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명과 정신/김준연 1.서론 일본인들은 20세기를 마감하는 1999년의 한자로 맨 먼저 '末'을, 그 다음으로 '亂', '核' '崩'을 선정했다고 한다. '세기 말'을 상징하는 사건이 빈발했기 때문에 이처럼 부정적인 한자들이 선정되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일본만의 특징은 아니고 '분열'이라는 개념으로 요약할 수 있는 현대인의 의식과 현대적 사상들과 관련지어 볼 때 전세계적인 경향이라 할 수 있다. 분열이라는 말은 원초적인 하나가 둘로 갈라짐을 의미한다. 갈라짐은 고정, 정착이 아닌 요동, 분리, 이월을 나타내는 바 에너지를 상징하고 발전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과학을 통한 발전과 강력한 힘의 획득을 목표로 하는 현대인은 분열을 당연히 변증법적인 생산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분열은 고통과 불안, 긴장을 초래한다. 따라서 고착을 퇴보라 생각하고 분열과 해체를 선도하는 과학에 파묻혀 사는 현대인들은 당연히 긴장과 불안 속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인간이 창조자에게서 떨어져 나가고 그 인간이 육체와 정신으로, 정신이 다시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되어 간다. 원자들이 서로 분열되고, 분열이 재분열되듯이 가족이 분열되고 개인과 개인이 분열되고 전체의 질서와 조화가 깨지고, 분열되어 나온 것이 역동적으로 전체에 폭행을 가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처럼 분열은 분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립자가 핵에서 분열될 때 핵자체를 붕괴시키고 폭발하는 것처럼 파괴라는 위험을 내포한다. 과학의 발달로 자연과 인간은 모두 노출되고 해부되어 신비감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세상은 점점 더 작아지고, 인간들은 벌레처럼 미미한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자연이 본래 숭고한 빛을 지니고 있다는 믿음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이제 인간은 본성 중에서 사소한 것에 집착하여 원자와 같은 미세한 조각에까지 깊이 빠져들며 살아가고 있다. 앞선 세대의 세계는 모조리 전복되고 전통적 가치는 해체되어 파괴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현대의 위기가 이러한 분열과 해체에서 초래된 것이라면 이제 화해, 통합의 개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학과 달리 철학은 전체와 종합, 통일을 주제로 한다. 따라서 인간 개념을 논의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다. 인간 개념은 인간을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어야 하는데 아직도 과학의 분야 중에는 인간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분야가 없다. 전문분야의 과학마다 인간의 한 측면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줄 수는 있으나 종합적인 인간 이해를 위한 종합과학은 없다. 본 논문은 인간에 대한 부분적 고찰만으로 인간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것처럼 언급하는 과학적인 인간 고찰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인간이 무엇이며 존재 가운데서 그의 지위는 어떠한지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는 쉘러를 중심으로 하는 철학적인 인간 연구의 한 예를 제시하고자 한다. 2.현대 사회와 인간성의 문제 오늘날 철학의 영역을 넘어서서 생물학자, 의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들까지도 인간의 본질 구조에 관한 새로운 상의 마련에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자기 문제성은 우리에게 알려진 전역사 중에서 현대에서 그 최고도에 도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철학적 인간학자인 쉘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인간을 연구하는 특수과학의 종류가 점점 늘어나고, 이러한 많은 종류의 과학이 모두 그들 나름대로 존재 가치가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이런 것이 인간의 본질을 천명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의 본질을 은폐하고 있다. 