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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자바해 해전(21)-주간전투(1)/http://blog.naver.com/imkcs0425/221316028864

 

21. 주간전투(1) - 조우

ABDAFLOAT의 수상함대는 자바해 해전 이전에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를 침공하는 일본선단에 대하여 4번 요격을 시도했다. 플로레스해와 방카해협에서는 적의 선단은 커 녕 호위세력도 보지 못한 채 공습을 받고 철수했다. 발리에서는 너무 늦게 공격한 데다가 전력을 분산하는 바람에 적의 열세한 호위세력에게 패배했다. 오로지 발릭파판에서 만 성공을 거두었으나 그마저도 적의 진격을 하루정도 늦추는데 그쳤다. 이제 연합군은 모을 수 있는 모든 수상함정을 끌어모아 자바를 향하는 일본선단에 마지막 요격을 시도했다.

일본의 동부자바공략부대는 서부자바공략부대보다 호위가 약했다. 56척의 수송선으로 이루어진 서부자바공략부대의 호위함정에는 모가미급 중순양함 4척과 경항공모함 류 조가 포함되어 있었지만 수송선 41척으로 이루어진 동부자바공략부대의 호위세력은 구형의 묘코급 중순양함 2척(나치, 하구로)을 중심으로 한 22척으로 이루어져 있었으 며 항공모함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들 중 중순양함 2척(나치, 하구로), 경순양함 2척(진쓰, 나카), 그리고 구축함 14척이 자바해 해전에 참가했다.

서부자바공략부대가 주력이긴 하지만 연합군 함대의 모항인 수라바야에 아까운 동부자바공략부대가 반격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당시 연합함대사령장 관인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이 연합군 함대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 나구모 제독의 항모기동부대를 투입하면서도 선단 호위가 아니라 자바 남쪽 해상의 소탕을 맡겼다는 사실에서 당시 야마모토 제독의 오만에 가까운 강한 자신감을 엿볼 수 있다.

자바해 해전에 참가한 일본함대는 3개 부대였다. 주력은 다카기 다케오 소장의 제5전대(나치, 하구로)로서 제24구축대(야마카제, 가와카제) 및 제7구축대제1소대(우시오, 사자나미)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자바해 해전 당시 야마카제, 가와카제, 우시오, 사자나미는 전투 시작과 동시에 제2수뢰전대의 지휘를 받게 된다. 두번째는 다나카 라이조 소장의 제2수뢰전대로 경순양함 진쓰와 제16구축대(아마츠카제, 유키카제, 도키츠카제, 하츠카제)로 이루어져 있었다.

마지막은 니시무라 쇼지 소장의 제4수뢰전대로 경순 양함 나카, 제2구축대(무라사메, 사미다레, 하루사메, 유다치) 및 제9구축대(아사구모, 미네구모)로 이루어져 있었다. 2월 27일 오전 10시 20분에 제2공습부대 소속 일본기가 연합군의 순양함 5척과 구축함 6척이 수라바야에서 서북쪽으로 120km 떨어진 해상에서 남쪽으로 항진 중이라고 보고했다. 제5전대 사령관 다카기 다케오 중장은 나치에서 수상기를 발함시키고 제2 및 제4수뢰전대에게 남하하라고 명령한 다음 자신도 제5전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달려 갔다. 선단은 오전 11시 30분에 서쪽으로 대피했다.

나치의 수상기는 오후 12시 35분에 연합타격부대를 발견하고 수라바야 동쪽의 기뢰원을 통과하여 수라바야로 돌아가는 중이라고 보고했다. 그러자 다카기 소장은 연합군 함대가 일본기의 수라바야 폭격을 피해 도망쳐 나왔다가 돌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오후 2시 30분에 수송선단의 침로를 되돌렸다.

오후 2시 45분에 나치의 정찰기로부터 연합군 함대가 방향을 바꾸어 북상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오자 다카기 소장은 나치와 하구로에게 다시 수상기를 2대씩 사출하여 접근하 는 적의 동태를 계속 감시하라고 명령했다. 제5전대와 제2 및 제4수뢰전대는 계속 남하했다.

해상에서 연합타격부대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다나카 라이조 소장의 제2수뢰전대였다. 제2수뢰전대는 제5전대와 만나기 위해 서쪽으로 항진하던 중 오후 3시 29분에 남 서쪽으로 30km 떨어진 거리에서 드루이터의 연기를 발견했다. 제5전대와 만나기 전에 자신보다 강력한 연합군 함대와 맞닥뜨린 제2수뢰전대는 잠시 당황했으나 곧 제5전 대가 북서쪽 수평선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동시에 제4수뢰전대도 제5전대의 서쪽에 도착했다.

자바해 해전의 주간전투 상황도.
시차가 현대와 달라 시간표에 30분을 더해야 당시의 현지시간과 맞는다. 즉 나카가 최초로 어뢰 를 발사한 시각은 1603시가 아니라 1633시이며 엑서터가 피격된 시간은 1638시가 아니라 1708시이다. https://philbancient s.blogspot.com/2018/01/naval-scenarios-17-battle-of-java-sea.html#!/2018/01/naval-scenarios-17-battle-of-java-se a.html


 

일전을 앞둔 양측함대는 언뜻보면 세력이 비슷했다. 연합타격부대는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3척, 구축함 9척으로 이루어진 반면 일본함대는 중순양함 2척, 경순양함 2척, 구축함 14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일본함대가 훨씬 우세했다.

