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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야기

[스크랩] 한국철학의 새로운 해석과 보편성의 창조문제 / 김형효

한국철학의 새로운 해석과 보편성의 창조문제 / 김형효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철학)



1. 從本(理)而言과 從事而言

철학의 성격을 분류하는 다양한 기준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철학을 정신성(spirituality)과 지성(intellectuality)으로 분류해 보는 것도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되어질 수 있으리라. 오랫동안 사람들은 동양철학을 깊은 종교성을 띈 도덕성이나 또는 정신의 형이상학으로 풀이하였지, 동양철학의 지성의 논리에 대하여 별로 관심을 나타내지 못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 까닭은 여러 가지 원인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로 동양전통 철학의 언어가 자신의 사유논리를 명시적인 방식으로 문자의 표면에 노출시키지 않았고, 둘째로 동양철학의 기본성격이 불교나 유교와 같은 종교에 종속되어 왔었기 때문에 도덕적인 수신이나 수양 또는 수도의 학으로서 주로 평가되어 왔었고, 셋째로 대부분의 동양철학자들이 그 동안 이론으로서의 동양철학보다 재래식의 修道論이나 護敎論의 차원에서 불교와 유교를 한국에서 천착하여 왔었고, 마지막으로 동양철학은 서양철학과 전혀 다른 사유의 토대 위에 전개되어 왔었다는 이론상의 협소한 편견 때문에 서양철학에 대하여 담을 쌓아 동서양 철학이 각각 다른 종류의 학문인양 간주하여 왔던 것 등이 한국에서의 동양철학연구의 지성적인 심화를 저해시킨 요인들로서 생각됨직한 사항들이리라. 이와는 반대로 한국에서의 서양철학연구도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서양철학 연구자들은 동양철학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그들은 동양철학이 이론학으로서의 논리를 갗추지 못한 도덕강론이나 수도학의 입문 정도로 동양철학을 생각한다. 아니면, 한문으로 된 고전들을 한글로 개작한 내용풀이 정도의 수준으로 치부하고 만다. 사실상 동양철학의 논문수준이 그 정도에 밖에 미치지 못한 것들이 있다는 것도 또한 감출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한국의 서양철학의 연구가 비옥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바람직한 상태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 왜냐하면 한국의 서양철학이 대개 서양철학자들의 이론과 학설들의 소개에 집착해 있는 차원이기 때문에 그런 이론들에 대한 자득의 맛이 부족하고, 또 그런 이론들이 나오게 된 익명적이고 무의식적인 사실성(facticity)과 연관된 살아있는 생물로서의 철학연구가 크게 미진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한국의 철학은 동-서철학을 막론하고 새로운 비약을 위하여 철학연구에 대한 발상법의 대전환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이 글을 쓰는 필자도 그런 발상의 전환을 이룩해야 한다는 명제에서 결코 벗어나 있지 않다. 따라서 필자의 이 글은 이미 그런 당위적 명제에서 해방된 자의 소론이 아니고, 그런 요청을 자각하고 있는 자의 소박한 자기 심회의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은 일반적인 상식의 수준에서 생각하듯이 그렇게 각각 다른 차원에 놓여 있어서 상호의 의사소통을 해나감에 있어서 어떤 제삼의 매개자나 또는 통역자가 필수적으로 요청될 만큼 그렇게 다른 사유의 지평에서 자란 것이 아니다. 단적으로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은 서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두 세계의 철학이 동일하다고 보기가 어렵다. 언어적인 차이와 역사적인 배경의 차이, 그리고 거기에 따라 동반되어 온 문화적인 어긋남의 조건들이 동서철학의 차이화와 특화를 결정지워 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동서철학은 동시에 서로 같기도 하고 서로 다르기도 하다. 이런 현상은 단순하게 재미삼아 하는 말의 재담이 아니다. 양 철학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從本(理)而言에서 한 말이요, 양 철학이 서로 같지 않다는 것은 철학적으로 從事而言에서 언표한 것이다. 전자는 동서철학을 선험적인 사유의 논리에서 즉 사유의 본질에서 바라 본 언명이요, 후자는 동서철학을 경험적인 사실의 바탕이나 사실성의 배경에서 숙고해 본 진술이다. 따라서 한국철학은, 보다 더 정확하게 동양철학의 일환으로 실존해 왔던 한국의 전통철학은 저러한 從本而言의 방법에 따라서 서양철학과 논리적으로 다르지 않은 보편적인 사유로서 해독 내지 해석되어야 할 것이고, 또 동시에 서양철학의 경험적 배경과 같을 수가 없는 경험의 특수한 장에서 암암리에 감추어져 있는 사유의 생각되지 않았던 배경으로서의 從事而言의 관점에서도 해석학적인 의미에서 追체험(nachdenken)되어야 한다. 모든 철학에서 從本而言은 명시적인(explicit) 자리를 차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고, 반면에 從事而言은 사유되지 않았던 경험으로서, 명시적인 사유를 가능케 하였던 암시적인(implicit) 바탕으로서 표면에 노출되지 않고 숨어 있는 운명을 지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국의 전통적인 철학자들 가운데서 불교철학자로서 元曉와 유교철학자로서 栗谷을 우선 從本而言의 관점에서 매수의 제약상 간략하게 해석하고, 그 다음에 철학연구에서 從事而言의 차원이 갖는 암묵적인 중요성을 보편성과의 관계에서 간략히 언급하고자 한다.


2. 元曉의 철학과 문자학적 사유

원효의 불교철학의 사유논리는 후기현상학 이후에 주로 등장한 초점불일치의 철학적인 사유의 흐름과 크게 닮았다. 그의 철학적인 사유의 논리는 삐까소(Picasso)의 한 그림에 등장하는 「손수건을 들고 우는 여인」(la femme pleurante avec le mouchoir)상처럼 정면인지 측면인지 구분하기 힘들면서 양 측면을 동시에 다 보여주는 것 같이 그렇게 초점이 일치하지 않은 모델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서로 상반된 이중성이 모순대립을 자아내지 않고 새끼줄이나 격자무늬처럼 엮어지면서 상호간에 직물짜기를 해 나가는 그런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다. 원효의 철학적인 사유는 후기의 하이데거(Heidegger)가 존재를 로고스의 모음(Sammlung)과 갈라짐(Riss)의 상반성이 각각 不一而不二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 詩作함(dichten)의 방식과 유사하고, 후기의 메를로-뽕띠( Merleau-Ponty)의 존재론에서 존재를 보이는 것(le visible)과 안보이는 것(l'invisible)의 교차배어법(le chiasme)으로 해독한 것과 닮았고, 또 데리다(Derrida)가 말한 문자학적인 差延(la différance grammatologique)의 보충대리(le supplément)의 법칙과도 통한다. 원효가 그의 전작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역사에서 종국적인 유일의미도 성립할 수 없고, 불법의 진리는 예컨대 「유/무」, 「세속/초월」, 「경험/선험」, 「깨끗함/더러움」,초등의 대립에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데서 성립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변증법적인 종합 통일을 겨냥하는 것도 아니고, 양면긍정(both-and)과 양면부정(neither-nor)을 「새날개의 춤」으로 또는 「젓가락의 운동」으로 형상화하는 데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에 의하면 모든 것은 시작이 없는 시작부터 이중적이며, 엄밀히 말하여 시작과 끝도 없고, 이 세상을 단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절대적 원리도 없고, 또한 우리가 집착하여 붙들어야 할 영원한 고향도 없고, 인간은 중생이자 동시에 여래며, 또한 동시에 중생도 여래도 아니고, 인간관계는 100%의 일치도 100%의 뒤틀림도 아닌 그런 「사이 세계」(l'inter-monde)와 같다. 그의 철학은 인간에 의하여 발명된 모든 이상주의는 선이지만 동시에 악이어서 이상주의는 교조주의와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지 않고, 현실주의도 필요의 산물이지만 속물주의와 언제나 이중인화의 중첩성을 노출하고 있으며, 약은 독과 플라톤(Platon)적인 파르마콘(pharmakon)의 양식으로 동봉하고 있으며, 유심론은 유물론만큼 절대적인 실체론의 신화에 허황되게 빠졌음을 고발하고 있다. 이 점을 원효의 텍스트 자체에서 음미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제한된 매수때문에 원효의 텍스트 가운데서 가장 짧고 압축적인 문장으로서 그의 󰡔大乘起信論疏󰡕의 대의를 알리는 서문을 해독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대승의 體는 고요하고 비어 있으며(蕭焉空寂), 가득차고 그윽하다(湛爾沖玄). 그것이 그윽하고 그윽하니(玄之又玄之), 어찌 萬像의 겉모습을 나타낼 수가 있겠는가? 그것이 고요하고 고요하지만(寂之又寂之), 百家의 담론이 거기에 들어 있다. 그것은 겉모습으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기에 五眼(육안, 천안, 혜안, 법안, 불안)으로도 그 몸을 볼 수 없고, 또 그것이 언설의 이면에 있기에 四辯(법무애변, 의무애변, 사무애변, 낙설무애변)으로도 그 상태를 말할 수 없다. 그것을 크다고 말하고자 하나 그 이상 더 안이 없는 곳에 들어가도 오히려 남는 것이 없고, 그것을 작다고 말하고자 하나 그 이상 더 바깥이 없는 것을 감싸고도 오히려 남는 것이 있다. 그것을 有에 의지해서 끌어 당겨도 一如가 그것을 써서 空하고, 無에 의지해서 그것이 얻어져도 萬物이 그것을 타서 生한다. 어떻게 말할 방법이 없어서 억지로 이름하여 대승이라 한다.”

