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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종교개혁과 사회변화/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종교개혁과 사회변화
  - 하나님의 나라 관점에서 '일상의 성화'와 '정치-경재권력의 공공성' 중심으로-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

1. 주제의 지향성과 논문의 성격

  필자에게 주어진 논제는 ‘종교개혁과 사회변화’ 이다.  주어진 연구주제의 표제자체는  매우 포괄적이기 때문에 이 글의 지향성과 논문의 성격을 먼저 잠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지나면서 한국 신학계에서는 전문 학술단체와 학자들의 활발한 연구발표가 있었고 순수 학문적 측면에서 풍성한 결실을 연구논문 집필과 발표 그리고  강연회를 통해서 거두게 되었다. 한국신학 종합학회를 통한 연구발표는 논외로 하고,  해암신학연구소 또한 연구지 ⌜신학과 교회⌟ 를 통하여 2016년 여름호부터 2017년 겨울호까지 종교개혁기념 특집으로 기획하여 훌륭한 논문들이 연구발표 되었고 활자화 되었다.

 논문들은 성서신학, 조직신학, 실천신학등 다양한 학자들의 연구발표 결과가 있었지만,  주류를 이루는 연구발표는 종교개혁 전문분야 교회사 전공학자들의 연구논문이 과반수를 찾이한다. 500주년 기념해이기 때문에 새롭게 종교개혁 참 뜻을  재조명하고 그동안 밝혀지지 않는 주제를 좀더 정밀하게 연구한다는 관점에서 교회사학적 논문들이 다수를 찾이한 것은 정당하고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므로 교회사학자도 아니고 특히 종교개혁연구자도 아닌 필자의 이글은 주제를 다루되 논제의 지향성을 달리하려고 한다.

 이 글의 지향성은  순수 교회사작 연구가 아니라 주어진 논제를 기독교 사회윤리적 관점과 기독교사상사의 관점에서 주제담론의 지향성을 갖는다. 다시말하면 종교개혁자들에 관한  전문적 연구가 아니라,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을 요약하고, 그것이 16세기 당대만이 아니라, 지난 500년동안의 인류문화와 사회변화에 어떤 영향을 직간접으로 주었는지, 그리고 동시에 종교개혁의 근본정신이 사회변화에 따라 어떻게 글절, 변질, 혹은 창조적 응답을 하면서 진행되어왔는지 실피려 한다.  

  모든 학술연구는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에 봉사하려는 것이므로, ‘종교개혁과 사회변화’라는 상관관계적 변화가 오늘 한국 기독교의 위기와 기회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연구 지향성으로서 갖는다.  이 글은 4단계 작은주제로서 전개될 것이다.

  제2장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지닌 성서적-신학적 참 의미를 다시 재각성하면서, 복음의 본질핵심인 하나님나라의 비젼이 역사혁실 특히 사회-정치-경제적  공동체 형성관계에서 어떤 영향을 서로주고 받는지 논구한다. 왜냐하면 한국기독교의 분렬이나 쟁점의  근본원인이 하나님의 나라가 지닌 양면적 성격 곧 역사 내재 측면(inner historical side)성격과 역사초월측면(transhistorical side) 그 양면적 특징의 어느 한쪽에로의 편향성에 기인하여 온갖 분열의 씨앗이 발단되기 때문이다. 예들면, 개인구원이냐 사회구원이냐, 정교분리냐 현실 변혁적 정치참여냐,  사회주의적 정강정책에 더 기울어진 보편복지냐 자본주의적 정강정책에 더 기울어진 선택적 복지냐 등의 다양한 대립적 견해는 결국 예수 복음선포와 활동의 핵심인 ‘하나님의 나라’를 어떤 신학적-신앙적 관점에거 이해하는가의  문제가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현실적 정치-경재-문화 권력들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관점에서 볼 때에 불의하고 타락한 경우, 누가 어떤 방법으로 그것들은 바로잡을 것이냐의 문제와 직결된다. 자연히 교회와 국가, 복음과 문화, 거룩한 것과 세속적인 것들과의 상호 바람직한 변증법적 관계가 해석학적 관점에서 검토될 것이다.

 제3장에서 논자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종교개혁정신의 핵심본질을 압축적으로 약술할 것이다. 교회사 전공학자들이 밝힌 연구결과를 도움받아  핵심적인 종교개혁 정신(protestant Reformation spirit)을 간추려낼 것이다. 교회사가들의 연구결과를 참조하면,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의 지형도는 크게  마틴 루터를 시원으로 하는 루터파계열, 죤 칼빈을 중심인물로 하는 개혁파교회(Reformed Church) 계열, 그리고 재세례파(anabaptists) 그룹의 종말론적 급진적 개혁세력으로 3분된다. 종교개혁운동의 3계열에 속한 다양한 인물들의 신학내용 서술은 지면과 필자의  능력 한계상 불가능하므로, 그 대표적 인물 마틴 루터(Martin Luther), 죤 칼빈(John Calvin), 그리고 메노 시몬스(Meno Simons)의 신학사상을 ‘사회변화’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다룰 것이다.  특히 주제어(key words)로서  루터에게서 양심과 리성의  존엄성과 자유, 소명으로서 직업관, 두왕국론을 다룬다. 칼빈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 성도의 성화와 견인(堅忍), 정치권력의 권위와 공공성을 주목할 것이다. 재세례파 운동에서는 제도적 국가나  교회의 권위까지를 비판초월하려는 급진적 혁명사상과 비폭력평화주의를 검토할 것이다.

  그리고 이상에서 논의된 바를 정리하면서, 우리주제의 궁극적 목적인 한국 개신교 교회의 개혁과 올바른 부흥혁신을 위해서 한국사회와 근현대사에서 한국교회의 응답을 재성찰하고  미래과제를 언급함으로 결론을 대신 할 것이다.
   
2.‘하나님의 나라’ 이해에서 교회공동체와 세상 현실과의 올바른 관계

제2장의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의 본질, 종말적 도래시기등 다양하게 논의되어온 성서신학과 이론신학의 논지를 다시 재론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본 논문의 주제인 ‘종교개혁과 사회변동’을 다루게될 때, 그리스도인 개인과 교회공동체가 세상현실을 하나님의 나라와 어떤 관계성으로 보는냐에 따라 사회윤리적 정향성, 정치경재현실에 대힌 책임적 관여, 역사현실에 대한  관심과  참여정도가 결정되기 때문에 먼저 논하게 된다.

  예들면 한국 기독교를 양분하는 보수적 입장과 진보적 입장에서 구원을 ‘개인영혼구원’인가 ‘사회공동체 역사구원’인가 견해를 달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신앙적-신학적 이해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전자의 입장에서 볼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정치경재 문제등을 멀리하거나  최소한의 관심을 가져야하며,  경건영성훈련을 내면화, 개인화, 신령화에 두면서 복음과 교회의 제1차적 목적은 ‘사후에 천국에 들어가는 개인영혼구원이라고 본다. 다른한편 진보적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초세상적인 것만이 아니라 세계내적 현실이며 영적인 것만이 아니라 인간 삶 전체를 아우르며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이 피조세계전체에 실현되는 것이라고 보면서 소위 전인적 사회구원을 강조한다.

 진보적 사회참여를 선도한 대표적 신학자 김재준은 1945년 8월, 해방정국에서 ’기독교의 건국이념’ 제목의 선린형제단 집회의 강연 첫머리에서 다음같이 역설한다.

