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외교적 노력 ###
아르헨티나의 한방을 먼저 맞은 영국은 전시내각을 편성하는 동시에 다른 나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한 외교적 노력에 들어갑니다. 그 사이에 영국은 기동함대 편성을 위한 치열한 노력이 펼쳐지고, 아르헨티나도 추가 병력을 열심히 포클랜드로 수송합니다만...
일단 외교적인 노력으로 상대방의 대한 지원을 막기위한 길닦기 노력이 여기 저기서 펼쳐집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영국의 완승으로 끝나지만..아르헨티나는 남미의 지지도 얻지 못하고, 승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의 지지도 얻지 못하며 오히려 적 편에 서게 합니다.
먼저 양측의 외교노력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 등장인물 >
런던 : 대처 수상, 핌 외무장관(케링턴 장관은 사건의 책임으로 짤렸음), 노트 국방장관, 화이트로 내무장관, 파킨슨 보수당 당수.
워싱턴 : 레이건 대통령, 헤이그 국무장관, 헨더슨 미국주재 영국대사, 에스테반 타카스 미국주재 아르헨티나대사
부에노스 아이레스 : 갈티에리 대통령, 도조 장군, 아나야 제독, 멘데즈 외무장관
유엔 : 쿠엘라 의장, 파슨스 영국대사, 로카 아르헨티나 대사(나중에 로스로 바뀜)
(1) 영국의 외교적 대응
영국의 대처 수상은 즉각 외교적 경제적 대응을 지시한다.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중립적 위치를 취하고 헤이그 국무장관으로 하여금 중재를 모색토록 한다. 영국의 요청에 의해 유엔에서의 논의가 시작된다. 영국이 아주 유리한 곳인 유엔에서...
(2) 각국의 지지를 요청하는 영국
사우스 조지아섬에서의 일로 시작된 런던과 부에노스 아이레스간의 대화는 포클랜드의 침공으로 더욱 빨라지고 있었다. 영국은 다각적인 외교 노력으로 유엔과 EEC, 나토, 영연방국가들의 지지를 받는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미주기구(OAS)내에서도 지지를 얻는데 실패한다.
3월 31일, 헨더슨 미국 주재 영국대사는 워싱턴에서 레이건 대통령과 헤이그 국무장관을 연쇄접촉하며 영국의 입장을 설명하고 지지를 부탁하나 만족할 만한 성공을 얻는데 실패한다. 당시 미국은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는데, 믿었던 대처는 이러한 미국의 태도에 실망한다. 사실, 미국은 라틴아메리카의 우방과 영국과의 전통적 우방관계에서 난감한 처지에 빠져있었다.
(3) 유엔에서의 치열한 활동
아르헨티나의 침공 직전인 4월 1일 저녁, 파슨스 유엔주재 영국대사는 즉각적인 유엔안전보장이사회 소집을 요청한다. 침공군이 다음날 포클랜드 수역에 다가오자, 안전보장이사회에 영국이 주도한 결의안(502호)이 제출되는데 이 안에는 포클랜드에서의 모든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고 아르헨티나군의 즉각적인 철수와 양측의 외교적 대화를 담고 있었다.
투표결과는 영국의 의도대로 나온다. 단지 파나마만이 이에 반대하였다.
(4) 헤이그의 셔틀외교
4월 7일부터 헤이그의 2주간, 3만 마일에 걸친 셔틀외교가 시작된다. 그는 즉시 영국으로 날아간다. 그의 해결방안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첫 번째, 포클랜드 주변에서 양측의 군대 철수, 두 번째, 중립적 행정관의 임명, 세 번째, 시간을 두고 정착지 협상으로의 방향이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자신의 영유권을 한 발치도 양보하지 않고, 또한 영국도 안전보장이사회의 결의안을 업고 아르헨티나군의 즉각적인 철수를 주장한다.
헤이그는 4월 19일까지 2번씩 양국을 방문하며 중재에 나섰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얻는데 실패한다.
(5) 유럽경제공동체(EEC)의 영국지지
부루셀에서의 영국의 외교적 노력으로 EEC는 영국에 전폭적인 지지를 선언하고, 아르헨티나에 대한 경제제제를 결의한다. 즉시 모든 자동차류와 무기에 대한 금수가 실시된다.
(6) 미주국가들의 중립
침공 1주일만에 영국은 각국의 지지를 얻는다. 그동안 기동함대의 선발대는 남대서양으로 향하고 있는 중이다.
칼티에리 대통령은 영국의 대응과 세계 여러 나라(남미 국가들까지도)의 움직임을 완전히 잘못 판단하고 있었다. 4월 26일, 아르헨티나의 요청에 의해 미구기구(OAS)의 외무장관 회의가 위싱턴에서 열린다.
회의 결과, 포클랜드에 대한 아르헨티나의 영유권을 인정하고 영국에 대해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 (사실 4월 26일은, 영국특공대가 사우스 조지아섬을 다시 탈환하였을 때임..)
4월 말,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은 더 이상의 해결기미가 보이지 않자 영국에 대한 지지를 선언한다. (먼저 침공한 국가는 아르헨티나라는 이유로....궁색한 변명이지만) 즉시 아르헨티나에 대한 무기금수를 실시한다.
핌 영국 외무장관이 미국을 방문하고 평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 시도하는 모습을 보인다.(연막일런지..) 참다 못한 페루가 나서서 유엔에 해결방안을 제출하나, 이제 남대서양에서의 파고가 높아지고 더욱 차가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양측간의 선택의 폭이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5월이 시작되고 두 번째날, 아르헨티나 순양함 “제너럴 벨그라노”호가 영국 핵잠수함 “콘커러”호의 어뢰에 얻어맞아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이제 대화는 물 건너가고 군사적 해결방안만이 떠오른다. 정해진 수순입니다만....
(7) 영국의 군사적 대응
영국이 기동함대를 편성하고 남대서양에서 작전에 들어가 전투위치를 잡는데에 4월 한 달이 소모된다. (거리를 생각하면 대단한 능력임....)
이미 3월 29일, 포클랜드 수역에 혼자 외로이 남아있는 HMS Endurance 호를 지원하기 위한 지원선박을 출발시키는 한편, 세 척의 핵잠수함(스파르탄, 스플랜디드, 콘커러)에게 포클랜드 수역으로의 출동을 명령한다.
영국의 전시내각은 4월 1일, 포클랜드 탈환을 위한 기동함대편성을 결정하고, 지브롤터 해군기지에 정박해 있던 핵잠수함 “스파르탄” 호가 Mk.24 타이거피쉬 어뢰를 장착하고 제일 먼저 포클랜드 수역으로 출발한다.
4월 12일, 스파르탄호가 포클랜드 해역에 도착하자, 영국은 포클랜드를 중심으로 반경 200마일을 전쟁수역으로 선포하고, 이수역안의 아르헨티나 선박은 경고없이 격침될 수 있다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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