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張載)의 『正蒙』 사상 연구/ 강 진 석
Ⅰ. 머리말
Ⅱ. 연구 방법
Ⅲ. 張載 사상의 형성배경
Ⅳ. 『正蒙』의 構造
Ⅴ. 맺는말
Ⅰ. 머리말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사실상『 正蒙 』에 담겨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다. 논자는 宋代의 철학자인 張載(1020-1078) 사상 속에서,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론을 천착해 가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張載가 어떠한 동기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어진 시대의 사상적 고민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풀어 나가고자 했으며, 당시 共存했던 他思想과의 연관성 속에서 독창적인 철학을 창출해 낸 그 '과정 자체'를 문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자는 張載가 그의 사상을 전개하면서 품었던 문제 제기의 시대적 조건과 당대의 佛?道 의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도했던 개념도입의 과정과 새로운 개념 구축의 방법론을 분석하고, 나아가 원시유가와 구별되는 宋代儒學과 그가 속했던 關學學派가 점유하는 독자성과 독창성을 해부해 보고자 한다. 그가 전개했던 이른바 '氣論'의 맥은 淸代에 이르기까지 계승 발전되었으나, 서구문물의 수용과 더불어 그 진가와 실체성이 퇴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논자는 그가 전개한 '氣論'의 실질적인 효용성을 재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론의 전개 과정을 심도 있게 파헤쳐, 앞으로 다가올 세계관을 다듬는 데에 있어서 한 양태를 조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저술 가운데 晩年에 쓰여진『 正蒙 』을 연구하려 함은, 原文의 내용이 논자가 연구해 보고자 하는 그 '과정' 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먼저 기존에『 正蒙 』을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 방법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교?검토하였고, 연구해 감에 있어서 봉착하게 되는 난점들을 짚어 보았으며, 사상이 형성된 시대적 배경을 탐색해 보았고, 關學의 학파운동 속에서 장재의 사상과 위치를 조명해 보고, 나아가 宋代에 불기 시작한 '儒學의 復興과 新儒學의 創建' 이라는 운동 속에서 장재가 차지하는 독자적인 위치를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끝으로『 正蒙 』의 구조를 분석함에 있어서, 그 사상적 연원이 된 이론들을 거슬러 올라가 밝혀내고, 독창적으로 창안해 낸 논리체계의 구성 원칙을 분석해 보며, 나아가 原典에 나타난 氣論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구조를 해부하며, 本體論과 心性論을 아울러 밝혀 보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 소개 될 원문 번역은 되도록 우리말화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뜻이 전달되지 않거나 개념의 의미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단어들은 한자를 기입하거나 괄호를 쳐 원문의 내용을 기입하였다.1)
Ⅱ. 연구 방법
1. 硏究 方法의 檢討
중국 철학사를 기술한 勞思光의 경우, 장재 사상의 독자적인 특이성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그의 사상을 二程이나 朱熹로 넘어가는 하나의 계단으로 평가하여 폄하시키거나 논리전개의 미숙함과 내용상 모순되는 부분을 지적하여 체계성이 결여된 사상가로 치부해 버리는 입장을 취했다.2)
중국 대륙 학자들의 張載 연구는, 대부분 이른바 '유물론과 유심론'의 대립적인 도식선상에서 행해지는 바가 허다하여, 송대에 이룩한 복잡하고 중층적인 이론 구조를 인위적으로 양분화하거나 억지로 분리해 내어, 그들이 설정한 틀에 끼워 맞추는 오류를 범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모순구조'를 도출해 낼 수밖에 없었다.3) 반면에 이들은 송명유학이 태동하게 된 하부구조(사회·경제사적 배경) 를 중시하여 연구해 낸 업적은 평가받을 만한 부분이다.
근대 신유학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계열의 학자들4)은, 줄곧 '義理論' 전통의 연구 방법을 고수하여, 장재가 구사한 신개념의 범주나 구조보다는『 正蒙 』의 궁극적 주제인 '天人合一'이나 '天道與性命合一'이라는 통일된 시각에서 전 내용을 通貫해 보고자 한다.5) 이러한 연구 방법은 다분히 비체계적이고 분산적인 장재의 이론 속에서 통일적인 의미와 맥락을 추적하여 연결시키기가 가능해지며, 그들이 설정한 계보6)의 분류에 맞게 구체적인 개념이나 용어를 의미전환시키거나 통일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 방법은『 正蒙 』속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다양한 개념들의 중층적 의미구조를 분석해 내거나, 논리구조의 복합적인 범주와 전개의 과정을 파악해 내기에는 매우 나약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한편, 일본의 학계에서는 장재가 구축한 새로운 이론체계에 주목하기 보다는 불교 경전과 장재의 방법론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에 주력하여, 장재 사상과 道.佛 사상의 단절성 보다는 계승성과 채용성(採用性)을 알리기에 주력했다.7)
중국의 陳俊民은 먼저 '關學' 이라는 학파운동 속에서 장재의 사상을 조명하고, 관학의 독자성을 입증시키고, 나아가 '주제'의 관점에서『 正蒙 』의 저작들을 살피고, 장재의 다양한 논리범주의 구조와 체계를 명료하게 밝혀 내고 있다. 기존에 중시하지 않는 논리범주의 계열과 구조를 심도 있게 파헤쳐『 正蒙』의 복잡한 구조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였다.8) 그러나 그가 밝힌 논리 범주의 계열(系列) 구조(結構)는 지나치게 단선적인 방법9)을 쓰고 있는 점이 흠이다.
2. 『正蒙』 硏究의 難点
장재는 사실상 朱熹나 二程처럼 사상체계의 윤곽이 확실히 짜여져 있는 철학자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따라서 주희가 그 자신의 독자적인 개념 구사와 체계적인 이론 구성에 의해서 자신의 사상을 구축하여, 후학들로 하여금 그가 말하려는 要旨와 핵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게끔 한 것과는 달리, 장재는 용어나 개념의 구사에 있어서, 매우 애매하고 중층적인 방법을 취한다. 이로 인해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로 하여금 어디까지가 기존에 사용한 개념의 범주이고 어디까지가 그가 새롭게 창출한 개념의 범주인지를 손쉽게 분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장재의 사상을 '연역적인 관점' 에서 조명하기 어려운 난점이다.
첫째,『 正蒙 』에 나타난 용어들은 각기 다른 출전을 갖는다. '誠明' 은 中庸으로부터 온 개념이고, '神化'는『 孟子 』와『 周易 』에서 왔다. 그러나 그가 구사한 '誠明' 과 周濂溪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며,『 中庸 』에서 따온 '性','命', '誠' 의 개념도 사실상 선진유가에서는 접근하지 않은 것들이다. '參兩'과 '中正'은「 易傳 」으로부터 온 용어이고, '虛氣' 로써 天道를 말함은 도가로 부터 온 개념인 듯하다. '天德' 과 '太和'는「 易傳 」에서 온 용어이다.10) '太虛'는 그 의미는 다르나 용어는『 莊子 』의「 知北遊 」에서 볼 수 있다.11) 이밖에도 도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용어들이 더러 발견된다.12) 이처럼, 각기 다른 출전을 가진 용어와 개념들의 중층적 구조와 이중적 의미 연관은 오직 "義理的인 安排"에 의해서만 통일적으로 조명할 수 있을 뿐13), 그 자체의 복합 구조를 단선적인 개념의 배열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둘째, 장재는『 정몽 』에서 이른바 "圓融的인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한편으로는 "未分化된 통일적인 이론체계" 를 고수하면서, 한편으로는 '존재와 가치'가 混在되어 구사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의리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통일적으로 이해 될 수 있는 내용도, 본체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엄격히 구별해야 하는 이중적인 난제가 등장한다.14) 이로 인해 관점의 선택에 따라 같은 지점의 동일한 용어를 보는데 있어서도 매우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셋째, 용어들의 중층적 의미구조를 분석해 내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神' 의 개념이 있다. '氣' 의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넷째, 장재는 개념을 '동일성의 원칙' 에 의거해 나열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표면상으론 같은 개념의 다른 명칭으로 보이는 부분도, 사실은 동일성의 원칙이 아닌 "體用의 원칙" 에 입각해 서술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正蒙 』의 내용은, 통일적이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 주기 보다는 비체계적이고 분산적이며, 다양한 연원을 가진 용어와 개념들이 장재의 고뇌와 깊은 사색의 과정(苦思力索)중에 글로 옮겨져, 단지 의리론적인 입장에서만 統攝融化될 수 있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론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빠지게 되는 딜레마는, 이론을 분석하기 위해 그가 구사한 "가치와 존재" 또는 "義理와 논리범주 구조" 의 이중적 혼용 구조를 분리해 내면서부터 사실상 장재 사상의 眞面目과는 거리가 벌어져 버리게 되며, 그가 구사한 개념들 간의 역동적 구조15) 가 변환되어, 일종의 寂滅 상태로 떨어져 버리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본 논문에서는 장재가 구사한 "원융적 방법론" 을 충실히 살리기 위해,『 正蒙 』에 나오는 이론을 '다양한 각도' 에서 비추어 보고자 한다. 먼저 '主題'16) 에 입각해 원문에 나타난 내용을 천착해 보고, 용어의 연원에 얽힌 상호 충돌구조를 분석해 보며, 가치와 실재의 혼용 구조를 일별해 보고, 개념 간의 논리 범주를 세밀히 분석해 본다. 나아가 '關學' 이라는 학파의 시각에서 장재의 저작들을 조명해 본다.
Ⅲ. 張載 사상의 형성배경
1. 宋代 儒學의 胎動
960년 北宋이 건국되어 唐 五代이후로 분열되었던 중국 영토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北宋은 정치적으로는 끊임없이 유목민 제국들의 침입을 막아내면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遼(契丹族)는 당이 멸망한 이래 끊임없이 북중국을 침입하였으며, 북서지방의 탕구트(黨項)라는 티벹 부족들의 연맹은 10세기에 이르러서는 西夏라는 독립국가를 세워, 송과 적대적인 관계를 공식화 하였다. 그 이후 송은 만주족의 조상인 여진족에 의해 세워진 金이라는 국가에 의해 북중국 전부를 잃게 된다.17)
北宋은 무인들에 의해 장악된 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宋太祖는 건국하자 무신들에게 독서를 명하고 그것으로 治道를 익히게 하였다. 그리하여 북송의 학술 문화는 당의 詞章學에서 벗어나 經史와 經世致用에 필요한 禮制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며,18)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도 괄목할 많은 변화가 일어나 희곡과 소설 및 회화 분야에서 위대한 새로운 전통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인쇄술이 널리 보급되어 교육 수준이 향상되었으며, 경제가 상업화되고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농업과학 기술과 농업 기구의 기술이 함께 발전하게 되고, 이에 관계되는 天文, 曆法, 建築이 크게 진일보하게 되고 수학, 물리학, 생물학,지질학 같은 기초 과학 분야도 발달하게 되었다.19)
宋代 儒學20) 은 위와 같은 정치 사회사적인 배경 속에서 움트기 시작하여, 사상적으로는 당대에 공존했던 儒?佛?道 三敎를 통일하여 새로운 단계의 유학을 창출해 내었다. 이러한 운동은 당시 통치계급이 강력한 송대 통치왕조를 뒷받침하기 위한 요구에 부응하여 일어난 것으로, 宋初의 孫復, 石介, 이구 등의 유학자들은 당대 말엽부터 일기 시작한 反佛運動(韓愈) 으로부터 계발을 받아 反佛 사상운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들의 논변은 윤리적인 비판에 머물러 韓愈의 논점을 넘어서지 못하였으며, 철학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하였다. 智圓(976-1022) 은 당대에 익숙했던, "불교가 유교,도교보다 앞선다" 는 전통을 타파하면서, 당시의 三敎를 병을 치유하는 세가지 종류의 약으로 비유하여 鼎立해야 하며, 한가지라도 결핍되면 不可함을 역설했다. 智圓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佛敎의 儒學化를 말한 것이다.21)
그 후에 등장하는 周敦이, 張載, 程顥를 비롯해 朱熹, 陸德明은 모두 불교와 도교의 문턱을 여러해 동안 들락거렸던 인물들이며, 그러한 가운데 유가의 윤리사상을 핵심으로 삼고, 도가와 도교의 宇宙生成論과 萬物化生論을 흡수하고 불교의 思辨哲學을 비판적으로 융화시켜, 원시유가가 지녔던 엄밀한 체계성과 사변성의 결핍을 보충하여, 새로운 단계의 유학을 건립했다.22)
2. 關學 學派
關學은 송명 유학의 思潮 중에서, 장재가 창립한 중요한 독립학파로서, 宋?元?明?淸?明代에 지금의 陝西 關中에서 일어났던 사상 운동이다.23) 관학은 역사상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關中之學'이 아니라, 송?원?명?청대에 걸쳐 일어난 儒家로서의 학파운동이다. 관학은 장구한 시기를 거치면서, 혹자(張載)는 "太虛無形, 氣之本體" 라는 학설을 창출해 내고, 혹자(呂柚)는 周程張朱를 융합해 "窮理實踐" 을 지표로 삼았으며, 혹자(馮從吾)는 "善心" 을 宗旨로 삼았으며, 혹자(李元春)는 는 "誠敬"을 根本으로 삼았고, 혹자(李옹)는 "明體適用" 의 학설을 연구하기도 하였다.24)
이러한 關學의 학파운동은 결코 장재 한 사람의 사상이라고 할 수 없으며, 동시에 송대의 제반 理學과의 연관성 속에서 시종 독립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장재에서 呂柚, 馮從吾에서 李옹으로 연결되는 변천사는 기본적으로 관학이 북송에서 興起하여, 남송 시대의 쇠락기를 거쳐, 명대에 中興을 이룩하고, 명대에서 청대를 거쳐 終局을 맞이하는 역사적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만약 장재를 이러한 논리 기점의 肯定形式을 연 인물로 평가한다면, 명대의 呂柚와 馮從吾는 그 중간에 자리한 否定의 고리라고 볼 수 있으며, 淸初의 李옹은 이러한 논리전개의 종결로 자리매겨진 바 再肯定의 形式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존의 關學에 대한 시각은 항상 二程과의 연관 속에서만 다루어 졌으며, 그로 인해 관학은 낙학과 그 연원이 同一視 되거나,25) 또는 橫渠가 二程을 만나서 易을 논한 후 미치지 못함을 고백한 기록을 들어,26) 후대에 가서 관학이 洛學化 되는 근거를 삼으려 든다. 그러나 앞의 주장은 사실상 신빙성이 부족하며,27) 후대에 程門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학문을 드높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장재를 高平門人으로 편입한 기록28) 이 있어서 마치 장재가 范仲俺을 스승으로 모신 것으로 추측되기 쉬우나, 그들은 결코 사제지간은 아니었다.
관학 학파는 궁극적으로 모두 '窮行禮敎' 를 근본으로 삼았으며, '經世致用' 으로서의 학문정신을 잃지 않았다. 이들은 학파를 창설한 始祖로부터 역대 문하에 이르기 까지 모두 "고뇌에 찬 학문정신"(聖苦力學)과 "스승을 따로 두지 않고 이론을 완성해 가는" (無師而成) 길을 걸어갔다. 또한 그들은 타학파의 장점을 쉽게 받아 들이고 그 과학 지식의 우수성을 손에 넣었으니, 당대에 풍미한 자연과학의 최고 성과들을 유감없이 소화해, 儒學에 풍부한 哲理的 요소를 불어 넣었다.29)
장재가 죽은 후 대부분의 제자들, 즉 三呂와 蘇昞은 모두 洛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중에서도 呂大臨은 장재가 죽은 후 곧바로 二程에게 투항하여, 程氏 門下에서도 매우 높은 四先生 중의 한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領袖를 잃고 나자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30)
2. 張載의 獨自的 位置
北宋 시대에 접어 들면서 新儒家의 포문을 연 이는 周濂溪이다. 그는 불교와 도교의 도움을 빌어 유가에 입문하여 유가의 새로운 형이상학31)을 시도했으나, 그가 구사한 '無極'32)의 개념이 불교, 도교와 혼동되는 약점이 있어, 사실상 아직 佛?道의 사변적 본체론과 정면 대결을 하기엔 부족했다. 또한 歐陽修의『 本論 』은 당시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쳐 유가의 '禮義'를 근본으로 삼을 것을 제창하고 佛?道와 논전을 벌였으나 마찬가지로 철학적인 비판을 시도하지도 못했다.33)
이러한 유가가 당대의 佛?道를 凌駕하지 못했던 형세는, 장재가 釋?老를 출입하던 중에 스스로 깨달은 바 있어 六經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34)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불교와 도교 철학의 이론적 要旨는, 당시 사람들의 이해에 따르면, 불교는 心을 法으로 삼고, 空을 眞으로 삼았으며, 도교는 無를 道로 여기고, 我를 眞으로 이해했다. 장재는 이에 대해 氣를 세워 空의 혼상을 무너뜨리고, 有를 세워 無의 관념을 일소했다.35) 이처럼 장재는 당대의 佛?道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새로운 용어 개념을 창출하여 공격하면서 그들의 개념을 자신의 사상 속으로 흡수하여 변형시키고자 했다.36) 장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송대의 신유학은 道?佛의 형이상학적 본체론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장재가 구축한 본체론은 주염계가 無極을 세우고, 정이와 주희가 氣에 대립하는 理라는 개념을 수립하여, 운동 변화하는 현상세계의 배후에 거하는 寂然不動의 實體를 고안해 낸 것과는 다르게, 氣외에는 따로 어떤 궁극적인 실체를 가정하지 않고 그 자체의 운동성과 공간성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을 시종 견지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장재 철학은 한편으로는 元始儒家가 단지 윤리학적인 性論 중심에 국한 되어 있는 차원을 훨씬 뛰어 넘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원시유가로부터 전승되어 온 맥과 回通될 수 있는 이중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Ⅳ. 『正蒙』의 構造
1. 思想的 淵源
張載는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특정한 스승에게서 사사를 받아 사상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긴 사색과 학문 연구의 과정 속에서 독창적인 저술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가 남긴 저작37) 가운데 晩年의 작품인『 正蒙 』은 장재 사상의 모든 精華가 凝縮되어 있는 책으로 그가 죽기 한 해 전에 제자들을 시켜 集成토록 했다.38)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당시 사상계의 그릇된 인식과 관념을 바로 잡기 위한 목적에서 쓰여 졌으며, 장재는 이 책을 제자들에게 보이면서 "이 책은 여러 해에 걸친 사색 끝에 얻은 것으로, 비로소 이전의 聖人들과 합하게 되었다! 大要의 發端을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할 따름이니, 그 접촉될 수 있는 層類가 넓을 것이며, 나는 장차 學人을 기다리니, 마치 老木의 그루터기 같아 본디 그 가지가 많으니, 소수의 사람이 그 잎을 윤택하고 영화롭게 할 것이다" 라고 말했으니, 그는『 正蒙 』을 통해서 어떤 완성된 체계의 철학을 보여 주려 함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적 핵심을 단편 단편 내 밷아 後學들의 사상적 지표를 이끄는 '그루터기' 의 역할을 하려 했다.