유사이래 현대만큼 인간 자신이 문제시된 때는 없었다."1) 이처럼 역사상 그 어느 시기에서도 현대에 있어서처럼 인간이 온전히 그리고 여지없이 문제 거리가 된 적은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현대사회의 급변과 그에 따른 인간이해의 혼란에 기인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또한 인간 이해의 혼란에 대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과학은 결코 인간 문제에 해답을 줄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현대산업사회에서 인간은 인격이 상실된 하나의 상품으로 살고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인간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평가한 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인간의 소외는 극단화되고, 인격적인 관계보다는 비인격적인 관계가 널리 지배하고 있는 현대의 산업사회 속에서 인간들은 대중 속에서 고독을 체험하게 된다. 사회의 비인간화 현상과 부와 권력의 편재에서 생겨나는 극도의 불의와 부조리는 현대인을 불안하고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지구의 한편에서는 먹을 것이 남아 돌아가 경제 문제가 생기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무수한 사람들이 기아상태에서 죽어가고 있다. 우리는 이 세계 어느 한 구석에서도 인간이 더 이상 아사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적 수단이 인간 생명의 존엄성에 기여하기보다는 살인 무기를 제조하는 등 인간생명의 파괴에 사용되고 있다. 인간의 과학적 재능은 내면적 삶의 충만이나 인간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기보다는, 영혼을 고갈하고 시의 윈천을 막고 있으며 사람의 몸을 혹사, 휴식 평정의 기회 박탈하고 있다. 그 결과 인간의 삶과 창조적 작업에 연결된 도덕적 방향 감각을 상실케 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현대과학이 유물론적 전통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데 기인한다. 현대과학은 유물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인간을 유물론적으로 이해한다. 유물론의 중요한 원리 중의 하나는 심신동일설인데 이는 사람의 마음과 몸은 하나라는 이론이다. 마음은 두뇌의 특수한 기능에 불과하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물질적인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물질적인 것과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이러한 유물론적 사상은 인과론과 진화론에 연결된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물질적인 바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무엇이든 원인이 있다는 인과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은 또한 진화의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는 진화론 역시 받아들이게 된다. 인간은 물체이기 때문에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게 되고 자연법칙은 모든 자연현상을 결정론적인 인과법칙에 따라서 움직이게 한다. 인간도 이러한 기계적인 변화만 가능하다. 기계적인 변화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가능하게 할 뿐만 아니라 모든 변화를 일정한 궤도에 따라서 예정된 방향으로 전개되어 가게 한다. 한편 진화론은 인간은 다른 동물과 질적으로 차이가 나는 존재라는 것을 부정한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인간과 다른 생물이 서로 유사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들이 나타나고 있다. 인간만이 합리적 동물이라고 하였지만 컴퓨터 역시 합리적 생각을 하며 침팬지, 돌고래도 마찬가지이다. 또한 인간만이 목적의식을 갖는 의도적으로 행동하는 유일한 존재하고 하였지만 동물들 역시 본능에 의해서만 행동하거나 주어진 조건들에 기계적인 반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의도를 가지고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현대과학은 동물에게도 자유의지가 있음을 인정하고 있다. 작은 생명체도 생명을 지속시키려는 목적의식을 가지는데 박테리아의 의약품에 대한 면역성, 주인의 사랑을 받으려는 개의 행동, 야생동물과 길들여진 동물이 다른 점 등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과학의 주장이 인간 이해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쉘러는 이러한 과학의 인간 해석을 일부 수용하여 두 가지 인간 개념을 규정하고 있다. 하나는 자연주의적 인간 개념인데 인간은 형태학적으로 척추동물, 포유동물의 하위군으로서 갖고 있는 특징들을 포함하고 있는 자연적 존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본질적 인간 개념으로서 인간에게 생명을 지닌 종(種)의 어떠한 다른 특수 지위와도 비교할 수 없는 하나의 특수 지위를 부여하는 정신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말하고 있다.2) 3.심적 생명과 인간 쉘러는 인간의 특수 지위를 밝히기 위하여 인간과 식물 그리고 동물의 본질적인 차이를 묻고 있다. 