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야간전투(2) - 주피터 상실
1942년 2월 27일 오후 9시부터 연합타격부대는 연합군 정보부서가 일본군 상륙지점으로 예측한 투반만을 향하여 자바 북해안에서 약 6km 떨어진 해상을 단종진으로 항진했다. 순서는 드루이터, 퍼스, 휴스턴, 자바, 주피터였으며 멀리 뒤처져서 따라오던 인카운터는 아직 수평선 너머에 있었다.
연합타격부대의 행동은 감시당하고 있었다. 진쓰의 수상기가 연합타격부대 상공에서 일거수일투족을 보고했으며 연료가 떨어지자 오후 9시 20분에 나카의 수상기와 교대했다. 일본수상기는 일정한 간격으로 연합타격부대 상공에 조명탄을 떨어뜨려 일본함대에게 위치를 알리는 한편 침로를 따라 물에 뜨는 등불을 투하했다. 일본수상기의 이런 행동은 연합군 승조원을 놀라게 했다. 그때까지 연합군에게는 함정의 수상기를 밤에 운용한다는 교리 자체가 없었다.
일본수상기는 자바해 해전 전체를 통하여 연합군에게 골칫거리 였으며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수상기가 있는 한 투반만에 수송선단이 온다고 해도 연합타격부대가 기습하기는 어려웠다. 반면 다카기 제독은 수상기의 보고를 토대로 연합타격부대를 상대할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연합타격부대는 함정 숫자가 5척으로 줄어들고 일본수상기의 감시를 받고 있다는 것에 더하여 포탄도 부족했다. 퍼스가 보유한 6인치 포탄은 160발로 1문당 20 발 꼴이었다. 8인치 주포 6문이 사용가능한 휴스턴이 가진 주포탄은 300발 미만으로 1문당 50발이 채 되지 않았다. 휴스턴은 이날 오후에만 591발의 8인치 포탄을 발사했었다. 승조원들은 부서진 후방 포탑의 탄약고로부터 무게가 118kg에 달하는 8인치 포탄과 51kg에 달하는 장약을 1번 및 2번 포탑으로 옮겼다.
가장 큰 문제는 통신이었다. 원래 빈약하던 통신망은 주간전투 과정에서 거의 붕괴되었다. 드루이터의 보이스라디오는 주포 발사의 진동으로 고장났으며 도먼 제독의 명령을 받기 위하여 휴스턴에 설치된 같은 모델의 네덜란드제 보이스라디오 또한 진동으로 고장났다. 아직 드루이터에는 정상작동하는 무선전신기가 있었으며 도먼 제독은 이 무선 전신기를 통하여 헬프리히 제독에게 일본수송선단의 위치를 물었다. 그러나 모스 부호를 사용하는 무선전신기를 급박한 전투상황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으며 적도 수신할 수 있어 위험하기도 했다. 따라서 연합타격부대 내의 무전통신은 사실상 없어진 상태였다.
주간전투에서 도먼 제독은 나를 따르라는 깃발 신호를 많이 사용했다. 그러나 깃발 신호는 밤에는 사용이 불가능했으며 수기 신호도 마찬가지였다. 대신 야간에는 발광신호를 사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드루이터의 시그널 램프 또한 주포 발사의 진동으로 고장났으며 대용품으로 쓸 수 있는 탐조등마저 진동으로 고장났다. 결국 도먼 제독은 올디스 램프 라고 불리는 휴대용 점멸등으로 모스 부호를 사용하여 평이한 영어로 휘하 함정에게 명령할 수 밖에 없었다.
올디스 램프.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A_Wren_transmitting_messages_using_an_Aldis_la mp_in_19 44._D19088.jpg
연합타격부대가 투반만 북쪽을 통과하던 중 마지막에 따라오던 주피터가 오후 9시 16분에 기뢰에 접촉했다. 우현 함저에서 폭발한 기뢰가 2번 기관실을 분쇄하자 주피터는 동력을 잃고 해상에 멈추었으며 침수가 시작되었다. 보수반의 노력으로 주피터는 4시간 동안 해상에 떠 있었으나 침몰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함장 노먼 슈 소령은 퇴함명령을 내렸으며 승조원들은 질서정연하게 퇴함했다. 다행히 퇴함할 시간이 넉넉했고 침몰장소가 해안 부근이라 대부분의 승조원이 무사히 퇴함하여 투반 부근 해안에 상륙했다. 주피터는 28일 오전 1시 30분경에 침몰했다.
J급 구축함 주피터. https://en.wikipedia.org/wiki/HMS_Jupiter_ (F85)
주피터의 승조원들은 기뢰에 접촉하는 순간 어뢰에 맞았다고 생각했으며 연합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일본잠수함이 주피터를 격침했다고 믿었다. 하지만 당시 투반만에는 일본잠수함이 없었다.
실제로 주피터를 가라앉힌 것은 네덜란드해군의 기뢰였다. 일본군이 투반에 상륙할 것으로 예상한 네덜란드육군은 투반에 분견대를 보냈으며 헬프리히 제독은 기뢰부설함 고든 레이우에게 투반만 남쪽 해역에 기뢰를 부설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고든 레이우가 투반만에 막 들어섰을 때 일본수상기가 나타났다. 곧 공습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한 고든 레이우는 공포에 질려 싣고 있던 기뢰들을 모두 투반만의 북쪽 해역에 던져버리고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버려진 기뢰는 대부분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였으나 일부는 활성화되어 있었으며 주피터는 이 활성화된 기뢰 중 하나와 접촉했다.
투반만에 도착한 후에도 수송선단을 만나지 못하자 도먼 제독은 일본선단이 접근할 경로를 뒤짚어 북쪽으로 변침했다. 이제 순양함 4척으로 줄어든 연합타격부대는 고속으로 북상하면서 잠수함의 위협을 피하기 위하여 10도 각도로 지그재그로 항진했다. 나카의 수상기가 항로를 따라 등불을 떨어뜨리면서 뒤따라왔으나 오후 10시경 연료가 떨어지면서 돌아갔다. 따라서 다카기 제독은 연합타격부대의 행동을 알고 있다는 이점을 잃었다.
오후 10시 15분에 연합타격부대는 주간전투에서 격침되어 부근을 떠돌고 있던 코테네어의 생존자 사이를 고속으로 지나쳤다. 도먼 제독은 조난자를 구조하기 위하여 멈추는 대신 멀리 뒤처져 따라오던 영국구축함 인카운터에게 구조하라고 명령했다. 인카운터는 코테네어의 승조원 153명 중 113명을 구조하여 수라바야로 돌아갔다.
오후 10시경에 나카의 수상기가 연합타격부대의 상공을 떠나면서 이제 다카기 제독도 도먼 제독과 마찬가지로 깜깜이 상태로 해상을 수색하고 있었다. 오후 10 시 22분에 제10초계비행단의 카탈리나가 일본함대 바로 북쪽에서 일본선단을 발견하고 보고했으나 헬프리히 제독은 꾸물거리다가 자바해 해전이 참패로 끝난 이후에야 연합타격부대에 송신했다.
제2차 야간전투.
27일 오후 11시 3분에 남하하던 제5전대의 견시가 135도 방향, 15,000m 거리에서 북상하는 연합타격부대의 순양함 4척을 발견했다. 연합타격부대에서는 12분 늦은 오후 11시 15분에 북서쪽으로 8,200m 떨어진 거리에서 제5전대를 발견했다. 잠시후 휴스턴이 5인치 조명탄을 발사하면서 자바해 해전에서 가장 결정적인 마지막 전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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