장재의 학문은 "易을 宗으로 하고 中庸을 목적으로 삼으며, 禮를 體로 하고 孔孟을 다다를 수 있는 極點으로 삼았다".39) 따라서『 正蒙 』에 나타난 사상들은 대부분『 易傳 』과『 中庸 』에 기초하여 정립되었다. 장재가 드러내고자 한 점은 당시 共存했던 佛敎와 道敎의 그릇된 관념들이었고, 이 두 사상의 근원적 오류를『 易傳 』과『 中庸 』에 의지해 革破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당시 그가 느꼈던 위기 의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 학설이 중국에 불길처럼 전파 된 이래, 유학자들이 聖學의 문과 벽을 엿보기도 전에, 이미 그 설을 취해 그 가운데 빠져 들어 그것을 大道라 부르게 되었다. 그 풍속이 천하에 퍼져 선한 자, 악한 자, 총명한 자, 남녀, 노비, 노복에 이르기 까지, 모두 다 밝히 믿는다. 영특하고 재기가 있는 자도 어려서는 눈과 귀의 달콤한 관습에 빠지고, 성장해서는 세속적인 유가를 스승으로 삼고 그 말을 숭상하여 어두운 곳으로 내 몰려 聖人은 수양하지 않아도 다다를 수 있고, 大道는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말하게 되었다. 聖人의 本心을 알지도 못하고선 그 글을 힘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인륜이 보살펴 지지 않고, 사물의 이치가 밝혀 지지 않으며, 다스림이 소홀하게 되고, 덕이 문란해 진 것이다. 각종 異說이 귀에 가득한데도 위로는 그런 위선을 막을 禮가 없고, 아래로는 그 병폐를 그치게 할 학문이 없다. 옛부터 있어 온 편벽되고 음란하고 사악하며 은둔적인 말들이 한데 뭉쳐 일어나니 佛氏의 문 중에서 나온 지 천 오백 년이 되었다.40)
불교와 도교는 본래적으로 出世間的인 人生觀을 담고 있으면서, 現實世界에 대해서 초탈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을 장재가 처해 있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는 매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음이 틀림없다. 이에 장재는 肯定的 世界觀을 펼치면서 당시에 강력하게 요청되었던 중앙 집권적인 이념에 부응하는 철학 사상을 구축할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그가 불교와 도교를 대했던 태도는 그들의 사상을 완전히 부정하기 보다는 그들의 兼和하지 못함과 偏僻됨을 비판하여『 易 』에서 論하는 자체 생성운동의 우월성41) 과『 中庸 』에서 말하는 天人合一의 경지를 우위에 두고자 시도했다.
불교가 말한 實際는 곧 道가 이른바 誠이요 天德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實際를 말하면서도 人生을 幻妄한 것으로 여기고 행함을 군더더기로 삼고, 世界를 蔭濁하게 여겨 결국 싫어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거길) 떠나서 거하지 않으려고 하니, 그들이 얻게 된 바는 誠일지는 모르나 明을 싫어 한다. 儒學者는 明에서 誠에 이르고 誠에서 明에 다다르니, 그러므로 天人이 合一되어, 학문은 함에 있어서 능히 聖을 이루고 天을 얻으며 동시에 사람(人)도 잃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易에서의 빠뜨리지도 않고 치우쳐 흐르지도 않으며 지나치치도 않음을 일컫는 것이다.42)
위에서 본 불교는 天은 알았을 지 모르나 人은 몰랐고, 그로 인해 편벽된 길도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 장재는『 中庸 』에서 말하는 天人合一의 主題43)를 끌어들여 人道를 새롭게 밝힌다.
2. 論理體系의 構成原則
장재는『 正蒙 』에서 개념 범주의 계열이나 개념간의 상호 연관성을 뚜렷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외형상으로는 마치 아무런 구성원칙 없이 쓰여진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사실 내면적으로는 명확한 原則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했다. 논리 구사에 있어서는 항상 分化와 未分化의 변증법적인 統一을 견지하면서, '有無混一之常' 이라는 原則을 內涵하고 있었고, 氣論을 우주론과 인식론 그리고 心性論의 全영역에 걸쳐 발휘해 가면서 天道와 人道의 궁극적인 합일과 交感44)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해, 이른바 '天人合一' 의 논리전개 원칙을 표방하였다. 따라서 본체론과 의리론이 물과 얼음 섞이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니, 氣論에서 구분되는 氣本(기의 본체)의 영역----天, 太虛, 神----과 氣化의 영역----道, 理, 神化----은 의리론적으로는 天道의 영역에 속하며 본체론적으로는 氣本은 宇宙의 本體고 氣化는 宇宙生化의 영역으로 나뉘게 된다. 인식론적으로는 주관인식의 영역으로 구분 지을 수 밖에 없는 性과 心은 의리론적으로는 天道와 人道의 合一로서 최고의 경지를 드러내는 德目이 된다.45) 이처럼 氣本에서 氣化로 전이되는 과정과 天道에서 人道에 이르는 推演의과정에서, 우리는 氣의 변증법적인 역동 구조를 파악하고 추출해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體用不二' 의 원칙이다.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 氣인데, 하나이므로 (둘이 그 안에 거하므로 不測하니) 神이며, 둘이므로 (능히 미루어 하나로 나아가니) 化하게 된다"46)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세번째 원칙에 비추어 볼 때, 『 正蒙 』을 무책임하게 단지 동일성의 원칙에 입각해 해석하면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됨을 알 수 있다.47)
장재가 논리를 전개함에 있어서 설정한 위의 세가지 원칙은 결코 따로 구분되지 않고 圓融的으로 구사되고 있다.48) 이러한 장재철학의 특징은 정이나 주희처럼 理一分殊와 같은 단일한 방향성이 드러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매우 애매하고 모호한 채로 남게 된다는 데에 있다. 그는 이러한 애매 모호성을 결코 벗어 제기려 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그가 구상한 논리 원칙의 核心일 수 있다.
를 끌어들여 人道를 새롭게 밝힌다.
3. 本體論
장재가 구사한 용어 개념은 그 문장 구조마다 그 의미와 범주를 달리 한다. 따라서 논자는 그의 氣論을 분석함에 있어서 연역적인 도식을 설정해서 개념들을 분류하기 보다는 원문의 문장구조 속에서 개념간의 상호 역동 구조와 관계성을 읽어 내는 연구를 시도해 본다.
1) 氣의 本體
氣의 범주는 우주와 인간을 총괄적으로 統攝하고 있다.
응집되어도 나의 몸이고, 흩어져도 나의 몸이다. 죽어도 없어지지 않음을 아는 자와는 능히 性을 논할 수 있다.49)
이처럼 氣의 범주는 그 밖의 개념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침투가능한 범주를 함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의 多重的 意味構造는 스스로 표출되지 않고, 이름은 다르나 결국은 하나(異名而同實)인 용어들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비교적 明顯하게 드러난다.
太虛, 太和, 易
太虛는 형체가 없으니, 곧 기의 본체다. 한번 모이고 한번 흩어지곤 하니 변화의 일시적인 형체가 생긴다. 고요하고 感應이 없는 것은 性의 淵源이며, 인식되고 일게 됨은 사물이 어우러져 생기는 감응이다. 일시적 감응과 일시적 형체 그리고 無형체와 無감응은 性에 이르러선 결국 하나이다.50)
太虛51) 로 나타난 氣는 존재의 속성을 가진다. 이 둘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태허와 기는 '존재 형태상' 의 차이에서만 있을 뿐 결국 같은 실체이다. 태허는 존재 형태상 '無形의 영역' 에 국한된다.
太虛는 氣가 없을 수 없고, 氣는 모여 만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만물은 흩어져서 太虛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맞추어 출입하니, 이것은 모두 부득이한 데서 있게 된 것이다.52)
太虛는 만물과 대립된 개념으로 나타나는데, 태허의 氣는 형체를 이루고 있는 만물 이외의 全 영역을 포괄하며, 만물은 태허의 氣가 모여서 형성된다. 氣는 태허에도 내재하고 만물에도 내재한 포괄자이다.
氣가 자욱하여 충만한 상태가 太虛인데, (이것은) 솟았다가 꺼지고 높이 피어 오르는 운동을 일찌기 그친 적이 없다.『 易 』에서 말하는 "뒤섞여 있는"(絪縕) 상태와 壯子가 "그침으로 만물이 생성되고 서로 감응하는" 것을 의심하고(王夫之注 참조) "먼지가 일어나는"(野馬) 것을 말함이다. 태허는 虛하고 實하고 움직이고 고요한 것의 機微이며, 음양과 굳세고 부드러움의 始原이기도 하다. 위로 올라가 陽의 맑은 상태가 되고, 아래로 내려가 음의 탁한 상태가 된다.53)
氣는 '自體 運動性'(天性)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의 어떤 충만한 상태를 太虛라고 한다. 태허는 虛實과 動靜의 機微이자, 음양과 剛柔의 시원으로서 '未發된 원초성'을 내포하고 있다. 왕부지는 絪縕을 "태화의 상태가 아직 분화되지 않은 본연태"54)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태허의 상태를 잘 말해주고 있다. 태허에 내재되어 있는 氣는 발산하면서도 陰과 陽이 된다.
氣가 태허 속에서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마치 얼음이 물 속에서 굳었다 녹았다 하는 것과 같다. 太虛와 氣는 본질상 같으니, 이를 알면 無는 없다.55)
논자는 원문에 나오는 "太虛卽氣"의 卽을 '곧...이다.' 또는 '等于'로 해석하지 않고, '本質上 같다'는 뜻으로 해석했다.56) 장재는 위에서 氣를 얼음으로 太虛를 물로 비유하여, 그 본질은 동일하며 形象만이 다를 뿐임을 시사했다. 왕부지는 이러한 상태를 "虛는 氣를 품고 氣는 虛에 충만하다"57)라고 표현했다. 장재는 이 비유를 통해 '無'가 설 자리가 없음을 밝히면서 道家의 형이상학을 공격한다.58)
한편 장재는 "虛空卽氣" 의 어법으로 불교의 본체론을 공격한다.
虛空과 氣가 본질상 같다는 것을 알면 있음과 없음, 감추임과 드러남, 神化와 性命이 모두 하나로 통하고 둘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임과 흩어짐, 나가고 들어옴, 형체의 있고 없음 만이 있게 된다. 根本의 來源을 능히 미루어 알면 움직임과 변화의 원리(易)를 깊이 깨닫게 된다.59)
장재는 불교의 핵심 용어인 虛空의 내적 속성을 氣의 속성으로 대치시키고, 용어만을 그대로 적용시켜, 불교의 이론을 氣論 속으로 흡수, 변환시키고자 했다. 그는 불교에서 말하는 虛空을 단지 寂滅的 상태인 空間의 의미로 파악하면서,60) 易의 운동 변화의 원리를 내세워 儒家의 우월성을 부각시킨다.
太虛는 氣의 體이다. 기는 음과 양, 움츠림과 펴짐이 서로 감응하는 無窮함을 가진다. 그러므로 神의 감응도 무궁하다.61)
太虛는 기의 본체로서 나타나고, 기는 태허의 用이다. 여기서 태허는 '神' 으로서 드러나며,62) 따라서 태허의 공간적 속성과 未發的 原始態로서의 의미보다는, 기의 운동이 있게 하는 능동자로서 등장하며, 이로써 태허와 기의 體用관계를 비교적 명확히 볼 수 있다. 장재가 말하는 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무한한 가능조건를 내함하고 있을 뿐더러 그 자신의 특성은 다른 개념과의 연관성 속에서 드러내 보여진다. 장재는 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體는 치우치거나 머물지 않아 방향도 형체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晝夜와 음양의 한 곳에 치우쳐 형체를 가진 것이 物이다. 道는 體를 겸하고 얽매임이 없다. 體를 겸하고 있으므로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된다고 말하고, 또 음양은 헤아릴 수 없다고 하며, 한번 열리고 한번 닫힌다고 하고 晝夜에 通한다고 말한다. 미루어 나아감을 말한 까닭에 道라고 하고 헤아릴 수 없음을 말한 까닭에 神이라 하며, 生生함을 말한 까닭에 易이라 한다. 실제로는 하나이나 일(작용점)에 따라 이름이 다를 뿐이다.63)
여기서 體는 氣의 體로서 太虛를 말한다. 태허는 방향도 형체도 없는 마치 무한 가능조건 같은 것이며, 이것이 推行의 작용 원리로는 道로서, 不測의 무한 조건적인 오묘한 작용 원리로서는 神으로, 生生하고 不息한 원리로서는 易으로서 드러난다. 장재는 이렇게 다양한 측면의 원리가 어우러져 있는 상태의 극치를 '太和'라고 표현한다.
지극하게 어우러진 상태(太和)를 道라고 하는데, 그 중에는 뜨고 가라 앉고 솟았다 꺼지며 움직였다 고요해지는 감응의 성질을 품고 있으며, 이것은 왕성하게 뒤섞이고 서로 마찰하고, 이기고 지며 움츠리고 펴는 운동의 始源을 낳는다.64)
太和는 어떤 실체를 지칭하는 명사가 아니고, '조화의 지극함'을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따라서 '氣本' 의 體로서 지칭되는 용어는 太虛, 氣, 神이 있다.
太虛는 앞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와 내용을 가진다.
첫째, 만물과 대립되는 空間의 의미로 드러나, 형체를 이루지 않은(無形) 영역을 점유하고 있다.
둘째, 未發된 원시태로서 氣의 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능동자로서 '神' 과 같은 본체로 드러난다.
셋째, 氣와는 그 본질상 동일하며 단지 존재 양태의 같음과 다름(異同)이 있을 뿐으로 기는 태허 속에 거하며, 태허는 기를 품고 있다.
넷째, 太虛안에 氣가 거하므로 따로 어떤 현상의 배후에 거하는 寂滅的인 원인자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無' 의 존재 이유가 폐기당하며, 동시에 虛空의 의미도 변환되기에 이른 것이다.
다섯째, 태허와 기의 완벽한 조화의 상태를 太和라고 부르며, 이것은 변화 원리(易)의 상태에 다름이 아니다.
2) 氣化
氣化의 범주로 대표되는 神化는 사실상 體인 神과 用인 化의 合一的 상태로서, 氣本과 氣化간의 경계를 명료하게 그을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神과 化를 따로 분리해 논할 수는 없기에 氣化의 영역에서 다루기로 한다.
神, 神化, 道
『 正蒙 』내의 神의 개념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으므로, 원문 속에서 하나씩 분류해 보기로 하자. 먼저 '神'은『 周易 』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生生함을 일컬어 易이라 하고, 象을 이룸을 乾이라 하며 法을 본받음을 坤이라 한다. 數를 미루어 미래를 아는 것을 占이라 하고, 變化의 이치에 통달함을 事라고 하며, 음양의 헤아릴 수 없음을 일컬어 神이라 한다.65)
장재는『 周易 』에 나타난 '神' 에 대한 관념을 계승하고 있다.
氣에는 음양이 있어 미루어 나아가면(推行) 점진적으로 바뀌는 것이 化이고, (음양이) 合一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이 神이다. 사람은 義를 알고 利를 잘 사용하면 神化의 役事가 구비된다.66) 헤아릴 수 없음을 일컬어 神이라 하고, 神의 항상됨을 일컬어 天이라 한다.67)
神은 기의 본체이나 그 자신은 언제나 體用不二의 원리에 따라 用인 化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氣本과 氣化의 개념 배열은 사실상 논리적인 층차만을 가질 뿐이고, 시간상으로는 아무런 順次가 없이 同時的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이러한 동시적인 어우러짐을 장재는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 氣이다. 하나이므로 神이며, 둘이므로 化하는 것이다68)
이처럼 神과 化는 논리적으로 순환 구조를 가지면서, 神에서 化로, 化에서 神으로 圓融的인 활동을 한다. 그러나 "천하의 일을 도모하는 것을 오직 神뿐이며"69) 氣의 本體를 이름짓는 것 중의 하나인 神은 氣의 "헤아릴 수 없는"70) 면을 편중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神의 관념이 이처럼 명료하지 만은 않다.
흩어져 제각기 달라서 形體를 이루는 것이 氣이며, 맑고 通하여 형체를 이룰수 없는 것이 神이다. 71)
무릇 기가 맑으면 通하고 흐리면 막히게 된다. 맑음의 극치에 다다른 것이 神이다.72)
太虛는 맑으니, 맑으면 막힘이 없고, 막힘이 없으므로 神이라 한다. 맑음의 반대는 탁함이니, 탁하면 막히게 되고 막히면 형체를 이루게 된다.73)
위에서 보여지는 神은 氣의 맑음과 탁함의 영역 중에서 맑음의 영역만을 지칭하는 용어와, 氣質에 대립하는 未發의 상태를 나타내는 원초태로서 보여져서 神化의 神體와는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神' 이라는 동일한 용어가 각기 다른 차원에서 구사되고 있음을 밝히고 氣體로서의 神과 다른 성질의 神을 구별해 내어야만 올바른 理解에 도달할 수 있다. 장재의 논리구사에 있어서 최대의 약점은, 氣의 本體로서의 神과 鬼神의 神이 원문에서는 混用된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鬼神은 二氣(음양)의 良能이다. 誠은 至誠하여 天을 얻음을 일컬음이고, 神은 太虛의 妙應을 보는 눈이다. 천지의 法과 象은 神化의 찌꺼기일 뿐이다.······鬼神의 實質은 兩端을 넘지 않는다. 양단이 정립하지 않으면 하나가 드러나지 않고, 하나가 드러나지 않으면 양단의 쓰임이 멈추게 된다. 이 兩端은 虛함과 實함이요, 움직임과 고요함이며 모임과 흩어짐, 맑음과 탁함인데 그 종극에 이르러서는 하나일 따름이다.74)
위의 문장에서는, 鬼神과 神化가 같은 문맥 속에서 구사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하며, 따라서 다른 두 성질의 어록이 편집 과정상에서 잘못 기입된 것으로 추정된다.75)
鬼神은 음양인 二氣의 質性으로서 氣化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性能이며, 氣가 움츠러져 근본으로 돌아가면 魂이 되고, 기가 펴지는 운동이 神이다. 따라서 이 둘은 兩端은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서 二氣의 良能에 국한된다.76) 鬼神은 옛부터 대체적으로 祭祀의 대상으로 받아들여 졌으며, 인간의 이미 존재하는 생명이 幽冥한 곳으로 돌아간 상태로 묘사되어 졌으며, 幽冥한 중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적이면서 덕성적인 생명체로서 여겨져서, 분산되지 않은 精氣의 실제적인 상태로 인식되었다. 공자는 鬼神에 대해 좀처럼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있어서 초월적이며 동시에 내재적인 精神은 '仁'과 '天道'이다. 鬼神의 지위는 높지 않아서 仁과 天道사이에 있는 實然的 存在일 뿐임으로, 誠體로서의 神은 결코 아니다.77)
원문에서 보여지는 '神'은 이처럼 다양한 의미와 개념 범주를 가지고 있다. 이상에 나타난 神化의 개념을 분류해 보자.
