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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태어나기 전의 생명을 둘러싼 윤리문제의 역사적․문화적 배경-島薗進/東京大-번역: 문서란/외국어대학원대

1. 들어가며
생명조작의 과학기술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보다 행복하게 살아가고
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하게 이용될 수 있게 되었다. 인류는
자연을 계속적으로 개변시켜 왔으나 현대의 과학기술은 인간들이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생태학적인 환경을 크게 개변시켜 온 데다 최근에는 인
간 자신의 신체의 생물적 구성 그 자체를 개변시키려 하고 있다. 장수, 맞
춤 아기, 나아가 유전자 개변과 같은 인간생명의 의도적 개변이 일어날 때
지금까지 인류가 품어 온 인간생명에 대한 관념과 인간의 사생(死生)에 관
한 관념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생명을 개변하기 위해 과학기술개발에 매진해 온 과학
자의 전문지식으로는 답변할 수 없는 내용이다. ‘사람의 생명이란 무엇인
가’, ‘사람의 사생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은 철학이나 종교, 또는 사상이
나 문화의 영역에 속한 사항이며 그러한 의문에 답변하려고 하면, 자연과
학이 아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적인 문화연구로 방향을 전환해야 할 것
같다. 반대로 말하면, 생명을 둘러싼 과학기술이 거대한 발전을 이루고 있
는 오늘날이야말로 인문학과 사회과학적인 문화연구에 기대를 많이 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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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실제로 환경문제나 생명윤리의 문제를 생각할 때, 동서고금의 문화
가 생명에 대해서, 사생에 대해서 어떤 사상을 가지고 어떤 태도를 취해
왔는가를 문제 삼는 시대가 되었다. 현대의 인문정신이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 보고에서는 이상과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생명윤리의 문제, 특히
태어나기 전의 생명의 가치를 둘러싼 생명윤리의 문제를 제기하여 현대의
인문정신이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 나
가야 하는지에 관해서 일본의 예를 들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일정한 형태
를 가진 문화나 문명이 또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역사적 경험이 인간
의 생명을 둘러싼 생각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일본의 경우를
들어 고찰하려고 한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을 예를 들면 유사한 고찰이 가
능할 것이다. 그러한 사례연구를 거듭하며 비교를 해 나감으로써 현대 인
류는 생명 문화에 대해 보다 넓고 깊은 이해를 할 수 있게 될 것임을 확신
한다.

 

2. 배아인간의 연구․이용․조작을 둘러싼 토의와 종교문화
이 보고에서 다루는 것은, 내가 우연한 기회에 깊이 관여하게 된 ‘태어
나기 전의 생명’에 대해서, 또는 ‘시작단계의 생명’에 대한 생명윤리 문제
이다. 시작단계의 인간의 생명을 희생시켜 연구․이용하는 것이 허용되는
지의 여부는, 현대세계의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지 심각하게 고
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생명윤리문제 중의 하나이다. 1996년에 영국에서
복제양이 탄생하고, 1998년에 미국에서 인간줄기세포가 수립됨에 따라,
일본에서는 1997년부터 수상이 주재하는 과학기술회의하에 있는 생명윤
리전문조사회, 2001년에 기관이 개편된 후에는 종합과학기술회의하에 있
는 생명윤리전문조사회에서 인간배아의 연구․이용에 대한 옳고 그름이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53

 

나 조건을 둘러싼 검토가 이루어졌다.1) 생명윤리전문조사회는 2004년 7
월에 ‘인간배아취급에 관한 기본적 생각’에 관한 최종보고서를 정리했다.
그 보고서는 일정한 조건이 있는 것이긴 했으나 인간의 수정란과 복제배
아의 작성과 연구 이용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심의의 결과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졸저 ?생명시작의 생명윤리(いのちの始まりの生命倫理)?를 참고하
기를 바라며, 가장 큰 이유는 시작단계의 생명을 연구․이용하는 것이 인
간의 존엄을 위협한다는 우려에 대해서 그 우려를 극복하려는 논의의 제
시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한편, 회의적인 입장에서 이루어진 논의의
대부분은 보고서에 포함되지 않았으므로, 얇은 분량의 보고서가 될 수밖
에 없었다. 용인해야 할지의 여부를 둘러싼 주요한 논점은 ①인간생명이
수단화․자원화될 우려는 없는가, ②과학 연구상의 필연성(다른 가능성은
없는가, 복제배아 이용의 가능성)은 있는가, ③난자조달을 위해서 여성의 생명
을 침해할 가능성은 없는가라는 세 가지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한 가지
도 납득할 수 있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용인한다는 결론
만 억지로 내린 것이다.
이 3가지의 논점 중에 첫 번째 논점에 대해서는, 인간배아의 연구․이
용이 인간의 존엄을 침해한다는 것을, (a) 인간생명의 맹아를 파괴한다는
것, (b) 인간생명의 맹아를 도구나 재료(자원)로써 이용하는 것의 시비라는
2가지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주장이었으나, 필자의 주장을
조사회의 멤버가 이해하여 명확한 논제로서 의식한 적조차 없었다. 구미
에서는 (a)의 논점이 매우 비중 있게 논의되어 왔으나, 필자는 (b)의 문제
를 더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신중절에는 태아라는 새로
운 생명개체의 파괴라는 중대한 윤리적 문제가 존재한다. 분명히 인간배

 

1) 생명윤리위원회와 생명윤리전문조사회에서의 심의의 경위와 그 내용에 대해서는 島薗進, ?い
のちの始まりの生命倫理-受精卵․クローン胚の研究․利用は認められるか? (春秋社,
2006)에서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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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의 연구․이용에 있어서도 새로운 생명개체의 파괴는 중요한 윤리적
문제이지만, 아울러 그 생명을 다른 목적을 위해 이용할 가능성을 내재한
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정확한 고찰이, 현시점의 생명
시작의 생명윤리를 생각하는 데 있어서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고 볼 수 있
다. 인간 생명의 이용이 인간개조에 대한 점진적 개입을 가능하게 하는 점
도 우려되므로, 파괴여부뿐만 아니라 어떻게 이용하는가에 대해서도 면밀
하게 검토해야 한다.2)
인간생명남용의 가능성은 멀지 않는 미래의 일이다.3) 예를 들어 복제
배아에서 줄기세포(인간배아 줄기세포)를 추출하여 이용하는 것은 난치병으
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수준 높은 복리를 제공한다고 논의
되었다. 척추손상이나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하는 방법이 발견될 가능성이
현저하게 높아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복제배아에서 추출된 줄기
세포는 난치병치료 이외의 다양한 용도로 생각되고 있다. 예를 들어 지금
까지는 살아있는 개개인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던 약물치료를 복제배아유
래의 줄기세포를 이용해서 실시하면 위험이 적고 효율적으로 약물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약품회사로서는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경제효과를 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특정 난치병의 치료를 위해 인간배아를 이용하
고 시작단계의 생명이 희생된다는 것과 불특정이익을 위하여 인간배아를
이용하고 시작단계의 생명을 희생시킨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달라진다.
후자가 인간생명의 수단화․자원화에 가까운 행위라는 것은 설명할 필요
조차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항들은 복제배아의 작성, 이용을 둘러싼 구미의 생명
윤리 논쟁에서도 최근에 와서야 겨우 인식하게 된 문제이다. 줄기세포가

 