 기독교인의 최고사상은 하나님나라가 인간사회에 여실히 건설되는 그것이다. 그러나 이‘하나님 나라’를 초세간적(超世間的) 래세적인 것 소위 천당이라는 말로서 그 전부를 의미하는 것인줄 알아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전생활에 군림하여 성령의 감화가 생활의  전부문을  지배하는 때, 그에게는 하나님나라가 임한 것이며, 이것이 전사회에 침투되며 사선(死線)을 넘어 미래세계에까지 생생발전(生生發展) 하여 우주적 대극(大極) 대낙원의 날을 기다리는 것이 곧 하나님나라의 전모(全貌)인 것이다.

  1945년 8월 해방정국은 아직 남쪽과 북쪽에 독립된 국가형태가 나타나기 이전 시기이다. 기독교의 한 지성인으로서 김재준은  당시 기독교계 일반이 지니는 타계주의적이고 개인 영혼구원에만 경도되어있는 하나님나라 이해에 비판적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김재준의 입장이 소위 사후세계 영생이나 초자연적 천국실재을 부정하면서  자유주의신학적 인본주의자들의 현세적 유토피아 건설을 하나님나라라고 보는 것도 아니다. 새나라 건설이라는 중대한 역사적 전환기에 기독교 교회가 보다 적극적 역할을 해야하는데, 그 책임감당을 위해서는 하나님나라 이해에 관해서 통전적 이해가 절대요청 된다고 본 것이다.
  오늘날 성서신학계만이 아니라 역사와 이론신학계의 일치된 견해에 따르면 ‘하나님의 나라’(Kingdom of God)는 예수의 공생애를 걸친 말씀선포와 구원활동의 총괄적 핵심이며, 신약성서에서 복음을 총괄하는 중심적 개념이라는데 동의한다. 예수의 첫 멧시지는 “때가 찼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화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막1:15) 였다. 마가복음서가 전하는 예수의 첫 설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는다면, 여기에서 ‘복음’이란  후대 기독교신학이 정립한 “십자가를 통한 대속신앙‘이라기 보다 낡고 병든 생명세계가 하나님의 직접관여와 통치를 통하여 새롭게 변화되는 새로운 삶의 질서로서 땅 위의 현실이라고 이해되어야 한다.

  ’십자가를 통한 대속적 신앙‘이 기독교의 구원론에서 핵심임엔 틀림 없지만,  마가복음의 원초적인 예수의  선포 “복음을 믿으라!”라는 말씀에서 복음을 ’십지가 대속신앙‘과 곧바로 동일시 한다면 예수의 선포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든다. ’십자가의 대속신앙‘은 실존적 인간이 온전한 회개를 하여 하나님나라에로 초청에 응답하려고 할 때,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존업하심과 절대선이신 분의 불꽃같은 눈 앞에서 필요충분하 회개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절감한 기독인들의 정직한 신앙적 고백인 것이다.

  십자가 안에서  혈육적이고 자기중심적 이기적 죄성과 교만(驕慢), 태만(怠慢), 기만(欺瞞)으로 압축되는 인간죄성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의 심판, 그와 동시에 보여주신 하나님의 긍휼심의 사랑과 용서, 예수의  자기 희생적 대속물로서  대제사장으로서 봉헌앞에서,  실존인간이 심령의 속눈을 뜨고, 예수의 십자가와 함께 죽고 다시 새로운 피조물로서 거듭나는 신앙적 사건이 ’대속신앙‘의 본질인 것이다. 십자가 대속신앙은 결코 객관적 대리행위에 대한 교리적 수락이 아닌 것이다.       

  20세기 변증신학자 폴 틸리히에 의하면, ‘하나님의 나라’라는 역사 지평에서 공동체로서 인간집단이 경험하는 갈등, 불안정, 모호성의 질문과 몸부림에 대한  성서의 계시적 대답이다. 생명은 차기통전운동, 자기창조운동, 자기초월운동을 본구적으로 수행하는데, 역사공동체에서 그 갈등, 불안정성, 모호성은 개인경우보다 더 깊고 심각하다. 집단악과 집단선의 대립갈등은 개인들간의 그것보다 더 크고 격렬하고 무책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의 구원사역이 일어나는데, 그 현실의 총체성을 히나님나라 운동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불교적 니르바나 개념과 비교할 때 다음같은 4가지 의미를 갖는다.

  첫째, 하나님나라 상징은 하나님은 전세계를 사랑하고, 삶의 모든 영역을  통치하신다. 들째, 하나님나라는 인격적, 정치적, 사회적 상징성이 강하여  인간집단체 안에서 자유,해방,정의, 평화등  공동체적 성격과 정치사회적 차원을 갖는다. 넷째, 하나님나라는 전체안에 개인의 몰입으로인한 개인정체성의 상실이 아니라, 개개인은 영원한 가치와 자기정체성을 지니면서 구원을 선물로서 받는다. 다섯째, 하나님의 나라는 우주적 차원을 갖는데, 만물이 하나님 안에 그리고 하니님이 만유안에 있게 되며(God being all in all), 인간뿐 아니라 모든 피조물이 ‘사멸의 종살이에서’해방되는 구원을 얻는다.

 하나님 나라운동이 반드시 교회공동체만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백성 곧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교회공동체는 하나님나라 운동의 중심체임은 사실이다. 리챠드 니버는 그의 명저 ⌜그리스도와 문화⌟에서 그리스도공동체와 세상연사현실 사이의 관계모델을 교회사의 시대구분과 보조를 함께하면서 5가지 유형(typology)으로 정리한 것은 탁월한 견해였다.

 리쳐드 니버의 언급한 ⌜Christ and Culture⌟ 책에서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역사적 예수 그리스도’ 개인이 아니라 기독교 복음, 교회공동체, 그리스도교적 이념등을 포괄하는 상징어이다. 또한 ‘문화’는 좁은 의미에서의 문예(文藝)가 아니라  정치와 경제와 사회로서 구성되는 현실적 역사총체를 상징한다. 그의 유형론적 분류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문화사이의 관계맺음은 5가지 유형으로 대별된다.

  첫째는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Christ against Culture), 둘째는 ‘문화위에 군림하는 그리스도’(Christ above Culture), 셋째는 ‘문화와 병존하는 그리스도’(Christ and Culture), 내째는 ‘문화의 그리스도’(Christ of Culture), 다섯째는 ‘문화변혁의 그리스도’(Christ as transforming Culture)이다.  

 각각의 유형은 장단점이 있으며 교회가 처한 당시 역사-사회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첫째유형은 초대교회 묵시문학적 종말공동체나  소종파 운동시기에 교회가 이방문화나 기독교를 박해하는 막강한 힘에 직면하여 대응하는 유형이다. 복음의 본질을 지키고 기독교의 자기정체성을 보수(保守)하려는 동기가 있지만, 약점은 역사현실로부터 벗어나서 케토화하고 성육신신앙에 위배된다. 둘째유형은 중세기 교황청 권위가 막강할 때의 유형이다. 교회권력이 세상을 지배한다. 기독교왕국이 실현되는듯 보이지만 도덕적으로나 영적으로 타락을 피하지 못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섬김의 자세에도 위배된다.

