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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정치

북한미술연구사 -1979~2010*-홍지석/단국대

본격적인 북한미술 연구의 출발점은 1979년 이일이 연구집필 책임을 맡
아 국토통일원에서 낸 보고서 “북한미술”이다. 이후 30년간 진행된 북한
미술 연구는 대략 10년 주기로 변화를 보인다. 1980년을 전후로 한 시기
에 처음 시작된 북한미술 연구는 이른바 냉전적 접근의 테두리에 갇혀
있었으나 1990년을 전후로 탈냉전적 접근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
년 이후에는 1990년대의 유산을 토대로 북한미술에 대한 객관적, 실증적
연구가 본격화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북한 미술연구는 큰 주제에서
작은 주제들로 다양하게 분화되었다. 지난 30년간 북한미술연구자들이
집중해 온 큰 주제들로는 ‘소비에트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북한미술의
관계성’, ‘리얼리즘과 민족형식의 관계’, ‘주체사상과 북한미술의 관계’,
‘조선화(또는 한국화)의 발전적 계승’, ‘개성(작가)과 익명성(집체)’과 같
은 문제들이 있다. 최근 연구에서는 북한미술 일반에 대한 논의보다는
역사적 관점에서 시기별 양상을 논의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주체미술의 개념과 실제”라는 형태의 제목보다는, “1950, 60년대 북한
미술과 정현웅,” “1960~70년대 북한 주체사실주의 회화의 인물 전형성
연구” 같은 제목을 택한 논문이 늘어나는 추세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최근의 연구는 주체미술이 구체화되는 1970년대 이후보다는 그 이전,
즉 1950~1960년대 북한미술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



* 이 논문은 2008년 정부(교육과학기술부)의 재원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
아 수행된 연구임 (KRF-2008-411-J03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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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은 초기 북한 미술에는 아직 교조화되기 이전의 역동성을 찾아볼 수
있고 이러한 역동성이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주요 월북미술가들의 월북 이후 행적에 대한 관심에서 북한미술
연구가 진행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북한미술 연구가 여전히 양적으
로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특히 몇몇 논자들을 제외하고 이 글에서
언급한 다수의 연구자들이 북한미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
지 않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다.


주제어: 북한미술, 주체미술, 민족형식, 사회주의 리얼리즘, 북한미술연구


1. 서론
이 글은 본격적인 북한미술연구가 시작된 1979년 이후 30여 년 간
우리 미술계에서 진행된 북한미술연구를 통시적인 관점에서 단계적
으로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연구’라고 칭했지만 여기서 검토
될 글들은 ‘학술논문’ 내지는 ‘학술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한 보고서,
비평, 대중 교양서들이 상당수다. ‘학술적’ 연구인가 아닌가가 북한미
술 연구 현황을 논하는 데 기준이 된다면 미술 분야에서는 단지 몇
편의 논문과 단행본만이 남게 될 것이라는 현실적 문제도 있거니와1)
그렇게 남는 학술적인 연구성과들 역시 비학술적인 다수의 글들과 분
리하여 그 의의를 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북한미술연구
의 사적 흐름을 개관하는 이 글에서 그러한 비학술적인 글들을 아우


1) 양현미, “북한미술 연구의 현황과 과제,” ?한국예술종합학교 논문집?, 제3권
(2000), 91쪽.
북한미술연구사 9


르는 것은 불가피하다. 북한미술연구사를 다룬 기존의 선행 연구로는
양현미의 “북한미술 연구의 현황과 과제”(2000)가 있다. 이 논문은 통
계적/시대적/유형적 접근방식을 택해 1970년대에서 2000년까지 북한
미술연구사를 다양한 관점으로 조명하고 있다. 이 논문의 장점은 성실
하게 기존의 관련 자료들을 수집, 정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
다. 다만 양적 접근에 치중하다 보니 질적 접근이 크게 약화된 것은
이 논문의 한계라 할 것이다. 이 밖에 1979년 이후 발표된 중요 북한
미술 연구성과를 열거한 최열의 서술도 중요하다.2) 이 글은 양현미와
최열의 선행 연구에 기초하여 여기서 다루지 못한 2000년대 후반 이
후 연구 성과들을 보충하는 한편 질적 접근을 택해 텍스트의 내용과
구조를 구체적으로 검토하는 방식을 취하고자 한다. 이런 접근을 취함
에 있어 북한연구의 전개를 198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냉전적 접근
으로부터 탈냉전적 접근으로의 이행으로 이해한 이종석의 논의(2000)
는 큰 보탬이 된다. 특히 북한 연구가 점차 실사구시를 지향하는 객관
적, 실증적 접근으로 발전해갔다는 이종석의 논리는 이 논문의 전체
구성에 참조가 됐다. 1) 냉전시대의 북한미술연구(1980년 전후), 2) 북
한미술연구의 탈냉전적 방향전환(1990년 전후), 3) 최근의 연구동향
(2000년 이후) 순으로 전개되는 이 논문의 구성은 이종석의 논의에 기
초한 것이다.
이 글에서 다루고자 하는 바는 분단/전쟁 이후 북한에서 전개된 미
술의 흐름을 남한의 미술연구자들이 어떤 방식으로 다루고 이해했는
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논문은 모든 관련 문헌을
소개, 열거하는 것보다는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문헌자료들을 중심으


2) 최열, ?한국현대미술의 역사?(파주: 열화당, 2006), 30~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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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전반적인 논조와 접근방식의 변화를 짚어보는 데 주력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또한 월북작가 연구현황을 제한적으로만 검토하게 될 것을
밝혀두고자 한다. 즉 이 글은 월북작가들의 월북 이후의 행적을 검토
한 논의들만을 다루게 될 것이다. 월북작가 연구사는 그 자체 북한미
술연구에서 비중 있게 다룰 중요한 주제지만 별도의 논문으로 발전시
킬 만큼 큰 주제여서 소략해서 다루기 어렵다는 문제도 있고 또 해방
전/해방기 이들의 활동상을 다룬 연구성과들을 양현미의 논문에서처
럼 북한미술연구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2. ?북한미술?(1979): 냉전시대의 북한미술 연구
본격적인 북한미술 연구의 출발점은 1979년 이일이 연구집필 책임
을 맡아 국토통일원에서 낸 보고서 “북한미술”이다.3) 여기에는 이일,
오광수, 유준상, 윤명로가 각각 맡아 쓴 4편의 글이 실려 있다. 발표된
시기, 그리고 발표지면을 감안하면 이 글들은 정부의 대북정책 필요성
을 충족시키기 위한 정책지향적 분석에 속한다고 할 것이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비판, 즉 “편협한 이데올로기적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자의적으로 왜곡된 북한미술의 상을 구축하는 글” 또는 “북한미술을
파악하는 일정한 시각을 전제로 해놓고 자료가 공급되고 연구가 진행
되었던 것”이라는 비판4)은 불가피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글들에서 채
택된 접근방식은 이후 북한미술 연구에 중요한 형식 모델을 제공했을


3) 양현미, “북한미술 연구의 현황과 과제,” 93~94쪽.
4) 이영욱‧최석태, “주체미술의 개념과 실제,” 김문환 편, ?북한의 예술?(서울: 을유
문화사, 1990), 43쪽.
