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수귀천(樂殊貴賤)
예별존비(禮別尊卑)
"음악에도 귀천이 있고
예절은 높고 낮음이 있으니"
상화하목(上和下睦)
부창부수(夫唱婦隨)
"위와 아래가 화목하고
지아비 노래하면 지어미는 따라하고"
외수부훈(外受傅訓)
입봉모의(入奉母儀)
"무릇 사내는 밖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고
여자는 안에서 어머니를 본받으라"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세기 2:17)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세기 2:24-25)
천자문은
너와 나 사이에
상하, 고저, 내외, 귀천, 존비의 구분을
강조합니다.
실상은 기득권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한
명분과 수단의 미명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지극히 비논리적인 게
세상사 아닙니까.
창세기는
부모를 떠나면서
시작합니다.
너와 나 구분도 없습니다.
둘이 한 몸이요
신과 인간, 선과 악, 영생과 사망이라는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본질을 구분할 뿐입니다.
지극히 비합리적이고
지엽말초적인
현실 속에서
오늘도 그 자각을 통해
우리의 삶에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샘솟게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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