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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이야기

다석 류영모의 ‘회심’-윌리엄 제임스의 시각을 반영하여(박정환/서강대)

Ⅰ. 들어가는말
다석(多夕) 류영모는(柳永模 1890-1981)는 19세기 말엽 태어나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신앙의 길로 들어섰고 평생 자신의 신앙과 그 실천
다석 류영모의‘회심’ 147
에 기반 하여 하느님만을 골똘하게 생각하다 간 영성가요 사상가였다.
류영모는 평생 내적인 소리에 귀 기울이며 내부적인 변환의 과정을
맞닥뜨려 나간다. 다석 사상의 깊이는 그가 맞이한 변화의 과정에서
나왔고 그의 치열한 삶은 이러한 변환과 함께 이루어졌다. 나는 다석
의 이러한 변화를 종교학적 범주인 ‘회심(回心, conversion)’1)으로 살피
고자 한다. 회심은 종교적 인간을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용어로 종교
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은 누구나 질적인 도약으로 볼 수 있는 회심
을 거치지 않을 수 없다. 어느 종교전통을 막론하고 세속적인 영역에
서 ‘영성’, ‘종교성’이라고 하는 또 다른 세계로 진입할 때는 근본적인
1) ‘회심(conversion)’이라는 용어는 신학적인 용어인 ‘회개(metanoia)’와 구별된다.
내가 여기서 사용하는 회심개념은 ‘신’에게 돌아섬을 의미하는, 그리고 유대,
개신교 전통에서 사용되는 회심과 회개의 범위를 훨씬 넘어서는 포괄적인
범주의 용어이다. 그것은 어떤 특정한 마음 상태로부터 더 우월하고 보다 더
통전적인 마음상태로 옮겨가는 의미심장한 전환점을 나타내는 것으로 ‘돌아
섬’, ‘발전’을 의미하며 회심자 스스로가 변화의 중심에 서서 경험할 수 있는
사건이다. 본고에서 신학적 회개와 종교학적 회심을 구별하여 사용하는 이유
는 신학적 회개가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신’을 향해 돌아서는 것만을 의미
함으로 해서 다석이 겪은 변화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는 반면에 종교학적 회
심의 경우 마음의 변화과정을 추적함으로 해서 다석의 내면의 심리적인 측
면을 살펴보는 하나의 틀로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
임스가 속한 일군의 종교심리학자의 견해에서는 초월적 실재인 신이나 성령
이 강권적으로 회심주체에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 심층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본다. 그리고 회심을 심리학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며 인간
의 심층에 또 다른 자아를 상정함으로써 신의 개입과 그에 대한 응답만을
‘회심’으로, ‘회개’로 또는 ‘개종’으로 정의하는 신학적인 범주보다는 더 광범
위한 개념이다. 물론 다석의 경우도 신의 개입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절대
자에 대한 그의 태도도 신학적인 면이 다분히 존재한다. 그러나 그의 사상의
궤적이 기독교와 함께 동양의 유불선(儒彿仙)을 넘나들기에 이런 폭넓은 사
유의 변화를 담아내기에는 신학적인 범주가 아닌 종교학적인 회심의 범주가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다석의 네 번의 회심은 정통 기독교와 비
정통 기독교, 동양의 천지인(天地人) 합일 사상 등을 오고 간다. 따라서 기독
교와 동양의 종교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회심개념이 필요했고 이에 종교학
적인 범주의 회심개념을 적용하였다. 기존의 기독교로의 개종의 범위를 벗어
나 동양의 내적인 탐구에서 심층심리학의 ‘자기’로의 추구까지를 포함하는
현대적 의미의 폭넓은 범위를 포함하는 것을 ‘회심’이라고 정의하여 다석에
게 적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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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인 회심의 경험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나는 다석의 회심경험을 살
피기 위해 종교심리학자의 견해들을 검토하고 특히 미국의 대표적인
종교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의 회심론을
이론적 틀로 사용하고자 한다.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의 형이상학적 본
질을 밝히는데 중심을 두지 않고 개인적인 경험의 파편들을 살펴보는
데 주력하였으며 주지주의자들이 선호하는 형이상학적 관점을 철저히
배격하였다. 또한 교리화 내지 교조주의가 가질 수 있는 권위주의를
극복하고자 했으며 종교심리학의 입장에서 회심을 보고자 했다. 이러
한 윌리엄 제임스의 관점은 다석에게 적용하기에 매우 적절하다. 그
까닭은 다석 또한 교회로부터 벗어나 정통 기독교의 교리를 신봉하지
않고 자신의 경험과 결단을 중시하여 소위 비 정통의 길을 걷는 신앙
생활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분열된 자아의 통합이라는 하나의 관점과 중심부
와 주변부를 오가는 의식의 흐름을 관찰하는 또 하나의 관점으로서
회심을 이해했다. 본 논문에서는 제임스의 첫 번째 관점보다는 두 번
째 관점 즉, 중심이 이동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는 관점을 중점적으
로 적용하였다. 다석은 모두 네 번의 회심경험을 하였다. 각 경험들을
회심으로 정의할 수 있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는 조지 코어(George
Albert Coe 1862-1951)의 개념을 적용하였다. 포괄적인 그의 정의가 다
석의 회심을 살피는데 적합하였기 때문이다. 1차부터 4차까지의 회심
을 살피면서 각 회심의 특성들을 파악하고 종교심리학자의 입장과 윌
리엄 제임스의 관점을 적용하여 다석의 변화된 삶과 의식을 살펴보는
것을 본고의 목적으로 한다. 각 회심의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다석의
삶과 특징적인 성향들, 사상들이 자연스레 밝혀지도록 하기 위함이
다.
본론에서는 1차부터 4차까지의 회심을 살피되 각 회심마다 그 회
심이 가지는 특징들을 분석하였다. 1차 회심의 경우는 다석의 회심을
청소년기 회심의 전형으로 보아 종교심리학자들의 의견을 참고하여
그에 따른 분석을 했다. 2차 회심의 경우는 다석이 비 정통으로 이동
다석 류영모의‘회심’ 149
한 것을 중시하여 비 정통 기독교인으로서의 다석의 특징을 살폈다.
비 정통의 경험을 추구하는 다석의 입장을 개인의 경험을 중시하는
제임스의 관점과 비교하여 살펴보았다. 다석의 독특하고 개별적인 경
험이라고 할 수 있다. 3차 회심은 다석 자신이 중생체험으로 이해했
다. 예수를 매개로 하여 주께로 항복해 나아가는 다석의 체험과정을
그가 기고한 글을 따라 살폈다. 38년간의 신앙생활의 결실로 이제야
신께 항복하고 제대로 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다석의 고백을 바탕
으로 그의 경험을 추적하였다. 4차회심의 경우에서는 다석의 체험을
신비체험으로 규정한 후에 다석이 겪은 경험을 제임스가 말한 신비체
험의 범주의 틀에서 살펴보았다.
본고의 목적은 각 회심들을 분석하며 다석의 내면의 갈등과 고뇌,
변화의 과정을 추적하여 다석의 삶의 과정과 사상의 변화를 입체적으
로 조명하는데 있다. 네 차례의 회심 중 2차나 4차의 회심은 ‘회개’나
‘개종’ 등의 신학적 범주의 용어로는 담아낼 수 없고 종교학적인 범주
의 회심으로서만 그 변화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다고 판단하였고 윌
리엄 제임스의 사상과 이론은 비단 회심이론 뿐만 아니라 종교적 경
험과 변환에 대한 적용에 있어서도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각 회심의
부분에 적용하여 후반부에서 검토하였다. 기존의 다석 연구는 토착화
신학의 관점에서 신론과 기독론에 중점을 두었으나 본고는 종교학적
인 범주인 회심을 적용함으로써 다석의 삶의 변화되는 모습과 내면의
신앙이 성숙해가고 폭넓어지는 과정을 보다 풍부하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된다.
Ⅱ. 윌리엄 제임스의 회심이론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회심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
다.(James [1902]2009,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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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하는 것, 갱생하는 것, 은혜를 받는 것, 신앙을 체험하는
것 그리고 확신을 얻는 것은 종교적 실재들을 더욱 확고하게
붙잡은 결과, 지금까지 분리되고 의식적으로 빗나간 방향으로
나아갔던 열등하고 불행했던 자아가 통합되고 의식적으로 올
바르고 우월하고 행복한 존재로 변모해가는 점진적 또는 갑작
스러운 과정을 직접적인 신의 작용이 그러한 도덕적 변화를
가져온다고 믿던, 믿지 않던 간에 적어도 이것은 일반적으로
‘회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임스는 자신의 회심이론을 전개하면서 종교적 회심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의 자아의 심리학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는 종교
적 회심의 과정과 역동 안에서 다양한 자아의 특질을 묘사했다. 즉 그
는 종교적 회심이 자아에 관련한 투쟁이요, 결의라고 보았다. 제임
스는 회심의 과정에서 분리된 자아가 전체적인 자아를 형성하기 위해
통합된다고 보았다. 이것은 제임스가 정의한 회심의 첫 일면이다.
또 한편, 제임스에 의하면 의식은 투명한 매개물이나 독립적인 실
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흐름으로써 존재한다. 흐름으로써 의식
은 의식의 다른 경우들에 제한 없이 연관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의
식 내의 다양한 관계를 통해 새롭게 부상하기도 한다. 따라서 의식은
평평한 디스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성과 공간성을 지닌 관계
적이고 복잡한 전체로서 존재한다. 그것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가능성
의 일시적인 복합체로서 뿐만 아니라, 의식의 다양한 관계 때문에, 얕
음과 깊이를 지닌 구부러진 공간으로도 존재한다(김재영 2010, 988).