이상의 구절은 언뜻 보면, 원효가 대승의 의미를 알송달송한 형이상학의 어떤 신비스런 내용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것이 대승의 세계가 지니는 오묘한 이치를 우리에게 알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이치는 논리를 초월한 어떤 불가지의 초논리적인 것이 아니고, 비록 그 논리가 재래의 일반 논리와 전혀 다른 것이지만 논리가 없는 불가사의한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원효가 언설로서 표현할 길이 없는 불가사의의 말을 그의 불교철학의 핵심으로 자주 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낱말의 뜻은 우리의 지성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초지성적 세계를 말하기 위하여 씌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늘 언표해 오는 말하기의 논리로서 이해될 수 없음을 밝히기 위하여 원효의 저작들 속에 언표되었을 뿐이다. 그러면 말의 논리에서 불가사의한 원효철학의 논리가 무엇인가? 그것을 우리는 데리다가 말한 쓰기의 논리(la logique de l'écriture), 또는 문자학의 논리라고 부른다. 말의 논리, 또는 말하기의 논리는 늘 양자택일적이고 일의적인 스타일의 운명에서 탈피하기가 불가능하다. 말의 세계에서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표현할 수가 없고,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양가성의 동봉법칙으로 담을 수가 없다. 언제나 말의 논리는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칼날같은 심판성을 지녀 「옳음/그름」을 양분화하는 합리성의 정신에는 잘 어울리지만, 빛이 티끌의 밖에서는 어둡고 티끌도 빛의 안에서는 밝은 모습을 지니기에 빛과 티끌이 서로서로 별개로 있지 않고 같이 동거한다고 언표한 중국 북송의 노장계통의 사상가인 呂惠卿의 저런 생각의 애매성과 양가성을 한 묶음으로 기호화 하기가 어렵다. 예컨대 말하기는 긍정과 부정을 동시에 표현하면 모순을 일으켜 실제로 의미화를 수행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말하기의 세계는 쓰기의 세계에 비하여 사유의 합리성을 얻는 대신에 비전(vision)의 빈곤화를 스스로 자초하는 결과를 빚는다. 비전은 초월적인 님의 소리를 귀로 듣고 영혼 속으로 그 님의 말씀과 일치의 공명을 실현하거나 또는 그 님에 가급적 가까이 근접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존재론적인 단순성(simplex)의 진리와는 달리, 이 세계의 가장 간단한 것도 이미 그 내부가 금이 간 이중적인 내적 복합성(implex)을 하나의 묶음으로 하고 있음을 이 세계의 문법이라고 생각한다. 보는 비전은 듣는 현존과 다른 차원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듣는 현존은 음악이 창조한 기적으로서의 순수성의 관할에 속하여 영혼의 정화에 비례하여 님이 우리에게 내림하지만, 보는 비전은 내면적인 영혼과 초월적인 님과의 음악적인 교감이 아니고 세계를 여여하게 바라보는 회화적인 시각의 철학에 더 가깝다고 하겠다. 그래서 비전의 철학은 데리다의 「문자학」(la grammatologie)이나 메를로-뽕띠가 말한 「얽힘장식」(l'entrelacs)으로서의 존재와 같고, 도장의 양각과 음각이 서로 不一而不二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과 같다. 데리다의 문자학은 같은 것은 자기동일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은 「다른 것의 다른 것」이며, 「다른 것」은 「자기와 다르게 같은 것」식으로서의 존재도 존재를 적극적인 차원의 보이는 것과 소극적인 차원의 안보이는 것이 새끼꼬기처럼 얽힌 현상을 뜻한다. 그에 의하면 안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의 안보이는 것이므로 안보이는 것은 보이는 것의 옷안과 같다. 감각적으로 보이는 것은 언제나 안보이는 것의 의미를 不一而不二의 관계로서 자신의 옷안처럼 접목시키고 있다. 도장의 양각은 음각과 같이 단독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불가에서 말하고 있는 연기의 법처럼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성립하는 그런 흔적의 흔적과 같다. 원효가 말하는 대승의 진리도 서로 상반된 두 요소가 일원론도 아니고 이원론도 아닌 그런 이중성의 왕복운동인 차이와 상감의 교차배어법적인 동시성의 격자무늬로서 이루어져 있기에 언설의 이치로서 표현할 길이 없는 불가사의가 되는 셈이다.

다시 원효의 󰡔대승기신론소󰡕의 서문에로 되돌아 가 보자. 원효는 대승의 體를 「고요하고 비어 있음」(蕭焉空寂)의 계열과 「가득차고 그윽함」(湛而沖玄)의 계열로서 하나의 격자무늬를 짜나가고 있다.

󰠆󰠏고요하고 비어 있음

대승 󰠏󰠏󰠋

󰠌가득차고 그윽함

대승이 위의 두 계열로서 천짜기를 이루어 나가고 있지만, 한글의 표현으로서 원효가 의도한 의미가 확연하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원효가 사용한 한자의 기호로서 살펴보는 것이 더 선명하다. 「蕭焉空寂」의 「蕭」는 대개 쓸쓸한 분위기, 한가하고 적막한 가을과 겨울의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그런 뉘앙스를 갖고 있다. 한자단어에서 「蕭散」, 「蕭蕭」, 「蕭瑟」, 「蕭然」 등은 거의 한결같이 한가하고 쓸쓸하며 텅 빈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거기에 반하여 「湛而沖玄」의 「湛」은 원칙적으로 「잠」으로 발음되는 것이나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담」으로 많이 통용되어 쓰고 있는데, 물이 가득 찬 모양으로서의 「湛淡」이나 「湛然」, 물이 깊고 가득 찬 모양으로서의 「湛湛」 등이 대표적인 단어인데, 이 낱말들은 거의 물이 가득차 있는 대해나 대하의 이미지와 연결되고, 가득하면서 동시에 넉넉한 존재의 영상과 함께 봄, 여름의 삼라만상처럼 무성하고 그윽한 수해의 가이 없음을 은유화하고 있다. 원효는 대승의 세계를 텅 빈 無계열의 공적과 가득찬 有계열의 충현으로 이중화하면서, 유계열을 그윽하고 그윽함(玄之又玄之)으로 보충하였고, 또 무계열을 고요하고 고요함(寂之又寂之)으로 부연하였다. 그러나 이런 설명은 내용상의 보충이나 부연이지만, 실제의 문장상에 있어서 원효는 「蕭焉空寂」과 「玄之又玄之」가 서로 상관되게 하고, 「湛而沖玄」과 「寂之又寂之」가 서로 구조상으로 엇물리게하는 그런 수사학적인 교차배어법이나 교차반복법을 쓰고 있다. 이 점을 그림으로 표시하면 다음과 같다.