북한미술연구사 11


뿐만 아니라 여기서 제기된 문제의식이나 주제 가운데 상당수는 현재
의 북한 미술 연구에도 여전히 유의미하다. 어떤 의미에서 이후의 연
구는 1979년 판 “북한미술”에서 노골적인 반공, 반북 경향성을 가급
적 배제하고 거기서 제기된 논제들을 객관화, 이론화, 또는 재평가하
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다. 4편의 글 가운데 이일의 글은 ‘사회
주의적 사실주의’의 관점에서 북한미술을 비판한 것이고 오광수의 글
은 ‘민족 형식’의 관점에서, 유준상의 글은 ‘개별과 보편’의 관점에서,
윤명로의 글은 ‘기법과 양식, 장르’의 관점에서 북한 미술을 비판한
글이다.
먼저 이일의 글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실상”을 보자. 이
글은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비판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가 보기
에 1932년 소비에트미술가조직동맹 제1차대회에서 공식화된 사회주
의적 사실주의는 “형식면에 있어서는 기존의 아카데미즘을 무비판적
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그 틀에다 사회주의적 내용의 어떤 특정 주제
와 거기에 따르는 특정 대상을 뜯어 맞춘 데” 불과하다.5) 이일에 따르
면 북한의 미술은 소비에트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받아들이되 그
것을 한층 교조화, 획일화한 것이다. 더 나아가 그가 보기에 북한 미술
은 그것을 김일성 유일사상, 개인 우상화로 물들였다.6) 특히 이일은
북한에서 내세운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이라는 테제를 중
점적으로 비판한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에서는 1960년대 이후 민족적
형식의 본보기로 조선화를 내세우며 계승해야 할 조선화의 화법적 특
성으로 “힘 있고 아름다우며 고상한” 또는 “선명하고 간결한” 이라는


5) 이일,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실상,” ?북한미술?(국토통일원, 1979),
12쪽.
6) 위의 글,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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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의 평가를 내건다.7) 이에 대해 이일은 “힘 있고 아름답고 고상
한 것”, “선명하고 간결한 것”이 어떻게 독자적 미술형식, 또는 민족
적 형식이 될 수 있을지 묻는다. 그가 보기에 전통은 “지역적 시대적
그 밖의 여러 가지 여건에 의해 끊임없이 변하며” “어떤 공통점을 지
니고 있으면서도 획일적이거나 단일적일 수 없는”8) 까닭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성의 다양하고 다채로운 표현은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 그리고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라는 교조 속에 획일
화 된 것으로 평가된다.9) 또한 그는 다음과 같은 북한미술계의 주장,
곧 ‘다양한 주제영역’을 탐구하며 ‘다양한 계층의 주인공들을 형상화’
해야 한다는 주장이 한정된 주제에 국한되어 진행된 북한미술의 현실
에 비추어 모순적이라고 비판한다. 그의 글은 김일성을 형상화한 북한
회화를 프랑스 아카데미 화가 메소니에의 나폴레옹 그림에 대응시켜
비판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영웅적 항일투사 김일성도 필경은 메소니에의 인형극 꼭두각시 이상
의 것이 못된다. 그리고 비단 김일성뿐만 아니라 북한미술의 모든 작품
나아가서는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자체가 미술을 그네들의 이데
올로기에 의해 꼭두각시 화된 삽화, 회화 이전의 도해로 전락시키고 있
는 것이다.10)


7) 김일성, ?우리의 미술을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은 혁명적인 미술로
발전시키자?(평양: 사회과학출판사, 1974), 5~6쪽.
8) 이일, “북한의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의 실상,” 20쪽.
9) 위의 글, 22쪽.
10) 위의 글, 33쪽.
북한미술연구사 13


1979년의 글에서 피력된 북한미술에 대한 이일의 비판 논리는 이후
1990년에 서성록과 함께 쓴 “북한의 미술”에서 좀 더 구체화된다. 여
기서 이일은 북한미술의 기본 관점이 내용 우위의 ‘내용주의’에 있으
며 실질적으로 형식은 형식으로서의 독자성을 잃고 있다고 평가한
다.11) 또한 그는 민족적 특성에 바탕을 두어야 할 민족적 형식을 사실
주의에서 찾는 북한미술 ― 김일성 ― 의 논리가 본래부터 모순적이라
고 주장한다. “그 사실주의라는 것은 그것이 설사 현실의 반영 또는
현실의 재현을 의미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민족적인 형식일 수는 없는
것”12)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는 또한 여기서 북한미술을 아카데미
즘으로 간주했던 1979년의 논리를 확장해 북한미술을 ‘사회주의적 사
실주의 아카데미즘 미술’로 규정한다.13)
한편 오광수의 글 “한국미술의 전통양식과 북한미술-특히 조선화
를 중심으로”는 ‘민족적 형식과 사회주의적 내용’ 테제 가운데 ‘민족
적 형식’ 문제에 초점을 두어 전개된다. 특히 이 글은 북한에서 민족
적 형식에 가장 상응한 것으로 간주한 ‘조선화’ 문제를 집중 검토하고
있다. 오광수는 먼저 북한에서 ‘조선화’가 부각되고 ‘조선화 담론’이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살핀다. 그에 따르면 1940~1950년대에 북한
에서 조선화는 전래의 동양화 양식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다. 하지만
1954년의 김일성 교시 ― 조선화를 발전시킬데 대한 강령적 교시와
1965년 교시 ― 조선화를 채색화로 발전시킬데 대한 교시 ― 를 전후
로 사정이 바뀐다. 오광수는 1965년의 교시에서 피력된 “조선화는 채
색화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요구가 전통의 전면적인 굴절을 가져왔다


11) 이일‧서성록, ?북한의 미술?(서울: 고려원, 1990), 19쪽.
12) 위의 책, 38쪽.
13) 위의 책,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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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평가한다. 그가 보기에 진정한 회화전통은 채색화에 있었다는 식의
이론 강화는 회화형식의 변증법적 추이로서 새로운 형식의 유도가 아
니라 김일성 개인의 극히 말초적인 심미안과 기호에 의한 것에 불과
하기 때문이다.14) 오광수에 의하면 1965년 교시에서 드러난 김일성의
채색화 개념은 “연하고 부드럽고 자극성이 심하지 않은 그러면서 힘
있고 아름답고 고상한 미감을 자아내는 것”이며 이것이 북한 조선화
의 실천에서 “필법과 준을 무시하고 몰골진채에만 의존”하는 방식으
로 귀결됐다. 하지만 이렇게 필법과 준을 무시하는 태도는 오광수가
보기에 동양화 고유의 조형적 요체를 무시한 이질적 조형에 지나지
않는다.15) 오광수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문제는 조선화의 논리가 여
타 미술 장르로 확산, 강요되어 각 장르의 표현적 특질이 제거되고
모든 장르의 회화가 조선화류로 획일화된다는 문제다. 그가 보기에
이 모든 상황은 “전통의 왜곡과 그로 인한 민족 고유의 감정과 정서의
파괴”16)를 가져온다.
한편 유준상의 글은 “북한미술에 있어서의 개성의 저각현상”이라
는 제목에서 이미 명시적으로 드러나듯 북한미술의 획일적, 전체적인
양상을 비판한다. 예컨대 북한에서 “유화와 수채화와 판화라고 하는
매체가 똑같이 조선화의 채색화를 닮아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한 영
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에 대해 유준상은 이처럼 “하나의 전체를 위
해서 각 장르가 지니고 있는 표현상의 특질이 없어지고 있음”은 “그
와 같은 장르에 종사하고 있는 개인이나 개성의 의미가 없어지고 있
14) 오광수, “한국미술의 전통양식과 북한미술-특히 조선화를 중심으로,” ?북한
미술?(국토통일원, 1979), 71쪽.
15) 위의 글, 83~85쪽.