  셋째유형은 루터나 두왕국 이론이 대표적이다.  교회통치와 세상에서 정치통치는 하나님의 통치를 대신하여 역할분담을 하되  국가와 교회는 분리되지 않고 구별된다. 그러나, 세속화가 이뤄지고 정치경재현실이 탈종교화할 때, 두 왕국론은  ‘정교분리론’으로 변질되어 교회는 세상적 일에 책임을 회피한다. 넷째유형은 19세기 서구의 브르조아 기독교문화의 유형이다. 복음은 문화적 이념이 되고, 세상에 대한 이념비판능력을 상실하고 도리혀 시대의 문화이념과 동질화됨으로서 교회의 자기정체성을 상실한다. 다섯째유형은 성경에서 ‘밀가루반죽 속의 누룩비유’처럼 교회가 세상속에 들어가서 자기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세상을  그리스도 형상을 원형으로 하여 변화시켜 가자는 입장이다. 의도는 옳고 좋으나 세상은 만만한 객체가 아니다. 몰트만이 지적하듯이  교회는 자기정체성 지속과 세상에 휩쓸려듬 사이에서 위험을 겪으며 딜렘마에 빠진다.

  널리 알려진 리챠드 니버의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성에 대한 다섯가지 유형의 장단점을 다시 거론하는 이유는, 하나님나라 운동이 이 세상 현실과 겨루면서, 세상현실 속에서, 세상에 사는 하나님 백성들을 통해서 이뤄져가는 것이므로 단순한 학문적 유형론 이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매우 절실하고 실질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거칠게 말한다면, 한국의 보수적 교단들의 입장은 제1유형과 제2유형을 선호한다. 다소 진보적 교단의 그리스도인들은 제3유형과 제4유형에 가깝다.

  신구약 성서가 전해주는 다양한 유형들을 총체적으로 종합해보면,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언행을 깊이 생각해보면 제5유형이 가장 바람직한 태도라고 판단된다.  그러나, 현실은 만만하지 않고 세상성은 그들 나름대로 세계관과 가치관과 이념이 있어서, 중세기나 종교개혁시대가 아닌 계몽기 시대이후 현대세속사회 속에서 제5유형의 실현은 비상한 각오와 자기희생을 동반하는 난제임을 직시하지 않으면 않된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본훼퍼가 바르게 지적한대로, 주님이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을 진지하고 성실하게 고백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신의 나라가 임하옵소서. 뜻이 하늘에서 이러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이다”(마6:10)라고 기도하는 것이 관념적이거나 예배의식상  형식적 기도가 아니라면, 세상현실의 책임성에 충실하기 위해서 하늘일만 관심할 수 없고, 동시에 하늘을 사모하고 천국 소망을 강조하기 때문에 땅의 일에 소홀할 수 없다.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이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듯이, 하나님나라의 역사초월성과 역사내재성, 하늘소망과 땅에 충실은 동전의 앞뒤관계, 수레의 두바퀴, 날짐승의 두날개와 같다고 비유할 수 있다. 땅 중의 땅은 4차원의 시공간이 아니라, 가난하고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마음이요 생명현실이다.

  그러므로 종교개혁정신의 사회적 윤리성과 책임성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 이뤄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지이다”라는 주님기도에  얼마나 적한한가 여부로서 그 가치가 판단되어야 한다.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예수영성의 알짬이요, 복음의 진수이며, 세상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영원한 ‘삶의 좌우명’이기 때문이다.

3. 종교개혁정신에서 본 사회변혁의 근본적 명제들

이 글 서론에서 이미 말했듯이 이글의 지향성과 목적은 루터, 칼빈, 쯔빙글리, 멜랑히톤, 그리고 재세례파들에 대한 교회사적인, 혹은 신학사적인 전문연구가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이미 전문가들에 의해 충분하게 논의되었다고 본다. 이글의 목적은  ‘종교개혁정신’의 본질을 총체적으로 집약해보면서, 그러한 종교개혁정신이 16세기 당시나 특히 지난 500년간 인류문화사나 사회정치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받았는지를 고찰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당대와 이후 사회사에서 사회변화에 영향을 끼치게된 종교개혁정신의 알짬 에토스(Ehos)를 4가지 근본적 명제(命題) 형식으로 서술해 보려고 한다.   

명제1) 양심의 소리와 리성의 빛의 존엄성 : 종교개혁자들이 가르친 양심의 자유와 그 존엄성, 그리고 맑고 밝은 이성의 권위와 그것의 비판정신은 근현대 사회에서 온갖 거짓권위와 허위 이데오로기를 비판하는 능력을 주어 인간으로 하여금 주체적 자유인이 되게 하고 현실변혁의 힘이 되었다.  

  1521년 4월 18일, 루터의 이단파문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기 위하여 소집된 신성로마제국의 웜스의회에서, 황제와 제후들과 귀족들과 교황청 성직자들이 웜스시의 의사당 대강당에 가득찬 역사적 재판현장에서, 루터가 쓴 저직물들과 주장하는 논문들을 취소할 것것을 요청받자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폐하와 각하들은 간단한 대답을 요구하고 계시기 때문에, 양도논법을 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대답하겠습니다. 성서와 명백한 이성(理性).에 의해서  잘못이라고 느끼지 않는 한 ....나는 교황과 교회의회(Councils)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모순되기 때문입니다.....나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취소할 수 없고 취소하려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양심에 반(反)하는 것은 옳지않고 완전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 여기 내가 섰습니다.나는 달리 말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도우소서, 아멘. Hie Stehe ich. Ich kan nicht  anders. Gott hellfe mir. Amen.]"

웜스제국의회  대강당에서 울려나온 독일 변두리 작은도시 일개 신학교수요 수도사에 불과한 루터가 말한 이 위대한 고백은 ‘루터 마음 가운데 사무처 있는 내적 고백’(A. Harnack)이었지만, 이 짧은 고백적 증언 안에 종교개혁 정신의 핵심이요 종교개혁의 주춧돌이 놓여있다. 왜냐하면 성서에 기초하지만 양심의 소리와 이성의 판단이 축적되어온 전통의 권위나 어떠한 권력으로 치장한 이념적 허구보다도 더 우선적이고 침해당할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근현대문화사에서 사회변화를 일으키는 모든 진리를 주장하고 행동한 개인과 집단에게 ‘양심의 자유와 그 존엄성’ 그리고 ‘이성의 맑고 바른 비판정신’은 큰 힘이자 변혁운동의 근본 에너지가 되었던 것이다.

 종교개혁운동의 3대 모토중에 하나인 ‘오직 성서만’의 원리를 ‘문자적 무오류성’으로서 오해하는 극단적 보수주의자들과 달리, 루터와 칼빈은 성서를 문자적으로 오류가 없다는 식의 ‘문자무오설적’ 성서절대주의가 아니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루터와 칼빈은 두사람 모두 훌륭한 인문주의적 대학교육을 받았던 것이다. 18세기 계몽주이 시대에  건전한 성서비평학이 용납되는 이유는 인간 양심의 빛과 이성의 빛에 대한 근본적 이해가 후대 굳어진 보수적 정토주의자들보다 깊고 심원했기 때문이다.

  틸리히는 이렇게 갈파한다: "경건주의와 합리주의의 공통점은 신비주의적 요소이다... 합리주의와 신비주의는 흔히 생각하는대로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그리이스 문화에서나 현대문화에서나 합리주의는 신비주의의 딸이다. 합리주의는 모든 사람안에 있는 ‘내적인 빛’(inner light), 또는 ‘내적인 진리’(inner truth)의 신비적 경험에서 발전했다.  이성은 신비적 경험으로부터 우리의 내부에 나타난다. 다시말해서, 우리 내부에 있는 신의 현존의 경험에서 나타난다“.

