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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포클랜드전쟁(21)-아프헨티나군의 항복

### 아르헨티나의 항복 1 ###


(1) 스탠리에 입성하는 영국군과 아르헨티나군의 항복


1982년 6월 14일, 포클랜드 영국 지상군은 스탠리 주위의 거의 모든 곳을 손에 넣고 있다. 제45코만도는 투시스터스, 제42코만도는 헤리엣산, 제3공수대대는 런던산, 제2공수대대는 와이어리스, 스콧근위연대는 텀블다운, 구르카연대는 윌리엄산를 확보하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새퍼 능선은 웰시 근위연대의 목표였는데, 웰시근위연대는 RFA 서 갈라하드에서 벌어진 참화로 숫자가 많이 줄어 있었다. 6월 11/12일, 약화된 웰시근위연대 병력 지원을 위해 제40코만도 병력 일부가 합류한다.

6월 13/14일, 이들 혼성 부대는 텀블다운과 윌리엄산을 공격하는 부대의 예비대 역할을 수행하려고 했으나 지뢰지대에 빠져서 큰 혼란을 겪으며 이곳을 빠져나오는데 진을 다 뺀다.

이 때문에 제45코만도가 투시스터스를 출발하여 새퍼 능선에 대한 공격을 하기로 결정된다. 제45코만도가 공격을 위해 이동하는 사이 웰시근위연대와 제40코만도 혼성부대는 헬기편으로 간신히 지뢰지대를 탈출한다.

헬기로 구출된 이들은 새퍼 능선 정상에 착륙하고 도보로 이동중인 제45코만도를 기다린다. 아르헨티나군 대부분은 이미 스탠리로 도망가기 바빴고 겨우 몇몇 포대만이 응사하고 있었다.

4대의 스카웃 헬기들이 무디부룩에 위치한 아르헨티나군 포대에 대해 SS-11 공대지 미사일을 사용하여 공습할 감행한다. 영국 포대는 스탠리 외곽을 포격하며 아르헨티나군의 퇴로를 차단하고 지휘관들에게 압박을 가한다.

톰슨 중장은 제2공수대대에게 스탠리로의 진격을 명령한다. 13시 정각, 제2공수대대 B중대는 와이어리스 능선을 내려와서 무디부룩을 향해 진격한다. 블루대대와 로얄대대의 경전차들이 뒤를 따른다. A, C, D중대도 스탠리를 향해 진격한다. 스탠리로 향하는 길 사이에는 지치고 의욕을 잃어버린 아르헨티나 패잔병들과 그들이 유기한 장비들이 널려 있다. 이제 영국군은 그동안 썼던 철모를 벗고 공수대대 특유의 베레모로 바꿔쓴다.

구스그린, 와이어리스에서의 전투에 이어 스탠리로의 첫 발을 제2공수대대가 맡는 영광을 차지하기 직전이다. 여러 기자와 관계자들이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동행중이다.

A중대는 스탠리 외곽에서 잠시 정지한다. 제2공수대대가 정지한 것은 아르헨티나측이 대화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영국군은 최종 4일 동안의 라디오를 통한 선전활동(심리전)으로 아르헨티나측을 압박하였다. 마이크 로즈 소령과 로드 벨 대위는 라디오틀 통해 아르헨티나군에 항복을 권유하고 수많은 생명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호소와 설득을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세 명의 민간인이 영국군의 포화에 희생되었지만, 만일 스탠리에서 전투가 발생한다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6월 14일까지 이렇다할 반응이 없었는데, 영국군이 코앞에까지 도달하자 멘데즈 장군은 영국군과의 협상을 준비시킨다.

오후 3시, 로즈 소령, 벨 대위와 통신병이 탑승한 가젤헬기는 스탠리로 날아가서 아르헨티나측 대표인 후세이 대위를 만난다. 후세이 대위는 이들을 멘데즈 장군에게 안내한다. 23시 정각 멘데즈 장군이 도착하고 이들과 만난다. 멘데즈장군은 23시 59분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모든 전투가 종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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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로 향하는 영국군 경탱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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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에 입성하는 영국군-1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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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스탠리에 입성한 영국군.jpg

 

 

 

 

### 아르헨티나의 항복 2 ###


(2) 포클랜드를 완전히 점령한 영국군

6월 15일, 제2, 3공수대대가 스탠리에 입성하고 해병코만도 부대도 뒤따른다. 제5보병여단은 피츠로이에 주둔하고 구르카연대는 구스그린으로 이동한다. 전쟁이 끝났지만 1만 2천명에 달하는 아르헨티나군 포로가 문제였다.

이들을 수용할 텐트가 턱없이 부족하였고 점차 다가올 겨울이 문제였다. 일단 이들 포로를 스탠리 공항에 수용하고 가능한 빨리 아르헨티나로 이송하기로 한다. 이들 대부분은 캔버러, 놀랜드 수송선을 이용하여 3일안에 아르헨티나로 이송될 것이다.

