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문학이야기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하세봉/부산대)

 

1. 글머리에
이 글의 목적은 최근 약 20년 사이의 한국 인문학계를 되돌아보면서 한
국의 인문학이 오늘날 어떠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가를 간략하게 조감하
고, 현재 부산대학교 인문학 연구소가 진행중인 중심 / 주변 연구가 조감
도의 어디에 위치하는지 그 좌표를 자리 매겨 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 자
리매김으로써 공동 연구주제가 놓여진 학문적 맥락을 확인하고 공동연구
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해야 바람직할지 궁리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몇 가지를 중심으로 서술하고 싶다. 먼저 ‘인문학의
위기’를 전후한 한국 인문학계를 조감하되 특히 ‘인문학의 위기’에 관한
원인과 처방을 둘러싼 논의를 짚어본다. 이어서 한국 인문학계의 대응에
서 주변 내지는 지방의 관점이 누락되어 있음을 지적하면서 여기에 대하
여 그 동안 진행된 학계의 논의를 살펴보겠다. 이로써 중심 / 주변 연구가
한국학계의 지적 맥락 속에 어떻게 위치해 있는가를 확인할 것이다. 그런
후에 중심 / 주변 연구는 어떤 시각에서 접근하고 무엇을 화두로 삼을 것

인지, 그리고 중심 / 주변 연구가 연구소라는 조직을 통하여 공동연구라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이를 어떻게 운용하면 효과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 싶다.
이 때문에 이 글에서는 서술의 주체가 필자인 ‘나’와 공동연구의 ‘우리’
가 뒤섞여 있다. ‘인문학의 위기’나 인문학계의 ‘주변’이나 ‘지방’의 발견
등 이 글의 전반부는 ‘나’의 관점에 입각한 정리이다. 따라서 이 글의 전
반부에서 서술이나 정리의 잘잘못은 필자의 몫인데, 역사학 이외의 분야
에 대하여는 식견이 좁아 충분하지 못하다. 한편 중심 / 주변 연구와 관련
된 부분은 연구팀인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연구팀의 의견을 모아서 그것을 수렴한 서술은 아니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필자인 ‘나’의 개인적인 생각인 것도 아니다. 그 동안
공동연구 진행 과정에서 내가 이웃한 공동연구원과 견해를 나누고 들으면
서 누적된 나의 의견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우리’의 생각이 섞여 있다. 따
라서 이 글은 ‘나’의 견해에서 출발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생각을 모으
고 다듬고 벼리기 위한 하나의 소재로서 제시한다. 이 글의 후반부는 일개
연구소의 공동연구에 관한 논의이기는 하나, 한 걸음 나아가 이것이 한국
학계에서 공동연구를 어떻게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지에 관한 논의를 축
적해가는 하나의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 학자들은 학계 외부에 대하
여는 목청을 높이지만, 학계가 놓인 현실의 문제 그리고 그것의 구체적인
현장에 대하여 그 경험을 기록하고 축적한 역사가 빈곤하기 때문이다.

 

2. ‘인문학의 위기’, 그 진단과 처방

 

해방 이후 오랫동안 한국의 인문학은 ‘文理대학’이라는 대학제도 속에
서 자신의 위치를 물은 적이 없었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대체로 식민지시
대의 대학제도를 계승한 한국의 대학은 해방 이후 오랫동안 지식인들이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73
자리할 수 있는 매우 제한된 공간이었고, 사회에 대하여 비판적이고 계몽
적 발언을 할 수 있는 소수의 사회조직이었다. 뿐만 아니라 상아탑 혹은
우골탑으로 묘사되었듯이 거꾸로 뒤집히기를 반복하는 정치적 변화 속에
서 대학은 신분상승의 좁은 문이었던 만큼 한국전쟁 이후 베이비 붐 세대
의 인재들이 치열한 시험경쟁을 거치며 대기하고 있었다. 1970년대 후반
이후에는 대학이 반정부 파도의 진원지가 되자 정치권력이 학원에 노골적
으로 개입했고, 인문학자들의 숙제는 이러한 외부적 개입에 대하여 어떻
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태도와 입장의 선택이었다. 그것을 도식화하자면
근대화와 민주화 사이의 선택이었고 현실의 요구와 학자적 양심 사이의
갈등이기도 했다.
아마도 1980년대만큼 인문학의 전성기는 없을 것이다. 그 전성기는 두
가지 방면에서 찾아왔다. 하나는 대학교수 수요의 폭증이었다. 특히 전두
환 정권의 졸업정원제 시행으로 대학이 팽창되고 그에 따라 교수의 자리
가 대폭 늘어나서, 1980년대 전반에는 석사학위를 가지고 교수로 취직하
는 것이 드물지 않았다. 또 하나는 사회변혁 운동의 고양으로 보다 근원적
인 질문과 목소리가 현실적인 계산보다 힘을 가졌다. ‘반독재’․‘민주화’
․‘민중’․‘반미’ 등의 신념은 ‘경제발전’․‘안정’․‘경쟁’․‘안보’ 등의
가치를 가진 자의 현실논리라고 폄하시켰다. 전자의 신념은 인간이 인간
답게 살기 위하여 이루어 내어야 할 가치로 보였던 것이고, 그것은 곧 인
문학이 처방하는 가치관이기도 했다. 인문대학 졸업생이 상대적으로 취업
이 어려운 현실은 그 전이나 후나 마찬가지지만, 1980년대에 사학과, 철학
과 등의 인문학 공부는 인간답게 살기위한 그리고 공동체의 이상을 위한
공부라고 자신한 인문학도들은 법학과나 경영학과의 공부는 개인적 치부
를 위한 기능적 공부라고 폄하했고 적어도 대학가에서는 인문학도들의 목
소리가 통했다.
다만 1980년대까지 한국의 인문학은 이렇듯 사회나 정치와의 거리 설
정이 화두였지 내부의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그럴 필요도 없었다. 대학의
274 코기토 60 (2006)

 

