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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유령소나타>와 <인간과 초인>의 3막을 중심으로(2/28,이봉환/경남과기대)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
-<유령소나타>와 <인간과 초인>의 3막을 중심으로

 

 

국문초록
가정을 지옥과 정신병원으로 그린 표현주의적 메타연극인 <유령소나타>와
한가한 위선의 연애놀이를 되씹는 희비극적 블랙코미디인 <인간과 초인>의 텍
스트상의 외형적 합일점은 없는 듯하다. 하지만 두 무대의 끝부분인 3막이 전
개하는 꿈의 극적 기교와 자기화의 몸짓이 가능한 대지의 능동인 회복이라는
주제 찾기는 스트린드베리와 버나드 쇼를 ‘환상과 몽상의 무대’에서의 접촉이
가능하도록 유도한다. <유령소나타>는 스트린드베리의 초사실적이고 몽환적
꿈 연극들 중에서 -<다마스커스로 1>, <죽음의 무도>, <꿈연극>, <펠리칸>,
<범죄와 범죄들>- 표현주의극의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의 경계의 애매성
을 극복하기 위한 메타연극적 기교와 구조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전복과
혼돈의 무대이다. 니체처럼 창조신의 죽음과 생존을 위한 대지의 자유감성과
본능의지의 회복을 단언한 <꿈연극>이 ‘환상과 응시, 거울과 안경의 토도로프
의 글쓰기’를 통해 꿈 놀이무대의 가능성의 ‘첫 문’을 열었다면, <유령소나타>
는 꿈과 현실의 경계가 없는 산자와 유령의 가시적 구분이 불가능한 무의식의
어두운 그림자 공간을 배경으로 스웨덴보리의 영지주의, 키르케고르의 금욕주
의, 니체의 영원회귀, 불교의 연기설을 통합하여 고통으로부터의 육체적 견딤
의 항상성을 연출시킨다. 스트린드베리는 원형인물, 전복, 반복, 단편적 언어,
폭력, 회귀구조, 인물의 대위적 평행, 즉흥성, 환상, 마법, 꿈을 엮은 혼돈의 공
간에서 인간의 생존확인을 위한 무한한 기다림과 선택의 몸짓연기를 선보인다.
<유령소나타> 1-2막이 인물들의 복잡한 과거의 그물망을 서사적 연결구조로
진행되는 반면, 히야신스 소녀의 개별막인 연옥의 3막은 아버지를 죽인 훔멜
과 그의 딸 아델의 죽음에 방관하거나 직접 관여하는 아르켄홀츠가 폐쇄와 감
금의 원형방에서 자기극복을 위한 자기화의 은유적 몸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
하는 지적․영적 회복가능성을 불교적 무대장치에서 찾는다.
지옥에 빠진 돈 주안의 전복과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로의 역할전이를 그린
<인간과 초인>의 꿈의 3막은 역설, 냉소, 풍자, 패러디, 논쟁, 거리두기, 반복,
전도. 담론을 바탕으로 빅토리아시대의 노예도덕의 가치인 복종과 무저항을
해체시키는 사상극이다. 스트린드베리와 마찬가지로 버나드 쇼 역시 19세기
말 영국지식사회의 두 철학적 기둥인 자본주의와 마르크스주의 대립이 심화시
킨 계급과 자본의 차이와 충돌로 인한 개인과 조직사회의 유기적 모순과 관습
인 가식과 폭력의 비인간성을 지적하기보다 그 발생할 수밖에 없는 사회병리
학적 질병(정신․심리적 트라우마)을 치유할 현실적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
다. 전통적 거대권력인 자본과 종교가 생산한 광기와 이성중심의 모더니즘을
노예도덕의 근본 텍스트로 간주한 니체와 쇼는 삶의 의미와 역사성을 탐색하
는 대신 삶 자체의 생성과 흐름을 거리를 두고 직시하는 통찰력을 생존과 지적
행위의 근간으로 보고 있다. 프로이트가 무의식의 내면세계를 니체의 차라투
스트라가 직면한 내적 그림자의 욕망본능과 연결시키듯이, 스피노자의 직관지
와 자유감성의 능동성을 자기의존화의 기점으로 삼은 니체는 <인간과 초인>의
꿈의 3막의 돈 주안이 쾌락과 무동력의 지옥가치들을 해체시키고 극복할 수
있는 위버멘쉬로의 전복을 실현시킨다. 쇼는 <피그말리온>과 <워렌부인의 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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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 <바바라 소령>과 <상심의 집>, <캔디다>와 <세인트 조안>에서 노예도덕
이 파생시킨 이분법적 제도와 관습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투쟁한 풍자와 냉소
의 저항적 글쓰기에서 벗어나 눈앞의 현존의 실체가 생성․변화하는 무한반복
과정, 즉 영원회귀를 수용하는 참여와 항동성의 몸 언어를 돈 주안의 꿈의 은
유적 수사학으로 무대화한다.
주제어: 꿈, 전복, 환상, 노예도덕, 그림자, 은유, 불교, 니체, 스피노자, 블랙코
미디
1. 서론
본 소고는 아우구스트 스트린드베리(August Strindberg)의 <유령소나타>(The
Ghost Sonata)의 3막과 버나드 쇼(Bernard Shaw)의 <인간과 초인>(Man and
Superman)의 3막이 유사하게 전개시키는 유령과 꿈의 비개연적이며 몽환적 무
대의 표현주의적 기교와 불교적․니체적 글쓰기전략의 메타연극성을 들여다
보고자한다. 스트린드베리와 쇼는 삶의 고통에 대한 근원적 질문을 꿈과 철학
의 공간을 빌려 끝없이 반복하고, 신의 부재와 살아있음의 끈질긴 몸짓을 대안
으로 제시한다. 두 작가는 빅토리아 시대(1837-1901)란 “동일한 시간과 공간에
거주하면서 동일한 인물들과 -니체(F. Nietzsche), 베르그송(H. Bergson), 프로이
트(S. Freud), 융(K. Jung), 뭉크(E. Munch), 바그너(R. Wagner)- 직접 교류하고,
스피노자(B. Spinoza)와 쇼펜하우어(Schopenhauer) 및 불교와의 지적 만남”1)을
1) 스트린드베리와 쇼의 비언어적 극적 기교와 수사학적 은유의 메타연극은 자연과 몸의 본
능 복원을 통한 자유감성과 삶에의 의지를 노래한 스피노자와 쇼펜하우어를 철학적․지
적 기점으로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몸 언어와 베르그송의 생철학과 창조적 진화, 바흐친
(M. Bakhtin)의 소리의 다원적 카니발리즘,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의 언어의
한계론을 모더니즘의 노예도덕의 해체를 위한 글쓰기의 주된 수단으로 삼고 있다. 본 소
고는 꿈과 연옥이란 몽상적 무대와, 몸짓연기가 부재한 비실체적 인물들의 단편적 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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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해 기독교의 창조신의 절대적 권위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본주의와 근대모더
니즘의 실체에 대한 가면성과 폭력성을 공격한다. 그들은 스피노자의 정념의
노예가 아닌 직관지를 지닌 자유인과 니체의 통찰력과 힘의 의지를 회복한 초
인을 불교의 연기설과 무아법과 함께 적절히 혼용하여 자본과 종교권력이 조
작한 사회문화의 도덕과 질서를 해체시킨다.
스트린드베리와 쇼는 셰익스피어(W. Shakespeare)의 밤과 낮의 이분법적 경
계를 꿈과 마술로 자유롭게 넘나드는 환상적이고 마법적인 사랑의 꿈 이야기
인 <한여름 밤의 꿈>(A Midsummer Night's Dream)의 극적 기교를 빌려 낮의 외
향적인 페르소나를 밤의 그림자로 전이시켜 공포와 두려움으로 ‘노예 도덕의
순응자’로 길들여져 있는 인물들의 내면의 심연을 탐색한다. 초사실적이고 표
현주의적인 꿈의 무대이자 두 작품의 공통영역인 3막은 1-2막의 개연적 전개
과정을 벗어난 시공간의 이차원적 공시성이 사라진 별개의 혼돈과 환유성의
원형무대이다. 스피노자와 니체의 그림자이자 스트린드베리와 쇼의 또 다른
자아방출인 학생(Arkenholz)과 돈 주안(Don Juan/John Tanner)의 꿈의 공간은
‘삶이 고통이고 동일함의 영속적 반복’이라는 현존재의 운명적인 영원회귀의
그물망을 계속 거부하거나 혹은 수용해야하는 선택의 양면성을 제시한다. 꿈
속의 다수의 유령들은-훔멜(Hummell)․대령(Colonel)․미라(Mummy)․조각상
(Statue)․악마(Devil)․렘스덴(Ramsden)․스트레이커(Straker)-기독교의 이성중
심의 전통과 도덕에 안주해있으면서 실체의 허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생명의
의 충돌을 중심으로 두 저자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컨텍스트성을 끌어내려는 작업방향
에서 불가피하게 당시 지적 교류를 긴밀히 유지했던 반사실주의자(anti-realist/postmodernist)
들을 연결시킬 수밖에 없다. 동시에 본론의 일부에서는 로고스중심의 형이상학의 원류인
소크라테스(Socrates)와 플라톤(Plato)에서 파생된 데카르트(Descartes)주의자들이 근거를
제공한 모더니즘의 위험성과 -종교와 자본의 정치권력화-, 이들과의 차이의 사유공간을
마련한 후기구조주의자들인 푸코(M. Foucault)와 데리다(J. Derrida), 바르뜨(R. Barthes)의
해체적 수사학을 짧게 대비시킨다. 특히 스트린드베리에게 연옥과 인과, 고통의 절대성
을 전달한 스웨덴보리, 키르케고르, 불교의 연기설은 표현주의적 실험무대의 원형성과
반복성의 근간을 형성한다. 쇼와 스트린드베리가 각각 60개 이상의 극작품을 발표하는
동안 꿈과 연옥이라는 개별막의 전복과 은유의 공간을 통해 이성과 광기의 유럽의 형이
상학과 모더니즘의 위선과 폭력의 철옹성을 무너뜨리려는 연극적 메타성은 접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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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감성적 실체를 철저히 부정하는 데카르트의 추종자들이다. 니체의 글
쓰기가 지성보다 육체의 본원성과 원시성을 중시하는 디오니소스적인 욕망과
충동의 몸짓을 통해 창조적 저항력을 복원시키듯이, 스트린드베리와 쇼의 관
객과 배우가 함께 연기하는 해학과 풍자의 서사적이고 음악적인 즉흥극은 니
체의 직계제자들인 학생과 돈 주안의 직관지(intuitive power)와 행위의 의지
(fulfillment will)를 내세워 꿈 공간의 혼돈과 무방향성에 빠져있는 기호에 다름
없는 유령들의 죽음, 즉 지적 정체성을 공격한다. <유령소나타>, <인간과 초
인>, 그리고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는 이데
아(Idea)의 진리세계인 존재의 세계와 그것을 모방하려는 현실의 가상세계를
이분화한 플라톤의 존재와 생성의 이분법적 형이상학을 부정하고, 이성중심의
사유세계와 정념의 감성세계를 이원화시킨 데카르트 윤리학을 거부하면서 ‘현
존의 변화하고 생성하는 행위 그 자체의 반복적 영속성과 다원성’을 삶의 실체
로 무대화한다. 니체와 스트린드베리 및 쇼는 건강한 생명성의 복원을 위한 꿈
극과 철학이야기에서 개인의 몸의 본능적 움직임을 구속하는 근대성을 비판하
고 자기긍정과 자기극복을 통한 자기찾기(Self-finding)를 노래한다. “이들의 3
권의 텍스트는”2) 종교와 도덕에 의한 사유의 경직과 행위의 멈춤을 경계하면
서 몸의 움직임과 변화를 항상 인지하고 느끼는 의식의 몰입과 통찰력을 지적
죽음에 대한 통일적 대안으로 제시한다.
<유령소나타>는 죽음의 최종지로 떠나지 못하고 연옥(Purgatory)에서 머무는
유령들이 죄와 감춤의 둥근 고리에 영원히 매달려 있는 구속의 그림을 통해,
개인의 현존문제를 스웨덴보리(E. Swedenborg)의 영지학적 구조에서 키르케고
르(S. Kierkegaard)와 불교의 해석학적 경계의 모호성으로 다루고 있다. 산자와
죽은 자의 구분이 없는 배우들은 거짓과 불신이란 죄와 어둠의 그림자만 촛불
2) August Strindberg, The Ghost Sonata, in Selected Plays, vols. 2. ed. & trans. Evert Sprinchorn,
Minneapolis: Univ. of Minnesota Press, 1986./ G. Bernard Shaw, Man and Superman, 허종 역, ?인간과 초인?, 서울: 동인, 2003./ 앞으로 위 두 작품들의 본문 인용은 괄호 안에 쪽수만
기재함./ F. Nietzsche,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Also sprach Zarathustra, 장희창 역,
서울: 민음사, 2004./ B. Spinoza, ?에티카?, Ethica, 강영계 역, 파주: 서광사, 20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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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흔들거리는 무의식의 둥근 방에서 20년 이상 유지되고 있는 유령들의 말
없는 저녁만찬을 반복한다. 히야신스(Hyacinth) 소녀의 방인 3막은 스웨덴보리
의 산자와 혼령의 영적교감을 인정하는 꿈의 신비주의적 배경막을 설치해서 지
적 성숙을 위한 고통의 필연성과 극복이라는 키르케고르의 금욕주의(ascticism)
를 그리고 그 위에 니체와 불교의 직관지로 덧칠하여 한편의 죽음이 소용돌이
치는 입체적인 꿈의 그림을 완성시킨다. <다마스커스로 1>(To Damascus 1)에
서 <유령소나타>에 이르는 유령들이 춤추는 꿈 극들은 일련의 작은 지옥과 다
름없는 감금의 공간에서 환상과 절망이 내재된 삶의 아픔을 시각화하고, <미스
줄리>(Miss Julie)에서 <펠리칸>(The Pelican)에 이르는 표현주의적이며 자연주
의적인 현실의 원형무대는 애증과 위선에 의한 가족의 충돌과 분열의 절규를
청각화시킨다. 스트린드베리의 ‘밤과 꿈’의 표현주의극들이 유령들의 판토마임
의 파편적 몸짓인 반면에 ‘낮과 현실’의 페르소나를 해체시키는 자연주의극들
은 폭력과 탐욕이 난무하는 서사적 가면극이다. 감금의 비언어적(non-dialectical)
가족극은 꿈, 죽음, 유령, 정신병원, 무의식, 어둠, 원시적 충동, 원형적 인물, 반
복, 회귀적 시공간, “평행과 대위적 구조(contrapuntal structure)”3), 변형과 전이,
단편적 연기의 파편화, 비개연성, 즉흥성, 일회성, 기호적 언어를 통해 아픔의
구조신호를 관객과 내면의 자아에게 끝없이 호소한다.