첫째, 神은 氣가 質性을 갖고 만물의 각종 다른 형체로 發散되기 이전의 원시태로서, 맑고 막힘이 없는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鬼神은 음양 二氣의 良能으로서 氣化의 영역에 속하며, 움츠러들어(屈) 돌아가 鬼가 되고, 다시 펴짐(伸)으로써 神이 되는 운동을 한다. 이러한 귀신의 良能은 神化의 良能과 구별되어 陰陽의 활동에 국한된다.
셋째, 神化로서의 神은 氣의 本體로서, 기의 헤아릴 수 없는 측면을 지칭하는 이름이며, 항상 用인 化와 함께 작용하여, "神은 天德이고 化는 天道이며, 德은 그 體이고 道는 그 用으로서 결국은 하나의 氣일 뿐이다."78)라고 體用을 함께 묘사할 수밖에 없다. 神化의 神은 태허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자체로서 존재하고 자체로서 활동하는'(卽存有卽活動) 實體로서 주희가 말하는 寂然不動한 理의 개념이 도입될 여지를 완벽히 제거한다. 주희는 鬼神의 神과 誠體의 神을 구분 짓지 않고 混用하여 體用不二의 圓融論과 氣의 質性에 국한 된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말함으로 인해서, 所以然으로부터 이끌어져 나온 '形式之理'(只存有而不活動)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79) 이러한 점에서 주희가 장재의 이론을 계승했다는 학설은 재 검토할 여지를 갖는다.
넷째, 神化는 氣의 體와 氣化의 범주를 統攝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體로서의 '天' 과 生成과정으로서의 '道'80)의 범주의 경계는 단지 논리적인 영역에 국한 된 것일 뿐, 실제로는 분리 불가능한 것임을 잘 드러내어 주고 있다.
4. 心性論
장재는 주로 天道에서 人道로 하향하는 순서로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太虛로 말미암아 天의 이름이 있고, 氣化로 말미암아 道의 이름이 있으며, 虛와 氣가 합하여 性의 이름이 있게 되고, 性과 知覺이 합하여 心의 이름이 있다.81)
天과 道의 범주는 인간의 주관적인 영역과 구별되는 객관적인 영역으로서 天道에 속하며, 性은 虛와 氣가 合一됨으로써 나타난 개념으로, 天道와 人道가 동시적으로 어우러지는 統一的인 범주를 구성하게 된다. 心은 性과 인간의 인식능력인 知覺이 합하여 생겨난 이름으로, 인식론적 범주상 인간에 국한된 측면이 강하나, 도덕적 心論으로서는 주관적 직관을 통해 내재와 초월의 兩面性을 포괄하는 능력을 내함하고 있다. 여기서 論者가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는 점은 장재의 心性論을 분석함에 있어서는 이중?삼중의 초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인식론적인 관점과 의리론적인 관점이 원문상에선 분리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心性論에 영향을 준 사상적 두 연원에서 비롯된 본래적 차이 때문에 이해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장재의 심성론을 논하기 전에 우선 그 사상적 기초가 된『 中庸 』과『 孟子 』의 사상을 살펴보자.
마음(心)을 다하는 자는 하늘(天)로부터 부여받은 性을 알게 되고, 그 性을 아는 자는 하늘을 알게 된다. 마음을 보존하고 性을 기르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所以이고, 요절함과 장수함이 둘이 아님을 알아 몸을 닦음으로써 (命을) 기다림이 곧 命을 세우는 것이다.82)
맹자는 이 본문에서 먼저 人道인 心을 말하고, 그 다음으로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性을 말하였으며, 마지막으로 天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도덕적인 수양과 노력이 먼저 있은 후에 비로소 天을 섬기며 알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人道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임을 말한 것임에 반해, 장재는 먼저 天道를 말하고 그 다음 人道를 언급함으로써 그의 사상이 도덕적 수양론 중심이 아니라 宇宙論과 本體論 중심의 철학임을 천명한 것이다.
하늘이 命한 바를 일컬어 性이라 하고, 性을 따라 나아감을 일컬어 道라 하며, 道를 닦아 넓혀 감을 일컬어 敎라고 한다. 道는 잠시라도 멀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만약 멀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道가 아니다.83)
『 中庸 』과『 孟子 』「 盡心 」章에서 본 내용과는 달리, 天道를 먼저 말하고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을 性이라고 하며 그러한 性을 자신의 本性으로 삼고 나아감을 道라고 불렀다. 장재가『 正蒙 』에서 구사한 '性論' 은 바로『 中庸 』에서 나타난 性論를 계승하여 심화 확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中庸 』에서와『 孟子 』 에서 보여지는 논리적 전개 과정과 방향은 확연히 차별성을 가진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지향한 주제가 '天人合一' 로 귀결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게 된다.
1) 性
장재 철학에서 '性'은 宇宙와 人間을 總括하는 개념으로서 최소한 三種의 다른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그 첫째는 '天性'84)으로서, 氣의 본체 속에 내장된 '自體 能動性'을 가리킨다. 두번째는 '物性'으로서, 각종 물질의 속성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면 氣의 '陽性과 陰性', 천체의 '七政之性'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로는 '人性'으로서, 즉 인간의 도덕적 속성과 생리본능 그리고 천지만물에 대한 인식본성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세가지 '性'의 범주는 사실상 따로 떨어져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85)
먼저 天性과 人性의 관계를 고찰해 보면, "天性이 인간에 내재함을 마치 물의 속성이 얼음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얼음이) 얼고 녹음이 다를 뿐 그 자체는 하나이다"86) 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로써 天性과 人性이 그 本質上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주(天)와 인간을 총괄하고 있는 "性은 만물의一源으로서 내가 사사로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87)
天地之性과 氣質之性
하늘로부터 사람에게 내재화 된 性은 본래 善하지 않은 바가 없어서88) 두루 통하여 道에 미치는 바 되어서, 氣質의 어둠과 밝음이 그 本性을 가리지 못했다.89) 그러나 氣化가 이루어 지는 과정 중에 천차만별의 形體가 생겨나고 氣의 質性이 파생되면서 부득이하게 氣質의 偏差가 생겨났다.
形體가 생긴 뒤에 氣質의 性이 있게 되었다. 잘 돌이키면 天地의 性이 보존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氣質의 性에 의지해 안거하지 않는다.90)
王夫之는 注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氣質이란 氣가 質性을 이룬 후에도 氣를 생산해 내는 것을 말한다. 氣가 質性을 이루게 되면, 氣가 응고되고 멈춰서 결국 형체를 이루게 되고 物을 取해서 그 質이 자라나게 한다. 質이 氣를 생산하면 같음과 다름이 서로 공격하고 취하여 그 類를 따르게 된다.91)
위와 같이 氣質의 性을 소유한 인간은, 감관기관을 가지고 있어서 "귀, 눈, 입, 코의 기질이 소리, 색깔, 냄새, 맛 등과 결부되어, 자연히 天地之性을 거스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92) 장재는 원문 중에서 天地의 性이 무엇인지를 직접 밝히지는 않았고, 단지 氣質의 性에 대립되는 性으로 발했다. 王夫之는 天地의 性을 "지극한 조화 속에 왕성하게 뒤섞여 있는 神"(太和絪縕之神)이라고 해석했다. 모든 인간은 天地의 性으로부터 선하지 않을 수 없는 도덕적 속성을 부여받았음과 동시에 감관기관(耳?目?口?腹)에서 파생된 욕망에 따라 먹고 마시며 남성과 여성이 갈리는(飮食男女) 후천적인 생리본능이 생기게 되었다.
인간은 수양을 통해서 감관기관에 의해 가려진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 이미 내재해 있는 天地之性에 도달할 수 있다.93) 따라서 인간에게서 보여지는 善과 惡의 문제는 天地의 性과 氣質의 性 간의 모순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稟受하는 氣質의 偏差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94)
2) 心
장재가 논하는 '心' 은 이중 구조를 가진다.95) 존재론적인 측면에서의 '心'은 주로 인간의 감관기관에 얽매어진 앎(知)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데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 한계를 극복하고 천하만물을 몸(體)으로 삼을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선, 도덕적 工夫와 실천이 요청되면서 心論의 인식론에서 도덕론으로 轉移를 일으키게 된다.96) 그러나 도덕론의 영역에서 修養과 工夫를 통해 天地와 合一되는 경지로 나아간다고 해서 장재가 唯心論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心論을 전개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佛敎와 다름을 밝히고 불교의 인식론을 공격하고 있다.
① 見聞之知
心은 性과 知覺이 합하여져서 생긴 이름이다. 따라서 心은 性에 비해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여 앎(知)의 문제와 연관된다. 장재는 세상사람들이 감관기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心)은 듣고 보는 것의 협소함에 머물러 있으나, 聖人은 性에 도달해서 보고 듣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얽매지 않는다.97)
이러한 현상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귀와 눈으로 보고 들은 것으로써 마음을 얽어 매고 본래적 마음에 도달하고자 힘쓰지 않기"98) 때문이다. 따라서 見聞之知는 인간의 감관(耳目)이 외부 사물과 접촉하는 과정을 거쳐, 안과 밖(內外)을 합한 후에야 얻어지는 것으로서, 만약 이러한 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인식이 발생할 수 없다.99)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장재는 '盡心'을 말하고 있다.
② 盡心, 大心
어떻게 해야 盡心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장재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心)을 크게 하면 능히 천하 만물을 몸으로 삼을 수 있다. 내 몸으로 삼지 못한 物이 있으면 마음 밖에 무엇이 있게 된다. ....맹자가 "마음을 다하면 性을 알고 天을 안다" 고 한 것은 이를 말함이다. 天은 크며 제외된 곳이 없으므로 제외된 곳이 있는 마음은 天心과 합하기에 부족하다.100)
바로 마음을 크게 함으로써 盡心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마음을 크게 연다는 것은 마음을 이루고자 하는 동기조차 잊어버리고101) 나서야 비로소 행해질 수 있으며, 이러한 실천적인 工夫는 마음을 마음대로 다루고 망녕되이 생각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며, "마음(心)은 능히 性에 다다를 수 있으며, 인간은 능히 道를 넓힐 수 있으므로"102) 이러한 心과 性의 상호관계 속에서 性의 객관적인 존재 형식과 心의 주관적인 도덕론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진정한 心의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불교는 이러한 조화의 균형을 상실했기 때문에 객관세계를 幻妄한 것으로 여기고 작은 것(마음)을 큰 것(객관 세계)과 억지로 연결시키고 말단을 근본에 연접시키려 했던 것이다. 佛敎의 최대 약점은 그들이 天命을 알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103)
실제로는 분리 불가능한 것임을 잘 드러내어 주고 있다.
5. 天人合一의 원리
장재의 사상은, 불교가 오직 心만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天道와 天性과 天命은 엄연히 실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차원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장재가 추구한 목적은 天과 人이 온전히 합일되는 경지로 나아가는 데에 있었으며, 이 天人合一이 이루어 지는 곳이 바로 '誠'104) 이다. 장재는 天人合一로 나아갈 바를 이렇게 말한다.
儒學者는 明으로 인하여 誠에 이르고, 誠으로 인하여 明에 다다른다. 그러므로 天과 人이 합일되어, 학문을 이루면 능히 聖人이 될 수 있으며 天을 얻어도 사람을 빠뜨리지 않게 되니, 周易의 이른바 "잃지도 않고 흘러서 치우치지도 않으며 지나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함이다.105)
明은 인간으로부터 天에 이르는 인식의 과정을 말하고, 誠은 天의 존재자체를 말한다. 이렇게 天과 人인 두 객체가 궁극적으로 합일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본체론상 이들 양자가 결국 동일한 하나의 氣로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106) 따라서 氣化의 과정 중에 氣의 質性이 생겨나고 氣質의 偏差가 발생되더라도 궁극적으로 天과 人이 합일될 수 있는 기본조건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誠은 아래와 같은 속성을 가진다.
誠은 實함이다. 太虛는 天의 實함이다. 萬物은 태허로부터 취해져 나온 것이고,사람 또한 태허로부터 나왔다. 태허는 心의 실함이다.107)
위에서 보여지듯이 誠體인 太虛는 天의 實인 동시에 心의 實이다. 天은 존재론을 대표하는 용어이고, 心은 인식론과 도덕론을 함께 포괄하는 용어이다. 이 문장은 궁극적으로 하늘과 사람이 동일한 성질(氣)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함과 동시에 하늘로부터 인간으로, 또는 인간으로부터 하늘로 향하는 雙 방향성이 모두 가능하며 결국 종극에 이르러서는 合一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天人合一'의 상태에서는 唯心論과 唯物論의 논쟁이 무력화되며, 인식론과 존재론의 층차와 과정도 무시되어지고, 오로지 "둘이 함께 서지 아니하면 하나가 드러나지 않고, 하나가 드러나지 아니하면 양자의 작용이 멈추어 버리게 되는"108) 圓融의 상태만이 전달될 뿐이다.
Ⅴ. 맺는말
北宋初期의 新儒學에 큰 획을 그었던 장재의 사상은, 북송중기와 남송의 사상가들에게서는 찾아 보기 힘들게도, 이론과 이론사이에 상호 침투가 가능한 圓融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시대적 고민을 안고 삼각하게 사유했던 한 유학자의 행태를 유감없이 반영해 주는 특징이며, 시대의 전환기에 서서 철학하고자 하는 이의 선구적 발자취를 추적하기에 앞서 건너가야 할 관문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그의 저작을 읽어내려 감에 있어서 논자는 여러번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동일한 용어에 함축되어 있는 다양한 의미는 그 자체로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오직 문맥의 흐름 속에서만 파악이 가능했으며, 또한 인식론적으로 상호 모순되는 것 같은 부분도 의리론적인 관점으로는 자연스럽게 통섭되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張載는 언제나 남루한 옷을 입고 채식을 하였으며 잠시 관직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고전을 배우고 또 가르치기에 힘썼다. 그가 이끈 關學은 禮를 중요시하고 經世致用의 정신에 입각해서 당대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흡수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장재가 그러했듯이 스승을 따로 두지 않고 사유하는 전통에 익숙해서 였던지, 학파를 이루었던 관학은 장재의 본 뜻과는 어긋난 길을 걷게 된다. 그리하여 장재가 견지하고자 했던 氣論 중심의 철학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청대에 이르러서야 王夫之에 의해 새롭게 계승되었던 것이다.
장재는 북송시대에 만연한 정치상의 혼탁함 속에 처해있던, 지식인의 나약한 모습과 부정적 세계관에 반기를 들고, 易을 으뜸으로 삼고 中庸을 몸으로 삼아 유학의 부흥을 이룩하고자 힘썼다. 그가 전개한 道敎와 佛敎에 대한 비판은 당시 그들 종교를 믿었던 사람들의 종교행태에 비추어 原典을 상징적으로 비판한 점이 강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유가와 道?佛 사상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그들을 유가의 형이상학적 전통 속으로 흡수시키고자 시도한 것이다.
그가 추구한 궁극적인 주제는 天과 人이 合一되는 경지로 나아가 聖人이 되고자 하는 데에 있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는 원시유가의 전통을 확실히 계승하고 있다. 문명의 해체기와 재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비슷한 시대적 정황 속에서 고뇌하였던 장재의 삶을 배우고 그가 이룩한 사상의 전개 과정을 세밀히 연구하여, 현재 우리가 당면한 철학함의 길을 비춰볼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가. 原 典 類
1.『 張子全書 』 臺灣中華書局 (1981)
2.『 張子正蒙注 』 券一 王夫之注 世界書局 (1967)
3.『 中國歷代哲學文選 』(宋元明) 木鐸 (1980)
4.『 宋明學案 』 河洛圖書出版社 (1975)
5.『 四書集注 』 上海古籍出版社 (1989)
6.『 周易今註今譯 』 臺灣商務印書館 (1984)
8.『 四書讀本 』 (臺灣)三民書局 (1990)
9.『 老子讀本 』 三民書局 (1989)
나. 二 次 資 料
(國外文獻)
1. 馮友蘭 『 中國哲學簡史 』 (臺灣)蘭燈
2. 勞思光 『 新編中國哲學史 』(上三) (臺灣)三民書局 (1990)
3. 任繼愈 『 中國哲學史 』 人民出版社 (1990)
4. 張立文 『 宋明理學硏究 』 中國人民大學出版社 (1987)
5. 侯外盧 外『 宋明理學史 』上券 人民出版社 (1982)
6. 牟宗三 『 心體與性體 』 第一冊 (臺灣)中正書局 (1985)
7. 牟宗三 『 中國哲學十九章 』(臺灣) 學生書局 (1989)
8. 牟宗三 『 中國哲學的特質 』 學生書局 (1990)
9.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學生書局 (1990)
10. 黃秀璣 『 張載 』 東大圖書公司 (1988)
11. 朱建民 『 張載思想硏究 』 文津出版社 (1989)
12. 唐君毅 『 中國哲學原論 』(原性篇) 學生書局
13. 唐君毅 『 中國哲學原論 』(原敎篇) 學生書局 (1984)
14. 錢 穆 『 宋明理學槪述 』 學生書局 (1977)
15. 李存山 『 中國氣論探源與發微 』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0)
16. 韋政通 『 中國哲學辭典 』 水牛出版社
(國內文獻)
1. 金忠烈 『 中國哲學散稿 』(一)(二) 온누리 (1990)
2. 조동일 『 우리 학문의 길 』 지식산업사 (1993)
3.『 東洋哲學의 人性論과 本體論 』 韓國東洋哲學會編 延大出版部 (1982)
4. 찰스허커 『 中國文化史 』 박지훈외 공역 한길사 (1986)
다. 論 文 類
1. 張立文 「 理學的思想來源 」 哲學硏究叢刊 第一集 (1979)
2. 張立文 「 宋明儒學的演變 」 儒學國際學術討論會論文集 (1987)
3. 張立文 「 宋明理學邏輯結構的演化 」 淸海社會科學 (1986)
4. 張立文 「 朱陸無極太極之辯 」 (1988)
5. 朴正根 「 易經之人生哲學硏究 」 輔仁大學哲學硏究所博士論文 (1987)
6. 李尙鮮 「 正蒙哲學思想之硏究 」 輔仁大學哲學硏究所碩士論文 (1987)
7. 安點植 「 張載의 氣 哲學에 있어서 天人合一의 構造 」 서울대석사논문(1986)
8. 金錫濟 「 張橫渠의 氣論에 관한 硏究 」 成大 석사논문 (1986)
9. 朴在述 「 張載의 氣論 硏究 」 高大 석사논문 (1991)
1) 조동일, 『 우리 학문의 길 』 p.194
한문에서 온 용어를 버리고 모두 토박이 말로 대체하는 것은 우리 학문의 길이 아니
다.
