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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야기

[스크랩] 단군왕검은 신화가 아니라 조작된 허위명칭이다.

  2013. 4. 17. 한민족사연구회 학술발표.

 

유우찬의 역사광복을 위한 공동연구제안서

단군왕검은

제왕의 칭호가 아니다.

 

차 례

1. 발표배경                  6. 단군왕검

2. 단군에 대한 기록      7. 단군용어의 발생

3. 단군의 정체              8. 삼국유사

4. 단국과 단군              9. 칸의 유래

5. 왕검과 임검            10. 정리

                                         11. 결론

한국상고사 연구회

 

1. 발표배경:

상고사 공부를 시작한지 33년인데 10여전부터 큰 의문을 가졌는데:

단군이래 세계를 정복한 유일한 영웅인 징기스칸은 당골이나 뎅그리라는 말이

있는데 “칸”을 왕칭으로 썼을까라는 의문이 들어서 연구를 해 보았더니:

1. “단군” 이나 “단군왕검”제왕의 칭호가 아니 구나!

2. 나라이름과 왕 칭이 모두 틀렸 구나!

3. 도읍지를 확정하지 못했구나!

4. (3가지) 우리는 머리 없는 역사를 하고 있구나!

5. 상고사에는 사대주의 망령이 깃들어 있구나!

그래서 지금부터 함께 공동연구를 해서 교과서를 고쳐 우리의 후세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대주의와 식민주의 망령에서 벗어나 세계최고의 역사의식을 심어주자는 취지로 오늘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2. 단군에 대한 기록

1) 중국 시조부터 기록한 사마천(BC.145-BC.85)사기 오제본기 16에

“遂見東方君長合時月正日(동방 군장을 뵈옵고 시간, 날자, 달을 바로잡았다.” 고 하여 아사달의 임금을 순임금이 찾아뵙고 역(易)을 서로 맞추어 바로잡았다는 기록.

여기서는 군(君)이 아니라 제후들의 우두머리인 “군장(君長)”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약 300년 후에 갑자기 위서 동이전에 근거 없는 “단군”이 등장하는데 그 이후부터 우리의 모든 서적에 등장한다.

AD200년대(AD.250-316)의 중국 <삼국지 집해서30 위서 동이전> 38에

“조선은 단군으로부터 1048년 주나라 초에 기자가 40여세를 이었다”고 왜곡했다.

AD.365-420년 박제상의 부도지본문 “임검”

AD.550년경에 북제의 위수가 쓴 <삼국지 . 동이전>에 “단군”.

AD. 579년- 632년 안함로의 삼성기 상에 “단군왕검”, 원동중의 삼성기 하 “단군“.

AD.700년 전후의 발해의 대야발의 “단기고사” 에 ”단군“이 나온다.

(대야발은 많은 사서를 수집하고 내몽골과 돌궐 등을 순방한 후에 씀)

1206-1289년 고려말 일연의 삼국유사 “단군왕검“

1297- 1364년 이암의 단군세기, ”단군“이란 말이 나온다.

1675 북애자의 규원사화단군기, “단검, 환검, 단군, 임검” (임금이란 군장의 뜻)

모두 중국의 기록보다 300년에서 900년 이후에 나왔으므로 모두 중국의 기록을 참고하여 쓰면서 “단군”이란 말이 자연스럽게 인용된 것으로 보인다.

신라의 안함로, 원동중보다 앞선 박제상(365∼420년)의 부도지 본문에는 단군이란 말이 없고 임검씨로 되어있다.

왜 고조선 당시를 기록한 사마천의 <사기>에 등장하지 않는 ”단군“이란 용어가 중국이 강성해졌 있을 때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3. 단군의 정체

단군에 대해 언급한 것을 찾아보면:

단군이란 밝달임금번역것이다. 곧 단군이란 단국(밝달나라)의 임금이다.

밝달을 단檀) 이라 하고 임금을 임검이라 한다. (규원사화 단군기)

※ 단군은 밝달임금이지 (고)조선의 임금이 아니다.