┌蕭焉空寂 玄之又玄之

대승󰠏󰠏┤

└湛而沖玄 寂之又寂之

이어서 원효는 또 무계열의 의미에 속하는 부정의 뜻인 「만상의 겉모습을 나타낼 수 없다」는 언표를 유계열의 「玄之又玄之」에 접목시키고, 유계열에 속하는 긍정의 뜻인 「백가의 담론이 있다」는 언표를 무계열인 「寂之又寂之」에 상감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한 번 더 새끼꼬기와 같은 교차배어법을 그가 시도한 셈이다. 이런 수사학의 기법이 짤막한 󰡔대승기신론소󰡕의 서문에서는 두드러지게 보이지 않고, 󰡔금강삼매경론󰡕의 제법 긴 서문과 󰡔기신론소 별기󰡕의 서문에서 더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지만, 원고매수의 제약 때문에 간략한 것을 택하여서 필자의 해독법을 더 인상적으로 전달할 수가 없다. 대승의 한 가닥인 「湛而沖玄」한 세계는 넉넉한 바다와 같아서 온갖 만물이 거기서 표출되는 현상화가 이루어 져야 하는데 원효는 오히려 그 세계를 부정적인 안보이는 것으로 상감시켰고, 또 대승의 다른 가닥인 「蕭焉空寂」한 세계는 텅 빈 하늘과 같아서 일체가 비어 있어야 하는데, 그는 그 세계를 말할 수 있는 담론들의 공간으로 수 놓았다. 그러나 저 담론들도 언설의 논리에 맞닿는 것이 아니고, 문자학적인 회화의 명암의 동시성과 같은 상반성의 연좌제나 연루의 법칙으로 짜여져 있기에 언설가능한 범주에 속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하자면, 원효가 그린 대승의 회화는 유와 무의 두 계열이 각각 자기 동일성을 보지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는 무에 의하여 염색되어 있고 또 무는 유에 의하여 감염되어 있는 상호 얽힘의 존재양식과 유사하고, 또 유는 무를 형태심리학적인 무늬의 바탕이나 「옷안」처럼 갖고 있어서 유는 그 바탕과 「옷안」으로서의 무를 없는 부재(l'absence)지만 그 부재를 가시화하여 주고, 또 무는 부재지만 유와의 교호작용을 통하여 유가 자기 현존의 일치나 자폐적인 자기동일성을 띠고 있는 고유성이 아니고, 유는 무를 이미 머금고 있어서 메를로-뽕띠의 표현처럼 「꽃망울의 터짐 상태에 있는」(en déhiscence) 유와 무는 싸르트르(Sartre)의 철학에서 처럼 서로 상극적인 대립의 관계에 놓여 있지 않고, 유와 무는 서로 점묘화법의 기법처럼 하나의 세계를 여여하게 그리고 있다.

대승의 세계가 「유/무」의 애매한 이중성의 점묘화법일 뿐만이 아니라, 또한 그 양적인 크기에서도 양자택일의 「either-or」의 논리로서 설명될 수 없는 데리다적인 差延(la différance)의 背理(le paralogisme)를 안고 있다. 대승의 세계를 무한히 크다고 하여도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 이상의 더 작은 안이 없을 만큼 무한소의 세계에 들어가도 오히려 남는 것이 없고, 반대로 대승의 세계를 무한히 작다 하여도, 그 이상의 바깥이 없는 무한대의 세계를 감싸고도 오히려 남는 것이 있기에, 그 세계는 합리적 지성의 척도인 동일률이나 모순률과 배중률로서 가늠되지 않은 즉 모든 말의 논리를 희화시키는 그런 反개념, 反논리의 차원이다. 대승은 플라톤이 말한 「파르마콘」(pharmakon)과 같아서 어떤 일의적인 개념으로 환원되지 않기 때문에 거기에는 「능동/수동」, 「一/多」, 「有/無」, 「空/生」의 모든 대립이 적용될 수가 없다. 그래서 대승을 다양한 유에 의지해서 보아도 허공의 평등성인 一如가 그것을 쓰기 때문에 모든 것이 평등의 空일 수 밖에 없고, 대승이 수동적으로 무에 의거하여 얻어져도 유의 다양한 만물이 대승을 이미 타고 놀고 있기 때문에, 무의 평등한 空의 一如는 만물이 다양하게 生하고 滅하는 유의 오가는 놀이와 별도로 이해될 수는 없다.

원효의 저 대승론은 무는 유에 의하여 또 유도 무에 의하여 시작이 없는 시작부터 이미 매개되어 있고, 자기의 고유한 봉토를 유와 무가 소유할 수 없음을 가리키는 것이고, 자가성이란 하나의 환상이고, 이 세계의 존재는 자가성이 없는 환영이나 흔적에 불과함을 알려주고 있다. 즉 대승의 논리는 무는 유에 의하여 매개되어 있고 또 유도 무에 의하여 매개되어 있기에 無는 無고 有는 有라는 동일률의 택일적 논리와, 무는 유가 아니고 유도 무가 아니라는 모순률도 거기에 적용될 수 없기에 「either-or」의 비전이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무를 보면, 유가 함께 따라 오고 유를 보면 무가 함께 동반되어 연좌되어 오기에 대승의 논리는 양가성의 동봉법칙으로서 「both-and」의 이중긍정이 어울린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그와 동시에 대승의 논리는 또한 이중부정을 함의하고 있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무는 자가성을 지니지 않고 유도 자기실체성을 띠지 않기에 무를 무라고 부를 수 없고, 유를 유라고 칭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묘한 세계를 이중부정으로서 「neither-nor」라고 명명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원효가 수사학적 교차배어법에 의거하여 그의 생각을 개진한 것은 대승의 세계가 이중긍정과 이중부정의 두가지 논리를 「새날개의 춤」이나 「젓가락의 운동」으로 하여 이 우주가 반복의 짜깁기를 하고 있음을 가리키기 위해서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원효가 진술한 대승의 담론은 데리다가 줄곧 비판하여 마지 않았던 말중심주의(le logocentrisme)의 논리로서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는 그런 反중심, 反개념, 反이성의 사유세계를 우리에게 제시하여 주고 있다. 오랜 세월동안 인류는 어떤 절대주의의 신화나 절대적 진리의 형이상학에 사로잡혀 우리의 세계가 절대의 가치로서 합리적으로 목적화되고 정돈될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하면서 살아 왔다. 7세기의 원효는 20세기의 데리다와 같이 그런 신화의 미몽에서 잠을 깨는 것이 세계를 여여하게 바라보는 비전의 문법에 어울리는 길임을 가르쳐 주었다. 상대주의도 절대주의의 신화와 그렇게 먼 데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상대주의의 진리관도 비록 겉으로 유연해 보이지만 타자의 것에 대한 무관심 속에서 자기의 것에 대한 강한 집착을 안으로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절대주의와 상대주의는 일원론과 다원론의 차이점을 간직하고 있지만, 다같이 중심주의의 믿음을 지탱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를 바가 없다. 모든 중심주의는 필연적으로 나르시시즘적인 자아성에 축을 박고 있고 주인과 노예의 편가르기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선과 진리를 위한 투쟁이 역사에서 늘 독선과 아집의 전쟁을 낳았고, 이 때의 진리가 저 때의 반진리가 되는 돌고도는 회전문의 생리를 모른다. 원효가 보는 대승의 진리는 변증법의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대승적인 진리가 타자에 의한 매개의 진리를 강력히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효적인 대승의 진리는 변증법적인 종합의 테제로 나아가지 않고, 또 일방의 요소가 먼저 일어나고 그 다음에 타방의 반대요소가 이어지는 그런 계시적인 모순관계에 있는 두 요소를 한 쌍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대승의 진리는 모순을 극복하기 위하여 새로운 통일의 계기를 찾지 아니한다. 원효가 생각한 대승의 진리는 이 우주의 이법이 교차배어법적인 「卍」자의 기호처럼 격자무늬의 얽힘장식과 같고, 중심의 부재를 뜻하는 자가성의 지우기와 같은 데리다적인 「散種」( la dissémination)과 같이, 같은 것만의 동색 옹호도 다른 것을 배척하는 非동색 제거도 아닌 同異의 춤이 이 세상의 이치고 여여한 문법임을 그린 회화적인 비전이다. 대승의 진리는 진동자처럼 오간다. 그런 「젓가락의 운동」에서 외곬의 선택이나 하나의 물신적인 숭배사상이 빚는 투쟁이나 통일의 낭만적인 합일의 의지 등은 대승의 짜깁기 세계에 등록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승의 세계는 주검의 경직된 사고를 싫어한다. 선의 과잉이 악일 수 있고, 또 영원히 고착된 선도 없다. 이것은 약의 과잉이 독이 됨과 같고, 또 영원히 단가적으로만 지속되는 약도 없다. 과잉 선물(gift)이 죽음의 독(Gift)이 된다. 선도 그 자체 자기동일성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 선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선일 수 밖에 없다. 대승의 진리는 선악의 존재론을 거부하고 있다. 창조론도 거부되니 종말론도 수용되지 않는다. 대승의 진리는 이 우주에 어떤 일의적인 주제로 통일될 만한 궁극적인 유일 개념이나 최종의 의미가 없음을 알린다. 이런 대승의 세계에서 누가 주인이고, 누가 손님인가? 누가 능동적인 주체고 누가 수동적인 객체인가? 누가 주어고 누가 보어인가? 주인과 손님의 고정된 위치가 없고, 우리는 주인이자 동시에 손님이고, 또 우리는 주인도 손님도 아니기에, 우리는 우리 내부가 이미 이중긍정으로 분열된 「입벌림」(la béance)의 차이고, 또한 동시에 이것도 저것도 다 아닌 이중부정의 평등일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세계의 모든 존재는 마치 제석천궁에 걸려 있는 인다라(Indra)망의 보석들처럼 반짝거리면서 서로서로 비추고 있는 흔적들의 모습과 같고, 바람따라 울리는 산사의 풍경처럼 또는 새벽 산새들의 지저귐처럼 하나가 울리거나 지저귀면 모든 것이 공명하거나 공감을 나타낸다.