16) 위의 글, 90쪽.
북한미술연구사 15
음을 말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17) 같은 맥락에서 유준상은 1970년
대 이르러 북한에서 집체작이 부각되는 양상 또한 ‘개성의 저각현상’
으로 파악한다. 그가 보기에 집체작은 “작품만을 있게 하고 작가는
없애버리는 방법”18)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는 자칫 ‘개별’
만을 강조하고 ‘보편’을 배제하는 논리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사실을
인식해서였는지 유준상은 북한의 전체주의 체제에서 보편화(획일화)
는 “하향적(下向的)인 비개성 강요”인 데 비해 우리가 희망하는 보편은
“각개의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건설적으로 참여하는 원숙한 인식으
로서 개성의 포기” 즉 “우리의 삶에 뿌리박은 사회화”가 되어야 한다
고 주장한다. 끝으로 윤명로의 글은 북한미술의 주제와 내용, 용어,
양식, 기법을 비판적인 관점에서 열거한 후 그러한 기법이나 양식이
김일성 유일사상과 우상화를 위한 하나의 목적화로 전락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견지에서 윤명로는 “북한의 미술은 엄밀한 의미에
서 존재하지 않고”, “예술의 세계성이라는 인류공통의 이상에서 영원
히 탈락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한다.19)
이상에서 살펴본바 1979년 판 ?북한미술?에는 우선 반공, 반북 이
데올로기 편향의 노골적인 비판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그러한 비판의
전거가 되는 사실 서술과 논자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확실히 후대
연구와 관련하여 시사하는 바가 많다. 이를테면 여기서 제기된 다음과
같은 문제들, ‘소비에트의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북한미술의 관계성’,
‘리얼리즘과 민족형식의 관계’, ‘주체사상과 북한미술의 관계’, ‘조선
17) 유준상, “북한미술에 있어서의 개성의 저각현상,” ?북한미술?(국토통일원,
1979), 104쪽.
18) 위의 글, 106쪽.
19) 윤명로, “북한미술의 기법과 양식,” ?북한미술?(국토통일원, 1979), 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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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또는 한국화)의 발전적 계승’, ‘개성(작가)과 익명성(집체)’과 같은 문
제들은 이후 북한미술 연구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진 주제다. 물론 이후
연구가 진행되면서 1979년 “북한미술” 논자들의 해석은 다양한 방식
으로 계승/재평가/수정됐다. 이는 1979년 저자들 자신의 글에서도 확
인할 수 있다. 예컨대 1995년 ?한국현대미술사? 개정판 1쇄에서 오광
수는 1979년 자신의 논의를 따라 “조선화로 명명된 저들의 민족형식
이란 채색을 근간으로 한 몰골기법으로 특징지어진다”고 주장하면서
도 그것을 극력 비판하던 1979년의 입장을 자제하고 북한에서 하나의
양식으로서 조선화가 성립된 상황에 주목한다. 이렇게 북한에서 하나
의 양식으로서 조선화를 성립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1995년의 오광수
에게 아무런 양식적 특수성이나 이에 따른 연구나 논의가 없이 단순
히 주체성이라는 수사에 걸맞은 용어로서 차용되고 있는 (남한의) 한국
화에 비추어 긍정적인 단면으로 보인다.
“과연 채색화가 우리 본래의 전통적 양식인가 하는 논의와, 화사하고
부드럽고 고상한 색채만이 전래로 한국인이 좋아하는 색채 체계인지에
대한 검증은 일단 차지해놓고 또 여기다 내용에 있어 천편일률적인 일
인우상화로 집약되는 경직성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양식으로서 조선화
를 성립시키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한 단면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
다.”20)
1979년 “북한미술” 이후 북한미술 연구는 한동안 정체 상태에 놓이
게 된다. 이러한 상황은 1987년 이후 급격히 달라진다. 이 시기 새로
20) 오광수, ?한국현대미술사?(파주: 열화당, 1995), 275쪽.
북한미술연구사 17
운 세대의 비평가, 이론가들은 보다 진보적 관점에서 전통/민족 미술,
소련 및 동구권의 사회주의 사실주의, 그리고 북한의 (주체)미술을 진
지하게 검토했다.21) 이제 이하에서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3. 북한미술 연구의 탈냉전적 방향전환: 1990년 전후
1980년대 말에서 1990년대 초에 북한미술연구에는 큰 변화가 있었
다. 일단 북한미술 연구자와 연구성과가 크게 증가했다는 점에 주목해
야 할 것이다. 여기에는 물론 탈냉전의 시대 흐름이 큰 영향을 미쳤
다.22) 또 7·7선언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 전환도 빼놓을
수 없다. 북한미술 연구에 국한시켜보자면 1988년의 월북작가 해금
조치가 중요하다. 또 제한적인 형태로나마 북한미술 관련 자료들의
접근가능성이 확대된 것도 중요하다.23) 이러한 분위기에서 미술 분야
에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냉전적 북한연구에 반기를 든
일련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이종석이 지적한 대로 이러한 움직임은
초기에 ‘북한바로알기운동’으로 불리는 진보적 운동과 일정하게 궤를
같이하며 발전했다.24) 1989~1990년 절정에 달한 진보적인 관점에서
의 북한미술연구에는 ‘학문으로서의 실사구시를 우선시하는 경향’과
21) 양현미, “북한미술 연구의 현황과 과제,” 95~97쪽.
22) 이종석,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서울: 역사비평사, 2000), 89쪽.
23) 일례로 ?역사비평? 1989년 봄호, ?가나아트? 1989년 5~6월호에는 다수의
북한미술작품들이 원색도판 형태로 소개되었다.
24) 이종석, ?새로 쓴 현대북한의 이해?, 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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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적 운동의 입장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경향’이 뒤얽혀 있었다.25)
이하에서는 이 시기 북한미술 연구를 진행한 주요 논자들의 논리를
검토해보기로 하자.
먼저 윤범모는 당시 탈냉전의 시대 변화에 주목한다. 그에 의하면
이 시기 국제 질서의 재편성과 국내의 진보적 분위기로 인해 냉전논
리에서의 일탈을 꿈꾸는 것이 가능해졌다. 냉전논리에 대한 대안으로
그가 내세운 것이 바로 ‘제3세계적 시각’이다. 그가 보기에 ‘제3세계
적 시각’은 냉전 논리에 따라 상호 이질성을 부각시키는 것이 아니라
강대국 중심의 세계질서의 피해자가 갖는 역사인식을 부각시킨다.26)
냉전체제의 산물인 분단과 이데올로기의 대치상태는 모순과 갈등만
을 낳았으며 서로 가장 잘 알고 있어야 할 남북한이 무조건적 대치상
태에 이르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신사고에 따른
화해와 민족동질성 확보를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는 것이 이 시기 그
의 견해다. 그렇다면 북한의 사회체제와 예술문화의 특성을 살피는
작업은 통일 조국을 향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27) 민족의 동질성 확보
는 무엇보다 상호 실체 확인이며 서로간의 참모습을 모르고서는 어떤
대화나 정책도 실현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28) 이런 관점에서 집
필된 “북한의 문예정책과 미술이념”(1990)에서 그는 북한 문예정책의
3대 원칙으로 당성·노동계급성·인민성을 열거하고 그것이 주체사상
과 결합되는 양상을 관찰한다. 예컨대 그는 북한 문예이론이 내세우는
25) 위의 책, 94쪽.
26) 윤범모, “제3세계 미술의 재인식,” ?제3세계의 미술문화?(서울: 과학과 사상,
1990), 43쪽.
27) 위의 글, 43쪽.
