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정신과 세계 개방성 동물에게도 지능을 부여하는 쉘러의 심적 세계 4단계에서는 인간만이 갖는 특수 지위를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의 본질과 특수 지위란 무엇인가라는 결정적인 물음에 직면해서 쉘러는 명확하게 설명하고있다. "인간 본질과 인간의 특수 지위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지능과 선택능력보다는 휠씬 높은 데 있다."20) 그것은 인간이 이 지능과 선택능력을 양적으로 제아무리, 무한히 증대시켜 보아도 결코 미칠 수 없는 어떤 것이다. 심적 존재의 4단계 위에 인간이 고유하는 다른 단계, 즉 인간을 인간이도록 하는 새로운 힘, 새로운 원리는 바로 정신이다. 넓은 의미에서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는 모든 것의 바깥 편에 놓여 있는 이 정신만이 인간을 동물과 엄격히 대립시키는 것이다. 쉘러가 인간을 정신적 존재로 규정한 것은 전통적인 인간 규정과 일치한다. 왜냐하면 새로운 인간론의 기초로서 확립한 쉘러의 정신의 원리는 희랍인들이 이성이라고 명명했던 바로 그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 정신은 이성의 개념과 이념의 사고, 그리고 직관도 포함한다. 정신은 또한 본질적 내실에 대한 직관 외에 의지적이고 정서적인 작용도 포함하고 있다. 이런 정신이 인간론의 내용에 드러나게 될 때 그 작용중심을 인격이라고 한다.21) 인격으로서의 정신 존재는 유기적인 것에서 실존적으로 해방되었다는 것을 그 근본 규정으로서 갖고있다. 특히 이 정신적 원리에서 사물의 순수한 존재성을 파악할 수도 있고 나아가서는 객체적 인격체로서의 인간의 이념화적 행위도 수행할 수 있다. 쉘러는 『우주에 있어서의 인간의 지위』에서 정신 자체를 그의 본질성에서 물음을 제기하기 전에 인간에게 정신을 귀속시키느냐 않느냐에 관해서 묻고 있다.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그는 4단계의 생물 심리학적 세계를 건립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인간 정신의 본질 규정을 결코 소홀히 하지는 않고 있다. 쉘러의 인간학에 있어서 정신적 존재의 근본 규정은 세계 개방성이다. 세계 개방성은 정신이 생명체의 조직기관으로부터 존재 상 풀려나 있다는 것, 그것이 강제로부터, 압력으로부터, 생명과 생명에 속하는 일체의 것으로부터, 또한 그 자신의 충동적 지능으로부터 자유롭게 풀려나 있다는 것이다. 세계 개방성은 모든 체험되는 정신을 통하여 모든 존재에 대하여 무관심적으로 대상화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동물은 환경을 가지나 인간은 세계를 가진다는 것은 인간만이 세계 개방성을 갖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정신적 존재는 이제 충동과 환경에 속박되어 있지 않고 환경으로부터 자유롭다. 동물은 환경 속에 망아적으로 몰입해서 살기 때문에 그 환경을 대상화할 수 없다. 그러나 정신적 존재는 자기에 주어진 환경을 대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고, 이런 대상을 원칙상 자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인간은 사물로부터 거리를 취하고 어떤 것 자체를 그의 참된 존재에 있어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환경에 대한 동물의 동작은 언제나 생리적-심적 상태에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동물이 그 환경계에 관해 알고 파악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 환경 구조의 확실한 울타리의 한계 내에 있다. 다시 말해서 동물은 자기 의식을 갖지 못한다. 그 때문에 환경을 대상화할 수 없고, 또 대상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행동은 심적 상태성과 충동에서 독립되고 환경의 감각적 외면에서도 독립되어 있다. 충동활동은 인격중심에 의해 억제되고 해방된다. 또한 인간은 사물의 대상성을 유가치한 것, 궁극적인 것으로 변화시켜 체험한다. 이런 행동의 형식이 바로 세계 개방성의 형식이요, 환경의 구속에서 초탈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무제한하게 세계개방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된다는 것은 정신에 의해 세계 개방성에로까지 향상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동물은 환경에 몰입하여 살고, 그 환경을 걸머지고 있기 때문에 정욕과 충동에 둘러싸여 있는 저항 중심체를 대상화할 수 없다. 환경 아닌 세계로 나가는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대상-존재란 정신의 논리적 측면이 가지는 가장 형식적인 범주이다."22) 대상-존재란 것은 사물을 대상화할 수 있는 존재이다. 즉 주체적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동물은 환경을 대상화할 수 없는 비주체적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의식이 없다. 결국 자기를 소유함도 없고 자기를 지배하지도 않으므로 동물은 자기라는 것을 의식함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동물은 자기소유와 세계소유가 없다. 이러한 내성(반성작용), 자기 의식, 충동저항물의 대상화 능력은 인간의 정신만이 고유하는 본질적 특징이다. 정신이 자기 의식화를 가능하게 하고 내성과 집중화를 가능케 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환경을 세계라는 존재의 차원으로 확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리적 ·심적 성질을 다시 대상화할 수 있고, 개별의 모든 심적 체험, 그 생명적 기능자체 등을 다시 대상화할 수 있다."23) 이런 까닭에 인간은 자살할 수도 있다. 