원효에 의하여 해석된 대승의 진리는 허무주의와 엄숙주의의 양극단을 피해가는 길과도 같다. 엄숙주의가 인생의 무의미를 가르치는 그만큼, 엄숙주의는 인생을 과잉의미로 채색하려 한다. 대승이 허무주의가 아니기에 대승은 유의 넉넉함을 안고 있고, 대승이 엄숙주의가 아니기에 무의 허허로움을 또한 품고 있다.


3. 栗谷의 철학과 현상학적 사유

이제 우리는 한국의 전통 철학자로서의 원효를 떠나 유교적인 철학자로서 栗谷 李珥를 해석하여 보기로 하자. 역시 매수의 제약 때문에 그의 철학의 기본을 망원경을 통하여 대충 바라 볼 수 밖에 없다. 16세기의 조선조 주자학의 이념시대에 살았던 그의 철학이 오늘날에 여전히 살아있는 생물로서 거듭 반추되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율곡은 물론 주자학자요, 성리학자다. 그러나 그는 동시대의 다른 주자학자와는 판이한 사유의 생리를 갖고 있었다. 우선 그는 그 시대의 누구보다도 주자학을 단순히 공부하고 본받으려는 「依樣之味」의 태도를 극복하고, 그가 스스로 강조한 「自得之味」의 사색을 귀하게 여겼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는 그 시대에서 거의 금기시되었던 불교의 세계나 노장의 철학도 아울러 안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단지 그는 자기의 시대를 선학인 퇴계의 가르침대로 「감추고 숨겨야 할」(韜晦) 때라고 간주하고 그는 사랑방의 진술과 안방의 담론을 일치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하여튼 이 점에 관하여 더 논급하는 것을 삼가기로 하겠다. 성리학자로서 그는 초점 불일치의 사유구조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즉 그에게 성리학은 다른 유학자들에게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수양학으로서 존재-도학적인 의미의 유일 가치였다. 그래서 그 존재-도학을 통하여 인간은 지성껏 수양만 하면 누구든지 요순과 같은 聖人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의 철칙을 그도 견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그런 聖人之學으로서의 도학이 인간의 정치현실과 역사의 와중에서 별로 실질적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例의 학문이 실현불가능하다는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의 결과 함께 그는 또 성리학을 도학적, 수양학적인 관점에서 생각하기보다 오히려 선천적인 理의 로고스가 어떻게 후천적인 경험의 다양한 현상들과 사귀면서 인간이 세계를 의미화하는 것인가를 해명하는데 큰 관심을 기울였다. 율곡에 대한 우리의 철학적인 관심은 이 후자에게로 향하고 있고, 이것의 경향을 우리는 현상학적이라 부른다.

理氣철학자로서의 율곡은 理氣관계를 「氣가 움직이고 理가 그것을 탄다」(氣發理乘)라고 언표하면서, 「이/기」의 관계를 원효가 말한 「유/무」의 관계처럼 「서로 떨어지지도 않고, 서로 합쳐지지도 않는다」(不相離 不相雜)고 말하였다. 이렇게 보면, 율곡의 철학은 원효의 그것처럼 문자학적인 사유의 논리를 그대로 보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율곡의 사유는 원효에게서 볼 수 없는 체험과 경험의 세계에 대한 존재론적인 가치를 무겁게 두고 있다. 물론 원효도 始覺의 경험적인 출발점을 중요한 요소로 보고 本覺 의 본질적인 의미와 아울러 거두는 철학적인 관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원효의 철학은 체험에서 부터 생각의 실마리를 풀어 나가는 그런 현상학적 성격을 진하게 지니고 있지는 않다. 원효의 경험은 진여와 함께 짜나가는 텍스트의 직물짜기의 한 기호와 같다. 거기에 비하면 율곡은 체험의 현상학적 사실성에서 「理/氣」와 「心/性/情」과 「身/物」의 관계를 생각한다. 원효가 從本而言의 철학자라면, 율곡은 從事而言의 철학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주장은 주의를 요한다. 율곡이 비록 從事而言의 철학자라고 해서 사실성의 특수성에만 머무른 철학자는 아니다. 특수한 사실성에만 종속된 생각은 보편적인 철학자로서의 자격을 가질 수가 없다. 율곡은 사실성의 경험적인 존재의 가치를 중시하였지만, 그는 그것의 특수성을 익명적으로 간직만 한 것이 아니라, 경험의 특수성의 존재론적 중요성을 보편적인 논리로서 이론적으로 승화시켰기 때문에 철학자로서 등록이 된다. 이제 보다 더 구체적으로 그의 사유를 훑어 보자.

