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독일의 소련과의 전쟁준비
서방에서의 전쟁은 오직 독일의 소련과의 전쟁을 위한 전주였다. 소련을 붕괴없이 독일은 세계정복을 이룰 수 없었다. 나찌독일의 군화에 프랑스,폴란드,룩셈부르그,벨기에, 덴마아크,노르웨이, 네덜란드가 짖밟히자, 나찌는 그들의 탐욕스러운 눈길을 소련으로 돌렸다.
위대한 사회주의의 패권을 이룬, 소비에트 연방은 세계정치에 거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 커다란 진보적 국가로, 그것은 세계의 전 인민에게 강한 매혹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국가로, 세계운동을 통하여 평화를 위해 매진하고, 어두운 파시즘의 세력을 봉쇄하고 있었다. 나치는 소비에트의 나라들 (역주: '상의하는 나라들'의 뜻)이 있는 한, 세계정복으로 향한 길 앞에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에 관하여 히틀러는 41년 5월 30일 이렇게 선언했다. "무장군대를 파괴하는 것은 국가를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소련과의 앞으로 있을 소련과의 전쟁에 있어 이렇게 냉소적으로 계속했다. "논점은 파괴하는 전쟁이다...이 전쟁은 서방과의 전쟁과 확연히 구분된다. 동쪽은 잔혹 그 자체로 한다 - 미래를 위해서다"
파시스트 소련을 공격할 직접적인 준비는 1940년 7월 21부터 시작되었다. 파시스트독일육군의 총지휘관은 Brauchitsch였는데 소련과의 전쟁계획을 수립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1941년 봄 9월 18일 독일의 최고사령관들이 Bergkhofe에서 모여 10일동안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공격을 모임을 갖은 후에 '바르바로사'작전이 나온다. 1940년 9월 18일 히틀러는 소련에 대한 전쟁계획을 승인하고 이름을 '바르바로사'로 명명한다. 최고 파시스트독일 장군들은 이 계획을 승인하였다. 나찌독일이 패망한 후, 이야기는 바뀌어 이 장군들 - Rundshtedt, Galder, Brauchitsch -은 히틀러에게 동쪽을 치는 것을 만류했다고 전해지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전쟁을 양쪽에서 벌이는 것에 대하여 그것이 서쪽에서의 전략적 문제의 완전한 해결법인지에 대해 수단상 의심을 갖았을 뿐이었다. 예를 들어 영국의 참전등을 고려해서 말이다.[30]
제3제국의 군사운용은 오래전부터 소련과의 싸움을 꿈꾸고 있었고 소련은 빠르게 무너질 것이라고 믿었다.
'바르바로사'작전의 군사-정치적 계획의 주목적은 소련의 완전한 붕괴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 그 기초를 이루는 것은 "전격전"[블릿츠크리그]에 있었다. 그 목표는 서쪽에 포진해 있는 붉은 군대에 치명적인 공격을 가하여 붕괴시키고, 빠르게 소련의 중심부로 진격하여 단시간 내에 가장 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중앙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모스크바는 특히 중요한 목표물이었다. 이것은 곧 가장 중요한 정치적, 군사적, 경제적 면에서 성공을 의미했다. 그 최종목표는 작전에서 말해지듯-" 아크앙헬스크-볼가를 따라 아시안 러시아를 물리치는 것"이었다. 공격작전은 3개의 전략적 방향에서 행해졌다: 동 프러시아에서부터, 프스코프까지,레닌그라드; 동 바르샤바에서 민스크와 스몰렌스크까지, 루블린지역에서 키예프의 쥐또미르까지였다. 그 외에도 두번째 공격목표는 핀란드와 루마니아였다.
지상군의 작전은 공군과 해군에 의하여 지지되어야 했다. 공군이 특히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가능한 한 빨리 러시아의 제공력을 마비시킨 후 분쇄하고 ... 그 주력부대를 " 소련의 제공력을 분쇄시킨 후, 지상군은 소련의 동부의 행정, 산업적 중심-우랄지역을 파괴하는 것이다. 소련의 발틱해안을 경비하는 임무가 해군에게 주어졌다. 나찌들은 레닌그라드를 손에 넣으면 발트해 해군이 거점을 잃고 붕괴할 것을 계산했다.
