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주간전투(2) - 엑서터 피격과 코테네어 침몰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일본해군이었다. 제2수뢰전대는 제5전대를 호위하던 구축함 4척(우시오, 사자나미, 야마카제, 가와카제)을 흡수하면서 남하하여 연합타격부대와의 거 리를 좁혔다. 1942년 2월 27일 오후 4시 15분에 제2수뢰전대의 기함인 경순양함 진쓰는 연합타격부대의 오른쪽 선두에 선 영국구축함 엘렉트라를 향하여 16,800m 거리 에서 14cm 주포로 사격을 시작했다. 진쓰의 사격은 정확하여 곧 엘렉트라에 협차를 내었고 위협을 느낀 영국구축함들은 순양함쪽으로 후퇴했다. 곧이어 양측의 중순양함 들이 사격을 시작했다. 먼저 엑서터가 오후 4시 17분에 진쓰를 향하여 8인치 주포로 사격을 시작했다. 잠시 후 나치가 22,000m 거리에서 엑서터에게 20cm 주포로 사격을 가했으나 1,800m 정도 앞에 떨어졌다. 1분 후인 4시 18분에는 휴스턴이 개전이래 처음으로 8인치 주포를 발사했다.
자바해 해전의 주간전투 상황도. 시차가 현대와 달라 시간표에 30분을 더해야 당시 현지시간과 맞는다. 즉 나카가 최초로 어뢰를 발사한 시각은 1603시가 아니라 1633시이며 엑서터가 피격된 시간은 1638시가 아니라 1708시이다. https://philbancients. blogspot.com/2018/01/naval-scenarios-17-battle-of-java-sea.html#!/2018/01/naval-scenarios-17-battle-of-java-se a.html
제2수뢰전대는 8인치 포탄이 주변에 떨어지자 위협을 느끼고 오후 4시 20분에 오른쪽으로 꺾어 연합타격부대와 거리를 벌리면서 연막을 뿌렸다.
그동안 제5전대(나치, 하구로)는 연합타격부대로부터 20,000m 이상 거리를 유지하면서 서쪽으로 항진했다. 다카기 제독은 자신의 중순양함들을 적 경순양함의 함포 사정 거리 밖에 위치시킨 상태로 20cm 주포로 견제하면서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렸다가 날이 어두워지면 산소어뢰로 단번에 승부를 볼 생각이었다. 사정거리가 긴 중순양함의 8 인치급 주포수에서 우세한 반면 사정거리가 짧은 경순양함의 6인치급 주포 수에서 열세한 다카기 제독의 입장에서 이 계획은 합리적이기는 했으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당시 기술수준으로는 20,000m 이상의 원거리에서 함포의 명중율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힘들게 명중시킨 포탄도 불발탄이 많았다. 실제로 드루이터는 오후 4시 3 1분과 53분에 명중탄을 맞았지만 모두 불발탄이었다. 휴스턴 또한 오후 5시 6분에 명중탄을 맞았으며 몇 분 후에는 연료탱크에 또 1발을 맞았으나 역시 불발탄이었다.
전투 도중 휴스턴 1번 포탑 오른쪽 주포의 장전기가 작동을 멈추었다. 2월 4일의 폭격에서 피해를 입었던 두꺼비집이 벽에서 떨어지면서 전원이 나가버린 것이었다. 승조원 들은 무게가 118kg에 달하는 8인치 포탄을 인력으로 장전했는데 전투상황이 아니라면 불가능했을 일이었다.
도먼 제독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경순양함 주포의 우세를 활용하려면 나치와 하구로에게 접근해야 했고 그러려면 현재 침로를 유지해야 했다. 하지만 그럴 경우 일정 시간 동안 적에게 T자형으로 머리를 눌릴 것이었다. 특히 엑서터는 드루이터가 걸리적거리고 휴스턴은 엑서터가 걸리적거려 전방 주포마저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었 다. 그럴 경우 나치와 하구로의 20cm 주포 20문에 대하여 드루이터의 150mm 주포 3문으로 대적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었다. 비록 짧은 시간이라도 그런 상황은 너무 위험했다. 게다가 26노트 밖에 나오지 않는 코테네어의 속력도 문제였다. 만일 순양함열이 코테네어의 속력에 맞추어 26노트로 전진한다면 적에게 T자로 머리를 눌리는 시 간이 길어질 것이었다. 반면 순양함열이 T자로 머리를 눌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하여 고속으로 접근한다면 코테네어와 함께 움직이고 있는 윗더위드와 미국구축함들은 뒤로 처질 것이었다.