율곡은 마음을 氣로 본다. 이 때에 그 개념은 마음을 의식의 활동성으로서 보는 것에 해당할 뿐만이 아니라, 또한 유기체의 기관(器,機)도 의미하고 있다. 마음의 활동성을 그는 「心之已發」이라고 불렀고, 유기체로서의 마음의 氣를 그는 또 「器」나 「機自爾」라고 언표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전통적으로 율곡이 말한 氣卽器를 사람들은 마음의 氣가 그릇(器)과 같다고 풀이하여 왔다. 그런 생각을 하게 한 원인은 율곡 자신에게 있다. 왜냐하면 율곡이 자신의 이기론을 전개시켜 나감에 있어서 理를 물에 비유하고 氣를 그릇(器)에 견주어 설명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비유 자체가 잘못 설정된 것이다. 왜냐하면 그릇은 자발적인 활동성이 전혀 없는 물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율곡 스스로가 氣는 스스로 활동하는 기관(機自爾)과 같다고 언표한 마당에 氣를 그릇에 연결시킨다는 것은 전혀 이치에 닿지도 않다. 율곡의 저런 착각은 그 당시의 언어적인 표상의 관습에 그가 무비판적으로 젖었었기 때문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좌우간 마음이 곧 활동성이요 동시에 유기체적인 기관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안보이는 理를 마음의 性으로서 회임하고 있고, 또 마음은 性을 현상화시키는 기관의 몸으로서 바깥의 지각대상들과 교감하고 있다. 율곡의 사유 세계에서 마음은 안보이는 理가 이미 내재화해 있는 理의 「살」(la chair)로서의 性과 다르지 않고, 또 마음은 물질과 이웃한 기관으로서 몸에 지각된 감각을 의미화시키는 「살」로서의 몸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씌어진 「살」의 개념은 메를로-뽕띠가 말한 의미에서 이해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율곡은 메를로-뽕띠가 말한 지각의 개념을 쓰지 않았다. 그 까닭은 그 당시의 성리학적 관심의 영역에서 지각은 생소한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감정(情)이 현상학적임을 보았다. 왜냐하면 그는 감정을 「人心之動」이나 또 「發出恁地」라 규정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전자는 감정이 人心의 활동성을 뜻하는데, 이 때의 인심이란 막연한 인간의 마음을 말하지 않고, 道心에 대비하여 언급한 것이다. 도심은 성리학의 용어로 마음의 움직임이 전적으로 道理에 합당해서 추호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은 그런 현행을 말하는데 그것은 마음이 진선진미하게 도리와 일치하는 그런 경지를 의미한다. 그것은 유학의 용어로 四端으로 현상화되는데, 율곡은 순수한 도덕적인 마음으로서 도심은 당위적으로 순수하지 못한 인심의 잡스러움과 구별되나 현상학적으로, 즉 사실의 측면에서 四端이 七情속에 포함되어 있듯이, 인심이 도심을 그 안에 아우르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율곡이 「人心之動」이라 했을 때, 그것은 사단과 칠정을 다 포괄해서 언급한 것으로 봐야 한다. 사단도 칠정과 같이 인간의 감정이다. 그런 감정은 그의 표현처럼 「發出恁地」다. 이것은 「촉발되어 나온 그대로의 것」이란 뜻으로 감정이 바로 마음이 몸과 하나의 장의 지평을 형성하고 있는 현상임을 뜻한다. 마음은 理를 육화시키고 있는 기관(氣)이다. 理의 肉化(incarnation)가 곧 性이다. 사단은 인간의 마음이 현상화할 때, 즉 마음의 氣가 활동을 시작할 때, 그 활동이 성리의 化肉的인 의미작용과 일치공명의 순기능적인 스타일을 가질 때에 나타나는 인간 마음의 현상이므로 율곡은 사단이 칠정의 바깥에 존재하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고, 칠정이란 인간 마음의 전체 속에 깃들어 있는 순수한 도덕적 감정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다. 즉 사단은 인간의 잡스런 감정들 속에 있는 순수한 도덕적 감정일 따름이다.

율곡이 말한 감정과 메를로-뽕띠가 말한 지각이 그렇게 먼 거리에 있지 않다. 왜냐하면 감정은 정감적인 느낌의 내감적인 성향을 나타내고, 지각은 감각적인 느낌의 외감적인 경향을 더 강조하지만, 감정과 지각은 다 주체로서의 몸과 화육적인 의식으로서의 마음이 不一而不二的인 관계에서 함께 느끼는 현상이라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율곡이 느낌의 현상을 중시하였다는 점에서 그는 聖人지향의 도학 이외에 보통인간의 마음을 경험적으로 기술하는 일에 깊은 관심을 표명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는 순수한 선험적인 天理와 맞닿는 본연의 性보다 오히려 느낌의 차원과 공생하는 기질의 性을 더 중요시하였기 때문이다. 그가 말한 기질의 성 속에는 안보이는 보편의 의미인 天理와 마음과 몸과 외물이 하나의 뭉뚱그려진 지평의 장을 형성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理 와 氣가 애매하게 하나의 지평을 형성한 그런 「사이 세계」( l'inter-monde)를 메를로-뽕띠는 「살」이라고 불렀다. 율곡이 말한 기질의 성은 곧 메를로-뽕띠의 살과 다를 바가 없다. 기질의 성은 마음을 매개로 하여 정신적인 理(天理)와 몸과 바깥의 사물들이 하나의 의미작용(la signification)의 통일을 이루고 있다. 메를로-뽕띠는 물리적 세계의 통일이 상관관계(la corrélation)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유기체의 통일은 의미작용의 통일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하였다. 의미작용의 통일이란 영혼과 신체의 불가분리적인 통일의 스타일을 말하지만, 율곡의 용어에로 위의 생각을 치환시키면, 그것은 性과 心과 身의 不卽不離的인 통일을 기리킨다. 이런 통일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분산적 통일」(l'unité diasporique)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메를로-뽕띠는 그의 󰡔행동의 구조󰡕(La Structure du comportement)(p. 229 P.U.F)에서 “만약에 영혼이 어떤 표현수단을 지니지 않았다면, 즉 자기 실현의 수단을 지니지 않았다면, 그 영혼은 마치 실어증환자의 생각이 점차 희미해져가고 나중에 꺼져버리듯이 곧 존재하기를 그치거나 또는 영혼이기를 그치게 되리라. 또 신체도 그 의미를 상실하게 되면 물리화학적 조건에로 추락하기 위하여 살아있는 신체이기를 조만간 그치게 될 것이다. 죽어가면서 무의미가 신체에 일어난다. 영혼과 신체는 존재하기를 그치지 않고서는 절대로 분리될 수 없다. 그들의 경험적인 결합은 조그만 물질의 조각에서도 의미를 설정하고 거기에 살게 하고, 나타나게 하고 존재하게 하는 근원적 작용 위에 근거해 있다.” 율곡이 말하는 마음과 몸은 다 같은 氣의 세계에 속하므로 그 둘은 분리될 수가 없는 성질을 띠었지만, 또한 그 두가지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율곡의 말처럼 몸은 마음의 기관이고 또 마음은 몸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또 성리와 마음과의 관계에서도 마음은 성리의 기관이 되고 성리는 몸의 주체가 된다. 그러므로 마음은 어떤 고정된 실체의 개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마음은 주체이자 동시에 기관이므로 마음은 감정과 감각의 현상을 가능케 해 주는 하나의 근원적인 장(field)인 셈이다. 그래서 보편적인 의미의 원천으로서의 理는 세계를 구성하는 의식의 선험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육화된 마음인 몸을 통하여 그리고 몸과 함께 느껴지는 현상에 대하여 의미화의 작용을 수행한다. 그런 점에서 몸과 마음은 一而二, 二而一의 관계를 알리는 매듭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아니며, 몸 즉 마음은 정신과 물질을 기왓장 입히기나 포장싸기와 같은 방식으로 정신과 물질을 연루시키고 동반자로 만드는 일종의 「가정적 종합」(la synthèse présomptive)의 기능을 행하고 있다. 이 용어는 메를로-뽕띠가 쓴 것으로 지각의 수준에서 이루어지는 주관과 객관, 자아와 세계와의 애매한 종합을 가리킨다. 애매하다는 것은 「주관/객관」, 「세계/자아」를 칼로 두부 자르듯이 확연하게 구분할 수 없는 현상, 즉 理와 氣의 존재양식이 서로 서로를 향하여 약간씩 구부러지고 휘어진 현상을 뜻한다.