2) 미국 부시 대통령의 생명윤리자문위원회는 복제배아나 줄기세포 이용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
련된 문제로서 가치증대(enhancememt)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논하여 밀도 높은 보고서를 공표
했다. レオン․カス, 倉持武監訳, ?治療を超えて-バイオテクノロジーと幸福の追求(大統領
生命倫理評議会報告書)?(青木書店, 2005).
3) 瀧井宏臣, ?人体ビジネス-臓器製造․新薬開発の近未来?(岩波書店, 2005), 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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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용되며, 그로 인해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가 하는 문제가 윤리적
인 문제로서 중대한 의의를 갖는다는 생각은 아직 주변적인 인식에 그치
고 있다. 줄기세포는 개체로서의 인간의 생명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물
질’에 가까운 존재라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미국․프랑스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과학기술의 발전 그 자체에 대해서 상당히 낙천적이고
진보적으로 생각하는 입장이 우세하다는 사정도 있다. 국민들이 원자폭탄
과 같은 과학기술의 성과가 초래한 비참한 피해를 당한 적도 없으며, 과학
자가 대량학살에 일조했다는 것에 대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한 것도 아니다. 이 점이 일본이나 독일과는 다르다.
또한 그 이유로서 인간배아의 작성․이용에 대한 시비가 늘 인공임신
중절 시비와의 관계에서 거론되었다는 것도 있다. 중절은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며, 근본적으로 깊은 죄라는 관점이 상당히
중대한 의의로서 거론되어 왔다. 인간배아의 작성․이용에 대해서도 개인
으로서의 생명의 파괴만이 윤리적인 문제의 핵심이며 그 외의 문제를 훨
씬 능가하는 중대함을 갖고 있다고 생각되었다. 인간배아가 개인으로서의
인간인지의 여부와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동등한지의 여부에 논의가 집중
되는 경향이 있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에 강한 관심을 표명하는 것
은 의미 있는 일이지만 그 대신 사람 생명의 수단으로서의 이용에 대한
시비에 관심이 희박해지는 것은 문제이다.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에 문제를 집약하는 것은 글로벌하게
공유된 가치관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초기단계의 배아처
럼 개인으로서의 인간이라고는 할 수 없다고 하는 입장의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개인이 아닌 중절태아의 몸을 이용하는 문제의 시비에 대해서도
개인으로서의 인간과 동등하지는 않더라도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을 인간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이용한다면
인류사회의 장래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 것인가. 어떤 목적을 위해서 어떻
게 사용하면 용인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인간의 존엄과 깊이 관련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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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생명윤리전문조사회의 심의에서는 거의 논의되
지 않았다.
앞에 ①②③으로 정리했던 논점은 본고에서 서술해 온 여러 가지 논점
에 이르기까지 한 단계 전의 것인데, 여기에 대해서도 허용을 뒷받침할 수
있는 충분한 논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 부분은 최종보고서에 앞서
2003년 12월에 공표된 중간보고서의 단계에서 이미 많은 위원이 강하게
지적한 부분이었다. 필자는 ‘위원개인의견서’에서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인간배아의 연구이용은 인간생명의 도구화, 수단화로 연결될 우려가 있다. 이는
인간생명의 존엄을 위협하는 것이나 보고서는 그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없으며, 또
한 조심스럽게 다루어왔던 결정적인 선을 넘어서 연구를 용인하는 근거도 제시하
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인한다는 보고를 시사하고 있으므로 이 보고서
에 반대하는 바이다.4)
최종보고서에서는 삭제되었지만, 중간보고서에서는 인간의 수정란과
복제배아의 작성과 연구이용과 더불어 넓은 의미의 출생 전 진단의 일종
인 착상 전 진단5)도 허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기술되어 있다. 이에 대해
필자의 ‘위원개인의견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착상 전 진단에 대해서도 심위를 위해 소비된 시간은 적다. 기록에 의하면 본회
의에서 짧게 논의한 것과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청취한 것에 불과하다. 보고서작
성을 위한 실무그룹의 심의는 공표되지 않았으므로 어떤 심의가 이루어졌는지는

 

4) 総合科学技術会議生命倫理専門調査会, 「ヒト胚の取扱いに関する基本的考え方」(中間報告
書), 「委員個人意見書」, 51.
5) 넓은 의미에서의 출생 전 진단은, 난자진단, 정자진단, 착상 전 수정란 진단, 더 성장한 단계
에서 초음파영상진단이나 양수검사. 섬모 검사 등이 포함된다. 착상전 진단은 전3자이다. 생
명윤리의 논제로서 복잡한 논쟁이 전개된 것은 성별에 의한 선별이나 장애자의 배제를 위한
출생 전진단이나 착상전 진단 등 선별, 배제와 관련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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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나 최초 단계의 보고서안에는 착상 전 진단에 대한 기술은 거의 없었다. 새로
운 형태의 우생학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크게 우려되며, 많은 당사자가 생명선
별 가능성에 대해서 깊이 의구심을 갖는 것으로 보아 무성의한 심의라고 할 수밖
에 없다.6)
착상 전 진단의 시비가 심의되지 않고, 보고서의 문안작성단계에서 허
용방침을 슬며시 포함시킨 사실은 흥미롭다. 이 문제가 토의되면 시작단
계의 생명 조작과 관련된 다양한 가치나 문화 역사적 경위 등이 논제로
제기되어야 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논의는 생명윤리위원회에서는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청문은 실시했지만, 위원끼리의 논의는 거의 이루어 지
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결국 최종보고서에서 착상 전 진단에 대한 판단이 포함되지 않게 된 것
은 당연한 결과이다. 그런데 중간보고서의 ‘위원개인의견서’ 중에는 그 문
제를 거론하여 용인하는 방향으로 깊이 있는 논의를 하고 있던 것도 있다.
인간배아의 조작에 대해서 모두 허용적인 방향으로 의견을 개진해 왔던
가톨릭교도이며 죠치대학(上智大学)에서 형법학을 가르치고 있는 마치노
사쿠(町野 朔) 위원이 기술한 것이다. 마치노는 뇌사 장기이식에 대해서도
본인의 승낙을 필요로 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법안 준비에 큰 역할
을 했던 학자이기도 하다.
인간배아는 ‘인간생명의 맹아’이며, 그에 상응하도록 다루어야 한다. (중략) 그러
나, 체외에 있는 인간배아는 과학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존재이며, 자연생식
에 의해서 생성된 태아와는 다른 존재라는 감각은 많은 수의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구미에서는 embryo라는 하나의 단어로 제시되는 존재가, 일본에서는
‘태아’와 ‘인간수정배아’라는 2개의 관념으로 구분되어 있다. (중략) [일본에서는]

 

6) 総合科学技術会議生命倫理専門調査会, 「委員個人意見書」,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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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배아가 수정배아보다 윤리적인 가치가 떨어지는 존재라고 생각되는 경향이 있
는 데 반해, 착상전 진단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인공임신중절이 일본에서 사실상 자
유 상태라는 것에 대한 윤리적 검토를 보류한 채 인간수정배아 스크리닝(screening)
의 윤리적 허용성이 논의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태아보다 인간수정배아가 더 극
진한 보호를 받아야만 한다는 기묘한 결론이 도출되는 경향이 있다. / 결국 보고서
안이 이처럼 윤리적으로 잘못된 생각을 전제로 하지 않았던 것은 옳은 일이다. (중
략) 인간배아와 태아가 동질의 가치를 갖고 있는 이상, 착상전 진단으로 이루어지
는 스크리닝의 허용성이 임신중절의 허용원리로부터 도출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다.7) ( /는 원문에서의 줄 바꾼 부분을 나타냄. 또한 [ ] 안은 시마조노가 보충한 부분
을 나타냄.)
이는 시작단계의 인간의 생명가치의 우열이라는 관점에서, 착상 전 진
단의 시비를 언급하려고 한 것이다. 한편 수정란과 복제배아의 가치의 비
교에서는 체내의 수정배아와 체외의 복제배아를 비교하면 체외의 배아가
가치가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이무라 히로오(井村裕夫) 생명윤리전문조
사회 회장이 그런 생각을 시사하고 있었으나, 조사회에서 그런 생각이 우세한 것은 아
니다). 다른 쪽에서 착상 전 진단을 둘러싼 논의에서는 체내의 태아중절을
인정하면서 체외의 수정배아를 조작하는 착상 전 진단을 좀처럼 인정하려
하지 않는 일본의 생명윤리의 논의는 배아의 지위에 대해서 초지일관의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비판하고 있다고 한다. 더욱이 마치노는 이미 장
애인을 발견하기 위해 더 나중 단계에서 실시하고 있는 출생 전 진단을
더 빠른 단계에서 실시할 수 있는 착상 전 진단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
하고 있다. 일본의 모체보호법에는 태아가 장애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는 이유로 중절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모체의 건강이나 경
제상의 이유에 의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는 장애를 이유

