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분류】윤리학 【주요어】칸트의 성윤리, 섹스의 본성, 정언명령, 호혜성
【요약문】이 글은 일견 극단적 보수주의로 보이는 칸트의 성윤리가 지닌
구조와 다양한 요소들을 분석하고 평가하여 더욱 그럴 듯한 ‘칸트적 성윤
리’를 재구성해 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칸트의 성윤리는 섹스 본성론의 부
분과 윤리적 장치의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전자에는 (1) 목적론이 반영된
섹스 본성론과 (2) 인격을 수단화하는 활동으로서의 섹스 본성론이 포함되
고, 후자에는 (3) 인간을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정언명령과
(4) 서로 평등하게 이익이 되는 관계로서의 호혜성이 포함된다. 나는 (1)은
칸트 자신의 철학적 입장과 비정합적임을 보이고 (2)를 이루는 요소들이 모
두 논박됨을 보여 도덕적 가치가 이미 탑재된 섹스 본성론이 중립적인 섹
스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이런 시도가 성공한다면, 칸트의 성윤리에서는 (3)이 가장 중요한 요
소가 된다. 나는 (3) 즉 정언명령을 성적 활동의 문제에 있어 어떻게 해석
하여 적용하는 것이 좋을지에 대해 노직, 맵스, 오닐, 누스바움이 각각 대
표하는 재해석의 스펙트럼을 비판적으로 검토하여, ‘칸트적 성윤리’의 모습
을 그려볼 것이다. 이는 좀 더 관계와 맥락에 민감한 버전의 자유주의적
성윤리의 모습으로 보인다. 이 입장에 따르면 (4)에 해당하는 섹스의 도덕
적 구제책으로서의 결혼 장치는 불필요하다.
Ⅰ. 서론
칸트는 성윤리에 있어 보수적으로 보인다. 그는 오직 결혼한 이성
배우자간의 성적 활동만이 도덕적으로 허용되고 다른 모든 성적 활동
이 부도덕하다고 보았다. 그의 성윤리는 전통적인 보수주의 성윤리보
다 더 극단적이라고 평가될 수도 있는데 왜냐하면 그는 모든 성적 활
동 자체에 이상하리만치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칸트의 윤리학 자체가 오직 극단적인 보수주의 성윤리만을
산출한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의 성윤리로부터 여성주의적 함축과
자유주의적인 함축을 읽어내는 경우가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1) 칸트
의 성윤리를 이런 식으로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하
다면 그 재구성은 어떤 생각들로 이뤄져 있을까? 이 글에서 나는 칸
트 성윤리의 구조를 제시하여 평가한 후 그의 도덕철학의 근본적 취
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 글에서 크게 두 가지 작업이 이뤄진다. 첫째는 칸트의 성윤리를
이루는 주요 발상 네 가지를 소개하여 그 논리적 구조를 제시하는 것
이다. 나는 이 발상들이 서로 어떻게 관련되는지 보이겠다. 둘째는 네
가지 발상 각각을 칸트 윤리의 큰 취지하에서 평가하고 새로운 발상
들로 재구성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재구성된 성윤리는 목적론적 요소를 탈피하며 섹스 자체가
인격을 수단화화는 활동이라는 생각을 탈피하고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섹스 개념을 장착한다. 그럼으로써 본래 칸트의 성윤리의 구조상 도
입될 수밖에 없었던 결혼의 필수성이 포기된다. 이렇게 재구성된 성
윤리는 18세기의 칸트 자신이 매우 반대할 만한 것이겠으나, 그의 특
유의 도덕철학의 취지를 오히려 살리며 현대인에게도 의미 있게 ‘칸
1) Wood(2008); Herman(2002); Belliotti(1993); Mappes(2002); O’neil(1989). 우드
를 제외하고는 이들 모두는 칸트의 성윤리 자체보다는 칸트의 정언명령의 인간
성 정식에 주목하여 그로부터 여성주의적이거나 자유주의적인 성윤리의 함축을
이끌어낸다. 칸트 성윤리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과 덕윤리적 해석을 모두 비판
하는 국내 문헌으로는 이원봉(2011)이 있다.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95
트적’ 성윤리로서 제안될 만할 것이다.2) 이러한 성윤리는 아마도 기
본적으로는 자유주의적으로 보일 테지만 단순한 자유주의 성윤리와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일 것이다.
Ⅱ. 칸트 성윤리의 구조
1. ��윤리학 강의��에서의 성윤리
칸트가 성윤리를 집중적으로 논하는 곳은 ��윤리학 강의��의 「성적
충동과 관련한 몸에 대한 의무에 대하여」에서이다.3) 거기서 그는 성
적 충동이 인격 자체를 향유의 대상으로 삼는 유일한 욕구라고 규정
한다. 그에 따르면, 인격체를 대상으로 하는 욕구들은 대부분 그 인격
체가 하는 기능에 대한 욕구라서 그 인격 대상 자체에 향해 있지 않
지만 성적 욕구는 인격의 특정 기능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인격의
신체 자체를 바라는 것이기에 인격 자체가 욕구의 대상이 된다는 것
이다.4)
2) ‘칸트의’ 윤리와 ‘칸트적 윤리’를 혼동하지 말 것을 강조한 문헌 다음과 같다.
Wood(2008), 1-4.
3) Kant(1997), 155-162.
4) Kant(1997), 155. 한 익명의 심사자는 이 부분에서 칸트가 성욕을 타인의 신체
기능에 대한 욕구가 아닌 타인의 신체(혹은 인격)자체에 대한 욕구라고 한 적이
없다고 지적하였다. 이 부분에 대한 나의 번역은 이러하다. “사람은 타인을 향
한 충동을 지닌다. 이때 말하는 충동은 타인의 작업과 정황(서비스)을 즐기는
것이 아닌, 타인을 즐김의 대상으로 직접 향유하는 것이다. 사람이 타인의 살을
즐기는 경향은 없으며, 발생하는 경우라고 해도 그것은 그런 경향성이라기보다
전쟁에서의 복수와 같은 문제에 가깝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에게는 욕구appetite
로 불릴 만한 경향성이 있고 이는 타인을 즐김에 향해 있다. 이것이 성욕이다.
사람은 분명히 자신의 서비스를 위한 도구로서 타인을 누릴(즐길) 수 있다. 그
는 자신에게 서비스하도록 타인의 손이나 발을 활용할 수 있다. 타인의 자유로
운 선택하에서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성적 충동을 통한 방식을 제외하고는 인
간이 타인의 향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지를 결코 보지 못한다. 이것의 저변
에 놓인 종류의 감각, 즉 육감이라고 불릴 만한 것이 존재한다. 이것을 통해 한
96 논문
그래서 칸트는 성적 욕구의 성질 자체는 내재적으로 도덕적 동기를
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성적 활동이 나중에 인격적 사랑을 동
반할 수 있어도 성적 욕구 자체가 도덕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주
장이다.5) 따라서 성적 활동은 그 자체가 인간성의 강등(타락)을 포함
한다. 이러한 그의 섹스 본성론에다, 모든 인격을 단지 수단으로 대하
지 말고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할 것을 명하는 정언명령을 결합한
다면, 성적 활동 자체가 부도덕하다는 것이 귀결된다.6)
그런데 성적 활동이 그 자체 부도덕한 행위로서 인간에게서 완전히
부정된다는 귀결은 칸트에게 곤혹스러운 “문제”일 수 있다.7) 그래서
그는 성적 활동을 도덕적으로 면죄할 만한 어떤 “여건”이 필요하다고
여기고8) 그 유일한 “여건”으로 이성인 두 사람 간의 호혜적 결혼이
라는 법적 계약을 제시한다.9)
칸트에 따르면 결혼하는 인격들은 자신의 인격을 서로 양도하기로
계약한다. 나 자신의 인격을 상대에게 양도함과 동시에, 나를 가진
그 상대의 인격이 나에게 양도되므로 나는 나의 인격을 되찾게 되고,
따라서 일방적으로 수단화된 채 인격이 훼손되는 일은 없다는 것이
다.10) 이런 결론을 내린 후 칸트는 그 밖의 성적 관계들을 평가하면
인간은 타인에 대한 욕구를 즐긴다...(하략)” 이 내용에서 칸트는 사람들이 타인
을 통해 얻는 쾌락과 다른, 성욕이 가진 독특함을 말하고 있다. 타인의 일과 서
비스를 수단으로 즐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타인 자체에 대한 욕구에서 즐거
움을 얻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칸트의 주장은 성매매를 일반노동으로 보고 일반
노동이 계약당사자 상호간에 정당한 합의가 되었을 경우 문제가 없듯이 성매매
역시 그런 합의가 있다면 정당하다는 입장에 맞설 때 곧잘 도입되는 중요한 구
분을 담고 있다. 성행위는 타인의 기능에서 나오는 것에 대한 즐김이 아닌 타인
(의 몸) 자체에 대한 즐김을 의미한다고 말이다.
5) Kant(1997), 156.
6) 칸트가 ��윤리학 강의��에서 이 결론을 내리기 위해 명시적으로 “정언명령”을 읊
지는 않지만 성적 활동에서 인격 자체가 욕구의 대상, 사물이 되며 이는 인간성
의 강등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당연히 정언명령의 인간성 정식이 적용된 결과로
보인다.