결국 도먼 제독은 경순양함의 주포를 활용하기 위하여 T자로 머리를 눌린 상태로 나치와 하구로에게 접근하는 것은 너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8인치급 주포 숫자의 열 세에도 불구하고 장거리 포격전을 계속 치르기로 결심했다. 그러려면 적과 나란히 항진해야 했다. 도먼 제독은 남서쪽인 248도로 변침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전투 초기에 경순양함 주포 활용을 포기한 도먼 제독의 결정은 당대는 물론 후대의 역사가로부터도 비판을 받았다. 그러한 비판도 근거가 있지만 당시 상황을 돌이켜보면 경 순양함의 주포를 활용하기 위하여 적에게 접근하는 방안 또한 상당히 위험했다. 따라서 당시 상황에서 경순양함의 주포를 활용할 것이냐 포기할 것이냐는 옳고 그름의 문제 라기보다는 각각 장단점이 있는 선택의 문제였으며 결국 포기를 선택한 도먼 제독의 판단 또한 전술적으로 충분한 근거가 있었다.
오후 4시 30분에 다카기 제독은 어뢰공격명령을 내렸다. 당시 연합타격부대에 가장 접근해 있던 일본함대는 30노트의 속력으로 급속히 남하한 니시무라 제독의 제4수뢰전 대였다. 제4수뢰전대는 오후 4시 34분부터 45분에 걸쳐 12,500m에서 15,000m 사이의 거리에서 연합타격부대의 순양함열을 향해 93식산소어뢰 27발을 발사했다. 진쓰 는 오후 4시 35분에 4발을 발사했고 하구로는 4시 52분에 20,000m 거리에서 8발을 발사했다. 나치는 어뢰발사기의 밸브가 제멋대로 열리면서 압축공기가 새어나가는 바 람에 발사에 실패했다. 이때 일본함대가 발사한 어뢰는 대부분 빗나갔는데 가장 큰 원인은 연합타격부대 함정들의 함수 방향으로 발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뢰 중 일부 는 조기폭발했다.
바다에서 해전이 벌어지는 동안 연합군 항공기들은 일본함대의 20km 북쪽에서 항진 중이던 일본군 수송선단에 대해 공습을 실시했다. 오후 3시에 제91경폭격비행전대 소 속의 A-24밴쉬 급강하폭격기(돈틀리스의 육군형) 3대가 해리 글루샤 대위의 지휘 아래 말랑 비행장을 이륙했다. 이들은 수라바야 부근에서 제17임시추격비행대대 소속의 P-40전투기 10대 및 네덜란드군의 버팔로 전투기 5대와 만났다. 조지 카이저 중위와 잭 데일 중위가 각각 P-40전투기 5대로 이루어진 편대를 이끌었으며 네덜란드 전투기 는 하스 중위가 지휘했다.
글루샤 대위의 폭격대는 오후 4시 30분경에 전투 중인 일본함대의 상공을 지나 일본선단 상공에 도달했다. 1대당 300kg 짜리 폭탄 1발과 50kg 폭탄 2발을 장착한 폭격기 들은 오후 4시 45분에 3,000m 고도에서 급강하 폭격을 가했다. 폭격기들은 14,000톤급 일본수송선 1척에 폭탄 1발을 명중시키고 지근탄 2발을 기록했으나 수송선은 항 진을 계속했다. 선단 상공에 일본기가 없었으므로 폭격기들은 모두 말랑 비행장으로 복귀했다. 폭격기 중 1대가 대공포화에 맞아 가벼운 피해를 입었다.
