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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야기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김학철과 윤일산의 전쟁제재 장편소설을 중심으로-(서령/인하대)

1. 머리말
2. ‘조선족’과 조선족문학의 이중성
3.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의 편입
4. 유사건국서사 다시 쓰기
5. 맺음말


[국문초록]
조선족 문학은 일제시기 만주지역의 조선인 문학, 나아가 조선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금은 엄연한 중국 문학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공민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중국
문학으로 편재되면서 한민족으로서의 민족적 현실과 조선인의 삶을 내용으로 한 문학적 정체
성 또한 당연한 변화의 과정을 거쳤음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조선적인 것과 중국
적인 것, 이중적 성격은 복잡한 길항의 양상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론
중국 공민, 중국문학으로서의 자기 위상을 분명히 하는 쪽으로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런 ‘자기 위상 만들기’ 작업의 일환으로 그들은 현재 조선족의 삶이 존재하게 된 민족해방
투쟁의 역사를 소설화한다. 이는 그들 자신의 체험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망각함으로써 자
신의 역사를 만들어 민족 정체성을 획득하는 한 방법이었다. 1950년대의 ?해란강아 말하라?
와 1980년대의 ?포효하는 목단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해란강아 말하라?가 중국 국민으
로서의 자기 위상과 자기 역할에 충실한 서사적 내용을 통해 민족적 특성을 무화시키는 중국
화의 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고, ?포효하는 목단강?에 이르러 계급, 사상 중심의 서사적
구성을 통해 오직 사회주의적 혁명에 복무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위상 즉 한족과 조선족
의 화해를 통해 중국 공민으로서의 자기 위상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함으로써 ‘중국화’를 재차

복창한다. 한마디로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편입되는 50년대에 체험된 과거의 기억을 되
살려 중국 국민으로서의 확실한 ‘자격증’을 획득하였다면 80년대에 민족해방서사를 재구성하
여 ‘중국 공산당의 영도 아래’를 ‘다시 쓰기’한 것이다.


1. 머리말
1950년대부터 조선족 문학에서 반제, 반국민당 운동의 과정을 소설화한
전쟁제재 장편소설들이 대거 등장한다. 김학철의 ?해란강아 말하라?(1954)
를 선두로 항일투쟁을 제재로 한 ?어둠을 뚫고?(윤일산, 1981), ?사품치는
격류?(김영남, 리상준, 1985), ?짓밟힌 넋?(림원춘, 1988), 해방전쟁시기의
혁명투쟁사를 제재로 한 ?범바위?(리근전, 1962), ?번개치는 아침?(김송죽,
1983), ?도강전야?(최택청, 1981), ?포효하는 목단강?(윤일산, 1986), 조선의
용군의 성장사를 보여주는 ?격정시대?(1982~1984)와 같은 전쟁 제재 소설
들은 민족해방운동 과정을 체험하고 그 체험에 기초한 기억의 소산이다. 시
기적으로 볼 때 50년대, 60년대에 각각 한 편의 소설이 발표되고 그 외는
모두 80년대에 발표되었다.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편입된 1950년은 물론, 1980년에도 여전히 항
일, 反국민당 투쟁사를 문학적 소재로 삼은 작품이 적지 않은 점은 주목을
요한다. ?해란강아 말하라?는 김학철(金學鐵, 1916~2001)1) 최초의 장편소


1) 김학철에 관한 연구는 다른 조선족 작가들에 비해 방대한 수준의 축적을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
다. 그에 관한 연구는 일반논문이 약 20편, 석사논문이 약 6편, 박사논문이 약 3편에 이르고 있다.
(논의의 대부분은 ?격정시대?, ?20세기의 신화?에만 한정되어 있다.) 여기에 본격적인 평전, 산문
집이 간행되었고 여러 편의 전집, 연구서들이 나왔다. 한국에서 발표된 김학철 관련 저서들만 아래
와 같다.
김학철, ?해란강아 말하라?(상․하), 풀빛, 1988.
김학철, ?최후의 분대장?, 문학과지성사, 1995.
김학철, ?20세기의 신화?, 창작과비평사, 1996.
김학철, ?우렁이 속같은 세상?, 창작과비평사, 2001.
김학철, ?격정시대?(1․2․3), 실천문학사, 2006.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79


설, 중국 조선족 문학사에서 최초로 되는 장편소설로 “항일무장투쟁을 서사
적 화폭 속에 담은 중국조선족문학발전중 하나의 뚜렷한 리정표로 되는”2)작
품임에도 불구하고, 김학철 자신의 “그것은 소설이 아닙니다”3)라고까지 한
혹평 때문에 많은 연구자들의 외면을 당한다. 그리하여 창작방법4), 비교양
상5), 서사구조6) 측면에서 한정되어 거론된다. 하지만 중국 사회에 편입되기
위한 첫 집단창작임에 초점을 두면 다른 측면의 고찰이 가능하다. 초기의 작
품 속에서 한족에 대한 묘사 및 조선족과 한족의 관계 설정을 통해 당시 중국
사회의 민족관계의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윤일산(尹日山, 1943~ )7)
의 ?포효하는 목단강?은 해방전쟁시기 국공내전을 그리고 있는데 목단강 지
역은 국민당의 영향권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인에 대한 국민당과 토비의 박해
가 매우 심했다. 하여 1980년대 다른 전쟁제재 소설에 비해 조선족과 한족간
의 모순을 가장 첨예하게 담을 수 있었다. 바꿔 말하면 조선족과 한족의 긴장


2) 오상순, ?중국조선족문학사?, 민족출판사, 2007, 234쪽.
3) 「중국조선인의 ‘양심’-연변 작가 김학철씨와 최일남씨의 특별대담」, ?샘이 깊은 물?, 1989, 72쪽.
4) 이해영은 이 작품을 정형화와 이에 벗어나려는 내적인 힘의 역동적 이원구조로 파악한다. 그의 견해
에 따르면 소설은 “정형화된 외적 틀과 그 정형화에서 탈출하려는 움직임이 부딪치는 역동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정치적 감각과 특유의 작가적 진실이라는 내적 긴장이 소설의 서사구조를
이원적이게 하는 내적인 힘”이다. 이해영, 「<해란강아 말하라>의 창작방법 연구」, ?한중인문학연구?
11, 2003.
