학연구」 47 (2024): 112-43.
104)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4.11[WSA I/13:282].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창조의 첫 순간은 “하나님이 인간을 포함하여 이 후에 존재하게 될 모든 종류의 살아있는 것에 대한 잠재성을” 종자적 이 성으로 창조 세계에 심어두신 [창조의] “최초 순간”이다.105)
창조의 두 번 째 순간은 첫 창조에 내재된 잠재성이 후속적으로 전개되고 발전되도 록 하나님이 진화의 과정을 자신의 “섭리로 이끌어가는 계속적 과정”(a continuing process of providential guidance)이다.106)
창세기 1장의 창조 는 과거 시제로, 섭리적 창조는 현재 시제로 나타난다.107)
따라서 아우구 스티누스에게 창조란 “종결된 과거 사건이 아니다” (not a completed past event).108) 우종학은 계속적 창조 개념이 복음주의와 같은 전통적 시각에서도 “충 분히 수용될 수 있는 개념이며 또 수용해야 할 개념”이라고 본다.109)
그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의 두 순간 개념이 진화의 섭리를 통한 계속적 창 조론과 조화될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
씨앗 속 나무의 잠재성이 하나님 의 계획에 따라 “자연적 인과관계”를 통해 구현된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의 주장은, 진화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루어진다는 계획적 창조의 의미 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110)
맥콜(Bradford L. McCall)도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 5.11.27(ACW 번역)에서 맥그래스가 말한 “창조의 두 순간” 사상을 발견 했다고 본다.111)
맥콜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피조물에 대한 섭리적 관리”(eorum administrationem)를 계속적 창조의 의미로 사용했고 창조 가 아닌 창조들에 대해 말했다.112)
105)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41.
106) McGrath, A Fine-Tuned Universe, 100.
107)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40.
108)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40.
109)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202. 200-204, 304 306.
110)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314-15.
111) McCall, “Augustine’s Theolog(ies) of Creation: Simultaneous Creation,” 144.
112) McCall, “Augustine’s Theolog(ies) of Creation: Simultaneous Creation,” 144.
위의 유신진화론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에 근거한 하나님의 이중적 창조 행위 개념이 무로부터의 단회적 창조임을 고백하 면서도 계속적 창조의 유신진화론을 지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고 이해한다.
이런 종자적 이성론은 “하나님의 주권적 지도 아래에서” 생명체가 스스로 “발전하고 진화되도록 신중하게 의도된”(deliberately designed to develop and evolve) 매커니즘에 대한 수용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113)
오를틀룬드에 의하면,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창조 로서의 섭리는 유신진화론의 창조주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서 물러나 관 망하는 이신론적 신이 아님을 보여준다.114)
113) McGrath, “Augustine’s Origin of Species,” 41.
114) Ortlund, Retrieving Augustine’s Doctrine of Creation, 190.
2. 종결된 사건으로서의 창조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이해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창 2:2)의 의미는 그분이 “새로운 종류의 피조물을 만드는 것에서 안식하 셨다”는 것이며, 안식 후 “더 이상 어떤 새로운 종의 피조물을 만들지 않 으셨다”는 것이다.115)
그러므로 하나님이 여전히 무에서 새로운 종을 창조 하신다는 주장은 그분이 동시적이며 즉각적인 창조 활동을 완전히 마치 셨다는 성경적 가르침에 어긋난다.116)
115)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12.22[WSA I/13:253]:“God can also be understood to have rested from establishing different kinds of creatures, because he did not now established any new kinds of any more.
116)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10.4.7[WSA I/13:282].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무로부터의 창조 행위를 묘사할 때 라틴 어 동사 ‘facere’와 ‘creare’를 동의어로 사용하면서 때로는 다른 신학적 뉘 앙스를 제시한다. ‘facere’는 ‘creare’ 보다 더 기술적인 의미에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존재하도록 만드시는 기독교 신만의 독특한 역사를 강조한다.