폭격기들은 호위없이 돌아갔고 전투기들은 연합타격부대를 지원하기 위하여 현장에 남았다. 전투기가 일본함대에 접근하면 엄청난 대공포화가 쏟아져서 접근할 수 없었다. 불행하게도 전투기들은 연합타격부대와 직접 통신이 불가능했고 수라바야에 있는 추격사령부와만 통신이 가능했는데 그날따라 수라바야와 연합타격부대 사이의 통신이 불 량하여 연합군 전투기가 상공엄호 중이라는 정보가 도먼 제독에게 도달하지 않았다. 따라서 연합타격부대는 전투기들을 적이라고 생각하여 접근하면 대공포를 쏘았고 전투 기들은 대공포화가 올라오지 못하는 8,000m 상공에서 선회하면서 해전의 경과를 지켜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날 발릭파판을 비롯한 일본군 비행장 상공의 날씨가 나빠서 일본기들이 뜨지 못했으므로 연합타격부대가 공습받을 일은 없었다. 따라서 연합군 전투기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일본수상기를 제거하는 일이었다. 일본수상기들은 대부분 연합군 전투기를 보는 순간 달아났으나 1대는 배짱좋게도 연합타격부대 상공에 머물러 있었다. 통신이 가능 했다면 도먼 제독은 수상기 제거를 요청했을 것이고 전투기들은 현장에 있던 수상기는 물론 주변을 뒤져 달아나던 수상기까지 모두 격추함으로써 일본함대의 정찰능력을 심 각하게 위축시켰을 것이다. 그러나 통신이 안되니 전투기 조종사들이 그런 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게다가 조종사들은 아래에서 벌어지는 해전을 구경하는데 정신이 팔려 연 합타격부대 상공의 일본수상기마저 발견하지 못했다. 결국 전투기들은 하릴없이 연합타격부대 상공을 배회하다가 오후 5시 30분에 응고로 비행장으로 돌아갔다.
오후 5시가 넘어가면서 도먼 제독은 심경에 변화를 일으켰다. 그는 우세한 경순양함의 주포를 활용하기 위하여 적에게 접근하기로 결심했다. 순양함열은 적에게 접근하기 위 하여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같은 시각에 다카기 제독도 생각을 바꾸었다. 진쓰가 처음으로 포문을 연 이래 50분을 넘겨 지속되고 있는 전투에서 수많은 포탄과 어뢰를 쏘았음에도 적에게 뚜렷한 피해를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적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어 북상하고 있었는데 제5전대에서 북쪽으로 불과 20km 떨어진 해상에서는 일본선단이 남하중이었다. 다카기 제독은 승부를 빨리 결정짓기로 마음먹고 오후 5시 8분에 "전군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다카기 제독이 돌격명령을 내리는 순간 하구로가 발사한 20cm 포탄 1발이 엑서터를 강타했다. 포탄은 우현 후방의 4인치 포방패를 뚫고 들어가 B 보일러 안에서 폭발했으 며 보일러의 고압증기가 폭발력을 증대시켰다. 이 폭발로 보일러 2개가 파괴되었는데 더 큰 문제는 주증기 파이프 2개중 하필이면 멀쩡한 보일러 4개와 연결된 반대쪽 파이 프를 절단해 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잘려진 파이프에서 나온 고압증기가 귀가 멀듯한 굉음을 내면서 포탄에 뚫린 구멍으로 빠져 나갔다. 고압증기는 차가운 공기를 만나자 흰 수증기로 변하면서 마치 연막처럼 뒤따르는 함정들의 시야를 가렸다. 8개의 보일러 중 6개가 기능을 잃으면서 엑서터의 속력은 순식간에 11노트로 떨어졌다. 또한 폭발의 충 격으로 고압전기계통이 일시적으로 기능을 잃어 8인치 주포도 사격을 멈추었다.
요크급 중순양함 엑서터. https://en.wikipedia.org/wiki/HMS_Exeter_(68)
이 순간 취약한 연합타격부대의 통신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엑서터의 함장 고든 대령은 11노트로 속력이 떨어진 엑서터가 침로를 그대로 유지하다가는 뒤따르던 휴스 턴에게 추돌당할 것으로 보고 왼쪽으로 90도 꺾었다. 뒤따르던 휴스턴의 함장 룩스 대령은 갑자기 좌선회하는 엑서터를 보고 자신이 좌선회하라는 드루이터의 신호를 놓쳤 다고 생각하고 좌선회했다. 엑서터의 수증기 때문에 드루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퍼스의 함장 왈러 대령 또한 어뢰를 피하기 위하여 좌선회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생각하 여 좌선회했고 자바의 함장 반 스트랄렌 대령 또한 마찬가지였다. 순양함들이 갑자기 감속하면서 일제히 왼쪽으로 선회하자 혼란에 빠진 구축함들도 속력을 줄이면서 순양함 주변에 모여들었다.