서포클랜드의 포트하워드와 폭스 베이에 주둔한 아르헨티나군의 처리는 제40코만도와 HMS 아벤져가 담당한다. 제40코만도 B중대는 헬기와 트롤선을 이용하여 추위와 허기에 지친 아르헨티나 제5보병연대소속 병력을 인수한다. 폭스 베이에서는 4명의 아르헨티나군이 헬기편으로 구조된다.

마지막으로 제42코만도의 크리스 눈 소령은 M중대원들과 함께 HMS 엔듀어런스를 이용하여 사우스 샌드위치섬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아르헨티나 과학자들을 모두 인수하여 돌아온다. 이제 모든 아르헨티나측 사람들이 영국령에서 쫓겨난다.

포클랜드전에서 영국군은 모두 255명이 목숨을 잃었고 아르헨티나군은 약 746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3명의 주민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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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스탠리의 아르헨티나군 장갑차.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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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헨티나의 항복 3 ###


(3) 아르헨티나로 이송되는 포로들


아르헨티나 포로 가운데 멘데즈 장군과 지휘부를 포함하여 약 500명의 장교들을 남기고 나머지 포로들은 모두 신속히 아르헨티나로 수송하기로 결정한다.

수송선 캔버러와 놀랜드는 산 카를로스에서 획득한 1천명의 포로를 태우고 스탠리로 이동하여 나머지 포로들을 싣고 아르헨티나로 향한다. 또한 빙양선인 바하비아 파라이소도 포로수송에 동원한다. 그리고 잠시 억류했던 500명의 장교들도 한 달 후, 세인트 에드먼드편에 아르헨티나로 보낸다. 이들 포로 이송작업에는 국제적십자 요원들이 나서서 감독한다.

많은 아르헨티나군 장비들이 영국측에 들어왔다. 이 중 몇몇은 평가차원에서 영국으로 수송되었고 일부는 포클랜드에 남겨서 사용된다. 영국 태스크 포스 함정들 대부분은 영국측의 승리가 확정되자 포클랜드를 떠나 영국으로 귀환한다. 몇몇 함정들만 남아서 안정을 찾을 때까지 포클랜드 주변 해역에서 순찰활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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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entinian prisoners of war returning home on June 17.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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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entinian POWs on board the Canberra.jpg

 

 

 

 

 

### 아르헨티나의 항복 4 ###


(4) 노획장비들

많은 포로와 함께 많은 아르헨티나군 장비들이 영국군에 노획된다. 여기에는 판하드 장갑차와 야포, 오리콘 대공포 등이 포함되어있다. 다음은 스탠리에서 노획된 주요 장비들이다.

항공기 : 11대의 푸카라 공격기, 3대의 Aermacchi MB-339A

헬기 : 2대의 Bell 212, 1대의 Puma, 1대의 Chinook, 2대의 Agusta A-109A, 9대의 UH-1H

선박 : 소형 유류 운반선 "Yehuin" ("Falkland Sound"로 개명된다.), 순찰선 "Islas Malvinas" ("Tiger Bay"로 개명된다.)

이러한 장비는 영국군이 재사용하기도 하고 연습용 타켙으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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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획무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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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Argentine Panhard armoured ca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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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entine military Mercedes Uni-Mogs and GM Six-by-sixes.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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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gentinian Panhard armored.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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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리 공항의 푸카라 공격기.jpg

 

 

 

 

### 아르헨티나의 항복 5 ###

(5) 전후 처리

스탠리 해안에서는 아르헨티나군이 설치한 기뢰를 제거하기 위해 기뢰제거 임무를 맡은 트롤선들이 바삐 움직이며 기뢰를 제거한다.

육상에서는 아르헨티나군이 뿌린 지뢰, 불발탄 등을 치우는 힘든 작업이 시작된다. 사실 어떤 전쟁에서든 지뢰를 완벽히 처리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어찌되었든 거주민들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런 위험물들을 최대한 정리해야할 것이다.

영국은 거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일명 “포클랜드 요새” 계획에 대해 설명한다. 이 계획에서 큰 규모의 주둔군은 되도록 피하고 항공작전에 의한 방위가 주된 요점으로 떠오른다. 즉시 스탠리 공항에 대한 활주로 연장 및 시설 개선작업이 시작되고 10월까지 팬텀 전폭기가 주둔할 수 있도록 서두른다.

또한 플리샌트 산부근에 새로운 활주로와 시설물을 설치하는데, 1985년부터 플리샌트 공항이 완성되어 장거리 제트 수송기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전쟁이 그렇게 꼭 필요했던 것인지 의문을 가졌고, 이 전쟁은 오직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영국이 관할한 곳이 침입을 받았다는 것이고 거주민들이 원하지 않은 나라의 통치를 강요받았다는 것이다. 외교적 해법이 실패하자 군사적 해결 말고는 다른 선택의 방안이 없었던 것이다.

포클랜드전에서 아르헨티나가 패배하자 아르헨티나의 군사정권도 종말을 맞는다. 이제 군사정권의 철권통치가 끝나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게 되는데, 많은 군사정권 담당자들이 그동안 있었던 수많은 민간인 학살과 실종에 대한 재판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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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클랜드 플래샌트 공항의 팬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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