우선 그는 생명적 심적 세계의 전체적 구조의 본질적 단계와 그 형상을 심리학적 생물학적 생리학적 자료에 의해 기술 설명하고 있는데, 그 결과 자연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현명한 침팬지와 기술자로 생각된 에디슨 사이에는 매우 큰 차이이기는 하나 그저 정도적 차이만이 있는 것이다."3) 심적인 것은 생명적인 것과 완전히 일치한다. 이런 심적인 것, 생명적인 것의 최하단계는 감정충박(感情衝迫, Gef?hlsdrang)이다.4) 식물적 생명의 본질은 여기에서 성립한다. 감정충박은 감정과 충동이 아직 분화되지 않은 상태로서 아직 의식도 없고 감각도 표상도 없는 원시적 생명을 의미한다. 주위의 환경 일반에 대해서 단순히 나아감(Hinzu), 또는 단순히 멀어짐(Vonweg)의 막연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또는 대상 없는 快, 대상 없는 苦를 느낄 따름이다. 생명체와 환경은 아직은 서로 분리되지 못하고 얽혀 있다고 생각된다. 식물에 내면 상태 즉 심적인 것이 없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식물의 생명적 활동이 느린 데에 원인이 있는 것이지 결코 생명적 활동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식물에서 위와 아래로 즉 빛과 땅으로 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식물적 생명이 방향에 대해서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식물은 동물처럼 감각이나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최하단계의 심적 존재라 할 수 있다. 감정충박은 감정과 충동이 분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이를 가진 식물의 생명에는 기관과 기관간의 상호의존이 동물보다 선천적으로 긴밀하다고 할 수 있다. 5) 이러한 생명의 내적 측면의 첫째 단계인 감정충박은 식물에만 국한되지 않고 전 생명계를 관통하여 인간에까지 이른다. 인간의 감각, 지각, 표상, 사고의 깊숙한 곳에는 이 어두운 충동이 자리잡고 있다. 특히 그것은 "인간에게 있어서도 원초적 저항을 체험하게 하는 주체다. 이 주체는 실재, 즉 현실을 모두 가지게 하는 근본이요, 특히 현실을 통일하는 근본이며, 또 모든 표상 기능에 선행하는 현실에 대한 인상의 근본이다."6) 심적 생명의 둘째 단계는 본능현상이다. 그것은 "심적인 생명의 객관적인 단계 서열에 있어서 미분화의 망아적(忘我的) 감정충박에 뒤따르는 제2의 심적인 본질형태라도 볼 수 있다."7) 본능은 "경험이나 학습, 습관을 통하여 비로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고 그런 것들에 의해서는 다만 특수화되어질 뿐이며, 유기체 자체의 기관형성 과정 속에 뿌리박고 있는 생득적이고 유전적인 능력이다."8) 그러므로 본능은 종에 따라 구별되고 개체적으로 차별되지 않는다. 그것은 확고하게 율동화되어서 행동방식의 한 계열을 통하여 변함없이 홀러간다. 이 말은 본능은 고정적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이 행위함에 즈음해서 그의 목적을 예상하고 있듯이, 동물이 이미 그 행동이 종국적 결과를 마치 예상이나 하는 것처럼 대처해 나가는 능력이 바로 본능이다. 그러나 동물이 사실상 결과를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본능 속에서는 노력과 지식이 아직 일체가 되어 있다"9)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쉘러는 이러한 본능의 특징으로 선천적으로 합목적적임, 어떤 확고하고 불변적인 리듬에 따라 진행됨, 생득적이고 유전적임을 들고 있다.10) 본능은 훈련을 받음이 없이 선천적으로 적합하는 것이고 유형적으로 반복하는 상황에만 호소한다. 유형적으로 반복하는 상황이란 자신의 생명에는 유의미하되 개별 동물의 특수경험에는 무의미한 것을 말한다. 자기 훈련과 학습, 오성 사용은 기본적으로 개체에 유용한 것이지 종에 유용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본능은 늘 종에 봉사한다. 그러므로 "본능적 행동은 결코 개체에 따라서 변할 수 있는 환경의 특수적 내용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다만 가능한 환경적 부분들에 있어서의 하나의 전혀 특수한 구조에 대한 즉 그것들의 種전형적인 배열에 대한 반응일 따름이다."11) 이러한 본능은 굳어져 있는 것, 즉 경직성이라고 칭하여진다. 그러므로 그것은 길들이기와 지능에 의거하는 가소적인 행동방식과는 구별된다. 이런 본능의 근본 특징은 생득적이요 유전적이라는 데 있다. 본능의 또 하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어떤 생활에 대처하기 위하여 동물이 하는 시도의 횟수로부터 본능의 동작은 독립해 있다는 점이다. 즉 본능적 동작은 성공적인 부분적 운동들의 집합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 경험과 학습에 의해서 본능이 특수화될 수 없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본능은 이미 생명체 자체의 기관형성 속에 짜여들어가 있다. 그러므로 본능은 습관과 자기 훈련에 기인한 동작방식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연상적합법칙성과 조건반사로 돌려보낼 수 없는 것이다. 본능은 의심할 바 없이 연상에 의해서 규정지어진 심적인 복합적 형성보다 더 원초적인 존재요 생기현상이다. "본능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선지식과 행동의 불가분리적 통일을 나타내기 때문에 행동의 다음조처로 동시적으로 들어가는 것 이상의 지식은 결코 주어지지 않는다."12) 인간에게도 본능적 태도는 나타난다. 