7) Kant(1997), 156-157.
8) Kant(1997), 157.
9) Kant(1997), 158.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97
서 내연관계, 일부다처제는 호혜성을 훼손하므로 부도덕하다고 진단
한다.11)
그리고 곧 이어 「육체의 죄」에서 그는 성에 관한 죄의 분류를 제
시한다.12) 일단 “육체의 죄(crimina carnis)”를 “자신에 관한 의무”의
위반으로 규정하고 그 이유로서 인간의 성욕이 지닌 목적의 위반, 즉
“성욕의 오용”을 제시한다. 먼저 자연적인 성적 방종과 비자연적인
성적 방종을 나누고 (이성간) 내연관계 등은 전자에 포함시킨다. 그리
고 자위, 수간, 동성간 성교는 비자연적인 죄에 포함시킨다. 그는 후
자의 경우 인격을 동물 이하로 낮추는 가장 저열한 행위로, 입에 담
는 일조차 해로울 수 있다고 극렬히 비난한다.13)
2. ��도덕 형이상학��에서의 성윤리
위의 성윤리의 기조는 대체로 ��도덕 형이상학��에서도 유지된다. 성
문제는 「법이론」과 「덕이론」 양자에서 다뤄진다. 「법이론」에서는 결
혼이라는 법적 계약 관계가 다뤄지는데 여기서 칸트는 성문제를 한
개인 인격의 도덕 문제를 넘어 공적인 영역의 문제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덕이론」에서는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의무”
의 문제 중 “동물적 존재자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인간의 의무”의
논의 안에서 성적 방종의 문제를 다룬다.14) 즉 법적 의무 뿐 아니라
성적 방종이 우리 인격의 유덕할 의무에도 위반되는지 논의한다. 여
10) Kant(1997), 158.
11) Kant(1997), 159. 그는 근친상간 중 위계관계에 있는 부모와 자녀간 성관계를
확실히 부정적으로 판단하는데 그 근거가 바로 평등한 호혜관계에 놓일 수 없
는 관계라는 이유에서이다. 부모의 지위가 자녀의 지위와 똑같아져야 하는데 이
러한 계약은 부모로서는 지위의 강등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
이다.
12) Kant(1997), 160-162.
13) Kant(1997), 161-162.
14) Kant(1996), 178-180. (MM 6: 424-426.) 괄호 안에 병기한 약호 MM은 Mary
Gregor가 번역, 편집한 칸트의 The Metaphysics of Morals를 가리키고, 뒤의
숫자는 그 문헌에 기재된 칸트 원전의 권수 및 쪽수이다.
98 논문
기서 칸트는 “자연목적”, “종의 보존”이라는 기준을 더욱 뚜렷이 언
급하며 이를 논의한다.15) 성적 방종이 자신의 인격성에 대한 의무 위
반이 되는 것은 타인을 수단화하는 부도덕한 일을 통해 자신의 인격
성을 강등시키기 때문이며, 뿐만 아니라 종의 보존이라는 목적을 거
스르는 쾌락에 몰두하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이는 자신의 인격성을
모독하기 때문이라고 칸트는 제시한다.16)
15) 「덕이론」의 “자기 자신에 대한 완전한 의무”에서의 성적 방종 논의는 “자기 자
신에 대한 완전한 의무”의 또 다른 위반인 자살 논의 다음에 등장한다. 즉 자살
도 자신의 인격성에 대한 의무 위반이고 성적 방종도 자신의 인격성에 대한 의
무 위반이라는 의미이다. Kant(1996), 176-180(MM 6: 421-426). 한 심사자가
내가 정리한 부분의 전거가 되는 텍스트에 해당내용을 찾을 수 없다고 문제제
기 하였다. 이 주석이 가리키는 내용이 근거로 하는 부분을 백종현의 번역을 빌
어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인격의 보존을 위해 자연에 의
해 정해져 있듯이, 성애도 종의 보존을 위해 자연에 의해 정해져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양자 각각은 자연목적이다. 자연목적이란, 인과 연결에서 비록 어
떠한 지성을 그 원인으로 부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저 원인이 이 결과를
그러한 지성과의 유비에 의해, 그러므로 마치 의도적으로 인간을 산출해 낸 것
인 양 생각되는, 그러한 원인과 결과의 연결을 뜻한다...(중략) 법이론에서 증명
된 바는, 인간은, 두 인격이 교호적으로 상호 책무를 지는 법적인 계약에 의한
특별한 제한 없이는, 이러한 쾌락을 즐기기 위하여 다른 인격을 이용할 수 없다
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과연 이러한 향락과 관련하여 그것을 위반하
는 것이 자기 자신의 인격에서의 인간성의 (한낱 실추가 아니라) 모독이 되는,
인간의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가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다...(중략)...만약에 인간
이 현실적인 대상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대상을 상상함으로써, 그러므로
목적에 반하여, 대상을 자기 자신이 지어내서, 환락으로 자극된다면, 그러한 환
락은 부자연스럽다고 일컫는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이러한 환락은 자연의 목적
에 반하는, 그러니까 생명에 대한 사랑의 목적보다도 더 중요한 목적에 반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생명에 대한 사랑의 목적은 단지 개체의 보존을
겨냥해 있지만, 저 자연의 목적은 전체 종의 보존을 겨냥해 있으니 말이다.”
(밑줄은 나의 것)
16) Kant(1996), 179(MM 6: 425). 한 심사자가 지적한 부분 중 이 주석이 가리키
는 나의 정리내용에 잘못된 문구가 하나 있어 수정하였다. 하지만 그 외 모든
내용에 대해서, 주16에서 옮긴 칸트의 원문 내용은 나의 정리의 전거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99
3. 칸트 성윤리의 네 가지 발상
칸트의 공식적 성윤리는 섹스 본성론의 부분과 윤리적 기준의 부분
으로 이뤄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자는 다시 둘로 나뉠 수 있다. 즉
칸트의 섹스 본성론은 (1) 목적론적 섹스 본성론과 (2) 수단화적 섹스
본성론으로 이뤄져 있다. 후자(윤리 부분)도 둘로 나뉘는데 (3) 성적
활동에 내재한 수단화를 금지하는 정언명령과 (4) 성적 활동을 허용
할 법적 장치인 결혼에 장착된 호혜성 규범이다.17)
(1)은 자연법 사상가 토마스 아퀴나스의 목적론이 연상되는 부분이
며,18) 이는 “자연적 목적”이라는 개념의 사용에서도 알 수 있다.19)
하지만 이 부분은 칸트의 성윤리를 비일관적이고 혼동스럽게 만든다
는 지적을 받는 요소로 평가된다.20)
(2)는 칸트 특유의 발상이어서 가장 많이 논의된다. 이때 (2)의 내
용은 이미 (1)이 기본적으로 가정된 상태에서 진행되는 논의로 보인
다. 텍스트에서는 (2)가 먼저 논의되고 그 이후에 (1)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더 당연한 기본사항으로 가정된 내용은 (2)가 아닌 (1)이
다.21) 칸트에게서 자유주의적 해석을 이끌어내려는 학자들은 대체로
(1)은 거의 논하지 않고22) (2)에 대한 문제제기 내지 재해석에 집중
하여 칸트의 성윤리의 자유주의적 재구성을 시도한다. 하지만 칸트
17) 소블은 성문제를 네 부분으로 구분한다. 첫째, 성행위의 도덕적 성질에 대한 질
문, 둘째, 성행위의 도덕무관한 성질에 관한 질문, 세 번째, 성적 활동의 합법성
에 관한 질문, 네 번째, 성행위의 실용적 가치에 관한 질문이 그것이다.
Soble(2001).
18) 아퀴나스의 목적론적 성윤리에 대해서는 다음 문헌을 확인할 것. Aquinas(1988),
91-95.
19) Kant(1996), 178(MM 6: 424).
20) Mertens(2014), 331-332.
21) Kant(1997), 155-162.
22) 우드의 경우 칸트의 공식적인 성윤리의 진정성 자체를 의심하고 벨리오티의 경
우 칸트의 성윤리 전반을 소개하지만 목적론적 요소에 대한 비판 없이 결혼관
에 대한 비판적 논의만 진행한다. 허만의 경우는 칸트의 성윤리 부분에서 목적
론적 부분은 아예 소개도 비판도 하지 않는다. Wood(2008), 239; Belliotti
(1993), 98-103; Herman(2002).
100 논문
의 성윤리의 근간에 있는 (1)을 처리하지 않고서는 칸트 성윤리에
대한 재구성이 칸트 성윤리 중 일부에만 주목한 제안이라는 비판에
처할 터이다. 칸트의 성윤리를 자유주의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연구자
는 (1)에 대한 논의를 반드시 처리해야 할 것이다. 이에 나는 3절에
서 (1)이 칸트의 철학 전체와 조화롭지 못한 생각이라고 주장하여
칸트 윤리학 전체의 설득력을 위해서라도 수정되어야 함을 보일 것
이다.