  칼빈 또한 이점에서 루터와 기본적으로 입장이 같았다. 이양호는 <문예부흥운동과 종교개혁운동>이라는 논문에서 이렇게 칼빈의 인장을 칼빈의 ⌜기독교강요⌟에서 인용하면서 소개하고 있다.

   “ 인간에 대한 플라톤의 견해는 더욱 옳다. 왜냐하면 그가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이 이미지(형상)를 고려하기 때문이다”
   "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진리의 유일한 원천으로 간주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경멸하기를 원하지 않는 한, 우리는 진리자체를 거부하거나 진리가 어디에서 나타나든지 그것을 멸시하지 못할 것이다....시민적 질서와 규율을 매우 공정하게 확립한 고대 법률가들 위에 진리가 나타난다는 사실을 우리가 부정 할 것인가? 철학자들은 자연에 대해 바로 관찰하고 예술적으로 묘사했는데 그들을 눈이 어둡다고 말 할것인가?“
  
한마디로 말해서,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타락과 죄성으로 인하여 양심의 능력이나 이성능력으로 구원에 이르지는 못하지만, ‘양심의 소리와 그 존엄성’그리고  ‘이성의 진리 분별력과 비판능력’을 존중하였다.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신념은  인류사상사에서 사회변화에 근본적 힘을 제공했으며, 인종이나 신분차별을 극복하고  인간의 천부적 존엄성에 대한 보편적 인식의 기초가 되었다.
종교개혁정신의 명제1은 오늘날 지구촌에서 경험하고 만나는 종교와 문화의 다원성을 열린마음으로서 긍정적 재평가하는 기초가 된다. 동아시아 정신문화사에서 출현한 성인들과 현자들의 맘속에 들리고 빛나던 양심의 소리와 이성의 빛은 동일한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정승훈은 이렇게 간접적으로 표현한다. “루터의 십자가 신학은 하나님의 창조왕국을 제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편적이며 우주적으로 확대되며 모든 피조물의 살아있음에 임재하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강하게 내포한다.”
 
명제2) 일상의 성화와 봉사의 신율적 윤리: 대표적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에게서 그리스인의 윤리적 삶은 구체적으로 노동과 직업을 통해 특수한 ‘신앙생활’이 아닌 ‘생활신앙’으로 전개된다. 노동과 직업을 소명으로서 이해한다는 사상적 전회는,  칭의(justification)를 넘어 성화(sanctification)를 강조하는 칼빈의 성화론에 의해 더욱 강조되어,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체를  ‘일상(日常)의 성화(聖化)’ 관점에서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
  
  루터연구가들에 의하면 루터의 윤리에서 후세에 사회변혁과 관련하여 볼 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공헌을 말한다면 노동과 직업관이라고 말한다. 루터는 사람들의 일상적 삶에서 노동과 직업은 단순히 경재적 재화를 얻기 위하거나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경재행위가 아니라 일상(日常)에서 하나님예배(하나님섬김)라고 까지 생각하는 혁명적 발상을 하였다. 그리하여 루터는 당시 중세사회의 성속(聖俗)이라는  이중적 직업관과  직종별-사회계층별 직업및 노동의 차별성을 부정하고 농사꾼과 장사꾼과 대장장이의 직업(Beruf)과 로마카톨릭 성직자들의 성직소명(Berufung)사이엔 본질적 차이가 없다고 가르친 것이다.

 루터는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속에서 노동의 신성성, 직종의 동등한 귀중함, 성속적 전문직업의 소명, 공의회소집권을 독점한 교황권을 부인하고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는 세속적 일에 종사하는 크리스챤  관리들과 귀족들의 책임과 권리를 일깨우는 가운데서 다음같이 폭탄선언 같은 소신을 주장하였다.         
  
  그들이 말하는 바 평신도와 사제, 군주와 주교, ‘영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 사이에는 실제로 직무와 일에 관한 차이 이외에는 아무 차이도 없다. 그들에게 ‘신분’에 관한 차이는 전혀 없다. .... 구두 수선공, 대장장이, 농부는 각기 자기들의 일과 직무를 맡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다 성별받은 사제와 주교와 같다. 그들은 각기 자기의 일이나 직무에 의하여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섬기지 않으면 않된다. 이것은 마치 몸의 모든 지체들이 서로 섬기는 것과 같으며,  이렇게 하는 것은 공동체의 육적인 혹은 영적인 복리를 위하여 여러 가지 일들을 행하기 위해서이다.

 사람들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사회적 삶을 영위함에 있어 ‘직무와 일에 관한 차이’만 있을 뿐이지 ’사회적 신분‘ 이나 직업종류에 따른 성속차별이나 그 직업상 일들에 있어서 가치의 우열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구두수선공, 대장장이, 농부의 직무가 성직자로서 임직식을 통해 성별받은 사제나 주교와 같으며, 모든 직업의 일과 직무는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섬기는 일”에 그 목적이 있다는 선언은 당시에나  현대에서나 놀라운 생각인 것이다.

  루터의 이러한 주장은 단순하게 모든 직업의 중요성과 소명감에 대한 격려의 뜻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사람들의 ’일상의 삶의 성화‘라는 우리들의 주제를 터놓는 신학적 원리의 기초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일상생활에서 다양한 노동과 직무수행이 자기의 경재적 이윤추구나 권력의 강화에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이롭게 하고 섬기는데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타자를 위한 존재‘(Man for Others)이며 ‘섬김’은  인간됨의 ‘기본적인 존재양식’(Modes of Human Existence)라는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섬김의 자유’라고 갈파했다.  루터는 크리스챤의 본질을 “자유인과 봉사자 됨” 이라고 갈파했고, 그 양자관계를 다음같은 매우 역설적인 두 명제(命題)로 압축해서 표현했다.

  크리스챤은 더 할수 없이 자유로운 만물의 주(主)이며 아무에게도 예속하지 않는다.
  크리스챤은 더할 수 없이 충의로운 만물의 종(從)이며 모든 사람에게 예속한다.

칼빈에게 있어서도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살아갈 때 근본적인 존재방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의화(義化)되고 성화(聖化)되는 존재방식인데, 그러한 삶의 핵심본질은 혈육적 존재인 자기부정을 통해서 “자기희생적 헌신, 하나님 봉사(예배), 그리고 이웃봉사(섬김)라고 보았다.

 칼빈의 신학에서는 루터신학의 무개중심이 칭의론에 있는 것과 비교할 때, 그리스도 십자가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거듭남(regeneration)과  성화(sanctification)의 주제를 심도깊게 다루고 있음은 주목할 일이다. 칼빈신학에서는 신자들의 영성 훈련과 교육, 절제와 견인(堅忍), 금욕과 헌신, 지속적인 개혁과 회개를 강조한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성화도 없다”고 분명하게 말하기 때문에 단순한 도덕적 경건주의와 다른 입장이다.

 칭의(justification)와 관련하여 칼빈은 인간은 네종류로 구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i) 하나님을 전혀 모르고 우상숭배에 파묻혀있는 사람. (ii) 성례전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입으로는 하나님을 고백하면서도 행동으로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이름뿐인 그리스도인. (iii)마음의 사악함을  헛된 의식으로 감추는 위선자. (iv)하나님의 영으로 중생하여 진정한 성화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으로 구분된다.   