<유령소나타>의 미라와 히야신스 소녀(Young Lady)가 갇힌 꿈의 방들이 유
전과 폭력의 어둠에서 화해와 용서가 불가능한 가족의 죽음과 지옥의 삶을 연
출한 반면, <인간과 초인> 3막의 꿈인 ‘지옥에 빠진 돈 주안’은 니체의 영원회
귀와 자기긍정, 몸과 생명의 회복을 위한 지혜를 ‘쾌락과 탐욕의 호색가이자
바람둥이인 돈 주안의 전복’을 통해 전개시키는 스위프트(J. Swift)의 신랄한 글
쓰기장이다. ‘희극과 철학’이란 부제가 달린 해학적 사회풍자극이자 니체의 주
인공 차라투스트라 재현극은 꿈의 장면인 3막을 제외한 현실무대인 1,2,4막에
서 태너와 앤(Ann Whitefield)의 연애를 중심으로 바이올렛(Violet Robertson)과
3) Raymond Jarvi, Strindberg's Post-Inferno Dramas and Music, Diss., Seattle: Univ of Washington,
1970, 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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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터(Hector Malone)의 결혼, 앤과 옥타비어스(Octavius Robinson)의 충돌을 자
본과 계급에 의해 좌우되는 젊은이들의 연애와 결혼이야기로 연결된다. 사회
적 저항력이 부재한 중산계급의 인물들이 사회권력에 순응하는 미덕과 짝 구
하기에 몰입하는 연기가 극의 표층적 구조를 유지하는 반면, 3막은 악마와 돈
주안의 장황하고 끝없는 꿈의 수사학적 담론을 삽입시켜 관객을 즉흥적인 혼
돈의 시공간으로 끌어 들인다. 3막의 언어마술사인 돈 주안은 명상과 성찰
(contemplation, 340)을 통해 혜안(mind's eye, 376)을 획득한 쇼이자 니체이며 동
시에 차라투스트라이다. 꿈의 공간에서 쇼는 지옥을 고통과 절망이 없는 쾌락
과 즐거움만 존재하는 유토피아와 극락으로 패러디시키며, 천당을 재미없고
정체된 고요한 사유와 이성의 무덤으로 전복시킨다. 3막은 니체의 원시적 언어
들을 -생명/대지/권력의지/본능/몸의 언어/직관력/역동성/항상성/춤/생성/변화/파
괴/영원회귀/디오니소스/초인- 쇼의 해학과 기지의 말장난으로 전환시킨다. “사
상과 풍자의 지성적이고 주지적 무대”4)인 희비극은 극적 감동과 몰입을 배제
시키지만 자본과 권력의 폭력적 메카니즘인 “노예도덕”5)과 “정념의 노예”6)를
지적하고 이성과 본능의 조화인 자유감성의 회복을 무대화시킨다. 쇼의 역설
과 아이러니가 내재된 철학과 토론의 사상극이자 희비극은 사회적 개혁과 전
복을 통한 발전과 성숙이 아니라, 개인의 사유와 행위의 인습적 문제와 약점을
교육과 언어적 담론으로 개선시킬 수 있다는 글쓰기의 결과물이다. 무대의 몸
짓이 부족한 인물들은 언어게임과 유사한 타자와의 끝없는 언어의 공격과 방
어 전략을 통해서 가식과 속임의 가면성이란 사회적 페르소나인 지적 한계를
드러내면서 동시에 몸과 본능을 회복시키는 주체적 자각과 자기화의 기회를
되찾는다.
4) Arnold Hauser, The Social History of Art, London: Routledge, 2015, 290쪽./ Eric Bentley,
Bernard Shaw, New York: Applause Books, 2002./ Eric Bentley, ed. Shaw on Music, New York:
Applause Books, 2000. 참조.
5) Nietzsche, 앞의 책, 「제2부: 도덕군자들에 대하여와 천민에 대하여」 참조.
6) 박삼열, 「스피노자와 니체 비교- 니체 선구자로서의 스피노자」, ?철학탐구?(20), 서울: 중
앙대학교 중앙철학연구소, 2006, 46-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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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린드베리의 꿈의 어두운 원형극은 오닐(E. O'Neill)이 그 기법과 주제를
미국적 메타연극으로 전환시키고 셰퍼드(S. Shepard)가 개인적 유전과 사회적
환경의 피해자들인 가족의 아픈 과거사를 담은 근친상간과 집단무의식의 해체
주의극(Deconstruction)으로 완성시킨다. 쇼의 수사학적 언어놀이인 사회서사극
과 꿈의 은유적 수사학은 밀러(A. Miller)의 개인과 사회의 병리적 연계성을 진
단하는 개인주의적 사회극으로 이어지고, 마멧(D. Mamet)이 하이퍼리얼리즘
기법(hyper-realism)으로 현실과 환상이 혼재된, 거짓과 폭력의 거대권력의 가면
을 벗기는 포스트모더니즘무대로 전환한다.
2. 연옥의 3막: 전복과 은유의 몽환성과 현존을 위한 직관지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난다. 그러나 인간은 어느 곳에서나 쇠사슬에 묶여 있
다.”7)라는 루소(Jean Jacques Rousseau)의 생각처럼 인간은 원래 자유로운 존재
이지만 조직과 사회의 인습체계가 -기독교/정치/경제/군사/지식/예술/문화권력-
구성원들의 감성과 지성을 교묘하고 은밀하게 억압시킨다. 대니얼 디포(Daniel
Defoe)의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8)와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
의 <돈키호테>(Don Quixote)9)는 교회와 신부의 전통적 위계관리시스템을 통하
지 않고 개인이 신과의 자유롭고 직접적인 접촉이 가능하다는 프로테스탄트의
개인적 능력을 보여주고, 동시에 자유는 신이 인간에게 준 소중한 선물이라는
‘지적 반항과 감성의 해방을 위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예비선언서’이다. 자기의
7) Jean J. Rousseau, ?사회계약론?, Du Contact Social, 1762, 이환 역, 서울: 서울대학교 출판문
화원, 2013, 5쪽./ 2016년 10월에 시작된 한국정부 최고 권력층의 일부 핵심인물들이 범한
국정농단과 관련된 대통령탄핵사건은 자유국가의 시민이며 주권자로서의 사회구성원들
에게 자유와 복종과의 비이성적이고 불평등한 사회계약관계와, 정치적 침묵과 순응주의
를 반성케 하는 계기로서, 루소의 사회변혁과 정의를 위한 실천적 행위가 노예도덕과 귀
족도덕의 선택을 위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니체적 대안이다.
8) Daniel Defoe, 류경희 역, ?로빈슨 크루소?, 서울: 열린책들, 2011.
9) Miguel de Cervantes, 안영옥 역, ?돈키호테 1, 2?, 서울: 열린책들, 2014.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05
명예와 자유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고자 했고 자신을 억압하는 어떤 종류의 굴
레도 인간의 자유를 파괴시키려는 최대의 악으로 규정한 돈키호테는 말을 타
고 풍차에 뛰어드는 광기와 본능의 저항력으로 디오니소스적 생명력을 몸으로
노래하고 춤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이자 <유령소나타>의 학생이며 지옥 꿈의
돈 주안이다. 니체는 자유의지와 자연의 자의적 수용 그리고 자기보존과 확대
재생산을 위한 능동적 욕망인 코나투스(conatus)를 지닌 자유인을 내세워 “종교
와 정치의 존재와 생성의 이분법적 체계를 공격한 스피노자를 대지의 몸 언어
와 자기개별화를 향한 선구자로 간주한다.”10) 스피노자와 니체는 변화하는 자
연과 대지의 생성과 창조과정을 직시하고, 자기의 본원적 힘의 의지로 자유롭
게 살아 움직이고 사라지는 생명활동의 무한한 반복과 영속성의 시간흐름을
현존재의 진리이며 주체적․개별적 신으로 간주한다.
“이성과 권력의 광적 억압에 의해 오히려 광기에 사로잡힌”11) 니체의 탈이
성주의자들은 스피노자의 자유감성론에서 지적 근거를 구한다. 스피노자는 초
월적 창조신의 추종자들이 조작한 온갖 종교적․사회적․주관적 편견에 사로
잡혀 노예적 삶의 틀에 중세이후 장시간 갇혀 있는 인간을 해방시켜주기 위한
해탈의 텍스트인 ?에티카?를 통해 개인을 얽매고 있는 정념과 왜곡된 인습적
10) Christopher Middleton, trans. and ed. Selected Letters of Friedrich Nietzsche, F. Nietzsche,
Chicago: Univ. of Chicago Press, 1969, 177쪽./ 박삼열, 앞의 논문, 39-66쪽./ 니체와 더불어
스피노자의 능동적 직관지를 수용한 베르그송도 자연과 사회의 항상성과 변화생성력을
창조적 진화의 원리로 해석한다. 베르그송의 생철학은 탈공간화의 시간의 통시성과 생의
새로운 진화과정의 본능적 초극능력을 근간으로 타자와 자아를 공감적으로 인식하고 관
계의 폐쇄성을 극복할 수 있는 신비주의적 직관력의 강화를 중시한다.
11) 김현,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89, 13-14쪽./ Mark Poster, ?푸꼬,
마르크시즘, 역사?, Foucault, Marxism and History, Polity, 1984, 이정우 역, 부천: 도서출판
인간사랑, 1990, 133쪽./ 들뢰즈(Gilles Deleuze)와 함께 니체의 반형이상학과 탈근대성을
포스트모더니즘의 출발점으로 보는 미셀 푸코(Michel Foucault)는 ?광기의 역사?(Madness
and Civilization: A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 1961), ?감시와 처벌?(Surveillance and
Punishment, 1975)에서 서양문명의 합리적 이성에 대한 독단적 논리성을 비반하고 소외된
비이성적 사유인 감성과 광기에 대한 진정한 의미체계를 재정립함./ M. Foucault, ?감시와
처벌?, 오생근 역, 서울: 나남출판, 2016./ M. Foucault, ?광기의 역사?, 이규현 역, 서울: 나
남출판,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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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들을 해체시킨다. 스피노자의 자연의 자유인을 대지의 초인인 차라투스트
라로 전환시킨 “니체는 우울증과 조증의 교차적 조광증에 시달리던 1888년 11
월 말부터 또 다른 광기의 파트너이자 사회의 억압적 수직구조에서 아픔과 남
녀의 죽음의 소리를 연출하는 스트린드베리와의 광기어린 편지들을 교환한
다.”12) 니체와 스트린드베리는 억제와 공포의 질서체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과 광기란 선택의 갈림길에서 반복되는 인간 행위의 가치성을 ‘절대신과
인간 중심축’에서 다루기보다 ‘자연과 대지라는 우주의 생성구조’ 속에서 들여
다보고 그 대안을 구하고자한다. 이들은 자연과 인간의 모든 존재방식이 합리
적이고 인위적인 기하학적 구조에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연스럽게
주어져 있고 단지 동일한 움직임의 행위만 영속될 뿐이며, 그 자체가 선과 악
(이성과 비이성)의 주체도 아니고 그 구분의 인식대상도 아니라고 간주한다.
직관론자들은13) 스피노자에서부터 예외없이 죽음에 대한 내적 공포와 아버지
로 대변되는 외부의 권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정신적 혼란을 겪는다. 기독교와
유태교의 신과 교회조직에 대한 거부로 교구로부터의 원천적 고립이란 종교적
형벌을 죽는 순간까지 감내했던 스피노자, 출생부터 하녀인 어머니의 사회계
급과 가난으로 부권에 의해 사회적 차별화를 겪은 스트린드베리와 버나드 쇼,
신의 부정과 루 살로메(Lou Andreas Salomé)의 거리두기로 스스로를 ‘디오니소
12) Pierre Klossowski, ?니체와 악순환-영원회귀의 체험에 대하여?, Nietzsche et le cercle vicieux,
조성천 역, 서울: 그린비, 2009. 287-288쪽. 재인용./고명섭, 「정신붕괴-최후의 니체 ①」, ?
인물과 사상?, 서울: 인물과 사상사, 2012, 115쪽.