(3)은 윤리를 제시하는 부분인데, (2)에서 주장된 섹스의 본성에 가
해지는 윤리적 기준, 즉 정언명령이다. 칸트의 성윤리에서는 이 정언
명령으로 인해 섹스 자체가 부도덕한 것으로 판명된다. 하지만 (2)가
칸트의 성윤리에서 수정되거나 제거될 수 있다면 정언명령은 섹스에
관한 다른 도덕적 판단을 도출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4절에서
(2)를 수정하고 (3)을 유지하여 칸트의 판단과는 다른 귀결을 도출할
것이다.
(4)도 윤리적 부분을 담당하는 부분이지만 (3)과는 구분되어야 한
다. 정언명령은 칸트가 「법이론」에서 말했던 호혜성과 같은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3)과 (4)를 같은 것으로 취급하면서 논의할 경우
칸트의 윤리학 전체를 계약론적 개념으로 이해할 우려가 있다. 칸트
는 분명 나름의 사회계약론을 제시했고 이를 「법이론」에서 잘 제시하
지만 이 법적 규범에서 등장하는 호혜성이 정언명령의 인간성 정식에
서 말하는 원리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정언명령과 호혜성은
칸트의 성윤리에서도 하는 역할이 다르다.23) 내가 보기에 칸트의 성
윤리에서 정언명령이 일단 모든 섹스를 금지시키는 근거를 제공하는
반면, 호혜성은 성적 활동을 허용하는 근거를 제공한다.
23) 칸트의 성윤리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자들은 성윤리에서의 호혜성과 정언명령
을 구분하지 않은 것 같다. Goldman(1977), 282; Belliotti(1993), 103-104. 호
혜적 결혼에 관련한 칸트의 논의가 윤리적이라기보다 법적 차원의 논의임을 강
조한 문헌은 다음과 같다. Herman(1993), 56-59.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01
Ⅲ. 목적론적 섹스 본성론
1. 자연과 성윤리
성적 활동은 성적 대상으로서 인격을 두는 행위와 인격 아닌 존재
를 두는 행위로 나눠볼 수 있다. 칸트에 따르면 그 자체로 다른 인격
의 인간성을 훼손하지 않는 자위, 수간이 부도덕할 수 있는 이유는,
그것들이 섹스의 “자연적 목적”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스스로 하는 인격은 자신의 인간성을 훼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섹스의 “자연적 목적”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이 인간의 실천
이성 외부에 놓인 자연법을 이용하여 도덕적 행위의 근거를 마련한
것에 해당한다면, 칸트의 이러한 개념 사용은 자신이 신적 질서에 근
거한 타율적 윤리를 거부하고 그 자리를 인간의 실천이성 중심의 자
율적 윤리로 대체하려한 야심적인 기획을 훼손하는 일이 될 것이
다.24) 칸트 윤리학의 근본정신을 고려해볼 때 목적론적인 자연 개념
은 어떻게 처리되는 것이 좋을까?25)
24) 칸트(2005), 171-175(4: 441-443). 롤즈는 칸트의 윤리학을 구성주의적으로 해석
하면서 정언명령 절차(즉 우리의 실천이성)에 없거나 그것으로부터 도출되지 않
는 것들을 우리의 도덕적 믿음의 대상으로 삼는 것에 대해 거부한다. Rawls
(2000), 316.
25) 머텐스는 칸트의 성윤리와 결혼관가 혼동스러운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그
가 이러한 비일관적인 요소들을 갖고 있어서라고 논평한다. Mertens(2014),
332. 우드의 경우 칸트의 성윤리가 보수주의적 성윤리로 읽힐 가능성에 맞서
오히려 굉장히 급진적인 섹스 개념을 가졌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우드는 칸트가 「추측해 본 인류 역사의 기원」에서 신에 대한 복종을 거부할 수 있는 인간 이
성의 독립성을 찬탄한 것으로 파악한다. 우드에 따르면 인간의 섹슈얼리티는 인
간의 동물적 본성 즉 번식을 위한 것을 초월할 수 있고 이는 자기 존중감의 심
리적 기원이 된다는 점을 칸트가 보았다는 것이다. 이는 동물적 본성을 넘어 자
기 스스로 자신만의 섹슈얼리티를 가질 수 있다는 데에서 생기는 성적 정체성
이 자기 존중의 중요한 부분이 되기에 이는 오늘날의 성적 소수자 해방에 있어
긍정적인 함축을 가진다는 것이 우드의 해석이다. 물론 그는 자신이 찾아낸 그
문헌상의 칸트 언명에 대한 해석이 칸트의 공식적인 성윤리 텍스트들의 내용에
완전히 대립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하지만 칸트의 속내는 그렇지 않았음을 보이
고자 우드는 칸트와 절친했던 히펠(Hippel)의 급진주의적 글의 숨은 집필자가
102 논문
성의 자연목적이라는 개념이 칸트 윤리학을 훼손하는지 알아보려면
칸트 윤리학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된 “자연” 개념의 용법을 분류할 필
요가 있다. 칸트에게 “자연”이 항상 이성의 대척점에 쓰였던 것은 아
니다. 카울바하의 일목요연한 정리에 따르면 칸트에게는 “‘예지적 자
연’과 법칙 아래에 있는 현상의 총체로서 자연”이 있고 그 사이에
“유기체 철학과 역사 철학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또 다른 자연 개
념”이 있다.26) 첫 번째 자연은 실천적 이념에 속하는 것으로 현상적
자연법칙하에서 행위자인 인간의 실천이성이 창출해낸 자연이고 두
번째 자연은 이론이성이 파악하는 자연이다. 세 번째 자연은 우리가
“유(類)로서 우리의 역사 중에서 완수해야 할 현명한 의도를 갖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의 의도를 가진 자연”이다.27) 이것은 단지 신의
섭리와 질서에 의해 일방적으로 부과된 자연의 목적을 의미한다기보
다 인간의 실천이성이 개입하여 산출된 자연의 목적을 의미한다. 성
의 자연적 목적을 인간의 실천이성의 뜻대로 포기되기도 하는 자연적
경향성으로 보기보다 어떤 목적론적 임무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보는
것이 칸트의 진의를 잘 대우하는 것일 테다.
2. 역사철학에서의 자연
이제 인간종의 역사적 진보를 설명할 장치인 자연 개념은 적어도
인간종이 존속될 것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자연적 목
적은 행위자 개개인에게 종의 유지를 위한 당위적 규범을 제공한다
고 보아야 할까? 칸트의 역사철학에서 발견되는 목적론적인 자연 개
념의 기능은 주로 우리의 실천이성이 만들어낸 산물들이 자연법칙
칸트였을 수도 있다는 상상을 하며 논의를 마친다. 하지만 보수주의적 독해에
맞선 우드의 이러한 저항, 해방적 독해는 텍스트상 전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점, 그리고 공식 견해와의 불일치를 단순한 상상으로 해명하려는 점으로 인해
설득력 있는 입장으로 보기 힘들다. Wood(2008), 224-239.
26) 카울바하(1992), 205.
27) 카울바하(1992), 205.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03
하의 현실에서도 불가능한 것이 아님을 보여주어 우리의 실천적 희
망을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28)
즉 그 자체로 인간 행위자에게 명시적인 규범을 제시하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기보다 자연이 인간의 실천이성에 역행하지는 않을 것이
라는 발상으로 보인다. 그것은 우리가 인간의 실천이성이 나아가야
할 바를 자연목적이 일러주는 대로 깨달아야 한다는 발상이 아닌 것
이다.29)
이를 성문제에 적용해본다면 자연이 인간에게 심어놓은 성적 욕
구는 적어도 인간종이 존속될 현실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 스스로 번식을 그만두어 절멸할 일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능으로 읽어야 그의 역사철학에서의 자연 개념과 일관
적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래야만 인간 아닌 신적 존재가 마련
한 자연의 섭리대로가 아닌 인간의 실천이성이 만들어 가는 자연적
(현실적) 세계를 제시하려는 칸트의 근본 기획에 일관적이게 될 것
이다. 하지만 칸트의 저작은 칸트가 행위자에게 어떤 도덕적 금지를
제시하는 데 자연적 목적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는 칸트 자신의 철학에 일관적인가? 칸트의 윤리학의 근본 성격
에 부합하려면 성의 자연적 목적 개념의 사용은 포기되어야 할 것
으로 보인다.
28) 칸트(1992), 50-54. 「영원한 평화를 위하여」에서 인간이 의도치 못한 자연의 도
움으로 인류의 역사가 결국은 도덕적 상태로 진보할 것이라는 칸트의 희망의
극치는 “인간이 도덕적으로 좋은 사람은 아니라 할지라도 부득불 좋은 시민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국자를 조직한다는 것은 아무리 어렵다고 하더라도, 악마의
종족에게조차 가능하다.”일 것이다.
29) 이런 해석의 텍스트상 근거는 다음과 같다. “설혹 자연은 이러저러한 것이 야기
되도록 의도한다고 내가 말한다 할지라도, 내가 뜻하는 바는 자연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무엇을 행하도록 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오직 자유로운 실천 이성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위와 같이 말
함으로써 내가 뜻하고자 하는 바는, 인간이 욕구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자연이
스스로 그것을 행한다는 것이다.” 칸트(1992), 50.