28) 윤범모, “북한의 문예정책과 미술이념,” ?제3세계의 미술문화?(서울: 과학과
사상, 1990), 119쪽.
북한미술연구사 19
‘종자론’이나 ‘속도전’을 주체사상의 예술적 구현을 위한 창작원칙의
상호보완적 개념으로 이해한다.29) 더불어 그는 북한미술에서 조선화
가 부각되는 양상에도 주목한다. 그의 관찰에 따르면 북에서 정리한
조선화는 채색에 의한 경쾌한 화면의 풍경 혹은 밝은 표정의 인물화
가 주종을 이룬다. 이것은 과거 양반 문인화가들이 수묵화 위주로 비
현실적 소재에 탐닉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다.30) 이에 대한 윤범모의
평가는 유보적이다. 한편으로 그 부드러운 필치의 섬세한 색감은 관객
에게 친근감을 주고 이해의 편의를 제공하여 공감대를 넓힐 수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렇듯 지나치게 밝은 표정, 한결같
이 명랑한 분위기는 자연스러운 현장성을 지우는 경향이 있다.31)
“북한의 문예정책과 미술이념”을 발표한 몇 년 후에 윤범모는 다시
“북한미술의 특징과 조선화의 세계”(1993)를 썼다. 이 글에서 그는 ‘제
3세계적 시각’이라는 개념을 빼고 그것을 ‘시각의 재조정’으로 대치
한다. 비판에 앞서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독특한 사회 체제의 산물이라는 것을 감안하지 않고 북한
미술을 선입견에 따라 무조건적으로 외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는 생각이 전제돼 있다.32)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그는 북한 미술의
특성으로 다음 몇 가지를 열거한다. 우선 북한에서 미술은 한 개인만
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즉 그것은 “이기주의
적, 사적 세계의 산물이거나 대중과 유리된 고급상품으로서 미술이
29) 위의 글, 126쪽.
30) 위의 글, 127쪽.
31) 위의 글, 129~130쪽.
32) 윤범모, “북한미술의 특징과 조선화의 세계,” ?북한연구?(대륙연구소, 1993년
여름), 재수록 ?한국근대미술-시대정신과 정체성의 탐구?(파주: 한길아트,
2000), 462쪽.
20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아니다”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특성을 북한미술의 긍정적 요인이
라고 해석한다.33) 그러나 다른 부정적 요인들은 그 긍정적 요인을 훨
씬 넘어선다. 가장 큰 문제는 미술을 지나치게 혁명 도구로만 간주하
여 이데올로기의 포로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또한 작가의 창의성에
대한 제도적 구획정리라든가 사실주의에 대한 지나칠 정도로 협애한
해석, 그리고 전통에 대한 창조적 계승 작업의 부진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34) 이 글에서 윤범모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채색화 위주로 전
개된 북한 조선화의 가치 평가 문제다. 이것은 1970년대에 이미 양적,
질적으로 성장한 조선화가 북한 미술작품 가운데 압도적인 비중을 차
지한 사실을 감안하면 분명 중요한 논제다. 윤범모에 따르면 북한 조
선화의 문제는 김일성(그리고 김정일)이 내세운 ‘선명하고 간결한 전통
화법’이 조선화의 형식적 특성을 규명하는 유일한 척도가 됐다는 점
이다. 그는 이렇게 묻는다.
어떻게 선명성과 간결성이란 특징에만 얽매여 삶의 다양한 측면을
조형적으로 소화시키려 하지 않았을까. 어둠이 없는 밝음, 비판이 없는
33) 위의 글, 479쪽. 당시 윤범모는 소수의 천재 미술가의 창작물이 아니라 익명의
집단(공동체) 창작에서 삶과 소통하는 새로운 미술의 대안을 찾았다. 예컨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보자. “칠레의 라모나 파라대의 벽화는 멕시코의 벽화운동
과도 차별성을 갖고 있다. 멕시코의 경우는 특정작가의 주도하에 어느 정도
개인의 명망성이라든가 사적인 세계의 여지를 두고 있었다. 그러나 라모나 파
라대의 경우는 제작자의 명망성과는 관련이 없는 집단창작의 성과물이다. 그렇
듯 철저한 익명성은 곧 개성이니 작가세계니 하는 미명을 앞세운 상품미학적
접근을 차단한다. 특정인의 명예나 치부 등 이른바 세속적 이들과는 관계를
맺지 않고 순수한 의미에서 자신의 발언을 공공장소에 진솔하게 표현한 조형물
이 그만큼 설득력과 함께 대중적 호응도를 받았기 때문이다.” 윤범모, “제3세계
미술의 재인식,” 53쪽.
34) 윤범모, “북한미술의 특징과 조선화의 세계,” 481~482쪽.
북한미술연구사 21
체제순응적 창작이란 무엇인가. 부실한 기반을 연상하게 한다. 시각의
다변화가 논의의 관건이 된다.35)
원동석은 윤범모와 유사한 관점에서 그러나 좀 더 부정적인 관점에
서 북한미술에 접근한 논자다. 그는 1989년 ?실천문학? 여름호에 “북
한의 주체미술 이론과 창작”을, 1990년에 윤범모가 편집한 ?제3세계
의 미술문화?에 1989년의 글과 거의 유사한 견지에서 “북한의 주체사
상과 주체미술”이라는 글을 발표했다. 그는 후자의 글에서 “북한미술
을 알려면 북한 사회를 알아야 하고 북한 사회를 알려면 북한 사회를
움직이게 하는 이념체계의 예술론을 알아야 한다”36)는 전제 하에 북
한 주체사상과 주체미술의 상관성을 검토한다. 그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열거된다. 먼저 북한미술은 (서구의) 추상화를 내용과
분리된 형식주의 미학으로 비판한다. 반대로 내용은 강조될 것이다.
예술의 사상성을 극도로 강조하는 북한 미술은 주제와 내용을 부각시
킨 내용주의미학으로 규정될 수 있다. 한편 북한 미술에서 가장 두드
러진 특성은 조선화의 강조다. 특히 문인 취향의 수묵화를 배제하고
채색화를 복권시킨 것은 주목을 요한다. 그런데 원동석이 보기에 문제
는 조선채색화가 지배적인 경향이 되어 서양 유화, 더 나아가 다른
35) 윤범모, 위의 글, 482쪽. 좀 더 최근에 쓴 글에서도 이러한 논조는 유지된다.
예컨대 “조선화-선명성과 간결성, 함축과 집중의 세계”(2005)에서 윤범모는
조선화의 ‘화사한’ 세계가 어둠을 방기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인간
사는 항상 밝지 않다. 밝은 면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도 어두운 채색이나 다채로
운 표현기법이 요구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윤범모는 북한 미술이 수묵의
장점을 방기한 것을 안타까워한다. 윤범모, “조선화-선명성과 간결성, 함축과
집중의 세계,” ?한국미술에 삼가 고함?(서울: 현암사, 2005), 271쪽.
36) 원동석, “북한의 주체사상과 주체미술,” ?제3세계의 미술문화?(서울: 과학과
사상, 1990), 131쪽.