반면 ‘creare’는 무에서 유로 창조된 피조물의 구성과 질서를 부여하는 하 나님의 역사를 묘사한다.117)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맥그래스가 인용한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 5.4.11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하다(creat)’는 현재 시제를 사용했지 만, 이 동사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 행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 피조물의 보존을 뜻한다.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지금도 창조하신다’ 는 표현은 후대 아퀴나스의 ‘계속된 창조(creatio continuata)’ 개념과 유사 하며, 이는 하나님이 창조 이후에도 계속해서 피조물을 유지하고 돌보신 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118)
맥콜이 아우구스티누스가 계속된 창조를 주장했다는 근거로 사용한 � �창세기의 문자적 해석 5.11.27의 원문 번역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은 원래 창조에서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 [섭리와는] 다르게(aliter) 일하셨는데 7일째에는 자신의 창조 사역으로부터 안식하셨다. 그리고 하 나님은 현재까지 계속적으로 일하시는 모든 피조물에 대한 섭리적 관리 (administrationem)에서는 [창조와는] 다르게(aliter) 지금도 일하시고 있다 (요 5:17).
즉, 그때에는 모든 것이 어떤 시간적 지체나 간격 없이 동시에 이 루어고, 지금 이루어지는 섭리는 시간의 지연을 통해 이루어진다.119)
117) Jared Ortiz, “You Made Us for Yourself”: Creation in St. Augustine’s Confessions (Minneapolis, MN: Fortress Press, 2016), 2. Augustine, mor 2.7.9; The Confessoins 7.5.7 참조.
118) 계속된 창조(creatio continuata)라는 표현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서 발견된다. Summa Theologiae I, q.104, a.1: “Conservatio est quaedam continua creatio”(보존은 일 종의 지속적 창조이다). 아퀴나스의 이런 표현은 아우구스티누스의 “Pater meus usque modo operatur”의 의미를 담고 있다.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11.21; 4.12.23; 5.4.11; 5.11. 27; 6.3.4; 7.28.42.
119) Augustine, Gen. litt 5.11.27. 이 번역은 라틴어 원전과 WSA 번역을 참조하여 논자가 번역한 것 이다.
맥콜의 주장과 달리,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창조와 섭리에서 ‘다 르게 일하신다’고 밝힌다.
창조는 제7일 이전까지 새로운 종을 즉각적으 로 만드신 하나님의 역사이다(창 2:3-4).
그리고 안식은 그 창조의 종결을 뜻한다.
실제로 하나님은 “그 이후 어떤 새로운 종류의 피조물도 더 이상 창조하지 않으셨다”(ultra iam non condidit aliqua genera nova).120)
하지 만 하나님은 창조를 멈추고 안식하시면서도 동시에 만물을 자신의 섭리 로 계속 다스리신다(요 5:17).121)
맥콜이 인용한 “창조의 두 순간”은 라틴어 원전이나 WSA 번역본에는 없으며, ACW 번역자 테일러(John Hammon Taylor, 1908-1980)의 자의적 해석이다.
물론 단어가 없다고 해서 그 개념까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사상이 실제 존재한다고 보려면, 문맥과 아우구스티누스의 다 른 관련 진술들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창조는 새로운 종을 만드는 하나님의 역사 였고, 안식은 그 창조의 종결을 뜻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식 이후에도 자신이 동시에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중단 없이 통치하신다.
이 섭리는 창 조 때 만들어진 동일한 종류의 피조물을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보존 하고 다스리는 것이다.122)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 1장의 창조와 창세기 2장의 에덴 과실 나무 를 서로 다른 성격의 사건으로 구분한다.
첫 창조의 과실은 “모든 것을 동 시에”(omnia simul), “잠재적이고 인과적으로”(potentialiter et causaliter) 만들어진 것이다.
반면, 2장에 언급된 에덴의 과실은 “이미 창조된 것 을 기반으로 추가적으로 산출해 내신 것”(super illud scilicet quod iam eiecerat)임을 보여준다.123)
120) Augustine, Gen. litt 4.12.22 “Potest etiam intellegi Deum requievisse a condendis generibus creaturae, quia ultra iam non condidit aliqua genera nova.”
121)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12.23[WSA I/13:254].
122) Augustine, Gen. litt 4.12.22: “deinceps autem usque nunc et ultra operari eorumdem generum administrationem.” 123) Augustine, Gen. litt 6.4.5.