104 논문
3. 정언명령에서의 자연
이런 비판적 제안에 맞서, 칸트는 이미 정언명령의 한 정식에서 자
연법칙을 도입하고 있기에 자연 개념을 우리의 실천이성에 이미 내재
적인 규범적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는 대응을 예상해볼 수 있다. 칸트
가 제시한 정언명령의 자연법칙 정식은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
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
하라”이다.30)
하지만 이 때 “자연법칙”은 특정한 내용적인 법칙이라기보다 어떤
원리가 보편화되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 위해 필요한 형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준칙이 자연의 성질에 적합한가라기보다
어떤 준칙이 법칙적 성격을 지닐 수 있는가일 것이다. 이렇듯 칸트의
윤리학에서 실제 행위자에게 행동을 지시할 규범 저변의 원리로서의
정언명령에서 사용된 자연법칙 개념은 “자연적 목적” 개념이 맡은 기
능과 달라 보인다.
4. ��도덕 형이상학��에서의 자연
이에 대한 반박은 또 다음과 같이 예상된다. 칸트는 「덕이론」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의 위반으로서 자살을 먼저 제시하고 그 다음
에 성적 쾌락의 남용을 제시한다.31) 자살도, 성적 쾌락의 남용도 모두
자기 인격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이다. 후자의 논의에서 칸트는 “자연
적 목적”을 이렇게 정의한다. “인과 연결에서 비록 어떠한 지성을 그
원인으로 부가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저 원인이 이 결과를 그러
한 지성과의 유비에 의해, 그러므로 마치 의도적으로 인간이 산출해
낸 것인 양 생각되는, 그러한 원인과 결과의 연결을 뜻한다.”32) 그리
30) 칸트(2005), 132(4: 421).
31) Kant(1996), 176-180. (MM 6: 421-426)
32) Kant(1996), 178. (MM 6: 424). 이 부분은 백종현의 번역을 인용하였다. 칸트
(2012), 519.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05
고 그로부터 문제를 제시한다. “이제 제기되는 문제는, 과연 종의 보
존 능력의 사용이 그 능력을 실행하는 인격 자신에 대하여 제한하는
의무법칙 아래에 종속하는가, 또는 과연 인격은 저러한 목적을 의도
하지 않고서도,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에 반하는 행위를 함 없이, 자
신의 성적 속성들을 순전한 동물적 쾌락에 쓸 수 있는 권한을 가지
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33) 그리고 칸트는 법적 관계없이 “다른” 인
격을 이용하는 것이 부도덕한 것이기에 이런 부도덕한 쾌락에 자신
을 내맡기는 쾌락은 자신의 인격을 모멸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
론 이 논의에 앞서 칸트는 종의 보존과 무관한 “비자연적” 사용(자
위, 동성애, 수간) 역시 자기 인격을 모멸하는 행위로 간주한다.34) 이
를 볼 때 칸트는 분명히 자연적 목적이란 개념하에 자살뿐 아니라
성적 오용을 단죄하는 규범적 기준을 명시적으로 제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칸트의 발상은 문제가 있다. 그에 따르면 자살과 성적
오용은 자연적 목적의 위배라는 측면에서 부도덕의 근거가 같아야 한
다. 이때 칸트가 자살은 용기라도 필요로 하지만 성적 오용은 나약하
게 자신을 부도덕한 쾌락에 맡긴 상태라 더욱 가증하다고 비난하기는
해도,35) 여전히 이 두 행위는 자연적 목적에 어긋난다는 점에서 같이
논의된다. 하지만 자살을 자연목적 위배의 기준으로 삼으면 그것의 성
적 상응행위는 자위, 수간, 동성애뿐 아니라 섹스리스의 삶도 포함된
다. 생명은 살라고 주어진 것이고 성적 속성은 번식하라고 주어진 것
인데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가 잘못이라면 성적 속성을 포기하여 번식
을 하지 않는 행위도 잘못이 되기 때문이다. 자살에 해당되는 성적 상
태는 자연이 의도한 번식능력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거꾸로
성적 오용에 상응하는 것을 찾자면 자살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삶)을
위험한 스포츠를 즐기는데 쓰거나 부도덕하게 사용하는 것일 터이다.
33) Kant(1996), 178. (MM 6: 424); 칸트(2012), 519-520.
34) Kant(1996), 61-62. (MM 6: 277)
35) Kant(1996), 179. (MM 6: 425)
106 논문
그렇다면 칸트는 딜레마에 처한다. 만약 칸트가 생각하는 자연목적의
위배의 기준을 자살에서 찾자면 섹스리스의 삶 역시 자연목적에 위배
되는 비자연적이고 부도덕한 일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섹스리
스의 삶을 도덕적으로 허용하기 위해 성적 오용에서 자연적 목적의
위배의 기준을 찾으면, 섹스리스의 상응인 자살의 부도덕성은 입증될
수 없을 것이다. 칸트가 섹스리스의 삶에 대해 도덕적으로 평가한 바
는 없지만, 방금 제시된 딜레마의 첫 번째 뿔을 인정하기란 부담스러
울 것으로 예상된다. 성적 활동을 할 생각이 없는 이들도 성적 기능을
쓰도록 허락된 상황에 들어갈 ‘의무’가 있다는 것을 칸트는 받아들이
기 어려울 것이다.
윤리학에 있어 인간의 실천이성을 중심에 놓는 것을 고유의 기획으
로 삼는 칸트로서는 자연적 목적의 내용이 인간에게 ‘직접’ 행동을 지
시하는 잣대의 역할을 한다는 발상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
을 받아들이면 그는 아퀴나스와 같은 신의 섭리에 기반한 목적론자가
되는 것이다. 자신의 철학의 근본적인 기획에 정합적인 성윤리를 가지
려면 칸트는 목적론적 요소가 성규범으로 작동하는 발상을 탈피해야
할 것이다.
Ⅳ. 수단화로서의 섹스 본성론과 정언명령
1.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
칸트는 인격과 하는 섹스 자체를 인격에 대한 수단적 이용으로 본
다. 이런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은 몇 가지 명제의 결합으로 분
석된다.36)
36) d에다 인격의 수단화를 금지하는 정언명령이 더해지면 성적 활동 자체가 부도
덕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07
a. 섹스는 신체 자체에 대한 향유이다.37)
b. 신체 자체에 대한 향유는 인격전체 자체에 대한 향유이다.
c. 인격전체 자체를 향유하는 행위는 인격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간주하
는 행위이다.
따라서, d. 섹스는 인격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행위이다.
a는 칸트가 기존의 보수주의적 접근을 탈피하여 섹스를 바라보고
있음을 드러낸다. 섹스 자체를 자연의 질서가 부여한 종족 보존의 개
념으로 바라보는 목적론 혹은 사랑의 표현으로 보는 낭만적 섹스관이
여기서는 드러나지 않으며 이는 기존 보수적 입장과 차별화되는 지점
이다.38) 여기서 칸트는 섹스를 쾌락적 활동, 자기 이익추구 활동으로
볼 뿐이다. 자유주의자들 역시 성적 활동을 타인의 신체를 향한 쾌락
적 활동으로 놓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 칸트의 이러한 첫 번째 전제
a는 자유주의적 해석을 열어놓는다.39) 하지만 칸트는 a뿐 아니라 b와
c를 받아들이며 이로부터 d를 이끌어내어 결국 자유주의적 결론과 반
대되는 결론에 이른다.
37) 한 심사자는 칸트는 신체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 인격을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
다고 말했지 신체 자체라고 하지 않았다고 지적하였다. 나는 ‘신체 자체’라는
말로 ‘신체 기능’과 구별되는 의미를 강조하고자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오해
의 소지가 있다면 ‘신체 일부’라고 표현해도 좋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칸트에
게 신체 일부인지 신체 전체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한 사람이 타인의 신체 일
부만 향유하여도 그것은 신체 전체에 대한 향유와 도덕적 차원에서 볼 때 같
기 때문이다.
38) 섹스를 이기적인 욕구 관철행위로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을 맹렬히 공격하며 낭만
적인 섹스관을 피력하는 입장으로 다음 논문이 있다. Singer(2002). 싱어에 따르면
“적어도 섹스는 ‘감정들 간의 낭만’”이고 “미적인 현상”이다. Singer(2002), 271.
39) Goldman(1977); Primoratz(1999), 41-49. 골드만과 프리모라츠는 섹스의 본성을
쾌락적 욕구의 어법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성도덕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정도로 중립적인가에
대한 비판으로는 다음을 참조할 것. 김은희(2010), 111-114.
108 논문
2. 문제제기
여기서 나는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을 이루는 생각들 a, b, c
에 도전하는 문제를 던질 것이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는 (4)에서 다뤄진다.
1) a의 문제: 성적 활동과 여타 노동 서비스의 차이
칸트는 성적 활동과 여타 노동 서비스는 다르다고 하였으며, 이 생
각은 a의 내용에 기반한다. 이는 골드만과 같은 자유주의자도 받아들
일 만한 생각인데, 성적 욕구는 신체의 특정 기능이 아닌 신체 자체에
겨냥되어 있다는 발상이다.40) 칸트와 달리 골드만은 b와 c를 받아들
이지 않음으로써 칸트와 다른 윤리적 귀결을 끌어낸다.