22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미술 장르들의 독단적 준거틀로 된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종속적 위
치로 전락한 느낌마저 보인다”37) 이런 관찰에 의거해 원동석은 북한
미술이 형식과 기법의 단일성에 매몰됐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판단은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자문으로 이어진다. “예술의 형식과 내용의
변증법적 발전 단계에서 북한미술은 내용편중에 치중함으로써 형식
발전의 탄력성을 잃고 있다함은 남한 쪽 시각의 오해나 편견일까?”38)
이러한 비판적 시각은 북한미술의 화사한 화면과 밝은 표정에 대해서
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원동석이 보기에 그것들은 체제긍정의 현실
주의이며 또 다른 의미의 ‘제도권 미술’이다.39) 1989~1990년에 북한
미술에 관해 글을 쓴 논자들은 대부분 북한 미술을 직접 접해 보지
못한 상태에서 글을 썼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이들의 논지 전개나 평가
는 어떤 한계가 있다. 이는 앞서 다룬 윤범모나 원동석도 분명히 인식
하고 있었다. 유홍준은 이보다 적극적인 견지에서 그러한 한계 때문에
북한 미술에 대한 논의가 ‘평가’가 아니라 일단 ‘이해’에 초점을 두어
야 한다고 주장한 경우다.40) 그는 “북한미술의 사적 전개와 그 이
해”(1990)에서 역사적 관찰 방법을 적용하여 북한미술의 단계별 전개
과정을 고찰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간행된 ?북한현대미술사? 같은 저
작이 부재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는 북한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가 펴
낸 ?조선전사?의 시대 구분에 준한 미술 분야 논의를 정리하고 이를
다른 글들을 참조하여 보충, 해제하는 방식으로 이 글을 썼다. 이에
37) 위의 글, 142쪽.
38) 위의 글, 142쪽.
39) 위의 글, 143쪽.
40) 유홍준, “북한미술의 史的 전개와 그 이해,” 김문환 편, ?북한의 예술?(서울:
을유문화사, 1990), 14쪽.
북한미술연구사 23
따라 북한 미술의 역사적 전개는 1) 민주건설시기(1945.8~1950.6), 2)
조국해방전쟁시기(1950.6~1953.7), 3) 전후 복구(1953~1956)와 사회주
의기초 건설시기(1957~1959), 4) 천리마 시기(1960~1970), 5) 사회주
의건설 시기(1971~1979)와 주체미술의 대전성기(1980~1989), 6) 현
단계의 북한미술로 나누어 서술됐다. 단계 서술에서는 각 시기 북한
문예의 전체 흐름을 서술하고 그것이 미술 제도와 담론에 어떤 방식
으로 적용됐는지를 검토한 다음, 작품 경향과 대표작을 나열하는 방식
을 택했다. 이런 고찰의 결과 유홍준은 북한미술의 사적 전개에는 “열
악한 국제적 환경 속에서 나름대로 독자성을 확보하려고 노력한 흔
적”은 확연히 찾아볼 수 있다고 본다.41) 그러나 이렇게 “최대한으로
개방된 시각에서” 북한 미술을 이해하려는 논자에게도 이해할 수 없
는 부분이 있다. 그 내용을 유홍준은 이렇게 정리한다. 첫째, 북한의
미술에서 리얼리즘 자체에 대한 해석이 매우 편협하고 단선적이다.
둘째, 민족적 형식의 모색에서 조선말기, 이른바 봉건사회 해체기의
민중미술의 성과를 탐구, 계승, 발전하려는 의지가 없다. 셋째, 주관성,
개인적 감정을 철저히 부정함으로써 감정의 기복을 배제한다는 점이
다. 이는 예술적 상상력의 고양과 인간적 현실 체험의 확대라는 관점
에서 유홍준이 보기에 유감스러운 부분이다.42) 한편 이태호는 ?가나
아트? 1989년 5/6월호에 “조선화를 통해 본 북한의 미술과 미술사 연
구동향”을 발표했다. 여기서 이태호는 1950년대 후반 김용준이 발표
한 글에 주목하여 북한미술과 미술사 서술의 기초가 김용준에 의해
마련됐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김용준으로 대표되는 민족적인 것의 회
복에 대한 열망이 전통양식의 복권을 가능케 했고 그것으로 “사회의
41) 위의 글, 40쪽.
42) 위의 글, 41~42쪽.
24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현실적 요구에 따른 새로운 내용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가령 그는
<남강마을 여성들>과 같은 북한식 조선화를 “새로운 민족형식으로
서 사실주의적 조선화”로 평가한다.43) 또한 그는 여기서 이 시기 남한
에 소개된 북한의 ?조선미술사?44)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그가 보기
에 북한의 미술사 서술은 몇 가지 장점도 있지만 자료의 열악함, 새로
운 연구성과의 누락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그 내용이 부진한 느낌을
준다. 이런 시각에서 이태호는 남북미술사 연구자료의 공개교환의 필
요성을 강조한다.45)
1990년에 발표된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글은 이영욱과 최석태가
함께 쓴 “주체미술의 개념과 실제”다. 이 장문의 글은 서두에서 접근
방법론으로 이른바 내재적 방법론을 적용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 즉
이 글은 “북한에서 자신들의 미술의 이념적, 미학적 목표로 제시하고
있는 ‘주체미술’의 관점에 입각하여 북한에서 자신들의 미술을 어떻
게 이해하고 추동하고 있는지, 그리고 실제 미술작품들의 실상은 어떠
한지를 소개하는 것”46)을 주요 과제로 삼고 있다. 본문에서는 북한미
술의 역사적 전개 과정에서 제기된 여러 이슈들이 폭넓게 구체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예컨대 이 글에서는 1970년대에 북한미술에서 본격
부각된 소위 ‘항일혁명미술’의 논리와 내용이 섬세하게 검토되고 있
을 뿐만 아니라 1950년대 후반 김용준의 이여성 비판에서 촉발된 조
43) 이태호, “조선화를 통해 본 북한의 미술과 미술사 연구동향”, ?우리 시대 우리
미술?(서울: 풀빛, 1991), 223쪽.
44) 조선미술가동맹 편, ?조선미술사?(평양: 과학백과사전출판사, 1987; 한마당에
서 재간행, 1989).
45) 위의 글, 228~233쪽.
46) 이영욱‧최석태, “주체미술의 개념과 실제,” 김문환 편, ?북한의 예술?(서울:
을유문화사, 1990), 44쪽.
북한미술연구사 25
선화 개신 논의가 수묵에 대한 채색의 우위로 귀결되고 이렇게 규정
된 조선화가 주체미술의 토대로 확립되는 과정을 사례 작품을 중심으
로 세세히 논구하고 있다. 또 글 후반부에는 주체미술의 화두인 수령
형상화, 인민 형상화, 사회주의 풍경화, 대기념비 미술, 피바다식 무대
미술, 선전화 등과 같은 주제들을 실제 작품과 관련하여 비교적 상세
히 검토하고 있다. 이 글의 결론에서는 주체미술의 긍정적 측면과 부
정적 측면이 함께 언급된다. 우선 긍정적 측면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
들이 있다. 1) 미술을 인민 대중의 시각구조에 맞는 것으로 되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2) 작품의 소재를 개인적인 선에서보다는 공동체의 삶
과 역사에서 취하려고 노력한다(물론 그 노력이 얼마만큼의 공감을 얻어
내는지는 별개로). 3)미술적 기량이 충분히 확보돼 있다. 부정적 측면으
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언급된다. 1) 대부분의 작품이 좁은 의미의
사회적 기능에 한정되어 미술이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 감정을 조직하
고 형성할 가능성을 차단한다. 2) 기능의 협애화가 작품 양식에 영향
을 미쳐 대부분 19세기 서구의 사실주의 양식을 크게 벗어나지 못
하고 있다. 3) 조선화의 현대화를 위한 노력은 인정할만하나 일정한
현실상-밝고 경쾌한 현실을 전제하고 그에 따라 형식상의 제 요소들
에 대한 규정이 주어지게 되어 민족 형식이 다양하게 펼쳐질 가능성
을 차단하고 있다.47)
지금까지 살펴본바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에 북한미술
을 다룬 논자들은 반공 이데올로기 경향성을 뚜렷하게 드러낸 1979년
?북한미술?의 저자들에 비해, 북한미술에 대한 접근에서 ‘부정적 선입
견을 배제한 객관적 접근과 이해’를 추구했다는 점에서 북한미술 연
47) 위의 글, 87~88쪽.