제임스에게 이러한 의식은 씨를 심는 장소로서 지속적으로 나타났
다가 사라진다. 현재의 순간적인 의식은 과거에 뿌려놓은 씨를 포함하
고 동시에 미래에 가능한 의식을 위해 새로운 씨를 심는다. 의식의 새
로운 맹아(萌芽)는 특별한 장(場)에서 떠오른다. 그러나 이 장은 다른
장과 분리되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주어진 장
은 다른 장과 연관 지어 존재하고 이 연관성은 의식이 제한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용하도록 한다. 이를 제임스는 “나의 현재 의식의 장은
서서히 잠재의식으로 바뀌는 주변에 의해 둘러싸인 중심이다”(James
1977, 130)라고 표현한다. 의식의 장은 가끔 상대적으로 위치를 바꾸기
다석 류영모의‘회심’ 151
도 한다. 의식의 중심부를 점령하던 장은 다른 시점에서는 사라지고
주변의 장으로 움직인다. 씨를 심기 위한 구체적인 장은 새로운 중심
부로 부상하고 다른 장은 주변의 장으로 철수한다. 즉 새로운 장이 현
재의 중심부의 장을 주변부로 밀어내고 현재에 점유하고 있는 장을
사라지게 하여 그 사라진 장이 새로운 곳에 위치하도록 한다. 이 반대
의 경우도 일어난다. 그러한 상황에서 중심부의 장은 주변이 되고 새
로운 장은 중심부로 이동하는 순환적 과정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한 사
람의 진정한 자아, 다시 말해 그의 에너지의 중심은 전적으로 다른 조
직에 위치하고 있다. 삶이 계속되면서 우리의 이해관계와 관념체계들
은 중심적 위치에서 보다 주변적 위치로 변화하기도 하고 의식의 주
변부에서 보다 중심부로 변화하기도 한다(James [1902]2009, 268). 만약
밖에 있는 것에 이름을 부여하면 그것은 이미 안으로 들어온다. 주변
이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동안 중심은 한 방향으로 작동한다. 그리
고 즉각 중심을 압도하고 그들 스스로가 중심이 된다(James, 1977,
130).
제임스는 이런 의식을 위한 장의 은유를 종교적 회심으로 확대하
여 회심이론을 전개하였다. 종교적 회심은 그에게 있어 의식의 변환의
가장 역동적인 실례였기 때문이다. 새롭게 주어진 의식은 처음에는 우
리의 의식에서 중심적인 지역을 점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어
딘가에 배경으로 존재하고 우리의 중심적인 정신적 관심에 관하여 주
변적인 영역 안에서 존재한다. 그것들은 우리의 정신적 중심의 영역에
속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종교적 회심 이후 전환된 정신적 상황은 급
속하게 변형되고 주변의 영역은 중심부로 이동하도록 초대되며 중심
부에 있어왔던 것은 주변으로 이동하도록 고양 된다.
‘여기’는 ‘저기’로 바뀔 수 있고 ‘저기’는 ‘여기’로 바뀔 수 있
으며 ‘나의 것’이었던 것과 ‘나의 것이 아니었던 것’은 서로의
위치를 바꿀 수 있다. 만약 그 변화가 종교적인 것이라면 우
리는 그 변화를 ‘회심’이라고 부른다. 특히 그 변화가 위기에
의해 또는 갑자기 이루어진다면 더욱 그렇게 부를 것이다
(James, [1902]2009,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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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의식적 자아의 침입을 받은 옛날의 의식적 자아는 사라지고
대신에 새롭게 태어난 자아는 회심 이전에는 관심이 되지 못한 믿음
체계에 어떤 에너지도 보내지 않지만 회심 이후에는 그 믿음체계에
많은 에너지를 보낸다. 그래서 회심 주체는 이전에는 그 믿음체계로
부터 영향을 받거나 조종 받지 않았지만 회심이후에는 그 반대의 결
과를 경험한다. 즉 그토록 무시되고 논리적이지 못한 믿음체계나 종교
적 관념들이 어느 날 회심주체들에게 새롭게 태어나서 주체의 삶을
지배하는 것이다. 그 믿음체계나 종교적 관념은 회심주체의 자아 주변
부에 머물러 있지 않고 언제나 중심부에 머물러 하나의 습관을 형성
한다(김재영 2003, 23-24).
한 사람의 의식 안에 있는 격렬한 장소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금부터는 그 사람이 헌신해오고 영향을 받은 관념집단을 그
의 개인 에너지의 ‘습관적 중심’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관념의
하나의 묶음 또는 다른 묶음이 에너지의 중심이 되던 안 되던
간에 그것은 한 인간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인
간이 소유할 수도 있는 모든 관념의 묶음은 중심이 되던 주변
에 존재하든 간에 그에게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사
람이 “회심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전에 그의 의식주변부에
있던 종교적 관념들이 이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종교적 목표들이 그 사람의 에너지의 ‘습관
적 중심’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James [1902]2009,
269-270).
나는 후반부에서 이러한 회심이론을 다석에게 적용하여 각각의 회
심 때마다 다석의 중심부의 의식을 차지하고 있던 내용과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의식을 살펴볼 것이다. 이렇게 의식들이 서로의 위치를
바꾸며 종교적인 변환을 이루는 과정을 보면 다석의 삶과 사상의 궤
적의 내용들이 드러날 것이다. 이제 다석의 네 차례의 회심을 주시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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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다석의 회심
1. 1차회심(1905년) - 정통 기독교로 입문
조지 코어에 의한 회심의 정의2) 중 ‘자발적 태도의 변화를 일으켜
신에 귀의하는 신약 성서적 회심’(Coe 1916, 152)이란 정의를 적용하
여 다석이 처음 교회에 나가 신앙을 갖게 되는 것을 다석의 1차 회심
으로 본다. 1890년 3월 13일 아버지 류명근(柳明根)과 어머니 김완전
(金完全) 사이 형제 가운데 맏아들로 태어난 다석은 16살 때인 1906년
에 YMCA 한국인 초대 총무인 김정식의 인도로 기독교에 입신하여
서울 연동교회에 나가게 된다. 그의 평생의 삶과 사상적 기반이 될 기
독교와의 조우이다. 다석이 신앙을 갖는 회심을 하게 되는 데는 개인
적인 원인도 있지만 당시의 국운과 연관이 있다. 박영호는 “어느 신앙
인들 값싼 신앙이 있으리요 마는 류영모의 신앙은 값비싼 신앙이다.
부모를 팔아서 친구를 산다는 속담처럼 류영모는 나라를 팔아서(빼앗
기고) 믿음을 산 것이다”(박영호 2012, 78)라고 말한다. 이 시기에 다
석은 청소년기에 겪는 영성적인 변화를 경험하였다. 이것은 무신(無
神)에서 유신(有神)으로 이동하는 회심이라고 볼 수 있으며, 당시의 사
회적인 조건(일제의 강점)과 개인적인 변화로 인하여 갖게 된 첫 번째
신앙이라고 볼 수 있다. 나라 잃은 설움에서 오는 외롭고 허전한 마음
과 이에 대한 다석 자신의 개인적인 성찰이 그를 1차 회심인 신앙의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이러한 다석의 1차 회심은 청소년기에 일어난 대표적인 영성적인
변화이다. 종교심리학자인 에드윈 스타버크(Edwin Diller Starbuck
1866-1947)에 의하면, 청소년기는 생애의 다른 시기들과 구별되게 내
2) 조지코어의 회심이론은 포괄적이어서 회심연구자들이 많이 인용하고 있으며
대략 6가지로 회심을 정의하고 있다. 다석의 변화를 회심으로 볼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하기 위해 각각의 회심부분에서 조지코어의 회심정의를 인용하
여 적용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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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변화가 강렬하게 일어나면서 고유한 특성이 발달하는 때로 대략
11세에서 24세까지의 시기가 해당되며 이 때를 종교적 발전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시기로 규정한다(Starbuck 1899, 195). 따라서 다석의 나
이 16세 때의 1차 회심은 청소년기에 이루어진 회심의 전형으로 볼
수 있으며 그러한 관점의 분석이 가능하다. 청소년기에 이른 청소년은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며 불안과 의심의 시기를 맞는다. 이러한 갈등
의 시기를 맞는 청소년은 회심에 쉽게 노출된다. 갈등의 상황이 건강
하게 긍정적으로 승화되면 방황하던 청소년은 다시금 안정되고 평온
한 감정을 갖게 된다. 다석은 일제강점이라는 혼란한 나라정세로 인해
심한 불안과 갈등을 겪은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자아가 편안히 성장
할 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때에 다석이 취할 수 있었던 갈등의
해결책은 종교공동체에로의 입문이었을 것이다. 신앙이 주는 평온함으
로 갈등을 치유함으로써 이를 자신의 안식처로 삼았던 것이다.
나아가 이 시기는 청소년이 자기중심적인 자아에서 보다 큰 자아
로 이동하는 시기이기도 하다(Coe 1916, 251). 그리고 이러한 자아는
종교적 감정으로 대치되기 쉽다. 이러한 고차원적인 토대로의 이동이
다석에게도 일어났다. 작고 이기적인 자아가 보다 고차원적인 열망을
바라는 큰 자아로 이동한 것이다. 그 전까지 자신의 단순한 이기적 욕
구를 충족시키며 살았다면 이제는 신에 대한 ‘사랑’이라는 명제를 깨
달은 것이다. 이는 자신의 울타리를 넘어서는 보다 큰 실재에 자신을
내맡기는 신에 대한 ‘눈뜸’이라고 볼 수 있다.
몸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보아도 청소년기는 이전에는 무관심했던
심층적 내면의 영혼을 인식하고 그 영혼의 욕구에 따라서 삶을 인도
하려는 몸짓을 최초로 갖는 시기이다. 즉 청소년기의 영혼은 생물학적
이고 정신적인 차원을 넘어서서 초월적이고 영성적인 욕구를 요청하
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청소년들은 자연적으로 종교전통에 문을 두드
리기도 하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심층적 내면을 경험하려고 한다.
