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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야기

‘구원의 서정’ 교리 비판/cafe.daum.net/cgsbong

창세전에 작정된 삼위일체 하나님의 구속사역은 ‘성령의 주권적 사역’으로 ‘복음에로의 초청’으로 시작된다. ‘구원의 서정’에서 ‘성령의 단독적 사역’에 의해 ‘소명’과 ‘중생’과 ‘회심’과 ‘믿음’과 ‘칭의’와 ‘수양’과 ‘성화’와 ‘성도의 견인’과 ‘영화’가 주어지며, 순서마다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된다.
그러므로 미국의 칼빈주의 신학자 로버트 뎁니는 “창세전에 하나님의 예정가운데 택함 받은 언약백성에게 , ‘성령의 응답적(반응적) 사역’으로 ‘회심’, ‘믿음’, ‘성화’가 주어지며,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완전하게 적용되어 구원의 확신을 얻게 된다. ”고 진술한다. ‘구원의 서정’에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성령의 주권적 사역’의 관계는 구원의 적용을 위한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과 그리스도의 은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구원의 서정’에서 성령의 동인 없는 양동사역교리와 성령의 사역 업는 ‘그리스도와의 연합’교리, 인가느이 조력에 의한 선행 공로교리, ‘신인협동교리’, 성례에 의한 인본주의 구원교리, 펠라기우스교리, 쉴라이에르마허의 자유주의 신학사상은 성경적인 구원적용이 불가하다. 그리고 세미 알미니안적 웨슬리안주의자의 주장인 ‘회심’과 ‘믿음(신앙)’과 ‘성화’의 성령과 인간의 양동 사역교리도 예외가 아니다. 여기서부터 개혁파의 이장에서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와 알미니안파 · 자유주의 신학의 오류를 보다 더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평가(비판)한다.

1.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의 서정’ 교리 비판

ㅇ구원의 서정 특징 : 3단계(1.충족은혜 2.주입은혜. 협력은혜)

로마 가토릭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 관계를 ‘구원의 서정’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로마 가토릭파는 구원을 ‘로마 가토릭 교회’자체에서 시작한다. 교회가 성령이고 ‘복음’은 교리 지식으로 대신한다. 이것을 제 1단계 ‘충족은혜’라고 한다. 사제의 ‘성례(세례 · 성찬)’가 구원의 방편으로서 중생 · 칭의·수양을 수여한다. 이것을 제2단계 ‘주입은혜(성체성사)’라고 한다. 선행으로 성화하여 믿음·소망·사랑을 갖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사제가 베푸는 성체성사로 이루어진다. 제3단계 ‘협력은혜’는 ‘조력은총’이라고도 하며, ‘회심(고해성사)’, 소명, ‘초자연적 성화(영화·고행·만족)’를 말한다. 그러므로 로마 가토릭파는 구속 적용의 모든 순서에서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핵심으로 사제가 베푸는 ‘세레 · 성찬미사’교리를 꼽는다. ‘그리스도와 연합’이라는 필수불가결한 구원의 역사를 오직 사제가 베푸는 ‘충족은혜(세례)’와 ‘주입은혜(성체미사)’를 받는 길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사제는 하나님과 동등하며 “사제는 ‘또 다른 그리스도’이다.” 로마 가토릭의 전승과 「성경」은 그 권위가 동등하여 「성경」을 언제라도 가감할 수 있다.