26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구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우리가 이미 확인한
대로 이들은 대부분 글의 말미에 1979년 ?북한미술?의 저자들이 서있
던 부정적 자리로 회귀했다. 그들의 논의에서 북한 미술의 성격은 궁
극적으로 “획일성, 단순성을 특성으로 하는 폐쇄적이고 천편일률적이
며 단조로운 미술”, “이데올로기의 포로”, “내용주의 미학의 한계와
제도권 미술”로 귀결됐다. 이 시점에서 1980년대 후반에 활동한 또
한명의 주요 북한미술 논자인 최열의 논의를 살펴보는 것이 유의미할
것이다. 최열은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좀 더 적극적으로 북한미
술 이해에 내재된 반공, 반북 이데올로기를 반대하는 편에 섰다. “반
북, 반공이데올로기가 뿌리 깊게 배어있는 견해”가 아니라 “객관화시
킨 다음 그 미술의 예술관, 미학의 사상적 기초 문제를 논의해야” 한
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48) 그런 의미에서 그는 가령 북한미술이
“일정한 현실상-밝고 경쾌한 현실을 전제하고 그에 따라 형식상의 제
요소들에 대한 규정이 주어지게 되어 민족 형식이 다양하게 펼쳐질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다”는 원동석과 최석태의 비판을 독선적이고 주
관적인 것이라고 비판한다. “모든 북한의 미술가들이 묘사대상과 양
식을 당이 강요하는 대로 받아들였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49) 그
가 보기에 북한의 문화를 바로 안다는 것은 “현 단계 민족문화운동을
민족 단위로 조성하면서 공동의 대응세력을 확정하고”, “미구에 다가
올 통일조국의 민족문화 건설을 예비한다는 목적의식을 갖춤”에 목표
가 있다. 이런 전제 없이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진행된 북한 바로
알기란 동질성을 강화하기보다는 오히려 이질성만을 심화시킬 수 있
48) 최열, “북한미술의 내용과 형식”(?영남대신문?, 영남대학교, 1988년 9월 21일), ?한국근현대미술사학-최열 미술사전서?(파주: 청년사, 2010), 738쪽.
49) 최열, ?민족미술의 이론과 실천?(파주: 돌베개, 1991), 252쪽.
북한미술연구사 27
다는 게 그의 우려였다.50) 그가 보기에 남한과 북한의 미술은 한 민족
내의 두 개의 민족형식이 아니라 “한 민족 내의 각이한 발전단계, 성
장속도와 수준을 반영하는 다양한 수준의 민족적 형식”이다.51) 이런
관점에서 집필된 당시 최열의 글에는 북한 문예의 논리와 남한의 민
중적 민족문예운동의 논리가 공존하면서 때로는 화합을 모색하고 또
때로는 충동을 빚는다. 예컨대 그는 북한의 집체창작과 군중예술에
주목한다. 그가 보기에 “집체창작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 자유주의
와 보수주의, 소극성과 신비주의 등 낡은 사상의 잔재를 뿌리 뽑는
창작방법”이라는 북한 문예의 논리는 남한 문예운동에서 ‘공동창작’
의 논리와 궤를 같이한다. 또한 군중예술은 창조의 주체가 개인이 아
니라는 것, 문예란 신비하고 선천적 재능이 있는 사람만이 만드는 게
아니라는 것에 의의가 있다.52) 그러나 때로 양자는 갈등상태에 놓이
기도 한다. 예컨대 북한에서는 수묵화를 봉건 지배계급의 미술양식으
로 파악하고 있지만 이는 간단히 단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가령
북한에서 높이 평가하는 김홍도의 회화는 수묵선묘에 의존한다. 그럼
에도 북한 회화가 선묘를 부정한다는 것은 최열이 보기에 이율배반이
다. “선묘 자체가 봉건 지배계급의 고유한 형식이 아니라는 사실에
비추어 선묘를 폐기하는 것은 그렇게 올바른 일이라고 할 수 없기”53)
때문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적 관점에서 새로운 단계의 사실주
의 미술을 준비하는 일이다. 이러한 작업에는 18세기부터 진행된 소
50) 최열, “분단문화극복의 고리로서 북한문화를 이해한다”(?경원대신문?, 경원대학
교, 1988년 8월 29일), ?한국근현대미술사학-최열 미술사전서?(파주: 청년사,
2010), 730쪽.
51) 최열, ?민족미술의 이론과 실천?, 286쪽.
52) 앞의 글, 733쪽.
53) 최열, “북한미술의 내용과 형식,” 739쪽.
28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박한 사실주의 미술 전통이라는 유산과 20세기 식민지 조국에서 이뤄
진 미술 유산, 더 나아가서는 각 시대와 역사과정을 통해 일궈낸 사실
주의 미술의 발자취와 열매를 총화하고 거기서 새로 시작한다는 자세
가 요청된다.54) 이러한 관점을 발전시켜 2003년에 발표한 ?한국현대
미술의 역사?에서 최열은 북한미술연구가 기본적으로 실증주의와 역
사주의에 기초할 것을 역설한다.
여기서 특별히 강조할 것은 조선공화국의 미술을 대상으로 삼을 때
21세기 미술사학자들의 관점과 태도에 관한 것이다. 동북아시아 미술사
에서 20세기 후반에 수놓은 중국과 조선공화국의 사회주의 사실주의미
술에 대해 반공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가 낳은 미학과 양식 그리고 그것
을 터전으로 자라난 미의식과 미감, 취향을 잣대로 평가해온 것이 저간
의 사정이다. 따라서 부정의 정도가 지나칠 지경이었다. 그러므로 먼저
관점과 태도의 객관성을 내세워 실증주의 및 역사주의 시각으로 다가서
야 할 것이다. …… 이러한 역사인식을 토대로 하여 연구를 진전시키고
나선 다음, 사학자의 주관에 따라 따지기를 수행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
다.55)
인용한 최열의 언급은 1990년 전후 북한미술 연구를 추동하던 북한
미술에 대한 모종의 기대, 그리고 새로운(!) 것에 대한 흥분이 가라앉
거나 사라진 시점에 연구자에게 요청되는 덕목을 시사한다. 실제로
1990년 중반 이후에 북한미술에 대한 비평가와 이론가들의 뜨거운
54) 최열, “사실주의 미술에 대한 검토”(?상명대신문?, 상명대학교, 1993년 10월), ?한국근현대미술사학-최열 미술사전서?(파주: 청년사, 2010), 38쪽.
55) 최열, ?한국현대미술의 역사?, 38~39쪽.