1. 8인치 주포 - 20:12로 일본이 우세했다.
2. 어뢰 - 168 :100으로 일본이 우세했다. 게다가 일본어뢰는 성능이 뛰어난 93식 산소어뢰였다.
3. 속력 : 일본함대에서 가장 느린 시라츠유급 구축함이 34노트인데 반하여 연합타격부대는 좌초되어 보일러에 손상을 입은 코테네어 때문에 26노트로 제한되었다. 그리고 미국구축함들의 최고속력도 코테네어보다 그리 빠르지도 않았다.
4. 함령 - 모든 일본구축함은 1930년 이후에 취역했다. 반면 미국구축함은 1919년 - 1920년에 취역했으며 얇은 장갑과 밀폐되지 않은 4인치 포탑 4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제사격은 3문이 한계였다. 일본중순양함들은 1929년에 취역했으나 대대적인 개장을 거쳤다. 반면 자바는 1925년에 취역했으며 취역 당시에도 이미 시대에 뒤떨어진 구 식 설계였다. 엑서터는 레이더를 가지고 있었으나 대공레이더라 해전에서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5. 정비상태 - 일본함정들은 정상적인 정비를 받을 수 있었다. 반면 연합군 함정들은 모항인 수라바야가 지속적인 공습을 받는 데다가 부품이 모자라서 제대로 된 수리나 정비 를 받기 힘들었다. 휴스턴의 후방 포탑은 파괴되었다. 엑서터는 사격통제장치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전방 포탑의 양탄기에 문제가 있었다. 코테네어는 보일러 손상으로 속력 이 떨어져 있었다. 미국구축함들은 축전지가 새고 보일러는 낡았으며 함저에는 따개비가 잔뜩 붙어 속력을 떨어뜨렸다.
6. 승조원의 상태 - 일본함정의 승조원들은 안전한 항구에서 휴식할 수 있었다. 반면 연합군 함정의 승조원들은 항구에 들어가도 지속적인 공습 때문에 제대로 쉴 수 없어서 피로가 누적되었다.
7. 훈련 - 일본함정의 승조원들은 같은 해군 소속으로 같은 훈련을 받고 같은 전술적 교리에 따라 전투했다. 반면 3개의 함대에서 모인 연합군 함정은 시간 부족으로 한번도 합동훈련을 하지 못했다. 이는 마치 3개의 다른 팀에서 온 축구선수들이 한번도 합동 연습을 해보지 못한 채 시합에 나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8. 통신 - 연합타격부대는 2개 언어를 쓰는 3개 함대가 모인 집단이었다. 각 함대는 고유의 통신체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를 통일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네덜란드해군은 수기신호와 발광신호를 적극적으로 사용했지만 그것으로 복잡한 명령을 전달할 수는 없었다. 결국 도먼 제독이 명령을 내리면 드루이터에 승함한 미국과 영국의 통신장교들 이 자국함대에 중계했다.
9. 공중정찰 - 일본함대는 순양함의 수상기를 이용하여 연합군 함정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탄착관측을 실시했다. 반면 연합타격부대는 항공기를 이용한 정찰과 탄착관측이 불가능했다.

연합타격부대의 진형은 전투에 최적화되지 못했다. 통신문제 때문에 순양함들은 드루이터, 엑서터, 휴스턴, 퍼스, 자바의 순서로 늘어서서 초기에 주포의 사정거리가 짧은 퍼 스와 자바가 전투에 참가하기 어려었다.

구축함은 순양함열 좌우로 흩어져 있었다. 원래 계획에 따르면 구축함들은 순양함열의 오른쪽에서 나란히 항진해야 했다. 하지만 급히 북상하는 과정에서 속력이 느린 코테 네어가 순양함열의 왼쪽으로 처지자 함께 행동하던 윗더위드도 처졌다. 그러자 코테네어를 앞지르지 말라는 명령을 받고 있던 미국구축함들도 덩달아 왼쪽으로 처졌다. 그리 하여 순양함열의 오른쪽에는 영국구축함 3척이, 그리고 왼쪽에는 네덜란드구축함 2척과 미국구축함 4척이 항진했다.

도먼 제독에게도 유리한 점이 있기는 했다. 먼저 140mm, 150mm 및 6인치로 이루어진 경순양함의 6인치급 주포 수에서 25:14로 우세했다. 그러나 이런 우세를 살리려면 6인치 주포의 사정거리 내로 접근해야 했다. 다른 하나는 연합타격부대는 뭉쳐있는데 비하여 일본함대는 3개로 분리되어 있어서 개별 부대는 연합타격부대보다 약했다. 따 라서 재빨리 기동하고 운이 따라준다면 각개격파할 수 있었다.

연합타격부대에서 일본함대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영국구축함열의 선두에 선 엘렉트라였다. 엘렉트라는 오후 4시에 나치의 수상기를 발견한데 이어 4시 10분에 진쓰와 제16구축대를 발견했다. 오후 4시 15분에는 나치와 하구로를 발견했는데 처음에는 전함 2척이라고 보고하여 연합타격부대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었으나 1분 후에 중순양함 2척으로 정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