지식은 여전히 사회로부터 신뢰와 경배의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이후 사정은 달라졌다. 인문학은 외부로부터 내부 혁신을
강요받게 되었다. 1995년 김영삼 정권이 ‘세계화’라는 정책기조의 일환으
로 내놓은 ‘5․31교육개혁안’이 바로 그것이다. 교육개혁안은 세계화시대
에 살아남기 위해서 혹은 앞서 가기 위하여 교육체제를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기본논리였다. ‘5․31교육개혁안’이
발표된 후 1996년부터 전국의 다수 대학이 행정 및 재정적 지원을 받기
위하여 대폭 학부제를 도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학부제가 도입되자 바로
‘인문학의 위기’가 닥쳐왔다. 1996년 11월 전국인문대학 학장 등이 “인문
학이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으며 … 정부는 인문학 연구와 교육에 대해
정책적 배려와 지원을 다해야 한다”는 제주선언을 발표했다. 1997년 8월
에도 전국 국공립대 학장 21명이 “교육부 장관께 드리는 대학교육의 올바
른 발전을 위한 건의문”을 교육부에 전달했다. 1997년 11월에는 14개 대
학 인문학 연구소가 “현대사회의 인문학-위기와 전망”이라는 주제로 심
포지엄을 열었고 다양한 전공자들이 모여 인문학의 위기와 그 해결책을
모색했다. 1998년 11월에는 학술단체협의회에서 인문사회과학의 위기에
대한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 무렵 언론에서도 ‘인문학의 위기’가 연이어
기사로 다루어지고, 인문학자들 사이에서도 ‘인문학의 위기’를 둘러싼 논
의가 설왕설래 이어졌다.
인문학의 현실을 위기로 받아들인다는 인식행위는 문제를 진단하면서
변신의 방향을 모색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인문학의 현실을 위기로 받아
들인 일부 인문학자는 한국 인문학이 걸어가야 할 길을 진지하게 물었다.
인문학의 위기를 운운하는 논자들의 상당수는 위기의 1차적인 원인을 분
과학문에의 매몰로 꼽고 있다. 가령 최종욱은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자신
들의 전공으로 간주되는 사상가에 대한 독점권을 행사하면서 그들의 사변
적인 사상과 이론에만 매달려왔다. 서양학을 하는 연구자들은 서구의 현
실과 괴리된 서구사상의 추상적 관념과 논리 속에서, 동양학을 전공하는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75

 

연구자들 또한 우리의 현실과의 연관성은 물론이고 고전사상을 배태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의 연관성을 상실한 채 고전의 폐쇄적인 훈고학적
해석에만 집착하고 있었다”라고 하면서 “전문화라는 미명하에 스스로에
대한 자기반성의 길을 봉쇄하고 관행화되었다”는 것이다.1) 그 동안 학계
에서는 연구하는 주제가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 특정 사람이나 시기 또는
지역일수록 새롭고 전문적인 전공이라고 간주되었다. 전문화의 이러한 논
리는 ‘학문은 세부적일수록 전문 특수적이다’라는 명제를 함축하고 세부
성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분업의 가속화를 정당화한다. 인문학의 동일학문
에서는 물론 동일 계열의 인접분야와의 대화는 전공특수성에 도움이 되지
않고 피하는 것일수록 건강하다고 여겨지고 있다.2) 인문학을 포함하여 학
문 전반에서 전공의 세분화, 전문화는 논문의 형식으로 표출되는데, 서론
-본론-결론, 일인칭 대명사 “나”를 회피한 합리성의 가장, 권위로서의
각주와 인용문 등 논문의 합리성이 사회적 권력의 유지와 재생산과 밀접
하게 관련되어 있음은 이미 논의된 바가 있다.3)
그리고 자주 꼽히는 점은 현실과 대면하지 않고 이론을 위한 이론에 빠
져 있다는 자성이다. 가령 이주향은 인문학자들이 고집하는 “순수”가 생
산성과 무관하고 경쟁력과 관계없더라도 신선하고 의연한 영혼의 향기라
면 그것이야말로 버릴 수 없는 인문학의 매력이겠지만, 현실을 해명하는
능력의 부재를 “순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그 속에 웅크리고 앉아 이
미 그 “순수”와는 관계없는 현실을 타락한 것으로, 그 “순수”에 관심 없는
사람들을 “우매한 대중”으로 매도한 적이 없는지 반성을 요구했다. 그러
면서 그는 “세계를 읽기 위해 이론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전공 책을 읽
기 위해 세계가 필요했던 것은 아닌가” 묻고, “과거의 방식으로 강단을 고

 

1) 최종욱, 「인문과학의 위기」, ?어문학논총? 18 (국민대학교 어문학연구소, 1999), 405.
2) 정대현 외, ?표현인문학?(생각의나무, 2000), 56~57.
3) 심광현, 「대학의 담론으로서의 논문-형식의 합리성에 대한 비판」, ?사회비평? 14 (1996),
179~184.
276 코기토 60 (2006)

 

집하고 아무도 읽지 않는 학술지만을 고집하는 것으로는 인문학의 위기는
심화될 뿐 극복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4)
인문학이 대면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은 논자에 따라 다양하나 누구나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사실은 테크놀로지의 발전 즉 디지털 혁명이다. 인
터넷으로 인하여 시간과 공간이 압축되어 버리고, 사이버가 실제 보다 더
사실적인 시대를 맞이하여, 문자언어의 막강하던 힘이 약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디지털 정보양식의 변화는 당장 강의에서도 이-런닝이니, 파워
포인트니, 사이버 강의니 하는 모습으로 인문학자의 앞에 버티고 서 있다.
이러한 진단과 대안의 모색에서 이론적 작업으로서 손꼽을 만한 것은
조동일의 논의와 ‘표현인문학’이다. 조동일은 학풍의 유형별 분류를 시도
하여, 한국의 인문학을 수입학․시비학․자립학 그리고 창조학으로 구분
하였다. 주류를 이루는 수입학은 학문이 무엇이며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
하지 않았고, 새로운 조류인 시비학은 비생산적이며, 국학을 중심으로 하
는 자립학은 소재에 매몰되어 있다는 비판을 하면서 창조학을 한국인문학
의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5) 조동일의 이러한 유형화는 지금도 남아있는
진보와 보수라는 양분법을 넘어선 학문론인데, 이 유형화가 인문학의 위
기가 회자되는 시점에서 등장하였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수입학
등 각각이 가진 문제는 한국의 인문학이 위기에 빠진 원인으로 거론할 수
있는데, 그는 한국학이 세계적인 보편 학문으로 확장되어야 한다는 그의
지론을 재삼 확인하며 보강하는 기회로 삼았다.
인문학의 위기에 대하여 집단적으로 고민하며 이론적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표현인문학’이다. 서양철학․동양철학․국문학․불문학․독문학․
영문학 등을 전공하는 8명이 5년에 걸친 공동연구로 산출된 것이 ‘표현인
문학’이라는 개념인데, 연구팀은 오늘날 학문과 지식의 존재양상을 점검
하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동서양의 경우를 추적한 연후에, 인간론으로

 

4) 이주향, 「신유목시대와 인문학의 위기」, ?철학과 현실? 41 (1999), 266~268.
5) 조동일, ?인문학문의 사명?(서울대 출판부, 1997), 29~56.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77

 