 

4. 단국과 단군

1). 한웅 시대의 “한웅”을 “단군”이라고 기록한 고서는 없으며 한웅의 “밝달나라”

를 후세의 사가들이 “단국”이라고 기록한 사람도 없다. 그러므로 단국이나 단군은

원래의 한웅 시대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2). “한웅”의 밝달 시대에서는 “한웅”이란 왕칭이 이미 있고 삼국유사 고조선 편에

한인으로부터 왕권을 물려받은 초대 ”한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 단군왕검”이라고 하였으니 한웅의 밝달 나라 시대에는

한웅의 아들이지 대제국의 천제가 아니다.

 

3) 단국은 치우한웅의 제후국.

후에 치우(14대 자오지 한웅 BC.2707∼2578 )가 중국동부를 개척하여 한웅이 된 후에 만주에 있던 밝달 나라의 도읍을 산동반도 청구 땅으로 옮기니(일명 청구국) 이전의 밝달(檀墟) 은 자동적으로 체후국가가 되었다. 이 제후국가인 “밝달”을 후세에 “밝달”과 뜻이 통하는 밝달나무 단(檀)자를 써서 단국이라고 번역했다.

제후국(단국)의 대읍을 맡아보다 나중에 임금이 되었는데 이 “단국 임금”은 한웅의 제후인 임검(왕검)이다.

단국이나 단군왕검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에 해당된다.

단국임금을 후세의 한문으로 줄여서 단군이라고 번역 했어도 단군, 단군왕검은 치우 왕조 (BC.2707∼2333. 374년간)의 제후왕칭이다.

그러므로 단군은 제사장의 칭호가 아니다.

단군이란 제후 왕칭을 아사달(속칭 조선)이란 대제국을 개국한 제왕의 칭호(천제)로 쓰고 있으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 왕검과 임검

1) 왕검이 이름이 아니라 제후의 칭호다.

웅녀군(熊女君)의 후손으로서 여(黎)라고 하는 이가 처음으로 단허(檀墟: 밝달의 땅)에 책봉 받아서 왕검(王儉)이 되매 덕을 심어 백성을 사랑하고 영토를 차츰 크게 넓히니 여러 왕검들이 와서 특산물을 바치고 귀화하는 자가 천여명을 헤아렸다.

뒤에 신인왕검(神人王儉)이 섭정한지 24년 만에 왕위를 이어받아 구한을 통일하고 단군왕검이 되었다.”(한단고기 태백일사 삼한관경본기 제4)

대륙전체였던 한웅 왕조 에서는 왕검이 천여 명이나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검은 감군이며 관경의 우두머리다”(태백일사 신시본기)

왕검은 속어로 대감이니 땅을 관리하고 지키며 포악함을 제거하여 백성을

돕는다”(삼한관경본기4)

※ 왕검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임금칭호인데 천제가 아니다.

 

2) 한문은 은나라시대에는 획수가 적은 간결문자였다가 주(周)나라 시대에 와서 복잡한 획수의 문자로 늘어났고

2200년 전의 한나라 시대에 와서 완성되었으므로 삼국시대에는 우리말 발음인 이두문이 한문식 단어와 함께 쓰다가 고려시대부터 본격적으로 한문문자식의 말이 되었다.

그러므로 4300년 전에는 우리말이 한문문자식이 아니라 밝달, 아사달, 부루, 부여 등의 고대 언어였으므로 임금칭호를 “왕(王)”이라고 한일이 없다.

단국이나 단군도 겨우 2000년도 아니 된 고대에 와서 만들어진 칭호들이다.

한, 중, 일의 모든 역사기록에서 최초로 “왕”을 임금칭호로 쓴 것은 BC. 771년 중국 주(周)나라 평왕 때 처음 썼으므로 그 이전에는 “왕”자를 쓸 수 없다. 따라서 ‘왕검“은 잘못된 용어이다.

옛날에는 모든 서적을 붓으로 필사하여왔으므로 수많은 필사과정에서 글자가 비슷한 임자(壬)를 왕자(王)로 잘못 필사한 것이 오늘에 전해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임검”이 “왕검”으로 둔갑하였고 “단국임검(檀國壬儉)”을 중국이나 일본에 의해서 “단군왕검(檀君王儉)“으로 왜곡된 것으로 본다.

