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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씨알은 종교,종파,정파로부터 자유하다/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씨알의 소리와 씨알의 관계는 불일불이(不一不二)
          - 어떤 종교, 종파, 정파로부터 자유한 잡지가 되려는 이유-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1. ‘우리가 내세우는 것’ 8가지 명제중 주어가 다른 이유

 편집실에서 필자에게 주신 숙제는 ‘우리가 내세우는 것’  8가지 명제중에서 특히 제3명제와 제4명제를 중심으로 생각을 집중해 보라는 것이다. 제3명제는 “씨알의 소리는 어떤 종교, 종파에도 속해있지 않습니다”이고, 제4명제는 “씨알의소리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관계가 없습니다”이다.  

 우리의 잡지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해(1970)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잡지의 뒷 표지면에 <우리가 내세우는 것>을 빼놓지 않고 선언해왔다. ‘우리가 내세우는 것’ 내용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전반부는 기본명제라고 볼수 있고, 후반분은 기본명제에 대한 부연설명이라고 볼 수 있다. 전반부와 후반부가 모두 중요하지만, 잡지의 기본정신을 명료하게 선언하고 있는 전반부는 마치 3.1일독립선언문의 공약3장처럼 8가지 명제로서 잡지의 성격과 지향성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8가지 명제들을 꼼꼼이 들여다보면  4가지 명제는 문장의 주어가 <씨알의소리>로 되어있고 나머지 4가지 명제는  문장의 주어가 <씨알>로 되어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씨알의 소리>는 잡지의 이름이면서 간접적으로 집합적 인격체를 나타낸다. <씨알>은 낱낱의 생명체이면서 전체생명이고 주체적 인격체를 나타낸다. 깊이 생각하시는 함석헌 선생님이 무슨 이유가 있기 때문에 어떤 명제에서는 주어를 <씨알의 소리>로 하고, 어떤 명제에서는 <씨알>로 했을 것이다. 그 두가지 주어는 둘이며서도 하나요, 같으면서도 다른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굳이 그렇게 주어를 구별하여 표현하셨을 것이다. 두고 두고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볼 숙제이다.

2. 어떤 종교 종파에도 속해있지 않다는 선언의 참 뜻

 제3명제부터 생각해 보기로 하자. 제3명제는 앞에서 말한대로 “씨알의 소리는 어떤 종교, 종파에도 속해있지 않습니다” 이다. 우선 명제의 주어가 <씨알>이 아니고 <씨알의 소리>라는데 주목해야 한다. 종교와 종파를 따로 명기한 이유는 같은 종교 안에도  다양한 종파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슬람종교를 공유하면서도 시아파나 수니파가 있고, 불교안에도 소승과 대승, 화엄종, 천태종 선종둥 여러종파가 있다. 그리스도교 안에는 카톨릭교, 개신교, 동방정교회등 큰 종파가 있고, 개신교 안에도 장로교 감리교등 여러교파가 있다.

 제3명제가 분명히 선언하는 핵심정신은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는 어떤 특정종교나 종파에 속해있지 않다는 것이다. 특정 종교나 종파의 진리를 선양하거나 선교하거나 포교의 도구로 쓰임받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왜냐하면, 진리는 어떤 특정 종교나 종파에 속한 전유물이 아니라는 이유가 있다. 또한  잡지 <씨알의 소리>는 “씨알 자신의 힘으로 하는 자기 교육의 기구”인데, <씨알의 소리> 를 만들어가는 <씨알들>은 각자 자기가 귀의하는 다양한 종교에 가입되어 있거나, 특정종교에 귀의하지 아니한  참 씨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3명제를 오해해서는 않된다. 다시말해서, <씨알의 소리>는 아예 어떤 형태의 종교나 종파에 관한 글을 싣지않는 다거나, 종교문제를 중요하게 성찰하고 비판하는 자유를 단념한다는 말이 아니다. 더 나아가서, <씨알의 소리>를 만들어가는 주체자들 <씨알들>은 역사적인 상대성을 지닌 기존의 어떤 종교나 종파에 속하지 않아야 된다는 뜻은 더더구나 아닌 것이다.