13) Mihaly Csikszentmihalyi, ?몰입의 즐거움?, Finding Flow, 이희재 역, 서울: 해냄, 2016,
180-84쪽./ Spinoza, 앞의 책, 「정리 25-42: 제 3의 정신에 대하여」, 352-367쪽./ Rachel
Charles, ?상담사와 심리치료사를 위한 직관?, Intuition in Psychotherapy and Counselling, 2004,
이선화, 박애영 역, 서울: 학지사, 2015./ 이성을 넘어선 잠재의식적 지각 직관, 자기중심
의 전체적이고 완전한 지식으로서의 확신 직관, 고대 정령들인 젠들린의 선천적 느낌으
로서의 감각 직관, 고전적 직관론자들의 -플라톤․스웨덴보리- 영적 연결로 인한 초월 직
관, 소크라테스(Socrates)의 내면에서 신성한 소리를 전달한 다이몬(Daimonion)과 칼 융의
내면세계에 존재하는 가장 지혜롭고 현명한 존재인 필레몬(Philemon)의 적극적 상상
(active imagination)에 의한 심리학적 직관 등이 아닌 집중적 성찰과 통찰력을 통한 현존
의 과정을 선/악의 차별화없이 바로 보는 지혜관이며, 스피노자의 제3의 지혜단계인 직관
지이고, 니체, 베르그송, 스트린드베리, 불교철학의 능동적 사유능력 혹은 몰입으로 간주함.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07
스 혹은 십자가에 못 박힌 자’라고 노래하고 춤추던 광기의 니체는 생존 본능
과 감금의 불안의 대척점에서 지적․심리적 균형감을 유지하고자 창조적 글쓰
기에 몰입한다. 20세기 초반의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내면적 혼란과 충돌의
결과물들은 저자인 자신들이 얼마나 고뇌와 공포에 시달렸는지를 보여주면서
다른 한편으론 즉흥적이고 비개연적인 텍스트의 인물과 무대의 관객이 “조직
의 권력에 의해 구속당하고 왜곡된 심리적 외상(trauma)을 치유하거나 극복하
기 어렵다는 역사적 사실을 부각시킨다”14).
모더니즘의 감금의 역사성에서 개인이 생존할 틈새의 열림은 니체의 차라투
스트라의 젊은 양치기의 환유적 우화에서 본격화된다. 그는 자신의 입안으로
검고 묵직한 뱀이 기어 들어가 목구멍을 물고 있는 순간 차라투스트라가 내면
에서 소리치는 것을 듣자 그 뱀을 물어뜯어 내뱉고 나서 스스로 빛으로 감싸여
웃는 자로 변모한다. 차라투스트라가 고향 마을의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가
는 지혜 찾기는 자기구원과 자기해방이 자신과의 용기 있는 대면에서만 가능
하며, 곧 현존재의 문제(트라우마)에 -고통/죽음/공포/과대망상/절망/복종/비겁/
회피/분노/애증/가면- 대한 최선의 묘답은 자신을 찾으려는 실천적 성찰에 내재
되어 있다는 가능성이다. 광기의 니체와 스트린드베리는 20세기 초․중반 억
압과 감금의 모더니즘 역사성을 전복시키고 자기 긍정의 몸 언어와 직관력, 환
14)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의 ‘아무데도 갈 데가 없는 사람들로 가득찬 상트페테르부르
크(Saint Petersburg)의 고리대금업자의 자본과 빈자의 노동이 충돌하는 뒷거리’, 1930년대
스탈린의 정치적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한 강제수용소 굴락(Gulag), 마오쩌둥의 정치적 지
배를 본격화시켰던 어둠과 공포의 정치범 수용소인 라오가이(laogai 노동개조)의 정치와
경제에서의 감금과 폭력의 통제는 지배자가 사라진 이후 2017년 초까지 그 체제의 공포
와 두려움의 인습적 그림자를 지우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에게 여전히 투영시키고 있다./
실제로 스탈린집권이후 한국전쟁까지 인권유린의 역사현장을 고발한 알렉산드르 솔제니
친(A. Solzhenitsyn)의 <수용소 군도>(1970)에 의하면 1929-1953년 사이 476개의 수용소 집
합체가 있었으며 5-7백만명이 수용되었고 매년 10%가 기아와 폭력으로 사망함. 현재는
러시아의 정치수용소로 개조 관리됨./ 중국의 인권탄압의 경우 얼바인 대학(UC Irvine)의
경영대학 나바로교수(Peter Navarro)에 의하면, 2010년 현재 라오가이가 최소 300개 이상
이며, 200만 명 이상이 정치적, 인종적 이유로 수감되어 있다고 주장함./ Fyodor Dostoevskii,
홍대화 역, ?죄와 벌?, 서울: 열린책들, 2009./ Peter Navarro, Greg Autry ed., 서정화 역, ?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서울: 지식갤러리, 2012.
308▪드라마연구 제51호
유의 다원성을 복원시키기 위해 “타자의 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는
것”15)으로 가능했다.
부부의 애증과 복수가 죽음과 지옥으로 연결되는 스트린드베리의 서사적이
고 몽환적 가정극에서 -<아버지>(The Father), 미스 줄리, <악천후>(Ovader),
<범죄들>(Crimes and Crimes), <죽음의 무도>(The Dance of Death), <펠리컨>
(The Pelican)- 기호적 인물들은 생존을 위한 파편적 무방향성의 담론 전략을
끝없이 반복하면서 광기와 폭력의 어두운 질곡에서 자기의 현존의 실재성을
찾아간다. 표현주의무대의 원형인물들은 탈출구나 환풍기조차 없이 폐쇄된 공
간에서 타자를 죽이기 위한 맹목적 투쟁으로 생명의 본능과 의지가 상실된 유
령이나 중증의 정신분열증환자이다. 공상과 환상의 죄의 무의식의 그림자를
“어둠과 밝음의 강렬한 원색적 색채대비로 신비스런 상징주의의 화폭에 담기
를 즐겼던”16) 스트린드베리는 배우들의 생성의 몸짓이 중단된 지옥무대에 사
회적 인습에 의한 모든 복종과 순응의 기존가치들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의미
를 스스로 생산하고 정립하려는 자유정신의 초인의 재탄생을 잊지 않는다. <다
마스커스로 1>에서 이방인(The Unknown)은 다마스커스로 향하는 길 위에서
자신의 내적 공포의 원인인 과거의 죄를 찾아 대면하면서 심리적 두려움과 외
상에서 벗어나고, <꿈연극>(A Dream Play)의 인드라의 딸(The Daughter)은 대지
의 순례길에서 인간의 고통을 체험하고 구원자로서의 기능을 포기하지만 차라
투스트라이자 돈키호테인 시인(The Poet)은 오히려 자연의 굴레를 벗어나 일체
의 삶의 생성변화를 수용하고 즐기는 능동적 지혜인으로 전이된다. <유령소나
타>의 젊은 아르켄홀츠 역시 선악과 낮밤이 공존하는 대로에서 악마 훔멜을
만나 지옥과 다름없는 내면 속의 죄악의 덩어리가 감추어져 있는 무의식으로
15) 원공, ?자등명 법등명?, 서울: 토방, 2007: 불교철학의 마지막 가르침도 ‘자등명 법등명’으
로 자기의 문제에 대한 일체의 답은 자기 안에 있다고 강조한다. 니체와 불교의 철학적
사유 공간은 박경일, 「불교, 니체,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동서비교문학저널?, 서울:
한국동서비교문학회, (2),1999. 87-109쪽 참조./ 김정현, 「니체의 불교이해와 서양적 무아
사상」, ?니체, 생명과 치유의 철학?, 서울 : 책세상, 2010, 214-248쪽.
16) August Strindberg, 이정애 역, ?실험극?, 서울: 문지사, 2016. 638-40쪽.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09
의 퇴행을 통해 자기극복을 위한 본원적 생명력을 복원시킨다.
스트린드베리는 상상력과 지적 창조력으로 자신의 “본성과 잡동사니처럼 분
열되고 해체된 자아들의 광기와 편집증․분열증․우울증․과대망상증․정신
착란증의 병리현상”17)을 찾아내어 그 병상의 임상자료들을 근거로 개별적 분
신들이 충돌하는 혼돈과 무질서의 꿈의 무대를 연출한다. 훔멜과 대령부인이
주연으로 연기하는 유령들의 꿈의 원형방은 저자와 훔멜의 다양한 왜곡된 자
아들이 자신들의 고질적인 사회적․병리학적 징후나 질환을 스스로 드러내거
나 타자의 언어적 담론전략에 의해 밝혀지는 폭력의 감옥이다. 표현주의극의
원형적 인물들이(stereotypical character) 극의 제시부에서 재현부에 이르기까지
내적 변화와 특성이 없는(characterless) 원형성을 유지하듯이, 꿈의 무대의 배우
들은 시공간의 무한한 진행과 반복에도 젠더․계급․결혼․자본․종교의 인
위적 가치에 의해 지나치게 경화된 페르소나와, 외현화 장애를 극복하지 못한
채 교감부재와 충동적 분노라는 불변성의 몸짓을 연기한다. 훔멜과 대령의 둥
근 방의 만찬회에 참석한 인물들과 하인들은 변하는 세계를 변하지 않는 세상
으로 보고 있으며, 매순간 변하는 인간의 성격과 정신을 불변하는 진리의 정형
성으로 오해하고 있다. <아버지>에서 <미스 줄리>, <유령소나타>에서 <펠리
컨>에 이르는 스트린드베리의 영속적인 남녀 충돌은 -부부, 남편과 하녀, 아내
17) Richard Gilman, 「A. 스트린드베리의 연극세계」, 박용목 역, ?공연과 리뷰?(76), 서울: 현
대미학사, 2012, 124-27쪽./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1년간 정신병과 싸우면서
도 자연을 조금도 바꾸지 않고 자신과 물체와의 일체교감을 근간으로 있는 그대로의 변
화자체를 그린 ‘별이 빛나는 밤’과, 뭉크가 평생 분열증환자로서 내적 공포를 소리치던
자아상인 ‘절규’는 자신들의 내면세계의 갈등과 트라우마를 인정하고 회피하지 않으면서
본연적 실체를-융의 집단무의식/스트린드베리와 쇼의 꿈놀이/스웨덴보리의 연옥/불교의
아뢰야식/니체의 뱀과 호수- 있는 그대로 시각화시킨다./ 자살을 시도할 정도로 중증의
우울증에 시달린 고갱(Paul Gauguin)은 스트린드베리와 같은 스튜디오에서 대지와 자연
의 니르바나(열반)의 환희를 즐기는 강렬한 빛과 원시적 태초의 색채, 꿈과 수수께끼의
불가사의한 신비적 매력과 순박한 영혼을 상징적 화폭에 담는다. 딸(Aline Gauguin)의 죽
음과 자살시도직전의 유작으로 볼 수 있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
디로 갈 것인가?’ 혹은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며, 어디로 가는가’(1897)는 문명의
이성에서 벗어난 대지의 무방향성을 직관과 원시성으로 그린 인간의 현존에 대한 본원적
물음의 니체의 유채화이다.
310▪드라마연구 제51호
와 하인, 장모와 사위, 하인과 하녀, 애인과 정부, 유부남과 과부의- 두 축으로
이루어진다. 이들의 자기애가 강하고 충동적인 섹스의 폭력성과 일회성을 드
러내는 “사회성애적 초상화(sociosexual portrait)”18)는 남녀관계의 화해와 교감
이 불가능한 성적 모순, 배신, 열등의식, 계급차이를 심화시키는 대립과 갈등의
움직임에 불과하다. <유령소나타>의 죽은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깊숙한 동
굴에서 진행되는 동작이 더딘 그림자 연기는 산자와 죽은 자의 구분 없이 유령
들만이 존재하는 공간에서의 몸짓으로, 계급적․성적 불평등의 해결을 위한
사회고발적 이야기가 아니라 관객에게 저자의 심리분석을 의뢰하는 정신분열
증에 대한 해부학적 과제이다. 저자는 훔멜의 살인과 사기 및 배신의 과거죄악
을 관객과 배우들의 카타르시스를 위한 사회도덕의 형벌적 복수의 소재로 다
루기보다 촛불 같은 가벼운 기호적 인물들의 이미지를 흑백영사기를 빌려 값
싼 하얀 천의 배경막에 잠시 비추듯이 암시하거나 재현할 뿐이다. 유령들의 복
잡하고 다양한 감춰진 동기들은 논리적 패턴을 벗어나 단절․분절․모순의 비
개연적 대립관계를 생산하면서 오히려 관객에게 자신들의 현존의 실체와 변화
를 직관할 수 있는 심리적 반전을 야기시킨다. 무대의 유령들의 과거사의 응어
리인 무의식으로의 느린 퇴행의 몸짓은 관객의 바로보기를 반복 학습시키는
비언어적 꿈 놀이전략이다. 니체주의자들의-스트린드베리, 쇼, 뭉크, 고흐, 고갱
- 글쓰기와 그리기는 변화를 주도하는 초월적 생명력과 신비의 직감력을 지닌
구원자로서의 영적 상승이 아니라 현재의 생성자체를 직시하고 그 가운데서
현존의 있음을 바로 인지할 수 있는 자유감성의 극복인이나 스피노자의 자유
인의 복귀를 기대한다.