우리는 a가 과연 맞는지 물을 수 있다. 성적 욕구는 반드시 타인의
어떤 신체부위에 대한 향유일까? 칸트보다 더 단순하게 섹스를 생각
하자면 성적 욕구는 타인의 신체에 대한 욕구가 아닐 수도 있다. 가령
성욕은 기본적으로 내 신체의 부위를 자극하고자 하는 욕구인데 그
자극을 위한 적합한 수단으로 타인의 신체가 필요한 것일 수 있다는
생각도 가능하다.41) 즉 성욕의 목표지점은 타인의 신체가 아니라 자신
의 자극이고, 그 목표를 위한 수단이 타인의 신체이므로, 타인의 신체
는 성욕의 궁극적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타인과 섹
스하는 것과 타인의 노동 서비스를 서로 주고받는 것의 본질적 차이
는 사라진다. 섹스는 타인이 나의 성적 부위를 자극하는 서비스를 욕
구하며 서로 주고받는 행위라고도 할 수 있지, 타인의 신체에 대한 욕
구로 인한 행위라고만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40) Goldman(1977), 268. 골드만은 섹슈얼리티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성
욕은 타인 몸과의 접촉에 대한 욕구이고, 그런 접촉이 산출하는 쾌락에 대한 욕
구이다. 성적 활동은 행위자의 그런 욕구를 충족하려는 경향을 가진 활동이다.”
41) 프리모라츠의 경우 성욕을 타인의 신체에 대한 욕구로만 규정한 골드만을 비판
하면서 자위의 경우를 논의한다. 그럼으로써 그는 성욕이 반드시 타인의 신체를
향한 쾌락이 아닐 수 있음을 논증한다. Primoratz(1999), 43-47.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09
이제 여타 노동 서비스에서의 인격의 사용을 정당화하면서 성적 활
동에서의 인격의 사용은 불허하려면 칸트는 다른 근거를 찾아야 할
것이다. 만약 칸트가 다른 근거를 찾지 못한다면, 노동 서비스에서의
인격의 사용을 정당화하는 근거는, 이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성
적 활동에서의 인격의 사용도 정당화하는 근거로 쓰일 수 있다.
2) b의 문제: 신체의 향유는 인격전체의 향유인가?
우리는 신체의 향유가 왜 인격전체의 향유를 이끌어내는지 물을 수
있다. 타인의 허락 없이 그의 신체 일부를 즐기는 것은 그의 인격에
대한 허락받지 않은 향유로 간주되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칸트가 b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타인의 신체에
대한 향유는 그의 허락 여부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그의 인격에 대한
향유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체는 인격의 일부이고
인격은 부분들로 분리되지 않는 통합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42) 이
로부터 타인의 향유를 위한 신체 일부의 양도는 인격 전체의 양도를
의미한다는 점이 따라 나온다.
하지만 (가령 이타적 이유에서) 자신의 신체를 타인이 향유할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경우도 인격 자체가 양도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가
령 아기에게 젖을 물리는 여인,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어 따뜻
한 품을 원하는 사람에게 품을 내어주어 포옹하는 사람의 경우이다.
아마도 칸트는 이런 경우는 이타적이고 도덕법칙을 따르는 경우라서
허용된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의 논점은 동기의 이타성, 도덕
성 여부가 아니라 인격 자체의 양도가 발생하는지 여부이다. 위의 예
에서 젖을 주는 여인은 아이에게 인격을 양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
다. 마찬가지로 힘든 이를 포옹해준 사람은 자기 인격 전체를 타인에
게 양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떤 대상을 양도했는지 여부는 내가 그 부분에 대한 통제가능
성을 포기했는지 여부로 보는 것이 더 그럴 듯하게 여겨진다. 칸트는
42) Kant(1997), 157-158.
110 논문
「법이론」에서 각종 외부대상에 대한 권리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결혼
계약을 논의한다.43) 여기서 양도는 타인에게 점유의 권리를 준다는 것
을 의미하고, 점유권은 그 대상에 대한 통제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
다. 그렇다면 양도를 통제가능성 개념으로 해석하는 것은 전혀 칸트를
위반하지 않는다. 따라서 자신의 인격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한 상
태로 이뤄지는 신체 일부의 양도 가능성을 생각해 낼 수 있다면, 신체
일부의 양도는 인격의 양도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3) c의 문제: 인격의 향유는 인격을 수단화하는가?
어떤 인격을 즐기는 것은 ‘단지’ 그 인격을 수단으로 ‘만’ 보는 것
인가? A가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서 B가 안아주기를 원한다면 A는 B
라는 수단을 이용한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A가 B를 ‘단지’
수단으로 ‘만’ 보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는 더 나
아간 조건이 있어야 한다. 가령 A는 B가 수단적 가치를 잃을 경우
아무 가치가 없다고 여긴다는 조건이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인격을
향유하는 것은 과연 그런 조건을 필연적으로 충족하는가? 칸트는 성
욕의 특징은 대상에 대한 욕구가 사라질 때 그 대상을 “단물 빠진 레
몬처럼 버리는 것”이라고 본다.44) 이 생각을 잘 평가하기 위해서는
한 인격에 대한 성욕이 그 인격에 대한 다른 도덕적 태도와 도저히
양립불가한 것인지 살펴야 한다. 칸트는 성욕이 때로는 인간적 사랑
을 수반할 때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그것은
성욕이 본질적으로 인간적 사랑일 수 있다는 것이 아닌 그저 인간적
사랑을 단순히 동반하거나, 성욕이 사라지고 인간적 사랑이 대체하게
되는 경우일 뿐이다.45) 성욕 자체의 이기성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
다. 그렇기 때문에 성욕 자체는 도저히 상대 인격을 동시에 목적적
존재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43) 허만 역시 칸트의 결혼 논의가 재산권 논의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다고 말한다.
Herman(1993), 57.
44) Kant(1997), 156.
45) Kant(1997), 155.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11
이러한 칸트의 생각이 설득력 있으려면, 그가 사용한 인격 전체의
향유 개념은 인격 전체의 양도 개념을 포함해야 할 것이다. 즉 A가
B의 인격을 즐기는 것이 B를 단지 수단적 사물로만 보게 만든다는
발상은, A가 B를 즐긴다는 것은 A가 B를 물건처럼 점유권(통제권)을
양도받았다는 것을 의미해야만 설득력 있게 된다. 칸트의 이 생각을
논박하려면, A가 B를 물건처럼 갖지 않은 상태에서 B를 향유하는 경
우를 생각해내기만 하면 된다. 우리는 그런 경우를 충분히 떠올릴 수
있다. 나의 것이 아닌 어떤 이가 가진 인격적 속성을 그의 허락 하에
충분히 누리는 경우이다. 이 때 그의 허락은 그 자신 인격에 대한 나
의 점유(통제권)에 대한 허락을 의미하지 않는다.
3.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과 여성주의
지금까지 나는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을 이루는 요소들이 모
두 그럴듯하지 않음을 보였다. 하지만 칸트의 이 생각들은 가부장주
의적 현실에 대한 여성주의적인 통렬한 비판들의 개념적 자원이 되어
왔다. 칸트의 젠더 중립적 표현을 젠더 명시적인 것으로 바꾸고 성적
으로 수단화되는 인격의 젠더를 여성으로만 놓으면 급진 여성주의자
인 매키논과 드워킨에서 보이는 통찰의 내용과 거의 유사해진다.46)
가부장사회의 성적 관행을 통해 여성은 남성과의 섹스에서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성적으로 소유된다는 것이 매키논과 드워킨의 핵심 주장
이다. 그 주장을 a, b, c의 형태로 각색하면 이렇다.
a′. 이성간 섹스는 여성의 신체일부 자체에 대한 남성의 향유이다.
b′. 여성신체일부 자체에 대한 남성의 향유는 여성 인격전체 자체에
대한 향유이다.
46) 매키논과 드워킨은 “수단화한다”는 표현보다 “대상화하다objectify”라는 표현을
쓴다. MacKinon(1989), 124; Dworkin(1987), 140-141. 이 글에서는 두 표현을
달리 생각하지 않는다.
112 논문
c′. 여성인격전체 자체를 향유하는 남성의 행위는 여성 인격을 단순히 수
단으로만 간주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d′. 남성이 여성과 하는 섹스는 여성 인격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행위이다.