  잡지의 발행자요 주간 이셨던 함석헌 선생자신이 참다운 의미에서 ‘그리스도교인’이었던 것은 본인자신도 공공연히 죽을 때까지 분명히 하셨고, 2017년 송년호 잡지에 실린글 “되돌아보는 나의 일생: 팔순 기념강연”에서 우리들이 읽어 보았듯이 함선생자신은 서민적인 고향마을과 부모를 가진 것, 훌륭한 스승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일찍부터 기독교에 접할 수 있었던 것을 당신일생에서 세가지 중요한 행운이었고 축복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줄여말하면, <우리가 내세우는 것> 제3째명제는 <씨알의소리>가 특정 종교나 종파에 예속되어있거나 그들의 포교나 선교의 도구로 이용당하지 않고 참을 위하고 참을 추구하는 잡지가 되려한다는 것을 밝히는 것이다. 참이라 하거나 진리라 하거나 인생과 역사의 목적과 의미를 문제삼을 땐 ‘종교’가 마지막 핵심주제가 되기 때문에, 매우 역설 같지만 <씨알의소리>는 기존 종교들에 대한 가장 혹독한 종교비판의 글을 잡지에 실어야했고, 참을 추구하는 종교적 글을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이다. <씨알의 소리>는 인류 미래문명을 밝히는 참종교의 탄생을 위한 산고의 진통을 해야만 했고, 자기를 절대화하는 기존 종교나 종파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야 했던 것이다.

 정리하면, <씨알의 소리>는 <씨알들>의 생각, 사상, 비젼, 참회, 깨달음, 기쁨, 희망을 글자로 표현하여 한데몪어 발표하는 잡지로서 ‘자기교육의 기구’이기 때문에, 특정 종교나 종파에 속해있지 않고 속해있어도 않된다. 그러나, 각각 <씨알>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참다운 종교인, 신앙인이 않될 수 없는 것이다. 니체와 같은 전통 기독교에 대한 가장 혹독한 비판자일지라도 그 나름대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는 ‘무신론적 종교인’이 되기 때문이다. 폴 틸리히의 표현을 빌리자면 “종교란 사람의 궁극적 관심(ultimate concern)이요, 궁극적 실재에 의해 붙잡힌 상태”를 이름하기 때문이다.

 함석헌의 생각을 빌리자면 참 종교의 참 예배라는 것은 “영과 진리 안에서”(in Spirit and truth), 환하게 뚫려비취는 리성의 밝음 안에서, 작은 것 안에서 우주를 보고 느끼며, 착한 맘을 갖고 선한 일을 하는데 있다. 이 산이냐 저 산이냐, 예루살렘이냐 멕카냐, 서양종교냐 동양종교냐의 구별이 중요하지 않다. 유한하고 상대적인 것들을 중요시하거나 절대시하면 곧 종교가 우상화된 것이다. 우상은 사람을 비인간화 시키고 광신도로 만든다.

  오늘날 “알라는 위대하다!”라고 외치면서 테러를 일삼는 과격파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를 각자 자기종파의 성지로 독점하려는 중동지역의 종교전쟁이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광기들인가를 보면 잘알 수 있다. 제3명제의 참 뜻을 말하자면 “씨알의 소리는 어떤 종교, 종파에도 속해있지 않습니다”라는 명제를 내세우기 때문에, 모든 형태의 변질된 종교들과 종교전통의 우상화에 치열한 비판적 잡지역활을 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씨알>의 참 자유로운 영혼을 위해서 그리할 수 밖에 없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3. 어떤 정치세력과도 관계가 없다는 선언의 참 의미

‘우리가 내세우는 것’의 제4명제는 “씨알의 소리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관계가없습니다”이다. 이 잡지와 현실적 정치세력 혹은 정치 집단과의 기본관계를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씨알의 소리’라는 잡지가 제3명제에서 살핀바 처럼 어떤 종교, 어떤 종파에도 속해있지 않으면서도 가장 치열하게 종교적인 글, 종파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정치와 잡지와의 관계도 자못심각한 문제가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상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왜 그럴가?

