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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스크랩] 조선후기 호락논쟁의 교육사적 의의 /정덕희(1)

조선 후기 호락논쟁(湖洛論爭)의 교육사적 의의 / 정 덕 희(성균관대)


Ⅰ. 들어가는 말

회암 주희(晦庵 朱熹, 1130~1200)에 의하여 집대성된 성리학은 교육과 숙명적인 관계를 가진다. 그것은 성리학 자신이 교육을 궁극적인 지향점으로 설정하였기 때문이다. 성리학의 사상적 강령을 대표하는 󰡔중용󰡕(中庸)의 첫머리는 교육과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하늘이 명령한 것 그것을 ‘성’이라 하고, 그 ‘성’을 따르는 것 그것을 ‘도’라 하고, 그 ‘도’를 닦는 것 그것을 ‘교’라 한다”(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여기에서 보듯이, 󰡔중용󰡕의 ‘하늘’은 ‘성’과 ‘도’를 거쳐 ‘교’로 수렴된다. 이러한 수렴방식은 유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불교를 배척하는 성리학의 자연스러운 논리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불교가 출세간(出世間)의 논리에 따라 시간성을 초월한 열반(涅槃)의 세계를 지향한다면, 성리학은 세간(世間)의 윤리로 얽혀있는 현실세계(This-worldliness)를 실질적으로 규율하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중용󰡕의 ‘하늘’은 ‘성’과 ‘도’를 매개로 세간의 ‘교’ 속으로 용해되어 그것의 출세간적 공적성(空寂性)이 탈색되면서 동시에 현실세계에서 ‘교’를 수행하는 인간의 작위(作爲)의 대상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회암은 󰡔중용󰡕의 첫머리를 집주(集注)하면서 인간사회에 법도를 세우는 것을 교육이라 하고, 예악형정으로 표현되는 모든 사회적 시스템이 교육에 귀속된다고 해설하였던 것이다(以爲法於天下, 則謂之敎, 若禮樂刑政之屬是也). 이로부터, 교육은 원천적으로 성리학의 궁극적인 지향점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으며, 이것은 거꾸로 일체의 성리학적 논의들이 교육적 시각으로부터 되물어져야 하는 필요성을 제기하게 된다.

성리학과 교육의 관계를 전제로 할 때, 조선조 성리학도 역시 교육적 의미가 되물어져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되물음은 균형성을 현저히 상실하고 있다. 여기에서 균형성이란 호락논쟁(湖洛論爭)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다. 조선조 성리학은 지난 500여년 동안 수많은 논변(論辯)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며, 그 가운데서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과 호락논쟁은 논변의 규모나 질적 수준에서 볼 때 단연코 조선조 성리학을 대표하는 두 개의 대논쟁(Great debate)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조선조 성리학의 전체적 전개과정을 제대로 조망(眺望)하기 위해서는 사단칠정론과 호락논쟁을 반드시 이해하여야만 한다. 그러나 한국교육의 사상사적 지평에서 조선조 성리학에 대한 이제까지의 연구들은 두 개의 논쟁 가운데서 호락논쟁을 결락(缺落)시킴으로써 그 균형성을 현저히 상실하고 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조선조 성리학이 가지는 한국교육의 사상사적 의의를 전체적으로 조망하지 못하게 하였다. 다시 말하면 기존의 연구들이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에게서 발원(發源)되는 사단칠정에 대한 리기론적(理氣論的) 해석에 집중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조선 후기 200여년 동안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호락논쟁에 대해 교육적 의미를 되묻는 연구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물론 퇴계와 율곡이 조선조 성리학에서 차지하는 걸출한 위상은 아무리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조선조 성리학을 다루는 수많은 연구들이 퇴계와 율곡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분명히 지적되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퇴계와 율곡의 학문과 사상이 곧 조선조 성리학의 전체를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조선조 성리학의 전체적 전개과정을 전제로 할 때, 퇴계와 율곡의 성리학설은 심화되고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었다. 퇴계와 율곡의 대립되는 학설을 각기 계승한 후대의 학자들은, 서로 다른 대척점(對蹠點)에 서서 호락논쟁에서 파생되는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끊임없는 비판과 역비판 또는 절충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성리학설을 한층 더 심화하고 발전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조선조 성리학은 중국 송대(宋代)의 성리학을 뛰어넘는 독특한 성리학적 패러다임을 형성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조선조 후기의 호락논쟁은 퇴계와 율곡뿐만 아니라 회암 주희의 성리학설에 내재된 난점과 불명료성을 가차없이 비판하고 그것들을 재검토 내지는 재해석함으로써 인간의 주체적 인성론과 심성론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독특한 성리학적 패러다임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호락논쟁은 조선조 성리학의 전체적 전개과정에서 결코 결락될 수 없는 사상사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다.

이 글은 호락논쟁이 가지는 교육사적 의의를 이해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논의의 성격상 하나의 근본적인 문제점에 봉착하게 된다. 그것은 호락논쟁에 관한 개별연구들이 많지 않은데서 비롯된다. 상식적으로 논쟁의 전체적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그와 관련된 개별연구들이 충분히 종합될 수 있을 정도로 선행되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호락논쟁에 관한 한 개별연구들은 그렇게 많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호락논쟁의 전체적 성격을 바탕으로 그것이 가지는 교육사적 의의를 되묻고자 하며, 그 시도의 근거를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에서 찾고자 한다. 해석학적 순환에 따르면, 어떤 대상에 대한 이해의 내적인 공명(共鳴)은 닫혀진 원(圓)에서와 같이 주어지기 때문에 개별적인 것은 전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된 이후에야 비로소 이해된다. 다시 말하면 개별적 대상이 가지는 의미는 전체의 통일성에 의존해 있는 가운데 정신의 객관화로서만 파악되며, 이러한 전체는 다시 자신의 개별화와의 순환적인 관계 속에서 이해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이 글은 전체적 의미의 종합적 결론을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라 향후 이루어질 개별연구와 순환적인 관계에 있는 전체적 이해를 나름대로 모색함으로써 한국교육의 사상사적 지평에서 호락논쟁에 관한 보다 높은 이해의 계기(Moment)를 제공하는데 그 진정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권경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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