2) 勞思光 『 新編中國哲學史 』 pp.174-191
3) 張立文 『 宋明理學硏究 』 pp.223-227
侯外盧 外 『 宋明理學史 』 上卷 p.104
4) 牟宗三, 蔡仁厚, 朱建民, 黃秀機는 다 이 전통을 따르고 있다.
5) 唐君毅 『 中國哲學原論 』原敎篇 p.90
6) 牟宗三 『 心體與性體 』 p.49
牟宗三 『 中國哲學十九章 』 p.393
모종삼은 계보 분류에 있어서, 程伊川 - 朱熹를 한 계보로 묶고, 周濂溪 - 張載 - 程
明道 - 胡五峯 - 劉輯山 에 걸친 계보를 주희에 이르는 앞의 계보와 엄격히 구별코자
한다.
7) 安點植 「 장재의 기 철학에 있어서 천인합일의 구조 」 p.31
久須本文雄은 장재의 사상이 대부분 불교 경전의 방법론을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8)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p.125-173
9) 陳俊民 앞의 책 p.137
진준민의 장재가 결국 氣 - 道 - 性 - 心 - 誠에 이르는 논리범주체계를 확립했다고
말하나, 논자는 장재의 논리를 이렇게 직선적으로 나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10) 唐君毅 앞의 책 p.91
11)『 莊子 』「 知北遊 」
外不觀乎宇宙, 內不觀乎太初, 是以不過乎崑崙, 不遊乎太虛.
12) 原文에 나오는 '野馬'는『 莊子 』의 逍遙遊篇에서 볼 수 있고, '谷神' 은『 老子
』에서 볼 수 있다.
13) 唐君毅 앞의 책 p.90
14)『 全書 』「 西銘 」 乾稱父, 坤稱母.
『 正蒙 』「 天道 」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天道也.
앞의 두 문장에서 전자는 의리론적인 관점에서 乾을 아버지로 여기고 坤를 어머니로
여긴다. 그러나 후자에서는 인격성이 배제된 天道를 말하고 있다.
15)『 正蒙 』「 神化 」 神無方無體, 大且一而已爾.
16) '天人合一', '天道與性命合一'
17) 찰스허커 『 中國文化史 』 박지훈외 공역 pp.265-268
18) 金忠烈 『 中國哲學散稿 』(二) p.275
북송초기에『 太平御覽 』『 冊府元龜』『 文苑英華 』등의 宋代三代書가 집대성되
었다.
19) 張立文 『 宋明理學硏究 』 p.2
20) 張立文 앞의 책 p.12-13
장립문은 '理學' 이 당대유학의 제반 도통을 지치하는 용어로서, '道學'과 '心學'을
함께 포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논자가 보기엔 장재의 철학이 이러한 '理學'의 범주
속에 완벽히 포함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장립문은 북송시대에는 洛學이 독주한 것
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논자는 여기서 宋代儒學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21) 張立文 「 理學的思想來源 」
22) 張立文 같은 논문
23)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2
24) 陳俊民 앞의 책 p.5
25)『 楊龜山集 』 券五 橫渠之學, 其源出於程氏, 而關中諸生尊其書, 欲自爲一家.
26)『 宋明學案 』「 橫渠學案 」 p.3
先生謂之曰, 今見二程至, 深明易道, 吾不及也, 可往師之.
27) 朱熹조차 앞의 학설을 부인했다. 『 伊洛淵源錄 』「 橫渠先生遺事」
28)『 宋明學案 』「 橫渠學案 」 여기서 '高平門人' 이라는 언급을 볼 수 있다.
29) 陳俊民 앞의 책 p.37
30) 陳俊民 앞의 책 pp.15-19
진준민은 여대림이 비록 洛學에 투항했으나 그 속에서도 관학의 입장을 지켰다고 말
한다. 여대림은 "中으로 부터 道가 나온 것"으로 보나, 程氏는 '理一分殊'에 입각하
여 "中이 곧 道일 뿐이며, 道가 中에 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여대
림이 "赤子之心"으로 中庸의 '喜怒哀樂之未發'을 설명했으나, 程氏는 赤子之心은 '已
發' 이라고 반박하고, "未發之前謂之無心"을 주장했다.
31)『 正蒙 』「 太和 」 不罔於恍惚夢幻, 則定以有生於無, 爲窮高極微之論.
32)『 太極圖說 』에는 無極而太極으로 나와 해석상의 어려움을 주나 본래는 '由無極而
爲太極'으로『 老子 』의 24장 "復歸於無極" 과 40장 "..有生於無"와 혼동될 소지가
다분하다.
33) 張立文 「 宋明理學邏輯結構之演化 」
34) 呂大臨 「 行狀 」
先生讀其書(中庸), 雖愛之猶未以爲足也. 於是又訪諸釋老之書, 累年盡究其說, 知無所
得反而求之六經.
35) 張立文 같은 논문
36)『 正蒙 』「 太和 」 知虛空卽氣, 則無無.
37) 陳俊民 앞의 책 71-72
송대 기록에 의하면 장재의 저서는 꽤 다양했다. 그의 저서로는『 文集 』,『 易說
』, 『 禮樂說 』,『 論語說 』 ,『 孟子說 』,『 春秋說 』,『 信聞記 』,『 崇文集
』,『 語錄 』,『 祭禮 』,『 西銘 』,『 經學理窟 』,『 正蒙 』 등이 있었다. 그러
나 송대이후 점차 소실되기에 이르렀으니 현존하는 저작으로는『 西銘 』,『 正蒙 』
,『 橫渠易說 』,『 經學理窟 』,『 張子語錄 』,『 文集 』등이 있는데 이중 장재가
직접 쓴 것은『 易說』 ,『 西銘 』 ,『 正蒙 』부분적으로 전하는 문집이다. 장재
사상의 과정은『 易說 』- 『 西銘 』-『 正蒙 』순으로『 正蒙 』은 그의 사상의 結
晶이라고 말할 수 있다.
38) 呂大臨 「 行狀 」
出示門人曰, 此書于歷年致思之所得, 其言始于前聖合與, 大要發端示人而已, 其觸類廣
之, 則吾將有待于學者, 正如老木之株, 枝別固多, 少者潤澤華葉爾.
39)『 宋明學案 』「 橫渠學案上 」 其學以易爲宗, 以中庸爲的, 以禮爲體, 以孔孟爲極.
40)『 正蒙 』「 乾稱 」
自其說熾傳中國, 儒者未容窺聖學門牆, 已爲引取, 淪胥其間指爲大道. 其俗達之天下,
致善惡,智愚,男女,臧獲人人著信. 使英才間氣生, 則溺耳目恬習之事, 長則師世儒宗尙之
言, 遂冥然被驅, 因謂聖人可不修而至, 大道可不學而知. 故未識聖人心, 已謂不必求其
迹, 未見君子志已謂不必事其文. 此人倫所以不察, 庶物所以不明, 治所以忽, 德所以亂,
異言滿耳, 上無禮以防其僞, 下無學以稽其弊. 自古피淫邪遁之詞, 翕然幷興, 一出於佛
氏之門者千五百年.
41)『 周易 』「 繫辭上 」 生生之謂易.
42)『 正蒙 』「 乾稱 」 釋氏語實際, 乃知道者所謂誠也, 天德也. 其語到實際, 則以
人生爲幻妄, 有爲爲贅, 以世界爲蔭濁, 遂厭而不有, 遣而弗存, 就使得之, 乃誠而惡
明者也. 儒者則因明致誠, 因誠致明, 故天人合一, 致學而可以成聖, 得天而未始遺人,
易所謂不遺,不流,不過者也.
43)『 中庸 』 二十章 誠者天道也, 誠之者人之道也.
二十一章 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44)『 正蒙 』「 太和 」 客感客形與無感無形, 惟盡性者一之.
여기서 말하는 交感은 董仲舒의 天人感應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45)『 正蒙 』「 誠明 」 性與天道合一存乎誠.
46)『 正蒙 』「 參兩 」 一物兩體, 氣也. 一故神(兩在故不測), 兩故化(推行于一).
47) 예를 들어, '太虛卽氣'를 해석할 때에 '卽'을 단지 '동일하다'라고 해석하면 장재의
본 뜻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48)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131-137
49)『 正蒙 』「 太和 」 聚亦吾體, 散亦吾體, 知死之不亡者, 可與言性矣.
50)『 正蒙 』「 太和 」 太虛無形, 氣之本體. 其聚其散, 變化之客形爾. 至靜無感,
性之淵源, 有識有知, 物交之客感爾. 客感客形與無感無形, 惟盡性者一之.
51) '太虛' 는『 皇帝內經 』에서 가장 많이 출현하고 있다.
52)『正蒙』「太和」 太虛不能無氣, 氣不能不聚而爲萬物, 萬物不能不散而爲太虛.
循是出入, 是皆不得已而然也.
53)『 正蒙 』「 太和 」 氣앙然太虛, 昇降飛揚, 未嘗止息. 易所謂絪縕, 壯生所謂
生物以息相吹野馬者與. 此虛實,動靜之機, 陰陽剛柔之始. 浮而上者陽之淸, 降而下者陰
之濁.
54) 王夫之 『 張子正蒙注 』 券一 絪縕, 太和未分之本然.
55)『 正蒙 』「 太和 」 氣之聚散於太虛, 猶氷凝釋於水. 知太虛卽氣則無無.
56) 朱建民 『 張載思想硏究 』 p.67 논자는 주건민의 해석을 따랐다.
57) 王夫之 『 張子正蒙注 』券一 「 太和 」 虛涵氣, 氣充虛, 無有所謂無者.
58)『 老子 』四十章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장재는 노자의 無를 '絶對無'로 간주했으나 노자가 말한 無가 순환되지 않는 고정된
실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59)『 正蒙 』「 太和 」
知虛空卽氣, 則有有無,隱顯,神化性命, 通一無二, 顧聚散,出入,形不形, 能推本所從來,
則深於易者也.
60)『 正蒙 』「 太和 」 彼語寂滅者, 往而不反.
그러나 불교의 '空'이 단순히 적멸의 의미만을 내함한 공간적인 개념인지는 논의의
여지를 갖는다.
61)『 正蒙 』「 乾稱 」
太虛者, 氣之體. 氣有陰陽,屈神相感之無窮, 故神之應也無窮.
62) 牟宗三 『 心體與性體 』 第一冊 p.424
모종삼은 태허의 神體를 강조하고 '太虛卽氣'는 '太虛無形, 氣之本體'에서 왔고, '太
虛無形'은 '淸通而不可象爲神' 에서 온 곳으로 보아, 太虛, 虛空 虛無는 결국 神體임
을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장재의 唯物論的 경향을 완전히 거부한다.
63) 『 正蒙 』「 乾稱 」
體不偏滯, 乃可謂無方不體. 偏體於晝夜,陰陽者, 物也. 若道, 則兼體而無累也. 以其
兼體, 故曰, 一陰一陽, 又曰陰陽不測, 又曰一闔一闢, 又曰通乎晝夜. 語其推行, 故曰
道. 語其不測, 故曰神, 語其生生, 故曰易. 其實一物, 指事異名爾.
64)『 正蒙 』「 太和 」
太和所謂道, 中涵浮沈升降動靜相感之性, 是生絪縕,相蕩,勝負,屈伸之始.
65)『 周易 』「 繫辭上 」五章
生生之謂易, 成象之謂乾, 效法之謂坤, 極數知來之謂占, 通變之謂事, 陰陽不測之謂神.
66)『 正蒙 』「 神化 」
氣有陰陽, 推行有漸爲化, 合一不測爲神, 其在人也. 知義用利則神化之事備矣.
67)『 正蒙 』「 天道 」 天之不測謂神, 神而有常謂天.
68)『 正蒙 』「 參兩 」 一物兩體, 氣也. 一故神, 兩故化.
여기서 兩體의 體는 體用의 體가 아니다.
69)『 全書 』「 繫辭上 」 故能成天下之務, 唯神也.
70)『 正蒙 』「 乾稱 」 語其推行, 故曰道. 語其不測, 故曰神. 語其生生, 故曰易.
71)『 正蒙 』「 太和 」 散殊而可象爲氣, 淸通而不可象爲神.
72)『 正蒙 』「 太和 」 凡氣淸則通, 昏則壅, 淸極則神.
73)『 正蒙 』「 太和 』 太虛爲淸, 淸則無碍, 無碍則神. 反淸爲濁, 濁則碍, 碍則形.
74)『 正蒙 』「 太和 」
鬼神者, 二氣之良能也. 聖者, 至誠得天之謂. 神者, 太虛妙應之目, 凡天地法象, 皆
神化之糟粕爾. .... 鬼神之實, 不越二端而已矣. 兩不立則 ,一不可見, 一不可見, 則
凉之用息. 兩體者, 虛實也,動靜也,聚散也,淸濁也, 其究, 一而已.
75) 正蒙은 張載가 지었으나, 편집은 제자인 蘇昞이 맡아서 分篇했다. 만약 편집상의 오
류가 아니라면, 장재 자신이 鬼神과 神化를 竝用해서 구분없이 쓰고자 했음이 인정
된다.
76) 牟宗三 『 心體與性體 』 第一冊 p.477 - 478
77) 牟宗三 앞의 책 p.479 - 481
78)『 正蒙 』「 神化 」 神天德, 化天道. 德其體, 道其用. 一於其而已.
79) 牟宗三 앞의 책 p.482
80)『 正蒙 』「 太和 」 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
81)『 正蒙 』「 太和 」 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 合虛與氣有性之名, 合性與知覺有心之名.
82)『 孟子 』「 盡心上 」
孟子曰,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夭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
83)『 中庸 』一章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84)『 正蒙 』「 乾稱 」 至誠, 天性也. 不息, 天命也.
85)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155
86)『 正蒙 』「 誠暝 」 天性在人, 正猶水性之在氷, 凝釋雖異, 爲物一也.
87)『 正蒙 』「 誠明 」 性者, 萬物之一源, 非有我之得私也.
88)『 正蒙 』「 誠明 」 性於人無不善.
89)『 正蒙 』「 誠明 」 天所性者, 通極於道, 氣之昏明, 不足以蔽之.
90)『 正蒙 』「 誠明 」
形而後有氣質之性. 善反之, 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
여기서 '弗性' 은 王夫之의 注를 인용함.(弗性 ; 不據爲己性而安之也)
91) 王夫之 『 張子正蒙注 』券一 「 誠明」
氣質者, 氣成質而質還生氣也. 氣成質, 則氣凝滯而局於形, 取資於物以滋其質. 質生
氣, 則同異攻取各從其類.
92) 王夫之 앞의 책 故耳目口鼻之氣與聲色臭味相取, 亦自然而不可拂遠.
93)『 正蒙』「 誠明 」 天本參和不偏. 養其氣, 反之本而不偏, 則盡性而天矣.
94)『 正蒙 』「 誠明 」 人之剛柔, 緩急, 有才與不才, 氣之偏也.
95) 朱建民 『 張載史上硏究 』 p.110
朱建民은 이러한 이중성을 분류해 '道德心' 과 '經驗心'으로 불렀다.
96) 이 부분은 칸트의 '순수이성의 한계와 실천이성의 요청'이라는 논리방식과 유비적으
로 연관시킬 수 있다고 본다. 모종삼과 주건민의 어법은 칸트에 힘입은바가 크다.
97)『 正蒙 』「 大心 」 世人之心, 正於聞見之狹, 聖人盡性, 不以見聞梏其心.
98)『 正蒙 』「 大心 」 人病其以耳目見聞累其心, 而不務盡其心.
99) 陳俊民 앞의 책 p.163
100)『 正蒙 』「 大心 」
大其心, 則能天下之物. 物有未體, 則心爲有外. ... 孟子謂盡心則知性知天, 以此.
天大無外, 故有外之心, 不足以合天心.
101)『 正蒙 』「 大心 」 成心忘, 可與進於道.
102)『 正蒙 』「 誠明 」 心能眞性, 人能弘道.
103)『 正蒙 』「 大心 」
釋氏不知天命, 而以心法起滅天地, 以小緣大, 以末緣本, 其不能窮而謂之幻妄, 眞所謂
凝氷者與.
104)『 正蒙 』「 誠明 」 性與天道合一存乎誠. 여기서 性은 人性을 말한다.
105)『 正蒙 』「 乾稱 」
儒者則因明致誠, 因誠致明, 故天人合一, 致學而可以成聖, 得天而未始遺人, 易所謂不
遺,不流,不過者也.
106)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154
진준민은 '天人一氣' 라는 표현을 쓴다.
107)『 全書 』「 張子語錄 」
誠則實也, 太虛者天之實也. 萬物取足于太虛, 人亦出于太虛, 太虛者心之實也.
108)『 正蒙 』「 太和 」 兩不立則一不可見, 一不可見則兩之用息.
Ⅰ. 머리말
Ⅱ. 연구 방법
Ⅲ. 張載 사상의 형성배경
Ⅳ. 『正蒙』의 構造
Ⅴ. 맺는말
Ⅰ. 머리말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사실상『 正蒙 』에 담겨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지는 않다. 논자는 宋代의 철학자인 張載(1020-1078) 사상 속에서, 현실에 적용될 수 있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이론을 천착해 가려고 시도하기 보다는, 張載가 어떠한 동기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주어진 시대의 사상적 고민들을 어떠한 방법으로 풀어 나가고자 했으며, 당시 共存했던 他思想과의 연관성 속에서 독창적인 철학을 창출해 낸 그 '과정 자체'를 문제 삼고자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논자는 張載가 그의 사상을 전개하면서 품었던 문제 제기의 시대적 조건과 당대의 佛?道 의 세계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시도했던 개념도입의 과정과 새로운 개념 구축의 방법론을 분석하고, 나아가 원시유가와 구별되는 宋代儒學과 그가 속했던 關學學派가 점유하는 독자성과 독창성을 해부해 보고자 한다. 그가 전개했던 이른바 '氣論'의 맥은 淸代에 이르기까지 계승 발전되었으나, 서구문물의 수용과 더불어 그 진가와 실체성이 퇴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논자는 그가 전개한 '氣論'의 실질적인 효용성을 재 발견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론의 전개 과정을 심도 있게 파헤쳐, 앞으로 다가올 세계관을 다듬는 데에 있어서 한 양태를 조명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저술 가운데 晩年에 쓰여진『 正蒙 』을 연구하려 함은, 原文의 내용이 논자가 연구해 보고자 하는 그 '과정' 을 가장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연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먼저 기존에『 正蒙 』을 연구한 학자들의 연구 방법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교?검토하였고, 연구해 감에 있어서 봉착하게 되는 난점들을 짚어 보았으며, 사상이 형성된 시대적 배경을 탐색해 보았고, 關學의 학파운동 속에서 장재의 사상과 위치를 조명해 보고, 나아가 宋代에 불기 시작한 '儒學의 復興과 新儒學의 創建' 이라는 운동 속에서 장재가 차지하는 독자적인 위치를 드러내 보이고자 한다. 끝으로『 正蒙 』의 구조를 분석함에 있어서, 그 사상적 연원이 된 이론들을 거슬러 올라가 밝혀내고, 독창적으로 창안해 낸 논리체계의 구성 원칙을 분석해 보며, 나아가 原典에 나타난 氣論의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구조를 해부하며, 本體論과 心性論을 아울러 밝혀 보고자 한다.