5) 이해영은 김학철의 「해란강아 말하라」와 리근전의 「범바위」는 모두 사회주의 사실주의 문학의 범
주에 속하나 그 역사적 단계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 방식(김학철-정치적 현실주의, 리근전-역사
적 현실주의)과 체험 여부(김학철-자기 체험 벗어난 관념적 범위를 소재, 리근전-자기의 실제
경험 형상화), 소설의 언어(김학철-서울말과 표준어, 리근전-중국어) 등 면에서 큰 차이를 보이
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해영, 「19950~1960년대 중국 조선족 장편소설의 두 양상」, ?한중인문학연
구?, 2004.
6) 김명인은 이 소설을 김학철의 작품세계의 주류에서 벗어난 작품으로 본다. “이 작품은 어딘가 김학
철의 것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구석이 많다. 마치 이야기꾼이 사랑방에 앉아서 끝없는 이야기 보따
리를 풀어나가듯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무수한 에피소드들을 자유자래로 넘나드는 동안 어느새
기본 줄기가 잡혀나가는 김학철 소설 특유의 개방형 서사구조는 찾아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상당히
엄격하게 통제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김명인, 「어느 혁명적 낙관주의자의 초상」,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 창비, 2004, 37쪽.
7) 지금까지 작가 윤일산 내지 작품에 관한 연구는 전무하다. ?포효하는 목단강?에 실린 이력이 전부
이다. 1943년 길림성 용정현에서 출생, 1960년 길림성 연길시 2중 중퇴, 1969년부터 지금까지 흑
룡강성 영안현에서 교편을 잡고 있음. 중국 작가협회 연변분회 회원, 1983년 연변대학 통신학부
조문한부 졸업. 주요작품으로는 단편소설 「결혼청첩」, 장편소설 ?어둠을 뚫고? 외 다수. 윤일산, ?포효하는 목단강? 상․하, 동광, 1989.
180 한국학연구 제33집


을 면면이 읽을 수 있는 지점이 있어 80년대 소설의 보기로 ?포효하는 목단
강?을 택한다.
항일, 반국민당 투쟁의 재구성은 민족의 동질성과 공동체적 운명을 자각하
는 유력한 서사적 수단이다. 항일투쟁, 해방전쟁 역사의 환기가 80년대에도
지속된 것은 타국 땅에서 제한된 자치를 실행하면서 살고 있는 조선족의 공
통적인 체험과 인식을 일깨우기 위한 필요성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그 필요
성을 읽기 위하여 본고는 김학철의 ?해란강아 말하라?8), 윤일산의 ?포효하
는 목단강?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시기에 민족해방 역사를 호명한 원인을
규명해 가면서 80년대의 역사의 ‘다시 쓰기’가 ‘공산당 영도아래’라는 신화의
복귀인지 아니면 그 신화를 넘어서는 대응 방식인지를 검토할 것이다.


2. ‘조선족’과 조선족문학의 이중성
조선족, 조선문학에 대한 논의에 앞서 우선 중국의 ‘민족’개념 수용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民族’이라는 단어는 1895년 전후 일본어의 새로운 단어인
‘minzoku’의 중국어 대응으로서 창조되었고 빠르게 효력 있는 단어가 되었
다. 그것은 통상 소수민족이 아니라 주요민족(즉 한족)을 가리키는 것이었
다.9) 1837년 9월에 간행된 ?東西洋考每月統記傳?에 ‘以色列民族’이란 용어
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중국에서 ‘民族’의 최초의 용례이다. 그 뒤 1895
년 이후 ‘國民’, ‘民族’ 등의 용어가 중국어사전에 게재되기 시작하며, 1902~
1903년 무렵 ‘中華’와 ‘民族’이 결합하여 ‘中華民族’이란 용어도 함께 사용되
기에 이른다. 1913년 스탈린의 민족 개념(‘역사상 인간들이 형성한 공동언
어, 공동지역, 공동경제생활 및 공동문화상에 나타나는 공동심리요소를 지닌
안정된 공체’) 이후 1920년대에 이르러 ‘少數民族’ 개념이 도입되었다.10)


8) ?해란강아 말하라?는 연변교육출판사에서 1954년 처음 출간된 후, 1988년 한국의 풀빛사에 의해
재출간되었다. 본고에서는 풀빛사 판본을 기본자료로 한다.
9) 張英進, 胡靜譯, ?影像中國-當代中國電影的批評重構及跨國想像?, 上海: 上海三聯書店, 2008, 181쪽.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81


중국은 단순히 국적이나 국가적 경계만을 지칭하지 않고 민족의 개념까지
도 포괄하는 중화민족(Chinese nation)이란 개념을 국민통합의 기반으로 삼
고 있다. 따라서 중화민족은 중국을 구성하고 있는 여러 민족을 대표하는 총
칭으로 일반적인 민족의 개념을 넘어서는 상위개념으로 인식된다. 그에 따라
소수민족은 한족(漢族)을 비롯한 56개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화민족의 일원
으로 규정된다. 다시 말해 소수민족의 정체성은 한족 정체성과는 대립하지만
중화민족 정체성에는 포함되는 것이다. 즉 소수민족 자신의 정체성과 중화민
족 정체성이라는 이중의 정체성을 가진다.11) 하여 조선족들은 조선족이라는
민족 관념과 중국 국민이라는 국민 관념을 동시에 형성시켜 나가게 된다. 그
러나 중화민족 정체성은 한족 정체성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기 때문에 중화민
족 정체성 내에서 조선족을 포함한 소수민족은 주변에 위치할 수밖에 없다.
94%에 달하는 한족과 그것이 중심이 되어 구성된 중화민족 그리고 그 정치
형태인 중국이라는 국가는 소수민족을 명명하고 소환해서 구성하는 대타자
(Other)인 셈이다.
민족의 다원성을 인정하고 배려하는 소수 민족 정책도 중화민족주의라는
상위 개념의 민족주의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제한적으로 이루어진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인식되는 정치적인 민족주의와 혈연적인 차원의 문화적
민족주의가 철저하게 구분되고 있으며 위계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이
다.12) 근대 국민국가의 민족주의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면,
중국식의 민족주의는 문화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민족주의의 위계를 통해 민
족을 정치의 종속 개념으로 간주하고 이를 통해 소수민족의 민족주의를 관
리한다.
따라서 조선족 문학은 일제시기 만주지역의 조선인 문학, 나아가 한국(조
선)문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금은 엄연한 중국 문학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 공민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중국 문학으로 편재되면서 한민족


10) 최형식, 「중국의 현대화와 민족주의」, ?시대와 철학?,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007, 111~112쪽 참조.
11) 김형규, 「중국 조선족 소설과 소수민족주의의 확립」, ?현대소설연구?, 2009.
12) 박상수, 「20世紀 轉換期 中國 네이션(nation)槪念의 形成」, ?中國學論叢? 19, 2005.