이것은 특수한 감각적 자극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때 나타난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 본능은 잔재문제일 뿐이다. 이 의미는 본능은 인간에게 있어서는 구조적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와는 반대로 동물은 본능을 통하여 목적달성에 적합하게 구조되어 있다. 심적 생명의 셋째 단계는 습관적 행동 내지 연상적 기억이다. 본능적 동작의 근원에서 생기는 습관적 동작과 지능적 동작 중에서 습관적 동작에 해당하는 연상, 재생, 조건반사 등이 연상적 기억의 능력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미 관찰하였듯이 연상적 기억의 능력을 식물은 갖고 있지 않다."13) 연상적 기억을 갖고 있는 생명체는, 그 동작이 같은 종류의 이전 동작을 토대로 해서, 그 생명에 유용하게 변화시키는 생명체이다. 따라서 동물만이 이런 능력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동물은 이전의 동작을 되풀이해서 자신의 동작을 유의미하게 변화시킨다. 동물은 자발적인 실험운동을 하며 또 이런 실험운동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식물에는 그러한 실험운동이 없다. 동물의 자발적인 실험운동과 그 반복은 기억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재생의 전제이며, 그 자체 하나의 생득적인 충동이다. 연상적 기억의 기초적인 것은 조건반사이다.14) 이러한 조건반사와 심적으로 유사한 것이 연상법칙성이다. 이것에 의해 이미 체험된 표상들이 재생되고 결핍된 부분이 보충되기도 한다. 표상의 재생을 위한 연상법칙은 인접법칙과 유사법칙에서 유래하나 충동, 욕구 등이 규정하는 힘의 지배하에 있다. 특히 연상적 기억의 특징은 분리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분리는 쉘러에 따르면 모든 독창적 행위의 결정적인 전제이다. 그런 독창적인 행위의 첫 단계는 앞에서 언급한 동물의 실험운동이다. 실험운동을 통하여 동물은 어떤 새것을 경험하고 자신을 습득시킨다. 우연히 성취된 거동은 쾌락의 높임이라는 의미에서 되풀이된다. 그 경우에 그 동물의 거동은 고정되는 것이다. 낯선 것에 대한 길들임이나 자신을 길들이는 현상도 이러한 연상 기억에 의한 습득과 고정된 행위에 기인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상원리는 모방과 복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면서 인습을 형성한다."15) 그리하여 연상기억은 자동적으로 규정능력으로 된다. 동물에게 있어서는 이 연상적 기억은 충동 충족에 분명히 종속해 있으며, 또한 그것은 기계적으로 적용된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는 연상 및 재생의 원리가 최대한으로 확대되어 있어, 앞으로 살펴보게 될 "실제적 지능과의 관계에서 볼 때는 아직도 비교적 고정성과 습관성의 원리 즉 보수적 원리이지만 반면 본능과의 관계에서는 이미 강력한 해방의 도구가 된다."16) 쉘러도 인간에게 있어서 연상적 기억의 중요성을 언급한다. 그는 "진정한 인간의 발전은 인습의 해체를 증가하는 데서 비롯된다"17)고 말하고, 그 인습의 힘은 인습을 객관화하는 이성에 의해서 인간 역사에서 무너져 가고 있다고 한다. "이성은 그때 그때의 새 발견과 발명에 대한 지반을 자유로이 마련한다."18) 심적 생명의 넷째 단계는 실제적 지능이다. 지능은 연상적 기억의 모험을 교정하는 수단이나 아직도 기관에 매어 있다. 쉘러에 의하면, 한 생명체가 종적(種的) 유형에도 또 개인적 유형에도 맞지 않는 새 상황에 직면해 동작할 때에, 그러면서도 이전에 했던 실험의 횟수에서 갑작스레 독립해서 충동이 규정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동작할 때에 생명체의 이러한 동작이 지능적인 것이다. 즉 지능은 동물의 행동이 직접적인 결정을 산출하는 가시적 근거 없이, 환경 내의 사태 연관 및 가치 연관에 대한, 갑자기 나타나는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동물의 선택행위 역시 지능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동물은 결코 단순한 충동의 기계가 아니다. 이러한 "지능의 궁극적인 의미가 유기체의 충동 목표를 달성하게 하는 혹은 실패하게 하는 그러한 행위일 때에 이런 지능을 실제적이라고 한다."19) 쉘러는 실제적 지능도 동물과 인간에게 관계된다고 보고, 실제적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동물과 인간의 차이는 없는 것이다. |
'철학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인간의 생명과 정신/김준연 (3) (0) | 2014.03.25 |
---|---|
[스크랩] 인간의 생명과 정신/김준연 (2) (0) | 2014.03.25 |
[스크랩] 한국철학의 새로운 해석과 보편성의 창조문제 / 김형효 (0) | 2014.03.25 |
[스크랩]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다 / 왕양명 (0) | 2014.03.25 |
[스크랩] 조선후기 호락논쟁의 교육사적 의의 / 정덕희(5) (0) | 2014.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