종교전통과의 이런 자연스런 만남을 통해서 청소년은 자신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자아를 확립하게 된다(김재영 2001, 64-65). 이와 같은 청
다석 류영모의‘회심’ 155
소년기의 변환에서 다석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는 지극히 자연스런 진
행이고 영적인 감성이 누구보다 강했던 다석에게 이러한 변화는 보다
큰 영성적 깨달음으로 가기 위한 출발점이 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갈등을 치유하고자 영성적인 욕구를 느끼며 종교전통에 입문했던 다
석의 1차 회심의 경우는 전형적인 ‘청소년기의 회심’이다.
특히 그 당시는 시대적으로 볼 때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고 있던
시기이다. 따라서 나라 잃은 백성들은 일제의 탄압아래 교회에 모여서
시름을 달랬기에 다석에게 교회는 사회적으로 일어난 아픔을 달래는
피난처이기도 했다. 보통 회심은 아주 특별한 상황 속에서 일어난다.
여기에는 문화적이고 언어적인 환경이라는 거대한 배경, 가족, 신앙공
동체, 직장, 이웃 등과 같은 미세한 배경, 한사람의 인격, 기질, 경험이
라는 개인적인 배경이 있다(Smith [2001]2010, 88). 다석에게도 일제치
하라는 거대한 배경과 그 자신의 영적인 갈망이라는 개인적 배경이
어우러져 1차 회심을 하게 되었다. 개인의 내적인 갈등이 자아실현의
가능성을 열어준 것이다.
2. 2차회심(1912년)- ‘비 정통’신앙3)으로
여기서는 앞서 언급한 1차 회심과 같이 조지코어의 회심 정의 중
3) 비 정통이란 단어를 학문적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는 논
란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다석은 스스로 “나는 비 정통이다.” 라는 말을 한
다. 따라서 다석 스스로 비 정통을 주장한 근거를 들어 비 정통이란 말을
그냥 사용하기로 했다. 한편 비 정통이라는 말은 동양적이라는 말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한다고 보여 진다. 기독교가 본래 서구의 종교이고 그런 주류
신학을 정통이라고 한다면 기독교의 동양적 해석과 이해는 비주류 즉, 비
정통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비 정통으로 취급되는 이유는 톨스토이의
사상을 받아들여 교회의 전통적 교의를 거부하고 독생자는 예수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내리신 성령이며 누구나 자신의 내부에 품부 받은 얼을 깨치면 하
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그의 사상 때문이다. 이러한 다석의 비정통적
인 경향은 기독교의 배타주의를 벗어나 타 종교에서도 구원을 찾는 다원주
의적인 성향을 지니는데 있어 출발점이다. 예수를 신으로 보지 않으면서 다
른 종교에서도 하느님과 구원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56 종교연구 제74집 2호
‘제도적 종교전통의 규례를 따르는 삶으로부터 종교적인 자발적 삶으
로의 회심’(Coe 1916, 152)이라고 하는 정의를 적용해 다석의 변화를
회심으로 정의하고 2차 회심이라고 부른다. 기존의 종교전통의 틀을
벗어나는 변화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다석은 15살에 연동교회에 나가며 처음으로 신을 대면한 이후 열
성적으로 정통신앙의 길을 걷다가 23살이 되는 1912년에 돌연 기존의
신앙을 버리고 비 정통으로의 회심을 경험한다. 교회도 나가지 않고
정통신앙을 받아들이지도 않으며 우찌무라 간조(內村鑑三)와 같은 무
교회주의자보다도 더 급진적인 사상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결
과의 원인을 찾아보자면 다석의 내면과 시대적 상황 등 복잡한 변수
들이 작용을 할 것이나 무엇보다도 다석의 변화에 있어 주목되는 면
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관점의 혁신적인 변화이다. 다석
은 이렇게 말한다. “기독교를 믿는 이들은 예수만 그리스도라 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에요.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입니다...예수
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를 믿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인간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린 것을 믿으면 영생한다고 믿는 것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박영호 2012, 131). 새로운 기독관이 엿보
인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믿던 바울로의 대속신앙도 버렸고 예수 그리
스도의 구주(救主)됨과 유일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석은 교
회에 안 나가게 된 까닭을 말하며 자신은 자신대로 하느님 아버지를
사랑하는 ‘속알(얼나)’을 얻었다고 말하고 있다(박영호 2012, 132).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서는 회심이 이루어질 때 예수를 구세주로 받
아들이고 섬기는 의식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반대로 다석은 이 때부터 예수를 구주(救主)로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
와 똑같은 인간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물론 그는 예수를 신으로 예배
하지는 않더라도 스승으로는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와 같이 예수의 구
주됨을 버리고 그만의 기독관을 가지게 된 것은 신앙의 변화요 혁명
인 지적 회심이다. 이것은 타율적이고 맹목적인 믿음의 신앙에서 자율
적인 깨달음의 신앙으로 바뀐 것이다.
다석 류영모의‘회심’ 157
이러한 다석의 변화에는 개인적인 배경이 있다. 다석의 형제는 처
음 10여명에 이르렀으나 어릴 때 모두 사망하고 동생 영묵만이 살아
남았는데 그도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고 만다. 류영모가 여러 형제들
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자란 것이다.4) 바로 이것이 다석에게는 신앙을
갖게 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특히 여러 형제들의 요절 가운데
서도 류영모가 21살 때 19살에 죽은 영묵의 급사는 류영모의 인생에
커다란 의미가 있다. 그가 죽음에 대해 심각하게 사색하며 신앙생활을
하게끔 하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오산학교에서 톨스토이의 사상을
접하고 정통신앙을 떠난다(최인식 2001, 173-179). 류영모가 그렇게 철
저히, 그리고 열성적으로 믿던 정통신앙을 버린 것이다. 류영모는 말
한다. “내가 22살 때만 해도 기독교를 전도하였는데 요한복음 3장 16
절과 ‘십자가 못 박혀 흘린 보혈로서’라는 구절이 빠져서는 안 되는
줄 알고 줄곧 외었는데 지금은 달라지고 있어요”(박영호 2012, 131).
오산학교를 떠난 해(1912년)에 정통신앙을 버린 것이다. 류영모는 오
산학교에 정통교회신앙을 전하고 자기는 떠나면서 정통교회신앙의 허
물을 벗어버리고 나왔다(박영호, 2001, 188). 교의 신앙에서 자각신앙
으로의 변모가 이루어진 것이다(박영호 2012, 134). 다석은 이때 비 정
통신앙으로 돌아서며 다원주의적 사고의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노자
의 『도덕경』과 불경을 읽기 시작한 것이다. 어려서는 유교사상을 익혔
고 이 시기에는 동생의 죽음의 해답을 찾고자 불경에 심취하였다. 이
때 동양의 경전을 접한 것은 그의 자아와 사상형성에 있어 매우 중요
한 역할을 한다. 류영모는 아우의 죽음을 목도하고 인생에 대해 다시
4) 형제의 죽음이라고 하는 사건은 정신분석학적으로 볼 때 상실의 고통을 가
져다주는 것이므로 어린 시절의 죽음에 대한 간접적 경험은 유년시절의 다
석의 의식세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요소로 보아도 무방하리라 본다. 그가 그
토록 절절하게 하느님을 찾으며 생을 이어간 데는 다석에게서 자꾸만 동생
들을 뺏어가는 하늘에 대한 원망과 그것을 통한 승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
다. 다석에게서 아른거리는 죽음의 그림자가 그를 더욱 맹렬한 신앙생활로
이끌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류영모의 호인 다석(多夕)은 물론 저녁을 한 번
에 먹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석양, 지는 해, 저녁, 곧 상실의 아픔을 반영하
는 무의식의 일면을 나타낸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158 종교연구 제74집 2호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처럼 그는 형제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접
하면서 불경과 『도덕경』을 읽고 죽음에 대해 묵상하며 인생의 참 의
미를 깨닫고자 했고 이러한 그의 노력은 신앙의 범위를 더욱 확대시
켜 비 정통으로 회심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할 수 있다. 다석의 변화된
기독관의 내용에는 인간 모두가 그리스도와 같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수 있다는 사상과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며 독생자란 예수가
아니라 하느님이 보내신 성신이라는 변환의 메시지가 있다. 이것은 인
간의 위상에 얼마간의 격상이 이루어진 것이다. 죽음에 대한 간접적인
경험과 사색은 인간 실존의 문제를 고민하며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더욱 가치 있게 보게 만들었으며 이것은 예수만치 우리도 귀한 존재
라는 자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예수도 하나님 앞에서는 한 인간이고
우리도 똑같이 성신을 가진 존재이니 인간이 그만큼 값진 존재가 되
는 것이라고 다석은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변화된 기독관으로 인해
다석은 인간에 대한 보다 깊은 통찰을 하였고 인간 자신의 가능성과
가치를 보다 긍정하는 사상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한편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다석이 비 정통으로
의 회심을 하면서도 기독교의 테두리를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기존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종교는 유불선(儒彿仙)이었다. 다석 또한
유교의 공자, 맹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고 불경과 노자에 정통했
다. 그런 그가 동양의 종교에서 안식을 찾지 못하고 외래의 종교인 기
독교에 귀의했던 것이다. 즉 다석의 회심은 정통과 비 정통을 오가지
만 세속을 지향하는 신앙의 부정이 아닌 기독교의 테두리 내에서 계
속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2차회심이 갖는 중요성은 비 정통으로의 변환이 기존의 교리에서
벗어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는 데에 있다. 이는 공동
체, 교리, 신조가 배격되는 개인적인 경험에 의한 변화인데 이점은 제
임스가 내내 지적하고 자신의 사상의 기반으로 삼고 있는 부분이다.