우리가 만일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 교리를 신학적 비판 없이 수용한다면 그리스도의 은혜는 ‘성도의 구속’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왜냐하면「성경」보다도 더 절대적인 로마 가토릭파의 ‘교황무오설’과 ‘세례·성찬교리’가 필수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로마 가토릭파 교리를 ‘성도의 삶’에 적용한다면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사제들에게 죄를 고백하는 ‘고해성사’와 연옥미사에 치중하여 오히려 ‘구원의 확신’이 없다는 것이다. 사제는 성도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와 차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의 서정’교리는 목회와 성도의 삶 속에 적용할 수 없으며, 개혁파의 입장에서 저들은 성례중시교리와 ‘신인협동교리’로서 교조주의적 체재만 농후하다는 비판점을 계속하여 받게 될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세례’와 ‘성찬’에 의한 신인협동교리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의 본질에 가장 유해한 교리이다. 은혜의 복음이 ‘성도의 구속’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도깨비신학’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개혁파의 입장에서 볼 때 로마 가토릭파의 ‘구원’ 교리는 ‘성례주의’, 인간 공로주의 , 교황과 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조(전체)주의 원리이다. 칼빈은 ‘성례’는 말씀의 표징이고 ‘세례’는 원죄의 죄 사함과 상관없이 사람들 앞에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이들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의 관계에 대한 오류와 그 비판점을 여섯 가지로 말한다.


① 그들은 ‘중생’부터 ‘세례’와 ‘성례’의 효능으로 구원 받는 것으로 이해하며, 구원의 ‘복음 설교’를 부차적인 것으로 주장한다. 그리하여 인간의 ‘자유의지’와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사역’에 의한 구원 개념에 ‘반 펠라기우스’주의의 개념을 합하였다. 곧 인간의 선한 씨앗이 하나님의 은혜의 도움을 받아 인간이 구원의 은혜를 수용한다면 “인간 안에 내재된 선한 씨앗들이 효과적으로 자라게 될 것”이라고 한다.


②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중생’을 위해 영세 전 기대되는 ‘충족은혜’는 성경적으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왜냐하면 개혁파 입장에서 ‘중생’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단독 사역’에 의해 주어지는 구원의 적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은 전혀 피동적이다. 그러므로 구원사역에서 그들이 말하는 ‘충족은혜’를 받은 인간의 조력은 전혀 필요 없다.


③ 그들이 말하는 ‘선행’은 구원의 공로 조건으로는 타당성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개혁파의 견해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공로에 의한 ‘오직 믿음’으로 ‘칭의’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성화의 씨’를 받기 때문이다.


④ 그들이 ‘복음’ 설교보다 중요시 여기는 ‘세례·성찬’은 ‘중생’과 ‘원죄’에 대한 사죄의 능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한 번 ‘중생’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의롭다함을 적용받은 자는 결단코 정죄함이 다시 있지 아니하며 구원은 확정된다. 이는 칼빈과 개혁파의 전통적인 ‘성도의 견인’교리이기도 하다.
⑤ 그들이 행하는 ‘고해성사’는 ‘사죄’의 근거로서 작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즉 인간의 공로가 아닌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성경적 구원관이다. 그러나 로마 가토릭파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한 ‘신·망·애’보다 ‘인간의 공로’를 훨씬 우월한 위치에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성도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충분성’을 부정하고 있다.


⑥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과 ‘성령의 단독사역’에 의한 ‘구원의 확신’을 전적으로 부정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로마 가토릭파는 구원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한 ‘견인’교리가 없다. 그들은 ‘원죄’에 대한 전적타락, 전적무능을 해결할 길이 없다. 아담의 옛사람이 타락하여 ‘자아 충족적 원리’를 고집하는 것이다.

요약정리하면 로마 가토릭파에서 교황과 사제는 하나님과 동등하고 또 다른 그리스도이다. 「성경」을 가감하여 그들의 교리가 최고의 권위를 지닌다. 그러므로 ‘중생’부터 사제의 ‘세례’와 ‘성례’의 효능으로 구원 받는 것으로 이해하고 구원의 ‘복음 설교’를 부차적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말하는 ‘중생’을 위한 세례전 ‘충족은혜’는 성경적이지 않다. 성화를 위한 ‘선행’은 구원의 공로 조건으로는 타당성이 전혀 없다. 그들이 ‘복음’보다 중요시 여기는 ‘세례·성찬’은 ‘중생’과 ‘원죄’에 대한 사죄의 능력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이 행하는 ‘고해성사’는 ‘속죄’의 근거로서 작용할 수없다. 그들은 사제의 ‘세례’로 ‘중생’을 , 성찬미사로 ‘그리스도와의 언합’을, 연옥미사에 의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원의 확신’은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개혁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단독사역’에 의한 ‘구원의 확신’교리를 전적으로 부정한다. 이들의 교리는 반 성경적임은 물론이고 신론, 삼위일체 하나님, 인죄론, 예정론, 기독론, 구원론, 성령론, 교회론, 종말론 등을 부정하고 있다.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악이다.