돌아와 인문학의 본질을 묻고, 인문학이 자리하고 있는 현대인의 조건을
검토한 위에 표현인문학의 수립을 시도했다. 이와 같이 동서양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논의를 펼쳐서, 고전읽기나 관념적 자유보다는 자기성취와
표현방식의 자유를 중시하여 비 문자텍스트가 가진 의미와 가치를 강조하
였다. 표현인문학은 인간론을 기초로 수립되었는데, 成器成物이라는 동양
사상에서 그 실마리를 발굴해내었다. 실로 ‘표현인문학’은 여태껏 한국의
인문학계가 수행한 공동연구 가운데 가장 탁월한 연구 성과로서 공동연구
의 전범을 보여주는데, 동양학과 서양학을 아울러 ‘표현인문학’으로 녹여
낸 작업은 한국의 인문학 연구사에서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다. ‘표현
인문학’이 학계에 적지 않은 파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연구멤버들 각
각의 생각을 한 곳에 녹여내며 추진된 명실상부한 공동연구의 성과 때문
이라고 해도 좋다.6)
사실 표현인문학은 새롭게 등장하는 인문학적 조류에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다고 할 수 있다. 인문학의 새로운 경향이란 문화연구, 문화콘텐츠
와 영상언어에의 관심 등을 들 수 있다. 문화연구나 문화콘텐츠에의 관심
은 인문학의 어느 분과학문에서나 일어나고 현상이다. 여기에다 해외지역
학으로의 전환을 하나 더할 수 있다. 인문학계에서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이러한 변화가 전체 인문학계에서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지
가늠하기는 쉽지 않다. 보도매체에서 자주 다루어지기 때문에 그 변화는
실제 이상으로 크게 느껴지는 것일 뿐, 그것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인문학의 위기상황에 대한 인문학자들의 태도를 김성곤은 3가지로 유
형한 바가 있다. 첫째는 주위의 변화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여전히

 

6) 정대현 외, ?표현인문학?은 공동연구자의 이름을 책 앞머리에 함께 적었을 뿐, 각장에는 집
필자의 이름이 없고 각장의 내용도 상당히 균질하다. 공동연구의 대부분은 필자의 이름을 각
각 달아서 출간하고, 개별 논문과 논문 사이의 연계성 없이 따로 놀 뿐만 아니라 서술의 수위
나 범위 혹은 용어도 들쑥날쑥한 경우가 많은데, ?표현인문학?은 이와 대조된다.
278 코기토 60 (2006)

 

인문학이 최고의 학문이라는 지적 우월감에 살고 있다. 둘째는 위기는 인
정하지만 인문학의 특권과 신성성을 내세우며 스스로 인문학의 수호자로
나서는 것이다. 이를 때일수록 인문학은 순수하게 남아있어야 하며 성스
러운 본령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셋째는 위기만 강조하다가 자조주
의와 패배주의에 빠진 경우이다. 또한 그는 이미 대학의 안팎이 변했음에
도 오직 교수들이 변화를 싫어하는 이유를 ①변화가 귀찮고 현상유지가
편하기 때문에, ②기득권의 포기가 싫어서, ③새로운 것을 가르칠 능력
과 실력의 부재가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서라는 스펙스의 진단을 인용하
고 있다.7)
인문학이 학문의 중심이며 인문학은 위대한 문화적 전통의 핵심에 서
있으며 교양과 인성, 그리고 지혜와 지식을 함양해 보다 나은 인간과 사회
를 창출하는 순수하고 고결한 것이므로,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변하지 말
고 관습과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신념은 존중할 필요가 있고 끝까지 버리
지 않고 고수해야 할 초심이기도 하다. 다만 그것은 인문학자 개인의 학문
적 지향으로서 가치가 있다. 10년 20년 인문학을 공부한 인문학자에게 누
군가가 당신은 얼마나 깊은 지혜와 풍부한 인성을 갖게 되었는가 질문할
때,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는 학자는 많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20년을 공
부해도 변변한 지혜를 갖지 못한 인문학자가 실업예비군인 인문대학의 학
생들을 앞에 두고 인문학이 전하려는 교양과 인성의 무력함을 느끼지 못
한다면, 그는 매우 뛰어난 교육자이거나 자폐증 학자 가운데 하나일 것이
다. 대학정원 감축이 강도 높게 추진되는 점에 비추어 보면, 제도권 대학
내에서 인문학은 더욱 더 설자리가 좁아질 가능성이 높다.

 


7) 김성곤, ?문화연구와 인문학의 미래?, 67~68.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79

 

3. 한국의 인문학에서 ‘주변’의 발견

 

인문학을 위기로 인식하고 그 대응을 모색하는 논의에서 누락된 것은
지방, 혹은 지역이라는 관점이다. 디지털혁명이 공간의 구분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고 하나, 컴퓨터를 끄고 사이버 공간에서 나오는 순간, 우리는
구체적인 실제공간으로 되돌아오고, 우리의 삶은 이 실제공간에 의하여
규정된다. 이 때문에 “인문학은 시간 속에서 자리하고 있는 역사적 좌표
와 공간 속에 자리하고 있는 사회적 좌표를 입체적으로 고찰하는 과정 속
에서 생명력을 지닌다. 인문학은 탈역사적 탈사회적 상황 속에서 정립되
는 수학이나 기하학 같은 추상적인 학문일수 없다. 인문학은 보편성을 지
향하되 구체성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인문학은
이런 ‘구체적 보편성’을 마련하지 못했다”는 김석수의 지적은 타당하다.8)
‘인문학의 위기’라고 했을 때, 실은 그 위기가 인문학 관련자 일반에게
균질한 위기는 아니었다. 제도권의 교수보다는 강사들에게, 그리고 실업예
비군의 학문후속세대들에게 보다 절실한 위기였고, 또한 서울의 유수대학
의 인문학보다는 지방대학의 인문학에게 보다 절실한 위기임은 누구나 아
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며 자성과 대책을 논
의하는 연구자는 수도권 유수 대학의 교수들이 많았다. 왜 한층 심각한 위
기 앞의 지방 인문학자는 침묵을 지키고, 오히려 자리가 안정된 수도권의
인문학자들이 소리 높여 위기를 말했던가. 이 모순된 풍경이 한국인문학의
현장이다. 인문학이 관념적인 이론이 아니라 현장과 현실에 발 디딘 이론
이 되기 위해서, 누구나 아는, 그럼에도 누구도 정면에서 대면하려 하지
않는 지방의 현실에서 출발하는 인문학은 중요하다. 지방이란 중앙을 전제
로 하고 거기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지방이라는 개념은 따라서 주변부라는
의식과 통하고 때로 지방은 지역이라는 용어로 환치되기도 한다. 지방과

 

8) 김석수, 「구체적 보편성과 지방, 그리고 창조학으로서의 인문학」, ?사회와 철학? 8 (2004), 208.
280 코기토 60 (2006)

 

