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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이야기

에드가 드가(1834~1917)/ Elizabeth Keith(1987~1956)

1. 에드가 드가
(1834~1917)

Edgar Degas는 파스텔화와 유화로 유명한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입니다. 드가는 청동 조각품, 판화, 소묘도 제작했습니다. 드가는 특히 발레라는 주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의 작품 중 절반 이상이 무용수를 묘사합니다. 드가는 인상주의의 창시자 중 한 명으로 여겨지지만, 그는 그 용어를 거부하고 자신을 사실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을 선호했으며, 많은 인상주의자들과는 달리 야외 사생을 기피했습니다. 드가는 뛰어난 소묘가였으며, 특히 무용수들과 목욕하는 여성의 누드 묘사에서 볼 수 있듯이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탁월했습니다. 발레 무용수들과 목욕하는 여성들 외에도 드가는 경주마와 경주 기수, 그리고 초상화를 그렸습니다. 그의 초상화는 심리적 복잡성과 인간의 고립을 묘사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주로 발레 무용수와 경주마를 작품 소재로 삼았습니다. 그는  인상주의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그의 작품들 중에는 고전주의와 사실주의 색채를 띠고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들도 있습니다. 그는 리세 루이르그랑을 졸업하고 파리 대학교 법학부에 들어갔으나, 학업을 포기하고 1855년 앵그르의 제자 루이 라모트의 소개로 파리 에콜 데 보자르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당시 루브르 박물관을 드나들면서 거장들의 그림을 익혔습니다. 그는 1856-1857년에 걸쳐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르네상스의 거장, 특히 기를란다요, 만테냐의 작품을 배우고, 또 푸생과  홀바인의 그림도 배웠습니다. 1865년 살롱에 "오르레앙 시의 불행"을 출품하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후, 인상파 전람회에 참가했으나 뒤에는 독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그는 1872년 어머니의 고향인 미국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로 떠나 미국의 역동성을 목격합니다. 1873년 파리로 돌아와 인상주의 화가들과 본격적인 교류를 시작했고, 말년에는 지병인 눈병이 악화되어 시력을 거의 잃는 바람에 주로 조각에 몰두했습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어릴 적 어머니가 남편의 동생과 불륜을 저질러 이 영향으로 여자를 싫어하게 됐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는 전기에는 가만히 서 있는 모델을 주로 그렸으나, 후기 그림에는 대부분 일상 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초기엔 "보나의 초상" "꽃을 든 여인" "이오 부인" 등 초상화에서 출발했고 차츰 무용, 극장 등의 근대적 민중 생활의 묘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움직이는 것의 순간적인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그리는 독자적인 수법을 썼습니다. 특히 보는 각도를 바꾸어 가면서 정확한 데생과 풍부한 색감을 표현했습니다. 그는 무희를 모델로 한 작품이 많아 '무용의 화가'로 불리웠습니다. 주요 작품으로 "댄스 교습소" "국화 옆의 여인" 등이 있습니다.
그는 사실주의 그림을 싫어해 귀스타브 쿠르베가 그린 사실주의 그림을 보고 차라리 사진을 찍으라며 악평을 했습니다. 한번은 거하게 취한 드가가 술자리에서 지팡이를 쳐들고 친구들 앞에서 "사실파 새끼들에게 쏘는 총이다! 탕! 탕!" 하며 크게 외친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에드가 드가의 그림 중 특히 사랑받는 것은 발레리나를 그린 작품들입니다. 드가는 당시 유행하던 발레리나 그림을 그려 큰 수입도 얻었답니다. 드가는 발레리나들과 친분을 쌓은 후 무대, 대기실, 연습실을 다니며 순간적인 모습을 스케치하였습니다. 그의 그림 중에는 무대 위 아름다운 모습을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지도록 그린 작품이 많습니다.그러나 그의 그림 중에는 당시 발레리나들의 어두운 면을 담은 작품도 있습니다. 발레는 처음에 왕과 귀족을 위한 문화였고 무대 위 출연자도 귀족 남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드가가 살던 때도 발레가 아직 대중화되지 않아서 관객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시 하층민 사이에서 발레가 신분 상승의 수단이 되어 부모가 처음부터 부유한 남성 스폰서를 구할 목적으로 딸을 발레리나로 혹독하게 훈련시키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이를 보여주는 작품이 '무대 위의 무희'입니다.
드가의 그림 속 발레리나들은 대부분 목에 검은 색 초커를 착용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드가가 스폰서십 관계에 있는 남성의 구속을 의미하기 위해 초커를 그렸다는 주장이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당시 발레리나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기 위해 노력했던 드가가 발레리나들이 실제로 착용하지 않은 초커를 의도를 가지고 그림마다 새겨 넣었을 리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건 일종의 모욕입니다. 드가가 관찰한 지역에서 초커는 허리의 리본 등과 함께 발레 착장이었을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오늘날 예술의 도시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가장 핫한 곳은 단연 에드가 드가의 전시회장입니다. 그가 그린 겹겹이 겹쳐진 튈(Tulle: 실크나 면을 그물 모양으로 짠 얇고 투명한 직물) 소재의 발레복이 만들어내는 환상적인 색채는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2.  Elizabeth Keith(1987~1956)

1919년 처음 한국을 찾은 뒤 한국의 여러 가지 풍속과 사람을 그린 화가입니다.
영국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근무하는 언니 부부를 따라 일본에 왔다가 동양에 매혹되어 머물렀습니다. 그 뒤 언니와 함께 1919년 3월 28일, 조선에 와서 한국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그린 그림을 1946년 '올드 코리아'라는 책으로 펴냈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작품은 색동옷을 입고 마당에서 노는 아이들, 좁은 방에 마주 앉아 학문을 논하는 노인들, 추운 겨울바람을 막아주는 남바위 등 1900년대 초 한국의 모습을 따뜻하면서도 정교하게 담아내 지금까지도 좋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책에 실린 그림들은 ‘정겨운 사람들’, ‘마음에 남는 풍속들’, ‘아름다운 사람들’, ‘기억하고 싶은 풍경들’의 네 가지 마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엘리자베스 키스는 어떤 모습을 그리든 따뜻하고 애정 어린 시선을 담았습니다.

한국의 이름난 명승을 그린 작품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금강산 구룡폭포를 그린 작품은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절로 시원한 느낌을 줍니다. 금강산 구룡폭포는 화강암 아래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로 금강산 4대 폭포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고 해서 ‘구룡폭포’라는 이름이 붙은 배경을 보여주듯, 엘리자베스 키스는 아홉 마리의 용을 그려 넣어 해학을 더했습니다.

단정한 유학자를 그린 작품에서는 조선 선비와 얼굴을 대한다는 것이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고 회상하면서, 선비의 몸가짐과 인자한 부드러움에 경탄을 보냈습니다.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들은 언뜻 평범한 듯하면서도,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과 찬탄이 담겨 있어서인지 비범한 인상을 줍니다. 평범한 대상이라도 자세히 살펴보고 애정을 담아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