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철학이야기

[스크랩] 조선후기 호락논쟁의 교육사적 의의 / 정덕희(5)

Ⅴ. 맺는 말; 의의 및 과제

지금까지 이 글은 외암 이간과 남당 한원진의 성리학설을 통해 조선조 후기 호락논쟁의 이론적 쟁점을 인간형성과 도덕규범에 대한 이해방식과 접근방식의 상호대립이라는 시각에서 살펴보았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다루었던 내용을 바탕으로 호락논쟁이 가지는 교육사적 의의를 논의하고자 하며, 아울러 앞으로의 연구가 지향하여야 할 과제를 제시하는 것으로 맺는 말에 대신하고자 한다.

첫째, 학문으로서 교육학은 ‘인간에 관한’(de homine) 이해를 필수적인 것으로 하며, 인간의 이해와 관련된 여러 자료들이 발견되면 그것이 갖는 교육학적 의미를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러한 되물음은 호락논쟁에도 당연히 적용되어진다. 호락논쟁은 200여년의 장구(長久)한 세월에 걸쳐 수많은 성리학자들의 참여하여 이루어진 치열한 논변의 과정이며, 이 논쟁에서 제기된 전제와 맥락, 그리고 논변에 동원된 다양한 준거들은 동아시아 유학사에서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실로 엄청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락논쟁은 리기론의 구조에 따른 인간의 심성론적(心性論的) 이해라는 초점을 잠시도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점에서 호락논쟁은 심성론적 인간이해와 관련된 방대한 자료들을 함장(含藏)한 한국교육사의 보고(寶庫)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호락논쟁이 ‘함장’한 인간이해의 내용들이 교육적으로 반드시 의미있는 명제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그 전제로서 다음과 같은 문제의식을 수반해야만 한다. 즉, 호락논쟁에서 다루어진 인간이해의 내용들이 교육적 시각에서 전체적으로 어떻게 조직되어야 할 것인가, 어떠한 교육적 의미가 영역별로 특수화되고, 어떠한 교육의 부분 목표가 인간존재의 전체목표로부터 도출되며,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기서부터 도출된 교육학적 결론들과 대응해서 그것들을 달성할 수 있는 교육수단은 어떠한 것이 되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들이다. 이러한 문제의식들은, 말할 필요도 없이, 호락논쟁에 대한 교육학적 이해를 한갓 사변적 연역이 아닌 구체적인 인간형성과 깊숙이 관련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학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변화를 목표로 하는 경험과학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기 때문이다. 이로부터, 호락논쟁은 한편으로 한국교육사에서 인간이해와 관련된 내용의 ‘보고’로서 그 의의를 가지는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것의 교육학적 적용에 따른 문제의식을 수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교육사의 중요한 과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둘째, 이 글은 외암 이간을 통해 낙학(洛學)의 인물성구동(人物性俱同)에서 발원하는 이념적 인간형성관을 살펴보았다. 그것은 아무리 탁박(濁駁)하고 추악(醜惡)한 인간일지라도 한 순간 마음을 돌려 명덕(明德)을 회복하기만 하면 그 누구라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이다. 이러한 낙학의 이념적 인간형성관은 당시의 화이론(華夷論)과 맞물리면서 북학파(北學派)를 태동시키는 사상적 매개체로 작용하게 된다. 실학의 여러 학파들 가운데서 북학파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비추어 볼 때 과격하고 급진적인 성향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즉, 경세치용학파(經世致用學派)가 토지제도와 행정기구의 개편 등 성리학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였던 경세적 측면에 주력했다면, 북학파의 대표자격인 담헌 홍대용(湛軒 洪大容, 1731~1783)과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5~1805)은 소중화(小中華)라는 문화적 우월성에 입각하여 북벌론(北伐論)이 압도하던 시기에 오랑캐로 여기던 중국의 청(淸)으로부터 배워야할 것을 과감하게 주장했던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은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모두 똑같은 기로 구성되고 공통된 생명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만물은 변별되지 않는 균등성을 지닌다는 인물균론(人物均論)과 인물막변론(人物莫辨論)이라는 북학사상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며, 이는 사상사의 맥락에서 분명히 낙학의 인물성구동에 따른 이념적 인간형성관과 연속성을 가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북학파에서 개화파에로의 사상적 계보가 한국의 근대사상을 형성하는 주축이라고 전제한다면, 한국교육사에서 근대사상의 형성과 관련하여 호락논쟁이 가지는 의의와 그에 대한 해석은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과제로 제기되는 것이다.

셋째, 이 글은 호락논쟁의 미발심체본선유선악(未發心體本善有善惡)에서 연역되는 외암과 남당의 도덕규범에 대한 접근방법의 대립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대립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사회적 통합이 와해되던 시기에 성리학적 논변을 바탕으로 시대적 문제를 풀어 가는 방법론적 차이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논쟁은 어디까지나 ‘미발심체’라는 용어가 보여주듯이 성(性)이 현실 속에서 발현되기 직전의 마음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에 성리학의 현실적 실천운동과 곧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발심체본선유선악’에 대한 논변은 조선조 성리학의 마지막 논쟁이라고 할 수 있는 심설논쟁(心說論爭)을 매개로 위정척사(衛正斥邪)와 의병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게 된다. 즉, 화서 이항로(華西 李恒老, 1792~1868)를 축으로 심설논쟁을 발생시킨 화서학파(華西學派)는 19세기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자각적으로 또는 주체적으로 요청된 성리학의 현실적 실천운동으로서 위정척사와 의병운동을 주도하게 되는 데, 이 학파의 이론적 근거인 심주리설(心主理說)은 호락논쟁의 연속성 위에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일본 제국주의 침탈기에 전개된 교육구국운동이 위정척사와 의병운동으로부터 자양분을 섭취하여 성장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교육적 저항에 내재된 성리학적 논리구조와 그것의 이론적 기반으로서 호락논쟁이 가지는 의의와 내용은 향후 한국교육사에서 구체적으로 밝혀져야 할 과제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참 고 문 헌

󰡔남당집󰡕, (上, 下), 서울 : 아성문화사, 1976.

