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랭글리 침몰(2) - 침몰
랭글리가 침몰한 후 글래스포드 제독은 프레맨틀을 떠날 때 이미 일본군이 임무와 행선지를 알고 항공기를 매복시켰을 것이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당시 곤도 제독의 참모장 이었던 가즈타카 시라이시는 전후 미군 조사관의 심문에서 당시 일본군이 랭글리의 임무와 행선지를 모르고 있었다고 대답했다.
발리의 덴파사르 비행장을 이륙한 다카오 비행대의 97식 대형비행정이 1942년 2월 27일 오전 8시 20분에 랭글리를 발견하고 보고했다. 곧 1식 육상공격기 16대가 이륙하 여 제3 및 타이난 항공대 소속 제로기 15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달려왔다.
미츠바시 G4M 1식 육상공격기
오전 11시 40분에 엣솔의 견시가 4,500m 높이로 접근하는 일본기를 발견했다. 랭글리의 통신실은 즉시 공습받고 있다고 타전했으며 승조원들은 전투배치에 들어갔다. 랭 글리의 대공화력은 빈약했다. 함수와 함미에 2문씩 배치된 5인치 포는 대수상함 전용이었다. 대공화력의 중핵은 비행갑판에 설치된 구식의 3인치 대공포 4문이었는데 3,60 0m 고도까지 밖에 사격할 수 없었다. 발사속도도 분당 4발로 너무 느렸으며 사격통제장치도 원시적이었다. 50구경 기관총 4정도 있었으나 수평폭격기에게는 무용지물이었 다. 결국 랭글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교묘한 기동으로 적의 조준을 방해하는 것과 적의 폭격 실력이 형편없기를 기도하는 것 뿐이었다.
일본의 육상공격기들은 2개 중대로 나뉘어 접근했다. 다니바타 요시노부 대위의 중대는 7대로 이루어져 3대씩 2개의 V를 형성하고 1대는 두번째 V의 뒤를 따라갔다. 비행 고도보다 훨씬 아래에서 작렬하는 랭글리와 호위함정들의 대공포화는 무시했다.
랭글리의 함장 맥코넬 중령은 함교에서 쌍안경을 들고 일본기의 동태를 살피고 있었다. 일본기들은 전형적인 수평폭격패턴으로 4,500m 높이에서 접근하고 있었다. 다니바 타 중대가 80도의 각도로 접근하여 폭탄을 떨어뜨리기 직전에 랭글리는 최대한 오른쪽으로 꺾었으며 일본기가 떨어뜨린 250kg짜리 폭탄 7발은 모두 좌현 뱃머리 쪽으로 3 0m 정도 빗나갔다. 랭글리는 1차시험에서 살아남았다.
그러나 곧 9대로 이루어진 아다치 지로 대위의 중대가 다가왔다. 아다치 대위는 다니바타 중대의 공격을 관찰하면서 세가지를 깨달았다. 첫째로 랭글리와 호위함정들의 대공 포는 자신들이 있는 4,500m 높이까지 도달하지 못했으므로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둘째로 적의 전투기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랭글리의 함장은 조함 능력이 뛰어났다.
아다치 중대는 3대씩 3개의 V자를 만든 다음 일직선으로 80도 각도로 랭글리에 접근했다. 맥코넬 중령은 마지막 순간에 다시 왼쪽으로 크게 꺾음으로서 폭탄투하 타이밍을 뺏었다. 아다치 대위는 폭탄을 떨어뜨리지 않고 그냥 통과했다. 그의 예상이 맞았다. 랭글리의 함장은 폭탄투하 순간을 정확하게 예상하여 투하 직전 변침함으로써 타이밍을 뺏는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두번째 접근에서 아다치 대위는 부하들에게 실속하지 않을 정도로 최대한 느리게 비행하도록 명령했다. 맥코넬 중령은 적의 속력이 떨어진 걸 깨달았다. 이제 폭탄투하 타이 밍을 뺏기는 더욱 힘들어질 것이었다. 아다치 중대가 폭탄투하 위치에 도달하는 순간 랭글리는 급히 좌회전함으로써 타이밍을 뺏는데 성공했으나 속력을 떨어뜨린 일본기들 은 그대로 통과하지 않고 방향을 바꾸어 따라왔다. 맥코넬 중령은 다시 오른쪽으로 최대한 꺾었으나 이번에는 반박자 빨리 꺾는 바람에 타이밍을 내주고 말았다. 정확한 타이 밍을 잡은 일본기들은 일제히 폭탄을 떨어뜨렸다.
