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과학과 기술은 다양한 영역에서 인간의 능력을 향상시키 인간을 자연 환경에 의존 하는 수동적 존재에서 환경을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며 활용하는 존재로 변화시켰다.
과학과 기술을 통해 인간 문명은 지구상 어떤 종과도 비교할 수 없는 성취를 이루었 지만,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비교적 단순한 도구로 협력 사냥을 하였던 호모 사피엔스가 1~5만 년 전 아프리카에서부터 다양한 대륙으로 이주하면서 인류가 이주 한 지역의 거대 포유류의 멸종이 가속되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소비 시스템 은 지구 환경을 급격히 파괴하었고, 막대한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인한 기후 변화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과학 기술은 전쟁의 도구 또한 급격히 발전시켜 인류는 칼, 화약 같은 단순한 무기에서부터 세계 대전과 냉전 시대를 거치며 전차, 군함, 미사일 등의 대량살상 무기와 핵무기까지 개발하였다.
이는 통제 없는 과학 기 술이 인류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과 환경의 멸종까지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위기는 과학 기술 통제의 필요성을 일깨워 주었고 인류는 이를 위해 협력하고 성과를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합의와 통제에 있어서 새로운 국면이 도래하 였다. 바로 인공지능의 기술의 등장이다. 기존의 무기 체계들은 아무리 막대한 위력을 가지고 있어도 인간의 판단과 결정 없 이는 사용될 수 없었다. 기존의 기술은 복잡한 인간의 사고 체계와 판단 과정을 구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기, 전자, 정보통신 기술 및 인지 과학의 눈부신 발 전을 바탕으로 딥러닝과 같은 새로운 알고리즘을 통해 인간의 사고 작용을 대신할 만 한 성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기계가 구현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인 언어와 창조적 활동까지 수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인공지능은 인간 생활의 다 양한 영역에서 빠르게 활용되고 있으며, 무기 개발에도 적극적으로 도입되어 각국의 연구자들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율살상무기 개발에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영화와 상상 속에서만 가능했던 인공지능 자율살상무기의 등장과 그에 따른 윤리적 법적 논쟁은 오늘날 실제 전쟁터에서 이미 진행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서부터 활발히 운용되기 시작한 드론은 인간의 전쟁 개입을 점차 축소시키기 시작하 였다. 점점 더 발전하는 첨단 무기들은 단순한 정밀무기로의 진화를 넘어 일부 판단 과정을 자체 알고리즘과 센서에 맡기는 자율적 특성을 띠고 목표를 식별하고 공격하 는 방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최근 미국이 이란을 침공한 ‘장대한 분노’ 작전에 서 미군은 이란 공습 첫 24시간 동안 1,000여 개 표적을 타격하는 데 인공지능을 적 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팔란티어(Palantir Technologies Inc.)가 제공하는 대규모 데 이터 분석 플랫폼으로 인공위성과 감시장비의 막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앤스로픽의 AI 클로드는 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전달 받아 적의 의도와 위협 수준을 평가하여 표적을 설정하고 전투 수행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등 인간의 의사결정을 보조하였다.1)
1) 조선일보 기사, “팔란티어가 찾고, 앤스로픽이 분석하고, 인간이 발사 버튼... AI가 짠 '장대한 분노'” , 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6/03/05/6KDXJRZHHJAADJ7OQK2FBRULQA/ (2026. 3. 5)
이러한 첨단 무기의 확산은 전쟁 윤리에 여러 새로운 이슈를 불러온다. 먼저, 살상 행위의 책임 주체에 대한 문제이다.
인간 지휘관, 알고리즘 설계자, 군사 조직, 국가 정책 모두 개입된 상태에서 책임을 특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며 전통적인 전쟁 윤 리가 전제해 온 명확한 행위자와 책임자 구조를 흔든다. 또한, 자율무기가 인간의 통 제를 벗어나거나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할 경우, 비례성·차별성·사전경고 같은 국제법과 윤리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이와 더불 어 첨단 기술로 인해 전투의 범위와 속도가 증가하면서 인간이 전쟁의 과정과 결과를 제대로 고찰하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줄어들게 된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대부분의 논의는 인간을 유일한 도덕적 행위자로 두고, 기술은 인간의 의도를 단순히 실행하는 도구로 보는 이분법적 틀 속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인간 중심적 논의 는 인간과 기술의 복잡하게 얽힌 자율무기의 작동 양상을 제대로 포착하기 어렵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먼저 브루노 라투르 등이 제시한 행위자-연결망 이론 (ANT)을 도입하여 자율살상무기(AWS)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기술·제도가 결 합된 행위자임을 밝힐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기계에게 일정한 행위자성을 부여할 때, 현실적으로 많은 이들이 거부감과 불합리성을 느끼게 된다. 이에 화이트헤드의 과정 철학을 토대로, 이러한 거부감이 고정된 실체인 주체 중심의 전통적 존재론에서 비롯 됨을 보일 것이다.