스트린드베리의 비이성과 광기가 지배하는 꿈과 몽상의 무대인 <유령소나
타>는 2막의 만찬에서부터 3막의 비약적 장면초반까지 훔멜을 중심으로 대령
과 미라 사이에 형성되는 과거의 연인과 현재의 부부라는 삼각관계의 팽팽한
갈등구조에서 인간들이 저지를 수 있는 용서받지 못할 악행들을 들추어낸다.
18) 위의 논문, 137쪽.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11
훔멜과 과거연인이자 대령의 아내인 미라의 20년 이상의 악연으로 인한 애증
과 원한의 투쟁은 유령과 다름없는 산자들을 회복이 아니라 죽음의 질곡으로
몰아넣는다.
미라 우리는 참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그걸 잘 알잖아요. 우린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많은 죄를 지었어요. 모두가 그렇겠지만 우린 겉
으로 드러남 모습과 다른 사람들이예요. 왜냐하면 우리 내면은 우리 자
신보다도 훨씬 선량할 테니까. 우린 자신의 죄를 혐오하고 있어요. 하지
만 당신, 야곱 훔멜, 가짜 이름을 써 가면서 재판관 행세를 한다면 그건
결국 우리 가엾은 죄인들보다 더욱 나쁜 사람이라는 걸 입증하는 겁니
다! 그게 당신의 본 모습은 아니죠. 당신은 인간을 훔치는 사람입니다!
한때는 거짓으로 나를 훔쳤고 그리고 빚을 갚지 않는다고 오늘 장례를
치른 영사를 목 졸라 죽였구요. 또 이번엔 학생을 훔쳐 족쇄를 채웠죠.
한 푼도 주고받은 일이 없었으면서 그 청년의 아버지를 빚쟁이로 몰아
갔구요.(770)
Mummy We are poor miserable creatures, we know that. We are not what we
seem to be. At bottom we better than ourselves, since we abhor and
detest our misdeeds. But when you, Jacob Hummel, with your false
name, come here to sit in judgement over us, that proves that you are
more contemptible than we! And you are not the one you seem to be!
You are a slave trader, a stealer of souls! You once stole me with false
promises. You murdered the counsel who was buried today; you
strangled him with debts. You have stolen the student and shackled
him with an imaginary debt of his father's, who never owned you a
penny. . .
훔멜은 어둠의 둥근 지옥의 주재자로서 주변의 인물들을 선악의 기준없이
312▪드라마연구 제51호
살해하거나 유혹하고 속여서 재산을 빼앗는 사탄이며 루시퍼(Lucifer)이다. 자
신의 친딸이자 대령의 딸인 히야신스의 방인 3막으로의 진입직전에 흡열귀로
서 인간의 혈육을 빨아먹던 훔멜의 무거운 그림자이자 페르소나가 미라와 대
령의 하인 벵트손(Bengtsson)의 복수를 위한 연속적 담론전략에 의해 해부된다.
1-2막의 남녀인물들의 엉키고 섞인 과거관계에서 밝혀진 수치와 죄악의 이미
지들이 훔멜의 죽음으로 꿈꾸는 자인 학생과 관객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훔멜
이 심적․물리적 감금을 가한 타자들의 복수․죄의식․절망의 얼굴들은 노인
의 가식과 탐욕의 껍데기 벗기기가 앵무새와 뻐꾸기 소리(771)로의 전환으로
절정에 이르고, 미라의 병풍에 의해 매장을 의미하는 관모양의 벽장으로 끌려
들어가는 제의적 폭력이 마무리되는 순간 오히려 무덤덤해진다. 피해자들이
바람으로 쉽게 꺼지는 촛불처럼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게 되고, 미라의 감춤과
은닉의 벽장이 살인공모자인 벵트손이 장막을 치면서 사형집행장으로 바뀌자
훔멜은 영사를 죽였을 때 사용했던 동일한 밧줄에 의해 아이러니한 죽임을 당
한다. 2막이 시간적 주기로 가을이라면 3막은 본격적 죽음을 예고하는 겨울과,
대지와 자연을 노래하는 초인의 탄생을 예고하는 봄이 상존하는 시간의 공시
성의 한계를 넘어선 환유적 통시성의 시간주기이다. 훔멜과 미라가 사라짐의
죽음을 연기하자 학생과 친딸 히야신스 소녀가 부모를 위한 즉흥적인 장례식
의 진혼곡을 하프로 연주하고 학생은 노래한다. 이들의 노래는 “13세기 북유럽
에서 두루 퍼지고 아일랜드 시편에서 유래한 ‘태양의 찬가’로서 살아남은 자들
이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하고 신의 가호를 비는 제의식의 소리이다.”19) 불교,
카톨릭, 로마정교, 스웨덴베리의 영지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인간은 죽은 후
40-49일정도 연옥이란 회개영역에서 머물면서 사후세계의 최종지를 선택받는
다고 간주한다. 20년간 유령들이 비언어적인 단절적 접촉의 죽음 파티를 강제
적으로 반복하다가 죽어야 벗어날 수 있는 대령의 저택의 화려한 외장과 달리
내부 원형무대는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복수와 절망이 되풀이되는 정신병
19) August Strindberg, 조태준 역, ?유령소나타?, 서울: 지만지, 2014, 153쪽.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13
동같은 현실과 꿈의 경계이다. 산자와 망자를 정리하는 미라의 벽장은 인간이
지각하거나 감내하기 벅찬 눈앞에 펼쳐지는 현재의 구속력의 항상성이면서 동
시에 지적 상승과, 스피노자와 니체의 디오니소스적 인물을 기대할 수 없는 무
의식의 저장고이다.
태양을 보았으니
나에게 비춰진 불빛에서
가장 깊은 진리를
뿌린 대로 거둘 것이니
덕을 쌓은 자 복 받으리라
그대의 업을
악으로 되사려 하지 말라
차라리 너로 인해 신음하는 자
선으로 위로하라
그로부터 은덕을 입게 되니
악을 행하지 않는 자
두려울 것이 없도다
무고함은 하나의 덕이리니.(772-773)
I saw the sun
And from its blaze
There burst on me
The deepest truth:
Man reaps as he sows;
Blessed is he
Who sows the good.
For deeds done in anger
Kindness alone
314▪드라마연구 제51호
Can make amends.
Bring cheer to those
Whom you have hurt,
And kindness reaps
Its own rewards.
The pure in heart
Have none to feat
The harmless are happy.
The guileless are good.
젊은이의 레퀴엠(requiem)이 무대음악으로 처리되자 과거의 인물들은 -훔멜,
미라, 대령, 영사(Consul), 남작(Baron), 요한손(Johansson), 뱅트손, 관리인의 처
(Superintendent's Wife), 백발의 약혼녀(Fiancée)- 죽이고 속이며 절규하던 아픔
의 무대를 비우고 아르켄홀츠와 히야신스 소녀와의 우주에 관한 신비주의적인
대화의 3막이 진행된다. 우울증환자인 고갱의 유작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무
엇이며 어디로 가는가>가 2천년 이상 이성의 진리로 믿었던 인간의 과거․현
재․미래의 공시적 시공간의 정형화를 거부하고 삶과 죽음의 불명료한 경계의
모호성을 그리듯이, 광증환자인 스트린드베리도 꿈 극의 시리즈에서 인간이
아파하는 이유와 그 극복대안을 “비트겐슈타인의 비이성적이고 비언어적 기호
들의 즉흥적 언어놀이”20)을 통해 시각화하고자 한다. <꿈연극>에서는 시인이
신의 딸의 대지에서의 좌절과 실패를 위로하고 <죽음의 무도>에서는 엘리스
20) 조중걸, ?플라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서울: 지혜정원, 2012./ 박병철,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 서울: 필로소픽, 2014./ Ludwig Wittgenstein, ?철학적 탐구?, 이승종 역,
서울: 아카넷, 2016./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1921)와 ?철학적 탐구?(1953)에서
개인은 언어게임의 현장에서 ‘공통적 속성’을 지닌 언어들의 ‘가족의 유사성’을 통한 일
상 언어의 활동 즉, 현실에서 언어를 통해 일어나는 순간적인 불확정성과 비고정성의 현
존의 실상을 평가하거나 분석하지 말고 그 생성자체를 보아야 한다고 강조함. 기존의 형
이상학적 철학이 추구한 이상향인 변함없고 모든 것들에 내재한 보편적 진리에 대한 헛
된 꿈을 쓰레기통에 버림.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15
(Alice)가 폭군인 에드거(Edgar)의 죽음을 수용하듯이 모두가 떠난 <유령소나
타>의 꿈의 묘지에서는 학생이 원수의 딸의 죽음장면을 상상과 직관이 요구되
는 환유적인 메타적 연기로 마무리한다. 죽기 전 훔멜이 유령의 집에 서로가
독립적으로 살지 않고 빌붙어 사는 이유를 묻자, 미라는 “우리의 죄악과 비밀,
잘못이 우리를 묶어 놓고 있기 때문이며, 수도 없이 인연을 끊기도 하고 갈라
서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면 언제나 서로 다시 뒤엉키기 일쑤였다”(764)고 고백
한다. 훔멜에게 집착하는 미라와 우유소녀유령(Milkmaid Apparition)의 그림자
연기와 담론 전략의 반복 역시 성적 유희로 강간당하거나 단지 범죄의 목격자
라는 이유로 살해당하는 피해자들의 감출 수 없는 광기어린 분노의 출구이자
끝날 수 없는 악연의 연결고리이다. 1-2막의 꿈꾸는 자가 훔멜이나 학생이라면,
3막의 연기동작이 거의 없는 실내극(chamber play)의 재현부는 아르켄홀츠나
저자의 꿈으로 회귀적 원형구조에-둥근 방․지구․우주-내재하는 현존재들의
극복하기 불가능한 죄와 벌의 본원적 인연의 반복성과 영속성을 부각시킨다.
3막에서의 훔멜의 사라짐은 타자와 관객에게 감정적 이완이나 후련함을 선
물하기보다 그의 광기와 폭력에서 연결된 원죄의 잔상들이 확대․재생산되는
무대연출을 짐작케 한다. 스트린드베리는 꿈 놀이공간의 유령의 출현과 불가
사의한 초자연적 이미지들을 “토도로프(Tzvetan Todorov)의 거울과 안경”21)의
극적기교로 처리하면서, 배우와 관객을 예외 없이 심리적 공포와 두려움에 몰
입시키지 않고 각자의 개별적 죄의식에 따라 충격적 장면을 발견하거나 판독
하는 입장에 배치시킨다. 악인 훔멜은 우유소녀유령을 실제로 보지 못하고 주
일아이인 학생의 유령보기 초능력에 충격을 받으며, 미라와 벵트손의 페르소
나 벗기기에는 자신의 내면의 거울에 비췬 죄상들과의 동질화로 공포와 부끄
21) 이성섭, 「스트린드베리의 <유령소나타> 안에 나타난 환상적 양상 연구」, ?한국극예술연
구? 23, 서울: 한국극예술학회, 2006, 399쪽. 재인용./ Tzvetan Todorov, ?환상문학서설?, 최
애영 역, 서울: 일월서각, 2013./ ?환상문학 서설?에서 텍스트의 세계를 살아있는 사람들
의 세계로 여기고, 초자연적이고 비논리적 사건들을 수용하는데 심리적 망설임(hesitation)
과 동시에 ‘거울과 안경기법’에 따른 개별적이고 차별적인 환상(작중 인물과 독자/관객의
동질화와 거리두기)이 발생해야하며, 끝으로 시적․우의적 해석의 금지를 강조.
316▪드라마연구 제51호
러움에 휩싸여 저항하지 못한다. 훔멜은 2막의 몽상적 원형지옥에서 악의 환상
들을 생산한 경이(wonders)의 대행자이지만, 학생과 뱅트손의 물리적 협공으로
60년간 구축했던 안정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성채인 가식의 그림자가 해체되
고 스스로 예상하거나 상상해보지 못한 파괴적 환상에 오히려 위축된다. 아르
켄홀츠와 히야신스 및 객석의 일부 관객들은 안경을 통해 산자와 유령 모두를
유연하게 볼 수 있고 인물들의 죄악을 있는 그대로 구분하는 판독의 여유를 유
지한다. 배우와 관객의 환상의 수용적 차별화전략이 보여주고 보는(showing
and seeing) 해석학적 구조의 구분을 무너뜨리고 꿈의 무제한적인 시공간의 펼
침의 전복을 함께 ‘관하는(see into) 메타연극의 서사적 완성도’는 아르켄홀츠의
히야신스 소녀와의 ‘불교적 담론과 죽음의 폭력연기’에서 마무리된다.
3막의 재현부의 배경막 한 가운데 히야신스 꽃을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는
불상이 위치하고, 남녀배우는 꽃의 전설과 더불어 우주와 삶의 현존에 대한 철
학적이고 영적인 언어게임을 전개하고 있다. 중앙의 불상은 “아미타부처
(Amitāyus Buddha)”22)로서 죽음과 사후세계의 극락(elysian field, paradise)을 주
재하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보는 사람의 시간과 공간의 차이에 따라 얼굴과 눈
의 인상이 새롭게 변화하는 “아나모픽(Anamorphic)기법이나 렌티큘러(Lenticular)
방식”23)으로 위치하고 있다. 학생과 히야신스가 바라보는 불상(a large Buddha)
의 감시와 경고성의 눈빛은 객석에서 일반관객이 응시하는 온화한 느낌과는
미묘한 시각적 대조를 형성한다. 이국적이면서 동양적인(in a bizzare style,
predominantly oriental, 773) 정취가 물씬 풍기는 방은 “각양각색의 히야신스가
사방에 가득 차있는 미지의 불교사원내부의 시각적 장치이다”24). 불상의 무릎
22) 3막의 죽음의 장면과 연계되는 불교의 조각상은 아마타부처, 지장보살(Ksitigarbha
Bodhisattva), 인로왕보살(Soul-guiding Bodhisattva)로 분류할 수 있다.