지역이라는 개념은 여러 가지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중앙
에 대조하는데 무게를 둘 때 지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도록 한다.
해방 후 한국학계에서 ‘주변’의 발견은 먼저 1980년대 초 주변부자본주
의론의 도입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근대화이론을 바탕으로 정
치적 억압체제하의 경제발전 전략을 추구하고 있던 박정희 정권과 뒤이은
전두환 정권에 대하여 이론적 저항의 일환으로 1960년대 구미학계에서
풍미했던 종속이론이 도입되었다. 서구 중심적 근대화론이 제3세계 정치
발전을 낙관적으로 본 것과 달리 A. G. 프랑크, 사미르 아민, 왈러슈타인
등의 종속이론과 주변부자본주의론은 현존체제하의 정치발전은 비관적이
며, ‘탈종속’ 또는 ‘혁명’과 같은 급진적 방법을 통해서만 진정한 발전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제3세계의 저발전요인은 “중심-주변”의 전세계적 잉
여수탈구조에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을 중심부에 의하여 수탈당하는 존재
로 상정했던 주변부자본주의론은 세계의 중심 즉 서구열강에 대비되는 존
재로서 한국을 중심-주변의 관계 속에 두고 보았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
을 수 있다. 그러나 주변부자본주의론은 한국에서 생명력을 유지하지 못
하고, 사회구성체 논쟁같이 보다 본격적인 마르크스시즘의 도입으로 일찍
퇴장하였다. 종속이론 내지 주변부자본주의론은 사회과학계에서 주로 논
의되었지만, 인문학에서도 일부가 논의에 가세하였다.9)
주변부자본주의론에서는 중심부 국가와 대비하여 주변부 국가로서의 한
국을 발견한 셈이었지만, 일국 내의 중앙과 지방의 대비나 격차 등이 시야
에 들어서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한국에서 수도권 집중화가 문제로 널리
의식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선 이후로 보인다. 거기에는 1995
년 6월에 처음으로 지방단체장과 의회의원들을 선출하는 지방자치제도의
부활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그 동안 지방이란 중앙과 중심의 세련되
고 질 높은 자리에 대해 잡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삶의 자리 혹은 질이 떨

 


9) 이병창, 「한국 국가의 종속적 성격; 주변부 사회이론에 대한 방법론적 검토」, ?哲學硏究?22.1
(1987)이 일례이다.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81

 

어지거나 무언가 결핍된10) 문화나 학술의 유통공간이라고 여겼던 인식에
비추어 보면, 이 무렵 지방 내지 지역의 발견은 결코 사소한 현상이 아니
다. 지방(지역)의 발견은 해방 이후 정치판도마저도 규정하던 지역색, 지역
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논의이다.
지방에 대한 관심이 한국사학계에서 먼저 시작된 것은 자연스러운 현
상이다. 1980년대 초 대구사학회에서 지방사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개최한
이후 한국사학계에서 지방사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1990년대 중반에는
연구성과가 단행본으로 다수 출간되었다. 다만 이러한 지방사연구에서 지
방 사회는 연구의 대상일 뿐 ‘지방’ 자체가 어떻게 창출되었는가의 문제
는 배제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1990년대 중반 이후 지방사, 지방문화, 지
방문학 등의 지방 담론이 가진 한계를 극명하게 지적한 이훈상의 글은 의
미심장하다. 국가와 중앙중심의 역사서술에 대한 대응으로 지방사가 주창
되면서도 그 연구들이 중앙 중심주의로 회귀한다고 진단한 그는 지방사연
구가 불평등한 권력 구조의 역사를 분명하게 드러내지 못함으로써 오히려
중앙 중심주의를 은폐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해부한다. 그래서 ‘지방’은 그
역사적 형성과 지적 계보를 성찰하면서 동시에 폐기하고 대체해야 하는
문화 개념이라고 규정했다.11)
이훈상이 ‘지방’의 정치성을 문제 삼았지만, 인문학의 지역성에 대하여
장기간 작업하고 고민하면서 정치한 논리의 구축을 모색하고 있는 학자로
는 구모룡과 박태일을 꼽을 수 있다. 구모룡은 자본-기술복합체 시대의
획일화된 시스템에 맞서기 위해서, 중앙과 지방의 대립만을 강조하는 향
토주의나 자립주의, 그리고 중앙의 시선으로 지역을 계몽하려는 지방주의
의 한계를 넘어선 ‘비판적 지역주의’를 대안으로 제시했다.12) 구모룡의

 

10) 박태일, ?한국지역문학의 논리?(청동거울, 2004), 40.
11) 이훈상, 「타자로서의 ‘지방’과 중앙의 헤게모니」, 한국사연구회 편, ?지방사연구의 현황과
과제?(경인문화사, 2001).
12) 구모룡, ?지역문학과 주변부적 시각?(신생, 2005); 이희환, 「지역문학의 연대를 위하여」, ?오
늘의 문예비평?, 60 (2006년 봄)의 소개에 따름.
282 코기토 60 (2006)

 

‘비판적 지역주의’가 전지구적 차원을 염두에 둔 대안이라면, 박태일은 구
체적인 삶의 터로서 ‘지역구심주의’를 주창하고 있다. 인문학에 대하여,
박태일은 “마땅한 사람살이에 대한 학적 반성이 인문학이다”라고 정의하
면서 “인문학에서 지역문제의 필요성은 해묵은 중앙 패권주의와 지역 패
배주의의 속겉을 살피고 그것을 넘어서기 위한 노력에 있다”며 그것은 중
앙중심의 국가주의와 반공민족주의에 의한 왜곡이나 획일화를 넘어선 학
문적 민주화의 길이라고 언명했다.13) 그렇다고 그는 지역을 신화화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이 하나의 합의된 정체성을 지닌 공간이 아니라 서로 다
투고 갈등하는 장소이기도 하고, 왜곡과 은폐, 거짓이 혈연과 학연으로 뭉
쳐서 명분만 찾는 토박이 의식이나 배타적 허세가 횡행하기도 하는, 그래
서 지역이 지역다운 뜻과 값어치를 갖기 위하여 지역의 재장소화가 늘 요
구되는 공간이라고 자리매기고 있다. 그의 지역에 대한 인식은 학회 명칭
에도 섬세하게 관철되고 있다. 박태일은 “일반적인 관행대로 ‘부산경남문
학회’라 하지 않고 ‘경남부산지역문학회’라는 명칭을 쓰게 된 이유는 이
지역의 역사적 경험이나 흐름을 통해서 볼 때 부산보다는 경남을 앞세우
는 것이 훨씬 삶의 실재에서 볼 때 정통성이 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경
상도가 먼저 있고 그 다음에 부산이 있는 셈인데, 근대적 인식틀에 비추어
서 근대화가 진행된 곳을 가치 중심에 놓고 보자니 으레 부산이 먼저 와
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며 근대화의 논리에 따르는 것이 아니
라 삶의 역사와 구체적인 삶의 흔적을 따져 학회를 명명했다고 한다.14)
‘경남부산 지역문학회’라는 명명은 ‘부산경남 사학회’나 ‘부경 역사연
구소’라는 명명과 대비된다. 박태일의 지적이 없었다면, 부산․경남이라
는 연칭이 다수의 논리, 근대의 논리가 짙게 밴 중심부적 사고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분과학문별 지역 학

 

13) 박태일, ?한국지역문학의 논리?, 77~92.
14) 「특집좌담-지역에서, 지역을 가로질러, 지역 너머를 꿈군다」, ?오늘의 문예비평? 53 (2004),
21.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83

 