하나님은 이 두 본문을 통해 창조와 섭리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 셨다”(manifestat utique).124)
이 ‘추가적’인 산출은 하나님의 창조 사건에 속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던 것을 무로부터 동시적, 순간적으 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자신의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완성하셨다.
그러므 로 이 종결된 창조에 뭔가 추가해야 할 창조물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 다.125)
반면, 에덴동산의 과실이 생겨나도록 하는 하나님의 섭리 사역은 “지금까지도”(usque nunc) 계속되고 있다.126)
어떤 생명체에 대한 하나님 의 섭리는 한순간에 동시적으로 그 대상에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출 생, 성장, 번식, 죽음이라는 모든 생의 단계에서 여러 시간적 주기들을 통 해 이루어진다.127)
무에서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의 단회적이고 종결된 창조 사역은 그분 의 직접적인 개입에 의해 이루어졌다.
앞서 언급되었듯 천사나 인간 영혼 의 창조는 종자적 이성의 중재 없이 무에서 순간적으로 완성태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종자적 이성 역시 어떤 이차적인 원인자 없이 오직 하나님에 의해 기적적으로 직접 창조되었다.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각각 성인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셨을 때도 그분은 그들의 종자적 이성을 사용해서 사람으로 태어나 자라가게 하신 것이 아니다.
아담은 유아나 소년이 아니라 성인 남성으로 존재를 시작하 였고 하와는 아담의 갈비뼈에서 성인 여성으로 창조되었다. 이는 그들의 창조가 종자적 이성이나 천사와 같은 다른 이차적 원인자를 통한 것이 아 니라 하나님 “그분 자신에 의해 직접적으로”(by directly himself) 이루어 진 것음을 보여준다.128)
124) Augustine, Gen. litt 6.4.5.
125)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4.11[WSA I/13:281].
126) Augustine, Gen. litt 6.4.5.
127)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11.27[WSA I/13:290].
128)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6.15.26[WSA I/13:315]; 9.15.28[WSA I/13:392]: Tabaczek, “The Metaphysics of Evolution,” 953-54.
이와 같은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은 단지 아담과 하와의 육체적 창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실, 각기 종류대로 창조된 동 물들과 다른 피조물들 역시 하나님의 직접적 개입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 다.129)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종결된 창조론은 유신진화론이 주장하는 진화를 통한 새로운 종의 계속적인 창조론뿐만 아니라 창조 사역에서의 하나님의 간헐적 개입론과도 충돌한다.
유신진화론자의 계속된 창조론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지키려고 했던 창조와 섭리의 중요한 구분을 부정하는 것이다.130)
우병훈은 천문학자 우종학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섭리 개념을 현재적 창조로 해석한 것이 유신진화론에 대한 이신론적 비판을 회피하 기 위한 것이라 보았다.131)
이러한 해석은 창조와 섭리를 구분하려는 아우 구스티누스의 신학적 의도를 약화시킨다.
창조와 섭리는 목적과 본질이 구분되는 하나님의 상이한 사역이다.
창 조는 어떤 이차적 원인자의 중재 없이 오직 하나님이 자신의 초월적 능력 으로 직접 개입하여 무로부터 발생시킨 종결된 사건이다.
반면 섭리는 창 조된 세계를 시간의 흐름속에서 유지하고 자신의 뜻대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사역이다.
하나님이 단 한 순간이라도 피조물에 대한 전능한 섭 리적 사역을 중단하신다면, 만물은 “동시에 즉시 해체되어 사라질” 것이 다.132)
129) 인간과 동물의 창조에서 차이점은 하나는 하나님의 직접 창조로 다른 하나는 어떤 이차적 원인자 의 중개적 활동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첫 인간 커플과 첫 동물들도 모두 흙으로부터 하 나님의 말씀에 의해 직접적인 기적의 역사로 만들어졌다.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6.12.22[WSA I/13:313].
130) 우병훈에 따르면, 유신진화론자인 우종학이 개혁주의 창조론인 “즉성적 창조론”을 부인하고 창 조와 섭리의 개념을 혼돈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우병학, “개혁신학의 관점으로 평가한 진화 창 조론,” 167. 각주 56번 참조. 개혁주의 입장에서 창조와 섭리의 신학적 구분에 대해 간결하지 만 잘 설명된 자료를 보고자 한다면 다음을 참조하라. Richard Muller, Dictionary of Latin and Greek Theological Terms: Drawn Principally from Protestant Scholastic Theology (Grand Rapids: Baker, 2017, 2nd ed), 83-4에 나오는 “creatio”와 “creatio continuata” 설 명 참조.