데카르트로부터 출발한 사유와 연장의 분리, 칸트에게서 정점을 이 루는 고정된 주체 중심의 사고 등은 인간을 유일한 활동적 존재로 유지하려 하지만, 과정철학은 모든 존재가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형성되고 변화하는 과정적 실재로 이 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인간의 행위자성에 대한 불편함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 적인 실체 중심이 아니라 이와 같은 변화와 과정 중심의 존재론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인간-비인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의 신-인간-자연의 관계 또한 새롭게 구성될 수 있다.
2. 행위자-연결망 이론과 자율살상무기
행위자‑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이하 ANT)은 1980년대 중반 브뤼노 라투르(B. Latour), 미셸 칼롱(M. Callon), 존 로(John Law) 등이 공동으로 발전시킨 과학기술학 이론으로 인간과 비인간 요소가 함께 형성하는 네트워크 속에서 지식과 기술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ANT는 과학적 사실과 기술적 사물의 생산 과정을 비인간 요소의 역할을 포함하는 연결망을 형성하는 것으로 재구성한다. ANT는 기존 과학사 회학이 사회적 요인만으로 과학적 사실을 설명하려는 경향을 비판하면서, 자연/사회,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벗어나, 실험실·병원·전장·행정기관 속에서 인간과 비인간이 혼 합된 하이브리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받아들이며 행위자의 개념을 확장해 인간과 비인간을 모두 행위자(acor)/행위소(actant)로 보는 ‘일반화된 대칭성(generalized symmetry)’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2)
라투르는 과학적·기술적 사실이 사전에 주어진 존재가 아니라, 연구자와 기계, 실험 장치, 데이터·기록, 기금·제도 등이 서로를 번역하고, 동맹을 맺고, 네트워크를 형성하 는 과정에서 안정화된 결과라는 점을 강조한다. 또한 모든 행위자는 어느 것에 자신 을 연결하는가에 따라, 그 역량을 얻으며, 행위자는 내재적 본질이 아니라 관계 속에 서 수행하는 효과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비인간 행위자는 단지 인 간의 의지가 실현되는 수동적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행동을 바꾸거나, 제한하거나, 확장하는 능동적 존재로 이해된다.
총·기계·소프트웨어·알고리즘 등은 사용자의 의지 에 따라 목적이 정해지기보다, 사용 과정에서 인간의 목표를 변형시키고 새로운 행위 방식을 생성하는 행위자인 것이다.
ANT의 이러한 관점은, 기술을 ‘중립적 도구’로 보는 실용주의적 기술관과 인간을 유일한 행위자로 보는 인본주의적 사고를 동시에 문제시하며, 인간과 비인간이 ‘동맹 (alliance)’을 맺고 공동으로 세계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분석하는 데서 그 이론적 정 체성이 드러난다. 이러한 행위자-연결망을 건설하는 핵심 과정은 ‘번역(translation)’ 인데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풀이하는 원래의 의미와 마찬가지로 ANT의 번역 또 한 한 행위자의 이해나 의도를 다른 행위자의 언어로 치환하기 위한 프레임을 만드는 행위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 의도가 완전히 같아질 수는 없으며, 다른 차이가 계속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번역은 네트워크를 건설해 가는 끝없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 과 정에서 네트워크를 건설하는 행위자는 다른 행위자들에게 일과 역할을 부여하는 데 이러한 일의 목록을 ‘기입(inscription)’이라고 한다.3)
2) 브뤼노 라투르 저, 홍성욱역,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서울: 갈무리. 2009), 240-246.
3) 브뤼노 라투르 외, 『인간·사물·동맹』(서울: 도서출판 이음,2010), 17-34. - 4 -
ANT의 이러한 관점은, 자율살상무기(Autonomous Weapon Systems, 이하 AWS) 와 같은 기술적 객체를 분석하는 데 특히 유용하다.
라투르의 이론에서는 AWS를 구 성하는 총·드론·알고리즘·센서·데이터 등 각각의 기술 객체가 인간의 의지를 실현하는장치에 머물지 않고, 군사 조직·국제법·여론·기술 표준 등과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서 새로운 행위를 생성하는 ‘행위자‑연결망’으로 이해된다. 이는 기존 논의가 인간이 기 계를 사용하고 기계가 인간의 명령에 반응하는 것에 주목한 것과 달리, 기술이 인간 의 판단과 행동을 형성하고, 네트워크 전체가 책임을 공유하는 방식에 주목하게 한다.
