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이 앓고 있는 병을
낫게 해달라고
그대가 우리 절에서
처음으로 탑돌이를 할 때
나는 그대를 처음 보았소
거동이 불편한 노스님을
씻겨 드리려고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 가다가
연꽃처럼 청초한 그대 모습에
난 그만 세수대야를 떨어뜨렸소
한여름 칸나꽃처럼 붉은
그대의 입술을 본 순간
내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세수대야를 잡았던 내 손이
힘이 빠져 물을 쏟아 버렸소
나의 뇌리 속에 박힌
그대의 모습을 지우려고
불제자로써 부처님께 부끄러워
나는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며
한없이 반야심경을 외우고 외웠소
노스님이 흠뻑 젖은 승복을 보고
무슨 일이 있었느냐라는 말에
내 마음을 훔쳐보지나 않았나하고
내 뺨이 뜨거워지면서 수치심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소
그로부터 나는 칠성각 뒤에 숨어
탑돌이를 하는 그대 모습을
한없이 훔쳐보며 울고 또 울었소
그대에게 사랑고백할 수 없는
기구한 내 운명에 마음 아파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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