'바르바로사'작전은 소련에 거대한 위협을 가한다. 소비에트 연방정부와 사회의 체제붕괴가 파시스트 독일의 목표였고 인민국가체제의 와해, 인민공유재산의 절취, 수천만 소련인민의 멸종, 지구상 첫번째의 사회주의 국가를 독일제국의 하등 식민지로 종속 시키는 것이었다. 소련의 영토부터 우랄까지 독일제국치하로 떨어질 것이었다. 그 계획에 의하면 4가지 영역으로 나뉘는데 그것은, "모스크바" (모스크바,레닌그라드,고르키,튤라, 뱟트까, 카잔, 우파, 뻬름을 포함하는 영역) "오스트란드" (발트해연안지역과 벨라루스) (역주: Ostland란 동쪽의 땅을 말함), "우크라니아" (우크라니아,로스토브, 볼가유역, 보로네즈); "코카서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아, 북 코카서스) 이 그것이다.
침략을 준비하면서 나찌는 먼저 소련에 대한 극악한 범죄행위를 계획한다. 이 프로그램은 범죄적 요소와 결리될 수 없다. 이것은 파시스트 이상의 조직적인 산물로, 소련에 대한 중심되는 부분으로 독일핵심부가 인가한 계획이었다. 이 소련인민들에 대한 범죄는 법으로 규정된 것이었다. 그것들은 법령과 명령으로써 정확히 의도된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은 독일의 파시스트 군대의 후방의 소련인민들의 투쟁의 반응으로서 주민들에 대해 심한 억압을 했다는 수정주의 역사가들의 거짓말을 드러내준다. (역주: 물론 이는 소련측을 정통사로 본 '수정주의'임)
일찌기 1941년 3월 13일, 독일의 Whermacht 사령부는 "특별주에 대한 지침"을 내린다. 여기에서는 점령지역에 잔혹한 계엄체제를 펴고 있다. 군대의 지휘관들에게 인민을 다룰 무제한적인 권력이 쥐어졌다. 그들은 민간인을 취급함에 있어 무제한적 권한을 갖고 있었다. 친위대 SS와 히믈러의 정치경찰들은 점령지역에 대한 정치감시[31]를 위한 특별권한이 쥐어진다. 이 도살자들에게 이것은 "두개의 대칭되는 정치체제"의 싸움이라고 말해졌다. 1941 5월 13일 독일사령부는 "'바르바로사'지역 내의 특별계엄과 특별군대작전"을 인허하는데, 이것은 소련인민의 대량학살프로그램이었다. 이 지시는 점령군들이 주민들에게 완전히 무자비하도록 요구하고 있으며 모든 빨치산들과 그들에 동정적이라고 의심되는 모든이들을 군사재판없이 처형하고 파시스트에 조금만이라도 회의적으로 보이는 이들을 취조하는 것이었다. 무고한 인민들에게도 강압적인 행위가 커다란 규모로 강요되었다. 소련땅에서 히틀러군대의 장교나 사병이 무슨 짓을 저지르건 사면되었다. "독일군사들은 국제법을 위반하더라도 처벌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히틀러는 지시했다.
포로로 잡힌 붉은군대의 지휘관들이나 용사들의 처형체계도 같이 개발되었다. 독일사령부의 가장 잔혹한 지령중 하나는 1941년 5월 12일의 지령으로 붉은군대의 정치부(역주: 정치일꾼-붉은 군대는 사상교육을 위한 부서가있다)에 관한 것이었다. 소련의 식민지화시키고 파시스트 군대를 따르게 하려면 그들이 특별히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정치부요원이 잡히는 즉시 처형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이 비인도적인 독일 파시스트들의 계획은 'Ost'(역주:동쪽)작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것은 슬라브민족들을 총과 칼로서 제압하는 것이고 소련을 굴종시키는 것이었다. 이에 의하면 80-85%의 폴란드인들, 65%의 서 우크라이나인들, 75%의 벨라루스인들을 괴멸을 위하여 "재배치"시키는 것이었다. 침략자들의 목적은 "러시아인을 없애고 독일민족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유럽소련과 폴란드에서 나찌들은 1억2천만-1억4천만의 인구를 없앨 예정이었다. 죄없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죽이기 위하여 특별한 지시가 내려졌고 그에 따라 특별한 '기법'들이 고안되었다. 이 가공할 짓에 대하여, 히틀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이들을 없애는 것이 숙명이다-우리의 임무는 독일민족을 보호하는 것이다...우리는 벌레처럼 번식해 나가는 하등민족들을 없앨 의무를 지고 있다" 이 소련의 인민들을 나치들은 '열등민족'으로서 노예로 삼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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