 

7) 総合科学技術会議生命倫理専門調査会, 「委員個人意見書」, 57.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59

 

로 중절하는 부모가 많다. 원래 출생 전 진단에 의한 중절을 영국, 미국,
프랑스 등에서도 하고 있듯이, 태아의 상태에 의한 선별로서 법적으로 인
정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법률용어로 ‘胎兒性適應’이라고 한다).
장애인이 태어났다는 이유(wrongful birth라고 한다)로 부모가 의사를 고소한
경우, 그것을 물리칠 수 있는 법적근거는 어디에 있는 것인가. 착상 전 진
단의 길을 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이유의 근거로 마치노는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한다.
출생 전에 태아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모친이 희망하면
그 태아는 중절되었다. (중략) 확실히 모체보호법의 문리(文理)에 위배되는 법적용
이 이루어졌다. / 이러한 법의 해석․운용은 부당하며 출생 전 진단․중절은 단호
하게 위법이라고 해야 한다는 것도 하나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착상 전 진단을 실
시하여 현행법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근거로 스크리닝 실시를 인정해서는 안
되는 것은 물론이고, wrongful birth는 민법상의 불법행위가 되지 않으며, 나아가서
는 태아성적응에 의한 중절은 낙태죄로서 소추․처벌되어야 한다. / 그러나, 태아성
적응에 의한 인공임신중절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낳는다, 낳지 않는다를 결정하는
여성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며 부당한 것은 아닐까. 만약, 모체모호법이 그 권리
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헌법13조(행복추구권. 여기에는 프라이버시의 권리
도 포함된다고 해석된다.)에 위배되므로 무효가 된다. 동일법을 헌법위반․무효로
해 버린다면 모체보호법을 헌법의 취지에 맞도록, ‘헌법적 한정해석’을 해야 한다.
/ 이상과 같이 생각한다면 태아성적응에 의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함과 동시에, 거
기에 따른 착상 전 진단․스크리닝도 허용해야 한다.8)
일본에서는 장애인의 입장을 배려하여, 장애인을 배제하는 것을 정당화
하는 출생 전 진단, 착상 전 진단은 권장되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하

 

8) 総合科学技術会議生命倫理専門調査会, 「委員個人意見書」,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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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사람이 많다.9) 그러한 의견을 반영하여 아직 착상 전 진단은 공식적으
로 인정되지 못했다. 그에 반해서 마치노는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한다면
착상 전 진단을 허용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라는 논리를 펼친다. 이것
은 배아의 윤리적 지위라는 관점에서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할 수 없다고
하는 가톨릭 교회적인 사고와 여성의 선택권과의 대립이라는 틀을 당연한
표준으로 삼아 시작단계의 생명조작문제를 논하려는 것이다. 마치노는 착
상 전 진단이나 출생 전 진단을 폭넓게 인정한다는 입장에서 그 문제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일관된 입장을 취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작단계
의 생명조작에 대해서의 구미에서의 논의를 표준으로 삼아, 그 표준에서
일탈하고 있다면서 일본의 생명윤리논의를 비판하려고 하는 것이다.

 

3. 인공임신중절 금지의 문화적․역사적 배경

 

인공임신중절이 용인되지 않는 일본에서, 시작단계의 생명조작에 신중
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초지일관된 자세가 아니라는 논의는 고명한 과학
사학자이며 생명윤리에 조예가 깊은 가톨릭교도인 무라카미 요이치로(村
上陽一郎)에 의해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무라카미는 인간배아의 연구이용
문제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논리를 펼친다.
제 생각이지만 폐기될 운명에 있는 동결잉여배아도 생명의 출발점이라는 의견
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일본사회에는 더 터무니없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연간 40만 정도 버려지는 태아는 한때는 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그 태아들의 운명과 모태에서 적출되는 태아들이 어떻게 다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9) Susumu Shimazono, “Reasons Why the Selection of Life is Not Good to Do: From Japan’s
Experiences of Prenatal Genetic Diagnosis” in Julian Savulescu, ed., How Can Human Nature Be
Ethically Improved?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forthcoming.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61

 

것입니다. 중절한 책임자가 맡아서 회향(回向: 불교에서 스스로가 쌓은 공덕이나
수행을 사람들이나 살아있는 생명에게 되돌리는 일-역자 주)한다는 것은 보통 있
을 수 없습니다. 임신한 주일 수가 짧으면 짧을수록 그대로 하수구로 흘려버리는
일도 있습니다. 제약회사, 화장품회사가 그것을 인수하여 약이나 화장품을 만드는
재료로 이용한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진지하게 문제 삼지 않으
며 그것을 규제하는 법률도 없습니다. 산부인과학회에 사체해부보존법에 근거한
조치를 취한다는 기록만 있을 뿐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폐기
되는 태아의 운명과 연간 200개 정도의 동결잉여배아가 파괴되는 것을 비교했을
때 후자를 그냥 놔두고 그에 대해 아무런 잘못도 묻지 않은 채 인공임신중절은 안
된다는 논리는 통용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10)
무라카미는 인간배아의 연구이용에 대해서 신중한 입장을 취한다면 인
공임신중절에 대해서도 제한하는 방향으로 나가야만 앞뒤가 맞는 조치라
고 주장한다. 그러나 일본인은 그런 방안을 채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무라카미의 예상이다.11) 그 배경에는 일본문화가 개개인의 생명의 존엄에
대한 의식이 약하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있다. 실제로는 과잉인구에 대한
불만의 분출구를 찾기 위한 식민지주의 침략을 어쩔 수 없이 철회해야만
했고 좁은 국토에서 나라를 재건하기 위해서 인구를 억제해야 하는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사회적 판단이 있었다. 그리고 산부인과 의사의 기득권 유
지를 이유로 피임약 해금이 늦추어졌다는 사정도 있다. 현대 일본에서 인
공임신중절이 많다는 것에 대해서 그와 같은 역사적 경위에 대해서는 언
급하지 않고 주된 이유를 일본인의 윤리의식이 희박하다는 것으로 돌리려
고 하는 것이 무라카미의 논법이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인이 기독교의 하

 

10) 村上陽一郎, 「「生命の始まり」その行方(2)」, ?生命尊重ニュース 円プリオにほん? 平成14
年秋号(2002), 3~4.
11) 무라카미가 서술한 것 중에 중절후의 태아의 처리나 이용에 대해서,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으면서 아무도 진정으로 문제 삼지 않는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은 지나친 듯하다. 사실, 그
후 중절후의 태아의 유체의 처리는 사회문제로 거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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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님 신앙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인간개개인의 생명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
되고 부여된 존귀한 것이라는 윤리관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일본
문화 이해에 근거하고 있다.
일본사회는 전통적으로 태아에 대해서 비교적 소홀하게 다루어 왔습니다. 1549
년 하비에르 신부 일행이 일본에 왔을 때 그들은 일본사회의 높은 윤리성과 고귀
한 도덕성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데 그에 대해서는 로마에 보고서를 제출하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높은 윤리성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사회 속에서 그들이 아
무리 참으려 해도 참을 수 없었던 것이 마비키(間引き: 에도시대에 가난한 가정에
서 양육이 어려워 산아를 죽이던 일-역자 주)라든가 낙태를 지극히 간단히 행하
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아르메이다라는 사제가 그런 가운데 기타큐슈에 일본
최초의 서구적인 병원을 세웠는데 사실은 그것은 병원이 아니라 어린이를 버리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태어난 어린이를 버릴 정도라면 교회 문
앞에 놓은 상자에 버리고 갈 수 있도록 하여 우리들이 키우겠다는 것이 그 취지였
습니다.12)
여기서는 의도적인지 어떤지는 별도의 문제로 하고 일종의 문화론적인
전제가 이야기되고 있다.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을 경시하는 일본문화
의 바탕에서는 오랫동안 인공임신중절이 허용되어 왔다. 그것은 긴 역사
를 갖고 있기에 쉽게 바뀌지 않는 전통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그러
한 사생관이나 가치관에 따른다면 인간배아의 연구이용도 인정해야 한다
고 무라카미는 말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의 문화배경 아래에서 발전해 온
생명윤리에 대한 생각을 그대로 보편적인 타당성을 갖는 것으로 받아들이
는 논의가 아닐까 생각된다. 구미사회에서는 왜 인공임신중절의 금지가
당연한 전제로서 강력하게 유지되어 왔는지 그렇지 않은 일본과의 차이는