나는 앞서 제임스의 이론에 있어 가장 특징적인 부분 중의 하나는 그
가 종교적 현상에 있어 경험을 매우 중시했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다석 류영모의‘회심’ 159
제임스는 감정은 종교의 보다 깊은 원천이며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신
조들은 부차적 산물이라고 생각하였다(James [1902]2009, 518). 여기서
신학적 신조들이 부차적 산물이라는 것은, 종교적 감정이 없다면 어떤
철학적 신학도 만들어지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뜻한다. 제임스의 이러
한 언급이 중요한 까닭은 다석의 2차 회심, 즉 비 정통으로의 회심이
기존의 종교적 도그마를 맹목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
만의 경험과 감정을 중요하게 여기고 소위 말하는 종교적이고 지적인
교의적 신학의 틀을 벗어난 것이다. 따라서 제임스가 신자의 일차적
경험을 중시한 사실이나 종교적 지성주의를 거부하고 기존의 도그마
를 거부한 다석의 태도는 동일한 일면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제임스의 견해를 좀 더 살펴보자.
‘지성주의’는 오로지 논리적 이성으로만, 다시 말해 비주관적
사실로부터 엄격한 추론을 이끌어내는 논리적 이성에 근거해
서만 종교적 대상을 만들어 내려고 한다... ‘지성주의’는 자신
의 결론을 선험적 방법으로 도달하여 그 결론에 진실성을 보
장한다. 이런 식으로 진 실성이 보장된 종교체계는 믿음을 갈
망하는 사람들에게 우상이 되어왔다(James [1902]2009, 520).
이는 지적인 기준은, 절대적으로 수정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고
정된 체계를 교리화 내지 교조화 시키므로 종교적 경험을 생생히 해
석해낼 수 있는 ‘그물’을 절대적으로 만들 수 없음을 말한다. 경험의
세계는 인간이 지적으로 고안해 낸 실재의 세계보다 훨씬 넓고 깊어
서, 만들어낸 세계의 그물로는 그를 모두 포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적으로 교조화된 교리를 통해서 모든 진리를 소유할 수 있
다는 오만 때문에 오히려 보다 넓은 진리의 세계가 포착되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김재영 2009, 51). 다석의 이 당
시 비 정통으로의 회심은 외롭고 고독한 결단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도 자신의 내적인 소리를 거부할 수 없고 그 길은 많은 사람들이 함
께 걷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정통의 기독교를
믿는 이들을 모두 거부하거나 안일하다고 비판할 수는 없다. 그러나
160 종교연구 제74집 2호
내가 여기서 비 정통으로 회심한 다석의 견해를 중시하는 것은 정통
의 견해만이 아니라 기존의 도그마를 벗어난 견해도 합당한 경험을
갖는다면 존중해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제임스는 기존의 교의적 신
앙이 얼마나 안일하면서 동시에 매력적일 수 있는 가를 지적한다. 다
석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다석은 기존의 신앙에 안주하지 않
았다. 그가 깨닫기에 아닌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초월
적 사랑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매개해 주었던 갈릴리 청년 예수가
교회의 오랜 교리화 작업, 정통 기독론과 삼위일체 신론 등을 통해 점
점 더 절대화되어 마침내 하느님과 동등한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는
설명처럼 다석도 비 정통으로 회심하며 그러한 새로운 기독관을 가지
게 되었던 것이다(길희성, 2013, 245).
다석의 2차 회심은 신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인간으로서 가져야할
태도와 자세를 스스로의 양심과 결단에 비추어 선택한 것이기에 그
가치가 빛난다고 할 수 있다. 제임스는 말한다. “교의학자들의 신의
형이상학적 속성에 대한 추론은 도덕 그리고 인간의 욕구와는 동떨어
진 현학적인 사전적 형용사들을 혼합하여 놓은 것에 불과하다”(James
[1902]2009, 533). 교의신학에 대한 제임스의 불신은 2차 회심을 할 때
다석이 가졌던 정통신앙에 대한 비판 의식과 흡사하다. 다석의 회심이
2차에 그치지 않고 3차로 이어지며 그 자신 기독교의 테두리를 벗어
나지 않았지만 2차 회심에서 보여 지는 그의 태도는 분명히 제임스가
말한 대로 기존의 교의적 신앙에서 벗어나 자신의 경험과 결단을 중
시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3차회심(1942년)-重生5)체험
5) ‘중생’이라는 용어는, 마치 회심이라는 용어가 모든 종교전통에 존재하듯이
여타 종교전통에서 발견되는 개념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생’이라는
개념은 회심이라는 개념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된다.
다석은 이를 스스로 ‘거듭남’이라고 표현했다. 3차 회심이라는 용어 외에 중
생이라는 용어를 쓰는 까닭은 변환의 과정을 설명함에 있어 다석의 ‘거듭남’
에 보다 더 비중을 두기 때문이다. 즉 ‘중생’이라는 용어가 다석의 온통 전
다석 류영모의‘회심’ 161
1차, 2차 회심에 이어 다석은 하느님이 주신 얼로 거듭나는 중생
체험 곧 3차 회심을 하게 된다. 여기서는 1차, 2차 회심에서와 같이
조지코어의 회심 정의 중 ‘복음적 구원의 계획, 회개, 믿음, 용서 그리
고 확신의 갱생과정에 따른 개인 구원적 회심’(Coe 1916, 152)이라는
정의를 적용하여 3차 회심으로 본다. 류영모가 52살이 되는 해인 1942
년 1월 4일이다. 류영모는 15살(1904년) 때부터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
다. 이때가 신앙생활을 한지 꼭 38년 째 되는 해다. 15살 때 연동교회
에 나가며 정통신앙으로의 회심을 했다면 이제는 하느님 품 안에 자
신이 안겨 진실하게 하느님을 깨닫고 구원에 이르는 회심의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얼나’6)를 체득화 하여 하느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즉 모든 인간에게 내재해 있는 ‘얼’을 발견하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
이 그 ‘얼’을 발견하여 하느님의 아들이 된 것처럼 다석 또한 회심을
통해 ‘얼’을 깨닫고 하느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다석에게 있어 회심
이란 자신 안에 있는 하느님의 씨인 얼을 찾고 깨닫는 과정이었으며
결국 그는 3차 회심인 중생체험을 통해 하느님이 내려주신 얼을 깨닫
고 구경각의 경지에 오른다. 2차 회심인 비 정통으로의 회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으로 신의 품 안에 자신이 안기는 경험을 함으로써
그의 회심의 여정이 진행된 것이다. 다석은 “자신의 속알을 기르고,
생각을 틔워 ‘하나’의 아들로 사는 것이 성서가 말하는 거듭남(중생)의
뜻”(류영모 2010, 316-317)이라고 했다. 즉 비천하게 된 실존적 인간
천인(賤人)이 본래의 모습인 하느님의 형상을 가진 하늘사람 천인(天
人)으로 거듭나는 것을 말한다(김흡영 2013, 117). 다석의 언어로 중생
을 표현한 단어는 ‘솟날뚜렷’이다. 다석은 인간을 기본적으로 천인(天
체적인 변환, 실존적 변환을 설명하는데 있어 보다 적합하다고 판단된다. 다
석의 중생체험에서의 변환이 그 자신의 인격을 송두리째 뒤엎는 극적인 현
상이었다고 다석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6) 다석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짐승 성질의 나를 ‘제나’라고 부르고 하느님께 받
은 생명의 씨를 ‘얼나’라고 하여 이 ‘얼나’를 발견해 나가는 것이 인생의 목
표라고 하였다.
162 종교연구 제74집 2호
人)으로 보았기 때문에 다석에게 중생이란 우리가 온 본향으로 다시
돌아가 우리의 본래의 지위를 찾는 실존적인 변화를 하는 것이었다(김
흡영 2013, 117). 3차 회심에서 다석은 자신이 이러한 실존적인 변화를
했다고 말한다. 다석은 이제 진정한 하느님의 아들로 다시 태어났으
며, 구체적으로는 중생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거듭난다고 하
는 것은 뭔가 하니, 자꾸 생각이 깨고 깨고, 얼나가 자라는 대로 깨고
깨고 그러는 것입니다. 자꾸 생각이 깨 나가는 게 거듭나고 거듭나고
거듭나는 것이에요”(류영모 2010, 317). 다석은 자신이 중생을 체험했
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체험을 ‘중생기’에 적었는데 나는 그 중 한 부
분에서 다석의 경험의 과정과 진행을 보여주는 부분7)을 발췌해 다석
의 변화되어가는 모습을 추적하고자 한다.
먼저 다석의 중생체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시작
한다.
영생은 곧 이것이니 홀로 하나이신 하느님을 아옵고 또 보내
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앎이나이다(류영모 2001b, 360).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께서 아들로 보내신 자 예수를 아는 것이 영
생을 이루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주에 홀로 존재하는 그 하느님
이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 죄에 눈뜬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그는
그의 중생기에서 언급하고 있다. 요한복음에 이와 같은 예수의 역할을
말하는 구절이 있다고 말하며 다석은 그의 중생기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예수 당시에 38년 된 병자가 은혜의 집(베데스다)에 들어가서
병을 고치려 하였으나 혼자서는 들어갈 힘이 없어서 못하다가
예수를 만나서야 나아서 걸어감을 얻었다(류영모 2001b, 360).
‘내가 곧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으면 주께로 가지 못
7)「부르신지 38년 만에 믿음에 들어감」이라는 글로 『성서조선』157호
(1942년 2월호)에 나온다.
다석 류영모의‘회심’ 163
한다’(요한 14:1-7)는 성경의 구절처럼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고자 한다
면 예수를 거쳐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석은 이를 간과하지 않고 이
와 같은 관점에 힘입어 자신의 신앙생활에서도 자신이 어떻게 해보려
는 자의식적인 시도로 말미암아 수년간을 허송세월 하였으며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께 이를 수 있었음을 고백한다.
주여 오늘도 그와 같은 자 하나가 있습니다. 주께서 저를 38
년 전 1905년 봄에 부르시지 않으셨습니까? 이래, 병든 믿음으
로 온 것이 아닙니까? 저는 아버지 집에 혼자 힘으로 들어가
려고 하는 가운데 많은 세월을 거저 보낸 것 같습니다(류영모
2001b, 360).
