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제58구축함분대의 탈출
1942년 2월 27일 저녁에 연합타격부대가 자바 북해안을 따라 서진할 때 제58구축함분대(존D에드워즈, 알덴, 존D포드, 폴존스)는 본대와 헤어져 수라바야로 철수했다. 어 뢰를 모두 소진하고 연료도 떨어진데다가 도먼 제독의 지휘에 환멸을 느낀 제58구축함분대장 토머스 빈포드 중령은 수라바야 해군관구를 통하여 도먼 제독에게 철수하겠다 고 통보했다. 당시 드루이터의 보이스라디오가 고장나서 도먼 제독은 무선전신기를 통하여 모스 부호로 수라바야 해군관구로부터 빈포드 중령의 철수의사를 전달받았다. 도 먼 제독이 철수를 승인하자 수라바야 해군관구에서 27일 오후 9시 52분에 빈포드 중령에게 중계했다.
4척의 구축함은 수라바야 외곽에서 구축함 포프를 만난 다음 자정을 막 넘긴 28일 새벽에 입항했다. 포프는 보일러에 온수를 공급하는 파이프에 금이 가서 연합타격부대에 참가하지 못했다. 이후 수라바야 기지에서 파이프를 용접한 후 항구 바깥에서 도먼 제독의 부름을 기다렸으나 연락이 없었다. 포프는 계속 기다리다가 철수중인 동료구축함 4척을 만나 수라바야로 다시 입항했다. 이로써 제58구축함분대는 5척으로 늘어났다.
수라바야항의 기능은 거의 멈춘 상태였다. 건선거의 현지인 인부들이 도망쳐버리는 바람에 약간 먼저 입항하여 홀랜드 부두에 계류한 엑서터의 승조원들은 스스로 나치의 2 0cm 포탄에 맞은 보일러실을 수리하고 있었다.
제58구축함분대가 부두에 접안하자마자 피로에 찌들은 승조원들이 쏟아져 나와 연료와 포탄 및 어뢰를 찾아 사방으로 흩어졌다. 포탄이나 어뢰는 없었으나 다행히 연료를 찾아내어 급유를 받았다. 급유가 끝나자 승조원들은 모두 승함하여 보일러를 켜고 명령만 떨어지면 즉시 출항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빈포드 중령은 반둥에 앉 아있는 글래스포드 제독에게 전화를 걸어 출항명령을 내려달라고 재촉했다. 글래스포드 제독은 헬프리히 제독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철수허가를 받아내겠다고 대답했다.
글래스포드 제독은 2월 28일 아침부터 헬프리히 제독 및 영국해군의 팔리서 제독과 함께 ABDA함대의 다음 작전에 대하여 논의했다. 헬프리히 제독은 자바해 해전의 참패 에도 불구하고 수라바야에 남은 함정을 가지고 싸움을 계속하려 했다. 글래스포드 및 팔리서 제독은 이제 저항은 불가능하며 살아남은 함정이라도 빨리 철수시켜야한다고 주장했다. 오후 들어서 마침내 헬프리히 제독이 고집을 꺾었다.
그동안 일본군이 공격했다. 마카사르를 이륙한 12대의 1식육상공격기가 타이난항공대 소속 제로기 12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28일 오후 2시에 수라바야를 공습했다. 응고로 비행장에서 미군의 P-40전투기 12대와 네뎔란드공군의 버팔로 4대가 떠올라 요격했다. 폭격기를 공격하려던 버팔로 2대가 제로기의 반격을 받아 격추되자 나머지 전투기 들은 전의를 잃고 물러섰다. 일본폭격기는 거의 방해를 받지 않고 폭탄을 떨어뜨렸다. 2월 18일에 페락항에서 일본기가 떨어뜨린 지근탄으로 피해를 입고 수라바야의 건선거 에 들어앉은 방커트는 24일에 건선거 안에서 지근탄을 맞은데 이어 또다시 지근탄에 의하여 함미 쪽에 피해를 입었다.
철수명령을 기다리다가 항구에서 공습을 당한 빈포드 중령은 잔뜩 화가 나서 다시 글래스포드 제독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회의 중인 글래스포드 제독과 통화하지 못했다. 오 후 4시가 넘어서야 회의를 마친 글래스포드 제독이 빈포드 중령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글래스포드 제독은 제58구축함분대의 출항을 허가했지만 포프는 남아서 엑서터를 호 위하라고 명령했다. 빈포드 중령은 그건 포프더러 죽으라는 소리라고 항변했다. 그는 속력이 16노트로 줄어든 엑서터의 탈출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글래스포드 제독도 같은 생각이었으나 나머지 구축함이라도 구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수라바야에 남은 함정을 가지고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헬프리히 제독에게 어뢰가 없는 미 국구축함은 무용지물이라는 논리를 밀어붙여 어렵사리 호주로의 철수허가를 받아낸 글래스포드 제독으로서는 그렇다면 어뢰가 있는 포프는 남아서 엑서터를 호위해야 한다 는 주장을 반박할 수 없었다. 팔리서 제독도 있는 자리에서 엑서터는 이미 끝장났으니 호위를 위하여 미국구축함 1척도 내놓지 못하겠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포프 의 운명은 결정되었다. 빈포드 중령으로부터 청천벽력같은 통고를 받은 포프의 승조원들은 자신들의 어뢰를 저주했다.