그 이유를 말하자면, 종교나 정치는 인간 삶의 중심에 서 있는  근본문제를 다루는 것이요, 삶의 어느 한 부분과 관계하는 일거리가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본질을 건드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인간적 삶과 활동 모든 영역에서 그것들의 ‘깊이의 차원‘ ( Depth Dimension of Human Life)을 다루고, 정치는 공동체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 현실문제를 총체적으로 다루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는 구체적인 공동체활동으로서 정부행정, 입법행위, 사법적 판단등 인간공동체 삶에서 발생하는 갈등관계를 가장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투명하게 해결해가려는 구체적 존재목적이 있다. 그러나, 인간공동체의 삶은 단순하게 물질과 권력을 공평하게 나누어 갖자는 이해관계의 조정기능만이 능사가 아니다.  집단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와 의미를 실현하자는 목적지향적 행위이기도 하기 떄문에 정치는  인간 삶의 전영역에 영향을 끼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정치행위에 가담하는 개인과 집단은 야망, 탐욕, 지배욕, 명예욕, 권력욕에서 자유로운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내세우는 것의 제4명제는 잡지 <씨알의 소리>는 현실정치상황과 관련하여 고고하고 초연하게 완전 중간입장에서 값싼 양비론(兩非論)이나 양시론(兩是論)을 펴는 잡지가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해방이후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 속에서  씨알들이 몸으로 경험한바에 의하면 정의와 불의, 참과 거짓, 생명살리는 일과 생명죽이는 길의 길목에서 어느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백성들 삶의 행불행이 결정되는 시대상황속에서 고상한척 양비론이나 양시론을 펴는 유명인사나 집단은 결국 그 당시의 권력집단을 지지하는 사이비 중도론자였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양비론자와 양시론자이 가면을 벗기고 보면,  고차원의 자기호신책이고, 비겁한 권력에 아부행위 이고, 자기와 남들을 속이면서 권력집단에 충견노릇을 하기 일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제4명제가 말하혀는 본뜻은 잡지 <씨알의소리>는 구체적인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명하여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당파적 정치행위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지, 인간공동체 삶에서 시시비비를 분명하게 말해야하는 일을 하지 아니하기로 작장하여 정치무관심한 잡지가 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격동했던 1970-80년대 군부독재 정권에 맞서 인권을 옹호하고 민주주의를 파수하려는 운동과정에 가장 비정치적인 인물로 자타가 평가하는 함석헌, 김재준, 이병린 선생등이 전문정치가들이 결집한 민주주의 수호협의회 공동의장으로 추대되었던 연유가 거기에 있다.

 진리운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에서  현실정치와의 관계성에 대한 가장 고전적인 사례가 아마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서 겪었던 사례에서 드러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인 아니더라도, 일반 상식인 이라면 예수가 로마식민지 치하에서 정치적 독립운동을 하려던 정치가가 아니라는 사실은 인정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 속에서 예수는 로마제국에 모반을 일르킨 정치운동을 했다는 정치범으로서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

 예수는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처럼 땅 위에도 이뤄지기를 바라며 ‘하나님의 나라’운동 곧 ‘진리, 정의, 생명, 평화’운동을 삶의 목표로 삼고 일하신 분이셨다. 예수의 능력에 도취한 주변사람들이 그를 세상의 왕으로 옹립하려했으나 한사코 거절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빌라도 법정에서 이상한 장면이 벌어진다.