칸트의 생각 a, b, c 모두가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라고 비판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 젠더 불평등한 상태에서의 a′, b′, c′는 결코 무
시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보고일 수 있다. 젠더의 권력, 즉 통제능력
이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타인의 신체의 성적 사용에 대한 통제권의
불평등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칸트의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섹스관은 당시 여성들의 지위를 볼 때 남녀 간 섹스에 있어
빈번히 발생했을 여성의 성적 대상화 현상을 잘 말해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섹스가 타인을 모멸하는 행위일 수 있다는 발상은 가부장주의적
현실에 대한 비판을 위해 참으로 반가운 독창적인 생각인 것이다. 칸
트는 섹스에 참여한 남녀 모두가 서로를 수단화한다고 하였지만, 당시
칸트 비판의 목표지점은 실질적인 통제권을 더 많이 가진 남성 쪽에
기울어져 있을 가능성이 많다.47)
정리해 보건대 칸트의 암울하도록 부정적인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은
논리적, 개념적으로는 많은 결함을 보이기에 그대로 유지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인류 대부분이 아직까지 처해 있는 가부장주의적 맥
47) 칸트의 섹스관과 여성주의의 섹스관에는 차이점도 있다. 칸트는 인격 수단화 현
상이 섹스에 내재한 것이라고 본 반면 매키넌과 드워킨은 여성의 성적 대상화
현상은 가부장사회의 맥락에서 발생한다고 본다. 즉 칸트는 섹스를 본질적으로
부정적으로 보지만 그녀들은 섹스에 대한 본질적으로 부정적 시각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들이 보기에 우리 인간사회가 한 번도 제대로 가부장사회를
벗어난 적이 없기 때문에, 이성간 섹스에는 항상 여성의 성적 대상화 현상이 내
재적인 속성처럼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후 성문제의 해법으로서 칸
트는 이성결혼만을 요구하고 급진여성주의자들은 이성결혼에 대한 비판을 제기
한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라 할 수 있지만, 그 문제가 지금 논점에 관련적이지는
않다.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13
락에서 그의 섹스관은 여성의 성적 대상화 관행을 성찰할 유익한 이
론적 자원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칸트의 섹스 ‘본성론’은
섹스 ‘현실론’으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섹스 자체가
본질적으로 문제라기보다 가부장사회 맥락에 있는 이성간 섹스가 문
제라는 것이다. a, b, c를 모두 부정함으로써 섹스는 그 자체로 보면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활동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새로운 규정하에 성윤리를 제시하기 전에 젠더 불평등한 사회에서의
섹스가 지닌 현실적 성격을 고려할 것이 요구된다. 이제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은 ‘본성론’으로서는 포기되지만 여전히 현실적인 성
윤리의 성립에 필요한 현실적 고려사항으로 존재해야 할 것이다.
4. 자유주의적인 제안들
1)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에 대한 수정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 중 c를 인정해야만 도출되는 d와 칸
트의 정언명령(인격의 수단화 금지)이 결합되면 칸트에게서는 인간의
섹스 활동 자체를 도덕적으로 부정하는 판단이 나온다.
d. 섹스는 인격을 단순히 수단으로만 간주하는 행위이다.
(섹스 본성론)
e. 정언명령: 너 자신의 인격에서나 다른 모든 타인의 인격에서 인
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대하고, 결코 한낱 수단으로 대하
지 않도록 그렇게 행위하라.48) (윤리적 기준)
그렇다면 f. 섹스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윤리적 판단)
이때 정언명령의 윤리 e를 수용하면서도, 우리는 칸트가 거부할 수
없을 근거로 섹스 본성론 d를 논파함으로써(즉 칸트의 섹스 본성론을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섹스 본성론으로 만듦으로써) 칸트 성윤리의 다
48) 칸트(2005), 148.(4: 429).
114 논문
른 가능성을 찾아 볼 수 있다. 나는 a, b, c 모두 이론적으로 결함이
있다는 입장이지만 가령, 골드만은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을 이루는 생
각들 중 a와 b를 유지하고 c만 거부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으로 보
인다. 그는 타인의 신체에 대한 접촉과 그 접촉의 쾌락에 대한 욕구
를 성적 욕구로 규정하면서도 그 욕구 자체가 인격의 수단화를 의미
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49) 골드만이 보기에 이러한 성적 쾌락
추구 자체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어서 다른 일반적인 활동(가령 사업
활동 등)에 적용될 일반적인 윤리에 따라 성적 활동의 도덕성 여부가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50) 성적 활동만이 저촉되는 특수한 도덕은
없다는 것이다.
칸트의 성윤리가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귀결을 가진다는 점은 결정
적으로 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의 c(따라서 d)에 기인하기 때문에,
자유주의적 제안을 하는 이들이 a, b를 수용하는 입장과, a, b를 논파
하는 입장으로 갈린다는 점은 여기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
은 칸트를 따르는 자유주의자들이 e(정언명령)를 받아들이면서도 d(섹
스 본성론)를 거부함으로써 즉 섹스를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활동으로
여김으로써 f를 거부한다는 점이다.51) 다만 여성주의자들의 통렬한 비
판이 말해주듯이 가부장주의적 현실에서 남녀 간 섹스에 있어 여성의
‘성적 대상화’ 경향이 보편적으로 있다면 자유주의자는 d에 대한 고
려를 함부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성적
대상화’ 현실을 교정하고자 하는 시도는 d(혹은 d의 여성주의적 버전)
를 받아들이는 것에 있다기보다, e의 해석에 있어 현실적 고려의 필
요성을 인격의 목적적 대우 방식에 첨가하는 것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섹스 본성론을 도덕적으로 중립적인 것으로 바꾸는 이러한 시도는
칸트 성윤리의 복잡한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장점이 있다. 칸
49) Goldman(1977), 268.
50) Goldman(1977), 280.
51) Goldman(1977), 280.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15
트 성윤리는 그 특유의 섹스 본성론으로 인해 이중의 단계를 가진다.
즉, 그것은 정언명령에 의해 일단 모든 섹스를 금지하고 그러고 나서
호혜적 계약으로서의 결혼이라는 규범적 장치에 의해 섹스를 조건적
으로 허용하는 구조이다. 그런데 이 구조에서 섹스 본성론만 중립적
인 것으로 바꾸면 섹스 자체에 대한 도덕적 불허의 이유가 없어지고
윤리적 허용 여부의 무게중심은 호혜적 계약 장치보다는 정언명령 자
체에 놓이게 된다. 즉 d를 거부하고 e만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호혜적
계약으로서의 결혼은 불필요한 윤리적 장치가 된다. 그렇다면 정언명
령이란 윤리적 장치에 대한 해석들을 검토하고 대안을 만들어 보는
일이 칸트의 성윤리를 재구성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게 된다.
2) 인격의 수단화 금지에 대한 재해석과 제안들
인격의 수단화를 금지하고 목적적 대우를 명하는 정언명령에 대한
해석이나 제안의 스펙트럼 중 가장 얇은 이론에서부터 점차 두꺼운
이론으로 살펴보겠다.
첫 번째는 노직적인 칸트주의이다. 그는 개인의 소유권을 침해하는
사회는 인격을 수단화한다고 본다.52) 노직이 성윤리를 제시하지는 않
았지만 노직류의 칸트주의를 따르는 성윤리는 충분히 예상가능하다.
타인에 대한 기만이나 강제가 없었다면 어떤 성적 활동도 도덕적으로
가능하며, 이를 금지하는 것이야말로 인격의 선택권과 소유권을 해치
는 것이라는 입장일 것이다. 이런 입장은 상호작용을 하는 두 인격이
처한 불평등한 맥락과 배경을 고려하지 않는다. 서로의 처지를 악화
시키지 않은 채 서로에게 예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이익을 상호
간에 누리면 될 뿐이다. 하지만 인간 존엄성 이하의 절박한 상황에
놓인 A와 그 상황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풍족한 B는 A에게 매
우 굴욕적인 합의를 할 수 있다. 노직류의 입장에 따를 경우 기만과
52) 노직은 우리가 개인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그의 일에 개입하는 어떤 것도 해서
는 안 된다는 생각을 뒷받침하는 기반으로서 칸트의 윤리를 도입한다. Nozick
(1974), 30-33. 그의 이 생각은 분배정의를 위한 과세에 반대하는 논리로 작용
한다.
116 논문
강제가 없다면 절박한 처지에 있는 계약 일방을 학대하는 합의도 정
당화될 수 있다.53)
이에 두 번째 제안 즉 맵스나 벨리오티의 제안을 볼 필요가 있다.
일단 맵스나 벨리오티는 타인을 수단으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
본적으로 강제금지와 기만금지를 요구한다고 해석한다. 하지만 그들은
이것만으로는 첫 번째 입장에서 보이는 결함을 처리할 수 없다고 보
고 더 나아간 조건, 즉 상대방의 절박한 상황을 이용한 동의는 금지
한다는 내용을 추가한다.54) 그런데 이 두 번째 제안은 노직이나 골드
만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다른 일반적 행위에 적용되는 도덕과 다를
바 없는 도덕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맵스나 벨리오티가 추가한
세 번째 요소(절박한 상황을 이용한 동의의 금지)는 행위자 개인이
처한 미묘한 상황과 맥락에 대한 고려를 요구하지만 여전히 여타 일
반적 행위에 대한 고려의 수준에서 이뤄진다. 이는 어떤 활동에서건
상호이익을 근거로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기로 합의하는 것을 막는
기능을 하지만 성관계에 대한 특유하게 필요한 고려의 기능은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서 세 번째 제안으로 오닐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닐
은 정언명령의 해당 정식을 인격의 수단화 금지와 인격에 대한 목적
적 대우라는 두 부분으로 놓고 성관계에 있어 이 두 부분이 하는 기
능이 다름을 제시한다.55) 그녀에 따르면 인격의 수단화 금지는 인격
53) 노직의 자유지상주의적 입장이 성윤리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 비판적으로 검토
해 본 문헌은 다음과 같다. Belliotti(1993), 87-96.