182 한국학연구 제33집


으로서의 민족적 현실과 조선인의 삶을 내용으로 한 문학적 정체성 또한 당
연한 변화의 과정을 거쳤음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조선적인 것
과 중국적인 것, 이중적 성격은 복잡한 길항의 양상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겠
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론 중국 공민, 중국문학으로서의 자기 위상을 분명히
하는 쪽으로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내용적으로나 내면적으로는 아
직도 복잡한, 그래서 한민족 문학으로서 유효한 길항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
다고 할 수 있지만 이제 더 이상 ‘조선인’이나 ‘조선민족’이 아닌 ‘조선족’으
로 규정되는 것처럼 조선족의 문학은 중국 소수민족문학의 테두리 안에 존재
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공식적으로 조선족 문학은 중국 문학의 일부로
승인 받으며 중국 작가협회의 하부 조직을 구성13)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 공민으로서의 지위는 혈연적 기원에 바탕을 둔 정서적․감정적 차원
에서의 이해와는 다른 지점에 놓여 있다는 점에서 조선족 문학의 이중성은
어디까지나 중국이라는 국가적 귀속성을 전제로 한 규정임을 분명히 해야 한
다. 결국 조선족의 민족적 특성은 중국소수민족으로서의 민족적 특성인 소수
민족주의이고, 조선족 문학의 전개 과정은 중국의 소수민족문학으로서의 자
기 위상을 분명하게 만들어 온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자기 위상 만들기’ 작업의 일환으로 그들은 현재 조선족의 삶이 존
재하게 된 민족해방 투쟁의 역사를 소설화한다. 이는 그들 자신의 체험을 선
택적으로 기억하고 망각함으로써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 민족 정체성을 획득
하는 한 방법이었다.


3.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의 편입
?해란강아 말하라?는 중국이 막 반식민지 상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와중인 1954년, 중국혁명의 한 떳떳한 주체임을 자부하는 간
13) 이해영, ?중국 조선족 사회사와 장편소설?, 역락, 2006, 19쪽.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83
도지방 우리 민족의 자랑스런 반제․반봉건투쟁의 역사를 증언하는, 보다 공
적인 작업14)이다. “중국혁명의 떳떳한 주체임을” 강조하는 것은 조선족이야
말로 항일투쟁, 중화인민공화국 건립에 혁혁한 공을 세운 민족으로, 중국이
라는 이 땅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데에 정담함을 부여하려는데 있다. 다
시 말해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즉 중국 역사 속으로 편입되는 정당성의
획득인데, 이는 역설적으로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변방인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한다. 이러한 불안은 조선족은 만족과 같이 중국 경내에서 형성되어 중
국에서 살고 있는 민족이 아니라 자기 민족의 나라, 민족의 주체가 모두 국
경밖에 엄연히 존재하는 이주민족이고 청조, 중화민국으로부터 ‘치발역복’,
‘귀화입국’의 강요 또는 권유를 받기도 했고 일본으로부터 일제의 대륙정책
에 ‘이용’당하기도 했던 데서 연유한다.15) 더욱이 ‘8.15’ 광복 직후 별다른
고민 없이 귀향을 서두른 사람들과 달리 공산당의 정책에 의해 토지를 분배
받고 중국국적을 취득하여 중국에 남은 그들에게 1950년대 초반은 중국 역
사 속에서의 ‘자기 확인’, 위치 정립이 급선무였다.
30여년간의 창작을 회고하여보면 력사소재를 다룬 작품이 대부분이지요. 이런
력사소재에 치중한 원인은 청년들더러 오늘의 행복이 어떻게 왔는가를 알고 이
행복을 더 진귀하게 여기게끔 하려는 의도에서였고 더욱이는 우리 민족의 과거
력사를 진정으로 앎으로서써 오늘 우리 민족이 반드시 서야 할 위치를 자각하게
하려는데 있었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조선족은 조선에서 살수 없어 쪽박을 차고
중국에 밥을 빌어 먹으러 건너왔다고 하는데 이는 편면적인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자고로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우선 대자연과 싸웠고 봉건계급과 관료아치들과 투쟁
하여왔으며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여러 민족 인민들과 어깨 겯고 싸워 중국의 근대
사를 여러 민족 인민들과 함께 썼던 것입니다. …(중략)…
우리 민족은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울 수 있는 기초를 여러 민족들과 함께 닦아놓
14) 김명인,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해란강아 말하라?(상), 풀빛, 1988.
15) 이해영, ?청년 김학철과 그의 시대?, 역락, 2006, 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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았고 동북에 벼농사기술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이러한 력사를 통하
여 민족의 넋을 지키고 노래하려 하였던 것입니다.16)
위에서 인용한 이근전(李根全)의 글이 천명하듯이, 조선족 1세대 작가들이
조선족 역사를 재현하는 작업도 “민족의 과거 력사를 진정으로 앎으로써 오
늘 우리 민족이 반드시 서야 할 위치를 자각”하려는데 있다. 이러한 역사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한 민족적 ‘자기 확인’의 작업이 ?해란강아 말하라?이
다. 선전부에서 임무를 맡겨 쓴17)것이란 김학철의 고백도 이러한 정치적 의
무감에서 출발한다.
이 작품은 대체로 무리없이 하나의 서사적 완결성을 지닌 채 연변조선족의 반제
반봉건투쟁의 전통을 형상화하고 있다.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형상도 각각의 계
급적 전형성을 비교적 선명하게 구현하고 있다. 말 그대로 교과서적이고 규범적인
작품이다.18)
그리하여 중국의 역사 속으로 편입되면서 겪는 갈등과 자의식이 생략된
채, “교과서적이고 규범적”인 계급적 갈등과 그 각성이 주선이 된다. 이런
갈등은 직접적인 인물유형의 대립과 함께 공간의 대립을 부각시키면서 전개
된다. 작품의 대립공간은 연변 연길현 해란구 버드나무골을 중심으로 해란강
양안의 조선인 마을들과 국자가, 마반산, 화련 등 네 개 공간에서 전개된다.
이들 공간은 각각 위치하고 있는 정부 기관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지며 독립양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당시 간도 사회의 대표적인 모순인 지주
와 소작농의 대결을 보여준다. 이러한 대립 공간은 각자의 인물을 내세워 구
체적인 대립양상을 보이는데, 정의로운 적색세력은 한영수, 임장검을, 일제
16) 이근전, 「력사를 통한 민족의 넋을」, ?문학과 예술? 3호, 1985.
17) 연변문학예술연구소 편, 「김학철선생님과의 문학대화」, ?김학철론?,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 1990,
318쪽.