ANT에서 행위자(Actant)는 다른 존재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으로서 그 존재가 인 간이든, 기계·데이터·제도든 구분되지 않는다. AWS는 센서, 알고리즘, 통신모듈, 발사 체, 제어장치, 소프트웨어, 데이터 등 비인간 요소가 결합된 기술체계로 구성된다.
이 체계는 단지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수동적 장치에 머무르지 않고, 표적을 인식·추 적·선택·공격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판단 속도와 범위를 바꾸고, 전투의 흐름과 책임 구조를 재구성하는 능동적 효과를 낸다. 따라서 AWS는 하나의 기계라기보다, 여러 비인간 요소가 결합된 클러스터로 취급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 클러스터는 네트워 크 속에서 인간 행위자와 함께 하나의 효과적 행위 단위를 형성한다.4)
4) 김현중, “넥스트 오펜하이머 시대: 자율살상무기 발전에 따른 예상쟁점 및 대응방안”, 『국방연구원 전 략보고서』(284), 1-15.
라투르는 ANT의 핵심 전제로 ‘일반화된 대칭성(generalized symmetry)’을 제시하 며, 인간과 비인간을 사전에 구분하지 않고, 둘 모두가 ‘행위가 되는 조건’에서만 분 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AWS를 분석할 때도 마찬가지로, “누가 AWS를 만드는가”, “누가 AWS를 사용하는가”, “누가 AWS의 결과를 책임지는가”와 같은 인간 중심의 질문을 넘어, AWS 자체가 “어떤 행위를 창출하는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 어, AWS는 지휘관이 AI가 선정한 표적 목록을 받아들여 승인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선택 범위와 우선순위를 좁히거나 확장시키는 효과를 낸다.
이때 인간 지휘관과 AWS 의 알고리즘·센서·네트워크의 클러스터를 동시에 행위자로 취급해야 하며, 둘의 상호 작용에서 ‘살상 행위’와 ‘책임 구조’가 형성된다. AWS는 더 이상 ‘사람이 쓰는 도구’ 가 아니라, 인간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행위의 축이 된다.
ANT의 분석은 번역을 통해 다양한 행위자들이 서로를 끌어들이고 이해관계를 조정 하는 과정을 밝히는 데 초점을 둔다. AWS의 경우 개발 단계에서는 연구자, 군수기 업, AI·소프트웨어, 데이터셋, 예산, 군사기획, 법적 규제 등이 서로를 번역하며 형성 한 결과물이다.
또한 전쟁의 수행 단계에서는 AWS, 센서, 통신망, 상위 지휘부, 군사 교리, 정책·국제법, 언론·여론이 서로 연결된 네트워크 안에서 작동한다. AWS가 민간 인 밀집지역의 표적을 우선적으로 제시하거나, 특정 시간·지역에 대한 공격을 자동으 로 제안하는 등 인간의 선택 가능 범위 자체를 제한하거나 확장한다. 이 과정에서 AWS는 단순히 ‘결정을 받는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판단을 형성하는 비인간 행위자 로 기능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AWS는 기존의 ‘전쟁 윤리’와 ‘법적 책임’ 개념을 재구성하게 만들며 인간과 제도가 그에 맞춰 새로운 규범과 제도를 설계하도록 ‘번역’을 요구한다. [Inss 2024, 25–27; Kim 2024, 15]
ANT의 관점에서 AWS를 비인간 행위자로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함의가 도출된다.
첫째, AWS는 인간과 비인간 요소가 연결된 ‘행위자‑연결망’의 한 축이며, 그 자체가 인간의 판단과 전쟁 윤리의 구조를 변화시키는 능동적 효과를 지닌다.
둘째, AWS는 인간의 선택 범위·속도·우선순위를 조정하고, 책임 구조를 재구성함으로써, 전통적인 인간 중심적 윤리와 법적 구조에 도전한다.
셋째, AWS는 연구·개발, 전쟁·작전, 윤리· 법적 논의 각 단계에서 서로 다른 행위자들과 번역·연결을 통해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이 과정에서 그 ‘행위자성’이 안정화된다.
따라서, AWS의 윤리적·법적 논의는 이제 “인간 vs 기계”의 이분법을 넘어, AWS를 하나의 비인간 행위자로 포함시키는 네트 워크 전체에서 책임 구조를 재설계해야 함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인식은 다음 장에 서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을 통해, ‘실체 중심’이 아니라 ‘관계와 과정 중심’의 존재론 으로 AWS의 행위자성과 인간의 책임을 재구성하는 데로 이어진다.