회의 명명이다. 어느 지방에서나 지역을 근거로 한 분과학문의 학회가 있
을 텐데, 그 속사정을 잘 알기 어려워 부산 경남의 사정에 한정해서 본다.
역사학의 경우, 1976년에 부산사학회가 창립되었고 1984년 경남사학회가
창립되었는데 2001년에 두 학회를 통합하여 부산경남사학회로 명명하였
다. 국문학 쪽에서는 1977년에 한국문학회가 창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
다. 1967년 한국영어영문학회 부산지회로 출범한 지역의 영문학회는 1998
년에 신한 영어영문학회로, 1999년에 새한 영어영문학회로 학회명칭을 바
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철학에서는 1998년에 대동철학회가 창립되어
지역철학계의 구심점이 되어 있다. 1983년에 창립된 부산경남중국어문학
회는 1999년 무렵 대한중국학회로 개칭하였는데, 이는 1980년에 창립된
영남중국어문학회가 줄 곳 지역명을 단 학회명을 바꾸지 않고 지속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된다. 여기서 보듯이 부산경남지역을 근거로 한 인문학
의 분과학회들이 지역명을 달고 있는 학회는 역사학 쪽뿐이다. 한국문학
회의 창간사에는 지방학계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 구절은 찾아볼 수 없
다. 부산경남사학회도 통합을 위한 논의에서 지역명칭을 없애서 지방학회
지라는 인상을 없애자는 목소리도 꽤 높았다. 역사학의 논의에 비추어보
자면, 여타 학회는 지역명을 의식적으로 기피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하겠
다. 지역의 학문에 대한 자의식의 부재는 이와 같이 학술진흥재단이 요구
하는 전국학회의 형식에 맞추기 위하여 지역학자들의 손쉬운 굴복으로 나
타나는 것이다.
지방과 지역을 모색하는 학자들은 거의 대부분 국학 연구자들이라는
점에 비추어 보면, 외국학 연구자인 김태만의 지역연구는 독특하다. 중국
현대문학 전공자인 그는 부산이라는 도시의 성격을 주변성, 해양성으로
정리한 후, ‘상해학’의 성립과정을 추적하여 중국 상하이의 정체성 형성과
정과 도시공간에 대한 재발견을 추적했다. 이어서 그는 부산의 상하이 거
리의 발전방안을 모색했다.15) 그의 지역의 시점은 부산에서 시작하여 부
산의 비교대상으로 상하이로 비약했다가 다시 부산 속의 타자인 상하이
284 코기토 60 (2006)

 

거리로 귀환하는 궤적을 그리고 있어서, 일국 내 중앙과 지방에 갇혀 있던
지역의 논리가 어떻게 국경을 넘어서서 비약하고 귀환할 수 있는지 보여
주고 있다. 또한 외국사 영역에서는 내가 지역은 역사와 함께 형성되고 또
한 역사에 따라서 달라지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고찰하고자 하는 문제의
설정에 따라서도 달라짐을 지적하며, 지역을 설정하려는 주체의 문제가
지역의 파악에서 관건이 된다고 지적한 바가 있다.16)

 

4. 새로운 출구를 찾아서-중심 / 주변 연구

 

20세기 이래 가속화된 중앙 집중화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세계적
인 추세였기는 하나 동아시아 각국과 한국이 특히 심하였다. 중앙 집중화
가 권력이나 경제의 집중화에 국한될 리 없다. 지식과 문화의 집중화도 당
연히 수반되었고, 지방은 중앙의 지식과 문화의 수신자에 지나지 않았다.
문화의 다양성이 보존되어야 한다면, 다양성을 좌우하는 요소 가운데 중
요한 하나는 ‘지방’이다. 중앙 집중화와 그로 인한 중앙과 지방의 대립, 지
방사회의 공동화 등은 한국의 지방사회가 처해진 심각한 현실인데, ‘지방’
의 문제가 인간과 사회의 일면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궁구하여 그
것을 인문학적으로 개념화시켜내야 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인문학의 위기의 원인을 인문학자의 자기반성에서

 

15) 김태만, 「부산성, 주변성, 해양성」, ?오늘의 문예비평? 42 (2001); ?상해학 연구?(부산발전
연구원, 2004); ?제34회 시민사회포럼 발제문?(2006년 6월 29일).
16) 하세봉, 「“현실”의 ‘지방’에서 “지향”의 ‘지역’으로」, ?역사와 경계? 42 (부산경남사학회,
2002). 또한 인문학연구소 자체에서도 그 동안 ‘주변’이나 ‘지방’ 혹은 ‘경계’에 대한 문제의
식과 연구가 축적해왔다. 학술총서로 발간한 ?독일문학 속의 한국상과 한국문학 속의 독일상?
(2002)이나 ?틈새 공간의 시학과 실제?(2005)는 독일과 한국 간의 경계를 넘나들고, 혹은 국
민국가의 접경지대와 틈새를 탐구했다. 또한 현재 진행 중인 “황윤석의 ?이재난고? 교감․
번역 및 연구”는 고향인 전라도 흥덕에서 서울로 과거를 보기 위해 오르내리면서 겪게 되는
황윤석의 의식과 그 과정을 미시적으로 추적하는 작업이다.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85

 


시작할 필요가 있다면, 그것은 학과의 벽을 쌓고 논문을 위한 논문의 생산
에 매달리는 것, 현실에서 유리된 연구, 사회현실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
는 지적 통찰력 등으로 요약된다. 여기에서 연구 방향은 자연스럽게 잡힌
다. 학문의 장벽을 뛰어넘어 상호 의사소통을 할 것, 사회의 변화에 능동
적으로 지적인 대응을 할 것, 현실에서 인식틀을 도출할 것 등이다. 지방
학계에 ‘지방’은 더할 나위 없이 엄중한 현실이다.
서구학계에서 local이나 region에 대한 연구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다
고 한다. 분권화가 잘 되어있는 서구에서는 지방이라는 것을 문제 삼을 필
요성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17) 일본학계의 경우 지방사, 지방문화에 대한
연구와 정리는 활발하지만, 그들의 지방이 중앙과 대립하는 개념으로 이
해되는 경우는 적다. 중국학계의 경우는 최근에야 지방학이 형성되고 있
는 중이다. ‘지방’의 문제가 매우 극명하게 표출되는 한국사회인 만큼, 이
러한 현실에 대면하여 씨름한다면 ‘지방’은 한국인문학에서 자생이론을
창출하기 위한 모티브가 되기에 충분하다. 여태껏 인문학에서 이러한 접
근이 학제적으로 시도된 적이 없었는데, 그 사명을 지방의 인문학계가 짊
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지적 태만임에 분명하다. 우리가 연구하고자 하
는 중심 / 주변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 발 디디고 서 있다. 이것은 단지
공동연구팀의 몇 명이 개별적으로 우연히 지니고 있던 문제의식이 아니
라, 앞에서 보았듯이 지역학계에서 이미 고민하기 시작한 문제이고 논리
의 심화와 확대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기왕의 연구를 비판
적으로 계승하면서, 각각 다양한 분과학문의 연구방법과 연구소재를 가지
고 서로 매듭을 묶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런데 ‘지방’의 가치를 찾는다고 하여 곧장 ‘지방문화’를 연구해야 한

 