이 논문에서 소개 될 원문 번역은 되도록 우리말화 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뜻이 전달되지 않거나 개념의 의미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 단어들은 한자를 기입하거나 괄호를 쳐 원문의 내용을 기입하였다.1)
Ⅱ. 연구 방법
1. 硏究 方法의 檢討
중국 철학사를 기술한 勞思光의 경우, 장재 사상의 독자적인 특이성을 부각시키기 보다는 그의 사상을 二程이나 朱熹로 넘어가는 하나의 계단으로 평가하여 폄하시키거나 논리전개의 미숙함과 내용상 모순되는 부분을 지적하여 체계성이 결여된 사상가로 치부해 버리는 입장을 취했다.2)
중국 대륙 학자들의 張載 연구는, 대부분 이른바 '유물론과 유심론'의 대립적인 도식선상에서 행해지는 바가 허다하여, 송대에 이룩한 복잡하고 중층적인 이론 구조를 인위적으로 양분화하거나 억지로 분리해 내어, 그들이 설정한 틀에 끼워 맞추는 오류를 범했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모순구조'를 도출해 낼 수밖에 없었다.3) 반면에 이들은 송명유학이 태동하게 된 하부구조(사회·경제사적 배경) 를 중시하여 연구해 낸 업적은 평가받을 만한 부분이다.
근대 신유학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계열의 학자들4)은, 줄곧 '義理論' 전통의 연구 방법을 고수하여, 장재가 구사한 신개념의 범주나 구조보다는『 正蒙 』의 궁극적 주제인 '天人合一'이나 '天道與性命合一'이라는 통일된 시각에서 전 내용을 通貫해 보고자 한다.5) 이러한 연구 방법은 다분히 비체계적이고 분산적인 장재의 이론 속에서 통일적인 의미와 맥락을 추적하여 연결시키기가 가능해지며, 그들이 설정한 계보6)의 분류에 맞게 구체적인 개념이나 용어를 의미전환시키거나 통일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구 방법은『 正蒙 』속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다양한 개념들의 중층적 의미구조를 분석해 내거나, 논리구조의 복합적인 범주와 전개의 과정을 파악해 내기에는 매우 나약한 방법임에 틀림없다.
한편, 일본의 학계에서는 장재가 구축한 새로운 이론체계에 주목하기 보다는 불교 경전과 장재의 방법론의 연관성을 밝히는 데에 주력하여, 장재 사상과 道.佛 사상의 단절성 보다는 계승성과 채용성(採用性)을 알리기에 주력했다.7)
중국의 陳俊民은 먼저 '關學' 이라는 학파운동 속에서 장재의 사상을 조명하고, 관학의 독자성을 입증시키고, 나아가 '주제'의 관점에서『 正蒙 』의 저작들을 살피고, 장재의 다양한 논리범주의 구조와 체계를 명료하게 밝혀 내고 있다. 기존에 중시하지 않는 논리범주의 계열과 구조를 심도 있게 파헤쳐『 正蒙』의 복잡한 구조를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였다.8) 그러나 그가 밝힌 논리 범주의 계열(系列) 구조(結構)는 지나치게 단선적인 방법9)을 쓰고 있는 점이 흠이다.
2. 『正蒙』 硏究의 難点
장재는 사실상 朱熹나 二程처럼 사상체계의 윤곽이 확실히 짜여져 있는 철학자들과는 성격을 달리한다. 따라서 주희가 그 자신의 독자적인 개념 구사와 체계적인 이론 구성에 의해서 자신의 사상을 구축하여, 후학들로 하여금 그가 말하려는 要旨와 핵심이 어디에 있었는지를 확연히 알 수 있게끔 한 것과는 달리, 장재는 용어나 개념의 구사에 있어서, 매우 애매하고 중층적인 방법을 취한다. 이로 인해 그를 연구하는 학자들로 하여금 어디까지가 기존에 사용한 개념의 범주이고 어디까지가 그가 새롭게 창출한 개념의 범주인지를 손쉽게 분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점이 바로 장재의 사상을 '연역적인 관점' 에서 조명하기 어려운 난점이다.
첫째,『 正蒙 』에 나타난 용어들은 각기 다른 출전을 갖는다. '誠明' 은 中庸으로부터 온 개념이고, '神化'는『 孟子 』와『 周易 』에서 왔다. 그러나 그가 구사한 '誠明' 과 周濂溪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며,『 中庸 』에서 따온 '性','命', '誠' 의 개념도 사실상 선진유가에서는 접근하지 않은 것들이다. '參兩'과 '中正'은「 易傳 」으로부터 온 용어이고, '虛氣' 로써 天道를 말함은 도가로 부터 온 개념인 듯하다. '天德' 과 '太和'는「 易傳 」에서 온 용어이다.10) '太虛'는 그 의미는 다르나 용어는『 莊子 』의「 知北遊 」에서 볼 수 있다.11) 이밖에도 도가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되는 용어들이 더러 발견된다.12) 이처럼, 각기 다른 출전을 가진 용어와 개념들의 중층적 구조와 이중적 의미 연관은 오직 "義理的인 安排"에 의해서만 통일적으로 조명할 수 있을 뿐13), 그 자체의 복합 구조를 단선적인 개념의 배열로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둘째, 장재는『 정몽 』에서 이른바 "圓融的인 방법론"을 구사하고 있다. 이를 달리 표현하면, 한편으로는 "未分化된 통일적인 이론체계" 를 고수하면서, 한편으로는 '존재와 가치'가 混在되어 구사되어지고 있다. 따라서 의리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통일적으로 이해 될 수 있는 내용도, 본체론적인 입장에서 보면 엄격히 구별해야 하는 이중적인 난제가 등장한다.14) 이로 인해 관점의 선택에 따라 같은 지점의 동일한 용어를 보는데 있어서도 매우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셋째, 용어들의 중층적 의미구조를 분석해 내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예로 '神' 의 개념이 있다. '氣' 의 개념도 마찬가지이다.
넷째, 장재는 개념을 '동일성의 원칙' 에 의거해 나열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표면상으론 같은 개념의 다른 명칭으로 보이는 부분도, 사실은 동일성의 원칙이 아닌 "體用의 원칙" 에 입각해 서술되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正蒙 』의 내용은, 통일적이고 일관된 모습을 보여 주기 보다는 비체계적이고 분산적이며, 다양한 연원을 가진 용어와 개념들이 장재의 고뇌와 깊은 사색의 과정(苦思力索)중에 글로 옮겨져, 단지 의리론적인 입장에서만 統攝融化될 수 있는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이론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빠지게 되는 딜레마는, 이론을 분석하기 위해 그가 구사한 "가치와 존재" 또는 "義理와 논리범주 구조" 의 이중적 혼용 구조를 분리해 내면서부터 사실상 장재 사상의 眞面目과는 거리가 벌어져 버리게 되며, 그가 구사한 개념들 간의 역동적 구조15) 가 변환되어, 일종의 寂滅 상태로 떨어져 버리게 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본 논문에서는 장재가 구사한 "원융적 방법론" 을 충실히 살리기 위해,『 正蒙 』에 나오는 이론을 '다양한 각도' 에서 비추어 보고자 한다. 먼저 '主題'16) 에 입각해 원문에 나타난 내용을 천착해 보고, 용어의 연원에 얽힌 상호 충돌구조를 분석해 보며, 가치와 실재의 혼용 구조를 일별해 보고, 개념 간의 논리 범주를 세밀히 분석해 본다. 나아가 '關學' 이라는 학파의 시각에서 장재의 저작들을 조명해 본다.
Ⅲ. 張載 사상의 형성배경
1. 宋代 儒學의 胎動
960년 北宋이 건국되어 唐 五代이후로 분열되었던 중국 영토를 통일하였다. 그러나 北宋은 정치적으로는 끊임없이 유목민 제국들의 침입을 막아내면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였다. 遼(契丹族)는 당이 멸망한 이래 끊임없이 북중국을 침입하였으며, 북서지방의 탕구트(黨項)라는 티벹 부족들의 연맹은 10세기에 이르러서는 西夏라는 독립국가를 세워, 송과 적대적인 관계를 공식화 하였다. 그 이후 송은 만주족의 조상인 여진족에 의해 세워진 金이라는 국가에 의해 북중국 전부를 잃게 된다.17)
北宋은 무인들에 의해 장악된 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宋太祖는 건국하자 무신들에게 독서를 명하고 그것으로 治道를 익히게 하였다. 그리하여 북송의 학술 문화는 당의 詞章學에서 벗어나 經史와 經世致用에 필요한 禮制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되었으며,18)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도 괄목할 많은 변화가 일어나 희곡과 소설 및 회화 분야에서 위대한 새로운 전통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인쇄술이 널리 보급되어 교육 수준이 향상되었으며, 경제가 상업화되고 생산력이 발전함에 따라, 농업과학 기술과 농업 기구의 기술이 함께 발전하게 되고, 이에 관계되는 天文, 曆法, 建築이 크게 진일보하게 되고 수학, 물리학, 생물학,지질학 같은 기초 과학 분야도 발달하게 되었다.19)
宋代 儒學20) 은 위와 같은 정치 사회사적인 배경 속에서 움트기 시작하여, 사상적으로는 당대에 공존했던 儒?佛?道 三敎를 통일하여 새로운 단계의 유학을 창출해 내었다. 이러한 운동은 당시 통치계급이 강력한 송대 통치왕조를 뒷받침하기 위한 요구에 부응하여 일어난 것으로, 宋初의 孫復, 石介, 이구 등의 유학자들은 당대 말엽부터 일기 시작한 反佛運動(韓愈) 으로부터 계발을 받아 反佛 사상운동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들의 논변은 윤리적인 비판에 머물러 韓愈의 논점을 넘어서지 못하였으며, 철학적인 논쟁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하였다. 智圓(976-1022) 은 당대에 익숙했던, "불교가 유교,도교보다 앞선다" 는 전통을 타파하면서, 당시의 三敎를 병을 치유하는 세가지 종류의 약으로 비유하여 鼎立해야 하며, 한가지라도 결핍되면 不可함을 역설했다. 智圓의 이러한 주장은 사실상 佛敎의 儒學化를 말한 것이다.21)
그 후에 등장하는 周敦이, 張載, 程顥를 비롯해 朱熹, 陸德明은 모두 불교와 도교의 문턱을 여러해 동안 들락거렸던 인물들이며, 그러한 가운데 유가의 윤리사상을 핵심으로 삼고, 도가와 도교의 宇宙生成論과 萬物化生論을 흡수하고 불교의 思辨哲學을 비판적으로 융화시켜, 원시유가가 지녔던 엄밀한 체계성과 사변성의 결핍을 보충하여, 새로운 단계의 유학을 건립했다.22)
2. 關學 學派
關學은 송명 유학의 思潮 중에서, 장재가 창립한 중요한 독립학파로서, 宋?元?明?淸?明代에 지금의 陝西 關中에서 일어났던 사상 운동이다.23) 관학은 역사상 일반적으로 일컬어지는 '關中之學'이 아니라, 송?원?명?청대에 걸쳐 일어난 儒家로서의 학파운동이다. 관학은 장구한 시기를 거치면서, 혹자(張載)는 "太虛無形, 氣之本體" 라는 학설을 창출해 내고, 혹자(呂柚)는 周程張朱를 융합해 "窮理實踐" 을 지표로 삼았으며, 혹자(馮從吾)는 "善心" 을 宗旨로 삼았으며, 혹자(李元春)는 는 "誠敬"을 根本으로 삼았고, 혹자(李옹)는 "明體適用" 의 학설을 연구하기도 하였다.24)
이러한 關學의 학파운동은 결코 장재 한 사람의 사상이라고 할 수 없으며, 동시에 송대의 제반 理學과의 연관성 속에서 시종 독립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장재에서 呂柚, 馮從吾에서 李옹으로 연결되는 변천사는 기본적으로 관학이 북송에서 興起하여, 남송 시대의 쇠락기를 거쳐, 명대에 中興을 이룩하고, 명대에서 청대를 거쳐 終局을 맞이하는 역사적 과정을 반영하고 있다. 만약 장재를 이러한 논리 기점의 肯定形式을 연 인물로 평가한다면, 명대의 呂柚와 馮從吾는 그 중간에 자리한 否定의 고리라고 볼 수 있으며, 淸初의 李옹은 이러한 논리전개의 종결로 자리매겨진 바 再肯定의 形式이라고 말할 수 있다.
기존의 關學에 대한 시각은 항상 二程과의 연관 속에서만 다루어 졌으며, 그로 인해 관학은 낙학과 그 연원이 同一視 되거나,25) 또는 橫渠가 二程을 만나서 易을 논한 후 미치지 못함을 고백한 기록을 들어,26) 후대에 가서 관학이 洛學化 되는 근거를 삼으려 든다. 그러나 앞의 주장은 사실상 신빙성이 부족하며,27) 후대에 程門의 제자들이 자신들의 학문을 드높이기 위한 방편에 불과한 것이다. 또한 장재를 高平門人으로 편입한 기록28) 이 있어서 마치 장재가 范仲俺을 스승으로 모신 것으로 추측되기 쉬우나, 그들은 결코 사제지간은 아니었다.
관학 학파는 궁극적으로 모두 '窮行禮敎' 를 근본으로 삼았으며, '經世致用' 으로서의 학문정신을 잃지 않았다. 이들은 학파를 창설한 始祖로부터 역대 문하에 이르기 까지 모두 "고뇌에 찬 학문정신"(聖苦力學)과 "스승을 따로 두지 않고 이론을 완성해 가는" (無師而成) 길을 걸어갔다. 또한 그들은 타학파의 장점을 쉽게 받아 들이고 그 과학 지식의 우수성을 손에 넣었으니, 당대에 풍미한 자연과학의 최고 성과들을 유감없이 소화해, 儒學에 풍부한 哲理的 요소를 불어 넣었다.29)
장재가 죽은 후 대부분의 제자들, 즉 三呂와 蘇昞은 모두 洛學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중에서도 呂大臨은 장재가 죽은 후 곧바로 二程에게 투항하여, 程氏 門下에서도 매우 높은 四先生 중의 한사람이 되었다. 이처럼 제자들은 스승의 뜻을 제대로 계승하지 못하고 정신적인 領袖를 잃고 나자 해체의 길을 걷게 되었다.30)
2. 張載의 獨自的 位置
北宋 시대에 접어 들면서 新儒家의 포문을 연 이는 周濂溪이다. 그는 불교와 도교의 도움을 빌어 유가에 입문하여 유가의 새로운 형이상학31)을 시도했으나, 그가 구사한 '無極'32)의 개념이 불교, 도교와 혼동되는 약점이 있어, 사실상 아직 佛?道의 사변적 본체론과 정면 대결을 하기엔 부족했다. 또한 歐陽修의『 本論 』은 당시 사상계에 큰 영향을 미쳐 유가의 '禮義'를 근본으로 삼을 것을 제창하고 佛?道와 논전을 벌였으나 마찬가지로 철학적인 비판을 시도하지도 못했다.33)
이러한 유가가 당대의 佛?道를 凌駕하지 못했던 형세는, 장재가 釋?老를 출입하던 중에 스스로 깨달은 바 있어 六經을 연구하기 시작하면서부터34)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불교와 도교 철학의 이론적 要旨는, 당시 사람들의 이해에 따르면, 불교는 心을 法으로 삼고, 空을 眞으로 삼았으며, 도교는 無를 道로 여기고, 我를 眞으로 이해했다. 장재는 이에 대해 氣를 세워 空의 혼상을 무너뜨리고, 有를 세워 無의 관념을 일소했다.35) 이처럼 장재는 당대의 佛?道의 형이상학적 개념을 새로운 용어 개념을 창출하여 공격하면서 그들의 개념을 자신의 사상 속으로 흡수하여 변형시키고자 했다.36) 장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송대의 신유학은 道?佛의 형이상학적 본체론과 정면으로 맞설 수 있게 되었다.
장재가 구축한 본체론은 주염계가 無極을 세우고, 정이와 주희가 氣에 대립하는 理라는 개념을 수립하여, 운동 변화하는 현상세계의 배후에 거하는 寂然不動의 實體를 고안해 낸 것과는 다르게, 氣외에는 따로 어떤 궁극적인 실체를 가정하지 않고 그 자체의 운동성과 공간성을 통일적으로 이해하려는 입장을 시종 견지했다. 이러한 점 때문에 장재 철학은 한편으로는 元始儒家가 단지 윤리학적인 性論 중심에 국한 되어 있는 차원을 훨씬 뛰어 넘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원시유가로부터 전승되어 온 맥과 回通될 수 있는 이중 구조를 가지게 되었다.
Ⅳ. 『正蒙』의 構造
1. 思想的 淵源
張載는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특정한 스승에게서 사사를 받아 사상을 전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긴 사색과 학문 연구의 과정 속에서 독창적인 저술을 남기게 된 것이다. 그가 남긴 저작37) 가운데 晩年의 작품인『 正蒙 』은 장재 사상의 모든 精華가 凝縮되어 있는 책으로 그가 죽기 한 해 전에 제자들을 시켜 集成토록 했다.38)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당시 사상계의 그릇된 인식과 관념을 바로 잡기 위한 목적에서 쓰여 졌으며, 장재는 이 책을 제자들에게 보이면서 "이 책은 여러 해에 걸친 사색 끝에 얻은 것으로, 비로소 이전의 聖人들과 합하게 되었다! 大要의 發端을 사람들에게 보이고자 할 따름이니, 그 접촉될 수 있는 層類가 넓을 것이며, 나는 장차 學人을 기다리니, 마치 老木의 그루터기 같아 본디 그 가지가 많으니, 소수의 사람이 그 잎을 윤택하고 영화롭게 할 것이다" 라고 말했으니, 그는『 正蒙 』을 통해서 어떤 완성된 체계의 철학을 보여 주려 함이 아니라, 자신의 사상적 핵심을 단편 단편 내 밷아 後學들의 사상적 지표를 이끄는 '그루터기' 의 역할을 하려 했다.