18) 김명인, 「어느 혁명적 낙관주의자의 초상」, ?자명한 것들과의 결별?, 창비, 2004, 37쪽.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85
의 악의 세력은 박승화와 최원갑 등 인물을 통하여 대립한다. 하지만 작품은
인물들을 “이원대립의 구조로, 긍정인물은 보다 이상적이고 완전무결한 인간
으로, 부정인물은 모든 악을 한 몸에 지닌 극악무도한 인간으로 그려져 성격
이 단순화된”19) 한계를 노정한다. 계급의식의 각성을 그림에 있어서도, 민족
적 성격과 특징에 대한 탐구는 생략 된 채 공산당의 영도에 거부감 없이 편
입되는 점은 다소 설득력이 부족하다. 농민협회 버드나무골 지부책으로 활동
하고 있는 한영수가 계급의식에 눈을 뜨는 과정만보더라도 그렇다.
영수 오랍누이는 나중 돌아가신 어머니를 여읜 지도 벌써 4, 5년이지만, 어려서
부터 받아온 그들 부모네의 영향으로 줄곧 해마다, “명년엔 나간다! 명년엔 나간
다!”를 외느라고 언제나 궁둥이가 반쯤 떠 있어서, 빤빤한 터전에 나무 한그루 심으
려 하지 않다가 작년에야 비로소 울타리 밑에 백양나무 다서섯 주와 배나무 다섯
주를 떠다 심고, 거기에 자기들도 뿌럭지를 박고 안착할 결심을 내리었다.
하나 그것은 결코 살림이 전보다 나아져서 그런 것이 아니라(아니, 그것은 도리
어 해마다 점점 더 못하여 갔다), 영수의 자라나는 지혜가 정치적 안계를 넓히면서
자기네 부모의 어리석음을 비판할 수 있는 정도에까지 도달한 때문이었다.
그가 묘목을 떠오기 전 여섯 달에, 지하로 자기의 거대한 세포조직을 늘궈 나가
던 중국 공산당의 뜨거운 손길이, 이 동네에서 처음으로 그에게 ― 빈한한 젊은
농민인 그에게 ― 뻗어 와 닿은 것이다.20)
부모님의 영향으로 한영수가 “줄곧 해마다” 귀향과 안주 사이에서 갈등을
거듭하다 “정치적인 안계를 넓히면서” 곧바로 중국 공산당의 영도를 받는 다
는 설정은 다소 도식적이다. 이런 ‘부자연스러움’은 김학철 특유의 유머와 해
학이 극도로 절제된 것에서도 체현되는데 이는 기존의 소설과 분별되는 지점
19) 이광일, ?해방후 조선족 소설문학의 역사적 발전?, 경인문화사, 2003, 103쪽; 오상순, ?중국조선족
문학사?, 민족출판사, 2007, 233쪽 재인용.
20) 김학철, ?해란강아 말하라?(상), 풀빛, 1988, 22쪽. 이하 작품 인용은 따로 주를 달지 않고 이 책의
쪽수만 표시함.
186 한국학연구 제33집
이다. 이에 김명인은21) “마치 이야기꾼이 사랑방에 앉아서 끝없는 이야기보
따리를 풀어나가듯 해학과 위트가 넘치는 무수한 에피소드들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동안 어느새 기본 줄기가 잡혀나가는 김학철 특유의 개방형 서사구
조는 찾아지지 않고 전체적으로 상당히 엄격하게 통제된 서사구조를 지니고
있다”면서 ?해란강아 말하라?는 “김학철을 가둔 김학철 소설”이라고 평가한
다. “김학철 특유의 서사적 운신폭을 좁힌 결정적 원인”을 김학철 자신의 경
험이 투사될 여지가 없었던 것과 거의 집단창작에 가깝다는데서 찾고 있다.
이런 집단창작의 소산이 ?해란강아 말하라?이면 작가의 조선족과 한족의 관
계 설정을 통해 50년대 중국 사회의 민족관계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을 것
이다.
?해란강아 말하라?는 한족과 조선족간의 모순이 생략된 채 소설의 중심인
물을 조선족으로 설정하고 있다. 작품이 조선족 인민들의 항일투쟁사를 반영
하고 있기에 대부분의 인물들이 조선족이다. 한족의 형상도 작품 곳곳에 반
영되고 있으며 이들이 일으키는 작용 또한 적지 않다. 전반 작품에서 주요인
물 중 중국인은 두 명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왕남산이고 하나는 장극민이다.
왕남산은 농협 조직 간사로 농협 지부 책임자 한영수와 함께 소작쟁의를 일
으키는 보조적 인물로 그려지고, 장극민은 중국 동만 특별위원회 위원으로
많이 등장하지 않지만 중심인물로 그려진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30년대는 간도의 조선공산당이 전원 중국 공산당에
가입하면서 만주에서의 중국공산당원의 수가 급증하던 시기였다. 동만은 간
도 조선공산당의 활동 지역이었고 당 조직과 항일유격대가운데서 주요한 간
부들은 조선족이었다. 이들 대부분의 조선족 간부들이 반민생단투쟁에서 억
울하게 누명을 쓰고 총살당하고 간부직에서 밀려난 것은 1933~1935년 사이
의 일이다.22) 하지만 작품에서 당 조직의 최고지도자를 동만특별위원회 위
원인 장극민으로 설정하였다. 작품 속 장극민은 군중의 힘을 깨달은 임장검
21) 김명인, 앞의 책, 37~38쪽 참조.
22) 이광일, 앞의 책, 102쪽.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87
을 칭찬하기도 하고, 석권한 부락에서 이미 얻은 승리에 머리가 뜨거워져 ‘부
이데기’부대를 공격하려고 하자 급격한 변화 앞에서 냉정하게 반대를 하는
영도자로 그려진다. 그의 지도하에 9.18소작쟁의가 전국적인 단위로 발발하
기에 이른다.
한 시간 후에 장극민은 읽던 책을 집어서 호주머니에 넣고, 사그라지려는 불에다
삭정이를 큰 것으로 골라서 대여섯 가치지피었다. 좌우를 둘러보고 곁에서 꼬부라
져 새우잠을 자는 장검이에게, 형이 동생에게 하는 그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자기
의 상의를 벗어서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허리를 펴고 땅 위에 번듯이 드러누웠다.