17) 서구의 지역주의에 대하여 상세하게 소개한 글로는 황태연, 「내부식민지의 저항과 지역의
정치화」, ?지역문제-지역주의-지역화?(1997)가 대표적이다. 이 글에 의하면 서구에서도
1970년대 후반 헤치터의 내부식민지론을 계기로 논의가 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헤치터의
주장 이후 더 이상 논의가 크게 진전된 것 같지는 않다. 이 글은 지방이나 지역의 관점으로
서구를 재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풍부함을 시사하고 있어 정독할 필요가 있다.
286 코기토 60 (2006)

 

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면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사고를 면하기 어렵다.
우리는 소위 ‘향토’문화의 연구가 지방정부가 만들어내는 축제에서 얼마
나 얄팍하게 포장되어 팔리고 있는지 목격하고 있다. 또한 ‘지방’에 스스
로를 유폐시켜서는 중앙에 대한 열등감이나 적개심으로 연소되고 말 뿐이
다. 그것은 小國의 민족주의가 大國에 대한 열등감이나 적개심으로 비등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지방’은 소외당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대상
이 아니라, 생동하는 변화의 출발점, 문화와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은 능동
적 생성의 계기로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방’에서
출발하면서도 그것의 국한성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개념으로 ‘경계’에 착목
한다. 중앙과 지방, 중심과 주변에 가로놓여진, 혹은 중앙과 지방, 중심과
주변을 갈라놓는 경계를 문제 삼는 것이다.
여기서 경계란 지리적 혹은 공간적 경계에서 나아가 한층 추상화시킨
개념인데, 따라서 중심 / 주변도 지리공간적 개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우리의 연구에서 중심 / 주변은 차별적 이항의 대립구조를 싱징적으로 나
타내는 의미로 사용한다. 중심 / 주변은 다수 / 소수, 주류 / 비주류, 우월 /
열등, 정통 / 이단, 포용 / 배제 등의 차별적 이항대립에서부터 긍정 / 부정,
동질 / 이질, 능동 / 수동, 陽/ 陰, 長/ 幼, 大/ 小, 上/ 下, 生/ 死, 몸 / 정신
과 같이 차이적 이항대립의 개념도 포괄한다. 차이적 이항대립의 개념은
조건에 따라서 손쉽게 차별적 이항대립으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연구는 특히 차별적 이항대립의 구조가 ①어떻게 경계를 그리며 형성되
었고, ②그것은 어떤 방식으로 운동하는가, ③그것은 언제 무엇을 계기
로 轉位하여 새로운 이항대립을 갖추게 되었는가 혹은 경계가 희미해지
고 불투명해지는가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차별적인 이
항대립의 구조는 세계의 각 지역에 따라서 그리고 시대에 따라서 다양한
편차를 가지게 될 것이다. 또 달리 중심과 주변이 서로 경합하는 관계에만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중심들이 생겨나고 소멸하는 것은 아닐까? 매체사
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몸짓 언어-문자-영상 시대 등으로 전개되어 왔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87

 

듯, 새로운 기술발명에 의해 새로운 중심이 계속 생겨나는 것은 아닌가 하
는 질문도 제기될 필요가 있다. 지역이나 국가 혹은 문화권에 따른 편차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장기간의 연구를 통해서 그려내
게 되면, 그 속에 관철되는 논리를 발견하고 동시에 새로운 개념을 발명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중심 / 주변 연구를 채우는 사실과 논리와 개
념이 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지방’에서 도출된 문제를 ‘경계’로 추상화시키고, 그것
을 공간적 관념에서 문화적인 제현상으로 비약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 경
계라는 화두로 기왕의 세계 문화에 대한 연구를 재해석하고 재구성한다면
중심 / 주변론의 건축도 요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연구의 장기목표는 중심
/ 주변을 이론적 틀로 삼아 ‘문화지형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창출에 둘
수도 있다. 이것은 문화, 지형, 경계 3가지의 요소를 유기적으로 결합한
패러다임이다. ‘문화’는 오늘날 풍미되고 있는 개념으로 현대사회의 이해
에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이자 인문학이 다루어야 할 본연의 과제이기도
하다. 인간과 사회에 대하여 문화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되, 우리는 동아시
아와 구미 세계를 오가며 은유적 의미로서의 ‘地形’에 따라 그 문화가 어
떤 양상으로 표상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좁힐 필요가 있다. 지형에 따라 달
라지는 다양한 문화의 表象과 知的 影像을 여러 가지 형태로 그려내면서,
특히 우리가 끊임없이 화두로 잡을 요소가 바로 ‘경계’인 것이다.
중심 / 주변 연구가 목적하는 바는 순수인문학의 재생, 자생적 이론의
인문학, 지방에서 발신하는 인문학의 3가지이다.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이
상, 인간 본연에 대한 물음이 없을 수 없다. 편한 것을 찾고 즐기는 쾌락
을 우선하는 현대사회에서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던지는 질문은 단지 인
간을 성가시고 괴롭히기 때문에 피할 뿐이다. 인간이 어떤 존재이고 인간
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하여 무엇을 알고 실천해야 하는가 하는 의문 혹은
인간성과 인간됨, 인간다움을 물어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해답 찾기라
는 인문학18)은 인간인 이상 사라질 수는 없는 법이다. 한편 그 동안 외국
288 코기토 60 (2006)

 

문화를 연구하는 인문학은 외국학문의 수입창구가 되어 왔다. 우리는 이
역할이 매도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여긴다. 오히려 제대로 수입하지 못
한 점을 탓해야 한다. 다만 그것이 한국의 지적 수요와 무관하게 외국의
유행을 맹목적으로 수입한 경우가 없지 않았다. 이 땅에서 근대학문의 축
적이 시작된 지 한 세기를 넘어서는 현재, 이제는 한국이 필요로 하는, 한
국 나름의 색깔을 가지는 외국문화 연구의 인문학을 모색할 단계가 되었
다. 우리는 그 방법 가운데 하나가 동․서양 인문학의 만남에 있다고 여
긴다. 외국문화연구에 무게 중심을 두되 그것이 국학연구와 손잡아야 할
이유는 여기에 있다. 서로 마주보고 의사소통을 하면서 서로의 문제를 지
적하고 문제를 발굴할 때, 자생적 이론의 인문학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
다. 물론 국제화로 인한 문화의 잡종화로 특징지어지는 현대의 사회에서
“순수”․“자생”․“독창성” 등의 이념은 이미 신화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충분히 가능하다. “순수”․“자생” 등의 가치를 비롯하여 여러 담론들이
서로 만나 경합하면서 새로운 연구대상과 분야를 창출하고 확장해나가는
지적 공간이 바로 중심 / 주변 연구이기도 하다.
국학도 아니고 해외 지역학도 아닌 순수 인문학은 황무지로 변하고 있
다. 더욱이 지방의 인문학은 고사하고 있다. 인문학 그 가운데서도 순수인
문학 거기다 지방의 인문학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인문학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한 출발점의 하나는 바로 이 현실, 다름 아닌 3중으로 겹치
는 인문학의 위기이다. 지방에서 ―외국문화를 연구하는 ―인문학이라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현실을 직시하고 바로 이
현실을 우리는 연구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18) 임재택, 「인문학문의 위상과 인문학문을 공부하는 보람」, ?인문과학연구? 1 (안동대 인문과
학연구소, 1999), 23.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89