 

12) 村上陽一郎, 「「生命の始まり」その行方(2)」, ?生命尊重ニュース 円プリオにほん?, 6.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63

 

무엇 때문인지를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원래 기독교가 인공임신중절 금지에 대해서 왜 이렇게까지 엄격한
지 교의적인 근거에 대해서 간단히 훑어보기로 하자.13) 가톨릭교회가 단
호하게 임신중절에 반대하는 태도를 내세우게 된 것은 제2바티칸 공회의
(1962~1965) 및 교황 바울6세의 회칙 ?Humanae Vitae (적정한 산아의 조정에 대
해서)?(1968)에 근거한다. 그러나 그 기초가 되는 ‘수정의 순간부터 귀한 인
간의 생명이 시작 된다’는 신학적 견해를 가진 교회의 의한 표명은, 1869년
교황 피우스 9세의 교령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것은 1827년에 칼 에른스
트 폰 벨에 의해서 난자의 존재가 증명되고 1875년에 오스칼 헬비히가 수
정의 모든 과정의 설명에 성공했다는 발생학의 발전을 토대로 한 것이다.
그러나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약 100년 동안은 가톨릭교회
는 중절금지에 대한 분명한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으며, 신학자도 자유롭게
여러 견해를 표명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의 인공임신중절 반대
는 역사적 기초가 없고 깊이가 없는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반대견해의 기본을 이루는 교의적 논리가 기독교 신학체계의 확립기, 즉
13세기에는 기초가 거의 제대로 다져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 교의적 논리
란 ‘영적부여(ensoulment)’라 불리고 있다. 그 영적부여의 시기를 기점으로
거기서부터 ‘인간 생명이 시작된다’는 신학적 입장이 이른 시기에 확립되
고 있었던 것이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1193~1280)는 이 영적부여가 수정
하는 순간에 일어난다고 생각한 최초의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 이전의 서양에서, 영적 부여는 어느 한 시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
라 시간을 들여서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것이라는 견해가 유력했다. 인간의

 


13) 이하의 서술은 주로 Malcolm Potts(1985), Bernhard HÄring(1990), 오기노(荻野)(2001)에 의
한 것이다. 그리고 Bernhard HÄring의 저서의 영어판도 참조했다. マルコム․ポッツ 他, 池
上千寿子, 根岸悦子 訳, ?文化としての妊娠中絶?(勁草書房, 1985); ベルンハルト․ヘーリ
ング, 田淵文男 訳, ?生命․医․死の倫理?(サンパウロ社, 1990); Bernhard HÄring, Freeand
Faithful in Christ, vol.3 Light to the World (Crossroad, 1981); 荻野美穂, ?中絶論争とアメリカ
社会-身体をめぐる戦争?(岩波書店, 2001).
64 코기토 60 (2006)

 

개체는 식물적 단계, 동물적 단계를 거친 후에야 겨우 불멸의 영혼을 부여
받는다는 것이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견해이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
1274)는 이러한 입장이었다. 이 입장도 영혼부여라는 견해에 따른 것이며
신이 불멸의 영혼을 불어넣는 것은 태아가 남성일 경우는 수정 후 40일,
여성의 경우는 80일 경이라는 것이다. 인간이란 신에 의해 ‘영혼부여’된
존재라는 ‘생명’에 대한 견해는 서양문명과 기독교 전통 속에서 뿌리 깊은
역사적인 기초를 갖고 있다. 인공임신중절의 허용을 둘러싼 구미의 논쟁은
서방 기독교의 교의와 관련이 있다. 영혼이 부여된 존재야말로 인간의 개
체이며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신성한 생명이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개인으로서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생명윤리상의 모든 이슈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 되었다. 그와 함께 신이 부여한 인간의 생
명이 번성해 나가는 것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상도 기독교 역사에
서 큰 역할을 해 왔다. 구약성서 창세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남자와 여자를 창
조하시고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라,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
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1장 27절, 28절)
여기에서는 윌리엄 라후루아가 다산주의(fecundism)라고 부른 사상이 명
료하게 서술되어 있다.14) 이 사상이 확장주의를 이끈 가능성이 있다는 것,
그리고 식민지주의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
명존중’의 이념이 ‘자기 동료의 생명존중’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
을 우리들은 싫을 정도로 경험해 왔다. 물론 ‘수태순간부터 신성한 생명이
시작되고 그것을 파괴하는 것은 살인에 가깝다’라는 윤리관이 생명에의

 

14) William R. LaFleur, Liquid Life: Abortion and Buddhism in Japan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92).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65

 

깊은 경외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현대인은 인
간의 존엄, 생명의 신성함을 주장하는 사상이 어떤 면에서 다산주의나 확
장주의의 기초가 되었다는 역설을 역사상 처음으로 정면으로 인식해야 하
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다.15)
다산주의는 근대에 이르러 급속한 인구증가와 식민지 개척이나 신개척
지 이주로 연결되었다. 이는 기독교에 의한 동기부여만이 주요한 요인이
된 것은 아니다. 정치 경제적인 요인과 깊은 관련이 있다.16) 주요생산자가
농민이고, 그 농민이 토지에 묶여 있던 봉건제도의 영향이 컸던 시대에는
인구가 급속하게 증가하지는 않는다. 대항해시대 이후 300년 간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했던 사람들의 숫자는 200만 명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그 원인은 유럽내부에 이주를 희망하는 인구가 대량으로 발생하지 않았으
며,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운송교통수단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상황은 일변했다. 유럽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노
동력과 시장 확장에 대한 요구가 급속도로 높아졌다. 농촌에 방대한 잉여
인구가 발생함과 동시에 도시․식민지․미개척지, 특히 신대륙에 자유롭
게 이주하여 생활을 개선하려는 희망에 불이 붙어, 경제발전과 국력증강
의 지표와도 일치하게 되었다. 와카쯔키와 스즈키의 기술에 의하면 영국
인구는 18세기 중반까지의 150년 간 많게 잡아도 겨우 50% 정도의 증가
에 머물렀다. 그런데 18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초기까지 150년 간은 약 5
배로 증가했다.
19세기 초기 영국에서는 인구증가가 급속히 진행되는 가운데, 인구의 3
분의 1에서 7분의 1이 빈민상태였고 이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확대되었다.
산업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새롭게 발생한 빈곤한 잉여인구는 이주나 이민

 

15) 1995년에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으로 교황청에서 공표된 ?생명의 복음?에서 이 문제를
아직 거론하지 않았다.
16) 若槻泰雄․鈴木譲二, ?海外移住政策史論?(福村出版, 1975).
66 코기토 60 (2006)

 