 

6. 단군왕검

“한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 단군왕검이다“ (삼국유사)

단군왕검은 한웅천제의 아들이니 황자나 왕자로서 천제반열이 아니고 제후반열의 칭호다.

단군은 치우왕조의 제후다

앞에서 왕검은 이름이 아니라 제후 왕칭이다.

그러므로 단군도 한웅의 제후 왕칭이고 왕검도 한웅의 제후 왕칭으로서 단군왕검이란 왕왕 ,임금임금이 되어 왕칭이 반복되는 이중언어이니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용어이다. 이런 것을 우리는 무조건 사용하여 왔으니 부끄럽다.

 

7. 단군용어의 발생

1). 단국의 임금인 단군이 도가 높고 덕망이 높으니 널리 제후들이 스스로 복속하여 와서 드디어 큰 세력을 이루게 되었고 전쟁마다 모두 승리하니 그 인물이 사해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새로운 나라 아사달(속칭 고조선)을 개국하여 칸(신한)이 되었는데 개국 때와 천제 때는 사해의 모든 왕들이 4년마다 참여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늘이 내린 사람, 검님(후세의 天子, 天皇, 天帝)), 신같은 사람, 곰님(神人,聖人) , ”밝은 이(후세의 仙人), 감님(大監, 上監), 하늘을 받드는 제사장“ 등으로 숭상하고 후에는 신격화되어 각기 자기나라말로 변해서 몽골은 ”당골, 당그리, 뎅그리” 라고 하고 중앙아시아에서는 ”당그리, 덩그리, 당골“이라고 하고 멀리 수메르에서는 ”딩그르”라고 했다.

이런 말들은 통치자인 왕에 대한 칭호보다는 샤머니즘적 표현이다.

 

2). 고대에 와서 발해의 대야발은 역사회복을 위하여 흉노와 몽골 등을 순방했다고 하는데 “당골, 당굴레, 뎅그리” 등의 발음이 중국사기의 ”단군“과 비슷하므로 음차하여 단군이란 말을 쓴 것으로도 볼 수 있다.

 

3). 원래의 기록은 “단국 임검”이었는데 후세에 이 말을 한문으로 줄여서 “단군”으로 쓰니 이 말이 오늘에 전해진 것으로도 볼 수 있다.

4). 어떤 사람들은 몽고의 “당그리”가 우리말 “당굴레”가 되고 이것이 “단군”으로 되었다고 하는데 당시의 몽골은 지방제후국이었다.

그러므로 대제국인 본국의 왕칭을 제후국의 용어를 사용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5). 어떤 사람들은 단군은 제사장이고 왕검은 임금이란 뜻이라고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옛날의 제사장은 곧 임금으로서 제정일치의 군장이니 제사장과 임금을 구분할 필요도 없었고 구분하지도 않았던 시대 이니 이러한 해석은 틀린 것이다.

 

제사장을 언급하려면 “단군”이 아니라 “선군”으로 불러야 맞다.

선도, 선인, 참선, 흉노의 선우 등은 모두 비슷한 뜻으로 통하는 말들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제정일치였으므로 궂이 임금과 제사장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단군이다 선군이다 하는 말을 다 쓰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본다.

 

8. 삼국유사

삼국유사 제1권 기이 제1 고조선편의 단군이야기 첫머리에서는 “위서(魏書)”에 이런 말이 있다고 하여 “단군”이란 말을 기록상으로 제일먼저 언급하고 우리역사를 왜곡한 중국의 위서를 인용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천여년 전에 단군왕검이 계셨는데 아사달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워 국호를 조선이라 불렀는데 이때는 중국의 고임금(요임금)과 같은 시기였다고 한다” 고 하였는데

 

중간쯤에서는 한인으로부터 제위를 물려받고 태백산에 나라를 세운 시조

“한웅이 웅녀와 혼인하여 낳은 아들이 단군왕검이다“ 고 하였다.

이 두 가지 문장에서

한웅시대는 지금부터 약 5900여 년 전이고 아사달(고조선)개국은 4300여 년 전이다. 그런데 5900여 년 전에 태어난 단군왕검이 1565년 뒤인 4346 년 전의 고조선의 개국시조로 되어있다.