3장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과 자율살상무기 ANT가 자율살상무기를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된 네트워크 속의 행위자로 드러냈다 면,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은 그 행위자성을 가능하게 하는 존재론적 토대를 제공한 다.
화이트헤드는 전통 형이상학이 전제했던 고정된 실체(substance) 중심의 존재 이 해를 비판하고, 세계를 관계와 생성의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의 핵심 개념인 ‘현실적 존재(혹은 계기)(actual entity/occasion)’는 세계를 구성하는 궁극적인 실재로서 정 태적이고 자족적인 사물이나 주체가 아니라, 다른 존재들의 영향을 받아 스스로를 구 성해 가는 순간적 사건을 뜻한다. 존재는 “무엇인가”로 고정되기보다 “되어 가는 것” 이며, 관계와 변화를 통해 자기 자신을 형성한다.5)
5) 화이트 헤드 저, 오영환 역, 『과정과 실재』(서울: 민음사, 2013), 78-81.
화이트헤드에게 세계의 기본 단위는 독립적으로 닫힌 개체가 아니라, 다른 개체들 을 ‘파악(prehension)’하며 자신을 구성하는 현실적 계기들(actual occations)이다. 각각의 현실적 계기는 과거로부터 자료를 받아들여 이를 자기 안에서 통합하고, 그 통합의 결과로 새로운 현재를 형성한다. 한편 AWS는 센서가 수집한 환경 정보, 사전 학습된 데이터셋, 실시간 지휘 명령, 전장 상황의 피드백을 입력받아, 이를 내부 알고 리즘 구조 안에서 재구성한 뒤 다음 행위를 산출한다.
인공지능의 딥러닝 알고리즘은 다층의 신경망으로 구성되는데 각 층은 이전의 층의 데이터를 가공하여 다음 층으로 출력하며 출력 결과를 바탕으로 각 층간의 매개변수를 조정하는 반복된 과정을 통해알고리즘을 완성한다.
이러한 인공지능과 AWS의 작동 원리는 과정철학의 개념과 유 비되며, 인공지능이 외부 세계를 단순히 복제하는 기계가 아니라, 세계를 자기 방식으 로 통합하는 과정을 통해 작동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물론 AWS를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의식적 주체로 볼 수는 없지만, 과정철학은 인 공지능 기술이 인간과 질적으로 전혀 다른 존재론적 층위에 있는 도구가 아니라, 관 계적 입력과 반응을 통해 행위를 생성하는 과정적 장치라는 점에서 인간과 동일한 층 위에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은 기계가 행위자가 될 수 있는가라는 반발 에 중요한 철학적 답변을 제공한다.
고전적 실체론에서는 행위는 자율적 실체, 곧 인 간적 정신이나 의지의 전유물로 이해되기 때문에, 기계의 행위자성을 인정하는 것은 비상식적으로 보이지만,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에서는 모든 현실적 존재가 일정한 방 식으로 세계를 파악하며 느끼고 이를 통합하여 새로운 계기로 이행하다는 점에서 행 위자성은 인간만의 독점물이 아니라, 세계 속에서 관계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실재들 의 보편적인 능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AWS를 과정철학적으로 이해하면, 그 위험성도 단순히 “기계가 인간을 대신해 살상 을 실행한다는 표면적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AWS는 현실적 존재로서 전장을 계속해 서 새롭게 구성한다. 인간 지휘관의 판단은 더 이상 독립적인 숙고의 결과가 아니라, 알고리즘이 제안한 표적 목록과 위험 계산 등에 의해 형성된 제한된 선택지에 갖히게 된다.
그러므로 AWS는 단순히 명령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이 만들어지는 조 건 자체를 변화시킨다.
따라서 인공지능 AWS와 같은 기술은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입력·분석·판단·출력의 연쇄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적 존재로 이해될 수 있다.
현실적 계기들이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을 새롭게 구성하는 존재론적 원리에 따라 AWS 역시 전장, 데이터, 조직, 알고리즘, 명령 체계, 국제정치의 흐름 속에서 매 순 간 재구성된다.
따라서 AWS의 행위자성은 본질적으로 고정된 성질이 아니라, 끊임없 이 형성되고 변형되는 과정적 성격을 갖는다.
그러므로 “기계에게 어떻게 행위자성을 부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과정철학의 관점에서 “어떠한 관계적 과정이 AWS를 행위자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치환할 수 있다.
이 질문은 자율살상무기의 도덕적·법적 책임을 다시 생각하게 할 뿐 아니라, 인간 역시 절대적으로 고정된 주체 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존재임을 상기시킨다.