  논자의 관심은 루터와 칼빈에게서 그동안 많이 논의 되어왔던 직업소명론, 그리스도인의 자유, 그리스도인의 성화 문제를 다루는 신학적 관심의 지평이  영혼구원론과 개인적 영성의 완전성이라는  신앙문제의 관점에서 주로 논의되었던 것을 ‘일상의 성화’ 주제로서 새롭게 지평을 넓히고 주제의 지향성을 재조명하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위기의 본질도 ‘신앙생활’만을 많이 강조했고 ‘생활신앙’에 대해서는 소홀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세속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간신히 주일날에만 그리스도인이 되고, 남은 6일 동안은 세상물결에 휩쓸려 가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사도는 몸으로서 드리는 참된 영적예배, 이 세대를 본받지 말 것,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할 것을 강조했다(롬12:1-2). 신자본주의라는 세계현실 속에서 현대인들은 ‘경재동물’로 전락되어 있다. 노동과 직업에서 숭고함과 거룩한 보람을 느끼는 ‘일상의 성화’를 회복하는데 종교해혁정신이 그 이론적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명제3) 정치권력과 경재권력 행사에서 공공성: 루터의 ‘두 왕국론’과  칼빈의 ‘하나님주권의 절대신앙’은 특히 정치권력과 경재권력의 공공성을 요청한다. 그 두 영역에서 공공성의 본질은 공동체적 삶 안에 자유, 정의, 평화의 실현이며 하나님나라의 역사내재적 측면을 온전케 현실화 하여 신의 창조의 영광을 들어내고 피조세계 안에 샬롬을 구현하는데 있다.      

 오늘날 지구촌과 한국사회의 비인간화 현실과 사회적 갈등과 생태학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인류사회는 공동체 현실 속에 존재하는 현대사회 구성적 3정(三鼎)인 정치권력, 경재권력, 문화권력의 본래적 존재이유를 묻고, 특히 정치권력과 경재권력의 공공성 확립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고 생각하게 돠었다. 두 권력이 공공성을 지녀야한다는 요청은 동과 서의 인류문화사 안에서 오래된 사회윤리적 담론이지만, 현대처럼 국가권력과 경재권력이 인간 삶 전체를 규정하는 사회구조 안에서  공공성 요청은 시대적 화두가 된 것이다.  

 공공(公共, Public)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단순의미는 “사회일반이나 공중(公衆)에 관계되는 일이나 기관을 의미하기 때문에 대체로 뒤에 붙는 명사와 함께 형용사로서 쓰인다. 예들면 공공기관(public institution), 공공경재(public economy), 공공방송(public broadcasting), 공공복지(public welfare), 공공기업체(public corporation), 공공위생(public health)등의 언어사용의 용례에서 보는바 같다. 손규태는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표제의 역저 안에서 현대정치사회학이나 신학적 개념으로서의 공공성을 다음같이  정리하고 있다.

  서구 유럽에서 공공성이란 근대적 의미에서 계몽주의 이래로 특히 프링스 혁명이후 절대군주 체제들이 붕괴되면서  등장한 정치적 개념이며, 근대 민주주의 정치적 과정들에서 모든 시민이 같이 추구 해야 할 이상적 삶의 목표로서 사용해오고 있다.....누구에게나 공개되고 접근가능하며 잘 알려진 삶의 영역을 공공성 혹은 공적 영역이라 말한다. 정치적 의미에서 공공성이란 (i) 누구든지 듣거나  볼 수 있는것 (ii) 많은 사람 혹은 대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 (iii) 국가나 공공기관들에 관련된 사안들을 의미한다.

공공성에 관한 위와 같은 일반적 이해를 철학적으로, 사회윤리적으로, 더나가서 법철학적으로 심화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사상가가 임마누엘 칸트이다.  저 유명한 칸트의 실천이성의 근본법칙을 공동체의 권리와 행위를 규정하는 정치적 법제정이나 경재적 법제정과 활동에도 적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천이성의 근본법칙은 “너 의지의 준칙(準則)이 항상 주관적인  동시에  법칙 수립이라는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게 행위하라”는 것이다.

 칸트의 위에서 언급한 실천이성의 근본법칙을 정치권력과 경재권력 집단의 법제정과 그 행정 명령에 적용하면, 공동체 대다수의 공적 권리들을 침해하거나  공공성에 부합하지 않거나, 통치자 개인의 정치철학적 신념이나 특별 정당이나 경재집단이나 사회계층만을 위하여 법이 제정되고 행사된다면 그것은 공공성을 상실한 것이므로 정당하지 못하며 비판되고 극복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그것을 신학적-신앙적으로 표현하면 정치권력과 경재권력의 주체자들의 법제정과 행정적 실천준칙들은 하나님의 뜻과 의지 곧 하나님나라가 지향하는 자유-정의-평화로 압축되는 샬롬공동체의 삶을 증진시키는  공공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렇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하는데, 현실적으로는 국민의  저항권과 정권교체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프랑스 혁명과 계몽주의 시대이후 근현대사회에서 보편화된 위와 같은 인류공체의 신념은,  16세기 문화-사회적 ‘삶의 자리’에서  루터의 두왕국론과 칼빈의 하나님 절대주권 신앙및 그리스도의메시야적  왕권 사상을 통해 그 시대의 언어로서 표현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삶의 모든 영역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이념아래 영위되던 16세기 유럽적 경정치-경재적 삶의 자리인 ‘그리스도교의 체제 시대’(corpus Christianum)가 지나가고 근현대사회가 합리주와 세속주의 지배아래 들어간 현대사회에서 루터의 두왕국론과 칼빈의 하나님 절대주권 사상이 말하려던 본래 의도와 신념을 어떻게 현대상황에  적용시킬 것인가 심각한 변증신학적 과제 앞에 우리가 직면해있는 것이다. 먼져 루터와 칼빈의 정치경제신학을 핵심만을 다시 요약해보아야 하겠다. 먼저   마틴 루터의 두왕국론은 핵심요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시민법과 칼(통치)을 위한 건전한 토대를 준비함으로써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질서에 의해서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누구든지 의심하지 않게 해야 한다.... 따라서 분명한 사실은 세상적 칼(통치권)과 법률은 세상의 사악한 자들을 처벌하고 그들의 봉기를 막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여기서 우리는 아담의 자식들과 전체인류를 두 개의 계층들, 즉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사람들과  세상 왕국에 속한 사람들로 나누어야 한다. 하나님의 왕국에 속한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와 그리스도 아래와 그리스도를 위해서 존재하는 참된 신자들로 하나님의 왕국의 백성이다.  이 하나님 왕국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믿지 않는자들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게 하는데 있다.  

위에 인용한 루터의 설교내용 가운데 나타난 두왕국론은 세상적인 정부에 대하여 크리스챤은 어느정도 복종해야하는가 현실적 문제를 농민혁명의 혼란을 겪으면서 루터가 바이마르 백작 앞에서 행한 설교에서 피력한 루터의 정치사상이다. 루터의 두왕국론이 말하는 핵심사상을 손규태는 다음같이 요약한다.