빈포드 중령은 호주와의 최단거리인 자바섬과 발리섬 사이의 발리해협을 통하여 탈출하기로 결정했다. 28일 오후 5시에 포프를 제외한 제58구축함분대(존D에드워즈, 알덴, 존D포드, 폴존스)는 수라바야를 출항했다. 출항 직후 제58구축함분대는 마두라 해협을 향하여 북상하다가 해가 떨어지자 반전하여 발리해협으로 향했다. 해가 떨어지기 전 에 일본정찰기에게 발견될 경우 북상하여 자바해로 진입하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것이었으나 사실 필요가 없었다. 일본군은 제58구축함분대의 출항을 몰랐다.
발리해협도 안전하지는 않았다. 전날인 2월 27일에 네덜란드의 탄약운반선 1척이 격침되었고 당일인 28일에도 상선 1척이 격침되었다. 발리해협에 적이 있다는 것은 확실 했으므로 오후 8시 30분에 빈포드 중령은 전투배치명령을 내렸다.
3월 1일 오전 12시 7분에 제58구축함분대는 발리해협에서 가장 좁은 구간에 도달했다. 이 구간에서 해협의 폭은 1.6km 밖에 되지 않았으며 수심도 최대 8m 밖에 되지 않 았다. 오전 1시 15분에 좁은 구간을 통과하자 구축함들은 속력을 26노트로 올리면서 자바해안에 바짝 붙어 남하했다. 이럴 경우 바다 쪽에서 보면 어두운 해안선 때문에 함 영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오전 2시 5분에 견시가 함수 왼쪽 약 7,300m 거리에서 일본구축함을 발견했는데 잠시 후 2척이 더 나타나 3척이 되었다. 발리침공부대를 호위했던 시미즈 도시오 대좌의 제21구축대(와카바, 네노히, 하츠시모)였다. 제21구축대는 미국구축함들의 북동쪽에서 나란히 항진하면서 초계중이었으나 빈포드 중령의 의도대로 검은 해안선을 배경으 로 항진하는 미국구축함들을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자바섬의 남동쪽 끝인 블람방간반도에 도달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블람방간반도 끝에는 산호초가 이어져 있었으므로 제58구축함분대는 해안선을 벗어나 동쪽으로 항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보름달의 환한 달빛 아래 수평선을 배경으로 미국구축함들의 함영이 뚜렷이 드러났다.
그때서야 미국구축함을 발견한 제21구축대가 5,000m 거리에서 포격을 시작했다.일본군의 포격은 정확하여 첫번째 일제사격이 함열의 3번째에 있던 존D포드를 협차했으나 다행히 명중탄은 없었다. 제58구축함분대는 최고속력인 27노트로 달아나면서 반격했다. 4인치 주포 16문, 그것도 일제사격 가능한 주포 수는 최대 12문인 제58구축함 분대가 5인치 주포 15문과 강력한 산소어뢰를 가진 제21구축대와 정면대결을 벌이는 것은 무리였다. 따라서 미국구축함들은 명중탄을 내기보다는 최대한 빨리 발사함으로 써 적을 견제할 목적으로 포격을 실시했다.
클렘슨급 구축함 존D포드. https://en.wikipedia.org/wiki/USS_John_D._Ford_(DD-228)
빈포드 중령은 더 나아가 속임수를 썼다. 당시 제58구축함분대는 어뢰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어뢰발사용 뇌관은 가지고 있었으며 일부는 연습탄을 가지고 있었다. 빈포드 중령의 명령에 따라 제58구축함분대는 갑자기 사격을 멈추고 일제히 뇌관을 터뜨리면서 연습탄을 발사했다.
이 속임수는 효과가 있었다. 갑자기 일제사격이 멈추더니 어뢰발사용 뇌관이 폭발하는 불빛이 번쩍이자 일본군은 미국구축함들이 어뢰를 발사한 줄 알고 황급히 물러섰다. 일본구축함들은 오전 2시 36분에는 포격도 멈추었으나 추격은 계속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일본구축함과 제58구축함분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비록 미국구축 함이 최고속력인 27노트로 도망치고 있었지만 일본구축함의 최고속력은 훨씬 빨랐으므로 전력으로 추격한다면 거리는 점점 줄어들어야 했다. 하지만 반대로 거리가 점점 멀 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일본군의 전의가 꺾였다는 증거였다. 마침내 산호초의 끝에 도달한 제58구축함분대가 205도로 변침하여 남서쪽으로 달아나자 일본군은 추격을 멈추었다.
오전 3시 21분에 일본구축함들은 수평선 너머에서 갑자기 일제사격을 실시했는데 빈포드 중령은 일본구축함들이 대응사격을 유도하여 위치를 알아내려는 속셈이라고 생각 하고 그대로 달아났다.
이제 문제는 공습이었다. 일본구축함들이 제58구축함분대의 탈출을 보고하면 날이 밝자마자 일본기가 들이닥칠 것이었다. 제58구축함분대는 발리의 덴파사르 비행장과 셀 레베스의 켄다리2 비행장에 전개한 일본기의 항속거리 내에 있었으며 자바 남쪽 해상에는 나구모 제독의 항모기동부대가 활동하고 있었다.
3월 1일 낮동안 제58구축함분대는 연신 하늘을 올려다보며 하루종일 최고속력으로 달렸다. 구축함이 이렇게 장시간 최고속력으로 달리면 엄청난 연료를 퍼먹지만 연료를 아낀답시고 천천히 달리다가 일본기에 덜미를 잡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다행히 낮동안 일본기는 나타나지 않았으며 마침내 해가 떨어지자 승조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후의 항해는 순조로웠다.
1942년 3월 4일에 제58구축함분대는 무사히 호주의 프레맨틀에 도착했다. 자바해 해전에 참가했던 연합군 함정 중 탈출에 성공한 것은 제58구축함분대의 구축함 4척(존D 에드워즈, 알덴, 존D포드, 폴존스)뿐이었다.