그런 존재양식에서 본질의 의미와 몸에 와 닿는 실존의 여건이 명백히 나누어질 수가 없다. 율곡의 현상학적인 철학에서 본질과 실존을 이원화한다는 것은 성립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질의 理는 실존의 氣와 不卽不離의 매듭을 형성하고 있어서 어떤 실존의 감정이나 감각도 본질의 의미와 그 의미작용을 떠나 홀로 존재할 수가 없고, 모든 실존적인 氣 의 작용은 이미 본질적인 理의 의미에 의하여 자화되어 있거나 부하되어 있다. 따라서 순수한 본질이 존재할 수 없듯이, 순수한 氣가 일상의 세계에서 현상학적으로 실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맑고 드높은 하늘의 푸르름은 그것을 올려 보는 청춘의 눈에 이미 어떤 의미를 심어주고, 상대방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는 것을 보자마자 그것은 이미 어떤 의미의 메시지를 동시에 던져주고 있다. 율곡은 이런 理와 氣의 교차왕복현상을 理氣의 不相離不相雜(서로 떨어지지도 않고 서로 섞이지도 않음)의 현상이라고 불렀고, 그런 현상을 띤 理氣구조를 표시하기 위하여 「理通氣局」이나 「理一分殊」라는 명제를 독창적이라는 자부심을 같고 그의 동료자 친구인 우계 성혼에게 은밀히 토로하기도 하였다. 위의 명제들은 그의 철학적인 詩인 「理一分殊賦」에서 잘 기술되고 있다. “ 무형은 유형에서 드러나니 理가 어찌 숨어서 나타나지 않으랴. 無가 妙有를 머금고 有가 眞無를 나타낸다. 道는 器(기관) 밖에 있지 않고, 理는 物과 함께 존재한다.(形無形於有形兮 理何隱而不彰 無含妙有 有著眞無 道非器外 理與物俱)”. 「理通氣局」을 문자 그대로 옮기면, 그것은 보편적인 理는 어디든지 통하지만 그 理는 氣의 실존적인 제약을 받는다는 뜻이다. 「理一分殊」는 하나의 보편적인 理가 특수한 氣의 제약으로 말미암아 다양하게 나누어진다는 뜻이다.

이런 언표들은 이미 메를로-뽕띠가 그의 󰡔지각의 현상학󰡕 (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에서 지적한 바가 있지만, 실존의 위상과 무관한 본질의 탐구는 공허하고, 이미 거기에 있어 온 세계를 고려하지 않은 초월의 사색은 꿈꾸는 공상에 불과하고, 역사적인 기저를 외면한 정밀과학은 구체성이 없는 추상에 그친다는 생각과 맞닿을 수 있다. 율곡이 말한 위의 명제들은 그 자체가 행위나 과학일 수는 없지만, 모든 행위와 모든 과학을 가능케 하는 원초적인 바탕이 된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氣와 같이 춤을 추는 理는 이미 현상화된 보이는 존재양식이기에 우리는 보이는 존재양식의 현상을 통하여 안보이는 理의 본질을 동시에 느낀다고 볼 수 있다. 메를로-뽕띠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가 느끼는 현상은 본질로부터 영감(l'inspiration)을 얻고, 다양한 현상들은 각각 다양한 시공에 따라서 본질을 발산(l'expiration)한다고 말해도 무방하리라.(L'oeil et l'esprit, p.31-32 참조). 이처럼 율곡의 理氣 철학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생활세계의 의미가 보편적인 이성의 빛에 의하여 투명하게 환히 비쳐지는 것도 아니고 따라서 현실의 의미에 대한 해석상의 기원도 이성의 토대위에서 완결되게 정리되는 것도 아님을 뜻한다. 理와 氣는 어느 것도 존재론적인 선취권을 주장할 수 없다. 오직 理氣의 존재, 理氣 의 살만이 있을 뿐이다. 구태여 그 理氣의 살을 변별하자면, 理는 氣의 영혼이고, 氣는 理의 몸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이런 理氣의 살에서 보면, 철학적 진리는 마치 기하학자의 원이 빠리나 서울에서 똑같듯이 모든 경험을 초월하여 동일한 질로서 이해될 수 없음과 같다.(Phénoménologie de la perception p.247 참조) 율곡의 철학을 메를로-뽕띠의 용어로 옮겨 놓으면, 율곡은 그의 성리학을 통하여 「理/氣」의 「얽힘장식」(l'entrelacs)이나 「교차배어법」(le chiasme)의 不一而不二의 관계를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 관계가 바로 「살」이다. 「理通氣局」의 명제나 「氣發理乘」의 논제는 결국 살의 현상을 보여주고, 동시에 그 살은 人心임을 의미한다. 인심은 理의 내면성과 氣의 외면성이 서로 만나는 애매한 지평이다. 인심은 이미 정신과 물질, 보편과 특수, 형이상과 형이하의 상호 살아있는 교감과 같다. 그래서 인심으로서의 이 세계를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선악에서 투명한 것도 아니어서 선악이 다르나 그렇다고 다른 곳에 각각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理는 세계가 제공하는 氣發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理의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본질도 이 세계가 운명적으로 안고 있는 야스퍼스(Jaspers)적인 「한계상황」( Grenzsituation)이나 마르셀(G. Marcel)이 말한 「깨어진 세계」(le monde cassé)나 칸트(Kant)가 말한 「비사교적 사교성」(ungesellige Geselligkeit)이나 라깡(Lacan)이 말한 「갈라진 금」(la fente)의 이중성에서 결코 해방될 수 없음을 율곡이 이미 16세기에 은연중에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그의 비공식적인 글들의 행간에서 그는 유학의 도학적 신앙과 다른 경험적인 인심들의 초점불일치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4. 한국철학과 보편성 창조의 문제


한국은 신라 통일기 이후부터 급속한 속도로 중국적인 보편성(pax Sinica) 속으로 가입하여 왔었다. 그것의 가장 큰 원인은 고급문화를 사변적으로 담을 수 있는 문자의 결핍이 아니었던가 하고 짐작해 본다. 세종대왕 이후에 훈민정음이 문자로서 존재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지성인들이 그것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적인 사유의 특이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동안에 한자문화에 젖어 왔었기 때문에 중국적 보편의 일원으로서의 사유논리에 함입되어 온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할 것이리라. 한국의 정신문화가 한국어에 의하여 어문일치의 방식으로 사색되어 온 역사가 극히 짧다. 광복이후 우리는 중국적 보편에서 제빨리 빠져 나왔지만 아직도 특히 미국을 위시한 서구적인 보편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사고방식에서 탈출하고 있지 못한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렇다고 필자가 문화적인 쇄국주의나 국수주의를 옹호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런 태도들은 문화의 풍토를 척박하게 만들고, 또 모든 문화의 창조가 잡종의 비옥한 교류에서 발아한다는 이 세계의 생리를 모르는 소치다. 단지 필자가 주장하고픈 것은 한국문화가 보편을 너무 수입만 하는 것으로 여기는 사고의 관습을 한국지성이 탈피하지 않고서는 한국이 다양한세계 속에서 새로운 하나의 보편을 창조하기가 무척 어려워지리라는 전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성은 수입되기도 하고 수출되기도 해야 한다.