이제 순양함열의 선두에 있던 드루이터는 일본중순양함 2척을 향해 혼자 돌진했다. 도중에 뒤를 돌아본 도먼 제독은 뒤따르던 함정들이 뒤쪽에서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을 발 견하고 깜짝 놀라 되돌아왔다. 이때쯤 퍼스와 영국구축함들은 엑서터로부터 피격당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퍼스는 호주함정이지만 같은 영국함대였으므로 통신체계가 같았 다. 퍼스의 왈러 함장은 즉시 6인치 함포를 난사하면서 앞으로 나서는 동시에 엑서터를 숨기기 위하여 연막을 뿌렸고 영국구축함들도 연막을 뿌리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지 켜보던 휴스턴에서는 엑서터가 피격당했다는 사실을 짐작했다.
이때쯤 일본군이 발사한 어뢰가 혼란에 빠진 ABDA 함정들에게 도달했다. 영국구축함 주피터가 가장 먼저 어뢰를 발견하고 경보를 발했다. 잠시 후 미국구축함 존 D포드는 짧은 간격을 두고 함수와 함미 방향으로 지나가는 어뢰를 보았다. 존D에드워즈의 뒤쪽으로도 어뢰가 지나갔으며 휴스턴은 실제로 어뢰에 맞았다. 천만다행으로 이미 프로펠 러가 멈춘 채 관성으로 달려온 어뢰는 휴스턴의 함체에 비스듬하게 부딪힌 다음 그대로 가라앉았다. 어뢰 몇개는 조기폭발했다.
코테네어는 운이 나빴다. 오후 5시 13분에 어뢰 1발이 코테네어의 우현 기관실을 직격하면서 탄두의 폭발이 용골을 부러뜨렸다. 코테네어는 오른쪽으로 뒤집힌 다음 체크나 이프처럼 꺾인 채 함수와 함미를 물밖에 내놓고 잠시 떠있다가 피격 1분 50초 만에 침몰했다.
네덜란드 구축함 코테네어. https://en.wikipedia.org/wiki/HNLMS_Kortenaer_(1927)
연합군 함정은 생존자를 구조하지 않았다. 만일 코테네어를 격침한 것이 적의 잠수함이라면 구조를 위하여 정지하는 것은 또다른 희생자를 만드는 일이 될 것이었다. 또한 연 합타격부대는 출동하기 전에 도먼 제독으로부터 격침되는 함정이 생기더라도 조난자를 구조하지 말라는 명확한 명령을 받고 있었다. 휴스턴을 비롯한 연합군 함정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구명구를 던져주는 것이 전부였다.
어뢰의 등장은 연합군 승조원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가장 가까운 일본함정도 13,700m 이상 떨어져 있었으며 그들이 생각하기로 그건 어뢰의 사정거리 밖이었다. 멀리 수 평선에서 검은 얼룩처럼 보이는 적이 발사한 어뢰가 그들에게 도달했다는 생각은 머리 속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주변에 숨어있는 일본잠수함이 공격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퍼스는 견시가 적의 잠망경을 보았다고 보고한 해면에 폼폼으로 사격을 가했으며 윗더위드는 소나로 적의 잠수함을 포착했다고 생각하고 폭뢰공격을 준비했다.
코테네어를 침몰시킨 어뢰를 누가 쏘았는지에 대해서 역사학자들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피격 위치, 어뢰가 달려온 방향 그리고 명중 시간 등을 고려하 면 코테네어는 휴스턴을 노리고 발사한 하구로의 어뢰에 맞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까지 일본함대가 소모한 포탄은 20cm 포탄(나치, 하구로) 1,271발, 14cm 포탄(진쓰, 나카) 171발, 그리고 93식산소어뢰 39발이었다. 20cm포탄의 명중탄은 5발이 었으나 엑서터에 명중한 1발을 제외한 4발은 불발탄이었다. 어뢰 중에서는 1발이 코테네어에 명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