장재의 학문은 "易을 宗으로 하고 中庸을 목적으로 삼으며, 禮를 體로 하고 孔孟을 다다를 수 있는 極點으로 삼았다".39) 따라서『 正蒙 』에 나타난 사상들은 대부분『 易傳 』과『 中庸 』에 기초하여 정립되었다. 장재가 드러내고자 한 점은 당시 共存했던 佛敎와 道敎의 그릇된 관념들이었고, 이 두 사상의 근원적 오류를『 易傳 』과『 中庸 』에 의지해 革破하고자 한 것이다. 그는 당시 그가 느꼈던 위기 의식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그 학설이 중국에 불길처럼 전파 된 이래, 유학자들이 聖學의 문과 벽을 엿보기도 전에, 이미 그 설을 취해 그 가운데 빠져 들어 그것을 大道라 부르게 되었다. 그 풍속이 천하에 퍼져 선한 자, 악한 자, 총명한 자, 남녀, 노비, 노복에 이르기 까지, 모두 다 밝히 믿는다. 영특하고 재기가 있는 자도 어려서는 눈과 귀의 달콤한 관습에 빠지고, 성장해서는 세속적인 유가를 스승으로 삼고 그 말을 숭상하여 어두운 곳으로 내 몰려 聖人은 수양하지 않아도 다다를 수 있고, 大道는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말하게 되었다. 聖人의 本心을 알지도 못하고선 그 글을 힘쓸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인륜이 보살펴 지지 않고, 사물의 이치가 밝혀 지지 않으며, 다스림이 소홀하게 되고, 덕이 문란해 진 것이다. 각종 異說이 귀에 가득한데도 위로는 그런 위선을 막을 禮가 없고, 아래로는 그 병폐를 그치게 할 학문이 없다. 옛부터 있어 온 편벽되고 음란하고 사악하며 은둔적인 말들이 한데 뭉쳐 일어나니 佛氏의 문 중에서 나온 지 천 오백 년이 되었다.40)
불교와 도교는 본래적으로 出世間的인 人生觀을 담고 있으면서, 現實世界에 대해서 초탈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을 장재가 처해 있는 역사적 상황 속에서는 매우 무기력한 모습을 보였음이 틀림없다. 이에 장재는 肯定的 世界觀을 펼치면서 당시에 강력하게 요청되었던 중앙 집권적인 이념에 부응하는 철학 사상을 구축할 사명감을 갖게 되었다. 그가 불교와 도교를 대했던 태도는 그들의 사상을 완전히 부정하기 보다는 그들의 兼和하지 못함과 偏僻됨을 비판하여『 易 』에서 論하는 자체 생성운동의 우월성41) 과『 中庸 』에서 말하는 天人合一의 경지를 우위에 두고자 시도했다.
불교가 말한 實際는 곧 道가 이른바 誠이요 天德임을 아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實際를 말하면서도 人生을 幻妄한 것으로 여기고 행함을 군더더기로 삼고, 世界를 蔭濁하게 여겨 결국 싫어하고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해 (거길) 떠나서 거하지 않으려고 하니, 그들이 얻게 된 바는 誠일지는 모르나 明을 싫어 한다. 儒學者는 明에서 誠에 이르고 誠에서 明에 다다르니, 그러므로 天人이 合一되어, 학문은 함에 있어서 능히 聖을 이루고 天을 얻으며 동시에 사람(人)도 잃지 않게 된다. 이것이 바로 易에서의 빠뜨리지도 않고 치우쳐 흐르지도 않으며 지나치치도 않음을 일컫는 것이다.42)
위에서 본 불교는 天은 알았을 지 모르나 人은 몰랐고, 그로 인해 편벽된 길도 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오류를 극복하기 위해서 장재는『 中庸 』에서 말하는 天人合一의 主題43)를 끌어들여 人道를 새롭게 밝힌다.
2. 論理體系의 構成原則
장재는『 正蒙 』에서 개념 범주의 계열이나 개념간의 상호 연관성을 뚜렷하게 설명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외형상으로는 마치 아무런 구성원칙 없이 쓰여진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나, 사실 내면적으로는 명확한 原則을 가지고 논리를 전개했다. 논리 구사에 있어서는 항상 分化와 未分化의 변증법적인 統一을 견지하면서, '有無混一之常' 이라는 原則을 內涵하고 있었고, 氣論을 우주론과 인식론 그리고 心性論의 全영역에 걸쳐 발휘해 가면서 天道와 人道의 궁극적인 합일과 交感44)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해, 이른바 '天人合一' 의 논리전개 원칙을 표방하였다. 따라서 본체론과 의리론이 물과 얼음 섞이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니, 氣論에서 구분되는 氣本(기의 본체)의 영역----天, 太虛, 神----과 氣化의 영역----道, 理, 神化----은 의리론적으로는 天道의 영역에 속하며 본체론적으로는 氣本은 宇宙의 本體고 氣化는 宇宙生化의 영역으로 나뉘게 된다. 인식론적으로는 주관인식의 영역으로 구분 지을 수 밖에 없는 性과 心은 의리론적으로는 天道와 人道의 合一로서 최고의 경지를 드러내는 德目이 된다.45) 이처럼 氣本에서 氣化로 전이되는 과정과 天道에서 人道에 이르는 推演의과정에서, 우리는 氣의 변증법적인 역동 구조를 파악하고 추출해 낼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體用不二' 의 원칙이다.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 氣인데, 하나이므로 (둘이 그 안에 거하므로 不測하니) 神이며, 둘이므로 (능히 미루어 하나로 나아가니) 化하게 된다"46)라고 말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이 세번째 원칙에 비추어 볼 때, 『 正蒙 』을 무책임하게 단지 동일성의 원칙에 입각해 해석하면 심각한 오류에 빠지게 됨을 알 수 있다.47)
장재가 논리를 전개함에 있어서 설정한 위의 세가지 원칙은 결코 따로 구분되지 않고 圓融的으로 구사되고 있다.48) 이러한 장재철학의 특징은 정이나 주희처럼 理一分殊와 같은 단일한 방향성이 드러나지 않아, 상대적으로 매우 애매하고 모호한 채로 남게 된다는 데에 있다. 그는 이러한 애매 모호성을 결코 벗어 제기려 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그가 구상한 논리 원칙의 核心일 수 있다.
를 끌어들여 人道를 새롭게 밝힌다.
3. 本體論
장재가 구사한 용어 개념은 그 문장 구조마다 그 의미와 범주를 달리 한다. 따라서 논자는 그의 氣論을 분석함에 있어서 연역적인 도식을 설정해서 개념들을 분류하기 보다는 원문의 문장구조 속에서 개념간의 상호 역동 구조와 관계성을 읽어 내는 연구를 시도해 본다.
1) 氣의 本體
氣의 범주는 우주와 인간을 총괄적으로 統攝하고 있다.
응집되어도 나의 몸이고, 흩어져도 나의 몸이다. 죽어도 없어지지 않음을 아는 자와는 능히 性을 논할 수 있다.49)
이처럼 氣의 범주는 그 밖의 개념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침투가능한 범주를 함유하고 있다 이러한 기의 多重的 意味構造는 스스로 표출되지 않고, 이름은 다르나 결국은 하나(異名而同實)인 용어들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비교적 明顯하게 드러난다.
太虛, 太和, 易
太虛는 형체가 없으니, 곧 기의 본체다. 한번 모이고 한번 흩어지곤 하니 변화의 일시적인 형체가 생긴다. 고요하고 感應이 없는 것은 性의 淵源이며, 인식되고 일게 됨은 사물이 어우러져 생기는 감응이다. 일시적 감응과 일시적 형체 그리고 無형체와 無감응은 性에 이르러선 결국 하나이다.50)
太虛51) 로 나타난 氣는 존재의 속성을 가진다. 이 둘의 관계에서 드러나는 사실은 태허와 기는 '존재 형태상' 의 차이에서만 있을 뿐 결국 같은 실체이다. 태허는 존재 형태상 '無形의 영역' 에 국한된다.
太虛는 氣가 없을 수 없고, 氣는 모여 만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만물은 흩어져서 太虛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맞추어 출입하니, 이것은 모두 부득이한 데서 있게 된 것이다.52)
太虛는 만물과 대립된 개념으로 나타나는데, 태허의 氣는 형체를 이루고 있는 만물 이외의 全 영역을 포괄하며, 만물은 태허의 氣가 모여서 형성된다. 氣는 태허에도 내재하고 만물에도 내재한 포괄자이다.
氣가 자욱하여 충만한 상태가 太虛인데, (이것은) 솟았다가 꺼지고 높이 피어 오르는 운동을 일찌기 그친 적이 없다.『 易 』에서 말하는 "뒤섞여 있는"(絪縕) 상태와 壯子가 "그침으로 만물이 생성되고 서로 감응하는" 것을 의심하고(王夫之注 참조) "먼지가 일어나는"(野馬) 것을 말함이다. 태허는 虛하고 實하고 움직이고 고요한 것의 機微이며, 음양과 굳세고 부드러움의 始原이기도 하다. 위로 올라가 陽의 맑은 상태가 되고, 아래로 내려가 음의 탁한 상태가 된다.53)
氣는 '自體 運動性'(天性)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의 어떤 충만한 상태를 太虛라고 한다. 태허는 虛實과 動靜의 機微이자, 음양과 剛柔의 시원으로서 '未發된 원초성'을 내포하고 있다. 왕부지는 絪縕을 "태화의 상태가 아직 분화되지 않은 본연태"54)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태허의 상태를 잘 말해주고 있다. 태허에 내재되어 있는 氣는 발산하면서도 陰과 陽이 된다.
氣가 태허 속에서 모이고 흩어지는 것은 마치 얼음이 물 속에서 굳었다 녹았다 하는 것과 같다. 太虛와 氣는 본질상 같으니, 이를 알면 無는 없다.55)
논자는 원문에 나오는 "太虛卽氣"의 卽을 '곧...이다.' 또는 '等于'로 해석하지 않고, '本質上 같다'는 뜻으로 해석했다.56) 장재는 위에서 氣를 얼음으로 太虛를 물로 비유하여, 그 본질은 동일하며 形象만이 다를 뿐임을 시사했다. 왕부지는 이러한 상태를 "虛는 氣를 품고 氣는 虛에 충만하다"57)라고 표현했다. 장재는 이 비유를 통해 '無'가 설 자리가 없음을 밝히면서 道家의 형이상학을 공격한다.58)
한편 장재는 "虛空卽氣" 의 어법으로 불교의 본체론을 공격한다.
虛空과 氣가 본질상 같다는 것을 알면 있음과 없음, 감추임과 드러남, 神化와 性命이 모두 하나로 통하고 둘이 아니니, 그러므로 모임과 흩어짐, 나가고 들어옴, 형체의 있고 없음 만이 있게 된다. 根本의 來源을 능히 미루어 알면 움직임과 변화의 원리(易)를 깊이 깨닫게 된다.59)
장재는 불교의 핵심 용어인 虛空의 내적 속성을 氣의 속성으로 대치시키고, 용어만을 그대로 적용시켜, 불교의 이론을 氣論 속으로 흡수, 변환시키고자 했다. 그는 불교에서 말하는 虛空을 단지 寂滅的 상태인 空間의 의미로 파악하면서,60) 易의 운동 변화의 원리를 내세워 儒家의 우월성을 부각시킨다.
太虛는 氣의 體이다. 기는 음과 양, 움츠림과 펴짐이 서로 감응하는 無窮함을 가진다. 그러므로 神의 감응도 무궁하다.61)
太虛는 기의 본체로서 나타나고, 기는 태허의 用이다. 여기서 태허는 '神' 으로서 드러나며,62) 따라서 태허의 공간적 속성과 未發的 原始態로서의 의미보다는, 기의 운동이 있게 하는 능동자로서 등장하며, 이로써 태허와 기의 體用관계를 비교적 명확히 볼 수 있다. 장재가 말하는 體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기 쉬운 고정된 실체가 아니다. 그것은 무한한 가능조건를 내함하고 있을 뿐더러 그 자신의 특성은 다른 개념과의 연관성 속에서 드러내 보여진다. 장재는 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體는 치우치거나 머물지 않아 방향도 형체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晝夜와 음양의 한 곳에 치우쳐 형체를 가진 것이 物이다. 道는 體를 겸하고 얽매임이 없다. 體를 겸하고 있으므로 한번 음이 되고 한번 양이 된다고 말하고, 또 음양은 헤아릴 수 없다고 하며, 한번 열리고 한번 닫힌다고 하고 晝夜에 通한다고 말한다. 미루어 나아감을 말한 까닭에 道라고 하고 헤아릴 수 없음을 말한 까닭에 神이라 하며, 生生함을 말한 까닭에 易이라 한다. 실제로는 하나이나 일(작용점)에 따라 이름이 다를 뿐이다.63)
여기서 體는 氣의 體로서 太虛를 말한다. 태허는 방향도 형체도 없는 마치 무한 가능조건 같은 것이며, 이것이 推行의 작용 원리로는 道로서, 不測의 무한 조건적인 오묘한 작용 원리로서는 神으로, 生生하고 不息한 원리로서는 易으로서 드러난다. 장재는 이렇게 다양한 측면의 원리가 어우러져 있는 상태의 극치를 '太和'라고 표현한다.
지극하게 어우러진 상태(太和)를 道라고 하는데, 그 중에는 뜨고 가라 앉고 솟았다 꺼지며 움직였다 고요해지는 감응의 성질을 품고 있으며, 이것은 왕성하게 뒤섞이고 서로 마찰하고, 이기고 지며 움츠리고 펴는 운동의 始源을 낳는다.64)
太和는 어떤 실체를 지칭하는 명사가 아니고, '조화의 지극함'을 나타내는 형용사이다. 따라서 '氣本' 의 體로서 지칭되는 용어는 太虛, 氣, 神이 있다.
太虛는 앞서 살펴 본 바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와 내용을 가진다.
첫째, 만물과 대립되는 空間의 의미로 드러나, 형체를 이루지 않은(無形) 영역을 점유하고 있다.
둘째, 未發된 원시태로서 氣의 운동을 가능하게 해주는 능동자로서 '神' 과 같은 본체로 드러난다.
셋째, 氣와는 그 본질상 동일하며 단지 존재 양태의 같음과 다름(異同)이 있을 뿐으로 기는 태허 속에 거하며, 태허는 기를 품고 있다.
넷째, 太虛안에 氣가 거하므로 따로 어떤 현상의 배후에 거하는 寂滅的인 원인자를 필요로 하지 않게 되어, '無' 의 존재 이유가 폐기당하며, 동시에 虛空의 의미도 변환되기에 이른 것이다.
다섯째, 태허와 기의 완벽한 조화의 상태를 太和라고 부르며, 이것은 변화 원리(易)의 상태에 다름이 아니다.
2) 氣化
氣化의 범주로 대표되는 神化는 사실상 體인 神과 用인 化의 合一的 상태로서, 氣本과 氣化간의 경계를 명료하게 그을 수 없는 개념이다. 그러나 神과 化를 따로 분리해 논할 수는 없기에 氣化의 영역에서 다루기로 한다.
神, 神化, 道
『 正蒙 』내의 神의 개념은 명료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으므로, 원문 속에서 하나씩 분류해 보기로 하자. 먼저 '神'은『 周易 』에 그 연원을 두고 있다.
生生함을 일컬어 易이라 하고, 象을 이룸을 乾이라 하며 法을 본받음을 坤이라 한다. 數를 미루어 미래를 아는 것을 占이라 하고, 變化의 이치에 통달함을 事라고 하며, 음양의 헤아릴 수 없음을 일컬어 神이라 한다.65)
장재는『 周易 』에 나타난 '神' 에 대한 관념을 계승하고 있다.
氣에는 음양이 있어 미루어 나아가면(推行) 점진적으로 바뀌는 것이 化이고, (음양이) 合一하여 헤아릴 수 없는 것이 神이다. 사람은 義를 알고 利를 잘 사용하면 神化의 役事가 구비된다.66) 헤아릴 수 없음을 일컬어 神이라 하고, 神의 항상됨을 일컬어 天이라 한다.67)
神은 기의 본체이나 그 자신은 언제나 體用不二의 원리에 따라 用인 化와 함께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氣本과 氣化의 개념 배열은 사실상 논리적인 층차만을 가질 뿐이고, 시간상으로는 아무런 順次가 없이 同時的으로 이루어 지고 있다. 이러한 동시적인 어우러짐을 장재는 아래와 같이 표현했다.
하나이면서 둘인 것이 氣이다. 하나이므로 神이며, 둘이므로 化하는 것이다68)
이처럼 神과 化는 논리적으로 순환 구조를 가지면서, 神에서 化로, 化에서 神으로 圓融的인 활동을 한다. 그러나 "천하의 일을 도모하는 것을 오직 神뿐이며"69) 氣의 本體를 이름짓는 것 중의 하나인 神은 氣의 "헤아릴 수 없는"70) 면을 편중하여 말한 것이다. 그러나 원문에서는 神의 관념이 이처럼 명료하지 만은 않다.
흩어져 제각기 달라서 形體를 이루는 것이 氣이며, 맑고 通하여 형체를 이룰수 없는 것이 神이다. 71)
무릇 기가 맑으면 通하고 흐리면 막히게 된다. 맑음의 극치에 다다른 것이 神이다.72)
太虛는 맑으니, 맑으면 막힘이 없고, 막힘이 없으므로 神이라 한다. 맑음의 반대는 탁함이니, 탁하면 막히게 되고 막히면 형체를 이루게 된다.73)
위에서 보여지는 神은 氣의 맑음과 탁함의 영역 중에서 맑음의 영역만을 지칭하는 용어와, 氣質에 대립하는 未發의 상태를 나타내는 원초태로서 보여져서 神化의 神體와는 그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따라서 '神' 이라는 동일한 용어가 각기 다른 차원에서 구사되고 있음을 밝히고 氣體로서의 神과 다른 성질의 神을 구별해 내어야만 올바른 理解에 도달할 수 있다. 장재의 논리구사에 있어서 최대의 약점은, 氣의 本體로서의 神과 鬼神의 神이 원문에서는 混用된 듯이 보인다는 점이다.
鬼神은 二氣(음양)의 良能이다. 誠은 至誠하여 天을 얻음을 일컬음이고, 神은 太虛의 妙應을 보는 눈이다. 천지의 法과 象은 神化의 찌꺼기일 뿐이다.······鬼神의 實質은 兩端을 넘지 않는다. 양단이 정립하지 않으면 하나가 드러나지 않고, 하나가 드러나지 않으면 양단의 쓰임이 멈추게 된다. 이 兩端은 虛함과 實함이요, 움직임과 고요함이며 모임과 흩어짐, 맑음과 탁함인데 그 종극에 이르러서는 하나일 따름이다.74)
위의 문장에서는, 鬼神과 神化가 같은 문맥 속에서 구사되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이 둘은 엄밀히 구분되어야 하며, 따라서 다른 두 성질의 어록이 편집 과정상에서 잘못 기입된 것으로 추정된다.75)
鬼神은 음양인 二氣의 質性으로서 氣化의 과정 속에서 드러나는 性能이며, 氣가 움츠러져 근본으로 돌아가면 魂이 되고, 기가 펴지는 운동이 神이다. 따라서 이 둘은 兩端은 넘어서지 못하는 것으로서 二氣의 良能에 국한된다.76) 鬼神은 옛부터 대체적으로 祭祀의 대상으로 받아들여 졌으며, 인간의 이미 존재하는 생명이 幽冥한 곳으로 돌아간 상태로 묘사되어 졌으며, 幽冥한 중에 실제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적이면서 덕성적인 생명체로서 여겨져서, 분산되지 않은 精氣의 실제적인 상태로 인식되었다. 공자는 鬼神에 대해 좀처럼 언급하지 않았으며, 그에게 있어서 초월적이며 동시에 내재적인 精神은 '仁'과 '天道'이다. 鬼神의 지위는 높지 않아서 仁과 天道사이에 있는 實然的 存在일 뿐임으로, 誠體로서의 神은 결코 아니다.77)
원문에서 보여지는 '神'은 이처럼 다양한 의미와 개념 범주를 가지고 있다. 이상에 나타난 神化의 개념을 분류해 보자.