침침한 불빛에 잔 글자를 오래 들여다보던 그의 눈에는, 어두운 하늘에 폭 넓게
걸려 있는 늦은 가을의 백통 빛의 은하수가 유난히 뚜렷하였다.(183쪽)
“꼬부라져 새우잠을 자는 장검이에게 형이 동생에게 하는 그런 자연스러
운 동작으로, 자기의 상의를 벗어서 덮어”주는 그는 오랜 혁명투쟁의 경험을
가진 영도자로 그려진다. “형이 동생에게 하는” 행동과 같이, 그로 대표되는
‘한족’은 ‘조선족’에겐 ‘형’과 같은 존재인 것이다. 각성한 한족 지도자의 영
도아래 조선족들이 단합하여 혁명투쟁을 벌어야 한다는 종속적 구조를 암묵
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장극민의 지도자적 형상은 ‘공산당의 영도아래’라는
교조적인 신화적 권위를 부여하는 작업으로 보아진다.
이런 교조적 설교의 작업은 김학철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조선의용군 출
신으로 연변 조선족 해방투쟁사가 종결된 1952년이라는 시점에 연변에 정착
한 김학철에게 있어 연변은 미지의 세계였지만 그것은 또한 이상과 현실이
합치되는 행복한 공간이었다. 민족 해방을 위해 일찍 어린 나이에 혁명에 뛰
어들었던 그에게 해방의 감동과 희열의 감정은 그 누구보다 더 컸으므로 격
앙된 심정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과 더불어 마련된 인민들의 행복한 생
활, 인민들이 공산당에 대한 고마움과 기쁨을 보여주는 새 생활의 찬가 작품
을 창작하기에 전력하였다.23) 이 시기의 창작에 대하여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다.
188 한국학연구 제33집
당시 나는 김동인의 소설 「발가락이 닮았다」의 주인공처럼 농업합작사의 우점
(優點)을 찾아보려고 밤낮 없이 골몰을 했었다. 이른바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증명
해 보이려고 골몰을 한 것이다. 「발가락이 닮았다」의 주인공은 닮은 데를 찾다
못해 결국은 갓난아이의 발가락에서 닮은 데를 찾아내고 기뻐 날뛴다. 하지만 나는
어떠했는가. 나의 이 30대 장년기의 보물찾기-우점 찾기는 어떠했는가.
…(중략)…
설교를 하기에 나는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열정적으로 부지런히 원고지 줄 칸에
다 글자를 메워 나갔다. 그렇게 하는 것만이 만백성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도라고
굳게 믿으며, 불가동요적으로 철석같이 믿으며.24)
1950년대에 김학철은 “사회주의 우월성을 증명해보이려”는 “설교”의 작
업이 “만백성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도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믿
음은 곧바로 왕성한 창작으로 이어지는데 이때의 창작은 중국 조선족이 중국
역사에 원만하게 편입하기 위한 염원을 대변하였다. 그것은 또 중국 공산당
측의 요구이기도 했는데 새 중국 창건 후 통일된 다민족 국가를 건설해야
하는 역사적 과제를 안고 있는 중국공산당으로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
었다.25) 중국 소수민족정책을 민족동화와 융화의 각도에서 볼 때 1950년대
는 온건적 민족융화정책 시기로26) 소설 속의 한족과 조선족의 구도는 ‘형’과
‘동생’으로 그려진다. 많은 편폭을 할애하여 조선족의 항일투쟁에 초점을 두
지만 ‘형’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는 것은 “간도 인민의 투쟁의 역사는 즉 중
국 공산당의 투쟁의 역사”27)라는 틀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23) 이러한 작품으로는 「새집 드는 날」(1953), 「뿌리 박은 터」(1953), 「구두의 역사」(1955)를 들 수
있다.
24) 김학철, 「보물찾기」, ?나의 길?, 연변 인민출판사, 1999, 278쪽; 전화, 「김학철의 <격정시대> 연구」,
영남대학교 대학원 석사논문, 2003 재인용.
25) 이해영, 「<해란강아 말하라>의 창작방법 연구」, ?한중인문학연구? 11, 2003.
26) 박병광, 「중국 소수민족정책의 형성과 전개: 민족동화와 융화의 변주곡에 관하여」, ?국제정치논총?
제40집, 2000. 그는 중국 소수민족정책의 변화과정을 온건적 민족융화정책시기(1949~1957), 급진
적 동화정책시기(1958~1976) 그리고 민족융화로 복귀한 개혁개방 시기로 나누고, 단계별 정책 목
표로, 초기의 ‘영토적 통합’, 2단계의 ‘정치적․사상적 통합’, 개혁개방 시기의 ‘경제적 통합’으로
분석했다.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89
4. 유사건국서사 다시 쓰기
?포효하는 목단강?은 친일 매국노 마희산(馬喜山) 주변에 지주가 몰려들
어 장개석의 국민당군으로 편성된 반동적 세력과 이에 대항하는 강찬혁의 공
산당 세력으로 갈라놓고 민중의 지지를 받은 민주대동맹군이 결국 승리를 하
는 “혁명교본”과 같은 서사구조를 지닌다.
국공내전의 회오리 속에서 소설은 항일연군 5군 지하교통원이었던 강찬혁
이란 인물을 통해 민족해방투쟁전사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부정적 인간상으
로 리호를 들 수 있는데, 일본인 특무로 활동하면서 조선인 학살에 앞장서는
가 하면 8.15 이후에도 조선인을 원수로 여기는 중국인 집단에 가담하여 조
선인 처단에 광분하기도 한다. 실제로 일제 강탈 시대에 일부 악질 조선인들
은 일본 세력을 등에 없고 중국인 토지를 약취한 사례가 있었다.28) 소설에
등장하는 장쇼윈․오완린 등이 그런 억울한 중국인으로 등장한다.
흰옷을 입은 것을 미루어 조선 사람이라는 것이 먼 데서부터 알려졌다. 점점
가까워 오는 것을 보니 모두 여남은 명밖에 안되는데 힘꼴이나 쓸 말한 남자는
한 명밖에 없었다. 그나마 지게에 고리짝이며 보따리들을 넘치게 얹어 지고 있었는
데 짐의 무게를 감당하기 어려운 듯 힘겹게 다리를 옮겨 놓고 있었다. 그 밖의
남자들이란 늙은이들과 조무래기들뿐이었다.
‘왜놈들이 망하니 네놈들의 꼴이 좋게 됐구나!’29)
27) 풀빛 편집부, 앞의 책.