2. 루터파의 ‘구원의 서정’ 교리 비판

ㅇ구원의 서정 특징 : 창세전의 객관적 구속사역은 말하지 않고 주관적인 구원의 서정은 “소명-조명-회심-중생.신앙-칭의-신비적 연합-갱신-보존”

루터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관계를 ‘구원의 서정’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창세전의 구속사역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노예의지’를 지닌 인간편에서 본 ‘신앙’문제로부터 구원론을 시작한ㄷ. 루터는 ‘소명’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이것을 ‘뿔’처럼 잡으려는 인간의 ‘노력’에 의한 ‘협동작용의 산물’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구원의 서정’을 소명-> 조명 -> 회심 -> 중생 · 신앙 -> 칭의 -> 신비적 연합 -> 갱신 -> 보존으로 구별한다. 구원의 순서에서 성령이신 교회를 통하여 조명, 회심을 수여받고, 중생 ·신앙, 칭의까지 교회의 세례와 성찬으로 수여받는다. 사람의 ‘믿음’과 의지, 선행으로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낟. 그리고 인간의 신앙의 태도에 따라 ‘갱신’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보존’한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도의 공로로 구원이 주어지고 ‘신인협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갖는다는 루터파의 구원론에는 그리스도의 은혜를 강조하는 장점이 있으나 로마 가토릭파처럼 말씀(복음)보다 외적 은혜의 방편인 세레, ‘성찬(공제설)’에 의한 사람의 믿음이 ‘칭의’를 이루게 한다고 하므로 성경적이지 못하다. 이들은 사람의 신앙이 ‘칭의’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룬다는 견해 때문에, ‘유효적 소명’부터 확실성이 없다. 신인협동에 의한 ‘칭의’를 강조하고 ‘회심’을 '신앙‘과 분리시키고 이 둘을 별개의 과정으로 보고 있으나 개혁파의 입장에서 소명, ’회심‘과 중생, ’신앙‘, 칭의 , 수양, 성화, 견인, 영화의 신비적연합 관계는 논리적으로 동시에 일어나는 성령의 구원 적용 순서이다.

루터파는 ‘구원의 서정’에서 ‘수양’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수양’을 목회와 성도의 삶 속에 적용하지 않는 큰 문제점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성도의 견인’을 기각하면서도 성도의 ‘선행’에 의한 ‘구원의 확신’은 인정한다. 그러나 ‘성도의 견인’이 없는 구원 교리는 그들이 주장하는 ‘보존’이 있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루터파의 구원 교리는 그리스도의 은혜에 대하여 인간의 ‘노예의지’와 ‘가항적 은혜’를 주장하므로 구원의 확실성이 없으며, 「성경」과 삼위일체교리와 부합하지 못한다. 이러한 저들의 ‘신인협동’교리는 목회와 성도의 바른 삶 속에 적용할 수 없는 ‘공로주의’교리다. 사제가 베푸는 ‘세례’와 성찬, 미사, 성도의 ‘선행’, 고행으로 구원받는다는 로마 가토릭파의 주장에 대하여 ‘루터파’는 ‘오직성경·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선언한다. 그러면서도 루터파는 교회의 ‘성례’에 의한 성도의 ‘중생’을 주장ㅎ나다. 이들의 교리는 인간론적이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론,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교회론, 구원론 등이 「성경」과 부합하지 못하다.