 

4. 연구소와 공동연구

 


중심 / 주변이 인문학의 새로운 출구를 찾기 위한 이론적 탐색이라면,
그 탐색을 채우기 위한 방법도 새로운 모델을 찾을 필요가 있다. 그 동안
인문학의 연구를 생산하는 방식은 성직자같이 고독한 연구수행이었다.
이 때문에 인문학만큼 개인주의적으로 수행되는 학문도 없고, 개인에 의
한 연구방식은 앞으로도 지속될 연구방식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개인주
의적 연구방식은 분과학문과 전문화에 최적화된 연구방식임을 상기할 필
요가 있겠다. 인문학의 위기와 관련하여 분과학문, 학과이기주의를 넘어
서야 한다는 소리는 무성했으나, 어떻게 가능할지에 관한 논의는 적다.
논의는 없어도 신기하게도 실행은 일찌감치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학술
진흥재단의 연구지원 신청을 위한 계획서 작성 때이다. 그 동안 학진은
공동연구에 엄청난 재정을 지원했지만 ‘표현인문학’ 등 몇 과제를 제외하
면 제대로 된 공동연구는 아직 찾기 어렵다. 개인연구의 단순한 집합에
불과하다. 학술대회도 개인발표-지정토론으로 끝나고, 특정한 대주제를
내건 학술대회의 경우 정작 중요한 종합토론은 개인별 질문답변에 그치
고 마는 것이 단적인 예이다. 그렇지만 공동연구 신청 시기만 되면, 다들
머리를 싸매고 함께 고민하는 풍경은 일상이 되었고, 이 경험은 계속 축
적되면서 이후 효율적인 조직적 공동연구의 자산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또한 최근 교수신문에서 대규모 공동연구의 성과를 검토하는 연재기사를
싣고 있다. 이러한 기획은 그 동안의 경험을 성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데 관련 기사를 읽어보면 서로가 매우 조심스럽게 발언하고 있다. 같은
동업자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우리 학계에서 공동연구의 경험이 일천하
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실에서 주목되는 제안은 인문학이 앞으로 분과형식을 벗어나
주제 중심으로 재편될 필요가 있다는 시안이다. 문학․역사학 등의 전통
적 분과체제가 모두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니나, 지식생산양식, 주체화 양
290 코기토 60 (2006)

 

식, 매체양식, 지역문화와 민족문화, 비교문화연구 같은 대주제들을 중심
으로 연구가 심화될 경우 그 연구과정에서 여러 분과학문들이 이합집산을
이루며 각 학문분야가 생산적으로 절합하며 새로운 편제가 형성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19) 사실 그 동안 연구소의 중점연구과제는 ‘◯◯강 주변
문화연구’같이 연구소재를 위주로 하고 국문학․역사학․민속학․사회
학 등 각기 영역별로 분업한 학제적 연구가 많았다. 이 제안에 비추어본다
면, 우리가 기획하는 중심 / 주변 연구야말로 각 학문분야가 절합하여 새
로운 편제를 실험할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이다.
어떻게 절합하면서 공동연구를 진행할 것인가. 우리는 아직 그러한 경
험을 축적하지 못했는데, 문화연구의 산실이었던 버밍햄 대학의 현대문화
연구소(CCCS, Center for Contemporary Cultural Studies)의 경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이 연구소는 고립되고 격리되어 개인화된 연구들을 극
복하기 위해 집단연구를 강조했다. 같은 주제를 가지고 서로 다른 개인들
이 경쟁하는 방식이 아니라 작업단위를 집단으로 묶고 각자가 나름의 방
식대로 연구하되 동시에 지식의 영역 전체 발전에 책임을 지도록 했다. 지
식의 공유를 위하여 집단적인 아이디어 구축, 집단적인 연구, 집단적 글쓰
기를 강조했다. 이를 위하여 먼저 개인의 관심사를 추출하고 다음에 공동
관심사를 가진 학자들이 함께 강독 토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그 틀 속에서 개인의 관심사와 집단적 관심사가 좀 더 적절히 통합될 수
있게 하였다. 대학원생 연구집단은 강의보다 스타디그룹을 선호했고, 학
생들은 과제물을 제출하고 평가받기보다는 스터디의 결과를 반드시 집단
으로 인쇄토록 재촉 받았다. 각 연구집단은 결산보고서를 통해서 연구소
에 그 결과를 보고했다. 이 보고를 통해 연구소는 각 소집단이 공동으로
지니고 있는 주제와 문제의식을 추출할 수 있었다. 즉 각 집단의 전문화된
연구들을 다시 일반적인 연구로 걸러내는 작업을 수행했다. 연구소의 저

 

19) 심광현, 「21세기 인문학의 발전방향」, ?현대사회 인문학의 위기와 전망?(민속원, 1998),
146.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91

 

널은 이러한 관행을 수행하는데 중요하게 작용했다. 각 집단들의 전문적
인 주제에 대하여 독립성을 주되 저널을 통하여 각 집단들이 일반적으로
보여온 주제들을 묶어내었다. 연구소는 다양한 분과학문의 전공자들을 모
으고 다양한 학자들과의 세미나를 통하여 이론전진을 훨씬 용이하게 도모
했다고 한다.20)
현대문화연구소의 공동연구 방식에서 우리가 배울 점은 개인과 연구분
과와 연구소가 지식의 공유를 위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피드백을 시도한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중심 / 주변 연구에서는 연구의 내용뿐 아니라 구
체적인 연구 현장에서도 중심 / 주변의 논리틀을 늘 의식하고 문제 삼을
필요가 있다. 조동일이 비판적으로 지적했듯이 “남의 학문을 가져와서 자
랑하는” 수입학이나 “남의 학문을 가져와서 나무라기”하는 시비학이 아니
라, 중심 / 주변 연구는 앞서 언급했듯이 인문학이 놓여진 현실에서 출발
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연구 현장의 첫째는 프로젝트 내 전임교수와 연구교수 사이
에 놓여진 권력관계이다. 전임교수와 연구교수 사이에는 엄연히 권력의
논리가 작동하여 중심과 주변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면서 중심과
주변이 전위하기도 하는 상호 의존관계이기도 하다. 연구소의 주체인 전
임교수는 연구프로젝트를 기획하여 성사시켰고 제한된 연구활동비를 수
령하면서도 전기간에 걸쳐 프로젝트에 책임을 져야 하는 당사자이다. 연
구교수들은 적지 않은 인건비를 지원받으며 공동연구를 수행하나, 언제라
도 좀 더 나은 연구조건이 주어지면 공동연구에서 즉시 손털고 떠나버릴
입장이다. 그런 한편으로 연구교수들은 중심 / 주변의 논리구축에 전력투
구해야 할 당사자이기도 하다. 중심 / 주변이 언제, 어디에서 누구에 의하
여 형성되고 전위되는가가 심각하게 물어져야 하는 것은 그것이 단순히

 