의 크고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유럽각지로 펴져 간 인구증가와
빈곤문제의 발단이 되었다. 19세기 말기 4반세기 이후의 제국주의가 과잉
인구로 인한 곤란을 처리하기 위해 발생했다는 것은 잘못된 지적이었을지
모르나,17) 제국주의가 과잉인구의 구제 및 이용과 관련된 자원․시장획
득경쟁을 원인으로 하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와카쯔키와
스즈키는 1821년부터 1924년의 백 년 동안 유럽에서 신대륙으로 이주한
사람의 숫자는 5천 816만 명에 달했으며 특히 1906년부터 1910년까지의
5년 동안은 연평균 171만 7천 명에 달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근대국가 대열에 참가하고자 했던 거의
모든 나라들은 인구증가에 의한 국력증강을 목표로 해왔으며, 국가가 부
국강병을 목표로 정책적으로 인구증가를 촉진해 왔다. 이 정책과 낙태․
마비키의 금지가 서로 손을 잡기도 했다. 낙태나 마비키는 도덕과 문명을
모르는 야만적인 풍습이라는 생각은 기독교만이 문명화나 진화를 떠받치
는 탁월한 종교라는 사상과 인구증가만이 국가 부강의 조건이라는 사상이
함께 지원사격을 해왔다. 물론 인구증가로 사회생산력이 인구를 유지해
나갈 수 없게 된다는 맬더스 류의 사상도 영향력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산아제한을 옳다고 생각하는 지지자도 점차로 증가하게 되었
다. 일본에서도 미국으로의 이민이 금지된 1920년대에는 과잉 인구 억제
를 염두에 둔 인구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대응이 이루어지게 되었다.18)
20세기에 들어설 무렵부터 우생사상이 합세하게 되고,19) 여권확장운동
과 연계해서 새롭게 피임법을 확대하려고 하는 신맬더스주의운동도 영향
력을 갖게 되었다.20) 인구증가가 인정된다고 해도 인구증가와 함께 우량

 

17) エリック․J․ホブズボー厶, 野口建彦․野口陽子 訳, ?帝国の時代 1875~1914? 1 (みす
ず書房, 1993), 97~98.
18) 岡崎陽一, ?日本人口論?(古今書院, 1999), 18~20.
19) ダニエル․J․ヶフルス, ?優生学の名のもとに-「人類改良」の悪夢の百年?(朝日新聞社,
1993).
20) 荻野美穂, ?生殖の政治学-フェミニズムとバース․コントロール?(山川出版社, 1994).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67

 

한 인구를 증대시켜야 하므로 피임에 의한 산아제한은 장려되어야 한다
는 사상이 점차로 퍼져가게 되었다. 하지만 힘의 확장을 목표로 하는 근
대국가가 인구증가를 그 수단으로 인정하면서 도덕적 이유를 들어 인공
임신중절(낙태)이나 신생아 살해(마비키)를 금지한다는 태도는 20세기 중반
까지 1세기 이상에 걸쳐서 타당성을 지녀왔다. 그리고 기독교의 다산주의
와 윤리사상은 이러한 근대국가의 다산주의를 측면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메이지유신과 함께 근대화를 지향하는 일본정부가 낙태 금지 조치를
취한 것은 이러한 세계적인 사상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상
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강하게 주장된 것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하
다. 일본에서 낙태나 마비키의 역사 그리고 그 억제의 사상이나 정책의 역
사는 혼조 에이지로(本庄栄治郎)의 ?人口及人口問題?(1930년 12월), 다카하
시 본센(高橋梵仙)의 ?日本人口史之研究?(1941년 11월)에 의해서 개척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 어느 쪽이나 에도시대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이러한
연구의 동기와 관련해서 ?人口及人口問題? 말미에 혼조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무릇 식민지라고 하는 것은 본국의 과잉인구를 수용하고, 본국 생산품의 소비지
로서 또는 본국에 대한 원료공급지로서 유망하다. 그렇기 때문에 내지인구와 식민
지인구와의 관계를 조사하는 것은 가장 필요한 일이다. 그래서 일본의 식민지 중에
서 생각해 봐야 할 곳이 타이완 사할린 조선 및 관동주(関東州: 만주철도 부속지는
이를 포함하지 않음)이다. 지금 식민지의 인구를 보면 (중략) [일본의 전인구의] 약3
분의 1이 넘는 인구가 식민지에 거주하고 있는데 이를 유럽제국의 예와 비교할 때
차이가 많이 난다. 그들은 광대한 식민지를 갖고 있어서 식민지인구가 상당히 많음
에도 불구하고 인구밀도는 상당히 낮아서 발전의 여지가 크다. (중략) 그렇다면 일
본은 다른 유럽제국과 비교할 때 상당히 협소한데다 인구밀도까지 높아서 식민지
를 보유하고는 있으나 내지의 과잉인구를 포용할 여지가 결코 많다고 볼 수는 없
68 코기토 60 (2006)

 

다. 하물며 식민지 중에는 지나치게 춥거나 더운 양쪽 지대를 포함하고 있는 상황
이므로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21)
1924년에 미합중국은 일본인의 이민의 길을 막아서 미일관계가 점점
악화되어 갔다. 관동군이 만주의 지배권 확립을 목표로 전쟁을 시작한 것
은 1931년 9월인데 혼조의 저서는 그보다 조금 앞에 집필되었다. 또한 ?일
본인구사의 연구(日本人口史之研究)?는 미일개전 직후에 간행되었었는데 저
서의 「맺음말에 갈음하며」에서 다카하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옛날부터 세계의 역사를 크게 살펴보면 그 나라의 인구가 많아서 멸망한 국가가
있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다. 오히려 인구가 많고 증가율이 높은 국가일수록 역사
가 발전했다고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는 인구증가는 식량위기를 초래한다고 주장하
는 사람이 있으니 이는 결코 옳지 않다. 인간생활에 필요한 물자는 인구증감에 정
비례한다는 자연법칙을 알아야 한다. 일본민족의 발전과 동아황화권(東亜皇化圏)
의 확립은 다수의 정신적 육체적 지적으로 우수한 인구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는 절대로 대일본제국의 발전을 생각할 수가 없다.22)
혼조와 다카하시는 이런 문제의식하에 에도시대의 인구정책에 대해 연
구했다. 그들의 업적은 오늘날 우리들이 일본에 있어서 임신중절과 산아
제한역사에 대해서 또는 낙태와 마비키에 대해서 고찰할 때에 지금도 기
초적인 의의를 갖는다.

 

21) 本庄栄治郎, ?人口及人口問題?(日本評論社, 1930), 254~258.
22) 高橋梵仙, ?日本人口史之研究?(三友社, 1941), 852~853.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69

 

4. 일본에 있어서 인구통어와 종교문화의 관여

 