① 루터파는 구원관의 오류가 있다. ‘보련 속죄 교리’에 입각한 구원론과 구원 은혜에 대하여 인간의 ‘가항적 은혜’로 보는 구원관이다. 그러므로 성도는 구원 은혜를 상실 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신학적 오류가 있다.


② 그들은 ‘구원의 서정’상의 오류가 있다. 루이스 벌코프의 진술에 의하면 루터는 “‘소명’은 본질적으로 항상 유효적 성격을 지닌 것이며, 복음을 들은 인간의 태도가 구원의 걸림돌,”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루터파는 ‘전적 타락’한 인간에게 ‘중생’전에 ‘성령의 조명’이란 허구적인 순서를 두었고 ‘회심’과 ‘중생’의 순서를 뒤바꾸었다.


③ 그들의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의 개념 및 그 순서도 잘못되었다.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은 ‘구원의 서정’전체 단계에 배치하는 것이 구원론의 논리적 순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명 -> 조명 -> 회심 -> 중생·신앙 -> 칭의 -> ‘신비적 연합’ -> 갱신 -> 구원의 ‘보존’이란 과정은 구원론에 있어서 존재할 수 없는 허상이다. 그러므로 루터파는 전체 ‘구원의 서정’에 있어서 구원의 열쇠는 교회의 세례에 의한 제1·2 중생 · 신앙‘이나 선행공로에 의한 ’칭의‘에만 둘 것이 아니라 창세전의 구속사역(에베소 1장 3-15절)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사역‘에 의해 주어지는 복음에로의 초청하심, 그리고 주관적 ·실제적 · 인간적 구원의 첫 시작인 ’소명‘, ’중생‘부터 두어야 할 것이다.


④ 그들은 ‘소명’을 비롯한 모든 구원 사역에 대하여 ‘성령의 내적인 사역’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인하고 인간의 노력 · 의지 · 선행을 인정하여 ‘성찬’과 그리스도의 보편적 은혜를 중시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⑤ 루이스 벌코프는 “성령의 내적인 사역에 의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루터파 교리는 ‘그리스도 중심의 충족성’이 결여된 치명적인 비판점이 드러난다.”고 말한다. 성령으로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이다.



3. 알미니안파의 ‘구원의 서정’교리 비판

ㅇ구원의 서정 특징 : 창세전의 구속사역이나 원죄에 대해서 부정하고 인간중심의 사상으로 구원의 서정을 “소명-회개.신앙-칭의-중생-성화-견인”으로 구별

알미니안의 의미는 ‘하나님은 항상 사람을 구속하려 하시지만 사람이 자유의지로 구속의 섭리에 항거 한다’는 것이다. 알미니안파의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성령의 사역’관계를 ‘구원의 서정’을 중심으로 정리하면 소명 -> 회개·신앙 -> 칭의 -> 중생 -> 성화 -> 견인으로 구별한다.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충족적 은혜’로 시작하여 원죄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리스도의 선행은총에 대한 인간의 응답 - 능력으로 소명, 회개 · 믿음을 의지로 칭의 , 중생을 선행으로 성화, 견인이 성취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연합’관계는 ‘성령의 주권적 사역’이 아니라 인간의 반응 - 태도, ‘전횡적 의지’와 행위에 달린 것이다. 따라서 알미니안파의 구원교리는 가항력적인 은혜와 ‘신인협동론’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한 인간 공로행위는 성도에게 ‘구원의 확실성’을 주지 못한다. ‘신앙’을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따로 독립시키고, 성도의 ‘구원’에서 가장 근본적인 요소로서 인본주의적 ‘신앙’을 구성하고 있다. 따라서 알미니안파는 성도의 의지로 ‘신앙’의 은혜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구원론은 논리적으로 성도의 삶에 ‘성려으이 단독사역’에 의한 ‘신앙’과 완전한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적용할 수 없다. 다만 로마 가토릭파의 루터파의 사제나 교회에서 베푸는 세례·성찬에 의하여 중생·칭의를 받는다고 주장하는 것보다는 복음적이다. 그리고 반 펠라기우스주의 보다는 복음적이다.