󰡔외암유고󰡕, 1997.

󰡔율곡전서󰡕,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단기 4294.

󰡔주자어류󰡕, 소나무, 2001.

󰡔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1968.

󰡔조선왕조실록󰡕, CD-ROM, 1995.


금장태, 󰡔한국 유교의 이해󰡕. 서울: 민족문화사, 1989.

김길환, 󰡔조선조 유학사상 연구󰡕. 서울: 일지사, 1980.

김병옥, 󰡔칸트 교육사상 연구󰡕. 서울: 집문당, 1986.

문석윤, 「조선 후기 호락논변의 성립사 연구」, 서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5.

______, 「외암과 남당의 ‘미발’ 논변」, 󰡔태동고전연구󰡕 11, 1995, pp.219-256.

박균섭, 「우계 성혼의 교육사상 연구」,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

박재주, 󰡔동양의 도덕교육 사상󰡕. 서울: 청계출판사, 2000.

배종호, 「韓南塘과 李巍巖의 인물성동이론의 비판」, 󰡔연세논총󰡕 12, 1975, pp.29-67.

______, 󰡔한국유학사󰡕.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83.

______, 󰡔한국 유학의 철학적 전개 下󰡕. 서울: 연세대학교출판부, 1985.

성교진, 「외암 이간의 인물성구동론 연구」, 󰡔효성여대연구논문집󰡕 38, 1989, pp.65-86.

______, 「남당 한원진의 인물성상이론 연구」, 󰡔효성여대연구논문집󰡕 36, 1998, pp.273-
291.

신창호, 「중용 교육사상의 현대적 조명」,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1.

신춘호, 「조선후기 호락논쟁의 교육학적 해석」, 󰡔교육사학연구󰡕 10, 2000, pp.137-164.

안재순, 「조선후기 실학파의 사상적 계보」, 󰡔동양철학연구󰡕 12, 1991, pp.45-78.

유봉학, 󰡔연암일파 북학사상 연구󰡕. 서울: 일지사, 1995.

윤사순, 「인성․물성에 대한 동이논변의 사상사적 가치」, 󰡔퇴계학보󰡕 102, 1999, pp.7-26.

이길상, 「사료적 관점에서 본 교육사학의 현실」, 󰡔교육학연구󰡕 37-1, 1999, pp.59-77.

이상곤, 「남당 한원진의 기질성리학 연구」, 원광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______, 「인물성구동론」, 󰡔한국사상가의 새로운 발견(4)󰡕. 서울: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8.

______, 「남당 한원진의 인심도심론」, 󰡔역사와 사회󰡕 23, 1999, pp.45-77.

______, 「기화(氣化)로 보는 남당 한원진의 생성론」, 󰡔철학연구󰡕 80, 2001, pp.217-238.

이애희, 「남당 한원진 철학에서 ‘명덕’의 문제」, 󰡔철학연구󰡕 7, 1982, pp.107-128.

______, 「조선후기 인성과 물성에 대한 논쟁의 연구」, 고려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0.

이상익, 「낙학에서 북학으로의 사상적 발전」, 󰡔철학󰡕 46, 1996, pp.5-34.

이천승, 「남당 한원진의 ‘중용’ 주석에 관한 연구」, 󰡔한국사상사학󰡕 13, 2000, pp.281-306.

임능림, 󰡔동양사상과 심리학󰡕. 서울: 성원사, 1995.

임옥균, 「남당 한원진의 異學 비판」, 󰡔동양철학연구󰡕 21, 1999, 1999, pp.131-152.

임원빈, 「남당 한원진 철학의 理에 관한 연구 ; 理와 지각론을 중심으로」,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89.

______, 「남당 한원진 철학에서의 성리 개념의 발전」, 󰡔동방학지󰡕 98, 1997, pp.191-244.

장지연, 󰡔조선유교연원」. 서울: 단국대출판부, 1979.

전인식, 「이간과 한원진의 미발․오상 논변 연구」, 한국정신문화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1998.

정옥자, 󰡔조선후기 역사의 이해󰡕. 서울: 일지사, 1994.

최영찬, 「남당 한원진의 유학사상과 근대정신」, 󰡔유학연구󰡕 1, 1993, pp.469-487.

최완기, 󰡔한국성리학의 脈󰡕. 서울: 느티나무, 1989.

한국동양철학회, 󰡔남당 한원진의 儒學史的 위상과 학설정립의 創新性󰡕, 제32차 정기학술회의 논문집, 1999.

한국사상사연구회(편), 󰡔인성물성론󰡕. 서울: 한길사, 1994.

___________________, 󰡔조선유학의 학파들󰡕. 서울: 예문서원, 1997.

___________________, 󰡔조선유학의 개념들󰡕. 서울: 예문서원, 2002.

황금중, 「주자의 공부론 연구」, 연세대학교 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00.

현상윤, 󰡔조선유학사󰡕. 서울: 민중서관, 1977.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권경자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