다카하시 본센은 국력증강을 위해서는 인구증가가 불가결한데, 그것을
실현가능하게 하는 교육이나 사회정책이 실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력을 충실하게 하기 위한 국방국가체제나 건설도 인적자원을 무시하고
는 절대로 생각할 수 없다. 국가는 인구 정책적 사회 설비를 완비하여 일
본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결혼․육아․교육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
다.’23) 그를 위해서는 일본의 과거의 산아정책에 대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다카하시는 낙태나 마비키를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그것을 방지하려는 사상이나 정책이 언제 어떻게 제기되었는지 고찰하려
고 했다. 에도시대에는 큰 전환이 있었다. 에도시대에는 마비키나 낙태가
사람들 특히 농민들 속에 확산되었고 급기야는 그 폐해가 인식되어 인구
증가정책수립이 큰 사회이슈로서 제기되었다.
?일본인구사의 연구?는 특히 후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농민, 마을주
민, 무사 모두가 마비키나 낙태를 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 고찰하고 있는데
그 결론을 농민들의 궁핍한 생활 때문이라고 내렸다. 봉건영주 치하에서
의 농민들의 생활실태를 살펴보면 부업이 거의 없고 영주의 끊임없는 가
렴주구에 시달려 왔다. 게다가 주기적으로 엄습해 오는 흉작과 기근은 그
들을 점점 더 곤궁의 나락으로 빠뜨렸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서 농업생산
력은 낮을 수밖에 없었으며 도무지 인구가 증가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
다.24)
그러나 도쿠가와(徳川) 막부(幕府)치하의 봉건사회에서 쌀은 사회를 유
지하는 부의 기초였으며 쌀의 생산자인 농민은 ‘국가의 보배’였다. 그런
데 19세기 말부터 막부나 번(藩)에서 인구증가 시책이 다양하게 강구되었
다. 이는 곧 인구면에서 근대일본의 발전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23) 高橋梵仙, ?日本人口史之研究?, 851~852.
24) 高橋梵仙, ?日本人口史之研究?, 847~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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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층이 우려했던 것은 쌀과 농민의 상황이었다. 쌀의 수확량이 증가하
지 않았을 뿐 아니라, 농촌이 황폐해지고 인구가 감소하는 것은 농민이
피폐하여 인구를 유지, 증가시키는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비키
나 낙태를 금지함과 동시에 육아지원을 위한 시책을 강구하는 영주나 관
리가 속속 등장하게 되었다. 또한 승려나 유학자들이 농민의 교화에 힘쓰
게 되었다.
여기에서 봉건영주는 스스로의 특권을 유지하고 재정상의 기초를 확립하기 위
해서는 농촌의 인구 감소와 황무지 발생을 방지하고 나아가서 개간지 개발 등의
방법을 선택하여 쌀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이러한 목적
이라는 차원에서 의도된 것이 당시 인구증가정책인 낙태와 마비키의 방지이다. / 그
런데 이와는 별도로 순수한 자선적․윤리적 의미를 띤 승려․유학자․독지가에
의한 인구증가를 위한 노력이 있었던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론 이는 출발동
기가 영주들의 동기와는 다르지만 간접적으로 영주들의 정책의 도움이 된 것을 많
은 부분 인정해야 한다.25)
다카하시가 시작한 근대 이전의 인구조절과 인구증가책에 대한 조직적
연구는 그 후에 많은 연구자들에게 계승되어 발전했다. 역사적인 측면에
서 시사하는 바가 큰 연구업적으로서 다카하시와 마찬가지로 에도시대와
근대 인구정책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사와야마 미카코(沢山美果子)의 저서
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26) 중절금지의 윤리의식이 오로지 서양에서
전래되어 온 것이라는 견해는 사와야마의 업적에 의해서 충분히 논증되
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종교적 문화적 관점에서 고
찰한 결과에 역점을 두려 한다. 왜냐하면 배아조작과 중절을 둘러싼 종래

 

25) 高橋梵仙, ?日本人口史之研究?, 850.
26) 沢山美果子, ?出産と身体の近世?(勁草書房, 1998); 沢山美果子, ?性と生殖の近世?(勁草
書房, 2005).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71

 

일본에서의 생명윤리에 대한 논의가 기독교를 배경으로 한 구미에서의
논의의 역사적 축적을 상대화시키지 못했다는 점이 큰 문제라고 생각되
기 때문이다.
마비키나 낙태를 인정하는 민중의식에 민속적인 종교의식이 결부되어
있다는 것은 자주 지적된 사항이었다. 지바 토쿠지(千葉徳爾)와 오오츠 타
다오(大津忠男)의 ?마비키와 낙태한 태아(間引きと水子)?는 대표적인 저술
중의 하나인데, 여기에서 인상적이고 알기 쉽게 설명한 문화인류학자 히
라나미 에미코(波平恵美子)의 문장을 인용하기로 하자.
어린이가 다시 태어난다는 신앙의 배경에는 이전에도 언급했듯이 예전부터 일
본인들에게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의 개별성보다도 어떤 ‘집’이나 어떤 땅에 태
어나서 일정 기간 동안 인생을 살다가 죽는 자는 하나의 큰 생명의 풀(pool)과 같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내재해 있다. 그 풀에서 일정한 시간대에만 이 세상에 태어나
고, 죽으면 다시 그 생명의 풀로 돌아간다는, 이 세상에서의 개인의 생명을 강조하
지 않는 관념이 존재했다. 태어나서 바로 죽은 어린이의 이름을 그 후 몇 년 지나
지 않아 태어난 어린이에게 붙이는 일이 이전부터 빈번하게 있었다. 또는 어릴 때
죽은 어린이의 장례식은 하지 않고 계명(戒名)도 붙여주지 않았던 지역이 전국적으
로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이유를 ‘곧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이라고 했던 것을 생
각해 볼 때 생명을 개별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낮았던 것을 알 수 있다. /
그러나 생명의 관념은 제2장의 ‘생식기술의 발전이 초래하는 것’에도 언급했듯이
현재 한층 더 개별화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 어릴 때 죽은 어린이의 생명과 다음
에 태어난 어린이의 생명, 중절한 태아의 생명과 나중에 태어날 어린이의 생명은
별개의 것이며 중절한 태아의 생명은 나중에 태어날 어린이의 생명과는 무연하다
는 생각이 일반적이다. 낙태한 태아를 공양하는 배경에는 이와 같은 ‘생명의 개별
화 경향’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현재의 ‘낙태한 태아
에 대한 신앙’은 농어촌보다 오히려 도시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는 것을 보면
유아를 위한 전통적인 사자(死者)에 대한 예의가 변화되었다기보다 새로운 신앙의
72 코기토 60 (2006)

 

발생으로서 받아들이는 쪽이 더 이해하기 좋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27)
‘곧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이라고 기원하는 마음은 인간의 생명을 오로
지 개인의 생명으로서 파악하는 의식과는 다른 것이다. ‘생명의 풀(pool)’을
상정하는 사람들은 개인의 생명을 집합적인 생명체의 일부로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을 갖고 있다. 이런 이들은 개인의 생명을 존중해야 함과 함께
집합체로서의 생명을 존중해야만 하는 가치관에 더 친밀감을 느낄 것이다.
이런 사생관이나 가치관은 생명의 존엄을 세대를 초월하여 생명과 환경이
조화된 모습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나미히라는 선조숭배로 연결되는 감수
성과 ‘생명의 개별화’경향을 대비하며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내가 방문한 집의 세대주의 부친은 그 당시 60대 중반이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준비를 해서 산으로 간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벚나무의 묘목을 산에 심기 위해서
라고 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집 앞의 ‘마에야마’(집 정면에 섰을 때 보이는 산의
풍경이나 산 자체)에 보이는 벚나무가 자신의 할아버지가 심은 것이며, 앞으로 태
어날 손자나 증손자 대의 사람들이 자신이 심은 만개한 벚꽃을 즐길 수 있도록 지
금 벚나무 묘목을 심어둔다고 했다.28)
여기에서는 미래의 세대와의 연관성을 배려한 에코로지적인 가치의식
과 상통하는 사생관을 엿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십 년 간 일본
에서는 아직 이러한 사생관이나 가치관이 지극히 일반적으로 이야기되고
공유되어 왔다. 이를 종교문화의 전통으로 언급한다면 불교나 신토(神道)
와 관련지을 수 있다. 그러나 오히려 민속종교의 전통 속에 내재되었던 것
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종교의식은 에도시대에 많
은 사람들이 더 긴밀하게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개인으로서 생

 

27) 波平恵美子, ?いのちの文化人類学?(新潮社, 1996), 44~45.
28) 波平恵美子, ?いのちの文化人類学?, 21.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73

 

명의 존엄보다도 타자(他者)와 함께 있는 것과 집합적인 생명의 존엄에 보
다 민감한 감성이며 사고법이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미 에도시대에 개인으로서 인간생명의 존엄을 강조
하는 종교의식이나 종교적 주장이 널리 퍼져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마비키나 낙태를 금지하는 영주층의 관심에 동조하는 역할을 했다. 최근
에 이러한 사생관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아리모토 마사오(有元正雄)가 상당
히 흥미로운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29) 이 업적은 여성사나 역사인구학이
나 생명윤리의 연구 교류권 안에서는 아직 거의 거론되지 않았지만 이 연
구가 관련제분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특히 종교와 사생관
이나 윤리적 가치관의 관계라는 점에서 비교문화적인 고찰에 기여하는 바
가 크다고 할 것이다.30)
아리모토가 주목하는 것은 에도시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인구
의 증대, 적극적인 이주나 해외이민 및 산업발전에 공헌한 정토진종(浄土
真宗: 죠도신슈)의 역할이다. 막스 베버가 서양의 근대화에 공헌한 금욕적인
프로테스탄트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을 일본의 정신사에서 찾으려는
시도는 적지 않게 발견된다. 특히 근대 상공인등 정토진종 신자의 금욕적인
직업윤리에 초점을 맞춘 연구업적으로서는 나이토 칸지(内藤莞爾)의 ?종교
와 경제윤리: 정토진종과 근대 상공인(宗教と経済倫理-浄土真宗と近江商人)?
(초판 1941년)이 선구적이다. 또한 메이지 유신 후 홋카이도로 이주한 사람
이나 해외이민자 중에 정토진종신도가 많았다는 것도 잘 알려져 있다. 아
리모토는 에도시대의 정토진종이 엄격하게 살생을 금하고 신도에게 마비
키나 낙태를 금하도록 하는 사실을 들어 인구증가에의 기여라는 관점에서
종교적 에토스와 근대화의 관계라는 문제영역에 새로운 시점을 투여하게

