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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군사이야기

자바해 해전(28)-순다해협 해전(1)/http://blog.naver.com/imkcs0425/221331790156


28. 순다해협 해전(1) - 탄종 프리옥 출항

자바해 해전에서 살아남은 퍼스와 휴스턴은 1942년 2월 28일 오후 1시 30분에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의 수도인 바타비아의 외항 탄종 프리옥에 입항했다. 탄종 프리옥도 수라바야와 마찬가지로 일본군의 공습으로 큰 피해를 입어 항내 이곳저곳에 격침된 선박들의 잔해가 보였다. 부두의 설비는 대부분 파괴되거나 기능을 멈추었으며 부두에서 800m 떨어진 연료탱크는 폭탄에 맞아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불타고 있었다. 평소에 북적거리던 항구는 기괴할만큼 고요했다. 현지인 인부들은 모두 달아났고 소수의 네덜 란드 병사들이 남아있던 부두 설비에 폭파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퍼스와 휴스턴이 입항했을 때 탄종 프리옥에서 대양항해가 가능한 배는 서부타격부대와 함께 탈출할 기회를 놓치고 오전에 입항해 있던 네덜란드구축함 에버트센 뿐이었다.

자바해 해전 기간 동안 휴스턴의 수상기는 수라바야에 있는 모로크렘방간 기지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제 휴스턴이 탄종 프리옥에 입항했다는 소식을 들은 수상기 조종사 토 머스 페인 대위는 즉시 수라바야를 떠나 휴스턴으로 복귀했다.

휴스턴의 수상기가 도착하기 직전에 일본수상기가 탄종 프리옥 상공에 나타나서 퍼스가 대공사격을 가했다. 잠시 후 페인 대위의 시걸 수상기가 접근하자 방금 일본수상기와 교전한 후 신경에 예민해져 있던 퍼스가 다시 대공사격을 가했으나 다행히 아무 피해도 없었다.

커티스SOC시걸 수장정찰기. https://en.wikipedia.org/wiki/Curtiss_SOC_Seagull


지난 30시간 동안 거의 눈을 붙이지 못한 퍼스와 휴스턴의 승조원들은 탄종 프리옥에 입항하자 피로를 무릅쓰고 상륙하여 필요한 보급품을 찾아 나섰다. 가장 중요한 것은 포 탄과 연료였다. 1문당 50발 미만인 휴스턴의 8인치 주포탄과 20발 미만인 퍼스의 6인치 주포탄은 탄종 프리옥에 없었다. 승조원들은 퍼스의 부포인 4인치 포탄 약간을 보충 받는데 만족해야 했다.

연료 보급도 쉽지 않았다. 원래 네덜란드령 동인도제도는 손꼽히는 산유국이었으나 이제 수마트라와 보르네오의 유전은 일본군이 장악했다. 자바에서도 매달 22,000톤을 생산했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유전은 내륙에 있었는데 수송체계가 무너져 기름을 항구까지 실어올 방법이 없었다. 거기다가 탄종 프리옥의 연료탱크가 폭격을 받아 불타는 바 람에 퍼스와 휴스턴이 도착했을 때 남아있던 연료는 750톤에 지나지 않았다. 문제는 이마저도 보급받기가 여의치 않았다는 점이었다.

헬프리히 제독의 명령에 따라 탄종 프리옥의 연료는 네덜란드 함정에만 보급해야 했으며 미국함정들은 급유함 페코스에게서 급유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자바해 해전 이 벌어지기 이전의 일이었다. 이제 페코스는 현지에 없고 탄종 프리옥에 와서 연료를 공급받을 네덜란드 함정들은 지난 24시간 동안 모두 가라앉았음에도 불구하고 네덜란 드군 보급관은 헬프리히 제독의 기존 명령을 어기려고 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피곤에 찌든데다가 시간에 쫓기던 퍼스와 휴스턴의 장교들은 격분했고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네 덜란드군이 물러섰다. 퍼스는 전체 용량의 절반 정도인 300톤을 보급받았으며 휴스턴도 약간의 연료를 얻었다. 이 정도만 되어도 아껴쓰면 호주까지 가는 데는 충분했다.