38년 전이면 다석이 처음으로 기독교에 입신하던 때이다. 이때부
터 그는 많은 신앙의 부침을 겪었지만 결국 그 세월을 허비하고 이제
야 예수 그리스도의 힘을 매개로 참된 신앙에 들 수 있었다고 고백한
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석이 예수 그리스도를 매개로 회심
하지만, 그리고 다석에게 예수는 하느님께 이르는 통로가 되고 있지만
예수 스스로가 신이나 구세주는 아니라는 점이다. 2차 회심 이후로 걷
는 비정통의 길을 다석은 벗어나지 않았다. 따라서 다석에게 예수는
하느님에게로 이르는 통로로서 만나야 하는 것이지 예수 자체를 구주
로 섬기는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3차 회심에서 기독교를
벗어나지도 신을 부인하지도 않는다. 비정통의 길을 고수하지만 하느
님과의 관계는 변하지 않았다. 이렇듯 예수를 매개로 신의 품에 안겨
야 함을 깨달은 다석은 자신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주 앞에 항복하고 자신을 비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깨닫게 된다.
작년 1년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고 물으신 해이며 “나를 붙
들어줄 사람이 없다”고만 하고 지나온 것입니다. “남이 붙들어
주도록 약한가, 저 사람도 보잘 것 없군”하는 물론이 있을까
퍽 싫어하였습니다. 내 독립한 체면은 죽어도 유지하고 싶었
습니다(류영모 2001b, 361).
164 종교연구 제74집 2호
자신 스스로 어떻게 해보려는 자의식이 하느님께로 이르는 길을
방해했다고 다석은 느낀 것이다. 이에 다석은 점차적으로 깨달아가며
주께 항복할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자신 스스로의 능력과
의지가 아닌 주께로의 항복이 그를 구원으로 이끌게 됨을 점차로 인
식하게 되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복종, 자신의 비움이 신의 품에 안기
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작년 2월 17일 부터는 새 과제를 주셔서 1년을 공부하게 하시
고 8월 5일에는 한번 채로 치셔서 깨닫게도 하셨습니다. 아버
지께로 더 나아가야 할 줄은 더욱 강박되었사오며 감은과 감
격도 몇 번 이었사오며 마침내 자기란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을 확인하게 되었사오나 주의 앞에 무조건 항복할 기회는 없
었습니다(류영모 2001b, 361).
다석은 주께로 가기 위해 자신의 의지를 내려놓고 자신을 비우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하게 된 것이다. 주
께 무조건 항복하는 순간 다시 태어나는 체험을, 영생으로 이어지는
체험을 하게 되었다. 자기를 비우고 부정하는 순간 아무 조건 없이 주
앞에 항복하게 되고 새롭게 재탄생하는 경험인 것이다. 이 지속적인
비움의 작업은 다석이 세 번째의 회심 속에서 깨달음으로 가기 위해
점수(漸修)의 여정이 있었음을 증거 해준다. 다석이 중생체험을 하기
이전 그의 삶 속에서 행하던 많은 수행들과 자신을 주께 항복하는 시
기까지 거쳐야 했던 과정들이 그의 회심에 도움을 주었으며 그러한
내적인 성장이 3차 회심을 하도록 이끌었던 것이다. 그런 점수의 과정
을 지나 다석은 돈오(頓悟)의 순간을 맞이한다. 이제 다석은 주께로
다가간다.
지난 11월 28일은 저의 18,888일로 저는 이날을 저의 파사일
이라 생각하고 지냈사온데 이것이 주께 가까워진 준비였으며
1만 8천일에 888일만 더한 날이었습니다. 그날 뒤 다시 37일
이 된 금년 1월 4일에 제가 마침내 아버지 품에 들어간 것은
37년을 허송한 표인가도 싶습니다(류영모 2001b, 361).
다석 류영모의‘회심’ 165
37년의 허송 끝에 아버지의 품에 들어갔다고 고백하고 있다. 다석
은 중생일로 일컬어지는 1월 4일에 있었던 자신의 회심 체험을 다음
과 같이 자세하게 진술한다. 중생체험이며 구경각의 체험이다. 기도
중에 맞이한 체험을 그는 진솔하게 적어내고 있다.
금년 1월 4일(제 18925일) 새벽에 아내가 치통으로 괴로워하던
자리 옆에서 빌었습니다. 낫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기도 중에
전 허공계가 마무인 것을 알고 마무를 헤치는 데는 성신 없이
는 불가능인 것을 믿었습니다. 게으름과 족한 줄 모름에서 몸
은 사람의 짐이 되고 육이 병의 보금자리가 된 것을 보고 게
으름을 제치고 모든 미련을 떼고, 앞만(뒤는 죽은 것이다)향해
내쳐서 가야 할 것을 보았습니다. 죽은 것을 지키고 있다가는
죽음에 그칠 것이요, 뒤에 죽을 것을 거두어서 앞의 삶에 양
식으로 이바지함으로써만 몸이면 성한 몸, 새 생명을 여는 몸
이 될 것을 보았습니다. 제칠 것은 곧 제치고 떼칠 것을 곧
떼치고 내칠 대로 내쳐가는 이기는 목숨 앞에는 병도 감히 침
범치 못할 것이요, 침범된 것도 퇴각 격멸할 것으로 믿어졌습
니다(류영모 2001b, 362).
이후 이어지는 내용에서 류영모는 지난 38년 동안의 신앙생활은,
38년 동안 베데스다못에서 기다리던 병자와 같이 병든 신앙이고 죄의
생활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신앙생활에는 ‘제나’가 온전
히 죽지 못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석은 중생체험을 하며 ‘제나’가
주변부로 밀려나면서 소멸하고 대신에 ‘얼나’가 자신의 중심부를 차지
하는 과정을 겪는다. 다석이 38년 동안 1차, 2차 회심을 하고 그에 덧
붙여 수행의 과정을 겪으면서 다석의 잠재의식에 존재하던 깨달음의
씨앗들이 이제 의식 속으로 떨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이 체험을 우
리는 잠재의식과 의식적 자아 사이의 분열되었던 자의식이 하나로 통
합되는 제임스의 회심론으로 이해할 수 있다. 52년 동안을 수도의 자
세로 살아오면서 다석 자신의 잠재의식속의 깨달음의 요소들이 점점
자의식으로 부상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려서 심어놓은 유교, 청년기에
읽은 도교, 불교의 사상들은 그를 다원주의적 기독교인으로 만드는데
일조하며 그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었고 여러 금욕적 수행들은 중생
체험을 하도록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의
166 종교연구 제74집 2호
내부에서 심화되고 진전하지 않는 순전한 급작스런 회심은 하나의 이
론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다석의 3차 회심은 그의 52년 삶의
부분들이 점차로 중심부로 이동하다가 한 순간에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4. 4차회심(1943년) - 신비체험
다석은 이러한 중생체험, 3차 회심을 경험한 후에 한 번 더 회심
을 한다. ‘자신과 절대자의 합일을 이루는 회심’의 한 유형으로 보아
4차 회심으로 정의한다. 1943년 53세 때이다. 다석은 북악 산마루에서
첨철천잠투지(瞻徹天潛透地)의 경험을 한다. 1943년 2월 15일 류영모
는 이른 아침에 일식을 보고자 서울 북악에 올랐다. 그 때 일종의 신
비체험을 경험하고 순간적으로 다음과 같은 시구를 짓는다:
瞻徹天 潛透地
申身瞻徹極乾元氣· (신신첨철극건원기·) 沈心潛透止坤軸力· (침심잠투지곤축력·)
뚫어 뵈오니 하느님 뚫어 잠겨 땅 가운데
몸이 하늘 까짓 것 솟구쳐 올라 뵈오니 하느님 아버지 얼님이
시오
맘이 사뭇 내리꽂히어 잠기니 땅굴대 중력(重力)점에 멈춘다
(박영호 2012, 404).
박영호는 위의 시에 다음과 같은 해석을 덧붙였다:
‘신신(申身)’은 미꾸라지를 벗고 용이 되는 것이다. 육신을 극
복하여 정신이 되는 것이다. 예수의 십자가가 바로 ‘신신’이다.
상대를 초월하여 절대에 통하는 것이 ‘철극(徹極)’이다. ‘철
(徹)’은 뚫린다(通)는 뜻이다. ‘극(極)’은 노자의 무극(無極)에서
가져온 것이며 절대를 뜻한다. ‘건원(乾元)’은 『주역』건괘에
나오는 말이며 하느님 아버지를 뜻한다. ‘기주(氣主)’는 성령의
님, 곧 얼님이다. ‘기(氣)’는『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의
다석 류영모의‘회심’ 167
기다.「·」는 주(主) 자다. 류영모는 님이라고 하였다.‘침심(沈
心)’은 마음이 잠긴다는 뜻이다. ‘잠투(潛透)’는 잠기어 뚫는다
(通)는 뜻이다. ‘지(止)’는 머물다. ‘곤축(坤軸)’은 땅의 굴대 곧
지축(地軸)이다. ‘역(力 ·)’은 지구의 중심점을 뜻한다. 지구 중
력의 중심점이다(박영호 2012, 405).
이 체험의 특징은 천(天), 지(地), 인(人) 삼재(三才)가 일치하여 하
나 되는 것에 있다. 따라서 이러한 체험은 신학적 범주인 ‘회개’로서
는 그 내용을 담아낼 수 없고 종교학 범주인 ‘회심’의 경계 안에서라
야 그 변환의 과정을 온전히 분석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개체에서
벗어나 우주의 소산이라는 우주 의식을 지니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뚫어 한 통속에 이르는 체험은 선도에서 높은 경지인 통기법(通氣法)
의 삼합(三合)단법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유사하다고 한다(김흡
영 2013, 23).
