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쟁군사이야기

자바해 해전(23)-주간 전투(3)/http://blog.naver.com/imkcs0425/221320577244

 

 

23. 주간 전투(3) - 엘렉트라 침몰

상처입은 엑서터를 가리기 위하여 연합군 함정들이 연막을 뿜어내자 해상은 짙은 연막으로 둘러싸였다. 하지만 일본수상기 1대가 연합군 전투기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연합 타격부대의 상공에서 버티면서 엑서터의 상태를 확인하고 보고했다. 일본함정들은 승부를 결정짓기 위하여 오후 5시 9분에 급격히 좌선회하여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당 시 일본함대의 위치는 동쪽에 제5전대, 중앙에 제2수뢰전대, 그리고 서쪽에 제4수뢰전대의 순서였다.

자바해 해전의 주간전투 상황도. 시차가 현대와 달라 시간표에 30분을 더해야 당시 현지시간과 맞는다. 즉 나카가 최초로 어뢰를 발사한 시각은 1603시가 아니라 1633시이며 엑서터가 피격된 시간은 1638시가 아니라 1708시이다. https://philbancients. blogspot.com/2018/01/naval-scenarios-17-battle-of-java-sea.html#!/2018/01/naval-scenarios-17-battle-of-java-se a.html


 

혼자 적에게 돌진하다가 자신의 함대로 돌아온 도먼 제독은 흩어져 버린 진형을 정비할 시간을 벌기 위하여 오후 5시 25분에 영국구축함에게 반격명령을 내렸다. 당시 영국 구축함들은 흩어져 있었는데 가장 북쪽에 있던 있던 엘렉트라의 함장 세실 메이 중령은 동료 구축함을 기다리지 않고 즉시 돌진했다. 그리하여 엘렉트라는 혼자 연막을 뛰쳐 나가 일본함대와 대결하게 되었다.

그동안 일본함정들은 다시 어뢰를 발사했다. 오후 5시 50분에 제4수뢰전대의 기함 나카는 15,000m 거리에서 포격을 가하면서 접근하다가 12,500m 거리에서 엑서터를 향하여 어뢰 4발을 발사했다. 뒤따르던 제2구축대와 제9구축대(아사구모, 미네구모)는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어뢰를 쏘기 위하여 계속 돌진했다.

오후 5시 54분에 제4수뢰전대의 기함 진쓰는 18,000m 거리에서 어뢰를 발사했고 제16구축대, 제7구축대제1소대, 그리고 제24구축대(야마카제, 가와카제)는 8,500m - 9,000m 거리까지 접근하여 어뢰를 발사했다. 오후 5시 54분에 나치와 하구로는 포격을 가하다가 25,000m 라는 어마어마한 원거리에서 엑서터를 노리고 각각 8발씩 어뢰를 발사했다. 나카를 뒤따르던 제2 및 제9구축대는 엑서터를 노리고 어뢰 24발을 발사했다. 제2구축대는 7,500m - 10,000m 거리에서 발사했고, 제9구축대(아사구모, 미네구모)는 6,500m 까지 접근하여 발사했다. 이때 일본군이 발사한 어뢰는 모두 98발이었는데 1발도 맞지 않았다.

일본함정 중 연합군 함대에 가장 근접한 아사구모와 미네구모가 어뢰를 발사하는 순간 연막 속에서 엘렉트라가 뛰쳐나왔다. 엘렉트라는 깜짝 놀란 일본함정들이 쏘아대는 포 화를 뚫고 돌진하면서 아사구모에게 4.7인치 주포로 포탄을 날렸다. 이 포탄 중 하나가 아사구모의 기관실에 명중하여 4명의 전사자와 19명의 부상자를 기록했으며 아사구 모는 일시적으로 동력을 잃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엘렉트라의 무운도 여기까지였다. 아사구모에게 3,000m 까지 접근했을 때 미네구모가 쏜 5인치 포탄 3발이 연속 적으로 명중했다. 첫번째 포탄은 함교와 함의 나머지 부분과의 통신을 두절시켰다. 이때 중앙 조준기와 주포 사이의 연결도 끊어졌다. 두번째 포탄은 주 배전반을 파괴하여 전 방 함체의 전기를 끊어버렸다. 가장 큰 피해를 입힌 것은 세번째 포탄으로 기관실에서 폭발하여 보일러를 파괴하고 조향장치로 통하는 파이프를 끊었다. 엘렉트라는 해상에 멈춘 채 왼쪽으로 기울었다.

그러자 미네구모와 상처입은 아사구모는 물론 진쓰와 제16구축대까지 가세하여 엘렉트라에 포탄을 퍼부었다. 엘렉트라도 반격하여 아사구모, 미네구모, 그리고 도키츠카제 에게 명중탄을 기록했으며 진쓰도 포탄에 맞아 1명이 죽고 4명이 다쳤다. 최후의 수단으로 엘렉트라는 미네구모에게 어뢰를 발사했으나 빗나갔다.