 

29) 有元正雄, ?真宗の宗教社会史?(吉川弘文館, 1995).
30) 有元正雄는 ?真宗の宗教社会史?의 속편인 ?近世日本の宗教社会史?도 저술했다. 이 양자
에 대한 비판적 검토로서 야스마루 요시오(安丸良夫)의 「砺波人の心性」이 있다. 이들의 업
적에 대한 모든 논점의 자세한 검토는 다음 기회로 양보한다.
74 코기토 60 (2006)

 

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에 홋카이도로 이주했던 사람들은 도호쿠(東北)지방이
외에 호쿠리쿠(北陸)의 니가타(新潟), 도야마(富山), 이시카와(石川), 후쿠이(福
井)현(県) 출신자가 꽤 많다. 또한 하와이나 신대륙으로의 이민은 히로시마
(広島), 야마구치(山口), 후쿠오카(福岡), 구마모토(熊本)현 출신자들이 대부분
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정토진종을 열심히 믿었던 신도들이 많았
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그리고 이들 지방은 에도시대에 근로의욕
이 높을 뿐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외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
서도 두드러졌다. 도야마의 약장사나 아키모노(安芸者)라고 불리었던 히로
시마의 직인(職人)들이나 행상인들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정주(定住)농민을
기초로 하는 봉건사회에 있어서 이동노동자가 많다는 것은 다른 지역과
비교해서 인구가 조밀하다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동성과 노동의욕이 높
은 사람들은 경쟁에 잘 적응하며 개인으로서 자율자존의식이 강하다. 이
지역사람들은 근면한 노동 검약정신으로 좁은 땅에서 많은 사람들이 살
수 있도록 하는 라이프스타일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실은 지역주민들이 순수한 종교적 정신을 바탕으로 자주
적으로 자본주의에 적합한 생산성이 높은 생활을 발전시켜 온 것을 의미
하지만은 않는다. 정토진종의 주요세력인 동서의 혼간지(本願寺)교단은 높
은 생산성을 가진 신도들을 많이 포섭하여 세력을 확충하려고 했다. 에도
시대 후기에 혼간지 교단은 살생금기를 강조하고 교주를 ‘여래(如来)의 관
리’라고 부르며 그 세력을 떨쳐, 마비키나 낙태를 하는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이는 살생을 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입장에 있는 사
람이야말로 아미타불의 구원의 대상이라고 하여 ‘악인정기(悪人正機)’를 주
장한 종조(宗祖: 한 종파를 새로 지은 사람-역자 주)신란(親鸞)의 정신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혼간지 교단은 인구증가에 기여하는 가르침을 열심히 펼쳤
는데 이는 교단의 이익이 됨과 동시에 막부(幕府)나 번(藩)의 영주(領主)권력
의 이익이 되는 것이었다.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75

 

근세사회사 또는 근세종교사 연구에 있어서 정토진종신도들이 살생금기를 과제
로서 구체적으로 검토했던 업적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그것은 주로 종조 신
란(親鸞)의 교의, 특히 ‘사냥꾼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든가 정토진종의 원칙이라
고 할 수 있는 ‘육식처대(肉食妻帯)’ 등을 관념적 형식적으로 이해하여 이념, 원칙
과 역사적 현실이 괴리되고 있으며 때로는 역전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러나 역사에서 이념과 현실이 괴리된
다는 것을 인정하고 정토진종을 독실하게 믿었던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자세
하게 관찰한다면 양자 사이에 여러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대표적
인 예로서 정토진종 사원율이 지극히 낮은 북관동제국(北関東諸国)이나 미마사카
쿠니(美作国: 지금의 오카야마지역의 북동부)가 인구감소로 고민하고 낙태, 마비키
금지령이 자주 내려지는 데 반해 정토진종 독신지대인 호쿠리쿠 제국이나 아키노
쿠니(安芸国: 지금의 히로시마지역의 서부)에서는 인구증가가 관찰되며 낙태, 마비
키 금지령은 내려지지 않았다. 이러한 경우에 북관동제국과 호코리쿠 제국, 미마사
카쿠니와 아키노쿠니 산간부 사이의 농민생활상황의 결정적 차이는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낙태와 마비키를 할 것인지, 자신의
생존을 걸고 낙태․마비키를 피할 것인지 양자를 나누는 포인트는 신앙과 에토스
의 질적 차이에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극히 역설적인데, 전자는 ‘농
촌 황폐’를 초래하여 스스로의 생존기반을 협소하게 했으며, 후자는 가업과 국가의
발전을 가져와 생존기반을 확대하는 결과를 불러일으켰다. / 홋카이도 개척 때에 메
이지 30년대까지 호쿠리쿠 4현민이 도호쿠 6현민을 능가하는 중심세력이 되고, 하
와이 官約移民(일본과 하와이 왕국이 조약을 맺어 일본노동자를 3년 계약으로 사
탕농장에 보낸 이민-역자 주)간에서도 히로시마․야마구치․구마모토․후쿠오카
4현의 사람들의 주 무대가 되다시피 하는 현상이 나타난데 이어서 이들이 북미 각
지로 진출하게 되었다. / 이는 정토진종을 독실하게 믿는 지역출신의 우수한 행상인
이나 돈을 벌기 위해 외지로 나가는 사람, 이주자 이민자가 잠재적 과잉인구로 인
한 단순한 인구압력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정토진종을 열심히 믿는 지역에서 살생
기피의 에토스의 결과로 나타난 인구증가현상이 정직 근면 검약 인내 등의 덕목을
76 코기토 60 (2006)

 

내용으로 하는 다른 에토스와 결합하여 사회경제적인 에너지로 분출하여 ‘외지로
돈을 벌기 위해 나가는 형태’의 경제활동에 있어서의 질량적 상승작용이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31)
아리모토의 연구는 생명시작을 둘러싼 윤리관, 즉 성과 생식을 둘러싼
종교적인 윤리관이 ①개인의 구제를 지향하는 종교 세력의 확장의욕과,
②인구증가․인구통어를 둘러싼 국가의 정치의지와, ③방대한 이민이나
식민지주의와 깊은 관계에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일본의 에도
시대에 이미 근대 구미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이 강조되었다는 것, 특히 종교 세력이 유력한 중심역할을 했다는 것
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5. 맺음말
제2차 세계대전 후의 일본에서는 많은 구미선진제국보다 앞서서 인공
임신중절이 해금되었다. 이는 태어나기 전의 생명(생명의 시작)을 둘러싼 일
본의 생명윤리의 논의가 구미와는 다른 특징을 갖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일본에서는 페미니즘을 배경으로 중절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중절
의 권리’나 ‘여성의 자기 결정’을 주장했지만 구미만큼 눈에 뛰는 성과로
나타나지 않았다. ‘개인으로서의 생명의 신성성’을 강조하며 중절반대를
주장하는 세력이나 ‘개인에 의한 선택의 자유’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큰
힘은 갖지 못하고 중절을 둘러싼 논쟁이 ‘태어나기 전의 생명(생명의 시작)
의 생명윤리’의 핵심에 자리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중절반대세력에 반대하려는 1970년대 이후의 페미니즘운동이 장

 

31) 有元正雄,, ?真宗の宗教社会史?, 243~244.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77