  (i) 루터는 두 왕국론을 통해서 세속적 왕국(국가)과 영적왕국(교회)이라는 두 개의 통치방식을 통해서 하나님은 세상을 다스린다. 따라서 두 개의 통치권과 질서는 신성하고 그 권위에 복종해야 한다. 따라서 어떤형태의 신정정치도 인정하지 않으며, 무신론적인 유사종교적(Quasi Religion) 권위와 기능을 주장하는 정치권력도 인정하지 않는다, 다시말하면, 세상적인 세속왕국과 영적왕국이 서로 종합되거나 혼합되어서는 않된다. 두왕국의 직무와 기능은 분명한 ‘구별’이 요청되지만 철저한 ‘분리’는 않된다. 하나님의 통치아래서 함께 일하는 두 개의 통치방식이므로 양자의 철저한 무관계성을 말하는 ‘분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ii)  두왕국위 통치방식과 수단은 다르다. 세상왕국(국가)에서는 칼(무력과 강재력)을 통해서 사악한 자들을 처벌하고 국민의 안녕질서를 지키는데 있다. 영적 왕국(교회)은 칼이나 물리적 강제력으로 통치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복음을 받도록 하는데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각기 다른 과제들을 가진 두 왕국, 두 정부는 상호 협력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에서 루터의 두왕국론을 오해하여 ‘정교분리’를 말하는 사람들은 루터의 정치신학을 오해한 것이다. 두 왕국론은 서로 구분(distinction)을 말하려는 것이지 분리(separation)를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자면 루터의 두 왕국론의 진정한 의도는 두 개의 독자적 통치영역을 말하려는 데 있지 않고 두 개의 통치방식과 질서를 말하려는 것이다.  

 (iii) 루터가 말한 두 왕국이론은 정치계나 종교계나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그리스도교적 정신을 공유했던 16세기의 사회문화의 삶의 자리  곧 ‘그리스도교의 체제’(corpus christianum) 안에서 가능한 담론이었다. 그러므로, 계몽주의 시대 이후 탈기독교 문명시대 특히 세속화와 삶의 전영역이 합리화되어온 현대사회에서 루터가 말하는 두왕국론의 정신을 구현하는 길은 정치권력과 경재권력과 문화권력으로 하여금 철저한 ‘공공성’ 정신을 지키도록 감시하는 것이며, 공공성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교신학’ 이라는 열린 담론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간접적으로 실현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칼빈의 정치사상과 경재사상은 본질적으로 루터의 종교개혁정신을 이어가면서도, 정치사회적으로 보다 자유로운 제네바시를 중심으로 그의 사상이론과 실천이론을 전개하였는데, 특히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는 기본신념 아래서  보편적 ‘그리스도의 메시야적 왕권’사상을 초점으로 하여 전개되었다.  

  칼빈도 마틴 루터의 견해와 같이 하나님이 세계통치 방법으로서 두 개의 정부론을 인정하며, 그 둘은 구별되기는 하지만 분리되는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특히 세상정부와 교회라고 하는 영적 정부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그리스도의 우주적 그리스도의 왕권에 속하고 그것을 봉사하는 임무를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통치는 그리스도의 영적이고 내적인 나라와는 다르므로 우리는 이 둘이 서로 상반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영적 통치는 지상에 있는 우리 안에 하늘  나라를 이미 시작하게 만들며, 이 죽을 수 밖에 없는 덧없는 생명 속에서  영원히 썩지 않는 축복을 어느정도 예상 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국가통치의 지정된 목적은, 우리가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동안 하나님께 대한 외적인 예배를 존중하고 보호하며,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위상을 보호하며, 우리의 생활을 인간 사회에 적응시키며, 우리의 행위를 사회정의와  일치하도록 이끌며, 우리가 서로 화해하게 하여 전체적인 평화와 평온을 증진케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영적왕국과 세상정치적 통치 아래있는 정치왕국의 차이를 인정하되 두 개의 왕국의 필요성과 특히 국가의 책임을 규정하고 있다. 이미 말했듯이 정치-사회-문화적으로 <그리스도교 체제>안에서, 특히 제네바시를 중심한 종교개혁을 이끌면서, 세상정부 곧 국가의 임무 안에 “건전한 교리와 교회의 위상을 보호하는 임무‘를 말하는 것은  교회를 분열시키고 파괴하는 이단자들에게 교회가 취할 수 있는 출교조치를 넘어서 무력적 강제로서 그들을 징치하는 임무가 있다고 말하기 까지 하는데 이것은 16세기 특히 제네바 도시의 ’삶의 자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국가의 임무로서 외적인 예배존중, 사회정의에로 일치, 인간상호간의 화해, 그리고  평화와 평온을 증진케하는 일로서 강조하는 것은 오늘날 표현으로 하면, 종교와 사상의 자유보호, 치안유지와 개인재산보호,  사회정의 실현, 사회갈등극복, 그리고 사회안정과 평화증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것들의 실현임무가 다름아닌 국가의 공공성이라는 것이다.   칼빈은 급진적 재세례파들의 국가정부 무용론과  마키아벨리즘적인 국가권력의 독립적 신격화를 동시에 비판하면서 현실적인 인간성을 감안하면서 두 왕국이론을 지지한 것이다.

  칼빈에게서 정치권력구조의 구체적 정부형태로서는 현대의 완전한 국민주권의 대의정치는 아니다, 그는 16세기 시대의 아들이었다. 최선의 정부형태를 입헌군주제로서 인정하였고, 일반시민들의 정부전복에까지 이르는 정치혁명은  용납하지 않았다.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현대민주공화국의 헌법 제1조와  다르다는 것도 사실이다.  

  칼빈의 경재사상에 대하여 자세한 내용을 여기에 다시 서술 할수 없다. 이양호교수의 탁월한 논문 안에서 칼빈의 경제사상의 핵심을 아래와 같이 요약하고, 그러한 칼빈의 경재사상은 오늘날 경재권력이 자행하는 공공성 상실을 비판하는 충분한 근거가 됨을 지적하는데 그치기로 한다.

  칼빈의 경재사상을 논할 때 자주 쟁점이 되는 문제는 막스 베버(Max Weber)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안에서 주장한 논지, 즉  칼빈이 직업에 관해서 주장한 직업소명의식과 칼빈의 예정론이 근대적 의미의 자본주의 경재제도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옳은 주장인가 과대평가한 오해인가의 상반되는 견해가 학자들 사이에 있었다. 이 양호는 학자들의 논쟁을 다음과 같이 비판적으로 지양하면서 결론을 내린다.

  베버(M.Weber)와 트릴취(E.Troeltsch)는 칼빈주의가 자본주의의 발달에 공헌을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엘리(A.Bieler)와 그레이엄(W.Graham)은 칼빈주의 정신이 자본주의의 정신과 다르며 오히려 칼빈주의는 기독교사회주의적 면을 지고 있다고 주장했다.....이렇게 볼 때 칼빈주의에는 자본주의적인 면과 기독교사회주의적인 면이 공존한다고 말할 수있다. 칼빈의 가르침에는 사유재산제도를 인정하고, 상공업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으써 시장경재체제와 사업상의 이윤을 인정하고, 사업자금에 대한 이자를 인정함으로써 금융업을 인정하는등 자본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한편 기금을 늘려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면서,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공립학교를 세워 가난한 가정의 아동들을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등 사회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이양호의 통전적 판단이 칼빈주의나 칼빈사상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현재적 경재사회제도의 양축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중에서 어느 한쪽 유형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 양편의 장점을 포괄하면서 단점을 극복하는 그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경재적 사상체계라고 보아야 한다고 이양호는 결론내리고 있다. 필자의 견해도 그러하다. 그러면 그러한 칼빈의 경재사상은 우리가 이 글에서 담론화 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빛 아래서 공공성을 필수조건으로 주장하는 경재사상과 그 지향성이 동일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막스베버가  칼빈의 예정론이 가져온 구원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한 신자들의 자기확실성의 보장시도로서  부를 축적하여 하나님의 선택을 경재적 재화축복으로 실증하려한 동기도 있었다고 보는 견해는 전혀 그릇된 예정론에 대한 오해이다. 심지어그런 생각은  ‘복음의 신비와 비의’라고 보는 예정론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된다. 다음같은 칼빈자신의 말이 이를 입중한다.      