23) 스트린드베리와 연출가 잉마르 베리만(Ingmar Bergman)이 불상의 제작기법의 특성을 파
악하였는지 판단할 수 없지만 거리에 따른 불상의 눈의 예리함의 변화는 남방불교의 대
형불상에서의 근접함에서 멀어질수록 ‘엄격함(권력계급과 수행자에 대한 경고)-평온함
(마음의 보편적 평상심)-측은함(일반인에 대한 자비심)’으로 비교된다.
24) 불전간행회 편, 김지견 역, ������화엄경: 무한의 세계관?, 서울: 민족사, 2002, 11쪽./ 불교 사
원의 내부 중심공간이자 부처의 진리인 8만4천 종류의 불법을 전달하는 법당은 ?화엄경?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17
에는 샬롯(shallot; 쪽파)의 구근이 놓여있고, 그로부터 길다란 줄기와 ‘재생과
천상의 은유인 하얀 별모양의 꽃’이 피어있다. 불상 우측의 연옥인 원형방 입
구에 대령과 미라가 유령이나 조각상처럼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는 사찰의 정
문에 위치한 사대천왕(Lokapala)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한다. 연옥의 배경에
는 3막의 끝인 소녀(Young Lady 혹은 Adele)의 죽음을 상징하는 뵈크린
(Boecklin)의 ‘죽음의 섬(The Island of the Dead, 783)’이 그려진 죽음의 장막이
설치되어 있고, 왼편에는 ‘산자에게 생명력인 음식을 공급하는 괴기한 여자요
리사’(?)의 부엌이 눈에 띈다. 니체의 디오니소스적인 본원력으로 진혼곡을 노
래한 수행자이자 직관지를 갖춘 학생은 불상에 심리적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4가지 색상의 신비적이고 영적인 히야신스 꽃을-흰색․노란색․붉은색․푸른
색-황금과 진주보다 더 좋아한다고 아델에게 고백한다. 대지의 자유감성과 생
의 의지를 회복한 아르켄홀츠는 법당안의 샬롯과 주변의 히야신스를 현실의
지옥과 천상의 극락에서 동시에 피는 푸르고 하얗고 희고 붉은 4종류의 연꽃
으로 연계시킬 만큼 명료한 통찰력과 지혜력을 관객에게 투영시킨다. 불교적
색채-불상/연꽃/사대천왕/연옥/별꽃의 천상/수행자-로 꿈과 환상의 무대장치를
완성시킨 3막은 학생의 “결혼을 통한 새로운 생명(We have given birth to
something together)의지와 아델의 사유의 고정성과-기다림․시련․인내(Timetesting-
patience, 775)”-의 반목과 충돌을 반복한다. 꿈 극은 불상 앞에서 소녀의
살해와 죽음의 즉흥적 폭력으로 환상과 비언어적 기호들이 사라질 시점까지
현존의 아픔에 대한 시각적 모호성을 유지시킨다. 소녀의 키르케고르의 공시
적 금욕주의와 아르켄홀츠의 불교의 고통과 즐거움의 통시적 항상성은 ‘언어
와 몸 연기의 대위적(counterpoint) 평행구조의 정형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학생 이 꽃은 우주의 이미지입니다. 부처님이 땅의 구근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아 있는 것은 그 이유 때문입니다. 위로 뻗어 올라가면서 천상으로
에서 상징하는 부처의 세계를 장엄한 화엄의 천상으로 드러나도록 하기 위해 화려한 단
청기법과 여러 종류와 색상의 꽃들로 장식한다.
318▪드라마연구 제51호
변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집중해서 바라보시죠. 척박한 대지가 천상으
로 변할겁니다. 부처님이 기다리는 것도 변화 그 자체입니다.(774)
Student So you see, it's an image of the whole cosmos. That's why Buddha sits
there with the bulb of the earth in his lap, watching it constantly to see
it shoot up and burst forth and be transformed into a heaven. This poor
earth shall become a heaven! That is what Buddha is waiting for!
소녀와 유령들의 짧은 파편적 대사와 달리, 학생의 자유감성과 직관에 의한
교감과 소통의 막힘없는 긴 몸 언어는 시와 노래가 담긴 개별적이고 자기의존
적인 자기화의 소리로서, 이 세계에 존재하는 무수한 모든 것들이 -인간/사물/
경험/기억/느낌/의식/무의식-상호 연결된 의존적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태생
적 한계인 인과를 지적한다. 꿈 극의 배우와 관객은 자신의 인과적 연쇄가 무
한히 계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들의 통합된 전체와
생성과정 자체를 볼 수 있는 독립적이고 자존적인 존재로의 전복과 해체과정
이 필요하다. 아델은 자연과 대지를 초월한 곳에서 절대적 존재를 찾고 의존하
려는 인습적 신비주의에 매달린 채, 고통을 창조신이 수시로 시험하는 인내의
선물로 수용하려는 수동적 위치-금욕주의-를 고집한다. 반면에 아르켄홀츠는
“생명 현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자연이 합리적으로 질서 지워지고 자존적
이고 스스로 유지되고 완전히 실재하는 모든 것 자체이듯이”25) 인간도 생명의
지에 따라 대지에서 있는 그대로 변화․생성하는 삶만을 긍정하는 자기의존적
인 다른 하나의 변별적 자연이라는 사실을 꿰뚫고 있다. 우주와 천상에 관한
학생과 소녀의 질문과 대답은 <꿈 연극>의 시인과 인드라 딸의 대지에서의 삶
과 고통에 대한 대화와 평행을 이루는 극적 구조로서 학생과 시인의 지적․영
적 자유로움을 연결시킨다. 결혼을 통한 생명회복과 아이의 천진한 즐거움(the
dearest of joys, 778)이 삶의 첫 번째 이유라는 학생의 디오니소스적인 능동의
25) 박삼열, 앞의 논문, 50쪽.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19
몸짓은 히야신스 소녀를 ‘환상․인과․죽음․무의식․창조신․도덕․순종․
인습의 총체적인 그림자인 요리사의 부정성’에서 분리시키지 못한다. 학생이
요리사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아델의 해방을 위해 ‘훔멜의 유령’에게 감시를 중
단하고 부엌에서 떠나라고 경고하자, 그녀는 “우리는 감금의 방인 부엌에서 항
상 서로 원기(sap)를 빨아먹고 살며, 자기가 나가도 어느 누구가 자신을 완벽하
게 제거할 수 없다”26)고(779) 비웃으면서 당당하게 대응한다. 표현주의무대의
원형인물들의 내재적 한계는 변화생성 가능성을 향한 개인의 본능욕망의 부재
와, 자유의지와 감성을 구속시키는 사회적․종교적․심리적 권력통제의 집단
적 효율성에서 있다. 아델의 죽음선택과 아르켄홀츠의 살인은 죽음을 통한 고
통의 해방이라는 일차원적인 지적 단순성을 벗어나 악령 요리사와 자유인 학
생의 현존의 대위적 관계를 놓치고 고통이 끝날 때까지 ‘주변 모든 것들을 맹
목적으로 저주하면서’(The whole creation, all of life, is cursed and damned, 782)
인내하겠다는 다수 금욕주의자들의 무지의 인습적 몸짓에 대한 폭력의 경고이
다. 소녀와 극장의 인물들은 ‘예수가 미치광이소굴과 감옥, 납골당 같은 대지
를 순례하여 구 시설에 입원한 광인들을-인간들- 해방시키려했을 때 오히려 미
치광이들의 손에 죽음을 당하고 그 죄인들이 풀려나는 이천년 전 역사의 심층
적 구조’(782)를 기도와 구원의 종교적인 연결고리로만 매듭지으려는 자기변화
의 실패자들이다. 아르켄홀츠는 소녀의 천상으로의 재생을 위한 제의식을 통
해 이별의 진혼곡을 2막에서의 훔멜 죽음장면처럼 재차 부르지만, 시련의 방인
현실에서의 도피라는 아델의 자의적 선택행위로 인해 그의 저음은 2막의 원한
과 복수 연기에서 파생된 경쾌한 장엄함과는 청각적 대조를 구축한다. 스트린
드베리와 스웨덴보리와 키르케고르, 불교의 연기법은 죽음을 끝이 아니라 삶
26) 죽이거나 끊어도 떼어낼 수 없는 여자요리사는 2막의 끝에서 사형당한 훔멜의 망령으로
불교의 인과법과 융의 집단무의식과 유사한 인식작용 중 마지막 단계인 모든 인식의 저
장고이자 무지의 본원적 근거인 아뢰야식 혹은 업식을 의미함. 학생을 제외한 무대와 관
객의 모든 산자와 유령들의 의존적 본원인 ‘이성과 창조신의 질서체계의 인습적 정형성’/
한자경, ?심층마음의 연구?, 파주: 서광사, 2016./ 하루히데 시바, ?유식사상과 현상학?,
박인성 역, 서울: 도서출판b, 2014.
320▪드라마연구 제51호
의 영속적 연결인 또 다른 시작점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인간은 삶과 죽음의
경계에 몰입되어 공포와 두려움의 구속력을 생산하기보다 자연에서의 내적 움
직임(inner movement)을 유지시키는 생성동기로서의 반복적 항상성과 역동성
자체로 바라볼 수 있는 직관과 통찰력을 보유해야한다.
학생 지혜롭고 자비로우신 부처님, 천상이 대지에서부터 승화되어 꽃피울
수 있도록 살피시는 법당의 부처님이시여, 시련을 견뎌 이겨낼 수 있도
록 우리에게 인내를 주시옵소서. 우리의 희망이 꺼지지 않도록 지순한
의지를 주소서!(783)
Student Buddha, wise and gentle Buddha, sitting there waiting for a heaven to
grow out of the earth, grant us the purity of will and patience to
endure our tribulations that hope will not come to shame.
파괴와 광기의 3막은 만남과 해방을 아름다운 꽃과 별의 환상적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전복과 대위적 대비의 반복, 충돌을 통해 죽음과 윤회라는 슬픈 이
별로 끝나는 꿈의 전개이다. 아르켄홀츠가 미래와 희망을 노래하는 동안 아델
은 죽음과 절망을 원하고, 훔멜이 권한 발퀴레(Walküre)의 쌍둥이 남매인 지크
문트(Siegmund)와 지클린데(Sieglinde)의 근친상간이 기쁨과 열정에 넘친 환희
의 이중창을 부르고 이별을 위한 환상의 춤을 추는 동안 학생과 소녀는 노래와
흥이 생략된 죽음의 언어를 무한정 나열한다. 주인공이 자신을 제외한 무질서
와 혼돈의 연옥에 머물던 인물들의 장례를 주관하여 아미타부처와 함께 사후
세계의 최종지를 향한 마지막 통로를 안내하는 순간에도 훔멜의 대행자인 요
리사는 부활하여 죽어도 죽지않는 무의식의 비가시적 존재가 상존한다고 반박
하면서 망자를 위한 제의식과 학생의 직관력을 조소한다(deride). 훔멜이 사업
의 방해자를 쉽게 살해하듯이 예비사위인 학생도 히야신스 소녀를 목졸라 죽
이는 해석불가능한 동일한 죽임의 판토마임을 반복하고, 미라가 감금의 삶을
선택했듯이 그녀의 딸 역시 더 깊숙한 어둠의 방으로 퇴행하여 주변 인물들의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21
지각력을 마비시키는 어머니의 몸짓을 그대로 복습한다. 하지만 소녀의 자유
감성회복이 죽음으로 끝나고(A moaning is heard from behind the screen, 783) 여
자요리사의 언어적․물리적 폭력이 무대를 지배하는 꿈의 끈질긴 카오스
(chaos)도 결국 “아르켄홀츠”27)의 삶의 의지와 삶 전체를 조망하는 지혜와 열
반의 눈으로 부르는 태양의 찬가와 하프의 가벼운 음향(harp strings)에 의해 밝
은 빛(pure white light)으로 전도된다(783). 스트린드베리의 순환성(circularity)의
꿈은 죽음이 모든 것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삶은 죽음과
관련 없이 영속적으로 무한 반복된다는 니체와 불교의 영원회귀성과 연기적
차연성(differance)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반소크라테스-플라톤주의자들에 의하
면 인간과 자연은 절대신의 맹목적 피조물이 아니라 모든 내적 요인들이 필연
적 인연에 의해 총체적으로 잘 짜여진 거대한 유기체이며 스스로의 생존본능과
생의지를 보유한 주체적 현존이다. 특히 전복의 몽상적 원형무대는 자연의 개별
적 톱니바퀴에 불안하게 매달려 있는 소자연인 인간들의 작은 바퀴들이 자연과
맞물려 끝없이 생명을 생성 반복한다는 스피노자의 자기의존적 개별화를 전하고
자한다.
3. 꿈의 3막: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의 니체적 몸짓
소나타와 오페라의 음악적 구조를 보여주는 스트린드베리와 쇼의 연옥과 꿈
의 3막인 실험적 서사극은 제시부와 전개부, 재현부/토론부의 비개연적이고 반
복적인 반전의 연속적 연결고리를 유지하는 혼돈의 유기체적 전개과정을 시각
화시킨다. <유령소나타>가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The Ring of Nibelungen)
27) 아르켄홀츠(Arkenholz)라는 이름은 ‘아르크(아치 혹은 배)와 ’홀츠(나무)‘의 합성어이다.