한웅시대 1565년을 완전히 삭제시킨 것이다.

한웅시대가 삭제되면 그 앞의 한인시대 3301년도 없어지게 된다.

결국 4900년간의 우리역사를 고조선 시조가 “단군”이다 고 한 것 하나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중국 측에서 중국보다 오래된 우리역사를 잘라내기 위하여 중국의 힘이 커진 뒤에 “단군”을 고조선의 임금으로 기록했는데 우리역사서를 망실하고 후세의 고려와 이조에서는 극심한 사대주의에 의하여 중국의 기록이 옳다고 보고 역사를 저술하였으니 중국의 술수에 놀아나고 말았다. 그 핵심이 바로 “단군”이란 용어이다.

 

9. 칸의 유래

1). “칸”의 유래:

18000년 전의 멕시코 마야의 조상 왕조.

11600년 전의 마 칸. 마 칸(여 왕), 마마, 마님, 할마, 할미 삼신할매, 정치적 칭호, 임금 윗분존칭, 일반존칭, 무속칭호, 마고: 번역어

황궁 칸(알다이) -- 유인 칸(알다이) -- 인 칸 (한인: 거발한)

-- 곰 칸(밝검: 한웅: 거발) -- 검 칸(한검: 신한: 속칭 단군: 하르빈)

---고두막 칸(북부여 5대: 일명 동명왕) -- 징기스 칸(몽골제국)

뿌리가 우리말로 보이는 바티 칸, 어메리 칸도 있다.

“칸”을 사용한 사람이나 나라는 과거에서 현재까지 세계적인 지배세력이었 다는 공통점이 있다.

4300년 전의 아사달시대에는 원래의 우리말식“신한”,“맑한”,“밝한”으로 사람이나 지명이 앞에 오고 뒤에 왕칭이 붙는다.

징기스칸이나 일본의 “---천황” 우리식 표현이다.

중국의 필법은 우리와 반대로 임금칭호가 앞에 오고 이름이나 호가 뒤에 온다. ”帝堯(제요), 帝舜(제순)” (사마천사기 오제본기 1- 10, 20)

우리식이 아닌 중국의 필법으로 桓 仁(환인), 桓熊(환웅), 환검(桓儉)으로 번역 하였으니 여기에도 사대주의 망령이 깃들어 있다.

칸”은 주로 고원지역의 발음이고 “간”은 고원지역이나 중간지대의 발음이며 평야지에서는 “한(만주, 한반도)“ 또는 “안(수메르)”으로 발음했다.

 

옛날에는 임금을 “칸(한)”이라고 불렀는데 한문시대인 고려시대에 와서 한문에는 “칸“자가 없으므로 부득이 발음이 비슷하면서도 밝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환(桓)“으로 번역하여 중국식 필법에 의하여 환인, 환웅이 된 것이다.

”한“”칸“의 여러 뜻 중에서 ”첫 번째(한, 하나), 수 머리, 우두머리“의 뜻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은 환(桓)자보다 간(干)으로 번역했다면 “간인, 간웅”으로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사달(고조선)의 왕칭이 ”신한, 마한(맑한), 변한(밝한)"등 한()을 사용한

것은 원래 조상들인 한인, 한웅의 왕칭이 "()"이었기 때문에 그 전통을 따랐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는 한인시대, 한웅 시대, 한검 시대모두 왕 칭은 “칸(한)” 하나뿐이다.

 

2) 아사달의 왕칭이 신한, 맑한, 밝한의 “한(칸)”이었으므로 아사달(1048년 후의 조선)의 왕칭은 “단군왕검”이 아니라 “칸(한)”이었다.

이렇게 분명히 왕칭이 있는데도 왜 “단군”이란 말을 써서 우리 스스로를 낮추고 혼란을 야기하는가?

만약 당시의 왕칭이 “단군”이었다면 고 조선의 후예로서 조상의 영토를 수복한 유일한 몽골의 데무진이 아시아대륙을 통일한 후 단군, 당골, 텡그리 등의 왕 칭을 썼을 것이다. 그런데 징기스칸은 아사달 삼한의 전통을 이어받은 “칸(징기스 칸, 후빌라이 칸)”을 왕칭으로 사용했다.