첫째, 神은 氣가 質性을 갖고 만물의 각종 다른 형체로 發散되기 이전의 원시태로서, 맑고 막힘이 없는 속성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鬼神은 음양 二氣의 良能으로서 氣化의 영역에 속하며, 움츠러들어(屈) 돌아가 鬼가 되고, 다시 펴짐(伸)으로써 神이 되는 운동을 한다. 이러한 귀신의 良能은 神化의 良能과 구별되어 陰陽의 활동에 국한된다.
셋째, 神化로서의 神은 氣의 本體로서, 기의 헤아릴 수 없는 측면을 지칭하는 이름이며, 항상 用인 化와 함께 작용하여, "神은 天德이고 化는 天道이며, 德은 그 體이고 道는 그 用으로서 결국은 하나의 氣일 뿐이다."78)라고 體用을 함께 묘사할 수밖에 없다. 神化의 神은 태허의 다른 이름일 뿐이며, '자체로서 존재하고 자체로서 활동하는'(卽存有卽活動) 實體로서 주희가 말하는 寂然不動한 理의 개념이 도입될 여지를 완벽히 제거한다. 주희는 鬼神의 神과 誠體의 神을 구분 짓지 않고 混用하여 體用不二의 圓融論과 氣의 質性에 국한 된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말함으로 인해서, 所以然으로부터 이끌어져 나온 '形式之理'(只存有而不活動)로 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79) 이러한 점에서 주희가 장재의 이론을 계승했다는 학설은 재 검토할 여지를 갖는다.
넷째, 神化는 氣의 體와 氣化의 범주를 統攝할 수 있는 개념으로서, 體로서의 '天' 과 生成과정으로서의 '道'80)의 범주의 경계는 단지 논리적인 영역에 국한 된 것일 뿐, 실제로는 분리 불가능한 것임을 잘 드러내어 주고 있다.
4. 心性論
장재는 주로 天道에서 人道로 하향하는 순서로 자신의 논리를 펼쳤다.
太虛로 말미암아 天의 이름이 있고, 氣化로 말미암아 道의 이름이 있으며, 虛와 氣가 합하여 性의 이름이 있게 되고, 性과 知覺이 합하여 心의 이름이 있다.81)
天과 道의 범주는 인간의 주관적인 영역과 구별되는 객관적인 영역으로서 天道에 속하며, 性은 虛와 氣가 合一됨으로써 나타난 개념으로, 天道와 人道가 동시적으로 어우러지는 統一的인 범주를 구성하게 된다. 心은 性과 인간의 인식능력인 知覺이 합하여 생겨난 이름으로, 인식론적 범주상 인간에 국한된 측면이 강하나, 도덕적 心論으로서는 주관적 직관을 통해 내재와 초월의 兩面性을 포괄하는 능력을 내함하고 있다. 여기서 論者가 주의를 기울이고자 하는 점은 장재의 心性論을 분석함에 있어서는 이중?삼중의 초점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인식론적인 관점과 의리론적인 관점이 원문상에선 분리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心性論에 영향을 준 사상적 두 연원에서 비롯된 본래적 차이 때문에 이해에 더욱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장재의 심성론을 논하기 전에 우선 그 사상적 기초가 된『 中庸 』과『 孟子 』의 사상을 살펴보자.
마음(心)을 다하는 자는 하늘(天)로부터 부여받은 性을 알게 되고, 그 性을 아는 자는 하늘을 알게 된다. 마음을 보존하고 性을 기르는 것이 곧 하늘을 섬기는 所以이고, 요절함과 장수함이 둘이 아님을 알아 몸을 닦음으로써 (命을) 기다림이 곧 命을 세우는 것이다.82)
맹자는 이 본문에서 먼저 人道인 心을 말하고, 그 다음으로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性을 말하였으며, 마지막으로 天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도덕적인 수양과 노력이 먼저 있은 후에 비로소 天을 섬기며 알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人道의 중요성을 일깨운 것임을 말한 것임에 반해, 장재는 먼저 天道를 말하고 그 다음 人道를 언급함으로써 그의 사상이 도덕적 수양론 중심이 아니라 宇宙論과 本體論 중심의 철학임을 천명한 것이다.
하늘이 命한 바를 일컬어 性이라 하고, 性을 따라 나아감을 일컬어 道라 하며, 道를 닦아 넓혀 감을 일컬어 敎라고 한다. 道는 잠시라도 멀리해서는 안되는 것이니, 만약 멀리할 수 있다면 그것은 道가 아니다.83)
『 中庸 』과『 孟子 』「 盡心 」章에서 본 내용과는 달리, 天道를 먼저 말하고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을 性이라고 하며 그러한 性을 자신의 本性으로 삼고 나아감을 道라고 불렀다. 장재가『 正蒙 』에서 구사한 '性論' 은 바로『 中庸 』에서 나타난 性論를 계승하여 심화 확대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中庸 』에서와『 孟子 』 에서 보여지는 논리적 전개 과정과 방향은 확연히 차별성을 가진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지향한 주제가 '天人合一' 로 귀결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가지게 된다.
1) 性
장재 철학에서 '性'은 宇宙와 人間을 總括하는 개념으로서 최소한 三種의 다른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그 첫째는 '天性'84)으로서, 氣의 본체 속에 내장된 '自體 能動性'을 가리킨다. 두번째는 '物性'으로서, 각종 물질의 속성을 가리키는데, 예를 들면 氣의 '陽性과 陰性', 천체의 '七政之性'을 말하는 것이다. 셋째로는 '人性'으로서, 즉 인간의 도덕적 속성과 생리본능 그리고 천지만물에 대한 인식본성 등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 세가지 '性'의 범주는 사실상 따로 떨어져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85)
먼저 天性과 人性의 관계를 고찰해 보면, "天性이 인간에 내재함을 마치 물의 속성이 얼음 속에 있는 것과 같아서, (얼음이) 얼고 녹음이 다를 뿐 그 자체는 하나이다"86) 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로써 天性과 人性이 그 本質上 동일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우주(天)와 인간을 총괄하고 있는 "性은 만물의一源으로서 내가 사사로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87)
天地之性과 氣質之性
하늘로부터 사람에게 내재화 된 性은 본래 善하지 않은 바가 없어서88) 두루 통하여 道에 미치는 바 되어서, 氣質의 어둠과 밝음이 그 本性을 가리지 못했다.89) 그러나 氣化가 이루어 지는 과정 중에 천차만별의 形體가 생겨나고 氣의 質性이 파생되면서 부득이하게 氣質의 偏差가 생겨났다.
形體가 생긴 뒤에 氣質의 性이 있게 되었다. 잘 돌이키면 天地의 性이 보존된다. 그러므로 군자는 氣質의 性에 의지해 안거하지 않는다.90)
王夫之는 注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氣質이란 氣가 質性을 이룬 후에도 氣를 생산해 내는 것을 말한다. 氣가 質性을 이루게 되면, 氣가 응고되고 멈춰서 결국 형체를 이루게 되고 物을 取해서 그 質이 자라나게 한다. 質이 氣를 생산하면 같음과 다름이 서로 공격하고 취하여 그 類를 따르게 된다.91)
위와 같이 氣質의 性을 소유한 인간은, 감관기관을 가지고 있어서 "귀, 눈, 입, 코의 기질이 소리, 색깔, 냄새, 맛 등과 결부되어, 자연히 天地之性을 거스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92) 장재는 원문 중에서 天地의 性이 무엇인지를 직접 밝히지는 않았고, 단지 氣質의 性에 대립되는 性으로 발했다. 王夫之는 天地의 性을 "지극한 조화 속에 왕성하게 뒤섞여 있는 神"(太和絪縕之神)이라고 해석했다. 모든 인간은 天地의 性으로부터 선하지 않을 수 없는 도덕적 속성을 부여받았음과 동시에 감관기관(耳?目?口?腹)에서 파생된 욕망에 따라 먹고 마시며 남성과 여성이 갈리는(飮食男女) 후천적인 생리본능이 생기게 되었다.
인간은 수양을 통해서 감관기관에 의해 가려진 그러나 동시에 인간에 이미 내재해 있는 天地之性에 도달할 수 있다.93) 따라서 인간에게서 보여지는 善과 惡의 문제는 天地의 性과 氣質의 性 간의 모순에서 파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稟受하는 氣質의 偏差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이다.94)
2) 心
장재가 논하는 '心' 은 이중 구조를 가진다.95) 존재론적인 측면에서의 '心'은 주로 인간의 감관기관에 얽매어진 앎(知)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데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 한계를 극복하고 천하만물을 몸(體)으로 삼을 수 있는 경지로 나아가기 위해선, 도덕적 工夫와 실천이 요청되면서 心論의 인식론에서 도덕론으로 轉移를 일으키게 된다.96) 그러나 도덕론의 영역에서 修養과 工夫를 통해 天地와 合一되는 경지로 나아간다고 해서 장재가 唯心論을 주장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心論을 전개하면서 자신의 이론이 佛敎와 다름을 밝히고 불교의 인식론을 공격하고 있다.
① 見聞之知
心은 性과 知覺이 합하여져서 생긴 이름이다. 따라서 心은 性에 비해 주관적인 측면이 강하여 앎(知)의 문제와 연관된다. 장재는 세상사람들이 감관기관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함을 지적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의 마음(心)은 듣고 보는 것의 협소함에 머물러 있으나, 聖人은 性에 도달해서 보고 듣는 것으로 자신의 마음을 얽매지 않는다.97)
이러한 현상은 다름이 아니라, "사람들이 귀와 눈으로 보고 들은 것으로써 마음을 얽어 매고 본래적 마음에 도달하고자 힘쓰지 않기"98) 때문이다. 따라서 見聞之知는 인간의 감관(耳目)이 외부 사물과 접촉하는 과정을 거쳐, 안과 밖(內外)을 합한 후에야 얻어지는 것으로서, 만약 이러한 작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인식이 발생할 수 없다.99) 이러한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장재는 '盡心'을 말하고 있다.
② 盡心, 大心
어떻게 해야 盡心의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장재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心)을 크게 하면 능히 천하 만물을 몸으로 삼을 수 있다. 내 몸으로 삼지 못한 物이 있으면 마음 밖에 무엇이 있게 된다. ....맹자가 "마음을 다하면 性을 알고 天을 안다" 고 한 것은 이를 말함이다. 天은 크며 제외된 곳이 없으므로 제외된 곳이 있는 마음은 天心과 합하기에 부족하다.100)
바로 마음을 크게 함으로써 盡心의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이때 마음을 크게 연다는 것은 마음을 이루고자 하는 동기조차 잊어버리고101) 나서야 비로소 행해질 수 있으며, 이러한 실천적인 工夫는 마음을 마음대로 다루고 망녕되이 생각하라는 것이 결코 아니며, "마음(心)은 능히 性에 다다를 수 있으며, 인간은 능히 道를 넓힐 수 있으므로"102) 이러한 心과 性의 상호관계 속에서 性의 객관적인 존재 형식과 心의 주관적인 도덕론이 조화를 이루는 가운데 진정한 心의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불교는 이러한 조화의 균형을 상실했기 때문에 객관세계를 幻妄한 것으로 여기고 작은 것(마음)을 큰 것(객관 세계)과 억지로 연결시키고 말단을 근본에 연접시키려 했던 것이다. 佛敎의 최대 약점은 그들이 天命을 알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103)
실제로는 분리 불가능한 것임을 잘 드러내어 주고 있다.
5. 天人合一의 원리
장재의 사상은, 불교가 오직 心만이 실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天道와 天性과 天命은 엄연히 실재하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의 인식능력으로는 파악될 수 없는 차원의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장재가 추구한 목적은 天과 人이 온전히 합일되는 경지로 나아가는 데에 있었으며, 이 天人合一이 이루어 지는 곳이 바로 '誠'104) 이다. 장재는 天人合一로 나아갈 바를 이렇게 말한다.
儒學者는 明으로 인하여 誠에 이르고, 誠으로 인하여 明에 다다른다. 그러므로 天과 人이 합일되어, 학문을 이루면 능히 聖人이 될 수 있으며 天을 얻어도 사람을 빠뜨리지 않게 되니, 周易의 이른바 "잃지도 않고 흘러서 치우치지도 않으며 지나치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함이다.105)
明은 인간으로부터 天에 이르는 인식의 과정을 말하고, 誠은 天의 존재자체를 말한다. 이렇게 天과 人인 두 객체가 궁극적으로 합일될 수 있는 전제 조건은 본체론상 이들 양자가 결국 동일한 하나의 氣로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106) 따라서 氣化의 과정 중에 氣의 質性이 생겨나고 氣質의 偏差가 발생되더라도 궁극적으로 天과 人이 합일될 수 있는 기본조건이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誠은 아래와 같은 속성을 가진다.
誠은 實함이다. 太虛는 天의 實함이다. 萬物은 태허로부터 취해져 나온 것이고,사람 또한 태허로부터 나왔다. 태허는 心의 실함이다.107)
위에서 보여지듯이 誠體인 太虛는 天의 實인 동시에 心의 實이다. 天은 존재론을 대표하는 용어이고, 心은 인식론과 도덕론을 함께 포괄하는 용어이다. 이 문장은 궁극적으로 하늘과 사람이 동일한 성질(氣)로 구성되어 있음을 말함과 동시에 하늘로부터 인간으로, 또는 인간으로부터 하늘로 향하는 雙 방향성이 모두 가능하며 결국 종극에 이르러서는 合一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天人合一'의 상태에서는 唯心論과 唯物論의 논쟁이 무력화되며, 인식론과 존재론의 층차와 과정도 무시되어지고, 오로지 "둘이 함께 서지 아니하면 하나가 드러나지 않고, 하나가 드러나지 아니하면 양자의 작용이 멈추어 버리게 되는"108) 圓融의 상태만이 전달될 뿐이다.
Ⅴ. 맺는말
北宋初期의 新儒學에 큰 획을 그었던 장재의 사상은, 북송중기와 남송의 사상가들에게서는 찾아 보기 힘들게도, 이론과 이론사이에 상호 침투가 가능한 圓融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바로 시대적 고민을 안고 삼각하게 사유했던 한 유학자의 행태를 유감없이 반영해 주는 특징이며, 시대의 전환기에 서서 철학하고자 하는 이의 선구적 발자취를 추적하기에 앞서 건너가야 할 관문이다. 이러한 특징으로 인해 그의 저작을 읽어내려 감에 있어서 논자는 여러번 난관에 부딪혀야 했다. 동일한 용어에 함축되어 있는 다양한 의미는 그 자체로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오직 문맥의 흐름 속에서만 파악이 가능했으며, 또한 인식론적으로 상호 모순되는 것 같은 부분도 의리론적인 관점으로는 자연스럽게 통섭되고 조화를 이루고 있다.
張載는 언제나 남루한 옷을 입고 채식을 하였으며 잠시 관직에 오른 것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고전을 배우고 또 가르치기에 힘썼다. 그가 이끈 關學은 禮를 중요시하고 經世致用의 정신에 입각해서 당대의 모든 과학적 지식을 흡수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장재가 그러했듯이 스승을 따로 두지 않고 사유하는 전통에 익숙해서 였던지, 학파를 이루었던 관학은 장재의 본 뜻과는 어긋난 길을 걷게 된다. 그리하여 장재가 견지하고자 했던 氣論 중심의 철학은 빛을 보지 못하다가 청대에 이르러서야 王夫之에 의해 새롭게 계승되었던 것이다.
장재는 북송시대에 만연한 정치상의 혼탁함 속에 처해있던, 지식인의 나약한 모습과 부정적 세계관에 반기를 들고, 易을 으뜸으로 삼고 中庸을 몸으로 삼아 유학의 부흥을 이룩하고자 힘썼다. 그가 전개한 道敎와 佛敎에 대한 비판은 당시 그들 종교를 믿었던 사람들의 종교행태에 비추어 原典을 상징적으로 비판한 점이 강하였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유가와 道?佛 사상의 근본적인 차이점을 부각시킴과 동시에 그들을 유가의 형이상학적 전통 속으로 흡수시키고자 시도한 것이다.
그가 추구한 궁극적인 주제는 天과 人이 合一되는 경지로 나아가 聖人이 되고자 하는 데에 있었으며, 이러한 점에서 그는 원시유가의 전통을 확실히 계승하고 있다. 문명의 해체기와 재편기에 살고 있는 우리는, 비슷한 시대적 정황 속에서 고뇌하였던 장재의 삶을 배우고 그가 이룩한 사상의 전개 과정을 세밀히 연구하여, 현재 우리가 당면한 철학함의 길을 비춰볼 수 있을 것이다.
※ 참고 문헌
가. 原 典 類
1.『 張子全書 』 臺灣中華書局 (1981)
2.『 張子正蒙注 』 券一 王夫之注 世界書局 (1967)
3.『 中國歷代哲學文選 』(宋元明) 木鐸 (1980)
4.『 宋明學案 』 河洛圖書出版社 (1975)
5.『 四書集注 』 上海古籍出版社 (1989)
6.『 周易今註今譯 』 臺灣商務印書館 (1984)
8.『 四書讀本 』 (臺灣)三民書局 (1990)
9.『 老子讀本 』 三民書局 (1989)
나. 二 次 資 料
(國外文獻)
1. 馮友蘭 『 中國哲學簡史 』 (臺灣)蘭燈
2. 勞思光 『 新編中國哲學史 』(上三) (臺灣)三民書局 (1990)
3. 任繼愈 『 中國哲學史 』 人民出版社 (1990)
4. 張立文 『 宋明理學硏究 』 中國人民大學出版社 (1987)
5. 侯外盧 外『 宋明理學史 』上券 人民出版社 (1982)
6. 牟宗三 『 心體與性體 』 第一冊 (臺灣)中正書局 (1985)
7. 牟宗三 『 中國哲學十九章 』(臺灣) 學生書局 (1989)
8. 牟宗三 『 中國哲學的特質 』 學生書局 (1990)
9.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學生書局 (1990)
10. 黃秀璣 『 張載 』 東大圖書公司 (1988)
11. 朱建民 『 張載思想硏究 』 文津出版社 (1989)
12. 唐君毅 『 中國哲學原論 』(原性篇) 學生書局
13. 唐君毅 『 中國哲學原論 』(原敎篇) 學生書局 (1984)
14. 錢 穆 『 宋明理學槪述 』 學生書局 (1977)
15. 李存山 『 中國氣論探源與發微 』 中國社會科學出版社 (1990)
16. 韋政通 『 中國哲學辭典 』 水牛出版社
(國內文獻)
1. 金忠烈 『 中國哲學散稿 』(一)(二) 온누리 (1990)
2. 조동일 『 우리 학문의 길 』 지식산업사 (1993)
3.『 東洋哲學의 人性論과 本體論 』 韓國東洋哲學會編 延大出版部 (1982)
4. 찰스허커 『 中國文化史 』 박지훈외 공역 한길사 (1986)
다. 論 文 類
1. 張立文 「 理學的思想來源 」 哲學硏究叢刊 第一集 (1979)
2. 張立文 「 宋明儒學的演變 」 儒學國際學術討論會論文集 (1987)
3. 張立文 「 宋明理學邏輯結構的演化 」 淸海社會科學 (1986)
4. 張立文 「 朱陸無極太極之辯 」 (1988)
5. 朴正根 「 易經之人生哲學硏究 」 輔仁大學哲學硏究所博士論文 (1987)
6. 李尙鮮 「 正蒙哲學思想之硏究 」 輔仁大學哲學硏究所碩士論文 (1987)
7. 安點植 「 張載의 氣 哲學에 있어서 天人合一의 構造 」 서울대석사논문(1986)
8. 金錫濟 「 張橫渠의 氣論에 관한 硏究 」 成大 석사논문 (1986)
9. 朴在述 「 張載의 氣論 硏究 」 高大 석사논문 (1991)
1) 조동일, 『 우리 학문의 길 』 p.194
한문에서 온 용어를 버리고 모두 토박이 말로 대체하는 것은 우리 학문의 길이 아니
다.