성서적으로는 노아의 방주를 상징한다./ 조태준, 앞의 책, 139쪽, 재인용./ 본 소고는 전개
구조의 일관성을 위하여 나무배를 불교의 49제와 천도제등 제의식에서 망자를 사후세계
로 실어 나르는 역할을 하는 종교적 상징체계로 보며, 아르켄홀츠의 문제해결을 위한 지
적․영적 능력으로 간주함.
322▪드라마연구 제51호
에서 인간과 신들의 탐욕과 반목을 그린 현대적 드라마의 마법과 환상의 주술
적 극기교를 빌려 남녀의 이별을 아파한다면, 돈 주안의 꿈 극은 모차르트가
인간의 불완전함과 본성들-욕망․시기․질투․배신․사랑-을 유머와 해학, 풍
자의 대화와 독백으로 노래한 2막의 희가극인 오페라 <돈 지오반니>(Don
Giovanni)의 방탕아 돈 주앙의 웃음과 슬픔이 없는 여성편력과정을 태너의 역
할전이 전까지 그대로 반복한다. 므로제크(Sławomir Mrożek)의 <바다 한가운데
서>(Na pełnym morzu)28)가 ‘계급과 부의 불균등으로 야기되는 개인과 사회의
억압적 수직구조망에서 야만성과 문화적 순응주의를’ 폭로한 그로데스크한 블
랙코미디이듯이, 쇼의 언어게임(wordgame)의 해학적 사회극 역시 종교와 정치
권력의 관습과 굴레에 갇혀 형식과 겉치레에 집착하게 만드는 자본주의사회의
조작된 메카니즘의 허위성을 지적한다. 므로제크의 절망과 고립의 부조리극이
공존의 실존문제를 정치․사회․문화의 중층적 관계의 기만성에서 논쟁의 담
론을 펼치는 것처럼, 쇼의 언어중심의 상황재현극은 “극적 상황의 반전(reversion),
역설, 냉소, 아이러니, 익살, 유머, 재치를 혼용하여”29) 보존의 생명력과 방어력
이 결여된 자기성애자(narcissist)들에게 과시적인 허상의 말장난만을 반복시키
는 사회병리학적 희비극이다.
개별막이자 가극형식의 3막의 시에라네바다산(Sierra Nevada, 238)에서 현실
부적응아이며 사회주의자인 태너가 꾸는 지옥과 천상의 꿈에서 쇼는 풍부한
상상력과 현실을 꿰뚫는 통찰력과 꿈, 환상으로 희대의 바람둥이 돈 주안을 자
기극복과 자기찾기화가 가능한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로 재탄생시킨다. 쇼는 가
난이 고통이고 죄악(poverty is suffering and crime)이라고 여길 만큼 실제로 돈
이 절실했고, 아버지의 무능력으로 가중된 돈의 물화가치, 즉 없음의 비이성적
공포를 사상극의 심층부에 투영시켜 자본에 대한 조건없는 순응과 회피, 체면
의 무거움을 익살과 아이러니의 가벼움으로 전복시킨다. 환상과 꿈의 지옥에
28) Sławomir Mrożek, ?바다 한가운데서/미망인들?, Na pełnym morzu, 최성은 역, 서울: 지만지,
2013.
29) 이행수, ?역설과 아이러니의 이상세계?. 서울: 동인, 1999. 14쪽.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23
빠진 돈 주안은 자신을 포함하여 석상(The Statue)과 악마, 아나(Ana)가 자본과
종교권력에 대한 편집증적 강박관념에서 헤매는 트라우마의 근원을 자의적 선
택능력과 현존에 대한 직시력 부재에서 살펴본다. 꿈의 오페라의 주재자인 돈
주안은 이성과 창조신의 도덕적 질서와 전통에서 반복․확장되는 편견과 가식
을 해체시키고 자기기만적인 페르소나의 가면을 스스로 벗는 대지의 능동적
자유인이자 철저한 리얼리스트이다. 꿈의 초인(superman) 돈 주안은 “니체의
능동적 극복인인 위버맨쉬(Übermensch)와는 달리, 반이성과 자유감성의 균형과
집중력을 유지하고 나은 존재를 향한 끊임없는 변화와 투쟁의 중간과정에 위
치한”30) 적극적 현실수용자이다. 태너가 앤으로부터 도망친 현실의 시에라네
바다가 돈 주안이 아나로부터 벗어난 꿈의 천상으로 연계된다면 돈 주안은 지
옥의 물리적 편안함과 즐거움, 기쁨의 영속적 보장에 만족하고 변화를 거부하
는 악마와 석상과 달리, 현실의 자본주의와 기독교문화의 이성과 도덕의 폐쇄
성을 인지하고 동시에 지옥의 권태로움과 천상의 모험적 역동성을 변별화시킬
수 있다.
돈 주안 그래서 지식이 인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배후에 있는 힘에게
도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없다면 실수로 죽게되죠. 마치 생명
이 수세대의 투쟁을 거친 후 놀라운 육체의 기관인 눈을 진화시켜
그 살아있는 유기체로 하여금 우리가 어디로 가려고 하는지, 무엇이
자기를 돕고 위협하는지를 알고 이렇게 마음의 눈으로까지 진화해
서 이전에 자신의 몸을 죽인 천 번의 위험을 피하고 오늘날 물질세
계가 아니라 삶의 목적을 인지할 수 있게 되며, 대신에 지금처럼 근
시안적인 개인적 목적을 세워 자신의 심안의 능력을 방해하거나 좌
절시키지 못하게 하죠. 지금 상태에서도 어떤 한 종류의 사람은 모
든 이해와 환상의 갈등에서도 행복해하고 두루 존경을 받고 있답니
30) Robert F. Whitman, Shaw and the Play of Ideas, Itacha and London: Cornell Univ. Press, 1977,
p. 212.
324▪드라마연구 제51호
다.(376)
Don Juan That's why intellect is so popular. But to Life, the force behind the
Man, intellect is a necessity, because without it he blunders into
death. Just as Life, after ages of struggle, evolved that wonderful
bodily organ the eye, so that the living organism could see where it
was going and what was coming to help or threaten it, and thus
avoid a thousand dangers that formerly slew it, so it is evolving
to-day a mind's eye that shall see, not the physical world, but the
purpose of Life, and thereby enable the individual to work for that
purpose instead of thwarting and baffling it by setting up
shortsighted personal aims as at present. Even as it is, only one sort
of man has ever been happy, has ever been universally respected
among all the conflicts of interests and illusions.
<유령소나타>의 몽상적 연옥이 산자와 유령의 무방향성과 공시성을 시각화
한 지옥같은 현실의 정신병동이라면 돈 주안의 꿈의 영역은 데카르트주의자들
의 이성과 광기의 전략적 야합이 기형화시킨 대지의 정형성에서 이탈한, 지옥
과 천당의 경계적 전통성이 전도된 천상의 무대로, 꿈꾸는 자로 하여금 차라투
스트라의 대행자로서 자기변화를 직감할 수 있는 “자기화의 몸짓과 몸 언어
를”31) 자유롭게 연기할 수 있게 한다. 스트린드베리의 표현주의무대가 남녀관
계의 가식을 폭로하고 삶의 피상성을 파괴시키는 무자비한 꿈의 절규이라면,
쇼의 낭만과 실제가 충돌하는 가치 전복을 위한 언어중심의 메타연극은 도식
적 사유와 거짓의 이상화작업의 심각성을 구체화하여 관객과 배우에게 실체의
허상을 경계하도록 유도한다. 스트린드베리의 원형인물처럼 기호적 실체인 고
31) 김정현, 「니체와 융 사상에서의 ‘자기’ 찾기-융의 니체 읽기를 중심으로」, ?철학?(77), 서
울: 한국철학회, 2003, pp. 247-254./ 김정현, ?니체의 몸 철학?, 서울: 문학과 현실사, 2000,
171-185쪽.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25
정성의 배우들은 악마의 영역에 들어서는 순간 과거의 고통과 현재의 걱정 그
리고 미래의 불안감이 불가능하고 노동이 필요없으며 고통과 계급차이마저 느
낄 수없는 쾌락과 심미주의만 존재하는 지옥에 머물기를 대부분 선택한다. 꿈
의 거주자들에게 자각과 보존을 위한 지적, 육체적 역동성이 허락되지 않는 감
금의 환상은 악마와 돈 주안의 다름의 언어게임의 반복적 평행구조에서 꿈이
끝날 때까지 지속된다. 셰익스피어는 개인의 성격적 결함(hamartia)이 -시기․
질투․욕구․명예․편견․탐욕- 일으키는 욕망과 좌절의 회오리바람(Dust
Devil) 속에서의 생존을 위한 본능적 충돌을 인간이 사는 이유라고 보며, 밀러
(A. Miller)는 개인이 사회와의 유기체적 관계에서 사회․문화․경제의 계급적
소속감을 반복해서 재확인하고 확장시키려는 저항적 몸짓을 생존의 근거로 간
주한다. 오닐과 셰퍼드에게는 개인의 유전과 근친상간의 내면적 폭력성과 집
단 무의식에 대한 수용과 버림을 통한 가족의 재구성이 살아가는 이유이고, 윌
리엄스(T. Williams)는 조직의 불합리한 힘에 의해 발생한 심리적 트라우마의
회복을 개인이 사는 목적으로 본다. 쇼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모르고 내적
긴장감없이 사는 비존재의 무방향성을 회복시키는 변화자체를 생존의 근거로
내세운다. 어떤 종류의 실험적 무대에서든지 배우와 관객이 공통적으로 드러
내는 사회심리학적 반응은 사회속의 개인이 다양성의 모험적 즐거움보다 동일
성의 패러다임의 우월적 논거에 따라 선택적 행위를 모방․결정한다는 사실이
다. 니체와 쇼가 심각하게 고민한 빅토리아의 자본주의에서의 동일성 폭력은
이성의 모더니즘이 생산한 노예도덕의 준거를 통해 완성되고, 개인으로 하여
금 타자를 배제하고 순응주의의 패러다임을 추종하도록 이끌면서 ‘차이와 변
화의 사유’를 불가능하게 한다. 쇼는 돈 주안의 전복을 통해 악마와 아나가 벗
어나지 못하는 데카르트의 몸을 배제한 사유의 선험적 고정성을 타파하고 차
이를 수용하는 개별적 자기화를 상상할 수 있는 몸의 자율성(autonomy)과 창의
성(originality)을 동일화의 대안으로 제안한다. 돈 주안의 꿈은 이성으로 해석학
적 접근이 가능한 합리성, 즉 언어중심의 무대의 이지성(intelligibility)을 비이성
의 환상과 상상으로 새로움(novelty)인 디오니소스적 몸 언어가 가능한 차라투
326▪드라마연구 제51호
스트라의 즉흥극으로 재생산함으로써 관객에게 ‘삶의 이유의 필연성’을 부각
시킨다. 돈 주안은 자신에게 부과된 강제적 현실- 앤과 태너의 유아적 연결-로
부터 벗어나려는 강력한 욕망을 새로운 상상력과 자유로운 언어놀이로 제약이
없는 허구적 해방공간을 꾸미면서, 근대의 고전적 규범과 금기들을 무너뜨리
는 돈키호테이자 즐거운 글쓰기저자인 바르뜨의 전형(prior model)이다. 그는
수준 높은 진지함과 신랄한 수사학적 산문체를 바탕으로 도덕적 열정과 지적
갈등을 담은 자기화의 몸 언어로 시각화된 다분히 이단적인 지옥관을 전개한
다. 돈 주안의 폭력적 수사학은 지옥과 그 체류자들의 사는 이유도 모르는 우
매함을 뒤흔드는 전복과 재전복의 반복을 통해 동일성의 경고한 성채를 방어
하려는 타자들의 기호적 허상을 환유적으로 해체시킨다.
돈 주안 오히려 악마의 주장과 달리, 여기 지옥에서 나는 실망시키는 것들만
모두 가지고 있어요. 시도안한 것이나 모자란다고 생각되는 것도 없
거든. 말했듯이 나는 내 이상의 것을 생각하고 있을 동안에는 그 생
각을 실현하든지 그 길을 개척하든지 하기까지 노력하지 않으면 견
딜 수 없다. 그게 나의 삶의 법칙이거든. 그건 더욱 높은 수준의 조
직, 보다 넓고 보다 깊은 그리고 높은 자의식과 보다 투명한 자기이
해에 도달하려는 내 삶의 끊임없는 갈망이야. 이런 목적이 너무 크
기 때문에 사랑은 순간의 즐거움이고 예술은 나의 능력의 훈련이며
종교는 게으름을 위한 구실에 불과하네. 왜냐하면 종교는 세상을 보
고 선한 거라고만 말하는 신을 내세웠기 때문이네. 반면 나는 본능
을 통해 세상을 보고 향상될 거라는 믿음을 지지고 있네.(424)
Don Juan on the contrary, here I have everything that disappointed me without
anything that I have not already tried and found wanting. I tell you
that as long as I can conceive something better than myself I cannot
be easy unless I am striving to bring it into existence or clearing the
way for it. That is the law of my life. That is the working within me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27
of Life's incessant aspiration to higher organization, wider, deeper,
intenser self-consciousness, and clearer self-understanding. It was the
supremacy of this purpose that reduced love for me to the mere
pleasure of a moment, art for me to a mere schooling of my
faculties, religion for me to a mere excuse for laziness, since it had
set up a God who looked at the world and saw that it was good,
against the instinct in me that looked through my eyes at the world
and saw that it could be improved.