퍼스와 휴스턴의 승조원들은 이제 자바를 떠나 호주로 철수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헬프리히 제독은 호주의 프레맨틀이나 실론의 콜롬보로 보내자는 미해군 글래스포드 제독과 영국해군 콜린스 제독의 제언을 거부하고 두척의 순양함에게 에버트센과 함께 순다해협을 거쳐 자바 남해안의 칠라찹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왈러 대령과 룩스 대령은 이미 끝난 싸움에서 자신들을 기어이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 넣으려고 작정한듯한 명령에 충격을 받고 분노에 휩싸였으며 이는 출항 이후 행선지를 알게된 다른 승조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좋은 뉴스는 탈출로인 순다해협이 아직 봉쇄되지 않았다는 소식이었다. 28일 오후 3시에 네덜란드해군의 정찰비행정들은 순다해협에서 10시간 이내의 거리에서 일본함대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휴스턴의 수상기 조종사 페인 대위는 룩스 함장에게 잘못된 정보라고 경고했다. 페인 대위는 탄종 프리옥으로 날아오던 도중 바 타비아에서 북쪽으로 130km 떨어진 해상에서 남하 중인 일본순양함을 보았다. 20노트로 남하하면 4시간 이내로 순다 해협에 도착할 거리였다. 당시 네덜란드공군과 육군 은 일본선단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었으나 ABDACOM 내부의 소통 문제로 해군에게 전달되지 않았다.

출항시간은 28일 오후 6시 30분으로 정해졌다. 출항을 기다리는 동안 왈러 대령의 부관인 개빈 캠벨 소위는 왈러 대령이 서명한 퍼스의 전투보고서를 콜린스 준장의 운전병 에게 전달했다. 이것이 당시 연합타격부대에서 작성된 자바해 해전에 대한 공식보고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다.

출항시간이 되었지만 기뢰지대를 안내할 도선사가 오지 않았다. 퍼스와 휴스턴은 1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결국 도선사없이 출발했다. 왈러 대령은 항구를 빠져나가다가 에버 트센이 아직 정박중인 것을 발견하고 왜 따라붙지 않느냐고 물었다. 에버트센의 함장인 왈버그 마리우스 더프리스 소령은 명령을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왈러 대령이 같이 가 자고 강력하게 권고하자 더프리스 소령은 보일러에 불을 붙이고 출항하려면 최소한 1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대답했다. 할 수 없이 퍼스와 휴스턴은 에버트센을 남겨두고 떠났 다. 퍼스 및 휴스턴과 함께 칠라찹으로 가라는 헬프리히 제독의 명령이 에버트센에 전달되지 않은 이유는 알 수 없다.

이윽고 퍼스와 휴스턴은 기뢰지대에 들어섰다. 도선사가 없었으므로 퍼스의 항해장 하퍼 소령은 입항 당시 도선사 어깨 너머로 봐 두었던 경로를 필사적으로 떠올리며 조함 했다. 숨막히는 시간이 지나고 무사히 기뢰지대를 통과하자 퍼스와 휴스턴은 22노트로 속력을 올렸다.

동시에 왈러 대령은 경계 태세를 2등급으로 낮추고 자신도 잠시 눈을 붙였다. 중차대한 순간에 잠을 자려는 결정의 적정성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왈러 함장은 자신의 승 조원들에게 절대적인 신망을 얻고 있었으며 호주해군 전체로 보아서도 현역 함장 중 가장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하루하고도 반나절을 꼬박 새운 승조원들에게는 수면이 절실했다. 그러나 여전히 근무해야 하는 필수 인원에게는 수면이 허락되지 않았으며 이는 견시도 마찬가지였다. 따라 서 피로에 찌든 눈으로 밤바다를 살피던 견시들이 몇 시간 후 뒤에 따라붙은 정체불명의 검은 함영을 늦게 발견한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