4. 신학적 인간학의 재구성
ANT와 과정철학적 관점으로 살펴본 AWS의 존재론적 지위는 기존의 인간 중심의 고정된 윤리적 법적 기준을 다시 구성하게 만든다.
이는 기독교 신학의 위치와 의미 에 대해서도 인식의 변화를 요청한다. 기존 기독교 신학에서는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 (Imago Dei), 즉 신의 유일한 대리자로서 다른 피조물과 기술을 지배하고 신의 의도 대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독점적 행위자로 이해해 왔다.
이는 인간만이 신의 능력 을 위임받아 세계를 지배하는 적극적이고 독립적인 존재이며 다른 존재들은 수동적인 대상으로만 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공지능에 기반을 둔 AWS와 같은 자율적·네트 워크형 기술이 등장한 지금, 이런 인간 중심적이고 지배적인 신학적 인간학은 인간이 처한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AWS는 단순히 인간의 의도만을 수행하는 도구 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결합된 네트워크 안에서 공동 행위를 생성하며 인간의 판단·속도·책임 등의 행동을 재구성하는 적극적 행위자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은 더 이상 신의 의지를 단독으로 대리하는 절대적 지배자가 아니라, 신·인간·기술·자연이 함께 형성하는 네트워크 안에서 다양한 행위자를 중재하 는 적절한 번역자이자 조직자로서 신의 의지를 공동으로 수행하는 존재로 해석된다.
그리고 AWS처럼 센서·데이터·알고리즘·네트워크가 복잡하게 연결된 기술 체계 또한 인간의 지배 대상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일부로서, 그의 명령을 위임 받아 네트워크를 이루는 존재의 한 형식으로 보아야 한다. 이때 기존의 인간의 독점 적 책임과 의무는 인간‑비인간 종-물질‑자연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분산·공유되며, 그러므로 인간의 역할은 단순한 지배가 아니라, 이 다양한 관계들의 번역·연결·조정을 통해 네트워크를 견고하고 책임 있게 만드는 것으로 재정의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 새로운 신학적 인간학을 제한해 본다.
첫째, 인간은 신과 다른 피조물·기술 사이의 ‘번역자’이다.
인간은 신의 의지와 창조세 계 간, 또 인간의 목표와 비인간 요소의 역할 사이에서 의미와 책임을 번역하고 연결 한다.
예를 들어 AWS의 설계·도입·사용·규제 과정에서 인간은 기술의 힘, 전쟁의 윤 리, 국제법, 인간 존엄의 가치 등을 서로 번역하며, AWS가 무책임한 살상 무기가 되 지 않고, 책임 있는 기술적 네트워크가 되도록 조정하는 중재자 역할을 맡는다
둘째, 인간은 네트워크를 ‘기입’하는 존재이다.
인간은 기술과 자연을 신의 의도에 부합하도록, 즉 창조의 질서 속에서 화해와 생명을 향한 방향으로 기입하는 책임을 지닌다.
AWS는 그 자체로는 목적을 지니지 않지만, 인간이 그에 어떤 의미와 규범을 기입하느냐에 따라, 학살을 가속화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고, 인간의 판단을 보완·조 정하는 공동 주체가 될 수도 있다.
셋째, 인간은 네트워크의 ‘견고화’를 책임지는 존재이다. 인간은 AWS가 무분별하게 자율성을 키우는 구조가 아니라, 인간의 신중한 판단과 윤리적 규범, 신학적 가치가 계속해서 기입되고,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가 견고하게 조직되는 구조를 설계하고 유 - 8 - 지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우월성과 지배 능력을 뜻하는 개념이 아 니라, 인간이 신·인간·기술·자연의 관계 네트워크 안에서 신의 의도를 읽고, 다른 존재 들과의 상호작용을 번역하고, 그 네트워크를 책임 있게 조직·견고화할 수 있는 존재로 부름받았음을 가리키는 소명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인공지능 시대의 과학과 기술의 관점을 반영하는 신학적 인간학은, 인간을 ‘하나님의 의지가 실현되는 최종적 주체’로 보는 고정된 인간 중심 구도를 떠나, 신과 인간과 기술·자연이 함께 움직이는 ‘행위자‑연결망’ 속에서 인간이 ‘적절한 번역자’가 되도록 초대하는 관계적·과정적 인 간학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AWS와 관련된 윤리적 법적 논의가 인간의 책임만이 독점적으로 강조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희석되어 기술적 문제에 그치는 방향으로 흐 르지 않도록, 신학적 관점에서 인간의 책임과 부름을 다시 물을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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