28) ‘만주국’이 수립된 후에는 일본 식민당국이 중국 농민들로부터 헐값으로 토지를 빼앗아 移民用地로
삼았다. 비록 이민정책 추진과정에서 토지와 생활터전을 빼앗긴 조선인들도 일부 있었지만, 중국인
농민이 쫓겨난 땅 위에 삶의 터전을 잡은 사람들도 있었다. ‘일본 앞잡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던
조선인들 가운데 일부가 일본의 식민권력에 편승해 중국 농민의 땅을 분배받았다는 사실은 조선인
과 중국인의 갈등과 대립을 더욱 심화시켰다. 윤휘탁, 「근대 조선인의 만주농촌체험과 민족인식:
조선족의 이민체험 구술사를 중심으로」, ?한국민족운동사연구? 64, 2010.
29) 윤일산, ?포효하는 목단강?(상), 동광출판사, 1989, 37~38쪽. 이하 작품 인용은 따로 주를 달지 않
고 이 책의 쪽수만 표시함.
190 한국학연구 제33집
삐라의 내용은 오완린이 기초한 것인데 중국사람들에게만 돌리려던 것이었다.
삐라의 마지막에는 특히 다음과 같은 구호들이 있었다.
꼬리들은 재산을 몽땅 놔두고 조선으로 물러가라!
중국 사람들이여, 단결하여 일어나라!
국민당 중앙군이 곧 온다! (69쪽)
“꼬리들은 재산을 몽땅 놔두고 조선으로 물러가라”, “왜놈들이 망하니 네
놈들의 꼴이 좋게 됐구나!”에서 드러나듯 중국인들은 “꼬리”(高麗) 즉 조선
인에 대하여 불타는 적대감을 지닌다. 이런 적대감은 일본인 경찰서장이 만
척회사와 교섭하여 발해보 양켠의 소작권을 거두어 들인 후에 조선에서 건너
온 조선 사람들에게 주어 논을 풀게 하는 한편, 자작농들을 강박하여 발해보
양켠의 밭을 헐값으로 팔게 하여 중국인들은 땅을 빼앗기게 된데서 연유한
다. 비록 조선인들은 소작지는 얻었다 해도 엄청난 소작료를 물어야 했으니
득을 볼 것도 없었지만, 조선인들이 없었다면 소작권을 떼이고 땅을 빼앗기
지 않을 거란 생각에 중국인들의 가슴속에 원한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하
여 일본인과 조선인은 똑같은 한족의 원수로 여겨진 것이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만 선심을 쓸 거야 뭐냐 말이야! 한족놈들은 죄다 속이
까마귀 같은 놈들인데, 저레 죽여 버려야지.”
용호는 여전히 불복이었다.
“추 정위는 한족 사람이 아니오? 엄 부영장과 조 교도원은 한족 사람이 아니오?”
“그들은 관내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목단강의 리 사령은? 현성의 왠즈라는 분은 이 지방 사람이 아니오?
그리고 우리 퇀부 경위련에 들어온 동경성내의 한족 사람들은 또 어쩌구……”
“그…… 그 사람들은……”
용호는 그만 말문이 막혀 꺽꺽거리다가 동생 뻘 되는 사람에게 무안을 당하고
보니 화가 치미는지 꽥 소리쳤다.(181쪽)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91
장쇼윈과 오완린의 조선인에 대한 반목과 갈등이 깊어짐과 동시에 조선인
들은 “한족놈들은 죄다 속이 까마귀 같은 놈들”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다. 하
지만 이런 반목과 오해는 영웅적 형상으로 제시된 강찬혁의 투철한 사상교육
으로 해결이 된다.
“천하의 가난한 사람들은 한족 사람이나 조선 사람이나 민족은 달라두 한계급
형제외다. 응당 단결해서 지난날에는 왜놈들을 등에 없고 우리를 못살게 굴던, 오늘
날에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서 저들의 천당을 세우려고 꿈꾸고 있는 원수들을
때려눕혀야 하는 것이외다…….”(상, 183쪽)
“내가 한족 사람 모두를 원수로 여겼던 것이나 저 사람이 조선 사람 모두를 원수
로 여기는 것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진짜 원수를 보지 못하였던 것입
니다.”(하, 389쪽)
장쇼윈, 용호는 사상적으로 투철하지 못한 미자각의 인물로 등장하는데,
위 인용문에서 투철한 계급의식을 바탕으로 혁명 정신을 고양함으로써 해결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고 서술된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은 대부분 대화적 상
황에서 주동인물 강찬혁의 발언을 통해 이루어진다. 지도적 위치에 있는 영
웅적 형상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 사상을 강조하고 계도하는 것에 초점이 맞
춰진 서사적 의도를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계급 중심적 경향은 소수 민족의 특성이나 자율성을 무시하게 되고 투
철한 사회주의 혁명정신을 바탕으로 한 사상적 통합만을 절대적 가치로 부각
시킨다. 결국 ‘애국주의’를 슬로건으로 조선족과 한족은 단결하여 공동의 “원
수들을 때려눕”히자는 것이다.
소설은 조선족과 한족은 “한 계급 형제”로 화합과 협력의 관계임을 거듭
강조하는데, 여전히 ‘중국공산당의 영도’ 하에 항일투쟁과 국내 해방투쟁에
뛰어드는 조선족의 영웅적 투쟁이 작품의 주선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80
년대에 창작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50년대에 발표된 ?해란강아 말하라?의
192 한국학연구 제33집
패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중국혁명에 있어서 조선족의 영광스러운
혁명투쟁의 역사를 재현함으로써 조선족의 혁명투쟁을 중국의 혁명사와 결
합시키고 동시에 중국혁명사에 있어서 조선족의 자격을 확인하는 작업의 일
환이다.
?해란강아 말하라?, ?포효하는 목단강?의 ‘해란강’, ‘목단강’이란 고유한
장소를 호명하는 것은 ‘Nation’ 만들기의 대표적 방식이다. 조선족 자치구는
중국 Nation안에서의 또 다른 Nation으로 국가와 유사한 성격을 내재하지만
필경 나라가 아니기에 국가 만들기의 서사도 불구적 성격을 내장한다.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편입되는 50년대에 체험된 과거의 기억을 되살
려 중국 국민으로서의 확실한 ‘자격증’을 획득하였다면 80년대에 민족해방서
사를 재구성하여 ‘중국 공산당의 영도 아래’를 ‘다시 쓰기’한 것은 소수민족
으로서의 조선족이 걸어온 길과 직결된다. 1950년대만 하여도 느슨한 편입
의 과정이라면 1960년대에 들어와 반우파투쟁과 문화대혁명의 시기를 거치
면서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이 크게 변화하면서 급진적 동화정책이 실행된다.