인간은 변천하는 충동을 넘어서서 지속하는 의지를 갖는다. 이것은 인간중심이 유기체와 환경의 상호대립을 초월하여 작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 구조는 그 자신 주어져 있는데, 그 본질적인 특수성은 다음의 세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24) 첫째, 인간만이 구체적인 사물범주와 실체범주를 가진다. 동물은 이런 범주를 갖지 않고 순간 순간적인 망아 상태들의 연속이라 하겠다. 또한 "보이는 사물, 들리는 사물, 맛보는 사물, 냄새나는 사물, 만져지는 사물들을 하나의 동일한 구체적인 대상-사물에 즉 동일한 실재-핵심에 관계시킬 수 있도록 하는 중추가 없다."25) 인간만이 자기의식을 세계에 대립시킬 수 있으므로 비로소 대상적 환경 세계와 자아 체험이 구별되어진다. 그러므로 인간은 한 사물을 상이한 감관의 지각내용을 통하여 동일한 것으로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동물도 보편성의 의식은 갖고 있겠으나 그러나 개별적 대상들로부터 보편적 내용을 구별해 낼 수가 없고 보편적 내용 상호간의 관계를 그 가능적 적용의 구체적 상황과 분리시켜서 파악하고 그것을 독립적으로 조작할 능력이 없다. 즉 실체-범주가 의식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둘째, 인간은 공허한 형식으로서 공간, 시간을 가진다. 이러한 공간, 시간의 공허한 형식을 의식하기 때문에 인간은 사물과 사건을 그 안에 집어넣어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공허한 형식은 그 충동의 불만이 충동의 충족보다도 항상 과잉인 그런 정신적 존재에서만 가능하다."26) 동물은 매번 직면하는 구체적인 현실에 몰입해서 살기 때문에 공간과 시간의 공허한 형식을 환경 사물들의 일정한 내용성에서 분리할 수 없다. 특히 인간의 공간·시간의 형식을 공허하다고 하는 이유는 인간의 충동의 기대가 언제까지나 근원적으로 구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최초의 공허는 우리 심정의 공허이다. 이러한 심정의 공허를 쉘러는 지각과 전(全) 사물 세계와의 모든 가능한 내용에 선행하는 즉 아무런 사물이 없어도 마치 존립하는 것이라 하여 '무한한 공허' 라고 말하고 있다. 27) 셋째로 인격으로서의 인간만이 자기 자신을 포함한 만물을 인식의 대상으로 할 수 있다. 이에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자기 자신과 세계를 넘어 있는 존재가 된다. 사람은 인격이라는 중심에서 여러 작용을 수행하고, 그 작용을 통해서 자기의 육체와 마음(심리)을 대상화한다. 인격이라는 중심은 공간적 시간적으로 푸짐한 세계를 대상화하거니와, 인격-중심 자신은 세계의 일부일 수 없고, 따라서 그것의 일정한 장소와 시간을 소유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최상의 존재 근거자신 중에만 자리잡고 있을 수 있다. 이렇게 그 자신을 대상화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로서 "정신은 순수하고 순결한 활동성이요, 자신의 존재를 오직 그 작용의 자유 수행 중에서만 가진다."28) 따라서 이러한 정신의 중심인 인격은 대상적 존재도, 물적인 존재도 아니다. 부단히 실현하는 작용들의 질서 있는 결합체이다. "인격은 그것이 작용하는 중에서만 있는 것이요, 작용을 통해서 있는 것이다."29) 이상과 같은 정신의 본질적 특징에서 인간은 동물과 구별됨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한 마디로 세계 개방성과 자기 의식으로 나타난다. 게엘렌(Anold Gehlen)도 인간을 비전문화된 결핍존재(M?ngelwesen)라고 불렀다. 모든 상황에 따라 동물은 거기에 알맞는 행동을 전문화된 본능에 따라 대처하지만 인간은 그런 전문화된 본능이 없다. 이러한 신체적, 정신적 취약성과 불안전성을 가진 인간은 자기 자신을 초극하려는 영원한 생의 탈출자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인간은 스스로의 무력함과 자기 결핍성에 기인한 환경의 초탈 또는 세계에 대한개방성을 강요당하는 존재이다. 정신의 세계 개방성과 자기 의식의 특징은 세계내적 자기 정위(Weltorientierung)를 필요로 하는 인간에게 부담 해소작용으로서 불가피한 요소라 하겠다. 그러므로 인간의 비전문화는 인식능력이 주어졌다는 의미에서 세계 개방성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동물의 인식은 좁게 특수한 환경 안에서만 작용하지만, 인간은 무한히 높게 올라가는 세계 개방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에게는 본능이 결핍되어 있으나 세계를 가능한 한 자기에게 적합한 현실로 가져오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플레스너(Plessner)에 의하면, 동물은 그의 중심으로 생을 펼쳐나갈 뿐 결코 자발적인 중심으로 사는 것은 아니며, 그의 환경에 대한 관계는 가지나 이 관계에 대한 관계는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의 배후를 찾는자(hinter sich gekommen)이다. 인간은 동시에 중심을 떠나서 살고 있다. 인간은 세계를 자기에게 향하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를 세계로 향하게 한다. 세계 안에서 자기의 위치를 알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육체이면서 육체의 도구를 넘어서는 일을 하며 어떤 상태에 있으면서 그 상태를 지배한다. 플레스너의 탈중심성으로서의 인간 규정은 정신을 자기 의식으로 규정하는 것과 같다. 결국 인간은 자신과의 관계에서 자기 의식이 가능하고 세계와의 관계에서 세계 개방성을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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