 

10. 정 리

1) 단군은 치우 이전에는 한웅의 아들이고 치우한웅부터는 제후국인단국의 임금이다

2). 왕검은 이름이 아니라 한웅의 제후칭호.

3). 단군왕검은 한웅천제의 아들이니황자나왕자이므로 천제반열이 아니고 제후반열의 칭호다.

4). 단군도 제후칭호이고 왕검도 제후칭호이니 단군왕검이란 왕왕, 임금임금이 되어 왕칭이 반복되는 이중언어이니 전혀 말이 되지 않는 용어다.

5) 우리역사에서 제왕의 칭호에 “단군”이나 “단군왕검”이란 용어가 원래부터 없었다.

6). 중국보다 오래된 우리역사를 잘라내기 위해 "단군이 조선의 임금이라고 왜곡했는데 우리가 모두 그대로 따라서 7300년간의 우리상고역사사가 사라졌다.

7) 평양에 기자무덤을 만들고, 중국의 책봉을 받거나 아첨하기 위하여

태종, 세조3년 3월 (1457), 예종1년 9월, 성종원년 12월 고사서를 수거하여 불태우는 극심한 사대사상에 의하여 중국이 쓴 “조선”이란 국호와 “단군”이란 용어를 자연스럽게 쓴 것으로 본다.

8). 2000년도 안된 근 고대에 와서 원래의 “단국임검”을 한문으로 줄이면 단군 이 되는데 이 말이 지금까지 전해지게 된 것으로도 보인다.

9). 치우의 본국이 중국 산동반도였기 때문에 단군이나 단군왕검이란 말을 쓰면 옛 조선은 현재의 국가영토적으로 보면 중국의 제후국이 된다.

국제사회의 공인을 받을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어느 한 가지도 용납할 수 있는 것이 없다.

세계의 기층언어는 한국어이다. 중국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원시반본의 섭리에 의하여 우리말이 50년 이내에 영어와 함께 세계공통어가 될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나라 이름과 왕칭 등의 역사용어들을 한문식이 아닌 우리말 식으로 바꾸는 정풍작업 필요하다.

그래야 중국의 사대주의, 일본의 식민주의를 탈출하여 역사광복을 이룩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이미 한단고기에 있는 대로 “신한”을 써도 좋고,

상고시대는 우리나라가 세계의 왕들을 감찰하는 “검국”이었으니 왕 중의 왕인 “검칸(한검)”으로 할 수도 있고, “아사달칸”으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11. 결론

1). “단군”은 근 고대에 만들어진 실제명칭이지만 “단군왕검”은 신화도 아니고

중국보다 오래된 우리역사를 잘라내기 위하여 원래 없었는데 중국이

“단국임검”을 “단군왕검”으로 조작하고 시조한웅의 아들로 꾸며서 (고)조선의시조로

삼으니 한웅왕조는 자동적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중국의 술수에 놀아나지않기를

바란다. 단군왕검은 한웅의 아들이 아니다. 한웅도 한인의 아들이 아니다.

한웅의 아들이면 한웅의 제위를 이어받아 나라를 정비하거나 재편하면 되는데

한웅의 제후인 왕검을 이어받아 구한을 통일하고 도읍을 새로 정하고 국호를

바꾸어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할 필요가 없다.

인류역사에서 전왕조의 마지막 왕의 아들이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예는 없다.

있다면 조작된 것이다. 고주몽이 부여 마지막 왕의 아들인가? 왕건이 고구려

마지막 왕의 아들인가? 이성계가 고려 마지막 왕의 아들인가? 중국의 역사에서

새로운 나라를 건국한 사람이 전조의 마지막 왕의 아들인자가 있는가?

왜 한국 사람들은 진실이 아닌 것을 믿고 의지하는가?

역사가 미신인가, 신화인가?

 

2). “단군조선”도 없었는데 중국이 조작한 허위명칭이다.