특히 지방민족주의를 반대하는 정풍운동을 시작으로 소수민족에 대한 강압
적인 동화정책이 노골화되기 시작해 문화대혁명 기간에 소수민족 문화는 ‘낡
은 사상, 문화, 풍속, 습관’으로 취급된다.30) 소수민족의 자치를 말하는 것은
분파주의적 행동으로 폄하되어 타도의 대상이 되고, 또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는 철저하게 배격되어 많은 예술가와 문인들은 반우파투쟁의 대상이 되
어 공민으로서의 자격을 박탈당하거나 추방당하여 고통의 시간을 보내게 된
다. 민족자치와 민족문화를 주장하는 지식인들은 ‘지방민족주의자’, ‘우파분
자’ 등으로 매도되고 탄압을 받았던 것이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중국이 개
혁개방으로 나가는 시기까지 중국에서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는 암흑기에
해당한 것으로, 이 시기 작품들은 대개가 혁명과 모주석에 대한 찬양이 주를
이루었다.
30) ‘네가지 낡은 것을 파괴한다(破四舊)’의 ‘네 가지 낡은 것’이란 낡은 사상, 낡은 문화, 낡은 풍속과
낡은 습관을 말한다. 류지에 지음, 박혜원 옮김, ?중국의 교양을 읽는다?, 휴머니스트, 2007, 355쪽.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93
1976년 10월에 이른바 “4인방”이 분쇄되면서 조선민족 문화는 불사조처
럼 다시 소생하여 부흥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특히 1978년 12월에 열린 제2
차 동북3성 조선어문 사업 실무회의에서는 4인무리가 퍼뜨린 “조선 언어문
자 무용론”, “조선 언어문자 사멸론”을 호되게 비판하고 민족 언어의 발전이
사회주의 사회건설에 기여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조선어의 규범화에 관한 방
안들을 심의 채택하는 중요한 결의를 하였다.31) 정치가 여타 모든 분야를
압도하고 공공공간과 사적공간을 공히 지배했던 문화대혁명 때에 비하면 많
이 완화되긴 했지만, 정치 지향의 관성은 80년대에도 여전했다. 작가들은 공
산당의 정치 이데올로기의 목표와 전략에 공감하고 그것에 기여하는 것이 작
가적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인식했던 것이다.
1980년대 문학은 점차 극좌시기 문학의 극단적인 정치화와 공리주의 가치
관의 획일화에서 벗어나 다원적인 가치관을 추구하고 허환적인 송가에서 현
실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
니다. 1980년대 중반까지도 시대정신과 생활의 본질을 보여주려는 집착이
강했고 일부 본보기형상창조, 설교식 작품들도 나타났다. 1980년대 후반기
부터 점차 정치 이데올로기적 시대담론에서 벗어나 생명개체에 대한 탐구에
중시를 돌리기 시작했고 인간심리의 풍부성과 복잡성을 파악하기에 노력하
였다. 그러나 극좌사조의 영향과 정치적 속박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
었으며 그 미열이 남아 계속 작가들의 창작을 얽매었다.32)
특히 윤일산과 같은 2세대 작가들은 중국 역사의 광기를 몸소 체험하였고,
체험의 소산으로서의 불안, 위기의식은 자연스럽게 역사제재 소설로 구체화
된다.
그런데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정치운동이 중국 조선족 문학의 성격 변화와
진로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이다. 우선, 작가들이 대거 교체되었다. …(중략)…
31) http://blog.daum.net/mokwon100/1732065
32) 오상순, 앞의 책, 253~254쪽.
194 한국학연구 제33집
다음, 하나의 절대적인 패턴이 산생했다. ‘문예는 정치를 위해 복무’해야 하며
문학은 정치의 부속물이고 정치투쟁의 수단이며 문학은 계급투쟁을 반영해야 한다
는 패턴은 중앙문단에도 형성된 바이지만 이런 패턴 외에도 중국 조선족 문인들은
자기의 사유를 버리고 단지 중앙의 지시를 무조건 집행해야 하며 한족의 눈치를
봐가며 생각하고 행동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심리가 생성했다. 사상, 가치판단의
기준, 행동방침, 사유가 하나로 귀결되었던 시기에 조선족 문인들도 어찌할 수 없었
던 객관적인 생존환경이었던 점은 감안되지만 문학에 끼친 영향은 컸다. 그리고
가장 주목되는 점은, 조선족 문학의 중국화가 이때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
다.33)(밑줄은 필자)
2세대 작가들은 대약진운동, 인민공사화운동, 문화대혁명과 같은 중국의
역사적 격류 속에서 간간이 숨을 돌리며 삶의 터전을 지킨 세대이다. 2세대
작가들이 직접적으로 중심사회의 강압적인 힘을 실감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조선족문학’이 대두한다. 즉 문화대혁명과 함께 시작된 일련의 정치운동은
조선족문학의 성격 변화의 변수로 작용한다. 이광일이 지적하고 있듯이, “중
앙의 지시를 무조건 집행해야 하며 한족의 눈치를 봐가며 생각하고 행동해
야 생존할 수 있다는 심리가 생성”되면서 “조선족문학의 중국화”가 재차 복
창된다.
본격적 중국화가 대두한 시기가 80년대라면, 김학철의 ?격정시대?는34)
80년대에 창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식적인 “공산당 영도아래”라는 패턴에
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반우파투쟁, 문화대혁명의 시기를 거치면서35)
‘혁명의 구호’에 발맞췄던 지난 날(50년대 글쓰기)을 반성하고 이념의 경직
33) 이광일, ?해방 후 조선족 소설문학 연구?, 민족문제연구소, 2003, 123~124쪽.
34) ?격정시대?는 일제하의 한반도와 중국을 무대로 하여 당시를 살아가는 민중의 생활상을 그리고
있다. 원산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소년 서선장이 원산총파업 등을 겪으면서 민족의식에 눈을 뜨고
민족해방운동의 최전방인 만주에 가서 일제와 싸우는 조선의용군 전사가 되는 과정을 그린 장편소
설이다.
35) 반우파투쟁의 영향으로 김학철은 14년간 창작의 권리를 박탈당했고, 문화대혁명시기에 일인 독재
의 사회주의 체제의 모순을 고발한 정치소설 ?20세기신화?의 원고가 발각되면서 ‘반혁명 현행범’
으로 10년의 징역을 살게 된다.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95
성에서 벗어난 문학을 지향하려는 그의 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비타협의
대결정신은 일인독재와 개인우상화로 변질된 중국 사회주의에 대한 회의, 한
족 중심주의를 근저로 한 사회주의 건설과정에서 소수민족들이 가지게 되는
배신감, 특히 조선의용군 출신으로서 민족해방투쟁을 겪은 자의 ‘배짱’에서
연유한다. 협애한 민족주의 틀을 넘어 그 어떤 ‘차별’과 ‘배제’가 사라진 이상
적인 민족공동체 즉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 건설을 염원하는 김학철만이 걸
어간 길이다.