 빌라도는 비록 로마제국 변두리 지역총독 이었지만, 예수를 죽여달라고 고소하는 유대교  당국자들의 음모를 꿰뚫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정치범에 대한 처형 곧 십자가처형에 처하는 일만은 피하려 애쓴다(루가 23:20-25). 유대당국자들은 예수가 로마제국에 모반을 일으키는 죄인임을 극구 주장하면서 빌라도를 심리적으로 압박한다. 마침네 마지막 빌라도의 법정심문에서 빌라도가 묻는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 또한 빌리도의 질문의도 또한 잘 알았고 대답 여하에 따라 참혹한 십자가 처형이 내려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의 대답은 의외로 놀라운 대답이 나왔다. “그렇다 내가 왕이다”라고 대답한다(마태27:11, 마가 15:2. 요한 18:37). 그 결과 예수는 십자처형을 언도 받는다.

 복음서 기자가 전하려는 멧시지는 무엇인가? 그 비밀은 잡지 <씨알의 소리>가 제4명제에서 “씨알의 소리는 어떤 정치세력과도 관계가없습니다”라고 선언하면서도 진리를 주장하는 잡지이기 때문에 정치적 발언과 정치적 소신을 분명히 말함으로써 잡지가 정간, 휴간, 폐간 당하는 수난을 겪는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예수가 추구했던 하나님의나라 운동은 단순한 정신운동, 관념적 이념운동이 아니다.  그 운동은 이 세상적 정치운동을 훨씬 뛰어넘는 ‘범우주적 사랑의 공동체’(김재준)를 이루려는 하나님의 정치운동이었다. 그러므로, “네가 왕이냐?” 물을 때, 참다운 의미에서 ‘진리의 왕’임을 감추지 않았다.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서 들어가는 천당보다 더 크고 웅대한 나라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정치, 경재, 사회, 문화, 노동, 예술 등 모든 삶의 분야에서 “정의, 자유, 사랑,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고 햇빛처럼 비는 대동세계 생명동산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씨알의 소리>또한 세상적인 정당정치에 예속되거나 그것들의 선전기구 되지않는다고 첨부터 선을 분명히 긋고 나서지만, 이 잡지가 참을 실현하려는 본래 취지에 충실하는한 정치적 비방과 박해도 각오해야 하는 것이다.

4. 나가는 말
 <씨알의소리>라는 진리를 추구하는 이 잡지는 제3,제4명제에서 선언하듯이 어떤 종교, 종파, 정파에 특별한 관계를 갖지않고 자유하고 투명하다. <씨알의소리> 잡지이름을 내 걸고 특정 정당이나 특정 종교를 차별하여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러나, 개인들로서 <씨알> 한사람 한사람은 구체적인 종교에 귀의하여 가장 깊은 신심을 드러내야 하고, 보다 정의로운 구체적인 정치조직활동에 책임적으로 참여하여 대동세계 실현에 앞장서야 한다.

 일제식민지 시대와 해방후 시대에서 의로운 씨알들이 정치문제를 바로잡으려고 바른말을 하고 수난을 각오하고 행동을 취할 때, 권력자들과 그러한 권력에 아부하는 지식인, 종교인, 정치인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논리가 ‘정교분리론’ 이었다. ‘정교분리’원칙이  현대문명국가의 원칙인데 왜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냐는 논지를 폈다. 그들은 ‘정교분리’의 참 뜻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종교와 정치는 불가분리적이다. 두 영역이 각각 생명공동체의 꼭대기와 아래밑둥을 이루는 사닥다리의 첨과 끝이기 때문이다. 깨어있는 생명있는 자들은 그 누구도 종교와 정치에 완전히 무관심 할 수 없는 것이다. 매우 역설적이게도, 현실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만이 참된 의미에서 정치와 종교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예수가  현실정치에서 보면 가장 비정치적이면서 하나님의 정치에서 보면 우주적 정치행위를 한 분인 것처럼, 모든 기존 종교가 끝났음을 선언하면서도 가장 참된 의미에서 종교적이었던 것처럼, <씨알의 소리>잡지와 <씨알들>은 그 불가능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잡지이고 사람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