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순다해협 해전(3) - 전멸
적함 발견 소식을 듣고 남하하던 제7전대제2소대(미쿠마, 모가미, 시키나미)는 28일 오후 11시 36분에 퍼스와 휴스턴을 발견했다. 제7전대제2소대를 지휘하던 미쿠마 함 장 사키야마 샤카오 대좌는 적과 나란히 항진하기 위하여 60도로 좌선회하라고 명령했다. 제7전대제2소대는 오후11시 43분에 다시 110도로 우선회했으며 오후 11시 46 분에 수상기를 사출했다. 미쿠마와 모가미는 오후 11시 49분에 12,500m 거리에서 퍼스를 노리고 각각 6발씩 12발의 어뢰를 발사했는데 모두 빗나갔다. 이제 바비섬이 눈 앞이었으므로 제7전대제2소대는 왼쪽으로 크게 꺾어 180도 선회했다.
순다해협 해전 상황도.
퍼스의 함장 왈러 대령은 다시 탈출을 시도했다. 퍼스와 휴스턴은 오후 11시 46분에 오른쪽으로 180도 선회한 다음 산니콜라스곶을 향하여 전속력으로 항진했다. 그러나 탈 출로에는 너무 많은 일본함정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동안 북쪽을 항진하던 미쿠마와 모가미는 오후 11시 52분부터 12,500m 거리에서 탐조등을 비추면서 포격을 시작했다. 포탄 중 1발이 수선 부근에서 퍼스의 함체를 꿰뚫 어 침수를 일으켰으며 다른 1발은 휴스턴 전방 함체의 페인트 창고에 명중하여 화재를 일으켰다. 휴스턴의 승조원들이 불길을 잡았으나 그동안 불붙은 휴스턴은 어두운 밤바 다에서 절호의 표적이 되었다.
휴스턴도 반격했는데 명중탄은 내지 못했지만 오후 11시 55분에 지근탄 1발이 미쿠마의 주차단기에 충격을 주어 5분 동안 탐조등이 꺼지고 주포사격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 뜨렸다.
제7전대제2소대의 등장으로 의기양양해진 일본구축함들은 보다 공격적으로 나왔으며 퍼스와 휴스턴도 지지않고 반격했다. 제7전대제2소대의 구축함 시키나미는 지근탄에 의하여 프로펠러가 손상을 입으면서 속력이 24노트로 줄었으며 시라쿠모도 휴스턴의 포탄에 맞아 피해를 입었다.
오후 11시 57분에 모가미는 9,000m 거리에서 휴스턴을 노리고 산소어뢰 6발을 쏘았다. 어뢰는 휴스턴을 지나쳐 반탐만에 정박한 수송선단 쪽으로 돌진했으며 3월 1일 0 시 5분부터 해안에서 5번의 연속적인 폭음이 울렸다. 모가미가 발사한 어뢰에 맞아 상륙함 신슈마루와 수송선 사쿠라마루, 호라이마루, 타츠노마루, 그리고 제2호소해정이 격침되었다. 류조마루라는 가명을 쓰고 있던 신슈마루에는 제16군 사령관 이마무라 히도시 중장이 승좌하고 있었는데 상륙을 위하여 상갑판에서 대기하던 중에 배가 어뢰에 맞아 침몰하면서 참모들과 함께 바다에 떨어졌다. 나무판자를 붙잡고 바다를 떠돌던 이마무라 중장은 20분 만에 구명정에 구조되었으며 3시간 만에 중유를 흠뻑 뒤집어쓴 몰 골로 상륙했다. 그는 신슈마루가 연합군 어뢰에 맞았다고 생각했다. 모가미의 오발사고로 100명 가까운 인원이 사망했다.
그동안 일본구축함들도 어뢰를 발사했다. 오후 11시 56분에 하루카제가 좌현으로부터 6발을 발사했으며 28분에는 하타카제가 3,800m 거리에서 6발을 발사했다. 자정에 는 제12구축대(시라쿠모, 무라쿠모)가 각각 9발씩 발사했다.
부근 해상은 일본군이 발사한 수많은 어뢰로 부글부글 끓는 듯했다. 퍼스와 휴스턴은 자신을 향하여 달려오는 수많은 어뢰를 다 추적할 수 없었으며 일본구축함들도 아군이 발사한 어뢰를 피하기 위하여 회피기동을 해야만 했다.