131) 우병훈, “개혁신학의 관점으로 평가한 진화 창조론,” 167.
132) Augustine, Gen. litt 4.12.22.
건축가 없이도 유지되는 집과 달리, 세계는 하나님의 지속적인 유지와 붙드심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물이 포도주로 바뀌고, 마른 지팡이가 뱀이 되고, 나귀가 말을 하는 경 우처럼 때로 하나님은 섭리적 사역에서도 자신의 초월적 능력을 종자적 이성에게 직접적으로 나타내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그 초 월적인 능력을 이차적 원인자를 통해 종자적 이성에게 다른 간접적인 방 식으로 나타내신다.
창조와 섭리 사이에 있는 이런 신학적 구분을 간과할 경우, 창세기 2:2를 섭리의 중지로, 요한복음 5:17을 계속적 창조의 근거 로 오해하게 될 것이다.133)
아우구스티누스의 청중 가운데 어떤 이는 창세기에 기록된 기적-예컨 대 에녹의 승천, 수백 년 동안의 장수, 임신이 불가한 고령 여성의 임신 에 대해 놀라워하면서도, 자신의 경험과 이성적 추론으로 그런 기적이 문 자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지 않았다.
그런데 동일한 청중이 창세기 1장에 묘사된 무로부터의 최초 창조 사건에 대한 성경적 기사는 자신의 경험과 이성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 는 데 주저하는 경향이 있었다.134)
133)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12.23[WSA I/13:254].
134)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8.1.2[WSA I/13:347].
이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존재성이 전혀 없었던 자연 세계가 하나 님의 말씀에 의해 동시적이며 순간적으로 창조된 것은 그 어떤 인간 경험 에도 상응하지 않는 아주 예외적인 특별한 사건임을 강조한다.
왜냐하면 창세기 1장은 현존하는 피조 세계의 질서 유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세계 라는 피조물이 처음 탄생한 순간을 묘사하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창조는 시간 속에서 종이 발전해가는 과정이 아 니라, 무에서 유로, 동시적이며 즉각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존재를 만드시 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을 통한 단회적인 역사다.
그리고 종자적 이성 을 통한 잠재성의 발현은 계속적 창조가 아니라 완성된 창조에 대한 하나 님의 섭리적 돌봄과 통치의 사역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지금도 새로운 종을 창조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6일 동안 모든 창조를 완성하셨 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공개적으로 부정하는 것이다.135)
이와 관련하여 우즈가 이미 경고했듯, 우리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 적 이성 개념에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진화론적 의미를 주입하는 오류를 피해야 한다.
다시 말해, 유신진화론적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우구스 티누스의 창조론이 지지하지 않는 표현이나 신학적 의미를 그의 진술에 자의적으로 덧붙이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136)
135)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5.20.41[WSA I/13:297].
136) Woods, Augustine and Evolution, 3-4.
한 신학자의 교리를 올바 르게 이해하려면, 개별 문장이나 단어보다는 특정 주제에 대한 그의 총체 적인 가르침에 근거해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해석 원칙을 따른다면, 하나 님이 현재 어떤 새로운 종도 창조하지 않는다고 강조한 아우구스티누스 의 입장은, 하나님의 섭리 아래에서 점진적 진화를 통해 현재적 창조가 이 루어진다고 보는 유신진화론과는 신학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V. 나가는 말
본 논문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rationes seminales)론이 진 화를 통한 계속적 창조론의 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유신진화론자들 의 주장을 비평적으로 평가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피조물을 동시적이며, 즉각적으로 창조하셨고(집회서 18:1; 창 2:4b), 천사나 인간의 영혼 등을 제외한 거의 모든 피조물은 시간의 흐 름을 통해 점차 완성된 형태를 나타낼 잠재적 형태로 창조되었다. 이 잠재 성을 지닌 비가시적이며, 비물질적인 창조의 씨앗이 바로 종자적 이성이 다.
