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일승과 삼승
"대승 입장에서 기존인식을 수용하려는 노력"
일불제자와 성문. 연각. 보살승
상황에 따라 나눠진 진리 의미
대승불교는 만인의 성불을 근거로 생겨났다.
그리고 그 성불의 근거를 부처님이 깨우친 지혜에서 찾아
처음부터 반야바라밀다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반야바라밀다 곧 '지혜로서 인간의 완성' 을 주장하고
부처님과 같은 길을 가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부처님의 길을 가는 수행자를 보살이라 불렀다.
곧 보살은 대승의 이상적인 수행자이자 대승불교도 스스로를 지칭하는 말로
부처님을 모범으로 중생구제를 위해 서원을 한 수행자를 가리킨다.
이러한 대승의 수행자로서 보살에 대하여 초기대승경전에서는
다양한 실천도를 제시하여, 보살이 부처에 이르는 단계를 보여주고 있다.
보살의 실천도로 대표적인 것이 십지(十地)이며,
이 십지설은 대승의 다양한 실천도를 구성하는 근본요소가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보살도의 실천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이 대승의
보살도가 기존 부파불교의 수행체계를 수용 새롭게 극복하고 있다.
이렇게 대승의 입장에서 기존의 불교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또 다른 예가
〈법화경〉등에서 보이는 일승(一乘)과 삼승(三乘)의 개념이다.
대승의 교단을 보살승이라 하지만, 이 보살승의 집단은
당시 불교계의 다양한 부파의 승가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승의 이념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당시 불교계에 인정을 받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오히려 대승의 입장에서
기존의 불교계를 대승 안으로 수용하고자 하는 노력이 생겨났다.
이러한 노력을 보여주는 것이 삼승의 개념으로,
곧 성문승(聲聞乘), 연각승(緣覺乘), 보살승(菩薩乘)의 셋을 가리킨다.
성문승이란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듣는 제자들의 집단이란 의미이다.
연각승이란 특별한 스승없이 부처님의 근본 뜻인 연기의 이치를 깨닫는
제자들이란 뜻이다. 곧 성문승과 연각승은 기존의 불교승가를 가리킨다.
보살승이란 보살의 집단으로서, 대승불교도의 집단을 지칭한다.
이렇게 대승불교도는 당시 불교승가의 집단을 삼승으로
분류 정리하고, 스스로를 기존의 승가와 대등하게 간주하였다.
그렇지만 대승은 이 삼승에 그치지 않고 이 삼승은 일승이
나타난 것이라는 원대한 대승의 이념을 전개한다.
일승은 일불승(一佛乘)이란 말로 하나인 부처님의 집단이란 의미이다.
곧 대승의 의지처이자 불교의 근거로서
부처님의 지혜를 받드는 공통된 제자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삼승은 부처님을 각각의 상황과 근기에 따라 달리
이해한 것으로 본질적으로는 모두 같은 부처님의 제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일승과 삼승의 의미는 근본적인 진리가 상황과 조건,
방편에 따라 셋으로 나뉘어 진 것을 의미한다.
곧 근본목표는 부처님과 같이 성불을 하는 것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것이 상황과 근기에 따라 각기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근본목적과 방편, 조건의 관계를〈법화경〉의
방편품은 '불타는 집' 의 비유로 잘 보여준다.
불타는 집에서 불이 난 줄 모르고 뛰어노는 자식들에게 아버지는
침착하게 방편을 사용하여 무사히 아이들을 구출한다.
곧 아이들이 좋아하는 물건을 줌으로써 불타는 집을 빠져나오게 한다.
각각 좋아하는 물건이 달랐지만 아이들이 무사히 빠져나오자
아버지는 모든 아이들이 좋아하는 큰 물건을 준다.
이것이 양거(羊車), 녹거(鹿車), 우거(牛車)의 삼거와
대백우거(大白牛車)로 표현되는〈법화경〉의 내용으로
삼승은 일불승으로 회향한다는 내용을 잘 보여준다.
삼승과 일승의 관계는 보통 개삼현일(開三顯一)
회삼귀일(會三歸一) 개권현실(開權顯實) 등으로 표현된다.
이 삼승과 일승은 불법(佛法)을 따르는 모든 제자는
다 같은 부처님의 제자라는 대승불교의 이상을 보여준다.
또한 다양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근본적으로 부처님과 같은
성불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이 가르침에서 대승불교가 기존의 불교계에 인정받는 단계를 넘어 기존의
불교를 수용, 흡수하여 새롭게 재해석하는 원대한 이념을 엿볼 수 있다.
[글 : 이태승 위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 불교신문 기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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