  소명은 선택에 의존하며, 따라서 전적으로 은혜의 사역이다....하나님께서는 선택을 자신 안에 감추어 두시지만, 부르심으로 그 선택을 나타내실 때에는 무차별적으로 하시지는      않는다. 따라서 부르심은 선택의 ‘증거’라고 일컫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롬8:29-30)

위에서 그리스도 복음을 믿도록  “하나님이 미리 아신자들을 부르심”이며, 부르심 받은 신자들이 그 은혜에 감동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응답하여 직업을 소명으로 알고 금검, 절약, 저축, 그리고 합리적 시간관리, 저축된 재화의 창조적 재투자, 형성된 부를 자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고 세상에서 선한일에 아낌없이 사용하는 크리스챤의 경제활동은‘예정’에 대한 불안한 심정의 반증이 아니라  자발적인 사랑의 응답이고 섬김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독자의 신앙적 자세를 사회공동체적으로 경재권력과 정치권력이 바르게 법제정과 운영을 통해 수행할 때, 우리는 그것을 올바른 공공성이라고 부를 것이다.   

명제4) 국가주의의 비신격화와 종교전통의 비신성화: 종교개혁운동에서 제3물줄기로서 지하 수맥처럼 흐르고 있는 ‘급진적 종교개혁운동’은 두왕국론(두정부론)을 공유하는 루터나 칼빈의 종교개혁정신이 사회변화에 끼친 영향과 비교할 때 매우 급진적이고 근본적(radical) 사상이다. 핵심은 국가권력과 제도적 종교권력의 절대화를 부정하고, ‘크리스쳔 현실주의’가 주장하는 ‘보다 작은 악 선택이론’에 근거한 무력사용과  선한전쟁에 대한 주장마져도 산상수훈‘의  ‘비폭력  평화 지킴의 계명’을 통해서 비판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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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급진적 종교개혁운동, 종말론적 소종파 개혁운동, 재세례파 운동, 은사주의 성령파 운동, 종교개혁 좌파운동등 운동의 색상에 따라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우는 16세기 종교개혁의 제3흐름이 있다. 대표적 인물들을 예로 든다면 독일농민전쟁이 주역으로 활동하다 체포되어 처형당한 토마스 뮌쳐(1490-1525), 신비주의운동의 대변자 세바스챤 프랑케(1499-1543), 모라비안 지역에서 원시 기독교 공산사회를 실현하려 했던 야곱후터(1500-1536), 임박한 종말론에 근거하여 기존사회제도를 혁명하려던 과격파 멜키오르 호프만(1495-15430, 산상수훈 대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한 비폭력 평화주의자 메노 시몬스(1496-1561)등이 있다.
  지면의 제약상 긴 서술은 불가능하게 되었다. 전문학자들의 연구 논문을 주로 참조하면서 핵심주장과 그 의미를  오늘담론의 주제인 정치권력과 경재권력의 공공성 신학이라는 시각에서 언급하려고 한다. 손규태는 종교개혁 죄파운동의 일반적 특징을 다음같이 몇가지로 정리한다.

 (i) 종교개혁의 제3흐름 세력인 종교개혁죄파운동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려진 국가제도와 국가종교를 거부하고 일종의 무정부적인 새로운 공동체형성을 지향한다.
 (ii) 종교개혁 좌파운동은 루터와 칼빈의 ‘오직 성서만’의 근본정신을 받아드리지만, 더욱 철저하게 문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산상수훈 말씀을  예수 말씀대로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iii) 기존의 국가권력이나 제도적 교회권력이 신앙 양심을 억압하고 핍박 할 때, 첨엔 겸손과 인내로 순종하지만 더 이상 견딜수 없을 때, 그것의 전복을 서슴치않는 혁명적 변혁사상을 갖는다. 혁명적 개혁운동 진행과정에서  좌절을 경험하자 정반대로 ‘비폭력, 무저항, 절대평화주의’를 주장한다.
 (iv) 진정한 성도는 제도적 교회와 신학이 말하는 외형적 세례, 성찬식, 교리신조등을 중요시하지 않고 직접 영혼안에 성령으로 비취이고 말씀하시는 ‘내적인 빛’ 혹은 ‘내적 음성’을 중요시하여 성직자들의 필요성을 강조하지 않는다.
 (iv) 그들은 루터와 칼빈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받다드린 ‘두 왕국(두정부)론’을 타협적 태도라고 판단하고 거부하면서 새로운 사회제도를 꿈꾸며 그들만의 ‘ 새로운 성도 공동체 마을’을 형성하려고 한다.

  이상에서 요약한 종교개혁 좌파운동이라고 불리우는 제3흐름의 사상은, 지난 500년 프로테스탄트 교회사 안에서 소종파 운동으로 명맥을 유지해 가거나, 비주류 신학으로 부류되어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오늘 21세기 지구촌 현실에서 루터 칼빈의 ‘두 정부론’은 계몽주의 시대이후 세속화된 시대안에서 ‘두 정부론’ 주장은 불가능하다. 또한 리쳐드 니바가 주장하는 ‘복음에 의한 사회변혁론’은 이상은  좋고 신학적 주장도 정당하지만, 교회공동체는 현실사회의 세계관이니 가치관을 변혁해가는 동력을 갖기는 커녕 정반대로 완전히 점령당한 형국이다.      

 특히 현대사회에서 정치권력의 화신체인 국가주의와 경재권력의 화신체인 신자유주의가 사회적 인간삶을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사람들에게 헌신과 몰입과 충성을 요청하는 ‘유사종교적 기능’(Quasi religious fuction)을 수행하는 현실에서  종교개혁 제3흐름의 ‘생활신앙’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지만 깊은 재평가를 할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특히 국가권력을 비신격화하고 기존종교의 전통을 신성시하는 종교의 마성화를 비판적으로 극복하고, 핵정젱 위기를 극복하기 이해서 종교개혁 급진주이자들의 신앙적 신념을 창조적으로  계승발전시키는 과제를 우리는 갖고 있다.

4. 나가는 말

  하비 칵스는 ⌜세속도시⌟에서 주장하기를 기독교의 ‘무로부터 창조’신앙, ‘출애굽의 파라호 폭정에서 해방사건’, 그리고 ‘시내산 십계명의 우상제작금지 신앙’, 그 세가지는 인류문화및 사회변혁의 역사 속에서  ’자연의 비마력화, ‘정치권력의 비신격화’, ‘문화와 가치의 비신성화’를 가능케 한  영적 원동력으로 작용했다고 갈파했다.

   리챠드 니버는 ⌜유일신 신앙과 서구문화⌟에서, 유럽기독교 문화사와 교회역사는 실질적으로 유일신신앙(One beyond Many)을 견디어 내지 못하고  일신론신앙(One  among Many)에로 타락하여 복음이 지닌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초월하는 신앙역설’을 잃어왔다고 비판적으로 서구사회사와 교회사를 비판적으로 평가했다..  다시말하면 기독교교회와 신학이 국가주의나 신자본주의적 시대의 정치사회적 이데올로기에 습합하거나 편승하여 본래적 복음의 자유와 비판적 초월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삶 전체영역을 ‘합리화’하고 생산소비 구조를 자본주의적 경재이론에 따라 ‘산업화’하고 사회주의 혁명의 실험이 실패로 판정되면서  서구적 근대화(modernization)이념은 오늘날 재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2차대전 이후 탄생한 국제연합(UN)이 추구하는 인류의 공동복지와 평화추구 이념은 강대국들의 국가주의 망령들에 농락당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시대에 인간들의 삶은 그 영성이 황폐화되고 ‘경재동물’로 퇴행하여 삶 속에서 숭고함이나 영성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특히 비대해진 국가주의적 정치권력과 대기업 재벌들의 경재권력은 공공성을 겉으로만 치장 할 뿐, ‘생활의 성화’나 권력의 공공성 회복은 결코 낙관할 수 없는 문명사적 위기에 도달했다.   