치우한웅 왕조의 제후국인 “단국임검”인 “단군”이 9한을 통일한 것은 맞다. 그러

나 새로운 나라 아사달(조선)을 국호로 선포하고 제위에 오르는 순간부터는 “단군

이 아니라 한(칸)인, 한(칸)웅의 법통을 이어서 신한, 마한, 변한 같은 “한(칸)”이다.

아사달 즉 후세에 조선이라고 고쳐 부른 나라의 임금은 “한(칸)”이지 이전의 제후

였던 “단군”이 아니다. 그러므로 “단군조선“이란 말이 성립될 수 없는데 중국이

우리역사를 잘라내기 위하여 시조한웅의 아들이 세운 나라가 조선이라고 하여

한웅왕조자체를 없앤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바로 이것을 혼동하여 자신들이 우리역사 7300년을 잘라먹은 중국의

골수파 사대주의자가 되어있는 줄을 모르면서 강단사학자들을 욕하고 비판한다.

강단사학자들은 “단군왕검”을 신화라고 했지만 신화가 아니라 조작된 용어이니 반

절은 맞춘 셈이지만 강단사학자들은 아사달(조선)이란 나라가 아예 없었다고 하여

2천년 역사를 중국과 똑 같이 잘라낸 일본의 음모를 그대로 반영하였다.

중국의 똥을 뒤집어쓰고“단군조선”을 말하는 사대주의자와 일본의 똥을 뒤집어쓴

강단사학자가 서로 멱살을 잡고 싸우는 꼴이니 한국에는 진정으로 한국역사를 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3). 단군이란 분이 아사달을 세우고 삼한로 나누어 스스로 신한(신칸)이 되었다.

단군이 아니다. 거발한, 신한, 마한, 변한 등의 “한(칸)“을 속에 숨기고 ”단군“을

전면에 내세운 한단고기를 비롯한 우리의 모든 고서들이 거의 사대주의 망령

깃들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4). 상고시대의 “곰, 검, 감”은 성통광명(性通光明)을 이룬 고대의 선인(仙人)이나

부처 같은 사람을 백성들이 추대하여 제정일치의 임금이 된 칭호인데 고대에 와서

정교분리에 의해서 임금은 황제로 바뀌었고 종교적인 용어로는 제사장이 되었다.

“임검”의 “검‘ 은 세상을 감찰하는 권한이며 ”임“ 은 즉 맡긴다. 맡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아사달을 건국한 제왕은 상고시대에 세계를 감찰하는 임무를 가진

임금이므로 “검칸(중국식으로는 한검)”으로 부르는 것이 가장 적합하다.

“칸(한)” 칭호는 세계의 지배자칭호다. 우리는 11600년 전의 마칸(마고)으로 부

터 이어받은 세계의 지배민족 칸(한)의 종주민족이다.

 

5). 한단고기나 삼국사기의 지명들은 중국대륙의 지명들이다. 한반도 지명은 없다.

한반도는 역사기록이 없다. 따라서 한국은 역사가 없는 나라다. 이것이 진실이

다. 그런데 한단고기를 비롯한 고서들이 중국에는 없고 우리에게만 전해졌으니

고서들의 역사를 우리역사로 하려면 중국과는 완전히 독립된 역사로 해야만 한다.

그러려면 그들이 지어낸 “단군”이나 “단군왕검‘이란 용어를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6). 현재 중국은 신농, 황제, 치우를 삼조당까지 만들어 자기네 조상으로 받들고 있

다. 그러므로 치우왕조의 제후인 “단군”을 언급하려면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하여

어떤 이의도 제기해서는 아니 된다.

한국인들은 지식은 높은데 정신이 투철하지 못하다. 사대주의와 식민주의에 휘들리

지 말자.

칸(한)이란 말 한마디면 임금이요 제사장으로서 중국을 제압하고도 남는데 무엇하

러 제사장이란 단군칭호를 따로 만들어 고집하는가?

 

여러분 모두 함께 이 문제를 연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우찬 저 인류사개론 참고)

                                                    

                                                                    21세기 미래문제 연구인

                                                                    한국 상고사 연구회 회장 유 우 찬

 

출처 : 한밝회 : 한국상고사연구회
글쓴이 : 유우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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