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토텔레스 사망 후의 아테네에서는 그의 철학을 계승하는 소요학파(Peripatotic-School)나 플라톤 철학의 전통을 지키는 아카데메이아 학파(School of Akademeia) 외에 메가라 학파(School of Megara), 키니크 학파(Cynics), 키레네 학파(Cyrenaics) 등이 있었지만, 키니크 학파와 같은 계통의 스토아 학파(Stoic School) 및 키레네 학파와 같은 계통의 에피쿠로스 학파(Epicurian School)가 대두해서 헬레니즘 시대를 대표하는 학설을 제창했다.
당시 아테네는 옛 문화의 도시로서 여전히 존속하고 있었지만 도시국가로서의 아테네는 다른 도시국가와 같이 멸망했고 활발했던 민주정치도 제한된 도시적 자치형태로서만 남았다. 그리스의 사회생활 그 자체가 전과 같은 활기를 잃어 가면서 현실의 사회적 실천에 대한 적극적 관심이 결여되고 자기를 중심으로 한 협소한 세계로 쇠퇴하게 되어 조용한 개인적 생활을 유지하려는 소극적 태도가 여러 학파의 철학자를 통해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었다.
키프러스의 제논(Zenon ; 기원전 334/33~262/61)은 아테네에서 수학한 후 기원전 300년 경부터 스토아ㆍ포이키레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이 때문에 그를 창조자로 하는 학파를 스토아 학파라고 하지만, 크레안테스(Kleanthes ; 기원전 304/03~233/32)나 크리시포스(Chryrippos ; 기원전 280~207)는 제논에 이어 이 학파 성립에 크게 기여했다. 그 후 포세이도니오스(Poseidonios ; 기원전 135 경~50) 때부터 스토아 학파의 중심은 로도스로 옮겨지고 다음에는 로마로 옮겨졌다. 이와 같이 세 시기에 따라 전기, 중기 및 후기의 스토아 학파로 구별되지만, 후년에는 다른 여러 학파의 영향을 받아서 초기의 학설에 비해 상당히 절충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유물론적 색채가 농후한 범신론적 세계관이 스토아 학파의 사상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에 의하면 세계에 내재하는 신적인 영원한 불이 그것에 고유한 로고스(Logos)에 따라 활동한다. 만유는 이 창조적인 불의 작용에 의해 생산되고 무한히 다양한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지만, 전부 신적 이성의 지배에 복종하기 때문에 혼돈에 빠지지 않고 항상 정돈된 질서를 형성한다. 인간은 다른 모든 종류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세계 질서 안에 존재하지만, 세계 이성의 근본을 자기내면에 내포하고 있고 자기 이성에 의지해서 세계 법칙을 인식하여 활동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도덕의 제1의 목표는 클레안테스에 따르면 "자연에 따라 산다" 라는 말에 나타나는데, 도덕적 실천의 최고 목표는 개인 이성과 세계 이성과의 조화를 실천하는 데 있다. 이러한 조화를 방해하는 여러 가지 감정 및 사물로부터 초월하여 자유자족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스토아 철학의 이상이다.
개인의 도덕적 완성은 국가생활을 매개로 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생각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는 도시국가에 대해 도덕적 의의를 매우 강하게 강조한 반면에, 초기 스토아 학파의 사람들은 개인 스스로의 노력, 정진에 의해 도덕적 완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고 국가나 법률 등은 도덕적 생활에 있어 그다지 중요한 의의를 가진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그들은 인위적인 법률에 의해 존재하는 도시국가의 시민(Polites)의 입장을 초월해서 인류전체를 포용하는 자연법에 따라 존립하는 세계국가의 시민(Kosmopolites)의 입장에서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를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제논은 인간은 국가, 민족, 법률의 구별없이 공동의 법 아래에서 생활해 하나의 세계국가를 형성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또한 세계가 하나의 국가로 될 때 모든 인위적 차별은 소멸하며 만인이 서로 동포가 되어 신전이나 재판소, 체육장이나 화폐 등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사회가 도래한다고 보았다.
마찬가지로 크리시포스는 영구의 자연법의 지배 하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동의 복지를 향해 노력하는 이상적 세계국가에 대해 논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와 같은 이상의 실현 과정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며, 그들이 말하는 세계국가는 아주 먼 미래에나 도래한다고 생각한다든지 또는 탁월한 현인들은 지고의 이성적 법칙하에서 하나의 공동사회를 형성한다 등과 같이 막연히 초현실적인 관념을 가지고 말하였다.
이와 같이 스토아 철학의 제창자들은 고답적인 또는 도피적인 입장에서 세계국가의 이상을 논의하였고, 그 시대의 현실 사회에 대해서는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나중에 로마인이 세계제국을 건설할 때 스토아 학파의 학설을 로마의 정치가나 법학자가 수용함으로써 로마 사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또 근대의 개인주의적ㆍ자유주의적 사회사상에도 스토아 학파의 세계관 및 사회사상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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