자기극복을 위한 몸 언어를 거부하는 석상과 악마에 대한 돈 주안의 날카로
운 경고는 시에라네바다산에 오르기 이전까지는 예상하기 힘든 태너의 시각적
전환이다. 사실 꿈꾸기 전 영국에서의 태너는 돈 주안의 여성전문사냥꾼으로
서의 계략을 지닌 연애탐닉주의자나 사회개혁을 위한 능동적 행동주의자도 아
니며, 앤에 대한 환상과 의지나 열정도 없이 모방적이고 수다에 가까운 말재주
(gift of gab)만 보유한 향상성(incrementality)과 항동성(incessant dynamic)이 결여
된 수동적 부호이다. 꿈의 무대에서 방탕아의 원형적 고정성을 전복시키고 쾌
락의 원전인 지옥에서도 다시 초월을 꿈꾸는 돈 주안의 몽상에서 변화가 없는
연기는 앤과 아나에 대한 성적 무관심의 동질성이다.
1․2․4막의 현실과 3막의 꿈에서 남녀배우들의 공간적 거리두기를 유지시
키는 담론전략과 소외효과는 ‘여성을 생명력(Life Force)의 독점자이며 초인
(Superman)을 탄생시킬 이상주의자로서의 능력보유자’로 접근하는 일반론적인
해석학적 오류에 대한 쇼의 지적 경고이기도 하다. 티터톤(Titterton)이 쇼가 여
성인물을 생명력이 충만한 출산의 대행자라는 단순한 도식을 제외하면 스스로
페미니스트인체 할뿐이며 대체로 여성을 불확실해서 믿을 수 없는 성가시고
열등한 존재로 간주한다고 지적하는 부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I am of
opinion that Shaw, though now and then he pretends to be a feminist, regards
woman as inferiors... Women, in fact, except as agents of the Life Force, are on the
328▪드라마연구 제51호
whole a bit of a nuisance. They are incalculable, and Shaw distrusts anything that
he cannot calculate.”)32) 쇼는 가족에 대한 의무감이나 자기희생을 미덕으로 삼
고 사회적으로 열등한 계급적 위치에 있는 현실의 순응적 여성과는 달리 빅토
리아시대의 도덕과 이상을 거부하는 혁명적 여인이나 생명력의 대행자들을 -
세인트 조안(Saint Joan), 캔디다(Candida), 바바라(Barbara), 앤- 모더니즘의 무대
에 등장시킨다. 그는 사회성과 정치성이 농후한 실험공간에서 남성권력과 충
돌하고 데카르트의 사유적 인습의 고착화를 거부하는 여성의 몸의 저항력을
수사학적 담론능력에 따라 차등화시킨다. <캔디다>, <바바라 소령>(Major
Barbara), <워렌부인의 직업>(Mrs. Warren's Profession), <백만장자 여인>(The
Millionairess), <세인트 조안>에서의 여주인공들은 남성에 대한 종속적 의존성
에서 탈피하여 정치․종교의 남성중심적 사회권력의 우상화와 그 정점인 신성
의 허상을 태워버리는 파격적인 페미니스트로서의 기계적 초인성을 연기한다.
하지만 쇼의 이상적 여성이 지적 감금의 교육과 순응을 부정하고 자기화의 본
능의지를 회복하려는 몸짓을 진행할수록 오히려 독자와 관객에게 거리를 느끼
게 만드는 시각적 아이러니는 비실체적 인물의 인위성이 짙은 수사학적 담론
의 거부감에 있다.
꿈에서의 앤과 돈 주안의 언어게임은 5분이상의 독백에 가까운 대사로 되풀
이되는 악마와의 양보없는 진지한 논쟁의 장광설(long-winded talk)과는 달리 철
학적 논리와 사유의 유연성에서의 질적 차이를 대비시킨다. 꿈에서의 앤의 단
문중심의 대사는 3줄 이하로 5-6초 이내로 끊어지며 선택된 어휘도 돈 주안의
언어놀이능력에 비해 극히 제한적이며 타자의 언어전략에 대응할 지적 복원력
이 근본적으로 배제된 수준이다. 여성의 생명력과 생식력을 통한 인류번식의
주요과제, 즉 초인의 탄생이 쇼와 돈 주안에게 부여하는 컨텍스트상의 의미는
여성인물들의 욕망의 환상적 거울화를 통한 생물학적 타자성에 불과하며, 교
육을 통한 단선적 성숙을 그린 “<피그말리온>(Pygmalion)의 일라이자(Eliza
32) 이행수, 앞의 책, 111쪽, 재인용.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29
Doolittle)”33)의 기계적 인위성이다. 자기의존적인 저항력의 몸짓을 억지로 연
기하는 여성을 논쟁과 냉소의 서사극무대로 끌어들인 쇼의 극적 의도는 근대
모더니즘의 전통과 관습의 이상을 깨트리려는 우상파괴자의 필연적 동기에 있
지만 오히려 인물의 우상화의식을 점증시키는 역설적 모순구조에 빠진다. 스
페인의 몽환적 밤의 3막에서 빅토리아시대의 이데올로기와 관습에 의해 덧칠
된 중층적 페르소나를 생산한 “아나의 변화없는 섹슈얼리티(sexuality)”34)는 계
급에 의해 의식아래 교묘하게 지워져있는 사회폭력성의 표층적 기호이다.
쇼와 돈 주안은 앤과 아나가 생존을 위한 물질적 투쟁의 일부로서 의식과
동의어인 언어에 의한 소통을 계속해야하는 강박관념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그
의식적인 말놀이 자체라도 생산․몰입할 수 있어야한다고 간주한다. 나아가
니체와 쇼는 성적 해방과 언어의 자유로움 복원을 위해서 “의식보다 풍족하고
명료하고 유형적인 현상인 육체를 인간의 보다 멋진 반성적 삶의 드러나지 않
는 하위텍스트로 다루어야한다고 본다.”35) 아나가 고통과 의무, 채무와 보복이
라는 이성의 야만적 역사의 도덕적 가치들을 경계하지 못하고 문명화된 사회
에서 자신의 생존본능을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면 그녀는 현실과 꿈의 어느 공
간에서도 타자와의 접촉을 위한 어떤 종류의 자의적 퍼포먼스도 기대할 수 없
다. 육체의 본능은 억압된 와중에도 끝없이 이성을 몰아치고, 아나가 겁먹고
정면으로 직시하지 못하는 금욕적인 계율주의와 합리적 진보주의의 광기를-
과학․종교․자본․제도․역사- 격하시키는 충동의 의지를 잃지 않는다. 아나
33) <나의 귀여운 여인My Fair Lady>의 원극인 쇼의 <피그말리온>의 여주인공 일라이자의 언
어학습을 통한 사회적 지위향상과 계급의 충돌을 그린 작품에서 제기된 교육과 학습의
도식적 한계성 지적.
34) 꿈속의 아나는 모차르트의 돈나 아나, 몰리나(Tirso de Molina)의 도냐 아나(Donã Ana). 몰
리에르(J. Molière)의 도냐 엘비르(Donã Elvire)의 고정적 원형인 17-8세기의 결혼과 종교
의 억압적 통제에 의한 자유감성의 왜곡성과 코키토(cogito)적 언어능력의 정형성을 2백
년 이후에도 그대로 반복할 뿐이다./ Tirso de Molina, 전기순 역, ?돈 후안 외?, 서울: 을
류문화사, 2010./ Jean Molière, 이희숙 역, ?동 쥐앙 또는 석상의 잔치?, 서울: 기린원,
2010./ Jose Zorrilla y. Moral, 호세 소리야 이 모랄, 정동섭 역, ?돈 후안 테노리오: 2부로
구성된 종교 환상곡?, 서울: 책세상, 2004.
35) Terry Eagleton, 방대원 역, ?미학사상?, 서울: 한신문화사, 1995, 262-63쪽.
330▪드라마연구 제51호
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본능을 이성의 우선권을 선창하는 루소와 데카르트의
휴머니즘적 사유체계의 지하로 몰아넣고 도덕적 심미주의를 애창하는 반 디오
니소스적 인물로서 모더니즘의 복종적 추종자이다. 그녀는 1630년 몰리나의
여주인공이후로 바이런(G. Byron)과 푸슈킨(A. Pushkin)을 거쳐 조니 뎁(Johnny
Depp) 주연의 영화(Don Juan-Demarco, 1995)에 이르기까지 “140번이 넘는 재창
조의 수없는 문학적 글쓰기과정”36)에서 스스로 원작의 위치에서 미세한 긍정
적 이탈도 시도해 본 적이 없다. 아나는 여러 텍스트의 여주인공이면서 주변
배우들의 지옥과 천당의 자의적 선택의 전략적 담론에서도 공간의 지정학적
구분과 심안(mind's eye)의 은유적 의미조차 모르는 지적 수준을 괘념치 않고
전형적인 노예도덕의 자리를 고수할 뿐이다. 그녀의 출산을 위한 생명력 전도
사라는 직선적 무대역할과는 달리, 돈 주안과 차라투스트라는 안락한 삶 자체
를 근본적으로 거부하고 현존의 자기를 넘어 현존의 자기를 찾는 과정을 즐기
며, 고난을 견디는 맹목성에 그치지 않고 그 고난 자체를 수용하는 자기치유와
자기화의 몸 언어를 회복한 능동인이다.
돈 주안 전국에서는 저 상상으로는 놀거나 체면차리는 대신에 살면서 일하
는 곳입니다. 당신은 있는 그대로를 직면할겁니다. 마법 외에 어떤
것으로도 피할 수 없고, 당신의 확고부동함과 모험이 자신의 자랑
일겁니다. 만일 우리의 삶인 연극이 여기서도 지상처럼 전개되어
세계가 하나의 무대라면 천국은 적어도 무대 뒤에 있는겁니다. 하
지만 천국은 어떤 언어적 비유로 설명될 수 없죠. 내가 지금 그곳으
로 직접 가려는 것은 적어도 거짓과 저속하고 하찮은 행복의 추구
를 피해 명상 속에서 미래의 영겁을 지내고 싶기 때문입니다.(338)
Don Juan In Heaven, as I picture it, dear lady, you live and work instead of
playing and pretending. You face things as they are; you escape
36) Darya Laris Theatre, “A Introduction”, Don Juan and Pushkin, 1st posted, London: Revelbeam,
June, 2013.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31
nothing but glamor; and your steadfastness and your peril are your
glory. If the play still goes on here and on earth, and all the world
is a stage, Heaven is at least behind the scenes. But Heaven cannot
be described by metaphor. Thither I shall go presently, because there
I hope to escape at last from lies and from the tedious, vulgar
pursuit of happiness, to spend my eons in contemplation-
돈 주안은 아나와 악마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보존욕망을 폐쇄시킨 압제적인
이분법적 언어 권력에서 벗어나려는 자유의지로 타자의 모더니즘의 방어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허구적이고 모험적인 환유의 수사학을 재생하려는 내적 충동
을 포기하지 못한다. 그는 “석상이 지옥으로 들어오는 자들은 모든 희망을 버
리고 스스로를 즐기는 행위 외에 기도, 일, 의무 등 어떤 시도도 없이 편히 살
수 있다는”(...nothing to be gained by praying...Hell is, in short, a place where you
have nothing to do but amuse yourself, 314) 매력적 선언서를 발표하는 순간부터
천국으로의 주체적 선택까지 새로운 언어의 집과 환상을 통해 주변인들의 파
편적 가면성을 과감하게 벗긴다. 쇼의 위버멘쉬는 질곡과 억압으로 얼룩진 근
대성의 대행자인 악마와 아나의 금기의 텅빈 공간, 즉 자신들의 진정한 욕망과
갈구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채 살아가는 허구적 가변성에 능동과 해방의 몸 언
어를 충족시켜주고자 한다. 돈 주안의 독백과 응시, 평행, 차이를 혼용한 몸의
담론은 “의식의 신체화이자 신체의 의식화로서 몸과 느낌, 정신의 분리불가능
성을 뫼비우스의 띠”37)로 시각화시킨 환유적 수사학으로 볼 수 있다. 말장난꾼
돈 주안의 탈중심화/탈코키토화 언어전략을 힘겨워하는 지옥지킴이장 악마는
체면의 권태로움을 역겨워하는 렘브란트(Harmensz Rembrandt)를 위시한 생명
의 숭배자들(Life Worshippers, 446)과 초인이 도덕적인 빅토리아인들을 겨냥해
무차별적으로 쏘아붙이는 몸 언어의 다원성과 즉흥적 연기의 역동성을 경계할
37) 이용은, ?셰익스피어와 탈근대적 관점?, 서울: 동인, 2005, 7쪽.
332▪드라마연구 제51호
것을 주문한다.
석상 그럼 도대체 초인이란 누구를 가리키는 겁니까?
악마 그 단어는 생명력의 광신자들 가운데 최신 유행어가 되어 있습니다. 천
국에서 직접 만나지 못했습니까? 새로 도착한 인물들 중에서 폴란드출
신 독일인이면서, 그 미친놈 말입니다. 이름이 뭐라더라? 니체라든가?
The Statue And who the deuce is the Superman?
The Devil Oh, the latest fashion among the Life Force Fanatics. Did you not
meet in Heaven, among the new arrivals, that German Polish
madman - what was his name? Nietzsche?