위의 류영모의 한시에서 첨철천(瞻徹天)과 잠투지(潛透地)가 반대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같은 말이다. 작게 보면 하늘과 땅이 다르게
보이지만 크게 보면 다 하늘이다. 지구도 무한 우주 속의 천체이다.
또 반대로 생각하면 무한 우주 속의 모든 천체는 물질이라 다 땅이다.
물질이 아닌 빔(空)이 하늘이다. 땅속으로 잠긴다는 것은 내 마음속으
로 들어가는 것이다. 물질을 초월하는 길은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박영호 2012, 406). 류영모 자신도 이러한 체험을 뒷받침 해주
는 내용을 다른 글에서 언급하고 있다. 류영모는 신비경험 즉 자신 속
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류영모 2006, 174):
차마 말 못할 사랑으로 천지가 창조되었고(認信仁三二)
그 가운데 벌려진 삼라만상은 참으로 좋아라(參差由來是)
그대 속에서 작은 아들인 내가 영원을 그리며 헤매는데(小子
募彷徨)
근본을 찾고 영원을 좇는 날개의 힘은 너무도 미약해(報本追
遠微)
생각하고 추리하여 영원에 바로 들어가는 길은(推抽到直入)
자기의 속알을 깨쳐 제 뿌리로 들어가는 길뿐이라(自本自根己)
모르면서 아는 체함은 어리석고 고집일 뿐(不知知痴固)
아무것도 모르는 자기임을 깨달아 신비의 아버지 만나리(知不
168 종교연구 제74집 2호
知神秘)
결국 하늘과 땅과 하나가 된 자신의 체험을 표현한 이 신비체험은,
천지인 삼재의 합일은, 다석에게 이론이나 철학 이전에 몸과 마음으로
체험되는 사건이고 실재였다. 천지인 합일의 철학과 논리는 우주와 인
간의 존재와 삶을 설명하는 것이기 이전에 삶의 실재이고 실천의 논
리였다. 따라서 그는 ‘하늘과 땅과 자신’이 하나임을 체험하고 ‘하나’
를 붙잡고 ‘하나’를 지향하였다(박재순 2008, 54). 다시 말해 북한산 마
루에서 받은 신비체험은 다석의 인생에 일관성을 갖게 한 영적인 사
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그는 중생체험 이후 다시 한 번 더 하느님을
깊이 체험했고 자신의 신앙을 확고히 하게 되었다. 다석의 1차 회심이
그리스도의 기준을 따라 살겠다는 결단이었다면 2차 및 3차의 회심을
거친 후 겪은 북한산 마루에서의 신비체험은 그를 하느님과 우주와
합일되는 지점까지 이르도록 안내하였다. 다석은 우주의 신비를 자신
의 내면 안에서 발견한다.
내속에서도 아름다운 천만 골짜기를 발견할 수 있다. 자기를
이기고 일어나서 자기의 고향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도착하면서 그 동안의 우주의 신비를 마음껏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죽음도 무서워하지 말고 단단한 마음으로 식색
을 끊고 자연 속에 들어가서 자기의 내면을 펼쳐 보면 그 속
에는 한없는 자유의 우주여행이 가능할 것이다(류영모 2001a,
31-32).
5. 제임스의 시각에서 다석의 신비체험 분석
신비체험에서는 종종 자기본위의 경향이 소멸되어 한계에 이르는
것이 신과의 합일을 즐기기 위해 이끌려가는 조건으로 보인다(Leuba
1925, 127). 다석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공간과 시간에 자신을
내맡기는 자신의 소멸을 경험한 후 절대자와 합일을 이루는 신비체험
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다석의 경험을 다른 상태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즉 ‘객관적인 학문의 틀을 적용하였을 때 다석의
다석 류영모의‘회심’ 169
경험을 신비경험으로 볼 수 있는가’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구
원을 향한 여정 속에서 다석이 경험한 신비경험을 제임스가 규정한
신비적 의식상태에 적용해 봄으로서 다석의 경험의 특질을 보다 명확
히 해보자. 이제 제임스가 언급한 4가지 특징(James [1902]2009,
461-464)을 가지고 다석의 신비체험을 가늠지어 보겠다.
a) 형언불능성 (Ineffability) - 제임스는 신비체험의 주체는 즉각적
으로 그러한 신비적 정신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그 경험에
대한 타당한 보고가 말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신비
적 정신상태의 특징이 직접적으로 경험되어야만 한다는 주장으로부터
기인한다. 이 상태는 다른 사람과 나누어 가질 수 없고, 다른 사람에
게 전이될 수도 없다고 한다. 이러한 특수성 속에서 신비적 상태는 지
적 상태보다는 감정적 상태에 더욱 가깝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신비
적 상태의 특질이나 가치를 그 어떤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명확하게 깨닫게 할 수는 없다고 한다.
a') 다석은 1943년 2월 5일(음력 계미년 설날) 이른 아침에 일식을
보고자 서울 북악에 올랐다. 그는 동녘에 솟는 해를 맞이하였다. 자줏
빛으로 변하던 안개 바다는 황금바다로 변하였다. 다석의 머리 위에는
황금빛 하늘이 덮여 있었고 류영모의 발아래는 황금빛 안개 바다가
펼쳐 있었다. 류영모는 황홀하다 못해 신비하였다. 류영모는 우주 속
을 자유자재로 나는 우주인이 되어 황금 빛깔의 하늘 높이 솟구쳐 허
공 끝까지 닿고 싶었다. 바로 그때 그는 별똥별처럼 스치는 시구가 떠
올라 그 시를 지었던 것이다. 이런 다석의 신비체험은 그 자신만의 체
험이었다. 그러한 경험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는 정확히 이해될 수
없는 자신만의 천지인 합일 체험이었다. 지적인 상태보다는 다분히 감
정적인 측면에 가깝다. 다시 말해 다석의 신비적 체험은 지적인 인식
만이 아니라 감정적인 인식까지 포함하고 있다. 즉, 다석은 신비상태
에서 어떤 지적인 원리나 지식을 깨달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사랑의
170 종교연구 제74집 2호
원천인 하느님, 즉 절대자 안에서 그와 하나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
지게 된 것이다. 대다수의 신비체험자들이 체험 이후 그 전과 전혀 다
른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이 때의 경험 때문이다. 이 때 개인적인 자
아는 그것보다 더 큰 신적인 의지로 바뀌고 그들을 행동으로 나아가
게 한다(김성민 2001, 186). 신비적 상태의 뚜렷한 특징은 신비가들이
일반적으로 그들의 경험을 서술하려 하고 내적 삶에 대한 위대한 문
학을 생산하려고 할지라도 그들 대부분이 그들의 경험이 형언 불가능
하다는 데 동의한다고 말하는데 있다(Coe 1916, 269). 북한산 마루에서
깨달은 그의 합일 체험은 타인에게 온건히 말로서 전부 전달할 수 있
는 내용이 아닌 신비적 체험으로 감정적 상태에 더욱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b) 순이지적 특성(Noetic quality) - 신비적 상태는 비록 감정의 상
태와 유사하다 하더라도 그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역시 지식의
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그것은 추론적 지성으로는 이해 불가능한 진리
의 깊이를 통찰하게 되는 상태라고 제임스는 말한다.
b') 다석의 체험 또한 시조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 한 것으로 보
아 다른 한편으로는 지식의 상태로도 설명이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개체에서 벗어나 우주의 소산이라는 우주의식을 지닌 것이다. ‘제나’
에서 솟아나 천부의 소산이라는 진리 의식을 얻는 것이었다. 범인이
범접할 수 없는 진리의 깊이를 통찰한 것으로 보인다.
다석이 신비상태에서 지각한 것은 일상적인 지각이 아니라 그것보
다 훨씬 더 생생하고 시공간을 초월하는 지각이다. 신비를 경험하는
사람들은 신비적 순간의 존재를 완전히 특별한 성질의 의식 상태로서
그리고 그 순간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심층적 인상을 불러내는 의식
상태로서 확신한다.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인 버크(R. M. Bucke)박사는
이러한 현상들의 좀 더 뚜렷한 특징을 ‘우주적 의식’이라고 불렀다.
다석 류영모의‘회심’ 171
우주적 의식이란 단순히 우리에게 친숙한 자아의식적 마음의
확장이나 발전이 아니라 자아의식이 고등동물이 소유하고 있
는 어떠한 기능과도 구별되듯이, 그 의식상태는 보통의 사람
이 소유한 어떠한 것과도 구별되는 한 가지 기능이 첨부된 것
이다(James [1902]2009, 482-483).
우주적 의식의 중요한 특징은 우주의 질서와 삶에 대한, 우주에
대한 의식이다. 그 우주의 의식과 더불어 개인을 새로운 존재의 지평
에 외롭게 세워두는, 즉 그를 거의 새로운 종(種)의 한 일원으로 만드
는 지적 계발이 생기게 된다. 이와 더불어 도덕적 고양의 상태, 표현
불가능할 정도로 의기양양하고 기쁜 느낌, 그리고 강화된 지성적 힘보
다 더 현저히 눈에 띄는 도덕적 감각 등이 주어진다. 따라서 이러한
우주적 의식은 일상생활을 넘어선 차원의 의식이므로 이러한 지적 의
식은 신비적 경험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James [1902]2009, 482-483).