“하나님나라가 땅위에 임하소서”라는 기도가 진실한 기도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지향하는 세상 곧  <생명,정의,평화>가 인간사회와 온누리에 실현되는 일을 위해서 교회는 온 힘을 집중해야 하겠다. 그 일을 위해 오늘날 현실적인 국가권력과 경재권력과 문화권력이 가진자들과 힘있는자들의 전유믈로서 전락해버린 현실사회 속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공공성’을 회복하도록 신학은 증언하고 영적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참고서적]

1. 루터전집, 제7권, 제9권. (컨콜디아사, 1986)
2. 마틴 루터지음, 지원용 옮김,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 3대논문⌟, (컨콜디아사, 2012)
3.지원용, ⌜말틴 루터: 생애와 사상⌟, (대한 기독교서회, 1972)
4. W.카질톰슨 지음, 김주환옮김, ⌜마르틴 루터의 정치사상⌟, (민들레, 2003)
5. Calvin, Edited by John T. McNeil, Translated by F.L Battles,⌜Institudes of the Christian Religion⌟, vol.1,2,     (Westminster Press, 1973). 한글역본,⌜영한 기독교 요⌟, 1권-4권, (성서연구원, 2002)
6. 에른스트 트뢸취지음, 현영학 옮김, ⌜기독교 사회윤리⌟, (한국신학연구소, 2003)
7. Paul Tillich Ed. by C. E. Braaten,  ⌜A History of Christian Thought⌟, (Simon & Schuster, 1967)
8. 퐁 틸리히 지음, 송기득 역, ⌜19-20세기 프로테스탄트 신학사⌟,(한국신학연구소, 1980)
9. 손규태지음, ⌜개신교 윤리사상사⌟,(대한 기독교서회, 1998)
10. 손규테지음, ⌜하나님 나라와 공공성⌟, (대하 ㄴ기독교서회, 2010)
11.정승훈, ⌜종교개혁과 21세기⌟, (대한 기독교서회, 2001)
12. 해암신학연구소, ⌜신학과 교회⌟, 제6호(2016.여름호) <특집: 종교개혁의 역사적-신학적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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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요약, 한글]

 이 논문은 종교개혁운동의 핵심적 사상이 사회변화에 미친 영향을 기독교사회윤리 관점에서 고찰한 것이다. 연구지향성은 방론적으로는 종교개혁 전공의 교회사 학자들의 연구업적을 참조하여 기독교사상사적-문화신학적 관점에서 논한 조직신학 논문이다.

 이 논문이 지향하는 주된 관심은 종교개혁자 루터와 칼빈, 그리고 급진적 개혁자들의 신학사상을 ‘일상의 성화’ 관점과 ‘정치와 경재권력의 공공성’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고찰한다. 그리하여, 위대한 종교개혁운동이 지난날 16세기 유럽사회에서의 기독교내 개혁운동에 제약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인류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단초로서 삼으려는 목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운동의 핵심본질을 ‘하나님나라 운동’이라고 파악하고, ‘ 하나님나라’가 지닌 역사내재적 측면과 역사 초월적 측면을 동시에 통존시키면서, 루터와 칼빈이 말하는 ‘두왕국론’의 참다운 의미를 밝힘고  ‘정교문리론’의 오류를 바로잡으려 했다. 세속왕국(국가)과 영적왕국(교회)은 각가 그 기능과 역활분담에서 ‘구별’ 해야하지만 ‘분리’할 수 없음을 강조한다.

 한국교계를 보수와 진보로 양분하는‘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양분론이 원천적으로 잘못된 것임을 강조한다. 또한 루터와 칼빈의  경재사상이, 그들의 시대적 ‘삶의자리’ 가 지닌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문제되는 정치와 경재활동에서 필수적인 공공성신학을 지향한다는 것을 밝히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급진적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종교개혁운동에서  제3의 흐름들의 신앙운동이, 오늘날 국가권력비판과 비폭력 평화사상의 신학적 기초가 될 수 있다고 그 의미를 재평가하고 주목한다.

[한글주제어]

하나님 나라, 일상의 성화, 공공성 신학, 두 왕국론, 정교분리, 국가권력과 제도교회의 비신성화  

[Abstract]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socio-political changes influenced by Reformation, especially by the thoght of Martin Luther, John Calvin, and anabaptists. This essay intends to show the points of agreement and differences between them regarding with authority of national regime and orthodoxy church.  However, the point of view for this article is the perspective of a socio-cultural theology rather than the church history proper.

The key words of this essay are the authority of conscience and reason, sanctification of daily life, public character of economic-poritical powers, kingdom of God, and radical criticism on the  national regime and the  institutional church system.

 First of all, this paper intends to make the authentic meaning of the Kingdom of God clear. This symbol, the kingdom of God, is the kernal of the Gospel , the core of proclaimed keryugma of Jesus and apostles. And further more,  this Christian symbol is the foundation of Christian social ethics and the critical viewpoint on various ideologies of economic-polical powers. Regarding with the attitude to Christian social ethic, the difference and conflict between conservative Christian and liberal one originate to the different understanding on Kingdom of God.
 The Kingdom of God is a social, political, and personalistic symbol. The symbolic material is taken from the ruler of realm who establishes a reign of justice and peace. The Kingdom of God includes the spiritual community, but just as the the historical dimension embraces all other dimensions, the Kingdom of God embraces all realms including socio-political affairs. So that, as Tillich argues, it is significant that the symbol of Kingdom of God is political.

 Luther and Calvin agreed about two functions of the law in terms of 'the two kingdom(goverment) theory'. The point of the two kingdom theory is that regarding with fuctions and duties, two kingdoms should be distinguished but could not be seperated. Calvinism has produced a type of protestant ethics in which progressive sanctification is the aim of Christian life which is called 'inner-worldly asceticism'.
 The third stream of reformation as the radical reformation group including anabaptists  argues that the symbol of the Kingdom of God has a revolutionary character . They assert that Christianiy, in so far as  it works in line with Kingdom of God, should be a revolutionay force directed towards a radical transformation of society. This thought is expressed , in Ecumenical Movement of 21 century, like as "Justice, Peace , and integrity of creation".         

[key words]

dignity of inner voice of conscience, two kingdom theory , sanctification of daily life, public theology, revolutionay character of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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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논문제목 영문표기, 필자 영문성명, 필자 소개 약력]

 영문제목 : Reformation and Social Change : Seen from a socio_political public  theology and a  Christian social ethics viewpoint.     
 필지성명 : Kyoung Jae Kim
 필자약력 : 화란의 University of Utrecht 신학부에서 박사학위, 현재 한신대학교 명예교수. 현대신학 특히 폴 틸리히의 문화신학 전공. 대표저서로서 <해석학과 종교신학>, <폴 틸리히 신학연구>, <함석헌의 종교시 탐구>, <장공의 생활신앙 깊이 읽기> 등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