아다치 중대는 랭글리에게 250kg 및 60kg 짜리 폭탄 5발을 명중시키고 지근탄 3발을 기록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기가 해상에서 기동중인 함정에 대해 실시한 고공수평 폭격 중 가장 정확한 폭격이었다. 단 한번의 폭탄투하에서 이렇게 많은 명중탄을 얻어맞은 함정은 거의 없다.
첫번째 폭탄은 함체 전방에 떨어져서 전선을 몽땅 끊어놓았다. 2번째와 3번째 폭탄은 좌현 비행갑판의 엘리베이터 부근에서 폭발했다. 좌현 비행갑판에 주기중이던 P-40에 불이 붙으면서 비행갑판 뿐 아니라 아래의 주갑판까지 불길에 휩싸였다. 4번째 폭탄은 좌현에 돌출된 굴뚝에 맞아 비행갑판에 있던 P-40에 추가로 화재를 일으켰다. 마지막 폭탄은 후갑판을 뚫고 들어가 키를 35도 우현으로 꺾인 상태로 고정시키고 3인치 대공포탄을 유폭시켰다. 대공포탄의 폭발로 승조원 몇명이 배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AV-3 랭글리. https://en.wikipedia.org/wiki/USS_Langley_(CV-1)
요코야마 타모츠 대위가 지휘하는 제3항공대의 제로기 6대는 저공으로 내려와 아직 불이 붙지 않은 우현 비행갑판의 P-40에게 20mm 기관포로 사격을 가하여 모두 파괴했 다. 이어서 제로기는 마침 주변을 지나가던 비무장의 민간 4발대형비행정 1대를 격추했다. 랭글리와 같이 있던 네덜란드의 카탈리나 2대는 도망치다가 제로기의 추격을 받아 1대가 격추되었다. 그러나 격추된 카탈리나는 끝까지 저항하여 제로기 1대를 저승길에 길동무로 데리고 갔다. 이걸 마지막으로 일본기들은 물러갔다.
랭글리의 상태는 심각했다. 배는 왼쪽으로 10도 기울었으며 좌현은 불길에 휩싸였다. 보수반은 불타는 P-40들을 바다로 밀어넣고 화재와 싸워 불길을 잡는데 성공했으나 문 제는 침수였다. 기울기를 바로잡기 위하여 우현에 역침수를 실시했으나 좌현의 침수가 더 빨라서 기울기가 점점 심해졌다. 보수반은 침수 속도를 늦추기는 했으나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 침수는 지근탄의 충격에 의하여 좌현 수선 아래의 철판이음매가 여러 곳에서 벌어져 일어나고 있었으므로 완전히 막기가 불가능했다. 랭글리는 원래 전투함이 아니었으므로 내 부 격실이 부실한 편이어서 일단 함내로 들어온 물을 격실에 가두어 두기가 어려웠다. 결국 모터가 침수되면서 터보 일렉트릭 방식으로 추진하던 랭글리의 동력이 끊어졌다. 또한 침수가 진행되면서 비행갑판과 거기에 놓인 전투기 때문에 무게 중심이 높아진 랭글리의 전복 위험도 커졌다.
이제 랭글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보수반이 최선을 다하여 침수를 막는 동안 전 승조원이 달라붙어 물을 퍼내면 당분간 떠있을 수는 있겠지만 동력이 없으므로 북쪽으 로 120km 떨어진 칠라찹까지 갈 수가 없었다. 동력이 있다고 해도 키가 우현으로 잔뜩 꺾인채 고정되어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며 맴돌 것이었다. 칠라찹에서 예인선을 보내 준다고 해도 도착하려면 10시간은 족히 걸릴 것이었다. 구축함이 예인할 수도 있었으나 침수로 인하여 흘수가 깊어져서 칠라찹 항구 앞의 모래턱을 넘지 못하고 좌초될 것이 었다. 무엇보다 일본기가 돌아오는 날이면 구축함들마저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27일 오후 1시 32분에 맥코넬 중령은 퇴함명령을 내렸다. 승조원들은 질서정연하게 양현으로 달려가서 물에 뛰어들었다. 구축함 엣솔이 랭글리의 좌현에서, 휘플이 우현에 서 승조원을 건져 올렸다. 구축함들은 랭글리의 승조원이 기어올라오기 쉽도록 현측에 스크램블 네트와 중간에 마디를 넣은 밧줄을 늘어뜨렸다.