앞에서 우리가 원효와 율곡을 보편적인 철학의 언어로 해석해 보려고 시도한 것도, 從本而言의 차원에서 한국의 전통철학도 능히 당당히 세계적인 수준에서 해독될 수 있는 이론들을 갖고 있음을 입언해 보기 위해서이다. 단지 현실적으로 언어의 장벽을 뚫을 수 있는 준비가 아직 성숙되지 못하였기에 그런 사상들이 시원하게 회통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은 우리의 노력과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믿는다. 그러나 전통철학의 보편적인 해석만으로 한국철학의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철학은 문화와 같은 생물이어서 부단히 자기의 창조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철학자가 아무리 애를 쓰도 서양철학과 중국철학에 못박혀 있는 한에서 그는 기껏해야 이류를 면치 못하리라. 이것은 외국의 심오하고 정교한 이론에 눈 감아야 한다는 그런 자폐증을 결코 뜻하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이른바 「국학」이 그런 자폐증적인 경향에서 일반적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한국학의 내일을 위하여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의 주제는 거기에 있지 않다. 왜 하이데거와 같은 사유의 철학자가 프랑스나 미국에서 나오지 않고 독일에서 출현하는가? 왜 베르그송(Bergson)같은 철학자가 프랑스적인 스타일을 지니는가? 왜 실용주의가 미국적인 냄새를 유독히 피우는가? 왜 화엄종은 특별히 중국 불교의 분위기를 느끼게끔 하여 주는가? 왜 원효는 중국의 고승들에서 맡기 어려운 회통이론을 전개하였는가? 왜 한국의 유학은 중국이나 일본의 것과 달리 인간의 문제에 그토록 관심을 기울렸던가? 이런 의문점들은 창조적인 모든 보편의 철학사상이나 이론들이 모두 한결같이 자국의 문화적인 배경을 암묵적으로 갖고 출발하였음을 의미한다. 이것이 우리가 앞에서 말한 從事而言의 의미다. 이 從事而言의 사살성은 의식적으로 명시화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또는 전의식적 차원에서 은닉되어 있다. 한국인은 누구든지 이 한국적인 사실성(언어적 사실성, 역사적 사실성, 문화적 사실성, 지리적 사실성, 의식주적 사실성, 친족구조적 사실성, 경제적 사실성 등등)의 제한적인 창문을 통하여 사유한다. 이 사실성들은 우리의 자유스런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특화시킨다. 이 사실의 익명적인 근거를 떠나서 한국인의 생각과 믿음과 느낌이 실존하지 않는다.

그 이름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모든 세계의 철학자들은 각각의 사실적인 특수성들을 의식하였든 의식하지 못하였든 간에 근본적으로 사유를 주제화시키는(thetic) 前-無-의식의 바탕위에서 대상화된 주제(thematic)를 철학적으로 숙고하였던 것이 아닌가? 바로 철학적 창조-이것이 곧 보편화이다-는 익명적인 각 문화의 전통을 특화의 운명으로 안고 있으면서 각자의 각자성의 스타일을 보편적으로 승화시킨 것이거나 또는 승진시킨 것이 아니겠는가? 보편성은 어떤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각자성의 스타일을 타인들에게 보여주어 공감케 하는 것으로서의 상호주관적인 승인이나 인정과 다름이 아니리라. 헤겔( Hegel)이 이미 이 점을 보지 않았던가! 베르그송과 동시대의 프랑스 철학자로 한국에 거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모리스 블롱델(Maurice Blondel)은 철학의 생명에 두가지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말하였다. 그 하나는 철학의 사유적인 측면인 la noétique요 또 다른 하나는 철학의 영혼적인 측면인 la pneumatique이다. 전자는 철학이 보편적인 사유의 논리를 추구하는 학문이기에 철학의 어떤 주제라도 논리의 보편적인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하면, 그것은 개인적인 性情이나 시간적이거나 공간적인 한계를 결코 초극할 수 없는 특수성의 맹목적인 힘으로서 꿈틀거리고 말게 되고 그 힘의 의미를 모든 이가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논리로 승화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후자는 철학은 철학자가 실존적으로 느끼는 영혼의 특수성을 외면하고 사유의 논리로 보편화하지 않음을 뜻한다. 즉 모든 철학이 비록 시공을 초월한 보편성의 사유를 겨냥한 진리를 생각한다 하여도, 철학은 역시 어떤 철학자의 철학이다. 그 철학자가 그런 철학적 사유를 보편의 이론으로 논리화하지만, 보편의 이론 뒤에는 그 철학자의 실존적이고 특수적인 영혼의 특이한 숨결이 숨어 있다. 철학자의 영혼의 호흡은 그 시대의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조건의 제약이 한정 시켜준 운명과 같은 안보이는 틀이 있다. 그 틀이 그를 그러 그러한 철학자로 형성케 하였다. 대개 철학이 이론화해 버리면 저런 실존적인 영혼의 숨결과 그런 숨결을 가능케 한 시공의 틀은 전면에 나타나지 않고 배후에 은닉되어 숨게 된다. 그래서 그것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보통 그것을 말하지 않고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그런 철학의 pneumatique한 요소는 감추어져 있으나 사유의 noématique한 질술들의 행간에 마치 겉감 속에 감추어진 옷안처럼 자신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블롱델은 살아 있는 철학의 연구는 저 두 요소를 동시에 파악해야만 구체화된다고 말하였다. 그의 생각을 우리는 가볍게 여겨서는 안될 것 같다. 왜냐하면 철학적인 사유의 보편성의 창조는 추상적인 사고의 개념적인 논리만을 익히는 그런 무미건조한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의 철학은 늘 보편성을 문화선진국에서 빌려 오는 것으로만 여겨 왔다. 그래서 그 차용한 보편성을 알차게 해석하거나 주석하는 것으로 능사를 삼아 온 것이 한국에서의 철학의 기본자세 처럼 간주되어 왔다. 차용한 보편성의 보다 심도 깊은 이해를 위하여 어느 정도의 自得之味가 발생할 수 있었고 또 그렇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自得之味의 본질은 주해상의 독특성의 범주를 벗어 나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스콜라철학적인 학문의 태도는 엄밀히 말하여 중세기적인 사유풍토를 벗어 나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세기는 다 pax Romana나 pax Sinica의 중심문명에 대한 주석학이 변방 국가들의 학문이었다. 그런데 서양사회에서 근대화의 물결이 일어나면서 각국이 자국의 민족국가로 모든 사고나 제도의 축을 바꿔 놓았다. 즉 근대화는 보편적인 중심의 축이 각국의 민족국가 내지 국민국가로 다양화 되는 그런 시대였다. 사실상 서양의 각국의 철학사는 이 때부터 자국의 특성을 뚜렷이 지니면서도 서양문명의 보편성을 형성하는데 내포되는 함량의 무게에 의하여 근대문화 형성의 철학적인 비중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대개 이르면 16세기 말에서 보통 17세기를 거쳐 유럽의 각국은 자국의 철학적인 사색의 특성을 잡아나가기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서양철학사에서 익히 알고 있듯이 독일, 영국, 프랑스가 철학적인 사색의 선두주자로 역사에 부각되었으며, 그런 전통이 20세기 까지 이어져 오다가 미국이 다시 유럽철학의 아류를 털고 독특한 찰학의 무대를 새로이 창조하였다.

