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야간전투(3) - 자바 침몰
1942년 2월 27일 오후 11시 3분에 제5전대의 견시가 북상 중인 연합타격부대를 발견했을 때 다카기 제독은 최고의 기회를 잡았다. 33노트로 남하 중인 제5전대는 30노트로 북상중인 연합타격부대와 급속히 거리를 좁히고 있었는데 아직 연합타격부대는 제5전대를 발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는 다카기 제독이 의도하던 어뢰 공격에 최적의 상황이었다. 어뢰 공격시에는 적의 함수방향에서 비스듬하게 발사하는 것이 이상적으로 그럴 경우 도달시간이 짧아져 적이 대응할 시간을 뺏을 수 있었다. 게다가 연합타격부대는 제5전대를 발견하지도 못한 상황이었으니 완벽한 기습을 노릴 수 있었다. 하지만 다카기 제독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제2차 야간전투.
오후 11시 10분에 다카기 제독은 제5전대에 180도 선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연합타격부대가 제5전대를 발견하기도 전이었다. 다카기 제독이 절호의 기회를 잡고서도 어뢰공격 대신 선회를 선택한 이유는 명확하지 않은데 역사가들이 제시하는 이유는 대략 두가지다.
전통적인 견해는 다카기 제독이 수송선단의 안전을 염려했다는 것이다. 다카기 제독은 만일 서로 엇갈려 지나가면서 어뢰공격을 가할 경우 연합타격부대가 제5전대의 후방으로 진출하여 수송선단을 공격할까봐 걱정했다. 따라서 수송선단과 연합타격부대 사이에 제5전대를 두기 위하여 선회한 다음 연합타격부대와 나란히 북상하면서 어뢰공격을 가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견해는 33노트의 고속으로 연합타격부대를 뒤쫓으며 북상하던 제5전대가 어뢰발사 직후 명중을 확인하기도 전에 28노트로 감속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다른 견해는 다카기 제독이 연합타격부대의 속력을 착각했다는 것이다. 주간전투에서 연합타격부대는 코테네어 때문에 26노트로 기동했으므로 일본군은 연합타격부대의 순양함들도 최고속력이 26노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테네어를 잃고 최고속력이 28노트인 미국구축함들도 이탈하고 순양함만 남은 연합타격부대는 30노트의 고속으로 북상하고 있었다. 제5전대는 적의 속력을 26노트로 예상하고 어뢰발사제원을 구해두었는데 막상 접근해보니 적의 속력이 예상보다 훨씬 빨랐기 때문에 그만 어뢰발사 타이밍을 놓치고 선회하여 다시 발사제원을 구하여 공격했다는 견해다.
이유가 무엇이든 다카기 제독이 어뢰공격 대신 선회를 선택함으로써 연합타격부대는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최악의 상황은 면했다. 야간에 적을 발견하지도 못한 상태에서 고속으로 항진하다가 함수 방향에서 비스듬하게 발사된 산소어뢰의 기습을 받았다면 드루이터와 자바가 격침되는 선에서 끝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제5전대에게도 선회 명령은 뜻밖이었다. 갑작스런 선회명령에 따라 선두의 나치가 급속하게 반전하자 뒤따르던 하구로는 감속하면서 선회함으로써 나치와의 거리가 3,000 m 이상으로 크게 벌어졌다. 따라서 어뢰발사시 나치와 하구로의 발사각도가 달랐다. 앞장선 나치는 우현 직각에 가까운 80도로 발사한 반면 뒤처져 있던 하구로는 보다 북쪽으로 치우친 60도 각도로 발사했다. 나치와 하구로 사이의 거리와 이에 따른 발사각도의 차이가 드루이터 격침에 결정적 요인이 된다.
제2수뢰전대는 제5전대의 남쪽에서 제4수뢰전대와 합류하기 위하여 남서쪽으로 달려가다가 오후 11시 18분에 다카기 제독으로부터 수송선단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북쪽으로 변침하여 제5전대의 서쪽으로 북상했다. 제4수뢰전대는 제2수뢰전대보다도 더 서쪽에 있었다. 따라서 제2차 야전에는 동쪽에 치우친 제5전대의 중순양함 2척만이 참가하여 연합타격부대의 중순양함 1척 및 경순양함 3척과 대결했다.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연합타격부대였다. 연합타격부대는 오후 11시 15분에 나치와 하구로를 발견했으며 잠시 후 휴스턴이 5인치포로 조명탄을 2발 발사했다. 휴스턴은 조명탄에 떠오른 일본함정에 대해 일제사격을 실시했는데 이것이 제2차야전에서 휴스턴의 유일한 사격이었다. 도먼 제독은 포탄이 모자라는 휴스턴에게 명중시킬 자신이 있을 때에만 발사하라고 명령했다. 포탄 숫자가 휴스턴보다도 적은 퍼스는 아예 사격을 하지 않았다. 결국 드루이터와 자바만 사격했는데 사정거리가 거의 한계에 달해서 띄엄띄엄 사격했다.
이는 일본군도 마찬가지였다. 나치와 하구로의 탄약량 또한 하루종일 격전을 치르면서 슬슬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승조원들은 지쳤다. 게다가 포격보다는 어뢰로 승부를 볼 생각이었으므로 제5전대 역시 띄엄띄엄 사격했다. 실제로 제2차야전에서 나치와 하구로가 발사한 20cm 포탄은 합쳐서 48발에 지나지 않았다.
완전히 지쳐버린 선수들이 벌이는 축구경기처럼 맥없이 늘어지던 전투는 오후 11시 22분에 결정적 전기를 맞았다. 발사제원을 구한 나치는 9,500m 거리에서 연합타격부대를 향하여 80도 각도로 8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나치에서 남쪽으로 3,000m 떨어져 있던 하구로는 1분 후 나치보다 북쪽으로 치우친 60도 각도로 4발의 어뢰를 발사했다.
도먼 제독은 띄엄띄엄 이어지던 적의 포격이 멈추자 적이 어뢰를 발사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드루이터에게 우현으로 90도 꺾으라고 명령했다. 드루이터의 변침을 바라본 퍼스도 변침했고 이어서 휴스턴도 변침했다. 휴스턴 뒤에서 820m 거리를 두고 따라가던 자바 또한 휴스턴의 변침을 보고 오른쪽으로 꺾었으나 너무 늦었다.
자바급 경순양함 자바. https://en.wikipedia.org/wiki/HNLMS_Java_(1921)
자바가 오른쪽으로 변침을 시작한 직후인 오후 11시 36분에 나치가 발사한 8발의 어뢰 중 하나가 14분을 달려와 자바의 좌현 후방에 명중하면서 후방탄약고를 유폭시켰다.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면서 자바의 함미 약 30m 가 7번 포탑과 함께 떨어져 나갔고 거기로 해수가 밀려들어와 기관실을 침수시켰다. 구식 설계인 자바는 격실이 약하여 침수가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함장 반 스트랄렌 대령은 퇴함 명령을 내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일은 자바의 구명정이 모두 함내의 창고 1곳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 창고에는 문이 하나밖에 없었으므로 많은 승조원들이 구명정을 꺼내려고 몰려들었다가 함내에 갇혀 탈출기회를 놓쳤다. 피격된지 15분 만에 자바는 함미부터 침몰했으며 528명의 승조원 중 무려 512명이 목숨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