자정이 되자 퍼스에서는 주포와 부포의 포탄이 모두 떨어졌다. 승조원들은 연습탄을 쏘았으며 연습탄마저 떨어지자 조명탄을 쏘았다. 휴스턴의 승조원들은 바짝 접근한 일본 구축함의 서치라이트를 향해 1.1인치 대공포와 50구경 대공기관총으로 사격을 가했다.
지친데다가 압도적인 적에게 둘러싸인 퍼스와 휴스턴의 승조원들은 남은 탄약을 모조리 써가며 저항하고 있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제 최후가 다가왔다.
3월 1일 오전 12시 5분에 퍼스의 우현에 하루카제 또는 하타카제가 발사한 어뢰 1발이 명중했다. 우현전방 기관실과 A 보일러실 사이를 강타한 어뢰의 폭발로 퍼스는 동력 을 잃었다. 잠시 후 시라쿠모 또는 무라쿠모가 발사한 어뢰 2발이 짧은 간격을 두고 퍼스에 명중했다. 1발은 A포탑 아래의 전방탄약고 부근에 명중하여 엄청난 유폭을 일으 켰으며 퍼스의 함장 왈러 대령은 퇴함명령을 내렸다. 그 순간 다른 1발이 우현 후방의 X포탑 부근에 명중했다. 이제 퍼스는 해상에 멈추었고 일본구축함들이 다가와서 포탄 을 퍼부었다. 잠시 후 4번째 어뢰가 다가와서 이미 물속에 잠긴 퍼스의 우현 상부구조물에 명중했다. 오전 12시 25분에 퍼스는 산니콜라스곶에서 북동쪽으로 18km 떨어진 해상에 침몰했다. 함장 왈러 대령은 퇴함 권유를 거부하고 함교에 남았다. 퍼스의 승조원 686명 중 왈러 대령을 포함한 351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335명은 포로가 되었으나 종전시까지 106명이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리앤더급 경순양함 퍼스. https://en.wikipedia.org/wiki/HMAS_Perth_(D29)
휴스턴의 승조원들은 비장한 심정으로 퍼스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룩스 함장은 탈출을 포기하고 일본군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히기로 결심했다. 휴스턴은 왼쪽으로 꺾어 일 본수송선쪽으로 다가가면서 8인치 주포탄, 5인치 포탄, 1.1인치 대공포탄 및 50구경 총탄을 퍼부었다. 해병대는 적의 탐조등에 소총사격을 가했다.
그러나 휴스턴에게도 최후가 다가오고 있었다. 1일 오전 12시 20분에 북쪽의 미쿠마와 모가미가 6,500m 거리에서 휴스턴을 향하여 포격을 시작했다. 최초의 일제사격에서 1발이 후방 기관실에 명중하여 휴스턴의 속력을 23노트로 떨어뜨렸다. 2번째 일제사격에서는 1발이 사관실에 명중하여 그곳에 있던 인원을 몰살시켰다. 다른 포탄 1발은 2 번 주포탑에 명중했다. 이 포탄은 불발탄이었으나 명중하는 순간 불꽃이 튀면서 포탑 안에 쌓아두었던 장약에 불이 붙었다. 승조원들은 유폭을 막기 위하여 전방 탄약고를 침 수시켜야 했다. 이로써 휴스턴의 8인치 주포는 모자라는 포탄마저 다 쓰지 못한 채 28번쨰의 일제발사를 마지막으로 침묵했다. 휴스턴도 반격을 가했다. 미쿠마는 함교에 포 탄을 맞아 6명이 죽고 11명이 다쳤다. 휴스턴의 5인치 포는 포탄이 떨어져 조명탄을 쏘고 있었는데 이것도 명중할 경우 외부에 노출된 승조원에게는 치명적이었다.
노샘프턴급 중순양함 휴스턴. https://en.wikipedia.org/wiki/USS_Houston_(CA-30)
이때를 전후하여 어뢰도 명중하기 시작했다. 재구성한 휴스턴의 일지에 따르면 최소한 4발이 명중했는데 누가 쏜 것인지는 불명확하다. 시라쿠모 또는 무라쿠모가 쏜 것으로 보이는 최초의 어뢰는 우현 함교 바로 아래에 명중했다. 이어서 우현에 2발이 더 명중하여 휴스턴은 급격하게 오른쪽으로 10도 기울었다. 이 시점에서 룩스 함장은 퇴함명령 을 내리고 2번 포탑의 화재를 피하여 함교를 떠났다. 나팔수가 함내방송망을 통하여 퇴함나팔을 불자 승조원들은 구명정을 띄우고 퇴함하기 시작했다. 50구경 기관총 사수들 은 즉시 퇴함하지 않고 바짝 접근한 적의 탐조등을 향해 남아있던 탄약을 모두 비운 다음에야 퇴함했다.