생명체는 이런 종자적 이성을 통해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자 신의 가능성을 점진적으로 실현해 나간다.
다윈의 종의 기원 이후 일부 과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 스의가 설명한 발전의 잠재성을 지닌 종자적 이성을 진화의 동력으로 해 석하여 유신진화론의 신학적 정당성을 뒷받침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본 논문은 이런 해석이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에 내재된 형이상학 적, 신학적 전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결과임을 밝혔다. 본 논문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다음 세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하였다.
첫째, 종자적 이성: 설계된 잠재성의 발현인가, 종의 변이를 위한 동력인가?
둘째, 종의 고정성: 시대의 산물인가, 신학적 결론 인가?
셋째, 창조: 종결된 것인가, 계속적인가? 이 질문을 통해 종자적 이 성론이 유신진화론의 주요 주장들과 조화될 수 없음을 제시하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자적 이성을 생명체가 자의적으로 본질을 변형시 키는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각 생명체를 향해 설정하신 영원한 뜻이 실 현되는 수단으로 보았다.
다시 말해, 종자적 이성의 원형은 하나님의 영원 한 이성이며, 이 영원한 이성에 따라 각 생명체의 발전 방향이 창조 이전 에 결정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자적 이성이 생명체의 발전을 위한 제 한된 자율성이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이 자율성은 하나 님이 예정하신 설계 안에서 작용하는 이차적 원인일 뿐이다.
종자적 이성 의 잠재성이 완전히 실현되는 것은 궁극적인 ‘효율적, 전형적, 목적적 원 인’으로서의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가능하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고전 3:6).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종의 고정성은 단순히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명 백한 신학적 결론이었다
하나님은 종자적 이성이 시간 속에서 그 잠재 력을 발산할 때 따를 규범으로 ‘척도,’ ‘수,’ ‘무게’를 부여하셨다(지혜서 11:20).
이 세 가지 규범은 종자적 이성이 활동할 틀을 제공하며, 생명체 의 변화는 허용하되 하나님이 부여하신 본질은 변하지 않도록 한다. 그 결 과 각 피조물은 하나님이 부여하신 고유한 형태와 특성을 다음 세대에까 지 보존하게 된다.
이런 신적 규범에 따라 피조물은 ‘각기 종류대로’ 창조 되었으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콩에서 밀이 나오지 않고, 밀에서 콩이 나오 지 않으며, 인간이 짐승에게서 나오지 않고 짐승도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 는다’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창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무에서 동시적이며 즉각적으로 만들어내 신 종결된 사건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완성된 형태 또는 종자적 이성이 라는 잠재적 형태로 창조하셨다.
따라서 지금도 하나님이 뭔가 새로운 종 의 피조물을 만들어 낸다고 말하는 것은 그분이 창조 사역을 마치고 안식 하셨다는 성경적 가르침에 위배된다.
물론 하나님이 만물을 돌보시는 섭 리 사역은 창조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요 5:17).
그러나 종자적 이성의 잠재성이 시간 속에서 드러나는 과정은 창조의 연장이 아니다.
이것은 창조물을 관리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 사역에 속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와 섭리를 각각 목적과 본질이 구 분되는 별개의 신적 행위로 이해하였다.
창조는 하나님이 어떤 이차 원인 자의 중재 없이 무에서 직접 피조물을 창조해 내시는 초월적 사건으로 종 결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은 그의 창조론에서 하나 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유신진화론이 수용할 수 없는 다음과 같은 개념들과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동시적이며 즉각적인 창조성,’ ‘불 변하는 영원한 이성의 시간적 구현을 위한 잠재성,’ ‘이차적 원인자 위에 계신 하나님의 주권적 통치,’ ‘종의 고정성(fixity of species),’ 그리고 ‘창 조의 종결성.’