한국의 철학사도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조선시대의 성리학은 송대 성리학의 주해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론 그 중에는 조선조 성리학의 自得之味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를 두고 한국인의 독창적인 창조성이 입증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보편적인 설득력이 없다. 세상에 어느 나라치고 그 정도의 독특성을 안가진 나라가 또 있겠는가? 이상한 우월감은 이상한 열등감의 음성적인 반영이다. 조선시대의 pax Sinica의 문화는 서양사회가 중세기에 다 pax Romana의 문화의 울타리 속에 갇혀 있었던 시절과 같은 현상이다. 그러므로 중세기에 조선 성리학이 송대 성리학의 주해사였다는 사실은 중세사의 특성에 적합한 모습이었다. 우리도 실학시대에 와서 조선의 독특한 문화의 생리를 찾으려는 운동이 일어나게 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런 역사의 추세였다. 실학시대가 내 걸은 이념이 바로 實事求是다. 이 이념은 주어진 보편의 관념에서부터 철학적인 사색의 실마리를 구할 것이 아니라, 각나라의 민족이나 문화에 실존적으로 느껴지는 사실들의 사실성 탐구에서부터 학문이 출발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그 사실들의 생기현상은 특정지역과 시간의 역사에 제한적인 특수성을 띠고 있지만, 그 사실성의 의미가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인 의미를 띠는 것으로 공명의 울림을 자아낼 때에 우리는 특수적인 사실들의 사실성 탐구에서 보편성의 의미를 추출해 냈다고 말할 수 있으리라. 이 때에 우리는 어느 나라의 철학자가 대단히 설득력이 있는 창조적인 사색의 빛을 계발하였거나 계시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독일 관념론의 철학은 그 당시 독일의 제후국가가 처한 시대적인 상황과 독일민족의 反 pax Romana의 정신과 중세기에서부터 은연중에 흘러 온 낭만적인 독일인의 정서와 분리되어서 생각되어질 수 없다. 프랑스철학이 지닌 합리적인 수학의 정신도 프랑스어가 지닌 고도의 합리적인 문법체계와 중세기문화의 중심국으로서 쌓아 올린 논리적이고 수사학적인 사유의 계발전통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영국의 경험론만 하더라도 그 철학의 전통은 프랑스의 논리적인 명분의 중앙집중적이고 통일체계적인 문화의 스타일을 싫어하면서 대륙과 다른 독자적인 사색의 길을 이미 중세기말부터 형성해 오고 있었다. 그래서 대륙의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와 다른 둔스 스콧투스(Duns Scotus)가 스콜라의 철학을 실재론에서부터 유명론에로 끌고 가는 길을 개척하였고, 급기야 윌리엄 옥캄(William Ockham)은 실재론적인 스콜라 철학의 붕괴를 자초시키면서 본격적인 영국철학의 터전을 쌓는데 이바지 하였다. 영국 경험론의 철학의 이론도 그 당시 영국의 정치 경제적인 상황과 분리되어 생각 할 수가 없다. 20세기에 들어 와서 미국은 늘 대륙의 사상적인 아류 노릇을 하던 지성적인 전통에 제동을 걸고 미국의 경제적인 국부에 맞는 실용주의를 계발하면서 미국철학의 기치를 새로이 세계철학사의 무대위에 달게 되었다.

조선말기의 실학의 實事求是의 운동은 대단히 지성사적으로 중요한 몫을 담당할 수 있었지만, 근대국가를 형성할만한 경제력과 군사력의 미비로 인하여 자국의 독립성을 유지 보호할 수 없었기 때문에 實事求是的인 학문을 개발시켜 근대국가로서의 정신문화를 현실적으로 일으킬 수가 없었다. 자국의 사실에 대한 사실성의 탐구를 통하여 자국의 근대국가로서의 성공을 기약하려던 그 실학자들의 꿈은 증발되고 근대화의 시절에 일본식민 정책의 일환으로 일본을 통한 서양철학의 일단계의 수입이 있었고, 해방이후 미국을 위시하여 유럽제국으로부터 우리가 직접 수용하는 이단계의 새로운 철학적인 보편성의 수입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조선시대의 송대성리학의 주해사의 자리가 이제는 歐美제철학의 주해사가 다시 들어 앉게 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한국철학은 국경의 개념에 의하여 구분되거나 국적의 뜻으로서만 평가되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한국철학이란 미국철학이나 불문학을 전공하는 <가르치는 교수단>(teacher's group)의 일원과 같이 소승적이며 폐쇄적인 전공영역으로서 한국역사 속에 등장하는 철학자들의 학설과 이론들을 그냥 교수해주는 과목에 불과하게 된다. 그런 한국철학 과목이 전혀 무의미한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과목의 교수는 한국문학사나 한국경제사처럼 한국철학사의 존재를 객관화시켜주는 역할을 맡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승적인 개념에서 한국철학을 다시 성찰하면, 한국철학은 한국철학사를 쓰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향하여 철학적인 문제의 새로운 제기와 그 해법을 새로이 고도로 세련된 지성으로 논리화하거나 깊이 있는 정신의 통찰력으로 전대미문의 새로운 사색의 심오함을 전개해 나가는 문화의 철학적인 사유의 창조적인 능력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능력의 축적은 <가르치는 교수단>의 수준과 다른 지평에서 움튼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지식을 단순히 교수하는 학자들이나 교수들의 차원이 아니라, <탐구하는 사유인>(researching thinker)의 차원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탐구하는 사유인>은 수입된 철학의 보편성을 분해하는 작업에만 매달리는 것도 아니고, 이미 지나간 자국의 先哲들의 이론적인 흔적들을 다시 캐내는 고고학적인 발굴작업에만 전념하는 것도 아니다. <탐구하는 사유인>은 그에게 주어진 특수한 사실들의 사실성을 해명함과 동시에 그 해명이 인간의 보편성에 등록될 수 있게끔 可知化시켜나가는 지성의 높이와 정신의 깊이를 사랑한다. 그래서 그런 인간의 사유를 쁠롱델은 <사유된 사유>(la pens&eacute;e pens&eacute;e)가 아닌 <사유하는 사유>(la pens&eacute;e pensante)라고 명명하였다. <사유하는 사유>는 철학을 대상화하는 사유가 아니라 철학을 언제나 현재적으로 사유하는 진행형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그런 사유는 구체적인 자신의 경험과 체험에 뿌리를 박고 거기서부터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보편성의 논리적이고 정신적인 승진을 뽑아낸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철학의 창조는 철학자의 영혼이 뿌리를 박고 있는 특이한 배경의 pneumatique한 것을 바탕으로 하고 거기서부터 어떤 무늬를 그려내는 no&eacute;tique의 표출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간의 보편적인 사유의 표출(expiration=ek-spiration)은 그냥 대가 없이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사유하는 사유>들의 살아있는 철학으로부터 많은 지성적 내지 정신적인 영감(inspiration=in-spiration)을 받는 대가로 되살아난다. 즉 창조라 하여서 천재가 하늘에서 그냥 따오는 것이 아니라, 천재들이 철학적으로 이미 표출시켜 놓은 사유의 생명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얻은 영감과 철학적인 탐구자가 다른 한편으로 느꼈던 시공의 특이한 사실과의 합류점에서 철학적인 창조가 소용돌이 속에서 움튼다고 보여진다. 그 합류점은 곧 차이와 접목의 복합성(complex)이 늘 작용하고 있기에 생각이 흑백적으로 단순하게 채색된 사람은 탐구자의 거주지에 등록될 수 없을 것 같다. 흑백적인 사고의 소유자는 지성적으로 유치하고 정신적으로 깊이가 없기 때문에 그런 사고는 철학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사고의 소유자가 압도적으로 우세한 곳에서 창조적인 지성은 숨을 쉬지 못하고 질식사하고 만다. 차이와 접목의 합류적인 복합성이 철학으로 전용되면, <사유하는 사유>로서의 철학은 <내적인 복합성>(implex)을 이루게 되어, 그가 영감으로 받은 기존의 사유와 또 그가 현재의 진행형으로 느끼고 있는 사실의 사실성과의 사이에 공통으로 이어지는 다리가 있는가 없는가를 검토한다. 다리가 있을 수 있다고 할 때에 그는 그 다리를 가시화할 것이요, 다리가 없다고 할 때에 그는 영감으로 받은 기존의 사유를 넘어서 새로운 사유, 즉 전대미문의 <사유하는 사유>통하여 그 사실의 보편적(설득력이 있는)인 사실성을 찾기 위하여 지성과 정신의 도전을 끝없이 수행하리라. 그런 곳에서만 창조가 솟는다. 결국 문화의 수준은 창조의 꽃망울터짐을 비옥하게 이룬 땅의 신선도와 비례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썩은 문화와 죽은 사고와 같은 것이라면, 창조적인 문화는 늘 신선한 생각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는 풍토와 다르지 않으리라.
출처 : 동양철학 나눔터 - 동인문화원 강의실
글쓴이 : 권경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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