스크램블 네트. https://www.a-ss.no/search-rescue/rescue-nets/
장교들이 랭글리의 구석구석을 살피며 남아있는 인원이 없는지 챙기는 동안 맥코넬 중령은 암호책, 도표, 일지, 해도 등의 기밀서류를 태우거나 꽁꽁 묶은 다음 무거운 추를 달아 바다에 던졌다. 통신기와 암호기기도 마찬가지로 바다에 버렸다.
파기를 마친 맥코넬 중령은 주변의 부하 장교들에게 퇴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장교들은 맥코넬 중령이 움직이지 않는 한 자신들도 퇴함하지 않겠다고 버텼다. 랭글리를 잃고 상심하여 자신의 함과 운명을 같이할 생각이던 맥코넬 중령은 자신을 걱정해주는 부하들을 보고 기운이 났다. 그는 마음을 바꾸어 부하들과 함께 마지막으로 함을 떠났다.
피격 당시 랭글리에는 조종사 33명, 육군항공대의 정비원 12명을 포함하여 484명이 타고 있었다. 이들 중 사망 및 실종자는 12명, 부상자는 조종사 2명을 포함하여 11명이 었다. 함체가 입은 피해에 비하면 인명피해는 가벼운 편이었는데 여기에는 놀라운 구조 효율을 보여준 구축함 휘플의 함장 유진 카프 소령과 엣솔의 함장 조슈아 닉스 소령 의 공이 컸다.
1시간에 걸친 구조가 끝난 후에도 랭글리는 가라앉지 않았다. 휘플은 침수를 촉진하기 위하여 오후 2시 28분에 랭글리의 좌현 수선 부근에 4인치 포탄 9발을 쏘았으나 소용 이 없었다. 후방 탄약고를 터뜨리면 침몰할 것이라는 맥코넬 중령의 조언에 따라 휘플은 오후 2시 32분에 랭글리의 우현에 어뢰를 쏘았으나 어뢰는 함미가 아닌 함체 중앙에 맞았다. 당연히 탄약고는 터지지 않았고 오히려 오른쪽에 침수가 일어나면서 기울기가 줄어들었다. 당황한 휘플은 다시 함미에 어뢰를 쏘았고 이번에는 탄약고가 폭발했으나 역시 침몰하지 않았다.
랭글리에게 휘플의 어뢰가 명중하는 순간. https://en.wikipedia.org/wiki/USS_Langley_(CV-1)
이 시점에서 제59구축함분대장 에드윈 크라우치 중령은 철수하기로 결정했다. 랭글리를 침몰시키기 위하여 귀중한 어뢰를 더 쓸 수는 없었다. 그리고 랭글리의 침몰을 확인 하려고 기다리다가 일본기가 돌아오면 큰일이었다. 일본기가 랭글리의 조난자로 가득한 구축함에 기총소사만 가해도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었다. 오후 2시 46분에 휘 플과 엣솔은 여전히 떠있는 랭글리를 남겨둔 채 칠라찹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북상했다. 맥코넬 중령은 글래스포드 제독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랭글리의 침몰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글래스포드 제독은 칠라찹으로부터 포함 툴사와 기뢰부설함 휘푸윌을 파견했다. 두척의 함정은 해당 해역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저녁에 네덜란드해군항공대의 카 탈리나가 해당 해역을 꼼꼼하게 둘러본 후 랭글리의 침몰을 확인했다.
자바항공사령관 반 오옌 소장은 자신의 전투기 세력을 획기적으로 강화시켜 줄 랭글리의 도착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는 랭글리의 안전을 위하여 응고로 비행장에 전개한 전투기를 사용하여 항공엄호를 제공하려다가 텔 푸어텐 중장에게 제지당했다. 오옌 소장은 격렬하게 항의했으나 텔 푸어텐 중장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응고로 비행장의 전 투기들은 이날 훨씬 중요한 임무를 맡아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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