이근전의 ?고난의 년대?는 한조협력의 관점에서 한인과 조선인이 힘을 합
쳐 국민당과 투쟁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을 건립하는 내용을 중심에 둔 ?범바
위?와는 달리 조선인들의 특유한 삶과 문화를 소개한다. 하지만 조선인 박천
수 집안과 한인 왕덕후 집안의 대를 이어가는 가족 이상의 친밀한 관계라든
지 박천수의 아들 박윤민과 왕덕후의 아들 왕주가 항일 운동과 사회주의 운
동을 함께 해가는 것 등은 한인과 조선인의 협력이라는 중국 정부의 정책을
따른 것이다.36) 이 또한 ‘중국공산당의 영도아래’라는 패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의미한다.
5. 맺음말
근대 국민국가의 민족주의가 정치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면, 중국의
민족주의는 문화적 민족주의와 정치적 민족주의의 위계를 통해 민족을 정치
의 종속 개념으로 간주하고 이를 통해 소수민족의 민족주의를 관리한다. 따
라서 조선족 문학은 일제시기 만주지역의 조선인 문학, 나아가 한국(조선)문
학에 뿌리를 두고 있지만 지금은 엄연한 중국 문학의 일부이다. 그렇기 때문
에 중국 공민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중국 문학으로 편재되면서 한민족으로
36) 최병우, 「<고난의 년대>의 탈식민주의적 연구」, ?중국 조선족 문학의 탈식민주의 연구1?, 국학자료
원, 2008, 269쪽 참조.
196 한국학연구 제33집
서의 민족적 현실과 조선인의 삶을 내용으로 한 문학적 정체성 또한 당연한
변화의 과정을 거쳤음은 자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조선적인 것과 중
국적인 것, 이중적 성격은 복잡한 길항의 양상과 내용을 가지고 있었겠지만
적어도 외형적으론 중국 공민, 중국문학으로서의 자기 위상을 분명히 하는
쪽으로 통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자기 위상 만들기’ 작업의 일환으로
그들은 현재 조선족의 삶이 존재하게 된 민족해방 투쟁의 역사를 소설화한
다. 이는 그들 자신의 체험을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망각함으로써 자신의 역
사를 만들어 민족 정체성을 획득하는 한 방법이었다. 1950년대의 ?해란강아
말하라?와 1980년대의 ?포효하는 목단강?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해란강아 말하라?가 중국 국민으로서의 자기 위상과 자기 역할에 충실한
서사적 내용을 통해 민족적 특성을 무화시키는 중국화의 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면, ?포효하는 목단강?에 이르러 계급, 사상 중심의 서사적 구성
을 통해 오직 사회주의적 혁명에 복무하는 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위상 즉 한
족과 조선족의 화해를 통해 중국 공민으로서의 자기 위상을 소설적으로 형상
화함으로써 ‘중국화’가 재차 대두한다. 한마디로 ‘조선인’에서 ‘조선족’으로
편입되는 50년대에 체험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중국 국민으로서의 확실한
‘자격증’을 획득하였다면 80년대에 민족해방서사를 재구성하여 ‘중국 공산당
의 영도 아래’를 ‘다시 쓰기’한 것이다.
이런 유사 건국서사의 다시 쓰기는 소수민족으로서의 조선족이 걸어온
길과 직결된다. 1950년대만 하여도 느슨한 편입의 과정이라면 1960년대에
들어와 반우파투쟁과 문화대혁명의 시기를 거치면서 소수민족에 대한 정책
이 크게 변화하면서 급진적 동화정책이 실행된다. 특히 지방민족주의를 반
대하는 정풍운동을 시작으로 소수민족에 대한 강압적인 동화정책이 노골화
되기 시작해 문화대혁명 기간에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는 철저하게 배격
된다.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중국이 개혁개방으로 나가는 시기까지 중국에서
소수민족의 언어와 문화는 암흑기에 해당하는데, “4인방”이 분쇄되면서 조
선민족 문화는 불사조처럼 다시 소생하여 부흥의 시기를 맞게 되었다. 정치
가 여타 모든 분야를 압도하고 공공공간과 사적공간을 공히 지배했던 문화
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97
대혁명 때에 비하면 많이 완화되긴 했지만, 정치 지향의 관성은 80년대에도
여전했다.
조선족문학에서 1980년대는 개혁개방의 시대로 자칫 정치적 금기에서 벗
어난 자유로운 시기로 인식할 수 있는데 지금까지의 논의를 보면 적어도
1980년대 중반까지도 중앙의 정책 받아쓰기는 지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본
고는 지면상 80년대 중반 작품까지 거론하였기에 80년대 이후의 작품들을
검토하여 중국문학이라는 거대담론 속에서 소수문학인 중국 조선족 문학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정체성을 형성해가고 있는지도 추
후 연구되어야 한다.
198 한국학연구 제33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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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조선족문학의 ‘중국화’ 문제 199
[中文摘要]
中國朝鮮族文學的‘中國化’
-金學鐵, 尹日山的戰爭題材長篇小說爲中心-
徐玲
朝鮮族文學源於日占時期滿洲地區的朝鮮人文學以及朝鮮(韓國)文學, 但顯
然是中國文學的一部分。作爲中國公民幷編入到中國文學所以其文學屬性發
生了相應的變化是不言而喩的。而且這是雙重性(朝鮮屬性․中國屬性)相互
抵制的過程。但在外形上靠攏於中國公民, 中國文學。民族解放戰爭題材的歷
史小說是自我定位的一種方式。選擇幷遺忘其記憶的方式來重組歷史而獲得
了其民族同一性。1950年代的?海蘭江, 你訴說衷腸?和1980年代的?咆哮的牡
丹江?是其代表之例。作爲中國公民忠實於自己的角色但磨滅了其民族性的
?海蘭江,你訴說衷腸?是中國化的開端。而到了?咆哮的牡丹江?敍事的核心是
階級和思想。其敍事再次復唱了‘中國化’-强調服務於社會主義革命卽是通過
漢族和朝鮮族的和解來定位自我身分。總言之, 從‘朝鮮人’編入爲‘朝鮮族’的
50年代通過回憶過去的體驗已獲得了其‘資格證’, 80年代重組民族解放敍事再
次提唱了‘中國共産黨的領導’。
關鍵詞: 朝鮮族文學, 中國化, 戰爭題材, 類似建國敍事, 金學鐵, 尹日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