따라서 아우구스티누의 종자적 이성이 함의하는 ‘발전을 위 한 잠재성’이라는 개념이 유신진화론의 ‘진화를 통한 계속적 창조’ 개념과 외견상 유사하더라도, 양자는 형이상학적, 신학적 차원에서 본질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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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초록]
본 논문은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of Hippo, 354-430)의 ‘종자적 이성’(rationes seminales)론이 유신진화론(혹 진화론적 창조론) 과 신학적으로 양립할 수 있다는 주장을 비평적으로 평가하고자 한다. 아 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이 세상을 6일이라는 시간의 흐름을 통해서가 아 니라 동시적이며 즉각적으로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이때 대부분의 피조 물은 완전한 형태를 향해 나아갈 비물질적, 비가시적인 잠재력을 지닌 종 자적 이성으로 만들어졌다. 많은 유신진화론주의자들은 이런 종자적 이 성론이 점진적인 진화를 통한 계속적 창조의 신학적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본 연구는 이런 주장은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종의 고정성 개념의 형이상학적, 신학적 전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종자적 이성론 에 대한 그의 신학적 이해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임을 지적한다. 아우 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은 ‘동시적이며 즉각적인 창조,’ ‘불변하는 영 원한 이성의 시간적 구현을 위한 잠재성,’ ‘이차적 원인자 위에 계신 하나 님의 주권적 통치,’ ‘종의 고정성(fixity of species),’ 그리고 ‘창조의 종결 성’이라는 사상들과 본질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론에서 이런 개념들은 유신진화론을 수용할 수 없는 방식으로 전개 된다. 본 연구는 유신진화론주의자들에 의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 에 대한 해석의 문제점을 지적한 기존의 연구에서 부족했던 통합적이며 체계적인 비평을 시도하였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다음 세 가지 질문을 중심으로 논의를 전개한다. 첫째, 종자적 이성: 설계된 잠재성의 발현인 가, 종의 변이를 위한 동력인가? 둘째, 종의 고정성: 시대의 산물인가, 신 학적 결론인가? 셋째, 창조: 종결된 것인가, 계속적인 것인가? 이 질문들 에 대한 답변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종자적 이성론과 유신진화론이 생명체 의 잠재적 발전이라는 개념에서 표면적인 유사성을 보여주지만 그 잠재 적 발전의 성격에 대해선 양측이 근본적인 불일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주제어: 아우구스티누스, 유신진화론, 영원한 이성, 종자적 이성, 종의 고정성, 창조의 종결성]
Abstract
A Critical Assessment of Theistic Evolution’s Interpretation of Augustine’s Doctrine of Seminal Reasons
Dongsun Cho (Korea Baptist Theological University/Seminary, Assistant Professor)
This paper critically evaluates the claim that Augustine’s doctrine of “seminal reasons” (rationes seminales) is theologically compatible with theistic evolution (or evolutionary creationism). Augustine asserts that God created the world not through a temporal process spanning six days, but simultaneously and instantaneously. In this act of creation, most creatures were formed as seminal reasons-immaterial and invisible potentials oriented toward their fully developed forms. Many proponents of theistic evolution argue that this notion provides theological grounding for the concept of ongoing creation through gradual evolutionary processes. However, this study contends that such a claim fails to account for the metaphysical and theological presuppositions underlying his concept of the fixity of species and reflects an arbitrary interpretation of Augustine’s theological understanding of seminal reasons. Augustine’s doctrine of seminal reasons is intrinsically and essentially connected to such notions as “simultaneous and instantaneous creation,” “potentiality as the temporal manifestation of immutable eternal reason,” “God’s sovereign governance over secondary causes,” “the fixity of species,” and “the completion of creation.” Within Augustine’s theology of creation, these concepts unfold in a manner that precludes the acceptance of theistic evolution. This study attempts an integrative and systematic critique that addresses the interpretive shortcomings of previous analyses of how theistic evolutionists have engaged Augustine’s notion of seminal reasons. The discussion centers on three key questions: First, are seminal reasons the unfolding of designed potentialities, or a dynamic force for the transformation of species? Second, is the fixity of species a product of historical context or a theological conclusion? Third, is creation a finished act or an ongoing process? The answers to these questions reveal that, while both Augustine’s doctrine and theistic evolution may appear to share a surface-level similarity in appealing to the idea of potential development within living beings, they fundamentally diverge concerning the nature of that development.
[Key words: Augustine, Theistic Evolution, Eternal Reason, Seminal Reasons, Fixity of Species, Completion of Creation]
논문 투고일: 2025.06.16. 수정 투고일:2025.07.21. 게재 확정일: 2025.08.05
조직신학연구 50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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