 

애자 운동과 연계하려고 했던 성향이 강했다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32) 이
를 위해 구미와 일본에서는 중절을 전제로 한 출생 전 진단을 적극적으로
인정할지 여부에서 큰 차이가 발생했다. 1980년대 이후, 구미에서는 태아
가 장애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경우를 인공임신중절이 정당화되는 중요한
근거로 삼아 출생 전 진단이 적극적으로 인정되어 왔다. 한편 일본에서는
태어날 장애자의 권리나 장애를 받아들이려고 하는 부모의 의지를 존중하
여 적어도 2000년대(2001~2010) 전반에 이르기까지 출생 전 진단이 그다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33)
이 차이는 개인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이나 자기결정이라는 개인주의적
인 가치의식을 기반으로 하는 구미와, 세대간의 결합․계승․가족의 연
대를 중요시하는 일본의 종교문화와의 차이에 의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
을지도 모른다.34) 뇌사 장기이식의 문제와 관련시킨다면 타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일본의 사생관이나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지 않는 애니미즘적인
종교의식35)이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에도시대 후기의 정토진종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개
인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을 존중하는 입장에서 태어나기 전의 생명(생명의
시작)의 생명윤리가 주장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독일처럼 개인주의적인
사생관이나 가치관이 강한 나라에서 출생 전 진단에 대해서 신중한 자세
를 취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은가 하는 문제도 있다. 이러한 논문의
시점에서 바라본다면 근대적인 자율자존의 정신과 민족주의적 인구증가

 

32) 立岩真也, ?弱くある自由へ-自己決定․介護․生死の技術?(青土社, 2000), 119~174; 森
岡正博, ?生命学に何ができるか-脳死․フェミニズム․優生思想?(勁草書房, 2001), 31~
192, 285~398.
33) Susumu Shimazono, “Reasons Why the Selection of Life is Not Good to Do: From Japan’s
Experiences of Prenatal Genetic Diagnosis”, forthcoming.
34) 島薗進, 「先端医療技術の倫理と宗教-いのちの始まりとスピリチュアリティ」, 湯浅泰雄
編, ?スピリチュアリティの現在-宗教․倫理․心理の現在?(人文書院, 2003), 97~122; 島
薗進, 「個としてのいのち․交わりとしてのいのち」, ?死生学研究?, 2003年 秋号(2003), 183
~191.
35) 小松美彦, ?死は共鳴する-脳死․臓器移植の深みへ?(勁草書房, 1996).
78 코기토 60 (2006)

 

로 인한 확장주의를 지향하여 식민지주의의 전철을 밟아온 일본과 독일
이, 그 프로젝트에 실패한 역사적 경험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는 것에 대해
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①자율자존의 정신이나 이성존중의
사고와, ②정신과 신체와 자연을 분리해서 정신의 힘으로 신체와 자연을
지배하려는 태도와, ③이성과 문명의 발달이 늦어진 지역을 지배하여 세
력을 확장하려는 성향은 서로 연관성이 있다. 구미 선진국은 이러한 자세
가 옳다는 강한 신념을 지금도 갖고 있는 데 반해 제국주의 경쟁에서 진
패전국이며, 경쟁에 협력한 의학자․생명과학의 참담했던 역할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는 일본이나 독일이 함께 그와는 다른 방향성을 선택하는 데
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기술한 내용의 요지는 인간존엄의 개인주의적인 생각의 가치
를 완전히 부정하고, 집단이나 타자나 자연과의 ‘관계’를 존중하는 가치관
과 대치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개인으로서
의 인간의 가치를 존중하고, 초기 단계의 인간생명의 존엄을 인정하려고
하는 생각은 일본에서도 확실하게 큰 세력으로 성장했다. 그 생각 자체는
크게 환영해야 하며, 기본적인 인권을 존중하는 가치관이 우리들의 가치
관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게 된 것과 서로 평행한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중요성에 대해서 우리들이 획득하고 지니게 된 이러한 가치
관을 포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근대적인 개인주의가 근대국가의 식민지주의와 확장
주의적인 종교교단의 이익과 결탁되는 경향이나 마음과 신체, 정신과 자
연을 따로 떼어서 고립시키는 경향과 친화성을 가진 점도 부정하기 어렵
다. 원리주의가 되어 버린 개인주의가 갖는 한계를 자각하고 ‘관계’나 ‘차
이’를 자각하고 수정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현대의 사생관이나 가치관에
대해서 고찰할 때 피하기 어려운 과제일 것이다.36) 태어나기 전의 생명(생

 


36) ロバート․ベラ-他, 島薗進․中村圭志 訳, ?心の習慣-アメリカの個人主義とコミット
メント? (1991); 宮島喬․島薗進 編, ?現代日本人の生き方-つまがりと自律? (藤原書店,
생명 문화와 인구 통어의 경험 79

 


명의 시작)을 둘러싼 생명윤리의 문제를 논할 때에도 이 문제는 절실한 것
이다. 종교문화나 역사적 경험의 비교고찰은 이러한 과제에 많은 시사점
을 던져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고찰은 철학, 종교학, 역사학, 문학 연구, 사회학, 민속학, 문화
인류학 등의 인문학 또는 인문사회계와의 학제적인 교류를 통해서만 가능
하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전개와 글로벌한 문화교류의 확산으로 ‘생명’과
‘사생’을 둘러싼 여러 가지 문제는 인문사회계의 많은 학문분야에 대해서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생명과학이 경제적인 동기와 결탁되어 거
대한 힘으로 ‘생명의 문화’와 ‘사생의 문화’를 개변할 가능성도 있다. 그
현상을 정확하게 이해하면서 동서고금의 ‘생명의 문화’와 ‘사생의 문화’를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서 생명의 개변을 억제하거나 적절한 방향설정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실천적․응용적․임상적인 역할은 현대 인문정신에
있어서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실천적 과제에 답을 제시하려는 비
판적이며 학제적인 시도에는 인문정신의 전통을 활성화하고 쇄신할 수 있
는 가능성이 충분히 내재되어 있다. ‘생명의 문화’와 ‘사생의 문화’에 대
한 비판적인 반문이, 오늘날의 인문정신에 새로운 활력과 창조성을 불어
넣는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낙관주의라고만 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된다.
2003).

 

Abstract
80 코기토 60 (2006)
The Culture of Life and the Experience of Regulating Population
Shimazono, Susumu (University of Tokyo)
s-siso@mbd.ocn.ne.jp
In this presentation, I have explored issues of bioethics, especially the value of life of unborn
child, and modern human science’s orientation toward these issues and its future orientation,
taking the case of Japan. A way of thinking has become more powerful in Japan that respects
the value of human as singular individual and the dignity of the pre-born at their early stages
of life. It is of course hardly deniable that modernist individualism tends to be in relation
to interests of modern states’ colonialism and of a certain religious group’s expansionism and
has an affinity with the tendency that separates and thus alienates body, spirit, and nature.
When we consider contemporary values and viewpoints of life and death, we need to take
on an unavoidable task, acknowledging the limitation of fundamentalist individualism and
correcting it by raising the awareness of “connection” and difference. It can have a great
deal of implications to this task to compare religious-cultural and historical experiences. Problems
surrounding “life” and “death” are throwing difficult tasks tovarious fields of human and social
studies, now that new technologies develop and global cultural exchanges increase. It is possible
that bioethics, in connection with economic motivation, changes “the culture of life and death”
powerfully. Precisely understanding this situation, we need to control the change of life or
examine its proper direction, reflecting on historical experiences in “the culture of life and
death” in all ages and countries. Critical interdisciplinary attempts to respond to new practical
tasks certainly imply the possibility to enact and renew the tradition of human science.
Contemporary human science will achieve activeness and creativity by a critical point of view
on “the culture of life and death” and interdisciplinary exchanges in diverse academic fields.
Key words: human science’s orientation(인문정신), life and death(死生), bioethics(생명윤리),
value of life(생명의 가치), religious-cultural experiences(종교문화 경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