지옥의 최후 모더니스트이자 방어자인 악마처럼 현실의 노예도덕의 낙타인
지력을 보유한 스트레이커는 장송곡(funeral march)을 휘파람으로 불면서 산자
와 유령들의 지적 교감의 단절의 항상성을 재현한 3막의 꿈을 마무리한다. <유
령소나타>의 마지막 장면에서 유령들이 아르켄홀츠의 진혼곡인 ‘태양의 찬가’
를 들으면서 죽음의 섬으로 건너가듯이, 돈 주안의 꿈에서도 노예 중의 노예인
스트레이커의 레퀴엠으로 지옥에 빠진 순응주의자들이 더 깊은 몸의 억압의
질곡으로 빠져든다. <유령소나타> 3막의 꿈의 끝이 직관력을 보유한 대지의
능동인인 학생의 자유의지가 요리사와 훔멜의 악령의 그림자를 불의 정화로
처리함으로써 혼돈에서 정돈으로의 지적 전이를 가능케 한 반면, <인간과 초
인>의 모차르트의 즉흥 교향곡 3막은 “낙타”38)의 재등장으로 무질서에서 카오
스의 심연의 질곡으로 전락하는 노예의 항상성을 심화시킨다. 니체와 돈 주안
이 보존욕망으로 광기와 성의 억압역사를 무너뜨리고 몸을 회복시킨 ‘불복종
38) 무거운 짐을 지기 위해서 스스로 무릎을 꿇는 인습(현실)의 굴레에 빠진 낙타는 기존가
치에 대한 순종과 무저항을 의미하며 몸의 자유와 해방을 위한 자기극복이 불가능함./ 서
정철, ?인문학과 소설 텍스트의 해석?. 서울: 민음사, 2002./ 장희창, 앞의 책, 1부, ‘3가지
변화에 대하여’, 참조.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33
(disobedience)과 착란(derangement)의 3막은 집단적으로 자유 몸짓을 거부하는
스트레이커와 멘도사(Mendoza), 태너의 근대성으로의 부정적 퇴행으로 재전도
된다. 하지만 돈 주안의 “대화적 상상력과 차이의 긍정을 위한 바흐친식 카니
발적인 다양성의 담화전략”39)은 앤과 스트레이커를 위시한 무대의 고정형의
배우들보다 “응시와 침묵의 거리두기”40)의 경계적 대화가 가능한 관객과 독자
에게 지옥의 형이상학적 전통가치의 허상, 즉 현실의 조작적 실체를 직시케 하
는 메타기교임을 간과할 수 없다. 회교와 기독교/동양과 서양이 혼재하는 그라
나다와 알람브라(Alhambra)궁전이 내려다보이는 고원에서 돈 주안이 꾼 꿈의
소통욕망은 모더니스트의 무저항과 굴종의 터널을 무너뜨리기 위해 바르뜨와
바흐친의 다원적 글쓰기를 빌려 재생산된 돈키호테와 차라투스트라, 장자의
새로운 모험의 컨텍스트성이다.
4. 결론
스트린드베리가 <다마스커스로 1>․<꿈연극>․<죽음의 무도>․<유령소나
타>․<범죄와 범죄들>의 몽환적 꿈 극들과, <미스 줄리>․<아버지>․<펠리
컨>의 자연주의적 표현주의극에서 보여주려는 연출초점은 인간이 사회를 떠나
지옥이나 정신병원과 다름없는 가족의 폐쇄된 울타리를 우선 살아남아 뛰어넘
39) 김욱동, ?대화적 상상력: 바흐친 문학이론?, 서울: 문학과 지성사, 1988, 235쪽./ 이강은, ?
미하일 바흐친과 폴리포니야?, 서울: 역락, 2011./ Mikhail Bakhtin, ?바흐찐 비평선집: 바
흐찐의 소설미학?, 이득재 역, 서울: 열린책들, 1988, 144쪽./ Mikhail Bakhtin, ?장편소설과
민중언어?, The Dialogic Imagination, 1981, Carl Emerson & Michael Holquist, trans., 전승희
역, 서울: 창작과 비평사, 1998. 119-125쪽./ Tzvetan Todorov, ?바흐찐: 문학사회학과 대화
이론?, 최현무 역, 서울: 까치글방, 1988, 115쪽./ Mikhail Bakhtin, ?프랑수와 라블레의 작
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 민중문화?, 이덕형 역, 서울: 아카넷, 2001. 246쪽/ Mikhail Bakhtin, ?도스또예프스키 시학: 도스또예프스키 창작의 제문제?, 김근식 역, 서울: 정음사, 1988,
11쪽./
40) 이종하, ?아도르노의 문화철학?, 서울: 철학과 현실사, 2007./ Theodor Adorno, ?사회학강
의?, 문병호 역, 서울: 세창출판사, 2012.
334▪드라마연구 제51호
을 수 있는가라는 생존위기의 절박함이다. 쇼의 논쟁과 토론의 희비극적 블랙
코미디들은 -<피그말리온>, <캔디다>, <바바라 소령>, <워렌부인의 직업>, <상
심의 집>(Heartbreak House), <세인트 조안>- 가족의 위기보다 개인과 사회의
차이의 수직적 관계에서 파생되는 극복이 불가능한 계급과 문화의 필연적 충
돌과 심리적 불균형을 냉소와 풍자, 역설과 전복, 재치와 거리두기로 삶의 본
질적 과제로 다루고 있다. 스트린드베리와 쇼는 이성중심의 르네상스와 언어
중심의 근대 제도와 관습이 생산한 복종과 겸손의 전도된 가치에 의해 억압된
자유감성과 생존본능을 회복시키기 위해 스피노자와 니체, 스웨덴보리와 불교
연기법, 바그너와 모차르트, 뭉크와 고갱의 꿈의 몽상과 현실의 폭력이 혼용된
응시(envisaging the realities squarely)의 실험적 즉흥극을 무대화시킨다. 프로이
트가 <나의 이력서>에서 “니체가 정신분석학이 힘들게 이룩한 결과와 놀랍게
도 자주 일치하는 추측과 통찰을 제기했기 때문에 그의 철학을 오랫동안 피했
다고 고백할 만큼”41) 니체의 자아가 의식에서 배제해 무의식 속으로 깊이 밀
어 넣어버린 외면하고 싶은 자아의 어두운 짝이자 그림자는 스트린드베리와
쇼가 바라던 차라투스트라의 긍정의 언어이며 몸의 해방을 위한 디오니소스이
다. 스피노자의 직관지를 다시 읽기한 스트린드베리와 니체, 쇼는 근대역사에
서 재해석을 위한 접근이 불가한 금기의 과제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전복시키
는, 공포와 흥분의 텍스트쓰기의 즐거움을 공유한 돈키호테이자 돈 주안이다.
<유령소나타>의 훔멜이 회색조명에서 과거의 정부와 현재의 하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사형집행퍼포먼스인 극중극은 3막 직전까지 산자와 유령들이
미라의 방에서 배경막에 투사하듯이 광적으로 반복하던 혼돈의 촛불그림자 춤
을 정지시킨다. 소녀의 본능욕망과 의지를 회복시키려는 아르켄홀츠의 생 자
체의 생성을 노래하는 생명촛불의 즉흥극인 3막은 노예의 생존과 직결된 아델
의 합리적 공리주의와 양보 없는 평행구조를 유지하면서 육체적 폭력의 충돌
을 되풀이한다. 학생에 의한 소녀의 살인이 훔멜의 과거 살인사건과 2막의 사
41) Sigmund Freud, ?나의 이력서?, Die Medizin der Gegenwart in Selbstdarstellung, 1925, 한승완
역, 서울: 열린책들, 1997, 76쪽.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35
형장면과 긴밀하게 중첩되는 히야신스 소녀방인 3막은 ‘불상과 4가지 색상의-
백련․황련․홍련․청련- 연꽃, 연옥(purgatory), 천상의 별꽃, 연기법(causality),
기도 등 불교의 시청각적 무대장치’를 통해 자의적 죽음(?)을 선택한 소녀의
혼령을 ‘뵈크린의 죽음의 섬’으로 건너가게 한다. 꿈의 연극들 중 유령소나타
의 마지막 3막은 전복과 재반복으로 삶의 고통과 무방향성을 노래한 스트린드
베리의 대안 찾기 메타무대 중 불교적 색채가 짙은 몽상적 표현주의극무대로
서 ‘뭉크의 절규’를 무대로 옮긴 새로운 텍스트이다.
지옥에 빠진 돈 주안의 꿈은 근대의 지옥가치에 -이성과 창조신의 공리주의
적 가면성- 빠진 빅토리아시대의 낙타의 노예도덕, 모더니즘의 심층적 역사인
식과 주체성의 결핍, 탈근대의 소비문화 탐닉주의를 지적하는 니체의 생명철
학을 부각시키는 담론중심무대이다. 지배적 가치에 구속받지 않고 지옥이 보
장하는 안락마저 거부하는 돈 주안은 태너의 전복된 자유정신의 생명적 존재
로서 동일성의 광기어린 폭력을 경계하면서 지적․육체적 정지의 쾌락에 몰입
하려는 악마와 석상, 아나에게 차이와 생성의 유연한 사유력을 복원시키려는
바보/돈키호테의 길을 고집한다.(the waste and sacrifice of the power of
enjoyment: in a word, the punishment of the fool who pursues the better before he
has secured the good, 442). 육체의 머무름과 권태로움이 죽음이라는(I shall not
be bored, 442) 돈 주안의 자기극복을 향한 몸짓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로막
는 자연의 맹목성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의 길을 뜻대로 갈 수 있는 파일럿에
비유할 만큼 지옥거주자들의 무지와 노예근성을 질타하는(denounce) 차라투스
트라의 삶의 의지의 선언이다.(instead of yielding in the direction of the least
resistance... The philosopher is Nature's pilot, And there you have our difference to
be in hell is to drift, 440).
336▪드라마연구 제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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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39
<Abstract>
Fantastical Metaphor and Don Juan's Self-finding
-Centering around the Act III in The Ghost Sonata and Man and Superman
Lee, Bong-Hwan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principally some theatrical originalities on the
expression‎istic and naturalistic meta-theatricality of August Strindberg's dreamlike
play, The Ghost Sonata, and rhetorical linguistic strategy of Bernard Shaw's comedy
of Idea, Man and Superman, based on the impulsive, improvisational illusions and
overturns of dream and ghosts of the fantastical third act. Strindberg tries to find
out the feasible substitutes to overcome the evitable, unstoppable sufferings and
anguishes at home in some shocking tragicomic dream plays, To Damascus 1,
Crimes and Crimes, The Dance of Death, A Dream Play, and The Ghost Sonata.
These dreamlike meta-stage texts get toward the perfection of theatrical production
with such inconsequent dramatic techniques as physical violence, stereotypical
character, cycling structure, reversion, overturn, repetition, fancy, imagination, steady
gazing, mask-persona, ghost, death, purgatory, unconscious shadow, and Todorov's
window and spectacles. The Ghost Sonata shows Strindberg's philosophical efforts
to search for the possibility and way to utilize Nietzchean Übermensch, Zarathustra,
Swedenborg's gnosticism, Kierkegaard's asceticism, Jung's collective
unconsciousness, and Buddhist causality in human beings' real marriage and life
site. In particular, the last third act of dream in the remoter Hyacinth girl's room
profoundly and nakedly deals with the dead lives and static intellectuality of
characters with Narcissistic, Avoidant, or Paranoid personality disorders, who can
talk only with short text symbolic languages and behave with simple body gestures
340▪드라마연구 제51호
on the cloudy stage under the grey lights. Hummel and Arkenholz, Adel and
Mummy who have been connected to the past lies and crimes would not stop
struggling and revealing opponent's fatal weaknesses, like murder, fraud, extortion,
and hypocrisy until most them die around the beginning and the ending of Act III
except the student, Dionysian Übermensch. Just before the fantastic dream stage
closes with Adel's arbitrary death choice, Srindberg creatively visualizes the eastern
dreamlike cycling stage borrowed with some Buddhist images like Buddha's statue,
4 colors' lotuses, purgatory, starlike white heavenly flowers, and casuality.
Bernard Shaw's tragicomic black comedy also would like to show the fantastic
experimental production used dream and distance from spectacle, paradox, wit,
satire, reversion, overturn, contrapuntal parallel, linguistic violence, word game,
cynicism, and discussion, and prosaism. Man and Superman is divided into the
realistic scenes 1,2,4 with characters who make much efforts to pursue the
principles of Sklavenmoral(slave's morals), and the illusionary philosophical space,
Act III, which demolishes the snobbery and conventionality of Victorian period.
Shaw would show the serous existential problems; obedience and madness derived
from conventions and regimes of reason-centered modernism in Victorian
Capitalism. In independent Act 3 of Tanner's dream in the Sierra Nevada, Shaw
creates a new modern Don Quixote, Don Juan to attack incalculable devotees and
defenders for modernism strengthened by the invulnerable higher power class of
politics and religion with Nietzschean power will for existence struggle, or Life
force of survival instinct. Don Juan in fantasy enjoys himself with defeating and
deconstructing the sclerotized cognitive system and the mean spirit of
modernism-followers, the Statue and the Devil who will not endeavor to make an
intellectual transformation in spite of Shaw's Zarathustra's metonymic harangue.
Even though Don Juan fails to overturn some major characters into Dionysus who
can dance with his whole body and enjoy himself in some Carnivals, he visualizes
몽환적 은유성과 돈 주안의 자기찾기화▪3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