룩스 함장이 함교를 떠나 사다리를 내려오는 도중 적 포탄이 주변에 명중하여 파편이 그를 덮쳤다. 머리와 상체에 치명상을 입은 룩스 함장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주변에 있 던 찰스 스미스 소위가 달려갔으나 룩스 함장은 1분 이내로 사망했다. 부장 데이빗 로버츠 중령이 함장직을 이어받아 퇴함을 지휘했다.
사방에서 일본함정의 탐조등이 에워싼 가운데 휴스턴이 오른쪽으로 쓰러졌고 그 순간 시키나미가 발사한 어뢰가 마지막으로 좌현에 명중했다. 휴스턴은 1일 오전 12시 36분 에 함수부터 침몰했다. 1,061명의 승조원 중 함장 룩스 대령을 포함한 693명이 목숨을 잃었다. 살아남은 368명은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102명은 포로수용소에서 사망했다.
순다해협 해전에는 추가 희생자가 있었다. 네덜란드구축함 에버트센은 개전 1주일 전인 1941년 12월 1일에야 취역하여 승조원의 훈련이 부족했다. 따라서 헬프리히 제독이 연합타격부대를 만들 때 신예구축함임에도 불구하고 연합타격부대에 소속되지 못하고 서부타격부대에 남았다. 서부타격부대가 실론으로 탈출할 때 에버트센은 폭풍우 속에 서 본대를 잃고 2월 28일 오전에 혼자 탄종프리옥으로 돌아왔다.
애드미럴급 구축함 에버트센. https://en.wikipedia.org/wiki/HNLMS_Evertsen_(1926)
2월 28일 오후 7시 30분에 퍼스와 휴스턴이 탄종프리옥을 출항하면서 에버트센에게 같이 가자고 권유했으나 보일러에 불도 붙이지 않는 등 출항준비가 되어있지 않아 따라 나서지 못했다. 에버트센은 한시간 후에 출항하여 오후 9시 15분에 탄종프리옥 주변의 기뢰지대를 벗어났다. 이때 함장 왈버그 마리우스 드프리스 소령은 보일러 3개 중 2개 만 가동했는데 이유는 확실하지 않다.
자정을 전후하여 탄종프리옥 북서쪽의 텡가섬 부근을 지나던 에버트센은 산니콜라스곶 부근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헬프리히 제독에게 보고했다. 퍼스 와 휴스턴의 행방을 모르고 있던 헬프리히 제독은 즉시 퍼스, 휴스턴 및 에버트센에게 산니콜라스곶으로 가서 교전 중인 아군을 도우라는 엉뚱한 명령을 내렸다.
드프리스 함장은 명령을 무시하고 교전 지역을 피해 북쪽으로 우회했다. 에버트센은 수마트라의 문두섬 부근까지 북상한 후에 수마트라 해안을 따라 남하했다. 교전 지역을 최대한 피하여 수마트라 연안을 따라 순다해협을 빠져나가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1일 오전 2시에 에버트센은 수마트라 남단에서 제12구축대(시라쿠모, 무라쿠모)에게 들 켰다. 에버트센은 서쪽으로 도망쳤으나 보일러 3개 중 2개만 가동중이라 속력이 느렸다. 시라쿠모와 무라쿠모는 추격하면서 5인치 포탄을 10발 이상 명중시켜 에버트센의 후방 함체에 화재를 일으켰다. 에버트센도 함포와 어뢰로 반격했으나 명중시키지 못했다. 미숙한 에버트센의 보수반원들은 화재를 잡지 못했을 뿐 아니라 후방탄약고를 침수 시키는 데에도 실패했다. 화재로 인하여 후방탄약고가 과열되자 드프리스 함장은 배를 세부쿠섬 해안에 전속력으로 밀어붙여 함수가 번쩍 들릴 정도로 심하게 좌초시켰다. 승조원들이 탈출한 직후 후방탄약고가 폭발했다.
좌초한 에버트센의 모습. http://my-musings.blogdrives.com/comments?id=1 43
세부쿠섬에 상륙한 에버트센의 승조원들은 며칠 내로 일본군의 포로가 되었다. 168명의 승조원 중 32명이 교전 및 좌초 과정에서 사망했고 함장 드프리스 소령을 포함한 25 명이 포로생활 도중 사망하여 종전 이후에 생환한 승조원은 111명이었다. 순다해협 해전과 에버트센의 상실은 이제 순다해협이 완전히 봉쇄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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