이제 엘렉트라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일본군의 포탄에 맞아 A 및 X포탑, 탐조등이 파괴되었고 전방 함체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후방까지 번졌다. 또한 침수가 심해지면서 배 가 왼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함장 메이 중령은 부하들에게 퇴함명령을 내렸으나 자신은 같이 퇴함하자는 부하들의 간곡한 권유를 뿌리치고 함교에 남았다. 엘렉트라는 오후 6시 경에 왼쪽으로 전복되었으며 오후 6시 16분에 침몰했다. 173명의 승조원 중 메이 함장을 포함한 119명이 목숨을 잃었다. 엘렉트라의 생존자 또한 연합타격부대의 구조를 받지 못했으며 생존자 54명은 다음날인 28일 새벽 2시 35분에 미국잠수함 S-38에게 구조되었다.

E급 구축함 HMS 엘렉트라. https://en.wikipedia.org/wiki/HMS_Electra_(H27)


 

엘렉트라의 동료구축함들은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 에렉 모건 소령의 인카운터는 오후 6시부터 10분간 미네구모와 3,000m 거리에서 포격전을 벌였으나 서로 명중탄을 내 는데 실패했다. 윗더위드는 엘렉트라를 도우러 달려가던 도중 잠수함을 공격하기 위하여 준비했던 폭뢰 중 2개가 떨어졌다. 그중 한발이 함미 바로 후방에서 폭발하면서 프 로펠러와 발전기가 손상을 입었다.

그동안 엑서터의 상태를 알게 된 도먼 제독은 수라바야로 철수하라고 명령했다. 폭뢰로 피해를 입은 네덜란드구축함 윗더위드가 수라바야까지 엑서터를 호위했다. 순양함열은 드루이터, 퍼스, 휴스턴, 자바의 순서로 늘어서서 이제 15노트로 속력이 올라간 엑서터의 북동쪽을 지키면서 남하했다. 순양함열의 북동쪽에서는 미네구모와 포격전을 치 룬 인카운터가 혼자 남하했다. 이때 인카운터도 윗더위드와 함께 엑서터를 호위하여 수라바야로 철수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도먼 제독은 당분간 엑서터를 보호하면서 남하하여 일본함대와 거리를 두다가 해가 떨어지면 다시 북상하여 어둠 속에서 일본함대 사이를 빠져나가 수송선단을 공격할 계획 이었다. 네덜란드해군 또한 일본해군 못지않게 야전을 중시했으며 그만큼 자신감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선 엑서터의 위기를 눈치채고 달려들고 있는 일본함대를 쫓아내 야 했다. 오후 6시 6분에 드루이터는 발광신호로 미국구축함에게 반격명령을 내렸다.

전투 개시 이래 공격명령을 받지 못하여 애태우던 미국구축함들은 도먼 제독의 반격명령을 받자 즉시 최고속력인 28노트로 나치와 하구로를 향하여 돌진했다. 미국구축함들 이 연막을 뚫고 뛰쳐나와 돌진하자 나치와 하구로는 20cm 포탄을 발사했으나 730m 앞에 떨어졌다. 이 시점에서 제58구축함분대장 토머스 빈포드 중령은 더 이상의 접근 을 포기하고 어뢰발사 명령을 내렸다. 오후 6시 17분에 미국구축함 4척은 10,000m 거리에서 우현으로부터 20발의 어뢰를 발사했고 10분 후에는 방향을 바꾸어 좌현으로 부터 21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이때 발사한 41발은 모두 빗나갔다.

그동안 철수하는 연합군 순양함들도 계속 포격을 가했다. 포탑이 가동을 시작한 엑서터가 접근하는 나카에게 포격을 가했고 후방 포탑이 없는 휴스턴도 전방 포탑을 최대한 뒤로 돌린 상태에서 지그재그로 항진하면서 나카에게 포격을 가했다. 포격은 정확하여 협차를 기록했으나 명중탄을 내지는 못했다. 나카와 구축함들은 위협을 느끼고 연막을 뿌리면서 돌아섰다.

일본함대가 멀리 수라바야의 등대가 보이는 위치까지 접근했을 때 해안에서 40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일본군이 발사한 93식어뢰 1발이 자폭했다. 이 폭발을 바라본 다카기 제독은 상황을 재평가했다. 수라바야 부근에는 기뢰원이 있었으며 어쩌면 기뢰원의 면적이 일본군의 예상보다 넓어 방금 본 것이 기뢰의 폭발일지도 몰랐다. 연합군 함대는 전투를 포기하고 도망치고 있으니 선단의 안전은 확보되었다. 만일 연합군 함대가 밤에 다시 북상한다면 그때 격멸해버리면 될 것이었다. 다카기 제독은 전투를 종결하기로 결심하고 오후 6시 35분에 "각대는 집결하여 야전에 대비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일본함대는 전투를 치르면서 진형이 많이 헝클어져 집결에 시간이 걸렸다. 다나카 제독의 제2수뢰전대가 집결을 완료한 것은 오후 7시 7분이었다. 제4수뢰전대사령관 니시 무라 제독은 엘렉트라의 포탄에 맞아 동력을 잃었다가 겨우 복구한 아사구모를 미네구모와 함께 제4수뢰전대에서 분리하여 선단 호위에 투입했다.

엑서터 피격 이후 벌어진 전투에서 일본함대가 소모한 포탄은 20cm 포탄(나치, 하구로) 302발, 14cm 포탄 50발, 5인치 포탄 515발, 25mm 포탄 256발, 그리고 93식 산 소어뢰 98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