북한미술연구사 29
관심은 사라졌다. 대신 2000년 이후에는 적게나마 이데올로기적 편견
에서 벗어난 객관적 연구태도, 실사구시, 실증과 논증에 대한 집착이
두드러진 저서와 논문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유홍준이 ?나의 북한
문화유산답사기? 하권 말미에 쓴 다음과 같은 구절은 2000년 이후
북한미술을 대하는 연구자들의 일반적 지향성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북한답사기를 쓰는 내내 880년 전에 고려에 사절로 다녀간 송
나라의 서긍(徐兢)을 생각했다. 그는 1123년(인종 원년) 휘종 황제의 사
신으로 고려에 왔다. 그리고 그는 한 달 여 머물고 돌아가서는 그 견문
을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이라는 책으로 펴냈다. 이 책
은 결국 고려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는가를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정확
하게 말해주는 역사적 사료가 되었다. 그는 고려 정부의 통제로 바깥출
입이 자유롭지 못했다고 했으면서도 만월대 궁궐에 대한 인상에서부터
고려 사람들의 술버릇, 복식, 주택, 나아가서 어느 집 잔칫상 밥그릇 생
김새 같은 것까지 고려 사람들의 일상을 본 대로 주관적 개입 없이 서술
하였다. 고려 사람들이 청자를 비색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그의 증언이
었다. 나는 나의 북한답사기가 최소한 서긍의 ?고려도경? 같은 ‘북한도
경’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글을 썼다. 그러나 서긍의 글이 명백한
제약과 한계 속에 서술되었듯이 내 책의 가치 또한 한시적일 수밖에
없다.56)
56) 유홍준,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 하권(서울: 중앙 M&B, 2001), 369쪽.
30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4. 2000년 이후: 북한미술 연구의 최근 동향
2000년 이후의 북한미술 연구에서 가장 먼저 언급할 성과는 역시
이구열의 ?북한미술 50년?(2001)이다. 이 책은 저자의 표현을 빌면
“북한미술 50년의 흐름을 미술계 전반의 체제적 구조와 당 정책, 김일
성 교시의 절대성, 미술가 양성 및 시기별 작품 창작의 실태, 1970년
대에 확립된 주체미술의 논리, 그리고 대를 이른 김정일의 영도 등에
대한 일차적 정리로 엮은 것”57)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북한 내부 문
건이나 작품들 ― 1차 자료들을 최대한 객관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
로 배치, 배열하는 태도를 취한다. 특히 이 책은 현재 남한에서 구할
수 있는 대부분의 북한미술 관련 자료들을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현
재로서는 가장 객관적이고 신뢰할만한 북한미술 개설서로 평가할 수
있다. 북한미술 연구자의 입장에서는 저자의 이데올로기적 경향성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인용할 수 있는 최초의 북한미술 연구 단행본이
다. 이 밖에 개설서 형태의 글로 전영선의 ?북한의 문학예술 운영체계
와 문예 이론?(2002), ?문화로 읽는 북한?(2009)이 있다. 이 저작들은
문학, 음악, 대중음악 등 북한 문학예술 전 분야의 관련성 속에서 북한
미술의 위상과 의의를 조명하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편 윤범모의
?평양미술기행?(2000)은 유홍준의 ?나의 북한문화유산답사기?(2000~
2001)와 더불어 기행문 형태로 북한미술을 서술한 독특한 사례다. 특
히 이 책에서 소개된 조선미술박물관, 만수대창작사, 평양미술대학에
대한 정보들은 그 자체로 제도나 정책의 관점에서 북한미술에 접근하
는 논자들의 1차 자료가 될 수 있다.
57) 이구열, ?북한미술 50년?(파주: 돌베개, 2001), 20쪽.
북한미술연구사 31
2000년 이후 진행된 북한미술에 관한 본격 연구는 몇 가지 갈래로
나눠볼 수 있다. 우선 월북/재북 작가들의 월북 또는 6·25전쟁 이후의
활동상에 관한 연구를 들 수 있다. 1988년 월북작가 해금조치 이후
월북(또는 재북) 미술가들의 일제시대, 해방기 활동에 대한 연구는 비
교적 활발히 진행됐으나 월북 이후 북한미술계에서 이들의 활동상을
조명한 연구성과는 대개 2000년 이후에 발표되기 시작했다. 이에 관
한 1차적 정보를 제공하는 글로는 윤범모의 “평양미술계와 월북화
가”(1996),58) 최열의 ?한국현대미술의 역사?(2006)가 있고 개별 주제적
접근으로는 조은정, “한국전쟁기 북한에서 미술인의 전쟁 수행 역할
에 대한 연구”(2008), 홍지석, “이여성의 조선미술사론”(2009), 권행가
“1950, 60년대 북한미술과 정현웅”(2010)59)가 있다. 특히 조은정의 글
은 전쟁 심리전에 동원된 북한미술가들의 활동상과 관련된 1차 자료
나 작품을 다수 발굴 소개하고 있어 1940~1950년대 북한미술계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이해를 돕는다. 하지만 이런 유형의 접근은 북한
문헌 가운데 리재현의 ?조선력대미술가편람(증보판)?60)을 제외하면
작가적 접근을 택한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
다. 그런 의미에서 문영대‧김경희의 ?러시아 한인 화가 변월룡과 북한
에서 온 편지?61)는 매우 의미심장한 연구 성과다. 이 책은 러시아 한
58) 윤범모, “평양미술계와 월북화가,” ?월간미술?, 8월(1996), ?한국미술에 삼가 고함?
(서울: 현암사, 2005), 244~262쪽.
59) 조은정, “한국전쟁기 북한에서 미술인의 전쟁 수행 역할에 대한 연구,” ?미술사
학보?, 제30집(2008); 홍지석, “이여성의 조선미술사론,” ?인물미술사학?, 제5
호(2009); 권행가, “1950, 60년대 북한미술과 정현웅,”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21집(2010).
60) 리재현, ?조선력대미술가편람(증보판)?(평양: 문학예술종합출판사, 1999).
61) 문영대‧김경희, ?러시아 한인 화가 변월룡과 북한에서 온 편지?(서울: 문화가
족, 2004).
32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인 2세 화가로 레핀 예술대 부교수로 있다가 1953년 6월부터 1954년
9월까지 소련 문화성의 추천으로 북한 교육성 고문 자격으로 북한에
머물며 평양미술대학 설립 등 북한미술계의 정립에 지대한 영향을 미
친 변월룡 관련 서신들을 묶은 것이다. 여기 소개된 김주경, 김용준,
정관철, 문학수, 배운성의 편지글들은 그 자체 월북작가의 월북 이후
연구에 참고할 중요한 1차 자료일 뿐 아니라 북한 초기미술이 소비에
트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학습, 수용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2000년 이후 북한미술연구의 또 다른 갈래는 이전 북한미술 연구가
들이 관찰, 서술한 내용을 구체적인 문헌과 작품 분석을 통해 비판적
으로 검증, 보완하는 논문들이다. 이런 접근에서 가장 중요한 성과는
박계리의 두 편의 논문 ― “김일성주의 미술론 연구: 조선화 성립과정
을 중심으로”(2003), “김정일주의 미술론과 북한미술의 변화 ― 조선
화 몰골법을 중심으로”(2003)이다. 먼저 “김일성주의 미술론 연구”는
“채색화를 중심으로 조선화를 발전시킬 것”을 요구한 1965년 김일성
교시가 있기까지 북한 내부에서 전개된 이론투쟁의 양상을 꼼꼼한 문
헌 분석을 통해 검토한 논문이다. 박계리에 따르면 그 과정에는 전통
계승론(김용준)과 전통개조론(이여성)의 투쟁에서 전자가 승리하는 반
사대주의 이론투쟁이 있었고, 다음으로 수묵화 전통과 채색화전통의
투쟁에서 후자가 승리함으로써 전자의 편에 섰던 김용준계가 몰락하
는 반복고주의 이론투쟁이 있었다. 그 결과 “수묵화를 계급적 관점에
서 척결해야 할 봉건 잔재로 배격하고 인물 중심의 구상화를 위주로
하여 이를 채색화로, 서구적인 명암법을 사용하여 입체감을 강조하는
방법으로 그리는” 소위 김일성 시대 조선화 양식이 등장했다는 게 박
계리의 요지다.62) 다음으로 “김정일주의 미술론과 북한미술의 변화”
북한미술연구사 33
는 김일성 시대의 조선화를 특징짓는 ‘구륵채색인물화’가 김정일 시
대에 ‘몰골법에 의한 인물화’로 변화하는 과정을 추적한 글이다. 특히
박계리는 김정일 시대 몰골법에 대한 강조가 1960~1970년대에 봉건
잔재로 치부되어 배격된 수묵 전통을 복권하는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주장한다. 박계리의 해석에 따르면 이는 “그동안 거부했던 전통 수묵
화의 다양한 기법과 준법을 보완하여 예술가들이 선택할 수 있는 표
현방식의 다양화를 꾀하려는”63) 의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밖에 남
재윤, “1960~1970년대 북한 주체사실주의 회화의 인물 전형성 연
구”(2007), 박미례, “북한 주체미술의 수령형상화에 관한 연구”(2009)64)
는 구체적인 작품 분석과 유형화 작업을 통해 북한 미술에서 인물전
형성 내지는 수령형상화에 대한 기존의 개념적 이해를 실증적 이해로
전환시키는 데 일조한 경우다.