그러한 의식은 가장 심한 절망의 순간에도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 그
러한 의식을 한번 경험하면 그것이 평생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다석
의 경우 이 때 얻은 우주적 의식은 그 나머지 생에서 결코 지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이것은 일반적 지식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실재의 깊이
있는 의미와 중요성으로 충만한 상태를 암시한다. 다석이 시로서 표현
한 그러한 깊이는 분명 그렇게 충만한 상태로 다석에게 다가왔고 제
임스가 말한 순이지적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c) 일시성(Transiency) - 신비적 상태는 오랫동안 지속될 수 없다.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30분 또는 한 두 시간 정도가 한계인 것
같다고 한다. 그 시간을 넘어서면 그 상태는 일상 속으로 사라져 버린
다. 종종 사라져 버린 후에 그 상태의 특성은 불완전하게나마 기억 속
에서 되살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상태가 다시 발생하면 그것은 인식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이 연이어 반복되면 그것은 계속 발전하여 내적
풍부성과 중요성을 느끼게 해준다.
c') 물론 다석의 신비체험 또한 그리 오래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172 종교연구 제74집 2호
북악산 마루에서 해가 떠오를 때 일시적으로 느낀 신비적 감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체험은 다석의 내면을 풍요롭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 생애에서 삶을 지탱할 때 그의 의식 속에
서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을 것이다.
d) 수동성(Passivity) - 신비적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주의를 집중하
거나, 어떤 육체적 수행을 통하거나 또는 신비주의 지침서들이 처방해
주는 다른 어떤 방법에 의해서처럼 처음에는 자발적 실행에 의해 촉
진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이 특정한 상태에 놓일 때 신비주의
자는 그 자신의 의지가 마치 정지되어 있는 듯이 느끼며 때때로 자신
이 어떤 상위의 힘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느낀다고 한다.
d') 다석의 신비체험의 핵심은 천지인 삼재의 합일에 있었다. 따라
서 일시적으로 자신의 의지가 정지되고 보다 큰 신비로운 힘에 의해
사로잡혔을 것이다. 신비상태에서 사라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의식
전반이 아니라 체험자의 자아가 가지고 있었던 특성들이기 때문이다.
이 특성들은 이 때 그것보다 더 큰 의식에게 자리를 물려주려고 뒤로
물러선다.(김성민 2001, 184) 신과의 합일을 이루는 신비적 경험의 절
정의 순간에는 자아의식이 사라지고 궁극적으로 만족하는 상태가 된
다(Coe 1916, 269). 자아의식이 사라지는 것은 신비체험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고 다석의 천지인 삼재의 합일 방식에서도 개체적 자아가 일
시적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자아를 규정하고 있던 것들이 신의
개입에 의해 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특히 하늘, 땅, 인간이라고 하는
삼재의 합일은 정통 기독교적 신비체험이라기보다는 동양의 사고와
의식세계를 수용한 동양적 방식의 그리스도교 신비체험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여기서 제임스가 언급한 수동성은 신비주의에서는 결정적인 순간
의 상태를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요소이다. 그 때 주의력의 집중은
점점 엷어지고 기쁨과 문제로부터 후퇴한다. 신은 적극적으로 개입하
다석 류영모의‘회심’ 173
고 인간은 뒤로 후퇴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신비주의를 경험하는
사람에 의해 능동성과 수동성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적용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Coe 1916, 272). 다석이 신비상태에서 개인의 특성이
사라지고 우주 또는 절대, 강력한 힘의 존재에 사로잡혔음은 이러한
일면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다석은 신비상태에서 저항할 수 없는 힘과
조우하며 우주와의 합일을 이룬다. 체험자의 느낌은 신적인 상태로 용
해되어 들어가고 그의 전 존재는 자아를 철저히 배제한 채 신의 일부
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Coe 1916, 272). 미약한 개인의 감정들이 다 사
라지는 것이다. 고양된 인간의 내면은 신의 존재에 자신을 내맡긴 채
그 속에서 머문다. 자신을 사로잡는 존재는 자신에 비해 너무 큰 존재
이기 때문에 그에게 자신을 내맡길 수밖에 없고 그 순간 자신은 지극
히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게 된다. 자신의 의식이나 이성으로서 그 순
간을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일어나는 커다란 울림에 자신이
이끌려져 가는 것이다. 다석도 개인적인 감정들이 사라지고 우주적인
큰 존재에 자신이 사로잡힘을 생생하게 경험했고 그 신비적 경험의
순간은 신에게 자신을 내맡기는 수동적인 순간이었던 것이다.
위와 같은 분석을 통해 보자면 다석의 신비체험은 다분히 제임스
가 분류해놓은 구분에 타당하게 들어맞음을 알 수 있다. 제임스가 수
많은 신비체험을 탐구하고 일정의 규격을 갖추어 놓은 틀에 잘 부합
하는 것이다. 다석의 이 신비체험은 그가 그 이후로 남과 다른 직관을
가지고 인간과 세상을 보는데 도움이 된다. 한편 한 번 경험한 그의
체험은 그의 남은 생애의 풍성한 버팀목이 되고 있음을 그의 생애에
서 볼 수 있다. 이제 다석이 경험한 네 번의 회심을 모두 검토하였다.
각 회심별로 중요한 특질들이 잘 드러났으리라고 생각한다.
6. 네 번의 회심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이동
앞서 나는 제임스의 이론을 검토하면서 중심부와 주변부의 의식상
174 종교연구 제74집 2호
태가 이동을 가져오면서 종교적인 변환을 할 때 그것을 ‘회심’이라고
부른다고 언급하였다. 따라서 다석의 네 번의 회심을 보면서 그 시기
마다 그의 중심부와 주변부에 있던 의식의 내용을 드러내고 그것이
회심을 겪을 때마다 이동하는 것을 주시하면 다석의 내적인 고뇌와
갈등, 변환을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러한 점을 염두 해
두면서 다석의 의식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내용들을 검토한다.
1) 1차 회심
어려서부터 유교사상을 익혔던 다석은 그의 잠재의식에 기독교를
동양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씨를 심어 놓았다. 그렇게 성장하며 다석
은 나라 잃은 설움과 신앙에 대한 갈급함으로 기독교에 입신하게 된
다. 이 지점에서의 다석의 의식의 중심부에는 정통 기독교가 자리하고
있었고 그의 배경과 주변부에 유교와 같은 동양적 사고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 당시 그가 술회하는 것처럼 그는 요한복음 3장 16절과 십
자가의 대속신앙, 바울로의 대속신앙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고
(박영호 2012, 131) 기존 기독교 공동체에 나가며 교회에서 신앙을 키
워나가는 정통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었다. 기독교에 입신하기 전 무
(無)신앙, 세속적이라고 하는 그의 중심적인 사고들은 우리가 살펴본
개인적이고 거대한 배경들 아래서 기독교로 입신함으로써 정통기독교
라고 하는 종교성으로 대체된다. 청소년기에 이르기 전, 첫 신앙을 가
지기전까지 그의 중심적인 부분을 차지하던 세속적 가치관은 주변으
로 물러나고 이제 자신의 삶에 절대자를 받아들임으로써 ‘구주예수’를
따르는 신앙이 그의 중심적인 의식을 지배하게 된다.
2) 2차회심
그가 2차 회심을 하게 된 것은 오산학교에서 톨스토이를 접했기
때문임은 우리가 앞서 살펴보았다. 동생 영묵의 죽음도 한 원인이었
다. 노자와 불경을 읽은 것도 한 몫 했다. 어려서 읽은 유교경전에 대
다석 류영모의‘회심’ 175
한 지식도 유교식으로 하느님을 이해할 수 있게 하였다.
기독교에 입신하고 정통신앙을 자신의 중심부에 놓았다면 이제는
그 주변부를 형성하던 비 정통의 사상과 유불선의 동양적 사상들이
그의 중심부로 파고들기 시작한다. 23살의 나이란 자신만의 자각적인
신앙을 세우기에 이른 나이다. 그러나 그는 기독교에서 받아들이고 있
는 정통의 신앙을 버리고 자신만의 독특한 사상체계를 세우게 된다.
그를 비 정통으로 보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의 독생자론에 있다.
사도바울이 예수를 박해해야 할 대상에서 구주로 섬기는 회심을 하였
듯이 다석은 하느님이 보내신 예수의 육신이 독생자가 아니라 예수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성령이 독생자라고 하는 신앙을 갖는 회심을 한
것이다. 하느님 예수가 아니라 ‘인간 예수’를 그의 스승으로 섬기게
된 것이다. 그의 중심부에 존재하던 ‘구주 예수’가 주변부로 물러나고
이제는 ‘인간 예수’가 그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다석의 회
심경험과 그의 변환을 추적하면서 가장 다석이 갈등하고 고뇌했던 모
습이 보이는 장면은 아마도 이 두 번째의 회심을 전후해서가 아닌가
생각된다. 교리로 무장된 정통의 집단을 떠나 개인의 경험만을 가지고
신앙체계를 세운다고 하는 것은 그의 생(生)에서 홀로 걸어가야 할 수
행자와 같은 여정이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석은 2차 회
심 이후 기독교를 떠난 것은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정통기독교로 돌
아가지 않는다. 자신의 관심밖, 외부에 머물던 ‘인간 예수’라고 하는
주변부의 의식은 이제 중심부 속에서 평생 그와 함께 지속된다.
3) 3차회심(중생체험)
52년 동안을 수도의 자세로 살아오면서 다석은 자신의 잠재의식이
점점 자의식으로 부상하게 되는 것을 느낀다. 어려서 심어놓은 유교사
상과 청년기에 읽은 도교, 불교의 사상들은 그를 다원주의적 기독자로
만드는데 일조하며 그의 중심부를 차지하게 되었고 여러 금욕적 수행
들은 중생체험 및 신비체험을 하도록 이끄는 동력이 되었다. 나의 견
해로는 또 많은 학자들에 의하면 어떤 회심도 점진적이지 않을 수 없
176 종교연구 제74집 2호
다.8) 자신의 내부에서 심화되고 진전하지 않는 순전한 급작스런 회심
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다. 따라서 다석의 3차 회심은 그의 52년 삶의
부분들이 점차로 중심부로 이동하다가 한 순간에 확장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신 앞에 무릎 꿇고 하느님의 품에 드는 주께로의 항복이 일
어난 것이다. 정통기독교에서 비정통으로 이동한 다석은 비정통의 모
습을 버리지는 않으면서도 하느님이라고 하는 절대자의 품에 안기는
기독교 내에서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였다. 이제 그의 중심부의 의
식은 전부 하느님으로 채워져 있으며 자기를 강조하던 자의식은 주변
의 의식으로 물러나게 된다.