‘선행 은총’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응답하고 순종하는데서 구원이 시작된다고 하는 웨슬레 신학을 ‘복음적 신인협동론’이라고 한다. 박형룡은 웨슬레의 신학을 “사람의 행위여하에 구원이 달려있으며, ‘소명’의 현실적 보편적으로 베풀어지는 은혜로운 구원을 만인이 선택만 하면 영적인 축복을 완전히 소유하며, 궁극적으로 구원에 이르게 됨으로 구원 사역은 인간의 의지에 전적으로 달린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구원론에 의하면‘하나님의 절대주권’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성령의 사역’에 의해 주어지는 하나님의 구원이 다시 한 번 더 인긴에게 의존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은 알미니안파의 입장은 현대 신학자들에게 자유주의의 길을 열어주어 ‘펠라기우스’적인 ‘합리주의’적 복귀로 이어지게 하였다. 알미니안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내적인 단독사역’의 필요성을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이다.


알미니안파의 자유의지와 ‘신인협동교리’에 형향을 받아 펠라기우스주의로 돌아간 쉴라이에르마허와 칼 바르트와 루돌프 볼트만은 ‘자아 충족적 원리’에 기초하여 「성경」은 신화라는 공통된 입장을 가지고 구원론을 말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은 불필요한 것이고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인간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인간의 ‘원죄’를 부인한다. 창세전에 예정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이천년 전에 십자가 수난을 받은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는 오늘날의 나의 실존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며, 오직 인간예수만 존재한다. 쉴라이에르마허는 ‘그리스도 안의’‘인격적 좌소’가 아닌 몰아지경(엑스터시)의 ‘종교 감정상태’를 주장한다. 칼바르트는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부정한다. 성경은 합리주의적 작품이다. 그러므로 초절된 계시를 믿는다. 볼트만은 「성경」을 신화로 치부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알미니안파의 영향을 받은 신학이나 사상은 인간에서부터 시작됨으로 ‘성령의 주권적 사역’으로 주어지는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이 적용되는 구원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으며, 오직 인간의 믿음에 의한 합리적· 도덕적· 감정적· 사변적인 ‘그리스도와의 공감’만이 존재할 뿐이다.

요약정리하면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의 알미니안파 모두 성령의 조명하심과 성경의 유기적 영감과 내적증거를 부인하였다. 그리고 창세전에 작정되고 복음에로의 부르심과 ‘소명’에서 시작되는 ‘성도의 구원’에 대하여 인간의 협력을 덧붙였다. 로마 가토릭파와 루터파와 알미니안파 모두 구원에 이르게 하는 ‘성령의 내적인 단독사역’을 전적으로 부정하였다. 이들 중에서 로마 가토릭파는 ‘반 펠라기우스’적 입장의 ‘합리주의’적 복귀로 변질되었다. 알미니안파는 세례· 성찬에 의한 구원만은 부정하여 복음적이나, ‘말씀’과 그리스도의 은혜와 인간의 ‘행위공로’는 동등하다는 개념을 지닌다. ‘자아 충족적 원리’에 기초한 ‘신인협동론’을 주장하여 구원의 확실성이 상실되었다. 알미니안파의 영향을 받아 펠라기우스 주의로 복귀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인간중심의 사변신학으로 도덕적인 그리스도와의 공감 정도를 주장한다. 그러나 칼빈과 개혁파의 입장에서 구원은 ‘성령의 단독사역’에 의한 ‘믿음’과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에 의한 구원의 확신이 적용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교리는 성경적이며 유일하게 그리스도 중심성· 신뢰성· 충족성과 그로인한 ‘구원의 확실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