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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

기군실-월산대군

기군실(寄君實)-월산대군(月山大君)

군실에게 부친다-월산대군(月山大君)

旅館殘燈曉(여관잔등효) : 여관 새벽에 가물거리는 불빛

孤城細雨秋(고성세우추) : 아무도 없는 성에 가랑비 내리는 가을

思君意不盡(사군의부진) : 그대 생각하니 온갖 생각 다 일고

千里大江流(천리대강류) : 천리 기나긴 큰 강물 흘러만 가는구나




월산대군(1454-1488)은 원래 예종의 왕세자였으나 한명회의 술수로 왕위를 동생 성종에게 빼앗겼다. 이후로 월산대군은 자연을 벗 삼아 풍류 생활을 하였다. 작시에 능하여 뛰어난 작품을 남겨 중국에까지 명성이 자자했다. 그러나 35세로 단명하였다.

먼저 기구를 보자
旅館殘燈曉(여관잔등효) : 여관 새벽에 가물거리는 불빛

작가는 지금 여관(旅館)에 있다
새벽(曉)이 다 되도록 잠 못 이루고 있다
여관의 등불은 깜빡이고 있다
등불이 깜박이는 것은
아마도 밤새도록 타들어 둥잔 불빛이 희미해져(殘燈) 있는 것인가
아니면,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지고 있음에서인가
그도 아니면 아직은 이른 새벽이라서
다른 인가는 모두가 잠들어 있음에서인가
아무튼
새벽 공기는 차갑고
인가는 아직 잠들어 있으나
여관은
여러 가지 사연을 지닌 나그네가 잠시 머물며
그들의 목적을 위해
항상 다른 출발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여관은 새벽에도 불빛이 깜빡이고 있는 것이다
싫어도 새벽에 길 떠나야 하는 나그네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는
작자가 처한 환경이 묘사되고 있다

승구를 보자
孤城細雨秋(고성세우추) : 아무도 없는 성에 가랑비 내리는 가을

여관에서 새벽에 길 떠나려는 나그네
그가 머무는 여관이 속한 성에는 가는 가랑비가 내리고 있다
그리고 계절은 이미 가을이고 성은 새벽이라 사람의 출입이 적다(孤城)
새벽에 내리는 가을(秋) 보슬비(細雨)는 나그네에게 얼마나 귀찮고 쓸쓸하겠는가

여기서는 나그네의 외롭고 쓸쓸한 처지가
나그네를 둘러싸고 환경인 텅빈 성에 비 내리는 가을이라는
보다 큰 환경이 설정됨으로써
외롭고 쓸쓸한 작가가 처한 처지가 극대화 된다

전구를 보자
思君意不盡(사군의부진) : 그대 생각하니 온갖 생각 다 일고

이러한 더 할 수 없는 곤궁한 처지에
갑자기 친구가 생각난 것이다(思君)
제목에서의 군실(君實)은 작가의 친구이다
생각할수록 더욱 간절해지는 그리움(意不盡)
여기서 작가의 외로운 처지란 어떠한 것일까
아마도 작가가 세자의 지위에서
타의에 의해 왕위의 계승권을 빼았긴 원통하고 아쉬운 처지가
그의 삶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큰 환경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 빼앗은 세력의 견제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견제는 이런 저런 구실과 방법으로 계속 되었을 것이다
외롭고 쓸쓸해서 마음에 생긴 빈 자리를 채우는
하나의 방법으로써 생각난 것이 아닐까
지금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지난날은 서로가 다정했던 사이였다
떨어져 있기에 더욱 그리워지는 사람
지금은 추억만이 나그네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 뿐이다
다른 것은 어떤 것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작가의 처지가 가련하다

여기서는
작가가 처한 외로운 처지에서
마음을 차지하고 있었던 떠나버린 친구를 떠올림으로써
작가의 갈등을 해소할 하나의 가능성이 제시됨으로써
장면이 전환되었다

결구를 보자
千里大江流(천리대강류) : 천리 기나긴 큰 강물 흘러만 가는구나

그러나
눈앞의 현실은, 그에게로 다가가는 길이
큰 강물이 나있어 막혀있는 것이다
그 큰 강(大江)은 천리(千里)나 먼 곳까지 이어져 흐르고 있다(流)
그러니 지친 몸으로 어떻게 그곳까지 찾아갈 수 있을 것인가
더구나
가을비 내리는 이른 새벽에 다른 급한 일로
길 떠나야 하는 처지에 있는 작가의 입장에서 말이다
그러한 경우가 아니면

또한, 영락한 내 처지에서
친구 있는 곳까지 찾아갈 마음이 있다 해도 어찌 찾아갈 수 있을 것인가

여기서
천리 긴 강물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가 문제다
천리 긴 강물을 친구에게 달려가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로 보는가
아니면
친구 있는 먼 곳까지 찾아가고자 하는
<끊임없는 작가의 그리운 마음을 은유한 표현>으로 보는가의 문제이다

어느 경우에도 간절한 그리움의 미감이 형성되는 데에는 문제는 없다
다만, 그것이 하나의 <장애물>로 장치 되었다고 볼 때는
<비애미>가 조성되고
<끊임없는 그리운 마음의 은유물>로 장치되었다고 볼 때는
슬픔 가운데서도 희망의 끈을 버리지 않는 <숭고미>가 짙어지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궁극적으로 <친구를 그리는 작가의 속마음>이 드러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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