54) 맵스는 강제금지와 기만금지 그리고 절박한 상황을 이용한 동의 금지라는 세
조건을 칸트적인 수단화 금지(타인을 성적으로 이용하는 것의 금지)로 보면서
제안하는 반면, 벨리오티는 노직의 자유지상주의적 기준(강제금지와 기만금지)과
칸트 정언명령(절박한 상황을 이용한 인격의 수단화 금지)에 대한 해석의 결합
을 성윤리로 제안한다는 사소한 차이가 존재한다. Mappes(2002), 222; Belliotti
(1993), 103-108. 류지한 역시 칸트의 정언명령을 성윤리에 적용함에 있어 맵스
와 벨리오티의 노선을 따르고 있다. 류지한은 이것을 “책임과 존중 중심의 중도
주의 성윤리”라고 표현하는데 나는 이것 역시 자유주의적인 입장에 속한다고
판단한다. 자유주의를 오직 노직류의 입장으로 이해했을 경우에만 맵스, 벨리오
티, 류지한은 중도주의가 될 것이다. 류지한(2002), 83-88.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17
들이 연루된 활동에 있어 각 인격은 동의/비동의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는 존재일 것을 명하는 것이다. 즉 인격은 관련 행위나 상황에 있
어 비토권을 지닐 때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할 수 있
다.56) 그렇다면 그녀가 말하는 두 번째 부분, 즉 성관계에서 목적적
대우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녀는 다른 행위와 달리 성관계가 갖는
친밀성에 주목한다.57) 우리는 모두 똑같은 종류의 인간관계에 놓여
있지 않고 미묘하게 다른 독특한 친밀 관계를 갖기도 한다. 오닐이
보기에 성관계는 친밀 관계에 속하며 성에 있어 타인에 대한 인격적
대우는 이 부분까지 고려해야 함을 의미한다. 물론 그녀는 친밀 관계
가 ‘사랑’(혹은 ‘온정적 간섭’)을 추구하느라 적절한 거리두기로서의
‘존중’에 실패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58) 하지만 상대가 처한 상
황에 대한 세밀한 고려가 없이 거리두기라는 존중만 할 경우도 분명
인격적 대우의 실패라고 그녀는 말한다.59) 그녀의 궁극적 주장은 성
적 활동에서는 친밀한 관계의 도덕 ‘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친밀한 관계의 도덕 ‘도’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오닐의 제안은 고전적 보수주의와는 다르지만 또 하
나의 특수한 섹스 본성론을 끌어들인다. 바로 섹스는 친밀한 행위라
는 규정이다. 이런 섹스관을 제안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의미있
다. 하지만 섹스가 친밀행위라고 생각하는 입장이 입증 책임을 가짐
에도 불구하고 오닐은 그런 섹스관을 별다른 입증 없이 놓고 간다.60)
따라서 섹스에 대한 은밀한 본질 설정을 하지 않은 채 성적 활동에
55) O’neill(1989), 105-106;112-113.
56) O’neill(1989), 110-111.
57) O’neill(1989), 119-120.
58) O’neill(1989), 120.
59) O’neill(1989), 121.
60) 섹슈얼리티가 현대 민주적인 공간에서 필요한 친밀 관계를 형성할 좋은 모델이
된다고 주장한 기든스의 입장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하지만 오닐은 기든스가 제
공한 정도의 해명을 하지 않는다. 반면 기든스는 섹슈얼리티가 친밀성의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책 한 권을 썼다. 즉 입증책임을 진 것이다.
물론 기든스는 사회학자이기에 본성론을 은밀히 가정할 생각도 없어 보인다. 기
든스(2001). 271-296.
118 논문
대한 획일적이지 않은 특별한 고려를 유지할 다른 제안이 필요할 것이다.
이로써 네 번째 제안 즉 누스바움의 것을 고려할 차례이다. 그녀는
성적 활동에 있어서 인격의 대상화는 성관계를 하는 참여자가 놓인
맥락에 따라 다양한 윤리적 위상을 가진다고 주장한다.61) 애인들이
서로에 대해 성적으로 고조되어 있을 때 그들이 서로를 성적으로 대
상화하는 행위들은 그들의 인격에서 어떤 가치를 “빼는 것”이 아니라
“더하는 것”일 수 있다고 누스바움은 말한다.62)
이러한 주장은 ‘대상화’ 개념의 출처인 칸트의 정언명령이 성윤리
에 있어 지니는 위상을 부정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63) 그녀는
대상화 자체보다 그 일이 벌어지는 맥락이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
이다. 하지만 내가 그녀의 입장을 정언명령에 대한 재해석과 제안의
범주에 넣은 이유는, 그녀가 중시한 요소인 맥락 자체가 맥락 속 인
격에 대한 존중을 항구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제시한 로렌스의 소설에서 성적으로 고양된 두 사
람이 서로를 성적으로 대상화는 발언과 태도를 보내는 것은 그들이
동시에 서로를 목적적 존재로 간주함과 양립가능하게 보인다. 그들이
가진 맥락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이라는 맥락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성적 활동에서 발생한 대상화적 태도는 일종의 쾌락을 위한
표현 방식일 뿐 결코 서로를 목적적 존재로 간주하지 못함을 의미하
는 것이 아니다.64)
61) Nussbaum(2002), 387. 나는 누스바움이 논의의 초점으로 삼는 ‘대상화’ 개념과
칸트의 정언명령에서 비롯한 ‘수단으로만 대우함(수단화)’ 개념을 구분하지 않고
쓴다. 누스바움은 수단화 개념을 대상화 개념에 포함된 여러 개념 중 하나로 보
지만 말이다. 내가 이 개념들을 호환적으로 사용한다고 해도 이 글에서 내가 주
장하고자 하는 바에 있어 필요한 누스바움의 논의를 크게 왜곡하지 않을 것이다.
62) Nussbaum(2002), 398-399.
63) 소블은 누스바움의 제안이 칸트의 정언명령의 인간성 정식에 위배된다고 본다.
Soble(2002), 241.
64) 누스바움은 그녀의 논문에서 여러 저자의 성애적 표현들의 스펙트럼을 독자에게
보여주고 각각의 평가를 달리 내린다. 그녀는 그 저작들 중에서 가장 긍정정인
대상화 표현이 이뤄지는 것으로서 로렌스의 작품으로 꼽는다. Nussbaum(2002),
399-403.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19
누스바움이 대상화도 맥락에 따라 도덕적으로 괜찮을 수 있다는 논
의 전략을 쓰는 이유는, 나의 추정에 따르면,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
성론 중 d(섹스는 인격 수단화를 포함한다는 입장)를 유지하면서도 f
(섹스에 대한 도덕적인 부정)로 나아가지 않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인
다. 하지만 그녀가 예로 제시한 상황들을 잘 파악하면 d를 부정하고
e(정언명령)를 받아들임으로써 f를 거부하는 전략으로 해석되어도 좋
아 보인다. 그녀의 전략이 충분히 이렇게 새로이 해석될 수 있는 또
다른 이유는, 그녀 자신이 섹스의 본성이 인격의 대상화를 의미한다
는 것을 주장한 적은 없다는 데에 있다. 그녀가 한 작업의 성격은 섹
스가 인격의 대상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섹스는 언제나 부도덕할 수밖
에 없다는 칸트, 매키넌, 드워킨의 추론이 과연 맞는가를 따지는 작업
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섹스가 인격의 대상화를 의미한다고 해도 그
래서 섹스가 언제나 부도덕하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논의
전략을 쓴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녀가 사용한 사례는, 정언
명령의 재해석을 위한 시도로도 읽힐 수 있다. 즉 수단화를 금지하는
정언명령의 취지를 잘 살리기 위해서는 행위자 인격들을 둘러싼 관계
의 맥락이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함을 말해주는 제안으로서 말이
다. 그녀의 제안이 정언명령의 재해석에 있어 하는 기능은, 오닐처럼
특정 섹스 본성론을 은밀히 도입하지 않고서도 맵스와 벨리오티가 놓
친 부분을 보완할 수 있는 기능이다. 이때 놓친 부분이란, 성적 활동
을 하는 인격들에게는 그 활동을 도덕적으로 허용가능하게 해주는 그
때그때의 독특한 관계와 맥락(이것은 섹스의 본질적 속성을 말하지
않는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조건이다.
종합해 보건대, 칸트의 성윤리에 있어 유일한 핵심으로 남게 된
정언명령은 가장 기초적인 기준인 강제금지와 기만금지(혹은 동의가
능성의 확보), 그리고 성적 활동에 참여한 상대 인격이 처한 절박한
상황과 맥락을 고려하고 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인물들이
창출해 낸 특수한 관계에 따라 다양할 수밖에 없는 맥락까지 고려해
야 하는 형태로 재해석되는 것이 가장 적합하게 보인다. 이때 섹스
120 논문
는 본질적으로 대상화 경향을 갖거나 아니면 정반대로 친밀성을 의
미한다는, 특정 가치를 함의하는 섹스 본성론은 입증 없이 도입될
수 없다.
Ⅴ. 평등한 호혜성을 보장할 법적 장치의
필요성 문제
이렇듯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을 거부하면, 칸트적 성윤리의
재구성을 위해 정언명령만 필요하다. 하지만 그 섹스 본성론을 받아들
인다면, (그리고 정언명령을 받아들인다면) 호혜적 계약으로서의 결혼
이란 법적 장치는 필요할 수 있다. 칸트의 섹스 본성론이 완전히 논박
되지 않았다고 여기는 이들은 아마도 칸트가 제안한 두 번째 규범적
장치인 결혼이란 해법에 대해서도 평가하고 싶을 것이다.