20) 원용진, 「지식생산 장치로서의 문화연구-영국 CCCS를 중심으로」, ?문화과학? 11. 연구방
식과 관련된 서술의 거의 전부를 인용한 셈인데, 이 글에 전거가 달려 있지 않고 현재 버밍엄
대학에는 이 연구소가 이미 없어져서, 구체적인 양상은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었다.
292 코기토 60 (2006)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구의 현실에서도 즉 중심 / 주변 이론의 생
산에서 누가 능동적으로 나서는가, 나서야 하는가의 문제로서 작동하고
때문이다. 이것이야 말로 중심 / 주변 연구가 얼마나 중요하고 절박한 문
제인가를 재차 증거하고 있다.
둘째로 공동연구원들이 활동하는 학문의 장에서 연구자 개인에게 기왕
의 학회나 분과학문이 ‘중심’이라면 연구소에서의 공동연구는 ‘주변’이다.
이 때문에 분과학문이 요구하는 주제, 논문의 형식, 논리의 전개방식, 용
어와 서술 등은 연구자 개개인에게 강력한 구심력으로 작용하고, 이는 공
동연구 주제의 원심력과 자주 갈등을 일으키는 관계이다. 그러나 공동연
구는 개별 연구자가 속한 분과학문의 시야가 닿지 않는 소재나 논리를 제
공할 수 있고, 이를 충분히 활용하면 분과학문의 연구조류에 새로운 바람
을 일으킬 수 있다. 분과학문의 관행을 공동연구의 과정을 통하여 낯설게
보고, 분과학문 체제에 길들여진 우리 자신을 되새길 때, 분과학문의 닫힌
벽은 보다 낮아질 수 있을 것이다.
셋째로 개인의 연구와 공동 연구 사이의 중심 / 주변 관계이다. 개인의
지적 관심사와 그 동안의 지적 편력에 따른 개인연구가 연구자 개인에게
연구활동의 ‘중심’인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공동연구가 연구자 개인의 작
업에서 ‘주변’으로 밀려나는 것이 현실이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
는가. 실로 공동연구의 성패의 관건은 여기에 있다. 일부 연구자에게 공동
연구의 주제나 시각이 개인의 지적 관심사나 세계관과 가깝지 않다면, 공
동연구의 방향과 개인적 시각 간에 조화를 이루어내기는 쉽지 않다. 누구
에게나 배어 있는 개인주의적 연구의 관습에 더하여 이러한 사정은 더욱
더 공동연구다운 공동연구를 방해하는 요인이 되어 있다. 그러나 개인의
연구가 연구업적의 경쟁에서 선두를 차지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면, 그
리고 공동연구가 단지 프로젝트 건수 하나 올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공
동연구는 연구수행과정 자체가 자그마한 지적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
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만나서 생각의 차이를 거듭
한국 인문학의 좌표와 중심 / 주변 연구 293

 

나누는 행위야말로 인문학적 정신의 실천일 터이다. 지적 공동체는 소명
감과 각오와 긴장 없이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경남부산지역문
학연구회의 발간사는 인문정신의 긴장어린 실천을 다음과 같이 생생하게
담고 있다. “사람살이가 날로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문학연구 또한 보다
생산적인 담론을 개발해야 할 짐이 더욱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옆을 둘러
보지 않고 한 발 한 발 앞서 걸어나갈 따름입니다. 할 일은 많고 마음은
바쁘나, 어려운 속에서도 늘 힘을 모아주시는 여러분의 고마움을 다시 기
억하며, 새 마음 새 뜻으로 다시 신발 끈을 묶습니다.”21) 그렇다고 일사불
란한 전체 논리의 구축을 위해 개인의 연구를 메트릭스의 부속품같이 다
루는 것도 찬성할 수 없다. 요즘의 유행어를 빌린다면, 공동연구가 만들어
낼 지식은 수목형 지식이 아니라 리좀식 지식의 구축이 아닐까 싶다.22)
넷째로 프로젝트의 공동연구팀과 바깥의 인문학자, 나아가 사회의 관계
역시 중심과 주변의 관계로 설정할 수 있다. 중심 / 주변의 연구가 보고용
이나 취직(승진)을 위한 자가소비용이 아니라면, 대중과 소통하고 시장 속
에서 소비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현행의 연구소 공동연구는
제도 내부에 비제도권적 요소를 포괄하고 있는 형식인데, 이것은 지식 생
산에서 제도의 안팎 ―중심 / 주변 ―을 넘나드는 일종의 실험도 될 수
있다. 열악한 지방의 환경에서 인문학 연구가 제도 밖으로 나가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려우나, 기능적 혹은 자가소비적 지식의 생산에 치중하는 제
도 내부의 연구에 함몰되기도 거부하는 경계선에 있기 때문이다. 이론적
접근이 위주인 중심 / 주변 연구가 사회와 소통하기 위하여 문화연구, 인
문콘텐츠, 영상언어, 지역학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그것은 사회의 변
화를 따라잡고 시장과 대면하기 위한 인문학의 변신이기 때문이다.

 

21) 「책머리에: 신발끈을 다시 묶으며」, ?지역문학연구? 8 (2003), 8.
22) 공동연구의 문제를 다룬 ?교수신문?의 기사(2005.5.9, 6면)에서는 공동연구의 문제점으로
급조된 연구원 구성, 구성원의 연구기획 이해 부족, 구성원의 책임의식 결여과 연구성실도의
차이, 정기적 토론의 미비 등을 지적하고 있는데, 결국은 지적 공동체의 형성을 위한 소통과
조율의 문제로 귀결된다.

 


Abstract
294 코기토 60 (2006)

 


Coordinates of the Humanities in Korea and Center / Periphery Studies
Ha, Sae-Bong (Pusan National University)
In looking back on the state of the humanities in Korea over the past twenty years, this
writing makes it certain that in which intellectual context the center / periphery studies project
by the PNU Humanities Institute locates, and what the project team’s aim and method should
be. In the late 1990s in Korea, it was often said that the humanities were in crisis. But,
scholars missed out the view of periphery or locality in examining the crisis in the humanities
studies. It was during the 1990s that an academic interest in the center / periphery and locality
was nation-widely taken. The interest started by the fields of Korean history and then was
spreaded into the fields of Korean literature. In the context of the academic trend, the center
/ periphery studies are connected with the ‘locality’. Such studies are not a kind of theory
for theory but based on the reality. We start in terms of ‘locality’ and arrive at the concept
of ‘boundary’ going beyond a limit. We will abstract theory deduced in ‘locality’, expanding
them from a merely spacial notion to all kinds of cultural phenomena. The center / periphery
studies has been organized by the research institute and are presently undergoing the collective
research. So we expect that from such a research collaboration itself should appear a kind
of intellectual community. In addition, in the center / periphery studies, it needs to be clearly
aware what their own proper theory be, and to try to find a further paradigm.
Key words: humanities in Korea(한국의 인문학), center / periphery studies(중심 / 주변 연구),
locality(지방성), research collaboration(공동연구), intellectual community(지적 공동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