4) 4차 회심(신비체험)
중생체험 이후 다석은 구경의 경지에 올라 삶에 있어서 깨달음의
경지와 평온함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다석에게 찾아온 4차 회심은 그
의 의식의 변환이 우주로까지 확장되었음을 보여준다. 다석의 잠재의
식은 이제 깨달음이라고 하는 평온의 상태가 지배했을 것이다. 다년간
의 수행과 여러 번의 회심이 그의 정신세계를 정화했을 것으로 본다.
구경각을 얻은 현자의 상태였을 것이다. 이제 다석의 의식의 변환은
이러한 평정상태를 중심으로 해서 우주로까지 확장한다. 따라서 자신
의 중심을 이루던 자아의식과 개인의식은 이제 소멸하고 절대자의 정
신이 내부로 들어온다. 결국 이제 다석의 의식의 중심부는 절대자가
자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제어하고 통제하려던 ‘자아’는
주변부로 물러났다. 이러한 체험이 바로 신비체험이었던 것이다. 비록
신비체험의 상태는 체험자에게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고 다석에
게도 그러했지만 신비체험 당시의 다석의 의식상태는 구경의 경지의
잠재적인 의식이 부화하고 절대자의 신성이 중심부를 차지하여 우주
8) 이런 입장을 취하는 학자들의 연구는 Edward Scribner Ames, The
Psychology of Religious Experience(New York: Houghton Mifflin
Company, 1910); Walter Houston Clark, The Psychology of
Religion(New York: Macmillan Company, 1958) 등이 있다.
다석 류영모의‘회심’ 177
와의 합일을 보게 했으며 자신의 ‘이기적인 자아’는 주변부로 물러났
을 것이다.
<표 1> 다석의 의식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이동
구분 년도 지향점 중심부 주변부 특징
1차회심 1905 기독교 정통기독교
(구주예수) 유불선 기독교입문
(청소년기회심)
2차회심 1912 비정통 비정통 기독교
(인간예수)
정통기독교
(구주예수) 비정통 기독교로
3차회심 1942 구경각 주 앞에 항복
다원성 세속성 중생체험
4차회심 1943 우주 신과의 합일 개인적 자아 신비체험
Ⅳ. 나가는말
나는 다석이 살아온 여정을 회심이라고 하는 범주를 사용하여 조
명해 보았다. 이러한 시도를 한 이유는 다석의 갈등과 고뇌를 통한 그
의 삶과 사상의 여정을 살펴보아 이전에 드러나지 않던 변환의 과정
을 추적해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삶을 평생 살아온 다석이
여러 차례 회심을 경험한 것은 그가 도달하고자 했던 삶의 경지까지
가기 위해 걸을 수밖에 없었던 삶의 과정들이다.
회심은 인간의 변화를 드러낼 수 있는 대표적인 종교적인 범주이
다. 변화를 겪는 종교인들은 누구나 그것이 신앙생활로의 진입이든,
기존의 종교전통을 떠나가든(逆회심), 회심의 경험을 한다. 따라서 회
178 종교연구 제74집 2호
심은 종교적 인간의 호모 렐리기오수스(homo religiosus)한 면을 밝혀주
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보다 폭넓은 정의를 적용한다면 회심은 특
정 종교 내에서 일어나기도 하지만 제도화되지 않은 신종교 운동, 유
사종교, 정치집회나 정신분석 상담실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이런 의미
에서 정통에서 비 정통으로, 다시 신의 품으로 그리고 절대자, 하늘,
땅, 우주까지 의식이 확장되는 다석의 경우는 이러한 폭넓은 정의 안
에서 분석하여 적용함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본고에서 논하지
는 않았지만 다석은 불교에서 자신의 ‘마음’으로 향하는 여정, 유교에
서 본래의 본성인 ‘성’(性)을 추구하는 것, 도교에서 ‘도’(道)로 회귀하
는 것 등이 모두 개별 전통의 특성을 대변하고는 있지만 한편으로는
동일한 지점으로 향하는 과정의 하나로 보고 자신도 유불선의 동양종
교의 사유를 적극 수용하였다. 나는 이러한 다석의 내적 변화가 기독
교로의 개종이나 회개의 용어로는 포괄할 수 없는 일종의 ‘동양적 회
심9)’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종교학적인 회심 범주 중에서도 여러 이론이 있지만 제임스의 이
론과 종교심리학자들의 이론을 해석의 틀로 사용하여 각 회심의 경우
마다 적용하려고 하였던 것은 이렇듯 다석의 사유가 기독교의 범주뿐
만 아니라 비 정통에서 동양의 삼재에 이르기까지 폭넓기 때문이다.
제임스는 크게 회심을 두 가지로 정의하였다. 첫 번째 관점인 자아의
투쟁과 분열로부터의 통합이라는 측면은 본고에서 많이 적용하지 않
았다. 그러나 제임스가 의식의 중심부와 주변부를 살피며 논한 회심정
의는 적용하여 분석해 보았다. 다석에게 있어 그 의식의 내용이 변화
가 이루어지는 것을 살펴볼 때 다석의 정신세계는 일평생 끊임없이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내부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였다고 생
9) ‘동양적 회심’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한 이유는 다석이 신을 중심으로만
자신의 고백을 이어나간 것이 아니라 동양 종교전통의 사유들을 자신의 의
식세계로 들여와 내면의 변화를 이어갔기 때문에 서구적인 입장, 기독교적
인 시각에서 보았을 때 적용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섰다고 생각하였기 때문
이다. 즉 동양인이 동양적인 환경 내에서 가질 수 있는 경험들이 다석의 변
화를 일으키는데 일조했다고 보아 이런 용어를 사용하였다.
다석 류영모의‘회심’ 179
각한다. 그 자신 결국은 하느님의 품에 들고 절대자와의 합일을 맛보
는 경지까지 이르렀던 것은 직선적으로만 이루어진 발전선상에 있지
않았다. 정통 기독교에 실망하며 자신의 경험을 확장하기도 하고 다시
신의 품으로 돌아오는 등 궁극의 경지에 다다르기 위해서 걸어야 했
던 여정이 그리 평탄하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다석의 회심이 진행되는 것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석의 의식의
변환과 확장이었다. 다석의 의식은 정통기독교 입문을 출발점으로 하
여(1차 회심) 자신의 체계를 세우기 시작하고 다원주의로 가는 기틀을
마련했던 비 정통으로의 회심(2차 회심)을 거친다. 비록 같은 기독교
의 테두리였지만 예수를 받아들이는 입장의 차이에 따라서 자신의 신
앙도 변화를 겪은 것이다. 2차 회심 후에 지속적인 수행으로 자신의
몸과 의식을 단련시킨 다석은 자신의 인격의 실존적인 변화를 맞이한
다. 이것이 3차 회심(중생체험)이다. 이제 다석은 일종의 구경의 경지
에 들고 오도송을 짓는다. 이제까지의 ‘제나’의 개체의식이 사라지고
‘얼나’로 거듭난 것이다. 다석의 의식의 확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3차회심이 있고 1년 남짓 지나 다석은 우주와의 합일을 경험한다. 4차
회심(신비체험)이다. 자신의 자아가 소멸되고 우주적 절대자인 신성이
자신을 휘감은 신비적인 체험을 한 것이다. 일시적으로나마 우주적 합
일을 맛본 다석에게 더 이상의 개체적 자아는 이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고는 다석의 회심을 네 차례로 규정하고 각각의 회심을 분석하
고 회심마다의 특징들을 살펴서 다석이 가졌던 삶과 사상의 변화를
입체적으로 조명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다석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
는데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그의 내면의 변
화들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고 그 각각의 변화들 속의 특징들을 살펴
보는 것은 다석의 생애를 재구성하여 다석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
는 중요한 측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주제어: 회심, 다석, 윌리엄 제임스, 종교심리학, 비 정통기독교,
180 종교연구 제74집 2호
신비체험, 얼나
투고일: 2014.5.6 심사종료일: 2014.6.1 게재확정일: 201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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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This article is about Dasuk Ryu Youngmo's conversion. Conversion is
a crucial religious category for human being called homo religiosus.
Dasuk devoted his whole life to the Christian God in his lifetime.
But he had a faith experience full of ups and downs and always
underwent the transformation. For this reason, this article paid
attention to the conversion which happened four times in his life.
Especially analyzing Dasuk's four times conversion, this study used
William James' conversion theory as the framework of analysis.
According to William James, our consciousness circulates between
the center and the surrounding and he regards it as a conversion
when the circulation is religious. In this respect the stream of
consciousness of Dasuk was examined in the process of each
conversion.
This article concluded that Dasuk have experienced conversion four
* He is a Ph.D. candidate of the Department of Religious Studies, Sogang
University. E-mail:
apjhw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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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es. Accordingly based on such fact I looked through characteristic
aspect of each conversion. In the first conversion Dasuk became a
Christian for the first time, which was defined and examined as an
adolescence conversion. In the second conversion, Dasuk moved from
orthodox Christianity to unorthodox Christianity, which was explained
from the James' perspective. In the third conversion, Dasuk was
reborn in the bosom of his God, which was traced thoroughly in his
inner side and its process. In the last conversion Dasuk went
through a mystery experience, which was applied to the feature of
James' mystery experience to get a scholarly approach and
legitimacy.
This article tried to understand Dasuk's inner world, his life, and
his thought merely. At each stage Dasuk transformed himself fiercely
and through the process he seemed to reach the ultimate stage.
Conclusively, each conversion was an inevitable process for him to
reach the ultimate stage.
Key words: Conversion, Dasuk, William James, Psychology of
religion, Unorthodox Christianity, Mystery experience,
ǒl-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