칸트는 그 자체로 부도덕한 행위인 섹스를 유일하게 허용할 장치로
서, 서로의 성적 부위와 성적 속성을 차지하는 두 남녀간 계약인 결혼
을 제시한다. 두 남녀는 서로의 인격 전체를 동시에 양도하고 양도받
는다는 점에서 평등한 관계를 가진다. 이때 유의할 점은 칸트가 생각
한 섹스의 본질인 사물화, 수단화가 결혼 내에서 사라진 것은 아니라
는 점이다. 다만 칸트는 내 인격을 상대에게 양도하지만 상대도 나에
게 자신의 인격을 양도함으로써 나는 나의 인격을 되찾아 오게 된다
는 논리를 통해 내 인격의 보존을 입증하려 한다. 하지만 허만이 지적
했듯이 수단화라는 부도덕을 양쪽에서 똑같이 한다고 그것이 상쇄되
어 없어진다는 생각은 잘 납득되지 않는다.65) 그리고 그녀에 따르면
그런 계약을 굳이 결혼이라는 공적 기준에 맞춰 해야 하는지도 충분
히 설명되지 않는다.66)
65) Herman(2002), 66.
66) Herman(2002), 66.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21
이에 허만은 결혼 개념을 통해 인격의 상호 점유를 말하고자 했다
기보다 인격들의 결합에 있어 법적 장치의 필수성을 말하고자 했다는
것이 칸트의 취지임을 밝힌다.67) 그리고 그로부터 그녀는 급진적인
함축 역시 가능함을 제시한다. 그녀에 따르면 칸트가 생각한 결혼이
란 제도적 장치는 자유방임 체제 하에서 사적 개인들의 사적 계약이
아니라 공적으로 (실천이성에 맞게) 정해진 내용에 따라 계약되어야
할 장치이다. 칸트가 생각하는 결혼은 온갖 욕구들에 대한 소극적인
법제화가 아닌 실천이성에 맞는 형태를 만들기 위한 적극적인 법제화
인 것이다. 칸트는 결혼을 전통적인 형태로만 생각했지만 허만은 칸
트의 취지에 맞는 다른 함축도 생각할 수 있다고 제안한다. 즉 칸트
의 결혼 개념은 부부강간이나 가정폭력에 대해 국가가 강력히 개입하
는 형태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68) 여성주의자들이 가정 문제를
공적 문제화하려고 시도해왔다는 점을 볼 때 칸트의 결혼관은 여성주
의자들의 노력을 돕는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허만의 평가이다.69)
이 외에도 칸트의 결혼 개념에 대해 더욱 긍정적인 해석이 있다.
코스가드에 따르면 결혼이라는 계약의 호혜성은 사회 계약의 호혜성
에 유비된다. 나를 타인에게 양도함과 동시에 타인도 그 자신을 나에
게 양도함으로써 그들은 하나의 공동체로 결합해 들어간다. 코스가드
는 칸트가 우정을 표현할 때 이와 유사한 표현을 한다는 점에 주목하
여 사회 계약과 결혼 계약 모두 우정 행위로 해석한다.70)
하지만 코스가드의 이런 해석은 성관계가 반드시 결혼이라는 호혜
67) Herman(2002), 66-69.
68) Herman(2002), 69. 허만의 해석과 대조적으로 머텐스는 칸트의 결혼 장치는 부
부강간을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한다. Mertens(2014), 339. 나는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이 수정되지 않는 이상, 머텐스의 평가가 더 맞다고 생각한
다. 나의 제안대로 칸트의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이 중립적 섹스 본성론으로 수정
되면 윤리적으로 봤을 때 작위적인 결혼 장치라는 도덕적 구제책도 필요 없게
된다. 하지만 그의 섹스 본성론이 유지될 경우에 상호 동시 점유를 허용하는 결
혼 장치는 상호 간의 침해가능성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만들기 때문에 부부강간
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막을 윤리적 장치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69) Herman(2002), 70.
70) Korsgaard(1996), 195-196.
122 논문
적 장치만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귀결을 낳을 수도 있다. 즉 결
혼이라는 특수 관계보다 일반적인 시민적 관계(사회계약)에 놓인 인격
들 사이에서라면 성관계가 호혜적일 수 있다는 점이 함축된다. 우정
관계는 결혼 장치를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코스가드의 이 해석은 (그리고 허만의 해석도) 결혼에 진입한 이들의
관계에 대한 긍정적 해석일 수 있으나, 섹스를 허용받기 위한 유일한
구제책으로서의 결혼의 필수성에 대한 긍정적 해석일 수는 없는 것으
로 보인다. 결혼하지 않은 상태에서 호혜적 우정 행위로서의 성적 행
위가 가능하며, 결혼이라는 공적 장치 없이도 성관계를 맺은 이들 간
폭력의 방지책은 법적 제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71)
이렇게 볼 때 결혼이라는 호혜적인 법적 장치 부분은 칸트의 성윤
리에서 두 번째 섹스 본성론을 제거하거나 수정할 경우 유지될 필요
가 없다고 볼 수 있다.
Ⅵ. 결론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칸트의 성윤리 중 그의 철학의 근본 취지
를 훼손하거나 심각한 논리적, 개념적 결함을 보이는 요소들을 제거
하거나 수정하였다. 이를 통해 성문제에 관련하여 정언명령에 대한
재해석을 핵심으로 하는 ‘칸트적’ 성윤리를 재구성하기 위해 결론적으
로 얻어낸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1) 칸트의 섹스 본성론은 중립적인 섹스관으로 수정되어야 하고,
아울러 가부장주의적 사회속의 섹스의 모습을 성찰하게 해주는
역할로만 한정되어야 하고,
(2) 인격의 수단화 금지와 목적적 존재로 간주함의 정언명령은 기
71) 그 외에도 결혼이 남녀간의 호혜적 계약이라는 주장 자체가 현실적으로, 역사적으
로 볼 때 기만적이고 허구적인 주장이라는 지적도 참고할 만하다. Pateman(1988).
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23
본적인 동의가능성의 원칙 및 특수 관계와 맥락에 민감한 도덕
적 고려를 포함하는 것으로 재해석되어야 하고,
(3) 섹스의 호혜적 관계를 보장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법적 장치만
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은 포기되어야 한다.
나는 이 생각을 토대로 이뤄진 성윤리가 여전히 ‘칸트적’이라고 생
각한다.72) 그 자신의 철학의 정합성을 해칠 요소들이 제거되었고 그
럼에도 불구하고 칸트 윤리학의 기본 발상은 성적 상황에 맞게 더 풍
부하게 재해석되어 유지되기 때문이다.
72) 한 심사자는 ‘칸트는 이성과 본능, 인격과 신체, 실천이성과 경향성 등 인간 본
성에 대한 이원적 관점을 고수할 것’을 고려해 볼 때 이 논문이 과연 ‘칸트적’
일 수 있는지 물었다. 이에 칸트의 이원론적 입장에 대해 나의 입장을 해명하는
것은 다른 지면을 필요로 하는 큰 논의가 될 수 있기에 간략히 답하고 싶다. 내
가 보기에 칸트는 우리가 순수 실천이성이 허락하는 틀 안에서 쾌락과 같은 경
향성을 누리고 사는 삶을 인정했다. 그가 경계한 것은 도덕법칙의 토대에 경향
성, 자연계의 논리가 들어오는 것일 뿐이다. 섹스에 관해서도, 그 자체가 도덕법
칙을 거스르는 욕구라는 생각만 잘 논박된다면(이 생각을 논박하는 것이 이 논
문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데 이것이 잘 되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 논문의 실패
이다.) 우리는 그런 쾌락을 누리는 것 자체에 대해 칸트가 부정했다고 볼 이유
는 없다. 단 그 쾌락을 누리는 특정 행동들이 정언명령에 어긋난다는 것만 도덕
적 판단의 관건이 될 것이다.
124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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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성윤리의 구조와 재구성 127
ABSTRACT
Reconstructing Kant’s sexual ethics
- Focusing on the Nature of Sex, Categorical Imperative, and Reciprocity -
Eun-Hee Kim
The aim of this essay is to reconstruct Kant’s sexual ethics into a
more plausible version of ‘Kantian sexual ethics’ by analyzing and
appreciating the structure and various elements of Kant’s sexual ethics.
I show that Kant’s sexual ethics is divided into ideas of sex and the
frames of ethical judgments. The former is analyzed into (1) the
teleological conception of sex, and (2) the conception of sex as activities
exploiting persons. The latter is analyzed into (3) the categorical
imperative prohibiting the exploitation of persons and (4) reciprocal
marriage as an equal legal relation.
I argue that, first, (1) is inconsistent with Kant’s own philosophical
project, and second, all the elements in (2) are refuted, and then argue
that his idea of sex lading moral values should be changed into
value-neutral ideas of sex.
If this is the case, (3) is supposed to become the most important
element in Kant’s sexual ethics. I try to give the outline of ‘Kantian
ethics’ by reviewing various interpretations in regard to how to apply
the categorical imperative to the problems of sexual activities. The
outcome might look like liberal sexual ethics, according to which (4)
is unnecessary.
128 논문
Subject Class: ethics
Keywords: Kant’s sexual ethics, the nature of sex, categorical
imperative, recipro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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