2) 勞思光 『 新編中國哲學史 』 pp.174-191
3) 張立文 『 宋明理學硏究 』 pp.223-227
侯外盧 外 『 宋明理學史 』 上卷 p.104
4) 牟宗三, 蔡仁厚, 朱建民, 黃秀機는 다 이 전통을 따르고 있다.
5) 唐君毅 『 中國哲學原論 』原敎篇 p.90
6) 牟宗三 『 心體與性體 』 p.49
牟宗三 『 中國哲學十九章 』 p.393
모종삼은 계보 분류에 있어서, 程伊川 - 朱熹를 한 계보로 묶고, 周濂溪 - 張載 - 程
明道 - 胡五峯 - 劉輯山 에 걸친 계보를 주희에 이르는 앞의 계보와 엄격히 구별코자
한다.
7) 安點植 「 장재의 기 철학에 있어서 천인합일의 구조 」 p.31
久須本文雄은 장재의 사상이 대부분 불교 경전의 방법론을 도용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8)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p.125-173
9) 陳俊民 앞의 책 p.137
진준민의 장재가 결국 氣 - 道 - 性 - 心 - 誠에 이르는 논리범주체계를 확립했다고
말하나, 논자는 장재의 논리를 이렇게 직선적으로 나열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10) 唐君毅 앞의 책 p.91
11)『 莊子 』「 知北遊 」
外不觀乎宇宙, 內不觀乎太初, 是以不過乎崑崙, 不遊乎太虛.
12) 原文에 나오는 '野馬'는『 莊子 』의 逍遙遊篇에서 볼 수 있고, '谷神' 은『 老子
』에서 볼 수 있다.
13) 唐君毅 앞의 책 p.90
14)『 全書 』「 西銘 」 乾稱父, 坤稱母.
『 正蒙 』「 天道 」 鼓萬物而不與聖人同憂,天道也.
앞의 두 문장에서 전자는 의리론적인 관점에서 乾을 아버지로 여기고 坤를 어머니로
여긴다. 그러나 후자에서는 인격성이 배제된 天道를 말하고 있다.
15)『 正蒙 』「 神化 」 神無方無體, 大且一而已爾.
16) '天人合一', '天道與性命合一'
17) 찰스허커 『 中國文化史 』 박지훈외 공역 pp.265-268
18) 金忠烈 『 中國哲學散稿 』(二) p.275
북송초기에『 太平御覽 』『 冊府元龜』『 文苑英華 』등의 宋代三代書가 집대성되
었다.
19) 張立文 『 宋明理學硏究 』 p.2
20) 張立文 앞의 책 p.12-13
장립문은 '理學' 이 당대유학의 제반 도통을 지치하는 용어로서, '道學'과 '心學'을
함께 포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논자가 보기엔 장재의 철학이 이러한 '理學'의 범주
속에 완벽히 포함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장립문은 북송시대에는 洛學이 독주한 것
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논자는 여기서 宋代儒學이라는 용어를 쓰기로 한다.
21) 張立文 「 理學的思想來源 」
22) 張立文 같은 논문
23)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2
24) 陳俊民 앞의 책 p.5
25)『 楊龜山集 』 券五 橫渠之學, 其源出於程氏, 而關中諸生尊其書, 欲自爲一家.
26)『 宋明學案 』「 橫渠學案 」 p.3
先生謂之曰, 今見二程至, 深明易道, 吾不及也, 可往師之.
27) 朱熹조차 앞의 학설을 부인했다. 『 伊洛淵源錄 』「 橫渠先生遺事」
28)『 宋明學案 』「 橫渠學案 」 여기서 '高平門人' 이라는 언급을 볼 수 있다.
29) 陳俊民 앞의 책 p.37
30) 陳俊民 앞의 책 pp.15-19
진준민은 여대림이 비록 洛學에 투항했으나 그 속에서도 관학의 입장을 지켰다고 말
한다. 여대림은 "中으로 부터 道가 나온 것"으로 보나, 程氏는 '理一分殊'에 입각하
여 "中이 곧 道일 뿐이며, 道가 中에 거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여대
림이 "赤子之心"으로 中庸의 '喜怒哀樂之未發'을 설명했으나, 程氏는 赤子之心은 '已
發' 이라고 반박하고, "未發之前謂之無心"을 주장했다.
31)『 正蒙 』「 太和 」 不罔於恍惚夢幻, 則定以有生於無, 爲窮高極微之論.
32)『 太極圖說 』에는 無極而太極으로 나와 해석상의 어려움을 주나 본래는 '由無極而
爲太極'으로『 老子 』의 24장 "復歸於無極" 과 40장 "..有生於無"와 혼동될 소지가
다분하다.
33) 張立文 「 宋明理學邏輯結構之演化 」
34) 呂大臨 「 行狀 」
先生讀其書(中庸), 雖愛之猶未以爲足也. 於是又訪諸釋老之書, 累年盡究其說, 知無所
得反而求之六經.
35) 張立文 같은 논문
36)『 正蒙 』「 太和 」 知虛空卽氣, 則無無.
37) 陳俊民 앞의 책 71-72
송대 기록에 의하면 장재의 저서는 꽤 다양했다. 그의 저서로는『 文集 』,『 易說
』, 『 禮樂說 』,『 論語說 』 ,『 孟子說 』,『 春秋說 』,『 信聞記 』,『 崇文集
』,『 語錄 』,『 祭禮 』,『 西銘 』,『 經學理窟 』,『 正蒙 』 등이 있었다. 그러
나 송대이후 점차 소실되기에 이르렀으니 현존하는 저작으로는『 西銘 』,『 正蒙 』
,『 橫渠易說 』,『 經學理窟 』,『 張子語錄 』,『 文集 』등이 있는데 이중 장재가
직접 쓴 것은『 易說』 ,『 西銘 』 ,『 正蒙 』부분적으로 전하는 문집이다. 장재
사상의 과정은『 易說 』- 『 西銘 』-『 正蒙 』순으로『 正蒙 』은 그의 사상의 結
晶이라고 말할 수 있다.
38) 呂大臨 「 行狀 」
出示門人曰, 此書于歷年致思之所得, 其言始于前聖合與, 大要發端示人而已, 其觸類廣
之, 則吾將有待于學者, 正如老木之株, 枝別固多, 少者潤澤華葉爾.
39)『 宋明學案 』「 橫渠學案上 」 其學以易爲宗, 以中庸爲的, 以禮爲體, 以孔孟爲極.
40)『 正蒙 』「 乾稱 」
自其說熾傳中國, 儒者未容窺聖學門牆, 已爲引取, 淪胥其間指爲大道. 其俗達之天下,
致善惡,智愚,男女,臧獲人人著信. 使英才間氣生, 則溺耳目恬習之事, 長則師世儒宗尙之
言, 遂冥然被驅, 因謂聖人可不修而至, 大道可不學而知. 故未識聖人心, 已謂不必求其
迹, 未見君子志已謂不必事其文. 此人倫所以不察, 庶物所以不明, 治所以忽, 德所以亂,
異言滿耳, 上無禮以防其僞, 下無學以稽其弊. 自古피淫邪遁之詞, 翕然幷興, 一出於佛
氏之門者千五百年.
41)『 周易 』「 繫辭上 」 生生之謂易.
42)『 正蒙 』「 乾稱 」 釋氏語實際, 乃知道者所謂誠也, 天德也. 其語到實際, 則以
人生爲幻妄, 有爲爲贅, 以世界爲蔭濁, 遂厭而不有, 遣而弗存, 就使得之, 乃誠而惡
明者也. 儒者則因明致誠, 因誠致明, 故天人合一, 致學而可以成聖, 得天而未始遺人,
易所謂不遺,不流,不過者也.
43)『 中庸 』 二十章 誠者天道也, 誠之者人之道也.
二十一章 自誠明, 謂之性, 自明誠, 謂之敎. 誠則明矣, 明則誠矣.
44)『 正蒙 』「 太和 」 客感客形與無感無形, 惟盡性者一之.
여기서 말하는 交感은 董仲舒의 天人感應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45)『 正蒙 』「 誠明 」 性與天道合一存乎誠.
46)『 正蒙 』「 參兩 」 一物兩體, 氣也. 一故神(兩在故不測), 兩故化(推行于一).
47) 예를 들어, '太虛卽氣'를 해석할 때에 '卽'을 단지 '동일하다'라고 해석하면 장재의
본 뜻과 거리가 멀어지게 된다.
48)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131-137
49)『 正蒙 』「 太和 」 聚亦吾體, 散亦吾體, 知死之不亡者, 可與言性矣.
50)『 正蒙 』「 太和 」 太虛無形, 氣之本體. 其聚其散, 變化之客形爾. 至靜無感,
性之淵源, 有識有知, 物交之客感爾. 客感客形與無感無形, 惟盡性者一之.
51) '太虛' 는『 皇帝內經 』에서 가장 많이 출현하고 있다.
52)『正蒙』「太和」 太虛不能無氣, 氣不能不聚而爲萬物, 萬物不能不散而爲太虛.
循是出入, 是皆不得已而然也.
53)『 正蒙 』「 太和 」 氣앙然太虛, 昇降飛揚, 未嘗止息. 易所謂絪縕, 壯生所謂
生物以息相吹野馬者與. 此虛實,動靜之機, 陰陽剛柔之始. 浮而上者陽之淸, 降而下者陰
之濁.
54) 王夫之 『 張子正蒙注 』 券一 絪縕, 太和未分之本然.
55)『 正蒙 』「 太和 」 氣之聚散於太虛, 猶氷凝釋於水. 知太虛卽氣則無無.
56) 朱建民 『 張載思想硏究 』 p.67 논자는 주건민의 해석을 따랐다.
57) 王夫之 『 張子正蒙注 』券一 「 太和 」 虛涵氣, 氣充虛, 無有所謂無者.
58)『 老子 』四十章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장재는 노자의 無를 '絶對無'로 간주했으나 노자가 말한 無가 순환되지 않는 고정된
실체라고 보기는 어렵다.
59)『 正蒙 』「 太和 」
知虛空卽氣, 則有有無,隱顯,神化性命, 通一無二, 顧聚散,出入,形不形, 能推本所從來,
則深於易者也.
60)『 正蒙 』「 太和 」 彼語寂滅者, 往而不反.
그러나 불교의 '空'이 단순히 적멸의 의미만을 내함한 공간적인 개념인지는 논의의
여지를 갖는다.
61)『 正蒙 』「 乾稱 」
太虛者, 氣之體. 氣有陰陽,屈神相感之無窮, 故神之應也無窮.
62) 牟宗三 『 心體與性體 』 第一冊 p.424
모종삼은 태허의 神體를 강조하고 '太虛卽氣'는 '太虛無形, 氣之本體'에서 왔고, '太
虛無形'은 '淸通而不可象爲神' 에서 온 곳으로 보아, 太虛, 虛空 虛無는 결국 神體임
을 주장한다. 따라서 그는 장재의 唯物論的 경향을 완전히 거부한다.
63) 『 正蒙 』「 乾稱 」
體不偏滯, 乃可謂無方不體. 偏體於晝夜,陰陽者, 物也. 若道, 則兼體而無累也. 以其
兼體, 故曰, 一陰一陽, 又曰陰陽不測, 又曰一闔一闢, 又曰通乎晝夜. 語其推行, 故曰
道. 語其不測, 故曰神, 語其生生, 故曰易. 其實一物, 指事異名爾.
64)『 正蒙 』「 太和 」
太和所謂道, 中涵浮沈升降動靜相感之性, 是生絪縕,相蕩,勝負,屈伸之始.
65)『 周易 』「 繫辭上 」五章
生生之謂易, 成象之謂乾, 效法之謂坤, 極數知來之謂占, 通變之謂事, 陰陽不測之謂神.
66)『 正蒙 』「 神化 」
氣有陰陽, 推行有漸爲化, 合一不測爲神, 其在人也. 知義用利則神化之事備矣.
67)『 正蒙 』「 天道 」 天之不測謂神, 神而有常謂天.
68)『 正蒙 』「 參兩 」 一物兩體, 氣也. 一故神, 兩故化.
여기서 兩體의 體는 體用의 體가 아니다.
69)『 全書 』「 繫辭上 」 故能成天下之務, 唯神也.
70)『 正蒙 』「 乾稱 」 語其推行, 故曰道. 語其不測, 故曰神. 語其生生, 故曰易.
71)『 正蒙 』「 太和 」 散殊而可象爲氣, 淸通而不可象爲神.
72)『 正蒙 』「 太和 」 凡氣淸則通, 昏則壅, 淸極則神.
73)『 正蒙 』「 太和 』 太虛爲淸, 淸則無碍, 無碍則神. 反淸爲濁, 濁則碍, 碍則形.
74)『 正蒙 』「 太和 」
鬼神者, 二氣之良能也. 聖者, 至誠得天之謂. 神者, 太虛妙應之目, 凡天地法象, 皆
神化之糟粕爾. .... 鬼神之實, 不越二端而已矣. 兩不立則 ,一不可見, 一不可見, 則
凉之用息. 兩體者, 虛實也,動靜也,聚散也,淸濁也, 其究, 一而已.
75) 正蒙은 張載가 지었으나, 편집은 제자인 蘇昞이 맡아서 分篇했다. 만약 편집상의 오
류가 아니라면, 장재 자신이 鬼神과 神化를 竝用해서 구분없이 쓰고자 했음이 인정
된다.
76) 牟宗三 『 心體與性體 』 第一冊 p.477 - 478
77) 牟宗三 앞의 책 p.479 - 481
78)『 正蒙 』「 神化 」 神天德, 化天道. 德其體, 道其用. 一於其而已.
79) 牟宗三 앞의 책 p.482
80)『 正蒙 』「 太和 」 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
81)『 正蒙 』「 太和 」 由太虛有天之名, 由氣化有道之名, 合虛與氣有性之名, 合性與知覺有心之名.
82)『 孟子 』「 盡心上 」
孟子曰,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 則知天矣. 存其心, 養其性, 所以事天也.
夭壽不貳, 修身以俟之, 所以立命也.
83)『 中庸 』一章
天命之謂性, 率性之謂道, 修道之謂敎. 道也者, 不可須臾離也, 可離, 非道也.
84)『 正蒙 』「 乾稱 」 至誠, 天性也. 不息, 天命也.
85)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155
86)『 正蒙 』「 誠暝 」 天性在人, 正猶水性之在氷, 凝釋雖異, 爲物一也.
87)『 正蒙 』「 誠明 」 性者, 萬物之一源, 非有我之得私也.
88)『 正蒙 』「 誠明 」 性於人無不善.
89)『 正蒙 』「 誠明 」 天所性者, 通極於道, 氣之昏明, 不足以蔽之.
90)『 正蒙 』「 誠明 」
形而後有氣質之性. 善反之, 則天地之性存焉. 故氣質之性, 君子有弗性者焉.
여기서 '弗性' 은 王夫之의 注를 인용함.(弗性 ; 不據爲己性而安之也)
91) 王夫之 『 張子正蒙注 』券一 「 誠明」
氣質者, 氣成質而質還生氣也. 氣成質, 則氣凝滯而局於形, 取資於物以滋其質. 質生
氣, 則同異攻取各從其類.
92) 王夫之 앞의 책 故耳目口鼻之氣與聲色臭味相取, 亦自然而不可拂遠.
93)『 正蒙』「 誠明 」 天本參和不偏. 養其氣, 反之本而不偏, 則盡性而天矣.
94)『 正蒙 』「 誠明 」 人之剛柔, 緩急, 有才與不才, 氣之偏也.
95) 朱建民 『 張載史上硏究 』 p.110
朱建民은 이러한 이중성을 분류해 '道德心' 과 '經驗心'으로 불렀다.
96) 이 부분은 칸트의 '순수이성의 한계와 실천이성의 요청'이라는 논리방식과 유비적으
로 연관시킬 수 있다고 본다. 모종삼과 주건민의 어법은 칸트에 힘입은바가 크다.
97)『 正蒙 』「 大心 」 世人之心, 正於聞見之狹, 聖人盡性, 不以見聞梏其心.
98)『 正蒙 』「 大心 」 人病其以耳目見聞累其心, 而不務盡其心.
99) 陳俊民 앞의 책 p.163
100)『 正蒙 』「 大心 」
大其心, 則能天下之物. 物有未體, 則心爲有外. ... 孟子謂盡心則知性知天, 以此.
天大無外, 故有外之心, 不足以合天心.
101)『 正蒙 』「 大心 」 成心忘, 可與進於道.
102)『 正蒙 』「 誠明 」 心能眞性, 人能弘道.
103)『 正蒙 』「 大心 」
釋氏不知天命, 而以心法起滅天地, 以小緣大, 以末緣本, 其不能窮而謂之幻妄, 眞所謂
凝氷者與.
104)『 正蒙 』「 誠明 」 性與天道合一存乎誠. 여기서 性은 人性을 말한다.
105)『 正蒙 』「 乾稱 」
儒者則因明致誠, 因誠致明, 故天人合一, 致學而可以成聖, 得天而未始遺人, 易所謂不
遺,不流,不過者也.
106) 陳俊民 『 張載哲學與關學學派 』 p.154
진준민은 '天人一氣' 라는 표현을 쓴다.
107)『 全書 』「 張子語錄 」
誠則實也, 太虛者天之實也. 萬物取足于太虛, 人亦出于太虛, 太虛者心之實也.
108)『 正蒙 』「 太和 」 兩不立則一不可見, 一不可見則兩之用息.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권경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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