마지막 갈래는 북한미술을 이데올로기적 또는 내재적 차원에서 고
립시켜 관찰, 분석하던 기존의 접근 태도에서 벗어나 그것을 보다 거
시적인 문맥 속에서 상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들이다. 이러한 경향
을 대표하는 연구로는 김영나, “유토피아의 신기루 ― 정치적 공간으
로서 사회주의 도시와 모뉴멘트”(2004)와 김재원, “분단국과 사회주의
미술 ― 舊동독과 북한의 미술을 중심으로”(2004)가 있다.65) 먼저 김영
62) 박계리, “김일성주의 미술론 연구: 조선화 성립과정을 중심으로,” ?통일문제연
구?, 제39호(2003), 300~301쪽.
63) 박계리, “김정일주의 미술론과 북한미술의 변화-조선화 몰골법을 중심으로,” ?미술사논단?, 제16‧17호(2003), 322쪽.
64) 남재윤, “1960~1970년대 북한 주체사실주의 회화의 인물 전형성 연구,” ?한국
근현대미술사학?, 제19호(2007); 박미례, “북한 주체미술의 수령형상화에 관한
연구,” ?남북문화예술연구?, 제4호(2009).
65) 김영나, “유토피아의 신기루-정치적 공간으로서 사회주의 도시와 모뉴멘트,”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제21호(2004); 김재원, “분단국과 사회주의미술-舊
34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나의 글은 하나의 도시가 거대한 박물관이자 정치적 선전과 은유의
공간이 되는 과정에 건축, 조각 모뉴먼트가 관여하는 양태를 관찰한
글이다. 이러한 접근에서 평양 시내의 김일성 동상과 기념비 조각(건
축)들은 나치 독일, 소련, 중국의 모뉴먼트와 마찬가지로 이미지가 이
미지 자체의 기능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정치와 권력의 재현물로 기능
하는 극단적인 사례로 간주된다. 한편, 김재원은 동독과 북한의 사회
주의 리얼리즘 수용 양태를 비교하는 접근 방식을 택한다. 김재원이
보기에 동독 미술은 지리적, 국제정치적, 지적 요인과 유산에 힘입어
이미 통일 전에 소련식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극복 단계로 진입했으나
북한미술은 “급격한 외래문화의 이식과정에서 스스로 새로운 미술 이
론의 대안을 찾지 못 하고 즈다노프식 사회주의 리얼리즘 이론을 무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것을 변함없이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접근
은 북한미술에 접근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북한미술을 ‘사회주의’내지는 ‘분단국’으로서의 맥락에서 다룬
김영나와 김재원의 글은 보다 보편적, 거시적 차원에서 북한미술을
이해할 단초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방식을 북한 내부 담론
의 전개에 주목하는 기존의 논의에 접목하여 보다 진전된 북한미술
이해로 이끄는 것은 앞으로 남겨진 과제다.
5. 결론
지금까지 살펴본바, 남한에서 북한미술에 대한 연구는 대략 10년
동독과 북한의 미술을 중심으로,” ?미술사학보?, 제21호(2004).
북한미술연구사 35
주기로 변화를 보인다. 1980년을 전후로 한 시기에 처음 시작된 북한
미술 연구는 이른바 냉전적 접근의 테두리에 갇혀 있었으나 1990년을
전후로 탈냉전적 접근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에는 1990
년대의 유산을 토대로 북한미술에 대한 객관적, 실증적 연구가 본격화
됐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북한 미술연구는 큰 주제에서 작은 주제들
로 다양하게 분화됐다. 특히 최근 연구에서는 북한미술 일반에 대한
논의보다는 역사적 관점에서 시기별 양상을 논의하는 경향이 두드러
진다. “주체미술의 개념과 실제”라는 형태의 제목보다는, “1950, 60년
대 북한미술과 정현웅”, “1960~1970년대 북한 주체사실주의 회화의
인물 전형성 연구” 같은 제목을 택한 논문이 늘어나는 추세라는 것이
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최근의 연구는 주체미술이 구체화되는 1970
년대 이후보다는 그 이전, 즉 1950~1960년대 북한미술에 주목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것은 권행가가 지적한 대로 초기 북한 미
술에는 아직 교조화되기 이전의 역동성을 찾아볼 수 있고66) 이러한
역동성이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문제
는 북한미술 연구가 여전히 양적으로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이다. 특
히 몇몇 논자들을 제외하고 위에서 언급한 다수의 연구자들이 북한미
술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내놓지 않고 있다는 점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하겠다.
■ 접수: 2월 28일 / 수정: 3월 25일 / 채택: 4월 1일
66) 권행가, “1950, 60년대 북한미술과 정현웅,” 164쪽.
36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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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현대북한연구 2011 · 14권 1호
Abstract
History of North Korea Art Research:
1979~2010
Hong, Ji-Suk(DanKook University)
This writing examines the History of North Korea art research in
the South Korea. Research about North Korean art changes in about
10 years cycle in South Korea. The first result is the North Korean
Art(1979) which is published by the Board of National Unification.
Writings that is printed in this book examines North Korean art
from viewpoint of Anti-communism or Anti-North Korea. But this situation
changes in the late 1980s~early 1990s. Writings published at
this time had tried to look North Korean art more objectively. At this
time, the researchers of this writings handled North Korea art in more
peaceful and ethnic viewpoint.
On the basis of inheritance of the 1990s, researcher of 2000’s examines
North Korean Art in more empirical level. The common themes
have been raised by the researcher regardless of time are as following:
1)The relation of socialistic contents and ethnic form in North korean
북한미술연구사 39
Art, 2) The identity of colored painting(彩色畵) counted as a model ethnic
form in North Korea, 3) The relation of early North Korea art and
latter term North Korean art, 4) Effect that politics and ideology get
in art, 5) Social position and role of artist in North Korea. The latest
research tends to approach in North Korea art not in macroscopic viewpoint
but in microscopic viewpoint and to examines it by specific time
like “North Korean Art in the 1950s~60s and Jeong Hyeonung”, “The
establishment of ‘Juche Realism’ painting in the 1950s~1970s”
Accordingly, research subjects became various and complex in the latest
research of North Korean Art.
Keywords: North Korean art, Juche-Art, ethnic form, socialistic realism,
research of North Korean 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